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사회운동

사회진보연대 계간지


2010.3-4.9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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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3_기획_방민희.pdf

2010년 여성운동의 과제

여성의 노동과 재생산 권리 쟁취를 위하여!

방민희 | 여성국장
여성 고용과 일자리, 출산에 관한 사회적 관심이 급증하고 있다. 불안정한 여성 일자리와 저출산 문제가 새로운 것은 아니지만 최근 그 심각성을 더하는 지표들이 잇따르고 있다. 올해 1월 여성실업자수와 실업률이 1999년 중반 이후 최악을 기록했으며(실업자 21만4천 명 증가, 실업률 76.2% 증가), 2009년 ‘세계인구현황보고서’에서 한국은 합계출산율 1.22명으로 세계 최저수준이다. 저출산-고령화의 심각성으로 인해 사회적 위기감이 조성되며 여성 문제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그러나 분석과 해결책 대부분이 정부와 자본의 신자유주의 정책의 관점 속에 다뤄지며, 오히려 여성에 대한 공격과 통제의 형태로 제시되고 있다.
2010년 정부는 ‘여성에게 적합한’ 일자리를 늘리는 것이 고용부문의 주요 과제라고 밝혔다. 부담 없이 경제활동에 참가할 수 있도록 기존의 일 가정 양립정책을 현실화하고, 안정적 양육을 위해 노동 시간을 줄이는 유연근무제(퍼플잡)를 도입하겠다고 한다. 그리고 출산 장려 정책을 펴는 한편, 불법낙태 단속을 강화하여 출산율을 높이겠다는 계획이다. 이렇게 보면 정부가 적극적으로 여성들의 요구를 수용하려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 내용은 오히려 정부와 자본의 필요에 따라 여성인력을 활용하면서도 저출산 현상을 극복하려는 것에 가깝다. 일과 가정을 모두 책임져야 한다는 강요 속에 더 불안정한 일자리로 내몰려야 하고, 임신했을 경우에도 상황과 조건은 관계없이 무조건 아이를 낳아야 할 판이다. 여성의 일자리와 재생산 문제는 전체 민중의 일자리와 삶 전반에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문제지만, 이명박 정부의 불도저식 탄압에 위축된 노동자운동은 적극적으로 맞불을 놓지 못하고 있다.
정부가 ‘위기를 기회로 바꾸기 위해서’ 라며 내놓은 정책들이 ‘누구’의 ‘어떤 위기’를 ‘어떤 기회’로 바꾼다는 것인지, 그 대안이 여성과 노동자 민중을 위한 것이 아니라면 우리의 대응은 어때야 하는지에 대한 토론과 실천이 필요하다.

여성에게 가중되는 이중부담, 일ㆍ가정 양립 정책

여성이 일과 가정의 이중부담을 요구받아 온 것은 새로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경제위기와 저출산 고령화 현상이 심해지면서 새로운 양상이 나타나고 있다. 첫째, 일자리를 유연화시켜 불안정하더라도 여성고용을 늘리고, 시간을 조정해 일과 가정의 책임을 다시 여성에게 내맡기고, 둘째, 여성의 몸과 재생산과정에 대한 통제와 개입을 확대하면서 출산율을 늘리겠다는 것이다. 여성은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출혈적인 노동과 부담을 요구하는 방식으로 삶이 설계되어도 감내해야 하는 상황이다. 그리고 이런 국가와 자본의 요구가 일 가정 양립정책에 반영되어 있다.
최근 몇 년 사이 정부의 일 가정 양립정책의 기조는 ‘출산과 보육지원’에서 ‘노동시간의 유연성 제공’으로 변화했다. 이는 세계적 추세로 최근 유럽에서는 단시간 노동을 포함해 노동시간 운용을 유연하게 할 수 있는 고용형태를 포함한 노동시간 재배치정책으로 확대되고 있다. 한국도 유연근무제, 파트타임, 초과노동의 활용 등 유연화된 노동 형태를 일 가정 균형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확산하고 있다. 하지만 이는 노동자가 자의로 타의로 직장에서 퇴출되는 것을 최소화하는 대신 더 불안정한 일자리로 내몰리는 결과를 낳게 될 것이다.
1980년대 이후 여성의 교육기회가 확대되고 경제활동참가율이 증가하면서 결혼 이후에도 계속 취업하는 여성이 늘어났다. 일하면서 가정을 돌볼 수 있는 지원과 제도 마련은 여성의 요구가 되었다. 국가 차원에서도 여성을 직장으로 끌어내는 것은 중요한 문제였다. 서비스 유통 산업의 발달로 여성 인력 활용이 중요해졌기 때문이다. 정부와 자본의 이해관계 범위에서 여성의 요구는 1987년 남녀고용평등법 제정, 1991년 영유아보육법 제정 등으로 실현된다. 여성노동자들의 현실 조건을 간과함으로써 고용상의 평등과 영유아보육은 법 문구에 머물렀지만, 이때부터 여성의 일과 양육의 관계 문제가 등장했다.
1990년대 한국의 출산율이 급격하게 하락하고, 급기야 2005년 세계 최저출산율을 기록하며 일 가정 양립 논의는 새롭게 대두된다. 저출산이 심각한 사회 경제적 문제로 부각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신자유주의 노동유연화가 추진되고 복지가 축소되는 과정에서 오히려 여성의 이중부담을 ‘효과적’으로 조정하는 방식으로 일 가정 양립 논의가 이어진다. 현재에도 여전히 출산, 양육, 돌봄은 개별 가족 내에서 능력에 맞게 해결해야 할 일로 여겨지며, 그 역할을 하는 것이 엄마, 아내, 며느리, 할머니로 여성에게 일차적 책임이 있는 것은 변함없다. 즉 ‘여성이 직장을 그만두고 아이와 노인, 가정을 돌보느냐’와 ‘여성이 직장에 다니면서 아이와 노인 가정을 돌보느냐’의 두 가지 선택지만이 제시되어 왔다. 이렇게 여성이 경력단절을 경험할 수밖에 없는 근본적 원인에 대한 접근 없이 일 가정 양립은 여성이 처한 조건을 변화시킬 수 없다.
게다가 국가차원의 ‘우수인력’인 고학력 여성들이 노동시장으로 재진입할 수 있도록 유도하기 위해, 일 가정 양립 정책의 대상이 상대적으로 고임금의 안정적 일자리를 가진 여성에게 한정되었다. 일례로 산전후휴가나 육아휴직 의 제도적 기반은 어느 정도 갖춰진 편이고 그 제도를 활용하는 여성이 증가 추세인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다수의 여성 노동자는 고용보험 미가입 사업장에서 일하고 있거나 승진과 인사에서의 불이익, 사업주의 눈치 등으로 사용하지 못하고 있다. 제도의 사각지대에 놓인 여성이 대부분이지만 정부가 계속 일 가정 양립정책을 강조하는 것은, 유휴 여성인력을 값싸고 편리하게 이용하기 위해서다.
결국 정부는 일 가정 양립정책을 일하는 여성들의 요구라 포장하지만 대다수 여성의 현실을 반영하지 못할뿐더러, 여성이 저임금의 불안정한 일과 정부의 지원이 한계적인 상황에서의 가정을 모두 책임지게 사회적으로 강요하는 결과를 야기한다. 그리고 이런 강요는 최근 유연근무제 도입 추진의 배경과 정확히 부합한다.

유연근무제 도입이 낳을 문제점

지난 2월 18일 이명박 대통령은 국가고용전략회의에서 일과 가정의 양립을 지원하고, 소수가 장시간 노동하는 관행을 개선하기 위해 유연근무제를 확대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작년 말부터 여성부가 추진하겠다던 퍼플잡의 시행 계획을 대대적으로 공표한 것이다.
사무실에 출근하여 장시간 경직된 형태로 노동하던 것을 다양한 형태로 유연화하여, 노동자의 업무 효율성을 높이면서도 일과 가정생활을 양립할 수 있도록 해주겠다는 것이 정부안의 주요 내용이다.

[표1] 5분야 9유형의 유연근무제 (표 생략. 첨부파일 참조.)

이명박 정부의 유연근무제의 도입, 여성에게 희망이 될 수 있는가?
이명박 정부의 유연근무제가 여성의 일자리 창출과 일 가정의 이중부담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을까? 정부의 계획대로라면 일자리의 ‘수’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일자리의 ‘질’은 더욱 악화될 것이다. 현재 대다수 여성이 저임금 불안정한 일자리에 종사하고 있으며, 정부가 2009년 경력단절여성을 지원코자 전국에 100여 개를 설립했던 여성새로일하기센터에서 창출된 일자리만 봐도 비숙련-저임금 일자리였다. 또 유연근무제를 적용할 업무를 비숙련의 분담 가능한 주변업무로 꼽고 있는 상황에서 여성 고용의 질적 향상은 전혀 기대할 수 없게 된다. 남여 간의 임금격차는 여전히 크고, 여성의 빈곤과 저임금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상황에서 파트타임, 단시간 노동을 늘린다는 것은 오히려 여성의 노동을 더욱 불안정하게 만들뿐이다.
그렇다면 일 가정의 이중부담 해결의 문제는 어떠한가. 출산과 양육, 돌봄 노동이 여전히 여성의 몫으로 여겨지는 현실, 이로 인해 집안일을 병행해야 하는 여성의 일은 부수적 소득이 되며 여성의 노동 자체가 평가 절하 받고 고용 조건도 하향한다는 현실, 개별 가구의 소득 수준에 따라 보육ㆍ교육ㆍ돌봄 서비스를 사용할 수 있는 범주가 달라진다는 현실이 바로 여성들이 겪는 문제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는 이런 문제들을 근본적으로 해결할 의지는 없어 보인다. 출산과 양육, 가족 돌봄을 국가와 사회가 책임지는 대신 사회서비스 시장을 활성화하고, 이를 수용하는 것은 개별 가정과 개별 여성의 능력에 맡기고 있다. 다만 어차피 여성이 가족 내에서 양육과 돌봄을 수행해야 하고, 일도 해야 하니 노동 시간을 줄이거나 유연화함으로써 일과 가정의 양립의 부담을 조율할 수 있게 ‘도와’줄 뿐이다. 결국 이명박 정부가 여성들에게 선심 쓰듯 내놓은 유연근무제는 여성의 역할과 노동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변화시키지 못할뿐더러 여성의 일자리를 더욱 불안정하게 할 것이다.

유연근무제가 전체 노동자에게 미치는 영향
유연근무제는 일차적으로 가사노동의 전담자인 여성을 대상으로 하지만, 여성부에서 퍼플잡 도입을 밝혔을 당시부터 남성도 일과 가정의 양립을 위한 대상에 포함한다는 계획이었다. 유연한 일자리를 성별에 따른 실제 사용여부를 떠나 전체 노동자에게 적용하겠다는 함의가 중요하다. 정부가 추진하려는 유연근무제의 핵심은 현실의 노동자가 일과 가정을 양립하는 데 발생하는 어려움을 해소하기보다는 기존의 정규직 일자리를 쪼개 자릿수를 늘리는 데 있다. 또 노동시간과 장소는 유연화하되 시간활용도를 높여 집중적으로 생산량을 높이며, 노동통제를 통해 노동강도를 높이고자 한다. 정부가 말하는 생산성 제고와 고용 창출, 시간의 유연화의 의미는 한국의 단시간 노동 현황 속에 더욱 선명해진다.
세계적으로 단시간 노동이 늘어나는 추세고 한국 역시 단시간 노동 비율이 늘어나고 있다. 단시간 노동 확대를 주장하는 많은 연구자들이 단시간 노동을 열악한 일자리의 비정규직과 동일시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지적한다. 하지만 2007년 기준 단시간 노동 형태를 보면 대다수의 단시간 노동은 단순노무, 숙박 및 음식업, 서비스업 등 비숙련-저임금 직종에서 비자발적으로 선택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단시간 노동자의 70.2%가 여성으로 평균 53.1만 원의 임금을 받는다. 한편 최근 취업포털 인쿠르트가 직장인 1,074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다섯 명 중 한 명이 직장일 외 부업을 하고 있음이 드러났다. 상대적으로 안정된 직장에 다니고 있는 사람들 중에서도 경제위기를 거치면서 생활비 부족과 수입 감소로 부업을 할 수밖에 없는 투잡족이 늘어나고 있는 현실이다. 통계에 포함되지는 않았지만 임시직, 일용직의 경우 더욱 심각한 상황임을 예측해 볼 수 있다. 이런 상황임에도 정부는 단시간 노동자와 유연한 일자리를 더 만들겠다는 것이다.

공무원 시범시행은 본격적인 공공부문 구조조정의 신호탄
경력단절로 인한 여성인력(특히 고학력 여성)의 손실을 막고, 일자리 나누기를 통해 고용을 창출하겠다는 정부의 두 마리 토끼 잡기, 유연근무제는 올 하반기에 공무원부터 적용될 것이다. 그러나 현재 여성 공무원들에게 유연근무제를 비롯한 일 가정 양립 정책이 시급한 것이 아니다. 공무원은 상대적으로 모성보호관련 법, 제도가 잘 구축되어 있는 편이다. 오히려 주변 분위기나 경력 유지의 문제로 제도가 갖춰져 있음에도 사용하지 못하는 것이 문제다. 이런 상황에 비추어보면 여성 공무원들에게 선심 쓰듯 내놓은 유연근무제의 목적은 다른 곳에 있어 보인다.
정부는 먼저 「유연근무제 활성화 기본계획」을 마련하고, 여론수렴과 시범실시 등을 거쳐 확정한 뒤, 하반기부터 전 중앙행정기관과 지방자치단체에서 전면 시행에 들어갈 방침이다. 이를 이용해 공공부문의 방만한 경영을 타파하겠다는 이명박 정부의 공공부문 구조조정, 공무원 노조 무력화가 손쉬워진다. 유연근무제 도입을 일 가정 양립에 적합한 고용형태 발굴과 일자리 늘리기란 말로 포장해 저항을 줄이면서 구조조정에 이용할 가능성이 크다.
결국 이명박 정부의 유연근무제도는 공무원들에게 일과 가정을 양립하게 해 준다는 빌미로 공공부문 일자리를 대폭 유연화하는 것이 목적이다. 이는 공공부문에서 노동조건과 고용의 질을 악화시키고 전체 노동자의 노동조건을 악화시키는 결과로 이어질 것이다.

낙태처벌과 출산강요. 여성의 몸에 대한 권리는 어디에

저출산-고령화의 위기감에 대한 강조가 유연근무제처럼 여성과 전체 노동자에 대한 공격으로 다가오는 한편, 여성의 몸과 재생산 과정에 대한 통제와 개입으로도 드러나고 있다.
최근 보건복지부는 <불법 인공임신중절 예방을 위한 사회적 협의체>를 발족할 예정으로 의료계, 시민단체, 자선단체와 간담회를 진행했다. 보건복지부가 나서서 낙태예방 사회협의체라는 이름으로 논의를 시작한 것은 다음과 같은 배경에서 기인한다. 첫째, 저출산-고령화 현상이 심각해지며 여성의 출산에 국가가 직접적으로 관리, 통제에 나서고 있다. 둘째, 작년 말부터 본격적으로 낙태고발운동을 시작한 프로라이프 의사회의 보건복지부에 대한 압력이 작용했다. 대다수 사람들이 의아해할 정도로 급작스럽게 진행되고 있는 낙태에 대한 관심과 고발, 처벌 조치가 한국사회에 여성의 권리와 사회적 윤리에 대한 새로운 담론을 형성해갈 수 있을까? 이에 대한 대답은 부정적이다.

프로라이프(pro-life)의사회의 낙태고발 운동
작년 <진정으로 산부인과를 사랑하는 의사들의 모임>이 시작한 낙태근절 선언운동을 광범위하게 확대한다는 취지로 프로라이프 의사회가 작년 12월에 발족했다. 이들의 주요 활동은 낙태 시술을 하는 병원에 대한 제보를 받고 고발하는 것, 정부에 대해 낙태 근절을 위한 처벌 강화를 촉구하는 것이다. 프로라이프 의사회는 지난 2월 3일 낙태 시술 병원 세 곳을 서울중앙지검에 고발했으며, 전국의 산부인과에 불법낙태시술 중단 촉구 경고 공문을 발송하고, 정부에게 5대 정책과제를 제시했다.
이러한 활동에 예상치 못한 파급효과가 발생하고 있다. 대다수 산부인과들은 고발을 우려하며 낙태시술을 중단하고 있고, 걸려오는 상담전화조차 피하고 있다. 각 포털 사이트의 질문 게시판에는 원하지 않게 임신을 했는데 요즘 사회적 분위기 때문에 산부인과에서 낙태수술을 받을 수 없다며 가능한 병원을 알려달라는 질문이 쏟아지고 있다. 몇 가지 경우를 제외하고는 낙태가 금지되어 있는 한국의 현행법상 많은 여성들이 원하지 않거나, 낳을 수 없는 상황에서도 아이를 낳아야 하는 처지에 놓였다. 하루에 1000건이 넘는 ‘낙태공화국’의 오명을 벗어야 한다는 프로라이프 의사회의 낙태고발 운동은 하루에 1000여 명의 여성을 공포에 빠뜨리고 있다.
임신과 출산, 그리고 그 이후 양육까지 재생산을 둘러싼 일련의 경험과 과정은 여성의 삶을 구성하는데 대단히 중요한 문제다. 그렇기 때문에 여성이 출산을 결정할 때에는 자신의 육체적 심리적 상태와 출산, 양육, 직장, 사회적 관계 등을 모두 고려한다. 한편 여성의 출산과 재생산노동은 사회적으로도 큰 영향을 미친다. 최근 저출산 문제나 일 가정 양립의 필요성이 사회적 문제로 부각되는 것이 일례다. 여성의 몸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일이 개인과 가족, 사회에 대단히 중요한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한국에서는 출산과 낙태, 재생산에 대한 사회적 토론이 없었다. 서구에서처럼 페미니즘 운동이 확장되거나 논쟁이 크게 일어난 적도 없어 낙태를 여성의 권리로 제기하는 운동이 만들어지지도 않았다. 그렇다 보니 여성의 삶을 구성하는 재생산에 관한 문제는 개별 여성의 선택과 책임으로 넘겨지고 있다. 이런 상황은 원하지 않는 임신으로 낙태를 고민하는 여성에게 ‘사랑으로 낳으세요. 태아의 생명은 소중하니까요’라는 대답이 돌아와도 어쩔 수 없이 전전긍긍하며 음성적 낙태나 다른 방안을 찾게 하는 결과를 낳고 있다.

낙태 불법화와 단속 처벌의 강화가 아닌 여성의 재생산에 대한 권리를!
낙태를 불법화하고 단속과 처벌을 강화할 경우, 일명 낙태선박과 같은 것을 필요로 하는 여성이 늘어나게 될 수도 있다. 네덜란드의 낙태옹호단체 <위민온웨이브즈(Women on Waves)>는 낙태가 금지된 나라들을 찾아가 낙태선박에 여성을 태우고 공해에서 약물을 이용하여 낙태시술을 한다. 2001년부터 아일랜드, 포르투갈, 폴란드를 찾아가며 시작된 이들의 낙태선박은 아일랜드에 처음 갔을 당시 여성 200여명으로부터 ‘제발 도와달라’는 요청을 받았다고 한다. 이 단체의 대표 레베카 곰퍼러츠는 낙태를 반대하는 사람일지라도 인생에 한번쯤 ‘어쩔수 없는 때’가 있을지 모른다며, 그런 상황에 처한 여성의 결정권을 돕는 것이 자신의 목적이라고 말했다.
낙태선박 사례는 낙태를 철저히 금지하는 국가의 경우 낙태가 줄어들기 보다는 음성적으로 낙태시술을 하는 여성이 늘어남을 보여준다. 하지만 많은 연구에서 우려하고 있듯 낙태시술이 음성화되면 음성화될수록 산모의 건강이 위험하고, 생명까지 위협받을 수 있다. 실제로 국제가족계획연맹(IPPF)은 해마다 7만 명이 불법 낙태로 목숨을 잃는 것으로 추산한다.
출산과 낙태는 여성의 신체적 심리적인 경험에 각인될 수밖에 없는 성질의 것이다. 특히 낙태의 경우 여성에게 신체적, 정신적 손상을 남기는 경우가 거의 대부분이다. 따라서 태아와 산모의 생명을 배치되는 것으로 놓고, 낙태를 선택한 여성에게 태아의 생명을 운운하며 비난할 수 없다. 낙태의 음성화는 단순히 낙태 처벌을 강화할 경우 발생할 안 좋은 예가 아니다. 낙태의 음성화로 인해 여성의 권리가 축소되고 제한될 것이라는 측면에서 중요한 문제다. 낙태를 죄로 간주하면 아이를 가질 수 있는 육체에서 자유로운 남성에 비해 여성의 섹슈얼리티와 성적 행위는 제한되고, 반면 책임은 온전히 여성 개인의 몫이 된다. 또 임신과 출산, 양육 등 재생산 과정을 여성 스스로 통제할 수 없게 만드는 현실은 여성의 권리를 제기할 수조차 없게 만든다. 즉 여성의 역할을 가족 내에 한정지은 사회적 인식과 구조에 맞서 싸울 수 없게 함으로써 여성들을 무기력하게 한다.
따라서 여성의 권리와 태아의 생명을 대립시키면서 하나를 선택하라는 강요가 아니라 출산과 재생산, 자신의 삶을 설계할 수 있는 여성의 권리 측면에서 낙태 문제를 접근해야 한다. 이미 한국 사회에서 낙태가 불법화되어 있음에도 낙태가 많을 수밖에 없는 이유에 대해 진지한 성찰이 필요하다. 즉 여성에게 원치 않는 성관계를 하지 않을 권리와 피임할 권리가 주어져 있는지, 여성이 출산을 강요당하는 것이 아니라 권리로써 주어져 있는지, 현재의 성규범과 결혼제도 속에서 미혼여성에게 출산이 가능한지, 기혼 여성일지라도 아이를 낳았을 경우 양육과 돌봄에 대해 사회적 지원은 어떠하고 자신의 삶을 구성해 갈 여건이 되는지에 대한 반문이 필요하다.

2010년 여성의 요구: 유연근무제 도입 반대와 재생산의 권리 쟁취

위기에 대한 접근과 해석, 대안이 정부와 자본의 관점이 아닌 여성의 관점에서 다시 쓰여야 한다. 신자유주의 하 저출산-고령화의 위기는 여성이 아이를 낳지 않아 국가 전반이 위기에 처한 것이 아니다. 경제위기가 만성화되면서 국가가 더 이상 실업을 해결하고, 고용을 안정화하며, 재생산 구조를 담보할 수 없는 무능력함에 빠진 것이 문제의 실체다. 그리고 국가가 이런 위기를 신자유주의 노동의 유연화와 여성의 재생산 권리에 대한 통제를 통해 은폐하고 지연하고자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위기는 더 이상 지연될 수 없다. 이미 많은 여성들이 일을 하고 있음에도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황이며, 아이의 출산, 양육과 교육을 위해서 빚을 져야 하는 상황이다. 이 때문에 아이를 낳고 싶어도 쉽게 선택할 수 없다. 정부의 위기 지연을 위한 대안들이 여성에게 해답을 줄 수 없음은 자명하다. 여성이 가족 내 역할을 강요받고, 불안정 노동과 빈곤으로 내몰리고, 출산을 강요받지만 출산을 선택할 수 없는 여건이 악순환 되는 상황에서 악순환의 목록을 하나 더 추가하는 것이 아니라 새 판을 짜야 한다.
첫째, 여성을 비롯한 전체 노동자들의 일자리를 불안정하게 만드는 유연근무제 도입을 막아야 한다. 이에 노동자들이 주체적으로 유연근무제를 거부하는 운동을 벌여야 한다. 필요한 것은 해고의 불안에 시달리지 않는 안정된 일자리다. 또 인간답게 살기위해 장시간 노동이 철폐되고 최저임금이 인상되어야 한다.
둘째, 여성에게 일과 가정 중 하나를 선택하거나 이중부담을 무한대로 감내하라고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돌봄과 양육의 사회적 책임을 강화시켜야 한다. 지금과 같은 방식으로 사회서비스를 시장화하고, 지불 능력에 따라 서비스의 질이 달리 제공되는 것에 반대해야 한다. 돌봄에 대한 사회적 인식 제고를 위해서는 돌봄 노동자들의 노동권을 보장하고 고용의 질을 높이는 것이 중요하다.
셋째, 낙태 단속과 처벌 강화를 즉각 중단해야 한다. 자신의 삶을 설계하고 구성하고자 하는 여성이 가져야할 인간의 권리는 국가나 자본, 사회적 간섭과 통제 속에 실현될 수 없다. 여성이 출산과 모성을 선택하거나 거부할 수 있는 조건이 마련되어야 하고, 출산이 자신의 행복과 대립되지 않아야 한다. 그리고 현실의 조건이 이를 뒷받침해주는 사회적 인식, 구조가 필요하다.
현재 국가와 자본의 공격 속도에 비해 대응은 미미하다. 각개 고립, 분산적으로 부딪치다 깨지는 것이 아니라 전국적 흐름을 만들어야 한다. 여성의 권리를 옹호하는 운동이 약한 상황에서 경제위기와 저출산-고령화 현상이 심화되면 될수록 여성에 대한 폭력과 공격이 거세질 것이다. 신자유주의 개혁 세력의 공세 속에, 보수집단의 공격 속에 전전긍긍하다 끔찍한 폭력에 직면하지 않기 위해서 다시금 여성의 노동에 대한 권리, 재생산에 대한 권리를 주장하고 이것이 전체 노동자민중의 권리를 지켜내는 것으로 이어져야 한다. 2010년 한 해 여성 노동권 쟁취, 여성 재생산 권리 쟁취를 위하여 여성의 현실에 대한 폭로, 토론과 교육, 투쟁을 멈춤 없이 이어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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