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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4.4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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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실업의 양상과 노무현 정부 실업정책의 허구성

최예륜 | 정책부장
2004년 1월 노무현 정부는 일자리 300만개를 창출하겠다고 호언장담하였으며, 재경부는 일자리창출을 어떤 경제정책보다도 우선시하겠다고 선언했다. 작년 한해부터 일관되게 추진되었던 합리적 노사관계의 모색(노조탄압, 사회적 합의주의)과, 정규직-비정규직 격차완화(정규직 임금억제, 파견근로 확대 등 비정규직 전면화)등으로 요약되는 이른바 "글로벌 스탠다드"를 향한 노동유연화 정책에 비춰볼 때, 이는 신자유주의 개혁 프로그램의 완수를 위한 적극적인 노동시장 정책으로 파악된다. 지난 2월의 일자리 협약은 기업투자요건개선을 위한 노동구조재편전략을 "사회적 합의"의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것을 목표로 추진되었다. 노무현 정부의 실업정책은 대량실업 사태에 대한 사회적 안전망 확충이라는 해결책을 제시한 김대중 정부의 정책을 계승하는 한편,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의 마무리 단계인 노동시장 재편 완수를 지향한다.
신자유주의 개혁정책에 입각한 "실업"에 대한 인식과 대책은 무엇이며, 오늘날 실업문제의 근본원인은 무엇인가를 살펴보는 가운데 실업운동은 어떠한 관점에서 '재'출발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할 것이다.

1. 오늘날 실업의 양상과 국가관리 전략
1> "실업"이라는 노동력 관리전략
이윤의 극대화라는 "자본주의"적 인식 틀에 따라 '노동력'은 자본의 요구에 따라 배치되고 관리되는 일종의 상품으로 치부되어 왔다. 자본가 집단의 공통적인 원리-수요와 공급, 투자와 이윤으로 표현되는-에 근거하여 작동하는 자본 운동의 체계와 그 속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물신성의 원리가 지배적인 한, 착취와 배제라는 권력관계는 은폐된다. 그러나 자본은 가족과 국가의 틀 속에서 생산, 재생산되는 인간을 '상품으로 구매'-노동 계약-하여 노동력으로 만들 뿐이었다. 하지만 생산요소에 대한 통제라는 관점에서 자본은 노동력 즉, 인간 자체를 관리하기에 이른다. 이 과정에서 자본은 '실업' 혹은 '산업 예비군'을 동시에 생산해냈다. 더 많은 산 노동이 더 많은 죽은 노동, 즉 기계로 대체되는 경향이라는 자본의 경쟁 속에서 노동력의 관리, 통제가 요구되기 때문이다. 자본축적은 그 법칙 내에서 상대적 과잉인구를 낳고, 나아가 노동자 대중을 불안정 노동과 궁핍으로 이끄는 경향을 포함한다. 그것에 멈추지 않고, 소위 노동시장의 규율과 전략을 통해서 이러한 산업예비군을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임금 안정, 인적 자원의 가용성 제고, 기업의 노동비용 완화, 창업촉진, 산업 구조조정 가속화" 등의 과제에 실업의 문제는 조절과 통제의 차원에서 "긍정적인 측면"이 존재했던 것이다.
국가는 언제나 "화폐화 되지 못하는 상품", 즉 실업노동자를 관리한다. 국가는 생산 과정의 외부에서, 노동력이 언제라도 좋은 상태를 유지하여 판매될 수 있도록 노동력을 관리하며, 또 다른 한편으로 이들이 사회적 갈등요인이 되는 것을 억제한다. "통계"라는 조작과정을 통해 실업자를 각각의 집단으로 분류하여 실업자 수, 실업률을 조정하여, 실업자 개개인의 능력을 자의적으로 평가·낙인찍는 작업을 수행한다. 가장 일반적인 수준에서 실업노동자의 일부분을 "비경제활동인구"로 분류하여 실업의 문제를 개인의 문제로 치환하거나, 군대, 학교의 활용 등으로 노동시장으로부터 조용히 퇴장시키는 것이 이러한 작업의 일환이다. 또한 이를 넘어서 적극적인 "실업 정책"의 시행으로 실업노동자들을 관리한다. "사회적 안전망"이라는 형태로 공공근로 등의 단기적 일자리를 제공하거나, "일하는 복지"로 규율과 근면이라는 습관을 유지시키고, 자본축적의 변화에 걸맞는 노동능력을 실업노동자들에게 교육시키고자 한다.
케인즈 이론의 핵심은 원래 자본주의의 내적 불안정성/불황경제 테제에 있었다. 그에 따르면 자본주의는 가격기구의 작동을 통해 자동적으로 완전고용 균형에 도달할 수 없으므로(고용량은 기업의 판단에 달린 것임.) 사회화된 형태로 정부가 재생산과정에 개입하는 것이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시장의 지배를 제한하는 불가피한 국가의 개입에 대해 케인즈는 한 편에서 국가의 소득재분배를 통한 소비수요의 확대, 그리고 다른 한편에서는 투자의 사회화를 제시했다. 투자의 사회화란 사적 이윤에 지배되는 사적 투자에 대비되는 형태로서 낮은 이윤율 하에서도 공동의 이해를 목적으로 공공적 성격의 법인에 의해 수행되는 투자를 의미한다. 케인즈는 자본주의의 위기에 대해 국가개입(자본주의 개혁)을 통한 구원의 길을 제시하고자 했다. 그리고 이에 따라, 고용량은 기업가의 예상에 의해 결정되며, 국가의 유효수요 확대 정책을 통해 기업가의 예상을 변화시켜 고용증대를 꾀할 수 있다고 분석하였다.
소위 새 케인즈주의(New Keynsian)으로 불리는 경제 이론에 따르면, 과거의 케인즈 정책에서 활용했던 통화 공급(화폐발행)의 엄격성은 더 이상 불가능하지만 케인즈주의적 유용성은 취하는데, '국가의 실패'라는 통화주의자의 공세에 대해 '정책 개혁'이라는 역공을 펼친다.(작고 강한 정부) 저금리정책을 통해 주식시장을 부양하고, 여기서 창조되는 '금융 소득'을 통해 유효수요를 창출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금융 소득 중심의 유효수요 창출은 자연히 고용파괴적이다. 따라서 새 케인즈주의는 전통적 케인즈주의와 달리 완전고용을 포기한다. 대신 이들은 완만한 인플레이션을 동반하는 실업률(NAIRU)을 수용하면서 일정 수준의 실업률을 자연적인 것으로 간주한다. 이러한 새 케인즈주의 경제 정책의 기반은 미국식 '신자유주의'자들에게 있는데 신자유주의(새케인즈주의)에 입각한 논자들의 주된 논지는 기업의 필요에 따라 고용과 임금을 신축적으로 조정할 수 있도록 노동시장의 구조를 바꾼다는 것이다. 실업을 유효수요 부족의 산물이 아니라 구조적 문제로 인식하게 만들면서 일자리 창출을 위해서는 보다 많은 노동의 유연성 확보를 강조한다. 이는 더 이상 국가가 직접적인 총수요 관리나 공공근로 확대 등의 공적 일자리 창출을 추진하지 않겠다는 것이며, 성장 산업에 적합한 양질의 노동력을 적극적으로 창조하겠다는 전략을 내포한다. 즉, 노동시장에서 구매되지 못하는 노동력을 시민사회의 관리와 적극적인 교육훈련을 통해서 노동시장으로 재진입시키는 "평생 기회 보장"이 화두가 된다. 여기서 국가의 역할은 단순히 사회복지를 책임지는 주체가 아니라 '인적 자원'을 개발하는 데 투자하는 사회투자국가 즉, 일종의 '기업가적 국가'로 재정의된다. 새케인즈주의의 '신경제'(New Economy)란 결국 노동력의 평가절하를 통한 고용 안정과 이른바 '사회 안전망'을 통한 사회보장의 축소의 경향을 갖는 것이다. 오늘날 특징적으로 드러나는 국가·자본의 실업자(노동력) 관리 방식은 노동시장의 유연화와 산업구조재편에 적응하기 위한 교육훈련의 기회 확장이라는 "일하는 복지" 정책의 구사이다.

2> 오늘날 실업의 양상
김대중 정부는 "세계화된 금융적 축적체계'에 조응하기 위해, 주식시장을 매개로 하여 자유로운 금융시장을 형성하고, 그 속에서의 투자-사실상 투기와 구분하기 힘든-를 통해서 금융적 축적을 추진해왔다. 금융적 팽창과 동시에 비용절감을 통한 생산부문의 경쟁력 증진의 과정은 해고·감원, 조직·혁신, 과잉 착취, 유연화, 즉 노동의 불안정화를 동반했다. 이러한 IMF 권고안에 따른, 구조조정 프로그램은 대량해고로 인한 대량실업사태를 불러왔다. <표1>을 살펴보면 10%대에 육박했던 실업률은 2000년부터 급격한 하락 추세를 보이며, 안정적인(!) 3% 수준을 유지하게 된다. 그러나 통계는 대거 발생하였던 실업자 층이 어떻게 노동시장으로 흡수되었는지는 보여주지 않는다. 정부자료에 의거하면, 임금노동자 비중 중 상용근로자 비중이 2003년 50.5%로 증가, 임시·일용 근로자가 49.5%로 감소 추세에 있다고 하지만 비경제활동인구가 약 1,442만 명으로 1998년에 비교 50만 명 이상 증가하였다는 사실은 크게 지적하고 있지 않다. 이 비경제활동인구의 사유 중 가사, 육아 등의 이유가 40%가 넘는다는 사실은, 실제로 구직자로 등록하지 않았지만 노동하고 있는 수많은 노동자(특히 여성)가 존재한다는 것을 암시한다. 또한, 파견법의 확대 시행으로 인한 불안정노동의 종사자들은 상용근로자로 둔갑하며, 특수고용직의 형태로 개입사업자로 분류되어 있는 노동자들의 현실 또한 은폐된다.
한편 <표2>를 통해 현재 실업자 구조를 살펴보면, 신규실업자가 증가하고 있으며, 구직기간 3~5개월 미만의 실업자 비중이 높아지는 경향을 발견할 수 있다. 이를 통해 대략 현재의 실업의 구조는 불안정한 노동시장에 노출되어 단기취업과 실업을 반복하는 노동자의 증가를 볼 수 있으며, 1999년까지 다수를 점했던 장기실업자 층이 실망실업자로 빠져나가 실업률 통계에 잡히지 않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청년실업의 높은 비율은, 실업자 층이 노동시장에 진입함으로써 실업이 해소된 것이 아니며, 단지, 통계에서 사라진 비경제활동인구로 전락했음을 단적으로 증명한다. 정부가 이에 대해 청년층에게 교육연수기회를 확장하겠다는 방식의 실업대책을 선사하는 것은 현재의 실업의 핵심원인을 외면하겠다는 의도이다. 또한, 여성, 고령자 층의 실업률 증가는 지식습득을 매개로 한 벤쳐(중소)기업 육성전략이 또 다른 위계화된 계급구조질서를 양산하였음을 보여준다.


<표1> 연령대별 실업률
(단위:%)



자료 : 통계청, 「경제활동인구조사」원자료, KOSIS.


<표2> 실업자 구조
(단위:천명)

자료 : 통계청, 「경제활동인구조사」원자료, KOSIS.
신규실업자-과거에 취업 경험이 없었던 실업자/ 전직실업자-과거에 취업 경험이 있었던 실업자


2. 신자유주의 정부에게 실업정책이란 존재하는가?

1> 김대중 정부의 구조조정과 실업정책
김대중 정부는 IMF 외환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대외 개방과 자유화를 앞당기고, 나아가 공황 상태에 빠진 자본축적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하여, 국내적 축적 조건을 재형성하는 "구조조정"에 착수한다. 김대중 정부가 가장 먼저 강력하게 추진한 것은 금융부문 구조조정이었다. 98년 연말까지 41조의 재정자금을 투입하여 부실금융기관을 퇴출시키고, 인수합병을 추진하였으며, 노동력의 10~30%를 감축하였다. 이를 통해 증권시장을 중심으로 하는 "완전한 금융시장"을 형성하고자 하였다. 또한, 5대 재벌기업의 빅딜을 추진하고, 부실기업의 부채를 탕감하는 방식으로 진행된 "재벌개혁"은 재벌들의 경영을 합리화하고, 정리해고 및 노동시장 유연화를 통해 비용을 절감하는 일거양득의 효과를 창출했다. 집권 말기 이루어진 경기회복은 주식시장을 매개로 한 금융적 팽창의 지표일 뿐이며, "고용 파괴적인 자본축적"의 본격화를 의미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기존의 전통적인 산업부문(농업, 광업, 제조업)의 고용 감소는 서비스산업, 금융·보험 부문으로 일부 흡수되었다. 그러나 서비스·금융 산업에서 이루어진 고용 증가는 기존의 제조업 노동자들에 의해 이루어졌다기보다 소위 골드 칼라로 불리는 금리생활자(혹은 금융 조작자)들에 의한 것이다.(서비스업 고용증가를 통한 일자리창출이라는 현 정부의 구호는 수년전에 이미 거짓으로 판명된 것이다.)
대량실업은 불가피했다. 또한, 신자유주의 정권에게 실업은 해결 불가능한 것이 분명했다. 그러나 대량실업으로 인한 노동자 민중의 불만과 저항에 직면한 정부는 "실업정책"을 내놓는데, 그것은 "신지식인 양성"과 "생산적 복지"라는 정책기조에 입각한 노동력관리전략에 불과하였다. 일자리 창출을 위한 벤쳐(중소)기업육성은 수없이 망해나가는 중소기업의 노동자들을 실업자 통계에서 불안정 노동자로 밀어내며 또한 학력과 지식을 잣대로 실업의 문제를 개인의 무능의 탓으로 돌리는 것으로 결과했다. 또한 한시적인 공공근로(그것도 정규직 임금노동자와 대단히 차별적인)와 생활보호 조치는 실업노동자의 불만을 잠재우고 최소한의 도덕성을 유지하려는 면피성 "사회적 안전망" 확충에 불과했다. 김대중 정부의 이러한 실업정책의 결과, 실업노동자의 대다수는 불안정 노동 층으로 흡수되거나, 생계유지를 위해 자신의 피로 부풀려진 금융자본에 손을 벌려 신용불량자가 되어 가정파탄-가난에 못 이겨 아파트에서 몸을 던지게 된 것이다.

2> 노무현 정부의 신자유주의 개혁전망과 노동정책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에 의해 남한 사회는 초민족적 금융자본의 자유로운 정착과 철수를 보장하는 언제나 준비되어있는 국가로의 체질개선을 이루어내었다. 남한 사회를 금융적 팽창의 "성장"국면으로 끌어올리기 위해 노무현 정부는 출범초기 정보와 기술 강국으로 나아가 동북아 중심 국가로서의 입지를 굳히고 부의 재분배를 참여복지를 통해 이루어내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이는 장기침체에 허덕이는 세계경제의 활성화정책으로 미국이 내놓은 '신경제론'에 기반을 두고 있다. 미국식 신경제론의 핵심은 알려진 바대로 IT산업의 집중 육성과 인수합병을 통한 집적, 집중을 통한 부가가치의 창출, 그리고 금융부문의 활성화로 요약된다. 그러나 "정보혁명·기술혁명"으로 대변되는 신경제론은 생산의 효율성을 높일지언정, 자본주의가 작동하는 방식의 기본적 성격을 변화시키지는 않았다. 자본주의 경제에서 기술은 일련의 사회관계 속에 배태되어 있다. 그러나 소유 유형과 자산을 과대평가하려는 충동-미래의 잉여가치 창출에 대한 주장을 사고팔아서 생계를 유지하려는 투자, 투기심리-은 기술-교육의 문제를 생산요소로 분류, 투기적 성장의 요소로 포함시킨다. 이와 같은 근본적인 현실 속에서 신경제는 생산성 증대의 과제를 노동절약에서 찾고자 한다. 결과적으로 신경제론은 노동유연화, 불안정화를 야기하고 잠재적 가치를 투자조건으로 탈바꿈시키는 방식으로 막대한 부를 보장하였고, 주식-금융시장의 활성화를 통해 부의 집적과 집중을 강화하였다. "지식-기술훈련"을 강조하는 방식으로 국가의 노동력 관리 전략을 강화하는 한편 "노동"으로부터 노동자의 소외와 실업의 관리를 정당화하였다.
애초에 동북아중심국가 구상의 핵심은 자본유치였다. 국민소득 2만 달러의 기조 또한 만성화된 실업, 삶의 파탄이라는 사회적 위기 해결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노무현 정부에게는 자본유치를 위한 국내투자환경 조성의 과제를 수행하기 위하여 금융주도 자본주의의 필연적 속성인 불안정성(투기성)과 장기적인 내수침체를 극복하는 것이 중요하다. 성장이 '비용절감'으로부터 추출될 수 없는 상황에서 정부와 자본이 주장하는 '고용 없는 성장'은 "고용파괴적인 자본축적"을 의미한다. "고용의 파괴"란 그들의 분석대로 제조업 공동화, 해외이전이라는 현상에 있는 것이 아니라 신성장 산업에 대한 기대를 매개로 한 금융적 팽창과 노동유연화를 통한 비용절감에 있는 것이다. GDP가 늘어도 민중의 삶은 점점 고통에 빠져드는 현실의 본질적인 원인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러나 인위적 내수부양책(가계대출, 신용카드 거래 확대)이 파탄에 이르고, 카드사 부실 등 금융 불안 요소가 좀처럼 해결될 기미를 보이지 않는데다가 원/달러 환율(미국의 약한 달러 정책)의 급락 등 대내외적 제약조건은 이러한 노무현 정부의 성장전망을 어둡게 하고 있다. 문제는 이를 타개하기 위해 정부가 동원할 마땅한 수단이 없다는 것이다. 연기금의 금융화로의 동원, 부동산거래 활성화 등 거품경제의 증대는 한국사회의 경제위기를 심화시킬 뿐이며, IT 산업육성 등 신규산업에 대한 기대심리로 주식시장을 부흥하는 길 말고는 대안이 없다. 무엇보다 확실한 방식은 신축적인 노동구조로의 재편을 통한 비용절감효과이다. 정부는 이에 따라 정규직 임금 억제, 파업투쟁 엄단 등 노동탄압의 강도를 높이는 한편, 파견제 적용영역 확대, 노동시간의 유연성 강화 등의 노동의 불안정화를 심화하는 것을 골자로 노동정책을 구사하고 있다.
-지식기반경제론
지식-기술의 문제를 투기적 생산요소로 분류하여, 미래의 잉여가치에 대한 기대심리를 작동하는 방식은
금융적 팽창의 주요한 측면을 차지한다. 이 과정에서 '노동절약=효율', '재교육 기회=신분상승의 보장'이라는 도식이 추출된다. 이것이 신자유주의 시대의 지식기반경제론의 본질이다. '기술'혁신을 위한 지식의 문제를 학교 교육의 차원(학사관리 엄정화, 교사 평가제 등등 교육 개혁)에서 제기하는 것에서부터 취업자-실업자의 기술교육-훈련에 대한 강조로 이어지는 이러한 논리는 실업의 문제를 개인의 무능으로 호도하고, 노동자의 삶과 지식을 송두리째 통제하는 이데올로기를 구성한다.
-참여복지
한편 "참여복지"정책은 악명 높은 "생산적 복지"(언제나 팔려나갈 준비가 되어있는 노동력으로서의 자기단련)의 최신판이다. 국민의 정부의 생산적 복지는 금융 시장의 불안 요소가 되는 사회적 갈등을 해소하기 위한 노사관계 안정화, 실업자 관리의 근거로 작용하였다. 전통적 복지국가를 해체하여 최소한의 복지주의를 내세운 "사회안전망" 확충이란 죽지 않을 정도로 삶의 보장임과 동시에, 공공근로 등의 불안정하고 비민주적인(노동 3권 보장 없는) 노동시장으로의 실업자층의 흡수전략임이 드러난 바 있다. "참여복지" 정책은 이에 덧붙여 복지 분야의 민간참여를 확대한다. 이는 국민의 정부시절부터 국가의 노동력 관리전략에 협력해온 NGO들의 더 많은 참여를 통한 신자유주의 개혁정책에 대한 국민적 합의 추출을 목표로 추진된다. 전국민 복지시대, 시민권적 복지라는 명분을 제시하는 가운데, 참여하지 않는 자(참여하지 못하는 자)에게 근면과 기술의 부족이라는 딱지를 붙이는 것이 "참여 복지"의 본질이다. 따라서 실업정책은 존재할 필요가 없다. "생산(노동)의 영역을 스스로 개척하라!"는 명제를 부여받은 실업노동자들은, 자본이 취사선택 가능하도록 진열된 산업예비군으로 변신하기 때문이다.

3> 일자리 창출 계획의 허구성
결론적으로 노무현 정부에게는 실업 정책이 없다. 국민적 고충을 덜겠다며 일자리 창출을 최우선시 하겠다고 이야기하였지만, 실업대책은 "일자리 창출"의 이름으로 재정경제부의 투자활성화를 통한 일자리 창출과 기업투자환경 개선을 위한 노사협력체제 구축으로 현실화되고 있을 따름이다. "고용파괴적인 자본축적"을 지속하는 한에서 실업의 문제를 기업투자의 자유화의 과제에 철저히 종속시킨다. 노무현 정부의 일자리 창출 대책은 (1)투자활성화 (2)서비스산업과 중소기업 육성 (3)노사관계 개선 (4)공공부문 취업지원 기능 확대로 구성되어 있다. 이는 불안정한 일자리 창출과 사회적 안전망 확충이라는 김대중 정부의 실업대책의 연장선상에 있으면서도, 일말의 복지적 성격을 삭제하는 방식으로 드러나고 있다.
(1)(2)의 과제는 기업투자제한요소를 제거하고 선진기술의 경영기법도입과 서비스시장 등의 개방을 통한 외자유치를 통해 실현될 것이라며, 투자활성화의 걸림돌이 되는 토지이용제한을 풀고 산학협력강화 등 혁신주도형 성장전략을 추진하여 경제자유구역 전면 실시와 개방정책으로 동북아 중심국 목표에 다가선다는 계획으로 구체화된다. 그러나 서비스시장(금융부문 포함) 등의 개방은 그 투기성, 불안정성으로 인한 고용불안의 요소를 점증시킬 것이며, 기업투자 제한요소 제거는 금융주도의 투기적 이윤창출을 극대화시키는 한편, 투자에 걸림돌이 되는 핵심 요소 즉, '노동'의 비용절감을 위한 유연화를 심화할 것이다.
또한, 정부는 이러한 금융주도의 투기적 자본축적 방식에 대한 노동대중의 불만을 노사관계 개선이라는 구호로 무마하며 '일자리 협약'으로 노동운동을 동원하는 한편, 임금피크제 도입, 파견법 확대시행을 추진하는 등의 노동자에 대한 공세를 퍼붓는 반면, 공공부문에서의 단기적 일자리, 직업훈련, 연수기회 제공을 확대하며 실업자(특히 청년실업자)에게 선심을 베푸는 것 인양 행세하고 있다.
노무현 정부의 일자리 창출 계획은 정규직 임금 노동자의 임금안정 정책이며, 더 많은 노동유연화의 선언이며, 성장산업의 전망을 호도하는 가운데 '언젠가 올지도 모를 기회'를 대비한 자기단련을 강요하는 형태로 '실업자', '半 실업자'를 관리하는 노동구조의 재편전략에 불과하다.


3. 오늘 실업을 이야기한다는 것은
IMF 대량실업사태 이후 '실업자'운동이라는 이름으로 전개된 실업운동은 한편으로는 고용안정센터, 지역 자활사업 등의 "실업자 구제"라는 제도화된 흐름으로 정착하였다. 실업의 근본원인을 제거하기 위한 투쟁의 흐름은 '주체형성'의 난관에 부딪혀 시작조차 되지 못하였다. 실업급여와 재교육기회, 취업알선 등의 "권리" 주장을 넘어선 실업자의 자기요구는 무엇인가?
실업노동자의 투쟁은 근본적이다. 자본주의의 출현과 함께, '노동하는 인간'이 '정상적인 인간'으로 규정되어왔고, 이런 관점에서라면, 실업자는 '과소 인간'이 되기 때문이다. 실업노동자들의 투쟁은 근본적으로 '인간적 삶'에 대한 투쟁이 된다. 실업노동자의 투쟁의 과제는 정치적인 것이 된다. 노동을 가로막는, 혹은 노동을 포기하게 만드는 핵심원인이 무엇인가로부터 출발하는 정치적인 투쟁의 주체로서 '실업노동자'(이러한 방식의 호명은 상징적 의미를 지닌다.)에 관한 고민이 요구된다.
분명한 것은, 실업은 변화하는 구조에 적응하지 못한 개인의 책임이 결코 아니라는 점이다. 금융적 팽창이라는 고용파괴적인 양상 그 자체에 존재하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실업자는 고용안정센터에 등록하여 재교육을 받고 팔려나가기를 기다려야 하는 구매력 없는 상품으로 치부될 수밖에 없다. 실업운동-실업노동자들의 투쟁은, 이러한 현실에서 출발할 수밖에 없다. PSSP




<표1>


<표2>
주제어
노동 민중생존권
태그
반전 팔레스타인 인티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