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특집
- 2017/08 제31호
호주노총의 ‘정의로운 전환’ 프로그램
에너지 노동자들이 에너지 전환의 한 축이 되어야 한다
호주노총은 2016년 11월 《친환경 에너지 경제의 도전과 기회를 공유하기: 석탄화력 전력 부문의 노동자와 지역사회를 위한 정의로운 전환》이라는 정책 문서를 발표했다. 호주노총은 “전력 부문의 정의로운 전환을 이끌기 위해서는 저탄소 경제로의 전환 비용을 노동자나 지역사회가 홀로 책임지는 것이 아니라, 전 사회가 공평하게 나누어야 한다”며 국내외의 각종 사례를 검토하고 대안적 정책을 제안했다. 호주노총의 사례는 핵발전에 대한 것은 아니지만, 에너지 전환 과정에서 노동자와 노동조합이 맞닥뜨린 문제에 대한 구체적 대응의 하나로 참고할 점이 있어 보인다. 호주노총의 정책 권고는 크게 두 가지이다.
첫째, 호주노총은 독립적이고 민주적인 에너지 전환 기구의 신설을 요구했다. ‘호주 에너지 전환’이라고 이름을 붙인 이 기구는, 호주의 친환경 에너지 경제로의 전환을 전반적으로 계획하고 관리하며, 정부, 산업계, 노동계가 모두 참여한다. 호주에너지전환의 주요 역할은 다음과 같다. ①계획적인 전환과 석탄화력발전소의 폐쇄를 감독하고, 노동자와 노동자 가족, 지역사회에 정의로운 전환을 보장한다, ②산업과 기업의 구조 개혁을 관리하고, 노동자들이 재생에너지나 다른 화석연료 발전으로 이전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둘째, 호주노총은 석탄화력발전소가 위치한 지역의 대안적 발전 경로를 구체적으로 마련할 것을 요구했다. 석탄화력발전소가 폐쇄된 다음에 그 지역의 주민들이 어떤 산업에서 어떤 전망을 가지고 일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 구체적인 대안이 마련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환경부만이 아니라 재무부나 혁신산업과학부는 물론이고 지방정부들이 함께 머리를 맞대고 이 문제를 풀어야 할 것이다.
공적이고 계획적이며 민주적으로
호주노총의 정책은 하나의 참고점이 되지만, ‘정의로운 전환’ 정책의 한계도 보여준다. 주로 북미와 서유럽의 노동조합에서 제기된 정의로운 전환은, 전투적이지 않고 지역적, 전국적으로 조정되는 노사관계를 전제로 한다. 노사정 3자 합의의 대상에 에너지 전환을 포함시키자는 논의와도 연결된다. 하지만 그런 조건을 갖춘 지역은 세계의 일부일 뿐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지난 정부에서 노동조합이 참여하는, 정의로운 전환을 위한 타협을 생각하기는 힘들었다.
지금도 조건은 크게 다르지 않다. 문재인 정부의 신고리 5·6호기 공론화 위원회에는 노동계의 목소리가 반영될 통로가 매우 제한적이다. 그리고 최소한 수십 년이 걸릴 에너지 전환 과정 전반에 대한 논의 기구는 아직 존재하지 않는다.
한국에서도 시민들은 물론이고 에너지 전환 과정에서 직접적인 당사자가 될 노동자들이 반드시 참여하는 포괄적이고 장기적인 에너지 전환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 그 과정은 시장에 맡겨진 것이 아니라 공적 토론과 공적 기관이 주도한다는 의미에서 공적이어야 한다. 나아가 완전한 에너지 전환이라는 큰 목표 속에서 장기적으로 추진되어야 하고,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여러 가지 불확실성과 사회적 피해들에 대처해야 한다는 의미에서 계획적이어야 할 것이다. 또한 일부 산업계와 관료, 전문가들이 주도하는 것이 아니라 시민 모두가 결정하는 과정이어야 한다는 의미에서 완전히 민주적이어야 한다.
이런 측면에서 에너지 전환을 위해서는 더 많은 갈등과 토론이 필요하고, 노동조합은 그 과정의 중요한 한 축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노동조합은 소속 기업과 같은 기업별·산업별 이해관계를 대변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이 포괄하는 노동자계층 전체와 사회적 정의, 지속가능하고 보다 평등한 사회에 대한 비전을 대변해야 한다. ●
- 필자 소개
구준모 | 온갖 문제에 관심을 가지며 에너지노동사회네트워크 집행위원, 사회공공연구원 객원연구원으로 활동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