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2021 봄. 17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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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대의 미국은 어디로 나아가는가? 

바이든 당선 이후 미국의 변화와 한국 사회운동의 과제

한지원 | 노동자운동연구소 연구원

1. 들어가며: 미국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인가?

 
한국의 사회운동에 가장 곤란한 질문 중 하나는 미국에 관한 것이다. 미국이 주도하는 세계 질서가 한국 사회 변화의 상한선에 큰 영향을 미치는 탓이다. 미국 재무부와 월스트리트가 정한 금융세계화 규칙에 따르지 않으면 경제가 곧바로 무너진다. 미국 국무부가 국제연합(UN) 등을 통해 만드는 규범을 따르지 않으면 ‘깡패 국가’로 내몰려 외교적·군사적 위기를 겪는다. 이는 사회운동의 요구가 급진화한다고 회피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 미국 주도의 세계 질서에서 벗어나는 방법이 없는 한, 사회운동의 요구는 국제 질서의 현실적인 힘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필자는 이 글에서 다음과 같은 질문에 답을 해보려 한다. 2020년대의 미국은 세계 질서를 복구할 수 있는가? 바이든 새 행정부는 어떤 점에서 얼마나 트럼프 행정부와 다른가? 한국의 사회운동은 바이든 행정부의 정책들에 대해 어떤 태도를 보여야 하는가?

참고로 이 글은 경제적 분석을 통해 정치적 변화의 함의와 방향을 예측한다. 마르크스가 이야기하는 착취의 재생산을 둘러싼 계급투쟁이든, 신제도학파가 이야기하는 제도의 변화를 둘러싼 동맹과 갈등의 동역학이든, 정치적 변화의 폭은 경제 상태에 의해 제한되며, 변화의 방향 역시 경제적 유인에 큰 영향을 받는다. 경제와 정치가 토대/상부구조 식의 기계적 상하 관계는 아니라 하더라도, 마르크스가 강조했던 것처럼 경제를 분석해야 정치적 선택의 이유와 그 선택이 유발하는 영향을 제대로 파악할 수 있다. 특히 오늘날처럼 변화의 방향과 폭이 불확정적인 시기에는 사회의 장기적 변화에 영향을 미치는 자본주의적 생산(경제)의 내적 모순을 살펴보는 것이 중요하다.
 

2. 트럼프, 반세계화라는 대안의 파산


“지난 2000년 이후 미국 가계소득은 4천 달러 이상 줄어들었다. 제조업 무역수지 적자는 한해 8천억 달러에 달해 역사상 최고 규모를 기록했다. (…) 오바마 대통령 임기 동안 국가채무는 두 배 이상 늘었다. (…) 그 돈은 다 어디로 갔는가? 도로와 교량은 수리를 못 해 무너지고 있고, 4천3백만 명이 넘는 미국 국민이 식료품 보조를 받고 있다. 왜 이렇게 상황이 악화했는가? 그건 바로 대기업, 엘리트 언론, 주요 정치 후원자들이 지난 수십 년 동안 서로 공모해 사회 시스템을 자신들에게만 유리하게 조작해왔기 때문이다. (…) 소외되고 버려진 사람들을 위해 싸우겠다. 해고된 노동자들 그리고 끔찍하고 불공평한 무역협정에 의해 무너져버린 공동체들을 위해서, 그리고 우리 조국의 잊힌 모든 국민을 위해서 싸울 것이다. (…) 국민의 일자리를 빼앗고 국가의 재산을 몰래 가져가 한 줌도 되지 않는 대기업과 정치가들에게 몰아주는 이런 경제정책은 과연 누구에게 책임이 있는가? 바로 세계화를 앞세운 권력구조가 아닌가?”
 
위 연설은 샌더스가 아니라 트럼프가 한 것이다. 트럼프는 좌파가 사용하던 반세계화 담론을 능수능란하게 자신의 이미지로 만든 정치인이었다. 그가 대통령으로 당선될 수 있었던 것도 극우적 인종주의보다도 위 연설 같은 반세계화 담론이 더 중요한 역할을 했다.

2016년 미국 대선의 최대 쟁점은 공화당, 민주당 가릴 것 없이 반세계화였다. 공화당에서는 트럼프가, 민주당에서는 샌더스가 반세계화 담론으로 주류 정치인들을 몰아붙였다. 다만, 트럼프가 공화당에서 비교적 가볍게 대선 후보로 선출될 수 있었던 반면, 샌더스는 초반 열풍에도 불구하고 결국 대선 후보에서 탈락하고 말았다. 이는 공화당이 여론의 영향을 받는 프라이머리와 코커스만으로 후보를 선출하는 반면, 민주당은 여론의 지지를 상쇄할 수 있는 엘리트 정치인들의 기득권(슈퍼대의원제도)을 보장하기 때문이었다. 만약 민주당이 공화당과 같은 방식으로 대선 후보를 선출했더라면 트럼프와 샌더스가 본선에서 붙었을지도 모른다.

트럼프가 힐러리를 꺾고 당선될 수 있었던 건 마찬가지로 반세계화 담론의 영향이 컸다. 세계화로 몰락한 백인 블루칼라 계층의 지지가 결정적이었기 때문이다. 이들은 1940년대 뉴딜 이래 전통적인 민주당 지지자였다. 하지만 금융세계화의 모순이 극대화한 오바마 집권 8년과, 트럼프의 선정적인 반세계화 캠페인이 이들의 오랜 정치적 전통을 바꿨다. 

이런 변화는 미국만이 아니라 세계적 현상이기도 했다. 트럼프가 당선되기 반년 전에 미국과 함께 금융세계화를 이끈 영국에서도, 블루칼라 노동자층의 지지 속에서 유럽연합 탈퇴 국민투표가 통과된 바 있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영국의 트럼프로 불리는 보리스 존슨이 보수 진영을 대표하는 정치인으로 떠올랐다. 2010년대는 반세계화 포퓰리즘의 시대였다. 2010년대 초반에는 그리스, 스페인 등의 남부유럽에서 좌파 버전의 반세계화 운동이, 2010년대 후반에는 세계 경제의 중심부에서 우파 버전의 반세계화 운동이 유행했으니 말이다. 물론 둘은 차이가 있기는 했다. 좌파 버전의 반세계화 포퓰리즘은 재정 제약을 무시하는 복지 확대를 대안으로 제시했던 반면, 우파 버전은 보편적 인권을 무시하는 인종주의를 대안으로 제시했다. 그럼에도 둘은 모두 금융세계화에 대한 적합한 비판을 포기 또는 은폐하는 방식으로 대중의 지지를 얻으려 했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더 많았다.
 
[2016 대선] 트럼프: 세계화가 중산층을 "쓸어버렸다"
트럼프는 좌파적 반세계화 구호를 가지고 대통령에 당선됐다. 그의 세계화 비판 연설을 보면 버니 샌더스와 구별이 안 될 정도였다. 하지만 그의 4년 결과를 보면, 반세계화란 포퓰리즘 이상도 이하도 아님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한편, 트럼프의 지지세가 일시적 여론이 아니라는 점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2020년 대선에서도 확인했듯 트럼프의 4년간 만행에도 불구하고 바이든은 가까스로 트럼프를 이길 수 있었다. 낙선하긴 했지만 트럼프가 얻은 7천4백만 표는 역대 어떤 당선자보다 많은 것이었다. 2019년 12월의 트럼프 지지율은 50%가 넘었다.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혼란이 없었다면 바이든은 승리를 장담할 수 없었을 것이다.

트럼프 지지에 관한 일반적인 설명은 세계화로 인한 미국 중산층의 몰락이다. 트럼프가 힐러리를 이겼던 결정적 요소가 러스트 벨트 백인 노동자층의 변심이었다는 점은 이를 증명하는 가장 직접적 증거로 제시된다. 하지만 트럼프 집권 4년간 이들의 사정이 별로 나아진 것이 없었음에도 여전히 트럼프가 높은 지지율을 기록했다는 점은, 경제적 이해관계 외에도 다른 힘들이 작동하고 있음을 암시한다.

미국 정치학자들이 주목하는 건 전통적 정당들의 기능 약화이다. 트럼프 집권 기간 민주당은 그의 반세계화 정책을 제대로 비판하지 못했다. 오히려 트럼프에게 4년 내내 무기력하게 끌려 다녔을 뿐이다. 금융세계화 정책의 주역이었던 민주당은 금융세계화를 부정할 수도 없었고, 그렇다고 반세계화 정책에 동조할 수도 없었다. 2020년 대선 후보 경선이 4년 전 부통령이었던 바이든과 역시 4년 전 경선 2위였던 샌더스라는 사실은, “구관이 명관이다” 또는 “트럼프 이전으로 복귀” 외에는 딱히 대안이 없었다는 걸 방증한다. 공화당은 부시 이후 전통적 엘리트 정치인들의 타락과 무능이 손 쓸 수 없을 정도로 심화했다. 2000년대 초반에는 네오콘으로 불리는 극우파 엘리트들에게, 중후반에는 티파티 같은 극우파 대중 정치인들에게 당이 장악됐고, 지금은 트럼프 지지자들에게 당이 휘둘린다. 중도 우파가 거의 사라진 가운데 백인 개신교 집단에 의해 당의 방향이 결정되고 있다. 금융세계화의 문제를 해결하지도 못하면서 반동적 대응만 반복하는 것이 공화당의 상태다.

금융세계화로 인해 미국이 가지고 있었던 고질적 병폐들이 심화했다는 분석도 있다. 미국 문화의 중요한 기반은 노력하면 성공할 수 있고, 능력에 따라 적절한 보상이 주어진다는 아메리칸 드림이었다. 하지만 세계화 이후 불평등이 커지고, 더군다나 엘리트들이 능력주의를 근거로 삼아 저소득 계층을 무시하고 자신들의 과도한 부를 정당화하면서, 대중이 굴욕감을 해소하기 위해 포퓰리즘 정치인들을 선택하게 됐다는 것이다.  능력주의가 위기에 빠졌다는 분석은 저성장 시대의 경제적 불평등이 자산의 세습을 통해 이뤄질 수밖에 없다는 이른바 세습자본주의론을 통해서도 나온다. 어쨌든 이런 조건에서 능력주의는 더는 공정성의 잣대로 신뢰받을 수 없다. 능력주의를 내세우는 엘리트들은 금융세계화를 주장한다. 하지만 공정성에 대한 기준이 없는 만큼, 대중은 기득권 또는 세계화의 승자를 악마화하는 포퓰리즘으로 기울어질 수밖에 없다. 반세계화는 반능력주의의 표현 방식 중 하나다. 그러나 이러한 반세계화 담론으로는 금융세계화의 문제를 전혀 해결하지 못한다. 트럼프가 가장 분명한 사례라 하겠다.

어쨌든 반세계화 담론과 결합한 트럼프 식 포퓰리즘 정치는 미국의 제도적 안정성을 크게 위협했다.

먼저, 국내적으로 보면 미국 자유민주주의의 요체라 할 삼권분립과 권력기관의 견제와 균형을 위태롭게 만들었다. 대통령과 긴장 관계에 있어야 할 FBI(연방수사국) 등의 정보기관에 충성을 요구했고, 특별검사를 다양한 방법으로 협박했다. 심지어 자신에게 불리한 판결을 한 판사를 “선출되지 않은 판사가 국민이 선출한 대통령을 위협한다”고 비난하며 자신의 지지자들이 판사를 압박하도록 유도하기도 했다. 연방법원 명령을 어겨 유죄를 받은 보안관을 사면했고, 한국의 감사원과 비슷한 공직자윤리국을 무력화했다. 자신을 비판하는 언론에 대해서는 가짜뉴스라는 딱지를 붙여 비난했고, 트위터로 직접 가짜뉴스를 유포하기도 했다. 대통령 직속으로 공정선거자문위원회를 만들어 가난한 소수민족의 투표권을 제한하는 압력을 가한 것도 트럼프가 파괴한 민주주의 규범의 대표적 사례다.

국제적으로 보면, 트럼프는 미국이 주도하던 국제적 수준의 여러 기구를 파행으로 이끌었다. 트럼프의 반세계화 담론이 “미국 우선”(America First)이라는 일방주의 외교로 귀결한 탓이었다. 그는 오바마가 추진하던 TPP(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를 단숨에 엎어버렸고, 오랜 국제적 협상의 결과물이었던 파리기후협약을 탈퇴했으며, 자유무역협정을 개악해 관세장벽을 세웠고, 심지어 ‘무역전쟁’이란 프레임까지 만들어냈다. 금융세계화의 다른 측면인 군사세계화를 동맹국에 대한 방위 세일즈 방식으로 타락시켰고, 타국 정치인에게 모욕적 언행을 쏟아낸 것도 트럼프 외교의 빼놓을 수 없는 모습이었다.

그렇다면 트럼프의 반세계화 포퓰리즘 정치의 결과는 무엇이었을까? 

우선 무역전쟁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무역적자는 오바마 시기보다 오히려 증가했다. 실업률은 3%대까지 낮아지긴 했지만, 세계금융위기 이후 이어지던 꾸준한 하락 추세의 연장선에 있었을 뿐이다. 트럼프는 지지층을 위해 제조업 공장 리쇼어링에도 상당한 역량을 쏟았지만, 실적은 그다지 좋지 않았다. 그의 예측 불가능한 정책, 무역전쟁으로 인한 비용 문제 등이 제조업 경쟁력을 오히려 약화한 측면이 있었기 때문이다. 트럼프 집권 시기에 가장 성공한 기업들은 오히려 세계화의 혜택을 본 구글, 페이스북, 애플, 마이크로소프트 같은 빅테크 기업들이었다. 트럼프의 감세 정책 역시 서민보다는 세계화의 승자들에게 유리했다.

트럼프의 유산이 일시적인 혼란에 그치지 않을 것이란 점은 심각한 문제다. 바이든 시대에도 트럼프가 대통령이 될 수 있었던 원인이 전혀 사라지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금융세계화와 이로 인한 불평등 말이다. 미국이 지금까지 만들어 놓은 자유주의의 규범은 국내외 모두에서 지속해서 도전을 받을 수밖에 없다. 금융세계화나 반세계화는 지금 그 어떤 문제도 해결하지 못한다. 포퓰리즘 정치는 기득권에 대한 공격으로 반세계화 담론을 이용하지만, 동시에 정치적 특성상 민주주의도 위기에 빠뜨린다. 바이든의 개혁이 근본적 수준에 이르지 않는 한, 미국의 혼란은 지속해서 커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3. 포스트-트럼프 또는 오바마 2.0으로서 바이든 행정부

 
바이든 행정부는 포스트-트럼프 또는 프리-트럼프(오바마 2.0) 행정부로도 불린다. 트럼프 4년의 충격이 워낙 컸던 탓이다. 2020년 대선도 사실은 트럼프와 반트럼프의 대결이었다. 그래서 바이든 행정부 초기의 가장 중요한 과제 역시 트럼프 지우기일 수밖에 없다. 바이든은 트럼프 정책을 뒤집기 위해 취임 3일 만에 트럼프가 3달 동안 서명한 것보다 많은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동시에 오바마 행정부 시절 고위 관료들을 대거 등용함으로써, 바이든은 자신의 임기가 오바마의 연속선에 있다는 점을 확인시켜줬다.

바이든 행정부에 대한 전망은 이런 점에서 단순할 수도 있다. 바이든이 어떤 점에서 얼마만큼 트럼프와 다를지, 과연 오바마의 실패를 극복할 수 있을지 예상해보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을 테니 말이다.

트럼프가 대통령으로 뽑힌 것은 사실 오바마 집권 시기의 결함이 극대화한 결과이기도 했다. 진보주의를 내세운 오바마는 세계금융위기 이후의 불평등 확대나 중국의 패권 같은 문제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다.

예를 들어 오바마 시기 중산층(상위 50~90%)의 소득과 자산 비중은 각각 1%p, 3%p 하락했다. 백인과 흑인 간의 임금격차 역시 3%p 증가해 이전 부시 행정부보다도 벌어졌다. 또한, 오바마 시기 중국의 GDP는 미국의 30%에서 60%로 급상승했는데, 시진핑은 이런 경제적 성과를 배경으로 ‘일대일로’ 같은 패권 정책을 본격적으로 추진했다. 반면 오바마가 추진한 TPP 같은 중국 역포위 전략은 제대로 실행되지도 못했다. 오바마 행정부는 21세기 민주당식 자유주의의 결정체라 할 수 있었으나, 결과적으로 미국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문턱을 넘지 못했다.
 
바이든 정부는 오바마2.0 정부로도 불린다. 바이든은 취임과 함께 오바마 시기의 사람과 정책을 복구하는데 주력했다. 하지만 바이든은 오바마가 실패할 수밖에 없었던 원인을 해결할 수 있을까? 바이든의 예정된 실패는 트럼프2.0을 예비하는 건 아닐까.

흥미로운 점은, 겉으로 보기에는 트럼프 시대의 경제 실적이 오바마 시대보다 낫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트럼프의 인종주의적 선동에도 불구하고 백인-흑인의 임금 격차는 그의 재임 기간(코로나19 사태가 있었던 2020년 제외) 0.2%p 감소했다. 1980년대부터 이어진 중산층의 소득과 자산 비중 감소 역시 늘어나지 않았다. 실업률은 3%대로 낮아져 1960년대 이후 가장 낮은 수치를 기록했다. 대중국 정책은 무역전쟁이라는 매우 거칠고 부작용이 많은 방법으로 이뤄졌지만, 오바마 시기의 어정쩡한 정책보다는 대중적 지지를 더 얻었다. 물론 대공황에 버금갔던 2007~2009년 세계금융위기를 해결해야 했던 오바마와, 위기 이후의 경기팽창 기간을 즐긴 트럼프를 동일선에서 비교할 수는 없다. 트럼프 시기의 성과는 대부분 “밀물이 오면 모든 배가 떠오르는” 효과였을 뿐이다. 하지만 어쨌거나 겉으로 보이는 성과는 나쁘지 않았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아이러니한 점은 바이든 행정부가 처한 조건이다. 오바마 행정부와 마찬가지로 코로나19 경제침체라는 전대미문의 위기에서 임기를 시작하고 있어서다. 오바마 행정부가 그랬던 것처럼, 바이든 행정부 역시 위기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경제적 불평등과 세계적 패권의 약화 같은 부작용을 경험할 가능성이 크다. 그리고 공교롭게도 오바마1.0, 2.0 행정부 사이에 있는 트럼프가 역설적으로 성공한 대통령으로 평가받을 가능성도 있다.
오바마가 경제위기 대응 과정에서 부닥친 딜레마는 금융세계화였다. 부실자산구제금융(TARF)과 비전통적 수량완화(QE)로 대표되는 오바마 시기의 경제정책은 거대 금융기관을 부활시키는 데는 성공적이었지만, 금융자본 규제에는 성공하지 못했다. 이는 오바마의 실책이라기보다는 자본주의의 한계였는데, 미국에서는 2000년대 중반 이후 마르크스가 예언한 이윤율 하락이 본격화되어 20세기 초중반 같은 산업자본 주도의 생산·고용 확대가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미국에서 선택 가능한 현실적 옵션은 세계를 무대로 활약하는 금융기관이 세계적 잉여가치를 미국으로 좀 더 많이 이전할 수 있도록 돕는 것뿐이었다. 그러나 금융 주도의 경제, 즉 자산 소유자의 이익이 극대화되도록 움직이는 경제에서는 소득과 자산의 불평등 악화는 불가피하다. 금융위기 이후 오바마의 경제 재건은 경제적 불평등의 증가라는 희생을 통해서만 이뤄질 수 있었다는 의미다.

그렇다면, 바이든은 어떨까? 우선 조건은 오바마 시기보다 더욱 나쁘다. 저금리, 고부채, 팽창된 연방준비은행 자산 같은 세계금융위기의 부작용이 그대로 남아 있는 상태에서 코로나19 경기부양책을 이어가야 하기 때문이다. 단적인 예로 오바마는 정부 부채가 GDP 대비 60%인 상태에서 금융위기에 대응했지만, 바이든은 정부 부채가 130%인 상태에서 코로나19 경제침체에 대응해야 한다. 실물경제 상태 역시 마찬가지다.

그런데 미국의 이중적자는 세계적 달러 환류를 통해서만 지속할 수 있다. 미국 국채의 30~40%는 해외에서 구매한다. 미국 금융시장으로 세계적 투자가 이어져야 미국 정부가 경제정책에 필요한 국채를 계속 발행할 수 있다는 것이다. 미국이 30년 넘게 무역적자를 기록하고 있음에도 달러 가치가 유지되는 이유도, 무역 흑자국이 수출로 번 달러를 미국 금융시장에 재투자하고 있기 때문이다.

바이든은 세계적 잉여가치의 미국으로의 이전을 오바마보다도 더 많이 필요로 한다. 금융기관 주도의 경제를 유지하지 않고서는 경제 안정을 도모할 수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앞서 말했듯 경제적 불평등의 악화라는 필연적 부작용을 동반한다.

한편, 오바마 행정부 때부터 크게 성장해 바이든 행정부에서 정점에 달한 빅테크 기업 역시 경제적 불평등과 무관하지 않다. 구글, 페이스북, 아마존, 마이크로소프트 같은 빅테크 기업들은 가치 창조가 아니라 가치 이전에 특화된 기업들이다. 빅테크 기업들이 이윤을 얻는 원천은 네트워크 독점과 지적 재산권인데, 이러한 이윤은 경제 전체에서 보면 지대에 불과하다. 이들은 경제 전체의 생산성에 기여하는 것보다 더 많은 소득을 얻는다. 그래서 이들의 성장은 가치를 창출하는 기업의 수익성 하락을 가져올 수밖에 없다. 이 부문에 고용된 노동자들의 소득에도 악영향을 끼친다. 빅테크의 슈퍼스타들이 21세기의 최상위 1% 부자들이다. 이들은 또한 미국 주식시장을 부양하는 핵심들이다. 이런 점에서 바이든에게 빅테크 주도의 경제는 손댈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내버려 둘 수도 없는 딜레마이다.

바이든 행정부가 트럼프 행정부가 가장 구분되는 점은 사회보장 정책일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정책들이 정치적 상징을 넘어 실질적으로 불평등을 얼마나 완화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앞서 본 금융세계화가 만드는 불평등 확대보다 사회보장정책을 통한 불평등 완화가 속도나 강도에서 낮기 때문이다. 바이든 정책이 대부분 오바마 정책의 업그레이드 정도에 그치는 것도 한계다. 조건은 훨씬 악화했는데, 정책의 수준은 그다지 획기적이지 않다. 

참고로 민주당 급진파가 대안은 아니라는 사실도 확인해두자. 샌더스, 오카시오 코르테즈(AOC) 등이 대표하는 민주당 급진파는 보편적 복지와 그린뉴딜 등을 주장하는데, 이들의 결정적 결함은 실행에 필요한 조건을 냉정하게 분석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예로 이들은 주로 정책의 타당성을 현대화폐이론(MMT) 같은 반경제학 이론에서 찾는다. 경제성장과 증세에 대해 초현실적 낙관주의도 이들의 정책이 가지는 특징이다. 기득권층에 대한 분노만 키울 뿐 정책 실현에 필요한 객관적 조건을 무시한다는 점에서 좌파 포퓰리즘에 친화적이다.

정리해보자. 오바마 2.0 행정부로서 바이든 행정부는 오바마의 부정적 유산을 계승한다. 경제 재건을 위해 금융세계화가 필요하지만, 금융세계화는 경제적 불평등을 키운다. 오바마의 딜레마는 그에게도 이어진다. 동시에 포스트-트럼프 행정부로서 바이든 행정부는 트럼프를 지우는 일에서도 어려움을 겪을 것이다. 세계화로 인한 소외와 경제적 불평등은 바이든 시대에 해결될 수 없기 때문이다. 오바마가 트럼프 출현의 조건이었듯, 바이든이 제2의 트럼프가 출현할 수 있는 조건이 될 수 있다.
 

4. 바이든 행정부의 경제정책 쟁점

 

코로나19 경기부양책: 저금리-저인플레의 딜레마에서 벗어날 수 있는가?

대통령 당선과 함께 바이든은 1.9조 달러 규모의 경기부양책(America Rescue Plan)을 추진했다. 2020년 12월 트럼프 임기 끝에 시행된 9천억 달러 경기부양책을 합하면 사실상의 총액은 2.8조 달러에 이른다. 팬데믹 공포 속에서 시행된 2020년 초의 2.2조 달러(CARES)보다도 규모가 크다. 바이든 경기부양책은 개별적 현금지원(5200억), 실업급여지원(3200억), 건강보험지원(1600억), 공공투자(3250억), 주정부지원(5200억) 등으로 이뤄져 있다. 
 
바이든의 1.9조 달러 경기부양책이 실시되면, 사실상 2020년 초의 경기부양책 이상이 이뤄지는 것이다. 세계금융위기 당시 경기부양보다 몇 배가 더 큰 액수다. 병의 원인이 아니라 증상만 다스리려면 점점 더 센 진통제가 필요한 것처럼, 자본주의 위기가 지속할 수록 감당하기 어려운 부양책이 쏟아질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런 경기부양책에 대해 민주당 계열의 경제학자 사이에도 의견이 분분하다.

10년간 IMF(국제통화기금) 수석 경제전문가로 활동했던 올리비에 블랑샤는 GDP갭(완전고용 조건에서 달성할 수 있는 최대 성장률과 실제 도달한 성장률의 차이)을 고려할 때  1.9조 달러 경기부양책이 과도하다고 주장한다. GDP갭보다 큰 경기부양책은 인플레이션을 통해 실질 성장률이 감소하는 형태로 조정된다. 그런데 현재 경제 상태에서 인플레이션이 커지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 오랫동안 이어진 저인플레이션 흐름이 깨지면, 기대 인플레이션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질 수 있어서다. 저금리-저인플레이션을 조건으로 한 2008년 이후의 재정-통화 정책 전체가 위기에 빠진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이자 뉴욕타임스를 대표하는 칼럼니스트인 폴 크루그먼은 실제의 GDP갭이 공식 지표보다 훨씬 클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며 바이든 정책을 옹호한다. 그는 코로나19 위기 이전에 측정된 잠재성장률이 너무 낮았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잠재성장률을 넘어서는 경기과열은 기우라는 것이다. 예로 골드만삭스가 추정한 2020년 4분기 GDP갭은 6%로, 정부 공식자료로 인용되는 국회예산정책처(CBO)의 3.5%보다 훨씬 크다. 크루그먼은 혹시나 인플레이션이 커져도 문제가 될 것이 없다고도 주장하는데, 연준이 금리를 올려서 저금리 혜택을 본 금융기관이 파산해도 실물경제에 미치는 효과가 제한적일 것이라고 예상하기 때문이다.

마르크스 경제이론은 크루그먼보다는 블랑샤의 전망을 지지한다. 다만 근거는 다르다. 연준 자산의 가공성을 심화하는 수량완화와 적자재정으로 인한 정부의 지불능력 약화는, 아무리 달러의 세계 화폐로서 지위를 고려한다고 해도 결국에는 화폐의 불안정성을 심화할 수밖에 없다. 화폐 불안정성의 심화는 인플레이션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인플레이션이 커지면 저금리-고부채 경제는 지속되기 어렵다. 물론 지금까지는 수량완화와 적자재정에도 저인플레이션이 유지됐는데, 이는 민간자본이 실물경제에 투자하지 않고 정부로 도피하고 있어 발생한 부정적 효과일 뿐이다. 정부로의 도피가 계속돼 민간 경제가 위축되든지, 정부에서 탈출해 인플레이션을 겪든지 간에, 미국 경제는 큰 어려움을 겪게 될 것이다. 

요컨대, 코로나19 위기 대응 과정에서 이미 폭발적으로 증가한 연준 자산과 정부 부채 위에서 시작되는 바이든의 경기부양책은 거시경제적 딜레마를 해결할 방법을 내부적으로는 가지고 있지 않다.
 

경제적 불평등: 금융세계화와 불평등 완화를 동시에 추구할 방도가 있는가?

경제적 불평등은 민주당의 아킬레스건이다. 부자의 공화당, 중산층의 민주당 같은 도식은 깨져버린 지 오래다. 트럼프를 간신히 꺾은 바이든 행정부가 순항할 수 있을지 여부도 이 불평등 문제 해결에 달려있다. 바이든은 선거 시기에도 핵심 지지층인 유색인종의 경제적 불평등 문제를 핵심 이슈로 제기했었다.

바이든의 불평등 관련 대책은 다음과 같다. 오바마케어(affordable care act)로 불린 저소득층 및 고령자 건강보험의 확대, 저소득층 주거비 지원(affordable housing fund), 학자금 대출 제도 개혁 및 학비 지원 확대, 연방 최저임금 15달러로 인상, 사업주의 부당노동행위 처벌 강화, 노조 설립을 제약하는 노동법 개정, 자유무역협정에서의 노동표준 강화, 친환경 녹색 투자를 통한 일자리 확대, 개인소득 40만 달러 이상의 소득세 인상(37%에서 39.6%로) 등이다. 모두 전통적인 민주당 정책의 연장선에 있는 것들이다. 바이든의 불평등 완화 정책은 관료 임명에서도 드러난다. 케인스주의 친화적 노동 경제학자 또는 노동조합과 인연이 있는 전문가들을 임명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책의 내용이나 관료의 의지가 아니라 금융세계화라는 한계 조건이 실질적 문제란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금융세계화는 달러의 힘을 이용한 해외 잉여가치의 이전이 핵심이다. 필연적으로 경제구조 자체가 금융자산 소유자에게 유리하며, 노동 소득보다 금융 소득이 경제성장의 주역이 될 수밖에 없다. 월스트리트와 실리콘밸리의 슈퍼스타들이 점유하는 소득과 부를 통제하지 못하면서, 더구나 그들이 가진 부가 세계적으로 이동하는 상황을 방치하면서 중산층을 키우고 저소득층을 충분하게 지원하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바이든은 금융세계화의 부작용에 대해서는 아무런 대책을 제시하지 않는다.

금융세계화의 결함을 고려하지 않는다는 점은 바이든 정책이 실물경제의 큰 성장을 암묵적으로 전제하고 있다는 것에서도 드러난다. 친환경 녹색 투자로 일자리가 많이 증가한다는 예측이 모든 정책에 암묵적으로 전제되어 있다. “밀물이 들어오면 모든 배가 함께 떠오른다”는 경제성장의 기본 공식이 정책 곳곳에 녹아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만약 그의 기대처럼 경제가 성장하지 않는다면 어떤 일이 발생하는가? 당연히 모든 부분에서 문제가 발생한다. 조세 수입은 감소하는 데 건강보험, 주거, 교육 지원비용은 증가한다. 한국의 경험처럼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이 곧바로 일자리 감소로 상쇄되어 버린다.
 

기후위기 대응: 이윤율 경제와 충돌하는 상황을 해결할 수 있을까?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녹색 투자는 바이든이 내세우는 핵심 정책이다. 탈탄소를 위한 인프라 건설, 연구개발비 지원, 대규모 일자리 제공 등 사업 규모도 매우 크다. 바이든은 당선과 동시에 파리기후협약에 복귀하여 탈탄소 정책을 가속하고 있다. 미국은 폭염과 폭설로 경제적 피해도 많이 받고 있다. 탈탄소 투자는 현실적으로 절박하다. 하지만 이 역시 자본주의가 가진 근본적 결함이 문제다.

탄소 배출을 줄이기 위해서는 화석연료를 사용하는 에너지원을 전기로 바꿔야 하고, 그 전기를 탄소를 배출하지 않는 방법으로 생산해야 하며, 불가피하게 발생하는 탄소를 포집하기 위한 기술과 장비를 추가해야 한다. 자동차를 예로 들어보자. 우선 내연기관 자동차를 전기차로 바꿔야 한다. 현재 기술로는 비슷한 성능의 내연기관차보다 전기차가 훨씬 비싸다. 그리고 충전을 위한 전기를 석유 석탄이 아니라 태양광, 풍력 같은 재생에너지 혹은 원자력으로 바꿔야 한다. 전자는 공간과 효율을 고려할 때 비싸고, 후자는 사고 위험과 핵폐기물을 고려할 때 비싸다. 전기차 생산에 필요한 공장 건설, 철강 제조 등에서도 필연적으로 이산화탄소가 배출된다. 이들을 포집하기 위해서 추가적인 장비와 기술이 공장에 도입되어야 한다. 이것도 엄청난 비용을 추가한다.

그렇다면, 기후변화에관한정부간협의체(IPCC) 가이드라인처럼 탄소 배출을 2030년까지 절반으로 줄이고, 2050년에는 순배출 제로를 달성하려면 어떤 일을 감당해야 하는 것일까? 

만약 기업들이 모든 비용을 가격에 전가한다면 대중의 구매력이 감소할 것이다. 서민의 고통이 클 수밖에 없다. 참고로 2020년 경제침체는 탄소 배출을 2019년보다 3~5%p 감축했다. 저 정도 탄소를 줄이는데 필요한 경제적 희생이 상상 이상으로 엄청나다. 가격 전가 방식, 즉 구매력을 희생하는 방식의 탄소 감축은 현 체제가 감당할 수 없다.

기업의 이윤을 희생하는 방법을 고민해 볼 수도 있겠다. 그런데 이런 식으로는 자본주의 경제에서 기업에 생산의 유인을 제공할 수 없다. 그래서 현재는 정부가 비용을 부담하며 이윤을 보전해주는 방식을 많이 사용하고 있다. 즉, 탄소 배출을 줄였을 때 혜택을 얻는 후세대가 비용을 부담(정부 부채를 후세대가 세금으로 감당)하는 방식이다. 하지만 이것도 문제가 있다. 이미 엉망이 된 정부 재정이 이를 얼마나 감당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고, 후세대가 겪을 고통은 기후 위기만 아니라 저성장의 경제위기도 있기 때문이다.

후세대와 비용 분배에 합의한다 해도, 현실적으로 더 어려운 일은 국제적 조정이다. 기후는 국경을 넘어 세계 모든 사람에게 영향을 미치지만, 기후 위기 대응에 필요한 비용은 국경을 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고안된 방법이 바로 탄소배출권 거래시장이었다. 그런데 이 역시 문제가 있다. 탈탄소 기술 개발에 상대적으로 유리한 선진국이 절대적으로 유리하기 때문이다. 노동생산성 격차에 따라 잉여가치가 무역 거래 국가 간에 이전하는 것처럼, 탄소감축 생산성에 따라 선진국이 후진국을 착취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선진국이 후진국에 기술과 설비를 제공하고, 심지어 그것을 사용할 유인까지 만들어야 제대로 탄소 시장이 작동할 수 있다. 하지만 어떤 나라가 얼마나 이런 부담을 짊어질지 결정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과제다. 

요컨대, 탈탄소 정책은 에너지 비용을 급증시켜 기업의 이윤율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는 동시에, 세계적으로 전 산업에서 이뤄져야 하는 탓에 그 비용을 어떻게 분담할 것인지를 두고 갈등을 벌일 수밖에 없다. 그런데 금융세계화는 이윤율 하락 속에서 세계적인 착취를 통해 체제를 유지하는 구조다. 이윤율의 추가적 하락과 국제적 비용 배분에 적합하지 않은 구조다. 그러나 바이든은 이런 조건을 무시한 채 투자의 규모만 이야기할 뿐이다.
 

미중 무역: 중국을 미국의 질서로 재포섭할 수 있는가?

바이든 정책 중 트럼프와 가장 비슷한 것은 바로 대중국 전략이다. 그 정도로 중국에 대한 태도에 대해서는 미국 정치인 사이에서 어느 정도의 합의가 있다. 

물론 대중국 정책을 표현하는 방식이나 각론에서는 약간 차이가 있다. 바이든 행정부는 미국-중국 갈등의 프레임을 무역전쟁이 아니라, 민주주의 국가 대 독재국가로 바꾸려 한다. 오바마가 추진했던 TPP처럼 다자주의적 접근을 하겠다는 의지도 분명하다. 무역 균형과 관련해서는 관세장벽을 세우는 것은 가능한 피하고, 전략 산업의 기술 유출 및 거래를 제한하고, 환율 조작 같은 금융시장 규칙 위반 등을 찾아내는 방식을 선호할 것으로 보인다. 금융세계화를 유지하면서 미국이 우위에 설 수 있는 산업을 중심으로 중국과 격차를 벌려보겠다는 전략이다.

중국은 미국에 대한 위협이면서 동시에 금융세계화의 핵심 요소이다. 금융자본은 직접 잉여가치를 창조하지 않는다. 잉여가치를 창조하는 노동의 저수지가 필요하다. 1990년대 이래로 중국이 그 저수지 역할을 해왔다. 미국은 중국에 대해 무역적자를 기록하고 있지만, 중국과 미국의 교역은 고생산성 미국과 저생산성 중국의 부등가 교환이다. 미국은 중국 제품을 가치 이하로 구매해 소비한다. 중국은 이렇게 얻은 무역흑자 상당 부분을 미국 금융시장에 재투자한다. 미국은 무역적자로 소비를 얻었고, 중국은 무역흑자로 축적에 성공했다. 바이든은 이 구조를 깰 수 없다. 중국과 부등가 교환으로 이득을 얻지 않고서는 미국이 생산 이상의 소비를 유지할 도리가 없다. 금융세계화의 토대도 위태로워진다. 

한편, 중국은 미국의 하위파트너로 남아 있을 수 없다. 시진핑이 독재를 유지할 수 있는 것은 고도성장을 통해 대중의 불만을 관리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중국은 점차 중진국 함정에 깊게 빠지고 있고, 현재와 같은 대미 관계로는 이를 극복하기 어렵다. 정보통신기술 기업 일부가 세계적 규모로 성장하긴 했지만, 중국 경제는 여전히 외국기업과 국영기업이 주축이다. 세계금융위기 이후에는 부채 주도로 성장하여, 부패와 비효율도 극심해졌다. 자본생산성을 향상할 수 있는 제도적 혁신에 실패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시진핑은 이런 한계를 ‘중국 굴기’, ‘일대일로’ 같은 민족주의적 선동과 내수 성장으로 극복해보려 하고 있다. 이는 미국의 정책과 충돌을 피할 수 없다. 2020년대에도 2010년대와 비슷한 구도가 계속 이어질 것이다.
 

5. 한국의 사회운동이 유념할 바

 
바이든은 지향이나 정부 운영에서 미국적 자유주의 전통에 충실한 편이다. 트럼프 시기의 혼란은 시간이 지나며 어느 정도 수습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바이든 역시 금융세계화라는 미국 자본주의의 근본적 결함을 해결하지 않는 한, 전임자들이 갔던 경로에서 이탈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의 개혁 정책은 오바마 때 그랬던 것처럼 조정될 가능성이 크다. 바이든의 실패로 인해 제2, 제3의 트럼프가 탄생할 수도 있다. 세계금융위기의 후유증이 남아 있는 상태에서 코로나19 위기를 해결해야 하는 바이든은, 달러 위기와 포퓰리즘의 도전에 대응해야 한다. 하지만 미국 자본주의가 선택할 수 있는 옵션들은 이전보다 줄었다. 더불어 미국의 위기는 다른 헤게모니 국가의 등장이 아니라 세계의 경제적·정치적 혼란으로 이어진다.

한국의 사회운동은 두 가지 점을 유념해야 한다.

첫째, 바이든의 개혁 정책이 놓여있는 조건을 분석하지 않은 채로, ‘미국이 했으니 우리도 하자’는 식의 따라 하기는 금물이다. 금융세계화를 지속해야 하는데, 그 금융세계화마저 무너지고 있는 것이 작금의 정세이다. 바이든의 정책에는 이 결함을 해결할 방법이 없다. 더구나 세계적 수준에서 잉여가치를 착취할 수 있는 미국과, 그렇지 않은 한국은 정책 추진의 토대가 근본적으로 다르다.

예를 들면, 2천조 원이 넘는 미국 경기부양책을 근거로, 한국도 재정적자를 키워서 경기부양에 나서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회단체들이 많다. 하지만 바이든 경기부양책은 미국에서조차 화폐 불안정성을 크게 키운다. 한국 원화는 미국 달러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태생적으로 불안한 화폐다. 미국의 저금리-저인플레가 흔들리면 한국의 금리와 인플레이션은 폭풍을 맞는다. 미국의 경기부양책을 따라 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그 후폭풍을 감당할 준비를 하는 게 한국 사회운동이 고려해야 할 바다.

최저임금 15달러도 마찬가지다. 바이든의 계획대로 최저임금이 두 배로 높아진다고 해도, 미국 노동시장 내에서 이에 영향을 받는 비율은 10% 내외에 불과하다. 코로나19 이전 실업률은 역대 가장 낮은 수준이었다. 이런 조건에서도 녹색 투자 등으로 일자리가 확 늘어난다는 전망까지 붙여서 최저임금 인상에 대해 논쟁을 하는 중이다. 반면 2018년에 있었던 문재인의 최저임금 인상은 영향을 받는 비율이 20%나 되었고, 고용률이 하락하는 조건 속에서, 심지어 잠재성장률의 급격한 하락 속에서 이뤄졌다. 무턱대고 따라 할 일이 아니란 이야기이다. 탈탄소 정책도 그러하다. 미국이 하니 우리도 속도를 내자고 단순하게 이야기해선 안 된다. 한국의 이윤율은 1990년대부터 중진국 함정의 전형적 코스로 하락해 왔다. 탈탄소 전환에 따른 이윤율 하락은 미국보다 클 것이다. 제대로 된 전환을 위해서는 이런 이윤율 하락의 가속을 무시할 것이 아니라 대책을 세워야 한다.

물론 코로나19 대응을 위한 정부 재정지출, 저소득 계층 보호, 탈탄소 전환 같은 일이 필요 없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다만, 미국과 바이든을 참고해 무턱대고 추진할 일이 아니란 것이다. 이윤율 경제를 지양하는 변혁적 전망을 유지하면서, 동시에 현존하는 자본주의가 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 정책을 추진하기 위해 사전에 필요한 조치를 면밀하게 살펴야 한다는 이야기다. 그렇지 않으면 변혁도 아니고 그렇다고 개혁도 아닌, 선의만 가득한 불행을 만들 수도 있다. 

둘째, 미국의 헤게모니가 약화한다고 중국에 기대를 걸어서는 안 된다. 이는 최악의 선택일 수 있다. 한국 사회운동은 오랫동안 반미를 당연한 지향으로 수용했다. 그렇다 보니 자연스레 반미-친중적 태도를 보이는 경향도 나타난다. NL운동 경험이 있는 86세대 정치인들이 문재인 정권의 요직을 차지하고 있다 보니, 정부조차 그러한 태도를 보일 때가 많다.

하지만 중국은 자유, 평등, 풍요를 지향하는 현대에 한참 미달하는 체제이다. 당의 집단지도체제마저 시진핑 이후 개인의 독재로 퇴보했다. 심지어 경제도 중진국 함정에 깊이 빠져들고 있다. 실제로는 반미친중은 친미반중보다도 퇴보적이다.

냉전 시대부터 금융세계화 시대까지, 중국이 동맹국에 보인 태도를 미국과 비교해봐도 중국이 그다지 믿을만한 나라가 못 된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예로 아시아에서 냉전은 1960년대 이후 미국과 중국의 대결로 진행되었는데, 미국이 일본, 한국, 대만을 자유주의 동맹으로 통합하는 데 성공했던 반면, 중국은 북한이나 몽골이 각자의 민족주의적 독자성을 유지하게 하는 데 주력했을 뿐이다. 동맹의 경제성장을 이끄는 데 있어서도 미국과 중국은 수준이 달랐다. 사실 현대의 중국은 미국과 같은 세계적 수준의 이념적, 제도적 통합(동맹)을 지금껏 만들어 본 적이 없는 나라다. 냉전이 사회주의 진영의 패배로 끝난 후 중국이 개혁개방의 속도를 높이며 고도성장을 구가할 때도, 중국은 북한을 동맹으로서 성장시키지 못했다. 중국은 북한을 성공한 동맹이 아니라 대미 교섭을 위한 정치적 도구로 이용했을 뿐이다. 2천 년대 중국의 대북투자는 북한의 자본축적에 도움이 되지 않는 석유 수출과 자원 개발뿐이었다. 

한국의 사회운동은 미국을 변혁의 제약 조건으로 인식해왔다. 그것이 맞다. 하지만 미국의 헤게모니 약화가 한국이 탈미(脫美)할 수 있는 결정적 조건은 아니다. 탈미가 퇴보가 아니라 진보가 되게 하려면 말이다. 바이든 시대의 미국에서 우리가 주목해서 볼 부분은, 금융세계화가 무너지면서 미국이 겪을 수밖에 없는 곤란이다. 우리 역시 그 곤란에 빨려 들어갈 수밖에 없다. 금융세계화에 적합한 비판과 대안, 2천 년대 초에 ‘대안세계화 운동’이라고도 불렀던 세계적 운동의 재건이 절실하다.


[보론] 미국 헤게모니의 특성

 
미국의 경제 규모는 2019년 말 세계의 25%를 차지한다. 2천 년대 초와 비교해 1~2%p 정도 하락했을 뿐이다. 세계 화폐로서 달러의 지위와 세계금융시장 최고의 안전자산으로서 미국 채권의 지위도 여전히 절대적이다. 2009년 세계금융위기, 2020년 코로나19 위기에서도 달러와 미국 채권에 대한 국제적 수요는 도리어 증가했다. 미국이 ‘세계 경제의 제도’로서 역할을 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군사력에서도 미국에 견줄만한 국가는 없다. 미국은 여전히 세계의 유일무이한 패권 국가이다.

하지만, 미국의 현재 모습은 세계가 ‘팍스 아메리카나’에 기대하는 모습과는 상당히 거리가 있어 보인다. 코로나19 방역은 1년 내내 혼란스러웠고, 차별과 불평등에 대한 불만은 사회의 존속을 위협할 정도로 고조된 상태며, 국회의사당 난입과 텍사스 대정전 사태에서 드러났듯 미국 사회가 가진 의외의 낙후성도 커지고 있어서다. 특히 미국의 혼란은 세계적 수준의 혼란으로 이어진다는 점에서도 심각한데, 트럼프가 보여준 대외 정책이 사례였다. 트럼프는 아무렇지도 않게 국제 협약을 파기했고, 심지어 무역전쟁이란 프레임까지 사용했다. 세계적 수준에서 경제적, 정치적 규범을 만들 수 있는 능력이 헤게모니라고 한다면, 미국은 국내외 양쪽에서 규범적 혼란을 겪으며 헤게모니가 약화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바이든은 어떨까? 바이든은 취임 일성으로 “미국이 돌아왔다”고 선언했다. 그가 상상하는 ‘돌아온 미국’은 20세기의 팍스 아메리카나일 것이다. 사실 바이든은 정계에서 미국의 세계적 지위를 가장 잘 이해하는 사람 중 하나다. 그는 오랫동안 상원 외교위원회에서 활동했고, 오바마 행정부에서도 대외 정책에 상당한 영향력을 미쳤다.

20세기 미국이 세계 질서를 만들 수 있었던 원동력을 살펴보며, 2020년대의 미국이 세계 질서를 복구할 수 있을지, 그리고 만약 세계적 혼돈이 확대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예측해보겠다.
 

20세기 미국 헤게모니: 외부를 허락하지 않는 패권

우선, 20세기 미국이 세계적 헤게모니를 얻을 수 있었던 것은 세 가지 차원에서 미국이 주도적 역할을 했기 때문이었다.

 첫째, 자본축적을 통한 경제성장이었다. 20세기에 인류는 호모사피엔스가 출현한 이후부터 19세기까지 성장했던 것보다 몇 배나 큰 경제적 풍요를 만들었다(앵거스 메디슨의 기원후 1~2008년 그래프를 보면 경이로울 정도다). 미국 자본주의는 2차 산업혁명을 바탕으로 기업 제도, 경영 전략, 거시경제정책 등의 혁신을 이끌며 거대한 자본축적을 이뤄냈다. 세계 각국은 미국에서 원조를 받거나 미국과 분업을 하며 이 성장에 참여했다.

둘째, 경제적 통합과 압도적 군사력을 배경으로 한 국가 간 체계의 확립이다. 이전의 패권 국가들과 달리, 미국 주도의 세계 질서는 영토적 지배가 아니라 경제적 통합이 핵심이었다. 각국은 식민지가 아니라 자국의 국민경제로 세계 시장에 참가해 잉여가치의 착취와 분배에 함께 했다. 미국은 압도적 군사력으로 세계 시장의 제도를 보호했고, 국제연합(UN)을 비롯한 여러 국제기구를 이용해 자신의 우월적 지위를 주권국 간의 형식적 평등 속에서 유지할 수 있었다.

셋째, 미국의 자유주의가 세계적 이념으로 자리를 잡았다. 시장과 민주주의로 자유와 풍요를 동시에 달성한다는 자유주의는 미국의 케인스주의 속에서 안정적으로 자리를 잡았다. 미국은 단지 물리적 차원에서만이 아니라 문화적 차원에서도 추격해 따라잡아야 할 모델이 되었다. 서유럽만이 아니라 남미나 아시아 같은 저소득 국가에서도 미국식 시장과 민주주의를 단계적으로 정착시키는(다만 얼마나 긴 단계인지는 쟁점이었지만) 것이 수용되었다.

이러한 미국의 헤게모니가 불안정해진 건 20세기 후반부터였다. 우선 경제성장부터 문제에 부딪혔다. 마르크스가 예견한 ‘편향적 기술진보’로 인한 이윤율 하락이 본격화되었기 때문이다. 이에 이윤율의 장기 상승 속에서 경기변동을 최소화하는 게 목표였던 케인스주의 역시 제대로 작동할 수 없었다. 
이때 등장한 케인스주의 혁신론이 신자유주의였다. 신자유주의가 혁신의 대상으로 삼은 건 크게 보면 두 가지였다. 하나는 억압된 금융의 해방. 다른 하나는 계급적 타협의 해체. 마르크스적 관점에서 보자면 이 둘은 자본축적의 둔화로 증가하는 과잉자본(실물경제에 투자처를 찾지 못한 자본)과 과잉인구(고용되지 못한 실업자와 불완전 취업자)를 관리하는 것이다.

팽창한 과잉자본은 금융자본으로 해방되어 세계적 잉여가치의 착취에 이용되었다. 산업자본의 해외이전, 저개발국 노동시장의 개발, 인수합병을 통한 저생산성 자본의 폐기, 미래 소득을 청구할 수 있는 다양한 형태의 증권 개발, 금융시장의 국제적 활성화 등등이 세계적 잉여가치를 착취하는 새로운 형태였다. 한편, 증가한 과잉인구는 취업의 신축화와 사회안전망을 통해 관리되었다. 실업자와 불안정해진 취업자의 불만이 체제를 위협하는 수준으로 발전하지 않도록 관리하는 게 사회안전망의 목표였다. 완전고용을 통한 중산층 형성이라는 케인스주의적 거시경제 목표는 폐기되었고, 대신 실업수당, 재취업교육, 빈곤지원 등의 안전망이 강화되었다. 기업의 고용 형태도 바뀌어서, 사업장 이전과 해고가 쉬운 외주화가 크게 발전했다.

1980년대부터 빠르게 발전한 정보통신기술은 과잉자본과 과잉인구의 관리를 획기적으로 발전시켰다. 인터넷과 개인용 컴퓨터(PC) 덕분에 세계 시장으로 나아간 금융은 실시간으로 자본을 이동할 수 있었다. 복잡한 관리가 필요했던 고도화된 증권은 인터넷과 PC가 없었다면 지금처럼 발전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기업들이 핵심 사업부만 남기고 대부분 사업을 외주화할 수 있었던 것 역시 정보통신기술의 영향이 컸다. 20세기 초중반 미국 기업들은 기업 외부와의 거래비용을 최소화하기 위해 기업 안에 수많은 사업부를 만들고 이를 관리하는 경영 기법을 정립했다. 하지만 20세기 후반부터는 정보통신기술 덕분에 낮아진 거래비용을 기반으로, 기업 내부의 거대한 사업부들을 외주화할 수 있었다.

아리기의 분석에 따르면, 세계체계의 위기 시기 또는 헤게모니 국가의 쇠퇴 시기에는 항상 금융적 팽창이 있었다. 네덜란드, 영국이 세계 헤게모니를 차지했을 때도 그러했다. 미국의 20세기 후반 모습 역시 이런 맥락에서 전형적인 헤게모니 쇠퇴의 특징을 보여준다. 다만, 미국 주도의 세계 질서는 통합 수준이 이전과는 질적으로 다르다는 점에 주의할 필요가 있다.

우선, 경제성장 둔화에도 불구하고 달러의 힘을 이용해 세계적 잉여가치를 미국에 축적할 수 있었다. 세계 각국은 달러와 안전자산을 보유하기 위해 지속해서 무역흑자로 번 돈을 다시 미국 금융시장에 투자해야 한다. 이것이 ‘달러 환류’라 불리는 세계적 잉여가치의 흐름이다. 미국의 금융화는 이전 헤게모니 국가들의 금융화 시기와 다르게 세계 화폐라는 절대적 힘을 가지고 있다. 화폐 없는 시장 경제가 불가능한 것처럼, 미국 밖의 세계 시장도 불가능하다. 위계적 국가 간 체계의 근간인 군사력 역시 미국은 타국과 비교가 불가능할 정도로 압도적이다. 미국을 상대로 한 군사적 위협은 테러와 같은 국지적이고 비대칭적인 형태로만 가능하다. 마지막으로 사회주의 진영의 몰락 이후 미국식 자유주의 문화의 외부도 마땅히 없는 상태다. 2천 년대 급성장한 중국이 한때 미국과 경쟁하는 체제로 인식되기도 했으나, 중국의 일당독재 체제는 현대의 지향에 한참 미달하는 상태로 정체되어 있다. 

요컨대, 20세기 미국의 헤게모니가 약화하고 있는 것은 분명하나, 미국의 세계 질서는 이전 헤게모니 국가들과 달리 그 외부를 허용하지 않는다. 미국 헤게모니의 약화가 곧바로 다른 헤게모니 국가의 등장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란 것이다. 


세계금융위기 효과: 금융세계화라는 궁지


2020년대 세계정세의 최고 쟁점은, 외부를 허용하지 않는 미국 주도의 세계 질서 속에서 바로 미국이 약화할 때 어떤 일이 발생하는지다. 미국이 없는 세계는 상상조차 할 수 없지만, 동시에 미국이 지키는 세계 역시 불안하기 짝이 없다. 한번 미국의 금융세계화 모순이 일으킨 세계금융위기를 살펴보면, 그 ‘어떤 일’을 예상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세계금융위기는 미국의 금융적 팽창이 초래한 필연적 결과였다. 1990년대 이후 만개한 금융세계화는 세계적 수준에서 잉여가치의 새로운 원천을 발견하기 위한 자본의 도전이었다. 물론 금융세계화는 자본과 노동을 동시에 절약하며 생산과 분배의 제도를 혁신하는 산업혁명 같은 근본적 해결책은 아니다. 중국과 같은 신흥시장에서 거대한 잉여가치의 저수지를 새로 발견하는 것이었고, 금융시장을 팽창시켜 현존하지 않는 잉여가치를 가공의 자본으로 만드는 것이었을 뿐이다. 이 중에서 특히 문제가 되었던 건 후자였다. 

금융상품은 담보가 분명한 대출 채권이 아닌 한, 기대되는 미래 수입에 대한 청구권의 가격, 즉 미래의 노동을 착취할 권리에 대한 가격을 의미한다. 그런데 미래가 무한하고 그 미래에 대한 기대가 주관적일 수밖에 없는 한, 당연히 그 가격에는 상한선이 존재하지 않는다. 더욱이 주택을 담보로 한 채권을 금융상품으로 만들고, 그 금융상품을 섞어서 또 다른 상품을 만드는 식으로 파생금융상품이 만들어지면서, 채권·채무 관계의 시작과 끝을 알 수 없는 증권까지 탄생했다. 현존하는 잉여가치보다 수백, 수천 배 큰 가공자본이 만들어졌다. 그런데 이런 금융상품들은 누군가 채무의 상환 또는 실제 가치의 확인을 요구하는 순간 문제가 발생한다. 가공자본의 크기에 대응하는 실제의 가치가 없기 때문이다. 2008년 세계금융위기가 이런 식으로 터졌다.

미국의 세계금융위기에 대한 대응은 구제 금융과 가공자본의 현금화였다. 부시 행정부 끝자락부터 오바마 행정부 1기 중반까지 이어진 구제금융 프로그램(Troubled Asset Relief Program)은 은행, 보험, 자동차업체, 대부업체 등에 4천3백억 달러(한화 약 5백조 원)의 자본을 주입해 부도를 막았다. 벤 버냉키가 이끄는 연방준비은행은 뱅크런으로 인한 은행 도산을 막기 위해 모기지증권을 대량 매입하는 전대미문의 수량완화(quantitative easing, QE) 정책을 사용했다. 이는 가공자본으로 가득 찼던 은행들의 자산을 현금으로 바꿔준 것이었다. 연준은 정부의 확장적 재정정책을 지원하기 위해 국채도 이전까지 볼 수 없었던 규모로 매입했다. 그 결과 2008년 초 1조 달러 수준이던 연준 자산이, 2014년 말에는 4.5조 달러까지 증가했다. 달러 가치의 토대가 되는 연준 자산이 이전보다 더욱 가공적으로 부풀려진 셈이었다.

세계금융위기와 함께 임기를 시작한 오바마 행정부에서는 국가채무가 급격하게 증가했다. GDP 대비 국가부채는 2008년 60%에서 2015년 말 100%로 커졌다. 속류 보수주의 이데올로그들은 구제금융이나 오바마케어 같은 정치적 색채가 강한 정책을 부채 증가의 원인으로 지적하기도 하지만, 실은 이 둘은 재정적자에 영향을 별로 미치지 않았다. 구제 금융은 모두 회수되었고, 오바마케어는 관련 세금과 직간접적 사회보험지출 감소로 비용이 상쇄되었기 때문이다.

재정적자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것은 2009년 경제위기 복구정책(American Recovery and Reinvestment Act), 세금 인하, 그리고 공격적인 국방비 증액이었다. 이는 매우 시사적이다. 앞의 두 가지는 일종의 경기부양책이라 볼 수 있는데, 경기부양 효과가 적절한 경제성장과 조세 수입으로 이어지지 않았다는 방증이 바로 정부 부채의 증가다. 세계금융위기가 해결된 것이 아니라 정부 부채로 땜질만 되었다는 의미라 하겠다. 전임 부시 시절보다 국방비가 오히려 증가한 것도 미국이 세계적 지도력을 유지하는 데 드는 비용이 점점 더 커지고 있다는 방증이다. 미국이 실물경제의 경쟁력보다 금융세계화에 의존할수록 군사세계화도 더욱 중요해진다. 미국의 실물경제와 달러 지위 사이의 갭을 메우는 것이 바로 미국의 군사력이다.

요컨대 미국의 금융세계화는 세계 경제를 통합하는 힘이지만, 동시에 스스로 무너질 수밖에 없는 힘이다. 세계금융위기로 달러의 가치 토대는 크게 불안정해졌고, 미국 정부는 빚을 늘려 가까스로 위기를 봉합하고 있다. 달러의 불안정화는 세계 화폐의 불안정, 즉 세계금융위기와 같은 세계적 금융 혼란으로 이어진다. 그런데 미국이 재정적자와 무역적자를 지속하면서도 세계적 잉여가치를 흡수하는 힘은 달러에서 나온다. 달러의 위기는 미국의 세계적 착취를 약화하고, 이렇게 약화한 힘이 다시 달러의 위기를 가속한다. 미국이 가져야 하는 세계적 지도력과 경제적 위태로움 사이 틈을 메울 힘은 군사력뿐이다. 그러나 미국 헤게모니가 군사력에 의존할수록, 20세기적 헤게모니는 19세기적 제국주의의 모습으로 되돌아갈 수밖에 없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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