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27일 정전협정 60주년에 때맞춰 발간된 『폭격』에서 저자 김태우는 한국전쟁기 미 공군의 공중폭격 잔혹사를 생생히 기록하고 있다. 그를 따라 폭격의 역사를 잠시 살펴보자. 1903년 12월 17일 라이트 형제가 10여초에 걸친 최초의 동력비행에 성공한 뒤 10년도 채 지나지 않아 인류는 최초의 비행기 공중폭격을 실행했다. 1911년 이탈리아가 리비아를 식민화하기 위해 오스만제국과 교전하면서 최초의 공중폭격을 감행한 것이다. 유럽의 제국주의 열강들은 자국 군인의 피해를 최소화하면서 식민지 원주민을 효과적으로 제압할 수 있는 공중폭격의 매력에 쉽게 사로잡혔다. 유럽인들은 소이탄과 집속탄 같은 신무기를 활용한 무차별적 폭격을 ‘문명화의 임무’라는 수사로 포장했고, 폭탄은 문명화의 중요한 수단으로 간주되었다. 하지만 1차 세계대전은 참호전이자 지상군의 전쟁이었고 비행기는 여전히 보조적 역할에 그쳤다. 공군이론의 창시자로 알려진 이탈리아의 줄리오 두에는 1921년 『제공』에서 현대전의 핵심 요소로 제공권의 장악을 강조함과 동시에 ‘전략폭격’ 개념을 최초로 제시했다. 전략폭격이란 적의 전쟁수행능력과 전쟁의지를 무력화하기 위해 적 점령 하의 주요 도시나 생산동력교통통신 시설, 정치군사적 중추부를 파괴하는 폭격 작전을 의미한다. 이에 대비되는 ‘전술폭격’ 개념은 지상부대나 해상부대의 작전을 보조하는 공중폭격을 뜻한다. 두에와 동시대 인물이자 1차 대전 후 10년간 영국공군 사령관을 역임한 휴 트렌처드는 적군의 전투수행능력보다 적국 국민 전체의 전쟁의지를 파괴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트렌처드가 체계화한 전쟁수행의지 파괴 개념은 2차 대전 당시 영국공군의 ‘지역폭격’ 개념으로 현실화되었다. 2차 대전 초기까지만 하더라도 미군은 영국군의 지역폭격에 대비되는 ‘정밀폭격’을 표방했지만, 전쟁 말기에 이르러 그것은 유럽에서도 태평양에서도 유지되지 않았다. 1945년 2월 미국은 영국과 합동으로 독일 드레스덴을 공습하여 민간인 10만 명의 희생을 초래했고, 이어 3월부터는 일본 본토 전역을 공습하여 사망자 51만 명, 이재민 964만 명의 희생을 초래했다. 전략폭격 개념을 핵폭탄이라는 ‘절대무기’와 결합한 세계 최초의 전략폭격기가 바로 B-29였다. 1943년 개발되어 1944년 실전 배치된 B-29는 1945년 봄부터 여름까지 매일 일본 본토 상공을 비행하며 도시의 인구밀집지역 태반을 폐허로 만들었다. 8월, B-29에서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투하된 핵폭탄은 2차 대전의 종전이 아닌 ‘3차 대전’의 개전을 예고하고 있었다. 이때부터 전략폭격 개념은 핵폭탄을 장착한 장거리 중폭격기가 수행하는 것으로 자리 잡기 시작했다. 5년 뒤, 한국전쟁은 미 공군 전략폭격의 변태를 적나라하게 보여준 실험장이었다. 한국전쟁기 미 공군의 폭격 전개과정은 크게 네 시기로 구분된다. 첫 번째 시기는 한국전쟁 발발부터 중국군 참전 전까지인 1950년 7-10월의 시기로, 이 기간 중 미 공군은 ‘정밀폭격’ 정책을 표방하였다. 이는 5년 전 일본에 가한 ‘전략폭격’의 군사적 효율성 및 도덕적 정당성을 둘러싸고 군 당국 안팎에서 불거진 논란을 감안한 조치였다. 미 공군은 북한지역에서 후방의 주요 ‘군사목표를 제한적으로 정밀폭격’하기 위해 B-29 등 폭격기를 동원한 전략항공작전을 전개한 반면, 남한지역에서는 ‘전선 부근의 지상군을 화력 지원’하기 위해 F-80 등 전폭기를 동원한 근접지원작전을 전개하였다. 문제는 북한지역의 폭격 대상이 대개 대도시 인구밀집지역에 위치하였던 데 반해 폭격기의 명중률은 현저히 낮았다는 데 있었다. 가로 10미터 세로 200~300미터 크기의 대형건물을 B-29가 폭탄 하나로 적중시킬 수 있는 확률은 0%에 가까웠으며, 최소한 100~200발의 폭탄으로 대량폭격을 가해야만 50~80%의 적중률을 기록할 수 있었다. 남한지역에서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불안정한 전술항공통제시스템으로 야간에 침투하거나 산 속에 은신한 적들을 찾아내기란 불가능에 가까웠고, 점차 조종사들은 ‘육감’에 의존하여 ‘점 표적’이 아닌 ‘지역 표적’ 위주의 무차별적이고 광범위한 폭격을 가하기 시작했다. 두 번째는 중국군이 참전을 개시한 1950년 11월부터 정전협상이 시작된 1951년 5월까지의 시기다. “북한에는 더 이상 도시가 존재하지 않았다”는 1951년 8월경 한 외신 보도처럼, 유난히 추웠던 그해 겨울 북한의 눈밭 위에 불의 비가 쏟아졌고, 북한 전역은 초토화되었다. 중국군이 참전할 경우 최악의 대량학살(greatest slaughter)을 벌이겠다는 맥아더의 공언은 1950년 11월 초 중국군의 참전이 공식화되면서 구체적인 현실로 드러나기 시작했다. 1950년 11월 한 달 동안 이뤄진 B-29의 소이탄 투하로 만포진 95%, 회령남시고인동 90%, 초산 85%, 강계희천삭주 75%가 파괴되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1950년 11월 미국 대통령 트루먼은 “원자폭탄의 사용은 언제나 능동적으로 고려되어왔다”고 경고하였고, 12월 유엔군사령관 맥아더는 핵무기 사용에 대한 재량권을 요구한 데 이어 26발의 원자폭탄이 투하될 목표물 리스트를 제출하기까지 했다. 소이탄 폭격과 핵폭탄 공포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1950-51년 겨울 피난민들의 탈출 행렬이 이어졌다. 전선의 후퇴에 따라 ‘흰 옷 입은 사람들’에 대한 소개 작전이 남한지역으로도 확대됐다. 1951년 초 강원경기경북충북의 민간지역에서 발생한 네이팜탄 폭격은 적의 은신처로 사용 가능한 시설을 적군이 도시나 마을로 진입하기 전에 파괴하는 ‘효과적인 작전’으로 간주되었다. 정전협상이 개시되고 전선이 교착상태에 빠진 1951년 6월부터 이듬해 6월까지 이르는 세 번째 시기에 미 공군의 폭격은 중국으로부터 보급되는 식량과 무기를 운송하는 철도를 차단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정전회담에 압박을 가할 물리적 수단으로서 공중폭격에 주목했던 것이었다. 그러던 1952년 7월, 미 공군은 차단작전 중심으로 진행되던 기존의 폭격 전략을 대폭 수정한다. “극동공군 최대역량 투입을 통해 공산군에게 최대한의 압력을 행사할” 목적에서 ‘항공압력전략’ 개념을 도입한 것이다. 이때부터 정전협정이 체결되는 1953년 7월까지 미 공군은 민간인들을 향한 대량의 무차별적 폭격을 통해 적에게 정치적 압력을 행사하고자 하였다. 그 첫 목표물은 수풍부전장진허천부영금강산 등에 위치한 수력발전소였고, 그 다음 목표물은 견룡자모용원에 소재한 저수지였다. 이처럼 1953년 B-29에 의해 이뤄진 대부분의 폭격은 ‘적에 의해 보급품 집적소로 활용되는 작은 마을과 소도시’의 민간시설에 집중되었다. 이와 같은 전쟁 막바지 폭격 양상은 차단작전에서 파괴작전으로 변화한 극동공군 작전의 성격 변화를 극적으로 보여준다. 미 공군의 폭격은 정전협정 조인이 이루어진 그날까지도 쉼없이 계속되었다. 한국전쟁 이후 본격화된 냉전 체제에서 B-29를 대신해 미국의 주력 전략폭격기로 자리 잡은 것이 B-52였다. 1955년 실전 배치된 B-52는 1956년 비키니섬에 수소폭탄을 투하함으로써 핵경쟁 무대에 뛰어올랐다. 미국의 핵무기 운반수단은 본토에 배치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핵잠수함이 보유한 잠대지핵미사일(SLBM), B-52에 탑재한 공대지핵미사일(ALCM) 세 축으로 구성되는데, 이중 B-52는 현시 효과란 측면에서 가장 효과적인 무기로 간주된다.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영화 <닥터 스트레인지 러브>에서 묘사되듯, 핵폭탄을 잔뜩 실은 B-52는 지구 곳곳에서 항상 하늘에 떠있으며 그 임무는 특별명령에 따라 사전에 지시된 소련의 공격목표물에 핵폭탄을 투하하는 것이다. 게다가 운용 범위와 비용을 고려하면 매우 실용적이기까지 하다. B-52는 베트남전에서 3백만톤의 폭탄을 투하했고 이라크전에서는 투하된 폭탄의 42%를 도맡았다. 한 마디로 B-52는 미국의 핵공격과 세계지배의 상징이었다. 그런 B-52가 올해 동아시아에 유난히 자주 출현하고 있다. 지난 3월 한반도 상공에 세 번이나 출격하더니 11월 말에는 센카쿠열도/댜오위다오 상공에 전격 출격했다. 북한의 3차 핵실험과 중국의 방공식별구역 설정에 대한 노골적 무력시위인 셈이다. 미국의 아시아 재균형 전략과 상대방의 반작용이 악순환을 그리며 역내에서 군사적 긴장이 전례 없이 고조되는 오늘, 한반도에서 전쟁과 공중폭격 문제는 과거의 문제가 아니라 명백한 현재의 문제라는 저자의 경고를 우리 모두가 귀담아 들어야 한다. 이번 『사회운동』의 [특집] 주제는 ‘노동조합 국제연대 사업의 현황과 평가’다. 신자유주의 세계화와 경제위기에 대한 반동으로 인종주의 또는 종족적 민족주의가 발호하는 현 정세에서 국제주의는 오늘날 정치를 사고함에 있어 필수불가결한 요소다. 지금까지 국제주의의 이념을 주로 다루었다면 이번 호에서는 국제주의의 현실을 다룬다. 먼저 임월산은 세계화된 공급사슬을 따라 국제적 조직화를 시도한 미국 제2노총의 경험을 검토한다. 조은석은 자동차업종에서 노동조합간 국제연대의 방안으로 검토되어온 여러 실험들을 분석한다. 정영섭은 세계 이주노동자 이슈를 망라하면서 아시아지역 이주노동자 운동 과제를 제시한다. 류미경은 국제 노동조합 조직과의 관계에서 민주노총의 국제연대 사업을 점검한다. 필자들의 경험을 바탕으로 제기된 평가인 만큼 생생한 현실과 고민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향후 노동조합 운동에서 국제주의를 진전시키기 위한 토론의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기획]으로는 오늘날 핵발전의 문제를 집중 조명한다. 박상은이 후쿠시마 사태의 교훈을, 김태훈이 제2차 국가에너지기본계획과 한미원자력협정 개정 비판을 각각 다룬다. 내년에 더욱 알찬 『사회운동』으로 찾아올 것을 다짐하며 올해 마지막 인사를 드린다.
지난 7월, 후쿠시마 핵발전소에서 2011년 3월 사고 직후부터 방사능 오염수가 바다로 방출되고 있었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2011년 12월 일본의 사고수습 선언 이후 사그라들었던 방사능에 대한 공포는 다시 전 세계로 퍼져나갔다. 오염수 유출 사실은 후쿠시마 사고가 아직 진행 중이며 통제 불능 상태라는 것을 다시금 각인시켰다. 후쿠시마는 계속해서 핵발전의 위험성을 경고하고 있다. 다시 그 메시지를 곱씹어볼 때이다. 핵발전, 무엇이 문제인가 핵에 대한 기초 지식 핵발전의 문제는 그 원리에서부터 비롯된다. 우선 핵발전의 원리를 간단히 보고 넘어가자. 모든 물질은 원자로 구성되어 있고, 원자는 원자핵과 그 주위를 도는 전자로, 원자핵은 양성자와 중성자로 구성되어 있다. 원자 자체는 보통 변하지 않아 그것이 구성하는 물질의 고유한 성질을 유지하는데, 이는 원자의 핵이 매우 안정적이기 때문이다. 핵이 안정적인 이유는 핵을 구성하는 양성자와 중성자들이 핵력(nuclear power)이라고 부르는 매우 강한 힘으로 묶여 있기 때문인데, 과학자들은 우라늄 같이 무거운 원자는 어떤 상황에서 핵이 쪼개져 다른 원자로 바뀐다는 사실을 알아냈고, 이를 핵분열이라 이름 붙였다. 우라늄은 자연 상태에서도 핵분열이 가능하지만 잘 일어나지는 않는다. 우라늄과 플루토늄의 원자핵에 중성자를 충돌시켜 인공적으로 핵분열을 일으킬 수 있다. 일단 한 원자의 핵분열이 시작되면 거기에서 방출되는 중성자가 다시 다른 원자들의 핵분열을 연쇄적으로 일으키면서 엄청난 양의 핵에너지가 급격하게 방출된다. 이를 이용한 것이 바로 핵무기이다. 흑연이나 물 등의 감속재를 써서 핵분열 속도를 늦출 수도 있는데, 이에 따라 천천히 방출하는 핵에너지를 이용해 물을 끓여 터빈을 돌려 전기에너지를 얻는 것이 바로 핵발전이다. 서로 뗄 수 없는 핵무기와 핵발전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의 경험은 핵무기가 인류를 절멸시킬 수 있다는 사실을 알려줬고, 전후 핵무기 감축이 인류의 시급한 과제로 대두되었다. 그런데 이러한 핵무기와 핵발전은 서로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다. 핵발전 기술은 핵무기 기술로부터 발전했다. 2차 세계전쟁 중에 핵무기 개발 계획에 적극 참여한 기업들(제너럴일렉트릭, 웨스팅하우스)이 실제로 미국의 상업용 원자로와 핵연료 개발을 주도했다. 전 세계적으로 가장 많이 사용되는 가압경수로는 핵잠수함용 원자로를 확대개량한 것이다. 기술의 뿌리만 같은 것이 아니라 실제로 핵발전 프로그램은 정부 주도의 군사적 목적과 분리되지 않았다. 영국과 프랑스의 경우가 그러하다. 예를 들어, 1956년 최초로 상업발전을 시작한 영국의 콜더 홀 원자로는 사실 핵폭탄의 원료인 플루토늄을 생산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들이 개발한 원자로(기체-흑연로)는 군사용 플루토늄을 만들기 위한 것으로, 원자로를 가동하며 생산되는 전력은 부차적이었고 경제성도 떨어졌다. 핵무기 보유국인 영국과 프랑스는 현재도 사용후 핵연료를 재처리하여 플루토늄을 추출하고 있다. 처음에는 핵을 ‘평화적’으로 이용한다고 하다가, 군사적 목적으로 전용한 국가들도 있다. 이스라엘, 인도, 파키스탄, 남아프리카공화국의 경우가 그렇다. 이렇듯 핵발전은 전기에너지를 얻기 위해서만 유지되는 것이 아니라 ‘언제라도 핵무기를 만들 수 있다’는 핵옵션의 유혹에 의해서도 유지된다. 최근 한미원자력협정 개정 시도를 보면 한국도 예외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한미원자력협정은 미국이 핵기술을 제공하면서도 한국의 핵무기 제조를 막기 위해 1956년에 맺은 협정인데, 박근혜 정부는 사용후 핵연료 재처리 권한을 확보하는 방향으로 이를 개정하고자 한다. 정부의 첫 번째 의도는 핵연료 생산 및 재처리 공정 사이클을 완성함으로써 핵발전소 수출을 확대하는 것이다. 그러나 사용후 핵연료를 재처리하면 플루토늄을 추출할 수 있기 때문에, 국제사회는 재처리권을 갖는다는 것은 핵무기를 개발하겠다는 것과 같은 말로 받아들인다. 정부는 순수한 플루토늄을 추출할 수 없는 건식재처리 방식을 택할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이렇게 추출된 플루토늄으로 핵무기를 만드는 것이 아예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따라서 한국의 계속된 원자력협정 개정 시도는 인근 국가들의 핵개발 시도와 맞물려 동아시아의 평화를 위협한다. 친환경적 에너지라는 환상 핵발전은 화석연료 사용보다 온실가스를 덜 발생시켜 친환경적이라는 환상이 널리 퍼져있다. 기후변화 문제를 제기하는 일부 환경운동가들이 핵발전을 옹호하는 경우도 있을 정도다. 그러나 핵발전은 다음과 같은 네 가지 이유에서 친환경적이지 않다. 첫째, 기존에 인류가 사용한 에너지원과 크게 다르다. 핵에너지가 사용되기 전까지 인류가 사용한 에너지는 거의 모두 태양에너지에서 온 것이다. 예를 들어 생물자원, 풍력, 수력, 화석연료는 모두 태양에너지가 변형되고 축적된 결과다. 반면 핵에너지는 물질 자체의 내부구조를 인공적으로 변형시켜 생산된다는 점에서 전통적인 에너지원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균형을 이뤄왔던 지구의 에너지 흐름 속에서 핵에너지가 새롭게 투입되는 것은 지구 에너지 총량의 인위적 증가를 의미하는데, 이것이 생태계 교란의 원인이 된다. 둘째, 핵발전은 기후변화를 더욱 심화시킨다. 핵발전소 운영 자체는 온실가스를 거의 발생시키지 않지만, 핵발전을 통한 전기 생산 과정 전체를 조망하면 그렇지 않다. 오로지 핵연료를 만들기 위해 진행되는 우라늄의 채굴과 정련 과정에서 온실가스가 다량 발생한다. 또한 핵연료의 운반, 핵폐기물 저장이라는 각 단계에서도 온실가스가 발생한다. 셋째, 핵폐기물 문제도 심각하다. 한국은 사용후 핵연료를 고준위폐기물, 그 이외는 중저준위폐기물로 분류하는데, 중저준위폐기물은 300년 동안, 사용후 핵연료는 무려 10만 년 동안 안전하게 보관되어야 한다. 이렇게 위험한 방사성 물질을 생산해내는 발전소를 친환경적이라고 할 수는 없다. 넷째, 핵발전은 다른 발전원과 달리 한번 가동이 시작되면 멈출 수 없어 탄력성이 떨어지고, 이것이 전기 사용량을 증가시키는 데 기여한다. 그리고 이는 결국 전체 에너지 소비수준을 상승시키는 효과를 낳았다. 한국은 1980년대 핵발전소가 여러 기 건설되면서 전력예비율이 1976년 3.9%에서 1986년 61.2%로 크게 증가했다. 정부는 아홉 차례나 전기요금을 인하하고, 전기보일러를 보급하는 등 전력소비를 부추기는 정책을 펼쳤고, 이것이 다시 전력부족을 야기해 추가 발전소를 건설하게 되는 악순환을 낳았다. 반민주적 시스템 핵발전은 전문성의 이름으로 그 안전성이나 경제성을 선전해 왔고, 비전문가들의 논의참여를 가로막아 왔다. 그러나 공공적으로 중요한 의사결정이 전문성의 논리에 의해 지배되어야 한다고 보는 전문가주의 입장은 민주주의와 충돌한다. 사회 구성원들이 자신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의사결정에 참여할 권리를 갖는 것이 민주주의의 기본 원리이기 때문이다. 최근 발각된 핵발전소의 심각한 비리도 소수 전문가들이 핵발전의 설계와 건설, 검증 및 규제를 모두 담당하는 폐쇄적 구조에서 기인한 것이라 볼 수 있다. 실제 한국의 실질적이고 유일한 규제기관인 한국원자력기술원은,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으로부터 예산의 절반 가량을 직접 수령하고 있고, 원자력 진흥업무를 맡았던 퇴직 공무원들과 핵산업에 종사했던 직원들의 재취업 기관으로 기능하고 있다. 전문가들이 모든 문제를 책임지고 해결할 수는 없다. 핵기술은 인간의 통제 능력과 예측범위를 뛰어넘는 위험한 과학기술이다. 실제 핵발전소에 사용되는 핵공학, 기계공학, 핵화학, 물리학, 토목공학, 전기공학 등의 분야를 총괄적으로 통제할 능력은 그 어떤 과학자에게도 없다. 또한 과학자들이 핵발전소 사고의 영향에 대해 잘못된 예상을 하여 상황이 악화된 경우도 다수 있다. 피폭노동의 문제 핵발전은 노동자들의 피폭을 동반한다. 핵발전소가 존재하는 한 피폭을 감수하며 일하는 노동자는 필연적으로 발생하고, 특히 후쿠시마 사고와 같은 대형 사고가 발생했을 때 피폭노동은 급격히 증가한다. 더 많은 노동자들이 더 높은 양의 방사선 피폭을 감수하며 일할 수밖에 없게 되는 것이다. 또한 피폭의 위험은 노동자의 고용지위에 따라 달라진다. 핵발전소에서 일하는 노동자들 중에서도 하청직원들이 피폭위험이 높은 일을 하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프랑스전력공사(EDF)에 고용된 하청업체 노동자들은 정직원보다 11~15배 높은 수준의 방사선에 노출되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피폭량 격차만이 문제가 아니다. 정직원은 일 년에 20mSv(밀리시버트)라는 기준치를 지키기 위해 업무가 조정되지만, 하청업체 노동자의 피폭량이 기준치 이상이 된다는 것은 바로 해고를 의미한다. 이러한 구조 속에서 하청업체 노동자들은 방사능 오염이 심한 구역에 들어갈 때 측정기를 놓고 들어가도록 압력을 받는다. 일자리를 유지하기 위해 피폭량을 숨기게 되는 것이다. 핵과학자로서 핵의 위험성을 경고해 온 일본의 과학자 고이데 히로아키는 자신이 반핵운동을 지속해 온 무엇보다 중요한 이유는 핵의 안전문제가 아니라 핵을 둘러싼 차별구조라고 밝히기도 했는데, 그는 핵발전소가 건설되는 지역이 소외된 저발전 지역이라는 점과, 핵발전소 유지를 위해 고농도 방사능을 무릅쓰는 노동자가 사회의 최하층 빈민이라는 것을 지적했다. 후쿠시마 이후 일본 여전히 진행 중인 사고 후쿠시마 제1핵발전소에서는 1~4호기가 모두 수소폭발을 일으켰고, 당시 가동 정지 중이었던 4호기를 제외한 1~3호기에서는 여전히 핵분열이 진행 중이다. 초반부터 핵연료봉이 녹아내리는 멜트다운이 일어났고 현재는 녹아내린 핵연료가 지면을 뚫고 내려가는 멜트스루도 진행 중이다. 일본은 체르노빌과 같이 콘크리트로 핵발전소를 덮는 방법을 택하지 않고 녹은 핵연료를 수거하려 하고 있지만, 2년 8개월 만인 올해 11월 18일에 핵분열 중이지 않은 4호기의 연료봉을 옮기는 작업을 시작했을 뿐이다. 1~3호기에서 녹아내린 연료를 수거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이다. 사고가 언제 수습될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오염된 지하수는 여전히 하루에 300톤씩 바다로 방출되고 있다. 이렇게 진행된 해양 오염은 전 세계에 영향을 미칠 것이다. 피폭의 증가 후쿠시마 사고 직후 일본 정부는 신속한 피난 조치를 취하지 않았고, 방사성 물질이 어느 방향으로 날아가는지를 정확히 알리지 않아 인근 주민들은 피폭을 피할 수 없었다. 따그 결과 중 하나로, 초기 방사성요오드 피폭으로 인해 어린이들에게 갑상선 암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올해 11월까지 조사된 후쿠시마현 어린이청소년(사고 당시 18세 이하) 갑상선암 발병률은 인구 10만 명 당 12명으로 집계됐다. 지난 2007년 후쿠시마 주변 4개현에서의 갑상선암 발병률 조사결과 15~19세 인구 10만 명 당 1.7명이었던 데 비해 높은 수치다. 피폭의 영향이 보통 4~5년 뒤에 나타나는 점을 고려하면, 갑상선 암은 앞으로 2~3년 뒤부터 본격적으로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사고 초기의 피폭만이 문제가 아니다. 후쿠시마의 주민들은 일상적인 피폭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 일본 정부는 사고 직후 연간 피폭허용치를 조정했다. 이전의 연간 1mSv라는 피폭허용치를 지키기 위해서는 후쿠시마 현 전체 주민을 피난시켜야 할 정도였기 때문에, 피폭허용치를 연 20mSv로 조정하고 이를 초과하는 범위만을 피난 구역으로 설정한 것이다. 지금도 후쿠시마 현의 방사선량은 상당히 높은데, 피난을 선택하지 못해 후쿠시마 현에 남게 된 주민들은 끊임없이 피폭당하며 살 수밖에 없다. 특히 임산부나 어린아이들은 방사선에 민감한데, 따라서 주로 이들을 중심으로 건강문제가 발생할 것으로 보인다. 노동자들의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일본 정부는 국제기준치를 완전히 어기고, 후쿠시마 핵발전소 노동자의 연간 피폭허용치를 100mSv에서 250mSv로 높였다. 선량계를 떼고 작업현장에 들어가 노동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고 알려져 있기 때문에 실제로는 기준치보다 더 높은 방사선에 노출되었을 수 있다. 그러나 도쿄전력은 그 실태를 명확히 알리고 있지 않다. 생활터전의 파괴 2013년 10월 현재 후쿠시마 현의 피난민 숫자는 15만 명이다. 피난민 중 일부 주민들은 다른 지역으로 이주했지만, 대다수는 후쿠시마 현과 주변 지역에 남아 정부가 제공한 가설주택에서 생활하고 있다. 이들의 생활은 열악하다. 피난민 거주용 가설주택은 단열재를 사용하지 않고 지어 더위와 추위에 취약하다. 피난 과정에서 제대로 돌봄을 받지 못해 사망한 노인들도 많다. 그러나 일본 정부는 후쿠시마현 피난 주민들이 전에 살던 곳으로 ‘전원 귀환’하는 것을 기본방침으로 임시방편만 세우다, 올해 11월이 되어서야 후쿠시마 주민들의 타지역 이주 지원을 검토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상황이 언제까지 계속될지 모른다는 불안과 피폭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피난민들은 큰 정신적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 피난민 중 자살로 인한 사망자는 올해 8월까지 신고 된 숫자만 1,648명인데, 이는 후쿠시마 현에서 2011년 지진과 쓰나미의 직접적인 피해로 인해 사망한 1,599명을 넘어선 숫자다. 후쿠시마의 산업은 큰 타격을 입었다. 본래 후쿠시마는 친환경농업으로 유명한 지역이었는데, 방사능 오염으로 인해 지역의 농업, 낙농업, 어업 모두 파괴되었다. 저선량 지역에서 생산되는 공산품까지도 거부되는 상황에서, 주민들은 새로운 일자리를 얻지 못해 곤란을 겪고 있다. 핵발전소 사고로, 이전의 모든 삶이 파괴되었다. 일본의 반핵운동과 에너지체제 전환 후쿠시마 사고 이후 일본 전역에서 핵발전소에 대한 반대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현재 일본 반핵운동의 가장 큰 목표는 핵발전소 재가동을 저지하는 것이다. 2012년 5월 5일 일본의 모든 핵발전소가 정지되어 ‘핵발전소 제로’ 상태를 맞이했다. 그러나 일본 정부는 계속해서 재가동 시도를 하고 있는데, 이를 저지하자는 것이 제1의 요구가 된 것이다. 2012년 여름은 일본에서 핵발전소 재가동 저지 운동이 가장 크게 일어났던 시기였고, 2012년 7월 16일 사요나라(잘가거라) 핵발전소 집회에는 17만 명이 모여 후쿠시마 사고 이후 가장 큰 규모를 기록하기도 했다. 또한 네티즌을 중심으로 한 총리관저 앞 집회가 몇 만 규모로 커지기도 했다. 반핵운동은 자민당 정부에 의한 핵발전소 재가동을 완전히 막지는 못했지만, 2012년 7월 오이 핵발전소가 재가동 된 이후 추가적인 핵발전소 재가동을 막아냈고, 올해 9월 오이 핵발전소가 점검을 위한 가동정지에 들어가 일본은 다시 ‘핵발전소 제로’ 상태를 맞이했다. 지금도 재가동 저지 운동은 지속되고 있으며 재생에너지 체제로 전환하는 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운동의 요구와 현실적 필요로 실제 일본의 재생에너지 비중은 빠르게 높아지고 있다. 태양광발전 비율이 특히 증가하고 있는데, 각 주택에 태양광을 설치하는 것은 물론이고 대규모 태양광발전소를 건설하는 메가솔라 프로젝트도 진행되고 있다. 그러나 메가솔라 프로젝트에도 자본의 논리가 관철되는데, 재원은 기관 투자자들의 공동 출자를 통한 펀드 조성으로 조달되며, 수익은 투자자에게 배분된다. 일조량에 의해 발전량이 좌우되는 태양광발전의 경제적 손실을 보충하고 수익변동을 막기 위한 파생금융상품도 등장하였다. 한편 후쿠시마 사고의 책임을 져야 할 도쿄전력은 전력회사의 적자 메꾸기와 수요관리의 논리로 인상된 전기요금 덕분에 올해 4월~9월 중간 결산에서 약 1,200억 엔(약 1조 3천억 원)의 경상이익을 냈다. 핵발전소 가동 정지의 책임은 민중들에게 떠넘겨지고, 재생에너지 개발은 또 다른 이윤 창출 도구로 활용되는 것에 대해 일본 내에서도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한국은 안전한가 후쿠시마 사고로 인해 오염수가 유출되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한국에서는 주로 ‘수산물 안전’과 ‘검역주권’이 이슈가 되었고, 논란 끝에 한국 정부는 후쿠시마 인근 8개현의 수산물을 수입 금지했다. 그러나 한국에서 후쿠시마 사태를 계기로 중요하게 돌아봐야 할 것은, 그 무엇보다 한국 핵발전소의 안전이다. 한국 핵발전소, 안전하지 않다 한국에는 현재 23기의 핵발전소가 운영 중이고, 5기를 새롭게 건설하고 있다. 한국은 이미 세계에서 다섯 번째로 핵발전소가 많은 나라지만, 앞으로 건설 예정 중인 것을 포함하면 42기로 늘어나 그 순위는 점점 높아질 예정이다. 많은 핵발전소 개수가 바로 핵사고의 위험을 높인다. 스리마일(5등급), 체르노빌(7등급), 후쿠시마(7등급)의 핵사고는 국제 핵사고 등급 상 시설 외부로의 위험을 동반한 5등급 이상의 핵발전소 사고다. 이 사고들은 사고 발생 경로도 달랐고, 원자로의 구조도 달랐지만 모두 핵발전소가 많은 국가에서 일어났다. 게다가 당대 최고의 핵발전 기술을 가진 국가에서 일어났다. 핵발전소 사고는 단순한 기술적 오류나 개인의 잘못으로 유발되는 것이 아니라 기술 자체에 내제한 복잡성과 중층적 연결고리에서 기인한다. 통제할 수 없는 위험한 기술을 기반으로 하기 때문에 핵발전 사고의 가능성은 항상 열려 있다. 핵발전소 가동 이후 지난 35년간 한국에서 발생한 사고 건수는 공식적으로 674건이다. 사고의 원인과 종류는 다양하다. 사고 중에서는 후쿠시마와 유사한 사고로 발전할 수 있었던 경우도 있었다. 2012년 고리 1호기에서 전력공급 중단으로 원자로 온도가 상승하는 사고가 발생했으나 이를 은폐한 사건이 있었는데, 이는 냉각장치의 고장으로 발생했던 후쿠시마 사고와 원리상 똑같은 사고였다. 월성핵발전소에서도 역시 후쿠시마 사고의 원인이었던 냉각수 누출 사고가 발생한 바 있다. 게다가 한국의 핵발전소도 노후화 되고 있다. 세계 핵발전소의 평균 수명은 19.8년인데 한국은 2008년 30년의 수명이 만료된 고리 1호기가 수명을 연장하여 34년째 가동 중이다. 월성 1호기 역시 2012년 30년이 지났는데 수명 연장 수순을 밟고 있다. 그러나 오래된 기계는 고장을 일으킬 수밖에 없다. 후쿠시마에는 총 10기의 핵발전소가 있는데, 사고를 일으킨 1~4호기는 모두 30년이 넘은 핵발전소였다. 이외에도 핵발전소에 불량품, 중고품, 검증서 위조 부품, 시험성적서 위조부품 등이 사용되게끔 만든 핵산업계의 구조화된 비리도 사고 위험을 높인다. 핵발전소 밀집도가 너무 높다 한국은 핵발전소 밀집도가 매우 높다. 밀집도란 국토 면적(1km²)당 원전 설비용량(kw)을 말하는데, 밀집도가 높을수록 사고 위험성이 높다. 현재 한국과 벨기에의 밀집도가 비슷한데, 향후 벨기에는 신규 건설을 중단할 예정이다. 한국은 신규 건설을 추진할 예정이기 때문에 한국의 핵발전소 밀집도는 전 세계에서 압도적 1위로 올라설 예정이다. 후쿠시마 사고 이후 대략 반경 30km이내의 주민들이 피난을 하게 되었는데, 그 인구는 15만 명 정도이다. 그런데 한국은 핵발전소 반경 30km내에 거주하는 주민이 고리핵발전소의 경우만 300만 명이 넘고, 전체는 370만 명에 달한다. 만약 사고가 일어난다면 매우 많은 주민들이 피폭의 피해를 입고 삶의 터전을 잃게 되는 것이다. 문제는 국내에만 핵발전소가 몰려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동아시아 3국 전체를 조망해보면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최근 국정감사 자료에 의하면 중국, 일본, 대만, 북한에서 현재 74기의 핵발전소가 가동 중이다. 또한 80기가 추가로 건설되고 있거나, 건설될 예정이다. 후쿠시마 사고를 보면 알 수 있듯이 방사성 물질의 오염에는 국경이 없다. 동아시아에 산재한 핵발전소의 존재 자체가 한국, 나아가 세계의 민중들에게도 위협이 되는 것이다. 한국의 핵발전 역사와 반핵운동 그런데 한국은 왜 위험한 핵발전을 이렇게 강력히 추진해왔으며 앞으로도 핵발전을 확대하려고 하는 것일까? 그리고 이렇게 위험한 핵발전을 중단시키려는 운동은 없었던 것일까? 한국 핵발전의 역사: 핵발전과 축적체계 한국이 다른 국가들보다 핵에너지 비중이 높은 정치적경제적 요인들이 있다. 남한은 일찍부터 핵기술을 도입했는데, 1955년 한미원자력협정이 그 시작이다. 이렇게 일찍부터 핵기술을 도입한 것은 냉전체제의 영향이기도 하다. 미국과 소련이 우방국에게 원자로 건설자금과 농축 우라늄을 제공하면서 경쟁적으로 원자력협정을 체결하는 흐름에서 한국도 예외가 아니었던 것이다. 반면 초기에는 핵발전으로 전기에너지를 얻으려는 의도는 크지 않았다. 1953년 한국은 심각한 전력난을 해결하기 위해 ‘전원개발 3개년 계획’을 수립했는데, 이는 수력발전 위주였다. 한국의 핵에너지 정책의 출발점은 에너지계획이라기보다 군사적 의도가 컸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후 미국의 도움을 받아 실험용인 트리가마크-II를 1962년 가동하게 되는데, 이것이 한국의 첫 원자로이다. 1960년대 초반에는 농업, 의학에서 방사선동위원소를 활용하려는 기대가 컸다. 이러한 군사적, 학술적 용도에서 발전사업 중심으로 핵정책이 전환된 계기는 1960년대 경제개발 5개년 계획으로 인한 전력수요의 급증 때문이다. 연15%씩 전력수요가 늘어나는 상황에서 에너지체계의 석유화가 빠르게 진행되었다. 그러나 석유 의존도의 증가와 동시에 석유의 대안을 모색했어야 했는데, 중동의 정치상황에 따라 석유의 수급이 불안정했기 때문이다. 수출 지향적 산업화는 에너지 집약적 생산소비 체계를 강화했고, 1970년대 두 번의 석유위기는 핵발전을 에너지원으로 확고히 자리 잡게 만들었다. 1980년대 세계적으로 핵발전 확대가 주춤하던 시기 한국은 핵산업의 신흥시장이었다. 이 시기에 미국은 한국 핵발전 산업을 독식하기 위해 한국에 핵기술을 제공하는 등 적극적 역할을 자임했고 한국의 핵발전소는 급증한다. 미국의 핵발전 개입, 한국 정부의 핵옵션에 대한 욕심, 수출지향적 공업화에 따라 계속해서 늘어나는 전력 수요와 같은 조건들은 핵발전 정책을 계속해서 팽창시켰다. 2010년대 한국은 드디어 핵발전소 수출국가로 도약하기 위한 시도를 진행하고, 한국형 원자로 도입, 한미원자력협정 개정을 통한 핵연료사이클 완성 등의 계획을 적극 추진하게 된다. 반핵운동의 역사 한국의 반핵발전 운동은 핵발전소 확대 저지, 핵폐기물의 안전한 처분이라는 두 가지 목표를 모두 지향했지만 현실에서는 후자가 중심을 이루었다. 한국의 핵발전소 부지는 박정희 정권 시절 거의 일방적으로 정해졌는데, 이후 정부가 기존 핵발전소 지역에 신규 핵발전소를 추가적으로 입지시킴에 따라 핵발전소 추가건설을 원천 봉쇄할 가능성이 크지 않았기 때문이다. 1980년대 초 환경단체와 종교계를 중심으로 핵발전소 건설 중단, 핵무기철거, 한반도 비핵지대화 요구가 있었지만 핵발전소 지역 주민들의 투쟁은 없었다. 핵발전소에 대한 지역주민들의 첫 집단적 대응은 1985년 영광주민들의 어업피해 보상 투쟁으로 일어났고, 이어 1988년 10월 고리 핵발전소에 10년 근무한 박신우씨 임파선암 사망사건을 계기로 한 방사능피해 진상규명 운동과 고리양산 등 핵폐기물 불법매립 사건에 대한 투쟁이 벌어졌다. 이러한 투쟁들은 1988년 12월 반핵평화 시민대회로 이어져 핵발전소 문제가 공론화되기 시작한다. 이후 반핵운동의 중추가 된 것은 방사능 폐기물 처분장 반대 투쟁이었다. 1989년 경북 영덕 방폐장 건설 계획 백지화, 1993년 장안 울진에서의 입지선정 무산, 1994년 굴업도 반대운동, 2003~2004년 부안군민들의 반대투쟁으로 2005년 경주 중저준위 방폐장 입지 선정까지 부지선정이 10번이나 중지되었다. 이는 그 자체로서 성과가 있었을 뿐만 아니라, 신규 핵발전소 건설 반대운동에도 다소 긍정적 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아직까지 정부의 핵 발전 중심 정책을 전환시킬 정도로 반핵운동의 영향력은 강하지 않다. 지역주민의 문제를 넘어 반핵을 전국적 의제로 확산하고, 핵군축, 핵발전소 폐쇄, 대안에너지 운동 등 대중적인 반핵운동이 보다 강화되어야 한다. 대안적 에너지체제 구축을 위해 핵발전소를 폐쇄해야 한다는 반핵운동의 주장에 대해, 막대한 에너지 소비를 어떻게 충당할 것이냐는 반론이 제기된다. 재생에너지로의 전환이 그렇게 어려운 일일까? 재생에너지로 핵발전 대체 가능 지속가능한 재생에너지로는 태양광, 태양열, 바이오에너지, 풍력, 지열, 해양에너지 등을 들 수 있다. 이러한 재생에너지 기술은 이미 핵발전을 충분히 대체할 정도로 발전했다. 2012년 현재 가동 중인 핵발전소는 30개국 432기로, 전세계 전기 생산의 11%, 전세계 에너지 소비의 2%를 차지한다. 한국의 경우 핵발전은 전기 생산의 30.4%, 전체 에너지소비의 5.7% 정도를 차지한다. 이 정도의 비중이면 핵발전을 재생에너지로 대체하는 것은 충분히 가능하다. 독일의 경우, 전체 에너지 소비량 중 신재생에너지 비율이 2011년 12.2%를 차지한다. 한국이 재생에너지 비율을 독일의 절반 수준 정도로만 높여도 현재의 소비구조를 유지하면서 핵발전 대체가 가능하다. 정부도 재생에너지 비중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에 비해 매우 낮은 것을 고려하여 재생에너지 비중을 일정 수준 높이려 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 정부가 내세우는 신재생에너지는 개념 자체부터 문제가 있다. 보통 신재생에너지가 친환경적인 에너지를 지칭하는 데 반해 한국정부는 신재생에너지에 수소에너지, 연료전지, 석탄을 액화가스화한 에너지 등을 포함시켜 통계치를 과장하고 있다. 또한 재생에너지 투자에 대해 이런 부문을 포함시키면서 본래 의미의 재생에너지에 대해서는 적극적으로 투자하지 않는다. 재생에너지 전환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것들 핵발전을 재생에너지로 전환하는 것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에너지 문제가 있다. 현재 에너지문제에서 중요한 것은 심각한 에너지 불평등이다. 2000년 세계 평균 1인당 에너지 사용량은 미국인 평균의 18% 정도였는데, 이는 1970년대 초반보다 약간 후퇴한 것이다. 재생에너지는 그 속성상 지역분산적인 특징이 있기 때문에 좀 더 평등한 에너지 체제를 만들 가능성이 있지만, 자동적으로 세계의 심각한 에너지 불평등을 해결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또한 현재의 생산과 소비구조를 그대로 두는 한 재생에너지는 한계적이다. 재생에너지는 소규모로 분산되고, 기존 기술보다 에너지 효율성이 높지 않다. 또 대부분 전기에너지를 생산하는 기술에 집중되어 있기 때문에, 핵발전을 대체할 수는 있어도 현재의 막대한 에너지 수요를 주로 충당할 에너지원이 되기는 어렵다. 즉 석유를 대체하기는 어렵기 때문에 자원고갈과 환경오염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다. 석유의 대안 중 일부로 핵발전을 유지해야 한다는 주장이 곧 다시 고개를 들 것이다. 핵발전소 폐쇄를 위해 에너지 체제 전반을 바꾸는 문제를 사고하지 않을 수 없다. 현재의 에너지 고소비 체제는 자본주의적 성장을 유지하기 위해 필수적이다. 자본주의는 스스로를 재생산하기 위해 훨씬 더 많은 에너지 투입을 필요로 한다. 그 결과 자본주의 체제에서는 에너지 밀도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했다. 핵에너지가 재생에너지보다 먼저 석유의 대안으로 사고되었던 이유는 대규모이며 밀집도 높은 에너지원이기 때문이다. 즉 분산형이고 소규모인 재생에너지보다 핵에너지가 자본주의적 축적체계에 부합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고에너지 소비를 저에너지 소비로 바꾸는 문제는 자본주의적 생산방식과 부딪힐 수밖에 없다. 평등하고 재생가능한 에너지 체제로의 전환은 이윤을 위해 더 많은 생산과 소비를 끊임없이 추구하는 자본주의 체제를 바꾸는 문제와 연관될 수밖에 없다. 반핵발전 운동, 어디서부터 시작할 것인가 후쿠시마 이후 한국의 반핵운동 후쿠시마 사고 이후 한국의 반핵운동에서도 새로운 경향이 등장하고 있다. 한편에서는 피폭의 위험성이 현실로 다가오면서 아이들의 피폭을 걱정하는 단체들이 생겨나는 등 저선량 피폭에 대한 관심이 증가했다. 다른 한편에서는 환경단체를 중심으로 에너지체제에 대한 대안적 시나리오를 제출하기 시작했다. 저선량 피폭의 위험성을 알리고 이를 예방하고자 하는 운동은 한국정부가 제대로 된 정보공개조차 하지 않는 상황에서 피폭의 위험성을 알리고, 정보를 공유하고, 정부에 대책을 요구한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다. 다만 이러한 활동이 한국의 핵발전 체계의 문제를 지적하는 여러 운동과 만나지 못한다면, 방사성 물질에 오염되지 않은 안전한 상품과 먹거리에만 집중하는 소비자운동의 성격을 띨 수도 있다. 이러한 활동이 긍정성을 확대하는 방식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반핵운동의 적극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탈핵을 위한 대안적 시나리오는 정부의 에너지 시나리오에 대한 문제제기의 성격을 가진다. 정부는 ‘경제의 지속적 성장, 농림어업의 비중감소, 에너지 다소비업종의 소비비중 20% 유지’를 예상하는데, 이는 핵발전의 유지확대를 위한 근거가 된다. 여기에는 화석에너지 또는 핵에너지를 필요로 하는 집약적 산업체제의 지속, 다시 말해 현재의 수출-재벌 중심의 신자유주의 경제체제를 지속하겠다는 입장이 전제되어있다. 반면,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는 ‘에너지 다소비업종의 소비비중 15%로 감소, 농업의 비중 증가’ 등 소비패턴 및 산업구조의 변화를 전망하고 이에 근거해 시나리오를 제출한다. 여기에는 ‘탈성장’ 내지는 ‘반성장’이라는 관점에서 시민들의 가치관이 변화할 것이라는 주관적 기대가 반영되어 있다. 이것이 현재의 역관계나 대중적 동의지반을 고려한 객관적 예측이라고 보긴 어렵지만, 정부의 에너지 시나리오가 객관적이고 중립적이지 않다는 사실을 드러낸다는 점에서 의미있는 시도라 할 수 있다. 향후 생태위기의 원인, 생태운동의 이념, 대안적 에너지체제의 상과 실현 경로 등에 대한 토론을 이어갈 필요가 있을 것이다. 현실의 계기 우리 앞에 놓인 몇 가지 과제에 대해 언급하며 글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우선 핵발전소 수출국으로의 도약과 핵무기 개발의 야심을 드러내는 한미원자력협정 개정 시도에 대한 비판이 필요하다. 보수언론이 한미원자력협정 진행 상황 하나하나에 주목하고 있는 것에 반해 사회운동 전반의 관심도는 너무나 낮다. 핵발전소 수출은 국제적 범죄이며, 핵연료사이클의 완성을 시도하는 것은 동아시아의 전쟁위기를 고조시킨다는 점에서 비상한 관심이 필요하다. 또한 2차 국가에너지기본계획 초안이 실제로는 핵발전소를 늘리는 계획임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이를 ‘핵발전 비중 축소’라 선전하며 착시효과를 노리고 있는데, 정부를 규탄하고 대규모 수요증가를 가정한 에너지계획을 비판하며 대안에너지 체제로의 전환이 가능함을 알려야 한다. 국가에너지기본계획이 핵발전소 폐쇄의 방향으로 변화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밀양 송전탑 문제도 중요하다. 밀양 송전탑은 신고리 3, 4호기가 생산하는 전기를 영남 지역으로 보내기 위해 건설되고 있다. 그러나 신고리 3, 4호기는 현재 핵심부품의 시험성적서가 위조된 것으로 밝혀져 완공이 연기된 상태다. 또 완공이 되더라도 이미 건설되어 있는 송전탑으로 충분히 수송 가능하다는 사실도 다름 아닌 한국전력의 시나리오를 통해 밝혀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와 한국전력은 아직 건설계획만 존재하는 신고리 5~8호기의 전력 수송까지 대비하기 위해 밀양 송전탑을 지어야 한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핵발전 확대 정책을 계속하겠다는 이야기다. 뿐만 아니라 밀양 송전탑은 30년의 설계수명을 가지고 있는 고리 1호기와 설계수명이 40년인 고리 2~4호기의 수명연장까지 전제할 때 필요한 것이다. 노후 핵발전소의 수명연장만 하지 않는다면 밀양 송전탑은 필요 없는데도, 수명연장을 당연시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정부와 한국전력에 맞서 지역 주민들은 갈등의 원인인 핵발전을 멈추고, 지방에 핵발전소와 송전탑을 지어 서울 등의 대도시로 송전하는 악순환을 끊자고 주장해 왔다. 현재 지역 주민들의 끈질기고 절박한 투쟁으로 사안이 전국화되고 있고, 반핵운동의 전선이 어느 정도 모아진 상황이다. 이렇듯 핵발전 정책을 비판하고, 대안적인 에너지체제로의 전환을 알려낼 수 있는 계기는 오늘날 한국사회에도 많다. 이를 놓치지 말고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일을 해야 한다. 이것이 아직도 진행 중인 후쿠시마 사고가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다.
석유에 의존하는 현재 에너지체제는 지속불가능하다. 자원의 절대량에 한계가 있고, 온실가스로 인한 지구온난화와 정치군사적 갈등을 유발하기 때문이다. 이에 대안에너지는 인류의 사활적 쟁점이 된다. 여기서 에너지 집약적 생산소비체제라는 자본주의 축적체계의 속성상 재생가능한 에너지가 상용화 되지 못한 채 핵발전의 확대가 지속적으로 시도된다. 그러나 핵 에너지는 고유한 위험성과 반민주성이라는 문제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끊임없이 구조적 위기를 만든다. 탈핵발전은 에너지 정책의 변화를 넘어 전면적인 생산관계의 변혁을 동시에 사고해야 한다. 지금 한국은 에너지생산과 소비에 관한 중장기계획을 논의하고 있다. 제2차 국가에너지기본계획의 권고안이 발표되었고, 올해 말까지 확정안이 발표될 예정이다. 국가에너지기본계획에는 에너지 수요 전망, 핵발전 설비 비중의 조정 등이 포함된다. 권고안의 내용은 핵발전 정책과 현재의 에너지 소비 체계가 그대로 유지될 것임을 시사한다. 한편 한미원자력협정도 계속해서 개정 논의 중이다. 한국정부는 재처리권 확보를 통해 핵연료 사이클을 완성하고 이를 통해 핵발전소 수출국으로의 도약을 꾀하고 있다. 이 두 사안은 반핵운동의 중요한 의제이자 현재 한국 자본주의 체계의 모순을 드러낸다는 점에서 구체적인 분석이 필요하다. 2차 국가에너지기본계획과 핵발전 올해 말 발표될 예정인 2차 국가에너지기본계획에 대한 민관 합동 워킹그룹의 권고안이 발표되었다. 그 내용은 에너지 정책을 수요관리 중심으로 전환하고, 핵 발전 비중을 축소하는 등 일견 시민사회의 반핵여론을 반영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자세히 살펴보면 정부의 선전과 달리 많은 한계를 가지고 있다. 제대로 된 전환이 아니라는 점에서도 문제이지만, 그 전환이 에너지산업의 민영화나 에너지 불평등을 확대시킬 여지가 있다는 점도 문제다. 에너지기본법에서 저탄소녹색성장기본법으로 국가에너지기본계획(이하 에기본)은 우리나라 에너지정책의 원칙과 기본 방향을 제시함으로써 에너지원별, 부문별 에너지정책을 체계적으로 연계하고 거시적인 관점에서 조정하는 에너지정책 관련 최상위 계획이다. 그러나 실제로 그 위상은 계속 변하였다. 에너지기본법이 발효되기 전에는 수십 개의 개별 에너지 법안의 내용이 난립해서 반영된 에너지기본계획이 있었을 뿐, 포괄적이고 실효성 있는 중장기 계획은 부재했었다. 2006년 에너지기본법을 제정하면서부터 에기본의 위상이 새롭게 정립된다. 정부가 에기본을 5년마다 20년 단위로 국가에너지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수립, 시행하도록 한 것이다. 국가에너지위원회는 대통령을 위원장으로 국무총리, 주요 관계부처 장관, 민간까지를 포괄하는 위상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2006년 말 구성된 국가에너지위원회는 난항을 거듭하면서 에너지기본계획을 도출하는 데 실패했다. ‘에너지정책에 대한 장기적통합적 비전을 제시하고, 에너지정책의 기본원칙을 천명’한다던 애초 취지는 무색해졌다. 2008년 2월 출범한 이명박 정부는 그 해 6월 법적 절차도 거치지 않은 채 갑자기 에너지경제연구원 용역 결과 발표의 형식으로 국가에너지기본계획 공청회를 열었다. 그리고 일방적인 추진이라는 비판 속에서도 8월에 제1차 에기본을 확정하였다. 이후 2010년 이명박 정부가 저탄소녹색성장기본법을 제정하면서 에너지기본법은 그 하위 법령인 에너지법으로 개정된다. 따라서 현재 제 2차 에기본의 법적 근거는 저탄소녹색성장기본법 제41조 '에너지기본계획의 수립'이 된다. 이명박 정부의 작품인 저탄소 녹색성장의 본질은 핵발전 확대수출 정책과 4대강 사업에 대한 ‘녹색분칠’이었다. 게다가 2010년 전력수급기본계획에서 기후변화의 주범인 석탄 화력발전은 변함없이 유지시킨 반면, 상대적으로 친환경적인 엘엔지(LNG) 화력발전은 축소하였다. 당진에 최초의 민간 석탄 화력발전소를 승인하기도 했다. 2013년 박근혜 정부는 제2차 에기본 수립을 위해 민관 워킹그룹을 만들어 권고안을 작성하였다. 워킹그룹에는 반핵운동에 참여하는 일부 시민단체 전문가들도 참여했는데, 정부는 이것을 전례 없이 성공적인 갈등 조정 사례이자 신에너지 정책의 큰 진일보라고 홍보했다. 일견, 이명박 정부 당시의 일방적 추진보다는 진전되었다고 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시민사회단체와 논의한 권고안은 말 그대로 제2차 에기본에 대한 정책 권고로서, 강제성이 없다. 산자부 장관이 위원장인 국가에너지위원회가 실제로 계획을 결정하는 과정에서는 정부의 입장이 관철될 가능성이 높다. 워킹그룹의 논의 내용이 공개되지 않아 정확히는 알 수 없지만, 지금 제출된 초안에도 이미 산자부의 입장이 많이 관철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사실상 정부는 시민사회단체를 정부 정책의 정당성을 확보하는 들러리로 활용한 것이다. 이러한 절차적, 제도적 한계를 확인하면서 워킹그룹이 논의한 2차 에기본 권고안의 내용을 살펴보자. ‘핵발전 비중 축소’라는 꼼수 2차 에기본의 핵심 쟁점은 핵발전 계획이다. 워킹그룹은 2035년까지 원전비중을 22~29% 사이에서 결정하도록 권고했다. 현재 발전설비용량 대비 핵발전 비중은 26.4% 수준인데 향후 2차 에기본에서 이 비중은 늘거나 줄 수 있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제1차 에기본에서 2030년까지 41%로 원전 비중을 늘리기로 했던 것을 축소한다는 것이다. 이를 두고 다수 언론에서는 2차 에기본의 ‘원전 비중 축소’를 강조하는 기사를 내보냈고, 이는 박근혜 정부가 시민사회의 반핵 여론을 반영해 탈핵발전으로 나아가는 것으로 이해되기도 했다. 그런데 최근 산자부가 공청회에서 핵발전 비중을 권고안의 범위 내에서 가급적 높은 수준으로 설정할 것이라고 말한 것을 보면 현재보다 비중이 축소될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더 큰 문제는 설사 지금보다 낮은 수준인 22%로 원전 비중 목표가 설정되더라도 신규 핵발전소가 건설될 것이라는 사실이다. ‘원전 비중 축소’라는 표현은 사실상 탈핵과는 무관한 2차 에기본의 본질을 은폐한다. 그럼 왜 신규 핵발전소가 건설되는 것일까? 필요한 핵발전소의 개수, 다시 말해 핵발전 설비용량은 전체 전력 수요에 원전비중을 곱해야 한다. 그런데 정부는 2035년 전체 전력 수요가 현재보다 80% 증가할 것으로 예측한다. 수요관리를 통해 증가율을 15% 낮춘다고 가정하더라도 2035년 필요한 핵발전 설비용량은 최소 28,700MW(비중이 22%일 때)에서 최대 38,700MW(비중이 29%일 때)가 된다. 현재 핵발전 설비용량이 20,716MW이므로 핵발전 설비는 최소 40% 이상 증가해야 한다. 핵발전소는 사실상 계속 추가 설립되어야 하는 것이다. 정부가 핵발전 비중이라는 숫자를 가지고 꼼수를 부린 것이다. 핵발전 안전성 제고 계획도 미흡 또한 핵발전의 안전성을 높이고 운영의 민주성과 투명성을 담보하는 것이 무엇보다 시급함에도 불구하고 2차 에기본 권고안에는 미흡한 점이 많다. 권고안은 후쿠시마 사고에서와 같은 지진해일 등 자연재해에 대비하는 대책을 세우고, 노후원전에 대한 스트레스 테스트를 통해 안전성 관리를 강화하며 주요 점검 항목을 확대할 계획이다. 전반적으로 기존에 해오던 안전성 검사를 보다 확대 강화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우선 노후원전에 대한 수명연장을 전제로 안전성 검사만을 강화하겠다는 발상부터가 문제다. 후쿠시마 사고 당시 가장 먼저 폭발한 1호기는 40년 된 노후원전이었다. 안전성 검사를 한지 한 달도 안 되어 쓰나미라는 천재지변에 의해 고장이 나면서 폭발을 했다. 나머지 2, 3, 4호기 역시 노후원전이었다. 안전성을 제고하려면 노후원전을 폐쇄하는 것이 선행 되어야 한다. 또 핵발전소가 가동되고 있는 현실에서 안전성을 보장하기 위해서는 발전 산업 관련 노동자와 노동조합이 참여하는 공공적 운영체제의 수립이 핵심적인데, 이 부분도 담겨있지 않다. 비리나 사고 은폐는 한수원이 시장형 공기업으로 전환된 것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 2001년 전력산업 구조개편 이후 한수원이 한전으로부터 분리, 시장형 공기업으로 전환되었다. 그로 인해 공기업이 주축인 핵 산업에도 수익성 위주의 경영이 이식되었고, 이명박 정부의 급격한 핵발전 확대수출 정책은 이러한 수익성 추구 경향을 극대화했다. 이 과정에서 두산중공업을 비롯한 건설플랜트 관련 민간 기업이 공사 수주 및 납품을 위한 부적절한 경쟁과 로비를 일삼게 된다. 비용을 절감하기 위해 납품단가를 낮추면서 불량 부품이 들어오고, 인건비를 줄이면서 안전한 운영도 위협받게 된다. 이러한 구조에서 공기업-정부관료-전문가-민간플랜트기업 간 카르텔이 형성된다. 극도로 폐쇄적인 운영구조는 비리가 연관된 커넥션을 만들고, 핵발전의 안전성을 위협한다. 따라서 안전성을 제고하기 위해서는 핵발전을 담당하는 주요 공기업들이 수익성상업성 위주의 운영에서 탈피해야 한다. 공공성과 안전을 중심으로 민주적 운영체제를 수립하고 안전성의 측면에서 충분한 인력을 충원하는 것이 필요하다. 공급확충에서 수요관리로? 2차 에기본 권고안은 수요관리를 중심으로 에너지 정책을 전환하는 것을 핵심으로 삼고 있다. 권고안은 과거 정책이 저렴한 가격의 공급을 달성했음에도 불구하고, 가격정책 간 정합성 부재, 특히 유류와 전력의 가격 역전으로 말미암아 지난 10여 년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최고 수준의 전기소비 증가율을 시현했다고 분석한다. 이를 해소하기 위해 전기 가격을 인상하고, 친환경적인 LNG나 서민 난방용 등유의 과세를 완화하는 대신 유연탄과 핵발전에 대한 과세를 강화할 계획이다. 이와 함께 누진제 등 전기요금 체제 개편도 권고하고 있다. 그동안 정부의 에너지 정책이 공급계획을 중심으로 이뤄진 것은 한국 자본주의 축적체계의 특성을 배경으로 한다. 한국은 에너지의 97%를 수입하면서도 에너지 다소비 산업 비중이 높은 산업구조를 가지고 있다. 1950년대 석탄을 개발하여 공업을 일으킨다는 경사생산전략은 석탄자급을 가능하게 했고, 1960년대 수출 주도 산업화 전략으로의 전환에 발맞춰 에너지 정책은 에너지를 값싸고 풍부하게 공급하는 것만을 목표로 했다. 1970년대 석유 위기는 석유 중심 에너지 체제의 불안전성을 확인시켜줬지만, 중화학 공업화로 인해 석유의존도는 더욱 증가한다. 이에 에너지 안보라는 관점에서 에너지 수급에 대한 국외의존도, 특히 중동 석유라는 특정 에너지원과 공급선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기 위한 정책이 도입된다. 한국의 에너지 안보 정책 역시 공급 제일주의적 에너지 개발정책에서 비롯한다. 1974년에 수립된 ‘탈석유’와 ‘석유 비축’을 골자로 하는 장기에너지종합대책이 세워졌지만, 1차 석유위기가 진정되고 중화학 공업화가 가속화되자 석유의존도는 다시 증가한다. 2차 석유위기 직후인 1979년 석유위기대응기본계획, 장기에너지종합대책 등을 마련하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핵발전소가 집중적으로 설립되기 시작한다. 이후 1980년대에는 에너지 중 전력 수요가 늘어나고, 전력원으로서 핵발전의 비중도 커지게 된다. 한편 1979년 에너지이용합리화법에 의해 에너지관리공단이 설립되고 처음으로 수요관리 정책이 도입된다. 그러나 수요관리 정책은 에너지 사용 자체를 줄이는 것보다 피크 부하를 분산시키는데 더 초점을 맞췄다. 이렇게 에너지 수요관리 정책은 석유위기 이후 도입되었지만 수출 주도 산업화를 뒷받침하기 위한 에너지 공급 정책의 위기관리 수단에 그쳤다. 핵 발전을 대폭 확대한 이명박 정부에서도 수요관리의 중요성은 부각되었는데, 저탄소녹색성장기본법은 에너지 정책의 기본 원칙으로 ‘에너지 가격의 합리화, 에너지의 절약, 에너지 이용효율 제고 등 에너지 수요관리를 강화’ 할 것을 밝히고 있다. 수요관리를 통해 에너지 소비를 줄이는 것은 탈핵과정에서 반드시 필요하다. 그러나 2차 에기본의 수요관리 계획이 그러한 맥락으로 해석될 여지는 없다. 정부는 20년간 80%나 전력 수요가 증가할 것으로 예측하고 있는데 이는 현재의 에너지 집약적 생산체제를 변화시킬 계획이 없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전체 에너지 소비에서 24.5% 정도(2010년 기준)만을 차지하는 ‘전력’ 수요증가 억제 계획만이 제시되어 있어 부족한 측면이 있다. 에너지 다소비 산업구조의 개편이나 에너지 효율 기술을 전면 도입하는 것과 같은 전반적인 에너지체제의 전환이나 혁신은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전기요금 인상과 에너지 민영화 또 다른 문제는 수요관리의 세부 계획이 전기요금 인상에만 치우쳐있다는 점이다. 그런데 낮게 책정되어 있는 산업용 전기요금에 대한 언급은 없어 전반적으로 전기요금이 오르면 주택용 전기요금의 부담이 더욱 커질 것이다. 한국의 전기 요금은 수출경쟁력을 명목으로 상대적으로 낮게 유지되어 왔다. 특히 산업용 전기요금은 주택용의 67% 수준에 불과, 주택용 전기요금으로 산업용 전기를 보조해주고 있었던 셈이다. 2001년 이후 산업용 전기요금이 유류비용보다 낮아서 에너지원이 유류에서 전기로 바뀌는 ‘전력화’ 추세가 나타났다. 게다가 지난 2007년부터 2011년까지 제조업 비중은 더 증가하고 있다. 이는 에너지 불평등을 심화시킨다. 기업은 특혜를 받는 반면, 민중은 에너지 빈곤으로 고통 받는다. 작년 한 해 동안 기업들이 원가 이하의 산업용 전기요금으로 얻은 이득만 2조 5,660억 원으로 추산된다. 기업들이 입어온 특혜는 값싼 요금만이 아니다. ‘산업체 조업조정’(휴가 분산)이라는 제도가 있다. 전력사용을 줄인다는 명목으로 기업이 공장 가동을 중지하면 막대한 보조금을 지급하는 제도이다. 작년 한 해 동안 정부가 수요관리를 위해 기업들에게 지원한 금액은 총 2,573억 원에 이른다. 반면 우리나라 전체 가구의 8%인 120만 가구는 가구소득의 10% 이상을 에너지 구매에 지출하는 에너지 빈곤층이다. 고소득층은 여름철 냉방을 위한 전력 소비가 많지만 저소득층은 겨울철 난방을 위한 소비가 많다. 전기요금 인상은 빈곤층의 겨울을 더욱 고달프게 만들 것이다. 에너지에 대한 민중의 기본권을 보장하는 측면에서의 접근이 필요하다. 2차 에기본 권고안의 또 다른 문제는 전력 민영화를 계속해서 추진할 계획을 담고 있다는 점이다. 정부가 에너지 밀도를 분산시키기 위해 제시한 분산형 전원 확대 계획의 실 내용은 민자발전회사 육성과 지원이다. 분산형 전원 확대 계획에서는 포스코 사례를 모범 사례로 제시하면서 기술개발, 보조금 지원을 검토하고 있다. 포스코는 민자발전 4대 메이저 회사 중 하나로, 민자발전회사 중 가장 높은 설비용량을 가지고 있다. 그동안 정부는 전력 거래 과정에서 특혜 지원을 통해 고수익을 보장해주고 있고, 그 비용은 결국 국민의 에너지 부담으로 돌아왔다. 분산형 전원 확대 계획은 제7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을 통해 그 세부내용이 확정될 예정이지만 민자발전 회사에 대한 특혜는 유지될 가능성이 크다. 수요관리 계획 역시 시장과 민간을 중심으로 추진하는데, 수요감축량을 발전소에서 생산한 전기처럼 사고팔 수 있는 시장을 형성하는 등 다양한 비즈니스 모델을 개발할 계획이다. 마지막으로 해외 자원 개발에서도 민간 투자를 활성화 하겠다면서 공기업은 리스크가 높고 장기투자가 필요한 분야를 중점 추진하고, 시장성이 큰 분야는 민간 중심으로 추진하겠다고 하고 있다. 이 역시 에너지 관련 기업들에게 특혜를 주고, 현재 에너지 체제가 가지고 있는 비효율적이고 불평등한 구조를 확대할 것이다. 한미원자력협정: 핵무기와 핵발전 한미원자력협정은 1973년 발효되어 2014년 만료될 예정이었으나 최근 2016년으로 만료시한을 연장했다. 한미원자력협정은 핵발전 연료의 이용에 관해 한국과 미국이 맺은 협정이다. 협정의 시초는 1956년이다. 아이젠하워가 ‘핵의 평화적 이용’에 대한 성명을 발표한 이후 미국은 1955년부터 1958년 사이에 세계 39개국과 원자력협정을 맺는다. 이는 핵 관련 기술을 제공하는 대가로 다른 나라의 핵산업을 감시하고 통제함으로써 핵과 관련된 주도권을 놓지 않고, 다른 나라의 핵무기 제조를 막겠다는 의도를 지닌 것이었다. 1956년 협정의 정식명칭은 “원자력의 비군사적 사용에 관한 대한민국 정부와 미합중국 정부 간의 협력을 위한 협정”이었다. 이것이 1973년 “원자력의 민간이용에 관한 대한민국 정부와 미합중국 정부 간의 협력을 위한 협정”으로 대체되어 지금까지 이어져오고 있다. 협정의 주요 쟁점은 핵연료 사이클 도입 여부 협정 개정 논의는 2010년부터 시작되었다. 한미 양국은 2008년 정상회담 공동선언에서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 분야에서 긴밀한 협력을 적극적으로 촉진하기로 합의”하면서 협력 원칙을 재확인하였고, 한미동맹에 있어서도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 분야에 있어서 긴밀히 협력”하기로 합의했다. 이러한 합의 속에서 한미원자력협정 개정 협상이 진행되었는데, 양국 간 이견차가 좁혀지지 않아 협정 만료시한을 2016년으로 2년 연장한 뒤 협상을 계속 이어가고 있다. 핵심적인 쟁점은 농축우라늄 생산 및 사용 후 핵연료 재처리의 허용 여부 다. 농축재처리 기술을 도입하면 핵폭탄의 원료를 만들 수 있기 때문에 미국의 핵 비확산 정책에 따라 금지되어 왔다. 한국은 원자로를 포함한 핵발전소 생산 기술은 보유하고 있지만 핵발전을 위한 원료인 농축우라늄은 수입하고 있다. 또한 매년 100톤 이상 발생하고 있는 사용후 핵연료를 핵발전소 내 저장시설 내에 임시처분하고 있다. 직접 처분할 것인지 재처리해서 다시 핵연료로 사용할 것인지 논의하고 있는 단계다. 농축재처리 기술을 확보하게 되면 핵연료 사이클 능력이 완성된다. 핵연료는 자연에서 채취한 천연 우라늄 광석을 화학적으로 처리가공하여 핵분열시키기 쉬운 우라늄235의 비율을 높이는 ‘농축’ 과정을 통해 만들어진다. 만들어진 핵연료는 3~4년 동안 핵분열 연쇄 반응을 일으키면서 핵발전에 사용된다. 이 과정에서 우라늄은 핵분열로 인해 다른 원소로 변한다. 핵분열 반응이 끝나도 사용후 핵연료는 다양한 방사성 물질을 포함하며 많은 방사선과 붕괴열을 내보낸다. 이 열은 발전 중에 내보내는 열의 7% 수준인데도 3톤의 물을 1초 만에 끓게 할 수 있다. 따라서 사용후 핵연료를 10년 이상 수조에 넣어 냉각한 뒤,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로 분류해 직접처분하거나 다시 핵연료로 사용하기 위해 재처리를 해야 한다. 재처리란 사용후 핵연료에 아직 남아있는 우라늄과 새롭게 생성된 플루토늄을 정제분리해 다시 핵연료로 만드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정상 농축우라늄보다 5배 이상 비용이 든다. 또한 이 때 분리된 순수한 플루토늄은 핵무기의 원료로 사용할 수 있다. 핵재처리를 하는 국가는 프랑스중국러시아영국인도 등 핵무기 보유 국가들이다. 일본만 예외적으로 핵무기를 보유하지 않으면서 재처리를 한다. 핵연료 사이클 도입, 어떻게 볼 것인가 핵연료 사이클 도입을 둘러싸고 다양한 입장이 공존한다. 핵주권론, 핵실용론, 반핵주기론, 탈핵론으로 분류해 볼 수 있다. 핵주권론은 핵연료 사이클 능력의 즉각적 도입을 주장한다. 여기에서도 미래 핵무장 혹은 잠재적 핵능력을 확보할 것을 주장하는 입장과 핵무장을 거부하지만 핵확산금지 조약의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을 위한 불가양의 권리”에 따라 조건 없는 도입을 주장하는 입장으로 나눠진다. 그러나 이것은 미국이 주도하는 핵 비확산 질서에 도전하는 것이므로 한미동맹의 견실한 파트너로서 핵 비확산 모범국이자 핵발전 수출국이 되고자 하는 현 정부의 입장에 어긋난다. 핵실용론은 핵연료 사이클 능력 확보를 위해서는 일정한 조건과 자격을 갖추어야 한다는 점에서 핵주권론과 구별된다. 실용적 관점에서 핵연료 구입을 위해 해외에 지불하는 4,000억 원의 비용을 아낄 수 있고, 향후 핵발전소가 더 건설될 때 안정적으로 핵연료를 확보하기 위해서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반핵주기론은 핵발전은 인정하지만 핵연료 사이클 도입은 반대하거나 먼 미래의 과제로 미루자는 입장이다. 그 근거로는 △ 한미동맹의 관점에서 미국의 비확산정책에 부합해야 한다는 점 △ 농축시장이 활성화되어 핵연료의 구입이 용이하고, 재처리는 경제성과 안정성이 충분히 확인되지 않았다는 점 △ 한국의 핵연료 사이클 도입이 핵무기 확산 가능성을 증가시킬 수 있다는 점 △ 북한 비핵화 요구에 장애를 초래하고, 농축재처리시설 보유를 금지한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을 위반하게 된다는 점 등이다. 정부는 핵실용론과 반핵주기론을 절충하는 기술적 해법을 제시하는데, 파이로 건식처리 및 소듐고속로 기술을 확보하면 핵확산성이 적으면서도 핵연료 사이클을 도입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핵무기 보유국의 재처리 방식은 습식처리로서 순수한 플루토늄이 생산되지만 파이로 건식처리는 습식방식과 달리 순수한 플루토늄이 분리되지 않는다. 따라서 핵확산성이 적다는 것이다. 그러나 미국은 이 방식도 핵확산성이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 한미 양국은 파이로 건식처리가 핵확산성이 실제로 적은지 공동 연구를 하기로 했다. 그러나 이 연구 역시 미국에서 금지하고 있는 민감 기술로 분류되어 실제 공동 연구가 가능할지 불투명한 상황이다. 다른 문제점도 있다. 건식처리된 핵연료는 소듐고속증식로에서만 사용할 수 있는데 이 소듐고속증식로는 매우 위험하다. 핵반응이 더욱 빨리 일어나기 때문에 물보다 더 냉각효과가 강한 액체 소듐을 사용하는데 이 소듐은 공기나 물과 닿으면 폭발한다. 냉각제가 누출되면 바로 폭발로 이어지는 것이다. 지금도 한국의 핵발전소는 냉각제 누출사고가 매년 발생한다. 이러한 위험성으로 인해서 소듐고속증식로를 도입한 미국일본에서는 운영을 중단한 상태다. 핵발전과 핵무기를 비판하는 관점에서는 건식처리 여부를 떠나 핵연료 사이클 도입을 원칙적으로 반대해야 한다. 핵연료 사이클 도입은 핵연료 생산 및 재처리 공정 사이클을 완성함으로써 핵발전소 수출을 확대하는 동시에 동아시아에서 핵무기 개발 연쇄를 낳을 수 있는 위험한 시도이기 때문이다. 북한이 핵무기 개발에 성공하고, 중국도 이미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는 상황이다. 일본은 재처리를 통해 플루토늄을 확보하고 있으므로 1-2년 안에 언제든 마음만 먹으면 핵무기 개발이 가능하다. 한국의 한미원자력협정 개정 시도는 각국의 핵경쟁을 부추길 것이다. 탈핵론의 관점 한편, 탈핵론의 관점에서는 사용후 핵연료 재처리는 위험하고 경제성도 떨어지며, 처리방법이 없는 사용후 핵연료를 더 이상 만들지 않기 위해서라도 핵발전은 중단되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사용후 핵연료를 처리하는 다른 방법은 직접처리, 즉 고준위핵폐기물로 폐기하는 것인데 방사선이 방출되지 않게 되기까지 10만 년 이상 보관해야 한다. 그러나 인류에게는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을 안전하게 보관할 만한 기술이 없다. 현재 어느 나라도 고준위핵폐기장을 건설하지 못했다. 핀란드가 최초로 건설 중인데, 경기도만한 크기의 천연암반에 지하 500~1000미터의 굴을 파고 이 안에 고준위핵폐기물을 저장하겠다는 구상이다. 이 역시 10만 년 이상 보관할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 한국은 핀란드와 같은 천연암반이 없기 때문에 핵발전소 내에 임시저장소를 늘리는 수밖에 없다. 임시저장소는 핵발전소 내에 핵연료를 냉각하기 위한 저장수조를 의미하는데 이 수조는 이미 포화상태이다. 월성 핵발전소의 경우 핵폐기물이 더 많이 나오는 중수로원자로이기 때문에 돔과 같은 건식저장소에 임시저장중이다. 저장수조가 포화된 뒤에 발전소 내에 돔을 만들어 건식저장을 할 수 있겠지만 길어도 수십 년 정도만 사용가능한 임시저장소를 10만 년 동안 운영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게다가 또 다른 사고에 노출될 가능성도 크다. 재처리도, 직접처리도 위험성과 한계를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사용후 핵연료 문제는 핵발전소의 지속 불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화장실 없는 집’과 같은 핵발전소. 해법은 역시나 탈핵 밖에 없다. 왜 한미원자력협정 개정에 매달릴까 농축재처리 기술의 도입은 협상 상대인 미국의 강력한 반대에 부딪혀 있다. 미국에서는 2009년 아랍에미리트와의 원자력협정에서 농축재처리 포기 약속을 확보하면서, 향후 다른 원자력협정에도 이를 적용하는 이른바 ‘골드 스탠다드’에 대한 요구가 높아진 상황이다. 프랑스, 러시아 등 기술과 원료를 공급할 수 있는 다른 핵강국들로 인해 미국의 주도력과 영향력이 위축되는 상황이라지만 한미동맹을 강화하고 있는 한국이 선택할 수 있는 옵션은 많지 않다. 그럼에도 왜 정부는 한미원자력협정 개정을 계속 시도하는 것일까. 아마도 재처리권 확보에 실패하더라도 개정 시도를 통해 얻을 것이 있다는 계산에서 나온 것으로 보인다. 북한 핵위협을 빌미로 한미동맹은 호전적 재편을 강화하고 있다. 지난 10월 열린 45차 한미연례안보협의회에서 한미동맹은 대북 선제 공격을 함의하는 ‘맞춤형 억제전략’을 공식화했다. 이 과정에서 한국은 좀 더 안정적이고 확대된 미국의 핵억제력을 요구하며 전작권 환수 시기 재연기를 주장하는 한편 미국은 한국의 MD 참여와 미국산 첨단무기 구입, 주한미군주둔비 분담금 증액 등을 요구하고 있다. 핵연료 재처리 허용을 포함한 한미원자력협정 개정 요구는 이를 둘러싼 협상에서 한국이 미국에게 내밀 수 있는 중요한 카드다. 미국이 요구하는 군비증강 비용 부담의 조건으로 핵연료 사이클을 완성할 수 있도록 해달라는 것인데, 재처리권을 확보하지 못하더라도 한국은 미국의 강력한 핵억제력 뿐만 아니라, 핵연료 사이클 도입 없이도 안정적인 핵발전소 수출이 가능하도록 국외 핵산업시장에서 양국의 협력강화를 요구할 수 있다. 문제는 어떤 결과로 귀결되든 핵 없는 세상을 향한 길과 정 반대라는 점이다. 이러한 현실을 고려해 볼 때, 한미원자력협정 비판은 농축재처리 기술 도입 반대로 머물러서는 안 된다. 한미원자력협정은 한미동맹의 호전적 재편을 위한 카드 중 하나라는 점에서 동아시아의 핵무장과 전쟁 위험을 높일 것이고, 생태와 평화를 위협할 것이기 때문이다. 한미원자력협정 비판은 핵 위험, 전쟁 위험을 높이는 한미동맹 비판과 연결되어야 한다. 나가며 이 글에서는 한국의 핵발전 확대가 에너지 체제와 그것을 규정하는 한국의 자본주의 축적체제와 연결되어 있음을 살핀 뒤 제2차 에기본의 쟁점을 검토하였다. 또 핵발전 확대가 한미동맹의 호전적 재편을 포함하는 국제 정치군사 정세와 긴밀히 연관된다는 사실을 한미원자력협정의 쟁점과 배경을 통해 살펴보았다. 정부가 이렇게 핵발전을 확대하기 위한 시도를 끊임없이 밀어붙이고 있지만, 그 반대편에서는 후쿠시마 사태로 인해 핵발전의 위험성이 대중적으로 알려지고 있고, 밀양 송전탑 반대 투쟁과 노후원전 수명연장 반대 투쟁 등으로 핵발전의 구조적 취약성이 드러나고 있기도 하다. 핵발전의 축소냐 확대냐의 기로에서, 이 글이 핵 없는 세계를 향한 민중의 투쟁을 확대 강화하는 데 작은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 및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 체결 반대 공동 기자회견문 평화와 주권 위협하는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 한일군사협정 반대한다! 한일 국방차관대담이 2013 서울안보대화(SDD)의 일환으로 오늘(13일) 오후 열린다. 일본측 제안으로 열리는 이번 회담에서 일본은 집단적 자위권 행사 추진 경위를 설명하면서 한국측의 이해를 구하고,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 체결을 목표로 협의 진전을 도모할 것이라고 밝혔다. 일본은 전쟁 및 무력행사 포기(평화헌법 9조 1항)와 이에 따른 교전권 및 군대 보유 금지(2항)를 규정한 평화헌법을 갖고 있다. 이는 전후 국제사회가 전범국 일본에 대한 책임을 물어 또 다시 전쟁을 일으키지 못하도록 ‘보통국가’ 지위를 박탈한 것이다. 그러나 일본은 미국의 패권적 요구와 자국의 군국주의 야망에 따라 평화헌법 9조를 점차 무력화하면서 군사대국화의 길로 치닫고 있다. 미일양국은 ‘신미일방위협력지침’(1997)에 합의하여 평시, 일본 유사시, 주변 유사시 일본이 미군을 지원하는 방안을 마련하였다. 이후 일본은 ‘주변사태법’(1999)과 ‘유사 입법’(2003), '물품 $용역상호제공협정' 개정(2004), ‘미군활동원활화법’(2004) 등을 통해 미군에 대한 전쟁지원은 물론 자위대에 대한 무력공격이 발생할 경우 교전권 행사를 가능하게 하였다. 일본은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이제 일본 본토나 자위대가 직접적으로 공격받지 않은 경우에도 동맹국 등이 공격을 받으면 이를 자신에 대한 공격으로 간주하여 상대를 공격할 수 있는 집단적 자위권 추진을 본격화하고 있다. 이렇게 되면 자위대는 단순히 미군에 대한 병참지원이나 병참지원 시 적의 무력공격을 방어하는 차원을 넘어서서 모든 작전 지역과 영역에서 미일연합이나 개별적으로 무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된다.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 행사의 1차적 대상이 북한이 되리라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일본 자위대는 일본 본토나 자위대에 대한 직접적인 무력공격이 없어도 미군에 대한 공격이 있으면 북한군과 북한 영토를 공격할 수 있으며, 한반도 유사 시 미군 지원을 명분으로 남한으로 들어올 수도 있다. 자위대는 자위대법(100조 8항)에 따라 한반도 유사 시 남한에 들어와 자국민에 대한 소개작전을 벌이도록 되어 있다. 어떤 경우든 자위대가 한반도에 진입할 지를 결정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한국군의 작전통제권을 행사하는 미군이다. 미국은 자국의 피해를 줄이고 전력을 보완할 수 있는, 그것도 법으로 뒷받침된, 자위대의 한반도 진출을 반대할 이유가 없을 것이다. 이렇듯 일본이 집단적 자위권을 행사하게 되면 한반도 유사 시 자위대의 한반도 재진출(침략)은 막기 어렵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 박근혜 정부가 일본을 ‘보통국가’로 인정하고 집단적 자위권을 용인하는 태도를 보이는 것은 아주 심각한 문제다. 김장수 청와대 외교안보실장은 지난 달 미국 방문 중에 “집단적 자위권은 유엔 헌장에 나와 있는 보통국가의 권리 중 하나”라고 밝혔다. 김규현 외교부 1차관은 최근 국회에서 “우리가 유효하게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 추진을 제어할 수 있는 방안이 없다”고 주장했다. 이와 관련하여 ‘신미일방위협력지침’(1997)이 논란이 되었을 당시 김영삼 정부는 “우리의 주권과 주권적 권리 및 한반도 평화, 안전에 영향을 미치는 활동은 한미·한일 간 긴밀한 협의와 합의를 통해 추진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일본을 ‘보통국가’로 인정하지 않은 것은 물론 일본 자위대의 한반도 평화 위협에 대한 차단 의지를 분명히 밝힌 것이다. 박근혜 정부는 이런 입장을 모두 포기했다는 점에서 김영삼 정부에 비해 심각하게 후퇴한 것이다. 뿐만 아니라 박근혜 정부가 이명박 정부에서 밀실 추진하려고 했던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이나 한일물품 $용역상호제공협정 등을 체결한다면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 행사에 날개를 달아주게 된다.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은 ‘킬 체인(Kill Chain)’을 포함한 대북 선제공격작전과 MD를 요체로 한 한미일 삼각 군사동맹을 실현시켜 주는 고리다. 한일물품 $용역상호제공협정은 한국군과 자위대 간 평시, 유사시 병참 지원을 보장한다. 따라서 이 두 협정을 체결하는 것은 한반도와 동북아에서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보다 전면적으로 뒷받침해 주는 것이자 실질적인 한일동맹, 나아가 한미일 삼각 군사동맹을 구축하게 되는 것이다. 이는 한국군이 정보, 작전, 군수 분야 등에서 미군뿐 아니라 자위대의 하위 체계로 편제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처럼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 행사와 한일군사협정은 일본의 군사대국화의 길을 활짝 열어 한반도 및 동북아의 평화와 안정을 심각하게 위협하게 된다. 이에 우리는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과 한일군사협정을 단호히 반대하며 박근혜 정부가 이에 대한 반대 입장을 명확히 밝힐 것을 촉구한다. 2013. 11. 13. 21세기한국대학생연합, 기독교사회선교연대회의, 노동인권회관, 독도수호대, 민가협양심수후원회, 민족민주열사희생자추모(기념)단체연대회의, 민족문제연구소, 민족자주평화통일중앙회의, 민주노동자전국회의, 민주민생평화통일주권연대,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미군문제연구위원회, 민주주의자주통일대학생협의회, 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 (사)역사복원국민운동본부, 사월혁명회, 사회진보연대, 서울통일연대, 새날희망연대, 새물약사회, 안중근의사기념사업회, 우리마당, 우리민족연방제통일추진회의, 예수살기, 자주통일과민주주의를위한코리아연대, 전국농민회총연맹,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 전국여성연대, 전쟁반대평화실현국민행동, 조국통일범민족연합남측본부, 참여연대, 평화와통일을여는사람들, 통일광장, 통일의길, 평화재향군인회, 한국진보연대, 한국청년연대
더 많은, 더 넓은 민주노조를 만들자 11월 10일 전국 노동자대회에서 배포된 유인물입니다. 첨부파일을 다운받으세요. [사회화와 노동 특별호 9호] 1면 - 탄압을 넘어 새로운 87년을 기획할때 : 더 많은, 더 넓은 민주노조를 만들자 - 노동자가 '민주주의의 기본원칙'을 다시 세우자 2면 - 지금 전교조 투쟁에 필요한 것은 - 시간제 일자리 확산에 맞서 싸우자 - 휴일근로 연장근로 포함을 빌미로 근기법 개악? 3면 - 비정규직 투쟁에 연대하자 (인천공항 비정규직 파업투쟁, 학교비정규직 파업투쟁) - 원격의료가 아니라 공공의료를 강화하라 - 맞춤형 억제전략, 한반도 평화를 보장할까? 4면 - 삼성전자의 추악한 진실 : 노동자 착취, 소비자 우롱, 재벌만 살찌우다 - 2013년의 전태일 - 삼성공화국을 바꾸기 위해 힘을 집중해야 한다
45차 한미연례안보협의회(SCM) 결과 분석 지난 10월 2일, 한미동맹 60주년을 맞아 서울에서 45차 한미연례안보협의회(SCM)가 개최되었다. 한미 국방장관은 지난 60년간의 한미동맹을 ‘가장 강력한 동맹’으로 평가하며 공동성명을 채택했다. 공동성명에서 가장 주목할 부분은 ‘맞춤형 억제전략’을 공식화하고 전시 작전통제권 환수 시점을 재검토하겠다고 합의한 것이다. [%=사진1%] 군사적 긴장 고조시키는 대북 맞춤형 억제전략 작년 44차 SCM에서 한미 양국은 유사시 북한의 대량살상무기에 대한 억제수단을 유형별로 구체화하는 ‘맞춤형 억제전략’의 도입에 합의했다. 이번 45차 SCM에서 ‘미합중국은 핵우산, 한미 양국의 재래식 타격능력, 미사일방어 능력을 포함한 모든 범주의 군사능력을 운용하여 대한민국에 확장억제를 제공하고 강화’하기로 하였다. 이러한 한미동맹의 맞춤형 억제전략 중에서 한국군이 동원하는 전력은 북한 탄도미사일 위협에 대해 발사 이전에 탐지-식별-결심-타격할 수 있는 ‘킬 체인’(Kill-chain)과 ‘한국형 미사일방어체계’(KAMD)다. 이는 각각 북한의 핵·미사일을 발사 전과 발사 후 요격하는 시스템이다. 맞춤형 억제전략은 종전의 핵우산이라는 추상적 개념을 더욱 구체화한 것이다. 기존의 핵우산 개념이 적국의 핵위협으로부터 동맹국을 보호하기 위해 미국이 핵 억제력을 제공한다는 일반적인 개념이었다면, 맞춤형 억제전략은 북한의 군사력과 한반도의 구체적 상황을 고려한 억제력을 제공한다는 것이다. 이 전략은 북핵 위협 상황을 ‘위협-사용임박-사용’의 3단계로 나누고, 임박 단계에서는 한국이 북한을 선제 타격·제거할 수 있도록 명시하고 있다. 이는 전·평시 북한의 핵과 대량살상무기 사용 위협부터 실제 사용까지의 모든 과정을 통제하고 관리할 수 있도록 한미동맹의 군사적 우위를 확고히 하려는 것이다. 나아가 이는 미국의 미사일방어(MD) 체계 편입을 위한 사전단계로 볼 수 있다. 헤이글 미 국방장관은 이번 SCM 기자회견에서 한국과 미국 미사일 방어체계간 ‘상호 운용성’이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북한에서 발사된 미사일을 요격하려면 관련국인 한·미·일이 미사일의 위치와 속도, 궤적 등에 대한 정보를 실시간으로 파악·공유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MD는 발사되기 직전, 그리고 발사 직후 몇 분 안에 미사일을 탐지·격추하는 시스템이기 때문에 실시간 정보 공유가 매우 중요하다. 이는 단순히 북한에 대한 핵억지력만을 위한 것은 아니다. 미국이 지속적으로 추진하는 MD 체계 자체의 완성을 위해서도 이러한 정보 공유 및 상호운용성 증대는 반드시 필요하다. 미국은 북한의 핵을 빌미로 잠재적 적국인 중국을 염두에 둔 MD 체계의 완성까지 노리고 있는 것이다. MD 체계는 자국에 어떠한 피해도 남기지 않고 핵전쟁을 승리로 이끌 수 있다는 개념을 내포하며, 상대방에 대한 선제공격의 가능성을 개방한다는 점에서 위험천만한 전략이다. 전작권 환수를 둘러싼 한-미 이해관계 이번 SCM의 또 다른 쟁점은 전시 작전통제권 환수 시점이었다. 지난 2010년 한미 정상은 전작권 전환 시점을 당초 2012년 4월 17일에서 2015년 12월 1일로 연기하기로 합의했다. 하지만 박근혜 정부는 최근 북한의 3차 핵실험 등을 근거로 북한의 핵위협이 더욱 커졌다고 보고 있다. 따라서 고조된 한반도 긴장 상황과 한국의 지휘 체계, 무기 보유 상황 등 전반적 준비 미비를 이유로 전작권 환수 시점을 재연기 할 것을 요청하고 있다. 이에 대해 미국은 신중한 입장이다. 최근 미국은 정부 부채한도와 관련하여 여야간 의견차를 좁히지 못하면서 연방정부 업무가 부분적으로 정지되는 등 재정 문제가 심각한 상황이다. 이에 따라 국방비의 대폭 삭감이 불가피하다. 또한 미국은 2017년까지 주한미군(미 8군) 전력에 대한 전략적 유연성을 완전히 확보한다는 계획을 추진 중이다. 전략적 유연성은 해외주둔미군재배치검토(GPR) 계획에 따라 주둔 미군을 기동타격대 성격으로 전환, 기존의 붙박이 주둔군의 형태가 아니라 특정 지역을 무력으로 필요한 시기에 타격할 수 있는 미군의 새로운 운용 형태를 지칭한다. 이는 미국의 헤게모니가 위협받는 곳에서 언제든 ‘선제공격’ 할 수 있다는 작전 원리를 담고 있다. 이제 미국은 헤게모니 유지를 위해 통제·관리가 필요한 곳에 집중 개입하기 위한 유연성 확보를 중요하게 여긴다. 주한미군의 경우에도 한국의 안보와 북한의 위협을 차단하기 위해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필요한 경우 전 세계 어디든 파견될 수 있도록 유연성을 확보하는 것이 핵심이며, 한국군에 대한 전작권 환수는 이러한 유연성 확보의 일환이라고 볼 수 있다. 향후 한미 양국은 서로의 이해관계를 조정하면서 전작권 환수 시기를 확정할 것이다. 한국은 북한 핵위협의 증대를 이유로 좀 더 안정적이고 확대된 미국의 핵억제력을 요구하며 전작권 환수 시기 재연기를 주장할 것이다. 또한 한국의 독자적 핵무장을 암묵적으로 전제한 사용 후 핵연료 재처리 허용을 포함한 한미원자력협정 개정 등을 요구할 것이다. 미국은 지속적으로 한국 정부에 요구해왔던 MD 참여와 미국산 첨단무기 구입, 주한미군주둔비 분담금 증액 등을 재연기의 조건으로 제시할 것이다. 전작권 환수는 ‘자주국방론자’들, 그리고 민주당과 진보진영 일부에서 주장하는 것처럼 미국에 종속된 한국의 군사력 운용 통제권을 일정 부분 확보한다는 측면에서 긍정적일 수 있다. 하지만 앞서 확인한대로 전작권 환수가 전략적 유연성이라는 미국 군사전략의 일환으로 추진되는 것이고, 그에 조응하는 자주국방론이 실상 한미동맹의 강화를 전제하는 것임을 감안한다면 전작권을 조기에 환수하라는 것 자체가 평화운동의 요구가 될 수는 없을 것이다. 게다가 현재 한미 양국간 현안을 고려한다면 전작권 환수는 양국간 이해관계를 조정하기 위한 하나의 수단이 될 수 있다. 오히려 전작권 환수 시점 재검토를 계기로 한미동맹의 호전적 재편이 더욱 탄력을 받을 우려가 있는 것이다. 따라서 지금 평화운동은 단순히 전작권을 예정대로 환수하라고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한미동맹의 호전적 재편에 대해 일관된 비판의 목소리를 내야 한다. 한미동맹의 호전적 재편에 맞서 싸우자 이처럼 한미 양국은 북한 핵 위협을 근거로 양국의 동맹을 강화하고 있다. 미국의 MD 체계 편입을 예고하는 맞춤형 억제전략은 실상 북한에 대한 선제핵공격을 암시한 것으로, 한반도와 동아시아의 군사적 긴장을 한층 고조시킬 것이다. 따라서 한반도와 동아시아의 평화와 비핵지대화를 달성하기 위해 한미동맹의 호전성을 제어해야 한다. 미국의 MD 편입, 미국산 첨단무기 구입, 주한미군주둔비 분담금 증액 요구에 반대하는 투쟁을 펼치자. 또 킬체인과 한국형미사일방어체계(KAMD)와 같은 대북 선제공격 전략을 비판하고 한국의 독자적 핵무장을 함의하는 한미원자력협정 개정 요구에 반대의 목소리를 높이자. 한반도 평화를 위한 사회운동의 노력이 절실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