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사회운동

사회진보연대 계간지


2008.3-4.8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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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가지 문제제기

송명관 | 회원
『사회운동』독자평을 써달라는 청탁을 받았을 때, 사실 좀 부끄러웠다. 잘 읽지 않고 책장에 꽂아 뒀던 적이 더 많았기 때문이다. 그래도 요즘은 맘의 여유도 생기고 매주 화요일 마다 겨울사회운동 세미나에 나오면서 약간의 자신감(?)을 찾아서일까, 부끄러운 맘을 살짝 감추고 흔쾌히 쓰겠다고 대답했다. 그리고 찬찬히 읽어 보았다. 「사회화와 노동」을 통해 이미 읽었던 글들도 있어서 다소 긴장감이 떨어졌지만, 유럽 활동가 두 명의 인터뷰는 많은 관심을 끌었다. 이들의 인터뷰가 앞으로 말할 두 가지 문제제기에 어떤 자극제가 된 듯하다. 그냥 좋았다, 아쉬웠다라고 쓰기엔 뭔가 부족하여 제목도 긴장감 있게 문제제기라 했지만 관심을 끌기 위한 표현이라 생각해 주길 바라며, 이들 인터뷰를 읽으며 생각한 두 가지 정도를 적어 보도록 하겠다.

'제도정당 vs 사회운동'의 관념

이 대립구도는 많은 사람들에게 오래 전부터 뿌리 깊게 남아 있는 관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현실의 대상을 보고 의미를 연관시키는 것이 일반적인지라, 누구나 제도정당하면 민주노동당이나 사회당을 연상한다. 그리고 이와 다른 비제도적인 사회운동이라 하면 NGO단체나 노조를 연상한다. 그러나 실제 이들의 구별은 선거를 통한 의회주의 전략과 전술에 관한 관점이나 행동의 차이일 뿐 일반적인 운동의 대상에서 서로 별개의 영역이 존재하는 건 아니다.
그런데 우리는 제도권으로의 편입을 경계한다는 논리와 비제도적 투쟁이라는 관념 때문에 사회운동을 시민사회단체운동으로 자꾸 축소시켜 버리지는 않은지 생각해 봐야 한다. 이는 46쪽 "정당과 사회운동의 고유한 역할 및 공동의 작업을 밝히는 과정의 일환일 것이다" 라는 구절에서도 엿볼 수 있다. 정당의 사회운동적 경향을 강화해야 한다는 우리의 논리에 비추어 정당의 변화를 요구하는 주장이지만, 뒤집어 생각해 보면 정당과 사회운동의 교집합을 만들기 위한 '정당-사회운동 연대론' 혹은 '역할 분담론'으로 해석된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지금의 진보신당이 표방한 '보다 녹색으로 보다 적색으로'이라는 운동노선과 겉으론 별반 다르지 않다. 이들도 사회운동적 의제를 보다 적극적으로 끌어안아야 한다고 평가하고 있다. 남는 건 의회주의 노선을 어떻게 어느 정도로 수용할 것인가에 대한 논점만 남는데, 이에 대해서도 당연히 의회주의 전술을 통해 이러한 이념적 지향을 정당운동으로 풀어간다고 밝히면서 전략공천을 통해 사회운동과의 연대지점을 넓혀가겠다고 이들은 말한다.
결국 우리의 주장은 허공에 대해 지르는 메아리로 밖에 남지 않는다. 이러한 순환논리는 민주노동당에 들어간 소위 '좌파' ('좌파'라는 일반적 표현이 적절하지 않지만 어떻게 지칭할지 몰라 이렇게 적는다)들과의 논쟁에서 계속 반복되었던 일이다. 정당운동의 사회운동적 강화라는 말에 동의하지 못할 좌파는 아무도 없다.
문제는 반대로 사회운동이 기존 제도권의 정치세력들과 다르게 제도적 운동의 확장을 어떻게 만들 수 있느냐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우리가 예전에 그토록 외쳤던 '노동자민중의 정치세력화'가 민주노동당과 사회당이라는 의회주의 정당으로 귀결되고 그 운동의 결과가 지난 대선의 참담한 패배라 한다면, 사회운동의 제도적 운동 실험, 10여 년의 전체 과정을 평가해야 하는 것이 바로 '노동자민중의 정치세력화'에 대한 보다 발본적인 평가이다. 이를 단순하게 정당운동의 평가만으로 한정한다면, 그리고 그 운동의 추진세력들에게만 책임을 묻는다면, 사회운동이 제도운동과 동떨어질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제도운동에 대한 잘못된 관념으로 인해 자신을 더욱더 '주변부 시민사회단체운동' 으로 가두어 버리는 우를 범한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사고의 편향은 두 가지 다른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시 등장하는데, 의회주의에 종속되지 않는 투쟁정당 건설이라는 '계급정당 건설론'과 현장에 근거하지 않은 운동은 의미가 없다는 '현장근거지론'이다. 다 옳은 말이고 누가 나서서 뜯어 말리지도 않는다. 실제 그러한 운동을 하면서 평가하고 혁신하면 되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마치 제도적인 운동과 다른, 제도화된 현 체제에 대항하는 '혁명주의적 관념'을 자신에게 투영하여 특권화 한다든가 그리하여 결국 주변화 되는 것이 문제인 것이다. 제도화된 체제로 부터 '때 묻지 않은' 운동역량을 보존하고 있다가 중심이 몰락한 빈자리를 치고 들어가 장악할 수 있으리라 생각하는 것은 또 다른 진영론의 모습인 것이다.
우리가 말하는 사회운동적 정당론이 '우정당-좌전선'이라는 역할분담론으로 왜곡되지 않길 바라며 첫 번째 문제제기를 마친다.

'노조운동 vs 사회운동'의 관념

앞서 말한 사회운동에는 노조운동이 이미 다 포괄된 개념이었다. 그래서 이 두 번째 문제제기를 하는 이유는 정당-사회운동의 관계를 말할 때 노조운동으로 표상되는 노동자운동은 이와 다른 별도의 운동영역으로 잘못 인식되는 것에 대해 지적하고자 함이다. 나는 노조운동이 사회운동의 대표적인 제도운동이라고 본다. 형식적으로 법의 테두리의 영향에 있고 그 운동이 새로운 제도와 질서를 만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노조운동의 제도권으로 포섭이냐 아니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노조운동이 노동자운동을 대표할 수 있는 정치적 힘과 운동 구조를 창출할 수 있는가가 중요한 것이다.
우리가 말하는 '사회운동적 노조주의'라는 것이 바로 이것인데, 1·2월호의「2008 노동자 운동 전망과 과제」에서 말하고 있는 "이랜드, 뉴코아 투쟁의 역동성을 만들어 내었던 지역연대운동"에 대한 평가가 의미하는 바가 크다고 본다. 다만 여기서도 느껴지는 것은 '사회운동적 노조주의'를 '노조-사회단체의 연대론'으로 오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노조의 파업투쟁에 사회단체가 지역대책위를 꾸려 연대하는 것, 노조가 안으로 갇히지 않도록 사회단체가 외곽지원을 하는 것으로 서로의 역할을 지운다면 투쟁평가에서 항상 드러나는 노조와 사회단체의 '동상이몽'은 계속 반복될 것이다.
그래서 1·2월호에서 2007년 노동자 운동의 평가 대부분을 민주노총 운동의 평가로만 남겨놓은 부분이 아쉽다. 이는 투쟁평가토론회 때 자주 등장하는 사회단체 활동가와 민주노총 간부의 서로 간에 벌어지는 하소연과 항변을 연상케 한다. 노조간부나 사회단체 활동가나 사회운동을 노조운동과 별개인 시민사회단체운동으로 생각하는 한, '사회운동적 노조주의'라는 것은 노조운동의 우경화쯤으로 왜곡되거나, 노조-단체의 '동상이몽'식 역할분담 속에 벌어지는 '노조투쟁의 지원군들'의 자기 위안으로 밖에 되지 않을 것이다.
그렇기에 작년 '사회운동포럼'이 의미 있는 첫발걸음이라 평가하면서도 아쉬운 점은 여전히 사회운동이 시민사회단체들 간의 느슨한 연대운동으로 오해된다는 점이다. 또한 운동평가 토론회에서 드러났던 활동가들의 문제제기가 운동 간의 새로운 관계형성과 당과 노조의 사회운동적 경향의 전면화에 기여하는 불씨가 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이것이 스스로를 특권화 하는 논리로 귀결된다면 '사회운동포럼'이 당운동과 노조운동에 실망한 활동가들의 모임으로 전락할 수도 있다. 이런 우려를 극복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할 것인데, 그 출발점은 '사회운동 vs 정당운동 vs 노조운동'의 삼분구도에 대한 운동사회의 오래된 관념의 척결이라 생각한다.

다소 거친 말로 독자평을 맺고 나니 언급된 이들에게 미안하다. '누가 그걸 모르냐'고 항변 할 수도 있겠지만, 사실 관념의 척결이 문제의 출발인 이상 그 해결의 여정은 여전히 험난하다. 나의 주장이 서로에게 상처를 주어 차라리 아니한 것보다 못하지 않을까 우려되기도 한다. 다만 회원들 간의 건실한 논쟁에 기여하는 자극제가 되길 바라면서 글을 맺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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