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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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진보연대 계간지


2004.10.4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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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자유주의와 세계화와 여성농민

류미경 |
“… 우리 여성농민은 역사적으로 농업을 발견했고, 대지와 종자를 수호하고 있다. 의학적 지식을 창조해내고 생명 다양성을 지키고 있다. 우리는 우리의 자율성, 지식과 지혜를 위협하고, 민중과 공동체의 다양하고 신성한 세계관에 근거를 둔 조화로운 삶의 방식을 파괴하는 자유무역을 반대한다.… 여성으로서 우리가 누려야 할 모든 권리는 존중되어야 한다. 우리는 가부장제와 그로 인한 모든 차별을 반대한다. 우리는 시민으로서 완전한 참여권을 지니며, 우리의 존엄과 성적인 권리, 재생산에 대한 권리를 존중받으며 살 권리가 있다. … 우리는 식량주권, 완전한 토지개혁, 민중의 유산인 종자 방어, 여성들의 경제적 자율성, 성평등, 민중들의 주권을 쟁취하기 위한 투쟁을 지속할 것이다.”

- 2차 세계 여성 농민 총회 선언문(2004.6.13, 비아캄페시나) 중

여성농민들은 식량을 생산하며, 식량 생산이 이루어지는 농촌의 공동체와 문화, 전통적인 지식을 보존하는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세계 곳곳에서 지역에 기반을 둔 소규모 농업을 통해 생명다양성을 유지하는 것도 여성농민이다. 그러나 ‘생산성’을 가장 중요한 가치로 삼는 초국적 농기업은 여성농민들이 일구어 온 소중한 가치들을 평가 절하한다. 이들은 WTO를 등에 업고 유전자조작, 시장원리를 기반으로 한 생산 및 유통 시스템을 통해 농촌 사회 전반을 초토화하고 있다. 이런 이유로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맞서 민중들의 대안을 창조해내는 투쟁에 여성농민들은 누구보다 앞장서고 있다. 9월 23일에 열린 사회진보연대 여성위원회 월례포럼에 발제자로 참석한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 회장 윤금순씨는 여성농민들의 삶과 투쟁에 관한 생생한 이야기를 전해주었다. 신자유주의 세계화로 인해 극도로 열악한 상황에 내몰린 여성 농민들의 현실,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을 중심으로 한 여성농민들의 조직화와 활동 내용, 비아캄페시나를 중심으로 한 세계 여성농민운동의 현황 등을 중심으로 이날의 이야기를 재구성해본다.

여성 농민의 현실: 농번기 평균 노동시간 하루 18.5시간, 그러나 ‘무급가족종사자’
60년대 이후의 산업화 정책은 개방농정을 그 기반으로 삼았다. 81년 전두환 정권 시절 뉴질랜드산 생우 수입으로 시작된 개방농정은 농업 구조조정을 본격화한 92년 김영삼 정권의 신농정을 거쳐, 94년 WTO 출범을 통한 대대적인 농산물 수입개방, 그리고 2004년 쌀 관세화 재협상에 이르고 있다. 이러한 과정에서 급격한 이농이 일어났고, 이와 동시에 ‘농업노동력의 여성화’ 경향이 두드러졌다. 농업 생산에서 여성 농민의 역할이 증대하고 있는 것이다. 이를 통계수치로 따져보자면 다음과 같다. 농업 주종사자 인구 중 여성이 차지하는 비중은 70년 28.3%였던 것에서, 80년 33.8%, 90년 51.1%, 2000년 52.5%로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02년 총 농가인구 3,591명중 여성취업자는 1,843명으로 51.3%를 차지한다. 그러나, 여성농민은 농업 생산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며 다양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생산 보조자’, ‘보조 경영주’로 여겨지며, ‘농가주부’, ‘농촌여성’이라 칭해진다. 농가소득의 많은 부분을 구성하고 있음에도 실질적으로 차지하는 지위는 ‘무급가족 종사자’인 것이다.
여성농업인의 하루 노동시간은 농번기의 경우 13.4시간, 농한기의 경우 9.7시간에 이른다. 우리나라 여성평균 노동시간인 7.5시간을 훨씬 웃도는 것이다. 그러나 이 수치는 가사노동을 제외한 것이어서 이를 포함하면 농번기에는 무려 18.5시간이나 된다. 농업 구조조정과 함께 농업의 기계화가 이루어졌지만, 여성들이 주로 담당하는 밭작물 재배 과정은 이와 상관없이 대부분 손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뿐만 아니라 ‘개방농정’하에서 농가 부채는 급증했지만, 농가 소득은 오히려 급락하고 있어서, 여성농민들은 가계를 꾸리기 위해 농사일 이외의 일을 겸업할 수밖에 없다. 이것이 여성 농민의 노동시간이 눈에 띄게 긴 이유이기도 하다. 여성농민들이 겸업으로 종사하는 일은 식당/유흥업소 서빙, 행상, 성매매, 농공단지 근무 등 최저임금이 지켜지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최소한의 안전시설조차 갖추어지지 않은 열악한 조건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에, 여성농민의 건강 악화가 심각한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여성농민들이 수행하는 작업이 기계화되지 않고 손으로 이루어짐으로 인한 근육, 관절의 손상이 많고, 과도한 노동으로 인한 피로를 커피, 담배, 약물에 의존하여 하루하루를 버텨내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농촌의 열악한 현실 속에서 농민들의 결혼이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고, 이에 대한 해결책으로 이주여성들과의 결혼이 장려되고 있다. 중국과의 수교 직후에는 조선족이, 현재는 베트남, 필리핀, 몽골, 인도네시아 여성들이 결혼을 하기 위에 농촌에 오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노동력의 부족을 메우기 위해 결혼이라는 제도를 이용하는 것에 가깝다고 할 만큼 이주여성들이 처한 현실은 열악하기만 하다. 이주여성들은 결혼과 동시에 ‘무급종사자’로 농사일에 투입된다. 가족 구성원으로서 그 역할을 모두 수행함에도 불구하고, 도주할지도 모른다는 우려로 감시와 폭력이 뒤따른다. 조선족 여성들의 경우 중국에서의 높은 여성의 지위와 한국 농촌의 가부장적 문화의 차이로 인해 엄청난 혼란을 겪기도 한다. 외모에서 한국인들과 차이가 나는 이주여성들의 경우 자신뿐만 아니라 그 자녀들까지도 엄청난 차별을 받는 것이 이주 여성들의 현실이다.

여성농민의 독자적인 조직,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
남한에서 신자유주의 세계화 반대투쟁의 포문을 연 것은 농민들이었다. ‘개방농정’의 출발점이었던 뉴질랜드 생우 수입으로 소 값이 폭락했고, 83년, 이에 대항하는 농민들의 투쟁이 폭발적으로 일어났다. 이 투쟁에서부터 여성농민들은 최선두에서 투쟁했다. 경찰의 저지선을 뚫는 과정에서도 여성농민들이 맨 앞에 서서 싸웠고, 마이크를 들고 선동을 하는 것도 여성농민들이었다. 그러나 투쟁이 끝나고 나면 선두에 섰던 여성농민들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여성은 집안에 머물러야 한다고 여긴 남성농민들이 여성농민들이 조직화되는 것을 꺼렸기 때문이다. 일상적인 활동에서부터 의사결정 과정까지, 농민회 활동은 남성들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선두에서 투쟁하는 여성농민들이 농민회 활동에서도 적극적인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여성들의 대중적인 조직화가 이루어져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여성들의 독자적인 조직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모아졌다. 이리하여 ‘전국농민회총연맹(이하 전농)’이 출범하기 6개월 전인 89년 12월, ‘전국여성농민위원회’가 출범하였고, 92년 2월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이하 전여농)’으로 이름을 바꿔 현재에 이르고 있다. 현재 전여농의 회원수는 1만 명이고(전농은 4만 명), 전국 9개도 60여개 군에 지역 조직을 두고 활동하고 있다. 농민운동에 여성농민들의 목소리를 더욱 확산시키기 위해 여성농민 활동가들이 전농과 전여농에 동시에 가입하기도 하지만 여성농민들은 대부분 전여농 회원으로 조직된다. 2002년 30만 농민대항쟁 등 전국 단위의 대규모 시위를 조직하는 과정에서 여성농민들은 마을방송, 마을교육, 유랑극단 등 가장 대중적이고 적극적인 활동을 전개하였다. 이주여성농민들의 경우 같은 마을에서 노동과 생활 터전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에 회원으로 조직되는 것이 어렵지는 않지만, 가족의 감시· 통제 등으로 적극적인 활동은 불가능하다고 한다.
‘WTO 수입개방 반대, 개방농정 철폐, 식량주권 쟁취, 농민이 협동조합의 주인이 되는 협동조합 개혁’ 등은 전여농과 전농이 공유하고 있는 투쟁과제이다. 동시에 전여농은 ‘여성농민의 노동가치 인정과 사회적 지위향상, 여성농민의 복지향상’, ‘여성농민의 정치세력화 추진과 지역발전 주체로서의 훈련’을 기치로 여성농민의 권리를 쟁취하기 위한 독자적인 요구를 형성하고 있다. 신자유주의 세계화로 인한 영향이 여성농민과 남성농민에게 다르게 나타나고 있으며, 여성농민을 훨씬 열악한 상황으로 내몰고 있는 데에 따라 제출된 요구이다. ▷ 여성농민의 전문 인력화 방안 마련과 실현, ▷ 밭작물에 대한 직접지불제 확대 실시(밭작물은 대부분 여성농민들이 재배함) ▷ 여성농민 농업노동의 기계화, 고도화 추진 ▷ 여성농민의 건강권을 지키고 모성보호를 위한 제도마련 ▷ 농촌지역에 국공립 탁아소 설치 ▷ 농촌지역의 열악한 주거 및 생활환경 개선 등이 주된 요구이다. 이 밖에도 여성농민의 농업경영주 인정 법제화(농림부는 ‘가족경영협정’을 방안으로 제시하고 있는데, 이는 남편과 ‘고용주-피고용인’의 계약관계를 맺으라는 것), 협동조합의 개혁(농민의 자주적인 조합이 되도록. 가족농간의 협업을 통해 규모화하여 자본에 맞서는 것이 협동조합의 기능이 되도록)등을 요구하고 있다.

비아캄페시나와 세계여성농민운동
비아캄페시나는 1993년 농민 스스로 단결하여 운명을 개척하자는 취지로 브라질의 MST(무토지 농민운동)을 중심으로 남미 농민조직들이 주축이 되어 세계 농민운동조직을 지향하며 창립되었다. 전여농과 전농은 칸쿤에서 열린 5차 WTO 각료회의 저지 투쟁이후 여기에 가입했다. 전여농의 윤금순 회장은 동남·동아시아 지역위원회를 대표하여 국제조정위원회 멤버로 활동하고 있다. 비아캄페시나는 농민운동에서 여성농민이 차지하는 중요성을 강조하며, 여성농민들의 적극적인 활동을 이끌어내기 위해 독특한 의사결정체계를 두고 있다. 총 8개 지역(북미/카리브/남미/동· 동남아시아/서남아시아/유럽/아프리카/오세아니아)에 각각의 지역위원회를 두고 지역별로 두 명의 대표를 선출하여 이들로 국제조정위원회를 구성하고 있는데, 두 명의 지역 대표 중 반드시 한 명 이상은 여성이어야 한다. 또한 모든 회의의 참석자들 중 50%를 여성으로 조직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고 있다. 이 뿐만 아니라 투쟁의 요구를 마련하는 데 있어서 여성 농민의 상황을 일차적으로 고려해야 함을 원칙으로 삼고 있다. 이에 따라 여성들의 토지에 대한 접근권 확대, 종자를 채집하고 보존하는 여성들의 전통적인 지식에 대한 존중, 여성과 소녀들에 대한 성적 · 물리적 학대 등의 잔혹 행위 중단, 소녀들의 교육 기회 확대, 농촌 여성들의 의료서비스에 대한 접근권 보장 및 강제 불임수술 반대 등을 투쟁과제에 포함시키고 있다. 뿐만 아니라 여성 농민들 간의 연대를 강화할 수 있는 회합과 여성의 능력을 향상시킬 수 있는 훈련을 적극 장려하고 있다. 이에 따라 여성농민들의 독자적인 조직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농업 생산의 과정에서나 농민운동 전반에서나 여성농민이 차지하는 비중의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여성농민의 문제에 관한 조사 연구는 거의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전체 농민운동에서 전농이 차지하는 역할은 결정적인데도, 여성농민의 독자조직을 유지하는 것에 대한 불만이 여전히 제기되고 있는 것이 또한 현실이다. 식량을 생산하면서 생명다양성을 보존하고, 출산, 자녀양육의 역할을 하는 여성 농민들은 인간-생명-자연의 근본적 관계를 복원하는 주도적 역할을 수행하므로, 신자유주의 세계화 반대투쟁에 있어서 여성 농민이 핵심적인 주체임을 우리는 강인하게 인식할 수 있었다. PSSP
주제어
여성 생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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