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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리병원 허용, 무엇을 의미하는가?

박주영 | 민중의료연합 사무국장
영리병원 허용이 낳을 효과들

한국사회에서 병원은 법적으로 비영리법인의 형태를 띠고 있다. 1995년 1월부터 의료기관 시설에 대한 외국인 투자는 허용되었으나, 의료법 제 30조 ②항에 의해 국내의료인 면허를 소지한 자, 국가/지방자치단체, 의료법인 또는 비영리법인만이 의료기관 설립이 가능하므로 외국자본도 의료기관에 대하여 비영리법인 형태로만 투자될 수 있다. 이러한 조건에서는 투자된 병원의 과실송금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이 '비영리법인' 조항은 외국자본의 국내 병원산업 진출을 지연시키는 핵심적인 장애물이다.{{ 이진규, 의료시장개방과 관련된 법률·제도변화, <의료시장 개방 저지를 위한 공동토론회>자료집, 2003. 3. 4
}} 그러나, 2003년 경제자유구역법이 통과되면서 그리고 WTO 서비스시장 개방과 맞물려, 이러한 외국자본의 실질적인 진입장벽을 없앨 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다.

"영리병원의 허용은 병원서비스의 상품화로 인해 국민간 위화감을 조성할 우려가 있지만 미국 등 대부분의 선진국은 영리법인을 일정부분 허용하고 있다. 비영리법인에 대해서는 세제혜택 등 공공익기능 수행에 따른 지원을 해야 한다." 2003-06-19 메디게이트

"한국병원경영연구원 송건용 연구위원은 ....선진국의 경우와 같이 민간병원을 공익성을 강조하는 비영리 병원과 영리를 추구하는 병원으로 이원화해 비영리 민간병원의 공공성을 강화하는 한편 영리를 추구하는 영리병원을 추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2004-01-13 메디게이트

"김진표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장관은...의료 분야의 영리법인 허용을 정책적으로 추진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영리병원이 허용될 경우 외국 자본에 의한 대형병원이 등장할 가능성이 크게 점쳐지고 있지만 무엇보다 국내 대기업들의 병원사업 진출도 활기를 띨 것으로 전망된다." 2004-01-16 데일리메디

경제자유구역법이 통과되고 외국병원의 설립이 가시화되면서, 외국병원을 유치하기 위한 규제완화 조치들이 속속 진행되고 있다. 병원의 영리법인화 허용 문제는 그 대표적인 규제완화 조치 중 하나로서, 민간의료보험의 도입과 함께 외국병원을 유치하기 위한 정부의 적극적인 방안이다. 이런 의미에서 영리병원의 허용 문제는 의료시장 개방 문제와 동떨어져서 생각할 수 없으며, 의료시장개방이 낳는 법·제도적 변화의 하나이다. 그런데 한 가지 주목할 것은 존스홉킨스 병원, MD 암 센터 등 외국병원들 뿐만 아니라 국내 병원 산업체도 '영리병원 허용' 문제를 요구하고 있기도 하지만, 이는 국내 병원산업이 원하는 방향이기도 하다는 점이다. 2003년 6월 병원경영연구원은 "철저한 준비를 한 후에 의료시장을 개방하면 병원 경쟁력은 향상되고 가격, 의료의 질, 안전성, 만족도 등 국민의 의료복지가 크게 향상될 것"이라며 의료시장개방에 대한 기대감을 밝힌 바 있다. 또한 위 기사에서 드러나듯이, 영리법인의 허용이 선진국형 병원산업을 육성하기 위한 방안이나 국내 병원산업의 활성화를 위한 방안으로 제시되고 있다.
이는 정부나 병원자본은 영리법인 허용 등의 의료시장 개방으로 인한 일련의 조치들을 목적의식적인 재편과정으로서 인식하고 있다는 것이며, 이를 이미 적극적으로 주도하고 있다는 것을 말한다.
우리는 이미 의료시장개방으로 인한 법적, 제도적 요구사항들로서 즉 민간의료보험의 도입과 영리병원 허용이 필연적으로 제기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여러 차례 지적해왔다. 또한 이것은 보건의료상업화의 주요한 기전이 될 것이며, 이미 과잉팽창된 한국 사회의 보건의료체계를 더욱 치열한 경쟁 속으로 내몰 것이라는 점 또한 지적해왔다. 2001년에서 2002년 1년 동안 증가한 의료시설을 보면 의원 급 기관이 약 2천개 정도 증가하였고, 병원 급 기관에서는 약 10,057병상이 증가하였던 사실을 상기해보자. 더구나, 여기에 투자되는 비용을 계산해보면 의원 급 의료기관의 기관 당 설립비용을 평균 2∼3억 원이라고 가정하고, 병상 당 신설비용을 1억 원으로 가정할 때, 대략의 추정이지만 연 1조4천억 원∼1조6천억 원에 이르는 자본이 신규로 의료시장에 유입되고 있는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이진규, 보건의료운동의 전략과 실천과제, <2003년 민중의료연합 여름아카데미> 2003. 8. 30
}} 병원 자본 간의 치열한 경쟁은 더욱 심화될 수밖에 없고 이 와중에 의료서비스는 '소비자'의 선택을 기다리는 '고부가가치 상품'으로 탈바꿈한다.
결국 의료자본이 영리법인의 허용을 요구하는 이유는 보다 높은 이윤율을 확보하기 위한 의료시장 재편 전략이다. 이러한 전제에 따라 병원의 영리법인화 허용은 다음과 같은 효과를 지닌다. 첫째, 주식, 채권과 같은 직접 금융시장을 통해 조달된 자본으로 의료시설에 투자할 수 있다. 둘째, 의료서비스라는 상품 생산, 유통, 분배 과정에 대한 규제로부터 자유로와질 수 있다. 셋째, 자본 투자자의 이윤까지 담보해야 하므로 현재의 의료기관보다 더욱 영리적인 목적을 강화할 것이다. 넷째, 의료정책이 자본 투자자의 이해를 반영할 가능성이 증가하게 된다.
이를 유추해보기 위해, 미국 영리병원의 사례를 검토할 필요가 있다. 미국 영리병원은 1980년대 이후 민간 영리병원 체인(for-profit)이 그 규모를 확대해하면서, 민간 비영리 병원(nonprofit, private)과 공공병원(public)들이 감소하거나 영리추구병원과 유사한 행태를 보이는 모습으로 전환되는 양상을 보인다.{{ Lawrence D. Weiss, Private Medicine and Public Health. WestviewPress 1997. 67-83
}} 여기에서는 Barbara Kirchheimer, <전지구적 야망Global Ambition>, Modern Healthcare, 2001.5.7와 Robert Kuttner, <콜럼비아/HCA{{ HCA헬스케어 (HCA-The Healthcare Company)는 미국의 의료 서비스회사를 말한다. 1988년 변호사인 리처드 스콧(Richard Scott)과 금융가인 리처드 레인워터(Richard Rainwater)가 120명의 의사와 협력하여 공동으로 설립하였다. 처음의 이름은 컬럼비아헬스케어(Columbia Healthcare)였고 1993년에는 휴매나(Humana Inc.)에서 분리하여 독립적으로 활동하던 갤런헬스케어(Galen Health Care)를 합병, 이듬해에는 호스피털코퍼레이션오브아메리카(Hospital Corporation of America:HCA)를 합병하여 컬럼비아HCA헬스케어(Columbia-HCA Health Care Corporation)가 되었다.그 후 발전을 거듭하여 1990년대 후반 지금의 이름으로 바꾸었으며, 미국의 대표적인 건강관리서비스 기업으로 자리매김하였다. 미국 및 해외에 300개 이상의 병원과 건강관리시설을 소유, 운영하고 있다. 2000년 시점으로 총자산 175억 6800만 달러, 매출액 166억 7000만 달러이며, 본사는 테네시주(州) 내슈빌에 있다.(http://100.naver.com/100.php?&mode=all&id=733746 참조)
}}와 영리병원산업의 부활 Columbia/HCA and the resurgence of the for-profit hospital business>, the New England Journal of Medicine, 1996. 8. 1-8. 6을 바탕으로 영리병원의 문제점을 간략하게 짚어보도록 하자.

비영리 병원과 공공병원의 매수, 위탁경영 증가

미국의 영리병원은 보통 체인형태로 만들어지는데, 이들은 비영리병원과 공공병원에 대한 공격적 마케팅과 흡수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미국은 국내에 그치지 않고 끊임없이 국제적인 체인사업을 확장하고 있다. 그들이 브라질에 대규모 병원설립 사업을 진행하면서 모든 브라질시민들은 무상의료서비스를 받을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1억7천2백만 인구 중에서 약 20%가 민간의료계획과 민간부문을 이용하고 있다. HCA는 계약관리사업을 통해 중국, 프랑스, 필리핀, 사우디아라비아의 병원을 개발하는 것을 지원했고 HCA는 1973년 사우디아라비아의 전문병원을 개원하고 경영할 수 있게 되었다. 이 시기에, HCA의 국제사업은 오스트레일리아, 브라질, 파나마와 영국의 병원을 사들이는 것뿐만 아니라, 이탈리아, 파키스탄, 사우디 아라비아, 싱가폴의 병원을 경영하는 것까지 확대되었다. 1995년 한해에만, 콜럼비아/HCA는 32곳의 비영리병원과 합동사업협상을 진행하였다. 이 주목할만한 성공은 표1에서 확실하게 드러나고 있다.
{{{{표1. 콜럼비아/HCA의 성장과정, 1988~1995
}}{{
}}{{1988
}}{{1989
}}{{1990
}}{{1991
}}{{1992
}}{{1993
}}{{1994
}}{{1995
}}{{병원갯수
}}{{4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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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24
}}{{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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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3
}}{{2,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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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347
}}
}}
콜럼비아/HCA연말보고서
미국 영리병원체인은 점점 더 크게 조직화된 네트워크로 변화하면서 유럽을 제3의 무역 전략지역으로 조직하고 있다. 병원은 기업들에게 주요성장 산업으로 부상하고 있으며 1990년대 이후로 미국의 영리병원 체인에서 병원 투자자들이 비영리병원을 소유하는 경향이 급격하게 늘어나고 있다. 콜럼비아/HCA병원 체인은 크고 작은 합병으로 만들어진 회사로 영리병원 체인 중에서 가장 크고 공격적인 활동을 하고 있다. 340개의 병원, 135개의 외래환자상담소, 38개 지역에 퍼져있는 200군데의 가정간호소를 운영하는 콜럼비아/HCA는 현재 전세계 영리병원의 절반 정도를 통제하고 있으며, 이는 미국의 모든 병원병상 중 7%에 해당한다. 이 회사는 1995년에만 수익이 10억미만, 전체자산이 200억에 육박했다.
시장원리에서 각각의 투자행위는 반드시 수익을 목적으로 이루어진다. 일시적인 손실은 방어할 수 있어야 하며 미래의 수익을 위한 투자이므로, 국가보조금은 지급될 필요도 없다. 그래서 순수한 영리기업에서는 장애인 치료, 수익이 안 되는 진료, 연구, 교육, 또는 공공의료행위는 하지 않는다. 이는 엄격한 사업의 관점에서 보면 모든 만성적인 손실요인이다. 당연히, 공공재의 가치는 사적시장에서의 최대수익률로 환산될 수 없기 때문이다. 영리병원의 관리들은 스스로가 "보건의료사업에 종사하지 않는다. 질병치료사업에 종사"할 뿐이라고 말한다.{{ 미국 영리병원의 체인인 콜럼비아/HCA는 그 놀라운 성장과 스케일뿐만 아니라, 광폭함과 만행 때문에 비판의 초점이 되었다. 콜럼비아/HCA가 시장에 열심히 진입할 때만 해도 그저 왕성하게 경쟁만 하지는 않았다. 그들은 비영리법인 병원을 사기 위해 공공관련 캠페인을 준비하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 콜럼비아/HCA의 정치적 민감성은 유명하다. 한번 사업에 착수하고 진행을 하게 되면, 그들은 법적으로 탁월한 능력을 갖춘 이들을 줄세우고, 지역시민사회, 정치적, 의학적 지도자들 사이에서 자기편을 확인하고, 이들을 더 많이 끌어들이기 위해 엄청난 돈을 뿌려댄다.
}} 철저히 '사업'의 관점을 지닌 영리병원들은 자연스럽게 수익성이 낮은 저소득계층과 사회보험 환자를 기피하게 된다. 따라서 저소득계층과 사회보험 환자들은 비영리민간병원과 공공병원만을 찾아가게 되어 이 병원들에 집중된다.

'돈'이 있으면 '선택권'도 따라 온다

일부 영리병원들의 경우 수익성이 낮은 응급실, 신생아 중환자실, 화상센터와 같은 시설을 처음부터 설립하지 않거나 폐쇄하는 경향이 있다. 혹여 응급실을 운영하는 병원의 경우에도 수익성이 낮은 환자들을 비영리민간병원과 공공병원으로 옮겨버리는 경우가 흔하다. 영리병원은 이윤이 높은 환자만을 골라보고 저소득층과 사회보험 환자들은 공공병원과 비영리병원으로 몰리게 되는 계층화 현상은 더욱 극단적인 형태로 드러날 것이고, 비용 증가와 함께 의료서비스의 질에 있어서 불균등성이 심화될 것은 자명한 일이다.

"많은 정부들이 국가적 의료시스템이 예산에서 압박받고 있기에 매우 긴장하고 있으며, 그 부담을 민간부문으로 돌리려한다. 그들은 공적시스템이 효율적이지 않기 때문에, 돈을 투자하지 않는다. 공적시스템이란 비상사태를 고려할 때는 훌륭하지만, 소비자에 대한 서비스와 서비스개선 면에서는 그렇지 못하다." - 콜럼비아/HCA헬스케어 관리-

흔히 병원의 영리법인화를 허용하자는 주장은 주로 '소비자의 선택권'이라는 점에서 제기된다. 미국의 영리병원 체인을 운영하는 관리들은 "대부분의 부유한 사람들은 사립병원서비스를 이용한다. 선진국에서는 부유한 수준이 높아질수록, 영리병원시장은 점차 더 커지고 있으며 매우 급속하게 성장하고 있다"고 말한다. 실제로 영리병원을 이용하는 사람들은 사회경제적 배경이 높은 사람들이거나 진료비를 지불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민간의료보험을 갖고 있어서, 더 빨리 진료 받거나 개인용 공간에서 진료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영리병원에서 제공하는 서비스를 원한다. HCA병원에서 제공하는 대부분의 서비스는 심장이나 정형외과, 소화기 등 선택과목이며 비응급 서비스이다. 영국 내에서 공공의료시스템인 NHS(National Healthcare System)는 광범위한 응급서비스와 외상성 장애까지 포괄한다. 그러나 민간의료보험은 대체로 응급서비스에는 적용되지 않으므로, 민간의료보험과의 계약 하에 운영되는 HCA병원은 응급진료서비스를 제공하지 않는다.
결국 소비자의 '선택권'이라고 했을 때, 이 소비의 주체는 '경제력을 갖춘' 소수의 계층에게만 국한될 뿐이며, 이들이 원하는 의료서비스 또한 고수익을 내는 몇가지 전문서비스에 국한될 뿐이다. 스위스에서 두 번째로 큰 영리병원인 HCA의 제노바 지부를 보자. 이들은 40병상짜리 의원, 외래병동, 스포츠 사고클리닉인 스포츠 멀티테라피까지 운영하고 있다. 그리고 런던과 제노바의 HCA병원은 심장병치료와 암연구, 산과치료, 신경외과, 안과치료 등 주로 높은 고수익서비스 제공을 특징으로 한다. 관리자들은, HCA의 연도별 국제사업수익이 3억5백만 달러∼4억 달러 정도 된다고 말한다. 결국 HCA의 국제사업 수익은 보편적으로 제공되어야 할 응급서비스조차 제공하지 않은 채, 수익성이 보장된 특정 질환에만 국한된 전문서비스를 제공하면서 얻은 수익인 셈이다. 이는 한국에도 똑같이 적용될 수 있는 말이다.
한국사회에서 경제자유구역을 중심으로 영리병원이 허용될 경우, 고수익서비스를 중심으로 한 병원간의 경쟁은 더욱 치열해질 것이고 '소비자의 선택권'을 우선시해야 한다는 명분만 넘쳐나게 될 것이다. 현재 건강보험료도 내지 못하는 150만이 넘는 가구는, 어디에 가서 의료서비스를 제공받을 수 있을 것인가? 민간보험은커녕, 건강보험료조차 연체된 이들은 전체 병원 중에서 10%가 간신히 넘는 공공의료기관을 찾아 전전하거나, 아예 의료기관을 찾을 생각도 못하고 죽음에 이르게 될지 모른다.

주식회사형 병원의 등장, 보건의료체계의 불안정성 증가

콜럼비아/HCA의 기본계획은 가장 최소비용으로 병원을 모으고, 업그레이드가 필요한 곳에 투자를 하는 것이었으며, 거의 중복설비를 합병하거나 인력을 자르거나, 경영효율성을 증가시키고 규모의 경제성을 활용하는 것이었다. 여기에, 수직수평적으로 완전히 통합적인 설비로 지역(환자)이송네트워크를 강력하게 발전시키는 것이었다. 다른 대규모영리병원체인을 전부 사들이면서 회사의 급속한 성장도 잠시 중단되었지만, 콜럼비아/HCA가 살아남은 다른 대규모체인들, Tenet이나 OrNda같은 곳과 합병했다면 아마도 독점금지법에 직면해야 했을 것이다.

"영리병원 설립이 허용될 경우 더 이상 복지재단 등의 형태를 취하지 않더라도 직접 자본을 투자해 주식회사 형태의 병원설립이 가능해진다. 이미 삼성, 현대 등의 대기업 이외에 한화, SK, 두산 등이 병원설립에 적극적인 관심을 보여왔다. 대기업의 병원사업 진출과 함께 의료기관의 코스닥 상장도 가능해질 전망이다. 미국에서는 상당수 병원들이 일반기업들처럼 주식시장에 상장돼 있고, 주식시장에 직접 투자하기도 한다. 국내에서도 치과병원 프랜차이저 전문업체인 메디파트너가 내년도 코스닥 상장을 목표로 삼성증권과 주관사 계약을 체결, 주목받고 있다. 메디파트너는 의료시장 개방 및 영리병원 허용에 대비해 병원 지주회사 및 병원 M&A 병원 평가사업 클리닉 센터 개발 및 운영 의료 금융 민간보험사업 및 해외진출 사업 등을 계획하고 있다." 2004-01-16 데일리메디

영리병원의 허용과 동시에 민간기업과 자본의 투자도 전면자율화된다. 이렇게 되면 병원운영에 있어서 자본 투자자의 이윤까지 담보해야 하므로 현재의 의료기관은 보다 더 영리적인 성격을 띨 수밖에 없으며, 의료정책 또한 자본 투자자의 이해를 반영할 수밖에 없게 된다. 위의 기사에서 볼 수 있듯이, 삼성, 현대를 비롯한 재벌과 유수한 기업들이 본격적으로 영리목적의 병원을 설립하고 운영할 경우를 생각해보자. 이들의 주식회사형 병원은 기업과 마찬가지로 끊임없이 주주들을 안심시켜야 하고 지금보다 더욱 비용문제에 민감해진다. 특히나 영리법인화는 곧 외국투자자의 해외송금을 허용한다는 것인데, 문제는 그것만으로 간단하게 끝나지 않는다. 외국인 투자 유치 및 해외송금이 자유로워진다는 것은 외국인 투자 자산의 송금을 자유로이 보장함으로써 금융·주식시장에서의 단기적인 투기를 통해서건, 인수·합병을 통한 기업 이윤이건 투자자산의 국경 간 이동이 자유롭게 된다는 것이다. '주식회사형 의료기관'이 등장하게 되면서 투기성 자본의 이동이 자유로워지고, 이로 인해 경제의 불안정성은 더욱 가중될 수밖에 없게 된다. 해외 자본이 국내에서 획득한 이윤을 국내에 다시 재투자할 것인지 아닌지도 예상할 수 없게 되어버린다. 그 자체로 의료시스템 자체의 금융화는 단기적 투기로 인한 보건의료산업의 불안정성으로 연결될 수 있다. 특히나 이것이 전국민의 기초생활과 생존에 직결된 보건의료 분야이기 때문에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
영리병원이 허용될 경우, 이는 복수의 의료기관 설립을 가능하게 하며,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의료기관간 연계체계가 심화된다는 의미를 지니기도 한다. 현재는 의료법상 1인이 복수의 의료기관을 개설하는 것이 제도적으로 불가능하다. 또한, 1차에서 3차 기관까지 다양한 수준의 의료기관이 동일 사업장으로 묶여진다 하더라도 진료비 상환이 개별 의료기관별로 의료기관의 수준에 따라서 다르게 이루어지고 있는 현행 건강보험체계에서는 효율적으로 운영되기 어렵다. 다시 말해, 최근 미국에서 나타나고 있는 수직적으로 통합(vertical integration)된 의료기관체계와 보험회사와의 연계가 출현하기 어렵다는 의미이다.{{ 이진규, 의료시장개방과 관련된 법률·제도변화, <의료시장 개방 저지를 위한 공동토론회>자료집, 2003. 3. 4
}}
그러나 영리병원이 인정되고 건강보험을 대체하는 민간의료보험이 시장에 출현하는 조건에서 복수 의료기관 설립 허용은 의료시장에 엄청난 파급력을 지닐 수 있게 된다. 이러한 조건이 충족되면, 외국 자본이 막강한 자본력과 첨단 경영기법을 바탕으로 국내의 여러 의료기관을 인수·합병하거나, 지분참여 등 다양한 형태로 진출할 것으로 예상되며, 국내 대형병원들도 동일한 방식으로 대응해 나갈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광범위한 외국자본의 영입, 의료기관 통폐합 및 대형화, 중소의료자본의 대형자본으로의 편입과 흡수를 피하기 어려울 것이다.

비영리병원까지 영리 추구로 흘러가고 있다

영리병원은 그들의 사업전략상, 수익이 나지 않는 서비스와 환자는 기피하는 경향이 있다고 언급한 바 있다. 이러한 현상으로 인하여 미국에서는 비영리병원과 공공병원의 경영난이 악화되었고 1980년대 이후 점차 정부보조금이 축소되었다. 이에 따라 이들 병원들도 점차 영리병원과 같은 경영 행태를 나타낼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한다. 비영리병원들은 영리병원으로 전환하거나, 다른 영리병원을 모방하기 시작한다. 병상을 모두 채우기 위해서 다른 병원들과 경쟁하는 것은 영리병원뿐만 아니라, 비영리병원들이나 공공병원들도 마찬가지다. 시장의 문화와 특징은 심지어 비영리병원에까지 점차 스며들고, 서비스영역이 상품의 영역이 아니었던 것은 과거지사가 되어버렸다. 예전만 해도 병원이 환자들을 대상으로 홍보했지만 시장원리를 부르짖지는 않았다. 비영리병원이 방어적으로 영리병원을 모방하면서, 그 윤리적 우월성을 강조하는 주장조차 공허해지고 있다.
한국의 경우, 이러한 경향성은 1990년대 후반 공공부문에 대한 전면적 사유화 흐름이 진행되면서 이미 제기된 바 있다. 우리나라와 같이 공공의료기관이 취약할 경우, 또 의료서비스 자체가 치료 영역에만 국한되어 있을 경우에는 공공의료가 포괄적 서비스를 지속적으로 제공할 재간이 없다. 그래서 공공의료기관은 낮은 가격으로 서비스를 제공하게 되고 결국 적자만 내는 골칫덩어리로 전락할 수밖에 없었던 역사가 있다. 끊임없이 제기된 공공의료기관의 문제점은 관료화된 행태와 비효율성이었는데, 실제로 공공병원에 대한 적자보전과 투자가 전제되지 않는다면 지방공사의료원 등 공공병원은 계속해서 똑같은 공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 결국 공공병원이 보건의료체계 내에서 스스로 '시장성'을 강조하고 수익성을 자기목표로 받아들이게 된다면, 민영화라는 시대적 '대세'앞에 내세울만한 대안적 논리와 근거를 갖지 못하게 되고 마는 것이다.

병원의 역할을 재정립해야 한다

1,300여개의 비영리병원지부를 가진 체인회사 중 한 곳은 영리법인에 대한 공공병원의 반격을 주도하면서, 어떻게 통합된 체계를 건설하고 시장원리에 이길 것인지를 조언하고 있다. 또 아틀란타에 자리한 American 건강자문회사의 최근 소식을 보면 "환자중심의 치료"를 활성화시키며, 만족스런 결과를 낳았다는 사례를 볼 수 있다. 병원시장 내에 존재하는 자문회사의 전략은 비용을 절감하고 치료서비스의 질을 개선하는 목적을 모두 갖고 있다. 이들은 치료에 필요한 비용을 줄이면서도, 입원환자들이 대체로 덜 아프거나 더 빨리 퇴원하고 싶어할 때, 한번에 치료가능한 서비스를 소개하기도 한다.
콜럼비아/HCA는 의료가 상품이라고 주장하지만, 점차적으로 그 원칙은 부담스러워질 것이다. 비영리병원들이 국가보조금을 취하면서 자신의 명분으로서 '공공'의 역할을 제대로 유지한다면, 그들은 영리병원체인의 변호사들의 변호사들, 광고를 위한 광고, 비용절감을 위한 비용절감에 맞설 필요도 없게 된다. 그러한 영리추구적 행위를 뛰어넘어, 그들 자신의 임무는 더욱 더 명확해질 것이다. 결국 사회적으로 더 나은 규정과 선언을 통해, 더 확실한 근본원칙을 만들 필요가 있을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권리는 시장으로 이양된다.

영리법인 허용과 민간의료보험 도입 등 최근의 규제완화 조치들에 대해 운동진영은 꾸준히 문제점을 지적하며 반대해왔다. 또한 앞서 서술한 모든 문제점들을 이야기하며 한국 보건의료체계의 근본적 문제점에 대해 질문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시점에서 일각에서는 일련의 규제완화 조치를 옹호하는 주장도 있다. 아직은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의료보장제도가 수립되어 있고, MRI, 초음파 등 몇 개의 의료행위를 제외하고는 모든 의료행위가 건강보험 관련 규제에 묶여 있다. 이런 상황에도 영리법인의 허용이 당장에 파괴적인 영향력을 행사할 개연성은 그리 높지 않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자본이 추구하는 지향과 의도를 간과한 순진한 판단에 불과하다.
자본의 의도는 이미 3년 전부터 드러난 바 있다. 민간보험회사와 보건복지부 등이 참여한 민간의료보험 활성화를 위한 태스크포스 팀에 의해 2001년 12월 14일 발표된 '국민건강보험과 민간보험의 협력을 통한 의료보장체계의 개선방안'이 그것이다. 그 이후 최근의 '참여복지 5개년계획'과 보건복지부장관의 입장 등을 통해 이들은 이미 충분히 예상가능한 길을 걸어오고 있다. 보건복지부가 최근까지도 영리법인화와 민간의료보험 도입에 대해 난색을 표했다가 입장이 바뀐 것을 상기해보자. 보건복지부의 입장과 달리, 이미 재경부 차원에서 일련의 규제완화 조치가 적극적으로 주도되고 있었다는 점은 이것이 단순히 개별부처 차원에서 처리되는 정책에 국한된 것이 아니며, 전반적인 보건의료체계의 질서재편, 그리고 공공서비스 분야까지도 상업화하려는 자본의 의도로서 파악해야 한다는 점을 보여준다.
영리병원의 허용은 보건의료체계의 상업적 재편을 이끄는 강력한 분기점이 된다. 이 영리병원의 허용은 민간의료보험의 도입과 함께, 의료를 상품화시키는 강력한 토대로 작동할 것이다. 우리가 직면한 상황을 볼 때, 더 이상 '공공의료와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만을 주장해서는 어떠한 싸움도 이끌기 어렵게 되고 있다. 현 상황에 대한 구체적 분석과 광범위한 연대가 절실한 때이다. PSSP
주제어
보건의료 민중생존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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