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 특집
  • 2015/04 제3호

최저임금 제대로 올리고 잘 지키려면?

  • 이유미 노동자운동연구소 연구원

정부가 임금인상을 꺼내든 이유

디플레이션이 쟁점이다. 물가하락을 의미하는 디플레이션은 보통 두 가지 이유로 발생한다. 하나는 원자재 생산비가 줄어 제품들의 원가가 줄고, 시장 가격도 하락하는 경우다. 서민들 입장에서는 같은 예산으로 좀 더 많은 상품을 살 수 있으니 나쁜 일이 아니다. 다른 하나는 소비가 감소해 상품이 팔리지 않아 가격이 하락하는 경우다. 현재 소득이 줄어 소비할 돈이 부족하거나 앞으로의 소득이 줄 것이라 예상돼 소비 대신 저축을 할 때 발생한다. 소비가 줄어드니 결국 생산도 감소하고, 고용도 축소되어 경기가 침체된다. 이 상태가 계속되면 불황이 된다.

최근 정부가 임금인상을 이야기하는 것은 현재 물가하락 원인을 후자로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가 돈을 풀어 소비심리를 개선하는 방법도 있지만, 한국은 통화 신뢰도가 약해 재정적자에 근본적으로 제약이 있다.  정부는 작년 부동산 시장을 활성화시켜 돈이 돌게 하겠다고 부동산 규제를 풀었지만 전세 값만 올라 오히려 서민들의 소비심리를 더 얼어붙게 만들었다. 정부 입장에서 남은 것은 민간 부문의 임금인상 뿐이지만 그마저도 현실화하기 쉽지 않다.
 

재벌도 민감한 최저임금 인상

민간 기업들이 정부가 바라는 대로 움직일 것 같지는 않다. 당장 최경환 부총리가 임금인상을 이야기하자마자 경제5단체가 반발한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재벌들은 앞으로 상당히 오랫동안 불황이 지속되리란 전망 아래 사내유보금을 최대한 가지고 있길 바란다. 삼성이나 현대차의 매출 상당 부분이 해외에서 발생하다보니 임금인상을 통한 국내 소비 진작에 대한 체감도가 다소 낮다. 반면 임금인상은 재벌들의 직접적인 원가 인상 요인으로 작용한다. 물론 재벌 사업장의 임금은 최저임금과는 비교과 되지 않을 만큼 높지만, 기본급을 최대한 낮추고 잔업특근과 성과급으로 총액을 높이는 생산직군의 임금은 최저임금 인상에 영향을 받는다. 그리고 삼성과 현대 등에 납품하는 하청업체 노동자들 임금이 대부분 최저임금이기 때문에 최저임금 인상은 납품단가 인상으로 이어진다.    


최저임금이 미치는 영향력

정치권과 노동운동은 모두 최저임금 인상을 요구하고 있다. 정부가 생각하는 인상률은 예년수준인 7퍼센트에서 10퍼센트 수준으로 추정된다. 새정치민주연합은 노동자 평균 정액급여의 50퍼센트인 6360원을, 민주노총은 1만원을 주장했다. 최저임금 인상이 미치는 영향력은 얼마나 될까? 2014년 8월 경제활동인구 부가조사 분석(김유선, 〈비정규직 규모와 실태〉)에 따르면 약 265만 명, 전체 노동자의 14퍼센트 정도가 최저임금 인상에 영향을 받는다. 물론 그렇다고 최저임금이 결정되면 265만 명의 임금이 오르는 것은 아니다. 이 265만 명 중 227만 명의 시급은 최저임금 미만인데, 최저임금 적용 제외자들도 포함된 수치기는 하지만 저임금 사업장 대부분에 노조가 없고 처벌규정도 미약해 위반사업장이 규모가 상당하다.

그런데 사실 이마저도 최저임금 영향을 받는 노동자가 과소 측정되었다. 정부의 통계는 고용노동부 〈사업체근로실태조사〉와 통계청 〈경제활동인구부가조사〉를 이용해 만든 것인데, 통계청 자료는 조사대상이 2만 7000가구에 불과하고, 고용노동부 자료는 1만 3000개 사업체 ‘사업주’를 상대로 조사하는 것이다. 사실상 저임금노동자를 통계에서 배제하는 조사로 볼 수 있다. 저임금 소득계층의 실태를 파악하는데 상대적으로 나은 국세청 근로소득연말정산 자료를 보면, 2013년 말 연 근로소득이 2000만 원 이하인 사람은 550만 명이다. 새정치민주연합의 최저임금 요구인 평균 정액임금의 50퍼센트 수준(시급 6360원, 월 133만 원)만 되도 통상급이 연 1600만 원이니, 초과근로수당과 상여금 등이 기본급의 10~20퍼센트 정도 되는 임금구조를 감안하면 이 550만 명 중 상당수가 최저임금 영향권 아래 놓인다.

이뿐 아니다. 유연한 초과근로를 위해 통상급을 낮추고 각종 수당을 높이는 한국의 임금특성상 법정 최저임금 대상인 통상급만 떼놓고 보면, 훨씬 많은 노동자들이 최저임금 영향권에 속하게 된다. 예를 들면 9급 공무원 1호봉이 130만 원 내외고, 근로소득 상위 10퍼센트에 속하는 현대자동차 현장직도 근속이 아주 길지 않은 이상 기본급은 140만 원 정도다. 평균  정액급여의 50퍼센트만 인상되어도 정규직 중 근속이 짧은 노동자 상당수가 영향권에 들어온다. 여기에 호봉제 특성상 초봉이 오르면 호봉표 전체가 영향을 받는다. 통계가 부족해 정확하게 추정할 순 없지만 임금체계가 호봉제인 노동자 수가 전체 근로자의 30~40퍼센트에 이르니 약 600~700만 노동자가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받을 수 있다고 볼 수 있다.

한국은 1인당 국민소득이 2만 8000달러(약 3000만 원)인데 법정 최저임금이 연 1600만 원만 돼도 전체 노동자의 절반 가까운 노동자가 최저임금 영향권에 드는 나라란 이야기다. 그래서 역설적이지만, 재벌들의 주장이 틀리진 않다. 저임금과 기형적 임금체계 속에서 일하는 노동자가 대다수다 보니, 경제 5단체의 주장처럼 최저임금 인상이 조금만 많이 되어도 모든 사업주들이 다 긴장해야 하는 사태가 발생하는 것이다.
 

임금실태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 민주노총 요구안

이런 점에서 1만 원 요구안은 다소 현실과 괴리되어 보인다. 민주노총 요구안은 단지 저임금 노동자에게만 해당하는 수준이 아니다. 민주노총이 요구하는 법정 최저임금은 월 209만 원, 연 2500만 원이다. 호봉급을 받는 거의 대부분의 정규직이 호봉표를 모두 바꿔야 한다. 일반직 공무원을 기준으로 하면 9급부터 6급까지는 모조리 바뀌어야 한다. 통상급을 기준으로 각종 상여와 수당을 책정하는 임금체계를 가진 업종에서는 그 인상폭이 상상 이상으로 높아진다. 

예를 들면 통상급 150만 원에 상여 600퍼센트, 초과근로수당이 통상급의 30퍼센트 정도 되는 제조업 노동자의 경우 민주노총 최저임금을 적용하면 연급여가 3300만 원에서 4500만 원으로 뛴다. 비정규직이야 더 말할 나위도 없다. 최저임금을 넘어서기 위한 수년 동안의 파업으로 달성한 공공운수노조 대학청소노동자들의 시급이 여전히 6200원이다. 현장 조합원들이 정규직, 비정규직 가릴 것 없이 자신감 있게 민주노총 요구안을 현장에서 선전하지 못하는 이유다.


최저임금 인상, 위반하거나 상쇄시키거나

물론 법정최저임금이 오른다고 실제 임금이 그대로 오르진 않는다. 최저임금 미만 사업장이 증가하는 것에서도 볼 수 있듯이 대놓고 법을 지키지 않는 사업주들도 많다. 그리고 더 중요한 건 사업주들이 최저임금을 위반하지 않더라도, 각종 임금체계 개악을 통해 임금 총액을 크게 늘리지 않고 최저임금 인상분을 상쇄시킬 수 있다는 사실이다. 최근 가장 빈번하게 등장하는 것이 초과근로수당과 상여금을 모두 연봉제로 ‘퉁’치는 방법이다. 노조가 없는 사업장에서는 최근 몇 년 사이 현장직의 시간급이나 일급을 연봉제로 바꾸는 사례가 많이 나오고 있는데, 연단위로 초과근로수당과 상여금을 모두 통합해서 계약하다보니 최저임금 인상의 상당 부분이 반영되지 않는 것이다. 서울디지털단지에서는 단순노무직 중 13퍼센트 가량이 연봉제 임금체계로 일하고 있다. 

여기에 업무량에 따라 조퇴나 휴업 등을 일상화는 사례나, 억지로 기존 노동자들을 단시간 근로로 고용하는 사례도 많아지고 있다. 현재도 마트나 학교현장에선 비정규직 노동자를 파트타임으로 고용해 임금을 삭감하기도 했다. 예를 들어 마트에서 7.5시간 근로계약을 하지만 노동자는 실제로 8시간이 넘게 일해 그만큼 무급노동을 하게 되는 것이다. 또한 주 40시간 미만 근로자에게 초과근로 수당이 지급되지 않는다는 점을 악용해 실제로 40시간 넘게 일해도, 7.5시간 근로계약으로 인해 초과근로수당도 받지 못하는 방식으로 임금이 삭감되었다. 노조를 통해 불합리한 계약을 개선한 사례가 있지만, 그렇지 못한 단위에선 임금 삭감 방식으로 활용될 가능성이 높다.
 

노조에 대한 신뢰가 핵심

노동운동은 최저임금 투쟁을 인상액 크기만 문제 삼을 것이 아니라 노동자들에게 민주노조가 필요한 이유가 되도록 접근할 필요가 있다. 정부를 상대로 최저임금이 얼마가 오르건 제대로 현장에 적용될 수 있는 제도를 요구해야 할 것이고, 또한 노조가 그것을 지키는 제도임을 노동자들에게 알려낼 수 있어야 한다. 즉 최저임금 인상을 위해서, 그리고 인상 이후 임금 인상을 상쇄하기 위한 다방면의 공격이 들어올 때, 최저임금 인상을 지키기 위해 노조가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조직할 수 있어야 한다. 

노무현 정권 초기 최저임금이 10퍼센트 넘게 증가하고 나서 위반 사업장들이 늘어났고 이에 불만을 가진 노동자들의 노조결성이 이어졌다. 이와 유사한 국면이 내년에 열릴 가능성이 있다. 열린 국면을 주도하려면 지금부터 준비가 필요하다. 이를 위해 최저임금 인상 투쟁은 저임금 노동자가 밀집된 공단이나 각종 서비스직을 찾아가 실태조사 하면서 접촉면을 넓히고 그 결과를 사회적으로 선전해야 한다. 실질적으로 노동자들이 생활하는 데 필요한 요구액을 파악해서 알리는 것이 여타의 통계치보다 큰 파급력을 가지며, 저임금 노동자 스스로의 요구로 여기게 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노력이 선행될 때, 최저임금 인상에 대한 대중여론이 정부여당의 선심성 정책 결과라고 생각하는 쪽으로 기울지 않고 노동조합의 제안에 관심을 가지게 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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