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정부는 촛불시위에 대한 탄압을 즉각 중단하라! 종로경찰서는 광화문 촛불추모제와 관련, 3월 5일과 6일에 걸쳐 여중생 범대위 문정현 신부, 홍근수 목사, 이관복 선생 등 대표단과 최근호 상황실장, 김종일 공동집행위원장, 김홍열 기획위원장, 우위영 문예위원장, 이승헌 민주노동당 자주통일국장, 김배곤 민주노동당 부대변인 등 9인에게 종로서 명의로 소환장을 발부했다. 작년 12월 7일 부터 3월 1일 까지 총7회에 걸쳐 진행한 여중생 촛불추모행사에 대해 '집회및시위에관한법률'을 위반한 혐의가 있다는 것이다. 그동안 경찰은 아무런 문제도 제기하지 않았음은 물론이거니와, '추모'시위라는 '특수성' 때문에 집회를 허용한다는 입장을 명시적으로 밝히기도 했다. 이는 촛불시위의 정당성과 합법성을 경찰이 스스로 인정한 것에 다름 아니다. 그런데 왜 갑자기 촛불시위의 불법성을 문제삼고 나서는가? 노무현 대통령은 당선 직후 촛불시위의 정당성을 인정하면서도 이제 그만 자제해 달라는 주장을 펴왔다. 이와 동시에 촛불시위에 대한 경찰의 탄압 역시 조금씩 늘어 왔다. 작년, 12월 31일과 2월 15일에는 사전에 허가되었던 집회장소를 봉쇄하고 집회의 원활한 진행을 가로막는 등 직접적인 탄압을 가하기도 했다. 그러나 촛불시위가 정당하다면 촛불시위에서 요구했던 핵심 사항들이 전혀 실현되지 않은 상황에서 촛불시위가 중단되어야 할 어떠한 이유도 없다. 정당성을 인정한다고 하면서도 탄압을 가하는 상호 모순적인 태도는 지금의 정권이 촛불시위를 통해 분출된 국민적 요구를 자연스럽게 잠재우기 위한 불순한 의도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초등학생부터 할머니, 할아버지에 이르기까지, 학생부터 노동자까지, 남녀노소, 직업, 종교를 넘어 수십만이 넘는 사람들이 100일이 넘는 기간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촛불을 지켜왔다. 효순이, 미선이의 죽음을 추모하는 촛불은 인간의 존엄을 지키고, 불평등한 한미SOFA를 개정하며, 평화와 인권을 쟁취하기 위한 우리 모두의 소망과 의지였다. 우리는 아직 우리의 촛불을 내릴 수 없다. 효순이, 미선이의 죽음의 진상은 규명되지 않았고, 한미SOFA는 개정되지 않았다. 더구나 미국의 패권적, 군사주의적 전략이 한반도와 세계의 평화와 민주주의를 위협하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는 반미반전과 평화의 촛불을 더욱 높이 들어야 한다. 노무현 정권과 경찰당국은 촛불시위를 탄압하는 자신들의 행위가 남한 민중의 평화와 인권을 위한 의지를 짓밟는 것에 다름 아님을 명심해야 한다. 범대위 관계자들에게 발부된 소환장의 집행을 즉각 취소하고 자유로운 집회의 권리를 보장하라! 그렇지 않으면 역사와 민중의 엄중한 심판을 받을 것이다. 2003.3.11. 사회진보를 위한 민주연대
3월호 특집은 지난 1·2월호에 이어 노무현 정권 등장의 의미를 짚어보고 있다. 국민경선제에서 대선까지 노사모를 비롯한 소위 386세대라는 이름으로 모여든 사람들의 적극적인 참여는 어떻게 만들어졌고 어떤 효과를 낳고 있는지 살펴보면서 이들의 정치적 입장에 버팀목이 되고 있는 비판적 지식인(최장집을 중심으로)에 대한 비판을 담았다. 현재 개혁적 지식인이라 자처하는 사람들의 대부분이 인수위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가 하면 NGO운동을 통해 정부의 정책에 적극적인 조언자가 되고 있는 상황에서 김예니, 장진범은 이들의 면면을 분석·폭로하고 있다. 특히, 노무현 정권의 여성정책과 동북아중심국가론은 신정부의 색깔이 가장 잘 드러나는 대목이라 할 것이다. 구조조정의 후과를 여성이 흡수할 수 있도록, 저출산으로 드러나고 있는 재생산의 위기를 여성노동력의 확충으로 해결하기 위해 '직장과 가사의 양립'을 목표로 하는 성주류화 전략에 대해 류미경은 공세적인 비판과 새로운 여성운동이 필요함을 역설하고 있다. 그리고 이상훈은 동북아중심국가론에서 보이는 노무현 정권의 경제정책은 경제자유구역법을 필두로 글로벌 시티 네트워크로 편입하기 위한 몸부림이고 이것은 결국 배제를 극대화하는 방식으로 드러날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들어가며 -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 87년 이후 투표율이 지속적으로 하락하여, 급기야 2002년 8월 16대 국회의원 보궐선거에 이르러 30% 이하까지 떨어졌다는 사실은, 지배정치의 위기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현재 지배정치의 '정상적' 메커니즘이, 정당에 의한 '대표'를 매개로 시민의 '참여'를 동원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 같은 상황은 지배정치의 정당성에 대한 근본적 위협이 아닐 수 없는 것이다. 이와 함께 소위 '고비용 저효율'이라는 문제점을 들어 기존 정당들이 앞 다투어 정당개혁과 관련한 논의를 벌이고 있고, 민주노동당 등도 이러한 논의에 동참하고 있다. 바야흐로 정치개혁은 전 국민적 의제가 되고 있다. 이런 시점에서 김대중 정권 당시 대통령자문 정책기획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한 바 있는 대표적 이데올로그 최장집은,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2002)라는 상징적 제목의 저서를 통해 신자유주의 정치개혁의 기본 골격을 교과서적으로 제시했다. 이것이 현실에서 진행되는 신자유주의 정치개혁과 100% 부합하는 것은 물론 아니겠지만, 그것들의 이론적 참조점이 되는 것은 분명한 것 같고, 그런 한에서 현실적 효과 역시 생산하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최장집의 논의를 통해 신자유주의 정치개혁의 이론적 근거들을 살펴보고, 그것의 논리적 결함 및 정치적 모순을 비판하고자 한다. 하지만 이는 최장집 개인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대부분의 신자유주의 정치개혁 및 그에 공명하는 논의들에 공통된 것이다. 이런 점에서 최장집의 논의는 말의 강한 의미에서 하나의 사례로서의 의의를 가지며, 그에 대한 비판은 신자유주의 정치개혁 전반에 대한 비판으로 일반화될 수 있을 것이다. 한국민주주의는 위기다 최장집은 한국 민주주의가 위기에 처해 있음을 인정하면서, 이를 '사회적 기반이 없는 정치적 대표체제와 이에 대표되지 못하고 저항하고 있는 비투표유권자 사이의 균열'이라는 문제 틀에 입각해 파악한다. 이 같은 균열의 주된 원인은 냉전반공주의의 헤게모니에 의해 장악된 보수독점의 정치적 대표체제에 있다. 이로부터 계급구조화의 심화와 중산층 중심 사회의 해체, 교육과 계급구조화, 지방의 배제와 초집중화, 냉전반공주의의 미시적 결과 등의 사회적 결과가 따라 나온다. 여기에서 특기할 만한 것은 민주화가 역설적으로 정치 위기의 구성적 요인으로 작용했다는 진단이다. 그에 따르면 권위주의 정권의 집권 엘리트들은 밑으로부터의 불만과 도전을 가장 두려워했기 때문에, 한편으로 저항의 계기를 폭력적으로 억압하면서도, 다른 한편 위로부터 그 요구를 일정 부분 수용함으로써 사회를 통제할 줄 알았다. 반면 민주화 이후 국가와 정당체제 그리고 민주 세력은 현실적 문제들과의 대면을 회피하는 데 민주화의 정당성을 이용하는 안락한 보수주의에 젖어, 사회와의 균열을 더욱 심화시켰다는 것이다. 하지만 최장집은 어쨌든 민주주의가 현실적으로 최선의 정치체제이므로, 해결책으로 (권위주의 정권을 무너뜨린 행위로 규정되는) 민주화에 의해 가능해진 민주주의를 정착시키기 위한 다양한 제도적이고 규범적인 노력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전자의 핵심은 정당(체계)개혁이며, 후자의 핵심은 자유주의적·공화주의적 유산의 계몽이다. 정당경쟁을 통한 갈등의 사회화 왜 민주주의가 현실적으로 최선의 정치체제인가? 최장집의 대답은, 민주주의가 권위주의와 달리 사회적 갈등을 억압하지 않는, 다시 말해 갈등을 정치의 틀 안으로 통합하면서 사회적 합의를 만들어 가는 제도라는 것이다. 왜 민주주의 제도의 핵심이 정당(체계)인가? 최장집의 대답은, 사회적 갈등과 균열을 정치의 영역에서 표출·대표하며, 이에 기반을 둔 대안을 조직하여 선거에서 경쟁함으로써 궁극적으로 사회적 갈등을 완화시키고 통합하는 것이 바로 정당의 기능이라는 것이다. 좀더 자세히 살펴보자. 최장집은 민주주의 개혁의 핵심 원리로 갈등의 사유화에서 갈등의 사회화를 제시한다. '갈등의 사유화'는 정치 엘리트들이 한 사회의 지배적 사회 갈등을 배제하고 자신들의 당선과 재선에 유리한 갈등만을 선택적으로 동원하는 형태를 지칭한다. '갈등의 사회화'는 한 사회의 중요하지만 억압되어 있던 갈등들이 정당경쟁을 매개로 정치의 영역에 진입하는 방식을 말한다. 이로부터 정당(체계)개혁이 민주주의 개혁의 핵심이라는 주장이 더욱 분명해진다. '갈등의 사회화'를 가능케 하는 핵심 매개가 정당경쟁이기 때문이다. 최장집은 정당경쟁을 통해 다양한 갈등들이 정치의 영역에 진입하게 될 때, 또한 기존의 정당들이 이를 무시할 경우 새로운 정당이 용이하게 만들어질 수 있게 될 때, 보수적 정당 간의 끝없는 저질경쟁은 멈추도록 강제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는 또한 유권자 개개인의 '자유로운 선호'의 표출을 보장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이런 이유에서 최장집은 '결선투표제'나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를 도입하여 기존의 보수 독점적 양당체제를 해체하고, 온건한 다당제로의 전환 및 정책 중심의 경쟁과 연합으로의 유인을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이상의 과정이 궁극적으로 사회적 갈등을 완화하고 통합하는 데 기여한다는 주장이 이어진다. "끓는 주전자처럼, 김이 빠져나갈 구멍이 있으면 터지지 않지만, 물은 끓고 있는데 다른 출구가 없으면 갑자기 터지게 되는 것과 같은 이치"로 말이다. 또한 정당의 대표체계를 보다 확장함으로써 그것이 반영하는 사회균열의 범위와 기반을 확장하면, 정당간 갈등의 강도는 완화된다는 주장도 나온다. 애당초 갈등의 강도가 높았던 까닭은 갈등의 범위가 매우 좁았기 때문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공화주의와 자유주의 - 규범의 문제설정 이상에서 최장집은 민주주의 제도의 본질로 다원적 갈등과 경쟁을 특권화 한다. 하지만 즉각 다음과 같은 고전적 비판이 고개를 든다: 다원적 갈등과 경쟁이 조정되지 않고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이라는 홉스적인 상태로 이끌릴 위험은 없는가? 규범의 문제설정이 나오는 건 바로 이 때문이다. 최장집에 따르면 무정부적인 다원주의와 (롤스의 표현을 빌리자면) "이성적으로 구성된 전반적 이념의 다원성"의 체계는 엄격히 구별된다. 시민사회는 공적 이성을 매개하여 국가라는 보다 높은 단위 속으로 통합되어야 한다, 즉 사회는 정치적으로 조직되어야 한다. 이 공적 이성을 최장집은 '시민적 휴머니즘', 혹은 공화주의라 부른다. 이것의 핵심 내용은 공공선에 대한 헌신, 공적 결정에 대한 적극적인 참여와 모든 시민이 공동체로부터 배제되지 않고 권리와 혜택을 누리는 시민권의 원리, 시민적 덕에 대한 강조 등이다. 한편 민주주의에서 정당의 필수불가결성이라는 주장이 다시 한번 반복되는데, 왜냐하면 최장집의 정의에 따르면 정당은 국가와 시민사회를 매개하는 조직이기 때문이다. 이와 함께 최장집은 자유주의 전통의 영유를 '의식개혁' 차원에서 바라본다. 그에 따르면 개인들이 그 스스로의 가치와 내면의 정신세계를 갖지 못하고, 바깥에 존재하는 가치와 기준에 의해 그리고 여론의 헤게모니적인 힘에 의해 휩쓸리고 동원될 때, 민주주의는 위협받고 타락하기 쉽다. 민주주의는 사회구조의 다원주의와 아울러 가치와 이념의 다원성을 기반으로 하지 않을 때 매우 취약할 수밖에 없는데, 개인적 자아의 내면성이 존재하지 않을 때 이러한 가치와 이념의 다원성은 가능하지 않다는 것이다. 비판 1 - 위기의 진정한 원인 최장집을 비롯한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그들 내지 그들과 공명하는 논자들의 가장 큰 문제점은 남한자본주의의 위기와 지배정치의 위기를 유기적으로 결합시켜 설명하지 못한다는 데 있다. 최장집이 시장/국가 식의 허구적 대당을 사용한다면, 참여연대의 조희연이나 심지어 민주노동당의 일각에서조차 남한자본주의의 '정상화'(즉 선진화)에 대해 지체되는 '후진성'으로서 지배정치의 문제점을 진단한다. 후자의 경우 소위 일반민주주의(GD)론의 악명 높은 '독점강화/종속약화' 테제를 계승하는 가운데, 남한자본주의가 정상화됨에 따라 지배정치 역시 변화를 강제 받을 수밖에 없고, 이 과정에서 보다 '순수한' 계급정치가 출현하게 될 것이라는 주장을 제출한다. 하지만 양자 모두 남한자본주의의 변화 양상을 전혀 몰이해하고 있고, 이 때문에 지배정치의 변화 역시 제대로 포착하지 못하고 있다. 예를 들어 최장집이 지배정치의 문제점으로 지적한 것은, 실은 박정희 시대부터 있었던 고질적인 문제들이다. 만일 그렇다면 진정한 질문은, 왜 그것이 하필이면 지금에 와서 이런 방식으로 표출되는가 하는 것이 되어야 할 것이다. 이에 대해 최장집은 민주화로 인한 '안락한 보수주의'를 든다. 이것의 문제점에 대해서는 뒤에서 좀더 상술하겠거니와, 이는 무엇보다 박정희 시대에 대한 환상적 인상을 체계적으로 재생산한다는 문제점을 가진다. 이것을 직접적으로 규정하는 것이 바로 남한자본주의의 변화양상에 대한 몰이해다. 오늘날의 지배정치와 본질적으로 동일한 모순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박정희 정권이 상대적으로 안정적일 수 있었다면, 그 비결은 정치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경제에 있다. 최장집 스스로 인정하듯, 고도성장이 동반하는 거시적 자원배분 효과가 있었기 때문에, 즉 발전주의가 가능했던 것이 관건이었다. 이것이 최장집이 비난해 마지않는 냉전반공주의와 내재적으로 연관되어 있었음을 지적해 두자. 한국전쟁을 끝으로 좌익들이 말살되고 반공이데올로기가 강력하게 형성되어 정책적 실행가능성이 확보되지 않았던들, 더욱 결정적으로는 냉전 하에서 쇼케이스를 건설하려는 미국의 지정학적 전략이 없었던들, 발전주의는 가능할 수 없었을 것이다. 어쨌든 박정희 시대의 지배적 이데올로기는 (경제주의의 한 형태로서) 발전주의였으며, 어쩌면 단정 수립 이후부터 오늘날까지 지속하는 유일한 지배적 이데올로기일 것이다. 현재 지배정치가 위기에 빠진 것은 그것을 심층에서 지지하던 발전주의가 종언을 고했기 때문이고, 이는 남한자본주의가 이윤율의 저하 경향에 대해 더 이상 반작용을 조직할 수 없게 된 것, 그리고 냉전이 해소됨에 따라 미국의 전략이 변경된 것의 결과다. 이렇게 볼 때 냉전반공주의 헤게모니 하에 있는 보수독점의 정치체제, 그리고 여기에 덧붙여진 민주화 이후의 '안락한 보수주의'는 오늘날 전개되는 지배정치 위기의 주요 측면이라 보기 어렵다. 관련해서 남한자본주의의 '정상화'를 주장하는 것에 대해서도 간략히 언급하고 넘어가자. 이들은 이에 따라 지배정치 안에서 자유주의가 헤게모니를 장악할 가능성이 높아지고, 이 과정에서 자유주의와 '진보주의' 간의 경합이 강화될 것으로 기대한다. 하지만 현재 남한자본주의는 '정상화'되는 것이 아니라 미국 중심의 금융 세계화에 종속적으로 편입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모든 금융화는 브로델이 말한 것처럼 체계의 가을, 겉은 단풍처럼 화려해 보이지만 안으로는 발전 동력을 상실함으로써 그 어느 때보다 붕괴 가능성이 높아지는 국면이다. 이에 조응하여 자유주의 역시 (물질적 팽창 시기와는 달리) 상대적 진보성을 상실하고 타락하는 바, 우리는 이것을 신자유주의라 불러 왔다. 이런 상황에서 신자유주의와 구별되는 자유주의가 따로 존재하는 것도 아니며, 오히려 자유주의 헤게모니 하에 있던 민주주의가 그것으로부터 이탈하는 상황이 초래됨으로써 자유주의의 타락은 더욱 강화된다. 따라서 자유주의가 헤게모니를 장악할 가능성은 더욱 낮아지며, 사실상 자유주의의 좌익적 판본에 불과한 '진보주의'는 신자유주의 쪽으로 기울 것인가 아니면 자유주의 헤게모니로부터 단절하면서 보다 급진화될 것인가 하는 선택을 강제 받게 된다. 이렇게 보면 자유주의 헤게모니에 편승하면서 그것의 좌익을 구성하려는 시도는 점점 더 불가능해지고, 신자유주의에 대해 이론적인 동시에 실천적인 입장을 단호히 취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관련하여 가장 중요한 갈등요소는 다음번에 올 경제위기의 성격이다. 만일 97년 경제위기가 재벌체제의 모순과 신자유주의 개혁의 효과가 뒤얽혀 나타난 것이었다면, 다가올 경제위기는 신자유주의 개혁을 충실히 이행한 결과 탄생한 새로운 수탈체제의 불안정성으로부터 나올 것이다. 97년 당시 신자유주의자들이 경제위기의 책임을 재벌체제에 전가하는 데 성공함으로써 자신들의 책임을 면제받았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정세의 주도권을 잡을 수 있었다면, 다음번에는 그들 스스로가 책임의 가장 중요한 당사자가 될 수밖에 없다. 이는 자유주의 헤게모니의 최종적 위기 국면이며, 동시에 그것에 편승하면서 신자유주의와 사민주의를 절충하려는 진보주의 역시 위기에 빠뜨린다. 남한자본주의의 위기가 (진보주의 역시 그것의 일부를 이루는) 지배정치를 심각한 위기에 빠뜨릴 수밖에 없다면, 지배정치에 개입하는 방식은 훨씬 더 엄밀해져야 한다. 특히 남한자본주의 및 지배정치의 위기의 책임을 나눠 갖는 방식이어선 안 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새로운 수탈체제의 불안정성을 집요하게 쟁점화할 필요가 있다. 이것이 진보주의의 그것과 다른 것은, 체계의 위기를 발본적으로 비판하느냐 체계에 과부하를 거느냐 간의 차이와 같다. 후자의 경우 자본주의의 물질적 팽창 국면에서 상대적 진보성을 담보하는 자유주의에 대해 차별성을 획득하기 위해 진보주의가 취하는 전형적 전략인데, 이는 자본주의가 일반적 위기에 빠진 상황에서는 비현실적인 것으로 표상될 뿐만 아니라 더 나쁘게는 위기의 책임을 회피하고 이를 피지배계급에게 전가하려는 지배계급에 의해 전도되어 위기의 원인으로 표상되는 도착적 위험을 갖는다. 우리가 자본주의의 '정상화'로 인해 계급대립이 보다 '순수한' 형태로 표출될 것이라는 안일한 견해에 대해 반대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일반적 위기 국면에서 운동의 방식은, 현재 직면하고 있는 문제에 대해 실증적인 대안이 있는 것처럼 선전하면서 대중을 기만하다가 위기의 책임을 떠맡는 것이 결코 아닌, 지배계급과 민중운동 공히 답을 갖고 있지 않은 객관적 문제를 그 자체로 출현시켜 대중들 스스로 발본적으로 사고·행동하지 않을 수 없게 하고 그 과정에서 그/녀들이 스스로 생산한 가능성에 힘입어 운동의 새로운 동력을 구성해 가는 것이어야 한다. 이상의 맥락에서 지배정치 위기의 구성적 요소로서, 민주화 이후의 '안락한 보수주의'라는 최장집의 진단을 평가해 보자. 가장 큰 문제점은 그가 민주화라는 운동을 민주주의라는 제도의 한 계기, 그것을 성립시키기 위해 권위주의 체제를 무너뜨린 행동으로 환원한다는 것이다. 운동의 시간은 제도의 시간에 자리를 내어주고, 이제 후자가 주도권을 잡게 된다. 하지만 운동과 제도는 이렇듯 선형적인 방식으로 나눠질 수 있는 것이 아닐 뿐더러, 제도 변화의 동력은 운동에서 나온다. 민주주의 제도가 '안락한 보수주의'로 귀결된 주요 원인은, 제도를 변화시키기 위한 종별적인 노력이 없었기 때문이라기보다, 제도의 변화를 강제할 운동이 본래적으로 많은 한계를 갖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그것을 넘어서려는 노력 역시 80년대 말 90년대 초를 거치면서 실패했기 때문이다. 87년 6월 항쟁은 최장집도 분석하는 것처럼 많은 한계를 갖고 있었다. 80년 5월 이후 70년대식 운동의 한계를 넘어서려는 집요한 노력이 기울여지긴 했지만, 87년 6월 당시까지는 자유주의 헤게모니 하의 민주주의 운동에 머물렀다. 하지만 그 사건을 계기로 민주주의는 내적 분화를 겪기 시작하여 자유민주주의와 민중민주주의의 투쟁이 바야흐로 개시되었는바, 한국전쟁 이후 사실상 최초로 자유주의를 훨씬 초과하는 급진적 이데올로기가 광범위하게 보급되기 시작했다. 후자는 이론적 노력을 경주하는 한편 7·8·9 대투쟁으로 표출된 노동자운동과 결합하려 했으나, 그것이 암묵적 참조점으로 삼았던 현실사회주의가 붕괴하면서 겪게 된 각종 혼란 및 이를 틈탄 국가의 탄압으로 인해 급속히 쇠퇴했다. 이 같은 공백은 자유민주주의와 NGO 운동에 의해 점거되었는데, 양대 문민정부를 거치면서 87년 6월 항쟁으로부터 연원하는 자신들의 정당성을 신자유주의 정책개혁에 이용함으로써 남한의 국가이데올로기로 인정받기에 이른다. 이것이 바로 잃어버린 10년, 현재 남한민주주의가 처한 위기의 주된 원인이다. 이는 최장집이 주장하는 것처럼 제도개혁, 그 중에서도 정치개혁을 통해 해결될 수 있는 성질의 문제가 아니다. 현재 남한자본주의가 처한 일반적 위기 상태를 정확히 직면하면서, 기존의 발전주의를 대체할 새로운 발전전략을 제출하거나, 체계 자체를 발본적으로 지양하는 이행의 전망을 이론적·운동적으로 구성하지 않는 한, 몇몇 제도를 손보는 것은 큰 의미가 없다. 심지어 우리는 정치개혁이 오히려 정치의 위기를 가속화시킬 수조차 있다고 주장할 수 있는데, 왜냐하면 앞서 살펴본 것처럼 남한자본주의의 발전 및 이제는 생존 자체가 절대절명의 쟁점으로 부상한 상황에서 그것에 대한 현실적 처방(그것이 비록 미봉적이라 할지라도)을 동반하지 않는 도덕적 개혁이란 오히려 대중들의 환멸만을 증폭시킬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신자유주의는 오늘날 지배계급에게 일종의 상수 같은 것이다. 신자유주의 비판은 자본주의 안에 존재하는 가능한 몇 가지 대안 중 하나를 선택하는 문제가 아니라, 자본주의의 야만적이지만 유일한 대안에 맞서 싸우는 것이다. 그러므로 신자유주의와 구별되는 자유주의를 통해 신자유주의를 비판하려는 시도는 물론이거니와, 이행의 전망을 분명히 하지 않으면서 신자유주의와 경합하려는 진보주의의 시도 역시 완전히 불가능하다. 비판 2 - 조정될 수 없는 갈등 혹은 갈등을 조정할 수 없는 국가 위에서 살펴보았듯 최장집은 제도로서 민주주의를 갈등과 체계적으로 연관시킨다. 이 같은 접근은 통합을 선험적으로 특권화 하는 접근보다는 확실히 나은 점이 있다. 우리는 이것을 부정하지 않으면서, 다만 그런 식의 접근이 갖는 맹점과 모순에 대해 간략히 지적하고자 한다. 보수주의자들이라면(그런데 보수주의자들에게도 일말의 진실은 있다) 이런 식의 접근이 지나친 낙관주의라 비판할 것이다. 다원적 갈등과 경쟁이 조절되리라는 보장이 없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최장집이 규범의 문제설정을 끌어들였다는 것은 앞서 지적하였거니와, 그에 대한 자세한 비판은 후술하겠다. 여기에서 주목하려는 것은 매개의 문제설정, 그리고 그것의 담지자로서 정당의 특권화다. 즉 최장집은 모든 갈등과 경쟁을 무조건적으로 승인하는 것이 아니라, 매개될 수 있는 갈등과 경쟁을 승인하는 것이다. 이것은 역으로 모든 갈등과 경쟁이 매개될 수 있다는 것, 그리하여 오히려 조절의 한 계기로 환원될 수 있다는 주장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것은 선험적으로 결정될 수 없다. 즉, 적어도 기존의 체계를 유지하는 한, 조절할 수 없는 갈등이 있을 수 있다. 마르크스주의적 전통이 '적대'라고 불렀던 것이 그 한 사례로서, 그것은 주지하다시피 자본주의 체계의 지양을 해결책으로 요구한다. 자유주의적 다원주의란 실제로는 이와 같이 위험한 적대를 균등하고 다원적인 갈등들 중의 하나로 변형함으로써 그것과의 실재적 대면을 회피하는 한 방식이라 봐야 한다. 헤겔 이후의 자유주의, 특히 최장집이 명시적으로 거론하는 롤스 식의 자유주의는 국가에게 이런 매개의 역할을 부여한다. 하지만 이 같은 해결책을 최장집은 곧이곧대로 받아들일 수 없다. 왜냐하면 그의 분석에 따르자면 남한의 국가는 이런 역할을 수행할 만한 자격이나 역량을 역사적으로 결여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다 금융 세계화에 종속적으로 편입되면서 국가 자체가 매개의 능력을 경향적으로 상실한다는 문제가 덧붙여진다. 이렇게 된다면 기존의 국가는 물론, 정당체계를 개혁하여 다원적인 갈등들을 국가 수준에 다룬다 할지라도 갈등이 조정되지 않을 가능성이 한층 현실화된다. 금융 세계화에 개별 민족국가가 종속적으로 편입되는 과정에서, 국가의 기능은 법률적인 것으로 후퇴하고 정치는 영토를 관리하는 기술들의 조합으로 축소된다. 이와 동반되어 민족국가가 더 이상 거의 아무 것도 할 수 없고, 정치는 필연적으로 세계화의 제약이나 (금융)시장 등과 같은 정치 외적 논리들에 복종해야 한다는 이데올로기가 광범위하게 유포된다. 오늘날 지배정치의 위기는 이상을 고려하지 않고서는 이해할 수 없다. 이 같은 경향은 신자유주의자들이 말하는 것처럼 불가피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금융 세계화에 저항하지 않는 한 개별 민족국가의 역량이 심각하게 축소될 수밖에 없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국가가 대중들의 갈등을 실질적으로 반영하지 않는 문제라기보다는, 반영한다 하더라도 해결할 수 있는 잠재적 역량 자체를 결여하고 있다는 대중적 통념, 그가 '안락한 보수주의'라고 부르는 것은 실제로는 이로부터 나오는 대중의 심각한 정치적 수동화의 반영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시민사회가 대안이 될 수 있는가? 최장집은 적어도 이 분석에 관해서만큼은 솔직한데, 시민사회 역시 민주화 이후 이익추구적 성격이 강화되고 있기 때문에 대안이 되기 어렵다. 국가와 시민사회를 공히 관통하는 냉전반공주의 및 '안락한 보수주의'를 극복할 동력을 찾아내는 것이 문제인데, 국가/시민사회의 대당 속에서는 그것을 발견할 수 없는 것이다. 이제 매개의 매개가 될 수 있는 환상적 공간을 찾는 식으로 논리가 전개된다. 국가와 경제를 매개하는 곳으로서 시민사회, 다시 국가와 시민사회를 매개하는 곳으로서 정당, 그리고 다시 반복되는 악무한적 순환. 권위주의와 시장주의를 절충함으로써 대안이 나오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양자를 매개할 수 있는 공간을 찾을 수도 없으므로, 그가 최종적으로 기대는 곳은 선험적 규범이다. 결국 모든 모순이 집약되는 곳은 이곳이다. 비판 3 - 규범의 폭력 결론부터 말하자면 규범의 문제설정이 갖는 가장 큰 문제점은, 규범의 도출이 어떤 초월론적 권위에 의한 것이거나 같은 얘기지만 자의적이기 때문에, 그것을 대중에게 관철시키는 것이 매우 곤란하다는 것이다. 루소 이후의 모든 근대 정치철학은 규범을 정당화할 수 있는 근거를 찾으려 필사적으로 노력해 왔다. 하지만 (루소의 뒤를 이어 칸트가 말했던 것처럼) 이상적 인간과 경험적 인간은 항상 괴리되어 있으며, 어느 쪽을 특권화 하느냐 에 따라 이상주의와 비관주의 사이에서 끊임없이 동요할 수밖에 없다. 최장집 역시 이 도식에 사로잡혀 있다: "인간이라는 존재를 우리가 일상 속에서 늘 보는 경험적 개인으로 볼 것이냐, 아니면 합리적이며 보다 높은 도덕적 자아를 갖는 개인으로 볼 것이냐 에 따라 자유의 개념이 달라질 수 있다. 루소로부터 시작하여 칸트, 훔볼트, 헤겔로 이어지는 독일 낭만주의 내지는 관념론적 전통에서 나타나는 교육/교양 개념이 후자의 대표적 예다. 이러한 자유주의의 전통에서는 교육과 이성의 계발을 통한 개인성과 자아의 실현을 중심적인 요소로 삼는다." 그러나 '경험적 인간'이 소멸하지 않는 한 문제의 확정적인 해결책은 발견되지 않을 것이다. 이것은 논리적 모순이다. 이 때문에 모든 규범론은 그것을 ('경험적 인간'으로서) 대중에게 강제하기 위한 폭력과 규율을 동반한다. 최장집이 규범의 대표적 사례로 드는 공화주의와 자유주의는, 공화적 덕을 갖춘 시민을 형성하는 것이든 자제력과 내면성을 갖춘 다원적 개인들을 형성하는 것이든, 결국 특정한 방식으로 대중을 규율하려는 시도다. 규범의 문제설정은 대중들의 수동성 및 (대항)폭력이 존재한다는 것을 근거로 폭력과 규율을 정당화한다. 하지만 이것은 특정한 시기에 대중들의 수동성 및 (대항)폭력이 강화되는 원인을 사고하려는 노력을 결여하고 있으며, 때문에 대중들의 수동성과 (대항)폭력을 더욱 악화시키는 결과를 낳기 일쑤다. 이것은 정치적 모순이다. 더욱 문제가 되는 것은 인식의 결여를 해결하기 위해 반드시 포괄되어야 하는 대중들의 경험이, 규범의 문제설정을 통해서는 제대로 반영될 수 없다는 것이다. 위에서 말했던 것처럼 규범의 문제설정은 '이상적 인간'의 능력으로서 이성이나 합리성(혹은 부르주아적인 '교양')을 전제한다. 하지만 대중들은, 특히 종속된 계급의 구성원들은, 구조적 불평등과 배제로 인해 스스로의 실존에 대한 지배력을 충분히 자유롭게 발휘하지 못하기 때문에, 스스로를 '이상적 인간'과 긍정적으로 동일화하기 어렵다. 또한 이 같은 전제에 입각해 만들어진 규범은 대중들의 요구나 열망을 제대로 반영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그것을 특정한 방식으로 왜곡하여 몰인식하게 만든다. 대중들이 규범에 대해 거부감을 갖는 것은 이 같은 이유 때문이다. 반면 대중들이 일상을 경험하는 방식은 차라리 부정적이다. 즉 자신들의 인격적 통합성을 부정하는 폭력을 겪으면서 그것에 저항하는 억압할 수 없는 최소를 부정적인 방식으로 발견하는 경향을 갖는다. 동일한 구조적 폭력에 노출되어 있는 대중들이 그것을 제거하고 보편적 권리를 쟁취하기 위해 집합적으로 투쟁할 때, 그/녀들은 스스로의 힘으로 집합적 주체를 구성한다. 이것이야말로 규범이 전제하는 '이상적 인간'과 구별되는, 혹은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것의 잊혀진 기원이다. 이 같은 주체성은 외부로부터 주입되거나 계몽될 수 없다. 그것은 교육이 아니라 오직 운동을 통해서만 생산되며, 이러한 주체성에 의해서만 대중의 역량과 권리가 보존될 수 있다. 우리가 계속 운동을 말하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하지만 이것이 규범이나 제도 일반을 거부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규범과 제도가 제대로 작동하고 그것을 지속적으로 개조하기 위한 필요조건은, 운동의 이니셔티브를 인정하고 그로부터 생산되는 주체성의 존엄을 두려워하는 것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나가며 - 민주주의 이후의 민주화 최장집의 주장과는 정반대로, 오늘날 민주주의의 지속·발전을 위해 필요한 것은 민주화다. 운동 및 그로부터 생산되는 주체성 없이 민주주의라는 상징-제도는 무력화되거나 심지어 민중을 억압하는 데 사용될 수조차 있다. 노무현의 취임식에서 울려 퍼진 '상록수'는 이것의 비극적 사례가 아니겠는가? 운동의 시간을 되돌리지 않는다면, 다음에는 어떤 모독이 기다리고 있을지 모른다. 그러므로 다시 '구체적 정세에 대한 구체적 분석', '대중 스스로의 운동', 그리고 그것 속으로 소멸하기 위한 우리의 계획. PSSP
노무현 신정부의 경제정책의 양축은 상시구조조정시스템(시장)에 기반한 기업(재벌)·금융 구조개혁의 지속과 이른바 [동북아중심국가 건설]로 명명된 한국경제의 새로운 중장기 성장전략의 추진이다. 한국경제는 지난 수년간 강도 높은 신자유주의 정책개혁을 수행함으로써, 글로벌 스탠다드에 맞추어진 아메리카식 경제작동방식을 갖추게 되었다. 이제 DJ정권 5년의 신자유주의 정책개혁의 성과는 노무현 신정부가 이어받고, 그 스스로 자임하는 정책개혁의 새로운 임무는 한축으로는 시장운영원리에 따른 구조조정이 상시적이고 지속적으로 이루어지도록 지원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금융세계화된 세계시장에 이미 상당정도 최적화된 한국경제를 재편입시키기 위한 중장기적 비전을 구체화하는 실천인 것이다. 우리는 이미 지난해 말 경제특구법(경제자유구역법으로 개칭) 저지투쟁 과정에서 김대중정권의 [동북아중심국 플랜](이하 동북아플랜)의 반민중적인 일단을 확인한 바 있다. 그러나 동북아플랜은 경제자유구역 설치와 시행법통과만으로 그치는 일회성 사업도 김대중정권만의 아이디어성 기획도 아니다. 실제로 동북아플랜이란 기획이 처음으로 이야기되었던 시점은 1995년경 김영삼정부 시절의 4차 국토종합개발계획이 제출된 때였고, 지난 대선과정에서도 이 계획에 관한한 이회창과 노무현간의 정책적 차이는 거의 없었다. 비록 지난해 11월 경제자유구역법의 국회통과를 막지 못했다하더라도 동북아플랜의 구체적 시행과 그에 따른 갖가지 개혁조치들의 추진은 적어도 노무현정권을 넘어 다음 정권이 등장하게 될 2010년경까지 이어지게 될 전망인 만큼 우리의 투쟁이 마무리되었다고 볼 수 없는 노릇인 것이다. 당장 노무현정권은 올해 상반기 중으로 지난해 통과된 경제자유구역법의 7월 시행을 앞두고 이 법의 갖가지 부대 시행령을 마련할 예정이고, 인천시는 올해 1월 중순경에 경제특구 개발 및 자본조달 업체인 미국 게일사(社)와 1단계 사업을 위한 토지공여(160만평) 본계약을 서둘러 체결한 상태이다. 동북아플랜에 대한 비판과 우리의 투쟁은 한국경제의 내일에 대한 비판과 투쟁인 것이며, 현 시기 반신자유주의 투쟁의 결절점으로서 새롭게 인식되어야하는 것이다. [동북아 중심국가 건설 플랜]의 개요 노무현 신정부의 동북아플랜은 크게 세 축으로 구성된다. 물류중심지화, 비즈니스거점화, 첨산기술산업 클러스터(집적단지) 조성이 그것이다. 김대중정권 시절 입안된 계획과 달라진 점은 물류·비즈니스거점화를 이루기위한 중간단계로 우선 국내의 첨단기술산업을 경제자유지역에 끌어들여 본격적인 외자유치를 위한 네트워크 이익을 극대화하자는 방안이 강조되었다는 점이다. 여기에는 국내 재벌 측에서 제기한 국내기업에 대한 역차별 논란을 줄이고, 외자에 대한 퍼주기식 인센티브만으로는 실제적인 경쟁력 확보가 어렵다는 현실적인 판단이 이루어진 것으로 보인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동북아플랜 전반의 기조나 핵심적인 실행과제들이 수정된 것은 아니다. 노동규제완화, 세금감면, 의료·교육 개방 등 초민족자본(TNC)에 대한 온갖 특혜로 가득한 기존 정부안의 골격은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금융·비즈니스 중심인가 첨단산업·R&D(연구개발)허브 중심인가라는 신·구 정부 간의 논란 역시 인수위 측의 주장이 금융·비즈니스 거점화 방안에 대해 반대하고 있다기보다는 금융·비즈니스 거점화 전략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세금감면이나 노동규제완화만으로는 부족하기 때문에, 이에 덧붙여 국내 IT산업과의 연관성이 고려되어야한다는 현실적인 입장이 부가된 것일 뿐이다. 동북아 플랜의 또 다른 축인 물류중심지화 계획이란 인천공항, 신부산·광양항 확충을 통해 이 지역 및 시설들을 동북아 허브공항 및 항만으로 개발한다는 것으로, 중장기적으로는 남북철도 연결을 통한 유라시아대륙과의 연계를 추진한다는 이른바 '철의 실크로드' 구상이 부가된다. 경쟁력 있는 국내외 물류 네트워크의 구축과 관세자유지역 지정 및 국제 물류지원센터 설립 등이 추진과제이다. 보다 복잡하고 핵심적인 계획은 비즈니스 거점화 계획이다. 각종의 기업서비스(Corporate Service)와 국제금융 관련 서비스를 갖춘 기업·금융 비즈니스 센터를 건설하여, 초민족자본의 동북아지역 지·본사와 금융기관을 유치한다는 것이 그 요체이다. 이를 위한 추진과제는 인천, 신부산, 광양등지를 경제자유지역으로 지정하고, 초민족자본의 활동에 지장이 없는 각종의 경영, 생활환경을 갖추는 것이 일차적이다. 지난해 경제특구법 투쟁에서 주로 문제가 되었던 부분이 바로 이 경영, 생활환경 부분이었다. 그동안 국내법상(으로나마) 보장되 온 노동, 여성, 교육, 환경권을 완전히 무시하는 기본 인권의 사각지대가 경제특구를 중심으로 형성되며, 나아가 이것의 효과를 타지역으로 확산시키려는 의도가 너무나 명백했기 때문이다. 물론 정부안 자체에는 특구의 전국화에 관한 분명한 언급은 아직 없다. 하지만 특구의 전국화라는 요구는 비단 전경련과 재벌들의 요구가 아니라 동북아플랜이 가지는 자체적인 기본속성이다. 다만, 경제특구 개발에 보다 중점을 둔 계획이 정부안으로 채택된 것은 1997년, 98년경에 이미 (동북아플랜의 전범이 된) [Industrial21], [비즈니스 거점화 전략]등의 계획을 입안, 시행한 바 있는 싱가폴과 홍콩이 도시형 자유항만국가인 점을 감안하여 차별화를 위해 단계적 조치를 취한 것이다. 때문에 정부안은 1국2체제형 개방전략을 추진하고 있는 중국의 경제특구전략과 홍콩, 싱가폴 등지의 거점화 전략을 단계적으로 혼합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이것은 정부의 경제특구개발계획이 가지는 장점이기보다는 치명적인 한계점일 가능성이 더 높다. 왜냐하면 중국의 경제특구가 그 배후에 가지는 거대한 내수시장이라는 메리트나 자국의 내수나 산업기반을 완전히 포기한 채 철저히 중국시장을 향한 교두보로 변신한 도시형 자유항만국가의 거점화 전략이 가지는 메리트 중 어느 것도 분명하지 않기 때문이다. 다만 노무현 신정부에게 넘겨진 동북아플랜에서 확실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이 전략이 어떤 방향으로 구체화되건 간에 이는 자본 측에게는 지극히 불안정한 생존전략일 수는 있어도, 노동자민중의 생존과는 너무나 거리가 먼 지속적이고 안정적인 위협책이 될 것이라는 점이다. 동북아중심국 플랜의 본질과 한계 1 : 신식민지적 발전기획의 파탄 "동아시아의 중심국을 건설"한다는 레토릭의 화려함에 미혹되지만 않는다면, 노무현 정권의 동북아플랜은 실상 그처럼 옹색하고 서글픈 심정마저 자아내게 하는 것이 없는 성장전략 아닌 성장전략, 산업정책 아닌 산업정책이다. 혹자는 이를 두고 "동북아플랜은 위기에 빠진 남한자본주의 체제의 최후의 배수진"이라 말하지만, 노무현 신정부의 표현은 "(동북아 플랜은) 선택이 아닌 생존의 문제"란다. 그러나 사실은 사실로 다루어져야한다. 동북아 플랜은 이전시기 한국경제를 지배해온 신식민지 근대화론적인 의미에서의 "발전"과 이에 입각한 발전국가의 (좁은 의미에서의)"산업정책"이 시효만료 되었음을 뜻한다. 동북아 플랜에서 말하는 [비즈니스 중심국가]란 이상은 더 이상 국민국가 차원의 경제발전을 기획하기 어려워진 남한 자본주의체제의 구조적 위기와 한계를 화려한 정치적 레토릭으로 치장한 것으로, 이전시기 김대중정권이 즐겨 사용하던 "기업하기 좋은 나라"를 중장기적인 정책전략의 모양새로 손질한 것에 불과하다. 물론 정권과 자본은 여전히 '발전'이나 '산업정책'과 같은 용어의 선동적 유용성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했다. "변화된 국제경제환경의 생존전략인 동북아플랜은 이웃나라의(주로 중국) 경제적 기회를 활용하여 한국경제의 선진화와 고부가가치화를 달성해가기 위한 새로운 '발전'전략"이라는 경제관료들의 설명이나, 이에 한술 더 떠서 “동북아 경제중심국가 건설은 단지 장사 잘하고 부자 되는 단순한 꿈이 아니라 수백년간 중국의 변방으로서 고통스러운 역사를 극복하고 민족의 팔자를 바꾸는 계기”라는 노무현의 로또식 허풍이(민족의 운명 역전) 그것이다. 그러나 국가가 명시적인 경제성장의 조건과 목표, 방향을 확립한 가운데, 특정산업의 발전을 촉진함으로써 국민경제적 발전을 달성해가는 좁은 의미의 '산업정책'과 신식민지 근대화론적인 의미에서의 '발전국가'모델의 시효가 만료되었음은 노무현 정권 자신이 더욱더 잘 알고 있는 사실이다. 97년 IMF공황은 저임금과 미국시장의 역개방에 강하게 의지하여 유지되어오던 남한자본주의의 종속적 발전기획의 최종적 파산이 선언된 계기였다. 그후 국민의 정부 5년은 '환란 극복'이라는 당면 과제가 중장기적 비전의 부재를 대신해온 5년이었다. 이제 5년간의 강요된 희생으로 지친 국민들 앞에 새 정부가 내놓아야할 것은 새로운 비전과 전망일터인데, 노무현정권은 처음 출발부터 새빨간 거짓말을 늘어놓기 시작한 것이다. 가장 명확하고 눈에 띄는 거짓말은 동북아플랜의 초라한 실현가능성과 불투명한 경쟁력이다. "자동차, 철강, 조선에서 동북아 거점으로!!"라는 신정부의 캐츠프래이즈에서 단적으로 나타나듯이 한국경제의 중추를 담당해온 수출지향형 산업이 변화한 세계시장에서 미래비전을 상실했음은 명확하다. 그래서 동북아 플랜에서 제시하고 있는 구체적 비전과 과제란 대략, 동북아 부품 및 중간재 공급기지화, 동북아 R&D센터화, IT/BT/NT등의 첨단기술산업 유치, 회계, 법률, 경영컨설팅, 광고업 등 각종 기업서비스업 육성, 동북아 금융중심지화 등이다. 그런데 이중에서 실제로 무언가 국내 산업과 고용에 관련된 발전적 기획에 관련된 과제라고는 보기 어렵고, 동북아 부품 및 중간재 공급기지를 만든다는 것뿐인데, 이 계획 역시 이름만 번지르르하지, 그 속내란 일본에서 생산하기에는 인건비가 너무 비싸고, 중국에서는 기술력이 아직 부족해 생산하기 어려운 일부 품목을 대상으로 한 틈새시장 전략일 뿐, 별것이 없다. 그 외 동북아 R&D센터니, 첨단 산업 유치하는 과제들은 죄다 국외 초민족기업과 자본을 국내 특별자유지구 내에 유치한다는 것인데, 이는 앞서 살펴본 바대로 중국 내 특구나 자유항만형 동북아 도시국가들의 거점화 전략에 비해 특별한 경쟁력을 갖추지 못하고 있다. 또 중국 내 특구들이 활성화 되어있는 상황에서, 일본과 중국을 잇는 중국시장 진출의 교두보라는 지리적 이점 역시 크게 자랑할만한 거리가 되지못할 것이다. 요는 동북아플랜이라는 틀이 유지되는 한, 그 내에서 신정부가 취할 수 있는 최선의 방책이란 초민족자본에 대한 더욱더 많은 어거지식 특혜와 보다 철저한 자본위주의 노사환경을 제공하는 길뿐일 텐데, 그 같은 희생이 과연 플랜의 성공을 가져올지 매우 미심쩍을 뿐 아니라 동북아플랜 자체가 지향하고 있는 성장전략이란 것이 과연 국민경제적 차원의 파이를 키워 미래의 분배를 약속하는 체제인가라는 의문이다. 물론 이전시기 신식민주의적인 억압적 발전국가체제에서의 문제점은 '키워진 파이'의 분배가 철저히 국가 산업정책의 비호아래 비대해진 재벌과 특정 발전엘리트 계층에게 집중된 채 미래의 분배약속이 지켜지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그런데 동북아플랜이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미래의 한국경제의 문제점은 금융세계화에 통합된 몇몇 핵심대형기업들의 생존과 성장만이 보장되고 이들의 생존과 성장만이 관심사일 뿐 더 이상 국민경제적 발전이란 의제 자체가 기각-포기된다는 점이다. 초민족 자본주의 경영·생활환경을 가꾸기 위한 국가의 경제적, 경찰적 개입역량은 날로 강화되지만, 국민국가의 사회적 성격과 민족적 책임성은 약화 해체되는 것이다. 설령 동북아플랜이 갖은 난점과 내외적 취약성들에도 불구하고 일정한 성공을 거둔다하더라도, 그 결과 한국경제가 발전하는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굳이 표현하자면 한국내 위치한 특정지역의 특정집단(국적을 불문한)의 경제가 성장할 뿐이다. 동북아 중심국 플랜의 본질과 한계 2 : 글로벌 시티 네트워크로의 편입과 내부적 배제 그렇다면 결국 노무현 신정부의 동북아플랜은 한낱 정치적 레토릭에 불과한 선동문구란 말인가?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동북아플랜을 가득 메우고 있는 장미빛 청사진들은 확실히 그러하다고 밖에 볼 수 없다. 그러나 동북아플랜의 성공적 실행을 가정한 미래의 한국경제와 사회의 변화를 예상해본다면, 동북아플랜이 (그 낮은 성공가능성에도 불구하고) 모두 허구에 지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동북아 플랜이 그리고 있는 한국경제의 성공적인 미래상은 금융세계화의 중심주체이자 그들의 집약지인 글로벌시티(세계도시, Global City) 네트워크로의 안정적 편입이다. 물론 이것은 남한자본주의가 동북아의 새로운 소제국(小帝國)이 된다는 허무맹랑한 바람을 뜻하지 않는다. 금융세계화한 세계경제에서 중심국과 (반)주변국간의 경계는 중심국과 (반)주변국을 가르는 국경이 아니라 중심국 내부와 금융세계화에 통합된 (반)주변국의 중심의 내부에 위치하기 때문이다. 이는 과거에 도시와 농촌, 빈국과 부국 사이에 그어졌던 불평등과 배제의 장막이 도시내부와 노동시장 내부의 계층별 인종적 성적 분할선을 타고, 세계적인 차원의 내부적 배제로 침투되어 심화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동북아플랜은 어떤 국민경제적 중심 산업을 지정하고 촉진시키는 좁은 의미의 산업정책이 아닌 한에서, 초민족자본의 동북아 지본사를 국내에 마련된 비즈니스 거점지역에 유치함을 목표로 삼고 이를 위한 산업조정정책을 펼 뿐인데, 이때 중요시되는 산업조정의 방향과 결과는 경제의 서비스화와 금융화이다. 이는 국민경제 발전의 중추를 구성할 기간노동력을 구성함으로써 이들에게 미래의 분배를(일반적인 저임금 강요와 고용안정보장) 약속하는 이전의 억압적 발전기획에서와는 다른 차원의 (이미 분절화 되어 있는 노동시장의) 극단적인 양극화를 초래한다. 서비스화 된 경제에서 요구되는 노동시장의 일반화된 모형은 허리부분이 잘록한 '절구통모형'이다. 노동시장에서 필요로 하는 노동력이 초고소득을 보장받는 일부 첨단 IT/금융서비스 관련 전문직 종사자들과 겉으로 보기에는 첨단정보화 기술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듯해 보이는 저임금 불안정 직종들로 양극화되기 때문이다. 실제로 많은 IT업체에서 이루어지는 많은 작업은 우리가 흔히 일반적으로 예상하는 것보다 단순 반복적이며, 대대수의 금융관련 종사자들의 작업 역시 체계적인 교육에 의해 획득된 고도의 경제적 분석판단 능력을 창조적으로 사용하는 업무는 지극히 특수한 상위계층의 몫일뿐이다. 더구나 이들 하층 저임금 직종들 중 비서, 청소용역 관리자, 금융객장직원 등의 노동자들이 직면하게 되는 서비스경제의 특성중의 하나인 '전문화 추세'란 바로 철저한 노동불안정화의 핵심양상중 하나인 외주용역화에 따른 파견, 임시직화이다. 더불어 이들 하층 노동자계층에게 요구되고 허용된 전혀 새롭다 할 수 없는 새로운 일자리는 점차 도시의 외곽에서 '세계도시'로 다시 회귀하게 되는 고소득 자본가들의 사적인 하인노동이다. 세계를 오가며 극한 경쟁의 압력 속에서 불안정하게 활동하는 금융자본이 필요로 하는 단순사무, 관리직 노동자들의 경우에도 사정은 비슷한데, 이들 금융자본이 요구하는 고용형태는 회전율이 높고 고도로 불안정한 자신의 활동만큼이나 신축화 된 고용형태이다. 이들 금융자본과의 한두 번의 거래로 거액의 서비스료를 받는 경영컨설턴트나 국제변호사들과 마찬가지로 그들의 사무실에서 단순 사무나 여타의 관리업무를 수행하는 임시고용직 노동자들 역시 한두 번의 거래로 고용은 마무리되는 것이다. 또한 이러한 주변화 양극화 현상은 폐쇄적인 고용부문으로의 접근에 어려움이 많은 이민노동자나 고용의 안정성에 상대적으로 낮은 우선순위를 두는 젊은 독신 노동자들에게서 많이 나타나며, 여성노동자들의 비중의 급속한 증가라는 특성을 가진다. 그리고 이 같은 현상은 금융세계화의 본거지인 뉴욕이나 도쿄, 런던과 같은 대표적인 '세계도시'들에서 기존 중산층의 몰락으로 인한 표준화된 대량소비체계의 해체로 나타나 신축화 된 소량주문상품소비체계를 일반화시킴으로써, 도시의 블록을 기준으로 동일품목의 상품들이 초고가 상품소비시장과 초저가 시장으로 분리되는 현상을 낳게 되었다. 가장 부유한 나라의 가장 발달된 도시의 중심에 가장 가난하고 철저히 배제된 자들의 게토화 된 공동체가 존재하고, 그 담장너머엔 삶의 어떤 제약도 부과 받지 않은 한없이 자유로운 자들의 마천루가 펼쳐지게 된 것이다. 또한 정보통신기술의 발달과 인터넷 시대의 개막이 경제발전의 공간적 제약을 뛰어넘었다는 설명과는 달리, 금융세계화의 진행에 따른 현실의 경제활동의 국내적 국제적 분산은 오히려 새로운 형태의 강화된 지역적 집중양상과 배제의 논리를 보인다. 물론 노무현신정부의 설명은 IT기술혁명과 세계화의 성과에 입각한 동북아플랜을 통해 비로소 지역균형발전의 길이 열렸다는 식이다. 물론 정보통신산업에 관한 원론적인 설명에 따르자면 그 같은 지역적 불균형이 발생할리는 만무하다. 기업서비스 산업은 철저하게 첨단 IT기술에 기반 해 있기 때문에 주요대도시에서 전형적으로 나타나는 고비용과 과밀를 피하여 입지할 수 있는 선택권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생각되기 쉽기 때문이다. 정보통신 기술의 발달로 각종의 기업서비스들이 반드시 소비자 즉 기업에 공간적으로 근접해야할 필요도 없다. 그러나 초민족화 된 대규모 기업들이 필요로 하는 기업서비스는 그들의 고객만큼이나 초민족적이고 거대화된 전문기업들에 의해 제공되며, 각각의 영역에 따라 전문화되어있는 만큼 여타의 유관관련 업체들과의 상호근접성이 중요하다. 더군다나 그처럼 전문화 대형화된 서비스산업의 전문인력 들인 국제법률가나 회계사, 전문프로그래머들은 자신들의 라이프스타일을 영위할 수 있는 각종의 위락시설과 쾌적한 생활환경을 중요시한다. 그들이 필요로 하는 것은 저지가나 저임금이 아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장소적 제약을 뛰어넘어 분산된 경제활동들에 대한 세계적 관리·통제기능의 중요도가 높아지면서, 금융세계화된 세계경제는 날로 세계경제 활동의 운영과 관리에 필요한 고도의 기업서비스활동과 정보통신시설이 집중된 이른바 "세계도시"를 필요로 하며, 세계도시들은 각각의 국민경제의 중심지가 아니라 하나의 세계경제에 속한 자신들만의 (세계적이고 지역적인)네트워크로 존재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들 네트워크 된 세계도시는 언제나 어느 한 국민국가의 주권에 의해 건설되고 그 안에 위치하면서, 그 자신의 내부로부터의 무한한 갈라짐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지역간 균형발전은 고사하고 오히려 사태는 도시 농촌간의 지역적 격차에서 도시 간의 격차 확대로, 다시 무엇보다도 도시속의 도시들 간의 내부적 격차의 확대로 드러나게 될 것이다. 각각의 세계적 지역적 도시적 규모에서 세계화에 따른 주변화과정은 과거 우리가 중심부라 여겨지던 핵심에서 이루어지며, 주변부화 과정이 심화될수록 중심성이 커질 것이기 때문이다.(물론 그 역의 과정 역시) '도시속의 도시'가 또 '시민 중의 시민'이 서로의 곁에서 한없이 멀어지는 것이다. 그러한 점에서 어떤 세계경제도 국가적 영토를 벗어나 존재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금융세계화에 통합된 어떤 국민경제도 더 이상 하나의 국민경제가 아니라는 명제는 전적으로 옳고 되새길만한 말이다. 노무현정부는 이 같은 실상을 덮어둔 채 "동북아 플랜은 선택의 문제가 아닌 생존의 문제"라면서 이를 온갖 화려한 수사로 치장하기에 여념이 없지만, 우리까지 그 장단에 맞출 이유는 없을 것이다. 또 그 같은 정치적 레토릭이 오늘의 한국경제와 민중생존을 오늘에 이르게 한 남한자본주의의 구조적 병폐와 반민중성을 치장하고 있다는 점에서 우리는 서글픔을 느끼는 여유보다는 추상같은 역사적 분노를 키워갈 뿐이다. PSSP
‘노무현 대통령’ 시대가 열렸다. 노 대통령은 한국의 역대 대통령들과 달리 처음엔‘보잘 것 없는’정치적 자산을 가지고 대선에 뛰어들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20~30대 젊은층의 지지와 인터넷 등 대안매체를 통한 ‘지지세력의 자발적 조직화’를 통해 대권을 쥐었다. 그가 젊은 시절부터 지켜온 ‘소신과 원칙’은 낡은 정치에 지친 대중들에게‘어필’했고 때마침 벌어진 대규모 촛불시위 등에서 볼 수 있듯이 그에게는 ‘시운(時運)’도 따랐다. 노 대통령 집권 초기인 현재 ‘노무현식 개혁’의 개념과 방향을 둘러싼 정치·사회세력과 기업, 관료사회, 이해집단의 대립과 타협이 어지럽게 전개되고 있다. 한 때 ‘집권야당’으로 불리던 한나라당은 선거 참패에 대한 ‘책임론’이 불거져 있고 집권 민주당에서조차 ‘반(反)개혁’ 세력은 ‘인적 청산’의 대상으로 낙인찍혀 ‘퇴출’당하는 처지다. 그동안 한국사회의 주류로 자임해 온 ‘50대·보수세력’은 퇴조하고 있고 수구·보수언론의 영향력도 예전 같지는 못하다. 정부 부처들은 새 대통령의 ‘개혁 마인드’에 부합하는 정책을 앞다투어 내놓고 있다. 진보적 대중운동도 사회 변화의 방향을 놓고‘노무현 시대’의 파워집단으로 떠오른 비정부기구(NGO) 는 물론 (권영길 민주노동당 후보가 전국적으로 4% 가까운 득표율을 기록함에 따라) 기성 정치세력과도 본격적으로 경쟁해야 할 상황이다. 누구나 변화를 모색해야 할 처지에 놓여 있다.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은 이런 점에서 시사적이다. 이 책은 군주(또는 이 말을 일정한 정치세력의 리더나 리딩그룹으로 대신해도 좋을 것이다)가 대중(인민)의 지지를 얻고 이를 유지하는 방법에 대해 현실주의적으로(또는 역사와 경험에 근거해) 고찰하고 있기 때문이다. 『군주론』은 마키아벨리가 1513년 메디치가(家)의 군주 로렌초 데 메디치에게 바친 책이다. 마키아벨리는 군주가 이 책을 꼼꼼히 읽고 그 뜻을 새기면 ‘운명’과 군주의‘능력’이 약속하는 위대함(당시 사분오열돼 주변 열강의 영향력 아래 있던 이탈리아의 통일)을 성취할 수 있을 것이라 말하고 있다. 마키아벨리는 이 책을 통해 군주의 환심을 사 요직에 등용되길 바랬다. 이런 점에서 이 책을 읽다 보면 중국의 춘추전국시대와 같은 ‘약육강식’의 시대에 군주에게 ‘패자(覇者)의 길’을 설파하며 전국을 유랑하던 제자백가(諸家百家)나 책사(策士)의 모습이 자연스럽게 머릿 속에 떠오른다. 마키아벨리는 우선 ‘윤리적 공상’과 ‘엄연한 현실’을 구분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는 현실 속의 군주를 분석 대상으로 삼고 있으며‘현실 속에 결코 존재한 것으로 알려지거나 목격된 적이 없는 공화국이나 군주국을 상상’하지 않는다. 현실 속의 군주는 어떻게 행동해야 할까. 마키아벨리는 한 마디로“군주는 운명의 풍향과 변모하는 상황이 그를 제약함에 따라서 자신의 행동을 거기에 맞추어 자유자재로 바꿀 태세가 되어 있어야”만 권력을 유지·확대할 수 있다고 말한다. 이는 “군주는 필요하다면 전통적인 윤리에 얽매이지 않고 부도덕하게 행동할 태세가 돼 있어야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지 않고 어떤 상황에서나 선하게 행동할 것을 고집하는 군주는 “많은 무자비한 자들에게 둘러싸여 몰락을 자초할 것이 불가피”하다고 마키아벨리는 경고한다. 마키아벨리는 또 권력을 유지·확대하기 위해서는 “군주는 대중들이 흔히 좋다고 생각하는 성품을 실제 구비할 필요는 없지만, 구비한 것처럼 보이는 것은 반드시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위장(僞裝)의 중요성을 지적한 셈이다. 군주의 싸움에 대해서는‘한편으론 동물로서(물리적 힘에 의해) 그리고 다른 한편으론 인간으로서(법에 의해)’ 이뤄져야 한다고 말한다. 법만을 가지고 싸우는 것은 종종 불충분하다는 게 마키아벨리의 판단이다.‘짐승적인’ 방법을 따르기로 한 군주는 ‘사자(힘을 상징)와 여우(지혜를 상징)’의 기질을 함께 익히면 성공할 수 있다고 말한다. 마키아벨리의 이같은 권고는 우리들이 흔히 떠올리는 ‘군주의 덕(德)’과는 거리가 있다. 이는 마키아벨리의 덕에 대한 개념이 기독교적 덕이나 유교적인 덕과는 질적으로 다르기 때문이다. 마키아벨리의 덕은 고대 로마공화정 당시 덕의 개념에 해당하는 ‘남성다움’ ‘용맹스러움’‘단호함’ 등과 통한다. 덕의 개념에 대한 마키아벨리의 이러한 ‘혁신’은 정치적인 행위자에게 요구되는 정치적인 덕이 일반 사적인 생활에서 요구되는 윤리적인 덕과 구별된다는 점을, 곧 정치영역의 독자성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은 흔히‘목적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이른바 ‘마키아벨리즘’의 출발점으로 인식된다. 하지만 『군주론』은 군주가 권력을 유지·확대하기 위해 취해야 할 방법을 현실주의적으로 설명하고 있다는 점에서 4백90년이 지난 지금도 ‘현대의 군주’에게 여전히 새로운‘상상력’을 불러 일으킨다. PSSP 참고: 인용 때 원문의 뜻을 훼손하지 않는 범위에서 편의상 첨삭을 했음. 마키아벨리의 덕에 대한 설명은 역자해제를 참고했음.
노무현 정권의 출범과 정책개혁 전망 작성자: 임필수 (사회진보연대 정책국장) 작성일: 2003.1.29 2000년 총선을 어떻게 회고할 수 있나? 김대중정권의 경제개혁과 새로운 수탈체제의 성립 노무현의 등장과 '반창연대' 노무현 지지층의 이질성과 갈등 노무현의 정책개혁 전망 민중운동의 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