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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5.4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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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코스와 안토니오 할아버지"를 읽고

임희영 | 회원
사파티스타 부사령관 마르코스 지음. 박정훈 옮김. 다빈치. 2001년 4월 19일

학교에서 저녁연습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무심코 하늘을 바라보았다. 달도 보이고 별도 보이고, 인공위성도 보이고... 산 옆을 지나가야 하기 때문에 무척 어둡다. 귀신이라도 나올 것 같은 분위기. 하지만 이 어둠 때문에 상대적으로 달과 별은 서울보다 더 잘 보인다. 집에 들어와서 오랜만에 책을 꺼내 들었다. ‘마르코스와 안토니오 할아버지’ 3년 전 선배의 권유로 이 책을 읽게 되었다. 그 후로 이 책은 어렵고 힘든 일이 있을 때마다 내게 지혜와 용기를 주었다.
책 속에서 안토니오 할아버지를 만난다. 사파티스타 부사령관 마르코스도 만난다. 그리고 나도 만난다. 지금 나의 몸은 한국에 있지만, 생각은 멕시코의 치아파스를 여행하고 있다. 치아파스는 고지대로서 해발 2천미터가 넘는다. 비가 내리고 추운 치아파스에서 안토니오 할아버지는 마야의 지혜를 이야기 해주신다. 비에 대한 이야기, 색깔에 관한 이야기, 사람에 대한이야기...
세상에 사람은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성경에서는 태초에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만들었다고 했다. 안토니오 할아버지는 성경과 다른 말씀을 해주신다. 신은 처음에 튼튼하고 훌륭한 사람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으로 금으로 인간을 만들었다. 금 인간은 번쩍이고 튼튼하기는 했지만 너무 무거워서 일을 하지도 않고, 늘 쉬고만 있었다. 그래서 신은 다시 나무로 인간을 만들었다. 나무 인간은 열심히 일하고 많이 걸어다녔다. 그러나 신들은 곧 자신들이 실수했다는 것을 깨닫는다. 금 인간들은 나무 인간들에게 자신을 들쳐업으라고 명령하고, 자신들을 위해 일하라고 강요하고 있었다. 신들은 고민 끝에 진실한 인간, 즉 옥수수 인간을 만들었다. 옥수수 인간들은 자신들 스스로 지금의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 생각을 했다.
안토니오 할아버지는 이 이야기를 해주시고 이렇게 말씀하신다. 금 인간은 흰 색깔의 부자들이고 나무 인간은 갈색의 가난한 사람들이다. 나무 인간들은 부유한 사람들을 위해 일하고, 부유한 사람들을 늘 업고 다녔다. 금 인간과 나무 인간은 옥수수 인간의 탄생을 기다렸는데 최초의 인간인 금 인간들은 두려워하고 초조해 하면서, 나무 인간들은 희망을 가지고 기다렸다. 그렇다면 과연 옥수수 인간들은 무슨 색깔일까! 옥수수는 다양한 빛깔을 가지고 있고, 다양한 종류가 있다. 이것과 마찬가지로 옥수수 인간들은 다양한 색깔의 다양한 종류로 구성되어 있다.
‘사자는 눈을 보면서 죽인다!’ 동물의 왕국이었는지 아니면 다른 책이었는지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암튼 어딘선가 본 듯한 문구다. 안토니오 할아버지는 사자는 먹이를 눈을 보면서 죽이지만 눈을 보면서 죽이지 못하는 짐승도 있다는 말씀을 해주신다. 나약한 짐승은 자신이 어떤 상태에 놓여있고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생각하지 못한다. 사자를 보면서 막연한 공포로 인하여 죽어간다. 하지만 사자에게 대항하는 유일한 동물이 있다. 그 동물은 바로 두더지다. 두더지는 행운인지 불행인지 모르겠지만 자신의 내면을 응시한다는 이유로 신들에게 벌을 받았다. 두더지는 내면만을 응시하기 때문에 사자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두더지는 우직하게 자기 마음만을 들여다보기 때문에 약한지 강한지, 큰지 작은지에 대해서 걱정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마음은 단지 마음일 뿐이기 때문이다. 두더지는 세상의 물건들과 동물들을 비교하듯이 자기를 재지 않는다.
우리가 싸워야 할 대상은 얼마나 대단한 존재인가! 그리고 과연 이길 수 있을까! 가끔 이런 걱정을 할 때가 있다. 그리고 이런 공포로 인해서 주저 않고 싶을 때가 많이 생긴다. 이것이 얼마나 바보같은 짓인가. 그보다는 자신의 내면을 응시하고 자기성찰에 충실하다면 괜한 공포로 인한 패배는 오지 않을 것을...
마지막으로 내가 소개하고 싶은 글은 ‘처음과 끝에 대한 이야기’다. 우리가 걸어가는 길에 있어서 시작은 어디이고 끝은 어디인가. 그리고 언제까지 계속해서 걸어야 하며, 또 이렇게 걸어가는 이유는 무엇일까! 안토니오 할아버지는 신과 인간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신다. 인간은 신에게 언제까지 계속 걸어야 하냐고 질문한다. 세상을 만든 신들은 이렇게 말한다. “당신들의 눈이 당신들의 등을 바라볼수 있을 때까지 오직 충분하게 순환하면서 걸어가야 되네. 당신들이 당신들의 걸음을 충분히 생각하고, 당신을 자신에 이를 때까지, 당신들이 충분히 걷고 나서 당신들의 등을 바라보게 되었을 때, 설령 그리 멀리 가지는 않았을지라도 그때는 이제 다 걸어간 것이네.” 우리가 길을 계속 가는 것은 이 길을 좀더 나는 것으로 만들려고 걸어가고 있는 것이다. 이 길은 우리의 길이고, 즐겁고, 유쾌한 길이다. 할아버지는 마르코스에게 이렇게 말한다. “언제 길이 끝날지 물으면서 지치고 피로해지지 말게나. 미래와 과거가 만나는 곳. 바로 거기서 끝날 것이니” 또한 이렇게도 말씀해 주신다. “투쟁은 둥근 원과 같다. 어느 곳에서나 시작할 수 있다. 그러나 결코 끝나지 않는다”고...
윤동주의 '서시'가 생각이 난다. 오늘 밤 역시나 별이 바람에 스치우겠지... 오늘밤에도 꿈을 꾸고 싶다. 꿈꾸면서 동경하고, 꿈꾸면서 이곳 저곳, 이 사람, 저 사람을 알게 되고, 꿈꾸면서 이 것, 저 것을 알고싶다. 진실한 인간, 옥수수 여자들과 남자들을 만나고 싶다. 스키마스크로 얼굴을 가린 사파티스타들을 만나고 그들과 함께 세상의 지혜를 나누고 싶다. PSS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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