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사회운동

사회진보연대 계간지


2004.3.43호
첨부파일
200403국제-김정은.hwp

4회 성노동자 권리 국제 행동 포럼과 페스티벌을 다녀와서

김정은 | 편집부장
* 최근 성매매를 둘러싼 논의에는 스스로를 성 노동자(Sex Worker)라고 호명하고 조직화하는 새로운 주체들이 참가하고 있다. 성매매나 성산업에 종사하는 성 노동자들이 노동자로서 권리를 요구하며 성 노동자 비범죄화나 합법화를 요구하고 있다. 그녀들이 자신의 인권을 위해 스스로 조직화하고 있다는 점에서 우리는 이 흐름의 긍정성을 가늠하며 주의 깊게 이 운동을 지켜보고자 한다.

2월 5일
오후 12시쯤 대만 공항에 도착. 주최단체인 일일춘 참가단체와 참가자를 간략히 소개하고자 한다
주최 단체인 일일춘 협회-일일춘은 대만에서 가장 흔하고 평범한 꽃이라고 한다. 매매춘 대신 일일춘이라는 꽃 이름으로 스스로를 호명하고자 했던 것이다-는 97년에 설립된 성 노동자들을 위한 단체로서 성 노동자 비범죄화와 성 노동자 권리 향상을 위해 활동한다.
미국, 영국 참가자의 경우, 스트립티즈이고 성 노동자를 위한 활동을 하고 있다. 전문적인 직업인으로서 자부심이 강했다. 미국 참가자는 캘리포니아에서 성 매매 비범죄화와 성 노동자 보호를 위해 활동한다.
태국의 경우 섹스 관광, 성 매매 등이 활발한 지역이라서 활동 사항도 성 매매시 안전한 섹스 교육, 외국어 배우기 교육 등등을 참가단체에서 수행한다고 했다. 성 노동자들을 위한 교육, 상담을 진행하고 건강과 인권에 대한 내용을 담은 소식지도 배포한다.
AFLO는 홍콩 성산업에 종사하는 거리의 여성, 나이트클럽, 가라오케, 디스코에서 일하는 여성들과 함께 활동한다.
(日日春) 협회(COSWAS) 사무실에 도착해서 인사를 나눈 후, 우리는 근처에 있는 공원에서 열린 기자회견에 참석했다. COSWAS(대만), AFRO(홍콩), EMPOWER(태국), ISUW(영국), SWOP(미국), ASPASIE(스위스) 활동가들이 참석한 가운데 “4회 성 노동자 권리 국제 행동 포럼과 페스티벌” 개막식을 선포했다. 참가인원이 적었음에도 많은 취재진들이 몰려든 것으로 보아 대만에서 성 노동자(Sex Worker) 운동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적지 않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비행기 시간 때문에 오전 일정이었던 오리엔테이션에 참가하지 않은 관계로 우리는 기자회견을 마치고서야 일일춘으로부터 대만 상황을 들을 수 있었다. 공창 제도의 형태로 유지되던 성매매가 97년 불법화되면서 성매매에 종사하던 여성들이 생존권적인 요구를 들고 거리집회를 열었던 것을 계기로 대만에서 ‘성 노동자 비범죄화 성매매에 대한 입법태도에 따른, 금지주의, 규제주의, 폐지주의 입장에 대해서는 ‘월간 사회진보연대’ 27호 2002년 7.8월호 특집 ‘성매매없는 세상’를 참고하시오.
(decriminalization)’를 주장하는 운동이 시작되었다고 한다. 대만에서는 ‘Article 80’이라는 ‘Social Order Act'(사회 질서 행위에 관한 법률)에 따라 성매매 여성들뿐만 아니라 다양한 성산업-술집, 가라오케 등-에 종사하는 여성들이 처벌을 받고 있다. 일일춘 협회는 현행 Article 80 조항을 삭제함으로써 성 노동자들이 성매매에 관련한 법률에 의해 처벌받지 않을 때, 인권을 보장받을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이들은 이미 공창 제도라는 규제주의를 경험한 바 있어 성매매에 관한 법률이 따로 존재하여 성매매가 불법적인 것과 합법적인 것으로 나뉘는 것은 성 노동자들의 인권을 보호할 수도 없고, 성매매를 줄일 수 있는 방안도 아니라고 말하면서 ‘비범죄화’를 요구했다. 한국의 상황은 성매매 폐절을 위해 입법적으로 금지주의를 채택하자는 입장이 우세하다고 우리는 그들에게 설명해주었다. 성매매 고객인 남성을 더욱 강력하게 처벌해야 한다는 “성매매 방지법” 개정안에 대한 입장에 다른 나라 참가자들은 고개를 갸우뚱하는 듯 했다.

2월 6일
“성 노동자와 단결할 권리”(Sex worker and The Right to Unite)라는 주제로 포럼이 진행되었다. 발제를 한 루스(Ruth)는 영국 출신으로 대학까지 졸업하고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스트립티즈(striptease)가 되었다고 한다. 영국에서는 성매매와 성산업이 합법이기에 루스는 현재 성산업에 종사하는 성 노동자들까지를 포괄하는 IUSW라는 노동조합에 소속되어 있다. 이 성 노동자 노조는 더 큰 GMB라는 노조에 소속되어있어, 조합원으로서 법적, 금융적 지원을 받고 있다고 한다.
루스가 스트립쇼를 하는 나이트나 술집 같은 곳도 한국처럼 사소한 것들로-이를테면 춤을 추다 거울에 지문을 남긴다든지- 벌점을 가하거나 임금을 깎아 내리곤 한단다. 그러나 노조에 가입된 성 노동자가 많은 곳에서는 사업주로 하여금 노동 조건을 개선하도록 강제할 수 있다고 했다. 노동자가 단결할 수 있을 때에야 자신의 권리를 온전히 누릴 수 있다는 것은 두말할 나위 없는 진리임을 다시 한번 깨달았다. 한국에서 성매매 여성들이 참혹하게 인권을 유린당하는 현실에 비추어볼 때, 자신들을 조직화하고 현실상황을 개선할 수 있다는 점은 비범죄화의 장점으로 보였다. 그러나 법적으로 가/불가를 떠나 우리나라에서 이 여성들이 스스로를 긍정할 수 있을까. 법률적인 개선뿐만 아니라 사회적인 인식이 같이 변해야 여성들도 자신들을 긍정적으로 사고할 수 있을 것이다. 다른 나라들의 경우, 성매매가 합법화된 곳도 많은데 한국에서만 유독 성매매를 불법화함으로써 성매매를 폐절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도덕 및 윤리와 연결된 지점이 아닐까. 루스는 자부심이 매우 강해 보였다. 그러한 그녀에게 누가 “당신은 남성에게 몸을 내보이며 미소를 파는 더러운 여성이지, 노동자는 아니다”라는 질책의 눈초리를 보낼 수 있을까.

2월 7일
비가 내리는 날, “성 노동자는 인권을 원한다”는 요구를 내건 대중집회가 잡혀있다. 광장으로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한 켠에서는 몇몇 여성들이 음악에 맞추어 춤을 연습하였다. 그녀들은 교사, 간호사 등으로 성 노동자 운동에 연대하기 위해 부채를 든 채 치마를 입고 마임(?)을 선보였다. 정치인 두 명은 정치인들의 부정부패와 위선에 비하면 성매매가 오히려 깨끗하다고(?) 말하는 퍼포먼스에 출연하여 실감나는 연기를 했다. 학생, 노동자, 교사, 간호사, 동성애자, 성 노동자들이 모여 대열을 이루고 행진을 했다. 대열은 “인명이 도덕보다 중요하다”, “성노동자를 비범죄화하라”라고 쓰여진 피켓을 들고 대만 야당인 국민당과 여당인 민진당 당사를 항의 방문하였다. 일일춘 협회는 민진당과 국민당 양당이 Article 80 조항을 삭제하겠다는 것을 대선 공약으로 채택할 것을 요구하였다. 성 노동자 운동을 지지하는 다양한 연대단위들의 모습과 약간은 자유분방한 대만의 성에 대한 인식이 인상깊었다.

2월 9일
“세계화 아래에서의 이주 성 노동자”라는 주제로 열린 두 번째 포럼에서는 각 참가국에서의 이주 성 노동자 현황과 각 단체 입장을 공유하였다. 대만 정부는 대선을 앞두고 중국에서 독립할 것인가의 정치적 문제를 두고 중국 본토에서 이주해오는 여성들을 강력하게 단속하고 있다. 따라서 대만 내 성 노동자들과 이주 성 노동자들간의 연대의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고 한다. 스위스에서는 성 노동자의 70%가 동유럽이나 동남아 이주여성일 만큼 성산업으로의 유입이 심각한 상황이다. 빈곤한 여성들은 생존을 위해 성산업에 유입될 수밖에 없다. 바야흐로 성매매의 세계화 국면이다. 그러나 자국 여성들에게는 성산업이 합법일지라도 이주 여성들에게는 동일하게 법이 적용되지 않기에 이주 여성들의 경우, 신분이 불안정해서 포주와 같은 3자에게 더욱 의존하고 착취당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한국에서도 ‘예술흥행비자’나 국제결혼 그 밖의 경로들로 이주해온 여성들이 성 산업에 유입되고 있는 상황을 볼 때, 그녀들의 노동 상황이나 인권유린 현실 등에 주목할 필요성을 느꼈다. 이 사안의 해결에는 국제연대가 절실한 매개고리가 될 것이다.

한국행 비행기 안에서...
대만으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는 ‘그래도 합법화는 좀 그렇다’라는 의구심을 가졌었다. 문제는 합법화냐 아니냐는 입법에 대한 입장이 아니라 성 노동자들의 현실과 그들이 말하는 방안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일일춘 협회에 질문했듯이 법률 조항 삭제 그 이후의 운동이 더욱 중요할 것 같다. ‘이제 시작이다’라고 말하던 일일춘 협회 활동가의 말이 생각난다. 성 노동자가 주체가 된 운동이 어떠한 방향으로 나아갈 것인지...
그러나 그러한 기대에도 불구하고 몇 가지 지점들은 여전히 우리가 풀어야 할 숙제라고 생각한다. 성매매가 현실적으로 존재함을 인정하는 것과 성매매를 통한 성욕 해소를 정당화하는 것은 다른 문제일 것이다. 여성의 성욕은 어떻게 해소해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에 그들도 차마 성매매를 하겠다고는 대답하지 못한 채 개인적으로 풀겠다고 말하거나 답을 회피하곤 하였다. 이러한 대답은 현실적으로 왜 여성만이 성매매에 동원되고 있는지 그 구조적인 성적 착취관계를 보지 못한다는 점과 여성의 성욕 존재를 간과한다는 점에서 한계가 있다. 사랑과 성욕 충족간의 문제... 가족 내에서 해결되지 못하는 성욕의 문제가 성매매를 통해 또는 가족 밖에서 해결되면 되는 것인가.
여성들이 성 산업으로 유입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성을 팔 수 있는 곳이 있고 그곳에서는 감히(?) 여성으로서 벌 수 없는 상당한 돈을 벌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현재 여성들은 노동시장에서 배제되고 그 노동이 평가 절하되면서 온전히 노동할 수 없다. 여성들이 성 산업에 유입될 수밖에 없는 열악한 노동상황과 빈곤을 간과하면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없음을 명심해야 한다. 성적 착취관계 하에서 성의 상품화, 여성의 열악한 노동 상황, 이 연결고리를 놓치면 안 될 것이다. 대만 여행길은 이렇게 깊은 고민들을 남겨둔 채 끝나가고 있었다. PSSP
주제어
노동 여성 국제 민중생존권
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