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 프랑스와 네덜란드에서 유럽연합헌법조약안이 부결되다1)
지난 5월 29일 프랑스에서 유럽연합(이하 EU) 헌법 조약의 비준 여부를 묻는 국민투표가 시행됐고 그 결과 54.9%의 반대표가 나왔다. 사흘 뒤인 6월 1일 네덜란드에서도 61.6%의 반대표가 쏟아져 나왔다. 이로써 25개 가입국 모두에서 비준되어야만 효력이 발생하는 유럽헌법 조약은, 다른 나라의 찬반 여부에 관계없이 그 미래가 극히 불투명하게 됐다.
국민투표에 관한 사실관계를 조금 더 살펴보자. 우선 프랑스와 네덜란드는 각각 70%와 63%라는 전례 없는 투표율을 기록했다. 프랑스의 경우 이는 최근 10년 사이 가장 높은 투표율임과 동시에 1958년 제 5공화국 출범 이래 가장 높은 반대율이다.2) 2002년에 실시된 총선 투표율이 64%였다는 점을 고려할 때, 국내 문제가 아닌 유럽연합의, 그것도 '헌법' 문제를 다룬 투표율이 이렇게 높았다는 점은 그 자체로 주목할 가치가 있다. 우리가 한번쯤 이름을 들어봤을 지식인들이 제3자가 아닌 당사자로서 논쟁에 뛰어들었다. 프랑스 민주주의의 상징 중 하나로 자주 거론되는 노천카페에서는, 정치에 극히 무관심하다고 치부되었던 청년들이 딱딱한 헌법 조항을 놓고 정치토론을 벌였다. 모든 단체에서 앞 다투어 입장을 제출했으며, 개인 블로그에서 조차 헌법조약에 관한 토론이 흘러넘쳤다. 실로 '말의 폭발'이 벌어진 것이다.
이 같은 정치적 능동화와 함께 주목할 만한 점은, 이번 투표 결과가 갖는 '국론분열적', 결국 '계급갈등적' 성격이다. 네덜란드의 경우 교육 수준으로 볼 때 '낮은' 교육수준 시민들의 71%, '중간' 교육수준 시민들의 64%가 반대표를 던졌고, 반면 '높은' 교육수준의 시민들의 반대표는 52%에 그쳤다. 반면 헤임스떼더(Heemstede)와 블로멘달(Bloemendaal) 같은 부유한 비지(飛地, enclave)의 경우, 찬성표가 각각 57%와 61%로 반대표에 우세를 점했다. 프랑스의 경우 생산직 노동자의 79%, 실업노동자의 71%, 청년들의 66% 이상이 반대표를 던졌으며, 마르세이유의 가장 가난한 지역과 노르파드칼레(Nord-pas de Calais)의 광산지대에서는 반대율이 각각 78%와 84%에 이르렀다. 월소득 1,500유로3) 이하 가구의 경우 66%가 조약에 반대했다. 반면 자산 가격이 급등한 파리 중심부 아롱디스망(arrondissements, 구)에서는 찬성률이 66%였다. 월소득 4,500유로 이상 가구에서는 74%가 찬성표를 던졌으며, 네이(Neuilly) 지역의 찬성률은 82.5%까지 치솟았다.
이 같은 상황은 스스로를 대중들의 '대표자'로 자임해 온 지배엘리트들의 정당성과 대표성, 결국 그들의 존재 자체의 위기로 이어졌다. 이 같은 현상은 우파나 중도파뿐만 아니라, 좌파에서도 동일하게 나타난다. 네덜란드에서는 공식적으로 헌법조약 찬성 입장을 보인 노동당 지도부에 반해서, 노동당 성향 유권자 58%가 반대표를 던졌다. 프랑스의 경우는 사회당의 지도부 자체가 분열을 일으켰으며, 결국 사회당 지지자의 56%가 반대표를 던졌다. 이러한 아래로부터의 반란은 지배엘리트들을 일대 패닉상태로 몰아넣었다.
사실 2005년 2월 28일 베르사이유에서 찬성운동이 시작될 때까지만 해도 조약 비준은 성공할 것처럼 보였다. (페리 앤더슨이 '감언(甘言)연합'(union sucr e)이라 부른) 찬성 운동 쪽에는 공화국의 대통령을 정점으로, 집권당인 인민운동연합(UMP)과 사회당, 『피가로』, 『렉스프레스』, 『르 몽드』, 『리베라시옹』, 『누벨 옵세르바퇴르』를 위시한 대다수 언론 그리고 뉴스해설자와 토크쇼 사회자, 영화배우, 축구선수 등의 명사들이 망라되어 있었다. 심지어 스페인 총리, 폴란드 대통령, 독일 수상 등이 헌법조약 찬성을 호소하기 위해 직접 프랑스를 방문했으며, 정부는 모든 시민들에게 헌법조약에 관한 통지서를 발송했다. 또 하버마스나 권터 그라스 등 세계적인 명성을 지닌 지식인들이 찬성투표를 하나의 도덕적 의무로 역설하는 기고문을 연일 언론에 게재했다. 이렇듯 거의 모든 미디어와 국가장치가 찬성운동에 동원됐는데도 반대여론이 치솟았다. 다급해진 지배엘리트들은 이때부터 대중들을 비난하고 협박함으로써 대중들의 '대표자'라는 스스로의 정당성의 기초를 파괴하기 시작했다. 미디어는 반대를 외치는 대중들에게 외국인혐오증, 인종주의, 반-터키주의, 반-폴란드주의, 반-유럽주의, 반-지성주의 등의 비난을 쏟아냈다. 심지어 대중들에게 '검은 염소'(black sheep, 암적인 존재), '조련된 원숭이', '뱀'이라는 모욕적 언사조차 서슴지 않았다. 네덜란드에서는 반대여론이 높아지자 총리가 아우슈비츠의 유령을 언급하기까지 했다. 이런 상황에서 반대가 승리한 것이다!
이는 저 숨 막힐 듯한 신자유주의적 '합의'가 붕괴하고 '갈등'이 다시 전경에 나옴으로써, '정치'가 부활했음을 의미한다. 4)이 같은 상황은 많은 사람들을 흥분케 할 만 하다. 하지만 지금 시작된 것은 '과정'으로서 정치일 뿐, 그 결과가 무엇인지는 아직 전혀 결정되지 않았다. 신자유주의 지배엘리트들은 아직 미디어와 국가, 유럽연합이라는 거대한 물질적 장치를 장악하고 있다. 신자유주의적 헤게모니의 붕괴는 대안세계화운동 뿐만 아니라 르펜으로 대표되는 인종주의 극우파가 운신할 수 있는 폭 역시 열어 주었다. 실제로 반대투표자의 35%가 반대의 주된 이유로 터키의 EU 가입 문제를 들었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대안세계화 운동 진영은 여전히 강력한 두 괴물의 위협을 물리치고 '또 다른 유럽'(Another Europe), 나아가 '또 다른 세계'를 구성해 내는 힘든 싸움 한 가운데 있고 '승리'의 전조는 아직 희미하기만 하다.
현재 유럽이 겪고 있는 진통은 유럽만의 문제가 아닌 세계사적 함의를 갖는다. 주지하다시피 (금융)세계화는 무정부적인 과정이기는커녕, 자신의 요구를 정언명령으로 강제할 수 있는 각종 제도적 장치의 구축을 동반하고, 이 제도적 장치의 핵심 요소 중 하나가 각종 지역블록이다. 이는 전통적 정치형태의 위기를 초래하고 좌와 우 모두에게 새로운 정치형태에 대한 모색이라는 난문을 안겨준다. 헌법조약안을 둘러싼 갈등은 바로 이 같은 상황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 바, (금융)세계화로 인해 정치적 조건의 근본적 변화를 겪고 있는 모든 대중들에게 유럽의 현 상황이 남의 일이 아닌 까닭이다. 물론 아시아는 그 지정학적 조건상 유럽과는 여러 모로 다른 궤적을 그릴 것이다. 그러나 일국적 주권을 뛰어넘는 (준)제도적 제약이 구축되면서 개별 국가만을 투쟁의 대상으로 삼는 대중운동들이 커다란 곤경에 몰리게 된다는 점(우리는 이미 WTO 쌀협상과 IMF 구조조정을 통해 이 곤경의 의미를 살로 체험했다), 이 과정에서 대중운동들이 일대 분열을 겪게 된다는 점은 정확히 동일하다.5) 게다가 현재의 유럽통합이 '분단'된 동-서 유럽의 '통일' 과정에서 발생하는 모순과 갈등을 극적으로 드러내 준다는 점에서, 지구상 마지막 분단국가이며 통일 문제를 우회할 수 없는 우리에게 그 의의는 더욱 각별하다 할 것이다. 우리가 EU헌법조약의 출현을 전후한 유럽의 논쟁 및 그 안에서 대안세계화 운동의 움직임을 주목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6)
유럽연합헌법조약안: 무엇이 쟁점인가?7)
이번 논쟁의 직접적 대상은 EU '헌법'(constitution)8)이다. 이는 즉각 현재 실존하지 않는 정치체를 '구성'(constitution)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가 하는 쟁점을 불러들인다. 이 같은 쟁점의 '형식'은 논쟁의 진행을 크게 규정했다. 무언가를 '기초'짓는 것이 문제로 나선 한에서, 한편으로 과거의 기초에 대한 평가, 다른 편으로 새로운 사회의 기초에 대한 질문이 제기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EU 헌법안의 내용 자체는 1991년 마스트리히트 이후의 조약들과 별로 다르지 않았음에도 이렇게 논의가 격렬했던 것은 '헌법'이라는 형식이 논쟁을 격화시켰음을 방증한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유의할 점이 있다. 즉 문제가 된 헌법은 '유럽연합'의 헌법이라는 점, 즉 근대적인 민족국가와 다른 형태의 정치체를 구성하는 것이 핵심 쟁점이었다는 점이다. 그러므로 이번 헌법조약 논쟁은 지난 수백 년을 지배한 이른바 '근대성'(modernity)이라는 문제가 학계 등 한정적인 영역을 넘어 대중들에게 공적으로 제기된 최초의 계기인 셈이다. 하지만 이는 역설적으로 그동안의 (탈)근대성 논쟁과 대중들의 괴리가 만천하에 드러난 계기이기도 했는데, 그간 근대성/탈근대성의 이분법을 적극적으로 구축하고 이를 이용해 자신의 이론을 펼치던 대표적 논자들이 이번 투표에서 다름 아닌 대중들에 의해 쓰디쓴 정치적 패배를 맛봤기 때문이다.9)
이렇게 볼 때 이번 헌법조약안 부결 사태는 기존의 다소 형이상학적인 (탈)근대성 논쟁을 상대화하거나, 최소한 '대중운동'이나 '제도' 등의 구체적 현실에 의해 규정되는 (탈)근대성 논쟁의 새로운 '국면'을 열어젖힐 것이다. 이는 한국의 논쟁 지형과도 무관하지 않다. 한국에서도 91년 이후 (탈)근대성 논쟁이 주로 사회주의 청산의 맥락에서 급속히 확산되면서 근대(성)에 대한 보수적 옹호와 탈근대(성)에 대한 초자유주의적(libertarian) 예찬이라는 불모의 대당이 만들어졌고, 이것이 진보이론의 혁신을 지체시키는 가장 큰 지적 장애물 중 하나로 작용해 왔다. 따라서 EU 헌법조약 논쟁에 대한 검토가 (탈)근대성 논쟁의 새로운 국면을 여는 특권적 계기로 작용할 수 있다면, 이는 말의 강한 의미에서 '직접적으로' 우리의 사고에 해방적 효과를 생산할 것으로 기대할 수 있다.
이 같은 상황을 염두에 두고 아래에서는 '인민주권', (유럽적) '동일성', '기본권', '지역적 세계주의'라는 네 가지 쟁점을 검토해 보고자 한다.
쟁점1: '인민주권'10)
2차 세계대전 직후부터 시작된 유럽통합 기획의 중심은 경제통합이었다. '정치적 유럽'은 별다른 관심사가 아니거나 다른 실용적 조치를 통해 회피해 왔던 난문이었다. 그렇지만 경제통합이 화폐통합 수준으로 발전하면서 정치적 통합의 문제를 더 이상 덮어둘 수 없었다. 대내적·대외적으로 통합화폐의 안정성을 보장하기 위해서는 일정한 책임성을 갖는 정치적 연합체가 필수적이었기 때문이다. 나아가 유고 내전 이후 지속적으로 요청되어 왔고, 유럽적 동일성을 형성할 수 있는 핵심적 수단으로 제기된 공통의 외교·안보정책을 수행하기 위해서도 정치적 통합이 필요했다.11)
그런데 유럽을 '정치체' 따라서 하나의 '주권형태'로 사고하는 즉시, 역사적으로 정치체와 관련되었던 문제들과 이론들이 전경으로 끌려나오게 된다. 이 중에서 가장 기본을 이루는 질문은 유럽연합이라는 정치체의 '정당성'(legitimacy)의 기초가 무엇인가 하는 점이다. 이에 대한 근대의 전형적 답변은 '인민주권'이다. 인민으로부터 정당성이 나온다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극히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가 나오게 된다. 즉 (문제가 되는 것은 '유럽연합'이므로) '유럽의 인민'이란 존재하는가? 유럽은 과연 '우리'라고 할 수 있을 만한 통일성을 갖고 있는가?
이 같은 다소 추상적인 질문은 '권력 조직'(organisation des pouvoirs) 혹은 '권력 분립'이라는 구체적 문제와 연결된다. '인민주권'이란 인민대중들의 민주적 의사가 관철될 수 있는 제도를 어떻게 구축할 것인가 하는 현실적 문제와 분리될 수 없기 때문이다. 이같은 질문은 유럽통합 기획이 시작된 이래 계속되어 왔고 이번 에 '헌법'이라는 형태로 확립하고자 했던 권력 구조의 비민주성을 갈등적으로 쟁점화한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지적한 것처럼, 이번 헌법조약안이 제시하는 권력의 조직은 부르주아적인 삼권분립에도 훨씬 미달한다. 부르주아 민족국가 안에서 전통적으로 의회의 고유권한으로 여겨졌던 입법권은 초국가적인 집행위원회(Commission)에 배타적으로 귀속된다. 독점적 발의권이라는 막강한 권력을 지닌 집행위원회의 구성은 회원국 정부 간의 협상에 의해 결정될 뿐, 유럽 시민들에게는 유럽연합 행정부의 구성을 결정할 수 있는 어떤 권리도 없다. 결국 대부분의 입법 절차를 이사회 즉 회원국 정부가 장악하는 셈인데, 이는 현재의 헌법조약안이 선출된 대표자들로부터 어떠한 간섭도 받지 않은 채 법령을 입안한다는 전근대적 또는 봉건적 원리로 되돌아갔음을 폭로한다.
이러한 '전근대성'이나 '봉건성'은 단순한 수사가 아니라 말 그대로 하나의 '원리'로 이해되어야 한다. 이는 현재의 헌법조약이 유럽의회에 대해 부여하는 권한을 보면 잘 알 수 있다. 헌법 알다시피 이 헌법은 '제헌의회'를 통해 만들어지지 않았다 에 의해 공동-결정의 권력이 부여된 곳에 한해서 입법의 '개정'만을 제안할 수 있고, 그나마도 그 수용 여부는 집행위원회에 달려 있는 이 '자문기관'은, 권력 또는 결정의 심급 앞에서 피통치자들의 불평과 탄원과 진정 따위를 내세우는 앙시엥 레짐 시기 저 유명한 '삼부회'의 기능과 정확히 동일하다. 여기서 우리는 '대표'(representation, 대의) 개념에 역사가 있다는, 따라서 최소한 두 개의 대표 개념이 있다는 사실을 재발견한다.12) 이미 다른 원리 왕권신수설 에 의해 구성된 '주권'적 권력 앞에서 '자문'이나 '탄원' 기능을 하는 것으로서 대표, 그리고 주권 자체를 구성하는 실천이자 인민의 대표자를 대중들 스스로 선출하고 통제하는 것으로서 또 다른 대표 개념 말이다. 이 같은 단절을 생산한 사건은 물론 프랑스 혁명인 바, 현재 헌법조약안을 기초 짓는 원리는 20세기적인 의미에서가 아니라 18세기적인 의미에서 봤을 때 '반혁명'적이다. 테르미도르 반동도 이보다는 진보적이다!
혹자는 부르주아 삼권분립의 나머지 한 축으로서 '사법부'를 통해, 결국 원리로서 '법치주의'를 통해 막강한 행정 권력을 제어할 수 있다고 주장할는지도 모른다. 별 가망은 없어 보이지만, 백번 양보해서 그럴 수 있다 치자. 그러나 이것이 민주주의와 무슨 관계가 있는가? 법치주의가 민주주의와 양립할 수 있는 것은 오직 법을 만드는 입법자가 인민인 한에서, 법적 권력과 정당성의 원천이 인민주권인 한에서다. 그렇지 않은 법치주의는 역사의 모든 시기에 반민주적이었고, 관료주의적·엘리트주의적이었다. 유럽연합의 반민주성은 법치주의 혹은 법에 의한 행정 권력의 제어 예컨대 '마그나 카르타(대헌장)'13) 같은 것 에 의해 완화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악화될 뿐이다. 이는 대중들의 역량이 군주와 귀족 간의 갈등에 수동적으로 전유되어 '예속이 자기들의 자유가 되기라도 하듯 그것을 위해 투쟁'하는 18세기 이전의 이데올로기적·제도적 조건 위에서 투쟁을 시작해야 한다는 말과 다르지 않다. 지난 수십 년간 이미 이런 식으로 조건이 변화해 왔음은 객관적 현실이고, 이를 부인할 도리는 없다. 그러나 이를 대중들 스스로의 손으로 선택하고 정당화하는 것은 전혀 다른 의미를 갖는다. 인민주권을 상징적으로까지 완전히 파괴하는 조치를 찬성하라고 어떻게 인민들을 설득한단 말인가?
하지만 권력 조직의 문제는 위에서 살펴 본 삼권분립에 국한되지 않는다. 사실 위의 문제는 약간의 양식을 가진 자유주의자의 관점에서도 충분히 비판할 수 있는 반면, 이하의 문제는 근대적 사고 안에서는 제기된 적 없는 전인미답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즉 기존의 지배적 주권형태였던 민족국가와 유럽연합의 관계는 어떠해야 하는가? 이와 관련하여 이번 유럽헌법조약에서 제시한 답은 전통적인 주권의 속성들 이번 헌법조약안이 '권한'(competence)이라고 표현한 것 을 유럽적 수준과 민족적 수준 사이에서 '분할'하는 것이다.14)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경제적 권한에 관한 조항이다. 헌법안의 제Ⅰ-12조 1항에서는 '배타적 권한'(exclusive competence)이 관철되는 분야 중 하나로 유로를 채택하고 있는 회원국을 위한 통화정책을 들고 있고, 반면 제Ⅰ-12조 2항에서는 '공유 권한'(competence shared)이 적용되는 분야 중 하나로 제3편에 정의된 사회정책을 들고 있다. 여기서 우리는 두 가지 점을 주목해야 한다. 우선 근대 민족국가의 경제정책에서는 분할할 수 없는 일체를 이뤘던 통화정책과 사회정책이, 이번 헌법안에서는 배타적 권한과 공유 권한으로 분할되어 각각 유럽중앙은행과 회원국에 귀속되고 있다. 또한 흔히 헌법조약 3부에 집중되어 있다고 말하는 경제정책이 이미 1부에서부터 출현한다. 전자와 관련하여 말하자면, 통화정책과 사회정책이 이런 식으로 분리될 수 없다는 것은 경제학에 대한 최소한의 지식만 있더라도 충분히 알 수 있다. 나아가 이는 '주권은 분할될 수 있는가?' 또는 차라리 '분할된 주권은 주권으로서 실효성을 발휘할 수 있는가?'하는 고전적인 난문을 불러들인다. 이는 후자와 결합되어, 경제정책의 문제를 다른 주권적 원리가 결정된 후 추가되는 각론이 아니라, 그 자체로 유럽연합의 주권 구상에 대한 '환유'로 파악해야 한다는 결론으로 우리를 이끈다.
발리바르는 이 같은 현상을 '약한 초국가'(super-Etat faible) 또는 '국가 없는 국가주의'라고 부른다.15) 이는 두 가지 모순되는 특징을 결합함으로써 극히 반민주적인 효과를 생산한다. 우선 그것이 '초-국가'인 한에서 EU는 각 개별 국가들을 (적어도 원리적으로는) 구속하는 주민들의 '일반의지'로부터 상당한 자율성과 집중성을 획득한다. 지배엘리트 편에서 보면 여기에는 이중적인 이점이 있다. 한편으로 개별 국가 인민들로부터의 구속에서 벗어나 극히 자유롭게 정책을 결정할 수 있게 해 준다. 다른 편으로 지배엘리트의 자의에 의해 결정된 정책을 개별 국가 인민들 앞에서는 자신들의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국제적 압력/대세로 가장함으로써 정책 관철력을 높이는 한편 정치적 부담/책임의 문제를 회피할 수 있게 해 준다. 하지만 동시에 이는 '약한' 초국가이다. 즉 정당성을 결여하고 있기 때문에 각각의 '특수이해'들 앞에서 '일반이해'를 강제하는 전통적인 의미에서의 '주권'을 상당히 제약받는다. 실제로 EU와 개별 국가의 관계는 '외교'의 문제로 처리된다. 이는 EU 결정의 수용 여부에 관해서는 각국 정부가 재량권을 갖는다는 뜻이다.
이는 결국 국가 관료들과 지배엘리트들의 재량권을 극대화한다. 이들은 초-국가 제도와 개별 국가의 제도 간의 비공식적 '절합'(articulation) 지점에 자리하고 있으면서, 이들 간의 매개를 독점한다. 유럽과 개별 국가 인민들의 삶에 심대한 영향을 미치는 수많은 결정들이 테크노크라트들의 비공식적인 '네트워크'와 '컨센서스'에 따라 이루어지고 동시에 그것을 받아들일지 여부에 관한 재량권 역시 보존된다. 반면 인민들은 이중으로 주권을 박탈당한다. 한편으로 그/녀들은 개별 국가에서 (말의 강한 의미에서) 주권을 행사할 수 없게 된다. 주권의 핵심이 '결정권'인 한에서, 이미 많은 부분이 초-국가적인 수준에서 결정되기 때문이다. 다른 편으로 초국가적인 수준에서 개입하는 것도 어렵게 된다. 앞서 지적한 '약한 초국가'로서 EU의 조건은 설사 유럽적 수준에서 대중들이 어떤 결정을 관철해 낸다고 해도 이를 개별 국가에 강제할 수 없다. 또한 여전히 많은 부분에서 만장일치 제도를 존속하고 있기 때문에 현재 가입국인 25개국을 모두 움직인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이런 모든 난관을 뚫고 어떤 결정을 관철시킬 수도 있겠지만, 분명한 것은 과거에 비해 제약이 훨씬 더 강화된다는 점이다.
사실 이 같은 반민주성은 그동안 끊임없이 지적되어 왔는데, 이번 헌법조약안에서는 자문기구에 불과한 유럽의회의 확대라는 립서비스 이외의 대부분의 반민주적 조치들을 온존시켰고 심지어 그것을 '입헌화'(constitutionalize)하려 했다. 좌파 중 이번 조약에서 찬성표를 던진 이들이 간과한 것은 바로 이 점이다. 사실 이들에게는 민족-이하적인 수준과 민족-이상적인 수준에서 더 민주적인 해결책이 나올 수 있을 거라는 전제가 있다.16) 그러나 어떤 수준이 자명하게 민주적이라는 식으로 접근하거나 어떤 수준은 자명하게 반민주적이라는 식의 접근은 관념적이다. 필요한 것은 역사적 접근인 바, 이렇게 볼 때 우리는 민족국가가 갖는 일정한 의의를 발견할 수 있다. 민족국가 자체가 선험적으로 민주주의와 친화적이기 때문이 아니라, 20세기의 대중운동이 민족국가(혹은 차라리 사회-민족 국가)를 주된 투쟁과 변혁의 대상으로 삼는 과정에서 자신들의 요구를 민족국가 안에서 경향적으로 입헌화했기 때문이다(물론 그 반경향을 잊어서는 안 된다). 동시에 이 같은 관점에서 보자면 현재의 유럽통합 시도는 고유한 반동성을 갖는데, 왜냐하면 유럽연합 자체가 그러한 역사적 투쟁과 단절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애시 당초 그런 부분을 박탈하려는 계획의 일환으로 추진된 것이기 때문이다. 이 같은 역사적이고 구체적인 평가를 결여한 채 민족-이하적이거나 민족-이상적인 심급을 관념적으로 특권화한다면, 민족국가에 대한 대중들의 방어적 투쟁을 사실상 엘리트들과 다를 바 없는 방식으로 비난할 수밖에 없게 된다.
그런 점에서 보자면 이번에 프랑스와 네덜란드 대중들의 반대는 주권자로서의 최소한의 '존엄성'을 지키려는 방어적 조치라고 평가할 수 있고 그런 한에서 정당성을 갖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반대가 방어적이라는 사실, 따라서 지속적인 투쟁의 전망으로 설 수 없다는 한계는 분명하다. 그러므로 이제 시급하게 제기되는 문제는, 대중들에 의해 기각된 '지금까지의 유럽'도, 그렇다고 지속할 수 없는 민족국가에 대한 방어투쟁도 아닌 또 다른 길을 개방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가 하는 것이다. 이는 결국 유럽 수준에서의 새로운 정치적 실천과 함께, 새로운 주권형태 또는 새로운 유형의 '연방제'라는 극히 까다로운 난문을 제기하는 것이다. 전통적인 주권 개념 및 그를 뒷받침하는 제도들을 근본적으로 문제 삼지 않은 채 실용적으로 분할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단순히 정치적 상상력을 역설하는 것만도 아닌 실천. 과거 '국가주권' 개념을 '인민주권' 개념으로 전환했던 것처럼, '인민들의 주권' 즉 다(多)-민족적인 주권/대의/통제 문제 을 '발명'해 내는 실천. 지배엘리트들에 의한 초민족적 '매개'의 독점이 아닌 인민들/대중들에 의한 새로운 초민족적 매개의 발명, 그리고 이를 통한 새로운 공적 영역의 구축. 지금 필요한 것은 바로 이러한 실천들이다. 이런 실천들이 아래로부터 구성되지 않는 한, '또 다른 유럽' 그리고 '유럽의 인민'이란 없을 것이고 민주주의의 미래 역시 그럴 것이다.
쟁점 2: 유럽적 동일성
이번 EU 헌법조약안이 가진 또 하나의 결정적 문제점은 유럽적 동일성, 곧 '유럽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과 연관된다.
다소 추상적으로 보이는 이 문제는 유럽의 '경계선'(borderline)17)이라는 구체적 제도, 후보국의 기준이 무엇이고 가입 조건이 어떤 것인지 등의 현실적 문제와 직결된다. 그런데 조금만 살펴보면 이 기준이 자명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이번 헌법조약안이 유럽적 동일성의 구성적 일부로 다시 한 번 확고히 한 나토(NATO, 북대서양조약기구)의 구성을 살펴보면 이를 잘 알 수 있다. 나토에는 미국과 캐나다라는 非유럽 국가가 포함되어 있는 반면, EU 회원국인 오스트리아, 사이프러스, 핀란드, 아일랜드, 말타, 스웨덴이 소속되어 있지 않고, 또한 나토의 유럽 회원국 중 아이슬란드, 노르웨이, 터키는 EU 회원국이 아니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는 것이 아니다. 예컨대 발칸반도는 유럽인가 아닌가? 러시아는 어떤가? 유럽에서 이미 몇 세대에 걸쳐 살아가고 있는 非EU 회원국 출신 이민자들은? 유럽이 아니라면 어떤 이유에서 그렇고, 유럽이라면 이들이 포함됨으로써 기존의 '유럽성'(Europeanness)은 어떻게 변화하는가? EU가 전통적인 민족국가의 '국경' 개념으로 환원되지 않는 불균등하고 다층적인 경계선들을 증식시켜 가면서 통합(과 배제)의 속도를 조절해 가는 것은 바로 이 같은 난점 때문이다.
이 같은 난점은 유럽적 동일성, 그를 뒷받침하는 구체적 제도로서 유럽의 경계선이 세계-정치적인 분할에 의해 과잉결정 된다는 점을 볼 때 비로소 사고 가능해진다. 예컨대 1494년 토르데실라스 조약18)에서부터 최소한 1960년대에 이르기까지, 유럽의 국가들은 민족국가인 동시에 제국주의 국가였는 바, 이 국가들이 자신들 사이에서 그었던 경계선은 민족적인 경계선이었을 뿐 아니라 아프리카의 파쇼다와 모로코, 또는 조선의 거문도19) 등으로 연장되고 복제되는 세계적 분할선이었다. 이 같은 유럽의 경계선은 1945년에서 1990년에 이르는 냉전 시기 영국 나아가 유럽의 헤게모니가 붕괴한 시기이기도 한 에 들어 세계를 양분하는 거대 '진영'에 의해 새롭게 과잉결정 된다. 한편으로 같은 민족국가를 구성했던 독일은 이제 '초-경계선'(super-frontier)에 의해 단순한 '외국'이 아니라 잠재적 '적국'으로 분할됐고, 다른 편으로 얼마 전까지 최대의 적국이었던 프랑스와 독일(이제 서독)은 '자유유럽' 통합의 양두마차로 나서고 동유럽에서는 유고슬라비아 연방공화국이 재건됐다.
이렇듯 유럽적 동일성 및 경계선은 각 유럽 국가들이 예컨대 종교적, 경제적, 식민주의적, 군사적 분야 등에서 갖는 세계적 이해가 자신들의 내적 문제와 교차하는 방식에 의해 과잉결정된다. 여기에는 자연적이라거나 본성적인 어떤 것도 없다. 그렇다면 오늘날 유럽에서 형성 중인 동일성/경계선을 과잉결정하는 요소는 무엇인가? 이는 물론 세계화와 함께 더욱 악화된 형태로 출현한 경제적 불균형과 사회적 적대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라는 문제이며, 이에 관해 유럽은 두 가지 극 사이에서 동요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한 극을 이루는 폭력적 배제 과정은, '안보 경계'(security borders)의 준-군사적 집행을 주된 수단으로 삼고 '정치적 적으로서 이방인'이라는 형상을 재창출한다. 이는 위에서 지적한 경제적 불균형과 사회적 적대를 (잠재적으로 절멸적인) 문화 전쟁과 문명의 충돌의 언어로 '번역하는' 방향으로 유럽 구성을 추동한다.20) 다른 한 극에 있는 차이의 '시민적' 가공 과정은, 유럽의 교육체계와 문화정책에 관한 매우 어려운 쟁점들을 포함하며, 심지어 유럽의 '동일성'과 '공동체'에 관한 자기-이해에 관한 근본적 난문을 포함한다. 하지만 이는 문화 '전쟁' 종교적이거나 준-종교적인 문화 전쟁을 포함하여 을 중화하고 돌파하는 효과적 수단으로 작용하여, '통합'(integration)과 '동화'(assimilation)의 난관으로부터 벗어나는 길을 개방하고 '다-문화적' 유럽이라는 매우 갈등적인 관념에 능동적이고 전진적인 내용을 부여할 수 있다. 지금까지의 유럽통합과정은 불행히도 전자의 경향을 강화시켜 왔는 바, 이번 헌법조약안 역시 이 같은 경향에 대한 어떤 반경향도 포함하고 있지 않다.
두 가지 상징적 사례를 통해 이 같은 경향을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첫 번째 사례는 터키의 EU 가입 문제다. 주지하다시피 터키는 이미 1960년(!) 유럽경제공동체(EEC) 시절에 준회원국으로 가입했고, 1987년에 EC 정회원 가입신청을 냈다. 하지만 50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까지 이 문제는 여전히 교착상태에 빠져 있다. 완전한 배제도 완전한 통합도 아닌 이 같은 모호한 상태가 반세기 동안이나 지속된 진정한 원인은 무엇일까? 혹자는 이슬람 문화와 유대-기독교 전통 사이의 '문명적' 갈등을 원인으로 지적한다. 하지만 이는 전혀 사실이 아니다. 진정한 원인은 EU의 '내부적 배제'라는 얼핏 보기에는 역설적인 정책에 있다. 피상적인 관념과는 달리 EU는 유럽으로 향하는 이주자의 흐름을 억제할 생각이 전혀 없다. 이 흐름은 상당한 정도의 자국 노동력이 (비록 점점 더 취약해지고 있긴 하지만) 부분적으로 '입헌화'된 사회적 권리와 조절에 의해 보호받는 시기에, 자국 노동자들에게 경향적으로 금지된 과잉착취를 보충하는 한편 이들을 압박하는 전통적인 '산업예비군'을 재생산하기 위해서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그리고 이를 지속시키기 위해서는 터키와 회원국들의 생활수준 격차를 가능한 한 가장 오랫동안 유지하여 낮은 임금과 혹독한 규율, 극도의 불안정성에도 불구하고 터키 노동자들이 회원국으로의 이주를 '선택'하게 만들어야 한다. 하지만 터키를 EU에 완전히 통합하게 되면 터키 이주노동자들 나아가 이들과 비슷한 처지에 있었던 다른 非유럽 출신 이주노동자들 에게 완전한 시민권을 부여하지 않을 수 없으며, 더 나아가 유럽에 있는 이슬람 공동체들이 주장하는 시민권 요구를 거부할 명분 역시 극히 취약해질 수밖에 없다.
요컨대 터키 문제의 진정한 원인은, 이주자들을 끌어들이는 동시에 내동댕이치며, 이로써 이주자들을 항구적인 불안정상태에 위치시키는 EU의 내부적 배제 정책에 있으며, 그런 한에서 비단 터키로 한정되지 않는 보편적 함의를 갖는다.21) 한편 이 같은 정책이 효과적으로 수행되기 위해서는 새로운 프롤레타리아트들이 공포의 주체이자 대상으로 전환되어야 한다. 거부되고 제거되는 것에 대한 공포를 느끼며, '안정적인'(stable) 인구에게 공포를 일으키는 양면적 존재로 말이다. 그래야만 이들이 특히 공통의 사회적 투쟁에 가담함으로써 능동적 의미에서의 '시민'이 되는 것을 방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식의 공포와 불안정의 정치를 통제하기란 쉽지 않다. 시민권을 보호하는 기본적인 형태들에 대한 위협은 외부자 뿐만 아니라 내부자들에게까지 확대된다.22)
두 번째 사례는 쉥겐조약이다.23) 쉥겐조약의 핵심은 간단히 말해 EU의 '역내국경'에서 모든 사람들에 대한 검색을 철폐하는 것이다. 이는 역내시장을 구축하기 위한 것임과 동시에, EU 시민으로서의 종별적 권리를 부여함으로써 유럽통합과정에 관한 시민들의 동의를 얻기 위한 것이다. 얼핏 보면 전혀 나무랄 것 없고 혁신적인 듯한 이 조치의 이면은 非유럽인들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는 것이다. 쉥겐조약은 탈냉전 이후 동유럽을 중심으로 밀려드는 이민, 난민신청자 나아가 이주자들을 이른바 '유럽요새'에 대한 새로운 위협요소로 보고, 이에 대응하기 위해 '역외국경'에서의 검색, 비자정책의 획일화, 난민정책에서의 공조 및 경찰과 사법부문에서 초국가적 협력 등 폭력적인 통제와 진압을 처방한다.24) 혹자는 이 같은 조치를 일종의 새로운 '전쟁' 모델로 파악하면서, 지역적인 폭력과 공공연한 전쟁의 세계인 동시에 '노마드적'인 노동력에 대한 착취가 급속도로 팽창하는 세계에서 그것이 수행하는 고유한 정치적 기능이 있다고 주장한다. 또한 이같은 전쟁 모델 또는 전쟁 형태로의 경찰 의 확대가 '유럽인들' 자신에 대해 생산하는 제어할 수 없는 사회적·법적 귀결을 강조한다.25)
이는 유럽의 '공간 정치적' 형상에 심대한 영향을 미친다. 우리가 앞서 살펴보았듯 지역적인 동시에 세계적인 의미를 갖는 경계선들이 '전-위'(轉位, dis-place)되거나 '편재'(ubiquitous)하게 된다. 한편으로 경계선들은 유럽 국가들의 영토 안에 있는 다른 '검문소'들에서 복제되는데, 여기서는 불법적인 이방인(alien)과 그/녀들을 지원하는 '네트워크'에 맞서 군사화 된 경찰작전이 진행된다. 다른 한편으로 실질적 경계선을 경계선 너머로 운반하려는 시도가 발생한다. 왜냐하면 이 같은 준-전쟁이 인종주의적 반동 및 바람직하지 않은 연대 운동을 부추김으로써 유럽 사회의 시민적 평화를 해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이로부터 '수용소의 외부화'(externalizing the camps) 및 '폭력의 아웃소싱' 따위의 현상이 발생한다. 난민들과 불법이주자들을 걸러내는 센터들은 더 이상 유럽 회원국의 영토가 아니라, 보조적인 이주 관리 역할을 수행하도록 합의한 인접 '종속'(client) 국가 우크라이나, 터키, 모로코, 리비아 등 의 영토에 위치한다. 이는 식민주의적 예속관계를 재생산할 뿐만 아니라, 전(前)-민족적인 제국들의 극히 오래된 '영토화' 유형을 부활시킨다. 더욱이 이는 유럽이 장차 펼칠 법한 '패권 정치'(power politics)의 전형적 측면인 바, 이는 새로운 초-국가의 영토를 넘어 '권력을 투사'할 수 있는 패권의 모델이지만, 실상은 국내 제도와 사회의 역량을 활용해 자신의 한계 안에서 차이와 갈등을 조절하는 것과 관련된 무능력에 지나지 않는다.
이와 함께 '경계선'과 '이방인/외국인' 개념의 관계가 전도된다. 외양적으로는 후자가 전자의 전제가 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경계선의 작업에 의해 이방인/외국인이 구성되거나 '생산'된다. 유럽 시민권 개념이 확립되면서 회원국 출신 외국인과 非회원국 출신('제3국') 외국인은 전혀 다른 의미를 갖게 된다. 하지만 '제3국' 역시 분열되는데, 예컨대 미국인과 한국인이 하나의 범주에 속한다고 말하는 것은 기만일 뿐이다. 이렇게 보면 경계선의 지위는 이방인/외국인의 조건뿐만 아니라 "이국적임"(being foreign)의 의미 자체도 바꾸어 놓는다. 이 범주는 잠재적으로 '분해'되는 바, 왜냐하면 어떤 이는 '동화'(assimilated)되어 덜 이국적인 '이웃'이 되고 다른 이는 '이화'(dissimilated)되어 더 이국적인 존재, 그리하여 '절대적인 이방인' 심지어 '외계인'(alien)이 되는 등, 단일한 법적 의미에서의 '외국인'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 불가피한 결과로, '민족'(national) 또는 결국 '자기' 이라는 범주 자체가 분할되고 세계적 불평등을 반영하는 '내부적 경계선'의 분해적(dissolving) 행동에 종속된다.
이 같은 불균등하고 복잡한 현실은, 이른바 '제국'(Empire)이라는 탈근대적 시대로 이행하면서 근대에 고유한 모든 '경계'들이 소멸하고, 이런 경향의 일환으로 유럽적인 공간이 구성되면 민족국가의 동일성/경계선에 속박되지 않는 한층 지구적이고 호혜적인 관계가 도래할 것이라는 식의 낙관적 입장을 완전히 궁지에 빠뜨린다. 이들의 경우 민족국가의 동일성/경계선이 모든(적어도 대부분) 폭력의 원천이라는 전제를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확실히 민족국가는 인종주의 및 국경 제도라는 야만적 측면을 포함하고 있다. 그러나 인종주의/경계선 제도가 민족국가와 다른 수준, 즉 민족-이상적이거나 민족-이하적 정치체와 결합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은 전혀 근거가 없다. 역사적으로 그리고 또한 유고 내전에서 극히 끔찍한 방식으로 입증되었듯, 모든 지역적 분리주의는 강력한 인종주의에 기반하고 있다. 또한 '국제주의적 인종주의'는 '범(汎)-게르만주의', '범-슬라브주의', '범-아랍주의', 그리고 물론 '대동아공영권' 등에서 볼 수 있듯, 인종주의의 예외적 형태가 아니라 오히려 '정상적' 형태였다. 이런 맥락에서 현재 유럽에서 발생하고 있는 인종주의를 단순한 '민족주의적 인종주의'가 아니라 '유럽적 인종주의'26) 혹은 발리바르가 최근 도발적으로 제기한 표현을 따르자면 '유럽적 아파르트헤이트' 로 분석할 수 있다면, 유럽적 공간의 구축을 통해 이에 맞설 수 있다는 것은 인종주의의 현재적 양태에 대한 몰이해에 지나지 않는다.
현재 유럽에서 가장 반동적인 경향을 대표하는 '유럽적 인종주의'와 '유럽적 초-경계선'이라는 문제를 분명하게 제기하지 않으면서, '어쨌든 민족국가보다는 낫지 않겠느냐'라고 말하는 것은 극도의 지적 나태와 무책임에 지나지 않는다. 타락한 민족국가와 그에 못지않게 타락한 현재의 유럽이라는 대당 사이의 거울놀이가 계속되는 동안, 새로운 정치의 맹아는 질식당할 수밖에 없다. 그런 점에서 보면 이번에 프랑스와 네덜란드 인민들의 반대 결정은 이 거울놀이를 '중단'시킴으로써 '또 다른 유럽'에 관한 토론과 실천이 벌어질 수 있는 공간을 개방하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물론 이 거부가 생산한 일시적인 정치적 공백이 민족국가로의 퇴행적 고착에 의해 다시 봉쇄되고 이것의 반동성이 (또 다른 반동에 지나지 않는) 유럽적 아파르트헤이트의 알리바이가 되는 더욱 악화된 거울놀이가 시작될 수도 있다. 하지만 아직 그 결과가 확정되지도 않은 위험 때문에 대중들 스스로의 힘으로 개방한 정치적 공간을 회피하는 것은 마키아벨리적인 현실주의가 아니라 말의 강한 의미에서 비겁이며, 대중들에 대한 엘리트주의적 재단일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같은 위험이 분명히(정확히 말하면 아주 강력하게) 존재하는 바, 이 결정을 함께 내리고 이를 지지한 모든 이들에게는 아주 엄중한 '책임'(responsibility), 즉 자신의 행동으로부터 초래된 결과들 전혀 예기치 않았거나 심지어 도착적인 것들까지를 포함하여 을 인내심을 가지고 치밀하게 인식하고, 이 결과들이 제기하는 새로운 난문들에 효과적으로 응답(response)할 수 있는 형태로 스스로의 실천을 끊임없이 해체/발명하는 의무가 부여된다. 유럽의 미래는 이 같은 '책임의 정치'를 진전시킬 수 있느냐 여부에 달려 있을 것이다.27)
쟁점 3: 기본권28)
이번 헌법조약 논쟁에서 핵심으로 부각됐던 쟁점 중 하나가 2부 기본권 헌장이다. 유럽연합의 민주성 여부를 판단할 때, 헌법조약에서 기본권이 차지하는 위상 및 내용이 주된 근거가 되기 때문이다. 현실적으로 유럽통합이 과거 민족국가에서 확립됐던 기본권보다 더 진전된 내용을 보장하지 못한다면 유럽 시민들의 동의를 얻어내기 힘들 것이다. 다른 여러 가지 복잡한 요인들이 개입했겠지만, 이번에 프랑스와 네덜란드에서 헌법조약이 부결된 것을 이런 맥락에서 진단할 수도 있다. 하지만 세계화로 인해 민족국가가 위기에 빠진 상황에서, 민족국가를 고수한다고 해서 기본권이 보장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문제는 지금까지의 유럽과 민족국가의 대당을 넘어 기본권을 확대할 수 있는 새로운 실천과 제도를 모색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기본권의 개념 및 역사에 대한 고찰이 필수적이다.
발리바르는 기본권이 인권을 입헌화(constitutionnalisation)한 것, 즉 인권을 시민권의 정의 자체 안에 통합시켜 낸 것이라고 규정한다. 이는 평등과 자유라는 보편적 가치('인권')를 내걸고 투쟁한 해방운동들의 역사적 성과를 근대적 제도 안에 구속력 있는 형태로 설립해 낸 것이다. 이렇게 보면 기본권은 인권과 시민권의 역사에서 하나의 종별적 단계를 획한다. 왜냐하면 이제부터 인권은 제도적 기초 따라서 유효한 물질성을 얻게 되고, 시민권은 특정 집단이나 공동체에 국한되지 않는 보편성을 획득하기 때문이다. 이는 또한 각 개인들이 자율적 주체로서 정치적 삶에 가담할 수 있게 해 주는, 혹은 단적으로 시민적인 '능력'(capacity)을 획득할 수 있게 해 주는 사회적 조건을 보장하는 문제다. 이는 자유권과 사회권을 별도의 범주로 분리하는 태도와 상반되는데, 왜냐하면 사회권의 보장 없이 자유권이 실현될 수 없고, 자유권을 억압하는 사회권이란 형용모순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보면 기본권이란 법적 문서에 명시된 형식적 조항이라기보다는, 정치의 조건이 변화하고 이에 따라 시민적 평등과 자유를 재확립하려는 해방운동들이 벌어질 때 이들이 활용할 수 있는 정치적 거점이자 이런 운동들에 의해 끊임없이 확장·갱신되어야 하는 투쟁의 쟁점 자체다.
이 같은 기본적 관점에 입각해 우리는 헌법조약안의 기본권 헌장을 구체적으로 평가해 볼 수 있다. 우선 성평등의 문제를 보자. 과거의 인권선언문들이 성에 기초한 차별을 고발하는 데 그친 반면, 이번 기본권 헌장에서 남성과 여성 간의 평등을 모든 영역에서 확립되어야 하는 유럽연합의 목표 중 하나로 언급했다는 점은 분명히 진보다. 하지만 이는 이를 존중하지 않는 사회나 국가에 대항하여 행사할 수 있는 어떤 효력도 갖지 못하는 바, 이 같은 무력함은 이번 기본권 헌장 모두에 걸쳐 있는 전반적 결함이다. 또한 과소대표된 성에 대한 적극적 평등조치를 명시하면서도, 가정에서의 착취와 폭력으로부터 여성들을 자유롭게 하기 위해서 또한 그녀들에게 정치적이고 직업적인 평등을 부여하기 위해서 교정되어야 하는 남성지배의 현실적 상황을 묘사하지 않는 것 역시 결정적인 결함이다. 이러한 이중의 결함 때문에 성평등에 관한 언급이 공문구로 그치거나 심지어 실질적 불평등을 형식적 평등으로 은폐하는 효과가 생겨날 위험이 있다. 이와 함께 여성운동들이 심각한 문제로 지적한 것은 제Ⅰ-52조에 명시된 교회 권위의 인정이다.29) 이는 정교분리라는 근대 국가의 기본 원리에 배치될 뿐만 아니라, 신체에 대한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겨냥한 교회의 공격을 정당화하는 반동적 효과를 초래할 수 있다.
다음으로 '사회권' 특히 '노동권'의 문제를 보자. 노동자운동을 필두로 한 사회운동들은 20세기 유럽에서 투쟁과 갈등을 정치적 기초로 삼는 '갈등적 민주주의'30)라는 독특한 정치형태를 경향적으로 강제했고, 이 안에서 교육, 실업으로부터의 보호(protection), 건강, 그리고 통신수단(moyens correspondants)에 대한 보편적 권리를 제도화해 냈다. 하지만 이번 헌법조약안은 이 같은 성과를 계승하지 않았고 이른바 '사회적 유럽'의 견지에서 볼 때 퇴보했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특정 조항이 들어갔느냐 빠졌느냐 와 같은 다소 지엽적 접근이 아니라, 현재 유럽연합이 20세기 사회운동의 성과와 단절되어 있으며 심지어 이 같은 단절을 은폐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기본권을 도구적으로 활용하는 것이 아니냐는 발본적인 문제제기다.
한편 헌법조약안은 이방인 곧 공동체 외부에 있는 대중들의 권리를 부인한다. 연합의 시민권이 도입되면서 이민자들의 공민권(귀화 외국인으로서의 권리, denizenship)이 발전하는 것은 봉쇄됐다. 유럽 시민권은 유럽연합 내의 한 시민이 타국으로 이주하는 경우 바로 해당 국가의 시민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가능성을 개방한 반면, 非유럽인들에게는 심지어 이들이 유럽에서 태어난 경우에도 이러한 권리가 주어지지 않게 만들었다. 그리고 개별 회원국의 상이한 이민정책은 이들의 유럽시민권 획득을 더욱 어렵게 만든다. 또한 과거의 개별국 시민과 외국인으로 양분되던 시대에서 개별국 시민, 타유럽 시민 그리고 외국인으로 삼분되면서 직간접적으로 외국인의 위상이 악화되었다. 이는 유럽적 아파르트헤이트, 또는 거주자(residents)의 일부를 정치적·사회적으로 배제하는 것을 승인한다. 그리고 배제된 영역에서는 경찰이 정치로부터 권한을 넘겨받는다.
마지막으로 이른바 '자유권' 문제를 살펴보자. 기본권 헌장은 '정보에 대한 권리'와 교통의 자유를 언급하지만, 그것의 필수적 상응물로서 문화 및 미디어 종종 근대국가의 '제 4의 권력'이라고 불리는 분야에서 독점의 금지를 언급하지 않는다. 오늘날 이들 분야는 사유화되거나 심지어 '사유화된 공공성'의 성격을 강하게 띠는데, 언론재벌 베를루스코니가 좌지우지하는 이탈리아는 이의 극단적 사례일 것이다. 언론의 자유에 관한 대논쟁 이래 우리는 문화적 제공(offre)의 다원주의가 '공적 영역'의 토대임을 잘 알고 있는 바, 이 같은 결함은 제도의 정당성 결여의 가장 중요한 원인 중 하나일 것이다.
이상의 문제점으로부터 우리는 헌법조약안이 민주주의와 관련한 어떤 혁신적인 발명도 하지 못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또한 유럽이 '사회적 유럽'이 아니라 '자유(주의) 유럽'으로 가고 있어서 문제라기보다는, 헌법조약안이 확립하고자 하는 '자유' 개념 자체의 모순이 문제라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헌법안은 평등과 사회적 보호에 대한 일정한 보장을 통합하기에 앞서, 시장경제를 보호하고 발전시킬 필요성에 명시적으로 준거하고 있다. 이 같은 자유주의의 근저에는 역설적이게도 대중들의 자유에 대한 공포가 깔려 있다. 즉 사회권을 포함한 기본권의 확립에 힘입어 시민들의 자율성 및 개인적·집단적인 공적 행동을 감행할 수 있는 능력이 '생산'된다면, 시장경제가 심각히 교란될 수밖에 없다는 점을 두려워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문제는 평등과 자유 중 어느 것을 택할 것이냐가 전혀 아니라, 평등과 자유 중 어느 한쪽을 억압한다면 다른 한쪽 역시 파괴될 수밖에 없다는 정치적 진리를 재확인하는 가운데 자유를 지지하는 평등, 평등을 확대하는 자유 개념에 기초하여 새로운 기본권을 발명해 내는 것이다. 물론 이 같은 발명은 몇몇 사람들의 관념적 기획이 아니라 구체적 정세 속에서 발견되는 '민주주의의 실험실'에서 대중들과 그/녀들의 편에 선 지식인들의 협력에 의해 가능해질 것이다. 이는 너무 당연한 이야기인 것 같지만, 이번 헌법조약안이 그리고 우리들 스스로 자주 망각하는 진실이다.
지방적 세계주의(cosmopolitanism)31)
마지막으로 위에서 열거된 문제들과 겹치면서도 나름의 차원을 갖는 쟁점이 하나 있다. 현재의 세계적 갈등 안에서 유럽(연합)의 위치, 그리고 유럽(연합)이 수행해야 하는 국제적 역할이 바로 그것이며, 이는 이번 헌법안 찬성 주장의 가장 중요한 논거 중 하나로 작용했다. 이에 관한 요구가 특히 진보적 지식인들을 중심으로 본격적으로 제기된 것은 9. 11 테러 직후, 특히 미국의 일방주의가 걷잡을 수 없이 강화된 시점부터였다. 이들이 유럽을 호출하는 이유는 각각 다른데, 어떤 경우에는 '유럽'이라는 이름을 통해 '서양'이라는 이름을 분할함과 동시에 유럽적 전통을 매개로 미국을 교정하고자 하며, 어떤 경우에는 유럽이 점하고 있는 지정학적 위치를 주목하면서 이른바 '문명들의 충돌'에서 중재자가 되기를 기대하기도 한다.
이들의 주장을 기초 짓는 논리는 결국 '견제와 균형'(check and balance)이거나 '중재'(mediation, 매개)의 논리다. 여기서 전자는 궁극적으로 군사 논리에 뿌리를 두고 있는데, 이 경우 왜 유럽이 특권화 되는가 하는 질문이 제기될 수밖에 없다. 차라리 독일이나 러시아, 프랑스나 중국, 멕시코나 일본처럼 미국의 군사력/국력에 비할 바는 못 되지만 중간 수준의 역량을 지닌 다양한 국가들이 견제와 균형을 수행하는 데 훨씬 더 현실적이고 유효하지 않은가? 실제로 이라크전 직전 미국을 잠시나마 제어한 것은 '유럽'이 아니라 위와 같은 중간 수준 국가들의 정세적 수렴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같은 주장을 계속하는 이들은 대개 유럽이 힘과 도덕성/정당성의 결합을 체현하고 있다는 가정을 갖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이는 환상, 또는 자신의 욕망을 유럽에 투사(project)한 것에 불과하다. 현실의 유럽은 미국을 제어할 수 있는 힘도 없거니와 '도덕성'도 갖고 있지 못하다. 유럽은 '유럽 요새'의 구축, 배제를 통한 동일성의 구성, 냉전을 대체하는 새로운 '단층선'의 창출 등 일련의 과정에서 보편주의를 거의 상실했다. 반면 후자의 논리는 좀 더 검토해 볼 가치가 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고유하게 유럽적인 중재, 즉 미국과 다른 중재가 존재하는지 물을 수 있다. 우리는 이에 대해서 극히 회의적인 답변을 내놓을 수밖에 없다. 아일랜드, 전(前)유고연방, 팔레스타인, 체첸, 그리고 알제리 등 유럽 및 인근 지역에서 벌어진 일련의 분쟁에서 EU는 자신의 무력함과 수동성만을 드러냈을 뿐이며, 많은 경우 NATO의 군사력에 의지할 수밖에 없었다. 최근 유럽이 공동의 외교·안보전략을 세운다고 하나, 이는 미국과 다를 바 없는(그러나 그 역량 면에서 훨씬 취약한) 군사주의 및 그를 정당화해주는 외피로서 '인도주의적 개입'의 결합에 지나지 않는다.32) 게다가 이는 유럽통합에 필요한 동일성을 형성하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는 점에서 근본적인 한계를 갖는다.
혹자는 이 같은 유럽의 현실적 무력함이야말로 헌법조약안을 통과시켜야 할 다급한 이유라고 주장한다. 이들의 논리는 크게 두 가지인 듯하다. 첫째로 많은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현실주의적 관점에서 헌법조약안을 일단 통과시켜 유럽적인 공간을 구축해 내고 나면 그 이후의 정치지형은 현재보다 훨씬 유리하게 바뀔 거라는 것, 둘째로 어떤 식으로든 명확한 '주체'가 설 때에만 비로소 정치적 행동이 가능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두 가지 모두 근거가 없어 보인다. 첫 번째와 관련해서는 헌법조약안 Ⅰ-41조에서 EU 공동 안보방위 정책이 NATO의 노선과 일치해야 한다고 못 박았다. 더구나 이 정책을 실제로 이행하기 위해서는 유럽이사회의 만장일치를 통과해야 하는 바, 설사 NATO에 반하는 안이 제출된다 하더라도 이를 무력화시키는 것은 미국에 동조하는 단 하나의 국가 여기에는 영국만 있는 것이 아니다 만으로도 충분하다. 두 번째와 관련해서는 주체가 확립되어야만 정치적 행동이 가능하다는 전제를 역전시켜 정치적 행동을 통해 주체를 생산해 낸다는 관점을 채택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는 철학적 문제라기보다는 현실적 문제인데, 왜냐하면 어쨌든 개별 민족국가들로 이루어진 EU가 (확고한 동일성을 갖는다는 전통적인 의미에서의) '주체'가 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 같은 차별성과 불균등성 나아가 갈등을 인정하는 가운데 구체적인 실천과 행동을 통해 이 같은 차별성을 정세적으로 조정해 가는 것 이외에 다른 현실적 길을 갖고 있지 않다. 이렇게 볼 때 지금 가장 시급한 것은 이 같은 실천과 행동을 아래로부터 만들어가는 가운데 '또 다른 유럽'의 상을 물질화하는 것이지, 위로부터 허구적 동일성을 부과하는 것이 아니다. 전자 없이 후자가 있을 수 없다는 것은 민주주의적이라기보다는 현실주의적 명제다.
그렇다면 어떤 실천, 그리고 어떤 '또 다른 유럽'인가? 현재 미국의 일방주의, '문명의 충돌'과 '무장한 세계화'에 대한 대안이 될 수 있는 유럽의 가능성은 존재하는가? 이와 관련하여 발리바르는 특히 지난 세기에 현대 유럽을 형성하는 데 (절대적이라기보다는 경향적으로) 기여한 세 가지 역사적 교훈을 지적한다. 첫째는 '비극의 교훈'이다. 1·2차 세계대전 및 당시 벌어진 끔찍한 사건들을 '유럽에서의 내전'으로 겪으면서, 유럽은 '절대적 승리'나 '적'에 대한 최종적 진압은 결코 가능하지 않다는 교훈을, 이 같은 '최종적' 해결책33)에 도달할 수 있다고 믿는 순간 더 큰 파괴 및 자기-파괴의 조건을 창출할 뿐이라는 교훈을 배웠다. 이는 오늘날 미국 특히 네오콘이 주장하는 '테러(리스트)와의 끝없는 전쟁'과 관련하여 일종의 '데자뷔'를 연상시킬 정도의 현재성을 갖는다. 둘째는 '타자성(otherness)의 교훈'이다. 유럽의 식민주의 경험은 '타자성'이 항상 '동일성'의 필수적 구성요소라는 점, 따라서 타자를 악화시키거나 배제하려 들면 동일성 역시 위기에 빠질 수밖에 없고 타자에 활력을 주는 가운데 이를 '환대'하면 동일성의 역량 역시 증대한다는 교훈을 남겼다. 이는 타자성에 대한 배제를 통해 동일성을 형성하려는 '문명의 충돌' 식 시도와 정면으로 대립하는 바, 이런 점에서 보자면 현재의 유럽통합기획은 이 같은 교훈을 망각한 채 자기-파괴의 실천을 반복하고 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세 번째는 '갈등적 민주주의'를 독창적으로 가공해 낸 것과 관련되는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계급투쟁을 포함한 갈등들 단순한 다원성이 아니라 을 정치 및 제도로부터 배제하고 범죄화하기보다는 이를 집합적인 정치적 역량으로 전환시켜 내려는 시도를 감행했다는 점이다. 사회권을 비롯한 기본권의 확립은 바로 이 같은 정치적 토대에서만 가능한 바, 우리가 앞서 현재 헌법조약안의 기본권 헌장을 비판한 것은 이들이 정치적 토대와 기본권을 분리시키고 전자를 진전시킬 수 있는 실질적 조치의 부재를 후자를 통해 가리려 들기 때문이었다. 이 '갈등적 민주주의'의 또 하나 중요한 측면은 이른바 '정교분리'다.34) 종교전쟁에서 절정에 달한 종교 간의 갈등을 거치면서, 유럽에서는 종교적 소속이 '시민사회'를 구성하는 중요한 측면을 인정하는 동시에, '국교' 등의 형태를 띠는 종교와 정치의 일치를 지양하고 종교들이 서로 공존할 수 있는 매개적 공간으로 정치적·공적 공간을 구축한다는 독특한 기획이 출현했다. 하지만 여기에는 한계가 있었는데, 종교적 공존의 전제로서 각 개인들이 '민족적 동일성'이라는 규범적 정상성 혹은 세속화된 '국가종교' 을 받아들여야 했고 이를 거부할 시에는 폭력적인 억압과 배제를 겪어야 했다는 점이다. 오늘날 세계화가 진행되면서 민족적 동일성이 약화되고 다시 종교적 동일성의 규정력이 강화되어 '문명의 충돌'이 운위되는 이때, 문제는 '갈등적 민주주의'의 20세기적 형태에 머물지 않고 그것을 현재에 맞게 새롭게 혁신하는 것이다. 여기서 관건이 되는 것은 정치와 종교의 분리를 '정치와 민족의 분리'로 한층 심화시켜 내면서, 오늘날 객관적 현실로 존재하는 '다-문화주의'를 갈등적 민주주의를 진전시킬 수 있는 핵심적 기획의 일부로 재전유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상에서 살펴본 것은 하나의 경향일 뿐, 그것이 출현하는 순간부터 반경향과 도착의 가능성이 따라붙어왔고 현재의 경우 이 같은 반경향이 더욱 강화되고 있는 게 현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상의 교훈은 오늘날 세계가 처한 많은 문제점을 해결하는 데 적지 않은 시사점을 주는 바, 오직 이 같은 교훈을 되찾고 이를 실현시키기 위해 더욱 능동적으로 정세에 개입하는 유럽만이, 과거의 제국주의를 반복하고 현재의 미국을 모방하는 거대 '열강'(power)이 아니라 전혀 새로운 유형의 역량(power)을 만들어내기 위해 노력하는 유럽만이 오늘날 유일하게 가능하고 지지할 수 있는 '또 다른 유럽'이다. 이를 가능케 할 수 있는 지정학과 관련하여 여기서는 두 가지 점을 지적하고 마치겠다. 첫 번째는 지정학에서의 '반-전략주의적'(Anti-Strategic) 정책의 전면화다. 여기서 핵심은 세계적인 지정학적 전략, 특히 오늘날에는 '문명의 충돌'이나 '대테러전' 등에 입각하여 지역적(local, 국지적) 분쟁 잘 알려진 예만 들자면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이나 이라크전 에 접근하는 방식을 역전시켜, 지역적 프로세스(process)의 세계적 프로세스에 대한 우위를 확립하는 것이다. 여기에는 지역적 갈등을 세계적 갈등으로 '과잉결정'시키는 것이 전자의 해결을 더욱 악화시켜 왔다는 평가가 전제되어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세계적인 개입이나 세계화라는 조건 자체를 거부하자는 것은 아닌데, 오히려 세계화는 분쟁 당사자들에게 (세계-정치를 강제하려는 패권국이 아니라) 그 자체 책임을 갖는 입회인들(observers)이나 중재자들, 또 증인들을 분쟁에 참여시키는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다자주의적' 개입의 가능성을 열어줄 수도 있다. 이런 공간을 열어내지 않고 미국과 같은 패권주의적 지정학을 모방한다면 유럽적인 중재란 어떠한 종별적 가치도 갖지 않는 또 다른 추악한 제국주의에 불과할 것이다.
두 번째는 축소된 '단층선'(fault line), 유로-지중해적 집합(Euro-Mediterranean)이라는 기획이다. 발리바르는 만일 유럽이 현재의 세계적 분쟁 해결에 있어서 어떤 정세적 역할을 담당할 수 있다면, 오직 이 기획의 맥락에 서는 한에서라고 역설한다. 우리가 계속 언급했다시피 현재 미국 중심의 세계정치는 냉전을 대체하는 새로운 '단층선'을 만들어내고 그 외부로 갈등을 투사함으로써 내부('서양')의 동질성과 활력 '적'에 맞서는 과정에서 얻어지는 을 생산해 낸다는 슈미트적 노선을 따르고 있다. 그 점에 있어 특권적 적으로 떠오르는 것이 바로 '이슬람 문명' 또는 변형된 '동양'이다. 이 같은 전략은 현재 세계의 평화에 가장 심대한 해악을 미치는 원인인 바, 이 같은 전략을 교란시키는 것이 새로운 세기의 평화와 민주주의(냉전으로 인해 민주주의가 어떻게 억압되었는지를 기억하자!)에 있어 관건적인 요소가 된다. 발리바르는 유럽이 이 같은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특권적인 지정학적 위치에 있다고 본다. 하지만 이를 위해서는 유럽 스스로의 동일성을 변화시켜야 하는 바, 유럽은 '기독교' 내지 '서양' 문명이라는 동일성을 상대화하고 오히려 스스로를 '유로-지중해적 집합' 또는 아예 '경계지대로서 유럽'(Europe as Borderland)으로 생산해 내야 한다. 이는 앞서 언급한 유럽의 세 가지 역사적 교훈에 따라 유럽 스스로를 개조하는 것과 정확히 같은 작업이다. 이와 관련하여 다시금 전면에 떠오르는 것이 터키 문제다. 만일 유럽이 터키 문제를 '또 다른 유럽'을 생산하기 위한 결정적 계기로 삼고, 같은 얘기지만 중심-주변/동양-서양/기독교-이슬람/민족-민족 등의 대당을 해체하는 특권적 대상으로 껴안는다면 '또 다른 유럽'은 가능할 것이다. 물론 이 과정에서 유럽은 분열과 갈등에 시달릴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이 같은 분열과 갈등을 외면한 채 낡고 반동적인 '유럽적 동일성'에 기반을 두어 유럽을 형성하려 한다면 '또 다른 유럽'은 결코 도래하지 않을 것이고, 이는 '또 다른 세계'의 도래 역시 심각하게 제약할 것이다. 그러므로 유럽인들이여, '다시 한 번 노력하라!'(encore un effort!)
나가며
이상에서 우리는 유럽연합헌법조약안을 둘러싼 쟁점들을 살펴보았다. 어느 하나 간단치 않은 쟁점이지만, 또한 어느 하나 회피할 수도 없는 쟁점이다. 그리고 이는 비단 유럽 대중들의 문제가 아니라, 세계화가 전 세계 민중들에게 제기한 거대한 도전이다. 앞으로 상당 기간, 전 세계의 민중운동은 유럽헌법조약을 둘러싸고 제기된 쟁점들 특히 '정치 자체를 재발명하는 정치'라는 난문 주위를 회전하게 될 것이다.
이 문제가 쉽사리 해결될 수 있으리라는 낙관은 금물이다. 오히려 중요한 것은 이것이 근대 전체에 관련된 근본적인 위기라는 사실을 부각시키는 것이다. 비관주의를 악화시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새로운 전망을 찾지 '않을 수 없다'는 현실주의를 정치적 사고 안에 새겨 넣기 위해서, 그리하여 새로운 시대를 생산해낸다는 의미에서의 '혁명'에 관한 새로운 사고와 실천이 출현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들기 위해서다. 3저 호황과 '문민화', 그리고 그 사이를 관통하는 현실사회주의의 붕괴를 겪으면서 새로운 시대에 대한 모든 모색을 주변화해 버린 우리. 그러나 '또 다른 세계'를 외치는 전 세계 인민들의 막을 수 없는 목소리는 우리에게 다시 정치를 시작하라고 호소한다. 이 목소리에 귀를 막을 것인가, 아니면 이에 대답하기 위해 '잃어버린 10년' 동안의 우리 자신을 '해체'할 것인가. 우리의 미래는 바로 지금 여기에서 우리의 대답을 기다리고 있다.
1) 아래 나오는 국민투표 진행상황 및 통계는 주로 Susan Watkins, "Continental Tremors", New Left Review 33, May June 2005 및 Bernard Cassen, "Attac Against the Treaty", 같은 책을 참고했다. 이와 함께 전반적인 경과에 대해서는 Anne-C cile Robert, "Why France said Non", Le Monde diplomatique, June 2005(http://mondediplo.com/2005/06/02frenchno)를 참고하고, 국민투표를 둘러싸고 벌어진 논쟁들 중 중요 부분의 번역본은 『자율평론』13호 특집 2 "유럽헌법 찬/반 논쟁에 대하여"를 보라. 이 자리를 빌어 유럽의 논쟁을 신속히 소개해 주신 양창렬님께 감사드린다. 본문으로
2) 지난 1972년 4월 23일 68%의 프랑스인이 영국의 유럽공동체(EC)가입에 찬성한 바 있고, 1992년 9월 20일 유럽연합(EU)을 출범시킨 마스트리히트 조약은 51.05%라는 아슬아슬한 찬성표로 통과됐다. 본문으로
3) 유로 환율은 2005년 7월 6일 현재 1,250원 정도이므로 이는 원화로 환산하면 1,875,000원 정도다. 참고로 2004년 현재 프랑스 최저임금은 시간당 7.61유로다. 주당 평균노동시간이 35시간임을 감안할 때 한 달 기준 최저임금은 1065.4 유로 정도다. 본문으로
4) 이같은 견해는 Jean Baudrillard, "Holy Europe", 같은 책 및 Slavoj Zizek, "The constitution is dead. Long live proper politics", The Guardian, Saturday June 4, 2005에서 잘 나타난다. 본문으로
5) 물론 프랑스와 달리 반미민족주의를 자신의 기치로 삼을 수 있는 보수주의 세력이 존재하지 않고 남한의 고립주의적(아우타르키적) 발전의 불가능성이 대중적으로 인식되고 있는 점을 고려할 때, 남한에서 반미민족주의를 우익적으로 전유한 반동적·고립주의적 대중운동이 크게 일기는 어려울 것이다. 대신 80년대를 거치면서 (반미민족주의를 좌익적으로 전유한) 대중운동 자체가, 친미주의(혹은 전향자들의 요설을 빌자면 '등미주의')로 전향하는 분파, 반미민족주의를 유지하지만 스스로를 고립주의와 분명히 구별 지을 수 있는 대안적 노선을 제시하지 못함으로써 세력이 크게 축소되거나 수동화 되어 어떤 경우에는 전향한 친미주의에게 견인되거나 다른 경우에는 급진화 된 반미투쟁을 벌이는 등 끊임없이 동요하는 분파, 그리고 반미민족주의를 금융세계화 및 군사세계화에 맞서는 '대안세계화'로 전화하려는 급진적 분파 등으로 분열됨으로써 대중운동의 역량이 크게 축소되는 것이 우리의 현실에 좀더 가깝다. 본문으로
6) 하지만 지금까지 이 문제가 국내에서 별로 다뤄진 바 없고, 또 이것이 기본적으로 유럽에서 벌어진 논쟁이기 때문에 참고할 자료에 대한 언어적 제약은 몇 배로 증가합니다. 아래 글은 이같은 한계 안에서 쓰여졌고, 대단히 한정된 참고문헌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이 점을 감안하면서 논의를 시작하기 위한 작은 제안 정도로 이 글을 받아들여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본문으로
7) 이하의 텀 구성이나 내용은 주로 E. Balibar, "Sur la <
노동자계급의 적응과 항의의 사회적, 역사적 뿌리 번역: 정지영 (정책편집부장), 임필수 (정책편집국장) [편집자주] 리차드 로만은 토론토 대학에서 사회학을 가르치고 있다. 에뒤르 벨라스코 아레구이는 멕시코시티의 아스카포트살코에 있는 시립자치대학에서 경제학을 가르치며, <메이데이 노동조합조정위원회>의 설립자 중 한 명이다. 이 둘은 북미 대륙의 관점에서 본 멕시코 노동자계급에 관한 책을 곧 출간할 예정이다. 글의 출처는 다음과 같다. Richard Roman and Edur Velasco Arregui, Neoliberalism, Labor Market Transformation, and Working-Class Response: Social and Historical Roots of Accommodation and Protest, Latin American Perspective, Issue 119, Vol 28 No 4, July 2001 52-71. 지면의 제약 때문에 참고문헌은 생략했지만 {사회운동} 웹사이트에서 볼 수 있다. 멕시코 체제는 이중의 위기 속에서 곤경을 겪고 있다. 하나는 축적 모델의 위기고 다른 하나는 정당성을 획득하는 방식의 위기다. 이 위기의 해결책에는 긴장과 모순이 가득 차있다. 정치적 자유화는 무자비한 신자유주의 구조조정 계획과 충돌한다. 한편으로 불완전하고 제한적인 선거 개혁과 다른 한편으로 [치아파스를 포함한 여러] 지역의 봉기와 군사적 진압 과정간의 분기 속에서 긴장을 발견할 수 있다. 인민들이 선거 개혁을 통한 변화를 계속 갈망함에 따라 멕시코 체제는 점점 더 군사화하고 있다. 노동자들은 지난 20년 동안 임금, 일자리, 삶의 질에 대한 맹렬한 공격을 경험했다. 멕시코 노동자계급은 기로에 서있다. 멕시코 노동자 계급이 택하는 방향이 멕시코의 미래에 그리고 사실상 북아메리카의 미래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다. 멕시코의 도시 인구 75%와 심지어 농촌 인구 50%가 자신의 노동력을 팔아 생계를 유지하는 게 사실이지만 위기와 변화의 시기에 멕시코 노동자계급의 잠재적 역할은 대체로 무시되었다. 이 글은 멕시코의 극적 상황에서 노동자계급이 무대 중앙에 출연할 가능성을 검토하고자 한다. 경제적, 정치적 위기의 심화는 유동적인 상황을 낳으며 그 속에서 상호 연관된 세 가지 과정이 노동자계급의 역할을 형성하고 있다. 세 가지 과정이란 멕시코 자본주의의 구조조정을 통한 노동자계급의 재구성, 전통적인 노동통제 형태의 약화, 새로운 맥락에서 노동자계급 운동을 형성하는 정치적-이데올로기적-문화적 투쟁을 말한다. 멕시코의 변화를 두고 경합하는 프로젝트들이 존재한다. 미국의 관점에서 볼 때 바람직한 경로는 신자유주의를 지향하는 경제의 변화와 정치적으로 짝을 이루는 온건한 선거 이행이다. 이는 불신 받는 권위주의 체제를 새로운 권위주의 선거체제로 대체할 것이다.1) 경제 구조조정에 따르는 인간적 고통에 대한 항의를 억압하는 [멕시코 체제의] 대응은 봉기/군사진압이라는 동학을 초래하고 있다.2) 이미 지방에서는 폭발적인 불만이 나타났다. 치아파스의 사빠띠스타 봉기는 저항의 희망을 일신했고, 농촌에서 항의운동이 지속되도록 힘을 주었다. 게다가 몇몇 다른 주들에서도 무장 봉기가 일어나고 있다.3) 멕시코 정부의 대응은 미국의 도움을 받아 통제 방식을 더 군사화하는 것이었다. 신자유주의와 미국 제국주의는 자신의 프로젝트에 대한 도전을 쉽사리 묵인하지 않는다. 신자유주의의 권위주의 동학을 견제할 수 있는 유일한 힘은 진정한 정치 민주주의에 대한 요구와 경제적, 사회적 정의에 대한 요구를 결합한 민주주의 운동이다. 멕시코에서 참된 민주주의 이행은 신자유주의와 결합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신자유주의를 반대하며 이루어져야 한다. 그것은 인민의 기회와 권력을 확장하려는 인민의 희망을 일신하는 포괄적인 경제 전략을 동반해야 한다. 이러한 운동을 건설할 수 있는 세력은 불만을 품은 농촌 부문과 동맹을 맺은 노동자계급뿐이다. 하지만 이처럼 근본적이고 민주적인 변혁은 신자유주의 정책과 자본의 이해와 정면으로 충돌하며 따라서 신속히 성장하고 있는 [멕시코정부와 미국 제국주의의] 반혁명적인 대응을 강화할 것이다. 노동자계급이 이런 역할을 수행할 수 있을까? 자본주의 구조조정은 노동자계급을 희생시킬 뿐만 아니라 신속히 재구성한다. 사실 노동자계급과, 더 일반적으로 도시 빈민에 대한 공격은 아직 광범위하고 굽히지 않는 저항과 반대 운동을 초래하지 않았다. 이런 공격이 수많은 폭발적인 저항과 전투성을 야기했지만, 이는 분할된 채로 남아 있고 계속 유지되기 어려운 상태에 머물러있다. 자본주의 구조조정은 노동자 투쟁에 새로운 장애물과 새로운 가능성을 창조했다. 구조조정은 명백히 불공평한 조건에서 엄청난 인간적 고통을 낳았다. 정당성의 위기와 더불어 절대적이며 상대적인 박탈은 강력한 불만을 초래했다. 이런 불만의 에너지는 살아남으려는 일상의 투쟁으로 흩어져 버리거나 아직 고용되어 있는 사람들의 협소하고 방어적인 투쟁 수준으로 억눌릴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에너지는 전국적인 민주주의 운동의 핵심으로서 진정한 노동자운동의 부활을 통해 합쳐질 가능성도 있다. 결과는 구조적으로 미리 결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다. 결과는 멕시코 노동자계급과, 더 일반적으로 기층 계급들의 가슴과 정신을 향한 정치적-문화적-이데올로기적 투쟁에 달려있다. 노동통제의 구체제 또한 위기에 처해 있다.4) 이전에는 노동자를 통제하는 요새였던 공식노조는 이제 공격을 받고 있다. 하지만 노동자계급의 위기와 국가와 연계된 권위주의 즉 공식노조의 과두세력의 위기는 급진적인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에서 비롯된다. 하지만 두 개의 위기가 같은 것은 아니다. 공식노조의 관료주의가 처한 위기는 국가권력 블록 내에서 [공식 노조의] 주변화에 기인하며 신자유주의 프로젝트 속에서 통제 대리인으로서 역할이 궁극적으로는 불필요해지기 때문이다. 노동관료들은 국가의 대리인이라는 역할을 유지하려고 교묘한 술수를 부리고 있다. 공식노조기구의 위기는 노동자계급에게 기회와 위기를 동시에 제공한다. 기층이 통제하는 진정한 노조가 탄생할 가능성도 있지만, 새로운 코포라티즘5)이나 노조주의의 완전한 파괴라는 새로운 노동통제 형태가 발전할 위험 역시 존재한다. 노동 관료와 노동자계급이 처한 이중적인 위기는 멕시코 노동자계급 운동의 미래를 둘러싼 다면적인 투쟁을 낳았다. 노동자계급은 코포라티즘 노조주의라는 낡은 용기인 노동의회(CT)와 멕시코노동자총연맹(CTM)6)으로 다시 후퇴하거나 새로운 코포라티즘의 재생 용기인 노동자전국조합(UNT)으로 포섭될 것인가? 아니면 진정으로 민주적인 노조와 광범위한 노동자계급 운동에 대한 참여를 동반하는 새로운 형태의 조직과 투쟁을 발견할 것인가? 노동자계급의 다양성과 구조조정 과정에서 겪은 경험의 다양성은 자기-조직화와 전투성을 위한 다양한 잠재력을 창조한다. 경합하는 프로젝트들은 복잡하고 역동적인 상황을 만들어내는 아래로부터의 불만, 운동과 상호 작용한다. 노동자계급의 미래를 둘러싼 전투가 진행중이다. 투쟁의 결과는 노동자 운동의 미래를 결정할 것이고, 따라서 멕시코의 미래는 노동자계급이 주요한 행위자로 출현하느냐 그렇지 않느냐에 따라 구체화될 것이다. 노동시장의 변화 1990년대의 변화로 인해 노동시장의 구조는 심대한 변화를 겪었고, 다시 이 변화는 노동조합이 저항하는 형태와 [저항을 주도하는] 노동조합 부문의 변화를 낳았다. 우선 경제활동인구 중 다수 집단들이 직종을 불문하고 불안정고용 상태로 밀려났으며, 공식 고용에서 만성적인 일자리 불안과 파트타임 노동, 장기실업으로 이동했다. 두 번째로 노동자계급 중에서 공공부문 노동자의 비율이 증가했다. 경기역행수단인 공공지출의 성격 때문에 공공부문의 고용은 유지되었고, 이는 공공부문 노동자들의 응집력과 동원 능력의 기초를 제공했다. 세 번째, 위기로 인해 산업부문 고용[의 중심지가] 중동부에서 북부로 대규모로 재배치되었다. 노동력의 불안정고용 상태는 파트타임 고용의 증가에서 볼 수 있다. 파트타임 노동자는 1990년 410만 명에서 1996년 980만 명으로, 즉 전체 경제인구의 17.4%에서 28%로 증가했다.7) 멕시코 노동자 중에서 거의 3명 중 1명이 노동력의 주변적인 위치에 처하게 되었다. 도시고용에 관한 통계에서 얻을 수 있는 다른 지표들은 이런 변화를 확증한다. 노동시장은 점점 더 분할되고 있다. 주당 35시간 이상을 일하면서 최저임금 이하를 받는 노동자의 수가 1992년과 1996년 사이에 전체 피고용자의 4.7%에서 8.2%로 두 배로 뛰었다. 실질 임금으로 따졌을 때 1992년의 최저임금은 1996년보다 40% 더 높았다(Posada Garc a, 1998: 24). 따라서 전일 노동자의 26%가 4년 전의 최저임금 이하의 임금을 받고 있는 것이다. [보험, 연금 등] 급여에서 배제된 노동자의 수는 1992년에서 1996년 사이에 44%에서 49%로 증가했고, 5인 미만 사업장에서 근무하는 노동자의 수는 같은 기간에 41%에서 45%로 증가했다(INEGI, 1998c: 4). 1990년대 위기에서 출현한 노동자계급은 전통적인 조직화 방식을 따르기에는 훨씬 더 불리한 조건에 처해 있음을 스스로 깨달았다. 많은 노동자들이 다시 고용되었지만, 그들은 파트타임에 취직하거나, 중소기업에 고용되고, 건강을 해치는 조건에서 노동하게 되었다. 1995년의 높은 순 실업률의 시기가 지난 후 노동력의 재통합 과정은 심대한 건강 손상, 인구의 광범위한 부문에서 발생하는 심각한 영양실조, 노동자들의 생활 에너지의 빠른 고갈과 같이 매우 악화된 조건 속에서 이루어졌다.8) 새로운 노동시장의 두 번째 특징은 서비스부문의 압도적인 비중이다. 1990년에 공공·사회 서비스 부문(즉, 교육, 의료, 문화, 정보)에는 240만 명이 고용되어 있었다. 이 수치는 1996년에 350만 명으로 증가했다. 공공교육에 160만 명(고등교육에 30만 명), 공공의료체계에 50만 명(의사 12만 명, 준(準) 의료인과 보조직에 25만 명, 행정직과 관리직에 13만 명), 문화, 정보, 통신 부문에 28만 명 등이다. 사적 부문의 의료, 교육, 통신, 정보 서비스는 110만 명을 고용했다. 이 부문의 거대한 성장과 대대적인 사유화를 실행하는 정부의 무능력은 필연적으로 노동자들의 저항을 불러왔다. 1990년대 동안 공공·사회 서비스 부문의 노동자들은 점점 더 큰 동원 역량을 지닌 세력이자 노동조합 저항의 구심으로 부상했다. 교사, 운송노동자, 의료노동자와 다양한 공공부문 노동자들은 노동자 투쟁의 중심이 되었다. 그들의 노동이 재배치될 수 없다는 사실은 그들의 사회적 응집력을 보존하는 데 도움을 주었고 저항을 가능하게 했다(INEGI, 1997b: 165). 세 번째 특징은 산업의 대규모 지리적 구조조정이다. 멕시코는 1995년의 위기 이후 산업 프롤레타리아의 확장을 경험했다. 이런 확장은 북부에 있는 30개의 제조업 도시로 산업부문의 고용을 대량으로 재배치하는 것을 동반했다. 제조업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수는 1990년 450만 명에서 1996년 580만 명으로 증가했다.9) 대부분은 아주 영세한 산업이나 중소기업에 고용되었다. 북부 주(州)들의 제조업 노동력 비율은 1980년대 1/4 수준이었지만 1997년 1/2에 이르렀다.. 멕시코사회보장제도(IMSS)에 포함되는 4백만 노동자 중에 2백만 명이 현재 북부에 있다. 노동조합의 저항의 관점에서 보자면 제조업이 주로 북부로 재배치된 것은 독으로 작용했다. 노동조합의 투쟁을 통해 성과를 조직하고 성취할 수 있는 능력은 그 지역에 [법률로 명문화 되어있지 않았지만] 사실상 존재하는 두 개의 노동법에 의해 침식되었다. 북부지역의 노사관계의 특징은 고용의 개별화, 관리자가 직무를 규정할 수 있는 커다란 유연성, 단체협상의 제거, 작업조건에 대한 기업의 일방적인 결정 등이다. 이런 것들은 미국의 많은 주에 존재하는 반(反)노조 입법 "오픈숍"[노동조합에 가입하지 않은 노동자를 고용할 수 있는 제도], "일할 수 있는 권리 법안"(right to work)[노동조합에 가입하지 않아도 직장을 유지할 수 있다고 규정한 법, 즉 '노동조합이 노동자가 노동할 수 있는 권리를 제한할 수 없다'는 법] 등 의 멕시코 판이다(INEGI, 1998a: 17, 65, 표3). 이것은 사기꾼, 회사 혹은 공식노조가 관리하는 보호계약[멕시코의 어용노조(공식노조)와 사용자들이 노동자들도 모르게 맺는 단체협약. 정보가 공개되지 않으므로 노동자들은 자기가 어떤 노동계약을 맺었는지 알지 못한다]을 통해서 실현된다. 관리자의 절대권력은 전통적인 산업지역에서 노조 관료나 기층 조합원이 때때로 가할 수 있는 제약으로부터 자유로워진다. 실제로 북부지역에서 노사관계는 헌법의 123조10)나 노동법의 규제를 받지 않는다. 이런 전개는 낡은 코포라티즘의 논리와 방법을 통해 협상하는 공식노조의 능력을 크게 약화했다. 사유화 프로그램이 시작되면서 공공부문이 더 이상 산업에 포함되지 않게 되었고 전국 조합의 조합원은 급격히 감소했다. 사회임금을 협상한다는 생각은 포기되었고, 사회임금은 시장과 거대 독점자본의 강압적인 권력에 의해서 결정된다. 이런 상황은 지난 15년을 통틀어 파업의 수가 눈에 띄게 감소한 사실을 대체로 설명해준다. 1982년에 947번의 파업이 있었던 반면에, 1997년에는 단지 34번의 파업이 있었다. 대량해고, 단체협약 파기, 산업 재배치, 통제구조의 일신은 산업 노동력의 자율적인 조직화를 저해했다. 1990년대 멕시코 노동시장과 노동조합의 구조 1990년대 경제불황 시기에 출현한 새로운 노동시장은 멕시코에서 조직된 노동자운동의 지형을 바꿨다. 가장 현저한 변화는 1) 전국노조들의 위축, 2) 교육, 의료, 도시 공공서비스 부문에서 공공부문 노동조합의 양적·질적 강화, 3) 사적 부문 생산·서비스 분야, 특히 금융 관련 분야에 포함되는 노동자들의 노조 가입 하락 등이다. 전국노조들이 경험한 위기는 사유화와 구조조정의 직접적인 결과다. 가장 극적인 사례는 국영 철도다. 1990년에 국영 철도에 종사하는 노조 가입자는 9만5천 명이었지만, 1997년까지 3만 5천명으로 줄었다. 같은 기간에 석유노동자조합의 조합원은 18만에서 10만으로 줄었고, 멕시코전기노동자조합(SUTERM)(레오나르도 로드리게스 알카이네가 의장이었으며11) 그는 현재 CTM의 의장이다) 조합원은 8만에서 4만 5천으로 줄었고, 광산과 금속 노동조합의 조합원은 18만 3천에서 9만 8천으로 줄었다.12) 거대 전국산업조합들의 조직률은 1980년대 20%에서 세기의 마지막 해에는 7%로 떨어졌다. 이런 전국 조합들이 상대적으로 높은 조직률을 유지하고 있는데 반해, 전체 노동력과 경제구조에 비교해 볼 때 전통적인 산업 부문의 고용 비중은 대체로 줄어들었다(IMEGI, 1997c; Poder Ejecutivo Federal., 1997: 50). 대조적으로, 교육, 의료, 도시 서비스의 분야에서 공공부문 노동조합은 입지를 강화했고 조합원의 수도 증가했다. 그 이유는 1970년에서 1998년 사이에 4,800만에서 9,600만으로 두 배 증가한 인구로 인해 공공 서비스에 대한 요구가 증가했기 때문이다(INEGI, 1997c; Poder Ejecutivo Federal., 1997: 50). 초등교육에서 대학교육까지 포괄하는 교사노동조합은 200만 명의 조합원을 가진 나라에서 가장 커다란 노동조합이다. IMSS, 보건의료노조, 사회보장·사회서비스 노동조합(ISSSTE)의 50만 조합원들과 더불어, 교사노동조합은 멕시코 노동조합운동의 새롭고 역동적인 축을 구성하고 있다. 도시 공공서비스, 수질관리, 자연보존, 대도시 유지 부문의 노동조합 또한 수적인 힘을 유지한다. 지방자치단체공무원노조(SUTGDF)은 가장 강력하다. 지역에 뿌리를 둔 도시 공공서비스의 성격은 공공부문 노동조합의 지역적 힘의 기반을 제거하는 재배치 전략이 사용될 수 없게 했고, 도시화와 공공 서비스에 대한 요구의 증가는 고용이 계속 증가하는 요인이 되었다.13) 공공부문 서비스노동조합의 수적인 힘은 공공서비스가 사유화되거나 심각하게 감축되지 않는 한 인구성장에 따라서 계속 증가하는 경향을 보일 것이다. 국가는 노사관계에 대한 책임을 주 정부에게 넘기는 행정의 분산을 통해 공공부문 노동조합의 잠재력에 대항하려 했다. 이 전략은 연방정부 최정상에 대한 [노동조합의] 압력을 [각각의 주정부로] 빗겨나게 하여 교섭을 파편화하기 위한 것이지만, 현재까지 이 전략이 공공부문 노동조합을 약화하지는 못했다. 1988년과 1997년 사이에 교수, 교사, 의사, 간호사, 기술자, 약사, 첨단기술과 정보통신 기술자의 숫자는 크게 증가한 반면, 이들의 실질임금은 극적으로 감소했다. 공식적인 통계는 35% 감소했다고 추정하지만, 이 수치는 하위직과 상위 관리직을 모두 포함한 것이다. 만약 우리가 공공부문 하위직 노동자들만을 놓고 본다면, 실질임금의 감소는 50%를 넘는다(INEGI, 1997a). 국민총생산(GNP)에서 공공부문 임금이 차지하는 비율은 1982년 9.1%에서 1997년 3.5%로 줄었다. 이런 감소의 일부분은 공공부문 피고용인 중 연방정부의 피고용인과 분산된 공공부문 독립체의 피고용인의 비중이 줄었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러나 여기에 덧붙여서 1982년 이후 수많은 공유산업이 사유화된 결과로 국유산업의 많은 피고용인들이 해고되었다. 그렇지만 공공부문의 고용은 1982년 360만 명에서 1997년 440만 명으로 증가했다. 공공부문의 임금이 차지하는 비율이 줄어든 것은 국영 공공서비스에 고용된 노동자들의 실질임금이 삭감된 결과이지, 그들의 수가 감소한 결과가 아니다(Banco de M xico, 1998, section 1, Tables Ⅰ-53 to Ⅰ-58). 고용증가와 임금삭감의 결합은 폭발물이며 공공부문의 조직된 노동자들의 상대적인 전투성을 설명해준다. 공공부문 노동력의 조직화, 파업, 저항은 노동분쟁에 관한 공식적인 통계에 등록되지 않는다. 그리고 이런 통계누락은 노사관계의 평화와 노동의 완벽한 패배라는 신화를 조장한다.14) 공공부문 노동조합이 성장해 온 반면에, 사적 서비스 부문에서는 정반대의 일이 일어났다. 물론 경제 전반의 사유화는 노동조합을 결성할 수 있는 공식적인 권리를 지닌 기층 노동자부터 그런 권리가 없는 고위 관리직에 이르는 수십만 노동자들을 강제로 재분류한다. 외부하청의 활용 역시 노동조합을 피하기 위한 전술이다. 다른 한편, 가채용이나 임시직 상태에 처해 있는 노동자들의 취약성은 노동조합 조직화를 매우 어렵게 만든다. 이는 시장의 알맹이 부문을 차지하는 해외기업에게 허가한 수백 개의 자회사에서 분명히 드러난다. 결국 허가를 받은 민간 서비스 부문에서 노동조합 비율은 23%이고, 이는 전국 평균치보다 낮을 뿐만 아니라, 국영 공공서비스 부문 노동자들의 조직률 87%와 대조된다. 노동조합 조직률은 멕시코 노동운동이 직면한 모순과 도전을 보여준다. 모순과 도전은 전국조합들의 영향력 약화, 사유화와 단체협약의 유연화에 따른 전국조합의 감소, 국영 공공서비스 부문의 조합원 수 증가와 사유화에 저항하는 능력의 강화, 거대한 규모의 비조직 노동자의 존재 - 4명 중 3명, 또는 보호계약까지 고려한다면 6명 중 5명 - 등이다. 멕시코 노동 시장을 분석하면서 OECD는 실질임금 삭감에 영향을 미치기 위해 시장이 노동조합에 대해 거둔 승리를 자랑스럽게 강조한다. OECD는 조직 노동자와 비조직 노동자의 임금 격차를 지표로 사용한다. 1980년대 초, 조직된 노동자들의 임금은 비조직 노동자들보다 40% 높았다. 1992년 이러한 차이는 실제적으로 사라졌다. 비조직 노동자의 임금은 조직 노동자 임금의 97% 수준이 되었다(OECD, 1997: 89). 코포라티즘 70년과 신자유주의 경제정책 15년이 지난 후, 노조의 현실적인 협상력은 최저 수준이다. 그 결과 비조직 노동자의 임금이 상향 조정된 것이 아니라 조직 노동자의 임금이 하향 평준화되었다. 양쪽 모두 임금이 감소했지만, 조직 노동자의 임금은 훨씬 더 가파르게 줄었다. 구조조정, 재구성, 저항 구조조정이 노동계급에게 미친 영향은 균등하지 않다. 노동계급의 이전부터 존재하는 다양성과 구조조정의 차별적인 경험은 저항을 위한 노동계급 역량의 조건을 이룬다.15) 중동부 지역 전통산업의 심장부에서는 대량해고가 벌어졌다. 하지만 동시에 북부 마낄라도라 지역에서 대규모 고용증대가 있었다. 그러므로 예전 노동자계급은 상당히 분해되었고, 북부지역의 새로운 노동자들은 아직 지역적인 수준을 능가하는 도전을 시작할 수 있을 만한 위치와 고용의 안정성을 발전시키지 못했다. 이런 상황 때문에 산업 노동자계급의 저항 능력은 심대하게 변했다. 노동자계급의 주요한 저항은 공공부문 노동자들에게서 나왔는데, 그들의 숫자는 경제위기를 거치면서 지속적으로 증가했다. 가장 큰 문제는 아래로부터 형성된 이런 힘이 경쟁하고 있는 관료주의적 대안에 의해 이용될 것인지 아니면 자신들 스스로의 표현을 창출할 것인지 여부다. 마낄라도라의 노동자들은 초과착취의 조건에 직면해 있지만, 그들은 주로 새로 유입된 사람들이다. 그들이 더 광범위한 지역공동체와의 맺은 관계는 새롭고 끊어지기 쉽다. 공장들마다 노동조합을 조직하기 위한 마낄라도라 노동자들의 영웅적인 투쟁은 오직 일시적인 성과만을 얻을 수 있다. 마낄라도라에서는 정부와 자본이 노동조합을 깨뜨리기 위해 일반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도구들 - 기꺼이 [투쟁을] 진압하려는 정부, 절망적인 상태에 처해 있으며 계속 증가하는 산업예비군의 활용 가능성, 자본을 재배치할 수 있는 능력 - 이 훨씬 더 강력하다.16) 노동조합 조직은 [이러한 탄압에] 살아남을 수 있는 광범위한 노동자운동과 단단히 묶여야 한다. 마낄라도라 지역에서 노조의 장기적인 유효성은 정부와 경제정책의 성격을 바꾸는 데 달려있다. 노조는 그런 운동을 건설하기 위한 출발점일 수 있으며 그 운동에 튼튼한 중심이 될 수 있지만, 노조는 [정부와 경제정책의 성격을 바꾸는] 운동 없이 살아남을 수 없다. 마낄라도라 노동자들은 단지 자신의 임금과 노동조건에만 관심을 두는 빈 그릇이 아니다. 그들은 자신의 그릇에 전통과 고향의 지역공동체의 동시대적인 고통을 담으며, 가족의 유대, 경제적 이해, 사회적 관계, 정체성 등은 그들을 자신의 지역공동체와 여전히 연결해준다. 마낄라도라 노동자들의 투쟁은 오래 지속된 심각한 위기에 처한 사회와 체제 안에서 벌어지고 있다. 이 모든 것들은 노조와 여타의 사회적, 경제적 운동에 대한 그들의 반응에 영향을 줄 것이다. 또한 노동조합의 배타적인 관점에서 벌어지는 저항은 탈산업화된 지역의 노동자들에게 상처를 주기 쉽다. 단순한 노조주의로는 공장 폐쇄나 재배치를 막을 수 없다. 안정적인 노동에서 더욱 불안정한 노동이나 비공식 부문으로 밀려난 수많은 노동자들은 여전히 노동인구의 일부분이다. 그들은 과거의 역사와 멕시코 혁명의 전통에 뿌리를 둔 도덕 경제(moral economy)에 대한 관념을 지니고 있다. 점점 더 안정적인 정규직이 불가능한 상황에서 그들은 그런 일자리를 갈망한다. 그들은 여전히 경제적으로 황폐해진 지역공동체에 뿌리를 두고 있다. 이들이 행동에 나설 가능성은 두 축 사이에서 발견될 수 있다. 즉 그러한 가능성은 한편으로는 실업, 비공식부문의 활동, 생활조건의 급격한 악화, 작업장에서의 원자화(집합적인 장소의 노동자에서 비공식 부문의 개별적인 노동자로 변화)라는 사기 저하라는 축과 다른 한편으로는 고용, 주거, 사회서비스 등 정부와 기업이 공격하는 모든 것들을 최소한 회복하거나 최대한 향상시키겠다는 절박함이라는 축 사이에서 나타날 것이다. 이들은 취업자, 반(半)실업자, 실업자, 비공식 부문 노동자를 포함하는 광범위한 노동자운동의 일부가 될 가능성을 지니고 있다. 일부는 다양한 형태의 인민연합조직 지역운동, 노점상연합, 여타의 정치·사회운동 으로 조직된다. 노동조합으로 조직된 노동자들은 광범위한 노동자운동의 중심이 될 수 있다. 왜냐하면 노조가 조직과 전투성을 유지할 수 있는 가능성이 더 크기 때문이다. 하지만 노동조합 구성원에게만 초점을 맞추고 스스로를 노동자 대중으로부터 고립시키는 노동자운동은 노동자에게 긍정적인 의미가 거의 없다. 그뿐만 아니라 이러한 노동자운동은 지역적, 전국적으로 산업예비군으로 둘러싸여 있으며 [고용을] 재배치할 수 있는 자본의 능력에 직면하여 있으므로 성공을 거둘 가능성도 지극히 적다. 공공부문 노동자들에게는 중요한 저항의 능력이 있다. 그들의 공공부문 고용의 공적인 성격은 공공부문 노동조합의 요구가 정치적 권위만으로는 해결될 수 없음을 의미한다. 사실 그들의 요구는 IMF가 촉진하는 긴축정책과 단절을 요구하고, 그러한 요구는 공공서비스의 유지, 확장 혹은 악화와 연관을 맺으므로 불가피하게 사회적이다. 공공부문에서의 임금과 노동조건의 후퇴는 기초적인 공공서비스의 악화로 이어진다. 대부분의 공공부문 노동자들은 기층의 불만을 봉쇄하려는 공식 노조에 속해있다. 대부분의 공공부문 노조들 내부에는 [멕시코에서 주류를 차지하는 전통적인 어용노조에 반대하는] 반(反)주류적 경향이 형성되고 있으며, 그 중 일부는 메이데이노동조합조정위원회에 가입해있다. 우리는 공공부문의 전투성이 공공부문 고용의 지속적인 확장과 실질임금의 급격한 하락, 노동조건의 심각한 후퇴가 폭발적으로 결합한 데 따른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러한 사실은 오늘날 훨씬 더 중요한데, 왜냐하면 우리가 본 것처럼 멕시코 산업의 재배치와 구조조정의 결과로 사적 부문의 저항이 상대적으로 약화되었기 때문이다. 공공부문의 전투성은 때때로 공공서비스 유지에 대한 공통된 관심을 기초로 인민계급의 더 광범위한 부문과 소중한 관계를 강화할 수 있는 저항의 모델을 표현한다. 경합하는 전략들 공식 노조의 국가통제 독점은 붕괴 과정에 있다. 미래의 멕시코 노동자운동을 형성하기 위한 전투에는 세 개의 주요 흐름 CTM-CT, UNT, CIPM 이 포함되어 있다.17) 지역, 지방에서 벌어지는 소요의 다양성과 복잡성을 세세히 설명하는 것은 이 글의 범위를 넘는다. 다만 여기서 우리는 각각 특별한 역사와 고유한 성격을 지닌 여러 멕시코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다. 지역, 지방에서 진행되는 노동조합운동의 재편성 과정에서 논쟁이 없다는 게 [노동조합운동의] 전국적인 동질성을 의미한다고 받아들이면 안 된다.18) CTM-CT는 영향력과 권력의 새로운 기반을 암중모색하는 중이다. CTM-CT의 간부들이 기층 조합원에게 행사하는 권력은 대체로 CTM-CT가 체제와 맺는 관계에서 나온다. 국가의 노동입법은 CTM-CT의 힘을 지탱해주는 반면, 동시에 CTM-CT의 열망을 지배블록 내로 제한하는 데 기여한다. 항상 단체협상은 노조 관료가 자기 자신과 때때로 기층 조합원을 위한 성과를 얻으려고 통제된 조직력을 체제에 대한 지지와 결합하는 정치적인 과정이었다. CTM-CT의 영향력의 전통적인 기반은 매우 약해졌고, 지배 블록 내에서 CTM-CT의 역할은 매우 축소되었다. 노동시장과 정권의 전략이 변화함에 따라 예전 방식의 전술과 단순한 노조주의는 무력해졌다. 이런 노동 관료들은 자신들의 권력이 해체되는 것에 맞서서 보수적인 행동을 취하고 있다. 그들은 신자유주의 프로젝트에서 아무런 중요한 역할을 하지 않지만, 사실상 구조조정 과정에서 분할과 정복을 위한 그들의 역할만은 정권에게 유용하다. 비록 그들이 앞으로도 체제와 여당의 미래를 둘러싼 분파투쟁의 행위자이긴 하지만, 그들이 미래의 멕시코 정치와 노사관계에서 주요한 행위자가 될 것 같지는 않다. 공식노조의 "반(反)주류" 분파 대부분은 현재 UNT로 조직되어 있으며19) 그들의 전략은 신자유주의에 적합한 방식으로 노사관계를 현대화하는 것이다. 이들 분파의 관료들은 살리니스타 현대화20)를 지지했다. 그들은 단체협상에서 국가를 빼자고 요구했다. 이는 거대자본, IMF, 세계은행도 공유하는 목표였고, 역사적으로 멕시코 국가가 노동자조직을 교묘히 속이고 탄압하는 역할을 해왔으므로 커다란 호소력을 지닌 목표다. 하지만 [현재의 협상을] 대량실업과 반실업을 경험하고 있는 노동력과 강력한 기업 간의 시장이 주도하고 탈정치화된 단체협상으로 대체하는 것은 단지 노동에 대한 자본의 힘을 증가시킬 뿐이다. 현대화된 "새로운 관료주의자"와 자본 사이의 [국가에 의해] 중재되지 않는 협력이 국가가 강요하는 결탁을 대체할 것이다.21) 노동자들은 통제를 받는 피지배자로 남겠지만, 새로운 관료주의자들은 구래의 관료주의자들보다 국가의 직접적인 개입으로부터 더 많은 자율성을 얻게될 것이다. 새로운 관료주의자들은 지배정당과 정부요직에서 차지하는 자리를 유지함으로써 계속 지배구조로 통합된다. 그들은 국가가 직접적인 노사관계의 관리에서 철수하라고 요구했지만, 그들 자신이 집권정당의 지도적 위치로부터 철수하지는 않는다. 게다가 그들은 국가의 군사력 증강을 감축하라고 요구하지도 않는다. 그들의 강압적인 권력은 변하지 않은 채로 남아있고, 실제로는 [인민봉기에 대한] 군사진압과 신자유주의적 현대화 프로젝트를 유지하기 위해서 강화되었다. UNT의 교묘한 비정치적 태도는 지배집단 내부에서 투쟁하는 UNT 핵심 지도자들의 정치책략을 교묘히 숨긴다. 게다가 이런 태도는 노동자들의 권리를 보호하는데 필요한 법률적, 제도적 변화를 위한 노동자들의 정치투쟁을 가로막는다. 노동자계급은 도시와 지방의 광범위한 노동자 대중운동의 핵심 요소로서 노동자계급의 발전을 촉진하는 정치적 관점을 요구한다. 협소하고 비정치적인 노조주의는 노동자계급 운동을 조직된 노동자와 비조직된 노동자로 분할하고, 민주주의 이행을 보장한다는 정권의 주장을 신임한다. 그러므로 이는 민중운동의 이데올로기적이고 정치적인 무장해제에 기여하고 동시에 국가는 점차 강제적인 억압 수단들로 무장한다. 관료주의적인 노동운동의 분열 때문에 몇몇 작고 독립적인 노조와 연맹이 UNT에 들어갔다. 이들 개혁주의 경향은 UNT를 진정한 독립노조의 발전을 위한 매개체로 간주한다. 관료적 통제의 오랜 메커니즘이 약화됨에 따라서 관료주의적인 노동운동의 분열은 기층 노동자의 투쟁에게 기회로 보였다. 하지만 반(反)주류 관료에 의한 새로운 연맹의 형성은 민주적인 에너지가 권위주의적인 방식으로 계속 통제되는 구조에 갇힐 수 있는 위험으로 드러난다. 비록 UNT가 진보적이고 민주적인 요소를 약간 포함하더라도, UNT는 프란시스코 헤르난데스 후아레스(전화 노동자)와 같이 현대화된 관료의 지배를 받고 있다. 그리고 그는 계속해서 거대노조와 이들의 자원을 권위주의적으로 통제하며 지배집단과 연계를 맺고 있다. CTM-CT와 UNT는 모두 체계의 해체와 재구성에 적응하고자 하는 노동자운동 관료들이 통제하는 제도적 틀이다. 각각은 노동자계급의 전투성과 독립성을 봉쇄하기 위한 [국가 또는 자본과의] 협력 형태를 제안한다. 그러나 양자 모두 노동조합 내에서나 멕시코 사회 내에서 민주주의를 실행하지 않는다. CTM-CT는 독재체제의 구조적인 핵심의 일부였고 구 체계를 회복하고 싶어한다. CTM-CT는 노조 민주주의와 멕시코의 민주적 이행 양자 모두를 반대한다. UNT의 주요 지도자들은 제도혁명당(PRI)의 당원으로 남아있고, 경제 구조조정을 최우선으로 보는 살리니스타파와 결합되어있다. 그들은 민주적 이행을 경제 구조조정의 기본적인 과제에 대한 위협으로 간주하거나 부차적인 문제로 취급한다. 따라서 UNT는 대량빈곤과 점증하는 봉기/군사진압의 동학 한복판에서 비지니스 노조주의를 발전시키고자 한다. CTM-CT나 UNT 모두 노동조합과 정치 민주주의를 위한 투쟁의 매개체는 아니다. CIPM은 1995년 관료적 노조운동이 기층에 대한 통제력을 잃을까봐 노동절 투쟁을 포기했을 때 노동절 투쟁을 조직하기 위해 임시로 구성되면서 탄생했다. 그러므로 CIPM은 반(反)주류 경향의 노조, 민주적인 지역노조과 중앙노조, 지역공동체 운동, 다양한 좌파 조직들의 조직화를 위한 협의체로 출발했다. CIPM은 계속해서 노동절 투쟁을 조직해왔고, 현재 진행되는 노동자계급 운동으로서 더욱 명확한 정체성을 구축하려고 노력한다. CIPM에는 정치적 다양성이 존재하지만, CPIM은 노동자들의 권리를 아래로부터 쟁취해야만 하고 노동조합의 권리는 민주적 이행이 없이는 달성될 수도, 강화될 수도 없다는 관점을 공유하고 있다. 그리고 노동자운동은 노조 없이 노동하는 계급을 포괄하여 확대될 필요가 있다는 광범위한 합의도 존재한다. 그러므로 CIPM은 계급투쟁/민주주의 혁명의 관점에 기초하여 [인민]계급 내부의 기층의 통합을 지향한다. 그리고 CIPM은 점증하는 지역봉기와 동맹을 맺고 있다. CIPM과 싸빠티스타민족해방군(EZLN)은 투쟁의 연대를 표명해왔고, 싸빠티스타에 동감하는 시민들의 전국조직인 싸빠티스타해방전선(FZLN)은 CIPM의 일원이다. CTM-CT와 UNT 노조의 기층 반대파는 CIPM의 매우 중요한 일부분이다. CIPM은 새로운 노조를 이중으로 설립하는 것이 아니라 기존 노조를 민주적으로 통제하기 위한 싸움을 지지한다. CIPM은 노동자운동의 임무를 삼중으로 규정한다. 1) 빈곤화와 사유화를 추진하는 정치, 경제에 대항하는 즉각적인 투쟁, 2) 노조에서 민주적 통제권을 획득하기 위한 기층조합원의 투쟁, 3) 싸빠티스타를 비롯한 지역의 봉기세력과의 동맹 속에 멕시코의 민주적 이행을 위한 투쟁. 1997년 10월 CIPM의 첫 번째 전국회의에서는 UNT와의 관계 문제가 격렬하게 논의되었다. 며칠 간의 토론 후에 진행된 투표에서 (전국적으로 120개 조직에서 온) 400명의 선출된 대표자들 중 85%가 UNT에 가입하는 것에 반대했다. 이 결과는 독립조직으로서 정체성을 보존하기 위해 꼭 필요한 것이었고 동시에 UNT의 프로젝트가 노동자들의 프로젝트가 아니라 새로운 관료주의자들의 프로젝트라는 강력해 선언했다.22) CIPM과 UNT의 또 다른 핵심적인 의견차이는 조직의 포괄 범위에 관한 것이었다. UNT는 오직 노조만을 포괄하지만 CIPM은 노조뿐만 아니라 관료주의적 노조 내의 민주적 경향, 지역조합과 같은 다른 형태의 노동자조직도 포괄한다. 비판가들은 이런 식의 포괄은 노동조합 중앙으로서의 성격을 왜곡한다고 말하지만 CIPM의 목표는 노동조합 중앙이 되는 것을 넘어선다. CIPM의 목표는 노동자계급 기층의 봉기를 촉진하고, 그들의 통합을 돕는 것이다. CIPM의 관점에서 중심 요소는 다양한 형태의 노동자계급의 투쟁을 시민사회의 민주적 봉기와 결합하는 것이다. 선거활동, 특히 민주혁명당(PRD)에 대한 지지는 CIPM 내부의 중요한 쟁점이다. CIPM 내에는 자신의 [자율적인] 방침을 추구해야하고 노조와 계급투쟁이 선거활동에 종속되어서는 안 된다는 합의가 있다. 그러나 이런 합의가 있더라도, 선거를 통한 이행이 가능한가, 선거활동과 의회 밖의 활동을 어떻게 결합할 것인가, PRD의 성격과 앞으로의 궤적은 무엇인가(미국과 멕시코 자본을 달래기 위해서 자신을 온건한 정당으로 보이려는 PRD의 노력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에 대해서는 중요한 의견차이가 존재한다. 멕시코시티에서 PRD 정부가 당선되고 2000년 대통령 선거에서 PRD가 집권할 가능성이 높아진다면 자본을 달래려는 PRD의 시도와 빈곤화에 직면한 대중적 불만 사이의 긴장이 고조될 것이다. 이런 선거 동학은 농촌 주민들에 대한 전쟁이 강화되는 맥락에서 나타나고 있다. 또한 범죄와의 전쟁이라는 구실로 군사화가 진행되고 있다. 군대는 봉기진압전략의 일환으로 멕시코시티의 주요한 노동자계급 지역(아스카코트살코 같은 지역)을 순찰하기 시작했다. CIPM의 많은 구성원들은 비록 종종 비판적인 태도를 취할지라도 PRD의 열렬한 지지자인 반면, CIPM은 선거 민주주의로의 이행은 얄팍하게 가려진 쿠데타에 지나지 않으며, 어떤 경우에도 민주주의와 새로운 사회적, 경제적 방향성을 보장하지 않는다고 굳게 믿고 있다. CIPM은 멕시코의 민주주의와 새로운 정치, 경제를 위해 투쟁하고 있다. 결론 CTM-CT, UNT, CIPM 사이의 논쟁은 현재 상황을 어떻게 규정할 것인가, 행동을 위한 대안적 경로와 목적지는 무언인가를 두고 벌어지는 투쟁이다. 이 논쟁의 결과는 노동자계급과 멕시코의 미래에 결정적이다. 근본적인 문제는 노동자계급이 자신을 역사의 행위자로 구성할 수 있는 능력이다. CTM-CT와 UNT는 모두 노동자계급을 엘리트의 책략을 위한 병사로 보며, 집합적인 투쟁을 통해 자신의 제도를 통제하고 미래를 구성할 주체라기보다는 [엘리트의 이익을 위해] 동원될 수 있는 자원으로 본다. 그들은 노동자들을 노동자계급과 멕시코 사회의 더 광범위한 투쟁에서 고립시킬 전략들을 제안한다. 조직된 노동자 내부에서 헤게모니 세력으로서 CTM-CT와 UNT의 승리는 노동자계급의 패배이며 사회정의와 민주주의 이행을 위한 투쟁의 패배가 될 것이다. 문제는 CIPM의 승리가 아니라, 어떤 일반적 관점이 노동계급 내에서 우세해질 것인지에 달려 있다. CIPM과 다양한 지역, 지방의 운동들은 아래로부터의 계급투쟁과 민주주의 쟁취는 확고하게 연결된다고 생각한다. 위기와 급속한 발전의 시기에 노동자계급이 자신을 조직하는 형태는 다양할 것이다. 하지만 노동자계급이 자신의 삶과 역사를 자신의 손으로 선택해야 한다는 관념은 힘을 얻고 있으며 변화를 야기할 능력이 있다. 그것은 거대한 인민운동의 발전, 도시와 농촌의 노동자계급과 사이의 동맹을 가능하게 한다. 오직 이러한 운동만이 멕시코에서 정의와 민주주의를 이끌어낼 수 있다. 후기 (1998년 말) 이 글이 쓰여진 이래로 많은 것이 변했고 또한 아무 것도 변하지 않았다. 전국행동당(National Action Party, PAN)의 빈센트 폭스의 선거 승리는 변화와 지속 모두를 표현한다. 선거를 통해 PRI는 창당 이후 처음으로 대통령 직위에 대한 통제권을 잃었다. 그러나 이런 이행은 이미 선거 이전부터 진행되고 있었다. 최근 체제의 실질적인 정치권력은 PRI의 신자유주의 분파와 PAN의 동맹이며 정부정책의 형성하는 자본의 지도적인 역할은 점점 더 커지고 있다. 멕시코의 자본가계급의 분파들은 국가에 대한 더욱 직접적인 통제를 위해 오랫동안 투쟁했다. 그들의 투쟁은 PRI의 국가 통제라는 구체제에 반대하는 민주적인 시민사회의 투쟁과 동시에 일어났지만, 그들의 목표는 거대기업의 지배인가 아니면 시민사회의 지배인가라는 점에서 매우 달랐다. 새 내각의 핵심요직 임명을 보면 변화에 대한 어떤 관념이 우세한지 명확히 알 수 있다. 시민사회가 일부 자리에 등용되었지만, 핵심적인 경제요직에는 자본가계급의 성원들이 들어갔다. 진행 중인 멕시코의 신자유주의 이행은 짧은 시간 내에 약해지지 않을 것이다. 조직된 봉기가 부재한 가운데 시민사회와 국가로부터 자유로워진 자본의 승리는 공고해질 것이다. 사빠띠스따는 2001년 3월 치아파스 정글에서부터 멕시코시티에 이르는 사빠띠스따해방군의 역동적이고 평화로운 행진을 계획했다. 이 행진은 헌법에 원주민의 권리를 포함하라고 정부를 압박하는 시도이며 동시에 전국적 규모로 멕시코 피억압자의 새로운 사회블록을 형성하려는 시도다. 이때의 역사적인 수렴점 원주민, 농장노동자, 여성, 실업자, 노동자, 청년의 인파 은 신자유주의 프로젝트에 도전할 수 있는 새로운 시민봉기로 발전할 잠재력을 지녔다. 사빠띠스따는 그런 운동을 점화할 정치적, 도덕적인 지도력을 보유했다. 그들의 봉기는 광범위한 민중들 사이에서 희망을 되살렸고 지역과 원주민 사이에서 새로운 조직과 동원을 이끌었다. 하지만 산업화된 도시 지역에서는 농촌봉기만으로는 불충분하다. 봉기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노동자계급과 도시인민들이 그러한 봉기의 일부가 되어야 한다. 노동자계급 조직화는 현존하는 노조 내에서 기층의 민주적 봉기의 발전,23) 북부 마낄라도라 지역의 주요한 조직화 동력, 원주민과 지역봉기와의 동맹를 동반할 것이다. 멕시코 노동자계급과 멕시코 사회는 결정적인 분기점에 서 있다. 1) 이러한 선거체제를 새로운 권위주의 지배의 형태로 보는 개념은 Petras and Vieux(1994), Petras(1997), zirker(1998)에 의해 발전되었다. 다른 라틴 아메리카 나라들과 비교할 때, 멕시코 이행의 특수성은 1) 이행의 출발점이 멕시코의 독특한 문민 일당(一黨)/대통령중심 체제이고, 2) 다당제 선거체제를 위한 운동이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을 배경으로 군대의 영향력이 점증하는 것과 동시에 일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처치가 곤란한 경제위기는 은행의 위기가 심화하고 은행들이 대규모 구제금융을 받음에 따라 분명해진다. 본문으로 2) 이런 동학은 멕시코 군대 내에 조직된 반체제 그룹, <민중의 의식 고양을 위한 애국사령부>(Patriotic Command to Raise the People's Consciousness, CPCP)가 출현함으로써 더욱 확대된 것으로 보인다(La Jornada, 1998, 12, pp.19-26를 보라). 본문으로 3) 멕시코 언론은 1998년 여덟 개 주(州) 농촌 지역에서 일어난 무장봉기 집단의 행동을 보도했다. 그 중에서 오악사카, 구에레로, 히달고, 멕시코 주, 그리고 당연하게도 치아파스의 무장봉기가 가장 중요한 사건이었고, 구에레로 주의 엘차르코와 아토약, 오악사카 주의 로스록시차스 시내에서는 심각한 군사적 대치가 벌어졌다. 본문으로 4) 노동통제의 구체제를 일반적으로 코포라티즘이라 지칭하며 서로 밀접한 관계가 있는 다섯 가지 축에 기초를 두고 있다. 1) 노조 승인과 파업권을 국가가 통제할 수 있도록 하는 노동법, 2) 공식적으로 승인된 노조들의 지배정당과 국가 장치로의 통합, 3) [노동조합 내부의] 조직적인 과두지배세력의 일상적인 통제 메커니즘을 통한 권위주의적 통제뿐만 아니라, 국가의 법과 국가와의 연계에 기초한 노동조합 지도부의 노동조합에 대한 권위주의적 통제, 4) 어용노조의 관료주의자(charro)가 지휘하는 국가와 폭력단의 탄압, 5) 얼마간의 기간동안 유지되는 사회협약 - 이러한 사회협약은 노동자계급의 제한적 부문이 특히 사회임금(social wage) 영역에서 이득을 얻는 것을 허용한다(사회협약 가장 두드러졌던 때는 이른바 멕시코의 기적이라 불렸던 수입대체형 산업화의 시기였다). 공식 노조들은 지배정당의 일부이며, 노조 관료들은 노조와 지배정당, 정부의 요직을 동시에 또는 차례로 차지한다. 공식 노조들은 노동자계급 내의 국가 기구이며, 지도자들은 권력 브로커다. 이런 노조에 의한 동원―동원하겠다는 위협에 그칠 때가 더 많다―은 노조투쟁 또는 계급투쟁과 거의 관련이 없다. 오히려 그것은 [코포라티즘] 체제 내부 투쟁에서 활용하는 있는 카드거나 또는 진정한 행동을 요구하는 평조합원의 압력을 줄이는 하나의 방법이다. 이러한 노동통제 체계는 멕시코의 독특한 권위주의 체제의 발전에서 핵심 요소로 부상했다. 이것은 멕시코 혁명의 맥락에서만 이해될 수 있는데, 멕시코 혁명은 혁명적 수사법과 강력한 "노조"의 존재를 결합하여 대다수 "노조"와 [멕시코] 체제의 진정한 성격을 속이는 체제를 낳았다. 이런 체제가 도시 노동자들과 인민의 다른 부문들에 대한 공격과 가끔씩 있었던 양보 없이 쉽게 달성된 것은 아니었다. 사실 계속 재발하는 인민 봉기와 엘리트 사이의 분할은 체제의 불안정하고 반(半)-보나파르트적인 성격에서 기인한다. 본문으로 5) "새로운 코포라티즘"(neocorporatism)이라는 용어는 [코포라티즘에 대한] 비판가들에 의해 널리 쓰이고 있다. 하지만 사실 [새로운 코포라티즘을 옹호하는] 이러한 흐름은 근본적으로 신자유주의이며, 현대화, 유연화 등등을 위해 자본과 협력 관계를 형성해야 한다는 통념을 받아들인다. 이 흐름은 외형적으로는 더욱 부드러워졌지만 실제로는 노조와 사회에서 과두지배를 유지하려는 권위주의적인 비즈니스 노조주의의 한 형태다. 본문으로 6) CTM은 유력한 공식 노조연맹이고, 다양한 친(親)정권 노조연맹의 조직인 CT의 가장 중요한 구성원이다. 본문으로 7) 1990년의 수치는 인구조사에 기초를 두고 있는데, 그 조사는 파트타임 노동을 주당 노동시간이 33시간 이하 노동으로 정의한다. 1996년 수치는 전국고용통계에서 인용했는데, 여기서 파트타임 노동은 주당 34시간 이하 노동으로 정의한다. 이는 북아메리카의 전일(full-time) 노동과 거의 비슷하지만, 멕시코에서 그것은 지극히 필연적인 반(半)실업과 노동조건의 악화를 의미한다. 다음과 같은 점들은 이런 특성을 명확히 드러내준다. 1) 멕시코연방 노동법은 주당 노동시간을 48시간으로 규정한다. 멕시코에서 임금은 시간당이 아니라 일당으로 계산된다. 일주일에 6일 동안 5시간씩 일하는 사람은 반일(半日) 노동으로 간주되어 그에 준하는 임금을 받는다. 따라서 전일 노동자와 비교할 때 파트타임 노동자의 임금 감소 비율은 노동시간 감소 비율보다 훨씬 크다. 2) 전체 파트타임 노동자의 중 80%는 주당 노동시간이 25시간 미만이다. 3) 파트타임 노동자 대부분은 전혀 사회보장의 혜택을 받지 못한다. 본문으로 8) 멕시코의 주요 민간은행인 바나멕스는 1990년대를 통틀어 빈곤이 계속해서 증가했다고 지적했다. 빈곤상태에서 생활하는 멕시코인의 숫자는 4,700만 명―지방에 1,500만 명, 도시 지역에 3,200만 명―으로 증가했다(Banamex-Accival, 1998b: 442). 전국통계·지리·정보기구(INEGI)의 연구에 따르면 1996년에 가구의 64%, 대략 7,000만 명이 빈곤선 아래에 있었다. 빈곤선 아래의 숫자는 1992년에 비해 230만 명 증가한 것이다(INEGI, 1998b: 77-79). 본문으로 9) 산업부문에 고용된 [노동자 중에서] 아주 작은 비율만이 멕시코 사회보장제도에 등록되어 있다. 그렇지만 인구조사 자료는 산업 노동력이 증가했음을 보여준다. 1989년에 제조업 부문에서 사회보장에 등록된 노동자는 총 310만 명이었다. 1997년에 이 수치는 거의 400만 명에 달했다. 본문으로 10)123조는 1917년에 채택된 헌법의 유명한 노동 관련 조항이다. 이것은 여러 측면에서 진보적이고, 노동자의 권리를 방어하는 국가의 개입에 헌법적 기초를 제공한다. 그러나 이 조항은 또한 노동조합을 국가가 통제할 수 있는 기초를 제공한다. 노동자운동은 123조의 진보적 해석과 효과적인 실행을 위해 투쟁해왔다. 현재는 이 조항을 신자유주의에 부합하도록 바꾸자는 논의가 진행 중이다. 본문으로 11) 로드리게스 알카이네는 1975년 이래로 계속 SUTERM의 의장이었다. 그는 1919년 5월 1일에 텍스코코에서 태어났다. 61년 동안 CTM의 의장을 역임한 후 1997년 6월 21일에 96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 피델 벨라스케즈와 함께 로드리게스 알카이네는 멕시코 노동조합의 관료주의적 지배의 장수를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다. 그는 멕시코의 산업화 시기에 카를로스 행크 곤잘레스 교수가 이끄는 정치·경제 권력 그룹인 아틀라코물코 그룹과 결합했다. 아틀라코물코 그룹은 로드리게스가 1973년에서 1976년까지 제도혁명당(PRI)의 상원의원을 할 수 있게 해줬다. 로드리게스는 지방 정계의 보스로 사업가의 이해와 결합한 노조 관료의 전형적인 예다. 그는 1998년 2월 CTM 의장에 만장일치로 선출되었다. 본문으로 12) 설탕노조는 1988년에서 1997년 사이에 조합원 수가 5만 명에서 3만 명으로 감소했다. 석유화학노조는 조합원 수가 2만2천 명에서 1만 명으로 50% 이상 급감했다. 본문으로 13) 이것은 중앙전기전력회사 노조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멕시코공화국전화국노조도 비슷한 상황에 처해있지만, 새롭게 부상하는 전화회사가 자신을 대체할 수 있다는 위협을 느낀다. 민간전화산업에서 노조는 그 산업에 속한 노동자 전체를 대표하지 않으며 오히려 각 민간회사의 조합원만을 대표한다(Poder Ejecutivo Federa, 1997: Secci n de empleo y remuneraciones). 본문으로 14) 정부가 고용한 노동자들의 저항은 노동부나 연방 또는 지역의 쟁의조정중재위원회가 수합한 자료에 포함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들은 1960년에 개정된 헌법 123조 노동법규 B 부문에 속하는 노동자들이기 때문이다. B 부문은 그들의 파업권이나 노동조합 조직에 대해 강력한 규제조치를 부과한다. 본문으로 15) Banamex-Accival(1998a: 612-615)은 공공서비스 부문의 반(反)주류 노동조합인 UNT와 메이데이노동조합조정위원회(CIPM), 사적 부문의 공식, 기업별 노조주의의 상대적 집중을 설명한다. 본문으로 16) 공장 이전을 통해서 혹은 단순히 [도급] 계약자를 바꾸는 것을 통해서. 본문으로 17) 멕시코 노조 내에서 이 세력들의 새로운 상호관계는 Banamex-Accival의 1998년 5월 보고서(1998a: 197)에서 다뤄지고 있는데, 그 보고서는 CTM-CT, UNT, CIPM 사이의 싸움은 낡은 코포라티즘 모델을 변경할 필요성을 보여준다고 지적했다. 본문으로 18) 전국단위 이하의 수준에서 주목할만한 하나의 경향은 다양한 부문을 포괄하며 노조간 연계 형태를 지닌 조직의 중요성이 증대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형태의 좋은 사례는 <소노라 사회조직 확대전선>(FAOS)이다. FAOS는 3개의 전국조직(CT/CTM, UNT, CIPM)에 각각 공식적으로 가입해있는 다양한 조직들로 구성되어있다. 그러나 소노라 지역에서 그들은 매우 중요한 아래로부터의 재구성을 달성할 수 있었다. FAOS는 진보적이고 민주적인 강령을 지니고 있으며, 1998년 2월 소노라의 철도 시설을 점거했던 것과 같이 사유화에 저항하는 전투적 투쟁형태를 발전시켰다. FAOS의 기원과 구성은 FAOS가 CIPM과 매우 닮도록 했으나, 양자 사이에 조직적 연계는 없다. 또 하나의 흥미로은 사례는 <잘리스코 노동조합조정위원회>(CIDJ)인데, 이것은 FAOS와 매우 유사하지만 CIPM과 조직적 연계를 맺고 있다는 점에서 다르다. 특정한 주(州)에서 일어나는 투쟁은 고유한 특징과 동학을 가지고 있다. 베라크루스와 타바스코에 위치한 PEMEX(국영석유회사)의 해고 노동자들의 길고 전투적인 투쟁을 보라. 그리고 여러 사례들처럼 미국과 캐나다의 노조로부터 지원과 협력을 받는 마낄라도라, 특히 티주아나, 시우다드 후아레스, 시우다드 사쿠나 지역 노동자들의 길고 전투적인 투쟁을 보라. 이처럼 한 나라를 넘어선 연대를 보여주는 하나의 사례는 미국 남서부 지역의 전투적인 노조 세력과 연계를 맺고 있는 <코아후일라·타마울리파스 노동자 국경위원회>다. 또 다른 예는 마낄라도라 지역에서 투쟁과 파업의 다양한 경험인데, 이 곳에서는 미국전기노동자조합과 전미트럭운전사조합(Teamsters)이 실제로 노조를 세우기 위한 노력을 지원하고 있다. 본문으로 19) '반(反)주류' 공식노조들은 처음에 자신들을 <노동조합 포럼>으로 조직했다. UNT는 그 포럼에서 발전했다. 그러나 새롭고 대안적인 노동연맹의 형태를 둘러싼 분열이 발생했다. 정부를 지지하는 사람들이 이끄는 교사들의 조합인 <전국교육노동자조합>(SNTE)은 새로운 연맹을 반대했다. SNTE는 포럼의 창립 멤버 중 하나였지만 공식노조운동이 갈라지는 것에는 반대했다. 오랜 민주주의 전통을 지니며 포럼의 멤버였던 전력노동자조합(SME)은 UNT에 가입하는 것을 거부했다. SME는 UNT를 관료들의 내부투쟁을 위한 책략으로 보았다. 일부 소규모 독립적이고 민주적인 노조와 연맹들, 예를 들어 <진정한 노동전선>(FAT)은 포럼과 UNT 양자 모두에 가입했는데, 이들은 UNT가 진정한 노동운동을 위한 새로운 가능성을 제공한다고 믿었다. 본문으로 20) 1998년 12월 하순의 인터뷰에서, 헤르난데스 후아레스는 살리나스와 신자유주의 프로젝트에 대한 긍정적인 입장을 재차 천명했다(Martinez, 1998). 본문으로 21) 자본의 신자유주의 현대화 프로젝트에서 UNT 핵심 지도자들의 협력적인 입장은 1998년 2월 11일 상품·서비스조합연맹(FESEBES)과 멕시코고용주연합(COPARMEX) 사이에 체결된 협정으로 증명된다. FESEBES는 1990년에 카를로스 살리나스 대통령의 후원을 등에 업고 설립된 서비스부문노조(통신, 항공, 전력, 영상과 TV, 기타)와 동맹을 맺고 있다. 여기의 핵심 지도자들은 UNT의 핵심 지도자들이기도 하다. COPARMEX는 반-노동자적 고용주들의 연합이다. FESBES/UNT 지도자들은 정부의 감독 없이도 기업과 노동자가 협력할 수 있는 역사적인 단계로 나아갔다며 협정을 환영했다. 본문으로 22) UNT에 가입하는 것을 반대하는 핵심 논거는 UNT가 관료적 지도자들에게 정당성을 부여해 주었다는 것이다. 더불어 그 지도자들의 프로젝트는 노사관계를 신자유주의적으로 "현대화"하는 것이며, 이 프로젝트는 노동조합의 투쟁을 사회 정의와 민주적 이행을 요구하는 광범위한 인민 대중의 투쟁으로부터 고립시키려는 시도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 지도자들은 사실상 살리나스 분파와 연계되어 있으며, CTM-CT 대 UNT라는 대립은 체제 내에서 벌어지는 싸움의 일부일 뿐이라는 것이다. CIPM은 UNT나 다른 그룹들과의 전술적 동맹은 지지하지만 조직적인 통합은 반대한다. 본문으로 23) 2001년 1월에 SUTERM과 SNTE의 전국지도부 선출을 위한 노골적인 부정선거가 치러졌고, 이 때 새 대통령 빈센트 폭스는 전통적인 권위주의적 노조 관료들을 지지했다. 본문으로 참고문헌 Banamex-Accival (Banco Macional de M Xico y Acciones y Valores) 1998a Examen de la situaci n econ mico de M xico. Mexico City 1998b M xico social: 1996-1998. Mexico City Banco de M xico 1998 Indicadores econ micos. Mexico City INEGI (Instituto Nacional de Estand sticas, Geograf a e Inform tica) 1997a Anuario estad stico 1996. Mexico City: Secretar a de Programaci n y Presupuesto. 1997b Cuentas nacionales de 1996. Vol. 1. Mexico City: Secretar a de Programaci n y Presupuesto. 1998a Cuaderno de informaci n oportuna regional: Primer trimestre de 1998. Mexico City: Secretar a de Programaci n y Presupuesto. 1998b Encuesta de ingreso gasto de 1996. Mexico City: Secretar a de Programaci n y Presupuesto. 1998c Indicadores de empleo y desempleo enero de 1997. Mexico City: Secretar a de Programaci n y Presupues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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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계급의 적응과 항의의 사회적, 역사적 뿌리 번역: 정지영 (정책편집부장), 임필수 (정책편집국장) [편집자주] 리차드 로만은 토론토 대학에서 사회학을 가르치고 있다. 에뒤르 벨라스코 아레구이는 멕시코시티의 아스카포트살코에 있는 시립자치대학에서 경제학을 가르치며, <메이데이 노동조합조정위원회>의 설립자 중 한 명이다. 이 둘은 북미 대륙의 관점에서 본 멕시코 노동자계급에 관한 책을 곧 출간할 예정이다. 글의 출처는 다음과 같다. Richard Roman and Edur Velasco Arregui, Neoliberalism, Labor Market Transformation, and Working-Class Response: Social and Historical Roots of Accommodation and Protest, Latin American Perspective, Issue 119, Vol 28 No 4, July 2001 52-71. 지면의 제약 때문에 참고문헌은 생략했지만 {사회운동} 웹사이트에서 볼 수 있다. 멕시코 체제는 이중의 위기 속에서 곤경을 겪고 있다. 하나는 축적 모델의 위기고 다른 하나는 정당성을 획득하는 방식의 위기다. 이 위기의 해결책에는 긴장과 모순이 가득 차있다. 정치적 자유화는 무자비한 신자유주의 구조조정 계획과 충돌한다. 한편으로 불완전하고 제한적인 선거 개혁과 다른 한편으로 [치아파스를 포함한 여러] 지역의 봉기와 군사적 진압 과정간의 분기 속에서 긴장을 발견할 수 있다. 인민들이 선거 개혁을 통한 변화를 계속 갈망함에 따라 멕시코 체제는 점점 더 군사화하고 있다. 노동자들은 지난 20년 동안 임금, 일자리, 삶의 질에 대한 맹렬한 공격을 경험했다. 멕시코 노동자계급은 기로에 서있다. 멕시코 노동자 계급이 택하는 방향이 멕시코의 미래에 그리고 사실상 북아메리카의 미래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다. 멕시코의 도시 인구 75%와 심지어 농촌 인구 50%가 자신의 노동력을 팔아 생계를 유지하는 게 사실이지만 위기와 변화의 시기에 멕시코 노동자계급의 잠재적 역할은 대체로 무시되었다. 이 글은 멕시코의 극적 상황에서 노동자계급이 무대 중앙에 출연할 가능성을 검토하고자 한다. 경제적, 정치적 위기의 심화는 유동적인 상황을 낳으며 그 속에서 상호 연관된 세 가지 과정이 노동자계급의 역할을 형성하고 있다. 세 가지 과정이란 멕시코 자본주의의 구조조정을 통한 노동자계급의 재구성, 전통적인 노동통제 형태의 약화, 새로운 맥락에서 노동자계급 운동을 형성하는 정치적-이데올로기적-문화적 투쟁을 말한다. 멕시코의 변화를 두고 경합하는 프로젝트들이 존재한다. 미국의 관점에서 볼 때 바람직한 경로는 신자유주의를 지향하는 경제의 변화와 정치적으로 짝을 이루는 온건한 선거 이행이다. 이는 불신 받는 권위주의 체제를 새로운 권위주의 선거체제로 대체할 것이다.1) 경제 구조조정에 따르는 인간적 고통에 대한 항의를 억압하는 [멕시코 체제의] 대응은 봉기/군사진압이라는 동학을 초래하고 있다.2) 이미 지방에서는 폭발적인 불만이 나타났다. 치아파스의 사빠띠스타 봉기는 저항의 희망을 일신했고, 농촌에서 항의운동이 지속되도록 힘을 주었다. 게다가 몇몇 다른 주들에서도 무장 봉기가 일어나고 있다.3) 멕시코 정부의 대응은 미국의 도움을 받아 통제 방식을 더 군사화하는 것이었다. 신자유주의와 미국 제국주의는 자신의 프로젝트에 대한 도전을 쉽사리 묵인하지 않는다. 신자유주의의 권위주의 동학을 견제할 수 있는 유일한 힘은 진정한 정치 민주주의에 대한 요구와 경제적, 사회적 정의에 대한 요구를 결합한 민주주의 운동이다. 멕시코에서 참된 민주주의 이행은 신자유주의와 결합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신자유주의를 반대하며 이루어져야 한다. 그것은 인민의 기회와 권력을 확장하려는 인민의 희망을 일신하는 포괄적인 경제 전략을 동반해야 한다. 이러한 운동을 건설할 수 있는 세력은 불만을 품은 농촌 부문과 동맹을 맺은 노동자계급뿐이다. 하지만 이처럼 근본적이고 민주적인 변혁은 신자유주의 정책과 자본의 이해와 정면으로 충돌하며 따라서 신속히 성장하고 있는 [멕시코정부와 미국 제국주의의] 반혁명적인 대응을 강화할 것이다. 노동자계급이 이런 역할을 수행할 수 있을까? 자본주의 구조조정은 노동자계급을 희생시킬 뿐만 아니라 신속히 재구성한다. 사실 노동자계급과, 더 일반적으로 도시 빈민에 대한 공격은 아직 광범위하고 굽히지 않는 저항과 반대 운동을 초래하지 않았다. 이런 공격이 수많은 폭발적인 저항과 전투성을 야기했지만, 이는 분할된 채로 남아 있고 계속 유지되기 어려운 상태에 머물러있다. 자본주의 구조조정은 노동자 투쟁에 새로운 장애물과 새로운 가능성을 창조했다. 구조조정은 명백히 불공평한 조건에서 엄청난 인간적 고통을 낳았다. 정당성의 위기와 더불어 절대적이며 상대적인 박탈은 강력한 불만을 초래했다. 이런 불만의 에너지는 살아남으려는 일상의 투쟁으로 흩어져 버리거나 아직 고용되어 있는 사람들의 협소하고 방어적인 투쟁 수준으로 억눌릴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에너지는 전국적인 민주주의 운동의 핵심으로서 진정한 노동자운동의 부활을 통해 합쳐질 가능성도 있다. 결과는 구조적으로 미리 결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다. 결과는 멕시코 노동자계급과, 더 일반적으로 기층 계급들의 가슴과 정신을 향한 정치적-문화적-이데올로기적 투쟁에 달려있다. 노동통제의 구체제 또한 위기에 처해 있다.4) 이전에는 노동자를 통제하는 요새였던 공식노조는 이제 공격을 받고 있다. 하지만 노동자계급의 위기와 국가와 연계된 권위주의 즉 공식노조의 과두세력의 위기는 급진적인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에서 비롯된다. 하지만 두 개의 위기가 같은 것은 아니다. 공식노조의 관료주의가 처한 위기는 국가권력 블록 내에서 [공식 노조의] 주변화에 기인하며 신자유주의 프로젝트 속에서 통제 대리인으로서 역할이 궁극적으로는 불필요해지기 때문이다. 노동관료들은 국가의 대리인이라는 역할을 유지하려고 교묘한 술수를 부리고 있다. 공식노조기구의 위기는 노동자계급에게 기회와 위기를 동시에 제공한다. 기층이 통제하는 진정한 노조가 탄생할 가능성도 있지만, 새로운 코포라티즘5)이나 노조주의의 완전한 파괴라는 새로운 노동통제 형태가 발전할 위험 역시 존재한다. 노동 관료와 노동자계급이 처한 이중적인 위기는 멕시코 노동자계급 운동의 미래를 둘러싼 다면적인 투쟁을 낳았다. 노동자계급은 코포라티즘 노조주의라는 낡은 용기인 노동의회(CT)와 멕시코노동자총연맹(CTM)6)으로 다시 후퇴하거나 새로운 코포라티즘의 재생 용기인 노동자전국조합(UNT)으로 포섭될 것인가? 아니면 진정으로 민주적인 노조와 광범위한 노동자계급 운동에 대한 참여를 동반하는 새로운 형태의 조직과 투쟁을 발견할 것인가? 노동자계급의 다양성과 구조조정 과정에서 겪은 경험의 다양성은 자기-조직화와 전투성을 위한 다양한 잠재력을 창조한다. 경합하는 프로젝트들은 복잡하고 역동적인 상황을 만들어내는 아래로부터의 불만, 운동과 상호 작용한다. 노동자계급의 미래를 둘러싼 전투가 진행중이다. 투쟁의 결과는 노동자 운동의 미래를 결정할 것이고, 따라서 멕시코의 미래는 노동자계급이 주요한 행위자로 출현하느냐 그렇지 않느냐에 따라 구체화될 것이다. 노동시장의 변화 1990년대의 변화로 인해 노동시장의 구조는 심대한 변화를 겪었고, 다시 이 변화는 노동조합이 저항하는 형태와 [저항을 주도하는] 노동조합 부문의 변화를 낳았다. 우선 경제활동인구 중 다수 집단들이 직종을 불문하고 불안정고용 상태로 밀려났으며, 공식 고용에서 만성적인 일자리 불안과 파트타임 노동, 장기실업으로 이동했다. 두 번째로 노동자계급 중에서 공공부문 노동자의 비율이 증가했다. 경기역행수단인 공공지출의 성격 때문에 공공부문의 고용은 유지되었고, 이는 공공부문 노동자들의 응집력과 동원 능력의 기초를 제공했다. 세 번째, 위기로 인해 산업부문 고용[의 중심지가] 중동부에서 북부로 대규모로 재배치되었다. 노동력의 불안정고용 상태는 파트타임 고용의 증가에서 볼 수 있다. 파트타임 노동자는 1990년 410만 명에서 1996년 980만 명으로, 즉 전체 경제인구의 17.4%에서 28%로 증가했다.7) 멕시코 노동자 중에서 거의 3명 중 1명이 노동력의 주변적인 위치에 처하게 되었다. 도시고용에 관한 통계에서 얻을 수 있는 다른 지표들은 이런 변화를 확증한다. 노동시장은 점점 더 분할되고 있다. 주당 35시간 이상을 일하면서 최저임금 이하를 받는 노동자의 수가 1992년과 1996년 사이에 전체 피고용자의 4.7%에서 8.2%로 두 배로 뛰었다. 실질 임금으로 따졌을 때 1992년의 최저임금은 1996년보다 40% 더 높았다(Posada Garc a, 1998: 24). 따라서 전일 노동자의 26%가 4년 전의 최저임금 이하의 임금을 받고 있는 것이다. [보험, 연금 등] 급여에서 배제된 노동자의 수는 1992년에서 1996년 사이에 44%에서 49%로 증가했고, 5인 미만 사업장에서 근무하는 노동자의 수는 같은 기간에 41%에서 45%로 증가했다(INEGI, 1998c: 4). 1990년대 위기에서 출현한 노동자계급은 전통적인 조직화 방식을 따르기에는 훨씬 더 불리한 조건에 처해 있음을 스스로 깨달았다. 많은 노동자들이 다시 고용되었지만, 그들은 파트타임에 취직하거나, 중소기업에 고용되고, 건강을 해치는 조건에서 노동하게 되었다. 1995년의 높은 순 실업률의 시기가 지난 후 노동력의 재통합 과정은 심대한 건강 손상, 인구의 광범위한 부문에서 발생하는 심각한 영양실조, 노동자들의 생활 에너지의 빠른 고갈과 같이 매우 악화된 조건 속에서 이루어졌다.8) 새로운 노동시장의 두 번째 특징은 서비스부문의 압도적인 비중이다. 1990년에 공공·사회 서비스 부문(즉, 교육, 의료, 문화, 정보)에는 240만 명이 고용되어 있었다. 이 수치는 1996년에 350만 명으로 증가했다. 공공교육에 160만 명(고등교육에 30만 명), 공공의료체계에 50만 명(의사 12만 명, 준(準) 의료인과 보조직에 25만 명, 행정직과 관리직에 13만 명), 문화, 정보, 통신 부문에 28만 명 등이다. 사적 부문의 의료, 교육, 통신, 정보 서비스는 110만 명을 고용했다. 이 부문의 거대한 성장과 대대적인 사유화를 실행하는 정부의 무능력은 필연적으로 노동자들의 저항을 불러왔다. 1990년대 동안 공공·사회 서비스 부문의 노동자들은 점점 더 큰 동원 역량을 지닌 세력이자 노동조합 저항의 구심으로 부상했다. 교사, 운송노동자, 의료노동자와 다양한 공공부문 노동자들은 노동자 투쟁의 중심이 되었다. 그들의 노동이 재배치될 수 없다는 사실은 그들의 사회적 응집력을 보존하는 데 도움을 주었고 저항을 가능하게 했다(INEGI, 1997b: 165). 세 번째 특징은 산업의 대규모 지리적 구조조정이다. 멕시코는 1995년의 위기 이후 산업 프롤레타리아의 확장을 경험했다. 이런 확장은 북부에 있는 30개의 제조업 도시로 산업부문의 고용을 대량으로 재배치하는 것을 동반했다. 제조업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수는 1990년 450만 명에서 1996년 580만 명으로 증가했다.9) 대부분은 아주 영세한 산업이나 중소기업에 고용되었다. 북부 주(州)들의 제조업 노동력 비율은 1980년대 1/4 수준이었지만 1997년 1/2에 이르렀다.. 멕시코사회보장제도(IMSS)에 포함되는 4백만 노동자 중에 2백만 명이 현재 북부에 있다. 노동조합의 저항의 관점에서 보자면 제조업이 주로 북부로 재배치된 것은 독으로 작용했다. 노동조합의 투쟁을 통해 성과를 조직하고 성취할 수 있는 능력은 그 지역에 [법률로 명문화 되어있지 않았지만] 사실상 존재하는 두 개의 노동법에 의해 침식되었다. 북부지역의 노사관계의 특징은 고용의 개별화, 관리자가 직무를 규정할 수 있는 커다란 유연성, 단체협상의 제거, 작업조건에 대한 기업의 일방적인 결정 등이다. 이런 것들은 미국의 많은 주에 존재하는 반(反)노조 입법 "오픈숍"[노동조합에 가입하지 않은 노동자를 고용할 수 있는 제도], "일할 수 있는 권리 법안"(right to work)[노동조합에 가입하지 않아도 직장을 유지할 수 있다고 규정한 법, 즉 '노동조합이 노동자가 노동할 수 있는 권리를 제한할 수 없다'는 법] 등 의 멕시코 판이다(INEGI, 1998a: 17, 65, 표3). 이것은 사기꾼, 회사 혹은 공식노조가 관리하는 보호계약[멕시코의 어용노조(공식노조)와 사용자들이 노동자들도 모르게 맺는 단체협약. 정보가 공개되지 않으므로 노동자들은 자기가 어떤 노동계약을 맺었는지 알지 못한다]을 통해서 실현된다. 관리자의 절대권력은 전통적인 산업지역에서 노조 관료나 기층 조합원이 때때로 가할 수 있는 제약으로부터 자유로워진다. 실제로 북부지역에서 노사관계는 헌법의 123조10)나 노동법의 규제를 받지 않는다. 이런 전개는 낡은 코포라티즘의 논리와 방법을 통해 협상하는 공식노조의 능력을 크게 약화했다. 사유화 프로그램이 시작되면서 공공부문이 더 이상 산업에 포함되지 않게 되었고 전국 조합의 조합원은 급격히 감소했다. 사회임금을 협상한다는 생각은 포기되었고, 사회임금은 시장과 거대 독점자본의 강압적인 권력에 의해서 결정된다. 이런 상황은 지난 15년을 통틀어 파업의 수가 눈에 띄게 감소한 사실을 대체로 설명해준다. 1982년에 947번의 파업이 있었던 반면에, 1997년에는 단지 34번의 파업이 있었다. 대량해고, 단체협약 파기, 산업 재배치, 통제구조의 일신은 산업 노동력의 자율적인 조직화를 저해했다. 1990년대 멕시코 노동시장과 노동조합의 구조 1990년대 경제불황 시기에 출현한 새로운 노동시장은 멕시코에서 조직된 노동자운동의 지형을 바꿨다. 가장 현저한 변화는 1) 전국노조들의 위축, 2) 교육, 의료, 도시 공공서비스 부문에서 공공부문 노동조합의 양적·질적 강화, 3) 사적 부문 생산·서비스 분야, 특히 금융 관련 분야에 포함되는 노동자들의 노조 가입 하락 등이다. 전국노조들이 경험한 위기는 사유화와 구조조정의 직접적인 결과다. 가장 극적인 사례는 국영 철도다. 1990년에 국영 철도에 종사하는 노조 가입자는 9만5천 명이었지만, 1997년까지 3만 5천명으로 줄었다. 같은 기간에 석유노동자조합의 조합원은 18만에서 10만으로 줄었고, 멕시코전기노동자조합(SUTERM)(레오나르도 로드리게스 알카이네가 의장이었으며11) 그는 현재 CTM의 의장이다) 조합원은 8만에서 4만 5천으로 줄었고, 광산과 금속 노동조합의 조합원은 18만 3천에서 9만 8천으로 줄었다.12) 거대 전국산업조합들의 조직률은 1980년대 20%에서 세기의 마지막 해에는 7%로 떨어졌다. 이런 전국 조합들이 상대적으로 높은 조직률을 유지하고 있는데 반해, 전체 노동력과 경제구조에 비교해 볼 때 전통적인 산업 부문의 고용 비중은 대체로 줄어들었다(IMEGI, 1997c; Poder Ejecutivo Federal., 1997: 50). 대조적으로, 교육, 의료, 도시 서비스의 분야에서 공공부문 노동조합은 입지를 강화했고 조합원의 수도 증가했다. 그 이유는 1970년에서 1998년 사이에 4,800만에서 9,600만으로 두 배 증가한 인구로 인해 공공 서비스에 대한 요구가 증가했기 때문이다(INEGI, 1997c; Poder Ejecutivo Federal., 1997: 50). 초등교육에서 대학교육까지 포괄하는 교사노동조합은 200만 명의 조합원을 가진 나라에서 가장 커다란 노동조합이다. IMSS, 보건의료노조, 사회보장·사회서비스 노동조합(ISSSTE)의 50만 조합원들과 더불어, 교사노동조합은 멕시코 노동조합운동의 새롭고 역동적인 축을 구성하고 있다. 도시 공공서비스, 수질관리, 자연보존, 대도시 유지 부문의 노동조합 또한 수적인 힘을 유지한다. 지방자치단체공무원노조(SUTGDF)은 가장 강력하다. 지역에 뿌리를 둔 도시 공공서비스의 성격은 공공부문 노동조합의 지역적 힘의 기반을 제거하는 재배치 전략이 사용될 수 없게 했고, 도시화와 공공 서비스에 대한 요구의 증가는 고용이 계속 증가하는 요인이 되었다.13) 공공부문 서비스노동조합의 수적인 힘은 공공서비스가 사유화되거나 심각하게 감축되지 않는 한 인구성장에 따라서 계속 증가하는 경향을 보일 것이다. 국가는 노사관계에 대한 책임을 주 정부에게 넘기는 행정의 분산을 통해 공공부문 노동조합의 잠재력에 대항하려 했다. 이 전략은 연방정부 최정상에 대한 [노동조합의] 압력을 [각각의 주정부로] 빗겨나게 하여 교섭을 파편화하기 위한 것이지만, 현재까지 이 전략이 공공부문 노동조합을 약화하지는 못했다. 1988년과 1997년 사이에 교수, 교사, 의사, 간호사, 기술자, 약사, 첨단기술과 정보통신 기술자의 숫자는 크게 증가한 반면, 이들의 실질임금은 극적으로 감소했다. 공식적인 통계는 35% 감소했다고 추정하지만, 이 수치는 하위직과 상위 관리직을 모두 포함한 것이다. 만약 우리가 공공부문 하위직 노동자들만을 놓고 본다면, 실질임금의 감소는 50%를 넘는다(INEGI, 1997a). 국민총생산(GNP)에서 공공부문 임금이 차지하는 비율은 1982년 9.1%에서 1997년 3.5%로 줄었다. 이런 감소의 일부분은 공공부문 피고용인 중 연방정부의 피고용인과 분산된 공공부문 독립체의 피고용인의 비중이 줄었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러나 여기에 덧붙여서 1982년 이후 수많은 공유산업이 사유화된 결과로 국유산업의 많은 피고용인들이 해고되었다. 그렇지만 공공부문의 고용은 1982년 360만 명에서 1997년 440만 명으로 증가했다. 공공부문의 임금이 차지하는 비율이 줄어든 것은 국영 공공서비스에 고용된 노동자들의 실질임금이 삭감된 결과이지, 그들의 수가 감소한 결과가 아니다(Banco de M xico, 1998, section 1, Tables Ⅰ-53 to Ⅰ-58). 고용증가와 임금삭감의 결합은 폭발물이며 공공부문의 조직된 노동자들의 상대적인 전투성을 설명해준다. 공공부문 노동력의 조직화, 파업, 저항은 노동분쟁에 관한 공식적인 통계에 등록되지 않는다. 그리고 이런 통계누락은 노사관계의 평화와 노동의 완벽한 패배라는 신화를 조장한다.14) 공공부문 노동조합이 성장해 온 반면에, 사적 서비스 부문에서는 정반대의 일이 일어났다. 물론 경제 전반의 사유화는 노동조합을 결성할 수 있는 공식적인 권리를 지닌 기층 노동자부터 그런 권리가 없는 고위 관리직에 이르는 수십만 노동자들을 강제로 재분류한다. 외부하청의 활용 역시 노동조합을 피하기 위한 전술이다. 다른 한편, 가채용이나 임시직 상태에 처해 있는 노동자들의 취약성은 노동조합 조직화를 매우 어렵게 만든다. 이는 시장의 알맹이 부문을 차지하는 해외기업에게 허가한 수백 개의 자회사에서 분명히 드러난다. 결국 허가를 받은 민간 서비스 부문에서 노동조합 비율은 23%이고, 이는 전국 평균치보다 낮을 뿐만 아니라, 국영 공공서비스 부문 노동자들의 조직률 87%와 대조된다. 노동조합 조직률은 멕시코 노동운동이 직면한 모순과 도전을 보여준다. 모순과 도전은 전국조합들의 영향력 약화, 사유화와 단체협약의 유연화에 따른 전국조합의 감소, 국영 공공서비스 부문의 조합원 수 증가와 사유화에 저항하는 능력의 강화, 거대한 규모의 비조직 노동자의 존재 - 4명 중 3명, 또는 보호계약까지 고려한다면 6명 중 5명 - 등이다. 멕시코 노동 시장을 분석하면서 OECD는 실질임금 삭감에 영향을 미치기 위해 시장이 노동조합에 대해 거둔 승리를 자랑스럽게 강조한다. OECD는 조직 노동자와 비조직 노동자의 임금 격차를 지표로 사용한다. 1980년대 초, 조직된 노동자들의 임금은 비조직 노동자들보다 40% 높았다. 1992년 이러한 차이는 실제적으로 사라졌다. 비조직 노동자의 임금은 조직 노동자 임금의 97% 수준이 되었다(OECD, 1997: 89). 코포라티즘 70년과 신자유주의 경제정책 15년이 지난 후, 노조의 현실적인 협상력은 최저 수준이다. 그 결과 비조직 노동자의 임금이 상향 조정된 것이 아니라 조직 노동자의 임금이 하향 평준화되었다. 양쪽 모두 임금이 감소했지만, 조직 노동자의 임금은 훨씬 더 가파르게 줄었다. 구조조정, 재구성, 저항 구조조정이 노동계급에게 미친 영향은 균등하지 않다. 노동계급의 이전부터 존재하는 다양성과 구조조정의 차별적인 경험은 저항을 위한 노동계급 역량의 조건을 이룬다.15) 중동부 지역 전통산업의 심장부에서는 대량해고가 벌어졌다. 하지만 동시에 북부 마낄라도라 지역에서 대규모 고용증대가 있었다. 그러므로 예전 노동자계급은 상당히 분해되었고, 북부지역의 새로운 노동자들은 아직 지역적인 수준을 능가하는 도전을 시작할 수 있을 만한 위치와 고용의 안정성을 발전시키지 못했다. 이런 상황 때문에 산업 노동자계급의 저항 능력은 심대하게 변했다. 노동자계급의 주요한 저항은 공공부문 노동자들에게서 나왔는데, 그들의 숫자는 경제위기를 거치면서 지속적으로 증가했다. 가장 큰 문제는 아래로부터 형성된 이런 힘이 경쟁하고 있는 관료주의적 대안에 의해 이용될 것인지 아니면 자신들 스스로의 표현을 창출할 것인지 여부다. 마낄라도라의 노동자들은 초과착취의 조건에 직면해 있지만, 그들은 주로 새로 유입된 사람들이다. 그들이 더 광범위한 지역공동체와의 맺은 관계는 새롭고 끊어지기 쉽다. 공장들마다 노동조합을 조직하기 위한 마낄라도라 노동자들의 영웅적인 투쟁은 오직 일시적인 성과만을 얻을 수 있다. 마낄라도라에서는 정부와 자본이 노동조합을 깨뜨리기 위해 일반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도구들 - 기꺼이 [투쟁을] 진압하려는 정부, 절망적인 상태에 처해 있으며 계속 증가하는 산업예비군의 활용 가능성, 자본을 재배치할 수 있는 능력 - 이 훨씬 더 강력하다.16) 노동조합 조직은 [이러한 탄압에] 살아남을 수 있는 광범위한 노동자운동과 단단히 묶여야 한다. 마낄라도라 지역에서 노조의 장기적인 유효성은 정부와 경제정책의 성격을 바꾸는 데 달려있다. 노조는 그런 운동을 건설하기 위한 출발점일 수 있으며 그 운동에 튼튼한 중심이 될 수 있지만, 노조는 [정부와 경제정책의 성격을 바꾸는] 운동 없이 살아남을 수 없다. 마낄라도라 노동자들은 단지 자신의 임금과 노동조건에만 관심을 두는 빈 그릇이 아니다. 그들은 자신의 그릇에 전통과 고향의 지역공동체의 동시대적인 고통을 담으며, 가족의 유대, 경제적 이해, 사회적 관계, 정체성 등은 그들을 자신의 지역공동체와 여전히 연결해준다. 마낄라도라 노동자들의 투쟁은 오래 지속된 심각한 위기에 처한 사회와 체제 안에서 벌어지고 있다. 이 모든 것들은 노조와 여타의 사회적, 경제적 운동에 대한 그들의 반응에 영향을 줄 것이다. 또한 노동조합의 배타적인 관점에서 벌어지는 저항은 탈산업화된 지역의 노동자들에게 상처를 주기 쉽다. 단순한 노조주의로는 공장 폐쇄나 재배치를 막을 수 없다. 안정적인 노동에서 더욱 불안정한 노동이나 비공식 부문으로 밀려난 수많은 노동자들은 여전히 노동인구의 일부분이다. 그들은 과거의 역사와 멕시코 혁명의 전통에 뿌리를 둔 도덕 경제(moral economy)에 대한 관념을 지니고 있다. 점점 더 안정적인 정규직이 불가능한 상황에서 그들은 그런 일자리를 갈망한다. 그들은 여전히 경제적으로 황폐해진 지역공동체에 뿌리를 두고 있다. 이들이 행동에 나설 가능성은 두 축 사이에서 발견될 수 있다. 즉 그러한 가능성은 한편으로는 실업, 비공식부문의 활동, 생활조건의 급격한 악화, 작업장에서의 원자화(집합적인 장소의 노동자에서 비공식 부문의 개별적인 노동자로 변화)라는 사기 저하라는 축과 다른 한편으로는 고용, 주거, 사회서비스 등 정부와 기업이 공격하는 모든 것들을 최소한 회복하거나 최대한 향상시키겠다는 절박함이라는 축 사이에서 나타날 것이다. 이들은 취업자, 반(半)실업자, 실업자, 비공식 부문 노동자를 포함하는 광범위한 노동자운동의 일부가 될 가능성을 지니고 있다. 일부는 다양한 형태의 인민연합조직 지역운동, 노점상연합, 여타의 정치·사회운동 으로 조직된다. 노동조합으로 조직된 노동자들은 광범위한 노동자운동의 중심이 될 수 있다. 왜냐하면 노조가 조직과 전투성을 유지할 수 있는 가능성이 더 크기 때문이다. 하지만 노동조합 구성원에게만 초점을 맞추고 스스로를 노동자 대중으로부터 고립시키는 노동자운동은 노동자에게 긍정적인 의미가 거의 없다. 그뿐만 아니라 이러한 노동자운동은 지역적, 전국적으로 산업예비군으로 둘러싸여 있으며 [고용을] 재배치할 수 있는 자본의 능력에 직면하여 있으므로 성공을 거둘 가능성도 지극히 적다. 공공부문 노동자들에게는 중요한 저항의 능력이 있다. 그들의 공공부문 고용의 공적인 성격은 공공부문 노동조합의 요구가 정치적 권위만으로는 해결될 수 없음을 의미한다. 사실 그들의 요구는 IMF가 촉진하는 긴축정책과 단절을 요구하고, 그러한 요구는 공공서비스의 유지, 확장 혹은 악화와 연관을 맺으므로 불가피하게 사회적이다. 공공부문에서의 임금과 노동조건의 후퇴는 기초적인 공공서비스의 악화로 이어진다. 대부분의 공공부문 노동자들은 기층의 불만을 봉쇄하려는 공식 노조에 속해있다. 대부분의 공공부문 노조들 내부에는 [멕시코에서 주류를 차지하는 전통적인 어용노조에 반대하는] 반(反)주류적 경향이 형성되고 있으며, 그 중 일부는 메이데이노동조합조정위원회에 가입해있다. 우리는 공공부문의 전투성이 공공부문 고용의 지속적인 확장과 실질임금의 급격한 하락, 노동조건의 심각한 후퇴가 폭발적으로 결합한 데 따른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러한 사실은 오늘날 훨씬 더 중요한데, 왜냐하면 우리가 본 것처럼 멕시코 산업의 재배치와 구조조정의 결과로 사적 부문의 저항이 상대적으로 약화되었기 때문이다. 공공부문의 전투성은 때때로 공공서비스 유지에 대한 공통된 관심을 기초로 인민계급의 더 광범위한 부문과 소중한 관계를 강화할 수 있는 저항의 모델을 표현한다. 경합하는 전략들 공식 노조의 국가통제 독점은 붕괴 과정에 있다. 미래의 멕시코 노동자운동을 형성하기 위한 전투에는 세 개의 주요 흐름 CTM-CT, UNT, CIPM 이 포함되어 있다.17) 지역, 지방에서 벌어지는 소요의 다양성과 복잡성을 세세히 설명하는 것은 이 글의 범위를 넘는다. 다만 여기서 우리는 각각 특별한 역사와 고유한 성격을 지닌 여러 멕시코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다. 지역, 지방에서 진행되는 노동조합운동의 재편성 과정에서 논쟁이 없다는 게 [노동조합운동의] 전국적인 동질성을 의미한다고 받아들이면 안 된다.18) CTM-CT는 영향력과 권력의 새로운 기반을 암중모색하는 중이다. CTM-CT의 간부들이 기층 조합원에게 행사하는 권력은 대체로 CTM-CT가 체제와 맺는 관계에서 나온다. 국가의 노동입법은 CTM-CT의 힘을 지탱해주는 반면, 동시에 CTM-CT의 열망을 지배블록 내로 제한하는 데 기여한다. 항상 단체협상은 노조 관료가 자기 자신과 때때로 기층 조합원을 위한 성과를 얻으려고 통제된 조직력을 체제에 대한 지지와 결합하는 정치적인 과정이었다. CTM-CT의 영향력의 전통적인 기반은 매우 약해졌고, 지배 블록 내에서 CTM-CT의 역할은 매우 축소되었다. 노동시장과 정권의 전략이 변화함에 따라 예전 방식의 전술과 단순한 노조주의는 무력해졌다. 이런 노동 관료들은 자신들의 권력이 해체되는 것에 맞서서 보수적인 행동을 취하고 있다. 그들은 신자유주의 프로젝트에서 아무런 중요한 역할을 하지 않지만, 사실상 구조조정 과정에서 분할과 정복을 위한 그들의 역할만은 정권에게 유용하다. 비록 그들이 앞으로도 체제와 여당의 미래를 둘러싼 분파투쟁의 행위자이긴 하지만, 그들이 미래의 멕시코 정치와 노사관계에서 주요한 행위자가 될 것 같지는 않다. 공식노조의 "반(反)주류" 분파 대부분은 현재 UNT로 조직되어 있으며19) 그들의 전략은 신자유주의에 적합한 방식으로 노사관계를 현대화하는 것이다. 이들 분파의 관료들은 살리니스타 현대화20)를 지지했다. 그들은 단체협상에서 국가를 빼자고 요구했다. 이는 거대자본, IMF, 세계은행도 공유하는 목표였고, 역사적으로 멕시코 국가가 노동자조직을 교묘히 속이고 탄압하는 역할을 해왔으므로 커다란 호소력을 지닌 목표다. 하지만 [현재의 협상을] 대량실업과 반실업을 경험하고 있는 노동력과 강력한 기업 간의 시장이 주도하고 탈정치화된 단체협상으로 대체하는 것은 단지 노동에 대한 자본의 힘을 증가시킬 뿐이다. 현대화된 "새로운 관료주의자"와 자본 사이의 [국가에 의해] 중재되지 않는 협력이 국가가 강요하는 결탁을 대체할 것이다.21) 노동자들은 통제를 받는 피지배자로 남겠지만, 새로운 관료주의자들은 구래의 관료주의자들보다 국가의 직접적인 개입으로부터 더 많은 자율성을 얻게될 것이다. 새로운 관료주의자들은 지배정당과 정부요직에서 차지하는 자리를 유지함으로써 계속 지배구조로 통합된다. 그들은 국가가 직접적인 노사관계의 관리에서 철수하라고 요구했지만, 그들 자신이 집권정당의 지도적 위치로부터 철수하지는 않는다. 게다가 그들은 국가의 군사력 증강을 감축하라고 요구하지도 않는다. 그들의 강압적인 권력은 변하지 않은 채로 남아있고, 실제로는 [인민봉기에 대한] 군사진압과 신자유주의적 현대화 프로젝트를 유지하기 위해서 강화되었다. UNT의 교묘한 비정치적 태도는 지배집단 내부에서 투쟁하는 UNT 핵심 지도자들의 정치책략을 교묘히 숨긴다. 게다가 이런 태도는 노동자들의 권리를 보호하는데 필요한 법률적, 제도적 변화를 위한 노동자들의 정치투쟁을 가로막는다. 노동자계급은 도시와 지방의 광범위한 노동자 대중운동의 핵심 요소로서 노동자계급의 발전을 촉진하는 정치적 관점을 요구한다. 협소하고 비정치적인 노조주의는 노동자계급 운동을 조직된 노동자와 비조직된 노동자로 분할하고, 민주주의 이행을 보장한다는 정권의 주장을 신임한다. 그러므로 이는 민중운동의 이데올로기적이고 정치적인 무장해제에 기여하고 동시에 국가는 점차 강제적인 억압 수단들로 무장한다. 관료주의적인 노동운동의 분열 때문에 몇몇 작고 독립적인 노조와 연맹이 UNT에 들어갔다. 이들 개혁주의 경향은 UNT를 진정한 독립노조의 발전을 위한 매개체로 간주한다. 관료적 통제의 오랜 메커니즘이 약화됨에 따라서 관료주의적인 노동운동의 분열은 기층 노동자의 투쟁에게 기회로 보였다. 하지만 반(反)주류 관료에 의한 새로운 연맹의 형성은 민주적인 에너지가 권위주의적인 방식으로 계속 통제되는 구조에 갇힐 수 있는 위험으로 드러난다. 비록 UNT가 진보적이고 민주적인 요소를 약간 포함하더라도, UNT는 프란시스코 헤르난데스 후아레스(전화 노동자)와 같이 현대화된 관료의 지배를 받고 있다. 그리고 그는 계속해서 거대노조와 이들의 자원을 권위주의적으로 통제하며 지배집단과 연계를 맺고 있다. CTM-CT와 UNT는 모두 체계의 해체와 재구성에 적응하고자 하는 노동자운동 관료들이 통제하는 제도적 틀이다. 각각은 노동자계급의 전투성과 독립성을 봉쇄하기 위한 [국가 또는 자본과의] 협력 형태를 제안한다. 그러나 양자 모두 노동조합 내에서나 멕시코 사회 내에서 민주주의를 실행하지 않는다. CTM-CT는 독재체제의 구조적인 핵심의 일부였고 구 체계를 회복하고 싶어한다. CTM-CT는 노조 민주주의와 멕시코의 민주적 이행 양자 모두를 반대한다. UNT의 주요 지도자들은 제도혁명당(PRI)의 당원으로 남아있고, 경제 구조조정을 최우선으로 보는 살리니스타파와 결합되어있다. 그들은 민주적 이행을 경제 구조조정의 기본적인 과제에 대한 위협으로 간주하거나 부차적인 문제로 취급한다. 따라서 UNT는 대량빈곤과 점증하는 봉기/군사진압의 동학 한복판에서 비지니스 노조주의를 발전시키고자 한다. CTM-CT나 UNT 모두 노동조합과 정치 민주주의를 위한 투쟁의 매개체는 아니다. CIPM은 1995년 관료적 노조운동이 기층에 대한 통제력을 잃을까봐 노동절 투쟁을 포기했을 때 노동절 투쟁을 조직하기 위해 임시로 구성되면서 탄생했다. 그러므로 CIPM은 반(反)주류 경향의 노조, 민주적인 지역노조과 중앙노조, 지역공동체 운동, 다양한 좌파 조직들의 조직화를 위한 협의체로 출발했다. CIPM은 계속해서 노동절 투쟁을 조직해왔고, 현재 진행되는 노동자계급 운동으로서 더욱 명확한 정체성을 구축하려고 노력한다. CIPM에는 정치적 다양성이 존재하지만, CPIM은 노동자들의 권리를 아래로부터 쟁취해야만 하고 노동조합의 권리는 민주적 이행이 없이는 달성될 수도, 강화될 수도 없다는 관점을 공유하고 있다. 그리고 노동자운동은 노조 없이 노동하는 계급을 포괄하여 확대될 필요가 있다는 광범위한 합의도 존재한다. 그러므로 CIPM은 계급투쟁/민주주의 혁명의 관점에 기초하여 [인민]계급 내부의 기층의 통합을 지향한다. 그리고 CIPM은 점증하는 지역봉기와 동맹을 맺고 있다. CIPM과 싸빠티스타민족해방군(EZLN)은 투쟁의 연대를 표명해왔고, 싸빠티스타에 동감하는 시민들의 전국조직인 싸빠티스타해방전선(FZLN)은 CIPM의 일원이다. CTM-CT와 UNT 노조의 기층 반대파는 CIPM의 매우 중요한 일부분이다. CIPM은 새로운 노조를 이중으로 설립하는 것이 아니라 기존 노조를 민주적으로 통제하기 위한 싸움을 지지한다. CIPM은 노동자운동의 임무를 삼중으로 규정한다. 1) 빈곤화와 사유화를 추진하는 정치, 경제에 대항하는 즉각적인 투쟁, 2) 노조에서 민주적 통제권을 획득하기 위한 기층조합원의 투쟁, 3) 싸빠티스타를 비롯한 지역의 봉기세력과의 동맹 속에 멕시코의 민주적 이행을 위한 투쟁. 1997년 10월 CIPM의 첫 번째 전국회의에서는 UNT와의 관계 문제가 격렬하게 논의되었다. 며칠 간의 토론 후에 진행된 투표에서 (전국적으로 120개 조직에서 온) 400명의 선출된 대표자들 중 85%가 UNT에 가입하는 것에 반대했다. 이 결과는 독립조직으로서 정체성을 보존하기 위해 꼭 필요한 것이었고 동시에 UNT의 프로젝트가 노동자들의 프로젝트가 아니라 새로운 관료주의자들의 프로젝트라는 강력해 선언했다.22) CIPM과 UNT의 또 다른 핵심적인 의견차이는 조직의 포괄 범위에 관한 것이었다. UNT는 오직 노조만을 포괄하지만 CIPM은 노조뿐만 아니라 관료주의적 노조 내의 민주적 경향, 지역조합과 같은 다른 형태의 노동자조직도 포괄한다. 비판가들은 이런 식의 포괄은 노동조합 중앙으로서의 성격을 왜곡한다고 말하지만 CIPM의 목표는 노동조합 중앙이 되는 것을 넘어선다. CIPM의 목표는 노동자계급 기층의 봉기를 촉진하고, 그들의 통합을 돕는 것이다. CIPM의 관점에서 중심 요소는 다양한 형태의 노동자계급의 투쟁을 시민사회의 민주적 봉기와 결합하는 것이다. 선거활동, 특히 민주혁명당(PRD)에 대한 지지는 CIPM 내부의 중요한 쟁점이다. CIPM 내에는 자신의 [자율적인] 방침을 추구해야하고 노조와 계급투쟁이 선거활동에 종속되어서는 안 된다는 합의가 있다. 그러나 이런 합의가 있더라도, 선거를 통한 이행이 가능한가, 선거활동과 의회 밖의 활동을 어떻게 결합할 것인가, PRD의 성격과 앞으로의 궤적은 무엇인가(미국과 멕시코 자본을 달래기 위해서 자신을 온건한 정당으로 보이려는 PRD의 노력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에 대해서는 중요한 의견차이가 존재한다. 멕시코시티에서 PRD 정부가 당선되고 2000년 대통령 선거에서 PRD가 집권할 가능성이 높아진다면 자본을 달래려는 PRD의 시도와 빈곤화에 직면한 대중적 불만 사이의 긴장이 고조될 것이다. 이런 선거 동학은 농촌 주민들에 대한 전쟁이 강화되는 맥락에서 나타나고 있다. 또한 범죄와의 전쟁이라는 구실로 군사화가 진행되고 있다. 군대는 봉기진압전략의 일환으로 멕시코시티의 주요한 노동자계급 지역(아스카코트살코 같은 지역)을 순찰하기 시작했다. CIPM의 많은 구성원들은 비록 종종 비판적인 태도를 취할지라도 PRD의 열렬한 지지자인 반면, CIPM은 선거 민주주의로의 이행은 얄팍하게 가려진 쿠데타에 지나지 않으며, 어떤 경우에도 민주주의와 새로운 사회적, 경제적 방향성을 보장하지 않는다고 굳게 믿고 있다. CIPM은 멕시코의 민주주의와 새로운 정치, 경제를 위해 투쟁하고 있다. 결론 CTM-CT, UNT, CIPM 사이의 논쟁은 현재 상황을 어떻게 규정할 것인가, 행동을 위한 대안적 경로와 목적지는 무언인가를 두고 벌어지는 투쟁이다. 이 논쟁의 결과는 노동자계급과 멕시코의 미래에 결정적이다. 근본적인 문제는 노동자계급이 자신을 역사의 행위자로 구성할 수 있는 능력이다. CTM-CT와 UNT는 모두 노동자계급을 엘리트의 책략을 위한 병사로 보며, 집합적인 투쟁을 통해 자신의 제도를 통제하고 미래를 구성할 주체라기보다는 [엘리트의 이익을 위해] 동원될 수 있는 자원으로 본다. 그들은 노동자들을 노동자계급과 멕시코 사회의 더 광범위한 투쟁에서 고립시킬 전략들을 제안한다. 조직된 노동자 내부에서 헤게모니 세력으로서 CTM-CT와 UNT의 승리는 노동자계급의 패배이며 사회정의와 민주주의 이행을 위한 투쟁의 패배가 될 것이다. 문제는 CIPM의 승리가 아니라, 어떤 일반적 관점이 노동계급 내에서 우세해질 것인지에 달려 있다. CIPM과 다양한 지역, 지방의 운동들은 아래로부터의 계급투쟁과 민주주의 쟁취는 확고하게 연결된다고 생각한다. 위기와 급속한 발전의 시기에 노동자계급이 자신을 조직하는 형태는 다양할 것이다. 하지만 노동자계급이 자신의 삶과 역사를 자신의 손으로 선택해야 한다는 관념은 힘을 얻고 있으며 변화를 야기할 능력이 있다. 그것은 거대한 인민운동의 발전, 도시와 농촌의 노동자계급과 사이의 동맹을 가능하게 한다. 오직 이러한 운동만이 멕시코에서 정의와 민주주의를 이끌어낼 수 있다. 후기 (1998년 말) 이 글이 쓰여진 이래로 많은 것이 변했고 또한 아무 것도 변하지 않았다. 전국행동당(National Action Party, PAN)의 빈센트 폭스의 선거 승리는 변화와 지속 모두를 표현한다. 선거를 통해 PRI는 창당 이후 처음으로 대통령 직위에 대한 통제권을 잃었다. 그러나 이런 이행은 이미 선거 이전부터 진행되고 있었다. 최근 체제의 실질적인 정치권력은 PRI의 신자유주의 분파와 PAN의 동맹이며 정부정책의 형성하는 자본의 지도적인 역할은 점점 더 커지고 있다. 멕시코의 자본가계급의 분파들은 국가에 대한 더욱 직접적인 통제를 위해 오랫동안 투쟁했다. 그들의 투쟁은 PRI의 국가 통제라는 구체제에 반대하는 민주적인 시민사회의 투쟁과 동시에 일어났지만, 그들의 목표는 거대기업의 지배인가 아니면 시민사회의 지배인가라는 점에서 매우 달랐다. 새 내각의 핵심요직 임명을 보면 변화에 대한 어떤 관념이 우세한지 명확히 알 수 있다. 시민사회가 일부 자리에 등용되었지만, 핵심적인 경제요직에는 자본가계급의 성원들이 들어갔다. 진행 중인 멕시코의 신자유주의 이행은 짧은 시간 내에 약해지지 않을 것이다. 조직된 봉기가 부재한 가운데 시민사회와 국가로부터 자유로워진 자본의 승리는 공고해질 것이다. 사빠띠스따는 2001년 3월 치아파스 정글에서부터 멕시코시티에 이르는 사빠띠스따해방군의 역동적이고 평화로운 행진을 계획했다. 이 행진은 헌법에 원주민의 권리를 포함하라고 정부를 압박하는 시도이며 동시에 전국적 규모로 멕시코 피억압자의 새로운 사회블록을 형성하려는 시도다. 이때의 역사적인 수렴점 원주민, 농장노동자, 여성, 실업자, 노동자, 청년의 인파 은 신자유주의 프로젝트에 도전할 수 있는 새로운 시민봉기로 발전할 잠재력을 지녔다. 사빠띠스따는 그런 운동을 점화할 정치적, 도덕적인 지도력을 보유했다. 그들의 봉기는 광범위한 민중들 사이에서 희망을 되살렸고 지역과 원주민 사이에서 새로운 조직과 동원을 이끌었다. 하지만 산업화된 도시 지역에서는 농촌봉기만으로는 불충분하다. 봉기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노동자계급과 도시인민들이 그러한 봉기의 일부가 되어야 한다. 노동자계급 조직화는 현존하는 노조 내에서 기층의 민주적 봉기의 발전,23) 북부 마낄라도라 지역의 주요한 조직화 동력, 원주민과 지역봉기와의 동맹를 동반할 것이다. 멕시코 노동자계급과 멕시코 사회는 결정적인 분기점에 서 있다. 1) 이러한 선거체제를 새로운 권위주의 지배의 형태로 보는 개념은 Petras and Vieux(1994), Petras(1997), zirker(1998)에 의해 발전되었다. 다른 라틴 아메리카 나라들과 비교할 때, 멕시코 이행의 특수성은 1) 이행의 출발점이 멕시코의 독특한 문민 일당(一黨)/대통령중심 체제이고, 2) 다당제 선거체제를 위한 운동이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을 배경으로 군대의 영향력이 점증하는 것과 동시에 일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처치가 곤란한 경제위기는 은행의 위기가 심화하고 은행들이 대규모 구제금융을 받음에 따라 분명해진다. 본문으로 2) 이런 동학은 멕시코 군대 내에 조직된 반체제 그룹, <민중의 의식 고양을 위한 애국사령부>(Patriotic Command to Raise the People's Consciousness, CPCP)가 출현함으로써 더욱 확대된 것으로 보인다(La Jornada, 1998, 12, pp.19-26를 보라). 본문으로 3) 멕시코 언론은 1998년 여덟 개 주(州) 농촌 지역에서 일어난 무장봉기 집단의 행동을 보도했다. 그 중에서 오악사카, 구에레로, 히달고, 멕시코 주, 그리고 당연하게도 치아파스의 무장봉기가 가장 중요한 사건이었고, 구에레로 주의 엘차르코와 아토약, 오악사카 주의 로스록시차스 시내에서는 심각한 군사적 대치가 벌어졌다. 본문으로 4) 노동통제의 구체제를 일반적으로 코포라티즘이라 지칭하며 서로 밀접한 관계가 있는 다섯 가지 축에 기초를 두고 있다. 1) 노조 승인과 파업권을 국가가 통제할 수 있도록 하는 노동법, 2) 공식적으로 승인된 노조들의 지배정당과 국가 장치로의 통합, 3) [노동조합 내부의] 조직적인 과두지배세력의 일상적인 통제 메커니즘을 통한 권위주의적 통제뿐만 아니라, 국가의 법과 국가와의 연계에 기초한 노동조합 지도부의 노동조합에 대한 권위주의적 통제, 4) 어용노조의 관료주의자(charro)가 지휘하는 국가와 폭력단의 탄압, 5) 얼마간의 기간동안 유지되는 사회협약 - 이러한 사회협약은 노동자계급의 제한적 부문이 특히 사회임금(social wage) 영역에서 이득을 얻는 것을 허용한다(사회협약 가장 두드러졌던 때는 이른바 멕시코의 기적이라 불렸던 수입대체형 산업화의 시기였다). 공식 노조들은 지배정당의 일부이며, 노조 관료들은 노조와 지배정당, 정부의 요직을 동시에 또는 차례로 차지한다. 공식 노조들은 노동자계급 내의 국가 기구이며, 지도자들은 권력 브로커다. 이런 노조에 의한 동원―동원하겠다는 위협에 그칠 때가 더 많다―은 노조투쟁 또는 계급투쟁과 거의 관련이 없다. 오히려 그것은 [코포라티즘] 체제 내부 투쟁에서 활용하는 있는 카드거나 또는 진정한 행동을 요구하는 평조합원의 압력을 줄이는 하나의 방법이다. 이러한 노동통제 체계는 멕시코의 독특한 권위주의 체제의 발전에서 핵심 요소로 부상했다. 이것은 멕시코 혁명의 맥락에서만 이해될 수 있는데, 멕시코 혁명은 혁명적 수사법과 강력한 "노조"의 존재를 결합하여 대다수 "노조"와 [멕시코] 체제의 진정한 성격을 속이는 체제를 낳았다. 이런 체제가 도시 노동자들과 인민의 다른 부문들에 대한 공격과 가끔씩 있었던 양보 없이 쉽게 달성된 것은 아니었다. 사실 계속 재발하는 인민 봉기와 엘리트 사이의 분할은 체제의 불안정하고 반(半)-보나파르트적인 성격에서 기인한다. 본문으로 5) "새로운 코포라티즘"(neocorporatism)이라는 용어는 [코포라티즘에 대한] 비판가들에 의해 널리 쓰이고 있다. 하지만 사실 [새로운 코포라티즘을 옹호하는] 이러한 흐름은 근본적으로 신자유주의이며, 현대화, 유연화 등등을 위해 자본과 협력 관계를 형성해야 한다는 통념을 받아들인다. 이 흐름은 외형적으로는 더욱 부드러워졌지만 실제로는 노조와 사회에서 과두지배를 유지하려는 권위주의적인 비즈니스 노조주의의 한 형태다. 본문으로 6) CTM은 유력한 공식 노조연맹이고, 다양한 친(親)정권 노조연맹의 조직인 CT의 가장 중요한 구성원이다. 본문으로 7) 1990년의 수치는 인구조사에 기초를 두고 있는데, 그 조사는 파트타임 노동을 주당 노동시간이 33시간 이하 노동으로 정의한다. 1996년 수치는 전국고용통계에서 인용했는데, 여기서 파트타임 노동은 주당 34시간 이하 노동으로 정의한다. 이는 북아메리카의 전일(full-time) 노동과 거의 비슷하지만, 멕시코에서 그것은 지극히 필연적인 반(半)실업과 노동조건의 악화를 의미한다. 다음과 같은 점들은 이런 특성을 명확히 드러내준다. 1) 멕시코연방 노동법은 주당 노동시간을 48시간으로 규정한다. 멕시코에서 임금은 시간당이 아니라 일당으로 계산된다. 일주일에 6일 동안 5시간씩 일하는 사람은 반일(半日) 노동으로 간주되어 그에 준하는 임금을 받는다. 따라서 전일 노동자와 비교할 때 파트타임 노동자의 임금 감소 비율은 노동시간 감소 비율보다 훨씬 크다. 2) 전체 파트타임 노동자의 중 80%는 주당 노동시간이 25시간 미만이다. 3) 파트타임 노동자 대부분은 전혀 사회보장의 혜택을 받지 못한다. 본문으로 8) 멕시코의 주요 민간은행인 바나멕스는 1990년대를 통틀어 빈곤이 계속해서 증가했다고 지적했다. 빈곤상태에서 생활하는 멕시코인의 숫자는 4,700만 명―지방에 1,500만 명, 도시 지역에 3,200만 명―으로 증가했다(Banamex-Accival, 1998b: 442). 전국통계·지리·정보기구(INEGI)의 연구에 따르면 1996년에 가구의 64%, 대략 7,000만 명이 빈곤선 아래에 있었다. 빈곤선 아래의 숫자는 1992년에 비해 230만 명 증가한 것이다(INEGI, 1998b: 77-79). 본문으로 9) 산업부문에 고용된 [노동자 중에서] 아주 작은 비율만이 멕시코 사회보장제도에 등록되어 있다. 그렇지만 인구조사 자료는 산업 노동력이 증가했음을 보여준다. 1989년에 제조업 부문에서 사회보장에 등록된 노동자는 총 310만 명이었다. 1997년에 이 수치는 거의 400만 명에 달했다. 본문으로 10)123조는 1917년에 채택된 헌법의 유명한 노동 관련 조항이다. 이것은 여러 측면에서 진보적이고, 노동자의 권리를 방어하는 국가의 개입에 헌법적 기초를 제공한다. 그러나 이 조항은 또한 노동조합을 국가가 통제할 수 있는 기초를 제공한다. 노동자운동은 123조의 진보적 해석과 효과적인 실행을 위해 투쟁해왔다. 현재는 이 조항을 신자유주의에 부합하도록 바꾸자는 논의가 진행 중이다. 본문으로 11) 로드리게스 알카이네는 1975년 이래로 계속 SUTERM의 의장이었다. 그는 1919년 5월 1일에 텍스코코에서 태어났다. 61년 동안 CTM의 의장을 역임한 후 1997년 6월 21일에 96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 피델 벨라스케즈와 함께 로드리게스 알카이네는 멕시코 노동조합의 관료주의적 지배의 장수를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다. 그는 멕시코의 산업화 시기에 카를로스 행크 곤잘레스 교수가 이끄는 정치·경제 권력 그룹인 아틀라코물코 그룹과 결합했다. 아틀라코물코 그룹은 로드리게스가 1973년에서 1976년까지 제도혁명당(PRI)의 상원의원을 할 수 있게 해줬다. 로드리게스는 지방 정계의 보스로 사업가의 이해와 결합한 노조 관료의 전형적인 예다. 그는 1998년 2월 CTM 의장에 만장일치로 선출되었다. 본문으로 12) 설탕노조는 1988년에서 1997년 사이에 조합원 수가 5만 명에서 3만 명으로 감소했다. 석유화학노조는 조합원 수가 2만2천 명에서 1만 명으로 50% 이상 급감했다. 본문으로 13) 이것은 중앙전기전력회사 노조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멕시코공화국전화국노조도 비슷한 상황에 처해있지만, 새롭게 부상하는 전화회사가 자신을 대체할 수 있다는 위협을 느낀다. 민간전화산업에서 노조는 그 산업에 속한 노동자 전체를 대표하지 않으며 오히려 각 민간회사의 조합원만을 대표한다(Poder Ejecutivo Federa, 1997: Secci n de empleo y remuneraciones). 본문으로 14) 정부가 고용한 노동자들의 저항은 노동부나 연방 또는 지역의 쟁의조정중재위원회가 수합한 자료에 포함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들은 1960년에 개정된 헌법 123조 노동법규 B 부문에 속하는 노동자들이기 때문이다. B 부문은 그들의 파업권이나 노동조합 조직에 대해 강력한 규제조치를 부과한다. 본문으로 15) Banamex-Accival(1998a: 612-615)은 공공서비스 부문의 반(反)주류 노동조합인 UNT와 메이데이노동조합조정위원회(CIPM), 사적 부문의 공식, 기업별 노조주의의 상대적 집중을 설명한다. 본문으로 16) 공장 이전을 통해서 혹은 단순히 [도급] 계약자를 바꾸는 것을 통해서. 본문으로 17) 멕시코 노조 내에서 이 세력들의 새로운 상호관계는 Banamex-Accival의 1998년 5월 보고서(1998a: 197)에서 다뤄지고 있는데, 그 보고서는 CTM-CT, UNT, CIPM 사이의 싸움은 낡은 코포라티즘 모델을 변경할 필요성을 보여준다고 지적했다. 본문으로 18) 전국단위 이하의 수준에서 주목할만한 하나의 경향은 다양한 부문을 포괄하며 노조간 연계 형태를 지닌 조직의 중요성이 증대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형태의 좋은 사례는 <소노라 사회조직 확대전선>(FAOS)이다. FAOS는 3개의 전국조직(CT/CTM, UNT, CIPM)에 각각 공식적으로 가입해있는 다양한 조직들로 구성되어있다. 그러나 소노라 지역에서 그들은 매우 중요한 아래로부터의 재구성을 달성할 수 있었다. FAOS는 진보적이고 민주적인 강령을 지니고 있으며, 1998년 2월 소노라의 철도 시설을 점거했던 것과 같이 사유화에 저항하는 전투적 투쟁형태를 발전시켰다. FAOS의 기원과 구성은 FAOS가 CIPM과 매우 닮도록 했으나, 양자 사이에 조직적 연계는 없다. 또 하나의 흥미로은 사례는 <잘리스코 노동조합조정위원회>(CIDJ)인데, 이것은 FAOS와 매우 유사하지만 CIPM과 조직적 연계를 맺고 있다는 점에서 다르다. 특정한 주(州)에서 일어나는 투쟁은 고유한 특징과 동학을 가지고 있다. 베라크루스와 타바스코에 위치한 PEMEX(국영석유회사)의 해고 노동자들의 길고 전투적인 투쟁을 보라. 그리고 여러 사례들처럼 미국과 캐나다의 노조로부터 지원과 협력을 받는 마낄라도라, 특히 티주아나, 시우다드 후아레스, 시우다드 사쿠나 지역 노동자들의 길고 전투적인 투쟁을 보라. 이처럼 한 나라를 넘어선 연대를 보여주는 하나의 사례는 미국 남서부 지역의 전투적인 노조 세력과 연계를 맺고 있는 <코아후일라·타마울리파스 노동자 국경위원회>다. 또 다른 예는 마낄라도라 지역에서 투쟁과 파업의 다양한 경험인데, 이 곳에서는 미국전기노동자조합과 전미트럭운전사조합(Teamsters)이 실제로 노조를 세우기 위한 노력을 지원하고 있다. 본문으로 19) '반(反)주류' 공식노조들은 처음에 자신들을 <노동조합 포럼>으로 조직했다. UNT는 그 포럼에서 발전했다. 그러나 새롭고 대안적인 노동연맹의 형태를 둘러싼 분열이 발생했다. 정부를 지지하는 사람들이 이끄는 교사들의 조합인 <전국교육노동자조합>(SNTE)은 새로운 연맹을 반대했다. SNTE는 포럼의 창립 멤버 중 하나였지만 공식노조운동이 갈라지는 것에는 반대했다. 오랜 민주주의 전통을 지니며 포럼의 멤버였던 전력노동자조합(SME)은 UNT에 가입하는 것을 거부했다. SME는 UNT를 관료들의 내부투쟁을 위한 책략으로 보았다. 일부 소규모 독립적이고 민주적인 노조와 연맹들, 예를 들어 <진정한 노동전선>(FAT)은 포럼과 UNT 양자 모두에 가입했는데, 이들은 UNT가 진정한 노동운동을 위한 새로운 가능성을 제공한다고 믿었다. 본문으로 20) 1998년 12월 하순의 인터뷰에서, 헤르난데스 후아레스는 살리나스와 신자유주의 프로젝트에 대한 긍정적인 입장을 재차 천명했다(Martinez, 1998). 본문으로 21) 자본의 신자유주의 현대화 프로젝트에서 UNT 핵심 지도자들의 협력적인 입장은 1998년 2월 11일 상품·서비스조합연맹(FESEBES)과 멕시코고용주연합(COPARMEX) 사이에 체결된 협정으로 증명된다. FESEBES는 1990년에 카를로스 살리나스 대통령의 후원을 등에 업고 설립된 서비스부문노조(통신, 항공, 전력, 영상과 TV, 기타)와 동맹을 맺고 있다. 여기의 핵심 지도자들은 UNT의 핵심 지도자들이기도 하다. COPARMEX는 반-노동자적 고용주들의 연합이다. FESBES/UNT 지도자들은 정부의 감독 없이도 기업과 노동자가 협력할 수 있는 역사적인 단계로 나아갔다며 협정을 환영했다. 본문으로 22) UNT에 가입하는 것을 반대하는 핵심 논거는 UNT가 관료적 지도자들에게 정당성을 부여해 주었다는 것이다. 더불어 그 지도자들의 프로젝트는 노사관계를 신자유주의적으로 "현대화"하는 것이며, 이 프로젝트는 노동조합의 투쟁을 사회 정의와 민주적 이행을 요구하는 광범위한 인민 대중의 투쟁으로부터 고립시키려는 시도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 지도자들은 사실상 살리나스 분파와 연계되어 있으며, CTM-CT 대 UNT라는 대립은 체제 내에서 벌어지는 싸움의 일부일 뿐이라는 것이다. CIPM은 UNT나 다른 그룹들과의 전술적 동맹은 지지하지만 조직적인 통합은 반대한다. 본문으로 23) 2001년 1월에 SUTERM과 SNTE의 전국지도부 선출을 위한 노골적인 부정선거가 치러졌고, 이 때 새 대통령 빈센트 폭스는 전통적인 권위주의적 노조 관료들을 지지했다. 본문으로 참고문헌 Banamex-Accival (Banco Macional de M Xico y Acciones y Valores) 1998a Examen de la situaci n econ mico de M xico. Mexico City 1998b M xico social: 1996-1998. Mexico City Banco de M xico 1998 Indicadores econ micos. Mexico City INEGI (Instituto Nacional de Estand sticas, Geograf a e Inform tica) 1997a Anuario estad stico 1996. Mexico City: Secretar a de Programaci n y Presupuesto. 1997b Cuentas nacionales de 1996. Vol. 1. Mexico City: Secretar a de Programaci n y Presupuesto. 1998a Cuaderno de informaci n oportuna regional: Primer trimestre de 1998. Mexico City: Secretar a de Programaci n y Presupuesto. 1998b Encuesta de ingreso gasto de 1996. Mexico City: Secretar a de Programaci n y Presupuesto. 1998c Indicadores de empleo y desempleo enero de 1997. Mexico City: Secretar a de Programaci n y Presupues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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