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사회운동

사회진보연대 계간지


2004.5.4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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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5특집-이상훈.hwp

총선결과 분석과 사회운동의 과제

이상훈 | 조직교육국장
총선결과 분석 1/ 불안정한 양당체제의 등장과 신자유주의 정치개혁의 모순
-총선은 지배정치의 위기를 해소했는가?

17대 총선은 외형적인 양당체제를 낳았다. 과반 의석을 확보한 열린우리당은 탄핵심판의 민의를 확보했다며 압승을 선언했고, 121석을 확보하여 기사회생한 한나라당은 그들 나름대로 자축 분위기다. 언론은 이 같은 결과를 두고 안정적인 국정운영과 생산적 견제의 황금분할이라 평하고 있다.
우선 과반 의석을 확보한 열린우리당은 이번 선거를 당연한 탄핵심판의 승리라고 평가하고 있다. 그러나 막상 실제 선거결과를 놓고 보면, 탄핵선두라 할만한 김기춘, 정형근, 박희태 같은 인물들이 모두 살아남았고, 한나라당은 무려 121석을 확보했다. 그럼에도 이번 선거를 탄핵심판론의 압도적 승리라고 평가할 수 있으려면, 호남의 지역주의는 개혁적이지만 영남의 지역주의는 수구보수적이라고 매도해야만 한다. 그러나 지역주의적 투표 행태의 실제를 어느 정도 인정한다하더라도 영남대중 전체를 수구보수로 매도하거나, 어떤 지역주의가 이념적으로 구분된다는 논리는 지나치게 사후적인 비약이고 억측이다. 호남 지역주의가 열우당을 선택하고 민주당을 버린 것이 수구보수 한나라당에 대한 정서적 거부의 결과라면, 영남 지역주의는 노무현 정권의 국정수행 1년에 대한 거부를 정서적인 형태로 표현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지역주의는 복잡다단하게 얽힌 현실의 불만이 합리적 대안을 가지지 못한 가운데, 정서적이고 감정적인 형태로 표출되는 이데올로기적(모든 이데올로기는 왜곡된 이데올로기다) 투표 행태다. 지역주의적 형태를 띤 투표결과를 호남과 영남에서 누가 얼마만큼 당선되었는지의 사후적 결과로만 평가한다면, 성격상 무한히 변태가능하고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있는 지역주의는 스스로 '모든 지역에서의 각 정당의 균등한 득표'라는 불가능하고 제거할 수 없는 목표의 함정에 빠진다. 더욱이 영남에 출마한 수구보수적인 지역수장들이 선거과정에서 "그래 나 수구꼴통이고, 계속 차때기할테니 찍어 달라"며 선거를 했을 리 없고, 열린우리당이 호남에서 신자유주의 정책개혁과 햇볕정책의 한계를 어떻게 넘어설 것인지를 설득하여 당선되지 않았다.
한편 한나라당의 자축분위기는 훨씬 기만적인데, 이들이 내놓은 주된 평가는 '국민의 놀라운 균형감각'이 표현됐다는 것이다. 정말 놀랍도록 뻔뻔한 해석이다. 하지만 152:121:10:9라는 분명한 양당 구도가 확정되자마자 노무현과 정동영은 '상생과 통합의 정치'를 운운하기 시작했고, 언론들은 진보가 가미된 '중도(수구)보수 vs 중도(보수)개혁 간의 황금분할'이라는 평가를 내놓았다. 이를 통해 한나라당의 아전인수격 평가는 어떤 현실적인 근거를 얻은 듯이 보인다.
그러나 17대 총선의 의미는 "정치를 바꿔 경제를 살리자"는 모토로 요약되는 정치개혁의 기만성과 '안정적인 위기관리'라는 지배계급의 모순적 과제가 가지는 고유한 난점을 통해서만 옳게 파악할 수 있다. "정치를 바꿔 경제를 살리겠다"는 신자유주의 여야정당의 약속은 피착취 대중의 인내가 한계에 도달했고 동시에 지배계급 또한 더 이상 이전과 같은 방식으로 통치할 수 없음이 분명해진 상황을 "이전과 다른 방식으로 통치하겠다"는 읍소로 모면하려는 하나의 기만에 다름 아니다. 그리고 이 기만 속에는 집권여당의 통치력 위기를 넘어 지배정치일반(국가)의 위기로 변태중인 경제위기를 오로지 여야 간, 국가기구 간의 책임전가를 통해 관리해야하는 극복할 수 없는 모순이 존재한다. 즉 지배체제의 위기를 봉합하기 위해서는 지배정치 스스로 지배체제의 정치적인 안정을 허물어야한다. 때문에 보수정당들 간의 차별성이 없어지고, 이들 간의 중도주의적인 수렴이 진행될수록, 지배계급 내 정치적 대결은 경제위기를 호도하기 위한 '다른 정치 수단'(부패 비리수사와 각종 스캔들, 정치이미지 마케팅)이 총동원되는 가운데 점점 더 극단적인 양상으로 진행될 수밖에 없는 역설적인 현상이 벌어진다.(대통령 탄핵은 그 정점이었다) 그로 인해 17대 총선은 전적으로 탄핵심판론과 거여견제론이라는 네거티브 선거게임전략에 의해 치러지게 된 것이다. 실제로 이번 선거에서 여야 각 정당은 상대를 배제하고 내부 숙청을 단행해야 자신이 살아남는 절박한 지경에서,(막상 서로 간의 정책-이념적 차별성이 없었기 때문에 인기몰이에 성공한 뉴리더를 내세워) 그저 울고, 사과하거나, 엄살 이벤트를 벌이며 서로의 다수의석 확보를 저지하자는 읍소(게임전략 대 게임전략)로 일관했다.
이러한 양상의 선거캠페인은 결국 여야 서로를 향해 책임을 몰아 묻는 투표행위로 표현되었고, 외형적인 양당체제가 등장한 것이다. 그러므로 이번 총선의 의석배분 결과는 여야가 분할한 '두개의 승리'라기보다는 서로에게 떠넘겨진 '두개의 패배'에 더 가깝다. 다시 말해 대중적 불신과 분노에 편승한 선거 캠페인의 결과, 대혼란과 무능에 빠진 위기관리체제는 스스로의 기반을 무너뜨리는 방식으로 또 다른 대립과 붕괴를 잠시 보류시킨 것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그것은 마치 끓어오르기 시작한 분노한 민심 위에 얹어진 '상생과 통합의 정치'라는 이름의 살얼음판과 같은 운명일 것이다.


총선결과 분석 2/ 신자유주의 정치개혁 전망
지난 김대중 정권 말기, 1,2차 구조조정과 상시 구조조정 시스템이 별다른 효과를 보지 못한 채로 집권세력의 통치력 상실을 불러온 이후로 여야를 막론한 신자유주의 정치세력에게 남겨진 대안은 정치개혁뿐이었다.(그리고 그와 긴밀히 연관된 언론, 교육, 가족개혁) "깨끗한 정치, 일하는 정치로 경제를 살리자", "사회적 정치적 통합과 참여개혁"이라는 선동을 누가 더 효과적으로 연출하느냐가 선거 승패의 관건이었고, 결국 '노무현의 눈물'이 '엘리트 이회창'을 제압했다. 그러나 노무현의 승리는 채 1년을 지속하지 못했다. 지지율은 나날이 곤두박질 치고 측근비리가 줄줄이 터져 나왔다. 더 높은 강도와 더 많은 베팅만이 탈출구였고, 그것은 재신임과 연계된 전면적인 대선자금 비리수사, 그리고 그에 뒤이은 대통령 탄핵사태와 '총선 올인'전략으로 나타났다. 그 결과 선거가 끝난 뒤에도 크고 작은 부패비리수사와 정치이미지 마케팅과 같은 '다른 정치 수단'들에 의한 무한캠페인이 계속되는 기이한 정치 행태를 낳았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치루어진 총선은 변형된 정치캠페인을 제도화하는 개정된 선거법으로 치러진 최초의 선거였고, 17대 국회는 개정된 정치관계법에 의해 운영되는 최초의 국회가 될 것이다. 이 개정된 선거법과 정치관계법의 핵심은 금권-부패정치를 청산한다는 명분 아래 대중동원 선거를 봉쇄하고 미디어-정책 선거를 강제하며, 원외 법정지구당 폐지를 골자로 하는 원내 정책정당화를 추진하는 것에 있다.

- 주어진 정책적 합의와 정치개혁
우리는 우선 이번 총선 이후 보다 분명한 형태로 나타날 '정책'(국가행정)과 '정치'간의 역전된 위계관계를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20세기적인 행정혁명과는 또 다른) 신자유주의시대에 위기관리적 국가기구 내에서 다루어지는 대부분의 정책은 세계화된 시장의 신호와 그에 대한 행정기구의 반응, 또 그 역의 과정을 통해 결정된다. 그리고 점차적으로 의회와 정치정당은 이 정책 형성 결정과정으로부터 지속적으로 분리되는 과정에 있다.
이미 대부분의 주요 정책들은 의회나 각 정당들의 정치적 판단의 대상이 아니고, 의회의 법안심의와 의결이란 기껏해야 이미 결정된 정책들을 대중적으로 알리고 이해를 구하는 역할(시행시점과 집행순서, 속도, 강약 조절의 방법으로)에 그치고 있다. 신자유주의 정책개혁의 주요 집행자는 의회나 정당이 아니라 행정이고, 행정은 언제나 차악의 선택을 강요하며, 공익의 이름으로 스스로 효율적인 차선과 차악의 선택조정체계 안에 머문다. 반면 치열한 보수정쟁으로 일관했던 야대여소의 16대 국회(여야정당들이 민생법안이라 부르는)조차 주요 신자유주의 구조조정 관련 안건에 관해서 만큼은 철저하게 통법부(通法府)로서의 역할만을 수행했을 따름이었고, 하물며 17대 국회는 여대야소로(근소한 차이의) 의석비율이 바뀐 처지다.
더욱이 그나마 여야정당과 의회에 주어진 그 같은 역할의 많은 부분은 보다 전문적인 매스미디어 기관과 NGO로 이전되었다. 한편으로는 '작지만 강한 국가'의 사회 정책적 기능을 '국가와 사회의 시너지 효과'를 위해 또 다른 위기관리기구인 NGO에 넘기고, 대표성과 정당성을 상실한 정당정치를 매스미디어 기관(주로 TV와 인터넷)의 역할을 극대함으로써 보완토록 하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이들 NGO와 지배적 매스미디어 매체야말로 오늘날의 지배정당이다.(뉴스앵커를 그만 두고 여당대표로 자리를 옮긴 정동영이 아니라) 이에 따라 행정부-정당-미디어-NGO로 이어지는 불안정하지만 효과적인 제휴/갈등관계가 신자유주의적 위기관리체제의 기본 골격을 이루게 된다. 더 이상 용인할 수 없는 착취의 한계에 내몰린 노동자 민중의 격렬한 저항은 이 위기관리체제의 내부적인 갈등과 제휴관계로 흡입됨으로써, 주어진 '정책'의 실행을 위한 효율적 행정적 관리와 협소한 집단적 이익의 조정이 '정치'라는 이름으로 진행되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본다면, 여야정당이 총선이후 내놓은 '상생의 정치'란 '싸움 않고 일하는 정치', '대화합의 정치'가 아니라(앞서 살펴본 대로 이들 간의 대립은 더욱 치열해질 수밖에 없다) 결국 주어진 '정책'에 대한 예정된 합의의 충실한 이행을 지칭하는 것일 테고, 이 합의의 대전제는 IMF협약의 형태로 직수입된 '워싱턴 컨센서스'(1990년대 이후 자유주의와 보수주의간의 정책개혁에 대한 세계적 합의로 신자유주의의 다른 이름)와 글로벌 스탠다드인 것이다.

- 원내 정책정당화 : 정치의 미디어화, 정당의 운동적 요소 제거, 의사(擬似)정치의 일반화
정책정당화가 정당정치의 탈이념화, 실용주의화, 미디어화를 표현하는 것이라면, 원내정당화는 그나마 존재해온 정당조직의 운동적 요소들을 조직적 법적으로 제거하는 신자유주의 정치개혁의 핵심적인 정책과제이다.
원내정당은 한마디로 국회의원이 중심이 되는 정당체제를 말한다. 법정 지구당은 모두 폐지되고, 당의 이름을 건 일상적인 지역-현장의 원외사업은 모두 불법이다.(광역단위 시도지부 정도가 소규모의 연락사무소정도를 유지한다) 나아가 열우당은 휴가철을 제외하고 연중 국회가 열리는 상시국회제도 도입을 국회개혁안으로 제시했으며, 중앙당을 대폭 축소하거나 폐지하고 당의 모든 주요 기능을 국회 안으로 옮기자는 식의 안도 내놓았다.
그런데 이 정책정당화에서 말하는 정책이란 앞서 서술한 주어진 '정책'이 아니라, 주어진 정책들의 틀 내에서 다루어지는 부분적인 이슈들을 법안으로 손질한 것들을 의미하거나, 주어진 정책들의 실행을 위한 법안과 선전방안들을 말하는 매우 제한적인 범위의 정책이다. 오히려 정책정당에서 말하는 정책의 주요한 측면은 인구의 특정 계급계층을 대표하고 그러한 대표성에 맞는 정당성의 원천인 이념을 폐기하고, 이를 정책(이슈)중심으로(그것도 여론조사결과와 표심에 따라 춤을 추는 주요 이슈) 대체하는 것에 있다. 이에 따라 정당은 당의 이념을 원자화된 유권자들의 표심에 맞춘 정책-이슈파이팅 정당, '모두를 위한 정당(Catch all Party)'으로 또 모든 계급계층, 모든 이념을 포괄하는 '무지개 정당'으로(혹은 담합Cartel정당) 재편된다.(계급이념정당, 대중정당의 폐기) 결국 '정치'는 정치연예인과 전문가-관료출신 정치인들의 원내 활동을 TV, 인터넷을 통해 지켜보거나(비추어지거나), 이들이 수시로 던지는 설문과 물음에 답하고 그 결과 수치를 확인하는 의사(擬似)정치로 대체되어 버리는 것이다.
금권 부패 보스정치의 폐해를 청산한다는 미명아래 '개혁'의 이름으로 도입된 원내 정책정당화란 더욱 축소된 의회의 정책적 영향력과 탈냉전시대에 약화된 보수이념정당의 일반적 위기를 표현하는 의회주의 쇠퇴, 대중 조작적 민주주의의 다른 이름일 뿐이다.


총선결과 분석 3/ 민주노동당의 의회진출의 운동사적 의의와 쟁점
민주노동당의 의회진출은 91,92년 투쟁이후 본격화된 정치세력화(진보정당)운동 10년의 한 순환을 매듭지은 일대 사건이다. 87년 6월과 노동자 대투쟁, 91/92년 패배가 그렇듯이 우리는 아직 2004년의 이 사건의 의미를 온전한 역사로서 파악할 수 없을지 모른다. 그러나 다음의 몇 가지 쟁점들은 이후 평가의 놓칠 수 없는 출발점들이다.

- '진보 vs 보수'로의 역사적 진화라는 관념의 오류를 통해 본 민주노동당 의회진출의 운동사적 의의
민주노동당의 의회진출은 분명 지난 민주화 운동과 특히 10여 년간 지속되어온 반신자유주의 운동의 성과 위에 위치해있다. 그러나 그것은 (일부) 민주화운동세력의 신자유주의적 타락과 반신자유주의 운동의 반복되어온 패배의 성과라는 운동사적 특이점을 갖는다.
87년 민주항쟁 이후 이번 총선에 이르는 운동사에는 91,92년 계급투쟁 패배와 신자유주의 개혁의 정치적 실행조건인 문민정부라는 단절점이 존재한다. 논란의 핵심은 이 단절의 의미를 어떻게 받아들이는가에 있다.
민주노동당의 우경화 문제에 관해 상반된 입장을 가지는 민주노동당 당권파와 민주노총의 좌파는 이 단절에 대한 판단에 있어서는 묘한 공감을 형성하고 있다. '민주-반민주' 전선이 '보수 vs 진보'구도, 혹은 '총자본 vs 총노동'으로 진화한 것으로 보는 어떤 초역사적인 진보주의적 관념이 그것이다.
93-95년 문민정부와 민주노총의 출범은 91-92년의 패배-붕괴의 속편에 해당하는 것으로, 이것은 진보주의적 역사관으로는 인정되거나 포착하기 어려운 '운동사적인 역행'이었다. 좌측이 무너진 냉전체제의 반공-발전독재 세력이 문민화를 통해 뒤늦은 신자유주의의 전면도입을 꾀했다면, 냉전의 붕괴를 세계사적 패배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던 냉전적 좌파(당-좌파)는 피지배 계급대중운동으로부터 이탈하거나 배제되었으며, 대중운동은 국가를 지렛대로 조직대오의 실리적 동원과 방어를 추구하는 코포러티즘적인 체계로 재편되었던 것이다. 더욱이 자본의 금융화와 노동의 불안정화 경향으로 인한 잇따른 패배는 노동자 운동의 대중적 토대를 심각하게 위협했고, 이 과정에서 민주노총의 코포러티즘적인 전략과 체계(진보정당을 통한 정치세력화와 산별노조건설)는 더욱더 공고화되었다.
이러한 운동사 인식에 입각해 볼 때, 2004년에 거두어진 민주노동당의 성과는 87년에 뿌리를 두고 이로부터 진화해온 것이 아니라, 운동사적인 역행에 다름 아니었던 (93-95년의) 역사적 단절의 진화이며, 역전된 운동사의 진보라는 것이 우리의 관점이다. 이 역사적 단절의 의미를 보지 않을 때에만, '민주 vs 반민주'전선의 소멸이 '진보 vs 보수'로 전진했다고 평가할 수 있으며, 전선 해체의 반성과 혁신, 복구의 과제(재편이 아니라)를 '패배의 성과'의 열광에 묻힌 부차적이고 열등한 쟁점으로 치부할 수 있을 것이다.

- 민주노동당의 틈새진출 전략의 문제점
이번 선거의 양대 구도를 이룬 탄풍과 거대여당 견제론인 박풍은 여론조사를 유일한 객관적 근거로 하는 바람정치라는 점에서 동일하고, 대중의 민주화와 생존권적 요구를 오로지 이번 선거에서 누가 얼마만큼의 의석을 획득하느냐의 문제로 가두어 놓는다는 점에서 동일한 선거 게임전략에 불과하다. 탄풍과 박풍이 구분될 수 있다면, 그 구분점은 바람의 주역이 노무현이냐 박근혜냐, 즉 정당정치를 갈음하게 된 여론-미디어정치에 사용된 장식물이 더 이상 자신의 과업을 잃고(대통령직선제로 봉쇄된 채) 타락한 민주화의 기억이냐, 아니면 IMF위기로 무너진 박정희식 반공발전주의냐에 있다. 현 시기 제기되는 사회운동적인 쟁점들을 대의하기보다는 이미지적으로 착취하기에 급급한 정당정치가 가지는 유일한 진실은 여론조사 결과에 따른 정략적 해석과 이를 통한 의석경쟁 캠페인이다. 내건 장식물의 색채가 어떤 이념적 정책적 내용을 가지느냐는 장식물로 치장된 이념과 정책의 이미지로만 판단되는 구조인 것이다. 실제로 이번 선거기간 중에 정동영은 과거 개발독재의 발전을 재연하기 위해서는 그 원동력이었던 과반여당을 열우당에게도 허용해줄 것을 호소했고, 동시에 박근혜는 한국정치의 정통성은 발전주의세력과 4·19, 5·18 민주화세력에게 있다면서 보수세력의 혁신의사를 표명했다.
그런데 이러한 지경에 접어든 보수정치를 심판해야하는 위치에 있는 민주노동당은 막상 이번 총선에서 탄핵심판론, 거여견제론에 뒤이은 또 다른 선거게임전략인 야당교체론 혹은 진보야당론을 총선전략으로 삼았다. 이것은 민주노동당의 정치가 대중의 요구를 운동이 아니라 정책공약을 통해 대리(대변)하는 한계를 뛰어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며, 좌파정치의 근본적 곤란에 대한 대안창출이 아니라 지배정치의 위기진행과정에서 만들어진 틈새를 분점하는 원내진출 전략의 틀에 머물렀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 같은 원내진출 전략은 전선복구와 운동재개라는 보다 근본적이고 절박한 운동적 과제들의 현실적인 착수를 계속 지체시키고, 부차적인 쟁점으로 억압한다는 것이다.
한편 이번 선거과정 평가에서 빼놓을 수 없는 입장하나는 바로 탄핵무효운동이 오히려 민주노동당 지지의 폭을 넓혔다는 아전인수격인 주장이다. 이는 탄핵무효투쟁에 대한 비판의 대안을 민주노동당 지지로 사고했던 입장에 대한 반비판으로는 유효하다. 또 사실 민주노동당은 '탄핵무효범국민행동'에 공식참여하지 않았다.(NGO중심의 범국민행동은 정치정당이 참여할 수도 없었다)
그러나 열우당을 타격-견인의 대상, 좀더 분명하게 말하자면 (큰 틀에서) 하나의 파트너로 보는 기본적인 태도의 동일함이 유지된다는 의미에서 촛불과 진보야당론이 서로 수렴되는 것은 나름의 논리적 전략적 일관성을 지닌다. 이로써 탄풍 속에서 보수정치 심판, 민생정치라는 소극적이고 모호한 형태의 틈새전략을 택했던 민주노동당이 공식선거전 개시이후, 탄핵무효 촛불에 동원되었던 다수파와 탄핵심판론에 비판적이었던 당권파가 진보야당론을 접점으로 제휴하는 길로 나갔던 것이다. (탄핵에 대한 민주노동당 당권파의 입장은 헌재에서의 조속한 기각요구, 국회개원이후 탄핵취소였다)

- 신자유주의 세계화 시대, 진보정당의 원내진출의 쟁점
일반적으로 서구에서 사민주의 정당이 주요한 정치 행위자로 부상하게된 것은 세계대전 등 '국가의 위기'를 매개로 하여 노동자대중을 민족국가로 통합하는데, 매개 역할을 함으로써 가능했다. 이른바 '사회 민족적 국가'의 형성과 '자유주의의 쇠퇴'라는 역사적 조건이 그것인데, 이러한 역사적 조건과 경향에 따라 사민주의 정당의 의회진출은 피지배계급운동의 성과를 정치적인 형태로 표현하는 양상을 가질 수 있었다. 그러나 오늘날의 신자유주의 세계화는 이러한 20세기적인 역사적 경향과 조건을 역전시켰고, 사민당-정부는 1980-90년대 들어 (현실사회주의의 붕괴와 구분되는) '대안강령'의 일반적 실패 속에서 해체되거나, 위기관리 국가의 또 다른 관리자로 역할을 재조정하고 있다.
또한 민주노총과 전농 등의 계급대중조직이 주축이 되어 건설된 현재의 민주노동당은 1980년대 남미의 좌파운동들(특히 전선체들)이 군부독재의 종식과 '민주화 이행'(신자유주의 정책개혁의 실행조건으로 타락한) 이후 합법정당으로 이전하는 양상과 유사한 길을 걸어왔다. 1990년대 초반 일부 국가에서 이들 정당들은 부분적인 성공(중앙의회 진출, 지방정부 장악 등)을 거둠으로써 열광을 불러일으켰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정치정당이 대중운동 또는 사회운동과의 결합이 곤란해지고 있다는 사실이 드러나고 있다. 또한 정당이 노동자운동과의 역할분담 관계 속에서 인적-조직적 연계망을 형성함으로써, 신자유주의 시대에 쇠퇴하는 노동자운동의 곤란과 모순을 그대로 반영하는 방식으로 성장하는 악순환 관계를 이루는 현실에 직면했다.
이때 이제 막 의회진출이라는 부분적인 성공을 이룬 민주노동당이 정당과 사회운동의 관계를 과연 이들 서구 사민주의 정당이나 남미의 진보정당들과 달리 어떻게 전진적으로 사고하고 실천할 수 있는가야말로 이후 민주노동당의 성패를 가름할 핵심쟁점이다.

- 신자유주의적 정치위기와 정치개혁의 흐름 속에서 원내진출에 성공한 민주노동당의 몇 가지 현실적인 딜레마
원외 운동조직으로부터 성장하여 독자적인 힘으로 원내 진출에 성공한 외생 정당의 사례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세계적으로 그리 흔치않은 경우이다.(독일녹색당과 브라질PT정도다) 그러나 이들 외생 정당들은 거의 비슷한 패턴과 과정을 통해 원외 운동조직으로서 고수해왔던 '근본적 반대파로서의 원칙'을 점진적이긴 하지만 원천적으로 폐기해왔다. 이러한 결과는 단순한 옷 입기와 말투 같은 라이프스타일 상의 사소한 문제로부터 원외 대중운동과의 관계, 근본적인 운동철학과 양식, 이행전략과 이념에 이르기까지 그간 체계화되지 못하고, 구체적인 쟁점으로 사고되지 못했던 운동의 근본 문제들이 다양한 형태로 재생산되고 강제되는 부르주아적 규율과 사상에 부지불식간에 침식당해온 결과다. (현재 이 규율지도의 가장 엄하고 부지런한 교사는 장기화된 구조적 경제위기와 전쟁, 그리고 방송기자들이다.)
이러한 결과는 지배체제의 통제범위 외곽에서 성장해온 반체제적인 사회운동세력이 사회운동과의 전진적인 관계를 확보하지 못한 채 체제내부, 그것도 그 핵심부위에 진입했을 때 피치 못하게 겪을 수밖에 없는 매우 당연한 결과였으며, 비록 적은 규모이나마 최초의 성공을 이룬 민주노동당으로서도 피해갈 수 없는 시험코스일 것이다.

1> 우선 민주노동당은 거대 여야정당간의 짧은 밀월이 깨지고 이들 간의 정쟁이 본격화될 경우, 원내에서 독자적인 의제설정능력이 없는 소수정당의 고역을 겪을 수 있다. 짜여진 의제 안에서 최선의 답안을 제출하는 것으로는 진정한 진보를 달성할 수 없다. 그것은 보수와 한 쌍을 이루는 체제적 위험요소들을 거세한 '관리된 변화'이다. 그런 의미에서 민주노동당이 짜여진 원내 대립구도 안에서 진보적인 정책(공약) 개발에 주력하는 것은 반체제적인 의제를 독자적으로 세팅하여 제기할 수 있는 힘의 원천을 스스로 제거하는 것에 다름 아닐 것이다. 예컨대 탄핵찬반이나 경제성장(분배)론에 종속된 민생-경제법안과 (예산분배정책심의) 같은 의제로 짜여진 여야 간의 대립구조 속에서 민주노동당은 NGO를 버퍼로 하는 보수개혁 여당과의 사안별 공조를 (안팎으로) 강요당할 위험이 크다.
2> 그동안 민주노동당의 조직 골간을 이루고 있던 지역 지구당이 폐지된 상황에서, 민주노동당의 원내정책정당화가 현재와 같은 속도로 아무런 대안 없이 진행될 경우, 민주노동당은 운동정당적인 성격을 잃고 중앙당 혹은 의원단 차원의 민원창구로 전락할 위험을 안고 있다. 이러한 위험은 당 발전 전략상의 노선적 대립을 넘어서는 운동성 자체의 존폐위기이며, 당의 민원해결능력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는 주객관적 요인들을 감안해 보았을 때도 운동성을 제거하지 않고는 결코 성공할 수 없는 막다른 길임을 직시해야한다. 그동안 당의 골간이었던 지역당 조직들이 하루아침에 붕괴되고, 당 외곽의 대중조직들과의 코포라티즘적인 상층연대만이 강화되는 퇴행적인 사태를 막아야 한다. 지역 지구당조직들이 다양한 사회운동조직으로 갱생할 수 있는 실질적인 여건이 마련되어야하며, 이러한 재편을 지속가능한 운동으로 뒷받침할 수 있는 근본적인 노선과 이념의 개조가 뒤따라야 할 것이다.
3> 민주노동당, NGO, 개혁주의적 집권여당과의 사안별 '정치적 연대'와 노-정(勞-政) 및 노사정의 '사회적 합의'의 역할이 증대될 경우, 전국민중연대가 상층연대기구라는 한계 속에서나마 고수해왔던 공동투쟁연대 대표체로서의 독자적 지위와 통합력은 상당한 정도로 손상될 위험이 있다.

4/ 이후 사회운동의 전망과 과제 수립을 위하여
2004년 총선으로 변화한 사회운동의 조건은 무엇인가? 한국사회의 보수적인 정치지형이 전반적으로 좌로 이동하여 중도화되는 현실은 어떻게 이해되어야 하는가? 또 역으로 변혁지향적인 사회운동이 우경화되어 중도화되는 현실은 어떻게 극복되어야 할 것인가?
이 글에서 앞서 살펴본 총선결과에 관한 몇 가지 쟁점들은 주로 의회 내 의석분배 결과에 관련된 것이었고, 그것은 이후 사회운동의 변화된 조건을 분석하기에는 매우 불충분하고 협소한 판단의 근거들이다. 더욱이 이러한 변화는 신자유주의적인 '위기관리'와 '관리된 변화'를 진보로 보는 착시효과와 직접적으로 맞닿아 있다. 자신의 과업을 잃어버린 채 운동하지 않는 정지된 과거는 단지 하나의 '기억에 대한 신앙심'일뿐이다. 즉 역사의 전진을 이루어갈 피어린 전투의 발판은 어느새 전투의 기억에 대한 편협한 신앙과 틀에 박힌 보수주의로 썩어버리기 마련이다. 이로써 신자유주의 개혁의 정치적 실행조건으로 등장한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의 문민정부들은 각기 자신의 이해관계와 처지에 맞는 방식으로 87년의 정지된 스냅사진을 팔아, 민중의 민주주의를 향한 전투의 기억을 편협한 신자유주의적 신앙과 틀에 박힌 보수주의로 전락시켰다.
이번 총선결과, 외형적인 양당체제의 등장으로 지배계급 내 정쟁은 일시적으로 봉합됐으나 그 내적 불안정성은 증대되었고, 보수개혁세력의 의회권력이 교체되고 진보정당의 원내진출이 성사됨으로써 진보적인 사회운동의 일정한 여건이 확보되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반파쇼민주화 전선 해체 이후 지체되어온 반신자유주의 전선복구와 혁신의 과제가 '관리된 변화'와 '사회적 합의'의 틀로 봉쇄될 위험 또한 존재한다.
지난해 말 재신임-열사투쟁국면 이후 정세는 대선 자금 비리-정치개혁, 노동조합탄압-민중생존권, 이라크 추가파병과 같은 핵심사안들이 각각 (대선 자금 수사와 재신임, 탄핵을 둘러싼) 지배계급 내부갈등과 노동자 농민의 생존권/반미반전투쟁으로 이루어진 피지배계급투쟁의 양편으로 분리되어 전개되었다. 더 내줄 것이라곤 목숨밖에 남지 않은 피지배계급의 절망적인 생존권적 저항과 통치 정당성의 한계에 다 달은 지배계급 내 정쟁이 대통령 탄핵이라는 극단적인 형태로 동시에 진행되었던 정세는 일종의 이행기적 상황을 떠올릴 법한 비상시국이 분명했다. IMF위기 이후 한국사회는 바야흐로 피지배계급과 지배계급 양자가 공히 더 이상 이전과 같은 형태로는 통치할 수 없고, 이전과 같은 방식으로 지배받으며 살아갈 수 없는 일종의 준이행기적 상황에 돌입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당면정세의 위기적인 소시기 국면은 4·15 총선을 통한 지배계급 내 파워시프트(권력변동)와 재편으로 외형적으로나마 재안정화되어 점차 닫혀 가고 있으며, 체제이행(위기의 혁명적 전화)을 예비하게 될 새로운 주객관적 조건의 창출을 억압하고 있다. 지배체제의 위기심화가 피지배계급의 주체적 태세 없이 계급투쟁의 폭과 수위, 그 역동적 발전방향의 진폭을 크게 확장시켰다는 사실만으로는 이후 계급투쟁의 양상이 매우 격렬해질 것이라는 점을 확인할 수 있을 뿐, 그 외에 어떤 것도 확정된 것은 없었던 것이다. 또한 광범위한 대중의 불만과 기존 지배질서의 내적 붕괴가 배제된 자들의 절망과 포섭된 자들의 불안감속에서 대중 간 연대의 파괴와 무너진 중산층적인 생활양식에 대한 허구적 동경으로 귀결되고 만다면, 위기의 심화는 오히려 새로운 이행조건의 등장을 억압하는 주역이 되고 말 것이었다. 말 그대로 "무엇도 가능하지만 어느 것도 쉽게 이루어지지 않는 상황"이었던 것이다. 이때 2004 총선에서 누가 어떻게 안정적 다수파를 형성하여 혼란에 빠진 위기관리시스템을 수습해낼 것인가, 아니면 어떻게든 현재의 혼란과 사회적 갈등을 자본주의 지배체제의 위기로 발전시켜낼 것인가의 갈림이야말로 본모습을 드러나지 못한 채 묻혀버린 당면 정세의 계급대립핵심지점이었다.
그러나 당시 정세를 구성했던 개개의 핵심사안들은 각각의 참여주체와 쟁점들로 분할되어있었고, 지배계급 내 권력분쟁이 정치개혁의 이름으로 피지배계급투쟁의 의제들을 압도했다. 이 과정에서 노동자 민중의 사활적인 생존권적 저항은 지배계급의 정치적 위기로 인한 균열을 통로로 삼아 독자적인 역사적 행위로 분출되기보다는 (주어진 정치 일정 상에 존재하는) 개개의 핵심현안들에 대한 격렬하지만 방어적인 요구행위의 형태로 계급대립지점의 갈림길에서 동요하다 소멸되었고, 조기 레임덕에 빠졌던 노무현 정권은 재신임 선언과 전면적인 대선 자금 비리 수사를 거쳐, 일정한 정세적인 주도권을 복구해내는데 성공했다.
더욱이 지난해 말의 재신임-열사투쟁은 이후 별다른 평가와 계승 없이 탄핵-촛불시위로 휩쓸리고, 다시 야당교체론으로 표현된 총선국면으로 빠르게 순치되어 갔다. 그 과정에서 (자본주의 위기비판의 관점에 입각한) 노동자 민중생존권과 반전-반신자유주의적인 운동의 의제들은 '정치'에 의해 억압되거나, 자기과제를 '정치'에 위탁하여 스스로 비정치적인 쟁점으로 제한된 가운데 자기 검열되고, 분열되었다.
이러한 일련의 사태를 냉정히 직시해본다면, 이제까지의 반신자유주의 투쟁은 지배체제의 위기로 인한 작금의 생존권적 민주주의적 위기를 정상화하고 수습해야할 '비정상국면'으로 규정하고 있는 한에서, (그 외적 격렬함에도 불구하고 실제로는) 지배계급과의 대척점으로부터 멀찌감치 물러선 양상이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정권과 자본은 시시때때로 분출되는 노동자 민중의 생존권 투쟁을 반미반전투쟁과 집요하게 분리시키고, 반신자유주의적 생존권투쟁 속에 녹아있는 투쟁의 보편적 성격들을 폭력/비폭력, 합법/비합법, 정치/경제의 지배이데올로기를 동원하여 교묘하게 분할 타격하는 성공적인 방식으로 관리할 수 있었던 것이다. 나아가 이번 촛불-총선 국면에서 여실하게 드러난 바와 같이 정당성과 대표성을 상실한 지배 정당정치는 사회운동적인 쟁점들, 피착취계급 대중운동의 의제들을 정치적으로 배제하고 법적 물리적으로 억압할 뿐만 아니라, 사회운동의 정당성을 자신들의 정치캠페인의 도구로 착취하기 시작했다.(정치수사적인 좌익화)
결국 또다시 관건은 '닫힌 정세'를 열어낼 대중의 정치적 통합과 행동의 전망일 것이며, '열린 정세'를 결정짓게 될 대중운동의 발본적 혁신과 아래로부터의 사회운동의 대중적 기반 형성, 그리고 이를 통한 반신자유주의 전선복구는 더욱 현실적이고 사활적인 과제가 될 것이다.
사회운동의 이념을 전쟁과 경제위기로 점철된 이행의 시대이념으로 개조해야 할 것이며, 코포러티즘적인 당과 노조를 사회운동기관으로 개조해야한다. 이로써 노동자 민중의 새로운 연합과 자기통치로 가는 교두보들이 확보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과제 수행의 현실적인 착수는 총선 이후 본격화될 것으로 보이는 '사회적 합의'의 외곽에서 ('사회적 합의'의 일각이면서, 동시에 운동의 대중적 표상인) 민주노총과 민주노동당을 관통하는 별도의 대중적인 운동의 흐름을 형성해내는 일로부터 시작되어야 할 것이다. 여기서 민주노총과 민주노동당을 관통한다는 것의 의미는 이 흐름이 기존 노조-정당의 다수파(지도부)와 대립하는 소수파연합이나 분리주의가 아니면서, 기존 운동질서를 관통하여 그 권위와 체계를 상대화시킬 수 있는 대안적인 운동형태의 맹아가 되어야한다는 의미이다.
지난 10여 년간 민중운동을 지배해온 코포라티즘적인 산별-진보정당 노선은 점차로 증대한 노동자 대중운동과 노동자운동 조직사이의 괴리, 노동자운동 조직과 진보정당 사이의 괴리를 해결하기보다는 이에 부합하는 대응방식이었다.(실리적 동원과 실용적 역할분담, 나아가 의사擬似동원 구조로 진화중이다) 극한의 생존 위기 속에서 수동화된 대중은 날로 우경화되는 노동조합의 알리바이가 되었고, 다시 우경화된 노조는 진보정당의 우경화의 알리바이다. 그리고 점차 이러한 연쇄의 탈운동적인 결과가 대중적인 비판의 대상이 됨으로써 대중, 운동, 조직, 정당 사이의 불신과 괴리는 더욱 더 깊어지는 끊기지 않는 악순환의 구조를 만들어내었다. 그러므로 이러한 사태 해결의 방식은 역전된 운동사적인 진행방향을 아래로부터 역주행하는 역전전략이어야 한다. 우선은 지역, 업종, 당, 노조, 사회단체를 막론한 반전-반신자유주의 운동, 사상에 입각한 다양한 지역적 소모임 들의 구축이 시도되어야 한다. 이러한 운동-조직 형태들은 잠정적으로는 '완성된 사상적 통일을 전제하지 않는 공동행동', 완성된 형태의 행동통일 없는 사상적 토론과 공유가 가능한 '자발적인 사상학습 소모임', 혹은 그들 간의 자발적인 연계망의 형태일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 않고 이러한 혁신의 흐름이 복구되지 않는 대중운동의 침체와 패배를 (다른 정파의) 지도부의 책임으로 돌리면서 대중의 정치/대의제 자체에 대한 불신에 영합하면서, 당과 노조의 소수파연합이나 분리주의로 귀결될 경우, 이는 노동자 운동의 대중적 표상을 변화시키기보다는 그것과 부당 대립(고립)하거나 내부의 즉자적인 정파적 갈등을 넘어서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특히 그동안 (지배정치는 물론이거니와) 기존의 운동조직 내에서 지체되어온 페미니즘적 문제와 환경 (지역 간 불평등과 결합된), 문화적 갈등 등의 첨예한 사회적 쟁점들이 (기존 대중조직과 당내에서) 분리주의적인 형태로 표출될 경우, 사태는 (전진적인 혁신의 방향과는 동떨어진) 자기 파괴적인 '르 상티망의 정치'(약자의 강자에 대한 원한의 정치)의 양상으로 진행될 위험이 크다. 이러한 양상의 진행은 착취와 차별의 조건과 원인에 대한 투쟁을 착취/차별의 효과 및 결과에 대한 부인과 거부, 이탈로 머물게 하여 더 이상의 전진을 봉쇄하는 자멸의 길이다. 소수자 운동의 관점에서 다수자 운동의 관점으로, 문제 해결자-대변자의 관점에서 억압된 다수대중의 이해와 요구의 목소리를 스스로의 힘으로 발언하고 행동하여 사태를 변화시킬 수 있는 운동으로 나가야하며, '관리된 변화'의 틀을 개방시켜내려는 노력, 즉 '봉기의 정치'적인 관점 전환이 필요하다. PSSP
주제어
정치 민중생존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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