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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9.4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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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보안법,이제는 반드시 폐지한다.

박래군 |
국가보안법을 둘러싼 치열한 전선
지난 9월 5일 노무현 대통령이 MBC 시사매거진 2580에 출연해 “국가보안법은 칼집에 넣어 역사의 발관으로 보내야 한다.”며 폐지에 대한 명확한 입장을 밝혔다. 그는 우선 폐지 뒤에 문제가 있다면 형법을 보완한다든지 하면 된다는 나름대로의 방향도 제시하였다. 그런 뒤 이 사회는 매일 국가보안법을 둘러싼 정치적 공방이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다.
한나라당의 박근혜 대표는 노무현 대통령의 발언 직후부터 자신의 “대표직을 걸겠다.”느니 “한나라당의 명운을 걸겠다.”는 등의 강경발언을 쏟아내더니 급기야 9월 9일 특별기자회견을 통해 이를 공식화했다. 같은 날 주로 구정권 시절에 국회의장, 국무총리, 장관, 장성 등 주요 요직에 있던 소위 잘 나가던 사람들이 무려 1,400명이나 서명을 받아서 ‘자유와 민주주의를 위한 구국선언’을 발표하기에 이르렀다.
4.15 총선 직후부터 서서히 달아오르기 시작한 국가보안법 개폐 논쟁은 지난 8월 23일의 국가인권위원회의 전면 폐지 권고, 8월 26일의 헌법재판소의 국가보안법 7조 1항과 5항에 대한 전원 일치 합헌 결정, 9월 2일 대법원의 한총련 대의원에 대한 유죄 확정 판결로 이어지면서 우리 사회의 보혁 대결 구도로 나아가고 있는 양상이다.
열린우리당은 폐지와 개정 사이에서 오락가락하던 분위기가 노무현 대통령의 발언으로 폐지 후 보완으로 당론이 정해졌고, 한나라당은 총선 직후 박근혜 대표마저 북한을 적국으로 규정한 국가보안법 2조의 ‘정부참칭’ 부분을 삭제할 수 있다는 입장에서 후퇴하여 불고지죄마저도 존치시키는 소폭 개정의 입장으로 당론을 모아가고 있다.
이런 정치 상황들은 국가보안법이 제정된 1948년 이래 처음 있는 현상이고, 최근에는 김대중 정부 시절인 1999년에서 2001년 사이의 개폐 논쟁이 폐지 운동 진영의 패배로 마무리된 이후에 처음 맞는 상황이다.
주지하다시피 현재의 정치구도에서 열린우리당-민주노동당-민주당이 폐지 입장으로 정리되어 있는 상황이다. 물론 청와대와 정부도 대통령의 발언 이후 폐지 입장으로 정리되어 있다. 반면 정치세력 상으로는 열세인 한나라당에는 소수 의원을 가진 자민련만이 우군으로 존재하고 있다. 물론 한나라당의 입장에는 조중동과 같은 막강 언론들이 붙어 있어 여론을 선도하고 있으며, 국가보안법을 사수하려는 의지로 뭉친 극우집단들이 자리하고 있다. 이들은 그야말로 결사항전의 의지를 불태우고 있는 것이다. 반면 전국의 301개의 단체로 재발족된 국가보안법폐지국민연대는 극우집단들의 광적인 국가보안법 사수투쟁에는 비할 바 없이 조용하게 나날을 맞고 있다. 이전에는 국가보안법 폐지운동이 적극적이고, 열정적이었다고 한다면 현재는 이런 양상들이 뒤바뀌어 기이한 현상을 낳고 있다.

국가보안법 폐지운동이 넘어야 할 산들
4.15 총선 직후 운동진영은 국가보안법 폐지를 위한 더 없이 좋은 조건이 형성되었으며, 올해 하반기 이내에 폐지시켜야 된다는 데 이견이 없었다. 그것은 일단 국가보안법의 폐지를 지지할 수 있는 열린우리당의 개혁적 성격과 민주노동당의 원내 진입이라는 조건, 이들이 국회 의석의 과반수를 차지한다는 면에서 이런 예상을 할 수 있었고, 그런 판단은 대체로 맞아 떨어졌다. 열린우리당이 당론으로 폐지를 결정할 수 있을 것이란 기대 속에서도 한편으로는 개정론을 앞세운 의원들의 반발도 만만치 않았다. 그런 어지러운 상황은 일단 노무현 대통령의 발언으로 정리되었다. 국회 의석 과반수를 점한 열린우리당이 폐지 당론으로 정했고, 전면 폐지 당론을 일찍이 정한 민주노동당이 결합하고 있으며, 대체입법론의 미련을 버리지는 못했지만 민주당이 합세하고 있으므로 단순 계산으로는 이번 정기국회에서 국가보안법 폐지는 무난할 것으로 예측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안하다. 과연 국가보안법이 폐지되는가에 대한 의구심이 자꾸 드는 것은 이유는 무엇인가? 국가보안법 폐지로 가기 위해서 넘어야 할 산은 무엇인가?
먼저, 한나라당의 결사적인 반발이다. 이들의 입장들을 종합해서 보면 국가보안법이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지켜온 법률일 뿐만 아니라,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마지막 안전장치”라는 것이다. 그들로서는 국가보안법이 폐지된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국가보안법이 주로 대한민국 내부의 정치적 반대세력들을 탄압하는데 악용되었다는 점보다는 북한의 적화야욕을 막아온 방파제와 같다는 인식을 실제로 갖고 있는 듯하다. 그들의 인식 속에서 체제의 수호를 위해서는 헌법이 소중한 것이 아니라 국가보안법이 소중한 것이고, 그래서 그들에게는 그들의 이데올로기의 원천이고, 신념의 법률적인 표현으로 보고 있다. 국가보안법을 없앤다고 하는 것은 집에서 주춧돌을 제거하는 것처럼 급격하게 국가를 지탱해온 버팀목을 제거하는 것과 똑 같다고 인식한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결사항전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쉽게 이분법을 동원하여 국가보안법 폐지를 주장하는 정부와 여당 등을 좌파로 몰아부치며, 나아가서는 용공성을 부각시킨다. 거기에 국가보안법이 해체되면 북한은 그대로인데 우리만 ‘무장해제’된다고 설레발을 치면서 국민들의 불안심리를 최대한 자극한다. 뿐만 아니라 시대에 뒤떨어졌다는 인식을 주지 않기 위해서 그 동안 국가보안법이 남용되어 인권침해가 있었다는 점을 일부 인정하고, 바로 그런 점을 고쳐서 국가보안법을 존속해야 한다는 개정론도 흘려내고 있다. 막연하게 국가보안법이 국가안보와 연결되어 있다고 믿는 국민들은 이런 한나라당의 주장에 현혹되어 개정론을 지지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둘째는 조중동을 비롯한 극우언론과 극우집단들의 저항이다. 물론 이들은 한나라당과 연결되어 폐지 반대 여론을 주도하고 있거나 아니면 선도하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의 9월 5일 발언에 대해 조중동과 문화일보, 세계일보 등은 즉각적인 반대 의사를 격렬하게 표명했다.
이들은 거의 선동 삐라 수준의 기사들을 쏟아내고 있으며, 이를 통해 극우 보수집단들의 여론과 행동을 선동하고 있다. 극우집단들은 9일의 1,400명의 집단 성명 발표에서 보듯이 국가보안법의 사수를 위해 총력 투쟁하는 분위기다. 이들에게 국가보안법은 자신들의 지위와 자유를 보장하는 수단이었던 것이고, 기득권을 근저에서 흔드는 국가보안법 폐지 움직임에 수수방관할 수 없었던 것이며, 하기에 이들은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격렬하게 반응할 것이다. 역시 이들은 청산되어야 할 대상이다.
셋째, 보완 또는 대체에 미련을 놓지 못하는 여당이 문제다. 국가보안법은 완전하게 폐지시키면 그만인데, 소수에 머무는 폐지 여론과 내부의 개정론자들을 핑계로 국가보안법의 흔적을 형법이나 대체입법안으로 옮기려 한다. 이에 따라 그럴 것이면 굳이 국가보안법을 왜 폐지하려 하느냐는 한나라당 쪽의 비난을 받고 있으며, 운동진영으로부터도 불신을 받고 있다. 어땠건 내부에서 조만간 결론이 날 것이지만, 반국가단체의 규정이나 7조의 찬양·고무 조항을 옮기거나 남기는 식의 보완이나 대체입법은 결국 국가보안법 문제를 다시 남기는 것이 될 것이다. 이런 원칙을 지키지 못하는 태도는 이후에 한나라당과의 협상과정을 또 불안하게 한다.
넷째, 정세 주도권을 놓치고 있는 폐지운동 진영이 문제다. 지금까지 가장 유리한 지형을 확보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총력투쟁하는 분위기가 아닌 것이다. 그것은 한편으로는 사안들이 워낙 복잡하게 많은 것이 문제인 것이기도 하지만, 이라크 파병 문제에서는 노무현 정권을 비판하다가 친노적으로 비추는 국가보안법 전선에 발을 곧바로 담그기가 곤란하다는 점도 있는 것 같다. 전국의 301개 단체가 결합되었다고는 해도 실질적인 힘으로 작동하지 못한다면 여전히 국가보안법 폐지운동은 어려운 상황을 맞게 될 것이다. 국가보안법폐지국민연대로 힘을 모으기 힘들다면 자신들이 처한 위치에서 가령 1백만인 청원운동을 함께 한다든지 하는 등의 다양한 방식으로 결합하는 것이 좋을 듯하다.

어떻게 할 것인가

국가보안법의 폐지는 단지 하나의 법률을 제거한다는 것이 아님은 별도의 설명을 요구하지 않는다고 본다. 국가보안법은 지금까지 수구냉전세력들의 지배가 가능하게 했으며, 국민들로 하여금 자기검열에 익숙하게 만든 ‘공포정치’의 소산이라는 점에서 빨리 제거되면 될수록 이익이 되는 게 틀림없다.
그래서 우리는 국가보안법의 문제를 ‘민주주의와 인권’의 문제로 제기해야 한다. 국가보안법이 없어진다고 해도 극우세력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좌파 세상이 되는 것은 아니다. 사상의 자유를 보장하는 것은 이미 서구에서는 3백 년 전에 결론이 났다. 사상의 자유와 그에 따른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는 것은 자유민주주의의 시작에 불과하다. 따라서 국가보안법의 문제는 근대시민혁명을 거쳐서 이루어진 근대시민사회로 넘어가기 위한 전제를 이룬다. 비로소 우리도 근대적 시민사회로 나아갈 수 있을 뿐인 것이다. 지금까지 한국 사회는 국가보안법적 체계에 억눌려서 근대적 가치조차 수용하지 못하였다. 근대사회에서 사상의 자유는 그 사회가 용인할 수 없는 “증오하는 사상에 대한 관용”을 포함하고, 사상도 “자유시장”에서 경쟁하는 것을 허용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직도 극우들은 국가보안법이 없어지면 당장 사회주의 세상이 될 것처럼 호들갑을 떨고, 금방 북한이 탱크를 앞세우고 물밀듯이 쳐들어 올 것 같은 분위기를 조장하고 있다. 공포와 억압을 통한 정치, 국가동원체제의 정치를 극우세력들은 지금껏 해왔던 것이고, 이제 자신의 우월적 지위를 상실하게 될 위기에 처하여 극렬하게 저항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이 투쟁은 민주와 반민주의 투쟁이다.
그런 뒤에 비로소 우리는 통일 문제를 제기할 수 있다. 국가보안법의 비현실성이 드러나는 것은 남북교류가 활성화되어 수만 명의 사람들이 남북을 오고가지만 국가보안법은 선택적으로 몇 몇을 처벌하고 있다는 점, 국가보안법이 존재함으로 해서 다른 법률들과 상충하고 어 오히려 국가보안법을 폐지하는 것이 수구꼴통 집단인 사법부가 그리도 좋아하는 ‘법적 안정성’을 획득하는 것이라는 점을 강조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 국가보안법 문제를 모르는 사람들에게 국가보안법의 폐해를 적극적으로 알릴 필요가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국가안보와 관련 있는 중요한 법률인 것처럼 착각하는 것을 깨야 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국민연대 차원의 대중 집회만이 아니라 다양한 대중과의 접촉국면을 창출하고, 상투적이지 않은 방식으로 그들과 만나가야 한다. 그런 활동으로 궁극적으로는 여론조사에서 50% 이상이 국가보안법 폐지에 찬성하도록 하는 일이 필요한 것이다.
그렇다면 올해 국가보안법의 완전한 폐지, 그것이 꿈만은 아닐 것이다. pss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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