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안보연구원에서 나온 중장기국제정세전망입니다. 외통부에서 퍼왔습니다.
"Transcending Pessimism: Rekindling Socialist Imagination" (비관주의를 넘어서: 사회주의적 상상력을 다시 발휘하자) 저자 : Leo Panitch and Sam Gindin 민노당 자료실에서 퍼옴
12월 23일 교수7단체 주최로 열린 대선평가토론회 자료집입니다.
조작된 공포, 역사적 망각이 만들어낸 환상, 노무현 지지론을 비판한다 노무현 지지를 선동하는 선동가들은 보수우익 이회창이 당선되었을 때의 묵시록에 대해 열변을 토하고 있다. 이회창이 집권하면 북한의 벼랑끝 전술과 이회창의 끝장보기식 노선이 충돌해 한반도에 전쟁이 날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이제 군부독재 정권의 적자, 반민주적이며 부패비리의 총체인 보수우익 이회창의 집권을 막기 위해 권영길의 표를 노무현에게로 몰아달라고까지 이야기하고 있다. 1-2%에서 격전을 벌이고 있다는 보도가 19일 투표를 앞두고 이들의 절박함을 더욱 부채질하고 있다. 한편 노무현 개인에 대한 우상화 역시 마지막 가속 패달을 밟고 있다. "쓰러질 듯 쓰러질 듯 하면서 결국은 이 땅에서 정직함으로 살아갈 수 있다는 걸 온몸으로 증명한 정치인", "민주당이 없어도 정몽준의 보수노선이 태클을 걸어도 노무현은 개혁할 수 있다. 왜냐? 노무현이니까" 노무현은 어느새, 그 개인의 존재만으로도 모든 것을 바꿀 수 있는 슈퍼맨이 되어 있다. 2002년 대선의 마지막은 이렇게 공포와 환상의 향연이 장식하고 있는 듯 하다. 19일 투표를 하루 앞두고 있는 지금, 우리 모두는 누구를 찍을 것인가에 대한 판단 이전에 이 공포와 환상의 향연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보아야 한다. 왜냐하면 이 주술은 단지 19일로 끝나는 것이 아닐 것이며, 이 마법사들은 선거 이후의 정당성을 이용하여 시민들을 더욱 가증스럽게 기만할 것이기 때문이다. 노무현에 대한 환상, 이회창에 대한 공포의 기반들 노무현 지지 선동가들의 이회창 공포와 노무현 환상의 제조 방법은 무엇보다 전쟁과 평화, 낡은 정치와 국민이 만들어 준 새로운 정치, 기득권의 대변자와 서민의 대변자 등의 비유를 통한 상징 조작이다. 이것이 왜 조작인지는 대북정책과 노동정책을 보면 확연하게 알 수 있다. 만약 노무현이 한반도의 평화와 자주를 원한다면, 그는 무엇보다 한-미-일 공조 체제에 대해 근본적인 문제제기를 해야 한다. 지금까지의 한반도 역사를 보면 알겠지만, 한반도 위기 국면은 한국 정부의 대북정책이 아니라, 미국의 대북강경 정책에 의해 조성되었으며, 한국이 이에 저항 할 수 없도록 하는 체계가 바로 한-미-일 공조 시스템이었기 때문이다. 부시 정권 이후의 한반도 위기를 보면, 이를 잘 알 수 있다. 이회창과 노무현 사이에 대북지원을 둘러싼 차이는 결국 미국 부시 정권의 대북정책의 각론 수준에서의 자율권을 둘러싼 차이인 것이다. 물론 다들 알다시피 노무현은 한-미-일 공조에 대해 문제제기를 할 생각은 애초부터 없었다. 그가 이야기하는 전쟁의 공포도 그가 만들겠다는 평화의 구상도 모두 신기루일 뿐이다. 노동정책의 경우는 아예 양자 사이의 차이가 보이지 않는다. 비정규직에 대한 사회보장 강화(이회창)와 비정규직 임금 차별 감소(노무현) 사이의 차이는 종이 한 장 차이도 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비정규직 노동자의 모든 문제는 일차적으로 비정규직이라는 고용불안 조건을 기반으로 생겨나는 것이기에, 사회보장이나 임금문제를 조금 바꾼다해도 이들의 고통은 줄어들지 않기 때문이다. 양 후보는 비정규직을 이야기하며 노동 불안정화의 법적 핵심이라 할 정리해고제와 파견근로제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하지 않는다. 700만 비정규직을 빼놓고 서민을 이야기하는 것은 기만에 다름 아니다. 지역통합의 문제 또한 그러하다. 지역통합은 민주당이 부산에서 표을 얻는다고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다. 지역주의의 문제는 김대중 정권 이후 더욱 심화된 지역적 불균등발전의 문제, 금융 중심지 초국적 자본의 투자유치지 등을 중심으로 발전이 집중된 문제를 해결하는 것에서 시작해야 함에도, 양 후보는 이 문제를 후보의 출생지, 후보와 지역의 연관성에서만 찾고 있으니, 답답한 노릇이다. 물론 이러한 정책 상의 문제에 대해서는 노무현지지 선동가들도 일정정도 인정하는 바이다. 그들에게는 아직 더 강력한 무기가 남아있다. 바로 "노무현" 개인의 문화적 상징과 그의 정치행보가 증명하는 신뢰이다. 분명 노무현 개인의 문화는 386의 그것과 흡사하다. 통기타, 투박한 어법, 소주 등등 기존의 정치인들이 채워줄 수 없었던 386세대의 문화적 코드를 노무현은 현실 정치인으로서 직접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이 뿐이다. 노무현이 바꾸고자 하는 현실은 노동자 농민들의 삶과는 전혀 상관이 없다. 하지만 이러함에도 노무현이 무엇이던지 바꿀 수 있다는 발상은 그야말로 만들어진 환상일 것이다. 노무현을 둘러싼 한국 사회 정치 자본 분파들의 이해관계를 살펴보면 왜 이러한 환상을 만들고 있는지 이해가 된다. 노무현 지지 선동가의 첫 번째 분파는 바로 젊은 기업인의 상징, 벤처 사용주들이 있다. 이들의 이해는 정말로 직접적인데, 이미 이용호 진승현 게이트 등을 통해 드러났듯이 김대중 정권의 벤처 성장 정책이 만든 거대한 정부 벤처 지원 자금, 코스닥, 해외연계 채권 등등으로 이어지는 부패비리의 사슬과 연관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들에게 전 정권의 부패청산으로 임기를 시작할 이회창은 악몽 그 자체일 수도 있다. 두 번째 분파는 금융 자본 분파이다. 이들의 요구는 무엇보다 재벌의 투명성, 재벌 총수에 대한 주주의 힘이며, 이는 집단소송제 금융시장에 대한 재벌규제 등의 정책을 제시한 노무현의 정책 기조이기도 하다. 실재 무디스나 블룸버그 통신 등의 초국적 금융자본의 선동가들조차 친재벌적 이회창보다 김대중 노무현의 경제 정책에 전적인 지지를 보내고 있다. 세 번째로 신자유주의 정책 개혁을 지지하는 시민단체들이다. 이들은 무엇보다 김대중 정권의 전폭적 지지 하에서 성장할 수 있었으며, 정책적 발언권과 재정지원 모두에 있어 이들을 공식 파트너로 인정하는 노무현에게 전폭적인 지지를 보내고 있다. 이회창 정권은 이들에게 정책적 발언권 재정지원 모두에 있어 혹독한 시련일 것이다. 네 번째로 김대중의 신자유주의 정책 개혁을 이끌었던 지식인들이 있다. 그들은 그들이 계획하고 정당성을 부여했던 지난 5년간의 구조조정의 결과에 대한 비판을 노무현이라는 환상을 통해 감추고자하고 있다. 이제 왜 노무현이 문화적일 뿐만이 아닌 물질적으로도 그들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는지를 알 수 있다. 분명 이들에게 노무현이 아닌 이회창은 공포일 것이며, 심각한 위협일 것이다. 노무현에 대한 환상과 이회창에 대한 공포는 이러한 물질적 이해 관계들을 가지고 있다. 이 선동가들은 노무현을 우상화함으로서 정권 재창출을 성공리에 마무리하고, 자신들의 이해관계를 지난 5년처럼 유지하고 싶어한다. 1987년, 그리고 2002년 : 노무현에 대한 신비화를 중단하라! "87년에 실패함으로써 15년을 견뎠지. 부마항쟁부터 치면 한 20년 정도로 참아온 셈인데, 저는 더 이상은 못 참겠어요. 그래서 이번에는 꼭 이겨야 해요." (한겨레 21 대담 중) 노무현과 그 지지자들의 이해관계 속에서 그들은 1987년 민주화 운동을 신비화하고 있다. 그렇다면, 진정 노무현은 87년 6월 거리가 2002년에 재림한 것일까? 2002년에 다시 재림한 '87년 신비화'는 '역사적 망각이 만들어 놓은 환상'에 다름 아닌 듯 하다. 왜 문민정권은 부패할 수밖에 없었으며, IMF 경제위기를 가져올 수밖에 없었는가? 왜 시장경제와 민주주의의 동시 발전, 민주주의와 인권이라는 87년의 꿈을 모두 슬로건으로 채택한 김대중 정권은 이다지도 비참하게 몰락할 수밖에 없었는가? 잠시만 공포와 환상의 향연을 멈추고 냉정히 생각해 볼 일이다. 12월 19일의 대통령 선거 투표에서는 현실 가능한 해결책, 차악의 선택이 아니라 현실의 모순에 대한 지적이 이루어질 수 있기를 바란다. 물론 반평 투표소에서의 선택이 바꿀 것은 아무것도 없음을 안다. 세상을 바꾸는 것은 대중들의 집단적 행동, 집단적 성찰에 기반한 대중운동이다. 하지만 그러함에도 19일은 우리에게 주어진 조건이기에, 작은 한 표를 미래의 대중운동에 대한 큰 구상 속에서 사용할 수 있다면, 이것도 나쁜 일은 아닐 것이다. "WTO 반대! 비정규직 철폐! 주한미군 철수!" 2002년 하반기에 치열하게 펼쳐진 민중들의 함성을 다시 떠올려보며, 한 표에 제한되지 않는 현실의 모순을 다시금 떠올리는 19일이기를 바란다. SO-LA
민중10대요구에 대한 민주노동당, 사회당, 민주당, 한나라당의 답변 및 면 담 내용입니다. 전국민중연대에서 정리했습니다. * 파일을 클릭하시면 다운받으실 수 있습니다
지난 11월 25일, 노무현과 정몽준은 후보 단일화를 이루었다. 이로써 한국의 지배세력은 IMF 이후 자신의 재생산 방식이 얼마나 피폐해지고, 초라해졌는지 유감 없이 드러냈다. 그들은 처참하게 붕괴된 정치정당과 함께-혹은 그것의 우산을 벗어 던지면서 이리 저리 뛰어다니는 짓(자신들이 생각해도 부끄럽기 짝이 없는) 말고는 더 이상 대통령 선거 때 할 일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자신의 정치적 지위를 재생산할 수 있는 이데올로기를 상실하고도, 10년이 넘도록 이를 대신할 어떤 정치 이데올로기도 만들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해서 자신들이 (서로에게) 힐난해 마지 않던 일을 스스로 일삼기 시작했다. 물과 기름 같은 두 후보가 1987년에도 불가능했던 후보단일화를 성사하는가 하면, 비난을 일삼던 반대편 정당으로 자신의 몸을 의탁하기도 했다, 의원 '빼가기'라며 어떤 정계개편도 거부하던 정당이 의원 '영입'으로 몸집을 키우는가 하면, 정통보수의 왕정복고를 이루려는 세력들이 자신들의 선봉장으로 (이미 화석이 되어 버리긴 했지만) 재야인사, 노동운동가를 내세운다. 보기 드문 정치 희극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자신들이 그토록 소중하게 지켜왔던 반공·발전주의와 민주주의를 한바탕 웃음거리로 만들어 놓고도 그들은 자신이 조장한 것이나 다름없는 대중의 '정치적 무관심'을 엄한 얼굴로 꾸짖으며, 대선 참여를 독려한다. 대중의 정치적 무관심이 저항이데올로기 뿐만 아니라, 결국 자신의 존립기반마저 위협할 것임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시민의 정치적 권리로서 선거권은 자유주의자들이 가장 중시하는 권리다. 이를 통해 그들은 자신의 정치적 정당성을 구성하기도 하고, 부당한 권력의 역사적 정통성을 문제삼기도 한다. 그래서, 선거는 (드물게나마) 특정한 지배분파의 숨통마저 위협하기도 하고, (대개) 자신의 정치권력을 안정적으로 재생산하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이렇게 선거를 통해 지배세력은 자신의 권력을 스스로에게 양도하는데, 이때, 주의깊게 살펴야 할 것은 선거가 단순히 권력이양으로만 그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때로는 지배세력이 감당하기 곤란한 문제가 권력의 분기점이 되는 선거에서 공식화되기도 하고, 이렇게 형성된 대중적인 의제가 해당사회의 문제를 해결하기도 한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자본주의 사회에서 선거는 일정하게나마 문제를 정치적으로 해결하는 공간의 역할을 하기도 한다. 정세적 고양기에는 이것이 대중적 심판의 형태를 띠게 될 수도 있지만, 잠시 민주주의의 급진화 문제를 논외로 한다면, 이같은 정치적 해결은 대개 제한적이고 의사(擬似)적인 모양을 띤다. 더구나 지배세력이 이에만 전적으로 의존하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선거에서 보이는 대다수 사람들의 정치적 행동을 지배이데올로기에 따른 조작으로만 볼 것이 아니라면, 이것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냉정하게 분석해야 한다. 이 과정을 통해 차기 정권은 자신의 권력행사에 필요한 정치적 정당성을 획득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지금 눈앞에 닥친 대통령 선거에서 무엇이 주요한 쟁점이 되고 있는지-무엇이 의제로 제출되고 있는지, 이를 자세히 살펴 봐야 한다. 이번처럼 쟁점이 없는 선거(혹은 쟁점이 가려진 선거)에서는 더더구나 말이다.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의 안정적인 추진 지난 2002년 1/2월호에서 우리는 올 한해 정세전망을 제출하면서(사회진보연대 정세분석팀, "2002년 정세, 그리고 전선재편 : 문제의 개요", [사회진보연대 22호], 2002.1/2), "정권교체, 김대중 정부의 출범"이 재벌의 게으름으로 지체된 "신자유주의 정책개혁의 성공가능성을 높이는 결정적 계기"였음을 지적하면서, "김대중은 이른바 反패권 지역주의와 보수-개혁 정치연합을 통해 새로운 지지연합 : 신자유주의 지지연합"을 통해 정권을 창출하고, 이에 기반해 "IMF 구제금융협약 및 구조조정 프로그램을 집행하는데 크게 성공"했다고 분석한 바 있다. '대마불사'라던 재벌을 포함해서 어떤 기업도 구조조정에서 예외일 수 없었던 상황에서, 1997년 대통령 선거의 핵심 쟁점은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을 위한 정치적 조건이 어떻게 마련되어야 하는지 에 관한 것이었다. 'IMF 국란 극복, 책임자 처벌'에서 볼 수 있듯, 김영삼 정권에 대한 극도의 불만 속에서 어느 누구도 IMF 구조조정의 파괴적 효과를 충분히 살피지 못하였고, 결국 1997년 대선은 대통령 선거-정권 교체로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의 역사적 정당성을 부여하면서 끝났다. 그로부터 5년 간 우리는 이것의 후과로 구조조정의 뼈저린 고통을 충분히 맛보았다. 2001년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이 미흡"하다는 지적에 따라 구조조정은 새로운 국면에 다다르게 되는데, 즉 "상시적 구조조정을 이룰 수 있도록 구조조정의 제도적 완성으로 모아"진 것이다(홍석만, "2001년 정세를 조망한다", [사회진보연대 12호], 2001.1/2). 상시적 구조조정은 애초에 이회창이 김대중의 구조조정 정책을 비판할 때 강조했던 것으로, 결과만 놓고 보면 DJ 행정부가 이를 수렴한 셈이 된다. 2000년 총선 당시 민주당의 '전국정당화 실패'에서 간접적으로 확인할 수 있듯, 정권교체라는 강력한 정치적 충격이 주도하는 구조조정은 이미 시효를 만료했다. 하지만 당시까지 '정권교체'라는 정치적 계기로 단행된 IMF 구조조정이 충분히 효과를 보았다는 것 역시 진실이다. 따라서, 구조조정의 안정화 단계로서 '시장의 힘'에 따른 구조조정이 제도적으로 보장되어야 하며, 이같은 제도적 보장을 안정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정치적 조건이 필요하게 된 것이다. 실제로 우리나라 경제 정책 결정에 결정적인 이론적 근거를 제시하고 있는 OECD도 IMF 극복의 성공사례라 치켜세우며 기업부문 구조개혁에 박차를 가할 것을 권고하고 있는데, "첫째, 구조조정투자회사를 활용하는 등 기업개선 제도를 활성화하고, 사전조정제도를 활용하여 기업퇴출 절차를 강화하고, 둘째, 산업은행의 신속인수제도와 CBO제도를 점차 폐지하여 기업구조조정이 시장의 힘에 이루어지는 여건을 마련하도록 권고하며, 셋째, 사외이사의 역할을 보다 강화하고 집중투표제의 활용을 권장하도록 함과 함께 집단소송제의 도입이나 기존 소송제의 개선을 통해 기업의 불법적 경영관행으로 인한 주주의 피해를 보상받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도록 하고 있다."(이경태, "OECD와 한국의 구조개혁",[OECD FOCUS 4호], 2002.11) 한편, IMF를 경과하면서 본격적으로 추진된 노동분야 구조조정은 정책기조 상으로 볼 때 큰 변화 없이 꾸준히 진행되고 있다.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제고하고 사회안전망에 효율성 개념을 강화하는 것이 핵심인데, 앞서의 것은 정리해고제, 근로자파견제의 입법으로 드러났고, 다른 것은 사회안전망을 뒤늦게나마 도입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물론, 효율성 개념이 강화된 형태로-즉, 생산적 복지. 여기서 특기할 것은 1997년 새로운 타협체계의 구축으로서 노사정위원회가 OECD에서 지지를 받고 있다는 사실이다. 뿐만 아니라, "정규근로자 중심의 과도한 고용보호를 완화하고 비정규근로자의 보호는 강화하여 노동시장 이중구조를 완화할 것이며, 공공직업안전망의 전국적 단일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사회복지전달체계와 연계를 강화하며, 사회통합 유지를 위한 노동권 신장에 노력할 것"들을 권고하고 있는데 이도 유념해야 할 것이다. 이는 노동운동이 상대적으로 세력화되어 있는 데다 과거처럼 완전고용으로 노동자들의 불만을 무마할 수 없는 현실에서 비롯된 것이기도 한데, 어찌되었든 이로써 노동정책을 가지고 상대적인 '진보'를 구별하려는 시도는 상당히 무의미해졌다. 멀리 갈 것도 없이 김대중 정권의 강력한 노동정책을 상기해 보라! 물론, 이념적 성향으로 보았을 때, 여성과 비정규직 노동자에 대해서는 다소 완곡한 입장을 취하는 등 정도의 차이가 있을 수는 있겠지만, 이 점에서 한나라당으로 대변되는 지배분파라고 크게 다를 바는 없다. 어차피 핵심은 이것이 아니다. 북미관계에 종속된 대북정책 최근 북의 핵 개발 의혹이 제기된 이후 급격하게 북미관계가 냉각되면서 어떤 식으로든 햇볕정책을 평가 및 수정(유지)해야하는 상황에 다다른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페리보고서' 때 처럼 외교관계협의회의 코리아태스크포스팀과 같은 역할을 맡은 정책팀이 구성되어, 이 정책팀이 남한에서 대통령 선거결과를 고려하여 2003년 2월에 한반도에서 미국의 역할에 대한 보고서를 제출할 것이라 한다. 대북정책에 있어 지배분파들 사이의 갈등은 자신의 이념적 정체성을 확인하고, 최소한이나마 정치적 재생산을 보증하는 유효한 매개고리가 될 수 있다. 하지만, 이것은 근본적으로 한계를 가지고 있는데 남한 정부가 추진하는 대북 정책은 최소한 다음 두 가지 전제 위에서 수립되기 때문이다. 첫째 "한국과 미국의 확고한 정치적 공조체제와 군사적 동맹관계를 유지"해야 하며, 둘째 그 결과로서 "한반도 통합(정세적 효과)이 결국 미국의 국익과 남한의 재벌 그리고 초국적 자본에게 압도적으로 유리"해야 한다는 것. 따라서 한-미-일 삼각동맹이 견고히 유지되는 상황에서 대북 정책은 근본적으로 제한적일 수밖에 없으며, 그것은 햇볕정책도 마찬가지다.(임필수, "김대중 정권 2년, 남북관계의 진전은 이루어지고 있는가?", [사회진보연대/접속 2호], 1999.8) 주지하는 대로 미국의 한반도 정책이 단순한 '봉쇄'정책을 넘어선 것은 1990년대의 일이다. 냉전이 붕괴된 이후 미국은 "자신의 세계전략에 도전하는 위협요인"이 중국 같은 전략 지역에서가 아니라 "상대적으로 부차적인 지역에서 발생"하는 비대칭적인 상황에 직면하게 되었다. 이러한 위협이 "미국의 세계적/지역적 지도력의 신뢰성과 자신의 세계헤게모니를 정당화하는 미국의 보편적 가치(인권과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미국으로서는 이를 간과할 수 없었다. 더구나 이들의 위협수단이 "비교적 적은 비용으로 큰 효과를 거둘 수 있는 대량파괴무기(핵-생화학-미사일) 개발로 집중"되었기 때문에 문제는 훨씬 심각했다. 따라서 미국으로서는 (북한의) '핵-미사일' 등 대량살상파괴무기 개발을 막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한 문제가 된 것이다.(임필수, "2000년대 미국의 대외정책과 한반도", [사회진보연대 6], 2000.6) 하지만, 페리보고서의 '고려되었으나 거부된 정책대안'에서 확인할 수 있듯, 미국은 북한에 대해 '봉쇄'정책을 강화하거나 단순히 현상을 유지하는 것은 오히려 미국의 국익에 위험을 초래할 뿐이었다. 이에 따라 미국은 북에 대한 포괄적 접근(engagement)을 통해, '협상'과 '군사력의 증강'이라는 두개의 경로를 동시에 추진하게 되는데 이의 축소판-혹은 부분적 역할이 바로 햇볕정책인 것이다. 이때 '협상'의 주요 내용이 북한의 경제 재건을 위한 최우선적인 조건인 한반도에서 북한의 정치적 안정 보장 즉, "남북한 교차승인"이며, 그 수위를 조절하는 문제가 핵심이 된다. 요컨대, 미국에게는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을 막는 것과, 이를 전후하여 교차승인구도를 얼마나 안정화할 것인지가 구체적인 정책실현의 고려대상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2001년 9·11 테러를 전후하여 미국으로서는 대외전략의 수정이 불가피하게 되었는데, 비대칭적인 상황이 가져다주는 위협의 체감도가 급격히 높아졌기 때문이다. 공격행위가 분쟁지역이 아니라 미국 본토에서 벌어지면서 전쟁은 이제 가상이 아니라 실제상황이 되었고, 이를 미국민들이 눈으로 똑똑히 너무도 충격적으로 확인하였기 때문이다. 곧바로 미국은 이를 '대테러전쟁'으로 공식화하였고, "비대칭적 위협이 가지는 불확실성을 격퇴하기 위해 압도적인 군사적 힘을 기반으로 강력하게 통제하겠다는 뜻"을 밝힌다. 이에 따라 '악의 축' 발언 등에서 드러나듯 한반도에서 미국의 신경질적인 반응이 눈에 두드러지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이 제네바 합의로 북한의 군사적 위협을 제거했다고 믿기에는 합의내용이 매우 제한적인 것 또한 사실임을 확인해 둘 필요가 있다. 무척 위협적으로 비쳐지는 농축 우라늄 문제, 미사일 발사 실험, 재래식 무기 등등은 제네바 합의 대상이 아니었을 뿐만 아니라, (미국 자신도 준수하지 않았듯) 제네바 합의 자체가 강한 구속력을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따라서 미국으로서는 어떤 형태로든 지금 상황을 개선해야 되는 상황에 이른 것이다.{{) 여기서 한국의 지배분파들이 구사할 수 있는 정책 범위가 매우 제한적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상기해야 할 텐데, 그렇기 때문에 한국 지배세력의 논쟁이 남북 경제 교류에서 "상호주의"의 관철 정도에 머물게 된다. }} 지배세력의 정치적 목표 이렇게 해서 우리는 간단하게나마 지금 한국사회가 어디로 가려하는지, 그리고 이에 발맞추어 지배세력들이 향후 정국을 어떻게 운영하려 하는지, 그리고 그 속에 숨겨진 쟁점이 무엇인지를 살펴보았다. 요약하면, 한국의 지배세력은 2002년 대선을 거치면서 구조조정의 다른 국면으로서 상시적 구조조정 체제의 안정화를 꾀해야 하고, 미국이 동북아 정세를 결정짓는 몇 가지 요인들을 재조정하는데 방해가 되지 말아야 하는 바, 이에 발맞추어 모든 지배분파들은 열과 성의를 다해야 하는 상황이다. 물론 이것이 노동배제적이며, 성적·지역적 갈등을 배가하는, 미국의 패권을 제고하는 것임은 두말할 것도 없겠다. 이렇기 때문에 근본적으로 우리는 한국의 지배분파들이 서로 후보를 달리 해서 나오고도 한국사회의 구조조정의 전망과 관련해서는 별다른 이견을 확인할 수 없는 - 즉, 정치적 쟁점이 없는 선거를 보고 있는 것이다. 다소 당혹스럽겠지만, 한나라당이 '법을 엄격히 세우겠다'는 말만 빼고는 노사정 위원회를 위시하여 '주 5일제 실시' 등 민주당의 주요한 노동정책 및 복지정책이 거의 같은 데는, 마찬가지로 '상호주의의 관철', '탈북자 문제 적극 해결'이라는 말만 빼고는 대북 접촉 등 민주당의 주요 대북 정책과 거의 같은 데는 다 사정이 있는 것이다. 문제는 1987년 이후 한국의 구조개혁을 선도해온 집단으로서 군부세력을 대신하는 정치세력의 형성이 상당히 오랜 기간 지체되고 있다는 점이다. 현 시점에서 상대적으로 우위를 점하고 있는 집단은 이회창으로 상징하는 보수적인 관료·테크노라트(전문가)들이다. 어느덧 한국 정치사의 혐오 대상으로 분류되어 버린 군부세력에 대해 이들은 일정한 거리를 갖는 것으로 표상되는 데다, 자유주의적인 개혁(즉, 김대중의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이 불러 온 실망의 반사적인 표현으로, 과거로 회귀하고 싶은 대중들의 실리적 지향(완전고용)과도 맥을 같이 할 수 있어, 상대적으로 거부감이 덜한 보수주의 정치세력이다. 더구나 오랜 기간 정국을 운영해온 경험을 통해 당면한 구조조정의 목표와 대외정책 조율에 있어서 별다른 무리수를 두지 않는 것으로 인정받고 있기 때문에 안전성에 있어 대외적인 신임마저 상당한 편이다. 반면, 개혁세력이라 불리는 이들의 경우 지난 2000년 총선에서 확인할 수 있듯, 집권세력의 파트너를 넘어 직접적인 정치세력으로 나서기를 주저하고 있으며, 반정립으로서 세대갈등을 내세우는 것 말고는 잘하는 것이 별로 없는 매우 무기력한 집단이다. 사실 이는 이들의 정치적 기반이 매우 취약한데서 기인한 것이기도 하다. 그들 자신의 고백대로 군부독재시절 너무 오랜 기간 핍박을 받은 데다, 대중 - 특히, 노동자들을 전취할 수 있는 한국사회의 물질적 토대가 너무도 빈약하기 때문에 이들에겐 운신의 폭이 거의 없었던 것이다. 게다가 대중을 전취하기 위해서는 사회 총체적인 개혁방향을 그리며, 한국사회의 자유주의적인 미래를 그려야 하는데, 반주변부 국가의 특성상 이 역시 여의치 않았다. 오랜 구력으로 이런 상황을 잘 이해하고 있던 동교동계 인사들이 이들을 얼마간 농락할 수 있었던 근저에는 이같은 무능이 있었다. 그리하여, 이들 개혁세력은 역사적인 정권교체와 함께 한국 정치사의 본무대에 등장하였으나 IMF 구조조정이 일단락 되던 2000년을 마지막으로 온갖 부정비리와 함께 퇴장해야 하는 참담한 신세가 되고 말았고, 급기야는 개혁세력의 종가라 불릴 민주당의 처참한 붕괴 위에서 대선을 맞이한 것이다. 자신의 생명을 부지하는 것만으로도 다행스럽게 여겨야 할 만큼 처참한 몰골로 말이다. 후보단일화, 잊지 못하는 연민의 정? : 개혁세력의 후보단일화 비판 그렇다고 이들의 명이 완전히 끝난 것은 아니었다. 미국사회에 대한 선망이 깊었던 만큼 이들은 정책정당이 무엇인지 훨씬 잘 알고 있었고, (국민경선제에서 확인할 수 있듯) 무엇보다도 이벤트를 조직하는 데 능숙했으며, 정치의 미디어화에는 탁월했다. 이들의 정치기술이 보수적인 테크노라트들에 비하면 좀더 세련된(미국적인) 것이 사실인데, "1980년대 말 3저 호황 때와 같은 물질적 뒷받침이 존재하지 않는 상황이며, 부르주아 내부에서 어느 누구도 이니셔티브를 행사하지 못하는 상황 …… 부르주아의 정치적 우위는 대중을 동원할 수 있는 이데올로기적 '정치기술'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상황"(사회진보연대 정세분석팀, 같은 글)에서 이들은 자신의 솜씨를 매우 능숙하게 발휘했다. '후보단일화'. 그들은 이것으로 구차한 목숨을 연장시켰을 뿐만 아니라, 사후적 효과까지 단단히 보고 있는 것이다. 1987년 6월 '대중의 반역'의 정치적 성과를 대통령 선거까지 지연시키고는 이마저도 선거 패배로 유실되자 자유주의자들은 모든 책임을 후보단일화 실패로 돌렸다. 논쟁이 격렬했던 선거였던 만큼 이렇게 유실된 대중의 정치는 후보단일화에 대한 미련과 자유주의적 개혁에 대한 연민으로 남았는데. 이는 대통령 선거 때마다 '비판적 지지'의 망령이 되어 되살아나고는 했다. 이것이 정권교체 이후에 아예 있는 그대로 바로, 못 다 이룬 꿈 '후보단일화'로 되살아난 것이다. 이것의 효과는 놀라웠다. '후보단일화'는 그 자체로 자유주의적 개혁에 대한 대중의 연민을 떠올리게 한데다, 당시의 대립구도를 오늘에 똑같이 재현하였다. 그리하여 모든 민주-개혁세력의 결집을 부르며, 반창 결집으로 이회창을 국민들이 그렇게 혐오해 마지않았던 군부세력의 잔당으로 만들어 버린 것이다. 물론 노무현 자신은 민주주의와 개혁의 화신이 되어서 말이다. 말 그대로 못 다 이룬 꿈 '후보단일화'가 월드컵의 화신 정몽준을 통해 꿈을 이룬 것이다. 뿐만 아니라 '후보단일화'를 이룸으로써 노무현은 '후보단일화'를 이루지 못했던 DJ(YS)보다 더한 정치적·도덕적인 우월감을 단숨에 획득했다. DJ의 후계자라는 부담스러운 지위마저 한번에 털어 버린 것이다. 정말로(?) 노무현(!)은 달랐다(?). 이에 따라 한나라당은 대선 초장부터 뜻밖에 형성된 전선을 무마하려고 황망히 돌아다닐 수밖에 없었는데, 다 죽은 김대중이 산 이회창을 잡도록 놔둘 수는 없었던 것이다. 이들은 보수/개혁 구도가 자신들에게 하등 유리할 게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이회창을 수구냉전세력으로 몰아넣는 것의 부당함을 강조했다. 동시에 이들은 역시 죽어버린 민주인사와 노동인사를 전면에 배치하였다. 민주당보다 앞서 SOFA 개정을 내걸기도 했다. 어느새 재등장한 '노풍'에 기선을 제압 당한 채로 대선에 뛰어든 것이다. 이렇게 노무현이 강력한 기선제압으로 대선을 시작할 수 있었던 것은 무엇보다도 '후보단일화 실패'로 상징되는 자유주의적 개혁의 굴곡많은 역사에 대해 대중들의 연민이 작동했기 때문이다. 바로 이것이 DJ의 배신으로 인한 대중의 정치적 냉소주의-정치적 보수화에 잠시나마 제동을 걸었다. 하지만 이런 지향을 개혁세력들이 계속 유지할 수 있을지는 별개의 문제다. 일단 앞서 지적한 것처럼 개혁세력은 이를 추진할 물질적 토대도, 미래를 제시할 총체적인 상도 없는 데다 어떤 고유한 이데올로기로 자신을 재생산하지 못하고 있고 오히려 제 정치세력들의 이합집산에 의존하고 있는 실정이다. 더불어 (이것이 가장 중요할 텐데) 1987년과 달리 오늘날 대중운동의 상황은 오랜 침체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개혁세력들이 자신의 힘도 계획도 없이, 대중운동의 뒷받침도 없이 (1987년 봉기하는 대중이 지켜보는 가운데에서도 힘들었던) 개혁을 추진하겠다고 말하는 것은 스스로 몽상에 사로잡혀 있거나, 대중에게 거짓을 고하고 있는 것이다. 더더구나 오늘 한국의 지배세력이 무엇을 해야하는지 뻔히 잘 알고 있는 개혁세력들이 말이다. 따라서, 노무현을 앞세운 개혁세력의 개혁이 잠시라도 주춤거리면(노무현은 DJ보다 정치적 입지가 훨씬 취약하기 때문에 오히려 그가 더 개연성이 높다), 이에 대한 대중의 배신감은 DJ의 그것보다 더 크고 더 깊숙이 스며들 가능성이 짙다. 이때 자유주의적 개혁에 대한 소박함은 다시 아쉬움으로 남을 것이고 이것이 개혁세력에 의해 다른 방식으로 또다시 조장될 것이고 이것이 다시 한번 배신을 낳을 것이고…… 이것이 만일 현실로 드러나면 이렇게 기대와 배신이 무한히 반복되는 악순환에 빠지면서 대중의 정치는 뒷전으로 밀리고 말 것이다. 이 과정에서 대중의 정치적 냉소주의가 강하게 작동할 것이며 이는 대중을 침묵의 깊은 수렁에 밀어 넣을 것이다. 이것이 바로 대중의 무덤 아닌가? 개혁세력을 향한 대중의 연민은 불행히도 대중의 발목을 붙잡고 말 것이다. 개혁세력의 약속은 애초에 지킬 수도 없는 약속이다. 개혁세력의 현란한 정치기술은 그저 정치기술일 뿐이다. 이들의 장기(長技)이기도 한 정치의 미디어화와 이벤트화는 이런 문제를 더욱 가속시킨다. 정치의 대상을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실체로 다루는 것이 아니라 이미지로 상징하여 다루기 때문이다. 당면한 문제를 정치적으로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문화적으로 회피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런 정치는 문제를 우회하고 대중들 사이에서 미끄러지게 한다. 문제를 외면하는 정치! 문제를 봉합하는 정치! 그리하여 대중을 침묵의 깊은 수렁으로 밀어 넣는 정치! 이를 잘 활용하는 것이 바로 개혁세력의 정치기술이다. * * * OECD를 위시하여 유수의 정책전문가들은 내년도 경기전망을 상당히 어둡게 내다봤다. 선진권 경제(특히 일본)와 신자유주의 경제의 구세주라 할 수 있는 IT경기의 회복세가 여전히 미약하고, 미국의 이라크 공격에 동반될 단기적인 유가 불안, 중남미 금융불안 등 그 어느 때보다도 불안요인들이 많기 때문이다. 특히, 2003년 시작부터 요란하게 펼쳐질 미국의 대이라크 전쟁은 미국의 패권을 한층 더 강화시킬 것이며, 새롭게 출범하게 될 정권은 '상시적인 구조조정의 안정화'와 '북미관계의 재조정'을 위해 모든 정책을 집중시킬 것이며, 벌써부터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는 자본가들의 요구 즉, 노동 유연화를 강화하고 노동운동을 무릎꿇게 하는 요구는 극을 달릴 것이다. 그리고 개혁세력의 기선제압이 얼마나 지속할지 알 수 없지만, 당락과 관계없이 불안정한 상황은 상당기간 지속될 것이다. 당선이 되면 되는대로, 떨어지면 떨어지는 대로 강력한 정개 개편의 회오리가 몰아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오늘날 만일 우리가 상대적으로 진보된 정치공간이 열렸다고 말할 수 있다면(사실 극히 의심스러운 것인데) 그것은 대통령이 상대적으로 진보적인 사람이어서가 아니라 1987년 대중운동 내에 일었던 반역의 기운이, 그 효과가 오늘 이 시간에도 미미하게나마 미치고 있기 때문이다. 내년에 만일 우리가 상대적으로 조금이라도 열려진 공간에서 활동할 수 있다면, 아니 그것을 기대한다면, 그것은 대중운동의 급진화 와 함께 대중의 정치적 발언이 곳곳에서 드러나기 때문이다. 우리가 열려진 공간에서 활동한다는 것은 대중의 역능과 우리가 마주친다는 뜻이다. 상황이 이렇다면, 제각기 흩어져 존재하는 대중운동이 이에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 공동의 지혜를 모아야 할 때이지 않은가? 이것이 '좀 더 개혁적인(진보적인) 누군가를 투표하는 것'에 제한되지 않음은 너무도 자명하지 않은가?
민주노총, 전국연합, 전국빈민연합, 한총련, 한국청년단체협의회, 민족화해자주통일협의회 등은 민주노동당 권영길 후보를 공동후보로 추대하기로 결정, 11월 22일 "2002년 대선 승리를 위한 범진보진영 공동선거운동본부"(이하 '공선본')를 발족시키고 본격적인 대통령 선거에 돌입하였다. 이미 수 차례의 선거를 통해 명실상부한 정치세력으로 부상한 민주노동당은 든든한 외곽지원마저 확보한 셈이다. 이로써 일찌감치 독자 선거 대응 방침을 천명한 사회당 및 기타 '좌파' 진영, 그리고 여전히 정치방침을 확정하지 못한 전농을 제외한다면 민주노동당은 역대 민중운동 진영의 대통령 선거 대응 중 가장 폭넓은 세력을 결집시켜 선거운동에 나서는 위용을 갖추게 되었다. 게다가 지방선거를 통해 제3당으로 부상한 탓에, 언론 역시 민주노동당에 대해 예우를 생략하지 않고 있으며 이회창, 노무현과 어깨를 나란히 하여 TV 토론까지 확보하는 유리한 조건에 서게 되었다. 그 결과 민주노동당의 대중적 인지도와 정책선호도는 그 어느 때보다도 가파른 상승세를 타고 있다. 실로 '마(魔)의 30만 표' 돌파는 물론 급기야 2004년 정당명부 비례대표제를 통한 원내 진출의 꿈이 눈앞의 현실로 다가온 것이다. 후보 단일화와 진보진영의 선거 대응 그러나 노무현으로 후보단일화가 성사되면서 대선 지형은 급격히 재편되기 시작했다. 우선 '노풍'이 재점화되기 시작하면서 대결구도가 보수-개혁 양강 형태를 띠게 된 결과, 관망세력(부동층)이 분극하기 시작했고 정치 일반에 대해 무관심하던 대중들이 선거의 자장(磁場) 내로 유인되고 있다. 바닥을 치던 노무현의 지지도가 40%를 상회하면서 '3김(보스)-지역-금권' 정치에 환멸 하던 자유주의적 지향의 시민운동 진영이 부정부패 개혁-선거참여운동의 형태로 재결집하고 있다는 것도 중요한 전조다. 386세대와 진보적 성향의 지식인 역시 한국사회의 재민주화를 주장하며 노무현 지지를 공식 선언하고 나섰고 개혁신당을 중심으로 한 향후 정계개편 논의가 급물살을 타고 있기도 하다. 특히 눈여겨보아야 할 것은 당초 '이회창 반대'라는 정치적 목표(?)와 '민주노동당 지지'라는 조직적 목표(?)를 사실상 분리해온 일부 운동 진영의 선거전술이 크게 동요한다는 점이다. 현 시기 대립의 핵심지점을 反통일-수구 세력의 집권 저지로 파악했기 때문이다. 덩달아 이미 9월부터 노무현 지지를 선언한 '개혁과 통합을 위한 노동연대'를 필두로, 코포러티즘적 지향의 노동운동 진영 역시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심지어 최근 전교조를 비롯한 연맹 선거에서 드러났듯이 많은 수의 조합원이 총연맹의 민주노동당 지지 방침에 대해 반감을 표하기도 한다. 이는 무엇보다도 계급적 이해관계나 정책적 선호도 측면에서는 진보정당을 지지하지만 '정책의 실현가능성'을 이유로 당장은 개혁세력을 차선책으로 선택한다는 현실 논리가 주되게 작동한 탓이다. 결국 개혁세력의 붕괴를 만회하기 위한 반동적 정계개편 놀음과 여론조사를 통한 후보단일화라는 희대의 정치 쇼를 통해, 실패한 '제3의 길'의 망령이 노무현을 등에 업고 되살아난 꼴이다. 이로써 김대중의 실정과 이회창의 보수성을 동시에 타격 한다는 구상 하에 '상황의 지대'를 구축하고자 했던 민주노동당으로서는 (시민운동 진영이야 차치하고서라도) 고질적인 '신비판적지지론'과 '사표심리(死票心理)'에 다시 한번 발목을 잡히는 형국에 처하게 되었다. 민주노동당 선거 전략의 문제점 그러자 민주노동당은 재빨리 대책 마련에 착수하기 시작했다. 우선 "민주노동당이 2백만 표를 얻으면 새로운 세상을 만드는데 10년 걸리고, 5백만 표를 얻으면 5년 걸린다"는 문구를 전면에 내세우며 사표심리차단에 나섰다. 선거 전략 역시 유동층보다는 핵심 지지계층인 노동자·농민 등 대중조직과의 접촉부면 확장에 주력하는 한편, 부유세와 반미 기조 등 보수정당과의 차별성을 강조하는 것으로 다소간 수정되었다. 민주노총의 조직적 선거운동도 본격화되기 시작했다. 전현직 노동운동 지도자 100명이 11월 28일 권영길 후보 지지를 천명한 것을 시작으로 노동자 1만인 선언 운동으로 확대되는 중이다. 조합원들의 계급투표를 독려하고자 정치세력화에 대한 조합원 교육 및 당 정책을 중심으로 한 현장 순회 선전 활동을 강화하고 있다. 그러나 이상의 방식이 '신비판적지지론'이나 '사표심리'의 본질을 전진적으로 해결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은 결코 아니다. 민주노동당의 대중적 기반을 형성하는 노동자 집단이 이미 지난 수년 간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생활양식을 유지하기 위해 노동자운동 전체를 힘있게 대변하지 못하고 자기 방어적 실리주의로 일관해왔다는 사실이 극복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역설적이게도 노동자운동 스스로가 코포러티즘적 경향과 명확히 단절하지 못한 것이 개혁주의 세력에 대한 대중들의 차선(차악)을 방조한 셈이다. 이를 타개할 구체적 방도를 모색하지 않는 이상, '개량 없는 개량주의'의 유혹은 향후 지속적으로 민주노동당 스스로의 행보를 제한하는 요인으로 작동할 것이 분명하다. 게다가 낮은 지지율의 원인을 교육의 미비와 '계급의식'의 부재(즉 조합원의 낮은 정치의식)에서 찾는 탓에 선거 시기 정치활동은 대중 스스로 갈등을 인식하고 그 안에서 집단적으로 해결책을 모색하는 '정치학'이 아니라 일방적인 교양과 정책설명이 주가 되는 '교육학'으로 대체된다. 투쟁과 토론과 교육이 전제되지 않은 상황에서 '계급투표'를 일방적으로 강조하는 것은 대중의 수동적 경향을 더욱 부채질할 뿐이며 역으로 '조합원의 자유의지'를 강조하는 자유주의적 논점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 "노동자는 노동자대통령"이라는 구호가 '노동자주의적' 의미 이상을 획득하기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결국 수동적·실리적 경향을 보이는 대중의 상태에 대한 구체적 분석은 생략되고 대중 스스로 계급적 단결을 지속할 수 있는 경로는 '의식화-조직화' 속으로 용해된다. '정치세력화'라는 관념의 동요 11월 들어 진행된 노동자·농민 투쟁은 외형적으로는 유례 없이 대규모로 조직된 대중적 투쟁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실상은 사실상 선거를 앞두고 정치권을 압박하여 실리를 획득하기 위한 청원형 투쟁이었음을 부인하기 힘들다. '3대 악법 폐기'를 전면에 내세운 민주노총의 총파업 투쟁만 하더라도 조직화의 주된 매개는 임금보전 논리였으며 그 투쟁 형태 역시 법안 상정에 대비한 대 국회 압박 투쟁이었다. 전농의 쌀 수입-WTO개방 반대 상경 투쟁 역시 10만 대오를 결집시켰다는 조직적 성과는 있지만, 실제 양상은 대선 후보들에게 분노한 '농심(農心)을 위로할' 정책적 대안을 촉구한 셈이다. 모두 민중의 이해를 정치적으로 대변할 세력이 부재하다는 이유로, 특히 대중투쟁만으로 승리의 전망이 어둡다는 인식 하에 지배 정치권의 정책전환을 촉구하는 것으로 끊임없이 후퇴한 것이다. 그런데 더욱 심각한 것은, '더는 지배 정치권에 기대하지 않겠다'는 대중 스스로의 인식이 '경제적' 이해를 대변할 '정치적' 조직으로서 '(의회)당'이 필요하다는 관념으로 미끄러진다는 점이다. 이는 대규모 농민투쟁의 정치적 성과를 수렴시킬 방도를 찾지 못한 농민운동 진영에서 특히 강력히 제기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에 전국연합, 민주노동자전국회의 등 민족민주 운동 진영은 "615 공동선언 이행과 진보정치 실현을 위한 대선 실천단 615의 힘"(615실천단)을 구성하여 현재의 진보정당이 농민의 이해를 힘있게 대변하지 못한다는 이유를 들어 대선 이후 농민을 포함, 본격적인 '민족민주정당'으로의 확대재편을 주장하고 있다. 비록 차원은 다르지만 한국노총 역시 이미 독자 정당(민주사회당)을 창당, 이번 대선에 후보를 출마하지는 않지만 향후 개혁진보세력의 통합과 '진보적 대중정치의 실현'에 복무할 것을 선언한 바 있으니, 바야흐로 '정치세력화'의 전성시대라 칭할만하다. 한편 '정치세력화'의 선발주자로서 민주노동당은 이번 대선을 기점으로 기간의 성과를 집약하여 2004년 원내에 진출하겠다는 희망에 부풀어 있다. 주대환씨는 후보단일화가 당장의 득표율에는 도움이 안될지언정 장기적으로 보았을 때 진보정당의 입지 강화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따라서 그는 보수 양강 구도를 갈라 치면서 "권영길 후보가 제3의 후보로서 자리 잡"을 수 있다는 이유로 노무현과 정몽준의 후보단일화를 환영한다. 그의 말대로 "16대 대선을 경과하면서 (……) 3김 시대의 종식과 더불어 지역주의가 어느 정도 퇴조하면서, 미국식 보수 양당 구도"가 성립한다면, 민주노동당이 보수 양당의 카운터 파트를 전담하는 '2+1' 구도의 성립도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한 마디로 민주노동당과 민주당의 관계는 '제로섬(zero sum) 게임'이 아니라 동반상승 효과를 불러오는 '윈윈(win & win) 게임'이라는 식이다. 전진을 위한 모색: 하나의 사례로부터 1970년 칠레 대통령 선거에서 급진당·사회당·사회민주당·민중통일행동운동·독립민중행동 등 6당파로 구성된 민중연합(UP)의 아옌데 후보가 미국 및 국내 독점자본, 대지주의 정치적 이익을 대변하던 국민당 및 중도 좌파의 기독교민주당을 누르고 마침내 민중연합정부가 수립되었다. 이는 제국주의와 지배계급의 친미·반동적 공세에 대항하여 장기간에 걸쳐 민중운동 세력이 공동의 투쟁경험을 축적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 이미 1956년부터 칠레 좌파 정당들은 민중행동전선을 꾸린 상황이었고 1968년에 이르러서는 농민·노동자·학생의 통일전선이 결성되었다. 그리고 1969년에 민중연합의 기본강령이 채택되어 공통의 행동이 가능해졌다. 무엇보다도 칠레의 민중연합은 단순한 선거사령부에 머물지 않고 민중권력을 행사할 준비를 하고 대중의 요구획득투쟁의 제1선에 위치한 정치지도기관으로서 민중통일위원회를 정치적 기초로 보유하였다는 점에서 주목할만한 사례다. 여기에 80만 명의 조합원을 확보한 전국노동자통일노조, 농민전국연합, 대학자치연합의 결집이 그 주된 동력이 되었다. 반면 비슷한 시기 프랑스에서 좌파 정당들 간에 시도된 좌익연합 전술은 성공하지 못하였다. 무엇보다도 민중연합, 즉 대중적 기초에 충실하지 못하고 "상부에서" 만들어지는 정당들 간의 계약정책에 의지하였기 때문이다. 결국 이상 두 나라의 사례는 노동자 민중 내부의 차이와 분할을 넘어 단결과 연대를 지속시킬 수 있는 대중적 토대를 구축하고 이에 기초하여 장기간에 걸친 투쟁의 경험을 축적하는 것이야말로 '이행'의 현실성을 담보하는 유일한 방안이라는 점을 우리에게 시사한다. 특히 노동자계급 내부의 분할의 구체적 양상(노동자와 농민(혹은 도시와 농촌), 육체노동과 정신노동의 고유한 분할, 성적 분할)과 모순의 구체적 원인에 대해 파악하고, 올바른 대중노선에 입각하여 다양한 대중운동들 간의 조정과 교통을 가능케 하는 운동 형태와 조직에 대한 유력한 단서를 제공하기도 한다. * * * 유례 없이 심원한 위기에 봉착한 세계 자본주의 체제에 내장된 장기-구조적 모순은 이행의 '객관성'과 동시에 사회적 위기의 심화를 의미한다. 물론 '위기'가 보다 나은 사회로의 이행을 자동적으로 보장해주는 것은 아니다. 이행은 자신이 처한 고통의 원인을 과학적으로 인식하고 집단적으로 해결하는 지난한 과정을 통해서 실현 가능할 뿐이다. 지난 5년 간 DJ-IMF 체제 하에서 피눈물을 흘려야했던 민중운동 진영으로서는 보다 장기적이고 거시적인 맥락에서 이제 이행의 주체적 조건에 관한 고민을 진행할 필요가 있다. 현재 대선 투쟁에서도 득표율보다 오히려 중요하게 고려되어야 할 것은 현존하는 운동의 재개를 위한 출발점을 명확히 하고 대중운동 및 전선 재편의 실마리를 찾는 작업이다. 지배 정치권의 립서비스에 미혹되거나 소기의 성과에 집착하여 실리적으로 경도된 '정치세력화'에 집착하기보다는 민중운동의 표상(조직과 이데올로기)을 새로이 정립, 확장하는 작업에 나서야 한다. 대선을 경과하며 보다 반동적인 형태로 편재, 새로 탄생하게될 정권에 맞서 전선재편을 향한 구체적인 행보에 돌입하는 것, 그것이 바로 이번 대선을 경과하며 우리 모두가 서로에게 다짐해야 할 약속이다. PSS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