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 특집
  • 2016/08 제19호

산업재해 통계가 감추는 진짜 현실

  • 이진우 민주노총 노동안전보건부장
올해 초 고용노동부는 2015년도 산업재해 발생현황을 발표하며, “통계 산출 이래 가장 낮은 수치”라고 대대적으로 홍보했다. 재해율 뿐만 아니라 사망만인율(산재보험 적용 노동자 1만 명 중 산재 사망자가 차지하는 비율)도 감소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한국의 산재사망률은 여전히 OECD 1위이고, 조선소, 지하철, 건설현장, 에어컨을 수리하는 장소에서도 하청노동자들의 노동재해는 끊이질 않고 있다. 노동부의 홍보와 현실 사이의 괴리는 어디서 발생하는가? 

먼저 노동부가 발표하는 산업재해 통계는 실제 현황을 반영하지 못하는 근본적 한계가 있다. 또한 노동부는 산업재해를 줄이기 위한 실질적인 노력보다는 산업재해 ‘통계’ 수치를 줄이는 데에만 집착하고 있다. 아예 산업재해 ‘은폐’를 부추기는 수준이다.
 
 
[표1] 제조업과 건설업 종사자에 대한 노동부통계와 통계청조사의 차이(2015년)
 
 

 

 

 

 

현실 반영 못하는 노동부 통계

산재보상체계는 산재보험법, 공무원연금법, 사립학교 교직원연금법, 군인연금법, 선원법 및 어선원·어선재해보상 보험법 등으로 분할되어 있다. 이중 노동부 산재통계는 산재보험보상 통계만을 기초로 하고 있고, 기타 보상체계에 의한 산재는 합산하지 않는다. 이를테면 지난 10년간 75명의 집배원이 사망한 우체국의 산재는 노동부 산재 통계에 잡히지 않는다. 또한 총 공사금액이 2000만원 미만인 소규모 건설공사의 경우와 특수고용노동자도 적용하지 않고 있다.

[표1]에서 노동부 산재통계와 통계청 조사에서의 조사 대상자 수는 큰 차이를 보인다. 공무원, 교직원, 군인 등 150만 명 정도가 다른 보험법으로 보상 받고, 가구 내 고용이나 상시노동자 수가 5명 미만인 농업, 임업, 어업 등은 포함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림1] 2015년 업종별 산재사망자(출처: 노동부 산재통계)

진짜 문제는 건설업이다. [그림1]과 같이, 전체 업종에서 건설노동자의 사망자수는 가장 많다. 헌데 노동부 산재통계상 건설노동자수가 통계청 조사보다 1.8배 이상 부풀려 있다. 통계청이나 건설산업연구원 조사에서는 180만 내외인데, 산재통계에서만 폭넓게 잡아 건설업 재해율과 사망만인율을 고의적으로 떨어뜨린 것이다. 이는 전체 재해율과 사망만인율을 낮추는 역할까지 한다.
 
[그림2] 2005~2015년 간 산재사망과 재해율 추이(출처: 노동부 산재통계)

위 [그림2]에서, 2005년 이후 재해율과 사망만인율은 감소하는 경향을 보인다. 하지만 주목해야 할 것은 산재통계상의 노동자 수가 10년 사이 600만 명 증가했다는 것이다. 실제 산재사망자 수는 2009년 이후 1900명 내외로 큰 진전이 없고, 재해자수는 오히려 2010년까지 증가하다가 소강상태다. 노동부가 말하는 산재 감소는 급격히 증가한 노동자 수 증가의 영향이 큰 것이다.
 
[그림3] 노동부 산재통계상 업종별 종사자 분포(2007~2015년)

그렇다면 어느 업종의 노동자가 많이 증가했을까? 전통적으로 산재율이 높은 건설업은 2007년 23퍼센트에서 18.7퍼센트로 비중이 줄었고, 제조업은 큰 변동이 없다. 가장 많은 증가를 보인 업종은 ‘기타의 사업’으로 42퍼센트에서 48.4퍼센트까지 늘었다. 여기엔 서비스업으로 분류되는 도·소매업, 보건 및 사회복지사업, 음식·숙박업 등이 포함돼 있다. 서비스업의 산재율은 건설이나 제조업의 절반 정도이기 때문에 노동자수 증가로 인한 희석 효과를 보이는 것이다.

이렇게 갖은 애를 썼음에도, 한국은 여전히 OECD 산재사망 1위다. 사망만인률은 6.8로 그 다음 순위인 칠레, 터키. 멕시코 등 보다 월등히 높고, 영국의 11배, 일본이나 독일의 5배에 달한다.
 
[그림4] 2013년도 OECD 주요국가
산재사고 사망률(ILOSTAT자료 재가공)
 

‘통계’에 집착하는 노동부

도무지 줄지 않는 산재 사망자수를 줄이기 위해 노동부가 내놓은 방책은 통계 기준을 바꾸는 것이었다. 2013년 3월 노동부가 발표했던 2012년 산재통계에서 2114명이었던 전년도 산재사망자수가 지금은 1860명으로 254명이 사라졌다. 최근 10여 년 산재사망 통계도 모조리 수정했다.

고용노동부는 지금까지 근로복지공단이 제공하는 산재사망자통계를 그대로 사용해왔다. 하지만, 지금은 기준을 변경해 사업장외 교통사고(운수업, 음식 숙박업 포함), 체육행사, 폭력행위, 사고발생일로부터 1년경과 사고 사망자를 통계에서 제외했다. “실제 예방할 수 있는 산재의 규모를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게 노동부가 내세운 이유다.

우리나라는 출퇴근 재해나 특수고용노동자의 재해는 산재 적용도 안 된다. 이런 조건에서 사업장밖 교통사고 등 일부 항목을 제외하여 발표한 것이다. 실제 산재를 줄이기 위한 정책 대신, 통계 수치 감소에만 급급한 것이다.

산재발생률도 문제다. 사망 재해가 OECD 평균의 3배가 넘는데도 재해율이 5분의1에 불과한 것은 통계의 문제점을 그대로 보여준다. 이 통계는 산재율이 낮은 걸 증명하는 게 아니라 고의적 은폐의 실태를 증명할 뿐이다.

건강보험공단의 환수 현황 분석에 의하면, 사업주가 부담해야 할 치료비가 건강보험으로 처리되면서 국민 부담액은 매년 평균 600억원에 달했다. 응급실 기반 조사에서는 산재보험 대상 중 산재 처리하는 노동자 비율이 20퍼센트 미만인 것으로 드러났다. 각종 연구는 산재의 실질 규모가 정부 통계의 13~30배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그림5] 사망만인률을 낮추기 위해 통계기준을 바꾼 후 증발한 산재사망자(2002년 이후)
 

기준 변경으로 산재통계 30% 줄여

이런 상황에서 노동부는 2014년부터는 요양4일이었던 산재보고 기준을 휴업3일 이상으로 변경했다. 요양과 휴업은 차이가 크다. 요양은 어떤 방식으로 건 치료를 받는 행위를 의미하지만, 휴업은 요양+반차, 조퇴 등을 전혀 포함하지 않는 결근만 의미한다. 노동자가 4일 이상 치료받는 경우 사업주가 산재보고를 해야 했던 것을 연속 3일간 회사를 결근한 경우만 보고의무가 부과된다. 

이렇게 노동부는 기준 변경만으로 산재통계가 30퍼센트 이상 감소된 것처럼 둔갑시켰다. 이에 반해 OECD 가입 국가 대부분은 요양1일을 산재보상통계 기준으로 하고 있고, 결근뿐만 아니라 출근을 하더라도 업무 수행에 지장이 있는 모든 형태를 산업재해로 보고하도록 하고 있다.

또한 노동부는 사업장의 재해발생 정도에 따라 산재보험 요율을 인상하거나 인하하는 개별실적요율제 적용대상을 20인 이상 사업장에서 10인 이상 사업장으로 확대하기에 이른다. 작업장 산재은폐를 부추긴다는 비판을 받아 온 제도를 오히려 확대한 것이다. 이 때문에 산재가 발생하더라도 산재보험을 적용하지 않고, 공상처리(회사가 치료비를 보상)로 악용하는 사업장이 적지 않다. 산재공화국의 현실을 외면하고, 산업재해를 공상처리로 유도해 은폐를 조장하는 것이다.

2016년 노동부는 산업안전보건법 시행규칙을 고치겠다고 입법 예고했다. 사업주의 산재보고 대상을 휴업3일 기준에서 4일로 완화하고, 산재 발생 1개월 내 미보고시 즉시 처벌에서 ‘노동부가 산재발생을 인지하고 시정 지시 후 15일 이내 제출하면 처벌하지 않도록 완화’하는 내용이 골자다. 산재은폐 사업주가 적발되더라도 처벌을 피할 수 있는 통로를 만들어 주는 셈이다. 노동계는 개악안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지만, 노동부는 끝까지 밀어붙이고 있다.
 

‘사고를 드러내는 것’이 시작

지난 5월 28일 서울지하철 스크린도어 정비노동자의 사망사고는 스크린도어 관련 3번째 사고로 이전과는 다른 양상을 보였다. 서울메트로 사측은 원인을 개인의 탓으로 돌리려 했지만, 시민들과 노동조합의 힘으로 고인의 책임이 아니라 시스템과 관리의 문제라는 사과를 받아냈고, 진상조사단을 구성하기에 이르렀다. 다른 재해들처럼 사고의 책임과 원인이 제대로 밝혀지지 않을 가능성이 높았지만, 이번만큼은 사고를 드러내고 진짜 대책을 찾으려는 노력과 요구가 높다. ‘산재은폐 공화국’을 바꿔내는 첫걸음은 통계 조작과 기준 수정으로 사고를 감추는 게 아니라, ‘사고를 드러내는 것’에서 시작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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