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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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진보연대 계간지


2004.3.4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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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크는 지금

정영섭 | 반전팀,노동차장
1. 이라크 임시헌법 합의

이라크 과도통치위원회(Iraqi Governing Council)는 미국의 주권이양이 이루어질 6월 30일 이후 임시정부의 법적 통치기반이 될 임시헌법 초안에 합의했다고 3월 1일 발표했다. 임시헌법은 60개 조항으로 구성되었는데 주요 내용은 △표현?언론?집회?종교의 자유 △군부에 대한 민간통제 △이라크 국민의 권리 보호 △임시의회 의석의 25% 여성할당 △이슬람법(샤리아)의 지위 △연방주의 △2005년 1월 31일 이전 선거실시 등이다. 이슬람법의 역할은 제한되었다. 국교로 되었지만 동시에 종교의 자유도 인정되었고, 입법의 ‘유일한’ 근간이 아니라 다른 것 가운데 ‘하나의’ 근간으로 표현되었기 때문이다. 미국 관리들은 즉각적으로 이라크 점령행정처의 브레머 최고행정관이 이 이라크 임시헌법을 승인할 것이고 이는 새로운 이라크 정부의 기본틀이 될 것이라고 환영했다. 파웰 국무장관조차 TV에 출연하여 “데드라인에서 하루가 늦었을 뿐 굉장한 성과”라고 말했다. 과도통치위에 참여하고 있는 이라크독립민주운동(IIDM)의 지도자 아드난 파차치도 “이라크 역사에서 잊지 못할 위대한 날”이라고 치켜세웠다.
그러나 여러 가지 문제점은 남는다. 과도통치위는 민병대 무장해제, 임시정부의 구성, 선거 체계 등과 같은 첨예한 이슈들에 대해서는 결론을 내리지 못한채 이후 구성될 임시정부로 넘겼다. 쿠르드 족과 관련해서는 북부 쿠르드 지역에 상대적으로 독립적인 사법부와 입법부를 둘 수 있게 하는 등 자치를 보장하고 있다. 그러나 걸프전쟁 이후 이라크 북부에 비행금지구역이 정해지고 후세인 정권의 손길이 미치지 못하면서 광범위한 자치를 누려온 쿠르드족은 석유 수익에 대해 일정 비율의 고정된 배분을 할 것과 쿠르드족이 다수인 북부 지역에서 영토를 확장할 수 있게 할 것을 요구해 왔기 때문에 향후 갈등의 소지가 크다. 또한 임시헌법은 이라크 내에 대규모로 존재하고 분란을 일으킬 수도 있는 민병대에 대해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했다. 쿠르드 민병대인 페시 메르가(pesh merga), 시아파 민병대인 바드르 브리게이드(Badr Brigade), 메히드 아미(Mehidi Army)등 민병대의 규모는 크다. 이들을 그냥 놓아두면 서로 분쟁을 일으키거나 정부에 저항할 수 있다고 미국은 보고 있다. 그러나 쿠르드족이나 시아파는 이 충성스러운 무장병력을 해체하고 싶어하지 않는다.
그리고 임시헌법은 2005년 1월 31일 이전에 선거를 실시하도록 했는데 그렇게 되면 275명의 의원이 생기고 그들이 대통령과 두명의 부통령을 뽑게 된다. 다시 이 세명이 총리를 뽑는다. 하지만 선거 이전까지는 7월 1일부터 미국이 주권이양을 하기 위해 만들게 될 임시정부가 선출되지 않은 권력으로 통치하게 된다 총선 실시 이전 임시정부 구성에 대한 미국의 계획은 전국 18개 주에서 지역위원회를 꾸리고 이 위원회가 각주를 대표하는 선거인단을 임명하여 이들이 다시 임시의회 의원을 임명하고 이 의원들이 임시정부 수반과 각료를 임명하는 것이다. 이렇게 하여 2004년 7월 1일에 주권을 임시정부에 이양하겠다는 것이다. 이 임시정부는 총선이 실시될 때까지 선출되지 않은 권력으로서 이라크를 통치하게 된다. 이에 대해 나오미 클라인은 1월 22일자 캐나다 <글로브 앤 메일>에 기고한 글에서 ‘임명된 자들에 의한 지배(Appointocracy)'라고 비판했다. 즉 미국 대법원에 의해 임명된 부시가 임명한 브레머 최고행정관이 임명에 임명을 거듭하여 임명된 임시정부에 주권을 이양하면 미국은 ’임명된 자들에 의한 지배‘라는 영광스럽고 새로운 민주주의 전통을 가지게 될 것이라고 비꼰 것이다.

한편, 협상과정에서 이슬람법의 영향력, 쿠르드 자치구의 권한, 여성의 지위 문제 등을 높고 이견을 조정하지 못한 바 있고 시아파 위원들은 자리를 박차고 나가기도 했는데, 임시헌법을 발표할 때에도 쿠르드 대표와 시아파내 두 세력의 대표가 참여하지 않음으로써 내재된 갈등은 확인되었다. 더욱이 임시헌법이 합의된 바로 다음 날 시아파 종교기념일인 아슈라(애도의 날)에 바그다드와 카르발라에서 동시에 발생한 자살폭탄 테러로 수백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사건은 임시헌법을 부정하고 종족갈등을 부추기는 세력이 있음을 명백히 드러내고 있다.
따라서 시한을 하루밖에 넘기지 않았지만 미국이 중심적으로 작업하고 조정하여 타협된 임시헌법은 갈등의 봉합이라고 보여지며 그 결과 미국이 주도하는 주권이양과 임시정부 구성으로 이어지는 향후 정치일정에서 갈등은 더욱 다양하고 격렬한 양상으로 전개될 수 있는 것이다.


2. 이라크내 종족 갈등의 양상

7월 1일자로 주권이양 시점이 다가오고 임시정부 구성을 앞두고 있는 시점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하고자 하는 종족간의 이해 갈등이 고조되고 있다. 지난 1월 19일 바그다드에서는 아야톨라 알리 알 시스타니를 최고지도자로 두고 있는 시아파가 직접선거를 촉구하여 “선거 찬성(Yes, yes to election), 임명반대(No, no to selection)"라고 외치며 10만명이 시위를 벌였다. 인구의 60%인 약 1500만명을 차지하고 있다는 지금까지 언론 등에서는 일반적으로 2천5백만 이라크 인구 가운데 시아파가 60%정도, 수니파가 35% 정도여서 소수파인 수니파가 후세인 치하에서 권력을 행사했다고 보도해 왔는데, 최근에는 이라크의 한 잡지가 3차례 통계조사를 실시한 결과 이라크 인구구성이 수니파가 53%, 시아파가 40-45%, 비이슬람이 2% 정도라는 보도를 한 바 있다.


시아파로서는 직접선거는 곧 집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물론 그 대중들은 경제적 권리와 투표권을 요구하는 것이다. 반전운동가이자 뉴레프트리뷰 편집위원인 타리크 알리에 따르면 두명의 주요 지도자인 알리 알 시스타니와 모크타다 알 사드르가 대중의 지지를 받기 위해 경쟁하고 있다. 알 사드르는 점령과 연방주의 양자가 이라크를 발칸화하고 서구에 석유통제권을 내주는 첫걸음이라고 보아 이에 대해 적대적이고 알 시스타니는 협조적인데 지지를 잃지 않기 위해 점령군과 대화하는 것보다는 UN과 대화하려 한다고 한다. 알 시스타니가 직접선거를 주장하고 있다. 둘 다 이슬람 율법인 샤리아 실시를 요구했다.

키르쿠크 지역에 주로 거주하는 투르크멘족은 지난 2월 25일 바그다드에서 수천명이 정치 경제적 권리를 요구하며 시위를 벌였다. 이들은 “투르크멘족의 권리를 무시하는 헌법반대”를 외치며 스스로가 2500만 인구 가운데 약 13%인 300만에 이른다고 주장하였다. 27일에는 바그다드 미군사령부 앞에서 쇠사슬로 몸을 묶고 미군 차량의 통행을 막으며 단식투쟁을 하였고 28일에는 키르쿠크에서 ‘전국투르크멘운동’이 자신들이 운영하는 상점과 음식점 문을 파업을 벌여 이를 지원했다.
쿠르드족 역시 이날 북부 쿠르드족 지역의 주민투표 실시를 촉구하는 170만명의 탄원서를 미 행정처와 과도통치위에 제출하였다. 이들 ‘이라크 쿠르디스탄 주민투표를 위한 운동’은 이라크 북부 지역에 사는 모든 종파의 16살 이상 주민들을 상대로 쿠르드족 지역을 연방제 국가의 일부로 하느냐, 독립하게 하느냐를 묻는 주민투표를 실시하자고 요구하는 서명운동을 벌였다. 이들은 ‘쿠르드민주당(KDP)'과 쿠르드애국동맹(PUK)이 석유통제권과 민병대 지휘권 유지를 전제로 연방제를 받아들이려 한다고 비판하고 있다.
이라크 내 종족갈등은 한국군 파병예정지인 북부 유전지대 키르쿠크 지역에서 가장 심각하게 나타나고 있다. 세계 원유매장량의 6.7%가 몰려 있다는 이곳에서는 서로가 다수라고 주장하는 아랍계, 투르크멘족, 쿠르드족의 갈등이 노골화되고 있다. 1월 26일에는 키르쿠크시 서남쪽 외곽에 자리잡은 미군 캠프에 3차례의 중화기 공격이 가해졌고 25일에도 미군 캠프에 4발의 카튜샤 로켓 공격이 가해졌다. 29일에는 경찰차가 공격받아 경찰관이 사망했고 30일에는 검문소가 로켓추진 수류탄 공격을 받아 20여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2월 1일에는 쿠르드족 관할 지역인 북부 도시 아르빌에서 쿠르드계 정당 당사를 겨냥한 2건의 동시 자폭 테러로 109명이 숨지기도 했다. 23일에는 차량 자살폭탄 테러가 발생해서 10명이 숨지고 45명이 다쳤다. 28일에는 시아파 2000여명이 키르쿠크 시가지에서 “키르쿠크는 어느 민족의 것이 아니라 주민 모두의 것”이라고 외치며 시위를 벌였다. 29일에는 쿠르드족이 이라크투르크멘전선(ITF) 사무실에 난입하여 집기를 부쉈다. 폭력사태가 확산되고 충돌이 커지자 경찰은 29일부터 저녁 6시 이후의 야간통행을 금지했다.

이러한 종족갈등은 미군 점령 이후 격렬해졌다. 미군 점령은 후세인 이후의 정치체제를 이라크인들이 자주적으로 구성하지 못하게 했다. 이라크 민중들에 의한 정치체제 형성은 거세되고 미 점령당국이 종족과 분파를 안배하여 인위적으로 과도통치위원회를 구성 과도통치위는 시아파 13명, 수니파 5명, 쿠르드족 5명, 투르크멘 1명, 아시리아 1명 등 25명으로 구성되었고 과도내각도 이와 동일한 인원 비율로 이루어졌다.
함으로써 갈등은 상존하게 되었다. 미국은 이러한 구도를 적절히 활용하여 점령을 관리하고 통제하고자 하는 의도를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따라서 문제는 점령 자체로부터 초래된 것이며 이를 해결할 능력이 없는 미국은 갈등만 키워온 것이고 지금에 와서는 “이라크는 내전(內戰) 상황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고 각 언론들이나 정부관계자들이 말하게 된 것이다.


3. 이라크 석유자원에 관한 점령군의 계획

작년 5월 22일 UN안보리의 ‘대 이라크 UN제재 해제결의안’에 따라 미 점령당국은 거의 모든 석유수입이 위탁되는 ‘이라크 개발기금’의 통제권을 가지게 되었다. 미국이 이라크 재건 기금 사용의 결정권을 갖는 것이다. 이에 따라 미국이 이라크 재건사업을 독점하고 석유자원을 착취하는 것이 정당화되었다. 이러한 상황 하에서 작년 6월에 석유생산이 재개된 이래 이라크는 현재 하루 2백 30만배럴을 생산하는 수준에 이르렀고 이후 전쟁 이전 수준(2백 5십만배럴)을 회복하여 올해 말까지 3백만배럴로 끌어올릴 계획이다.
한편 미국은 애초에 이라크 국유기업 사유화 계획에 따라 석유산업도 사유화하고자 하였다. 이라크 산업을 100퍼센트 외국에 개방한다는 브레머 훈령 39조는 이를 뒷받침한다. 그러나 미국이 임명한 과도통치위원회조차 석유 사유화에 반대하고 있고, 자칫하면 국민적으로 격렬한 반발을 불러 일으킬 수 있기 때문에 미국은 계획을 수정하여 이라크 석유산업의 점진적인 사유화를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라크 경제에 대한 미국의 기본계획은 신자유주의 경제개혁에 따른 전면적 사유화와 개방된 시장경제이다. 이미 백텔, MCI, 핼리버튼 등은 이라크의 수도, 전화, 유전에 진출해 있고 더 많은 기업들의 이라크 시장진출이 이뤄질 것이다. 이라크의 사유화와 시장경제 유도를 통해 미국은 주변 중동국들도 그러한 방향으로 이끌어내고 궁극적로 중동 자유무역지대를 건설하고자 한다. 작년 6월 요르단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 회의에서 미국은 중동지역의 평화확보와 자원개발을 목적으로 2013년까지 미-중동자유무역지대(MEFTA)를 구축하기로 하고 이를 위한 로드맵'을 밝힌바 있다.
일례로 점령행정처의 석유 고문인 로버트 맥키는 “이라크가 하루아침에 사유화로 나아갈 수는 없을 것이다. 이라크는 국가통제로부터 시작해서 점진적으로 사유화로 나아가야 한다. 이때 팔게될 것은 정제와 수송 같은 부분이다”고 말했다. 또한 그는 전문 경영진을 국유 석유회사에 도입할 것을 제안했다. 즉, 미국으로서는 무엇보다 안정적인 석유자원의 착취가 중요하므로 이를 위해서 관리 통제 가능한 국유기업을 장악하는 것이 그 이해를 관철시키는 방향인 것인다. 덧붙여 사우디아라비아의 석유공급이 불안정해지는 상황에서 미국은 이를 대체할 안정적 공급처로 이라크를 선택한 것이다.
이라크 석유산업을 재건하고 더 개발하기 위한 미국의 의도는 과도통치위원회 미국의 후원아래 국제은행들로부터 14억달러를 빌리는 계획으로 드러나고 있다. 석유에서 나오는 수입금이 담보가 될 이 대출은 이라크 전후 최초의 국가채무이다. 물론 그 국제은행들은 미국 주도의 컨소시움이다. 2월에 과도통치위의 재정위원회는 미국 정부기관인 해외민간투자공사(OPIC), 씨티그룹, BNP 파리바, 크레딧스위스 등으로 이루어진 컨소시엄과 대출에 대해 협상했고 전직 금융가인 아흐메드 찰라비(이라크국민회의)가 이끄는 재정위원회는 과도통치위에 대출계획 승인을 제출했다. 미국은 석유산업을 착취해서 이득을 취하고 석유산업 재건을 위해 막대한 금액을 대출해줌으로써 금융이익을 얻는 순환이 형성되는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현재 이라크의 부채는 대략 4000억 달러로 알려지고 있다. 1200억 달러를 상업은행과 정부들에 빚지고 있으며, UN의 ‘배상 위원회’(Compensation Commission) 밑에 놓인 2000억 달러의 ‘배상’ 요구가 있으며, 이란-이라크 전쟁에 관련된 1000억 달러의 배상 요구가 있다. 이 부채에 대해 이라크는 2004년까지 지불유예를 인정받은 상태이다. 그러나, 미국으로서는 이라크 전후 재건 과정에서 막대한 부채는 걸림돌이기 때문에 작년부터 채무국들에 대해 부채탕감을 요구해왔다. 그 결과 지난 2월 28일 국제 이라크공여국 회의에서 채무국들은 1200달러 가운데 약 60%인 720억달러를 탕감하기로 했다.


4. 이라크의 미래는?

요컨대 이라크 상황은 다음과 같다. 임시헌법은 합의되었지만 불완전하고 주권이양 계획은 비민주적이다. 미군 점령이 야기한 종족과 분파 사이의 무력 갈등은 날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경제는 재건되지 않고 있고 실업률 50%를 상회할 만큼 기록적이다. 초국적기업은 각종 기간산업 사유화를 추진하고 있다. 석유산업과 그 수익은 미국의 통제와 관리 아래에 있다. 그러나 많은 대중들은 민주주의와 보다 나은 삶을 요구하고 있다.
이라크는 앞으로 점령과 제국주의 경제착취가 종족적 갈등, 대중의 불만과 혼합하여 내전 상황으로 갈 수도 있고, 대중의 요구가 성장하고 점령통치를 감당하지 못하는 미국이 이를 포기하여 새로운 상황으로 갈 수도 있다. 테러와의 전쟁 시작 이후 미국이 침략한 아프간은 3년간의 피비린내 나는 고통 끝에 지난 1월에 부족간의 합의로 새 헌법을 만들고 국가건설의 이정표를 만들었다. 그러나 여전히 전투는 계속되고 탈레반은 세력을 넓히고 있으며 수도 부근을 제외한 대부분의 지방은 군벌들이 치안을 담당할 만큼 치안이 불안하다. 재건은 이루어지지 않았고 위기는 계속되고 있어서 ‘실패한 국가’의 길을 걷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그러므로 이라크가 가야 하는 길은 아프간처럼 혼돈이 지속되어 끝없는 고통속으로 빠지는 길도 아니고 정치와 경제가 미국에 의해 통제되는 친미정권의 길도 아니라는 것이다. PSSP
주제어
평화 국제 민중생존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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