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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에서 재추진되는 신자유주의

세드릭 뒤랑, 아드리엔 토마스 | 경제학자, 혁명적 공산주의자 동맹(LCR) 회원 |파리 1대학(소르본느) 정치학 박사과정 수료
프랑스 사회운동 앞에 놓인 난제

유럽의 정치를 지켜본 많은 이들은 1995년 11월~12월에 일어난 대대적인 공공부문 파업 이후 프랑스가 신자유주의에 맞선 저항 전선의 선두에 서 있다고 여겼다. 2006년 최초고용계약(CPE) 노동시장 개혁에 맞선 성공적인 투쟁은 물론이거니와 2005년의 신자유주의적 유럽 헌법 국민투표 부결과 경찰 폭력에 맞선 이민자 청년들의 봉기와 같은 신자유주의 정책에 대한 저항의 주요 사례들은 최근 프랑스에서 신자유주의에 대한 대중적인 반대의 강도를 확인시켜 주었다. 반신자유주의 운동이 이러한 순환을 마감한 후 2007년 5월 대선에서 우파 후보 니콜라 사르코지가 당선되자 프랑스 좌파 정치세력 및 사회운동은 크게 낙심했다.

신자유주의에 대한 반동적 대응

사르코지의 당선은 의심할 나위 없이 지난 몇 년 동안 신자유주의에 맞선 투쟁에 동참해왔던 수백만 민중들의 희망에 몰아친 광풍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승리는 모호하다. 사르코지는 선거운동 기간 동안 사회적 변화에 대한 요구를 활용하여 신자유주의 정책을 더욱 심화하고자 했다. 그는 활동가들에게는 임금인상을, 권위주의적 국가에는 신자유주의에 맞서 프랑스 경제를 보호할 것을 동시에 약속했다. 그는 경제적 개입주의와 보호주의, 신자유주의적 정책 조치와 전통적인 권위주의를 혼합한 정치 강령을 토대로 당선되었다.
프랑스 내에서 신자유주의에 반대하는 조류와 전통적 권위주의 우익의 추종 세력 모두에 호소하는 사르코지의 기회주의적 캐치올(catch-all) 전략은 프랑스 좌파가 방향을 상실하고 분열되는 상황에서 성공적이었다. 집권 좌파는 오른쪽(온정적인 얼굴을 한 신자유주의)을 향해 표류하기 시작했고, 급진좌파 정당들은 각기 다른 조직으로 갈라져 협소한 정당적 이익을 우선시하면서 단일 후보를 배출할 수 없었다.

프랑스 사회모델의 폐기

사르코지의 근본적인 목표는 전후 시대의 프랑스 사회모델을 떠받쳤던 축들(노동법, 사회보장, 연금체계, 적절한 재분배를 노리는 재정정책)을 폐기하는 것이다. 사르코지 정부의 정치적 우선 과제는 이러한 목표를 반영한다. 집권한 지 겨우 열 달 만에 사르코지 정부는 곤란할 만큼 눈에 띄는 기록을 남겼다. 이 정부의 우선적인 정치 행위 중 하나는 가장 부유한 집단에는 5십억 유로나 되는 세금 감면 혜택을 제공한 반면, 의료 서비스 및 의약품에 대한 환급율은 인하한 것이다. 사르코지는 또한 우익 유권자들에게 파업권을 제한하고 노동법을 일소할 것을 거듭 약속했다. 몇 달 후, 사르코지 정부는 고용과 해고를 더욱 용이하게 만들고자 노동력을 더욱 유연화하기 위한 노동조합과 사용자 간의 교섭을 지지했다. 그러나 사르코지의 신자유주의적 정책 방향은 지난 몇 달 동안 중대한 사회적 저항을 불러 일으켰다.
2007년 여름, 대학 간 경쟁을 부추기고 교수들의 지위를 불안정화하는 한 편 사적 자금에 대한 의존도를 높이는 방향의 국공립 대학 체계 개혁이 실시되었다. 2007년 가을, 학생들과 이보다 적은 수의 교수들 및 연구자들이 프랑스의 수많은 대학에서 이러한 개혁에 맞선 시위를 벌였다. 그러나 최종적으로는 패배하고 말았다. 공무원 역시 임금인상을 요구하며 여러 차례 하루 파업을 벌였다. 그러나 1995년과 같이 지속적인 투쟁을 이루어내지는 못했다. 이러한 투쟁들이 성공하지는 못했지만, 이러한 사회운동들은 투쟁 한번 해보지 못하고 거듭 패배해버릴 위험성, 즉 최악의 시나리오를 면하는 데 기여했다. 프랑스의 노사관계를 근본적으로 재설계하고 조직된 노동자들을 완전히 약화시키려는 우파들의 계획에 직면한 상황에서, 프랑스 좌파 및 사회운동들 사이의 분위기는 참패로 공황상태에 빠져 있다기보다는 자리를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는 편에 가깝다. 이는 2007년 11월 철도노동자 파업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평조합원들이 투쟁을 주도하다

사르코지는 강력한 우파로서의 이미지를 만들기 위해 선거운동 기간 동안 철도 및 지하철 노동자들의 연금체계를 개혁(퇴직 연령을 높이고 수당을 축소)하겠다고 이야기했다. 철도노동자는 프랑스 노동 계급 중에서도 가장 잘 조직되어 있고 전투적인 부위의 핵심이라는 상징을 지니고 있다. 자크 시라크 전 대통령의 신자유주의 정책을 유보시켰던 1995년 11월~12월의 대규모 철도 파업 이후 프랑스 우파들은 철도노동자들에게 보복할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2007년 11월 철도노동자들은 높은 조직력은 물론 상당한 활력과 투쟁 의지를 다시 한 번 보여주었다.
2007년 11월 철도 노동자 파업은 9일 동안 지속되었고 철도 수송에 큰 타격을 입혔다. 정부는 물론 파업을 자제하고 즉각 교섭에 돌입하려고 했던 주요 노총조차도 투쟁이 이토록 강력하리라고 예상하지 못했다. 심지어 프랑스의 주요 노총인 <프랑스 노동총동맹>(Conf d ration g n rale du Travail, CGT, 공산당 계열)은 작업장 행동으로 의미 있는 압력을 행사하기도 전에 정부가 제시한 조건을 놓고 협상에 돌입하려고 했다. 소규모의 쉬드(SUD, 연대·단결·민주) 노조가 유일하게 자발적으로 조직되어 오랜 기간 지속되는 파업을 옹호하는 한편 정부와의 협상을 거부하는 단호한 입장을 취했다. 그러나 주요 노총의 타협주의적 태도는 파업 기간 동안 매일 열린 철도·지하철 파업노동자 총회에서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총회는 노동조합에 가입한 노동자와 그렇지 않은 노동자들은 작업장에 재결집하도록 했고, 경험이 많은 노동조합 활동가와 급진적인 젊은 노동자들이 한데 어우러지도록 했다. 평조합원 및 파업에 참여한 많은 비조합원들은 정부로 하여금 개혁안을 철회시키기 위해 노동조합 지도부와 직접적인 충돌을 일으키지 않고 파업을 지속하는 데에 찬성표를 던졌다.
파업 참가율이 첫 날 61%에서 점차 감소하여 9일째 되는 날이 되어서는 14%에 이르렀지만, 파업 노동자의 핵심은 매우 높은 단결력과 결의를 보였다. 파업 참가자 중 활동가 층 사이에 실망하는 기운이 생기면서 결국 총회는 파업을 중단했고 노조는 협상에 돌입했다. 협상은 아직도 진행 중이다. 협상은 임금인상이라는 형태로 철도 노동자들에게 실질적인 경제적 이익을 가져다줄 지도 모르지만, 개혁안을 중대하게 바꾸지는 못할 것이다. 파업에 대한 외부적 지지가 별로 없었던 점을 고려한다면 파업이 9일 동안 지속되었다는 사실은 그 자체로 성공이다. 언론은 파업을 비난하는 선전에 앞장섰는데, 이들은 파업으로 대중교통에 혼란이 발생했다고 강조하는 한편 대중교통으로 출퇴근을 하는 통근자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파업노동자들을 일방적으로 비난해댔다. 정치적인 차원에서는 우파 세력들이 일치단결하여 자신들만의 특수한 이익을 방어하는 특권층이라고 파업노동자들을 비난했다. 사회당은 단지 정부가 선택한 방법이 거칠다고 비판했지만 정부 개혁안의 내용은 지지한다고 선언했다.

공백: 반대세력 없는 정치?

철도 노동자 파업이 진행되는 동안 노총들이 이렇듯 소심한 태도를 보이고 파업 노동자와의 연대투쟁을 조직하려는 의지를 보이지 않자, 이들이 과연 사르코지의 신자유주의 정책에 맞서 싸울 능력과 의지를 가지고 있는 것인가 하는 의문이 제기되었다. 지금까지는 노조 지도부의 태도로는 분명히 사르코지 정부에 맞선 투쟁을 이끄는 역할을 하기를 원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노동조합 지도부는 대선에서 좌파 세력이 패배한 이후 생겨난 정치적 공백을 메우려는 의지가 없다. 최근의 몇몇 투쟁에서 규모가 작은 SUD 노조는 프랑스 노동운동의 혁명적 노조주의의 유산을 부활시키려 했다. 그러나 이들이 보여주었던 전투적 노조주의로의 강력한 헌신은 CGT의 우려스러운 변화를 상쇄하지는 못한다. 물론 CGT 내에도 여전히 헌신적이고 전투적인 활동가들이 있다. 향후 몇 달 동안 CGT 내에서 전략적 재편이 이루어지는 동안, 그리고 지도부가 내부 민주주의를 확실히 보장하지 않으려 한다면 수많은 어려운 문제들이 제기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사르코지가 당선된 이후 좌파 세력 사이에서는 혼란과 운명론, 수동성이 혼재되어 나타났다. 지금까지도 사회당 지도부 사이에서는 이데올로기적 분열과 종파적 분열이 심각한 수준이다. 사회당 내 여러 조류들은 사르코지의 당선을 구실삼아 사회적·경제적 문제들에 대해 더욱 우경화하고 있다. 이에 따라 사회당 지도부가 취하는 사르코지에 대한 비판은 신자유주의 정책 이행의 방법과 개인적인 통치스타일에 초점을 둘 뿐 정견 자체는 문제 삼지 않는다.
동시에, 대선시기부터 벌어진 공산당, <혁명적 공산주의 동맹>(LCR), 대안세계화 네트워크 활동가, 녹색당 좌파 사이의 분열의 후과는 급진좌파 사이에 아직도 남아있다. 그러나 기층, 평조합원 활동가들은 2008년 3월에 있을 지방선거에서 단일 후보를 배출하려는 등 단일한 행동을 위한 강력한 노력을 펼치고 있다. 이는 급진좌파가 제도 정치에 뿌리를 내릴 수 있는 역량을 가늠하는 중요한 기준이 될 것이다. LCR은 급진좌파 중 가장 역동적인 요소로 보이는데, 이는 지난 대선에서 후보로 배출한 올리비에 브장스노가 4%를 득표하는 한편 언론을 통한 인지도를 누린 덕이다. 몇몇 사람들은 LCR이 발표한 새로운 반자본주의 정당 건설 계획이 급진좌파의 단결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 희망한다. LCR 지도부가 광범위하고 다양한 세력을 포괄하는 정당을 만들려는 의지가 있는지는 현재로써는 불분명하지만 말이다.
사르코지는 선거운동 기간 동안 노동자와 퇴직자들의 '구매력'을 제고하겠다고 여러 차례 약속했다. 에너지 요금, 식품 가격, 주거비용이 상승하는 가운데 이 공약은 역으로 그를 따라다니며 괴롭힌다. 노동 계급, 그리고 심지어 사르코지의 강력한 지지층이었던 퇴직자들 사이에서도 생계비 인상으로 인한 불만족은 점차 쌓여가고 있다. 대통령의 호화로운 생활, 부자 친구들의 비용으로 즐기는 사치스러운 휴가, 갑부의 딸과의 결혼 또한 광범위한 반감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앞으로 몇 달 동안 철도 파업 및 다른 쟁의행위를 통해 드러난 현저한 불만과 분노가 노동계급의 다른 부위에도 존재하는지 드러나게 될 것이다. 현재 사적 부문 여러 기업에서 진행 중인 임금협상은 또 다른 투쟁의 불씨가 될 지도 모른다. 2008년 2월에도 벌써 대형 할인 매장 노동자들의 광범위한 파업이 전개되었다. 이는 협상력이 낮고 여성이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부문에서 눈에 두드러지는 사건이었다. 그리고 2008년에는 모든 노동자의 퇴직 연력을 높이는 총체적인 연금 개혁이 예정되어 있다. 이는 분명 사르코지의 신자유주의와 권위주의의 혼합물에 대한 시험대가 될 것이다. 어떤 경우라도 프랑스 노동계급의 집단적인 투쟁과 기층 동원력의 예측 불가능한 폭발력을 과소평가한다면 이는 사르코지의 오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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