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2023 겨울. 18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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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냉전 시대의 종말 이후, 세계와 한국은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김진영 | 정책교육국장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30여 년간의 탈냉전 시대가 명백히 막을 내린 뒤, 세계의 불안정성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2024년에는 이 불안정성을 증폭시킬 수도, 반대로 이를 어느 정도 안정시킬 수도 있는 중요한 기로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이 글은 아래 내용을 살피며 2024년 세계와 한반도 정세를 전망한다. 

2023년 11월 현재, 2022년 2월 발발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2023년 10월 발발한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이라는 주요한 두 전쟁이 진행 중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전쟁 3년 차가 되는 2024년까지 진행될 것이 유력하다.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은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데, 11월 22일 양측은 4일간의 휴전과 포로 일부 교환에 합의했다. 이러한 전쟁의 여파는 2024년과 향후 세계에 큰 영향을 끼칠 것이다.

또한 2024년은 ‘선거의 해’가 될 예정이다. 영국 《이코노미스트》의 표현에 따르면, “사상 최초로 전 세계 인구의 절반이 넘는 40억 명 이상이 투표소로 향한다”. 1월 대만 총통 선거와 총선, 2월 인도네시아 대선과 총선, 4~5월 인도 총선, 5월(또는 10~11월) 영국 지방선거, 6월 유럽의회 선거, 11월 미국 대선 등이 주목해야 할 선거로 꼽힌다. 이러한 선거들의 결과는 세계 정치와 경제를 좌우할 것이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11월 16일 미중 정상회담에서 “수년 안에 대만에 군사행동을 할 생각은 없다”고 밝혔으나, 중국 정부가 대만 침공을 준비하고 있다는 의혹은 사라지지 않았다. 2024년 1월 대만 대선 결과와 11월 미국 대선 결과는 이러한 계획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추정된다. 그럼에도 중국의 대만 침공 가능성은 무엇보다 중국 내부의 위기에서 비롯한 것이라는 데에 일차적으로 주목해야 한다. 향후 미중관계와 중국, 대만 간 양안관계에서 가장 결정적인 위기 요소는 결국 시진핑 정권이 어떤 선택을 하냐다.

경선에 이변이 없는 한 다시 한번 바이든 대 트럼프의 구도로 치러질 11월 미국 대선은 그야말로 미국과 세계의 운명을 결정짓는 선거가 될 전망이다. 민주당 바이든 정권은 트럼프 정권이 입안한, 즉 민주당, 공화당 양당 간의 합의가 있다고 간주할 수 있는 ‘미중 전략적 경쟁’이란 틀을 계승하되, 트럼프와는 달리 한편에서는 ‘민주주의’라는 가치를 내세우며 동맹국들과의 관계 개선과 결집을 추구하고 다른 한편에서는 미국의 자체적인 국력(경제력 제고와 민생 안정, 군사력 현대화)을 강화하는 전략을 수행해 왔다. 그러나 우크라이나 전쟁의 장기화와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의 발발과 같은 난제에 직면해 있다. 한편, 트럼프 진영은 트럼프 1기보다 더 ‘매운’ 정책들을 준비하고 있다. 

근본적으로는 민주당-사회운동 연합이 2020년 대선에서 트럼프의 재집권을 막는 데에는 성공했으나, 트럼프를 낳았고 트럼프가 더욱 키운 미국 정치의 양극화나 문화전쟁과 같은 현상이 전혀 사라지지 않았다는 문제가 있다. 민주당의 입장에서 2024년 대선은 평가받는 여당의 입장에서 다시 한번 반트럼프 연합을 가동해야 하는 훨씬 더 어려운 선거다. 앞서 언급한 미국의 심각한 정치 위기를 고려하면, 대선 결과뿐만 아니라 그 여파까지 예의주시해야 한다. 나아가 이러한 정치 위기와 극우의 약진은 미국뿐만 아니라 유럽 각국을 비롯한 세계 곳곳에서 드러나고 있다.

이러한 국제정세에서 세계적, 지역적으로 적지 않은 영향력을 가진 한국은 더 이상 “세계는 어찌 되든 우리의 실리를 취하겠다”는 ‘약소국의 태도’를 취할 수 없으며, 명확한 입장과 행동을 요구받고 있다. 한국의 ‘실리’라는 것은 국제정세와 별개로 존재한다고 보기 어렵다. 2019년 하노이 북미정상회담 결렬 이후 가장 공세적이고 위험한 ‘비대칭적 확전’ 핵전략으로 전환한 북한은 전후 국제질서의 분열을 호재로 이용하려 한다. 또한 대만 위기는 한반도 위기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탈냉전 시대에 한국은 어디로 나아가야 할지에 관해 사회운동은 치열하게 고민하고 토론해야 한다.
 
 

1. 두 개의 전쟁: 2024년에도 계속될 것인가?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중동의 평화는 가능한가?

하마스의 10월 7일 공격으로 시작된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은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최근 양측은 11월 22일 합의한 4일간의 휴전 기간을 이틀 연장하였다. ‘하마스 제거’를 목표로 내세우며 국제 사회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공세를 지속하던 이스라엘이 휴전에 합의한 것은 미국의 압박 때문이다. 휴전 종료 후 전쟁의 전망은 한 치 앞을 내다보기 어렵다. 주변국의 반응을 보면, 제3국이 개입된 확전은 일어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전쟁의 직접적인 여파로 이스라엘-사우디아라비아 국교 정상화가 잠정적으로 중단되었다. 이는 하마스와 이란이 바라던 것이지만, 중동 지역 내에서 환영받는 상황은 아니다. 2020년 아랍에미리트(UAE), 바레인, 모로코가 이스라엘과 관계를 정상화한 ‘아브라함 협정’이 체결될 때도 변화와 개혁을 추구하는 아랍국가들 사이에서 타협이나 평화적 해결책을 일절 거부하는 하마스의 태도에 대한 회의가 관측된다는 분석이 있었다. 이런 가운데 다시 발생한 하마스의 공격은 지역 정세를 다시 긴장과 혼란의 국면으로 밀어 넣는 사건이다. 10월 7일 공격에 대해 바레인과 아랍에미리트는 하마스를 비판했고, 사우디아라비아 또한 팔레스타인을 지지하고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민간인 폭격을 비판한다고 밝히면서도, 민간인을 무차별 공격하는 하마스의 행태는 민간인을 해치지 말라는 이슬람 명령에 위반한다고 공개적으로 비판했다.

그렇다면 이스라엘-사우디아라비아 국교 정상화가 이루어졌다면 어떠했을 것인가? 양국이 국교를 정상화하는 과정에서 팔레스타인 문제가 부차화될 수도 있다는 우려나, 이것이 대이란 견제로 이어질 것이라는 지적이 있다. 타당한 제기이지만, 적대적 국가 사이의 관계가 개선되는 것 자체를 무조건 나쁜 것이라거나 중동의 평화에 역행한다고 볼 수는 없다. 팔레스타인 문제 해결의 진전과 함께 이루어질 수 있다면, 이러한 관계 정상화는 오히려 ‘중동 데탕트’에 부합하는 흐름이라고 할 수 있다. 8월 31일 미국 ≪월스트리트저널≫에 따르면, 하마스와 정치적 경쟁관계에 있는 세속주의 정치세력 ‘파타’ 주도의 팔레스타인 자치정부(PA)는 ▲ 요르단강 서안지구 일부 지역에 대한 통제권 확보, ▲ 이스라엘 정부가 서안지구에 사전 승인 없이 설치한 ‘불법 전초기지’ 철거, ▲ (미국 측에) 팔레스타인의 정식 국제연합(UN) 회원국 지위 지지를 조건으로 이스라엘-사우디아라비아 국교 정상화에 협력하겠다는 의사를 사우디아라비아에 밝혔다. 이는 2020년 당시 아브라함 협정 체결에 크게 반발했던 태도나, 이스라엘이 1967년 점령한 서안지구와 가자지구 등에서 모두 철수할 것을 요구했던 기존 안에서 변화한 모습이다. 8월 29일 사우디아라비아가 핵심 이해관계자인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의 지지를 얻고자 2021년 끊었던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재정 지원을 재개하겠다는 뜻을 전달했고, 팔레스타인 자치정부가 이러한 흐름에서 배제되는 것보다는 공조하는 것이 낫겠다고 판단한 것으로 평가된다. 그러나 하마스의 10월 7일 공격으로 이스라엘-사우디아라비아 국교 정상화가 중단되면서, 팔레스타인 측의 요구를 반영할 가능성도 함께 사라졌다고 할 수 있다. 이에 대해, 하마스가 이스라엘-사우디아라비아 국교 정상화 자체만이 아니라, 그 과정에서 팔레스타인 자치정부가 팔레스타인의 대표성과 실익을 가져갈 것을 우려하여 이스라엘 공격을 감행했다는 분석도 있다. 

물론 하마스의 공격이 없었다고 해서 미국과 사우디아라비아,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의 구상이 쉽게 실현될 수 있었던 것은 아니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는 오랜 부패와 무능, 권위주의적 행보로 인해 팔레스타인 민중의 너른 신뢰를 받지 못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하마스와의 경쟁에서 정치적 주도권을 명확히 가져가지 못했다. 단적으로, 팔레스타인의 후견국을 자처하던 사우디아라비아가 자치정부 지원을 중단했던 것은 자치정부 고위인사들이 지원에 기대 부패를 일삼는다는 논란이 커졌던 탓이다. 2021년에는 자치정부가 하마스의 압승으로 끝난 2006년 선거 이후 15년 만에 대선과 총선을 치르겠다고 발표했다가 돌연 무기한 연기를 선언하여, 하마스가 합의 위반이라고 반발하기도 했다. 가뜩이나 자치정부에 대한 신뢰가 없는데, 자치정부가 내놓은 요구안은 팔레스타인 민중이 보기에 ‘속 시원한’ 내용은 아니다. 게다가 이스라엘 극우정부가 그러한 요구안마저 “소설” 같은 이야기라고 쳐내는 와중에, 과연 미국이 이스라엘의 양보를 끌어낼 수 있었을지도 미지수다. 그렇지만 이스라엘과 사우디아라비아의 관계 개선을 기반으로 하여 팔레스타인 문제의 진전을 이룰 가능성 자체를 하마스가 극단적 폭력을 통해 엎어버린 현재 상황이야말로, 가능했던 시나리오 중 최악의 상황일 것이다. 
 

그러므로 “이번 전쟁의 근원은 긴 역사 속에 있다”는 주장은 누구나 동의하는 사실이지만, 이 역사 속에서 이스라엘 국가의 탄생과 팔레스타인 억압에 기여한 서방의 책임뿐만 아니라 ‘극단적 폭력’의 문제도 숙고할 필요가 있다. 1979년 아랍권 국가 최초로 이스라엘과의 관계 정상화를 실행한(이로써 이집트는 1967년 전쟁에서 빼앗겼던 시나이 반도를 되찾았다. 협상 과정에서 이스라엘이 점령한 팔레스타인 영토 반환도 공개적으로 요구했지만 받아들여지지는 않았다) 안와르 사다트 이집트 대통령은 1981년, 이에 불만을 품은 극단 이슬람주의자에게 암살당했다. 1993년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해방기구(PLO)가 서로의 존재를 인정하고 ‘두 국가 해법’에 합의한 오슬로협정(이를 계기로 이스라엘의 이츠하크 라빈 총리와 시몬 페레스 외교장관, PLO의 야세르 아라파트 의장은 1994년 노벨 평화상을 공동수상했다)의 주역 라빈 총리는 1995년 오슬로협정에 반대하는 이스라엘 극우 청년에게 암살당했다. 이처럼 ‘대의’를 명분으로 한 극단적 폭력이 중동 문제를 대화와 외교로 해결하려는 시도들을 좌절시켜왔다. 현재의 상황도 그러한 사례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이제는 극단적 폭력의 공생과 악순환을 돌아볼 때다. 

현 상황에 있어 하마스의 역할과 책임을 어떻게 판단할 것인지는 향후 팔레스타인 문제의 해결을 어떻게 모색할 것인가와도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 팔레스타인 민중 내의 상이한 목소리 중에 어느 방향에 힘을 실을 것인가, 어떠한 선택지를 배제할 것인가를 논의해야 한다. 그렇다면 하마스의 민간인 살해나 납치와 같은 무차별적 폭력을 ‘더 큰 맥락’ 속에서 ‘더 큰 구조적 폭력’에 대한 ‘반작용’으로 이해해야 한다는 주장이, 과연 하마스와 이스라엘 극우 정부의 ‘적대적 공생’을 해체하는 데에 도움이 될지, 장기적으로 세계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를 숙고해야만 할 것이다. 현재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에 대한 세계 사회운동의 대응은 이 지점에서 난맥상을 겪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세계 각지에서 휴전을 촉구하고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억압을 규탄하는 대규모 시위가 벌어지는 가운데, 팔레스타인의 탈식민주의와 민족해방운동에 대한 연대를 표방하는 사회운동 중 적지 않은 수가 하마스의 극단적이고 무차별적인 폭력에 침묵하거나 심지어 이를 찬양하는 모습을 보여 사회적 논란이 되었다.

세계 각지에 점점 더 많은 폭력이 발호할 것으로 예상되는 정세에서, 폭력에 대한 사회운동의 태도라는 쟁점은 단지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에 국한되지 않는 중대한 쟁점이다. 예컨대, 하마스의 10월 7일 공격을 “모든 수단에 의한 팔레스타인의 저항을 지지한다”고 옹호하거나, 이를 비판하는 것은 이스라엘에 ‘면죄부’를 주는 것이라고 주장하는 이들 중 상당수는 러시아의 침공에 맞서는 우크라이나 정규군의 무장 항전과 이에 대한 군사지원에 대해서는 극구 반대했다. (일부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자체를 서방의 안보 위협에 대한 러시아의 정당한 반격전으로 이해하기도 했다.) 이러한 태도가 ‘반미 진영주의’의 반영이라는 비판이 나오는 까닭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한 대응에서 이러한 ‘반미 진영주의’ 태도는 러시아의 침략에 대한 반대와 우크라이나의 저항에 대한 전 세계적인 지지 운동을 형성하지 못한 결과로 이어졌다. 사회운동 내의 하마스 옹호론을 보며 2001년 알 카에다 9.11 테러에 대한 옹호론을 떠올리는 이들도 있는데, 실제로 당시 알 카에다 수장 오사마 빈 라덴이 “팔레스타인 억압에 맞서 미국인과 유대인에게 복수해야 한다”고 발언하는 영상이 최근 소셜미디어에서 확산해 충격을 주기도 했다. 

적과 아군의 구분을 무엇보다 중시하고 ‘적의 적은 친구’라고 여기는 진영주의나, 이와 공명하여 ‘현존 체제를 공격하는’ 모든 폭력 투쟁을 미화하는 태도는 ‘현실 사회주의’의 개혁을 좌초시킨 바 있으며, 궁극적으로 파시즘에 친화적이라는 혐의에서 자유롭지 않다. 사회운동이 이러한 길을 옹호한다면, 이미 혼란스러운 세계는 더욱 혼란스러워지고 더 많은 폭력이 태어날 것이다. 
 

전선 교착과 장기화로 가는 우크라이나 전쟁

우크라이나 전쟁은 2022년 8월부터의 장기간 전투 끝에 올해 5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동부 도네츠크주의 바흐무트를 점령한 것을 제외하고는 전선에 큰 변화가 없는 교착상태가 이어졌다. 전쟁은 올해를 넘겨 2024년에도 지속될 것이다. 우크라이나군은 예고대로 여름부터 ‘반격’ 작전을 시작했으나, 대대적인 성과를 거두지는 못했다. 성과가 부진했던 원인으로는 러시아군이 지뢰, 함정, 탱크 저지용 구조물, 참호를 이용하여 우크라이나 내 점령지에 1000km 이상의 방어선을 겹겹이 설치하면서 영토 탈환 작전이 매우 어려워진 점과 서방의 권고와 달리 우크라이나군이 바흐무트 방어를 장기화하면서 지나치게 많은 병력과 무기를 소모한 점 등이 꼽힌다. 이러한 상황에서 양측 모두 전진하기 어려운 긴 겨울이 다시 다가왔다.

11월 1일 발레리 잘루즈니 우크라이나군 총사령관은 《이코노미스트》와의 인터뷰에서 전선이 교착상태에 빠졌다며 “이제 전쟁은 정적이고 소모적으로 싸우는 ‘진지전’이라는 새로운 단계로 움직이고 있다”고 평가했다. 그는 1차 세계대전의 참호전과 이로 인한 전쟁 장기화로 러시아 제국을 비롯해 여러 나라가 붕괴한 역사를 예로 들며, 전쟁이 수년 동안 이어져 우크라이나라는 국가를 약화시킬 것을 우려했다. 장기전에서는 우크라이나보다 인구가 3배 많고 “사람 목숨이 가장 값싼 자원인” 러시아가 유리하다고 언급했다. (러시아는 올해 7월, 병력 확보를 위해 징병 연령 상한선을 2024년도부터 27세에서 30세로 높이고 하한선은 현행 18세로 유지한 뒤 단계적으로 21세로 높이는 법안을 통과시키기도 했다.) 그는 우크라이나가 이러한 상황을 타개하려면 혁명적인 기술 혁신이 있어야 한다며, 특히 전투기 지원과 드론 능력, 지뢰 제거 능력 향상 등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러시아군의 방어선을 뚫는 것이나, 지난 겨울 러시아군이 미사일, 드론으로 우크라이나 전력망을 대대적으로 공격했던 사태의 재발을 막는 데에는 제공권이 핵심으로 꼽힌다. 지난 8월 미국은 우크라이나가 계속 요청해 온 F-16 전투기 지원을 결정했다. 그러나 우크라이나 조종사들의 훈련이 먼저 필요하여, F-16이 우크라이나에 도착하는 것은 빨라도 2024년 초다.

11월 중순 현재 우크라이나군은 러시아군이 광범위한 방어선을 고르게 관리하지 못하는 상황을 이용하여 곳곳에서 작전을 진행 중인데, 주요한 격전지는 우크라이나 남부의 헤르손주 드니프로강이다. 드니프로강 서쪽은 우크라이나군이, 동쪽은 러시아군이 통제하는 상황에서, 우크라이나군은 러시아군의 흑해함대 기지가 있는 크림반도로 가는 길목을 열기 위해 동쪽 강기슭으로 진출하는 작전을 수행하고 있다. 우크라이나군은 15일 드니프로강 동쪽에 교두보를 확보했다고 밝힌 반면, 21일 세르게이 쇼이구 러시아 국방장관은 이를 부정했다. 같은 날 UN 인권최고대표사무소(OHCHR)는 우크라이나 전쟁 21개월 동안 숨진 우크라이나 민간인이 1만 명을 넘어선 것으로 공식 집계했는데, 사망자 가운데 절반 이상은 전선에서 먼 후방 지역에서 러시아군의 폭격으로 숨졌다. 

유럽 국가 중에서는 친러 성향의 헝가리 오르반 정권이 올해에도 유럽연합(EU)의 우크라이나 지원에 반대했고, 슬로바키아가 9월에 친러 성향의 새 정권이 들어서면서 이전 정권의 우크라이나 지원안을 폐기했다. 우크라이나산 곡물 수입 금지와 우크라이나 무기 지원을 둘러싼 폴란드와 우크라이나 간 갈등도 있었다. 그러나 크게 보면, 서방 주요 국가들은 우크라이나를 계속 지원해 왔다. 11월 들어 로이드 오스틴 미국 국방장관, 보리스 피스토리우스 독일 국방장관, 데이비드 캐머런 신임 외무장관, 샤를 미셸 유럽연합정상회의 상임의장 등 서방 지도부들의 우크라이나 방문이 이어졌다.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발발로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한 관심이 분산된 상황에서, 우크라이나 지원이 줄어들 수도 있다는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한 목적으로 분석된다. 11월 4일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서방 국가로부터 러시아와 협상하라는 압력을 받은 적 없다고 밝혔지만, 전쟁이 교착상태로 장기화되면서 서방이 우크라이나에 영토수복 작전을 중단하고 평화협상에 나설 것을 권고할 가능성이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는 이러한 구상이 공식적으로 논의된 바는 없다. 서방의 지원 확대가 없다면 시간은 러시아에 유리하다고 했을 때, 푸틴 정권이 협상에 나설 유인이 있을지도 불확실하다. 

유럽 최대의 우크라이나 지원국이자 미국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군사 지원을 해온 독일은 2024년 우크라이나에 대한 군사지원 예산을 초안의 두 배인 80억 유로(약 11조 2900억 원)로 늘리기로 했다. 이에 따라 독일의 2024년도 국방비는 올해 7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나토) 정상회의에서 합의한 새 가이드라인대로 GDP의 2%를 초과하게 된다. 미국 내 여론도 아직까지는 미국의 전통적인 동맹국 이스라엘에 대한 지원 지지보다 오히려 우크라이나에 대한 지원 지지가 크다. 11월 12, 13일 《로이터》와 입소스의 여론조사 결과 ‘미국이 이스라엘을 지원해야 한다’, ‘이스라엘에 무기를 보내는 것을 지지한다’고 답한 비율은 각각 32%, 31%에 그친 반면, 우크라이나에 대한 무기 지원은 41%가 지지했다. 그러나 “내가 대통령이라면 24시간 내 우크라이나 전쟁을 끝내겠다”는 트럼프가 2024년 11월 대선에서 승리한다면, 그 이후로는 미국의 우크라이나 대규모 지원이 쉽지 않을 것이다. 이미 공화당 내에는 우크라이나에 대한 지원을 축소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 

한편 러시아 내에서는 평화협상 지지 여론이 서서히 커지고 있다. 러시아 여론조사기관 ‘러시안 필드’의 10월 여론조사에서 처음으로 평화협상 지지가 전쟁 지속 지지를 초과했다. 이에 따르면, 39%가 ‘특별군사작전’의 지속을 선호하는 반면 48%가 평화협상으로의 전환을 선호한다고 답했다. 또한 74%가 내일 푸틴 대통령이 평화협정에 서명한다면 지지할 것이라 답하고, 58%가 2차 동원령이 내려진다면 지지하지 않겠다고 답하는 등, 전쟁 피로도가 가중된 것이 관측된다. 전쟁 사상자가 확대되고 경제 상황이 악화된 것에 대한 우려도 많다. 하반기 들어서는 징집된 군인의 가족들이 군인들의 귀환을 요구하는 흐름이 조직화되어, 러시아 각지에서 시위, 플래시몹 등을 진행하고 있다. 약 1만 9천 명이 모인 텔레그램 채널 ‘집으로 가는 길’은 이번 11월 우크라이나 전선에 동원된 남성들을 집으로 돌려보낼 것을 촉구하는 대정부 성명을 발표하고 청원운동에 나섰다. 러시아 민주화운동 청년그룹 ‘베스나’(봄)는 이러한 요구를 지지하며, 작년 9월의 ‘부분동원령’으로 징집된 이들이 정부의 당초 약속과 다르게 1년 이상 복무를 하고 있는 반면, 참전을 조건으로 사면받아 감옥에서 나온 강력범죄자들은 국방부가 아닌 용병기업 ‘바그너 그룹’과 계약을 맺는 방식이었기에 이미 귀환하여 러시아 거리를 돌아다니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2024년 3월에는 러시아 대선이 열린다. (원래 일정대로라면 3월에 우크라이나도 대선을 치러야 하나, 러시아의 침공 이후로 계엄령 상태에 있어 대선이 무기한 연기되었다.) 그러나 러시아 시민의 전쟁 피로도와 별개로 여전히 높은 정권 지지율와 러시아 선거 정치의 조건을 고려하면 푸틴 대통령이 또다시 당선되는 것은 기정사실에 가깝다. 러시아는 표면적으로 다당제 선거를 진행하고 있지만, 대부분의 원내 야당은 친푸틴 성격의 ‘어용’ 성격이 짙거나 극우 성향이다. 현 푸틴 정권에 반대하는 세력은 선거 출마 자체가 사실상 막혀있다. 가장 잘 알려진 반푸틴 정치인 알렉세이 나발니는 현재 피선거권을 박탈당하고 투옥 중이고, 나발니의 당인 ‘미래의 러시아’는 러시아 법무부가 승인을 거부한 법외정당으로 선거 참여가 불가하다. 공식적으로 우크라이나 전쟁 반대 활동을 하는 반푸틴 야당 ‘야블로코’(통합민주당)는 침공 이후 당 사무실과 당원 자택 수색, 당원들의 구금과 벌금형, 징역형 부과 등의 탄압을 지속적으로 겪고 있다. 이미 2012년 대선 당시 야블로코 당수의 출마를 러시아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막기도 했다. 11월 16일, 변호사이자 언론인인 예카테리나 둔초바가 우크라이나에서의 적대행위 중단, 민주적 개혁, 정치범 석방을 공약으로 하여 무소속으로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겠다고 선언하여 주목을 받았으나, 5일 만에 러시아 검찰은 둔초바를 소환하여 심문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지 며칠 만에 통과된 전면적인 검열법에 따르면 러시아의 군사작전에 대한 어떤 비판도 사실상 불법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대선 전에 어떠한 인사, 세력이 등장하든 선거에 제대로 출마하고 완주하기가 쉽지 않다. 
 

따라서 우크라이나 전쟁의 지속 여부는 여전히 푸틴의 손에 달려있는데, 11월 27일 푸틴은 국방비 지출을 대폭 늘린 2024년 예산안에 서명했다. 국방비 예산은 올해 대비 70% 늘어나(2022년의 2.3배, 전쟁 전인 2021년의 3배 금액), 내년 예산의 30% 가량을 차지한다. 이는 러시아 국내총생산(GDP)의 6%에 해당하는데, 소련 붕괴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이다. 국방 예산에 보안 관련 예산을 합하면 전체 예산에서의 비중이 40%로 올라간다. 만약 2024년 미국 대선에서 트럼프가 승리한다면 미국의 우크라이나 지원이 대폭 감소할 수 있기 때문에, 푸틴이 이를 기다리며 전쟁을 유지할 수 있다는 관측이다. 11월 28일 ≪로이터≫도 푸틴이 내년 미국 대선 결과가 나오기 전에 평화협상에 나서지 않을 것이란 예상이 미국 정부 내에 광범위하게 공유된 전제이며, 나토 외무장관 회의의 분위기도 마찬가지라는 익명의 미국 국무부 고위관리의 발언을 소개했다. 
 
 

2. 2024년 세계의 선택

 

1월 13일, 대만 시민은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선거의 해’인 내년을 여는 2024년 1월 13일 대만 총통 선거는 2024년 세계의 주요 선거 중에서 가장 먼저 치러지는 선거일뿐만 아니라, 미중경쟁의 핵심 이해관계가 걸린 지역에서의 선거로 전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같은 날 한국의 총선에 해당하는 입법위원 선거도 함께 진행된다.) 대만 내부적으로도, 대선 후보 등록 마감일인 11월 24일 당일에서야 국민당과 민중당의 야권단일화 결렬이 공식화되었듯 매우 치열한 선거 양상을 보이고 있다. 대만 인터넷언론 ‘메이리다오전자보’의 11월 21∼23일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3자 대결’에서 여당 민주진보당(민진당) 후보 라이칭더는 31.4%의 지지율로 1위, 국민당 후보 허우여우이는 31.1%로 초접전 상태다. 3위인 민중당 후보 커원저의 지지율은 25.2%다. 올해 내내 대부분의 조사에서 라이칭더는 지지율 1위를 달려왔지만, 올해 초에만 해도 10%대 후반의 지지율로 3위를 기록하던 허우여우이의 지지율이 최근 상승했다. 커원저 역시 20%대 지지율을 지켜왔다. 대부분의 조사 결과가 국민당, 민중당 간 야권단일화가 이뤄지면 누가 총통 후보로 나서든 민진당을 여유 있게 이길 것으로 나오는 상황에서, 두 당이 정권교체를 위한 야권단일화를 선언했으나 결국 총통 후보 선정 방식을 둘러싼 갈등으로 협상이 결렬되었다. 허우여우이와 커원저의 지지율이 비등비등하고 1위인 라이칭더 지지율과도 크게 차이 나지 않은 상황이, 허우, 커 모두 독자 완주를 결정하게끔 한 것이 아니냐는 분석이다. 현재까지 대만 매체들은 야권이 단일화에 실패하면 민진당이 승리할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 우세하나, 여론의 변동성이 컸던 역대 대만 내 선거들을 보면 아직 확실한 것은 없다. ‘대만의 트럼프’로 불리는 강경 친중 성향의 무소속 궈타이밍(폭스콘 설립자, 회장)은 24일 결국 후보 등록을 포기했는데, 궈타이밍도 4~5% 가량의 지지를 받던 상황이라 이 표가 어디로 갈지도 관전 포인트다.   

각 후보자의 면면을 보면, 라이칭더는 현 정권의 부총통으로, 지난 총통 선거에서 차이잉원 총통의 러닝메이트로 당선되었다. 라이칭더는 지난 총통 선거 전략이 그러했듯, 중국의 압박으로부터 대만의 민주주의와 자유를 지키는 위치에 있는 것은 민진당이라는 기조에서 유세를 진행하고 있다. 라이는 대만 독립파로 여겨져 왔으나, 총통 선거 국면에 들어서는 “대만의 모든 정당과 대만인 다수는 중국과 친구가 되기를 원한다”고 말하는 등 선거를 고려하여 어조를 누그러뜨린 모습이다. 그는 올해 4월, 대만 독립파의 원로인 구콴민의 ‘형제 국가’(중국이 대만을 동등한 형제로 생각하고 대만의 독립을 인정한다면 양안이 상호 호혜적 관계를 누릴 수 있다) 개념을 빌어, “태평양이 중국과 미국 사이의 경쟁을 허용할 만큼 충분히 크듯 대만 해협에서 대만과 중국도 공존할 수 있다. 대만과 중국은 형제 국가가 될 수 있다”고 발언하였다. 7월 미국 ≪월스트리트저널≫에 “대만해협의 평화를 지키기 위한 나의 계획”이란 글을 기고하여 내년 선거에서 당선되어도 대만 독립을 선언할 계획이 없다고 밝혔는데, 중국과 미국을 안심시키려는 의도로 보인다. 

이 기고문은 ‘평화를 위한 4개 핵심 계획’을 담고 있다. 종합하면, ‘대만 독립 선언’이라는 중국이 설정한 레드라인을 넘지는 않되, 차이잉원 정부의 국방, 대외정책을 계승할 것이라는 이야기를 차이잉원보다 조금 더 선명하게 말하고 있는 셈이다. 

① 대만 억지력 강화: 차이잉원 정권의 국방 예산 증액, 징병제·예비군 개혁 등의 국방력 제고 조치를 지속한다. (차이 정권은 군비증강을 강조하는 한편, 지난 해 말 남성 군 의무복무 기간을 4개월에서 1년으로 늘린 데에 이어 올해 10월 출산율 감소와 지원병 부족을 이유로 일부 의무복무병의 최전방 포함 전투부대 배치가 불가피하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② 경제 안보: 경제 안보는 곧 국가 안보로, 중국에 대한 지나친 무역 의존을 줄이기 위해 무역 다각화 등을 통해 경제 안보를 강화한다.
③ 민주주의 국가와의 파트너십: 올해 대만이 우크라이나에 의료팀을 파견했듯, 전 세계 민주주의 국가들과 파트너십을 강화한다.
④ 양안 리더십: 최근 몇 년 새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92공식’과 ‘하나의 중국’ 원칙을 주장하면서 대만과의 교류를 단절해왔으며, 대만·남중국해 등에서 강압적인 군사 행동을 함으로써 긴장이 고조되어 왔다. 대만은 실용성과 일관성을 최우선시하면서, 대만과 국제사회에 최대 이익이 되는 ‘양안 현상 유지’를 지지할 것이다. 호혜와 존엄의 원칙을 바탕으로 중국과 전제조건 없는 대화의 가능성을 배제하지는 않는다. (’92공식‘은 중국과 대만이 1992년 합의한 공통인식이라는 의미로, “‘하나의 중국’ 원칙을 견지하되, 그 표현은 양안 각자의 편의대로 한다”는 내용이다. 민진당은 92공식은 당시 국민당 정부가 맺은 합의일 뿐 대만 시민의 민의가 아니라는 태도를 취해왔다.) 

2014년 ‘해바라기 운동’ 이후 지지율 하락과 분열을 겪었다고는 하나, 1949년부터 2000년 민진당의 정권교체까지 대만을 통치해온 주요 정당인 국민당의 후보 허우여우이는 수도 타이베이를 둘러싼 신베이의 시장이다. 허우는 경찰총장 출신으로, 대만 현대사의 유명 사건인 1989년 4월 정난룽 분신자살 사건(대만 독립을 주장하는 언론인 정난룽을 반역 혐의로 체포하기 위한 경찰 동원에, 정난룽이 분신자살로 저항) 책임자다. 이러한 공안 경찰 과거가 있음에도, 현재 성향은 국민당 내 온건파로 분류되는 점, 본성인(1949년 국민당의 ‘국부천대’ 이전부터 대만 섬에 살던 사람들의 후손) 출신인 점 등을 고려하여 중도층을 겨냥한 후보로 선택되었다. 이 때문에 국민당 지지층 중 강경파 일부가 국민당 후보 경선에서 허우에 패한 궈타이밍을, 궈가 허우보다 친중, 통일 지향이 강하다는 이유로 지지하기도 했다. 

제3당인 민중당 후보인 커원저는 유명 외과 의사 출신으로, 개인의 인기에 힘입어 2019년 민중당을 창당했다. 2014년 정계 입문 당시, 타이베이시장 선거에서 민진당이 후보를 내지 않고 무소속 커원저를 지원하여 당선되었고, 2022년 말까지 재임했다. 정치 생활 초년에는 민진당과 우호적 관계에 있었으나, 이후 여러 입장이 국민당과 유사해졌다. 민중당은 여전히 커의 개인적 인기로 유지되고 있고, 커원저와 민중당의 정치적 입장은 모호하다는 평판이지만, 커원저 개인은 주로 20~30대 청년과 “민진당, 국민당 모두 싫다”는 사람들의 지지를 받아 지속적으로 20%대 지지율을 보여왔다. 

이번 총통 선거는 ‘미중 대리전’이 아니냐는 말이 나올 정도로, 대만의 대외정책과 양안관계를 결정짓는 선거로 평가된다. 그러나 향후 선거 결과와 무관하게, 현재 대만 시민들의 ‘중국과의 일국양제 통일’ 반대, 중국의 대만 정치 개입 반대, 대만 시민의 자결권 중시 입장은 매우 확고하고 압도적이다. 10월 28일 대만 국립정치대학 선거연구센터가 발표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의 88.1%가 중국군의 대만 방공식별구역(ADIZ) 침범 등 군사적 압박에 반대했고, 85.3%는 ‘일국양제’ 통일에 반대했고, 86.2%는 대만해협 현상 유지를 지지했으며, 83.7%는 대만의 미래는 대만인이 결정해야 한다고 답했다. 

이러한 여론을 민진당 지지로 연결시키는 것이 민진당의 바람이다. 이는 부총통 후보 결정에서도 드러난다. 11월 20일 라이 후보의 러닝메이트로 결정된 부총통 후보 샤오메이친은 중국 정부로부터 ‘중국 입국 금지’ 조치를 당한, 사실상의 주미 대만대사인 주미 타이베이경제문화대표처 대표다. 샤오는 대표적인 친미인사이며 대만 ‘전묘(고양이 전사) 외교’의 대표주자로 알려져 있다. 전묘외교란 중국의 소위 ‘전랑(늑대 전사) 외교’, 즉 중국의 경제력과 군사력을 바탕으로 한 공격적인 외교와 달리 민주주의와 인권을 강조하면서 국제사회와 협력하는 대만의 전략이다. 

그러나 2022년 말 지방선거에서 민진당이 참패한 일이나 현재 허우, 궈도 상당한 지지를 받는 모습은, 대만 시민의 표심이 전적으로 중국 문제에만 좌우되지는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다. 먼저, 여론에 맞게 야권 주류의 양안관계 입장도 변화해 왔다. ‘친중’ 정당으로 여겨져 온 국민당은 2019년 홍콩 송환법 반대 시위와 이에 대한 중국 정부의 탄압 이래로, 홍콩의 사례와 같은 ‘일국양제 통일’에는 반대한다는 입장을 밝혀왔다. 노골적인 친중 입장을 삼가는 대신, ‘무역과 협력 확대를 통한 평화로운 양안관계 구축’을 표방하며 “민진당은 중국과의 전쟁, 국민당은 중국과의 평화”라는 프레임을 형성하려 한다. 민중당도 일국양제 통일 반대, 중국과의 전쟁 반대 입장을 밝혔다. 한 예로, 국민당 허우, 민중당 커 후보 모두 2014년 마잉주 국민당 정권이 추진하다 엄청난 반발을 샀던 양안서비스무역협정(CSSTA) 비준이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당시 이 사안이 대만 대학생들의 입법원(국회) 점거와 ‘해바라기 운동’ 발발의 계기가 되었고 이후 대만 정치에 막대한 영향을 미쳤음에도, 민생난 속에서 양안서비스무역협정을 통해 중국과의 경제협력을 모색해야 한다는 의견에도 일정한 지지가 있는 것이다. 반면 라이는 양안서비스무역협정을 부활시키고 중국과 시장 통합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은 세계의 흐름을 오독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대만의 경제적 이익에도 부합하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그 외 국내 사안들도 총통 선거에는 중요한 영향이다. 민진당은 집권 8년 동안 높은 실업률, 임금 정체, 주거비 상승 등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것으로 평가받았고, 이는 2022년 지방선거 참패로 이어졌다. 올해 주로 민진당 인사들을 가해자로 지목하며 확산한 미투운동, 수입산 계란 파동 등 민진당이 여당으로서 책임져야 할 여러 사안도 있다. 독립노동조합들도 민진당이 노조법 개정, 연간 노동시간 감축 등 사회운동의 숙원을 이뤄주지 않았거나 오히려 개악했다고 판단하여 비판하고 있다. 
 

중국의 선거 개입이 변수가 될 가능성도 있다. 올해 중국은 중국-대만 간 자유무역협정인 경제협력기본협정(ECFA) 중단 가능성 시사, (총통 선거 전날인 1월 12일까지) 대만의 세계무역기구(WTO) 원칙 위반을 조사하겠다는 발표, 중국인 대만 단체관광 금지 유지 등의 경제적 수단뿐만 아니라 지속적인 무력시위를 통해서 대만 여론을 압박해 왔다. 중국 관영매체 중앙TV(CCTV)는 11월 21일, 라이칭더-샤오메이친이라는 “두 독립조합”은 “양안의 긴장과 충돌을 격화시킬 것이고 대만을 전쟁 위험 지역으로 만들 것”이라고 위협했다. 그러나 중국의 노골적인 선거 개입은 오히려 민진당에 득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민진당의 재집권이 실현되면 중국의 대만 침공 가능성이 커질 수 있다는 관측이 많다. 향후 라이칭더 정권이 실제로 어떤 정책을 펼치냐와 별개로, 시진핑 정권은 민진당 재집권이라는 사실 자체를 중국 시민이 ‘시진핑의 대만 정책 실패’로 받아들일 것을 우려할 것이다. 이는 중국이 대만에 더 큰 압박을 가하게 하는 요인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야당이 총통 선거에서 승리한다고 해서 중국의 대만 침공 위험이 해소되는 것은 아니다. 궁극적으로, 중국의 정치 위기 타파를 위해 대만 ‘수복’을 포기할 수 없는 시진핑 정권의 이해관계와, 홍콩보안법, 신장위구르 강제수용소, 제로코로나 봉쇄 등을 보고 난 뒤 중국과의 통일을 결코 원치 않게 된 대만 시민의 입장이 좁혀질 수 없기 때문이다. 시진핑 정권도 할 수만 있다면 무력통일보다는 다른 방도를 통한 통일을 선호할 것이나, 그러한 선택지가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 상황이라고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내년 총통 선거에서 국민당이 승리한다고 해도, 그렇다면 그것은 국민당이 ‘친중’ 이미지를 어느 정도 버리는 데 성공한 덕분임을 시진핑 정권이 모를 수 없다. 이미 지난 총통 선거 당시 국민당 후보 한궈위는 “내 주검을 밟고 지나가지 않는 한 일국양제는 안 된다”, “중화민국(대만)과 자유민주를 굳건하게 수호할 것”이라고 발언했고, 현 국민당 후보 허우는 올해 7월 “일국양제의 92공식에는 반대”한다며 중국 정부가 공식적으로 내세우는 일국양제 통일에 반대 의사를 밝혔다. 그럼에도 시진핑 정권은 대만 정치세력 내 마땅한 대안이 없어 국민당을 지지하고 있다. 
 

왜 중국공산당의 결론은 ‘대만 통일’이 되었나?

결국 대만 위기의 근원이나 변수는 대만의 정책에 있다기보다는 중국 내부에 있다. 중국 정부는 경제의 고속성장을 강력한 정치적 기반으로 삼아왔으나, 성장 감속 국면에 진입하자 민족주의와 공격적인 대외정책을 통해 정치적 정당성을 확보하려 한다. 중국은 공식적으로 ‘대만 수복’을 포기한 적 없기는 하지만, 시진핑 정권이 민족주의적 역사관에서 비롯된 영토적 완전성 추구를 국가적 목표로 세우면서 대만 침공 가능성이 구체화된다(사회진보연대, 『반핵·반권위주의 국제민중연대를 위하여』, 2023). 

왜 대만 침공 시나리오가 가까운 미래의 일로 거론되는지에 대하여, 1차 세계대전에서의 독일, 2차 세계대전에서의 일본, (당시의 독일, 일본과 위상이 다르기는 하지만) 가깝게는 2022년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와 같이, ‘기회의 창이 닫히기 전에 팽창 기회를 움켜쥐고자 하는 후발 강대국’이라는 관점에서 중국의 위기와 중국공산당의 정책을 자세히 들여다봐야 한다는 주장이 있다. 이는 미중갈등을 신흥 강대국의 부상과 기존 강대국의 견제가 전쟁으로 이어진다는 ‘투키디데스의 함정’ 틀에서 바라보는 기존 관점과는 다르다.

할 브랜즈, 마이클 베클리의 『중국은 어떻게 실패하는가』(2022년)는 대략 2030년까지가 중국의 ‘기회의 창’이 닫히기 전의 가장 위험한 구간(Danger Zone, 책의 원제이기도 함)이라고 설명한다. 이미 국력의 정점을 찍은 중국이 ‘세계 유일 초강대국’이란 꿈이 실현 불가능해지기 전에 위험한 도박에 나설 수 있는 시기라는 뜻이다. 2020년대가 중국의 마지막 기회인 까닭은, 개혁·개방 시기 중국의 고속 성장을 뒷받침했던 우호적인 미중관계, 안정적인 집단지도체제, 유리한 인구구조, 풍부한 천연자원이라는 요소가 오늘날 이미 대중국 포위망, 시진핑 1인 권력 집중과 장기집권, 인구 감소와 고령화, 환경오염으로 인한 식량과 에너지 수입 급증으로 반전되어 중국 경제가 성장 감속에 빠졌고 중국공산당이 이 사실을 잘 알기 때문이다. 국가 주도의 대규모 투자, 지방정부와 부동산업체의 부동산 개발과 같은 기존의 경제성장 방식들은 급격한 생산성 하락과 부동산 경기 침체에 직면해 있고, 공식적인 부채만 GDP의 280%에 육박하는 가운데 ‘그림자 금융’과 같은 숨겨진 부채 문제도 심각하다. 2023년에도 초대형 부동산 개발업체 헝다(에버그란데)의 파산 보호 신청이나 비구이위안의 디폴트(채무불이행) 선언은 중국의 ‘부동산 주도 성장’ 전략이 심각한 위기에 처했음을 만천하에 드러냈다. 

이 중 사회진보연대의 기존 글들에서 자세히 다루지 않은 인구 감소와 고령화 문제를 보면, 중국의 총인구는 이미 줄어들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올해부터 여전히 인구 증가세에 있는 인도가 중국을 제치고 세계 인구 1위 국가에 오른 것으로 파악된다. 올해 1월 중국 국가통계국이 발표한 중국 전국 인구 데이터에 따르면 2022년 중국은 대약진운동의 실패로 대기근과 아사 사태를 겪은 1961년 이후 61년 만에 처음으로 총인구가 감소했다(85만 명). 60세 이상 인구는 2억 8천만 명(19.8%), 65세 이상 인구가 2억 980만 명(14.9%)으로, 이미 고령사회에 접어들었다. (일반적으로 65세 이상이 총인구의 14% 이상인 사회를 고령사회로 분류한다.) 경제활동인구(15~59세)를 중심으로 보면, 중국 국가통계국은 이미 2021년에 지난 10년 동안 경제활동인구는 4000만 명 줄어든 반면 65세 이상 인구는 7000만 명 넘게 늘었다고 발표했다.

중국은 이처럼 예상보다 급격한 저출산 고령화에 직면하여 2000년대에는 ‘한 자녀 정책’을 폐지하고 2021년에는 ‘두 자녀 정책’까지 폐지했지만, 출산율은 반등하지 않았다. 중국의 신생아 수는 2017년 1723만 명에서 2022년 956만 명으로 5년 만에 절반 가까이 줄었다. 올해 중국인구학회 연례회의는 지난해 중국의 합계 출산율을 1.09명으로 발표했는데, 이는 한국, 대만과 함께 세계 최저 수준이다. 2000년대 당시 중국은 65세 이상 인구 1명당 경제활동인구가 10명이었는데, 이처럼 경제성장에 유리한 인구구조는 중국의 급속한 성장의 1/4을 견인했다고 평가된다. 이 때문에 중국의 인구 감소와 고령화는 중국 경제성장의 ‘엔진’이 꺼졌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진다. 현재 추세로는 2050년에는 65세 이상 인구 한 명당 경제활동인구가 두 명이 된다. 이에 따라 기초적인 노인 복지 비용만 따져도 지금보다 3배 증가하여 국내총생산(GDP)의 30%를 차지하게 된다는 계산이 나온다. 

중국이 인구 문제를 더욱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것은 일본 등 선진국이 부자가 된 뒤에 늙어간 것과 달리, 중국은 부자가 되기도 전에 이미 늙어가고 있다는 사실 때문이다. 이를 가리키는 ‘미부선로’(未富先老)라는 말도 있다. 2023년 기준, 중국의 GDP 규모는 미국 다음으로 세계 2위지만, 1인당 GDP는 여전히 1만 달러 초반대로 세계 71위에 지나지 않는다. 이러한 현실은 여전히 전체 인구의 40%가량이 농촌에서 연간 1인당 소득 400만 원 미만으로 생활하는 중국의 거대한 도농격차에서 비롯한다. 중국의 1인당 GDP는 2019년 처음으로 1만 달러를 돌파했다. 일본은 1984년, 한국은 1994년에 1만 달러를 넘어섰고 현재는 3만 달러가 넘는다. 미국의 1인당 GDP는 8만 달러가 넘어, 중국의 6.4배에 달한다. 중국은 갈 길이 먼 상황에서 엔진이 꺼진 것이다.

최빈국에서 중진국으로 성장하는 것과 달리 중진국에서 선진국으로 성장하는 것은 훨씬 어렵다. 처음에는 저렴한 인건비를 바탕으로 수출 경쟁력을 누리다가 어느 정도 경제가 발전하면 자국의 인건비가 상승하는 한편 더 값싼 노동력을 제공하는 후발주자가 등장하면서 한계에 부딪히는 것은 한국을 포함하여 많은 나라가 이미 겪은 일이다. 중국 정부도 이를 잘 알고 있기에 ‘중국제조 2025’, ‘반도체 굴기’와 같은 고부가가치 첨단산업으로의 전환 정책을 내놓았다.

그러나 한청훤의 『차이나 쇼크, 중국의 선택』(2022년)은 ‘두 개의 중국’이 있다고 해야 할 정도로 심각한 도농격차를 근거로, 이러한 시도가 중국을 ‘중진국 함정’에서 꺼내지 못할 것이라고 예상한다. 먼저, 아무리 상하이, 선전 등 가장 발전한 지역이 첨단 제조업과 고부가가치 서비스산업을 육성하더라도, 너무나 광대한 농촌의 저부가가치, 저소득을 상쇄하기가 어렵다. 중국 경제성장 초기단계처럼 농촌 지역의 저임금을 활용한 산업을 육성하기에는, 인프라가 전무한 내륙의 농촌에 공장을 짓고 생산을 하는 것은 무리다. 이미 도시의 물가가 너무 오른 상태이니, 농촌의 노동력이 도시에 공급된다고 해도 임금을 낮게 책정할 수 없다. 무엇보다 다시 저부가가치 산업을 육성하는 것은 고부가가치 산업으로의 전환이라는 기조와 충돌한다. 

중국이 인구 대다수가 자연스럽게 도시와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옮겨간 한국, 대만처럼 될 수 없었던 까닭은 ‘중국판 카스트’라 불리는 ‘후커우’(호구) 제도다. 후커우는 인구가 급격히 대도시로 이동하는 것을 제한하기 위한 호적 제도로, 태어날 때 부모의 후커우에 따라 정해진 후커우는 평생 바뀌지 않는다. 경제성장 과정에서 ‘농민공’이라는, 농촌 후커우를 가진 도시 하층 노동자층이 광범위하게 생겨났으나, 이들은 후커우 때문에 도시에서 부동산 거래를 하지 못하고 의료, 교육 등 각종 사회보장 혜택에서 배제된다. 2020년 기준, 전체 인구의 19%가 도시에 살지만 도시 후커우가 아니다. 농민공의 자녀들이 도시에 남으면 교육 사각지대에 놓이고 농촌으로 가면 부모와 떨어져 자라야 하는 현실, 이로 인한 낮은 인적자원 수준도 사회문제가 되었다. 중국 정부는 후커우 제도의 점진적 개혁을 시도하고 있지만 단시간 내 급격한 변화는 쉽지 않다. 

미국이 중국의 최첨단 반도체 생산 기술 획득을 차단한 상황에서 중국 정부가 국가의 명운을 걸고 추진하는 ‘반도체 굴기’도, 원래 목표는 반도체 자급률을 2020년까지 40% 달성하고 2025년까지 70%를 달성하는 것이었으나 현실과 괴리가 크다. 2020년 중국의 반도체 자급률은 15.9%로 전년 대비 0.3%p 올라가는 데 그쳤다.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 등 외국 기업의 중국 공장 생산분을 뺀 중국 기업의 생산 비율은 6%대에 그친다. 반도체 개발 엔지니어 출신 정인성의 『반도체 제국의 미래』(2019년)는 중국 정부의 막대한 지원으로도 반도체 산업 특유의, 후발주자에 대한 높은 문턱을 넘기 어렵다고 설명한다. 반도체 산업은 시장에서 경쟁력을 갖춘 제품을 만들지 못하면 높은 설비 투자 때문에 막대한 적자에 시달리게 된다. 정인성은 메모리 반도체 기술이 한국에 비해 3~10년 뒤처진 중국은 D램 반도체 생산에만 연 10조 원가량의 적자를 낼 것이라 추산하는데, 이렇게 보면 중국이 10년 동안 반도체 굴기에 투자하겠다고 한 185조 원도 큰돈이 아니다. 그동안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매년 20조 가량의 순이익을 계속 투자하여 기술 격차를 벌리거나 유지할 것이다. 2021년 중국의 대표 반도체 기업 칭화유니가 30조 원의 부채를 안고 파산한 사건은 이러한 관측에 부합한다. 

정부 주도식 ‘반도체 굴기’의 한계는 HSMC(우한훙신) ‘먹튀’ 사태에서도 드러난다. 2017년 설립된 HSMC는 2020년까지 중국 최초로 7나노미터 공정을 적용한 반도체를 양산하겠다며 2조 7600억 원 이상의 정부 보조금을 받았지만, 2020년 경영진이 이를 횡령하고 잠적했다. 이때에서야 HSMC는 단 하나의 반도체 칩도 제대로 생산하지 않았으며 공장조차 다 짓지 않았다는 더욱 충격적인 사실이 밝혀졌다. 이런 사기극이 가능했던 것은 중국 정부 주도의 개발 경쟁 속에서 비효율과 부패가 만연한 반면, 정부의 정책 집행을 감시하고 책임을 물을 독립적 사법기관, 언론, 사회운동은 없기 때문이다. 2022년 1월 《월스트리트저널》은 중국에서 지난 3년간 최소 6개의 대규모 반도체 제조 프로젝트가 실패했다고 분석했다. HSMC 외에도 QXIC(취안신집적회로), 청두거신, HIDM(화이안더화이), 난징타코마, 산시쿤퉁 등이 막대한 정부 보조금을 받았지만, 거의 아무 성과도 내지 못했으며 애초에 투자할 가치가 있는 기술력도 없었다는 것이다. 

『중국은 어떻게 실패하는가』는 이처럼 여러 한계에 부딪힌 중국공산당이 느낄 조급함이 과거 독일, 일본과 같은 극단적 선택으로 중국을 이끌 수 있다고 설명한다. 19세기 말~20세기 초 독일은 비약적인 속도로 경제력과 군사력을 키웠지만, 식민지 쟁탈전의 후발주자로서 기존 열강들과 마찰을 빚고 군사적, 경제적으로 포위되기 시작했다. 경제가 어려워지면서 파업이 증가하고 사회민주당이 약진했다. 그러자 황제의 참모들은 ‘지금이 아니면 기회가 없다’는 생각에 빠졌고,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황태자가 암살당하자 이 사건을 대대적인 전쟁으로 키웠다. 메이지유신 이후 놀랍게 성장하던 일본은 1920년대에 경제성장률이 1.8%로 떨어졌고, 간토대지진에 타격을 받았으며, 무엇보다 세계 대공황의 영향으로 단 1년 만에 수출이 50% 급감하여 급격한 경제위기를 겪는다. 이에 일본은 팽창 정책을 통한 자급자족 경제권을 목표로, 만주를 비롯하여 중국 곳곳을 장악하고 대대적인 군사력 증강에 나섰다. 아시아 제국 건설의 꿈을 안고 1937년 시작한 중일전쟁은 끝없는 수렁이 되어버렸고, 1940년 미국이 중국국민당 정부를 지원하며 일본에 대한 항공기 자재, 휘발유 수출을 감축했지만, 그럼에도 1941년 일본은 이미 인도차이나 지역을 식민 지배하고 있는 미국, 영국, 네덜란드 등과의 전쟁을 감수하고 태평양전쟁을 시작한다. 일본이 이렇게 무모한 선택을 한 이유는 당시가 마지막 ‘기회의 창’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유럽에서 히틀러의 준동은 미국과 유럽 국가들의 주의를 분산시켰고, 1941년 4월 일본과 소련은 불가침조약을 맺었다. 일본은 일찌감치 (미국, 영국, 일본, 프랑스, 이탈리아 간) 워싱턴해군군축조약에서 탈퇴하여 항공모함 10척을 보유한 반면, 영국과 미국은 3척에 불과했다. 그러나 미국의 빠른 재무장은 곧 일본의 해군력을 추월할 것이 뻔했고, 1941년 하반기 미국의 전면적인 대일본 석유 수출 금지 또한 시간이 일본 편이 아님을 분명히 했다. 이 상황에서 아무 것도 하지 않으면 엄청난 정치적 위기에 빠질 것을 예상한 일본의 지도자들은 결국 전쟁을 결심했다.   

마찬가지로, 중국의 경제는 여러 구조적 원인과 함께 위기에 빠져들고 있고 (2022년 ‘백지시위’가 있었듯) 시민의 정치적 불만이 표출될 가능성도 올라가고 있다. 그러나 또 한편 2020년대는 시진핑의 중국이 빠르게 ‘도광양회’에서 ‘대국굴기’로 전환할 것을 예측하지 못했던 미국과 대만의 대중국 군사대비태세가 아직 부족한 시기이기도 하다. 시진핑 주석은 집권 2기를 시작하던 2017년 당시 이미 “2035년까지 국방과 군대 현대화를 실현하고, 2050년까지 미국을 제치고 세계 최강대국이 되겠다”는 청사진을 제시했다. 그러나 현재 조건대로 2030년대로 넘어가면, 미국과 대만의 대중국 태세가 갖춰지고 중국 인구의 고령화는 심각해질 것이 예상된다. 자신의 후임 장쩌민뿐만 아니라 그 후임인 후진타오까지 지목한 상태로 물러난 덩샤오핑과 달리, 10년 임기의 권력교체 전통을 깨고 3연임에 나선 시진핑의 뒤를 이을 2030년대 중국의 리더십 전망은 아무도 알 수 없다. 그동안 중국이 ‘일대일로’ 프로젝트 등으로 세계 개발도상국의 80%에 제공한 막대한 차관의 만기가 2030년대에 잡혀있지만, 이 중 상당수가 중국 정부 스스로의 예측에서도 회수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는 점도 큰 위기 요인이다. 신용등급이 낮고 경제상황이 불안정한 나라들에, 철저한 수익성 검토 없이 차관을 남발한 탓이다. 이 모든 것을 고려하면, 시진핑 정권에게 2020년대는 중국이 “미국을 제치고 세계 최강대국이 될” 마지막 기회의 창으로 보일 수 있고 그만큼 극히 위험한 시기라는 것이다. 
 

11월 5일, 미국 시민은 어떠한 선택을 할 것인가?

그런데 2030년까지의 이 ‘위험 구간’을 관리해야 할 미국은 다시금 바이든 대 트럼프 선거가 될 가능성이 높은 2024년 대선의 결과에 따라 매우 상이한 경로로 나아갈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 대선 국면 자체가 미국의 위기가 될 우려가 있다.

내년에 당내 경선을 치르기는 하겠지만, 민주당 대선 후보는 사실상 바이든으로 확정된 셈이다. 2016년과 2020년 대선 민주당 경선에서 진보 진영의 지지를 받았던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은 4월 25일 《AP》 인터뷰에서 이번 대선에 출마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그는 대신 “미국 민주주의를 훼손하고, 여성의 [임신중지] 선택권을 빼앗고, 총기 폭력, 인종차별, 성차별, 성소수자혐오를 해결하지 않으려는” 트럼프를 막기 위해 바이든이 재선되도록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다 하겠다”고 선언했다. 존 에프 케네디 전 대통령의 조카인 로버트 에프 케네디 주니어는 민주당 내 경선에서 승산이 없다고 판단하자 10월 무소속 출마를 선언했는데, 그는 최근 음모론에 입각한 백신 반대 활동을 펼쳐와(“코로나19는 백인과 흑인을 표적으로 삼게 돼 있다. 유대인, 중국인이 면역력이 가장 크다”고 말하는 영상이 유포되기도 했다.) 민주당뿐만 아니라 공화당 내 극단주의자들의 표를 분산시킬 수 있다. 케네디 주니어의 출마 소식은 가문의 명성 덕분에 주목받았지만, 그의 형제자매들은 “바이든에 대항해 제3의 후보로 출마하기로 한 결정은 미국에 위험하다”는 성명을 냈다. 

공화당에서도 트럼프의 대선 후보 재지명이 가장 유력하다. 트럼프의 공화당 내 지지율이 과반이 넘는 상황에서, 현재 그 다음으로 지지율이 높은 경쟁자는 니키 헤일리 전 주UN 미국대사다. 헤일리는 군사력을 바탕으로 한 적극적인 해외 개입을 주장하는 공화당 내 ‘네오콘’이나, 공화당 후보 중 유일한 여성이고 인도 펀자브 출신 시크교도여서 트럼프에 비해 성차별, 인종차별 문제에서 자유로우며, 바이든과 1대1 가상 대결에서 트럼프가 후보일 경우보다 더 큰 격차로 승리한다는 여론조사 결과가 있다. 이러한 이유로 헤일리는 트럼프를 반대하는 공화당 지지자, 특히 억만장자들의 선호를 받아 최근 상승세이나 아직 트럼프와는 격차가 크다. 그 다음으로는 론 디샌티스 플로리다 주지사가 있다. 그는 트럼프와 정책적 차이는 거의 없으나 트럼프와 달리 40대로 젊기 때문에 ‘트럼프의 공약을 더 잘 실행할 수 있다’는 홍보 전략을 취하고 있다. 한편, 트럼프는 지난 대선 개입, 대선 결과 불복, 기밀문건 유출 등으로 형사 기소되어 2024년 내내 재판에 설 예정이다. 2021년 1월 6일 의회 점거 사건에 대한 트럼프의 책임을 물어 “공직자로서 내란, 반역에 관여한 사람은 이후 어떤 공직도 가질 수 없다”고 규정한 수정헌법 14조 3항에 따라 피선거권을 박탈해야 한다는 소송들도 있다. 이러한 트럼프의 사법 리스크는 미국 사회의 위기감을 키우고 중도층의 트럼프 지지를 제한하지만, 동시에 트럼프 지지자들을 결집시키고 있다는 평가가 제기된다.

차기 미국 대선을 1년 가까이 남겨둔 현재, 미국 전역을 대상으로 한 여러 조사에서 바이든은 트럼프에게 지지율이 근소하게 뒤지는 것으로 나타난다. 트럼프 핵심 지지층 외에서 바이든 지지를 망설이는 핵심적인 이유는 바이든의 고령이다. 그러나 주별 선거인단 제도를 채택하는 미국 대선에서 실제로 선거 결과를 결정지을 유권자는 소수인데, 애리조나, 조지아, 미시간, 네바다, 뉴햄프셔, 노스캐롤라이나, 펜실베이니아, 위스콘신 등 최대 5~8개 주만이 경합지역(스윙 스테이트)이기 때문이다. 지난 대선에서 바이든은 주로 러스트 벨트인 경합지역 대부분에서 트럼프를 이긴 덕분에 당선되었다. 펜실베이니아 출신의 서민적 이미지에 “노동자와 중산층”을 강조하는 바이든이 러스트 벨트에서 경쟁력이 있었다는 평가였다. 그러나 올해 11월 초 ≪뉴욕타임스≫ 조사에서는 경합주 6곳 중 5곳에서 트럼프가 승리하는 것으로 나왔다. 
 

미국 역사상 가장 친노조 성향의 대통령을 자처해 온 바이든은 재선 캠페인에서도 노동조합과 노동자, 러스트 벨트의 지지를 얻는 데 공을 들이고 있다. 상징적으로, 바이든은 올해 9월 26일 디트로이트 근교의 제너럴모터스(GM) 파업 현장을 방문하여 현직 미국 대통령으로서는 처음으로 파업 노동자들의 피케팅에 참여했다. 사상 처음으로 자동차 3사(GM, 포드, 스텔란티스) 동시 파업을 주도하는 전미자동차노조(UAW. 조합원 14만 6천여 명의 미국 최대 자동차노조)에 대해 바이든은 전폭적인 지지를 선언했다. 이는 바이든의 전기차 전환 정책이 기존 자동차산업 노동자들의 고용을 불안하게 만든다는 지적이 있고, 트럼프가 이 부분을 파고들어 “바이든이 당신들의 일자리를 빼앗아 중국 등 다른 나라에 주려고 한다”며 노동자들의 지지를 호소하는 상황에서 UAW의 지지를 얻어내려는 노력으로 여겨진다. 《로이터》는 바이든 대통령이 이번 달 9일에도 전미자동차노조 수뇌부와의 회동에 앞서, 기자들에게 테슬라와 도요타에 노조를 만들려는 UAW의 노력을 지지한다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한편, 2024년 대선에서도 인종, 섹슈얼리티, 임신중지, 총기 규제 등을 둘러싼 ‘문화전쟁’이 부각될 전망이다. 이 중에서도 임신중지(낙태)가 가장 주요한 전장으로 꼽힌다. 작년 6월 미국 연방대법원이 여성의 임신중지권을 헌법상의 권리로 보장했던 ‘로 대 웨이드’ 판결을 뒤집은 뒤로, 전국 각지의 주(州)마다 임신중지권을 보장하거나 박탈하려는 공방이 이어지고 있다. 3월 퓨리서치센터 여론조사에 따르면 미국인의 62%가 임신중지를 지지하는 상황에서, 바이든 진영은 임신중지권을 득표를 확장할 수 있는 의제로 보고 내년 대선의 핵심 쟁점으로 삼으려 한다. 앞서 언급한 ≪뉴욕타임스≫ 조사에서는 대선을 좌우할 쟁점으로 임신중지와 같은 사회 이슈가 아닌 경제 문제를 꼽은 답변이 많았지만, 지난해 11월 중간선거에서는 경제 정책이 화두이며 공화당이 크게 승리할 것이란 다수의 관측이 빗겨나간 주요한 원인으로, 임신중지권 논란으로 인한 공화당 지지층 여성의 이탈이 지목되기도 했다. 올해에도 11월 7일, 지난 대선 두 차례에서 트럼프를 지지했던 오하이오 주 헌법에 임신중지권을 명문화할 지에 관한 주민투표가 과반(56.4%)의 찬성을 기록했다. 같은 날, 현직 주지사가 공화당 소속인 버지니아 주 의회 선거, 전통적인 공화당 지지 지역 켄터키 주지사 선거에서 민주당이 승리한 것도 임신중지권이 주요 쟁점이 된 덕분이라고 분석된다. 이에 공화당 내부에서도 대선에서 임신중지에 관해 어떠한 태도를 취할 것인지 의견이 갈리고 있다. 

이처럼 첨예한 갈등이 되는 이슈가 쌓여 있는 상황에서, 다음 대선을 치르는 과정 자체가 미국의 정치 위기 심화로 이어질 가능성에 대한 우려가 나오고 있다. 단적으로 트럼프는 2020년 대선 패배를 아직까지 인정하지 않으며, 이러한 주장을 유세에서 지속하고 있다. 2021년 ≪로이터≫ 여론조사에서도 공화당 지지자의 55%가 바이든의 승리는 투표 조작에 의한 것이라고 믿는 것으로 나타났다. (2016년 대선 힐러리 클린턴 지지자는 11%가 투표를 불신했다.) 이는 ‘민주주의의 위기’가 나타나는 여러 나라와 비교해도 매우 심각한 상황이라고 할 수 있다. 2024년 대선에서 한쪽이 확실히 우세하게 승리하지 않으면 미국으로서는 박빙의 대선만 3번 연속 치르는 셈으로, 선거 자체가 미국 사회의 분열을 심화할 것이다. 부정선거 음모론을 주장하는 트럼프 지지자들이 바이든이 대통령으로 인준되는 것을 막기 위해 국회의사당을 무력으로 점거하여 세계에 충격을 주었듯, 유사한 혼란이나 폭력 사태가 터질 수도 있다. 

이러한 심각한 정치 위기는 대만 위기와 같이 민주당, 공화당 양당 간 합의가 있는 사안에조차도 미국의 대응을 무력화하고 세계의 위기로 전이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예컨대, 앞서 소개한 『중국은 어떻게 실패하는가』는 2025년 1월, 양당이 서로 대선 승리를 주장하며 각자 취임 선서를 준비하는 가운데 대규모 집회에 모인 양측 지지자들이 거리에서 충돌하는 상황에서, 즉 미국이 국외에 신경 쓰는 것이 불가능한 상황에서 중국이 마침내 대만을 전면 침공하는 시나리오를 제시한다. 그런데 군사적으로 보았을 때, 미국은 중국의 대만 침공 개시 직후에 효과적으로 대응하는 데에 실패하면 선택지가 많지 않다. 세계 각지의 미군 전력을 끌어와서 대규모 장기전을 치르거나, 1945년 이후 최초의 실전 핵무기 사용을 결정하여 중국군의 대규모 출병을 막거나 해야 하는 것이다. 물론 어느 쪽이든 대단히 어렵고 엄청난 파급효과를 불러올 선택이다. 

대선이 무사히 치러지고 바이든이 재선에 성공한다고 가정하면 바이든 1기의 전략이 2기에서도 유지될 것이다. 즉, 미국 국내적으로는 인프라 정비, 노동자 권익 보호, 일자리 창출, 핵심 산업 경쟁력 제고로 중산층을 재건하고 국력을 튼튼히 하는 전략이 유지될 것이고, 대외정책에서는 ‘민주주의 진영 대 권위주의 진영’이라는 세계 인식 하에 동맹국들과의 연대를 다층적으로 강화하여 중국과의 전략적 경쟁을 지속할 것이다. 

반면, 트럼프 2기 정책은 다소 준비가 미흡했던 1기와 달리 더 치밀하게 준비되고 있다. 이는 더욱 반동적, 보호주의적, (민주주의의 근간을 파괴한다는 의미에서) 인민주의적 방향으로 나아갈 것으로 예상된다. 트럼프가 현재까지 발표한 공약은 속지주의 시민권 폐지, 바이든 정부의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폐지와 화석연료 사용 확대, 우크라이나 지원 중단이다. 이는 국내 문화전쟁의 심화와 ‘미국이 없는 세계’로 이어질 내용이다. 트럼프는 동맹국 홀대와 고립주의의 맥락에서 대만 방어에는 소극적일 것으로 예상되는 반면, 중동 문제에 대해서는 집권 당시 예루살렘을 이스라엘의 정식 수도로 인정하고 이스라엘 주재 미국 대사관을 예루살렘으로 이전했듯이, 아랍 국가들의 반발을 의식하지 않고 이스라엘을 전폭적으로 지지할 것으로 보인다. 

보수 성향의 유명 싱크탱크 헤리티지재단은 ‘프로젝트 2025’라는 공화당 재집권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여기서 올해 낸 보고서 『리더십의 사명: 보수의 약속』은 트럼프 행정부 전직 당국자 다수가 집필에 참여하여 트럼프 2기의 정책 자료집처럼 여겨진다. 이 역시 한국, 일본을 비롯한 동아시아, 유럽, 중동 내 동맹국들의 방위 부담을 강화하고, 여러 국제기구와 협약에서 탈퇴하여 미국의 부담을 덜어야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중국에 대해서는 중국을 미국의 가장 중대한 위험이자 ‘전체주의 적’으로 규정하고 더욱 강력한 견제를 강조했다. 문화전쟁을 고조시킬 정책 제언도 많은데, 임신중지약 배포 처벌, ‘비판적 인종이론’(CRT, 미국의 인종차별이 사회제도 등 구조적 문제라고 보고 이를 개혁하려는 이론) 교육 반대, 불법 이민자 추방, 바이든 행정부의 기후위기 관련 법과 기관 폐지를 주장한다. 

특히 이 보고서는 연방 공무원의 선임과 해임을 대통령이 결정할 수 있도록 대통령의 권한을 확대하여, 연방정부에 대한 대통령의 통제력을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현재는 200만 명이 넘는 연방정부 인력 중 4천 명 정도만이 행정부가 교체할 수 있는 자리다. 또한 법무부와 연방수사국(FBI)의 독립성을 약화하고, 텔레비전과 인터넷 기업에 대한 규정을 만들고 집행하는 연방통신위원회(FCC), 다양한 독점금지법과 기타 소비자 보호 규정을 집행하는 연방거래위원회(FTC) 같은 독립기관을 대통령의 직접통제 하에 두자고 주장한다. 정치학자들은 이와 같이 인민이 선출한 대통령의 권한을 제어하는 제도와 기관에 대한 공격을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인민주의의 지표로 간주한다. 미국 내에서도 이미 이러한 주장에 대한 우려가 쏟아지고 있다. 
 

2024년 유럽, 극우 바람이 불 것인가?

그런데 세계는 또다른 ‘트럼프’가 곳곳에서 등장하는 형국이다. 특히 2024년 6월 유럽의회 선거를 앞둔 유럽은 반(反)이민, 반유럽연합, 반녹색을 내세우는 ‘극우 바람’ 내지는 ‘우파 바람’에 직면해 있다. 2022년의 동향을 보면, 선거제도 변경, 언론 탄압, 사법부 장악을 통해 장기 집권을 이어온 ‘헝가리의 트럼프’ 오르반 총리의 4연임이 결정되었다. 스웨덴은 총선에서 우파정당 연합이 과반을 차지하여 그동안 장기 집권을 이어온 사회민주당이 정권을 내려놓았는데, 극우 스웨덴민주당(SD)이 21%를 득표하여 사회민주당(30% 득표)에 이어 제2당이 된 사실이 더욱 주목받았다. 이탈리아 총선에서는 무솔리니의 국가파시스트당(PNF)의 후신 격인 이탈리아형제들(FdI), 마테오 살비니의 동맹(Lega),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전 총리의 전진이탈리아(FI)가 결성한 우파연합이 승리하여, 10월 조르자 멜로니 FdI 대표가 총리로 취임했다. 

올해는 4월 핀란드 총선에서 집권 사회민주당이 제3당에 그쳐 정권이 교체되었고, 제2당으로 약진한 극우 핀란드인당이 우파 연정에 참여하게 되었다. 10월 스위스 총선에서는 우익 성향의 스위스국민당(SVP)이 62석을 확보해, 41석을 얻은 사회민주당(SP)을 누르고 승리했다. 11월 네덜란드 총선에서도 반이민, 반이슬람, 반EU를 강하게 내세워 ‘네덜란드의 트럼프’로 불리는 헤이르트 빌더르스의 자유당(PVV) 의석이 17석에서 37석으로 늘어나 제1당이 되었다. 올해 여름, 마린 르펜이 이끄는 프랑스의 국민연합(RN)은 알제리계 청소년이 경찰의 총에 맞아 숨진 사건을 계기로 이민자들이 대규모 시위를 벌이는 국면에서, 이민 반대와 시위 강경 진압을 촉구하며 지지세를 확장했다. 독일의 ‘독일을 위한 대안’(AfD)이 최근 여론조사에서 집권 사회민주당(SPD)을 뛰어넘어 지지율 2위를 기록했다. 

유럽 밖이지만, ‘아르헨티나의 트럼프’ 하비에르 밀레이가 대통령으로 당선된 일도 이번 11월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밀레이는 파탄 난 아르헨티나 경제를 살리기 위해 아르헨티나 페소 대신 달러를 공식화폐로 채택하고, 중앙은행을 폐지하고, 정부 부처 수를 18개에서 8개로 줄이고, 국영 기업을 민영화하며, 대부분의 세금을 폐지하는 등의 극단적인 조치들을 공약으로 걸었다. 이외에도 장기·신생아·마약 매매 합법화, 총기소유 합법화, 임신중지 금지 등 자극적인 공약으로 충격을 주었다.

물론 유럽에서 극우의 약진과 우파로의 정권 교체만이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대표적으로, 올해 10월 폴란드 총선에서는 집권당인 극우 법과정의당(PiS)이 제1당 지위를 유지했으나 과반은 신좌파연합을 포함한 친EU 야권연합이 차지하여 정권을 교체했다. 7월 스페인 총선에서도 우파 인민당(PP)이 1당을 차지했지만, 극우 정당 복스(Vox)는 의석을 크게 잃어 우파연합이 과반 획득에 실패하면서 사회민주당이 계속 집권하게 되었다. 현재 영국에서도 노동당의 지지율이 여당인 집권 보수당에 20%가량 앞서는데, 노동당 대표 키어 스타머는 노동당이 다음 총선에서 승리하면 EU와의 협력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브렉시트 협정을 고치겠다고 밝혔다. 최근 우파연합으로 정권이 교체된 나라들에서도 중도·좌파정당의 의석수가 크게 줄어든 것은 아니다. 

그러나 크게 보았을 때 반이민을 가장 우선순위에 두는 여론이 유럽 내에서 확대되는 것은 분명하며, 우파·극우세력은 이를 적극적으로 공략하고 있다. 이러한 흐름이 2024년 유럽의회 선거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9월 ≪이코노미스트≫는 27개 EU 회원국 중 15개 국가에서 극우 인민주의 정당 지지율이 20%를 넘어섰다고 보도했다. 영국의 브렉시트를 반면교사로 하여 반EU 여론은 비교적 수그러든 반면, 극우정당이 기후위기 대응 정책에 따른 가계 지출 증가에 불만을 품은 표심을 공략하는 전략을 취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기후위기 대응에 ‘좌파’, ‘엘리트주의’ 딱지를 붙이며 시민의 적대감을 고조시키는 것이다. 
 
 

3. 남북한의 선택

 

정치와 연동된 한미일 관계의 미래

올해 8월 미국 캠프 데이비드에서 열린 한미일 정상회담을 통해 협력이 제도화되었다고 평가받는 한미일 관계도 2024년 3국 각각의 정치 상황에 큰 영향을 받을 것이다. 미국의 경우 앞서 보았듯 민주당, 공화당의 동맹 관리 전략이 매우 상이하므로, 만약 정권이 교체되면 한미일 관계에 미칠 영향도 클 것이다. 올해 4월 바이든, 윤석열 대통령이 합의한 ‘워싱턴 선언’도 휴지조각이 될 수 있다. 

한미일 ‘3각 협력’ 급진전의 배경이 되는 한일관계 개선에는 윤 대통령, 기시다 총리 개인의 의지가 상당 부분 기여했는데, 이 둘의 정치적 입지는 현재 위태롭다. 윤석열 정권은 집권 이후 계속된 낮은 지지율을 크게 반등하지 못한 상태로 올해 10월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패배, 사활을 걸었던 2030년 부산 엑스포 유치전 참패 등 연이은 악재에 빠져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내년 4월 총선에서 야권이 승리하면, 윤석열 정부가 심각한 조기 레임덕에 빠질 것이 예상된다. 현재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 사이에는 대외정책과 한반도 정책에 대해 어떠한 동의지반도 보이지 않는다. 올해 더불어민주당은 후쿠시마 핵 오염수 방류 반대 투쟁을 대대적으로 벌이며 윤석열 정부를 ‘대일 굴종 외교’라 비판하고, 윤석열 정부의 우크라이나, 대만 관련 입장을 ‘대미 굴종 외교’라 비판하며, 한미일동맹 강화가 한반도·동아시아 정세를 더욱 위태롭게 한다고 주장해 왔다. 이를 감안하면, 여당이 총선에서 패배할 경우 윤석열 정부의 대외정책과 한반도 정책에 대한 공격은 더욱 심해질 것이다. 

윤 대통령이 공들인 한일관계 파트너 기시다 총리의 지지율도 올해 6월부터 떨어져 집권 이후 최저인 20% 초반까지 추락했다. 조세 정책, 인사 문제, 일본판 주민등록증 ‘마이넘버카드’ 보급을 둘러싼 혼란 등 국내 이슈에서 악재가 계속되었고, 엔저와 물가 상승에 대한 대중적 불만도 있다. 일본 정치에는 경험상 총리 지지율과 여당 지지율의 합이 50%를 밑돌면 정권 유지가 불가능하다는 ‘아오키 법칙’이 있는데, 최근 집권 자민당 지지율도 20%대라 ≪아사히신문≫, ≪마이니치신문≫, ≪지지통신≫ 등의 조사에서 총리, 여당 지지율 합이 50% 미만으로 나왔다. 총리 임기가 내년 9월까지, 중의원 임기는 2025년 10월까지라 기시다 총리가 조기에 교체될 것 같지는 않지만, 기시다가 재집권할 가능성이나 여론의 반발을 무릅쓰고 한일관계 개선을 위한 제스처를 적극적으로 취할 가능성은 낮아지고 있다. 
 

핵무장한 4대 세습 국가를 준비하는 북한

한국, 미국의 대북정책과 대외전략이 향후 정치 상황에 따라 변동성이 큰 것과 달리, 북한은 ‘핵무장한 4대 세습 국가’라는 유일한 목표를 향해 모든 노력을 다하는 모습이다. 그 어느 때보다 북한의 대남 핵전쟁 시나리오와 남한의 핵무장 시나리오가 구체적으로 논의 테이블에 올라와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오늘날 북한의 핵 전략이 뜻하는 바를 제대로 인식하고 이에 대응할 필요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북한의 핵을 일종의 ‘협상용’으로 보는 시선이 여전히 한국 사회 내에 존재한다. 한반도 핵전쟁 위기의 원인과 해법을 거의 전적으로 한미 당국의 대북정책에서 찾는 주장 또한 이러한 사고 틀 안에 있다. 그러나 현재 북한 정권은 핵무기를 “공화국의 국체”라고 부를 만큼 비핵화 의사가 전혀 없다. 또한 미국이 아니라 남한을 향해 핵무기를 사용할 의사를 드러내며, 이를 가능하게 하는 전술핵무기 개발 전략과 선제 핵공격 법제화, 대남‘통일전쟁’ 시나리오를 공개하고 있다. 이는 북한이 ‘비대칭적 확전형’ 핵 전략을 채택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고도로 권력 집중적인 북한 정권이 과연 핵 사용 권한을 현장에 분배할 수 있겠냐는 부분을 제외하면, 최근 북한의 행보는 ‘비대칭적 확전형’의 표지들과 거의 일치한다. 이는 주지하듯 가장 공격적이고 위험한 핵 전략이다.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 정치학 교수 비핀 나랑의 3가지 핵 전략 구분법은 냉전 시기 미국, 소련과 같은 초강대국이 아닌 그 외 지역 핵무장국들(중국, 인도, 파키스탄, 이스라엘, 프랑스, 남아프리카공화국 등)의 핵 전략을 ‘합리적 결정구조’에 따라 예측하는 틀로서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다. 나랑은 지역 핵보유국들의 핵 전략을 ① 촉매형(catalystic), ② 확증보복형(assured retaliation), ③ 비대칭적 확전형(asymetrical escalation)으로 구분한다. 

촉매형은 제3국(주로 미국)의 군사적, 외교적 지원을 동원하여 자국의 안보 이해를 달성하려는 핵 전략이다. 핵을 쓰겠다고 위협하거나 모호한 상태에 있는 핵 능력을 공개하겠다고 위협하여 지원을 끌어내는 ‘협상용 핵’이다. 이런 목표를 달성하는 데에는 작은 위협으로도 충분하므로, 적은 양의 핵무기, 심지어 아직 완전히 작동하지 않는 핵무기만 있어도 충분하다. 핵무기의 실전 사용을 진지한 선택지로 고려할 확률은 낮다. 

확증보복형은 상대방의 핵 공격을 직접적으로 억제하는 것을 목표로 하므로, 촉매형보다 더 위험하다. 핵심은 적의 공격으로 어느 정도의 피해를 당하더라도 살아남아 핵무기로 보복할 수 있는 능력(2차 타격 능력)을 갖추고 이를 드러내는 것이다. 실제 전장에서 적의 군사적 목표 달성을 막으려 한다기보다는 2차 타격 능력이 있다는 사실 자체로 적의 공격 가능성을 억지하는 것이 목적이기 때문에, 이 단계까지는 핵무기의 배치와 사용 절차가 중앙통제식으로 관리된다. 전술핵무기의 배치와 운용은 이에 부합하지 않으므로, 2차 타격 능력은 존재하되 전술핵무기는 보유하지 않는 것이 확증보복형의 가장 명확한 지표다.

마지막으로, 비대칭적 확전형은 가장 위험하고 공격적인 핵 태세다. 이는 군사, 민간 목표에 대한 핵무기 선제 사용으로 신속하고 비대칭적인 확전을 일으킬 능력을 갖춰 상대방의 재래식 공격을 억제하려는 전략이다. 적에게 저강도 도발을 감행하여 군사적 목표를 달성하면서도 적의 보복은 억제하는 방패 기능을 할 수도 있다. 평시에는 핵무기를 중앙통제식으로 배치할 수도 있지만, 재래식 공격을 확실하게 억제하려면 핵무기를 실전에서 사용할 태세를 갖춰야 한다. 그러려면 핵 자산을 신속하게 분산, 배치할 수 있어야 하고, 전투 최전선의 최종 군사 책임자에게 전술핵무기 또는 전략핵무기를 사용할 책임을 사전 위임할 수 있어야 한다. 비대칭적 확전 태세가 제대로 작동하려면 핵 능력, 배치 패턴, 핵의 광범위한 사용 조건이 대외에 투명하게 알려져 억지력을 발휘해야 하는데, 이는 상당한 지휘 통제 압력을 유발하고 의도치 않은 핵무기 사용의 위험을 증가시킬 수 있는 요건이다. 마찬가지로, 적의 재래식 전력을 상대로 핵무기를 사용할 수 있는 능력과 그렇게 할 의사를 드러내어 위협을 가해야 하는데 이 역시 핵무기의 운영과 관리에 막대한 비용과 부담을 초래한다. 나랑은 이러한 높은 부담을 안고 비대칭적 확전형을 선택한 국가들은 심각한 안보 위협에 직면한 국가들이었다고 설명한다. 

그렇다면 각국은 어떤 기준으로 핵 전략을 선택하는가? 나랑이 제시한 합리적인 핵 전략 최적화 과정은 다음과 같다. 제일 먼저, 가장 부담이 적은 촉매형 전략을 통해 쉽게 개입시킬 수 있는, ‘뒷배’가 되어줄 제3국이 있다면, 국가들은 촉매형을 택한다. 그런 제3국이 없는 반면 재래식 화력이 우세한 적국이 근거리에 있다면 비대칭적 확전형 외에는 선택의 여지가 없다. 그런 후견국이나 적국이 없고, 중앙권력이 군에 핵무기 통제 권한을 나눌 생각이 없다면 확증보복형을 택한다. 핵무기 통제 권한은 분산할 수 있지만 실제로 실전 운용이 가능할 정도로 핵 태세를 갖추기에 자원이 부족하다고 판단하면 확증보복형을 택한다. 그렇게 할 자원이 있으면 비대칭적 확전형을 택한다. 

이렇게 보면, 북한은 촉매형을 택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북한과 역사적, 정치적으로 긴밀히 연결된 후견국 중국이 있어, 적은 부담으로 안보 보장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2014년 당시 나랑도 북한의 전략을 촉매형으로 예상했다. 그는 북한이 추가적인 핵무기나 투발수단 개발이나 핵 교리 공식화 없이 이러한 전략을 장기적으로 유지하는 것이 충분히 가능하다고 평가했다. 오로지 중국에 버림받을 것을 두려워하거나 북중관계가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악화되었을 때만 북한이 비대칭적 확전형을 택할 것이라고 보았다. 

그러나 오늘날 북한은 (모든 특징이 완전히 들어맞지는 않더라도) 비대칭적 확전형으로 전략을 전환한 것으로 보인다. 2021년 1월 조선노동당 8차 당대회에서 김정은 위원장이 전술핵무기 개발을 공식화한 이후 올해까지 탄도미사일, 순항미사일 등 다양한 전술핵 투발수단 시험이 이어졌다. 북한 당국은 이러한 미사일 발사가 남한의 목표물에 대한 전술핵 타격 훈련이라고 공개적으로 발표해 왔다. (실제 기술적 완성도는 의심받지만) 올해에는 최초로 전술핵탄두 ‘화산-31’과 전술핵 탑재 잠수함을 공개하는 등, 전술핵 역량을 과시했다. 2022년에는 김정은 위원장과 김여정 조선노동당 중앙위 부부장이 남한에 대한 핵무기 사용 가능성, 북한의 선제적인 핵 공격 가능성을 처음으로 공언했다. 지난해 9월의 ‘핵무력법령’은 선제 핵 공격 옵션을 법제화하고 핵무기의 사용 조건을 밝혔다. 올해 8월에는 전쟁 초기에 남한 주요 거점에 전술핵무기를 투하하여 주도권을 장악하고 미국의 개입을 막는 “남반부(남한) 전 영토 점령” 시나리오를 공개했다. 이러한 행보들은 비대칭적 확전형의 특징과 일치한다. 

왜 북한은 나랑의 예측을 벗어났는가? 그의 예측 모델을 탓하기에는, 대부분 국가가 모호하고 작은 핵 능력만으로도 안보 제공을 얻어낼 수 있는 후견국이 있다면 정치적, 경제적 부담을 최소화하기 위해 촉매형을 택할 것이라는 가정은 충분히 합리적이다. 기실 2019년 하노이 북미정상회담 결렬 이후 북중관계는 오히려 더 좋아졌다. 미중 전략적 경쟁과 중국의 ‘대만 통일’ 의지 강화,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로 국제정세가 변화하는 속에서 중국은 국제사회의 대북제재를 우회하여 북한을 지원하고,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과 군사정찰위성 발사에 대한 UN 안전보장이사회 차원의 규탄과 추가 제재를 막아왔다. 북한은 이와 같이 중국이라는 명확한 후견국이 있다. 미국 정부가 우크라이나, 중동, 대만 위기와 국내의 문제들을 관리하기에도 바빠 북한 문제를 후순위로 미룬 현 시점에, 북한 당국이 “한미동맹이 북한 체제의 군사적 전복을 꾀하며 치명적이고 긴박한 위협을 가하고 있다”고 진심으로 느낄 것이라 보기도 어렵다. 아사자가 발생했다는 말도 나오는 만큼, 공격적인 핵 전략 운용을 감당할 만큼 자원이 넉넉하다고 할 수도 없다.

북한 당국이 국제적 고립 심화와 경제난을 감수하면서, 이렇게 ‘비합리적’으로 비대칭적 확전 전략을 택한 까닭은 무엇인가? 세습 정권의 안위에 대한 궁극적인 보장을 구하고자 하는 끝없는 노력으로밖에는 해석할 수 없다. 올해 북한 건군절(조선인민군 창건일) 열병식, 9·9절(북한 정권 창립 기념일) 열병식, 11월 군사정찰위성 ‘만리경 1호’ 발사 축하연회와 같은 주요 순간마다 김정은 위원장은 딸 김주애를 대동했다. 2월에는 북한 ICBM ‘화성-17형’ 사진과 함께 김주애의 사진을 담은 우표가 공개되기도 했다. (공식적으로 확인된 바는 없지만, 미국 자유아시아방송(RFA)은 소식통을 인용하여 만리경 1호 발사 이후 김주애를 ‘조선의 샛별 여장군’으로 일컫는 간부 교육이 진행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김주애가 정말로 김 위원장의 후계자냐 아니냐와 별개로, 이런 행동이 소위 ‘백두혈통’의 통치를 다음 대까지 이어가겠다는 의지의 표명이라는 데에는 이견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북한 당국에게 북한 주민의 삶의 질 제고는 뒷전인 것으로 보인다. 올해 6월, 영국 BBC는 북한 내부 주민들과의 독점 인터뷰를 통해 북한의 식량난과 내부 통제가 1990년대 이후 가장 심각한 상황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북한 내 정보 접근이 힘든 상황에서, 식량난이 어느 정도로 심각한지에 관해서는 여러 상반된 분석이 있다. 북한 당국은 올해 가을 추수 상황을 두고 “전례 없는 좋은 작황”이라고 선전한 반면, 같은 시기 4인 가족이 목선을 타고 동해 북방한계선(NLL)을 넘어 “너무 배가 고파서 살기 위해 내려왔다”며 귀순 의사를 밝히기도 했다. 

한국개발연구원(KDI) ≪북한경제리뷰≫는 이런 엇갈린 모습에 대해, 북한의 식량위기는 식량 생산량의 절대 부족이 아닌 분배·유통이나 저소득의 문제일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한다(이지선, 「높은 쌀 자급률에도 불구하고 왜 북한주민들은 식량난을 경험하는가」, 2023년 8월호). 북한의 배급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쌀이다. 쌀은 다른 곡물과 다른 상징성을 띠며 시장에서 교환가치가 크다. 북한 체제의 핵심 지지층이 몰려있는 평양(총인구의 11.9% 거주)은 우선적으로 쌀 배급을 받는다. 평양 거주자는 직접 농사를 짓거나 하지 않아 배급 의존도가 월등히 높기에, 북한 당국은 체제 안정 유지를 위해 이들을 위한 쌀을 확보하는 것에 매우 높은 우선순위를 둔다. 반면 전국적으로는 쌀 배급을 받지 못하는 주민이 대다수다. 배급제가 이렇게 차별적으로 운영되는 상황에서, 작년부터 본격적으로 시행된 신양곡정책은 배급을 받지 못하고 소득수준이 낮아 시장(장마당)에서 식량을 구하기 힘든 주민들의 영양부족 현상을 심화시켰다. 당국이 시장에서의 쌀, 옥수수 거래를 금지하고 양곡판매소로 시장을 대체하여 곡물 통제를 강화하려는 목적으로, 농가의 초과 생산량을 시장보다 낮은 가격으로, 반강제로 수매하기 시작했다. 이로써 농가의 소득이 줄고 시장에 유입되는 쌀의 양이 줄은 반면 음성화된 쌀 거래나 사재기, 매점매석은 늘어나면서, 소득수준이 낮은 주민들의 쌀 접근성이 악화한 것으로 추정된다. 
 

남한의 핵무장, 한반도 핵군비통제 회담 시대를 열 수 있는가? 

그런데 남한 일부 거점에 전술핵무기를 투하하여 빠르게 남한의 반격 능력을 소각하고 ICBM으로 미국의 핵우산을 무력화하여 해외의 무력 개입을 차단하겠다는 북한의 “대남통일전쟁” 시나리오가 실현된다면, 이는 (물론 많은 남한 시민이 희생될 것이나) 우리가 흔히 ‘핵전쟁’하면 떠올리는 ‘모든 것이 불타 없어지는 상호절멸’은 아니다. 북한은 전쟁을 그렇게 끌고 가는 대신, 추가 핵공격을 위협하며 남한의 항복 또는 배상을 요구하면 된다. 인구와 경제 규모가 북한보다 훨씬 큰 남한을 직접 통치할 엄두는 내지 못할 것이나, 남한을 미국의 핵우산 대신 북한의 핵우산 아래 두고, 남한의 외교권, 국방권을 회수하며 반도체 등 핵심 산업을 통제하려 할 수 있다. 한마디로, 무력을 통한 일종의 ‘연방제 통일’이다. 중국이 대만과 대만 민중을 지도에서 지워버리기 위해 대만 침공을 기획하는 것이 아니라, 대만과 ‘일국양제식 통일’을 이루고 세계 반도체 공급망의 핵심 기업 TSMC를 손에 넣고자 하는 것임과 유사하다. 

이와 같이 위기 시 미국의 핵우산이 과연 작동할지에 대한 불안(북한의 전략 때문만이 아니라, 트럼프와 같은 돌출적 정권이 등장할 우려도 포함된다)이 커지고 북한의 비핵화 전망이 사실상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남한도 핵을 보유해야만 궁극적인 억지력과 핵군비통제 회담이 가능할 것이라는 주장이 확산되고 있다. 한반도 전문가 안드레이 란코프 국민대 교수는 올해 ≪조선일보≫ 인터뷰에서 “한국의 주권과 독립을 보호하는데 ‘남핵’ 보다 더 좋은 수단은 없다. 남핵을 포기해선 절대로 안 된다”고 발언했다(“尹 정부 1년 외교 성적은 ‘A0’...힘들어도 남핵 포기 안 돼”, 2023년 6월 25일). 그는 한국을 보호할  핵무기 사용 여부는 미국 대통령 1명만 결정하는 일이므로, 한미 핵협의그룹(NCG), 전술핵 재배치, 전략자산 배치 등은 ‘속이 텅 빈 예쁜 상자’라고 언급한다. 트럼프가 표방하는 고립주의 대외정책이 미국에서 많은 지지를 받는 현실에서, 미국 대통령이 미국 본토의 희생을 감수하고 한국을 사수하려 할지 미지수라는 것이다. 그러한 상황에서는 남한 내에 전술핵이 배치돼 있어도 무용지물이다. 란코프 교수는 북한이 2030~40년대 중에 ‘남조선 해방’ 명령을 내리고 위와 같은 전쟁 시나리오를 실천하여 남한을 속국으로 삼으려 할 수 있다고 전망한다. 

정권과 여당 인사, 보수언론과 전문가들도 이러한 근거로 남한의 자체 핵무장을 포함한 선택지들을 거론한다. 올해 1월 윤석열 대통령은 “북한 핵 문제가 더 심각해지면 한국에 전술핵을 배치한다든지 우리가 자체 핵을 보유할 수도 있다”고 발언했는데, 이는 한국 대통령이 최초로 ‘자체 핵무장’을 공개 언급한 일이다. 대중적으로도 북한의 비핵화 전망에 대한 비관과 위기감이 강해지면서, 남핵 찬성 여론이 올라가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런데 통일연구원이 6월 발표한 ‘KINU 통일의식조사 2023’에 따르면 올해 남한 핵 보유 찬성 여론은 60.2%로 오히려 2021년, 2022년에 비해 줄어들었다. 통일연구원은 오히려 북한의 미사일 발사가 빈번해진 상황인데도 이러한 결과가 나온 것은, 국내 정치적 요인과 더불어 자체 핵보유 문제가 본격적으로 공론장에서 논의되기 시작한 것에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예를 들어, 올해 조사는 처음으로 독자 핵개발 추진에 따라 직면할 수 있는 위기(경제 제재, 한미동맹 파기, 안보위협 심화, 핵 개발 비용, 환경파괴, 평화 이미지 상실)를 제시하는 문항을 포함했다. 이러한 위기에도 불구하고 핵무장에 동의한다는 답변은 36~37% 수준이었다.

실제로 남한의 독자적 핵무장에는 남한의 핵무기비확산조약(NPT) 탈퇴와 국제사회의 비판이 동반될 것이다. ‘남한의 북한화’까지는 아니겠지만, 국제사회의 제재로 큰 경제적, 정치적 타격을 받을 것이다. 란코프 교수는 위 인터뷰에서, 일시적으로 1997년 IMF 외환위기  때보다 민생이 어려워지는 상황을 가정했다. (그는 그럼에도 몇 년 정도 그런 시련을 견디고 나중에 사실상 핵보유국으로 묵인받는 것이 한국의 장기적인 국익에 제일 좋은 방법이라고 주장했다.) 

이를 차치하고서라도 남한의 독자 핵무장을 통해 한반도의 안정이라는 목표를 이룰 수 있냐는 문제가 있다. 미국과 국제 핵통제 체제가 부과한 제약을 깨고(따라서 한미관계에 단기적으로 큰 타격을 입히고) 독자적으로 생존을 모색한다는 것은 생각보다도 매우 어려운 일일 것이다. 현실적으로 남한은 지난 70여 년 동안 말 그대로의 ‘한반도 운전자’였던 적이 없었다. 북한과의 핵 협상이나 대북 핵 운용 전략을 남한이 독자적으로 짜고 시행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며, 필연적으로 발생할 혼란기는 북한의 위협에 취약한 시기가 된다. 고립주의와 정치 변동성이 커지는 상황에서 미국이 남한의 핵무장을 빌미로 주한미군 감축, 철수 등을 고려할 수도 있다. 

올해 초 윤 대통령의 자체 핵무장 발언 뒤, 유명 핵물리학자 지그프리드 헤커 스탠퍼드대 명예교수는 북한 전문 매체 ≪38노스≫에 “한국이 핵폭탄을 빠르게 만들 기술력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폭탄 몇 개로 핵 억지가 작동하지 않으며, 한국이 자체 핵무장에 나서 미국이 핵우산을 철회한 상황에서는 더욱 그럴 것이다. 북한에 맞서 핵무장을 한다는 것은 수십 년 간 남한이 쌓아온 삶의 모든 부분에 부정적 영향을 끼칠, 경제·외교정책의 대전환을 필요로 한다. 미국의 개입 없이 북한의 핵 위협을 직접 상대해본 경험이 없는 상태에서, 남한은 작은 사건을 핵전쟁으로 키우는 대처를 할 수도 있다”고 기고했다(“The Disastrous Downsides of South Korea Building Nuclear Weapons”, 2023년 1월 20일). 그는 5월에도 “한국이 자체 핵무기를 개발하는 것은 정말 나쁜 생각”이라며, “경험이 부족한 두 명의 지도자(남북한)가 손가락을 핵 버튼에 올려놓게 되면 한반도의 위험이 어마어마하게 커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남북한과 같은 특수관계(1947년 인도가 영국으로부터 독립하면서 인도와 파키스탄으로 분할) 속에서 국경을 맞대고 거의 같은 시기에 핵무장을 한 인도와 파키스탄의 사례는, 핵무기의 존재는 평화가 아니라 군비경쟁과 항구적인 핵전쟁 위험을 가져온다는 반핵평화운동의 주장을 입증한다. 남아시아 전문가 프랭크 오도넬은 ≪38노스≫ 기고문에서 이 점을 설명한다(Subconventional Stability on the Korean Peninsula: Lessons From South Asia, 2023년 10월 24일). 당초 인도와 파키스탄의 핵무장은 상호 간의 군사적 모험주의를 완화하고 대화를 유도하려는 것이었다. 양국 모두 분쟁에 대한 군사적 해결책은 새로운 상호확증파괴(MAD) 상황에서 더는 가능하지 않을 것이므로 평화적 대화의 문이 열릴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1999년 카르길 전쟁, 2001년 파키스탄에 기반을 둔 무장단체들의 테러 등 준재래식 충돌이 계속되었고, 결국 양국은 상대에 대한 억지력을 갖기 위해 재래식 및 핵 능력을 강화하는 경쟁을 지속해 왔다. 예를 들어, 파키스탄 영토 일부를 협상용으로 점령하겠다는 인도의 ‘콜드 스타트’ 계획은 파키스탄의 전술핵무기 ‘나스르’ 개발로 이어졌다. 인도와 파키스탄은 현재에도 의도적이거나 의도하지 않은 핵전쟁 위기를 어떻게든 피하면서 상대와의 제한된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높일 수 있는 정밀 타격 능력 구축에 몰두해 있다. 2019년에도 양국이 1971년 이후 처음으로 서로의 영토를 공습하여 전쟁 직전까지 간 풀와마-발라콧 사태가 있었다. 마찬가지로, 남한의 핵무장이나 재래식 군비 증강은 북한과의 전면전 위험을 높일 수 있다. 새로운 정밀 타격 무기를 보유할수록, 정책 입안자들은 제한된 군사 옵션을 사용하고 싶은 유혹을 느낄 것이다. 
 

어떻게 대안을 만들어 낼 것인가

11월 21일 북한의 ‘핵·미사일 공격의 눈’이 될 군사정찰위성 ‘만리경 1호’ 발사 뒤 일주일간의 상황은 인도-파키스탄의 사례를 상기시킨다. 발사 직후 윤석열 정부는 ‘9·19 남북군사합의’ 일부 효력 정지를 발표했다. 이에 북한은 즉시 9·19 합의 파기를 선언하고 “합의에 따라 중지하였던 모든 군사적 조치들을 즉시 회복할 것”이라고 밝혔다. 북한이 병력과 중화기를 투입하여 비무장지대(DMZ) 최전방 감시초소(GP) 11개를 복원하고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에 배치된 병력을 권총으로 무장시키자, 한국군 GP의 복원도 추진 중이다.

이처럼 남북한 당국이 마치 서로 기다렸다는 듯 군사적 조치를 강화하고 있으나, 대중적으로 설득력이 있는 대안을 제시하는 것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민주당이 정권을 잡는다고 해도 이미 한반도와 세계의 조건이 크게 변한 상태에서 파산한 문재인 정부의 한반도 정책을 다시 시도하기는 어려울 것이며 그때와 다른 결과를 기대할 수도 없다. 사회운동의 구호는 여전히 ‘반핵평화’여야 하지만, 냉전 시기 서유럽 내 반핵평화운동이 선제적, 일방적 군축을 주장하고 이것이 동유럽 내 반핵평화운동, 자유노조운동을 자극했던 사례와 달리, 현재 남한이 군축에 나선다고 해서 이것이 북한의 변화를 불러올 것이라고 보기도 어렵다. 이에 화답할 북한 내 사회운동의 주체가 보이지 않으며, 북한 당국의 목표가 비핵화를 협상 대상으로 하여 어떤 반대급부를 얻어내는 것이 아니라 ‘핵 보유’ 그 자체라는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사회운동 일각이 주장하는 대로 북한·중국·러시아·이란 주도의 ‘다극화 세계로의 전환’을 지지하며 그 속에서 한미일동맹의 붕괴를 앞당기는 것이 대안이라고 할 수도 없다. 이들은 반미 권위주의 국가들의 모든 문제를 미국의 행동에 대한 반작용으로만 이해하고, 이 국가들의 실태를 잘못 파악하고 있으며, 권위주의와 국가폭력에 맞서 싸우는 민중들을 억압하는 지배세력에 동조한다(사회진보연대, 『반핵·반권위주의 국제민중연대를 위하여』, 2023). ‘미국이 없는 동아시아’, ‘미국이 없는 남한’이 그 자체로 더 긍정적인 전망이라는 식의 주장은, 남한의 미래가 중국의 ‘천하’나 북한의 핵무력에 의한 ‘영토완정’ 아래 놓일 것을 두려워하는 대중에게 계속해서 기각당할 것이다. 세계적으로도, 현존 국제질서를 무너뜨리는 북한·중국·러시아·이란의 꿈이 실현된 세상은 사회주의가 아니라 야만일 것이다. 

사회진보연대는 현존 질서의 파괴가 아닌 한계 극복을 지향했던 러시아혁명·중국혁명과 같은 대안이 존재하지 않는 상황에서는 민주주의와 규칙에 기반을 둔 국제질서를 유실하지 않으면서 대안사회로 나아가기 위한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해 왔다. 이를 위해서는, 무너져서는 안 되는 방어선을 설정할 필요가 있다. 우크라이나 민중의 항전에 대한 국제사회의 지지, 중국의 대만 침공 저지, 남한의 핵무장과 그 배경이 되는 북핵 고도화에 대한 비판 형성이 그러한 방어선이다. 그러나 국내에서도, 세계 각국에서도 인민주의, 진영주의의 강화와 정치 위기가 인류 공동의 생존과 이익을 위한 논의 자체를 어렵게 하고 있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토론과 대안 모색의 공간을 열고 동의지반과 연대를 만들어가는 것은 2024년에도 우리의 최우선 과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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