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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진보연대 계간지


2004.5.4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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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5국제-정영섭.hwp

전 인류의 이름으로 학살과 점령을 끝내자!

정영섭 | 사회진보연대 반전팀
지옥문이 열린 이라크, 학살자 미군
3월 31일 팔루자에서 미국인 4명이 죽고 그 주검이 훼손당한 사건 이후 -사실 그들은 군인역할을 대신하는 사설 용병들이다- 4월 내내 이라크는 이라크인 들의 말처럼 "지옥문이 열린 것"과 같았다. 점령군의 학살과 이라크인들의 저항이 연일 계속되면서 보도 상으로도 미군은 100여명, 이라크 인은 1000명 이상이 사망하였다고 한다. 통계에 잡히지 않은 숫자까지 포함하면 사망자는 이를 훨씬 초과할 것이며 부상자는 짐작하기조차 어렵다. 심지어 어린이와 노약자, 여성이 사망자의 다수를 차지한다. 팔루자를 봉쇄한 미군은 F-16 폭격기와 코브라헬기, 탱크, 저격수, 해병대를 동원하여 마치 사냥하는 것처럼 이라크인들을 무차별적으로 학살하였다. 이슬람사원이 폭격 당했고 거리는 피바다가 되었으며 병원은 시신과 부상자로 넘쳐났다. 시신을 묻을 곳이 없어 축구장이 거대한 묘지가 되었다. 마치 팔루자는 80년 한국의 광주를 떠올리게 했다. 미군은 미국인 주검훼손사건을 빌미로 노골적이고 의도적인 살기(殺氣)와 적개심을 가지고 대학살에 나섰고, 팔루자가 끈질기게 저항하자 그 강도를 더욱 높였다. 미군은 이라크인들을 사람으로 보지 않았고 총을 든 이라크인과 그렇지 않은 이들을 구별하지 않고 움직이는 모두에게 총과 폭탄을 퍼부었다. 그러나 팔루자의 저항은 부시가 말하는 고립된 소수 극단주의자들에 의한 것이 아니라 일반 시민들에 의한 것이었다. 그들은 직장인, 상인, 젊은이였으며 심지어 이라크 경찰복을 입은 이들도 있었다. 미군이 저지른 끔찍한 학살은 생업에 종사하는 평범한 이라크 인들이 칼리쉬니코프 총을 들게 만든 것이다. 더욱이 미군은 봉쇄한 팔루자 외곽도로에서 팔루자를 탈출하는 시민들에게마저 총구에 불을 뿜었다.
미군의 학살은 팔루자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4월 초 이라크인 다수를 차지하는 시아파의 강경 지도자 알-사드르의 신문발행을 점령행정관 폴 브레머가 중지시키고, 그의 측근들을 체포하고 살해하자 이에 항의하는 평화시위가 발생하였다. 그러자 미군이 이에 대해 발포하였고 이에 사드르는 즉각 무장저항을 촉구하고 나섰다. 그 직후 바그다드, 사드르시티, 나자프, 카르발라 등 이라크 중남부에서 광범위한 저항이 발생하였고 사드르를 지지하는 마흐디 민병대는 무장저항에 돌입하였다. 미군은 즉각 학살로 대응하였다. 그들은 주택가와 상점, 거리, 심지어 앰뷸런스에도 미사일과 총탄을 쏟아 부었다. 브레머가 도발한 이 전투로 인해 이라크 전역이 전쟁상태에 돌입하였다.

제2의 베트남, 수렁에 빠진 미국
애초 미국은 팔루자를 중심으로 한 수니파의 무장저항을 간단히 제압할 수 있을 것으로 보았다. 그러나 팔루자 학살에 대한 이라크의 민심이 악화되고 팔루자를 돕기 위한 행진이 시작되는 등 저항의 중심으로 떠오른 팔루자를 쉽게 진압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또한 알-사드르를 중심으로 하는 강경 시아파의 저항 역시 무장한 민병대를 기반으로 하고 있고 그들이 총을 든 민간인이라는 측면에서 이들을 모조리 학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사드르가 농성하고 있는 나자프는 시아파 2대 성지 가운데 하나로서, 인근 이란 정부조차 나자프를 공격하고 사드르를 살해한다면 이슬람 전체가 미국에 등을 돌릴 것이라고 경고하고 나섰다. 미군의 민간인 학살과 성지에 대한 공격은 점령군에 대항하여 시아파와 수니파가 공동전선을 펼치게 되는 상황을 초래했다. 사실상 이라크 전역에서 미군을 포함한 점령군은 '반미', '점령반대' 무장봉기라는, 이라크 점령이후 최대의 저항에 부닥친 것이다. 이에 대해 부시는 철수예정이던 2만 명의 미군귀환을 90일 동안 연장하였고 군대를 더 보낼 수도 있다는 뜻을 밝혔다. 그러나 이미 스페인, 온두라스, 도미니카공화국, 노르웨이, 태국 등 파병국가들이 속속 파병철수 의사를 밝히고 있고 폴란드도 파병인원을 대폭 감축하기로 하였다. 여기에 이라크의 저항이 전국적으로 장기화하는 상황이어서 미군 증강은 이라크를 '제2의 베트남'으로 만들어 미국을 끝없는 수렁에 빠지게 만들 것이 뻔하다.
6월 30일로 예정된 주권이양 계획도 불투명하다. 물론 미국의 구상은 미국식 민주주의-복수정당과 연방제-에 기반을 둔 친미정부를 수립하여 중동민주화 구상의 발판으로 삼는다는 것이지만 이러한 내용의 임시헌법에 대해 시아파는 반대하고 있다. 누가 임시정부를 구성하고 주권을 이양 받을 것인지도 불분명하다.
또한 미국은 주권이양 이후에도 미국 대사관이 184억 달러의 재건자금을 관리하게 될 것이라고 하였는데 이는 향후 이라크 정부가 이라크 재건사업에 관여할 수 없게 됨을 의미한다. 미군 역시 이라크 내 14개 기지에 11만 명이 계속 주둔할 예정이다. 이라크 군대가 미군의 명령에 따라야 한다는 행정명령과 미국이 이라크에 국가안보보좌관을 임명한다는 계획도 발표되었다. 즉 6월 30일 이후 주권을 이양하여 임시정부를 수립하더라도 미국은 세계 최대규모의 대사관과 주둔군을 통해 이라크를 통제하겠다는 것이다. 이것이 미국이 그리는 '자유 이라크'의 모습이다. 그러나 결국 이는 '피를 부르는 미국식 민주주의'임이 만천하에 드러났다.
부시의 대선가도에서 이라크는 끔찍한 악몽이다. 미국 내에서 이라크 미군을 철수시켜야 한다는 여론이 40%를 넘어서고, 군인가족이 부시 지지를 철회하고 케리의 지지율이 따라붙는 등 부시의 '내우외환'은 가중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 대해 부시는 주권이양 이후 현재의 이라크 과도통치위원회(IGC)를 해체한 뒤 총리 및 3명의 대통령위원회로 구성되는 임시정부를 유엔 주도로 출범시키자는 브라히미 유엔 이라크특사의 제안을 수용했다. 이는 이라크 주권 이양 후 유엔이 미국과의 협의를 거쳐 새 임시정부 각료를 지명하며, 시아파 대표를 대통령으로, 쿠르드족과 수니파 대표를 각각 부통령으로 하는 임시정부를 구성해 2005년 1월 총선거를 실시하자는 것이다. 유엔을 끌어들여 임시정부의 정당성을 확보하면서 미국은 한발 빼겠다는 모양새다. 그러나 유엔의 깃발을 달더라도 점령군의 역할은 변하지 않는 것이고 미국이 신설 이라크군 및 재건 지원금을 통제하는 상황에서 이라크 임시정부는 별다른 역할을 할 수 없다. 오히려 미국은 유엔을 이용하여 이라크에 대한 통제력을 계속 유지하고자 하는 것이고 새 유엔결의안을 통과시켜 더 많은 나라의 군대를 이라크에 파병시키고자 하는 것이다. 이는 '이라크를 이라크인에게로'를 외치며 저항하는 이라크 민중들에게는 또 다른 점령과 억압으로 받아들여질 것이다.


이라크 사회운동 - 이라크의 민주주의와 자주적 단결의 흐름
이라크 내의 사회운동은 국내에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그러나 이라크에도 다양한 운동세력과 정치정당이 존재한다. 미군의 침략과 점령은 이라크의 정치담론을 이분법적으로 나눴는데, 점령에 반대하면 사담주의자이고 사담에 반대하면 미국에 연계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에 이러한 '점령이냐 독재냐'의 이분법을 넘어서고자 하는 그룹들이 조직되었는데 이 그룹은 수니파나 시아파 같은 민족주의 이슬람 진영과 투르크멘, 쿠르드, 자유주의, 좌파, 기독교, 정당 등 50여 개의 다양한 정치적 경향을 대표하고 있다고 한다. 이들은 민주적 이라크와 정의, 자유, 평등, 평화에 의해 통치되는 사회를 건설하기 위한 제일 조건으로 점령 종식을 요구하고 있다. 정치적 조직화를 위해 이들은 대규모 회합을 가져왔다. 첫 회합은 2003년 12월 19일에 열렸는데 금요일에 열렸다고 하여 '단결의 금요일(Friday of Unity)'이라 불린다. 참가자들은 지금 가장 위험한 약점을 분열주의로 보고 이라크의 단결을 호소했다. 두 번째 회합은 2004년 1월 2일에 열렸다. 여기서는 시아파와 수니파의 단결이 강조되었고 "단결과 정의가 우리가 열망하는 국가의 기초"라는 슬로건 하에 전국회의(National Conference)를 개최하자고 하였다. 이슬람 사이언티스트 사무총장 알 다리는 점령과 그에 협력하여 노예시장에 스스로를 파는 이들에 맞서 이라크의 단결을 위해 노력하자고 호소했고 셰이크 (이슬람지도자) 알 칼리시 역시 아랍과 쿠르드, 투르크멘을 분열시키는 시도를 비난했다. 그 외에도 나자프를 대표하여 셰이크 아흐메드, 이라크 구원전선의 수장인 모하메드 알리, 아랍민족주의운동을 대표하는 압둘 카림 하니 등이 이라크의 해방과 단결을 강조하였다. 또한 알 시스타니 진영, 알 사드르 진영을 대표하는 이들도 분파갈등을 극복할 것과 점령당국과 협력을 중단할 것, 단결을 위한 회합을 계속할 것 등을 호소했다.
한편 앞의 전국회의 흐름과 동일한 것인지는 확실하지 않은데, 국제적으로 '이라크의 자주적 민중회의(Independent Assembly)를 지지하는 국제 호소문' 서명운동이 4월 초부터 진행되고 있다(www.focusweb.org/int-call 에 들어가서 누구나 서명할 수 있다). 이는 점령 중단을 요구하고 이라크 민중들의 주권과 자치의 권리를 지지하는 큰 틀에서 이라크인들이 "점령군의 간섭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운 상태에서 국가의 미래를 자유롭게 토론하고 제안할 수 있는" 회의를 개최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자유선거를 실시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내용은 2003년 자카르타에서 열린 평화회의와 2004년 뭄바이 세계사회포럼 반전총회에서 토론하고 확인된 바 있다. 세계사회포럼 반전총회에는 이라크민주연합(Iraqi National Democratic Coalition, 약칭 Condi)에서 토론자로 참여하였는데 이라크민주연합은 민주적 이라크를 위한 사회운동연대체인 듯하다. 이 서명에는 찰머스 존슨, 크리스토프 아귀통, 임마뉴엘 월러스틴, 제임스 페트라스, 제레미 코번, 마르타 아르네케르, 나오미 클라인, 노암 촘스키, 사미르 아민, 수잔 조지, 월든 벨로, 파우스토 베르니토니 등 이름난 사회운동가와 진보학자들이 다수 동참하였다.
이라크 사회운동의 흐름이 어떠한 수준과 범위인지 아직 확실하게 판단할 수는 없지만 이라크 사회운동이 국제적 운동과 연계되어 있으며 이라크의 해방과 민주주의, 단결과 평화를 추구하는 활동을 펼치고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전 민중의 힘으로 학살과 점령, 파병을 중단시키자.
이렇듯 미군의 이라크 점령에 대항하여 이라크 민중들과 운동단체들이 이라크의 해방과 자주를 염원하는 상황에서 한국정부가 이라크에 군대를 보내겠다는 것은 미국에 의한 학살과 점령에 동참하는 것일 뿐이다. 지난해 국민의 대다수가 반대하는 파병을 노무현대통령이 전격적으로 결정하고 이를 아펙 회담에서 부시에게 선물로 안긴 이후 국회는 정부의 '파병 백지위임장'에 찬성으로 손을 들어주었다. 그러나 국익을 위해 평화·재건군을 파병한다는 지배계급의 논리는 정작 파병지역 선정에서 스스로의 모순을 폭로했다. 당초 예정지였던 북부 키르쿠크에 대해 미군은 잔류하겠다고 하면서 한국의 전력보강을 주문했다. 국방부는 이를 은폐하다가 뒤늦게 파병일정 연기를 흘렸고, 급기야 파병지역 재검토 입장을 발표했다. 그리고 스페인 군이 철수하는 남부 나자프가 유력하게 거론되었다. 그러다가 다시 북부 에르빌과 슐라이마니야로 돌아섰다. 이리 저리 갈팡질팡하면서 정부는 미국의 침략과 점령에 동참하는 점령군에게 안전한 지역은 애초에 없다는 것을 자인한 셈이다. 두 차례에 걸친 이라크 합동조사단도 미군에 의한 안내와 부실한 조사, 미리 내려진 결론에 짜 맞춘 형식적 결과발표로 일관했다. 보도에 따르면 한국군 예상사망률은 0.8%인 1천명 당 8명 꼴인데 이는 베트남전 사망율의 절반이라고 한다. 정부는 곧 아르빌과 슐라이마니야 가운데 한곳을 4월 말 NSC(국가안전보장회의)에서 파병예정지로 결정한다고 하지만 이 두 곳은 쿠르드 자치지역으로서 전쟁피해가 적어서 정부가 말하는 소위 '평화·재건' 요소가 별로 없다. 더구나 쿠르드 지역은 이란, 터키와 마주보고 있고 쿠르드민족의 독립문제가 아랍족에게 매우 민감한 사안이어서 지난 3월에도 쿠르드민주당사에 폭발사건이 일어나는 등 치안 상으로도 결코 안전한 곳이 아니다. 자칫하면 종족갈등에 휘말릴 여지가 큰 것이다. 결국 무슨 이유를 갖다 대도 한국군 파병은 부당한 것이 아닐 수 없다.
그동안 한국의 반전운동은 다양한 스펙트럼에서 이라크 점령과 파병에 대해 반대해왔다. 그러나 지난 2월 파병 동의안이 국회에서 통과된 이후 3.20 국제반전행동을 제외하면 이렇다할 투쟁의 파고를 만들어내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총선시기에도 파병철회 문제는 쟁점이 되지 못했고, 도리어 ‘국가 정책적 판단을 선거 시기에 쟁점으로 삼을 수 없다’는 지배세력의 이데올로기 조작을 넘어서지 못했다.
이런 상황을 타개하고 투쟁의 새로운 전기를 마련하기 위해서는 팔루자를 비롯한 이라크민중 학살과 미국의 이라크 점령 구상을 정확히 폭로해야 한다. 이라크에서 미국의 학살 만행이 오늘날 미국이 주도하는 신자유주의 세계화와 군사주의 때문임을 분명히 드러내야 한다. 따라서 한미동맹은 신자유주의 세계화와 군사주의 동맹이며 이를 깨뜨리지 않으면 침략전쟁에 학살자로 동참해야 하고, 노동자 민중은 세계화가 강요하는 경쟁과 빈곤, 불안정노동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는 것을 광범위하게 선전해야 한다. 이에 세계화와 군사주의의 문제를 결합시켜서 '반전 반세계화' 투쟁의 기조를 의식적으로 추구하면서 그러한 계기를 만들어내야 한다. 이러한 의미에서 오는 6월 13~15에 서울에서 열리는 '세계경제포럼(WEF) 동아시아정상회의'에 반대하는 투쟁은 매우 중요하다. 세계적인 자본가, 지배정치인 수백명이 모여서 '아시아의 비즈니스와 안정'을 논의하는 회의에 대항해서 민중의 전쟁·파병반대, 신자유주의 세계화 반대 의지를 분명히 보여줌으로써 반전 반세계화 투쟁을 강화할 수 있을 것이다. 마침 6월 12일에는 파병반대 국민행동 차원에서 대규모 파병반대 시위가 예정되어 있어 시기적으로도 좋다. 이와 같이 아래로부터 대중의 힘에 바탕하여 파병반대 투쟁을 조직하고 광범위한 대중을 실질적으로 결집시킬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이를 기반으로 실질적으로 파병을 철회시키자. 그 출발로 5월 1일 메이데이에서 노동자들이 반전과 파병반대 목소리를 높여나가자. 이라크 민중들이 자주적으로 자신의 사회를 건설하려는 노력에 대해 굳건히 연대하자. PSSP
주제어
평화 국제 민중생존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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