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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5.4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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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이제 일터로 돌아갑니다"

그녀들의 투쟁이 남긴 것

호성희 | 여성국장
작년 9월 1일 서울대병원이 간병인 무료소개소를 일방적으로 폐지한 이후 시작된 서울대 간병인 노동자들의 9개월의 긴 투쟁이 4월 23일 병원과 합의해 일단락되었다. 그녀들이 이제 일터로 돌아갈 수 있게 되었지만, 아직도 해결해야 할 과제는 산적해있다. 나아진 것 없는 간병인들의 노동조건과 간병인들의 노동자성 인정 문제가 있고, 환자 간병에 대한 병원과 국가의 책임성 문제, 해결되지 않은 유료소개소 문제점들이 그러한 과제들이다.

서울대병원이 무료소개소를 폐지한 이유

서울대병원은 88년 4월부터 '서울대학교 간병인 무료소개소'를 설립하고 운영해왔다. 서울대병원에서 간병인의 역사는 30년이 넘지만, 당시 병원장이 부친 때문에 간병인을 채용해보고 그 문제점을 느끼면서 이러한 무료소개소 운영이 추진되었다.
서울대병원에서 일할 간병인도 공개모집하였는데, 공개모집 조건 또한 다른 유료소개소보다 까다로웠다. 중졸이상의 학력, 신원보증서, 이력서, 적십자회 교육수료증, 재정보증서, 사진, 건강검진 증명서 등 15여 가지의 서류를 갖추어야 채용이 되었다. 병원측에서는 무료소개소를 운영할 수 있는 사무실과 전화 그리고 운영관리를 할 간호사 1명을 계약직으로 두었다. 간병인 교육은 간호부 담당으로 년 2회 기본교육과 매월 1회 추가교육을 통해, 병원구조와 환자 간병시 필요한 교육, 인성교육, 친절교육을 포함하였다. 무료소개소에서는 개개 간병인을 파악할 수 있었고, 서울대병원에 적합한 교육이 정기적으로 이루어져 환자가 간병인을 요청할 때 환자 상태에 적절한 간병인을 연결하여 줄 수 있었다. 간병료도 다른 유료소개소(5만원-7만원)보다 낮은 4만 5천원이었는데, 이는 중간착취료가 없는 무료소개소이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이렇듯 무료소개소 운영이 간병인과 환자 모두에게 좋은 역할을 했음에도 병원이 무료소개소를 일방적으로 폐지한 이유는 무엇일까?

첫째는 병원이 간병업무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겠다는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 병원에 환자로 입원을 하게 되는 경우, 단기 입원을 제외하고 대부분 환자들 대부분이 간병인을 필요로 한다. 더욱이 우리나라 의료기관처럼 대부분 법정 간호인력도 채우지 못하는 상황에서 간호인력이 간병까지 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즉, 전인간호가 이루어져야 할 병원에서 환자들에 대한 수발 서비스가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간병은 환자와 환자 가족의 책임으로 떠넘겨져 왔고, 이에 소요되는 비용만 대략 연간 2천억 원 이상으로 추산되고 있다. 현재 서울대병원은 하루에 200명의 간병인이 필요하다. 서울대병원 운영에 있어서도 간병인은 필수적인 것이다. 또한 서울대병원은 국립병원으로 국민의 세금에서 매년 수 백억 원의 지원을 받고 있다. 그럼에도 년 2400만원으로 운영되었던 무료소개소 마저 일방적으로 폐지한 것은 간병인의 교육과 관리를 맡아왔던 병원의 최소한의 의무조차 방기하겠다는 것이다.
현재 서울대병원 간병인 지부 조합원들이 일터로 돌아갈 수 있게 되었지만 이러한 상황은 마찬가지다. 병원은 건전한 경쟁체제를 내세우면서, 무료소개소 2개와 유료소개소 1개를 동시에 선정하였다. 간병인 조합원들은 노조활동 인정과 노조의 자체 운영을 원칙으로 자활에서 운영하는 '약손엄마'란 무료소개소를 통해 현장으로 복귀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같은 무료소개소라고 해도 서울대병원이 운영하는 무료소개소는 결국 사라진 셈이다.

둘째는 서울대병원 무료소개소 간병인들이 노동조합에 가입해 있기 때문이다.
서울대병원 무료소개소 간병인들은 2001년 말부터 보건의료노조에 가입해왔다. 병원은 그 후 200명이던 간병인들을 계속 줄이고 사설유료업체로 대체해서, 무료소개소 폐지 당시에는 50명으로 줄어있었다. 보건의료노조 서울대병원지부는 6월 말부터 보건의료노조 서울지역지부 조합원인 간병인들의 노동조건 개선을 위한 실무협의를 해오고 있었다. 요구는 최저임금에도 못 미치는 임금에 대한 인상(4만 5?원에서 5만원으로 5천원 인상)과 휴게실 문제를 제의한 것이었다. 그러던 중 병원장은 사전논의도 없이 일방적으로 9월 1일자로 무료소개소를 폐지하고, 4일자 우체국 소인으로 간병인들에게 개별적으로 우편통보를 하였다. 서울대병원은 대형병원의 특성상 장기입원환자와 중환자가 많기 때문에 하루 200명의 간병인들이 필요할 정도로 간병인의 수요가 계속적으로 있었다. 그래서 서울대병원 간병인들은 길게는 25년 짧게는 10년 이상 서울대병원에서 일해왔다. 따라서 무료소개소 폐지는 서울대병원 간병인 노동자들에겐 해고통지서나 다름 없었던 것이다. 간병인들이 자신을 노동자로 인식하고, 노동자의 권리를 찾기 위해 노조에 가입하는 것을 서울대병원에선 좌시하지 않았던 것이다. 서울대병원 간병인들은 투쟁 중에 서울대 간병인 지부를 결성하였다. 그러나 여전히 서울대병원은 간병인 노조를 노사협의 대상으로 보고 있지 않다. 4월 21일 서울대병원 은 무료소개소가 간병인 노조 중심으로 운영될 것을 알고 무료소개소 선정을 뒤집기도 했다. 또한 서울대병원은 비정규직화의 선두에 서 있다. 서울대병원은 보수, 경비, 청소, 소아급식까지 이미 용역에 넘겼고, 지금도 서울대병원에서 용역화와 비정규직화가 확대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러한 병원 정책에서 직원의 범위에 있지 않은 간병인들까지 노동조합에 가입하는 것은 눈에 가시였던 것이다.

간병인의 노동조건은 어떠한가
- 고용계약관계에 있는 노동자이면서도 노동법의 사각지대에 있는 여성노동자

최저 임금에도 못미치는 저임금
간병인들은 휴식시간이나 식사시간도 제대로 보장받지 못한 채 24시간을 근무하고 일당 5만원(2003년 8월 1일 이전까지는 4만 5천 원)을 받는다. 이는 일일 8시간으로 환산하면 16,666원으로 최저임금 20,080에도 못 미치며 이를 226시간으로 환산하면 월 50만원에도 못미치는 저임금을 받고 있다.

최악의 장시간 노동시간
간병인 노동자들은 대부분 일요일 오후 2시에 들어와 근무를 시작하면 토요일 오후 2시에 근무를 마치게 되며 주6일을 24시간씩 결국 144시간을 근무한다. 이는 보통 노동자들의 3배가 넘는 시간이다. 대부분의 간병인들은 휴식시간이 따로 없으며 설령 보호자들이 와서 잠시 쉬고 오라고 해도 쉴 공간마저 없다. 밥 먹는 시간외에 환자 곁을 떠날 수가 없다. 6일 근무 후 1일 쉬지만 그마저도 집에 돌아가면 그간에 밀린 6일간의 가사일과 앞으로의 6일 동안의 필요한 일을 준비하고 나와야 하는 여성노동자들이다.

직업병에 시달려도 인정 못 받는 노동자
간병인들은 한 환자가 끝나면 다른 환자를 돌보며 계속 병원 생활을 해 병원의 안 좋은 환경(공기)에 계속 노출되어 있고 아픈 사람을 휴일도 없이 상대해야 함으로 정신적, 육체적으로 몇 배나 힘든 노동을 하고 있다. 대부분의 간병인들이 장기적인 수면장애로 안구건조증을 갖고 있으며, 과체중환자나 무의식환자를 간병하면서 체위변경을 규칙적으로 해줄 때 대부분 혼자 하기 때문에 등이나 허리 근육통이 심하고 심지어는 디스크와 자궁하수증에 걸리며, 장기적인 병원 생활로 햇볕을 보지 못해 칼슘부족으로 관절이 붓고, 병실 실내 건조로 알레르기 비염과 만성인후염을 대부분 앓고 있다. 심지어 환자가 간염, 결핵 등 감염성 질환이어도 간병인에게 알려주지 않는 경우가 많아 감염에 쉽게 노출되어 있다. 이 모든 질병들이 간병일로 인한 직업병이 분명하지만 산재처리를 받는다는 건 상상도 못할 일이다.

서울대병원 간병인 노조의 투쟁은 무료소개소 폐지 철회를 목표로 시작되었지만, 간병인 노동자의 현실을 사회적으로 알려내는 계기가 되었다. 또한 간병인들이 대부분 여성들이라는 것을 감안할 때, 이 시대 여성노동자들의 현실과 여성노동자 조직화 방안에 대한 고민을 던져주는 또 하나의 계기가 되었다. 간병인들은 분명히 노동자이면서도 근로기준법이나 최저임금법의 적용을 받지 못하는 여성 노동자들이다. 비공식 노동자는 고용계약관계에 있지 않거나 사업장에 고용되어 있지 않다는 이유로 근로기준법이나 최저임금법 등이 적용되지 않는 법외노동자이다. 이러한 비공식노동자들은 공식적인 통계에 반영되지 않아 전체적인 규모를 알기 어렵지만 최소한 500만여 명이 될 것으로 추정된다. 서울여성노조 정양희 상담센터장은 "근로자파견법에 의하면 파견허용업무는 사무보조원, 전화교환원, 여행안내원, 조리사, 보모, 간병인, 개인보호 근로자, 텔레마케터, 건물 청소원 등 다수가 여성집중직종의 업무이다. 여성노동의 대부분이 노동의 중간 착취를 합법화시킨 파견법의 대상이 되었다는 점은 정부의 노동정책과 법제정이 여성노동자들에게 매우 불리하게 이루어지고 있음을 드러낸다."며 정부의 노동정책을 비판했다. 향후 간병인의 노동자성 인정과 간병인에 대한 근로기준법, 최저임금제 적용을 위한 투쟁은 이러한 비공식 여성노동자와 함께 하는 투쟁이어야 할 것이다.

남겨진 과제

9개월 동안의 간병인 노동자들의 끈질긴 투쟁은 노조가 자율적으로 운영하는 무료소개소를 통한 현장 복귀로 한숨 덜어낸 셈이다. 대부분 50-60대의 여성 가장이었던 간병인 조합원들의 흔들리지 않는 투쟁이 없었다면, 이마저도 불가능했을 것이다. 그러나 다시 일하게 된 일터의 노동조건이 변한 것은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간병인 노조와 함께 했던 이들의 어깨는 여전히 무겁다.
'서울대병원 간병인 문제해결 및 공공병원으로서 제자리 찾기를 위한 공동대책위원회'(이하 공대위)는 이번 서울대병원 간병인 문제로 드러난 유료소개소의 문제점을 알려내기 위해 유료소개소 실태조사를 진행중이다. 전국에 20만 명으로 추정되는 간병인 문제가 근본적으로 해결되기 위해선 중간착취를 일삼고 불법공급을 자행하고 있는 유료소개소의 문제점을 알려내고, 장기적으로는 간병인들이 병원의 책임하에 직접 고용되는 것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투쟁을 위해서는 현재 서울대 간병인 노조와 공대위의 힘만으로는 역부족이다. 보건의료노조가 간병인 조직화에 앞장서고, 전국의 간병인 노동자들이 스스로 투쟁의 주체가 되는 과정이 필요하다. 하지만 그전에 우리가 넘어야 할 우리 내부의 과제 또한 있다. 앞서 서술했듯이 서울대 간병인 노동자들은 2001년 말부터 보건의료노조 서울본부에 직가입해 있었다. 투쟁을 진행하면서 간병인들은 간병인 지부 건설의 필요성을 느끼고, 서울대 간병인 지부를 건설했다. 그러나 지부 승인 과정이 순탄하였던 것만은 아니다. 논란은 간병인이 보건의료노조 조직대상이냐는 것이었다. 이 논란은 결국 민주노총 법률위의 자문을 얻어 보건의료노조 본조가 직접 승인하는 것으로 마무리되었다. 그러나 이것이 대형병원 정규직 노조의 이기주의를 극복하고 노동자의 단결과 연대를 전진시키는 것으로 정리된 것은 아니었다. 지난 3월 25일 서울대병원 간병인 지부장이 참석하지 않은 서울본부 집행위에서 '서울본부 차원에서 서울대병원 간병인지부와 관련한 논의를 더 이상 지속하는 것이 어렵다고 판단되므로 투쟁지원과 관련한 집행위 논의를 중단한다'고 결정하고 각 지부에 공문을 발송했다. 투쟁 8개월을 넘기며 힘들게 싸우고 있는 장기 투쟁사업장에 연대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것이었다. 간병인 노조가 싸워온 지난 9개월 동안 이용석 열사를 비롯한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비정규직 차별 철폐를 외치며 산화해갔다. 이러한 비정규직 문제에 대응하는 노동자운동은 노사단체협상에 비정규직 차별 개선을 요구하는 것에 머물러서는 안될 것이다. 60%가 비정규직 노동자라는 현실은 비정규직 문제의 심각성을 드러내는 것만이 아닌 이러한 불안정한 노동조건이 노동자 일반의 조건이 되었음을 의미한다. 하기에 노동자운동의 조직화는 이렇게 일반화된 불안정한 노동조건에 맞서는 투쟁이라는 기본 관점에서 출발해야 할 것이다.
정말 춥고 길었던 투쟁으로 일터로 돌아갈 수 있게 되었지만, 조합원에 대한 서울대병원의 노동탄압이 계속될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그녀들의 투쟁이 힘을 얻기 위해선 아직도 넘어야 할 산들이 많기에 여전히 우리들의 어깨가 무거워야 하는 게 아닌가 생각한다. PSSP
주제어
노동 여성 민중생존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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