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특집
- 2017/11 제34호
청년노총이 됩시다
민주노총 전략조직화 사업의 새 구상을 위한 시론
노동자 운동을 재벌체제에 맞선 운동으로 재편하는 것은 노동자 운동에게 매우 사활적인 문제다. 그렇다면 노조의 전략조직화 사업은 그에 맞게 설계되어야 한다.
나아가 전략조직화 사업에는 새로운 시대·새로운 노조를 위한 주체 형성 전략이 동반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선 한국 자본주의 생산 체제에 밀착되어 있고, 재벌 체제에 핵심적인 노동력을 제공하는 생산 인구 집단을 가늠해야 한다.
한국 자본주의에서 청년노동
10퍼센트를 웃도는 높은 실업률. 알바와 인턴으로 표상되는 반실업 지옥. 청년 노동시장을 묘사하는 이 말은 반쯤만 맞다. 연령을 25~39세로 조정해보면, 재벌 자본은 이미 청년 노동의 상당수를 자신들이 원하는 형태로 포섭했음을 알 수 있다. (아래 표 참고)
남성 노동자를 세대별로 보면, 30대가 290만 3천 명으로 가장 많다. 30대 후반보다는 40대 초반이 3천 명 많지만 경제활동 참가율은 30대 후반이 94.1퍼센트로 0.3퍼센트포인트 더 높다. 여성노동자의 경우는 40대가 가장 많다. 20대 후반 경제활동 참가율은 73.2퍼센트로 전 세대 중 가장 높다. 30대는 임신·출산 및 육아로 참여율이 하락하는 전형적인 M자형 곡선을 그린다. 하지만 57.4퍼센트가 경제활동에 참여하고 있다. (표2)
300인 이상 대기업 사업장에서 일하는 비율이나 정규직 비율은 30대가 가장 높다. 남성의 30대 초반 정규직 비율은 71.9퍼센트로, 40대 초반이 66.7퍼센트인 것에 비해 5.2퍼센트포인트 더 높다. 여성은 20대 후반의 정규직 비율(67.0퍼센트)이 가장 높다. 미세하나마 20대 후반 남성 정규직 비율(65.1퍼센트)보다 높은 것이기도 하다. 여성들의 정규직 비율은 30대 초반 이후 지속적으로 하락한다.
이상을 종합해보자. 남성의 경우 30대~40대 초반이 상대적으로 안정적이고, 큰 규모의 사업장에서 일하고 있다. 여성의 경우 20대 후반이 상대적으로 안정적이고, 큰 규모의 사업장에서 일하고 있다. 25~40세 청년노동이 한국 노동시장의 중심에 위치하고 있는 것이다.
청년 노동시장의 특성
예비 단계에 있는 세대의 노동시장 특성을 두고 청년 노동을 규정해서는 안 된다. 청년들이 한국의 노동시장에 편입되었을 때 실제로 어떤 특성을 갖는지 살펴야 한다.
25~39세 청년 노동을 살펴보면 업종으로는 건설·제조업이 27.7퍼센트로 가장 많다. 다음은 생산자 서비스업(개인이 아니라 기업을 상대로 하는 서비스업; 23.3퍼센트)이다. 4~5퍼센트 정도의 금융업을 제외하면, 대부분 기술·경영·회계·정보통신·시설관리 등으로 전통적인 제조업에서 외주·전문화된 업종들이다. 남성의 경우 건설·제조업에서 일하는 비중은 36.4퍼센트, 여성은 37.4퍼센트가 교육·복지·서비스업 등 사회 서비스업에 집중되어 있다.
직종별로 보면, 청년 노동자 대다수가 기술전문직(30.9퍼센트), 사무직(30.4퍼센트)이다. 하지만 성별로 보면 양상이 크게 달라진다. 청년 남성은 32.4퍼센트가 생산직이고, 여성은 37.8퍼센트가 사무직, 37.7퍼센트가 전문직이다. 그에 비해 생산직은 9.1퍼센트로 낮다.
직업 경력이 짧은 만큼 청년 노동자의 평균 근속기간은 중고령 노동자에 비해 짧다. 하지만 근속 1년 미만 초단기 근속자 비중은 30대가 가장 낮다. 그만큼 다른 세대에 비해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일자리를 갖고 있는 것이다.
청년노동자의 근속년수는 업종별로 크게 다르다. 건설·도소매·운수업·사업서비스업에서는 1년 미만 노동자 비중이 높지만, 제조·전문기술·공공행정·교육업에선 2~3년 이상 되는 노동자 비중이 60~70퍼센트다.
근속을 분석해야 하는 이유는 조직화 방법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노동자들의 근속이 길고 노동시장이 안정적인 곳에서는 사업장 단위 교섭이 유효하다. 근속이 긴 만큼 사업장 동료들과 관계도 남다르고, 고용이 안정적인 만큼 사업장 단위의 단체협약도 효과적일 수 있다. 연대임금을 위해서는 통일 단체협약으로 발전하는 것이 필수다. 하지만 근속이 짧고 임시·일용직 활용이 잦은 곳에서는 지역노동시장 차원의 교섭이 효과적이다. 사업장 단위 보다는 직업적·지역적 인맥이 더 효과적이고, 상담도 이와 같은 관계망을 활용해야 한다. 개별 가입과 함께 표준 임금협약을 목표로 하는 지역 노동시장 협역을 목표로 발전시켜야 한다. 오늘날 사업장 조직화에는 공급 사슬 분석이 반드시 필요하다. 하지만 지역 노동시장 조직화에는 노동시장에 대한 분석이 우선되어야 한다.
수출 재벌의 전초기지에 몰린 청년
자동차 산업에서 상대적으로 근속년수가 길고 정규직 비중이 높은 곳은 완성차 공장을 제외하면 1차 벤더―모듈라인의 부품사들이다. 반도체·전자산업에서는 핵심 부품을 만드는 곳이다. 운수 분야에도 상대적으로 근속이 안정된 곳은 인천공항처럼 복합 물류센터의 전초기지 역할을 하는 곳이다. 수출 재벌들은 ‘재고 없는 생산’과 ‘기민한 생산’을 위해 이러한 사업장들에 직접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려 한다. 이런 곳에선 노조가 어느 정도만 조직화를 해도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데, 바로 이곳에 청년노동자들이 밀집해 있다.
오늘날 한국은 정부 정책 차원에서 교육·보건·복지 등 사회 서비스 분야를 확대하고 있다. 이 분야는 신규 사업인 만큼 사업주들이 요구하는 노동 규율과 노동자들이 희망하는 노동 표준 사이의 갈등이 끊임없이 양산된다. 새롭게 노동 표준을 잡아가는 분야인 만큼, 노동조합이 새로운 노동 표준의 형성을 위해 법과 제도를 매개로 조직화 전략을 구사할 경우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 여기에도 청년 노동자들이 밀집되어 있다.
20대 청년들은 빈곤을 감내하며 당장의 취업을 미루고 취업준비생의 길을 택한다. 하지만 20대 후반이 진입한 노동시장은 재벌 대기업들이 수직적으로 하청계열화한 부품사·운송기지들이다. 이는 정부가 정책을 통해 확대한 신규 일자리들이다. 시민사회가 노동시장에서 배제·파편화된 청년 알바에 주목한 사이, 재벌과 정부는 청년들을 자신이 원하는 형태로 노동시장에 포섭한 것이다.
새로운 노동표준을 위한 요구
오늘날 25~39세 청년들은 IMF 외환위기 이후 급격히 유연화 된 노동시장에서 일하고 있다. “20대는 체불임금 상담을 하고, 30대는 해고 상담을 하며, 40대는 퇴직금 상담을 한다”는 말이 떠돌만큼, 새로운 노동시장에서 형성된 노동 기준은 근로기준법의 최소기준을 뚫고 바닥을 향하고 있다.
그런데 여기서 조금씩 변화의 바람이 일고 있다. 청년들이 자신에게 닥친 문제를 세상에 드러내고, 때로는 집단적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최근 현대위아·현대모비스·만도헬라 등 현대자동차 핵심 부품사의 청년노동자들이 대규모로 노조를 결성했다. 파리바게뜨 청년 제빵기사들이, 인천공항의 청년노동자들이 물밀듯 노동조합 가입을 하고 있는 건 우연이 아니다.
이들이 이야기하는 문제는 생존권보다는 인간적 무시와 모멸감, 높은 노동 강도로 힘들게 일해도 적절한 보상이 주어지지 않는다는 점들이다.
향후 10년 내 민주노총 조합원의 40퍼센트는 노동시장에서 은퇴한다. 이는 조합원의 급격한 감소를 의미한다. 설사 수가 유지된다 할지라도 민주노총의 보수화(세대적 수동화)에는 상당히 영향을 미칠 것이다. 우리는 이미 이러한 현상을 금속노조 기아차지부의 사내하청분회 분리 총회, 전교조의 기간제 정규직 전환 반대 성명 등에서 경험한 바 있다. 민주노총이 새로운 노동 표준을 제시하고 사회 변화를 주도하는 게 아니라, 계급 대표성의 상실과 함께 개혁의 대상으로 내몰릴 수도 있는 것이다.
이를 바꾸기 위해선 새로운 혁신군이 필요하고, 이는 청년 조직화를 우회할 수 없다. 이들이 새로운 노동시장을 대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적극적인 노조 가입 사업·새로운 노조 운동을 준비하겠다는 목적 의식을 가져야 한다. 청년 조직화를 통해 재벌 투쟁과 교섭력을 제고하고, 공공부문에서의 노-정 교섭 기반을 만들어야 한다. 나아가 새로운 (대안)노조 운동을 준비하겠다는 조직적 목표도 갖춰야 할 것이다.
오늘날 청년들은 과거 세대와는 전혀 다른 경험을 하고 있다. 이들은 한국 사회 발전 전망에 대한 믿음이 없고, 실업의 공포 위에서 가까스로 노동시장에 진입했다. 노동권이 후퇴하는 사이 노동조합에 대한 신뢰는 사그라졌고, 사회운동이 약화되면서 대안사회를 향한 이념적 전망도 약한 상태다. 이들을 노동조합 운동의 주체로 묶어세우려면, 조직화 사업의 접근 방식이 달라져야 한다. 한국 사회의 지배 세력들은 이미 이런 청년들을 대상으로 새롭게 노동 현장을 재편하고, 재구조화할 전망을 세우고 있다. 그에 비견하는 계획이 필요하다. ●
- 필자 소개
박준도 l 노동자운동연구소 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