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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3-4.8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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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의 위기전가에 맞서 싸우는 공동투쟁본부> 결성 의미와 과제

이현대 | 공동운영위원장
2009년 2월 8일 <자본의 위기전가에 맞서 싸우는 공동투쟁본부>(이하 공투본)가 대표자회의를 통해 공식 출범했다. 세계자본주의가 직면한 사상 초유의 위기와 한국사회에 몰아닥친 위기의 한파 속에서 해고, 임금삭감, 비정규직화 등 노동자 민중에게 위기의 책임을 전가하려는 정권과 자본의 공세에 맞서 공동 대응이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형성된 것이다. 이번 공투본 결성에는 이례적으로 넓은 스펙트럼의 정치사회단체들이 참여하고 있다. 이것은 현재 세계적 차원에서 진행되는 자본주의 위기의 심각성에 대한 공동의 인식이 형성되었고, 한국 민중운동의 취약한 주체역량으로 인해 공동투쟁의 필요성이 더욱 절실해졌기 때문이다.
공투본은 고통분담, 노사화합 이데올로기를 동원하며 노동자 민중에게 경제위기의 책임을 전가하는 정권과 자본의 시도에 맞서 전사회적인 이데올로기 투쟁을 강화하고 현장 노동자들의 단결투쟁을 형성하는 것을 활동목표로 삼고 있다. 공투본은 경제공황을 초래한 자본주의의 구조적 문제를 제기하며 근본적 대안을 제시해 나갈 것이다.

공투본 결성과 활동

공투본은 조직 참가를 원칙으로 하고 있으며 이미 폭넓은 스펙트럼의 정치사회단체가 참여하고 있다. 앞으로도 공투본에는 정치사회단체, 노동조합, 현장조직 등 다양한 형태의 조직들이 참가할 예정이며 지역별, 산업별 현장 활동가 간담회를 추진하고 지역별 연대투쟁체를 구성하여 활동을 전개할 계획이다. 이미 몇몇 지역에서 지역공투본 건설이 준비되고 있고 향후 위기가 심화됨에 따라 각 지역별 공투본 결성이 본격화될 전망이다.
공투본은 공식 출범 이전부터 공동활동을 전개해왔다. 지난 해 12월 30일 상경한 울산 노동자들과 함께 현대 미포조선 최대 주주인 정몽준 의원의 사무실 앞에서 현대미포조선 사태해결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개최했다. 2월 3일에는 노동자가 용산 철거민 살인진압 규탄 투쟁에 앞장서 싸우자는 호소를 담은 선전물을 전국의 작업장에 배포했고, 2월 5일 서울 검찰청 앞에서 용산 철거민 살인진압 관련 검찰의 편파 왜곡 수사결과를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개최했다. 또한 2월 14일 서울역 광장에서 300여명이 참가한 가운데 <용산철거민 살인진압 책임자 처벌! 경제위기 책임전가 반대! 노동권, 생존권 쟁취를 위한 투쟁결의대회>를 개최했다. 결의대회에서는 “경제 위기의 대가를 떠넘기는 모든 시도에 맞서 노동자의 노동권 생존권 쟁취를 위해 투쟁하자”, “비정규직 투쟁, 구조조정 반대투쟁을 비롯해 최저임금법, 비정규직법을 포함한 MB악법 저지와 용산 철거민 살인진압 책임자 처벌투쟁을 끝까지 같이 하자”고 결의했다. 2월 28일 <전국노동자대회>와 <용산철거민 살인진압 책임자 처벌과 MB악법 저지 범국민추모대회>를 맞아 집회현장과 전국의 사업장에 선전물을 배포했다. 선전물에서는 경제위기에 맞서 노동자 민중 투쟁전선을 구축하자는 제언과 함께, 민주노총 성폭력 사건에 대한 진단과 제안, 노사민정 합의 비판, 공투본 요구안 해설 등이 담겼다.

공투본의 과제

현재 공투본에 전례 없이 폭넓은 정치세력이 비상한 정세라는 인식 하에 함께 참여하고 있다는 것은 고무적인 현상이다. 하지만 앞으로 공투본이 노동자운동 전반의 취약한 상황과 대중투쟁이 형성되지 않고 있는 냉엄한 현실을 어떻게 돌파할 것인가가 관건이다. 그렇다면 공투본은 무엇을 과제로 삼아야 하는가?
첫째, ‘정치적 선명성 경쟁’보다 ‘대중투쟁 형성’을 중심으로 단결해야 한다. 공투본은 지난 해 12월부터 수차례에 걸친 간담회와 토론회를 거쳤고, 대표자회의에서조차 7시간이 넘는 장시간 토론을 통해 투쟁 요구안을 확정했다. 투쟁 요구안을 확정하는 과정에서 다양한 스펙트럼의 쟁점과 이견이 확인되었고 때론 격론이 벌어지기도 했다. 하지만 참가단체들은 세계자본주의 위기에 대한 공동대응의 필요성에 우선 방점을 찍었다. 공투본 결성의 목표에 걸맞게 자본의 위기전가에 맞서 전사회적 이데올로기 투쟁을 강화하고, 지역과 현장에서 노동자 민중의 단결투쟁을 형성하는 것이 현 시기에 무엇보다도 중요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공투본의 투쟁요구안 마련 과정에서도 지적되었던 바와 같이 현재 정세의 핵심은 세계자본주의의 구조적 위기가 본격화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세계적 차원에서 노동자 민중운동이 본격적으로 분출하고 있지 못하는 모순적 현실이다. 따라서 자본주의를 변혁하기 위한 교육과 선전의 기조와 함께 현장 노동자들이 투쟁에 나서지 못하게 막고 있는 장벽을 깨기 위한 생동감 있는 선동과 구체적이고 살아있는 노동자들의 투쟁요구가 필요한 시점이다. 따라서 각 정치세력들은 자신의 기존 강령이나 입장을 주장하기 위한 ‘정치적 선명성’ 경쟁과 논쟁보다는 이러한 구체적 현실을 돌파하고 대중투쟁을 형성하기 위한 논점과 제안을 통해 공투본의 활동을 구체화시켜야 한다.
둘째, 대사회적 이데올로기 투쟁을 강화해야 한다. 최근 2월 23일에는 노동자 임금삭감이라는 현찰과 기업의 고용유지라는 부도수표를 교환하며 국민을 속이고 정권과 자본의 일방적인 의사를 관철한 노사민정 합의가 발표되었다. 2월 25일에는 30대 재벌들이 대졸 초임을 최고 28%까지 차등 삭감하겠다고 발표했다. 또한 국내 재벌들은 노동자의 임금을 깎아 국내외 주식투자자만 배불리는 배당금 잔치를 벌이고 있다(지난해 이익금 중 삼성전자가 약 7,000억 원, SK텔레콤이 약 6,000억 원, 포스코가 약 5,700억 원 수준의 배당금을 주주들에게 지급할 예정이다). 이처럼 시시각각 벌어지는 정권과 자본의 공세에 대해서 긴급한 공동대응이 필요하지만 우리는 아직 충분한 대응태세를 갖추고 있지 못하다.
현재 용산철거민 살인진압 투쟁 등 현안 투쟁으로 인해 공투본 참가단위의 역량을 충분히 결집하지 못하고 있는 조건을 고려하더라도 공투본은 이슈파이팅을 포함한 대사회적 이데올로기 투쟁이 너무 취약하다. 따라서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공투본에 참가하고 있는 단체들의 결합력을 제고하기 위해 노력을 배가하고, 참가단위를 확대하면서 내부 체계를 시급히 구축해야 한다.
셋째, 지역과 현장의 공동투쟁 형성을 매개해야 한다. 이제 막 공투본 집행체계가 구성되고 있는 시점이고, 참가단체들이 지금까지 공동활동을 전개해온 경험이 충분하지 못했기 때문에 여러 부족한 점이 많을 수 있다. 특히나 두 차례에 걸친 선전물 제작과 배포 과정에서 지역, 현장의 목소리와 입장을 반영하지 못했다는 비판이 있을 수 있다. 이에 대해서는 공투본 내부에서도 지적된 바 있다. 이는 현재까지 지역별 공투체 결성이 늦어지고 내부 집행체계가 미비한 조건에서 발생한 것이며 향후 계획 수립 과정에서 지역, 현장과의 긴밀한 협의를 통해 극복해야 할 것이다.
공투본은 명확한 의미에서 아직까지 서울중심으로 구성되어 있다. 온전한 의미에서 공투본이 제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각 지역에서 공투체가 건설되고 각 지역이 참여하는 공동의 토론과 결의를 통해서 전국적인 태세를 갖추어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공투본에 참여하는 각 단체들이 공투본 활동에 대한 결합력을 높이고 공투본 참여조직의 각 지역조직들이 적극적으로 지역별 공투체 건설에 적극 나서도록 해야 한다. 지역, 사업장마다 운동의 역사에 따라 공투본에 참여하는 조직 간에도 여러 가지 갈등요소들이 잠복해 있기 때문에 이를 극복하고 공동투쟁을 형성하기 위해서는 상호 간에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무원칙한 단결이 아니라 현 정세와 투쟁과제를 중심으로 열린 자세로 토론하고 결의사항을 책임 있게 실천하는 기풍을 세워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넷째, 민주노총의 혁신과 노-농-빈 대중조직을 중심으로 공동의 투쟁태세 구축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 2005년 강승규 비리사건, 최근 민주노총 핵심 임원의 성폭력 사건은 민주노총 위기의 결과이지 원인이 아니다. 민주노총은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로 인한 한국사회의 변화와 정권과 자본의 노동자 분할통제전략, 노동의 유연화 공세에 적극적인 대응전략을 마련하지 못한 채 기존의 성과를 방어하는 데 급급했고, 노사정 합의와 같은 허구적 코퍼러티즘을 추구해왔다. 이른바 ‘제도화 전략’이라 불릴 수 있는 이러한 전략은 명백한 실패로 귀결되었다. 또한 하반기로 다가온 민주노총 직선제와 2010년 단위노조 차원의 복수노조 도입, 전임자 임금지급 금지 등 노동자운동의 커다란 환경변화에 맞서 민주노총의 혁신을 위해 각 세력들이 각개 약진이 아니라 공동대응을 할 필요성이 절실하다. 지역을 기반으로 공동의 토론과 실천을 통해 신뢰를 확장하고 대중운동에 대한 유의미한 실천과 개입이 가능할 수 있도록 집단적 흐름을 형성해야 하며 이를 위해 현장, 지역 활동가들의 결집이 필요하다.
향후 자본주의 위기가 심화됨에 따라 정권과 자본의 공세는 전방위적으로 진행될 것이다. 이러한 조건에서 위기에 대한 인식과 대응방향을 두고 정치세력들 간의 이견이 더욱 첨예해질 수 있다. 그 뿐만 아니라, 노동조합 내부에서도 상대적으로 고용안정이 보장되는 부문과 그렇지 못한 부문 사이에 심각한 분할이 발생할 수 있다. 경제위기 하에서 실리주의적, 퇴행적 흐름이 강화되지 않도록 하는 유일한 방안은 전국적인 공동투쟁 전선을 구축하고 투쟁의 전망을 확보하는 것이다. 현재 민중운동 내부의 우경적 행보로 인해 대중조직을 중심으로 한 투쟁전선이 제대로 구축되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공투본은 민주노총, 전농, 빈민운동 등 대중운동조직을 중심으로 전국적인 공동투쟁 전선을 형성하는 관점을 명확히 세워야 한다. 공투본이 표방하는 목표는 공투본만의 순전히 독자적인 활동을 통해서 관철될 수 없다. 공투본은 지역과 현장의 재조직화를 통해 대중조직을 아래로부터 강화하고 혁신하기 위한 노력을 적극적으로 전개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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