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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수 없는 세대와 동행해서 얻은 행운

조대환 |
『사회진보연대』에서 「갈월동 기행」만큼 읽기 쉬운 글도 없겠지만 쓰기 어려운 글도 없다고 생각한다. 어림잡아도 갈월동 식구들은 7개 단체 20명 정도고 사회진보연대가 1년에 10회 발행하니까, 「갈월동 기행」을 쓰는 것은 2년에 한번 올지 말지 한 기회다. 그것도 갈월동에 줄기차게 있다는 전제에서… 아무튼 이런 기회를 준 편집부에 감사와 원망을 동시에 전하며 신통치 않은 이야기나 읊어볼까 한다.

모르긴 해도 내가 대학에 입학했던 91년도 대입 시험은 역대 시험 중 탈락자가 가장 많았던 시험으로 꼽힌다. 그리고 이 세대-나이로 치면 71년~73년생-들이 취업문을 두드리던 때는 98년 IMF가 휩쓸고 간 황량한 시대였다. 대다수가 경제위기, 초유의 실업난을 겪었고 경제가 좀 나아졌을 때는 벌써 나이 제한에 걸려서 취업이 불가능해졌다. 어느 신문 말처럼 억수로 재수 없는 세대다.
나는 이 시절 가족들에게 내가 살아가는 삶을 정당하게 보이기 위해서 취직시험 준비로 위장(?)하기도 하고 이주노동자 운동을 하는 것에 대해서 경제위기를 잠시 피해 가는 방편으로 이야기하기도 했다. 아무튼 학생운동이나 사회운동을 이어가면서 취업을 못하는(하지 않는 )것이 나의 무능력이 아니라 시대를 잘못 만난 것이라는 핑계를 댈 수 있었다. 물론 금새 탄로 나고야 말았지만.
이 때 내가 가장 듣기 싫었던 뉴스는 ‘경제 회복’, ‘기업 대규모 채용, 실업난 해소될 듯’ ‘공무원 채용 확대’ 뭐 이런 거였다. 돌아보면 억수로 재수 없는 세대와 동행한 덕에 지금껏 운동을 해오고 있지는 않나 생각을 하며 웃어본다. 만약 시대상황이 그렇지 않았다면 내 인생을 걸고 가족들과 전면전을 했거나 시간과 구실을 찾기 위한 생각으로 골머리를 앓았을 것이다. 그리고 경제활동이나 가족의 압력, 가족과의 갈등에 지쳤다는 구실로 운동을 떠났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었을 것이다.

조금 더 과거를 돌아보면 91년에 열사투쟁을 겪었고 96년도에도 적지 않은 열사들이 있었다. 조금이라도 진보적이거나 ‘운동’근처에 있었던 사람들은 할 일 많은 시절이었다. 대부분의 남성 활동가가 그렇듯이 나도 95년도에 제대하고 학교에 복학을 하면서 운동을 정리해야겠다고 잠시 마음먹은 적도 있었지만 모질지 못해 질질 끌다가 96년 다시 찾아온 열사 정국이 나를 결국 기나긴 수렁(?)으로 빠지게 했다. 이렇게 흐른 시간이 어느 누가 경력과, 나이를 내세울 때 “왜 이러셔 나도 운동 10년 했어!~” 할 정도가 되어 버렸다.

이렇게 흘러버린 시간 속에서 가끔은 이런 생활이 언제까지 가능할지를 스스로에게 묻곤 한다. 그렇지만 답이 잘 나오지는 않는다. 정확하지는 않지만 대학 졸업(이전)을 앞두고 「서른 이후의 자기 운동」이란 글을 읽은 기억이 있다. 찾아보지는 마시라! 공개출판물이 아니니… 또 김광석의 ‘서른 즈음에’란 노래가 참 멀리 있는 일일 거라 생각했다. 그런제 30대에 운동하는 내 모습을 보는 것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요즘 농담 삼아 이야기하듯 이제 나이가 대굴~대굴 굴러가고 있다. 아차 하는 사이에 1년이 가버린다.
평생을 전선에서 함께 할 것 같던 벗들은 졸업한 지 채 몇 년이 못되어 운동을 떠나갔다. 밤새 술 마시고 울고, 웃고, 토론하고, 싸우고 함께 분노하고 함께 즐거워했던 그들이 말이다. 가끔 나도 언제까지 이곳에 남아 있으리란 자신이 없어지곤 한다. 그래서 서른이 넘어선 지금은 30대의 모습이 아니라 보다 멀리 30년 후의 내 모습, 운동에 대해서 고민해 보아야 할 때라는 생각을 한다. 모두 마찬가지지만 모든 것이 쉽지 않은 나이다. 돌아갈 수도 없고, 무조건 버틸 수도 없다. 자신을 위로해줄 수 있는 희망을 마련해야 운동하는 것이 추해지지 않을텐데 그것이 쉽지만은 않다.
그런데 희망을 찾지 못하고 자기위로를 ‘권력’과 ‘정치성과’로 삼아 제도정치권으로 투항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도 아니면 운동‘판’에 남아 관성에 빠져 철저하게 관료주의, 권위주의자가 되어가기도 한다. 경력자, 전문가, 지도부라는 미명 속에서… 물론 이마저도 학벌과 배경이 뒷받침되어야겠지만.

나는 아직까지 그 희망에 대한 답을 찾지 못했다. 그렇지만 좀 멀리 보려고 한다. 20대 후반 운동을 포기하지 않은 것이 행운이었다면 이제는 차분한 계획이 필요할 것이다. 그 계획도 아직까지는 만들지 못했다. 그러나 조급해 하지 않을 생각이다.
일단 최소한의 희망을 내가 꾸릴 수 있는 가장 작은 ‘공동체’-그 것은 나 자신일 수 있고, 조직일 수 있고, 사회일 수도 있다-에서 찾으려 한다. 내가 세상을 바꾸려고 했던 것이 무엇인지를 다시 확인하고 그것을 삶으로 실천할 수 있다고 느끼는 것이 희망을 잃지 않는-만들어 가는-시작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무엇을 이루었는지 만을 생각하기보다는 무엇을 이룰 것인지를 생각할 때 희망이 생기지 않을까? 너무 당연한 이야기이긴 하지만…
그런데 너무 당연한 것을 잊고 살기에 많은 이들이 지나온 세월에 대한 성과와 보상에 집착하게 되고 미래를 원칙이 아닌 방법으로 설계하려는 것은 아닐까! 그래서 운동을 떠나거나 보수정당으로, 진보정당으로 발을 돌리는 것은 아닐까! 좀 더 멀리 보고 소박한 희망을 갖는 것은 운동을 떠나는 사람이나, 남아 있는 사람 모두에게 필요한 영양분이다.
무엇을 이룰 것인가에 대한 전망은 거창한 것-새로운 사회를 건설한다는 혹은 봉기나 전복-보다는 나 스스로가 공동체의 구성원이 되고자 하는 계획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적어도 전체운동이 아닌 당장 나에게는 말이다.

수렁에서 발을 빼지 못해 계속한 운동, 불행한 세대들과 함께 한 덕에 포기하거나 도망치지 않고 남아 있게된 행운이 지금까지 운동을 이어온 힘이라면 이제 여기에 약간의 신념과 희망, 계획을 더해보고자 한다. 30년 후에도 내가 살아온 삶이 부끄럽지 않도록, 더 나아가 운동을 포기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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