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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9.4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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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콜트레인 -재즈, 인종차별, 그리고 저항-

이성훈 |
“재즈는 미국에서 가장 중요한 사회적·미학적 결실의 하나입니다. 그것은 미국의 베트남 침공에 반대하고 쿠바 침공을 비판하는 것, 또 모든 사람들의 해방을 지지하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흑인들의 재즈는 억압 하에서 태어난 음악, 노예 상태에서 탄생한 음악이기 때문입니다.”

2001년부터였다. 나의 대학 생활에서 많은 부분을 차지했었던 학생운동과 멀어지게 되면서 내가 새로이 관심을 갖던 것이 바로 재즈였다. 그동안 나의 일상과 다른 무언가에 몰두하고 싶어서 시작한 재즈 듣기는 지금까지 계속되면서 나에게 여러 의미를 주고 있다. 처음에는 다음(daum)에서 재즈 관련 카페를 찾아다니고, 그곳에서 추천하는 음반을 조금씩 사고, 또 엠피쓰리 파일을 다운로드 받아 재즈를 접하였다. 당시에 내가 재즈에 대해 알고 있던 사실은 재즈 뮤지션 중에 흑인들이 많다는 것과 재즈는 즉흥 연주로 이루어진 음악이라는 정도였는데 가사도 없고, 어떻게 들으면 느끼한 색소폰 소리가 계속되는 음악이 참으로 부담스럽기 그지없었다. 그래서 그때는 ‘퓨전 재즈’라 불리는, 백인 연주자들의 귀에 착착 감기는 깔끔하고 세련된 멜로디의 재즈를 즐겨 들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백인들의 재즈란 흑인들의 재즈만큼 깊은 울림이 없는 그저 ‘웰메이드’ 음악에 불과하지만, 흑인들의 ‘소위’ 정통 재즈는 너무 어렵고 그래도 재즈를 들어야 한다는 강박관념 하에서 내가 무늬만 재즈인 퓨전 재즈를 듣게 된 것은 너무나 당연했다.
그러나 조금씩 부담스러운 음악들도 어떻게든 참고 들어보고, 작은 관심이나마 꾸준히 갖고 재즈를 들었다. 말랑말랑한 퓨전 재즈에서 시작해 서서히 빅밴드, 비밥, 하드밥으로 재즈를 듣는 영역을 넓혀갔다. 역시 뭐든지 많이 하면 익숙해진다고 처음에는 그렇게 부담스럽던 음악들이 점점 귀에 감겨가기 시작했다. 이렇게 음악이 귀에 들리니 재즈를 듣고, 재즈에 대한 이론과 역사를 공부하는 것이 참 재미있었다.

간략하게 재즈의 기원에 대해 살펴보면, 아프리카에서 노예로 끌려온 흑인들이 미국 남부의 목화 농장에서 일하면서 흥얼거렸던 노동요(work song)에서 블루스가 시작되었고, 블루스에는 인간 취급을 받지 못하던 흑인들의 비참한 생활환경과 슬픔, 고뇌가 담겨 있었다. 재즈는 블루스와 렉타임, 흑인 영가 같은 미국 흑인들의 음악적 형태에다가 유럽의 찬송가, 춤곡 등의 요소들이 섞이어 형성되었다. 즉 재즈는 그 시작부터 아프리카, 미국, 유럽의 서로 이질적인 문화의 교합이었고, 그 교합을 이루어낸 주체가 바로 미국의 흑인이었다는 것이다. 여기서 재즈를 이해하는 중요한 키워드 두 가지가 도출된다. 하나는, 애초에 재즈는 교배종이었기 때문에 지금까지도 서로 다른 음악적 기반을 가진 음악인들이 재즈라는 울타리 안에서 새로운 무언가를 찾고자 노력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한 예술적 욕구는 다양한 사회성과 맞물리면서 재즈라는 장르를 더욱 풍성하게 만들고 있다. 하기에 재즈는 지금까지도 다양한 장르의 음악의 거센 도전에도 꾸준히 그 생명력을 유지하고 있다.
말콤 엑스는 1964년 뉴욕의 한 정치 집회에서 다음과 같은 발언을 한다. “흑인 연주자가 나팔을 불기 시작하면, 그것은 곧 즉흥연주가 되고 새로운 창조가 된다. 그것은 내면에서 흘러나오는 것, 즉 그의 영혼인 것이다. 재즈는 미국에서 흑인들이 자유롭게 창작할 수 있는 유일한 분야다.” 여기서 재즈를 이해하는 두 번째 키워드를 찾을 수 있다. 흑인들은 재즈를 통해 예술적 창조성을 맘껏 뽐냄으로써 백인보다 열등하다는 편견과 인종차별에 저항했던 것이다. 재즈는 본질적으로 억눌린 자의 슬픔과 회한, 그리고 희망이 담겨 있는 음악이다.

책에 대한 서평을 해야 하는데, 그만 주저리주저리 쓰다보니 마치 나의 재즈 감상기가 되어 버렸다. 마틴 스미스의 “존 콜트레인 - 재즈, 인종차별, 그리고 저항”은 1926년 노스캐롤라이나에서 태어나 1967년 41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한 재즈 뮤지션 존 콜트레인의 음악 인생과 그 시대를 조망하고 있다. 다른 여타의 재즈 관련 서적들이 존 콜트레인의 음악적 성과와 혁신 자체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는데 비해, 마틴 스미스는 존 콜트레인이 살았던 당시 미국의 어두운 현실과 그 속에서 호흡하고 저항하며, 끊임없이 재즈의 혁신을 꾀했던 모습들을 역동적으로 조망하고 있다. 특히 이 책의 미덕은 존 콜트레인의 삶과 음악뿐만 아니라, 미국에서 당시 흑인들이 처한 빈곤과 인종차별이라는 적대적인 환경 속에서 그들이 재즈를 통해 구현하고자 했던 것이 무엇이었는지를 설득력 있게 제시하고 있다는 점이다.

책의 흐름은 크게 세 가지로 나누어진다. 하나는 재즈가 처음 발생해서 발전해가는 과정을 담은 재즈의 역사이다. 책의 전체 분량이 그리 길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초기 뉴올리언즈 재즈부터 빅밴드, 비밥, 쿨, 프리 재즈, 퓨전 재즈 등의 재즈 스타일의 특성과 변천이 담겨 있다. 다음으로, 20세기 미국의 역사이다. 우리가 교과서나 책에서는 접하지 못했던 미국 역사의 어두운 부분이 신랄하게 담겨있다. 1920년대 금주법, 인종차별, 1-2차 세계 대전이 미국 사회와 흑인에게 미친 영향, 미국 공산당, 1960년대 미국 인권 운동 등 좌파의 시선에서 바라본 미국사는 이 책의 쏠쏠한 재미이다. 마지막으로 재즈의 역사와 20세기 미국의 역사를 가로지르는 존 콜트레인의 생애와 음악적 성취를 입체적으로 서술하고 있다.

존 콜트레인은 흑인과 백인이 격리된 마을에서 태어났다. 친할아버지와 외할아버지는 모두 감리교 목사였고, 특히 친할아버지는 정치적으로 활동적인 사람이었다. 존 콜트레인의 아버지는 재단사였지만, 다양한 악기를 다룰 수 있었고, 그의 어머니 역시 피아노와 노래에 능했다. 존 콜트레인은 음악 속에 둘러싸여 성장했고, 그가 연주자가 된 것 역시 자연스런 일이었다. 그리고 훗날 콜트레인의 음악에 중요한 영향을 끼친 것은 종교와 정치였다. 그는 인종차별과 흑인 인권 운동에 특히 많은 관심을 가졌고, 특히 1963년에는 앨라배마 버밍엄에서 발생한 인종차별주의자들의 테러를 보고 재즈곡 ‘앨라배마’를 쓰기도 하였다.

존 콜트레인은 1949년부터 정식 연주자로 활동하였고, 마일즈 데이비스와 셀러니우스 몽크라는 두 거장을 만나 더더욱 성장하게 된다. 그는 이후 1957년 자신의 첫 리더작을 발표하고 1967년 임종할 때까지 불과 10년 동안 활동하지만 그 기간 동안 콜트레인이 이룬 음악적 성취란 정말 대단하였다. 특히 뛰어난 하드밥 앨범인 “Blue Train"과 마일즈 데이비스와 함께 취입한 ”Kind of Blue"는 모달 재즈를 시작한 혁신적 앨범으로 평가받고 있다. 1964년 발표한 “A Love Supreme"은 절대적 존재에 대한 찬미와 현실에서의 억압에 대한 저항이라는 두 가지 측면을 지니고 있는 기념비적 명반이었다. 마침 이 ”A Love Supreme"이 발표된 시기는 흑인들의 저항이 최고조에 달하고 있을 때였다. 1964년을 기점으로 존 콜트레인은 좀더 자유롭고 영적인 재즈의 영역으로 들어간다. “프리 재즈” 운동의 선봉에 선 것이다. 이후 발표한 음반들은 더욱 추상적이고, 영적이며, 강력한 에너지를 담게 된다. 이 시기 콜트레인은 다양한 음악에서 영감을 얻고 중동 음악의 멜로디와 구조까지 연구하는 등 언제나 새로운 소리를 추구하며 왕성하게 활동하였다. 그러던 중 1967년 거듭되는 건강 악화로 결국 콜트레인은 임종을 맞이하게 된다. 존 콜트레인의 임종과 함께 타오르던 “프리 재즈” 운동은 구심점을 잃고 쇠퇴하고 이는 말콤 엑스와 마틴 루터 킹의 피살로 흑인 민권 운동이 쇠퇴한 것과 일치한다. 불과 41살의 나이로 숨진 존 콜트레인은 뛰어난 시야와 강한 신념으로 음악적 영감과 시대를 살아가던 흑인들의 울분을 분출하였고, 이제는 신화와 전설로 영원히 살아 숨쉴 것이다.

마지막으로 본문에 나오는 글 하나를 소개하며 서평을 마칠까한다.

“콜트레인은 재즈계의 선두에서 횃불을 든 사람이었다. 그는 흑인들이 폭동을 일으킨 당시의 심정을 음악으로 표현하고 있었다. 대다수 흑인 젊은이들은 혁명에 사로잡혀 있었다. 그들은 아프리카 스타일의 머리와 의상을 하고 주먹을 허공에 쥔 채 ‘블랙 파워’를 외쳤다. 콜트레인은 혁명을 추구하던 이들의 상징이자 자부심이었다.” - 마일즈 데이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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