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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4.4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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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배자가 대중을 동원하는 시대

김득연 | 운영위원
"행진의 대열이 짜져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모른다
열의 선두에 선 자가 적이라는 사실을
지휘하는 소리는
적의 소리
적이 적이라고 고함치는 놈
그 놈이 바로 적이다."
(브레히트, '독일전쟁 안내' 중에서)

역사적으로 지배자가 대중을 동원하고 선동하는 시대는 항상 비극으로 이어지졌습니다. 그 선동을 민중의 이해관계를 관철하기 위한 헌신으로 이해하여 광기어린 전쟁이나 죽음을 넘나드는 생산에 동원된 대중은 자신과 자신의 가족을 죽음으로 내모는 일에 적극적으로 동참하여 희생자가 되었습니다.
우리 사회에서 지금, 신자유주의적 개혁정책을 통해 민중의 삶을 피폐하게 만든 주역들이 정치적 위기에 직면하면서 이를 극복하는 방법으로 대중들을 동원하고 선동하여 광란의 춤판을 벌이고 있습니다.
그런데 무엇보다 안타까운 것은 이 광기어린 동원령에 적극적으로 호응해 그들을 구원해줄 군대가 되고서도 나중에는 그들로부터 보다 더 강력한 공격을 받아야 하는, 살모사를 키우는 우리들의 왜곡된 모습입니다.
부패정치 청산과 정치개혁, 선거를 통한 선택-이런 것들이 그동안 민중의 생존권을 지키기 위해 투쟁하면서 외쳤던 모든 구호들을 대체해버렸습니다. 그리고 동원령을 내린 자들을 선택하는 것만이 유일한 희망처럼 보입니다.
정치엘리트의 일부만을 교체하는 것에 불과하고, 오히려 착취질서를 보다 강력하게 만들어줄 뿐이며, 단 한번도 민중의 대안인 적이 없었던, 이른바 '정치개혁'이 유일한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또 그것을 위해 민중들은 투쟁의 무기들을 버리고 선거 공간에 동원되어 지배자들에게 정치적인 권능을 강화하도록 만들어주고 있습니다.
이것은 난치병 환자가 의사에게 제출하는 일종의 수술 동의서 같은 거라고 생각합니다. 내 몸을 어떻게 하든 당신이 알아서 하고 나중에 내가 죽더라도 당신을 원망하지 않겠다는 서약 말입니다. 이 과정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그를 선택하고 받아들이면서 그가 내 운명에 대해 전권을 가지고 있음을 승인하는 것뿐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바로 한반도의 전쟁위기를 고조시키고, 이라크 민중을 학살하기 위해 군대를 파견하고, 노동법을 개악하고, 한-칠레 FTA를 관철시킨 자들입니다. 외국자본의 투자를 끌어들이자고 자국 노동자의 기본권을 제한한, 민중의 삶을 뿌리까지 철저히 말살해온 자들인 것입니다.
그들은 이미 그들이 적이라고 지목하는, 지배세력 내의 반대파-사실은 경쟁상대- 못지않게 부패했으며, 단 한번도 우리를 대변한 적도 없을 뿐 아니라 그럴 의사도 능력도 없는 자들입니다. 그들은 민중에게 우호적이거나 상대적으로 가까운 대상도 아닌, 그야말로 누가 더 지배계급의 이해관계를 철저하게 관철시킬 수 있는가를 경쟁하는 지배집단의 일부일 뿐입니다.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이 광란의 시간이 지나간 뒤에 벌어질 끔찍한 일들을 예상하면서 몸서리치는 이유가 여기 있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바로 그것이 이 시기를 그냥 흘러가도록 내버려둬선 안 되는 이유이기도 한 것입니다.
지금 이 대열의 선두에 선 자들이 바로 우리의 적이고, 그들을 옹호하거나 보다 강한 힘을 부여하는 일이 우리의 일이 아님을 분명하게 인식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들 모두에게 철저하게 빼앗겨온 민중이 이제 더 이상은 지배계급 내부의 권력투쟁 과정에서 특정 분파를 위해 동원되는 들러리가 되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지금이야말로 노동자, 민중이 신자유주의 반대와 생존권 사수라는 자기자신의 분명한 이해관계를 전면에 걸고 보다 적극적이고 주체적으로 투쟁에 나서야 할 때입니다. 지금 우리를 동원하고 선동하는 그 자들을 밟고 넘어가야할 때입니다.
그것만이 이 광기어린 동원령 뒤에 오게 될 비극을 막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 될 것입니다. PSS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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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안전 건강권 노동보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