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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2.6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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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얼굴의 세계화 극복?

이강국, 2005, 『다보스, 포르투 알레그레 그리고 서울: 세계화의 두 경제학』, 후마니타스.

이 철 | 회원
내가 세계화란 말을 들은 지도 10년이 넘어간다. 문민정부가 들어선 이후 YS가 동남아를 순방하고 돌아온 직후 국제화는 세계화로 바뀌었고, 'Globalization'은 'Segyehwa'로 표기되었으며 국가적 의제로 대두되었다. 이 단어는 집회현장에서도 등장하였다. 94년 UR 협상 반대 투쟁 때였다. 과 동기 한 명이 "세계화한다 Ⅹ지랄말고 농업개방 중단하라!"라고 외쳤던 구호가 기억에 생생하다. 당시 세계화는 WTO 체제의 등장 속에서 한국경제의 '갱'쟁력 강화를 위해 제시되었고 그 이후 '세계화'는 IMF 위기를 거쳐 '정보화'와 함께 우리 사회의 화두가 되었고 관련서적은 넘쳐났다. 하지만 이 책의 저자는 세계화의 실체를 꿰뚫어 보고 그 의미를 완전히 이해하는 논의는 드물며, 세계화의 본질과 영향, 그리고 그 전망에 대해서는 논란만이 분분한 현실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저자는 여기서 논의를 시작하고 있다. 저자의 분석은 기본적으로 세계화의 두 얼굴(다보스와 포르투 알레그레)을 보여주고 세계화라는 현상에 대해 찬반의 태도를 정하기 전에 보다 균형 잡힌 시각을 갖추는 게 먼저라고 말한다. 저자에 따르면, 현재 세계화는 무조건 선이며 개방과 자유화가 축복을 가져다줄 것이라는 과도한 낙관론과 세계화는 재앙이며 반대해야 한다는 과도한 비관론이 평행선처럼 대립하고 있으며, 이런 극단적인 주장은 양쪽 모두 세계화의 한 쪽만을 과장하고 있다는 것이다. 결국 세계화가 경제성장, 빈곤, 소득분배, 그리고 국가의 변화에 미치는 영향은 무척이나 복잡하며 우리의 삶에 미치는 함의도 결코 간단치 않다는 것이다.

이 책은 크게 3부로 구성되어있다. 1부 '세계화 들여다보기'에서는 세계화의 역사와 정의에 대해 말하고 있다. 저자는 세계화로 포착되는 새로운 변화는 단순히 자연적이거나 필연적인 과정이 아니라 1970년대 초반 이후 자본주의 경제에 닥친 심각한 위기와 1980년대 이후 전개된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이 만들어낸 결과라는 사실을 구체적으로 논증한다. 즉 세계화와 신자유주의는 1970년대 초반 심각해진 자본주의의 구조적 위기에 대응한 자본의 축적전략인 것이다.
세계화는 1970년대 경제위기 이후 발전한 세계경제의 통합과정, 즉 금융자유화와 무역자유화의 확대로 이해될 수 있다. 이 과정은 수익성 하락으로 인한 자본주의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전략적인 발전으로 80년대 선·후진국의 자본자유화와 시장개방, 그리고 자유화와 규제완화 등 이른바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에 의해 더욱 가속화되었다. 세계화에 대해서 주류경제학자들은 자본과 상품의 전 세계적인 이동이 투자를 촉진하고 효율성을 상승시켜 경제성장을 촉진하며 선후진국간의 격차도 줄어들게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국제무역은 시장을 확대하고 경쟁을 촉진하며 생산성을 높여주고, 국제적 자본이동은 후진국의 부족한 투자재원을 메워주고 투자의 효율성을 높여서 경제에 도움을 줄 것이라는 논리였다. 한편 비판적인 논의들은 국제무역의 이득에 대해 의문을 표하고 특히 금융세계화의 심각한 문제점들을 강조한다. 자본자유화가 경제성장을 촉진한다는 주장은 금융시장의 실패로 인해 그 근거가 취약하고 금융세계화는 오히려 금융위기와 같은 새로운 위험을 가져다주고 있다는 것이다. 비판적 논의에 따르면 기존의 신화적 해석 내지 장밋빛 주장들의 근거가 실은 매우 약하다. 저자는 계량경제학에 힘입어 수치로 표시되는 자료에 의존해 금융과 무역의 자유화가 과연 성장과 분배에 있어서 도움이 되었는가를 설명하고 있다. 많은 연구들은 이론적으로 그리고 실증적으로 세계화의 이득을 주장하지만 같은 통계자료와 수치를 가지고도 정반대의 비판적 논의도 가능함을 저자는 보여주고 있다.
개인적으로 이 지점이 이 책의 큰 장점이라고 생각되는데, 이 책은 자본자유화와 무역자유화의 성장효과에 관한 최근의 논쟁을 소개하면서 통계적 자료를 통해 비판과 반비판을 전개하고 있다. 동일한 통계자료가 연구자에 따라 사회적 맥락에 의해 다르게 해석될 수 있음을 보여줌으로써 중립적이고 과학적인 방법론이라고 포장되는 실증주적의적 방법론이 하나의 이데올로기가 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2부 '세계화와 그 불만'에서는 세계화가 노동자들에게 미치는 영향과 소득분배의 문제에 대해 주류경제학과 비판경제학의 입장을 예를 들어 설명하고 있다. 저자는 세계화의 불만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세계화를 비판하는 이들은 세계화가 후진국의 빈곤과 아동노동을 심화시키고 각 국의 빈부격차 그리고 선진국과 후진국간의 격차도 확대되는 주범이라 비판해왔다. 실제로 80년대 이후 세계화의 진전과 함께 국내적으로나 전 세계적으로 소득분배는 전반적으로 악화되고 있으며 동아시아 국가들의 급성장에도 불구하고 라틴아메리카와 아프리카의 성장은 더욱 정체되고 있다. 그러나 반세계화론자들의 우려와는 달리 선진국 임금격차의 악화는 기술진보 등 다른 요인이 더욱 중요하며 후진국의 빈곤문제에 미치는 세계화의 영향도 일방적이지 않음을 알 수 있다. 물론 아웃소싱의 영향이나 금융위기의 파괴적인 효과 등과 함께 신자유주의 정책의 영향에도 주의를 기울여야 하겠지만 세계화에만 책임을 덮어씌우는 것은 옳지 않다. 개도국의 노동 착취문제에 대해서도 세계화를 개도국의 노동착취 주범으로 모는 것은 지나치게 감정적인 대응이라는 것이다. 결국 저자가 강조하는 것은 세계화와 빈곤의 인과관계가 반드시 일직선이지만은 않다는 사실, 지역 간 격차도 크고 국가의 대응에 따라서도 달라질 수 있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저자는 반세계화를 일방적으로 내걸기 전에 세계화의 영향과 효과를 보다 자세히 이해해야 한다고 말한다.
한편 저자는 세계화와 국가의 역할에 대해서도 살펴보고 있다. 세계화의 진전으로 국가의 역할이 더욱 축소되고 지역정부나 국제적 기구의 재편 등 새로운 지배구조가 필요하다는 주장에 대해 국가의 역할은 여전히 중요하고, 일방적으로 약화되는 대신, 국내의 제도적 특성과 역관계를 반영하여 세계화와 상호작용하며 재편되고 있는 것으로 본다. 또한 새로운 국제적 거버넌스 확립의 가능성은 불확실하지만 열려 있으며 이를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본다.
마지막으로 저자는 반세계화운동을 살펴보고 있다. 저자는 반세계화 모임의 다양한 그룹들과 그 주장들을 설명한다. 또한 이 그룹들이 보여준 그동안의 실천적 영향력에 대해 높이 평가를 한다. 그러나 반세계화 그룹의 내부문제에도 눈길을 떼지 않는다. 저자가 말하는 가장 큰 문제점은 반세계화 운동 그룹이 내부적으로 통일되지 않은 여러 그룹들의 혼재라는 점이다. 선진국 NGO중심이란 것도 문제가 된다. 개별 국가 간 이해관계가 충돌되기도 하는데 이를 어떻게 반세계화의 기치아래 모을 수 있는 가가 향후 가장 큰 쟁점이 될 것이다. 즉, 반세계화운동은 앞으로 진보운동의 핵심적인 영역으로 발전할 것으로 보이며,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와 전 세계적 사회정의운동 간의 갈등이 21세기 자본주의의 가장 치열한 전선이 될 전망이다. 하지만 저자는 이러한 운동의 진정한 발전을 위해서는 누구나 인식하듯 반세계화의 외침만이 아니라 대안적 세계화의 노력이 필수적이라고 말한다. 저자가 너무나 다양한 단체들의 각양각색의 반세계화운동에 대해 명확한 입장과 프로그램의 필요성을 제시하는 것은 경청할 만하다. 이러한 고민과 저항이 전세계적으로 이루어질 때, 반세계화운동의 보수적, 퇴행적 요소를 극복할 수 있으며 '그들만의'의 세계화가 아니라 '또 다른 세계'가 가능할 것이다.

3부는 한국경제의 역사적 변화를 금융세계화와 관련하여 설명하면서 IMF 위기 이후 한국에 밀어닥친 금융개방이 한국경제의 모습을 어떤 식으로 바꾸어 놓았는지에 대해 비판한다. 저자에 따르면, 한국경제의 기적적인 경제성장은 주류경제학자들의 주장과는 달리 전면개방이 아니라 세계경제에 대한 전략적인 통합과 개방 과정에 대한 관리에 기초한 것이었다. 수출과 외국자본의 역할이 경제성장에서 무척 중요했지만, 자율적이고 발전 지향적인 정부가 국제무역을 관리하고 외국자본을 강력히 통제하며 생산적인 투자를 촉진하고 경제발전에 성공했던 것이다. 저자는 한국경제의 위기는 발전국가가 무너진 1990년대 이후에 나타난 금융개방 조치 때문이었다는 분석을 제시한다. 위기 이후 IMF와 정부는 신자유주의 구조조정과 함께 금융부문 등을 포함하여 경제를 전면적으로 개방했고 외국자본의 힘이 급속히 강화되는 가운데 투자와 성장잠재력의 저하 그리고 소득분배율의 약화, 나아가 경제의 불안정이 심화되었다는 것이다. 저자는 새로운 발전국가의 역할에 기초하여 단기금융자본에 대한 규제와 외국자본에 대한 선별적 접근 그리고 생산적 금융시스템의 확립과 보다 민주적인 구조개혁 등 단순한 개방과 신자유주의를 넘어서서 전략적인 세계화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이상에서 살펴보았듯이 저자는 세계화가 경제성장, 빈곤, 소득분배, 그리고 국가의 역할 등 다양한 영역에서 선과 악, 축복과 재앙 그리고 기회이며 덫이라는 두 얼굴을 지니고 있다고 본다. 저자는 한 얼굴만을 강조하는 양 극단의 주장은 모두 많은 문제점과 한계를 안고 있음을 강조한다. 저자는 양쪽 모두에서 만족스러운 답을 구할 수는 없다는 입장이다. 세계화를 무조건적으로 지지하거나 반대하는 대신 어떻게 보다 인간적인 얼굴을 한 세계화가 가능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것이 올바른 자세임을 강조한다.

나는 저자의 이러한 주장에 전적으로 동의할 수는 없다. 저자는 이분법을 뛰어넘어 세계 지도자들과 주류경제학자들은 세계화의 어두운 면에 대해 더 심각하게 고민하고, 포르투 알레그레의 반세계화 시위대들은 감정에 호소하는 대신 세계은행 경제학자들의 여러 연구에 귀를 기울일 것을 주장한다. 하지만 반세계화를 뛰어넘는 대안적 세계화가 보다 인간적인 얼굴을 한 세계화가 될 수는 없다. 세계화의 악영향을 최소화하고 이득을 극대화하는, 특히 생산적인 자본이동과 무역의 이득은 극대화하면서도 경제의 불안은 최소화하는 선별적 세계화는 사실상 신자유주의적 세계화를 지속시키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사실상 세계경제기구나 글로벌 NGO가 내세우는 이러한 주장은 객관적이고 합리적으로 보일지는 몰라도 너무나 소박한 주장이다. 세계경제기구나 NGO가 주도하는 시민사회의 변화는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와 글로벌 자본주의에 적합성을 가진 '순응적 시민사회'(civil society with globalization)로서의 특징을 가진다. 신자유주의와 글로벌 자본주의의 '순응적 시민사회'로 구축된 구조적 제약 속에서의 연대는 역시 자기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 따라서 이러한 인간의 얼굴을 한 세계화 운동들은 국가 및 시장의 제도화된 질서로부터 완전히 분리된 영역에서 시도되는 급진적 저항이 아니라 순응성의 제약 속에서 저항하는 '자기 제한적 급진성'으로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인민들의 권리를 제약하고 세계화의 고통 속에서 인민 스스로를 분리시키는 세계화는 우리의 대안적 세계화가 될 수는 없을 것이다. 대안세계화운동은 국제금융 무역기구와 초민족 자본이 주도하는 신자유주의 세계화(위로부터의 세계화)가 아닌 인민들의 운동의 국제주의(아래로부터의 세계화)를 적극적으로 옹호해야 한다.
한편 우리는 '보수적 퇴행적 반세계화운동'과 '인간의 얼굴을 한 세계화'를 넘어서는 대안을 만들어가고 있는지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반문해야 한다. 국가나 이익집단의 경계를 초월하는 공동의 이해관계에 기초한 아래로부터의 세계화를 만들 수 있는 비전과 힘은 어디에 있는지, 대안세계화를 추상적이지 않고 구체적으로 제안하고 새로운 전망을 만들 수 있는 힘과 능력을 만들어가고 있는지에 대해 우리의 답을 내놓아야 할 것이다. "왜 반세계화를 해야 하는지?"라는 물음에 여전히 "전쟁과 빈곤, 실업을 양산하니까, 노동시장을 유연화하고 노동권을 파괴하니까, 여성을 빈곤화하고 여성노동권을 제한하니까"라는 당위적인 답변에 머물러서는 안 될 것이다.
서평이 다분히 요약, 발췌하는 식이 되었다. 난삽하기까지 하다. 이 서평을 읽는 이에게 미안한 마음뿐이다. 변명을 하자면 나에게 경제학과 대안세계화는 아직도 어렵기 때문이다.
주제어
경제 이론 민중생존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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