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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3.4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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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간착취없이 일하고 싶다

구미영 | 회원,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정책부장
2월 27일 오후 세 시 서울지방노동청 소회의실엔 긴장감이 감돌기 시작했다. 한 평생 경찰과 상관없이 살아오던 간병인 여성노동자들은 소회의실을 둘러싸는 경찰들을 보며 심장이 조여드는 긴장과 불안을 느낄 수 밖에 없었다. 노동부와 경찰청에서는 '경찰 투입은 없을 거다'라 했다지만 그저 말에 그치고 말 것임은 노조활동 7개월차에 접어든 조합원들도 느낄 수 있을 정도였다.
저녁 7시 회의실 문을 부수고 경찰이 들어오면서 너무나도 서럽고 처절한 간병인조합원들의 저항이 시작되었다. 심장병, 고혈압이 있어 조심해야 했던 조합원도, 평소 욕 한 마디 못하고 살던 조합원도 고래고래 소리지르고 발버둥치기 시작했다. 병원장을 만나러가도, 법원을 가도, 인권위를 가도 아무도 우리 말을 들어주지 않는구나, 그래도 노동청은 믿었는데 역시나 유료직업소개소 편이고 서울대병원 편이구나,중간착취 문제는 안중에도 없구나. 이런 분노는 아무리 악을 쓰고 발버둥쳐도 사라지지 않았다.

무료소개소 폐쇄 당한 후 7개월째 투쟁
서울대병원에는 200여명의 간병인이 일하고 있는데 2003년 9월 1일까지는 유료소개소와 무료소개소를 통해 환자와 연결되었다. 서울대병원 간병인지부 조합원들은 무료소개소에서 일하던 간병인들로 이 무료소개소는 1988년부터 서울대병원에서 운영해왔다. 유료소개소는 무료소개소보다 간병료가 5000원 더 높지만,무료소개소를 선호하는 까닭은 일자리 배정을 둘러싼 비리가 없고 병원으로부터 업무 관련 교육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2003년 9월 1일 서비스 개선이라는 명목으로 무료소개소가 폐쇄되었고 서울대병원에서 일하고 싶으면 유료소개소를 이용하라는 통보를 받았다. 이윤만을 추구하는 유료소개소의 경우 간병인을 알선하고 가입비, 월회비 및 그 밖의 뒷돈 챙기기에만 관심있기 때문에 간병인 교육 문제에는 전혀 관심이 없다. 때문에 유료소개소에서 환자 및 보호자들과의 마찰이 더 자주 발생하는 편이다. 이렇듯 환자도 간병인도 원치 않는 유료소개소를 병원이 굳이 강행하는 것에 대하여 간병인들은 분노하였다. 10년 이상 함께 일해온 간병인들의 의사를 듣지도 않고, 일방적으로 유료업체를 선정하지 않겠다는 약속도 뒤집는 병원의 행태에 그 분노는 높아질 수 밖에 없었다. 다른 병원에서 일할 수 있음에도 이제까지 투쟁하는 데에는 이렇게 상처받은 자존심도 큰 역할을 하였다.

불법근로자공급의 주범은 병원이다.
2월 2일 강남고용안정센타는 서울대병원의 유료소개소가 불법 근로자공급이라는 결정을 하였다. 직업소개소라면 말 그대로 알선 및 소개 업무만 하면 될텐데 간병인 공급 및 교육, 관리 권한을 행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들 업체들이 '직업소개소'라는 이름을 걸고 노동법상의 책임을 회피하고 있는 것에 대해 노동부가 제동을 건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주목해야할 근본적인 문제는 현재의 대형병원에서 간병업무가 필수적인 것이라면 마땅히 병원이 그 고용과 관리를 책임져야 한다는 점이다. 환자의 안전과 간병인의 노동기본권을 위해서 병원이 책임져야 할 사항을 소개업체에게 떠넘기고 있는 것이 이번 불법근로자공급 판정 사태의 근본적인 원인이다.
불법소개 사업이 횡행하는 서울대병원의 모습은 간병노동자가 병원 내에서 어떠한 대우를 받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30년 넘게 일해오고 있으나 이들은 없는 것과 같은 존재였다. 24시간 주6일씩 병원에 근무해도 쉴 공간도 시간도 없다. 간병을 하다 감염되어도 허리를 다쳐도 알아서 해결해야 했다. 유료소개소에게 갖은 명목으로 뜯겨도 참아야 했다. 단순 허드렛일을 하는 간병인에겐, 어디 가서 일할 데 없는 50대, 60대 여성노동자에겐 권리가 없기 때문이었다. 임금도 박하고 업무가 어렵지만 간병노동자들이 계속 참는 것은 안정적으로 계속 일자리가 생기는 업무이기 때문이다. 안정된 일자리를 잡기 어려운 여성 기혼 노동자는 유료소개소라도 아쉬워하는 형편이라는 것을 너무나 잘 알기 때문에 서울대병원도, 유료소개소도 그 누구도 책임지지 않은 채 간병노동자들을 부려먹어왔다.

노동부는 누구의 편인가.
이런 현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노동부에선 오히려 유료소개소를 합법화할 방안을 고민하고 있다한다. 최근 파견법 완화 방안이 발표된 것에서 보듯 정부는 민간 유료소개업, 파견업을 확대시키겠다는 방침이다. 이런 정책 방향과 충돌하는 불법판정을 내렸으니 상당히 부담스러워하는 눈치이다. 이번 불법판정 때문에 전국 수 백여개 소개업체가 문닫을 판이라는 걱정을 왜 노동부가 해야하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다. 이번 노동청 강제진압 사태는 비정규직 여성노동자의 고통, 중간착취 당하는 고통은 아예 무시하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그러나 저항하는 조합원의 사지를 들어 연행한다고 해서 이들의 분노와 용기가 사라진 것은아니다. 하루만에 풀려난 조합원들은 오히려 "우리 조합원이 끌려가는 걸 보니 눈의 뒤집어지더라", "이제서야 동지가 무엇인지 알았다", "여기서 기운이 꺾일 줄 알면 착각이다. 우리 아줌마부대의 자존심을 보여주겠다"고 말하고 있다. 공권력 투입 같은 한심스런 작태로는 서울대병원 간병인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을 병원과 노동부 모두 알아야 할 것이다. PSS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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