삼성전자노조 성과급 투쟁 평가
민주노조운동이 스스로 비추어 볼 거울
1. 끝나지 않는 갈등
막대한 성과급을 요구한 삼성전자노조의 투쟁은 올해 가장 ‘뜨거운 감자’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삼성전자 노사는 지난해 12월 2026년 상견례를 시작으로 임금교섭을 이어왔다. 그런데 노사 양측의 입장 차이가 좁혀지지 않자, 노조는 지난 2월 교섭 결렬을 선언하고 쟁의권을 확보했다. 삼성전자 노조가 5월 21일부터 6월 7일까지 총파업에 돌입하겠다고 밝히자 갈등은 급속도로 고조되었다. 정부는 고용노동부를 통해 중재에 나서는 한편, 파업 시 긴급조정권 발동을 시사하면서 강경하게 대응했다. 노사는 이후 두 차례 사후조정과 고용노동부 중재 끝에 총파업 돌입 직전인 5월 20일 잠정합의안에 서명했다.
[그림] 삼성전자 노사 임금교섭 경과
5월 20일 잠정합의에 이른 임금협약안은 찬성 73.7%로 가결되었다. 다만 DS 부문 중심의 초기업노조는 80.6%, DS 및 DX 부문 노동자가 섞여있는 전삼노는 21.1%의 찬성률을 보여 큰 차이를 보였다. 동행노조는 공동교섭단에서 이탈하며 투표권을 갖지 못했다. (출처: 《연합뉴스》)

극적인 합의에도 갈등은 이어지고 있다. 가장 큰 문제로 꼽히는 건 사업부문에 따른 성과급 격차다. 최종합의에 따라 대규모 흑자를 낸 DS(Device Solutions, 반도체) 부문은 1인당 최대 6억 원에 달하는 성과급을 수령할 것으로 예상되지만, 스마트폰·가전 등을 만드는 DX(Device Experience, 완제품) 부문은 기존 성과급 외에 600만 원 상당의 자사주를 지급받는 게 전부다. 그 결과 조합원 다수가 DX 부문 노동자로 구성된 삼성전자노동조합 동행(동행노조)은 임금협상 백지화, 1인당 1,000주의 자사주 지급, 전사 공통 재원을 통한 성과급 배분을 요구하고 있다. 교섭이 DS 부문 중심으로 이뤄지면서 DX의 관점에서는 성과급 투명화·제도화, 상한 폐지 모두 이루지 못했다는 주장이다. 동행노조는 DS 부문 위주로 흐르는 협상에 반발하며 교섭 중에 공동교섭단에서 이탈한 바 있다. 손종현 동행노조 위원장 직무대행은 지난 합의를 “10년짜리 을사늑약”이라고 비판했다.
조합원들이 이슈에 따라 대규모로 노조를 ‘갈아타는’ 경향도 갈등을 키우는 배경이다. 올해 삼성전자 임금교섭은 삼성그룹 초기업노조 삼성전자지부(초기업노조), 동행노조, 전국삼성전자노동조합(전삼노) 3개 노조가 공동교섭단을 꾸려 진행했다. 초기업노조는 한때 조합원이 7만 6,000명을 넘겨 단독으로 과반수 노조 지위를 점하기도 했으나, 최종합의 이후 반발한 조합원들이 대거 이탈해 5만 3,000여 명으로 조합원 수가 크게 줄었다. 반면 5월 20일 조합원 수가 2,600여 명이던 동행노조는 현재 3만 명을 돌파해 제2노조까지 올라갔다. 백순안 동행노조 정책기획국장은 “조합원이 2,000명대일 때는 DX와 DS가 반반이었는데, 지금은 3만여 명의 조합원 중 1,000명 정도를 제외하면 모두가 DX 소속이다. DX 부문이 배제된 성과급 합의에 대한 불만이 조합원의 동행노조 대거 가입으로 이어졌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이처럼 수많은 논란을 낳은 삼성전자노조 성과급 투쟁은 합의 이후에도 갈등이 끊이지 않고 있다. (삼성전자노조는 크게 3개가 존재하나, 굳이 구분할 필요가 없을 경우 글에서는 편의상 삼성전자노조로 통칭한다) 이 투쟁은 반도체 호황을 어떻게 사회적으로 분배할 것인지, 영업이익 N% 방식의 성과급 투쟁을 어떻게 평가할지 등 많은 논쟁거리를 남기기도 했다.
이 글은 삼성전자노조 성과급 투쟁을 사회운동적 관점에서 비판적으로 평가하고자 한다. 결론부터 말하면, 이 투쟁은 ‘자본의 수익성에 종속된 새로운 분배 원리’를 탄생시켰다는 점에서 우려가 크다. 최근 정부가 반도체 호황에 따른 세수 여윳돈을 모아 만들겠다고 발표한 ‘미래대응기금’도 간략히 살펴보며 약간의 의견을 덧붙이고자 한다. 아울러 이 글은 지난 7월에 있었던 ‘삼성전자노조 성과급 논란, 노동운동에 어떻게 영향을 미칠 것인가’라는 제목의 사회진보연대 내부 토론을 거쳐 작성했음을 밝혀둔다.
2. 노조의 요구와 최종합의, 어떤 의미인가
삼성전자노조가 유례없는 성과급을 요구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한국 반도체 기업들의 천문학적인 호황이 있다. 2026년 1분기 삼성전자의 영업이익은 57조 2,300억 원을 기록했으며, 7월 7일 잠정 발표된 2분기 영업이익은 89조 4,000억 원으로 엔비디아(약 81조 9,000억 원)·애플(약77조 8,000억 원)의 역대 최고 영업이익 기록을 모두 뛰어넘었다. 2026년 삼성전자의 연간 영업이익은 무려 300조 원대, 내년은 이보다 큰 500조 원대로 전망된다. SK하이닉스 역시 1분기 영업이익 37조 6103억 원, 2분기 영업이익 60조 5,426억 원을 기록했다.
또 다른 배경은 경쟁사인 SK하이닉스에서 이미 영업이익 10%를 성과급 재원으로 활용하여 지급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삼성전자는 매년 초 사업부 실적에 따라 초과이익성과급(OPI)을 지급했는데, 그 지표가 되는 경제적 부가가치(EVA)의 산정기준이 불투명했고 연봉의 최대 50%라는 상한도 존재했다. 반면 SK하이닉스는 기준이 ‘영업이익 10%’로 단순해 실적만으로도 성과급 규모를 예측할 수 있고 상한도 없어, 올해 많으면 1인당 수억 원 수준의 보상이 나오기도 했다. 이러한 보상구조의 투명성·형평성에 대한 불만이 특히 삼성전자 저연차 직원들에게 컸고, 대대적인 성과급 요구로 표출된 것이다.
과거에는 SK하이닉스도 EVA 산식을 통해 성과급을 지급했다. 그런데 실적이 부진했던 2019년 성과급 액수와 2020년 코로나 특수로 회복된 실적을 반영해 EVA로 산정한 성과급 액수가 같게 지급되며 기준 논란이 터졌다. 결국 2021년 2월 SK하이닉스 노사는 EVA를 없애고 영업이익 10%를 성과급 재원으로 하되, 기본급 1,000%(연봉 50% 수준)라는 상한을 설정하기로 합의했다. 2024년 역대 최대 규모 수준의 실적이 나오자 다시 지급 기준 논쟁에 불이 붙었고, 2025년 9월 노사는 성과급 기준을 상한 없이 ‘영업이익의 10%’로 향후 10년 간 적용하기로 최종 합의했다.
[그림] 삼성전자 노사 및 잠정합의안 내용 비교
(출처: 《연합뉴스》)

산정 기준을 투명화해야 한다는 노조의 요구는 노동자가 자신의 보상과 그 결정 원리를 알 수 있어야 한다는 점에서 타당하다. 그러나 장기간 영업이익의 일정 비율을 성과급으로 배분하라는 요구는 앞선 요구와 구별하여 살펴볼 필요가 있다. 후자는 단지 불투명한 임금제도를 개선하라는 수준을 넘어 기업이 획득한 이윤 가운데 일정한 몫을 노동자에 할당하는 새로운 분배 규칙을 만들라는 요구이기 때문이다. 최종 합의는 최초 요구보다 비율을 낮추고 지급 조건을 붙였지만, 영업이익에 연동된 특별성과급을 10년간 제도화한다는 원리는 수용한 것이다.
이 지점에서 삼성전자의 기록적인 이윤을 장기간 노동자에게 배분하도록 한 요구가 바람직한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현재 반도체 호황은 AI(인공지능) 투자 열풍이 만든 HBM(고대역폭 메모리) 수요,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의 자본투자 사이클, 메모리 공급능력의 제약과 가격 상승이 함께 작용한 결과다. HBM 세계시장은 삼성전자·SK하이닉스·마이크론이라는 소수 기업이 지배하는 과점시장이다. 그 결과 이들 기업이 엄청난 초과이윤을 획득하게 되었으나, 그 이윤은 영구적이지 않다. AI 투자 둔화, 메모리 가격 하락, 마이크론이나 중국 업체의 추격, 빅테크의 설비투자 사이클 하강 등 다양한 위협요소가 상존한다. 그런데 노조가 요구한 영업이익 정률 명문화와 상한 폐지, 그리고 이를 부분적으로 수용한 최종 합의는 세계시장의 특정한 국면에서 발생한 초과이윤을 정규직 노동자에 대한 장기적인 내부 분배 규칙으로 변환하여 고착시킨다.
들쑥날쑥한 ‘영업이익의 N%’로 성과급을 고정한 점은 불황기 노사 갈등의 ‘뇌관’을 남기고 기업의 미래 투자 여력을 소진시킨다는 문제가 있다. 2011년~2025년까지 DS는 시설투자에 약 422조 원을 쏟아부었는데, 이는 같은 기간 영업이익의 1.7배에 달하는 수치다.
이런 공격적 투자는 DX가 벌어들인 안정적 자금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같은 기간 사업부별 누적 실적을 비교해보면 매출은 DX가, 영업이익은 DS가 더 많았다. 핸드폰·가전은 매년 안정적 실적을 거둔 한편, 반도체는 장사를 더 잘한 셈이다. 그러나 반도체는 경기 사이클에 따라 호황기에는 막대한 이익을 내지만, 불황기 때는 10조 원이 넘는 적자를 기록하기도 한다. 이런 점을 고려하면, 영업이익이 언제든 감소할 수 있는 상황에서 성과급을 영업이익에 연동해 정률로 고정하는 합의는 향후 영업이익이 줄어들 경우 노동자의 보상에도 불안정성을 초래할 수 있다. 나아가 높은 성과급 지급이 장기적인 연구개발과 설비투자 여력을 제약한다면, 현재의 이익을 만들어내는 기반 자체를 약화시킬 수 있다. 즉, 황금알을 낳는 거위의 배를 가르는 꼴을 만들 수 있다.
[그림] 삼성전자 최근 15년간 사업부별 누적 실적 및 사업부별 예상 경영성과급
(출처: 《조선일보》)
결국 이번 사태의 핵심은 임금인상 투쟁 일반의 정당성 여부가 아니다. 세계시장의 독과점 구조와 특정한 산업순환 속에서 형성된 초과이윤을 누구에게 어떤 원리로 분배할 것인가의 문제로 살펴봐야 한다.
3. 노동운동의 관점에서 어떻게 볼 것인가
삼성전자노조 성과급 투쟁에 대한 사회의 비난 여론은 상당했다. 사회운동 일각에서는 삼성전자노조의 투쟁을 적극적으로 지지하였지만, 노동운동계에서도 이번 투쟁 과정을 두고 우려와 비판이 상당했던 게 사실이다. 삼성전자노조의 행보가 기존 민주노조 운동의 전통과 단절된 가운데, 부문 간 분배 규칙의 부재, 하청·비정규직 의제의 부재, 상급단체와 연대에 대한 무관심 등 여러 문제점을 총체적으로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최승호 삼성그룹 초기업노동조합 삼성전자지부 위원장은 《시사IN》과의 인터뷰에서 “정규직은 공부도 많이 한 분들이고, 입사할 때 채용 조건이 달랐는데 일률적으로 같은 선에서 봐야 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하청 노조에서 몇 번 연락이 오긴 했는데 삼성전자 근로자를 위해서만 활동하기 때문에 일단은 고려하지 않고 있다. 하청 노조가 원한다면 원청과 직접 교섭을 요구하면 될 일이다”라고 발언하기도 했다. (출처: 《시사IN》)

물론 사태가 이렇게까지 된 데에는 삼성전자 사측의 책임이 크다. 삼성전자의 성과급 산정 기준은 오랫동안 불투명하고 대외비로 처리되어 노동자들이 회사를 불신하게끔 했다. 신입사원이 들어오면 SK하이닉스로 이직하기 위한 스터디그룹을 만든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여기에 더 근본적으로 한국 재벌 가운데 삼성이 가장 오랫동안 유지해 온 ‘무노조 정책’의 후과가 있다. 2018년 그룹 차원의 노사전략 문건과 삼성전자서비스 노조 와해 공작이 드러났고, 2021년 관련된 삼성전자 전·현직 임원 일부가 대법원에서 유죄판결을 받았다. 2020년대 들어서 이재용 회장이 준법경영을 선언하면서 노조 회피 정책을 포기했다. 하지만 사측은 노조가 등장한 뒤에도 불투명한 성과배분과 사업부별 차등 구조를 유지하며 부문과 노조 사이의 경쟁구도를 강화했다. 그 결과 정상적인 노사관계 형성은 지체되었고, 노조는 사측이 강제한 경쟁 구도를 투쟁 과정에서 그대로 드러냈다.
그러나 사측의 책임과 별개로 몇 년도 채 되지 않은 신생노조가 왜 이런 문제를 드러냈는지 설명할 필요가 있다. 이번 삼성전자노조의 행태는 삼성전자노조만의 특수한 모습이라기보다, 한국 대기업 노조 일반의 약점이 응축되어 나타났다고 보는 게 타당하다. 즉, 한국 대기업 정규직 노조가 외환위기 이후 누적해온 운동방식을 가장 늦게, 그리고 가장 극단적으로 반복하는 형태로 나타났다는 것이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한국 노동시장은 구조적 불평등과 격차가 심화되어 왔다. 정리해고제 도입과 파견근로제 등 노동시장 유연화 입법, 기업의 경영전략 변화가 한꺼번에 진행되면서 대기업 정규직 고용은 최소화하고 하청 외주화가 전면적으로 진행되었다. 이 과정에서 대기업 정규직과 중소기업 노동자, 비정규직과 사내하청 노동자 사이의 노동조건 격차가 확대되었다.
[그래프] 2024년 임금근로 일자리 소득(보수) 결과
(출처 : 국가데이터처)

삼성전자 노사 최종합의안은 반도체 초호황과 결합하여 기업규모별·고용형태별 격차가 더욱 극적으로 드러난 사례다. 국가데이터처의 「2024년 임금근로일자리 소득(보수) 결과」에 따르면 임금근로자의 월평균 소득은 375만 원, 중위소득은 288만 원이며 대기업 평균은 613만 원이다. 최대 1인당 6억 원에 이르는 성과급 요구는 연간으로 환산한 전체 임금근로자의 평균소득과 비교하면 약 13배, 중위소득과 비교하면 약 17배에 달하며, 대기업 평균소득과 비교해도 약 8배에 이른다. 이번 성과급이 한국 사회의 일반적인 임금분포와 얼마나 큰 격차가 있는지를 보여준다.
역설적이게도 대기업의 높은 임금은 그간 대기업 중심 한국 노동운동이 거둔 성과이기도 하다. 물론 노동운동이 대기업노조의 임금인상만을 추구한 것은 아니다. 격차 확대에 대응해 산별 노사관계를 형성하려는 헌신적인 노력도 있었다. 그러나 산별노조라는 조직 형태는 상당 부분 갖추었음에도 실제 노사관계는 여전히 기업별 관계가 주류라는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드물게 산별교섭이 진행되더라도 실질적인 임금과 노동조건은 기업별 보충교섭에서 결정되는 구조가 여전하다. 대기업과 공공부문 정규직 노조는 자기 기업 또는 기관의 성과 분배에 주력했고, 정부와 자본은 기업별 지불능력에 따라 노동계의 불만을 관리하는 방식을 정착시키면서 임금과 노동조건 격차를 확대하는 구조를 만들었다.
지금의 상황은 삼성전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다. SK하이닉스에 이어 삼성전자가 영업이익에 비례한 성과급을 제도화하면서, 영업이익 N% 요구가 지불여력이 있는 대기업 정규직 노조들의 현실적인 선택지가 될 우려가 있다.
4. 이번 성과급 투쟁은 마르크스적 의미의 임금투쟁인가
이번 삼성전자노조 투쟁을 두고 마르크스주의적으로 정당화하는 주장도 등장했으므로, 이에 대해서도 자세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1) 마르크스의 임금론과 괴리된 영업이익 정률제: 자본에 종속되는 새로운 분배원리
우선 ‘임금’이 무엇인지 분명히 해둘 필요가 있다. 마르크스에게 임금은 노동자가 자본가에게 판매하는 노동력의 가격이다. 마르크스는 『임금노동과 자본』에서 “임금은 노동자가 생산한 상품에서 차지하는 몫이 아니다”라면서, 자본가는 노동자의 생산물이 판매되기 전에 이미 보유한 자본으로 노동력을 구매한다고 설명한다. 따라서 임금은 기업의 생산물이나 이윤과 별개의 원리에 따라 규정된다.
노동력 가치는 노동자를 유지하고 노동력을 지속적으로 재생산하는 데 필요한 생활수단의 가치로 규정된다. 여기에는 식량과 주거 같은 물리적 생존수단뿐만 아니라 교육·훈련, 문화적 생활, 노동력의 세대적 재생산에 필요한 비용도 포함된다. 또한 ‘역사적·도덕적 요소’, 즉 각 사회의 문명 수준과 노동자계급이 역사적으로 형성해 온 생활표준도 포함된다.(『임금, 가격, 이윤』) 물론 노동력 가치는 고정되어 있지 않다. 노동조합의 투쟁과 사회적 세력관계는 임금의 수준을 변화시키며, 노동력의 사회적 재생산 표준 자체도 바꿀 수 있다. 실제 임금은 경기변동, 노동시장의 수요, 제도와 계급투쟁에 따라 노동력 가치보다 높아지거나 낮아질 수 있다.
그렇기에 마르크스는 임금투쟁의 한계를 지적하면서도 그 의미를 인정한다. 마르크스는 『자본』 1권 6편에서 자본주의에서 나타나는 임금률의 두 가지 형태인 시간급과 성과급을 분석한다. 여기서 임금률은 노동자 1인에게 지불되는 미시변수고, 임금은 노동자 전체에 지금되는 거시변수다. 또한 마르크스가 분석한 성과급은 price wages, 즉, 개수임금이다. 이는 노동자가 생산한 개수에 따라 측정되는 시간급의 변형된 형태로, 기업실적에 따른 성과급인 incentive와 다른 개념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표준이 하락하면, 노동자는 시간급에서는 초과노동으로, 성과급에서는 노동강도의 상승으로 임금률을 보충하려고 한다. 그러나 그로 인해 ‘저임금·장시간·고강도 노동’이라는 악순환이 나타난다. 따라서 노동자들은 노동표준을 높이고 노동자 간 경쟁을 제한하는 ‘방어투쟁’에 나설 필요가 있다는 것이 마르크스의 관점이다. 일반적인 임금교섭은 물가, 주거·교육비, 숙련, 노동강도와 노동시간, 사회적 생활표준을 근거로 노동력의 가격을 높이려고 한다. 이러한 임금투쟁은 노동력의 사회적 재생산 조건을 지키고 확장하는 정당한 활동이다.
반면 삼성전자노조가 요구한 영업이익 정률제는 먼저 개별기업이 실현한 이윤을 두고 일정한 지분을 노동자의 보상으로 정하려는 요구다. 즉, 노동력 가치 → 임금 → 노동자가 받는 사회적 생산물의 몫이라는 관계를 개별기업 이윤 → 배분 비율 → 성과급으로 뒤집으려 한다. 여기서 성과급의 크기는 노동력 가치를 규정하는 생계비, 숙련, 노동강도나 사회적 생활표준과 아무 관계가 없다. 오로지 삼성전자가 세계시장에서 획득한 초과이윤과 그 분배 비율이 기준이 된다. 이런 맥락에서 이번 성과급은 마르크스가 말한 노동력 가치의 가격이 아니라, 기업 초과 이윤의 내부 분배에 가깝다. 이는 반도체 부문의 정규직이라는 특수한 내부자 지위를 근거로 독과점적 초과이윤의 일정 몫을 배타적으로 확보하려는 지대 추구다. 따라서 삼성전자노조의 이번 투쟁을 노동력의 사회적 가격을 높이려는 일반적인 임금투쟁과 동일하게 볼 수 없다. 오히려 삼성전자노조의 요구는 임금을 자본의 수익성에 종속시키는 새로운 분배원리를 만들고자 하는 것이다.
다만 마르크스가 지적한대로 임금투쟁은 ‘원인이 아니라 그 효과에 대한 투쟁’이라는 점 또한 유념해야 한다. “노동조합은 현 제도가 빚어낸 결과를 반대하는 유격전에만 자신을 국한하고, 이와 동시에 현재의 제도를 변혁하려 하지 않는다면, 또 자신의 조직된 힘을 노동자계급의 종국적 해방을 위한, 즉 임금제도를 궁극적으로 철폐하기 위한 지렛대로 사용하지 않는다면 실패하게 된다.”(『임금, 가격, 이윤』) 따라서 임금인상이라는 당면한 요구에만 머무르지 않고, 노동자 간 경쟁을 극복하며 노동자계급의 단결을 확대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마르크스가 『공산주의자 선언』에서 말한 ‘끊임없이 확대되는 단결’ 역시 이러한 방향에서 이해할 수 있다.
2) 기업이윤은 그 기업 노동자만의 생산물이 아니다.
개별기업이 실현한 이윤은 그 사업장 노동자들이 직접 생산한 잉여가치와 일치하지 않는다는 점을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 자본주의에서 사회적 총노동이 생산한 총잉여가치는 부문 간 경쟁과 자본 이동, 생산가격의 형성을 거쳐 개별 자본에 재분배된다.(『자본』 3권 평균이윤율 분석) 여기서 기술적 우위와 시장지배력을 가진 기업은 자신의 사업장에서 직접 생산한 잉여가치를 넘어서는 이윤을 실현할 수도 있다. 이런 관점에서 삼성전자의 이윤이 삼성전자 정규직 노동자만의 생산성이나 기여도에 직접적으로 비례한 성과라고 볼 수 없다.
삼성전자 내부 자금운용 측면에서 봐도 현재의 반도체 이윤을 메모리 사업부 노동자만의 성과로 보기 어렵다. 삼성전자는 사업부별 독립채산제로 성과를 계산하지만, 전사적 차원에서 투자와 자금 운용을 해왔다. 반도체 부문이 적자를 기록하던 시기에는 모바일·가전 등 다른 부문이 창출한 현금 흐름이 반도체 투자를 뒷받침할 수 있었다. 이번 타결을 전후해 DX 부문 노동자들이 과거의 공동 부담은 무시한 채 현재의 흑자만 반도체 부문이 독점한다고 반발한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반도체 생산력은 개별기업 내부에서 고립적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현대 반도체 산업에서 생산성은 사회적으로 축적된 과학기술, 광범위한 분업과 협업, 교육받은 노동력, 공공 인프라와 세계시장에 의존한다. 한국에서는 2025년 이른바 K-칩스법 개정으로 반도체 설비투자 세액공제율이 대기업·중견기업 20%, 중소기업 30%로 확대되었고, 정부는 50조 원 규모의 첨단전략산업기금 조성도 발표했다. 전력과 산업용수의 우선 공급, 평택·기흥·화성·이천·청주 등에 걸친 산업단지 조성,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제공한 교통·연구·교육 인프라 덕분에 현재의 반도체 생산력을 달성할 수 있었다.
전 세계적인 공급망과 수천 개 협력업체 역시 완제품 생산에 기여하는 주요 조건이다. 고용노동부 고용형태 공시를 인용한 《한겨레》 보도에 따르면 삼성전자 사업장의 ‘소속 외 근로자’는 3만 5,701명으로 전체의 21.6%에 이른다.(배지현·박종오, 2026년 4월 24일) 외환위기 이후 대기업들은 고이윤을 낳는 최종 생산부문과 시장 접근권을 장악하는 한편, 노동집약적이거나 수익성이 낮은 부문을 외주화했다. 그 결과 원청의 불공정한 납품단가 인하는 하청업체 노동자 임금을 낮은 수준으로 유지하도록 강제했다. 한 연구에 따르면 1차 하청의 임금이 원청보다 20.9%, 2차 이하 하청은 27.9% 낮은 것으로 추정된다.
이처럼 삼성전자의 높은 이윤은 해당 기업 정규직의 노동만이 아니라 원하청 생산망 전체에서 생산·이전된 가치를 포함한다. 이를 마르크스주의적으로 표현하면 원청의 우월한 단가결정권을 매개로 협력업체 노동이 생산한 가치의 일부가 원청 대기업으로 이전되는 부등가교환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삼성전자노조의 요구에는 사회적 생산 구조에 상응하는 분배 의제 없이, 오로지 정규직 노동자 7만 명의 요구에만 몰두했다. 심지어 사업장 내부 부문별 격차를 확대하기까지 했다. 삼성전자 공식 자료에 따르면 2025년 부문별 영업이익은 DS(반도체) 24조 9천억 원, DX(가전·모바일) 12조 9천억 원, SDC(디스플레이) 4조 1천억 원으로 나타난다. 최종합의의 결과로 부문별 이익과 성과급이 연동되면서, 수익성 격차가 노동자 보상 격차로 이어졌고 노동자 간 분열로 이어졌다.
3) 노동자 단결이라는 기준
마르크스주의 입장에서 임금투쟁의 진정한 의의는 임금인상이라는 직접적 결과에 있는 것이 아니라 노동자들의 ‘끊임없이 확대되는 단결’에 있다. 삼성전자노조 투쟁을 ‘노동자 단결’이라는 기준에서 평가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노동조합에 대한 사회적 신뢰를 하락시키고 노동자 단결을 훼손했다. 가장 극단적인 기업별 분배 원리에 기초한 결과, 노동조합이라는 조직이 ‘대기업 정규직의 지대를 확보하는 수단’이라는 인식을 사회 전체에 널리 퍼뜨렸다. 삼성전자노조가 쟁취한 성과급은 우리 사회 대다수 노동자가 상상하기 어려운 수준으로, 노동자 간 격차를 더욱 확대했다. 천문학적 이윤에 기여한 하청·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외면했음은 물론, 같은 기업 내 격차도 확대하여 노동자 분열을 낳았다.
둘째, 사업장을 넘어 단결을 창출하기 위해 전체 노동자의 임금 몫을 높이고, 보편적 임금기준을 마련하고자 노력한 민주노조운동의 시도와 거리가 멀다. 그동안 산별노조와 산별교섭을 추진한 핵심 목표는 해당 산업 노동자에게 공통으로 적용되는 산별 임금체계를 형성하기 위함이었다. 산별 임금기준은 노동력 재생산에 필요한 생계비, 물가와 국민경제 평균의 부가가치 생산성, 산업 공통의 직무·숙련 등급 등을 종합하여 구성할 수 있다. 이는 개별기업의 지불능력을 넘어 어느 기업에 고용되든 동일한 노동이라면 동일한 기준을 적용하려 한 시도였다. 반면 삼성전자노조가 쟁취한 성과급은 반도체 호황의 특수한 국면에서 삼성전자의 이윤에 기댄 방식이다. 기업별 특수성에 따라 임금을 극대화하는 사례가 더 확산한다면, 그동안 이어온 민주노조운동의 노력은 무력화되고 말 것이다.
셋째, 노동자의 이해를 자본의 이해에 종속시킬 우려가 있다. 성과급이 영업이익에 정률로 연동되면 노동자는 기업의 이해에 일정하게 조응하게 된다. 하청 납품단가 후려치기, 인력 구조조정 등 사측의 각종 비용 절감 시도에도 눈감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특히 특별성과급을 일정 기간 매각이 제한된 자사주로 지급하기로 하면서 노사 이해관계의 결합은 더욱 확고해졌다. 더 근본적으로, 노동력 재생산을 경기순환에 따른 기업 성과에 의존하게끔 했다. 노동자의 주거·교육·돌봄과 생계는 불황기에도 지속되어야 함이 당연하다. 그러나 이윤과 연동된 성과급은 호황기에 폭증하고 불황기에 사라진다.
5. ‘미래대응기금’, 초과세수 활용방안으로 적절한가
반도체 기업들의 천문학적 이윤을 두고 사회적 분배 논쟁도 있었다. 발단은 5월 11일 김용범 청와대 정책실장의 페이스북 글이었다. 그는 “AI 인프라 공급망에서의 전략적 위치가 구조적 호황”을 만들어 초과세수로 이어질 것이기에, “과실의 일부는 구조적으로 국민에게 환원되어야 한다”며 ‘국민배당금’을 언급했다. 김용범 실장의 주장은 논란을 낳았다. 5월 27일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은 “대기업의 초과이윤을 사회적으로 재분배할 방법을 찾기 위해 ‘한국형 사회연대임금’ 가능성을 모색하겠다”고 밝혔다.
저성장·양극화가 심각한 상황에서 소수 기업만이 달성하고 있는 역대급 이윤을 어떻게 사회적으로 분배할지 논의는 필요하다. 대체로 특별세를 부과하거나 기금을 조성해 기업이윤 일부를 환수하고, 이를 사회복지·양극화 해소에 쓰자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그러나 현재 이와 같은 주장은 정치적으로 정당한 측면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뒷받침할 개념과 근거가 충분히 제시되지 않은 채 구체적인 사용처에만 논의가 집중되는 문제가 있다. 최근 정부가 ‘미래대응기금’을 조성하기로 발표하면서 그간의 논쟁은 일단락되는 모양새다. 여기서는 미래대응기금을 살펴보며 약간의 의견을 덧붙이고자 한다.
1) 윤곽을 드러낸 미래대응기금, 어디에 어떻게 쓰이나
8월 21일 기획예산처는 제1차 재정운용전략협의회를 개최하고 ‘미래대응기금 추진방안’을 발표했다. 박홍근 기획예산처장은 “이 소중한 재원을 일시적인 지출이나 소극적인 재정건전성 관리에 활용하기보다 미래 성장의 발판을 마련하는 생산적 지출로 전환해야 한다”고 강조하며, 기금을 잠재성장률 반등을 위한 재원으로 활용하겠다고 밝혔다.
기금은 총괄계정과 ▲ 청년 ▲ 성장동력 ▲ 지방 ▲ 교육·인재 등 4개 분야의 사업계정으로 구성된다. 세수 여건이 악화될 경우, 부족한 예산을 보완하는 일종의 ‘재정 저수지’ 역할도 맡을 전망이다. 재원은 다음 연도 내국세 세입예산 가운데 최근 10년 추세치를 웃도는 추가세수와 당해 연도 세입예산을 초과해 걷힌 초과세수 등으로 마련하며, 내년에만 100조 원을 넘을 것으로 예상된다.
[그림] 미래대응기금 예산안
기획예산처가 9월 1일 발표한 ‘2027년도 예산안’에 따르면 내년도 미래대응기금 재원은 162조 3천억 원 규모로 전망된다. 향후 세입 재추계 시 내국세 수입이 늘어날 경우 기금 규모는 더 커질 수 있다. (출처: 《연합뉴스》)
문제는 미래대응기금의 목적이 지나치게 광범위하다는 점이다. 국가재정법은 “기금은 국가가 특정한 목적을 위하여 특정한 자금을 신축적으로 운용할 필요가 있을 때에 한하여 법률로써 설치한다”고 규정한다. 실제로 외국환평형기금은 외환시장 안정, 주택도시기금은 서민·중산층의 주거 안정과 주택 마련 지원이라는 비교적 명확한 목적이 있다.
반면 미래대응기금이 내세운 청년, 성장동력, 지방, 교육·인재라는 네 분야는 사실상 우리 사회의 주요 정책 영역 대부분을 포괄한다. 이 때문에 ‘미래 성장 투자’라는 명분과 달리 기금이 정부가 원하는 각종 정책에 두루 활용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벌써 이재명 대통령의 대선 공약인 농어촌 기본소득 사업에 기금을 활용하는 방안이 거론되는 것도 이러한 우려를 키우는 대목이다.
2) 진정 ‘미래’를 위한 투자인가
반도체 호황으로 생긴 여유 재원을 곧바로 소비하지 않고 미래 성장을 위해 활용하겠다는 취지 자체는 바람직할 수 있다. 5월 13일 김용범 청와대 정책실장도 노르웨이 국부펀드를 언급하며 “호황을 일시적 횡재로 소비하지 않고 장기적 사회 자산으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올해 4월 초과세수를 추가경정예산에 곧바로 투입한 데 대한 문제의식도 깔려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노르웨이식 기금 운용의 핵심은 단순히 호황기에 생긴 재원을 별도 기금으로 모아두는 데 있지 않다. 노르웨이식 기금은 가급적 축적된 원금을 건드리지 않고 정부 재정과 일정하게 분리한 채, 기금의 장기 기대수익 범위 안에서만 재정에 활용하는 것이 핵심이다. 언젠가 고갈될 자원에서 생긴 수익을 현 세대가 모두 소비하지 않고 미래 세대와 나누기 위한 장치인 셈이다. 아울러 국부펀드가 수익의 원천인 석유 산업에 다시 투자하지 않는다는 점도 중요하다. 석유 호황이 끝날 때 국가 재정과 기금의 수익성이 동시에 흔들리는 위험을 피하기 위해서다.
그렇다면 미래대응기금은 과연 정부가 말하는 대로 ‘미래를 위한 투자’에 쓰일 것인가. 정부는 ‘성장동력 확보’를 위해 기금을 AI와 ‘3대 메가프로젝트’, ‘7대 시드(SEED·씨앗)’ 등 첨단전략산업 육성에 투입하겠다고 밝혔다. 특히 ‘AI 3강’ 도약과 메가프로젝트 추진에 필요한 전력·용수 등 인프라 구축에도 기금을 활용할 예정이다.
하지만 이러한 메가프로젝트가 실질적인 장기 성장 잠재력 제고로 이어질지는 의문이다. 전문가들은 중국이나 대만에 비해 한국 정부의 정책은 미래 산업의 씨앗을 뿌리기보다 이미 호황인 산업에 올라타는 것에 가깝다고 지적한다. 기업이 자체 투자를 주도할 수 있는 수익성이 높은 분야 대신, 민간이 꺼리지만 장기적 성장의 토대가 되는 기초과학·기술 R&D(연구·개발)와 교육·인재 육성에 공공재원을 투입하는 것이 정부의 본령에 맞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중국과 대만이 수십 년 앞을 내다보고 장기 전략을 추진해 온 것과 대조적으로, 한국은 이미 이익이 나고 있는 반도체 산업에만 대규모 자원을 거듭 쏟아붓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7월 2일 방한한 더글라스 서덜랜드 OECD 국가분석과장도 “추가세수는 성장을 도모하거나 부채를 상환하는 데 사용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지적하면서, 성장잠재력 확충을 위한 방안으로 교육 강화, 고숙련 인력 훈련, 미래 투자 기금 조성 등을 언급한 바 있다. 반면 특정 산업이나 기업에 대한 정부의 직접 투자, 특히 이미 민간투자가 활발한 호황 산업에 대한 추가 지원은 자칫 정부가 민간기업과 경쟁하거나 과잉·중복투자를 부추겨 기대한 효과를 내지 못할 가능성이 있다.
그보다 더 큰 문제는 미래대응기금이 장기적인 산업투자조차 아닌 정부의 ‘쌈짓돈’이나 ‘상시추경’으로 변질될 가능성이다. 일반 예산은 국회의 심의·의결을 거쳐야 하지만, 기금은 일정 범위 안에서 국회의 별도 심의 없이 정부가 운용계획을 변경할 수 있다. 사업성 기금은 20%, 금융성 기금은 30% 범위에서 정부가 자체적으로 조정할 수 있다.
기획예산처가 밝힌 것처럼 기금이 세수가 부족할 때 재정을 보완하는 용도로만 사용될 수도 있으나, 그 범위를 넘어 선거를 앞둔 선심성 사업이나 부처별 나눠먹기식 사업에 활용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더욱이 기금을 담당하는 기획예산처가 이재명 정부의 정부조직 개편으로 재출범한 부처라는 점 역시 기금 운용의 독립성과 통제 문제를 제기한다. 기금의 용도와 운용 기준을 더 명확히 하고, 국회 차원의 감시·통제 장치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
3) 일시적 지반 위에 집을 짓지 말아야
무엇보다 현재 미래대응기금의 발판이 되는 풍부한 세수가 언제까지나 지속되지는 않을 수 있다는 점을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 최근 세수 증가의 상당 부분을 뒷받침하는 반도체 산업은 전형적인 경기순환 산업이다. 지금의 호황이 장기간 이어질 것을 전제로 재정지출 구조를 설계해서는 안 된다.
특히 일시적으로 늘어난 세수를 토대로 지속적인 재정지출이 필요한 복지제도를 새롭게 만드는 방식은 피해야 한다. 호황이 끝나 세입이 줄어든 뒤에도 지출은 쉽게 줄이기 어렵기 때문이다. 결국 부족한 재원을 국채 발행이나 다른 분야의 지출 삭감으로 메워야 하고, 경기침체기에는 오히려 복지와 공공지출에 대한 삭감 압박이 커질 수 있다.
초과세수나 미래대응기금을 사회적 투자에 활용할 때는, 단발성 지출로 소모되기보다 장기적으로 공공자산화될 수 있는 사업을 선택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가령 공공임대주택이나 보육·돌봄·보건·교육시설을 확충하고, 개방형 공공 교육·연구 기반을 구축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이러한 투자는 주거·보육·교육·의료 등에 필요한 노동자의 재생산 비용을 낮추는 효과를 낼 수 있다.
국가채무를 줄이는 것 역시 넓은 의미에서 ‘미래를 위한 투자’다. 호황기에 부채를 줄여 재정 여력을 확보하면 향후 경기가 침체기로 돌아섰을 때 복지와 공공지출을 유지할 수 있는 공간이 커진다. 즉, 부채 상환은 단순히 재정건전성이라는 목표를 위한 것만이 아니다. 호황기에 확보한 재정 여력을 불황기에 활용함으로써 경기침체의 비용이 노동자와 취약계층에 집중적으로 전가되는 것을 막기 위한 수단이기도 하다.
결국 미래대응기금이 진정 미래를 위한 제도가 되려면, 지금의 호황이 영원히 지속될 수 없다는 사실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 일시적인 세수 증가를 항구적인 지출의 근거로 삼기보다, 호황이 끝난 뒤에도 남을 사회적 자산과 성장 기반을 만들고 다음 불황에 대응할 재정 여력을 확보하는 데 재원이 사용되어야 한다.
6. 민주노조운동이 자신을 비추어 볼 거울로 삼자
1987년 노동자대투쟁 이후 민주노조 운동의 지향은 ‘연대’였다. 삼성전자노조의 성과급 투쟁은 연대에서 철수한 기업별 임금극대화 투쟁의 극단을 보여주었다. 문제는 이런 활동이 삼성전자노조만의 예외가 아니라는 점이다. 백지에서 출발하는 노동조합은 없다. 그들이 보여준 모습은 그동안 한국 대기업 노조의 활동과 노사관계 관행을 충실히 보고 배운 결과에 가깝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민주노조운동은 이번 일을 ‘자신을 비추어 볼 거울’로 삼아야 한다. 한국 노동운동이 기업별 분배에 그친 그동안의 관행을 되돌아보자는 의미이다. 임금투쟁의 정당한 성과를 지키면서도, 그 투쟁이 노동자의 단결을 어디까지 확장하는가를 다시금 기준으로 세워야 한다. 이를 위해 노동자 간 임금과 노동조건 격차를 축소하는 운동을 만들어야 한다. 이는 산업별 공통 임금기준과 원하청 노동조건을 교섭하는 산별교섭을 통해 가능할 수밖에 없다.
아울러 반도체 호황의 사회적 분배를 둘러싼 논의에도 노동운동이 적극적으로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 현재의 호황에 취해 노동자의 단기적 이익을 극대화하는 경향을 제어해야 한다. 훗날 “샴페인을 너무 일찍 터뜨렸다”고 후회하지 않으려면, 노조답게 산별교섭과 원하청연대를 통해 개별기업 내부에 그쳤던 분배를 공급망 노동자들에게 폭넓게 확산하는 한편, 자본이 공적 지원에 상응하는 고용·재투자를 다할 수 있도록 요구하는 것이 필요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