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노동 정세전망
지난해 발표했던 「2025년 노동 정세전망」(《계간 사회진보연대》 2024년 겨울호)에서는 올해 노동시장을 전망하며 초고령화와 초저출산 사회로의 진입을 의미하는 고용 지표의 징후들을 확인하고, 저성장과 3중 부채, 대외무역의 불안정성이 노동시장 격차에 어떤 영향을 줄 것인지 논의한 바 있다. 2026년 노동 정세전망에서는 올해 주목했던 노동시장의 위기가 여전히 심화하고 있는 상황에서 노동시장의 구조적이고 장기적인 불안 요인들에 좀 더 주목하고자 한다.
1. 한국 노동시장의 구조적 불안 요인
1) 성장률은 반등했으나 여전히 심각한 고용 격차
2025년 3분기 성장률은 반등했지만, 한국경제 전반의 회복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최근 성장세는 반도체와 조선 등 일부 대기업 중심으로 나타난 회복세를 반영한 것에 불과하며, 수출 부문 내 양극화는 오히려 더 커졌다는 진단이 제기된다. 중소 제조업 부문은 신규 주문 감소, 설비투자 정체, 경기전망지수 하락 등 침체 국면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내수의 성장률 기여 역시 정부 재정지출이 확대된 영향이 크다. 최근 서비스업 고용의 양적 확대도 저임금, 저생산성 업종이 중심이어서 경제 전체의 생산성 향상과 고용의 질 개선으로는 이어지지 못한다. (자세한 내용은 이번 호에 실린 정성진의 글을 참고하라)
이러한 경제적 불균형은 올해 산업별, 지역별 고용 위기로도 드러났다. 미국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정책 여파로 철강과 중화학공업을 중심으로 제조업 기반이 흔들리면서, 경북 포항과 충남 서산이 잇달아 “고용 위기 선제 대응 지역”으로 지정되었다. 이는 지난 8월 전남 여수와 광주 광산구가 지정된 데 이어 제조업 중심 지역의 고용 위기가 확산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노동부는 직업훈련비, 생계비 대부, 고용유지지원금 확대 등 각종 대응책으로 지역 고용 위기를 선제적으로 방어한다는 계획이지만, 이미 산업의 위기가 인구 감소와 지방 소멸 위기 등 복합적 요인과 중첩되어 고용 충격으로 이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한편, 청년층 신규 채용 일자리 지표는 심각한 내림세에 있다.
최근 국가통계포털(KOSIS)에 따르면, 임금 근로 일자리 중 20~30대 신규 채용은 2025년 2분기 기준 240만 8천 개로, 작년 같은 기간보다 11만 6천 개나 감소했다. 이는 2018년 관련 통계 작성 이래 2분기 기준 가장 적은 수준이다. 청년 신규 채용은 2022년 279만 3천 개에서 2023년 272만 5천 개, 지난해 252만 4천 개 등으로 3년째 감소세를 이어가고 있다. 특히 제조업과 건설업에서만 8만 개의 신규 일자리가 감소했는데 이는 전체 청년층 신규 채용 감소분 중 약 70%를 차지하는 규모다. 특히 이 부문은 비교적 일자리 창출 여력이 크고 안정적인 임금 근로 분야라는 점에서 신규 일자리 창출이 상당히 저조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30대 이하 청년층 신규 채용 일자리 추이와 20대 임금근로자 추이
오른쪽 20대 임금근로자 추이에서 위쪽 그래프가 정규직, 아래쪽 그래프가 비정규직을 나타낸다. 전체적으로 청년층 신규 채용 일자리 수가 감소하는 가운데, 특히 청년층 정규직 수가 급감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자료출처: 《동아일보》)
취업 문턱을 넘더라도 청년층의 고용은 불안정하다. 통계청 발표에 의하면, 2025년 8월 기준 20~30대 임금노동자 중 비정규직 비중은 31.7%로 2004년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으며, 기간제 고용 비중 역시 2015년 12.7%에서 2025년 19.6%로 급증했다. 이처럼 올해 한국의 노동시장은 산업, 지역, 세대별 고용 기반이 더 취약해졌다. 특히 기업의 투자가 위축되며 신규 일자리를 만들어내지 못하고, 청년들이 양질의 노동시장으로 진입하기 어려워져 청년층 고용 한파가 장기화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2) 낮은 실업률의 이면: 매칭효율성 증가와 청년 ‘쉬었음’ 인구의 비노동력화
통계청이 발표한 『2025년 10월 고용동향』에 따르면, 전체 고용률은 70.1%로 전년 동월 대비 0.3% 상승했다. 실업률은 2.2%로 –0.1% 하락했으며, 전체 취업자 수는 2904만 명으로 전년 동월 대비 19.3만 명(0.7%) 증가했다. 반면 비경제활동인구 중 20~30대 ‘쉬었음’ 청년의 증가가 여전히 두드러졌다. 특히 30대의 ‘쉬었음’ 인구는 22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서비스, 보건복지, 고령자 친화 업종 중심의 고용이 낮은 실업률을 견인하고 있는 양상이다.
취업자 증감 전체 추이와 연령별, 산업별 추이 (자료출처: 《뉴시스》)
최근 주요 기관 연구보고서에서는 한국경제의 장기 저성장에도 불구하고 실업률이 낮게 유지되는 원인을 여러 측면에서 분석하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팬데믹 이후 경제개발협력기구(OECD) 주요국 중 한국에사 가장 낮은 실업률이 유지되고 있는 원인을 분석한다. 표면적으로는 경기회복과 정부의 고용지원 정책이 주요한 원인으로 보이지만, 실질적인 원인은 한국 노동시장 내부의 변화를 주목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특히 매칭효율성 향상이 핵심 요인임을 강조한다.
‘매칭효율성’(matching efficiency)은 노동시장 안에서 ‘구직자’와 ‘빈 일자리’가 얼마나 효과적으로 연결되는가를 나타내는 지표로, 매칭함수에 의해 정의된다. 이는 구직자와 일자리 정보가 제대로 연결되는지, 채용 플랫폼의 고용서비스가 얼마나 효율적으로 작동하는지, 구직자-기업 간의 상호 탐색시간이 줄었는지, 노동자의 이동 가능성이 얼마나 되는지를 파악할 수 있는 지표다. 따라서 매칭효율성이 상승한다는 것은 구직기간이 짧아진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최근 한국의 매칭효율성이 증가한 요인은 ▲ 2010년대 이후 디지털 기반 구직, 채용 플랫폼(잡코리아, 사람인, 알바몬 등 민간 플랫폼과 정부의 고용서비스 및 워크넷 활용 증가 등)이 급속히 확산했다는 점 ▲ 서비스업, 단순, 비정규, 단시간 일자리가 증가함에 따라 이러한 일자리 특성이 직무의 표준화가 가능하고 노동자의 전환이 쉬워 즉각적인 매칭 효율이 높아졌다는 점 ▲ 여성과 고령층의 고용이 돌봄, 요양, 행정 지원 등 단기, 유연화된 일자리 확대로 이어져 매칭 속도도 빨라졌다는 점 등이다. 보고서는 한국의 노동시장이 2018년 이후 지속적으로 구직률이 상승했음에도 불구하고 실업률이 낮게 유지된 현상을, 매칭을 통한 노동의 수요와 공급에 구조적으로 적응한 결과로 분석한다. 따라서 적어도 중기적으로 현재의 낮은 실업률이 계속 유지될 것으로 전망한다.
주목할 점은 한국의 노동시장이 고용의 긴축도가 이처럼 높아졌음에도 불구하고, 임금 상승은 억제되었다는 사실이다. 평균 명목 및 실질 임금 상승률은 코로나19 대유행 이전보다 낮아졌는데, 이는 노동시장 매칭효율성이 고용률은 높이지만 임금 상승은 둔화시킬 수 있다는 의미다. 일반적으로 고용률이 높아지면 일할 사람이 부족해져 임금이 오른다. 하지만 고용률이 높아지는 이유가 ‘노동자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일자리와 구직자가 더 잘 연결되는’(즉, 매칭효율성이 높아지는) 덕분이라면 임금 상승의 효과는 그만큼 크지 않다. 한국의 노동시장은 매칭으로 형성된 일자리가 대부분 저임금 서비스업의 단시간, 단기 비정규직 노동이기 때문에 고용률이 높아져도 임금 인상의 효과는 낮았던 것이다.
그런데 매칭효율성 증가로 인한 고용률 상승의 이면에는 지역과 산업, 직종과 부문별로 심각한 불균형이 존재한다. 한국은행은 2021년 2월 발표한 「코로나19 이후 노동시장 미스매치 상황 평가」에서 코로나19 대유행 이후 한국의 높은 고용률과 낮은 실업률이 특정한 부문과 산업, 지역의 인력 부족을 동반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고용의 ‘미스매치’(mismatch)는 지역, 산업, 직종에서 노동의 수요와 공급이 서로 잘 맞지 않는 상태를 의미한다. 한국은행은 이어 「지역노동시장 수급 상황평가」(《BOK 이슈노트》 2023-35호)에서도 2019년 4분기와 2023년 4분기를 비교해 전국 16개 시도 중 15개 지역에서 노동시장 긴축도(구인율이 구직률보다 큰 정도)가 상승했지만, 동시에 12개 지역에서 미스매치 지수가 커졌다고 분석했다. 지역 제조업 일자리의 만성적인 구인난과 지방 청년인구 유출, 건설업이나 제조업과 같은 고위험·고강도 노동에 대한 기피, 고령화에 따른 돌봄·요양 수요의 확대 등 지역, 산업, 직종별로 미스매치의 원인을 진단할 수 있다.
앞서 논의한 ‘매칭효율성 증가’와 ‘지역과 부문의 미스매치’ 현상을 종합하면 현재 한국 노동시장의 불균형이 더욱 분명하게 보인다. 서비스, 플랫폼 기반의 단순 저임금 일자리는 온라인 디지털 매칭을 통해 빠르게 연결되면서 실업률을 낮추는 효과를 내지만, 제조업·돌봄·요양 부문과 지방의 중소 영세 부문에서는 충원되지 않는 일자리와 반복되는 인력난, 신규 채용 감소 등 미스매치가 심화하고 있다. 즉 외부노동시장에서는 저임금, 저생산성 일자리가 빠르게 늘어나고 있지만, 특정 부문에서는 인력 부족과 고용의 공백이 확대되고 있다.
한국개발연구원(KDI) 역시 「최근 낮은 실업률의 원인과 시사점」(2025년 11월)에서 유사한 분석을 제시한다. 2021년 이후 경제성장률이 둔화했음에도 불구하고 2% 대의 낮은 실업률을 유지하는 상황을 고용 여건이 개선된 것으로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이 보고서는 2015년 이후 실업률이 3.6%에서 2.7%로 약 0.9%p 하락한 핵심적 요인은 20대 청년층의 ‘쉬었음’ 인구 증가라는 점에 주목한다.
경제성장률과 실업률(위), 생산가능인구 대비 '쉬었음' 인구의 비중(아래)
위 그래프에서 볼 수 있듯, 코로나19 위기 이전 3%대 중후반에 이르렀던 실업률은 2021년 들어 빠르게 하락한 후 2%대 중후반의 낮은 수준을 이어가고 있다. 특히 2021년 이후 경제성장률이 둔화되기 시작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실업률은 여전히 낮은 수준을 지속하고 있다는 점에서 한국 노동시장에 구조적 변화가 발생했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아래 그래프에서 볼 수 있듯, 2005년 당시 15세 이상 생산가능인구의 3.2%(123만 명) 수준이었던 ‘쉬었음’ 인구는 2015년 이후 증가세가 크게 확대되어 2025년에는 생산가능인구의 5.6%(254만 명)가 ‘쉬었음’ 상태에 있는 것으로 나타난다. (자료출처: 김지연, 「최근 낮은 실업률의 원인과 시사점」, 《KDI 현안분석》, 2025년 11월 6일.)
‘쉬었음’ 인구는 2005년 123만 명에서 2025년 254만 명으로 증가했다. 생산가능인구 대비로는 3.2%에서 5.6%로 증가했다. 특히 20대의 ‘쉬었음’ 비중은 같은 기간 무려 64% 증가했다. 생산가능인구가 줄어들고 있지만 ‘쉬었음’ 인구는 지속적으로 증가하는 역설적인 현상이다. 청년층이 구직을 포기하는 사유는 “원하는 일자리 없음”이 30.9%(20대)를 차지한다. 취업 경쟁에서 청년층의 조기 이탈이 지속적으로 강화되고 있는 것이다. 실업률 하락의 45~71%가 이러한 구직 포기 증가, 특히 청년층의 구직 포기 증가에 의한 것으로 분석된다.
보고서는 만약 20대 ‘쉬었음’ 비중이 지금처럼 급증하지 않았다면 2025년 실업률이 현재 2.7%보다 0.4~0.7%p 더 높아졌으리라고 추정했다. 또 매칭효율성 개선 역시 2015년 이후 지금처럼 좋아지지 않았다면, 2025년 실업률이 0.2~0.4%p 더 높게 나올 것으로 추정했다. ‘쉬었음’ 청년 효과와 매칭 효율성 증대 효과 두 가지를 합치면 총 0.9%p로, 현재 실업률 하락 폭의 68% 이상이 설명된다는 것이다.
청년층 ‘쉬었음’ 인구 증가는 생산가능인구 감소가 본격화되는 상황에서 노동 공급 기반 자체를 심각하게 위협하는 요인으로 지적되고 있다. 한국노동연구원이 최근 발표한 「비구직 청년의 특성과 정책과제」(2025년 7월)는 통계청 경제활동인구조사 10년(2015~2024년) 동안 19~39세 비구직 청년의 인구 특징을 분석한다. 비경제활동 청년인구 중 ‘육아’ 상태 인구는 10년간 26.8%에서 13.8%로 절반 가까이 줄어들지만, ‘쉬었음’ 상태 인구는 10.5%에서 20%로 두 배 가까이 상승했다. 특히 부모와 함께 거주하는 미혼 남녀 대졸자의 경우 ‘구직 의사 있음’ 비중이 전반적으로 감소하는 추세에 있다. 전체 ‘쉬었음’ 청년 중 구직 의사는 있지만 스스로 취업 가능성이 작다고 보는 청년이 빠르게 늘어나는 추세다.
부모와 함께 사는 미혼 비경제활동 청년의 특징
‘구직의사 있음’ 비율은 2016년 약 55%대에서 시작하여 2024년에 이르기까지 50%로 전반적으로 점차 감소하는 양상을 보였다. 이는 이 집단 내에서도 경제활동을 시작하고자 하는 적극적 의지가 다소 약화되고 있음을 시사한다. 이를 더 극적으로 보여주는 것은 일자리가 주어졌을 때 취업이 가능하다고 응답한 비중이 동일 기간 54%에서 31%로 떨어진 점이다. (자료출처: 이정민, 「비구직 청년의 특성과 정책과제」, 한국노동연구원, 2025년 7월.)
“일자리가 주어졌으면 일을 시작할 수 있었는가”(취업가능성)에 “그렇다”고 답한 비율은 2015년 54%에서 2024년 31%로 급락했다. 더욱이 이 집단에서 구직 의사가 있는 ‘쉬었음’은 10% 안팎에 그쳤던 반면, 구직 의사가 없는 ‘쉬었음’이 20% 수준에 이르고, 구직 의사는 있지만 기타 사유로 비경제활동 상태에 머무는 비중이 40%를 넘는다. 보고서에 따르면, 비구직 청년들의 장기화 요인은 주로 ▲ 반복된 취업 실패로 인한 좌절감 ▲ 가족의 경제적 지원으로 인한 구직 압박 부재 ▲ 적합한 일자리 부족 ▲ 직업 정보 및 네트워크 부족 등의 이유로 구직활동을 중단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취업 경쟁에서 탈락하거나 노동시장에 진입할 유인을 잃어버린 청년들이 지속적으로 누적되고 있음을 시사한다. 보고서는 20대 중반까지는 청년들이 실업과 이직을 반복하지만, 이 시기를 넘기면 비경제활동 상태로 굳어지는 경향이 있어서 시간이 갈수록 이들이 노동시장으로 돌아올 가능성이 희박할 것으로 전망한다. 따라서 이렇게 누적되는 ‘쉬었음’ 청년층의 장기적인 ‘비노동력화’가 우려된다.
이처럼 여러 보고서가 제기하고 있는 낮은 실업률, 매칭효율성 증가로 확대된 저임금·단시간 중심의 일자리, 지역과 산업의 고용 미스매치, ‘쉬었음’ 청년층의 장기적 비노동력화와 같은 징후들은 단순히 일시적인 경기 흐름에 따른 현상이 아니라, 한국 노동시장의 구조적 변화를 보여주는 신호로 해석할 수 있다. 여기에 고용위기 지역이 확대되고 청년 신규 채용이 급감하는 현상까지 종합하면, 오늘날 한국의 노동시장은 겉으로 드러난 고용 지표와 달리 심각한 불균형과 취약성을 안고 있음을 알 수 있다.
3) 소결: 노동시장 격차와 서비스업 저생산성의 문제
노동시장 이중구조와 격차가 확대되는 가운데 내부노동시장은 위축되고 외부노동시장은 빠르게 팽창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일자리의 불안정성은 더 이상 노동시장 내부의 정책이나 제도만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산업과 지역의 경제구조 전반에서 비롯된 구조적 문제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 산업별 성장과 후퇴는 해당 부문의 일자리 수요와 공급을 결정해 왔으며, 장기 저성장이 지속되는 현재에는 이러한 산업 변화가 고용에 더 직접적이고 즉각적인 영향을 미친다. 제조업과 건설업, 서비스업 등 주요 산업 전반에 대한 종합적인 분석이 필요하겠지만, 이번 글에서는 특히 최근 고용 증가의 대부분을 흡수하고 있는 서비스 산업의 문제를 개략적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한국 노동시장은 1997년 외환위기 이후 25년여 동안 제조업 축소와 서비스업 확대라는 변화를 꾸준히 겪어왔다. 2000년대 초반까지 서비스업은 제조업 구조조정의 ‘완충지’이자 비정규직 고용의 ‘저수지’ 역할에 머물렀지만,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장기 저성장 국면에서는 저임금·저생산성 서비스 노동과 플랫폼 기반의 노동이 고용을 대량으로 흡수하면서 외부노동시장 팽창을 주도하게 되었다. 제조업의 고용 창출 능력이 약화하고 플랫폼·단순 서비스 부문만 고용을 확대하는 상황은 앞서 확인한 미스매치의 심화, 청년 비경제활동 인구 증가, 지역 제조업 기반의 붕괴와 결합하여 노동시장의 취약성을 한층 강화하고 있다.
특히 서비스업 내에서도 고부가가치 생산자서비스는 성장하지 못하였지만, 도소매·숙박업·음식업 등 저부가가치 부문만 과도하게 팽창하는 현상이 두드러진다. 한국노동연구원이 발표한 「한국경제의 구조 변화와 서비스업 고용」(2007)은 서비스업을 생산자 서비스·소비자 서비스·공공 서비스로 구분하면서, 한국은 제조업 중심 성장전략 속에서 생산자 서비스의 성장 기반을 마련하지 못한 채 소비자 서비스 중심의 고용구조만 비대화되었다고 지적한다. 서비스업의 고도화가 이루어지지 못한 채 경쟁과 혁신이 미약하고 투자 기반이 취약한 저부가가치 고용구조가 고착되었다는 것이다. 오늘날 노동시장에서 고용의 65%를 차지하는 서비스업의 노동생산성은 지난 20년간 제조업의 40% 수준에서 정체되었고, 팬데믹 이후에도 장기 추세보다 7~10% 낮은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서비스업 내 업종별 비중 변화(위)와 노동생산성 추이(아래)
서비스업 중 도소매, 숙박음식, 보건복지분야 취업자 비중은 급증했으나 제조업과 민간서비스 간의 노동생산성 격차는 확대되고 있다. (자료출처: 한국은행, 「우리나라 서비스 산업의 생산성 평가 및 정책적 대응 방향」, 《BOK 이슈노트》, 2025년 7월 3일.)
한국의 서비스업은 오랫동안 제조업의 보조적이고 파생적인 기능에 종속되었다. 실제로 서비스업 총산출의 32%가 제조업 수출과 직간접적으로 연계되어 있어 독립적인 사업적 축적이 이루어지기 어려웠다. 더불어 서비스업은 사회적으로도 공공재, 규제 대상으로 취급되어 민간투자와 혁신 기반이 취약했다. 민간 서비스업 투자율은 2000년 26%에서 2022년 18%로 하락하였으며, 서비스 기업의 시가총액은 제조업의 절반 수준에 머물고 있다.
이러한 산업구조의 취약성과 영세성은 진입장벽이 낮은 저부가가치 서비스업으로 창업이 몰리고, 특히 1인 자영업 비중이 73%에 달하는 생계형 자영업이 과도하게 증가하고 ‘회전문 경쟁’이 고착되는 결과를 낳았다. 특히 이들 업종은 노동집약적이고 업무매뉴얼이 표준화 되어 있지 않아 기술과 자본 투자를 통한 자동화나 규모의 경제 실현이 어려워 생산성을 끌어올릴 기반 자체가 미약하다. 서비스업의 질적 전환을 가능하게 하는 산업적 변화 없이는 서비스업의 저생산성 구조가 개선되기 어려우며, 결국 오늘날 외부노동시장에서 광범위하게 나타나는 불안정성 문제를 단기적 정책으로 개선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2. 이재명 정부 노동정책 평가:
취약 노동 보호와 격차 축소, 노동정책만으로 가능한가?
2025년 6월 출범한 이재명 정부는 노조법 2·3조 개정, 정년 연장, 주 4.5일제 도입 등 민주당이 이전부터 노동계와 공조해 추진해 온 주요 의제들을 입법화하는 것에 노동정책의 우선순위를 두고 있다. 또한 △ 5인 미만 사업장 근로기준법 적용 확대, △ 특고·플랫폼 노동 보호를 위한 ‘일터기본법’ 제정, △ 산재 발생 시 원청 책임 강화, △ 물류·건설업 취약 노동부문 보호정책 등 외부노동시장 일자리의 불안정성을 관리하는 것에 정책의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이러한 정책들은 ‘미조직·취약 노동 보호’라는 측면에서 노동운동이 수십 년간 요구해 온 개선 과제를 일정 부분 반영하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그러나 정책의 긍정적 취지와는 별개로, 이러한 각종 보호정책이 현재 노동시장에서 심화하고 있는 격차와 불안정성을 실질적으로 해소할 수 있는지에 관해서는 객관적인 평가가 필요하다. 앞서 살펴본 대로, 현재 노동시장 격차에는 이미 서비스 산업의 구조적 제약이 깊숙하게 자리 잡고 있기 때문에 노동정책만으로는 그 격차를 근본적으로 좁히기 어렵다. 외부노동시장의 취약 노동을 보호하는 정책들이 작동할 수 있는 토대 자체가 이미 무너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이재명 정부 노동정책의 한계를 검토할 필요가 있다.
지난 20여 년 동안 한국 정부의 노동정책은 신자유주의적 노동유연화 담론 속에서 ‘유연안정성’(flexicurity)을 대안으로 제시해 왔다. 이는 사용자의 요구인 노동유연화를 보장하는 대신 정부가 적극적 노동시장을 포함한 다양한 노동 보호 정책을 통해 최소한의 안전망을 제공한다는 방식이다. 그러나 2020년대의 한국경제는 장기 저성장, 부채위기, 대외 불안정, 제조업 침체 등 복합 위기에 직면해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저임금·불안정 고용을 확대해 유연성과 안정성을 모두 잡는다는 유연안정성의 전제는 점점 설득력을 잃고 있다. 오늘날의 경제·산업 구조에서는 정부와 자본조차 유연화를 통한 고용조정이 미치는 단기적 경제성장의 효과가 약화했고, 양극화와 격차가 장기침체 악순환의 주요인이 된다는 점을 인정하고 있다.
이재명 정부의 노동정책 역시 역대 정부의 연속선에서 신자유주의 유연안정성이라는 틀 내에 존재한다. 5인 미만 사업장 근로기준법 적용 확대, 플랫폼 노동자 보호, 실노동시간 단축과 같은 정책은 유연화 기조를 유지하면서도 안전망을 보완하는 방식이라는 점에서 근본적인 틀의 전환이라기보다는 기존 경로의 연장선에 있다. 그러나 오늘날 노동시장 상황을 고려한다면, 이재명 정부의 노동정책을 단순히 ‘신자유주의’로 규정하고 비판하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불안정 고용의 만성화와 격차의 심각한 확대라는 현실에서 유연안정성이라는 노동시장 관리 기조 자체가 더 이상 작동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개별 노동정책이 노동시장의 격차를 해소하기 위한 실효성 있는 경로인지를 구체적으로 평가하고 비판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재명 정부의 노동정책이 실제로 외부노동시장의 불안정한 노동을 보호하고 노동시장 격차를 실질적으로 축소하는 방향으로 충분히 설계되어 있다고 평가하기는 어렵다. 먼저 입법이 예고된 정년 연장이나, 정부 차원에서 도입을 검토 중인 주 4.5일제와 같은 제도는 대기업·정규직 중심의 내부노동시장에 속한 일부 노동자들만이 주로 혜택을 누릴 가능성이 크다. 반면 서비스업·플랫폼 노동·단시간 노동 등 외부노동시장에서 일하는 다수 노동자에게는 적용될 여지가 매우 적다. 이러한 점을 고려하면 해당 정책들은 그 취지와는 별개로, 실제로는 노동시장 양극화를 완화하기보다 오히려 확대할 위험이 있다.
5인 미만 사업장 근로기준법 적용 확대나 ‘일터기본법’ 제정, 취약 노동부문 보호정책은 현재의 고용 위기와 노동자 간 격차에 대응하는 최소한의 보호막으로 필요한 제도다. 그러나 자본의 비용 저항과 시장의 부작용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어, 그 추진 경로에 대해서는 신중한 접근이 요구된다. 다양한 수준의 정책을 각각 평가할 필요가 있으나, 아래에서는 노동시장 이중구조와 관련해 특히 쟁점이 될 수 있는 ‘정년 연장 법제화’와 ‘5인 미만 사업장 근로기준법 적용’을 중심으로 한계와 과제를 논의하고자 한다.
1) 정년 연장 논의의 쟁점
민주당이 주도하는 ‘정년연장 TF’는 법정 정년을 2029년부터 3년마다 1년씩 단계적으로 늘려 2041년까지 65세로 연장하는 방안을 제시하고 있다. 최근 노동계 연구자들 사이에서도 정년 연장이 실제로 ‘누구를 위한 것인지’, ‘노동시장 현실과 얼마나 부합하는지’를 둘러싸고 상반된 견해가 드러나 쟁점이 되었다.
국회미래연구원이 발표한 「정년연장론에 대한 비판적 검토와 중고령 노동시장 정책의 재구성」(2025년 6월)은 현재 진행 중인 정년 연장 논의를 비판적으로 검토하면서, 60세 정년에 도달하기 전에 주된 일자리에서 퇴직하거나 비정규직·중소기업 등에서 실질적인 제도적 보호를 받지 못하는 다수 중고령 노동자의 고용 문제를 정책적 의제로 다룰 것을 제안했다. 보고서는 중고령층 노동시장 분석을 통해 ▲ 정년 이전 조기 이탈이 보편적 현상이고, ▲ 자발적 퇴직보다 구조적 퇴출이 다수이며, ▲ 산업·직업·고용 형태에 따라 퇴직 시점과 근속 경력 격차가 심각하고, ▲ 일부 안정된 집단에서만 정년제가 실효성을 갖는다고 지적한다.
이에 따르면, 정년퇴직으로 일자리를 마친 사람은 전체의 17%에 불과하며, 특히 여성은 9.1%에 그친다. 300명 이상 사업장에서 정년제를 시행하는 비율은 90% 이상이지만, 300명 미만 사업장에서 그 비율은 20% 남짓에 불과하다. 보고서는 이러한 현실을 근거로 지금의 정년 연장 논의가 “정년에 닿지 못하는 80%” 노동자를 외면하고 있다고 비판하며, 정년 연장이 실효성을 가지려면 임금체계와 고령자 고용관리라는 구조적 조건을 함께 논의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보고서의 주장에 대한 전면적인 비판도 제기되었다. 한국노총 중앙연구원 장진희 선임연구위원은 정년 연장과 임금체계 개편을 연결하려는 시도를 강하게 비판한다. 정년은 노동자의 권리이고 임금체계는 노사 교섭의 사안인데, 이를 연결하는 것은 결국 정년 연장의 대가로 고연차 노동자의 임금을 억제하려는 시도로 귀결된다는 것이다. (“직무급제와 정년연장의 잘못된 만남”, 《매일노동뉴스》, 2025년 12월 2일.) 그는 직무급이 이중노동시장 해소의 대안으로 제시되곤 하지만, 임금 격차의 본질은 임금체계가 아니라 기업 간 지불능력의 차이와 원·하청 불공정거래 구조에 있다고 지적한다. 실제로 호봉제 비중은 2010년 46.3%에서 2024년 12.8%로 급감했지만, 대기업·중소기업 임금 격차는 여전히 50~60%대를 유지하고 있으므로 임금체계가 이중구조의 핵심 변수가 아니라는 것이다. (“직무급제와 정년연장이 무슨 상관입니까”, 《매일노동뉴스》 2025년 11월 25일.)
이 논쟁에서 주목할 지점은 양측 모두 정년 연장 자체를 반대하지 않으면서도, 그 실효성과 부작용에 대해 다른 진단을 내리고 있다는 사실이다. 초저출산·초고령화 사회에 진입한 상황에서 정년 연장 자체를 반대할 이유는 없다. 그러나 정년 연장 법제화가 실질적으로 노동시장 격차에 어떤 영향을 줄 것인지를 예측하고 노동운동의 대응 과제를 논의할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 정년 연장과 임금체계를 별개의 사안으로 분리해 대응하는 것은 현실적이지 않다. 한국은 이미 2013년에 60세 정년을 법제화했지만, 조기퇴직·명예퇴직·정년 이전 구조조정 등 다양한 우회 관행이 지속되고 있어 법정 정년이 실질적인 노후 고용 안정으로 이어지지 않고 있다.
정년 연장이 현실에서 실효성을 가지려면 임금체계 개편과 연동된 논의를 피할 수 없다. 물론 이것이 개별 기업 수준의 직무급 도입을 주장하는 경영계의 입장에 동조하는 것은 아니다. 현재 임금체계 개편 논의가 ‘연공급제 폐지’라는 내부노동시장의 민감한 이슈로 치우쳐 고연차 노동자의 임금 억제로만 인식되는 상황에서 이 문제를 선뜻 제기하기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그렇지만 노동운동이 정년 연장 법제화만 요구하고 임금체계 논의를 별개의 사안으로 분리한다면, 법제화 이후 임금체계 개편은 정부와 자본이 주도하는 방식으로 추진될 것이다. 그 결과는 노동운동이 원하는 방향과 거리가 멀 것이며, 노동자 간 격차를 축소하는 방향으로도 나아가지 못할 것이다.
따라서 지금 노동운동이 제기해야 할 것은 산별 수준의 교섭과 합의를 통해 노동시장 전반을 아우르는 임금과 고용 기준을 확립하고, 정년 연장의 실효성이 중소·영세 사업장과 비정규직 등 취약 노동 부문까지 확장될 수 있도록 하는 논의다. 이를 위해서는 기업별 지불 능력 격차와 원·하청 거래구조를 동시에 개선할 수 있는 임금체계 개편이 병행되어야 한다. 노동운동은 올해 정년 연장 법제화가 추진되는 시기에, 이 의제가 조직된 노동 일부의 이해에 국한되지 않도록 정년에 닿지 못하는 다수 노동자의 노후 불안정성, 임금체계 개편을 산업적 수준에서 의제화해야 한다. 정년 연장 법제화만을 요구할 것이 아니라 고령노동의 문제 전반에 대해 종합적인 논의를 주도할 필요가 있다.
2) 5인 미만 사업장 근로기준법 적용 확대를 위한 조건
이재명 정부는 2025년 하반기부터 2028년까지 5인 미만 사업장에 근로기준법을 단계적으로 확대 적용하겠다는 로드맵을 발표했다. 구체적으로 2025년 하반기에 직장 내 괴롭힘 금지 및 모성보호 조항을 적용하는 것을 시작으로, 2027년 상반기에 유급·대체 공휴일 및 연차 유급휴가를 부여하고 2028년까지 초단시간 노동자에게도 4대 보험과 퇴직금, 주휴 수당 등을 지급하도록 추진한다는 계획이다.
현행법상 5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는 해고 제한, 연장·야간·휴일 근로수당, 연차휴가 등 근로기준법의 핵심 조항에서 배제되어 있다. 동일한 노동을 수행하면서도 기업의 규모에 따라 기본적인 노동권조차 보장받지 못하는 불합리한 차별은 노동운동이 오랫동안 시정을 요구해 온 과제다. 중소영세 사업장 노동자 권리의 사각지대는 반드시 해소되어야 한다.
그러나 정책이 현실에서 실효성을 가지려면 시장의 수용력과 정책이 안착할 수 있는 조건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 이 대목에서 문재인 정부 시기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의 교훈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최저임금의 지속적 인상은 당연히 필요하지만, 당시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은 곧 시장의 반작용을 막을 수 없었다. 당시 저임금 노동자의 시간당 임금은 단기적으로 증가했으나, 중장기적으로 총고용 시간이 감소하고 영세자영업이 경제적 충격을 받는 결과가 나타났다. 음식점을 비롯한 서비스 업종에서 무인계산대 등 자동화가 확산하고, 사용자들이 최저임금 적용을 회피할 수 있는 플랫폼 노동시장이 많이 늘어났다. 많은 영세 자영업자는 직원 채용을 포기했고, 자영업 폐업이 늘어나면서 시장소득 격차는 오히려 확대되었다. 정부는 이러한 충격을 완화하기 위해 재정지출을 늘렸으나, 그 과정에서 정부부채가 누적되는 속도도 빨라졌다. 노동운동의 요구가 정부의 정책으로 추진되더라도 자본의 비용 저항과 현장에서 정책이 안착할 조건을 충분히 고려하지 못한다면 제도가 후퇴하거나 정치적 소모전으로 변질될 가능성이 있다는 점을 보여주는 사례다.
국내 5인 미만 사업장의 70%는 도소매업, 숙박 및 음식점업에 집중되어 있고, 특히 숙박, 음식업의 경우 5인 미만 사업장 비중이 87.6%에 달한다. 이들 업종은 저생산성 업종에 집중되어 있으며 임대료, 재료비, 수수료 등 고정비 부담이 크고 부채상환 능력과 현금 흐름도 취약하다. 따라서 근로기준법 준수 비용의 부담으로 인해 영업 축소나 폐업, 근로계약의 음성화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제도의 정당성과 취지와는 별개로, 현실적 수용력을 고려하지 않으면 오히려 고용조건 악화와 노동권 후퇴를 초래할 수도 있다.
정부는 근로기준법 주요 항목을 단계적으로 도입하겠다고 밝히고 있지만, 그것만으로 영세 사업장의 폐업이나 고용축소를 막기는 어려울 것이다. 노동운동은 근로기준법 적용 확대를 요구하는 데 그치지 않고, 제도가 실질적으로 안착할 수 있는 조건을 함께 설계해야 한다. 5인 미만 사업장으로 위장하는 행태에 대한 규제, 미조직 노동자의 조직화 등을 사회적 논의의 장에서 주도적으로 제안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제도에 대한 시장의 저항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고 실질적인 노동권 확장이라는 성과로 이어갈 수 있다.
3) 소결
이재명 정부가 추진하는 노동정책의 근본적 한계는 현재 노동시장에서 심화하고 있는 격차와 만성적 고용 위기를 개별 정책들의 합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보는 데 있다. 정년 연장, 5인 미만 사업장 근로기준법 적용, 노조법 2·3조 시행 등 각각의 정책이 분절적으로 추진될 때 노동시장 전체에 어떤 효과가 나타날 것인지, 그리고 산업구조와 지역 경제의 불균형 등 노동시장 격차를 재생산하는 근본적인 경제 조건을 어떻게 변화시킬 것인지에 대한 종합적 구상은 찾아보기 어렵다. 개별 정책의 정당성과 별개로, 이러한 정책들이 상호작용하며 노동시장에 미칠 총체적인 영향을 고려한 종합적인 노동정책 설계가 없는 셈이다.
따라서 노동운동은 이재명 정부 노동정책을 평가할 때 정치적 성향이나 ‘친노동/반노동’이라는 단순하고 납작한 구도를 넘어서, 이러한 정책들이 실제로 노동시장에서의 격차를 지속 가능한 방식으로 완화할 수 있는지를 실증적으로 검증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러한 관점이 없다면, 노동운동 역시 제도 개혁에 대한 과도한 기대에 머무르다가 격차의 심화라는 현실 앞에서 또다시 무력해질 수 있다.
3. 2026년 노사관계 핵심 쟁점: 노조법 2·3조 개정안 시행
오랜 논란 끝에 노조법 2·3조 개정안이 지난 8월 24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① ‘사용자’ 범위 확대(실질적 지배·영향력을 미치는 원청의 책임 강화), ② 노동쟁의 범위 일부 확대, ③ 손해배상 청구 제한의 정비를 골자로 하는 이번 개정안은 다단계 하도급·간접고용 구조에서 발생해온 사용자 책임의 공백을 좁히려는 취지를 담고 있다.
이에 따라 노동부는 지난 11월 24일 노조법 시행령 개정안을 발표했다. 가장 핵심적인 쟁점은 “사용자 범위 확대”에 따라 원청에 대한 하청노조의 교섭권을 어떤 기준과 절차로 부여할 것인가다. 시행령 개정안의 요지는 ‘교섭창구 단일화’를 유지하면서 ‘교섭단위 분리의 기준’을 구체화한다는 것이다. 기존 노조법의 제29조 3항은 교섭단위 분리 사유로 1) 현격한 근로조건의 차이, 2) 고용 형태, 3) 교섭 관행을 제시하고 있었으나, 추상적인 문구에 대한 구체적인 해석은 노동위원회의 판단에 맡겨졌다. 이번 시행령은 제14조의11 3항을 신설해 위 세 가지 조항의 세부 항목을 구체화하고, “이해관계의 공통성”, “이익대표의 적절성”, “당사자의 의사” 등을 추가로 명시했다.
또한, 노동부는 원청과 하청은 원칙적으로 교섭 단위를 분리하고, 이후 하청노조와 원청노조가 공동교섭에 합의하지 못하면 창구 단일화 절차를 진행하되 노동위원회가 이러한 기준을 적용해 교섭 단위를 분리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또 복수의 하청노조가 공동교섭에 합의하지 못한다면 하청노조들 사이에서 다시 1) 개별하청별 분리, 2) 직무 등 유사 하청별 분리, 3) 전체 하청 통합 노조로 분리 등 여러 유형으로 교섭 단위를 분리할 수 있다.
제14조의11(교섭단위 결정) ③항 신설
③ 노동위원회는 교섭단위를 분리하거나 분리된 교섭단위를 통합하는 결정을 하는 경우, 다음 각 호의 사항들을 고려하여 교섭단위를 분리하거나 분리된 교섭단위를 통합할 필요가 있는지 여부를 판단하여야 한다.
1. 업무의 성질·내용, 작업방식, 작업환경, 노동강도, 책임비중, 임금체계·구성항목·지급방법, 근무시간, 휴일·휴가, 복리후생, 보수·복무규정 등 현격한 근로조건의 차이
2. 계약형태·방식, 직종, 채용방법, 정년, 인사교류 등 고용형태
3. 노동조합 조직 범위, 노동조합의 가입 대상 및 조합원 자격, 이에 따른 기존의 단체교섭 등 노사 간 협의 여부 및 방식, 단체교섭 대상의 적용범위 등 교섭 관행
4. 근로자 간 이해관계의 공통 또는 유사성, 다른 노동조합에 의한 이익 대표의 적절성, 통일적 근로조건 형성의 필요성, 안정적 교섭체계 구축 가능성, 교섭단위 유지 시 노동조합 간 갈등 유발 및 노사관계 왜곡 가능성, 당사자들의 의사를 고려하는 것이 교섭단위 분리 또는 통합의 취지를 실현할 수 있는 특별한 사정이 있는 경우 당사자들의 의사 등
노동부는 노동위원회 산하에 ‘사용자성 판단지원위원회’를 설치해 교섭 단위 분리 여부를 판단하고 각종 지침과 매뉴얼을 마련하겠다는 계획이다. 지침 내용에는 사용자성에 대한 ▲ 실질 ▲ 구체 ▲ 지배 ▲ 결정에 대한 해설이 포함될 것이라고 했다. 이처럼 노동부는 교섭단위 분리 기준을 구체화하는 것을 통해 하청노조가 원청의 사용자성을 근거로 교섭권을 확보할 수 있는 길이 열릴 것이라고 설명한다.
그러나 시행령 개정안의 한계는 교섭단위 분리 기준만 구체화하면 하청노조의 교섭권이 충분히 확보될 수 있다고 보는 접근방식에 있다. 노조법 2·3조 개정의 본래 취지는 공급망 전체에 걸쳐 실질적 지배력을 행사하는 원청에 사용자 책임을 부여하는 것이다. 이 취지를 실현하려면 기업 단위로 설계되어 작동하는 현행 창구 단일화 절차와 개정 노조법 간의 법적인 충돌부터 해결해야 한다. 다단계 하청구조에서 원청의 사용자성을 인정하면서 기업별 교섭을 전제로 한 창구단일화 절차를 그대로 적용할 경우, 하청노조의 원청 교섭권 확보 과정에서 절차적 혼란과 갈등이 지속될 수 있기 때문이다. 간접고용에 대한 원청사용자의 책임이 병존한다는 사실을 법적으로 인정하면서도, 정작 교섭 절차는 단일 사용자 내 복수노조 간 경쟁을 전제로 하는 기존의 틀을 유지한다면 노조법 2·3조 개정의 취지가 충분히 실현되기 어렵다.
한편, 시행령 개정안에는 교섭 단위 분리 기준에 ‘노조 조직 범위’, ‘타 노조의 이익대표 적절성’, ‘노조 간 갈등 가능성’ 등이 추가되었다. 이를 적극적으로 해석하면 민주노총이나 한국노총과 같은 ‘총연합단체별 분리’도 가능하다는 주장도 존재한다. 그러나 이러한 해석은 기업별 교섭체제가 공고하게 작동하는 현실을 과도하게 낙관하는 것이다. 창구 단일화 제도는 2011년 복수노조 허용과 함께 도입된 이래 기업별 교섭을 제도적으로 고착시켰다. 이 제도의 기본 구조를 유지한 채 교섭단위 분리 기준만 확대한다고 해서 산별교섭이나 초기업교섭으로의 전환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지지는 않는다.
무엇보다 총연합단체 또는 상급단체가 다르다는 사유만으로 교섭단위 분리를 인정할 법적 근거와 선례가 부재한 상황에서, 노동위원회가 산별교섭이나 초기업교섭 또는 총연합단체의 교섭을 허용하는 식으로 판단하리라고 기대하는 것은 무모한 낙관이다. 설령 노동위원회가 산별노조 교섭단위를 분리할 수 있다 하더라도, 산별 초기업 교섭을 반대해 온 사용자단체가 이를 수용할 것으로 기대하기는 어렵다. 이들은 그러한 노동위 결정에 불복해 행정소송 등 사법적 판단을 구하는 방향으로 대응할 것이다. 산별 초기업 교섭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형성되지 않았고, 사용자 측의 수용 의지도 없으며, 이를 견인할 유인도 없는 상황에서 시행령의 문구만으로 기업별 교섭체계를 넘어 노조법 개정의 취지인 원청 사용자 책임을 곧바로 관철하기는 어렵다는 현실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만약 노동부가 산별교섭이나 초기업 교섭을 실질적으로 추진할 의지가 있다면, 기존의 창구 단일화 제도를 원칙적으로 폐기하거나, 일반적인 교섭 단위 분리와는 별도로 산별·초기업·총연맹 분리 교섭에 관한 독립적이고 명확한 제도를 신설해야 한다. 그러나 이번 시행령은 해석의 여지를 간신히 열어두는 수준에, 그것도 하위 법령에 모호한 조항을 삽입하는 수준에 그쳤다. 이는 노동계의 요구를 형식적으로 반영한 것에 불과하며, 사용자의 반발에 대응할 제도적 기반이나 산별 교섭을 위한 사회적 합의를 구축할 로드맵은 없는 상태다. 시행령 개정안은 노조법 2·3조 개정이 제기한 본질적 취지, 즉 기업별 교섭체제를 넘어서 새로운 교섭 질서를 구축하는 문제에 해법을 제시하지 못한 채, 기존 교섭 질서와 관행을 온존하는 방향에 머물러있다. 현행 노조법의 구조적 결함은 그대로 방치하면서 개정 노조법의 취지가 무력화될 것이라는 우려가 크다.
2026년 3월부터 개정된 노조법이 본격적으로 시행되면, 노사관계의 가장 큰 이슈는 이 시행령 개정안의 입법 여부가 될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노동운동은 시행령의 개별 조항에 대한 찬반을 넘어, 기업별 교섭체제 자체를 전환할 수 있는 전략적 방향을 논의해야 한다. 이 대목에서 지난 정부들에서 추진했던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화’ 정책에 대한 노동운동의 대응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당시 노동운동은 개별 사업장에서 정규직 전환을 요구하는 투쟁에 집중했다. 그 결과 일부 노조는 성과를 거두었으나, 애초에 정규직화 자체를 목표로 삼을 수 없었던 대다수 비정규직 노동자의 문제는 방치되었다. 전체 비정규직의 고용안정이라는 노동운동의 과제와는 멀어진 것이다.
현재 노조법 2·3조 개정안 시행 국면에서도 유사한 함정이 존재한다. 개별 하청노조의 원청 교섭권 획득에만 집중한다면, 조직된 힘을 가진 일부 단위만 성과를 거두고 영세 하청, 다단계 간접고용 노동자들은 다시 소외될 것이다. 현시점에서 필요한 것은 개별 사업장 중심의 분산적 대응이 아니라 개정 노조법을 근거로 산업적으로 연결된 하청 노동자와 간접고용 노동자를 전략적으로 조직하고 공동투쟁과 공동교섭의 경험을 축적하는 것이다. 노동운동은 이렇게 노조법 2·3조 개정을 기업별 교섭체제를 넘어서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4. 노동운동은 정부 정책에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 격차 축소의 주체로 나서야 한다
지금까지 살펴본 바와 같이, 한국은 장기 저성장, 인구구조 변화, 서비스노동의 확장과 같은 복합적인 요인으로 인해 노동시장 이중구조가 더욱 심화하고 있으며 노동자 내부의 격차가 확대되고 있다. 낮은 실업률이라는 지표 이면에는 ‘쉬었음’ 청년층의 비노동력화, 저임금과 단시간 일자리 확산, 지역 제조업 기반의 위기 등 이전과는 다른 양상의 노동시장 불균형과 불안정성이 확대되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올해 출범한 이재명 정부가 노동운동이 오랫동안 요구해 온 정책 의제들을 상당 부분 수용하면서 노동계의 지지를 얻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특히 이재명 정부는 노동시장 불안정성에 대응하기 위해 취약 노동에 대한 보호정책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앞서 분석한 바와 같이 이러한 정책들이 노동시장 격차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정책이 되기는 어렵다.
정년 연장이 현실에서 실효성을 가지려면 임금체계 개편과 연동된 논의를 피할 수 없다. 노동운동이 정년 연장 법제화만 요구하고 임금체계 논의를 별개의 사안으로 분리한다면, 법제화 이후 임금체계 개편은 정부와 자본이 주도하는 방식으로 추진될 것이기 때문이다. 5인 미만 사업장 근로기준법 적용 확대 역시 필요한 과제이지만, 문재인 정부 시기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의 경험이 보여주듯 정책의 현실수용력을 고려하지 않으면 오히려 고용조건 악화와 노동권 후퇴를 초래할 수 있다.
노조법 2·3조 개정안도 내년에 본격적으로 시행되겠지만, 이것이 대다수 미조직, 하청, 비정규직 노동자의 교섭권을 실질적으로 보장하여 노동시장 격차를 축소하는 데 이르기까지는 지난한 과정이 필요할 것이다. 서비스 산업의 저생산성, 공고한 기업별 교섭체제, 산별교섭과 초기업 교섭에 대한 사회적 합의 부족과 사용자 측의 수용 의지 부재 등으로 인해 개정안의 취지가 실제로 실현될 수 있는 토대 자체가 취약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노동부가 발표한 시행령 개정안처럼 기업별 교섭체제의 기본 골격을 유지하면서 절차적 보완에 그치는 한, 노조법 2·3조 개정의 취지는 충분히 실현되기 어렵다.
심각한 노동시장 내 격차와 불균형을 해결할 수 있는 것은 다름 아닌 (노동시장의 가장 중요한 행위자인) 노동조합과 노동운동이다. 정년 연장과 고령자의 고용 안정 정책을 비롯한 취약 노동 보호 정책을 지속적으로 실현이 가능하도록 진전시키는 일과 노조법 2·3조 개정안 시행을 바탕으로 광범위한 하청·비정규직 노동자의 ‘노조할 권리’를 확보하는 일은 노동운동 스스로의 정책적 주도력 없이는 불가능하다. 노동운동은 각 노동정책이 현재 노동시장의 상황에서 실제로 모든 노동자의 노동권 신장과 격차 축소로 이어질 수 있는지를 종합적으로 진단하면서 정책적으로 개입할 필요가 있다.
한편, 노동운동은 이재명 정부가 노동 관련 이슈에 대해 포퓰리즘적 정치와 국가주의적 방식으로 접근하는 경향을 경계해야 한다. 무엇보다 이재명 정부가 강력한 국가 행정력과 처벌 중심의 규제를 강조한다는 점을 비판적으로 평가할 필요가 있다. 이재명 대통령이 취임 직후 직접 산업재해 발생 시 ‘24시간 직보 체계’를 명하고 반복적인 산재가 발생하는 사업주의 면허를 영구히 취소할 것을 지시한 것이 대표적이다. 국가의 권위와 행정력을 동원한 처벌이 ‘소년공 출신 대통령’이라는 서사와 결합하면서 노동문제의 전형적인 해법인 양 제시되고 있다.
이러한 접근은 노동 현안의 구조적 원인보다 기업에 대한 강한 제재와 단호한 국가 개입을 통해 노동 현안을 정부가 직접 개입해 해결할 수 있다는 인상을 주는 일종의 정치적 효과를 노린다. 실질적인 산재 예방이나 노동조건 개선을 위한 체계적이고 제도적인 접근보다는 정치적 상황에 따라 지지층 결집을 강화할 수 있는 강렬한 ‘규율의 이미지’를 활용하는 것이다. 그 결과 노동운동이 주도해야 할 노동 이슈에 대한 사회적 해결과 제도적 발전이 정부의 의지에 종속되는 경향이 나타날 수 있다. 물론 국가는 취약한 노동문제에 대해 법적, 행정적 안전망을 제공할 책임이 있다. 그러나 ‘노동 친화성’을 표방하는 국가주의적 경향의 위험에 대해 노동운동은 비판적 거리를 유지할 필요가 있다. 정권으로부터 ‘대리적 보호’를 기대하거나 요구하는 방식이 노동조합운동의 집단적 힘을 오히려 약화할 수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