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특집
- 2017/11 제34호
촛불 이후 노동자운동의 1년
저는 비정규직 노동자입니다. 고등학교 졸업하고 바로 사회생활을 시작했고 그때나 지금이나 최저임금을 받으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쭤보고 싶은 것이 있어서 여기 나왔습니다. 박근혜가 물러나면 끝이 나는 건가요. 박근혜가 물러나면 우리는 행복해질 수 있나요? 이렇게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 기를 수 있을 것 같지 않습니다. 앞으로 20년 30년을 이렇게 살아야 한다면 저는 못 살 것 같습니다.
지난해 12월 한 청년 노동자가 창원 촛불 집회의 자유발언대에 올라 울분을 토했다. 그의 발언은 세대를 막론하고 큰 공감을 얻었다. 전국 곳곳의 촛불 집회 자유발언대에서 이런 목소리는 심심치 않게 들렸다. 박근혜 퇴진과 함께 일터에서의 민주주의와 권리를 요구하는 외침은 광장의 풍경 중 하나였다.
극단적 불평등과 양극화 사회에 대한 진단 없이 연인원 1700만 퇴진촛불의 열망을 설명하기란 어렵다. 정권의 정치적 색깔과 무관하게 노동시장은 유연화되고 기업에 대한 규제는 완화되면서 나쁜 일자리가 쏟아져 나왔다. 비정규직 1000만 시대와 3포·4포 세대는 결코 다른 말이 아니었다. 쌓인 적폐가 산더미다 보니 그것을 피부로 느끼는 노동자들로선 촛불광장에서 자기 노동의 문제, 일터의 민주주의를 말하는 게 어색한 일이 아니었다.
그런데 지난 한 해를 되돌아보면 어딘가 허전하다. 광장에서의 공감대는 잘 보이지 않고, 한해 내내 ‘노동’의 문제는 사회적 갈등 요소가 됐다. 민주노총이 ‘적폐세력’으로 몰리는가 하면, 한쪽에선 비정규직의 정규직화에 대한 반대 여론도 고조된다. 왜 이런 일이 생긴 걸까? 퇴진촛불 이후 1년간 일터의 변화를 살펴보고, 앞으로 노동자운동의 과제는 무언지 돌아볼 때다.
일터는 얼마나 바뀌었나
‘이게 나라냐’라는 구호처럼, 퇴진촛불은 새로운 대한민국을 건설하기 위한 전면적 정책 기조 전환을 요구했다. 그 책임을 강제 받은 주체는 정부와 정치권 그리고 민주노총으로 대표되는 노동자운동이었다.
정치권의 반응은 예사롭지 않았다. 촛불 민심은 대통령 선거에서 발현됐다. 조기 대선을 통해 출범할 새 정부는 이러한 촛불민심을 반영하는 개혁정부가 되어야 한다는 요구가 컸다. ‘보수 꼴통’ 홍준표 후보를 제외한 대다수 후보가 주요 공약으로 비정규직 문제 해결을 내세웠다. 비정규직 문제 해결에 대한 공약 없이 촛불 민심을 얻기 어렵다는 판단이었다. 이는 퇴진 촛불 시기 끊임없이 대선 쟁점과 사회적 과제로 부각하기 위해 분투한 노동자운동의 성과이기도 했다.
문재인 대통령 당선으로 ‘일터의 민주주의’에 대한 기대와 열망이 더 뜨겁게 달아올랐다. 문 대통령은 취임 후 첫 방문지로 인천국제공항을 택해 인천국제공항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직접 만났고,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와 같은 적극적인 정책을 선언했다. 물론 이는 그간 많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피눈물 어린 투쟁과 사회적 제기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다. 최저임금을 대폭 인상한 것도 민주노조운동이 ‘최저임금 대폭 인상’을 내걸고 끈질기게 문제를 제기하고 투쟁했기 때문이었다.
헌법재판소에서 박근혜 파면 결정이 내려진 다음 날인 3월 11일, 민주노총은 ‘박근혜정권 퇴진 비상국민행동’과 수많은 촛불시민들이 함께 고민해 <2017 촛불권리선언>을 발표했다. 촛불 항쟁의 최종적 평가와 다짐이 담긴 선언문에 ‘일터의 민주주의’가 공식 언급됐다.
“이제 우리 촛불시민은 우리의 민주주의가 다시는 땅바닥에 떨어지지 않도록, 추위 속에서도 광장을 지켜왔던 그 뜻으로 삶의 현장과 일터를 바꿀 것이며, 아래로부터 민주주의의 역량을 성장시킬 것이다. 그리하여 어느 누구도 가보지 못한 새로운 민주주의의 길로 나아갈 것임을 선언한다.”
노동자운동에게 ‘일터의 민주주의’를 세운다는 것은 촛불을 더 넓게 확장하고 민중의 삶을 개선하기 위한 보다 진전된 목표였다. 이를 위해 대선 기간 후보들로부터 노동권 정책공약을 끌어내기 위해 노력했다. 새 정부 출범 이후에는 최저임금 인상과 비정규직 차별철폐를 내걸고 6.30 사회적 총파업을 펼쳤다. ‘총파업’이라 명명하기엔 부족하지만, 비정규직 노동자 약 10만 명이 참여했다는 점에서 유의미한 평가를 할 수 있다.
하반기 들어 민주노총 등 노동·사회단체들은 ‘노조하기 좋은 세상 운동본부’를 결성, 노동조합의 필요성을 시민들에게 알리고 있다. 또 노조 할 권리를 방해하는 노동악법의 개정, 국제노동기구(ILO) 권고 이행을 촉구하고 있다. 민주노총 산하의 노동조합들도 각 지역과 현장에서 계속해서 싸우고 있다. 인천국제공항, 삼성전자서비스 등 노동조합에서는 일터 내의 중간착취 등 문제 해결과 신규 조직화에 전력을 다하고 있다. 정치권의 정책 추진이나 제도 변화만으로는 담보되지 않는 현장의 힘을 키우기 위해서다.
일터를 바꾸는 근본적인 방법, 노동조합 건설 역시 작지만 중요한 성과를 이어나가고 있다. 지옥 같은 만도헬라일렉트로닉스 공장의 20~30대 비정규직 노동자들(금속노조인천지부 만도헬라비정규직지회)이, 파리바게뜨에서 빵을 굽는 청년 노동자들(화학섬유노조연맹 파리바게뜨지회)이 각각 노동조합에 대거 가입했다. 총수가 교도소에 갇혀 있음에도 무노조 방침을 포기하지 않고 있는 삼성에서도 변화의 바람이 일고 있다. 삼성그룹 계열사 삼성엔지니어링, 삼성웰스토리, 삼성에스원 등에서 새롭게 노동조합이 설립됐다. 이처럼 노조의 ‘노’자도 몰랐던 사람들이 노동조합을 만들어 그간의 차별과 부당 대우를 시정하고 있다.
아직 구체적 성과로 보이진 않지만, 곳곳에서 일터의 민주주의를 확장하려는 시도들도 있다. ‘꺼지지 않는 구로의 등대’라 불리던 넷마블 노동자들의 죽음을 막기 위한 행렬, ‘종치고 정시퇴근 칼퇴근축제’ 등 구로·금천 노동자들의 현실을 바꾸기 위한 다양한 캠페인들이 그것이다. 최근 노동건강연대 등 노동·사회단체와 활동가들은 뜻을 모아 ‘직장갑질119’ 프로젝트를 시작했는데, 쉽사리 노동조합으로 연결되지 않는 노동자들을 만나 서로의 상황을 공유 및 상담하고, 보다 진전된 행동으로 나아가게 하기 위한 시도다.
여전히 달라지지 않은 현실
현실은 여전하다. 올해에도 버스·마사회·우체국 등에서 장시간 노동과 스트레스로 인한 충격적인 죽음들이 이어졌다. 노조 파괴 등 부당노동행위도 여전하다. 유성기업과 갑을오토텍에선 수년간의 투쟁에 응답하는 유의미한 판결(사용자 측이 주동한 어용 노조 설립을 무효로 판정)이 나왔지만,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이뤄지는 노조 파괴와 부당노동행위, 갑질은 그칠 줄 모른다.
노동권은 1990년대 후반 이후 계속해서 후퇴해왔다. 따라서 20여 년간 누적된 적폐를 청산하기엔 더 많은 시간과 폭발적인 변화가 필요하다. 그렇다면 노동자운동은 앞으로 어떤 디딤판을 만들고, 이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 것인가?
첫째, ‘대공장-정규직만을 과보호하는 적폐’로까지 지칭되며 그간의 노력과 성과를 부정당하고 있는 현실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 과장된 면이 있지만 이런 공격이 단지 언론이나 일부 노조 혐오세력의 왜곡과 선전·선동 때문만은 아니기 때문이다. 실제 민주노조운동은 대기업 정규직 사업장의 이해관계를 방어하기 위한 투쟁에 집중해온 측면이 있다. 억울하더라도 이런 악의적 선동을 상쇄하기 위한 공세적인 미조직 비정규직 조직 사업이 필요하다. 최저임금 인상 정세를 활용해 노동조합을 확대하고, 현장의 싸움을 만들며, 비정규직 정규직화 정세를 활용해 비정규직의 권리를 대변할 주체들을 모아야 한다. 이를 통해 기존의 노조를 혁신하는 것 등 쉽지 않은 과제를 노동자운동은 안고 있다. 즉 조직 확대 전략은 조직혁신 전략과 연결되어야 한다.
둘째,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으로 인한 노동의 분할은 노동자들의 분할과 갈등 역시 양산했다. 정규직은 비정규직을 고용의 안정판으로 여기고, 비정규직은 정규직 노조의 이야기를 신뢰하지 않는다. 이는 무엇보다 내부의 격차로 증폭된다. 따라서 노동자운동은 내부의 격차를 축소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임금인상과 고용 보장 등 과제에 있어서 하후상박의 원칙을 전면화해야 한다. 자본과 정권이 아닌, 노동자운동이 주도하는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 그래야 수세적 저항에서 벗어나 공세적으로 변화를 주도할 수 있다.
셋째, 정세에 대한 인식과 지적 차이의 차이를 축소하는 노력도 필요하다. 두 달 전 문재인 정부는 공공부문 정규직화 가이드라인을 발표했는데, 당시 전교조 조합원들의 기간제 정규직화 반대 여론 등 공공기관과 학교에서 발생한 갈등은 꽤 심각했다. 문제는 노동조합 역시 여기서 자유로울 수 없고, 현재의 민주노총의 취약점이 여실히 드러났다는 점이다. 따라서 조합원 교육과 공동의 실천과 계급적 인식을 높이는 사업을 통해 조직적 합의를 만드는 과정이 필요하다. (‘전교조는 기간제 정규직화를 반대하지 않는다?’, 《오늘보다》 10월호 참조)
이러한 노력은 정권의 반노동성 폭로와 적폐청산과 더불어 몇 번이고 강조해도 모자라지 않은 과제다. 그래야 ‘적폐노총’이라는 오명을 벗어던지고 노동조합 조직률 30퍼센트 시대, 민주노총 200만 시대를 열어갈 수 있다.
‘대안 세력’으로 발돋움하기 위해
문재인 정부 시기 전망을 논할 때 참여정부를 상기하곤 한다. 10여 년 전 ‘참여정부’란 타이틀을 달고 등장한 노무현 정권과 노동자운동의 관계는 초기부터 벼랑 끝을 달렸다. 배달호 열사의 죽음으로부터 시작된 노동자들의 죽음과 노조 탄압, 파견법 개악 등 노동악법은 정권 내내 대치 국면을 이을 수밖에 만들었다. 하지만 노무현 정부의 지지율이 가을철 나뭇잎처럼 떨어질 때, 반대급부의 기대는 노동자운동(혹은 민주노동당)으로 수렴되지 않았다. 이후 결과는 모두가 알다시피 이명박-박근혜로 이어지는 보수정권 9년의 세월이었다.
만약 민주당 정권에 대한 실망감이 다시 한번 퍼질 때, 대중의 마음을 사로잡는 세력은 누가 될 것인가? ‘대안’으로 부상하는 세력이 다른 누구도 아닌 민주노조운동이 되기 위해 무엇을 준비할 것인가? 이것이 촛불 이후 1년의 세월을 기대와 혼란 속에서 보낸 노동자운동이 답해야 할 질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