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10일에 '집시법 연석회의'에서 주최한 '개정 집시법의 문제점과 불복종운동' 토론회 자료집입니다.
[역자주] 미국의 제3세계 간섭정책은 대체로 유사한 모형의 반복이다. 목표물이 되는 정부나 개인에 대한 악의적이고 그릇된 정보를 거대 미디어기업들을 통해 유포시키고, 국제금융기관이나 다른 나라 정부가 재정 지원을 중단하거나 삭감하도록 압박하고, 그 나라의 반대파들 특히 정부를 폭력적으로 전복할 준비가 되어 있는 우파그룹을 공공연하게 또는 은밀하게 지원하는 것. 이는 미국의 전형적인 “저강도전쟁” 모형이다. 이러한 전략은 현재의 아이티 사태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대부분의 영자 언론은 아리스티드가 2000년 총선 부정 때문에 합법성을 상실했다고 말한다. 그러나 2000년 당시 미국 정부조차 선거 부정을 주장하지 않았고, 미주기구(Organization of American States)는 대통령과 입법부 선거는 자유롭고 공정했다고 선언하였다. 아이티의 모든 당사자들은 아리스티드가 92%로 득표율로 당선되었다고 인정했다. 합의되지 않았던 유일한 문제는 다수를 얻었지만 과반수를 넘지 않은 아리스티드 측의 7명의 상원의원에 대한 결선투표 문제였다. 하지만 결국 7명은 사임했고, 새로운 선거를 치른 것으로 마무리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선거에서의 "권력남용" 문제를 빌미로 부시정부와 유럽의 순종적인 파트너들은 수억 달러의 신용제공과 경제원조를 연기하였다. 미리 보장되어 있었던 미주개발은행의 4억 달러 대부가 봉쇄되었고, IMF, 세계은행, 유럽연합은 신용공급을 삭감하라는 압력을 받았다. 2003년 7월 중반 아이티가 3200만 달러의 외채 연체금을 상환하면서 국고를 비우고 나서야 미국은 3400만 달러가 아이티의 보건, 수도, 도로를 위해 제공될 것이라고 발표했다 (그러나 실제로 이 돈은 대부분 미국의 개발사업 “계약자”들의 수중으로 다시 돌아간다. 한편 아이티의 좌파운동들은 외채상환의 모라토리엄을 선언할 것을 주장했으나, 거부되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미국은 지속적으로 아이티의 우파 정당, 무장조직, 기업가나 종교 조직을 공공연하게 또는 은밀하게 지원하였다. (구체적인 내용은 본 글에서 다루고 있다). 게다가 현재 미 국무부에서 카리브와 라틴 아메리카 정책을 입안하는 인물들 중 일부는 이미 레이건 시대부터 요란을 피웠던 이들인데, 특히 존 네그로폰테, 엘리어트 아브람스, 존 포인덱스터는 니카라과 산디니스타에 대한 더러운 전쟁과 이란-콘트라 스캔들에 깊게 연루된 인물이다. 최근에는 국가안보위원회의 오토 라이히나 국무부의 노리에가가 가장 눈에 띤다. 2003년 4월 노리에가는 워싱턴에서 열린 아메리카위원회 회의에서 미국의 아이티 정책과 베네주엘라와 쿠바 정책을 연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미주기구가 채택한 “아메리카 민주주의 헌장”의 20조가 민주주의의 핵심적 요소를 위반한 나라들에게 취할 일련의 조치가 담겨 있는 “개입 방안”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그는 “차베스와 아리스티드 대통령은 고의적으로 분열적이며 대립적인 환경을 조성했다. 쿠바의 선한 국민들은 민주주의 헌장을 배우고 있다는 점은 나의 강력한 희망”이라고 덧붙였다. 아이티에서 벌어지고 있는 “저강도전쟁”은 쿠바와 베네주엘라, 나아가 라틴아메리카 모든 곳에서 적용된다는 것이다. * 앞머리와 본문의 역주는 아래의 글들을 참조했다. Tom Reeves, “Still Up Against the Death Plan in Haiti” (2003.9/10) http://www.thirdworldtraveler.com/Caribbean/UpAgainstDeathPlan_Haiti.html Michel Chossudovsky, “US Sponsored Coup d'Etat” (2004.2.29), http://www.globalresearch.ca/articles/CHO402D.html Heather Williams, "Haiti as Target Practice", (2004.3.1) http://www.counterpunch.org/williams03012004.html * * * 아이티와 미국의 더러운 속임수 - 아리스티드 제거는 거대한 중남미 탈안정화 캠페인의 일부분이다 - 그렉 구마 2004년 3월 1일 출처: http://www.zmag.org/content/showarticle.cfm?SectionID=20&ItemID=5069. 필자는 <자유를 향하여>의 편집자이며, <불안한 제국: 억압, 세계화,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의 저자다. 이메일: editor@TowardFreedom.com 1915년 미국이 아이티에 처음 군사간섭했을 때, 아무도 그것에 주목하지 않았다. [1915년 7월 미국은 아이티 내분을 구실로 군사간섭을 시작했으며, 9월에는 아이티를 보호령으로 만들고 1934년까지 군사점령을 계속하였다.] 미국의 군사간섭을 직접 취재한 저널리스트도 거의 없었고, 대부분의 신문은 미국 정부의 공식 발표를 받아 적을 따름이었다. 우드로 윌슨 대통령의 말을 따르면, 아이티에 보호령을 세우는 것은 “근본적으로 사악하고 타락한” 혁명을 중단하고, “점진적인 개혁과정”을 지원하기 위한 거대한 노력의 일부분이며, 그의 “국제주의” 정책을 확대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표면적인 이야기일 뿐이다. 사실 윌슨은 이 섬나라를 1차 세계대전의 지리전략적인 볼모로 생각했다. 그는 특히 아이티에서의 정치적 혼란으로 독일이 이 지역에 군사기지를 세우는 이득을 취할 것을 걱정하였다. 또한 그에게는 매우 강력한 경제적 동기도 있었다. 미국에게 아이티는 위협받는 투자자산이었다. 내셔널시티은행은 중앙은행과 철도체계를 통제하였고, 설탕왕들은 기름진 농장을 탈취할 표적으로 생각했다. 투자자와 중개업자에게는 불행히도, 이 나라는 4년 동안 7명의 대통령이 갈렸고, 그들 대부분은 초기에 살해되거나 제거되었다. 북부 농촌지역은 카코스라고 불렸던 반란 운동의 통제를 받았다 (카코스는 이 나라의 새 울음소리를 딴 것이다). 카코스는 대개 다른 잔인한 산적 무리들처럼 묘사되었지만, 그들은 본질적으로 민족주의자였으며, 이 나라 경제를 지배하는 프랑스와 미국, 소수 물라토의 통제에 저항하였다. 미국 점령의 초기 동안, 카코스는 그들의 “산디노”[니카라과의 게릴라 지도자]인 샤르멘느 페랄트의 지휘를 받으며 저항을 지속했다 (그는 군대의 장교였다가 게릴라 지도자로 변신했다). 페랄트는 1919년 미국 해병대에 의해 살해되었지만, 1980년대 후반 아이티의 민주주의 운동의 상징으로 되살아났다. 1980년대의 민주주의 운동으로 결국 해방신학자인 장 베르뜨랑 아리스티드가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다. [1957년 9월 대통령으로 선출된 (‘파파독’) 뒤발리에는 의회를 해산했고, 1964년 종신대통령이 선포하고 공포정치를 실시했다. 1971년 그가 죽자 19세의 (‘베이비독’) 장 클로드 뒤발리에가 대통력직을 세습했다. 그는 민중저항으로 1986년 해외로 망명했고, 1991년 아리스티드가 당선될 때까지 뒤발리에가의 군사집행자 역할을 했던 톤톤 마쿠트가 사실상 독재체제를 유지했다.] 하지만 1990년대 동안 역사는 다시 반복되었다. 1991년 선거 7개월 후 아리스티드는 군사 쿠데타로 전복되었다. 군사정권은 3년 동안 지속되었고, 1994년 아이티의 곤경[대량난민사태]은 커다란 뉴스거리가 되었다. 하지만 보도는 매우 선택적이었고, 쿠데타 주도 세력에 대한 CIA의 지원이나 아이티 군부의 마약거래 개입 사실은 결코 보도하지 않았다. 미국의 점령에 앞서, 미디어는 아리스티드가 “속임수 봉쇄”라고 부른 것에 대해 의심스럽게도 침묵하였다. [군사구테타와 반대파 인사들에 대한 학살이 벌어지자 미국을 중심으로 한 UN은 인권회복과 민정이양을 촉구했다. 그러나 군사정권이 이를 무시하자 미국 부시정부는 ‘아이티 경제제제’를 가하고, UN은 1993년 6월 전세계적인 석유, 무기 금수 및 해외 자산 동결조치를 취하였다.] 봉쇄조치는 가난한 사람들의 고통을 짜내었지만, 그러나 외국자본의 각종 이윤 사업들은 면제 대상이었다. 석유 봉쇄가 이루어졌으나, 연료는 도미니카 공화국을 통해서 쉽게 밀수입되었다. 반면에 아리스티드를 더럽히는 캠페인이 시작되었다. 상당한 시간이 지난 후에, 또 다른 미국의 점령이 시작되었다. [1994년 8월 UN 안전보장이사회는 아이티의 민정복귀를 위해 무력을 포함한 "동원 가능한 모든 수단"의 사용을 승인한 결의안 940호를 통과시켰다. 이에 대해 아이티 군사정권은 계엄령을 선포하면서 대응하였다. 1994년 9월 18일, 미군 2만 명을 포함한 30개국에서 파견된 총 2만 2천 명의 다국적군이 아이티에 도착하여 쿠데타 세력을 축출하고 아리스티드 민선 대통령을 복귀시켰다.] 그러나 윌슨이 안정과 민주주의라는 수사로 미국의 경제적 이해와 횡포를 숨겼던 것과 같이, 클린턴은 “민주주의의 지지”를 내걸었다. 그러나 사실 1990년대 점령의 실제 목표는 아리스티드의 임기가 끝날 때까지 아이티에 대한 효과적인 통제를 유지한다는 것이었다. 미디어는 분명한 것을 가리는 경향이 있다. 실제로 미국은 아리스티드와 결코 편한 관계를 유지한 적이 없으며, 미국은 다음 선거까지 아이티 군부세력과 이 나라를 공동 관리한다는 것을 합의하였던 것이다. 되돌아보면, 정책결정가와 분석가 대부분은 미국이 본래 [민주주의에 대한 지지가 목표가 아니었고] 단지 안정을 회복하기 위해 아이티에 들어갔다고 주장한다. 아이티에서 일종의 혁명이 진행 중이었다고 말하는 분석가는 거의 없으며, 심지어 그들은 아이티의 상황을 항상 카오스로 묘사한다. 상투적인 지식을 따르면, 아이티 사람들이 효과적으로 스스로를 통치할 수 없거나 민주 제도를 유지할 수 없기 때문에 미국은 20세기 초반 19년 간 아이티에 머물렀던 것이다. 아이티인들은 1915년 당시 준비되어있지 않았고, 어떤 회의적인 사람들이 말하는 것처럼 1990년대에도 여전히 그러하다는 것이다. 1994년 9월 선거에서 로스 페로는 “노우나싱”(Know-Nothin)[무지당(1853~1856년)의 당원, 미국 태생 시민이 정권을 잡아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스타일로 대중적 편견을 널리 퍼뜨렸다. 그는 “아이티인들은 독재자를 좋아한다”며 “왜 그런지 모르겠다”고 말하였다. 페로는 미국의 개입을 강력히 반대했는데, 그 함의는 그가 아이티에서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그리고 사람들에게 어떤 일이 생길 수 있는지에 대해 상관하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부시정부는 2003년 말 아리스티드에 반대하는 무장봉기를 기꺼이 받아들였고, 또한 2월 29일 그를 납치하여 아프리카로 보내었다. 이 때 부시정부는 그와 유사한 대중적 편견에 의존했다. 그 후 물러난 대통령은 그의 사임이 미국 대사관 관리의 지시에 의한 것이라고 말하였다. 물론 그는 결코 미국이 선호한 인물이 아니었다. 그는 미국이 지원하는 탈안정화 정책이라는 환경에서 질서를 유지할 수 없었고, 그의 무능력은 “아이티 스타일”의 “정권 교체”를 위한 최고의 구실을 제공하였다. 2월 초 “반란”을 일으킨 준군사조직 군대는 국경을 넘어서 도미니카 공화국으로부터 건너왔다. 이들 잘 훈련되고 훌륭한 장비를 갖춘 부대는 <아이티 진보전선>(FRAPH)의 전 멤버들을 포함하였다. <아이티 진보전선>이라는 이름은 아리스티드의 첫 번째 정부를 전복한 1991년 군사 쿠데타 이후 대중학살과 정치암살에 연루된 “죽음의 군대”의 이름을 부드럽게 바꾼 것이었다. [군사쿠데타 기간 동안 최소한 3000명이 죽고 수천명이 추방되었다]. 스스로 <민족해방재건전선>(FLRN)이라고 선언한 조직 역시 활동적이며 기 필리프가 이끌고 있다. 그는 과거 경찰 수장이었고 아이티 군대의 멤버였다. 그는 쿠데타 기간 동안 다른 수십 명의 아이티 군대 장교들과 함께 에콰도르에서 미국 특수부대의 훈련을 받았다. 고나이베와 깝 아티안 공격을 이끌었던 다른 두 명의 반란 지휘자인 엠마뉴엘 “토토” 콘스탄트와 조델 샹블렝은 뒤발리에 시대의 톤톤 마쿠트 군대의 집행자였으며 <아이티진보전선>의 지도자였다. 무장 반란자들과 민간인 지지자들 모두는 명백히 최근의 음모에 연루되었다. G-184 지도자인 앙드레 아파이드는 아리스티드를 전복했던 그 주간에 미국 국무장관 콜린 파월과 접촉했다. 필리프와 콘스탄트는 CIA와 연계되어있고, 미국 관리와 접촉했다. [현재 아이티의 대표적인 민간인 “반대파” 그룹은 <민주주의 집합점>(Democratic Convergence, DC)과 <G-184>(184 시민사회조직그룹)다. DC는 15개의 반-아리스티드 정당 연합이며, 서로 적대적인 아이티 지배계급의 분파들로 구성되어있다. 이들에 대한 대중적 지지는 빈약하다 (이들은 선거에서 20%를 넘은 적이 한 번도 없다). 그러나 그들이 집합한 것은 <민주주의를 위한 국가기부>(National Endowment for Democracy, NED)와 연계된 <국제공화당기구>(International Republican Institute, IRI)가 매년 제공하는 300만 달러의 기금 때문이다. NED는 1983년 레이건 정권 당시에 창설된 것으로, CIA가 정치인을 은밀히 매수하고 거짓 민간인조직을 창설했다는 비난이 일면서, CIA를 대체하여 정당들과 NGO 부문에서 중요한 정보기관 역할을 수행하게 된다. G-184를 이끄는 앙드레 아파이드는 미국 시민이며 아이티에 4000명 규모의 공장을 소유했고 1991년 군사쿠데타를 지지했다. G-184는 엘리트기업가조직과 종교조직 등의 우산조직의 성격을 띠었고, 역시 IRI나 유럽연합으로부터 상당한 지원을 받았다.] 시애틀타임즈에 따라면 2월 20일 미국 대사 제임스 폴리는 미군 남부사령부로부터 4명의 군사전문가로 이루어진 팀을 불렀다. 공식적으로 그들의 직무는 “미국 대사관과 인사들에 대한 위협을 평가”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예방 조치”로서 3척의 미 해군 군함을 아이티로 출발시킬 준비에 돌입했다. 한 척에는 수직이착륙 전투기인 해리어와 공격용 헬리콥터가 탑재되어 있었다. 또한 최소한 2000명의 해병도 배치될 태세를 갖추었다. 하지만 아리스티드가 납치되면서, 워싱턴은 그들의 대리인인 준군사조직 부대를 무장해제하려는 노력을 전혀 기울이지 않았고, 이제는 “과도기” 동안 정치적 역할을 맡을 세력으로 내세우고 있다. 달리 말해, 부시정부는 아리스티드 대통령의 제거 후 아리스티드 지지자들에 대한 학살을 막기 위한 준비를 전혀 생각하지 않고 있다. 이러한 위기를 다루면서 미디어 기업들은 CIA가 개입한 역사와 역할에 대해 눈감고 있다. 그 대신에 이른바 “반란 지도자”, 곧 1990년대 죽음의 군대의 지휘관들을 반대파의 합법적인 대변인으로 인정하고 있다. 부시 정부는 효과적으로 아리스티드를 속죄양으로 삼아, 그를 “사회경제적 상황을 악화시킨” 유일한 주범으로 몰아세우고 있다. 이는 그레이 데이비스를 물러나게 하고 아놀드 슈왈츠제네거를 당선시킨 2003년 캘리포니아 소환선거와 매우 유사한 것처럼 보인다. 사실, 사회경제적 위기는 대부분 1980년대 이후 IMF가 강제한 경제개혁에 기인한 것이다. 아리스티드가 1994년 아이티로 돌아올 때 그에게 강요된 조건은 IMF의 경제 “요법”의 수용이었다. 그는 이 조건을 받아들였지만, 어쨌든 그는 블랙리스트에 올랐고 악마로 묘사되고 있다. [아이티의 IMF 경제개혁은 뒤발리에 시대부터 시작되었다. 1991년 아리스티드는 진보적 개혁을 추진하려했지만, 군사쿠데타가 벌어진 후 이전에 세계은행의 관리였고 1983년 뒤발리에 집권시 총리를 맡았던 마흐 바쟁이 다시 총리로 복귀하였다. 1994년 아리스티드가 돌아온 후 1996년까지의 남은 임기 동안, “긴급경제복구계획”이 진행되었다. 긴축재정과 공적서비스 삭감이 강요되었고, 엄격한 외채상환이 세계은행과 미주개발은행, IMF의 새로운 융자를 위한 조건이 되었다. 한편 1996년 클린턴 정부와 체결한 협정으로 쌀, 설탕, 옥수수 등 미국 농산품 관세가 철폐되면서 농산물이 덤핑으로 수입되었고, 인구의 75%가 농업에 종사하는 아이티 현실에서 농민은 결정적인 타격을 입었다. 한편 클린턴정부는 2003년 11월 아이티 대선을 두 주 앞두고 발전기금 제공을 중단시키고, 아이티 정부에게 IMF와 양해각서를 체결할 것을 강요했다. 당선된 아리스티드는 최저임금의 상승, 학교건립과 문맹퇴치 등을 약속했지만, 정부예산, 공공부문, 공적 투자, 사유화, 무역과 통화정책 등에 걸쳐 이미 IMF와 체결된 합의로 인해 손발이 꽁꽁 묶이게 된다.] 캐나다의 경제학자 미셀 초수도프스키가 설명한 것처럼, 부시의 목적은 “아이티를 민주주의의 외양으로 완전한 미국의 식민지로 회복”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 목표는 포르토프랭스에 꼭두각시 정권을 세우고 미군이 아이티에 영구 주둔하는 것이다. 결국 미국 정부가 추구하는 것은 카리브 지역을 군사화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미국은 왜 이것을 원하는가? 이스파니올라(아이티와 도미니카 공화국이 있는 섬)는 카리브 지역의 관문이며, 쿠바-북서아메리카와 베네주엘라-남아메리카 사이의 전략적 요충지다. 이 섬에 미군이 주둔하면 쿠바와 베네주엘라 모두에게 정치적 압력을 가하는데 큰 이점이 있으며, 더 광범위한 지역 군사작전을 구사할 수 있게 된다. 아이티의 야만적인 스파이들의 사례처럼, 미국은 정보기관들이 “한번에 될 일을 두 번에 하는 일”이라고 부르는 비밀작전[대리전쟁]을 준비하고 있다. 미국 시민권을 주겠다는 약속으로 모집된 베네주엘라인들이 과거 <안보협력을 위한 북반구기구>(WHISC)였고 지금은 <미국 아메리카군사학교>(SOA)로 이름이 바뀐 곳에 들어가 군사훈련을 받고 있다. 그리고 미군 남부사령부가 관할하며 페루 북부 정글에 있는 이퀴토스 훈련소로 옮겨진다. 미국 지도자는 베네주엘라의 휴고 차베스 대통령을 달갑게 생각한 적이 한번도 없다. 오히려 차베스는 부시 정부를 격노하게 하고 있다. 2002년 4월 미국이 취한 첫 번째 조치는 쿠데타였다. 그러나 친미적인 페드로 카르모나 에스타냐는 의회를 해산하고 헌법을 폐기한 후 단 이틀만에 권력에서 물러났고, 차베스는 복귀하였다. 차베스는 줄곧 미국 정부와 CIA가 베네주엘라 정부를 전복하기 위한 다양한 움직임을 지원한다고 비난했다. 베네주엘라 사태의 배경은 그 나라가 세계 4위의 석유수출국이며 미국의 세 번째 석유수입처라는 점이다. 베네주엘라는 필립스 페트롤륨과 엑손모빌의 주요한 달러박스이며, 세브론 텍사코와 옥시덴탈 페트롤륨도 주요한 이해관계자다. 아이티에서와 마찬가지로 그것은 적당한 때를 기다리는 문제며, 이는 더욱 격렬한 폭력 사태와 함께 나타날 것이다. 아루바(네덜란드령 앤틸리스제도)의 미 공군과 해군 분견대는 병참과 물자를 지원할 준비가 되어 있으며, 미 해군 병원선은 사태가 발생했다는 신호가 처음 나타나면 북부 해안에 배치될 준비가 되어 있다. 하지만, 현재까지 아이티 사태는 이라크나 미국 경제 문제에 관한 미국 시민의 관심을 다른 데로 돌리고자 하는 미국 정부에게 유용한 전환점을 제공하고 있다. 미국의 비밀 작전이 실제로 아이티의 불안을 자극하고 심지어 민주적으로 선출된 대통령을 제거하였다는 책임은 간단히 부정되고 있는 것이다. PSSP
작년 여름을 더욱 뜨겁게 만든 부안민중들의 투쟁이 2월14일 자체적인 주민투표를 통해 투표율 72%, 반대 91%라는 결과를 낳았다. ‘핵폐기장 백지화 군민선언’을 선포하면서 회한의 눈물을 흘렸던 쓰라린 기억을 잠시 뒤로하고 잠시나마 군민들은 승리의 기쁨을 누리고 있다. 주민투표전에 부안을 감고 돌았던 겨울 속 차디찬 긴장감은 봄날 같은 날씨와 아주머니들 입가의 넉넉한 미소로 화기애애 하다. 하지만 주민들의 이런 의지와 달리 이희범 산자부 장관은 지난 17일 주민투표를 ?여론조사 성격?이라며, 2.14 부안주민투표를 인정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또 '정식 주민투표'는 김종규 부안군수의 소관 아래 9월 이후 정식으로 치뤄져야한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어쨌든 현재, 어딘지 모르게 불안한 부안은 최종결론을 일시적으로 유보한채 커다란 한 단락을 마감하였다. 하지만 부안은 지금까지 진행한 투쟁만으로 역사적으로 커다란 경험을 국민에게 선사하였다. - 투쟁으로 하나되는 부안공동체 얼마나 결사적인 투쟁이었는가? 아줌마 삭발투쟁, 고속도로 점거, 등교거부투쟁, 전경차량전소, 군청진격투쟁, 청와대항의투쟁, 전주-부안간 삼보일배, 밤샘 난타투쟁등 지금까지 투쟁의 역사에서 발휘되었던 모든 투쟁의 역량을 단 몇 개월만에 쏟아내었다. 한편으로는 생존권 사수를 위한 몸부림으로 다른 한편으로는 반민주적 정권에 대한 항거로, 안으로는 조직을 만들고 밖으로는 단호한 바리케이트를 만들어갔다. 이처럼 언제든지 투쟁을 전개할 수 있는 분노와 조직을 함께 만들어 낼 수 있었던 것은 정부와 단체에 대한 부안 민중들의 분노가 얼마나 컸던 것인지 짐작하게 해 준다. 100여명이 사법처리되고 수백명의 주민이 부상당하는 상황이었지만 이에 개의치 않고 핵폐기장 백지화라는 당면요구를 분명히 하면서 정부의 음모를 수포로 만들어 내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은 무엇보다도 부안군민들의 단호한 투쟁이었다. - 민주와 자치를 기층의 힘으로 만들어 내었던 부안공동체 노동자의 학교가 파업현장인 것처럼 부안군민들의 학교는 투쟁의 현장이었다. 촛불시위는 부안군민이 믿을만한 유일한 언론이었다. 기성언론에게는 따끔하게 충고하거나 혼내주기도 하지만 촛불시위때 논의되는 사안에는 남녀노소,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모두가 하나의 인격적 주체가 되었고, 이 안에서 얘기된 것들은 소중한 의견과 결정으로 이어졌다.이런 모든 것이 발판이 되어 군민들은 움직였고 전라북도 ?부안군의 행정력보다 우월한 자치를 만들어 내었다. 부안읍내의 전상가에는 노란 반핵깃발이 부착되고 부안택시 기사들은 투표당일 거동이 불편한 어른들을 택시로 모시며 자원활동을 하였다. 마침내, 주민투표는 국가가 강요하는 민주주의보다 훨씬 웅장한 민주와 자치의 장관이었다. 하지만 정부는 애써 이를 폄하려고만 한다. 관료들의 말에 따르면 민주와 자치이고 그렇게 하지 않으면 위법이라는 참으로 국가주의적인 발상이 아닐 수 없다. - 눈물과 감동이 함께한 문화공동체 민중의 역량은 문화적으로도 표현되었다. 5개월 동안 지속된 촛불시위는 집회라기 보다는 문화축제에 가까워 보였다. 부안 수협앞 광장에서는 할머니에서 유치원 어린 학생들까지 자신의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투쟁은 즐겁게”라는 말이 무색하리 만큼 너무 즐거워 비명을 지르고 너무 즐거워 5시간 집회에도 짜증내지 않는 것은 투쟁과 자치 그리고 문화라는 어울림이 만났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 그것도 역시 스스로 만들어 내는 민중의 걸작들 이어서 준비하는 사람도 보는 사람들도 서로를 칭찬하며 거리의 문화를 공동체의 문화로 바꾸어 놓았다. 주민투표가 가능했던 것은 바로 투쟁의 경험과 민주적 훈련의 결과이다. 민중의 뜻을 애써 무마하려는 선거가 아니라 자기결정권을 가지고 문제를 해결하려는 부안의 주민투표는 또 하나의 가공할만한 투쟁이었다. 군수 퇴진투쟁과 새로운 패러다임을 위한 부안군민의 또하나의 실험 주민투표가 끝난 바로 다음날 15일 주민투표 승리의 기쁨으로 가득찬 부안 군민들이 반핵광장에 모여 대동마당을 열었다. 이날 일부 상가들은 주민투표 참가율에 맞추어 빵 70% 할인, 무료 목욕티켓 등을 나누며 동참하기도 했다. 대책위가 '부안선언'을 통하여 "자연은 사람들의 소유가 아니며 부안군민들 모두 뭍 생명들과 공존하여 생활 속의 반핵과 자치공동체를 이루어가자. 낡은정치와 독재의 망령, 자연을 해치는 망령을 걷어내고 이땅의 양심들과 뭍생명과 함께 투쟁하겠다."라고 선언하였다. 순간, 이를 들은 부안군민들은 비오듯 눈물을 흘렸다. 이날 7개월의 역사가 타임캡슐에 묻혀 역사속으로 사라지는 순간에 한쪽 에서는 부안의 새로운 패러다임과 투쟁을 만들기에 분주하였다. 가장 첫머리에 김종규 부안군수 퇴진이 나왔다. 투쟁의 고삐를 늦추지 않고 부안공동체를 파괴로 치닫게 했던 군수를 반드시 퇴진시키겠다며 전 군민 리본달기 운동이 전개되었다. 두 번째로 언론이었다. 발전이라는 패러다임과 관권에 빌붙어 주민들의 여론을 호도하였던 기성언론을 심판하겠다는 것이다. 촛불시위를 대신할 자신들만의 대화공간을 대안언론으로 찾고 있는 것이다. 지금 부안은 자치와 생태를 근간으로 지역공동체의 발전을 내오겠다는 부안 군민들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위한 첫걸음을 시작하였다. 군수퇴진투쟁과 새로운 부안만들기가 작년여름에 시작하였던 부안투쟁의 봄날잔치가 될 것이다. PSSP
세계화의 재단아래 젊은 피를 바치는 노무현정권과 여야정치권은 역사와 민중의 심판을 받을 것이다. 오늘 국회는 예상에서 한치도 벗어나지 않고, 노무현 행정부가 제출한 파병동의안을 최종적으로 통과시켰다. 노무현 대통령은 3600여명의 부대원 중 대부분이 전투병인데도 이라크 재건 지원부대라며 국민의 눈을 속였고, 여야 정치권은 여기에 박수를 치며 침략전쟁과 학살동맹에 맞장구를 쳤다. 이라크 민중들과 한국 젊은이들을 피흘리게할 그 죽음의 버튼을 그들은 앓던 이 빼듯이 눌러버렸다. 노무현 대통령은 국회에서 파병처리가 차일피일 미루어지자 지난 3일 국방위원장을 불러 파병문제로 국가의 신인도가 하락해서는 곤란하다며 신속한 파병 처리를 당부했다. 지난해 4월 파병을 결정하거나 동의안 처리를 요청할 때도 국가 신인도 운운하며 협박했다. 전경련을 비롯한 자본단체들은 동의안이 통과되자 마자 생사를 내걸어야 하는 젊은이들의 목숨은 뒷전이고, 오로지 해외자본 유치와 남한자본의 해외진출을 위한 국가의 신인도가 문제였다. 그토록 강조하는 국가의 신인도, 국익이 도대체 무엇이 길래 우리 젊은이들의 숭고한 피를 저 허망한 전쟁에 내바쳐야 한단 말인가? IMF 외환위기 이래 당시 국가의 신인도 하락에 국가적 환란의 원인이 있다며, 지배계급은강력한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집권 3년 만에 그들은 대한민국의 국가 신인도가 정상으로 되돌아왔다며 샴페인을 터트렸다. 그러나 그 샴페인을 터트리는 자리에 민중들은 없었다. 1998년 이후 증권거래소에서만 외국으로 빠져나간 순이익금이 93조가 넘고 그 사이 노동자들의 반이상은 불안정한 일자리에서 해고와 계약해지에 불안해하며 살아왔다. 둘이서 하던 일을 혼자하면서 노동강도는 비약적으로 늘었지만 이들이 받는 임금은 53만원이었다. ‘죽음으로 자신의 이해를 관철하려는 시대는 지났다’는 모욕적인 말을 들으면서까지 노동자들은 분신과 자결로 2003년 한해를 살아야 했다. 여기에 땅이 있어도 농사를 지을수 없는 농민은 아예 일터를 잃어버렸고, 자괴감에 빠져 농약을 들이켜야 했다. 여성들은 구조조정의 1순위였고, 가족을 지탱해야 하는 책임은 책임대로 일자리는 일자리대로 고통을 감내해야 했다. 도대체 국가 신인도를 올려 금융시장에 투기적 자본들이 몰릴 수 있도록 투자여건을 확보하는 것이 도대체 누구를 위한 것이란 말인가? 초국적 자본가들을 살찌우고, 그 떡고물을 받아 파티를 열어 대한민국의 지배계급을 배불리려는 것 아닌가. 그것도 모자라 여기다가 우리 젊은이들의 숭고한 피를 갖다 바쳐야 한단 말인가? 우리는 더 이상 그럴 수 없다. 이제 한국은 미국과 영국에 이어 제 3위의 군대를 파견하는 자랑스러운 나라가 되었다. 이라크 대량살상무기는 발견되지 않았고, 미국과 영국에서는 이에 대한 정보조작이 커다란 문제가 되어 여론이 들끓고 있으며 이라크에서는 저항세력의 계속되는 공격으로 점령군이 늪에 빠지고 있는데 한국만 자발적으로 그 수렁으로 들어가는 결정을 내렸다. 우리는 노무현 정권과 그들 지배자들이 말하는 평화와 번영이 무엇인지 분명히 알고 있다. 시도 때도 없이 싸우며 국민을 환멸에 빠지게 하다가도 그들만의 평화와 번영을 위해서라면 한미동맹이든 여야동맹이든 모든 동맹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미국의 이라크 침략은 미국과 그들 초국적자본 중심의 세계화에 걸림돌이 되는 것들을 군사적으로 진압하는 것이다. 노무현 정권과 지배자들은 이에 종속되어 초국적 자본의 세계화에 앞장서고 군사력으로 이를 뒷받침하려는 전쟁동맹자다. 그들이 학살동맹의 역사에 새겨진 깊이 만큼, 남한 민중의 고혈을 짜내고 이라크 민중들을 학살하는데 앞장서기 위해 진실로 등등하게 나선만큼 역사와 민중의 심판은 냉혹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신자유주의 세계화와 전쟁으로써 민중의 생존과 생명을 유린하는 지배계급은 이제 민중의 철퇴를 맞는 것만 남아있을 뿐이다. 노무현정권과 지배자들은 기필코 그 죄값을 치르게 될 것이다. 국회에서 파병안이 통과했지만 정의와 양심을 가진 모든 이들은 앞으로 파병반대 투쟁, 한국군 철수 투쟁, 미국의 이라크 점령반대 투쟁을 사력을 다해 전개해야 하고 그렇게 할 것이다. 우리도 반전 반세계화 투쟁을 굳건히 결합하면서 있는 힘껏 그 투쟁에 함께할 것이다.
현재의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노무현 정권은 어떤 길을 택할 것인가? 미래에 대한 전망과 대안의 부재는 노무현 정권의 조건이다. ‘참여적 발전(참여와 발전의 결합)’이란 참여라는 이데올로기에 근거하여 대중을 동원하고, 전망과 정책의 부재를 참여로 대체하려는 노무현 정권의 전략이다. 노무현 정권의 정책은 동북아 중심으로 성장, 번영한다는 구상으로 수렴된다. 이의 핵심은 자본유치이다. 그러나 지난 해 극심한 경기침체와 가계파산, 생계형 자살 증가와 같은 삶의 불안은 노무현의 구상의 실효성에 의구심을 낳았다. 자본도 노동도 강력한 불만을 제기했으며, 사회적 갈등이 증폭되었다. 결국 노무현은 자신의 재신임을 내걸고, 일정정도의 정국주도력을 장악했지만 각종 사회갈등과 지배세력 내의 갈등을 관리해야 하는 과제를 안았다. 이제 노무현은 “투자활성화를 통한 성장잠재력 창출 - 일자리 창출”이라는 정책 방향을 내놓고, 위기관리를 유지하고자 한다. 적극적인 외자유치와 기업의 투자 활성화를 위한 제반 여건을 조성하기(대외개방, 노동 유연화, 금융시장 안정화 등) 위해 모든 경제․사회 정책이 구상되었다. 이러한 정책은 대중의 기본권과 양립하기 어려운 것들이다. 따라서 갈등과 저항은 필연적이다. 하지만 이를 관리하기 위한 사회통합 정책은 미봉책에 불과하다. 게다가 지금의 위기는 경제위기로 국한되지 않는 사회의 해체, 이데올로기적 국가기구의 위기를 동반하고 있다. 가족의 해체, 교육의 붕괴는 노동의 불안정화와 중첩되는 현상이면서 동시에 대중의 삶의 고통과 불안을 가중시키는 원인이다. 더군다나 가족과 교육은 대중의 삶에 매우 중요한 문제이지만, 대부분 ‘사적인’ 문제로 치부된다. 자신의 삶과 자신의 공동체 자체가 파괴될지도 모른다는 공포는 대중의 실리주의를 더욱 자극한다(포섭에 대한 기대와 배제에 대한 공포). 실리적 요구를 중심으로 한 코퍼러티즘적인 협약에 대한 대중의 선호-행정기구와 각각의 대중의 실리(소위 이익집단)가 직접 갈등을 조율하고 타협하는 방식-가 일반화된다. 이러한 상황에선 정당의 역할에 대한 의문이 제기된다. 정당정치는 행정부의 관리 방식의 효율성에 미달하는 무능력한 것이고, 대중은 자신의 삶에서 의회정치의 중요성을 느끼지 못한다. 하지만 정치적 안정성의 확보는 지배세력들에게 사활적인 과제이다. 따라서 ‘정치개혁’이 중요한 쟁점이 된다. 정치개혁의 목적은 효율적인 위기관리, 갈등조정의 체제를 구축할 수 있도록 정당의 역할을 조정하는 것이다. 정당은 기존의 이념지향을 벗어나서 전국정당, 무지개 정당이 되어야 한다. 모든 국민을 아우를 수 있어야 위기관리와 갈등 조절도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노무현 정권의 ‘참여적 발전’은 대중을 동원하고 동시에 대중들의 불만과 갈등이 급진적으로 전화될 수 있는 능동적 요소를 무력화하는 전략이지만, 이 역시 모순과 갈등의 여지가 많다. 참여 이데올로기를 근거로 대중을 동원하고, 이러한 동원이 대안과 전망의 부재를 메꾸어 사회의 통합을 이뤄내고자 한다. 하지만 참여의 논리가 극도의 실리주의에 기초하기 때문에(참여한 자만이 수혜를 얻을 수 있다는), 참여를 통한 합의는 누구도 만족시킬 수 없는 결론을 낳을 뿐이다. 오히려 갈등은 증폭되고, 다양한 요구들이 충돌하며 문제는 해결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른다. 그렇지만 정권에게는 ‘참여’ 자체가 중요한 것인데, 이미 참여는 책임을 전제로 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상황에서 민중운동은 어떻게 할 것인가? 민중운동이 노무현 정권의 ‘참여적 발전’의 동원 대상에서 제외가 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오히려 민중운동 내부, 노동자 대중 내부의 분할을 심화시키고, 일부를 포섭하는 것은 정권에게 중요한 과제다. 좋았던(?) 옛날을 미래의 전망으로 갖는 것은 정권과 지배세력의 관리방식과 공명하는 것이다. 대중의 실리적인 요구에 기반을 둔 이런 대응은 대중의 운동에 대한 불신과 대중의 수동성을 증가시킬 뿐이다. 현재의 위기가 이러한 실리적 요구를 만족시킬 수 없는 상황을 의미한다는 것을 정확하게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렇다면 현재 대중이 겪고 있는 고통과 삶의 해체가 운동에게 어떤 의미를 주는지, 어떻게 이들의 불만을 능동적으로 조직할 것인지를 차분히 고민해야 한다. 노무현 정권의 정치과정 2002년 대선 당시, 노무현은 이질적인 지지층들을 일시적으로 규합해서 수권에 성공했다. 이는 서로 다른 집단들의 이해와 요구를 두루 만족시킬 수 있는 사람은 노무현 자신이라는 희망의 조작을 통해 가능했다. 하지만 노무현 정권의 비전과 정책방향은 이미 정해져있었다. 철저히 신자유주의 개혁 방향에 자신의 조타수를 맞출 수밖에 없는 것이 그 조건이다. ‘글로벌 스탠다드’의 진정한 의미는 바로 이것이다. 신자유주의 정책을 추진하는 과정은 국민의 갈등과 불만을 야기했지만, 노무현 정권은 그들의 정책을 포기할 수 없었으며 국민들의 불만과 불안에서 비롯되는 혼란을 수습할 수도 없었다. 게다가 당선 직후 터져 나온 대통령 측근 비리 문제는 대선자금 문제, 불법정치자금 문제로 일파만파 되었다. 물론 이런 무능과 부정부패는 노무현만의 문제는 아니다. 자본주의의 구조적 위기라는 현 상황에서 위기를 봉합하고, 지연시키는 것을 제외하고는 어떠한 대안이나 비전도 제시할 수 없는 지배세력 전반이 직면한 문제이다. 이 문제의 근간에는 삶의 파탄과 사회의 해체에 직면한 노동자 대중의 불만이 놓여있으며, 따라서 핵심은 어떻게 이 불만을 관리(혹은 조직화)할 것인가이다. 이러한 노무현 정권의 대응의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국민들에게) 재신임을 묻겠다”는 대통령의 발언으로 비롯된 소위 ‘재신임 사태’다. 경제위기와 이로부터 다양한 갈등과 불만들이 드러나고 동시에 지배계급 내부의 각 분파간의 갈등 또한 첨예해진 상황에서 노무현은 ‘재신임 국민투표’를 제시했다. 재신임 선언은 “대통령 자신과 국가의 위기, 둘 중 하나를 택하라”는 협박에 다름 아니었다. 허나 이 ‘국민협박극’은 역설적이게도 ‘국민투표’라는 대의제 민주주의 체제에서는 가장 민주적인 기제를 통해 이루어질 판이었으니, 이만큼 노무현 정권이 말하는 ‘참여’의 본질을 보여주는 사례도 없을 것이다. 결국, 노무현이 말하는 ‘참여’란 비전과 대안이 없는 지배계급의 무능을 참여를 통해 국민과 대중에게로 전가하는 것일 뿐이다. 사람들을 참여시켜 합의를 도출하는 것, 이 합의로 비전과 대안의 부재를 대체하는 것이 ‘참여’ 논리의 핵심이다. 그리고 참여정부의 참여에는 경계가 이미 정해져있다. 당연히도 ‘신자유주의 정책 개혁을 어떻게 잘 추진할 수 있을 것인가?’가 그 기준이며, 이에 동의하지 않는, 혹은 동의할 수 없는 수많은 사람들은 배제된다. ‘참여’를 매개로 한 노무현 정권의 정치과정은 이후 더욱 강화될 것이다. 17대 총선에는 노무현의 재신임 문제가 달려있다. 정권의 사활이 걸린 이번 총선에서 알맹이 없는 선심성 공약이 쏟아져 나오겠지만, 그것이 결국 ‘공약’일 뿐인 조건에서 ‘참여’는 더욱 강조될 것이다. 뿐만 아니라, 정부가 말해온 ‘노사관계 선진화 방안’은 요즘 ‘일자리 창출을 위한 사회적 협약 체결’이라는 내용을 부각시키고 있다. 이는 현재 대중들의 삶의 문제가 되고 있는 실업의 문제를 노동자들을 참여시키는 가운데 해결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이 ‘기업하기 좋은 나라’라는 구상 속에서 도출되는 것이라는 점이 문제다. 그리고 현재 있는 일자리를 쪼개는 방식은 궁극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지만, 정권과 지배세력은 이 이상의 방안을 제시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이로부터 또 다시 갈등은 촉발되겠지만, 정권은 계속해서 ‘참여’를 통한 합의를 강조할테고, 이를 받아들이지 않는 세력들에겐 폭력과 배제가 남겨질 것이다. 한국 사회가 처해있는 조건과 노무현 정권의 정책 전망 자본투자에 우호적인 환경을 창출하기 위해 지속적인 신자유주의 개혁은 이미 주어진 방향성이다. 지난 1년 노무현이 갈팡질팡하는 행보 속에서도 계속해서 제출했던 각종 로드맵은 한국사회 전반에 걸쳐 이 개혁을 실행하기 위한 기본 구상이다. 애초에 노무현은 ‘동북아 중심 국가 실현’을 한국 사회 발전 전략으로 내세우고, 이를 실현하기 위한 조건을 창출하고자 하였다. 하지만 동북아 중심 국가의 핵심에는 외국인 자본 유치가 필수적인 바, 자본투자에 우호적인 환경을 창출하는 것이 그 조건이 된다. 그리고 이는 끊임없이 민중들의 기본권(생존권, 민주주의 등)과 충돌할 수밖에 없었으며 그로 인한 갈등이 다양하게 폭발했다. 게다가 지난 해 지표상의 경제성장률이 2%로 하락하면서 경제가 악화되었다는 평가들이 주를 이루었는데, 현실에서 체감되는 위기는 훨씬 심각했다(경제위기를 넘어선 사회적 위기라 할 만하다: 생계형 자살 급증, 개인신용불량자 급증, 출산율 저하 등). 물론 이러한 현실이 세계화된 시대의 한국경제의 발전전략으로서 ‘자본유치형 국가’라는 방향을 바꾸지는 못한다. 이는 DJ 정권의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을 거치면서 형성된 한국 사회의 기본 방향이다. 문제는 이러한 갈등과 불안 요소들을 제어하면서 신자유주의 개혁을 지속적으로 추진할 것인가이다. 올해 경제전망에 대해서는 부르주아 학자들은 4%~5%의 경제성장률을 예상하면서 대체적으로 회복세에 진입할 것이라는 전망을 제시하고 있다. 그 근거로는 세계경제(미국을 비롯한 중국과 유럽 경제)의 성장이라는 대외여건의 개선을 제시하고 있지만, 세계경제의 성장이 수출 증가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추측일 뿐, 구체적인 근거는 없다. 오히려 이를 전제로 회복세에 접어든 경제를 발판으로 동북아 중심국가를 실현하기 위해서 전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를 위해서는 성장동력을 확충하는 문제가 시급하다는 요구가 주를 이루는데, 그들이 성장잠재력의 장애로 꼽고 있는 것은 다음과 같다: 고용 없는 성장(만연된 실업), 경제 시스템의 낙후성(노사분규, 기업의 투명성 등), 소극적인 대외개방(FTA, 서비스 시장 개방 등), 사회의 양극화로부터 비롯된 사회적 갈등(서민들의 생활 안정). 최근 화두가 되고 있는 ‘고용 없는 성장’은 경제가 성장함에도 고용이 증가하지 않는 현상을 말한다. 이의 원인으로는 그나마 수출 증대에 기여하고 있는 IT 산업의 고용흡수 능력이 그다지 크지 않다는 것, 제조업의 중국진출로 인한 공동화 현상과 투자 부진으로 인한 신규채용 미비 등을 들고 있다. 그러나 이는 한국경제의 위기를 신자유주의 개혁을 통해 지연시키려는 시도 속에 이미 예정되어있던 결과이다. 이미 97년 외환위기 이후로 추진된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은 만연된 실업과 불안정한 고용을 노동시장의 일반적인 조건으로 만들어왔다. 그리고 한국경제가 (금융, 자본 시장에) 자본투자를 유치하여 성장하겠다는 전략을 취하는 바, 제조업 부문이 성장동력일 수 없다는 점은 전제된 바이다. 그럼에도 최근 고용/실업의 문제가 새삼스레 부각되고 있다면, 그것이 가지는 효과에 주목해야 한다. 재정경제부는 2004년 연두 업무보고에서 ‘투자활성화를 통한 일자리 창출’을 최우선 정책으로 꼽았으며, 이를 올해 경제정책의 기본 방향성으로 삼고 있다. 그러나 현재 상황에서 이전과 같은 안정적인 일자리를 공급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유연한 노동시장은 국내 기업뿐만 아니라 초민족적 자본의 요구이며, 신자유주의 개혁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유일한 길은 “기간제 고용에 대한 규제 완화, 해고관련 규제 완화 등 노동시장 유연화 정책을 계속 추진함으로써 다양한 고용행태를 보편화시켜 잠재적인 노동수요가 고용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정책적인 노력을 기울”이는 것이다. 이는 지금까지 추진해온 고용, 실업 정책의 맥락과 다를 바 없다. 동시에 이 말은 지금 재경부가 말하는 '일자리 창출' 정책이 실효성이 없다는 뜻이다. 실제로 정부가 솔선하여 고용창출에 앞장서겠다며 생색을 내고 있는 공공부문 일자리 창출과 청년실업대책도 그 대부분이 임시직, 직업훈련, 해외연수와 같은 단기처방일 뿐이다. 하지만 이 사실은 누구보다도 정권 스스로가 잘 알고 있으며, 따라서 고용 없는 성장의 구조적 원인을 해결해야 한다는 논리 하에 기업의 투자활성화가 중요해진다(일자리 확충의 주체는 기업이고, 기업의 투자가 증가해야 일자리도 늘릴 수 있다). 결국 일자리 창출 정책의 핵심은 일자리가 아니라 투자이다(기업하기 좋은 나라). 모든 경제․사회적 정책의 방향성은 투자를 활성화하기 위한 쪽으로 맞춰진다. 자본의 자유로운 이동과 투자의 안정성을 보장하기 위해 양자간․다자간 자유무역협정과 WTO 협상은 필수적이고 확대되어야 하며, 교육과 의료 등의 사회서비스 산업에 있어서 지나치게 공공성을 강조하는 것은 자본의 투자처를 축소시키는 일이다. 포섭의 기대와 배제의 공포 여기서 핵심적으로 보아야할 부분은 신자유주의 개혁이 필연적으로 동반하는 불안정한 삶과 만연한 실업이라는 민중의 불만을 다시금 자본의 투자를 위한 최적조건을 형성하기 위한 근거와 동력으로 삼는 역설이다. 우선 ‘동북아 경제중심 국가’라는 비전이 제시되었다. DJ의 경제개혁을 통해 한국 경제는 초민족적 자본들에게 매력적인 투자처가 되어 자본을 유치하는 것 외에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 하에서 살아남을 방도가 없게 되었다. 하지만 이미 지적했듯이 자본의 자유로운 이동을 보장하고, 수익을 보장하기 위한 개혁은 끊임없이 민중의 기본권과 충돌한다. 노무현 정권은 출범 이후 외자 유치를 위한 조건을 갖춘 한국의 미래로서 ‘동북아 경제 중심’을 제시했지만, 이를 진전시키는 데에는 어려움을 겪었다. 경제자유구역법 저지 투쟁, 화물연대의 파업, FTA 체결 반대 투쟁 등 노동자 민중의 저항이 끊이지 않았다. 모두를 행복하게 해주겠다는 그의 약속에 대한 기대는 누구도 만족할 수 없는 조건에서 더욱 커다란 불만과 갈등을 가져왔다. 하지만 노무현 정권이 택할 수 있는 다른 길은 없다. 남은 것은 이 갈등과 불만이 체제의 위기로 전화하지 않도록 사활을 걸고 관리하는 수밖에 없다. 하반기 노무현이 제시한 “소득 2만불 시대로 나아가자!”는 구호는 그 내용에서는 동북아 중심 국가 구상과 전혀 다른 것이 없는 수사에 불과하지만, 나름의 이데올로기적 효과가 있었다. ‘소득 2만불’이라는 표현은 동북아 중심 국가보다 훨씬 직설적이며, 그만큼 실리적인 기대를 자극할 수 있었다. 이는 한국경제가 “마의 1만불 벽을 넘어서 선진국으로 진입하느냐, 지금 이 상태에서 주저앉느냐”하는 기로에 서있다는 의식을 확산시켰고, 경제위기 상황과 맞물려 더욱 커다란 위기감을 자극했다. 누구도 지금과 같은 고통스러운 상황에 주저앉고 싶지 않다. 소득 2만불 시대를 실현하고, 동북아 중심 국가로서 번영을 누리는 것은 위기감 속에서 합의된 한국 경제의 유일한 미래가 되었다. 그리고 이에 저항하거나, 반대하는 세력은 ‘나라를 망치는’ 세력으로 가차없이 짓밟아야 했다(작년 하반기 노동자, 민중의 투쟁에 대한 탄압을 기억하는 것으로 충분할 것이다.). 노무현 정권은 이와 같은 강요된 합의를 기반으로 본격적인 관리 방식을 실행에 옮기고자 한다. ‘투자활성화를 통한 일자리 창출’과 ‘성장잠재력 배양과 경쟁력 강화’라는 정책 목표의 핵심은 ‘투자’에 있지만, ‘고용과 실업’ 그리고 나아가 성장과 발전이라는 전 국민적인 의제를 매개로 하고 있다. 하지만 이것은 노동자운동을 비롯한 민중의 저항과 운동에는 매우 위험한 것이다. 일례로 노무현 정권은 이 정책 과제 중의 하나로 일자리 창출을 위한 사회적 협약 체결 선언을 제시했다. 고용과 실업은 노동자운동 일부가 사회적 협약에 참가하는(혹은 거부할 수 없는) 명분이 될 수 있다. 하지만 협약의 결과, 현재의 불안정한 노동은 제거되지 않고, 오히려 심화된다. 노동의 불안정화가 심화되는 것 자체도 커다란 문제지만, 더욱 심각한 문제는 이러한 사회적 협약이 ‘포섭과 배제’라는 정권의 위기관리방식의 더욱 강력한 계기가 된다는 점이다. 삶과 사회가 위기에 처한 고통스러운 현실은 불안과 공포를 가중시킨다. 이런 상황에서 지금 자신이 가진 것이라도 지켜야한다는 실리주의의 등장은 당연한 현상이다.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층-중산층과 화이트칼라 노동자 일부-은 자신의 안정을 지키려할 것이다. 이들은 포섭과 참여의 대상이 된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다수-광범위한 빈곤층, 실업과 반실업 상태에 놓인 대중(이들의 대다수는 불안정 노동층이다), 이주노동자, 여성, 농민-는 배제된다. 게다가 이들의 저항은 용납할 수 없는데, 포섭된 대상들의 안정을 위협하기 때문이다. 노동자 대중 내부의 분할은 극심해지고, 결과적으로 (포섭된) 대중이 (배제된) 대중의 투쟁과 저항을 억압하는 비극을 낳을 수 있다. 게다가 이미 만연한 실업의 문제를 국정 가장 우선 과제로 내세우고 있는 지금의 상황을 엄밀히 보아야 한다. 신자유주의 구조조정 이후 문제가 되어왔던 실업과 고용의 불안정이 방치되었을 때 그 자체로 커다란 사회적 위험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하지만 위에서 지적한 전반적인 맥락을 보았을 때, 오히려 노무현 정권의 노동자에 대한 포섭과 관리의 적극적인 의지를 드러내는 것이라 볼 수 있다. 자본의 투자에 걸림돌이 되어온 노동자 대중의 저항을 순치하겠다는 강력한 구상이다. 만일 노동자운동이 사회적 협약을 거부한다면(이미 실리주의가 만연한 상황에서 노동자운동이 이를 거부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지만), 이는 전 국민적인 의제를 거부하고, 한국사회의 미래를 망치는 것이 된다. 그 결과 노동자운동은 이데올로기 공세와 물리적 탄압에 직면할 것이며, 이는 또 다시 노동자 대중 내부의 분할을 심화시켜 운동의 가능성을 점차 어렵게 만들게 된다. 정당정치의 위기와 정치개혁 신자유주의 개혁 하에서 정당정치는 사회적인 갈등과 위기를 조정하지 못하고, 정치 자체가 위기에 빠진다. 정당은 더 이상 국가행정에 대해 계급적 이익을 정치적으로 조직하고 대표하는 역할을 맡고있지 못하다. 정당은 이미 정책결정에 실질적인 관여를 못하고 있으며, 정당간에 정책적 차별성도 거의 없다. 국회의 입법활동이란 행정을 보조하는 역할을 넘지 못하는 수준이다. 정책의 큰 방향은 ‘글로벌 스탠다드’로 이미 주어져있는 것이다. 실질적인 정책결정은 행정부를 통해서 이루어지고, 행정부는 사회적 갈등을 조정하고 해결하면서 신자유주의 개혁을 실행해야 한다. 정책의 정당성 확보는 대의제 민주주의 기관인 국회를 통해서가 아니라 행정부를 통해서 이루어진다. 이로부터 정당과 의회정치의 역할을 축소되고, 행정기구의 역할과 권력은 증대된다. 더욱 효율적이고 강력한 위기관리체제가 요구되기 때문이다. 위기를 관리하는 행정적이고 기술관료적인 방식이 정치를 갈음한다. 따라서 정당의 역할도 조정되어야 하는데, 그 핵심은 전문성과 효율성을 갖추는 것이다. 이를 위해 정당 외부의 다양한 동원기구, NGO 등과 파트너쉽을 형성하며 이들을 활용한다. 정당 또한 행정부처럼 정책적 전문성을 갖추고, 어떤 이념보다는 사회적 갈등을 행정적인 방식으로 조정할 수 있어야 한다. 따라서 이렇게 정당의 역할을 조정하기 위해선 정치개혁이 중요한 쟁점이 된다. 17대 총선을 앞두고 정치개혁 논의는 한층 가열되고 있다. 정치개혁이라는 쟁점은 이미 지난 대선 시기부터 수면 위로 부상한 문제지만, 현재는 가히 ‘정치의 과잉’이라 부를 수 있을 정도로 정치개혁이 핵심적인 화두가 되었다(흡사 정치가 바뀌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 것처럼). 하지만 이는 외양면에서 부풀어있는 측면이 크다. 실제 대중은 의회를 중심으로 한 정치가 자신의 삶에서 중요하다고 여기지 않는다. 최근 정당의 지지도를 묻는 각종 여론조사에서 나타나는 바, 지지정당이 없다고 말한 부동층이 40~45%에 달하고 있으며, 투표율은 더욱 낮아질 것이란 예상이 우세하다. 게다가 각 정치세력들의 정치개혁 의제나 정책에서도 별 차이점을 찾아볼 수 없다. 비례대표제 확대, 선거구 조정과 같은 문제가 정치개혁의 성패가 달린 문제처럼 선전되고 그에 대한 입장이 각 당의 차이 같지만, 이는 각 정당이 자신에게 유리한 지분확보를 위한 사활적인 과제이지 정치개혁 자체의 핵심은 아니다. 한편 현재 달아오르고 있는 정치개혁 논의는 ‘인적청산과 세대교체’가 주류를 형성하고 있다. 열린우리당, 한나라당 모두에게 이번 총선의 모토는 “일하는 정치(전문성 강화), 깨끗한 정치(정치자금 투명화)로 경제를 되살리자(신자유주의 개혁)!”로 요약된다. 시민운동진영의 이번 총선대응의 주된 흐름인 ‘총선시민연대’의 낙천낙선운동과 ‘2004 총선 물갈이 국민연대’의 당선운동 흐름도 이 맥락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대중의 삶에서 정치의 중요성이 사라진 상황은 몇몇 참신하고 전문성 있는 인물교체로 극복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부패청산, 젊은 정치, 일하는 정치라는 쟁점이 국민을 인입하고 있다면, 이는 순전히 이데올로기적인 상황만은 아니고, 이러한 정치개혁을 통한 현실적인 실리가 존재한다는 말이다. 대선 당시 노무현 정권의 핵심 지지층이었던 386세력은 현실적 실리의 최우선 이해당사자이다. 정치적으로 이들은 길었던 ‘3김 시대’를 거치며 본격적인 정치적 진출이 지체되었던 계층이다. 게다가 이제 386들은 이제 40대에 접어들었으며, 계층으로 보자면 대졸중산층(상대적으로 안정적인)이다. 자신의 안정적인 생활을 유지하려는 경향을 가지며, 포섭될 희망이 강력한 계층이다. ‘세대교체’는 3김 시대의 구태의연한 세력들로부터 자신들에게로 정치적 발언력과 권한이 이전되는 강력한 계기이다. 그리고 정치개혁은 자신들의 안정된 생활을 지키는 길(사회적 갈등을 조정하는 행정적 방식으로 정당의 역할을 조정하는 길)이기도 하다. 그리고 정치개혁 쟁점이 부각되는 또 하나의 원인으로 미디어의 조작을 꼽을 수 있다. 이들은 매일같이 부패하고 무능한 정치권의 행태를 비판하면서 정치권의 반성과 개혁을 요구하고 있다. 정치개혁에 관한 각종 토론회와 전문가 진단 프로그램을 구성하며 정치개혁의 상을 제시한다. 게다가 한국사회의 미디어들은 계속해서 효율적인 행정의 중요성과 무능한 국회를 대비시키며 대립을 조장해왔다. 미디어는 행정부는 대통령의 지도력에 따라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며, 정책개혁과 갈등조정의 역할을 다 해야하고, 국회는 당략에 사로잡혀 행정부의 효율성을 저해하지 말아야한다고 비판해왔다. 이는 현재의 정치개혁의 방향과 정확히 일치하는 바이다. 한국 사회의 고질적인 문제 중 하나로 꼽히는 지역감정을 해결하는 것도 정치개혁의 과제 중 하나다. 이는 신자유주의 개혁 세력이 확보하고자 하는 전국정당, 무지개 정당을 실현하는데 있어서 핵심적인 과제이다. 지금의 지역감정은 이전 3김 시대와 달리 성장으로부터의 지역배제와 이에 따른 지역경제 침체라는 조건이 존재한다. 이는 (민족)국가 전체가 아니라 특정한 지역을 선별 포섭하는 세계화 과정에서 동반되는 것이지만, 뒤집어 말하자면 (민족)국가 차원이 아니라 지역별로 자율적이고 독자적인 발전전망을 가지고 포섭될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한국의 경우 신자유주의 개혁을 거치면서 수도권을 제외한 여타 지역은 극심한 배제를 경험했다. 이 속에서 실리주의적인 지역발전 이데올로기는 지역감정의 새로운 조건을 낳았다. 더 이상 지역감정은 영․호남의 지역적 분할선을 타고 균일하게 드러나지 않는다. 정치개혁의 과제로서 지역감정 타파는 모든 지역에 골고루 발전의 전망을 약속해야 한다(실제 지난 대선에서 노무현 당선의 중요한 전략은 지역별로 발전을 약속한 것이었다.). 영․호남을 넘어서 모두를 만족시키겠다는 약속(열린우리당의 총선전략이기도 하다.). 그러나 모두를 만족시키려면 누구도 만족시키지 못한다. 배제와 포섭의 논리는 계속 지역발전의 전망과 공존한다. 게다가 지역 내부의 불평등과 배제가 더욱 문제다. 한 지역의 발전이 그 구성원 모두의 발전을 의미하지 않는다(어떤 지역도 노동의 불안정화와 빈곤의 심화를 없앨 수는 없다.). 하지만 지역발전 이데올로기는 내부의 배제를 쟁점에서 사라지게 한다. 정확한 현실의 인식으로부터 출발하자. 회복될 기미를 보이지 않는 경제위기는 이제 사회의 해체로 나아가고 있다. 가족과 학교 등 공동체를 유지하기 위한 이데올로기적 국가기구의 위기가 나타난다. 위기와 그 극복전략을 둘러싼 치열한 이데올로기적 대치가 심화된다. 지배세력은 ‘참여’ 이데올로기에 근거하여 포섭과 배제의 메커니즘을 작동시키며, 위기를 관리하고자 한다. 배제의 공포 속에서 대중은 내가 아닌 다른 희생양을 찾는다. 희생양이 되지 않기 위해 경쟁해야 한다는 논리가 극심해진다. 누군가는 ‘수건돌리기’라고 표현했다. ‘나의 뒤에 수건이 놓이지 않기를 바란다. 하지만 만약 놓인다면 내가 살기 위해서 그 수건을 다른 사람에게 넘겨야 한다.’ 위기의 해결이 아닌 지연의 악순환. 그렇다면 우리는 어디에서 출발할 것인가? 정확한 현실을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 한국사회의 객관적 조건과 현실에 대한 인식, 대중의 불만과 고통의 현실에 대한 정확한 인식. 갈등을 조정하고 위기를 관리하며, 경쟁과 희생의 이데올로기로 대중을 동원해내는 지배세력의 방식에 조응하는 것은 운동이 처한 위기를 더욱 심화시킬 뿐이다. ‘참여의 수혜와 관용’을 받는 것은 어려움에 처한 운동에게 매우 매력적인 것일 수 있다. 하지만 사회적 위기는 해결되지 않는다. 이것이 현실이다. 위기가 해결되지 않는 고통스러운 현실과 이에 적합하게 대응하지 못하는 운동 사이의 괴리는 커지고, 이 괴리는 더욱 큰 대중의 절망을 낳는다. 대중을 수동적으로 동원할 것인가, 대중을 능동적으로 조직할 것인가의 문제는 지배세력과 우리가 맞서야 하는 결정적인 지점이다. 대중이 처한 현실을 객관적으로 적확하게 인식하는 것이 이 문제에 맞서는 우리의 출발점이다.PSSP
'참여정부'의 악순환 노무현 정권이 '서로 다른 집단들을 모두 기쁘게 하겠다'는 약속의 핵심에는 '참여정부'라는 구호가 있었다. 즉 정부가 나서서 정책을 완성하고 집행하기보다는 각 사안의 이해당사자들이 정부의 공식․비공식 기관에 참여해 문제를 해결해 나가자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각 이해 당사자들이 적극적인 대화와 타협의 자세로 임해야 하며, 정부는 공정하게 적절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는 논리다. 그리고 이런 방식으로 결정된 정책이야말로 힘을 갖고 추진될 수 있다는 말이다. 이처럼 노무현 정권이 내건 참여정부는 '민간'의 참여를 장려하는 민주적인 외양을 띠었다. 게다가 노무현 캠프에 '386세대', 운동권 인사가 가담하면서, 이러한 방식은 실제로 작동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낳았다. 그러나 그 본질은 오히려 행정관료나 미디어가 선호하는 갈등조정의 방식일 뿐이거나, 문제의 책임을 정부 밖으로 돌리는 데 있었다. 정부는 그 자체로는 아무런 내용도 없는 '참여'를 주장하면서 각각의 사안에 관해 개혁법안이나 '사회적 협약'을 추구한다. 하지만 행정관료나 미디어가 선호하는 대화와 타협은 사실 절충적인 미봉책에 머물고 만다. 따라서 모두를 기쁘게 하기는커녕 아무도 만족시킬 수 없는 결론에 도달하곤 한다. 오히려 종종 갈등을 더 증폭시키거나, 서로가 서로의 발목을 잡아 문제 해결이 고착되는 효과를 낳을 뿐이다. 마지막에는 정부가 이해당사자의 '집단 이기주의'를 운운하며, 그 책임을 정부 밖으로 전가하게 된다. 결국 악순환이다. 특히 노동자에게 그 참여의 경계는 명확하다 (이미 노무현 대통령은 인수위 시절부터 노동운동 지도자들과의 자리에서 '안되는 것은 안되는 것이다'라고 분명히 못을 박았다.). 더군다나 광범위한 실업-반실업, 빈곤 대중은 '참여'의 대상에서 사라지는 경향이 있다 (곧 '시민'에서 배제되는 경향이 있다). 정부가 포괄하려는 참여의 범위는 다양한 직업적 집단이나 NGO, 전문가 집단이다. NGO가 불안정한 노동자 대중을 대체하여, 이들 집단의 '관리의 주체'로 승인된다. 신자유주의 경제개혁의 정치적 모순 물론 정부 정책의 기본 방향은 존재한다. 하지만 한국정부의 고유한 정책 방향이란 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오늘날 한국사회의 개혁방향은 이미 '글로벌 스탠다드'라는 이름으로 간주된다. 이미 다양한 초민족적 국제기구들은 각종 경제․사회 정책을 고안하는데 온 힘을 기울이고 있다. 국제화폐기금(IMF), 세계은행,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등의 국제기구는 정부재정, 금융 정책을 비롯해 거시․미시 경제정책, 노동, 교육, 여성, 사회복지, 인구 노령화 등 다루는 사회이슈를 끊임없이 확대해 나가며 정책연구 보고서들을 쏟아내고 있다. 이러한 기구들이 제시하는 정책들이 신자유주의 개혁의 각론들을 구성한다. 물론 이러한 정책의 궁극적인 목표는 자본투자에 안정적이며 우호적인 방향으로 사회를 개조해 나간다는 것이다. 특히 노무현 정부는 한국 사회의 '성장 잠재력의 고갈'을 내세우며 신자유주의 개혁을 거스를 수 없는 대세로 추진하고 있다. 새로운 성장동력을 구축하기 위해서는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며, 기업집단간, 개인간 경쟁을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당연히 각종 사회적 위기의 지표들이 출현하고 있다 - 실업의 만연('고용없는 성장'), 가계대출과 개인신용불량자 급증, 출산율 저하, 중소기업 붕괴, 농업 해체, 이민열풍과 두뇌유출 등등. 물론 몇몇 특화된 산업과 기업이 선두를 달리며 초민족 기업으로 자태 변환을 시도하고 일부의 엘리트집단이 세계화된 생활양식을 영유한다. 그러나 대다수의 인민은 하향 평준화되거나 사회불안을 제거하기 위한 '관리'의 대상이 된다. (금융)투자에 우호적인 환경을 창출하라는 신자유주의 경제개혁의 지상명령과 노동권-시민권의 보편적 요구는 근본 모순을 낳는다. 개혁과 정치의 슬림화 하지만 신자유주의 개혁이 동반하는 정치개혁은 근본적 모순을 비켜 간다. 그 목적은 오히려 단순하다. 행정의 효율성을 높이고 정치 비용을 경량화하자는 것이다. 결국은 정치 자체를 행정적 관리로 대체하고 슬림화하자는 것이다. 신자유주의 개혁은 어느 때 못지 않게 강한 '리더쉽'을 요구한다. 하지만 정당과 의회의 역할은 계속 축소된다. 정당들이 전통적인 정치 이념과 지지 기반에 따라 정책을 결정하고 입법활동을 펼친다는 것은 시대착오적인 것으로 간주된다. 이미 다방면에 걸친 개혁안은 '글로벌 스탠다드'로 주어진 것이다. 실질적인 정책결정의 장소는 행정부고, 행정부는 수완을 부려서 해결사의 노릇을 해야한다. 정당성의 위기, 대중들의 불안과 불만, 사회운동들의 저항을 헤쳐나가기 위해 정부의 권력은 증대된다. 따라서 신자유주의 개혁은 결코 '강한' 정부를 포기하지 않는다 (DJ정권이나 노무현 정권은 '작지만 강한 정부'라는 구호를 항상 주장했다). 물론 과거 군사독재의 폭압적인 동원 체제를 대체할 방법을 찾는데, 문제는 효율적인 위기관리, 갈등조정 체제다. 이에 따라 정당의 역할도 변형된다. 정당에 소속된 정치인들은 마치 학계나 NGO의 전문가들처럼 정책적 전문성을 갖추어 그러한 흐름에 부합하는 게 가장 우수한 활동인 것처럼 평가된다 (NGO가 정치인을 욕할 때 가장 먼저 나오는 말은 '무식하다'는 것이다). 이미 정당들은 스스로 '국민정당'이나 '무지개정당'으로 탈바꿈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어떤 이념보다는 사회갈등을 행정적인 방식으로 조정하는 데 자기 역할을 찾아야 한다는 말이다. 따라서 정치개혁의 중요한 목적은 정당과 의회의 역할을 재조정하는데 있다. 또한 정치자금의 투명화와 그 결과로 정치비용의 경량화도 중요한 요구다 (최근 전경련의 행보에서 볼 수 있듯이 대자본의 요구이기도 하다). 개인적 부패스캔들에 휘말린 정치인이 공정한 조정자의 역할을 자임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덧붙여 한국에서 정치개혁의 주요 이슈에는 각 정당들의 '당략'적인 목적이 담긴 내용들도 포함되어 있다. 보통 '지역구도 타파'로 선전이 되는 간선제 국회의원의 확대, 선거구 재조정 등은 한나라당의 의석 비율을 잠식하여 정당들의 세력관계를 바꾸자는 것이다. 이는 정치개혁의 성패가 달린 문제인 것처럼 선전되지만, 최종적인 목적지가 다른 것은 아니다. 다만 정치계급 또는 지배엘리트들에게는 지분이 걸린 생사의 문제다. 오늘날 한국사회의 미디어들은 효율적인 행정의 중요성과 무능부패한 국회의 문제를 대비시키며, 거듭하여 대립을 인위적으로 조장하고 있다. 행정부는 대통령의 지도력을 인정하고 그것을 충실히 따라야 한다 (이견을 제시하는 것은 공무원의 할 일이 아니다), 국회에서의 논란은 대부분 불필요한 것이고 개혁에 힘을 실어주어야 한다 - 이것이 미디어의 요구다. 참여정부와 코포라티즘 '참여정부'의 이데올로기가 사회운동에 끼치는 심각한 효과는 '참여'라는 허구적인 쟁점을 놓고 대중운동들을 분할한다는 점이다. '참여'는 사실 대중운동에게 매우 부분적인 타협의 가능성을 흘려주지만, 그 악순환의 끝은 부분적인 포섭과 배제다. '참여정부'의 이데올로기가 사회운동에 끼치는 효과는 결코 무시할 수 없다. 정부가 특정한 분야나 사안별로 '참여'의 경로를 제공함으로써 사회운동은 실제로 '참여냐 비타협적 투쟁이냐'라는 의도된 쟁점에 휘말리게 된다. 또는 각자 자기의 몫을 챙기기 위해 공식적, 비공식적 경로로 대화에 참여하거나 정부의 개혁안 수립에 참여하게 된다 (오히려 '빠지면 나만 손해다'라는 생각을 불러일으킨다). 그 결과로 사회운동의 활동은 공통의 연대를 추구하기보다는 각 부문이나 분야별로 분산된다. 그리고 주요한 활동이 정부와 '정부개혁안'을 수립하는 데 참여하거나 여러 형태의 '사회적 협약'을 맺는 데 주력하게 된다. 그리고 이러한 활동이 애초 목표를 이루지 못할 경우, 최후의 수단으로 국회통과를 저지하거나 또는 관철시키기 위한 활동에 돌입하게 된다 (개별 국회의원에 대한 로비 활동을 벌이고, 이 때 특히 총선에서 당선 또는 낙천․낙선운동을 무기로 삼게 된다). 사실 이미 이러한 방식의 활동이 사회운동에서 대체로 정형화되고 있다. 이러한 방식의 운동은 효율성과 편의성이라고 하는 '덕목'을 내세우고 있다. 가시적인 성과를 따낼 수 있다는 기대, 단일 이슈에 집중성을 발휘할 수 있다는 효율성, 그래서 직접적으로 상관이 없어 보이는 문제에 대한 무관심의 정당화, 코포라티즘적인 동원에서의 편의성 등등. 이는 많은 운동단체들에게 큰 유혹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이러한 패턴의 활동은 종종 운동 주체화 과정이 제거된 협상과 동원 체계로 전환된다.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구속력을 갖는 협상을 원하게 되고 따라서 제도화를 추구하게 된다. 또한 협상이 성사될 경우에는 그것을 사회운동 내부에서 관철시켜야 한다. 오히려 정부의 어려움을 먼저 헤아려야 하고, 그것을 대중에게 설득해야 한다.(?) 이는 사회운동이 '국가의 이데올로기적 장치'로 흡수되는 경로다. 문제는 이것이 전부가 아니다. 특정 부문이나 분야를 이슈로 하는 운동은 사회운동의 주체를 형성하는데 근본적 난점을 갖는다. 물론 특정 분야 개혁에서 미디어의 여론 조사 결과는 그것을 추진하는 세력에게 우호적으로 나타날 수 있다. 그러나 어떤 단일한 이슈, 협소한 쟁점이 개인들을 일시적인 관심으로 불러일으킬 수 있어도 장기적인 운동 주체화의 과정이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단일 이슈 운동은 끊임없이 새로운 이슈, 정책아이템을 찾아 부유한다. 사회의 해체와 이데올로기적 국가기구의 위기 그러나 이것이 운동 방식의 문제만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광범위한 실업-반실업, 빈곤 대중이 '참여'의 대상에서 사라지는 경향이다. 신자유주의 개혁은 기존의 국가장치가 과거와 동일한 방식으로 작동될 수 없는 조건이다. 정당과 노동조합과 같은 기관들만이 문제가 아니다. 가족의 해체, 학교의 붕괴와 같은 이데올로기적 국가기구의 위기는 노동의 불안정화와 중첩되는 현상이다. 이는 신자유주의 개혁의 참여세력에서 배제된 집단들에게는 삶의 고통을 극단적으로 증폭시키는 직격탄이다 (해고나 카드 빚이 자살의 직접적인 이유인가? 그에 따른 가족의 파탄, 기존 공동체로부터 배제된다는 공포가 사람을 죽음으로 몰아간다). 사회적 노동과 정치에 대한 참여가 전제되지 않은 교육은 존재할 수 없다. 그러나 노동과 연계된 교육의 위계화와 실업의 공포는 교육을 붕괴시킨다. 또한 빈곤의 여성화는 중산층 핵가족 모델을 해체하는 하나의 중요한 계기다. 이러한 현상은 기존의 생활양식을 파괴하고, 사회로부터의 배제라는 개인들의 극단적인 불안을 형성한다. 이러한 문제는 대중들의 일상적인 삶에서는 가장 중요한 문제이지만, 종종 개인들의 '사적'인 문제처럼 여겨진다. 신자유주의 정부의 사회정책은 파편적인 미봉책을 제시할 뿐이다. 사회운동은 이를 뚜렷한 정치 쟁점으로 전환하지 못하지만, 기존의 방식으로도 그 괴리를 따라 잡지 못한다 ('최대한의 임금상승'과 '고용안정'으로 가족과 학교를 매개로 하는 기존의 생활양식을 유지하는 게 가장 간편한 해결책으로 인식된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그 해결책이 적용 가능한 범위는 단지 일부일 뿐이다). 또는 종종 정부와 유사한 방식으로 부분적인 정책공약으로 이를 대체하려고 한다. 그러나 이러한 문제들은 실로 기존 공동체의 붕괴를 의미하므로 고통을 완화시키려는 몇 가지 대증요법으로 해결할 수 없다. 사회운동이 기존 제도들의 붕괴로 인해 현재 대중들이 겪고 있는 직접적인 고통들에 적합하게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 이것은 과연 어디서부터 운동을 출발해야 할 것인가에 대해 적합하게 인식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달리 말해 그것은 사태의 원인이 무엇인가 적합하게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 사회운동의 이념을 개조하자! 이 즈음하여 우리가 '사회운동 노조주의'를 토론하게 된 맥락을 다시 한번 짚어볼 필요가 있다. 사회운동 노조주의는 1990년대 말 IMF 경제개혁과 민주노총 위기논쟁이 불거졌을 때 우리의 화두였다. 이는 새로운 국면에서 사회운동의 공통과제를 '노동자운동의 새로운 주체형성'(계급형성적 노동운동)으로 설정하자는 제안이었다. 특히 노동자대중 내부의 광범위한 실업-반실업-빈곤 대중 문제, 노동자운동 내의 성차별주의와 인종주의 문제를 자율적인 노동자운동을 통해 극복해나가야 한다는 것과 노동자운동의 전망이 평의회에 대한 지향(코포라티즘이 아닌 노동자통제)으로 전환되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특히 빈곤, 성, 인종의 문제는 필연코 공동체의 문제를 낳는 것이었다 (새로운 공동체의 형성). 따라서 사회운동 노조주의는 무엇보다 노동자운동의 이념을 어떻게 개조할 것인가의 문제이다. 현재 노동조합의 많은 활동가들이 어려움을 호소하는 것은 이러한 이념적 지향과 관성화된 사업 패턴 사이의 괴리를 어떻게 풀어나갈 수 있을 것인가에 있다 (오히려 새로운 운동방식을 개척하지 못함으로 인해, 대중들이 기존의 '안전한' 방식을 요구하고 있는가?) 노동조합의 활동이 '상반기 임단협과 시기집중 파업-하반기 사회개혁투쟁'으로 고착화되고, 민주노총의 활동가들이 '사실 남아 있는 우리의 무기는 시기집중 파업이 유일할 뿐'이라고 자조하고 있다. 또한 대부분의 활동가들이 '지도부 교체로 바뀔 것은 아무 것도 없다'고 말하고 있으며, 이는 분명한 사실이다. 물론 당장 어떤 활동으로도 상황이 크게 변화하지 않을 것이라고 인식하는 것은 고통스러울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러한 조건을 인식하지 않는다면 우리의 출발점은 없을 것이다. 노무현정권의 '억압의 관용' 우리는 지난해 노무현 대통령의 재신임 선언이 오히려 정부의 권위주의적 성격을 강화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재신임 선언은 이미 실패한 정권의 '국민협박극'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었다. '이래도 자신을 지지하지 않는다면 국가를 위기에 빠뜨리겠다'는 정말로 거대한 협박. 이는 대통령의 강력한 지도력을 승인하라는 위협이었다. 그러나 사회운동이 코포라티즘적인 지향과 활동 방식을 체화한다면 대통령의 강력한 리더쉽은 달가운 일이 된다. 그가 사회운동의 특정한 부위의 '후견인' 역할을 자인하는 한에서. 오히려 억압이 일상화된다면 '관용'은 보호자가 베푸는 큰 혜택이 된다 (그야말로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이다). 노무현 정부의 '참여정부'와 '억압의 관용'은 사실 백지 한 장 차이다. 참여정부의 논리가 대중운동의 동원과 무력화를 동시에 수반하기 때문이다. 노무현 정부가 구조적 위기에 직면해 있는 한, 억압의 관용은 그들의 가장 매력적인 수단이 될 것이다.PSS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