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원 중심 공안 정국에 대한 인권단체 기자회견] 비밀정보기관이 주도하는 공포와 혐오의 정치를 중단하라 사상과 양심의 자유는 더 확대되어야 한다 국정원 발 뉴스들이 정국을 장악하고 있다. 박근혜 정부 들어 주요한 소식들은 모두 국정원에서 출발하고 있다. 대통령 선거의 불법 개입과 NLL논란, 소위 ‘내란음모’사건, 심지어 채동욱 검찰총장 사의와 관련된 일련의 사건에서 조차 강한 의구심이 제기되고 있다. 모두 특정 개인, 혹은 집단에 대한 ‘낙인찍기’를 통하여 사회 전체에 공포와 혐오를 확산시키는 데 일조한 사건들이었다. 여기 모인 우리는 국민 앞에 드러난 비밀정보기관의 공안정치가 한국사회 민주주의와 인권을 뿌리째 흔들고 있음을 우려한다. 국회와 정당, 심지어 검찰까지 현재 국정원을 견제할 세력이란 도무지 보이지가 않는다. 이것은 정치의 문제인가? 정치 문제이자 인권의 문제이다. 국가정보기관은 국민 개개인의 자유를 통제하여 권력을 확보하고 정치를 장악한다. 국민의 ‘인권 침해’를 담보하는 방식으로 정치에 개입하려는 국가 기관을 더는 두고 볼 수 없다. 이것이 인권 단체들이 ‘정치적으로 보이는’ 국정원의 일련의 행태에 분노하고 나선 이유다. 국민 앞에 비밀기관 필요 없다 국정원 국내 수사권 폐지하라 소위 내란음모 사건에서 국정원이 무차별적인 불법 도감청을 장기간 지속적으로 진행했음이 드러났다. 다수 시민이 이용하는 공중전화를 1년 넘게 감청했고 휴대전화를 감청했다는 언론 보도 내용은 충격적이다. 국정감사에 의하면 2005년 하반기부터 휴대전화 감청 건수는 0로 집계 되어왔다. 이런 마당에 국정원에 의한 지속적인 감청이 언론에 보도되고 있는 것을 볼 때 비밀정보기관에 의한 국민 감시는 비밀스럽고 은밀하게, 어떻게 이뤄지는지 조차 알 수 없이 광범위하게 진행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국회조차 알 수 없이, 국민을 대상으로 한 사찰과 감시행위가 국정원에 의해 이뤄지고 있다. 국민 앞에 비밀기관 필요 없다. 피의자들에 대한 인권침해 중단하라 소위 ‘내란음모’사건으로 인해 확인되지 않은 피의사실이 언론에 유포되고, 형이 확정될 때까지 무죄 추정 받을 권리는 무너졌다. 국정원에서 제공했음이 분명한 사실이 언론에 공개됨으로 사건 당사자들은 법정에 서기 전 여론재판의 희생양이 되었다. 가족들은 ‘간첩’가족이라는 혐오행동에 노출되었고 직장에서 쫓겨났다. 피의자들은 변호인 접견권이 침해되고 가족들의 접견이 제한되는 인권침해를 겪고 있다. 심지어 내란음모의 확실한 증거물이라는 ‘녹취록’조차 피의자들이 조사받는 과정에서 “언론에서 제공한 녹취록”이라 불리고 있다. 충격적 사건의 소문은 요란했지만 결론적으로 증거가 사라지고 있다. 소위 ‘내란음모’사건은 법정에서 다뤄질 일이지 여론의 재판위에 설 문제가 아니다. 그마저도 ‘내란음모’란 죄명이 법정에 마지막으로 등장한 것은 30년 전이란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양심과 사상의 자유, 저항의 권리가 더욱 확대되어야 한다. 분단체제와 빈곤의 양극화라는 양 날개는 한국사회를 살고 있는 시민들에게 천형의 무게다. 사회를 비판하는 모든 이들에게는 ‘종북’이라는 빨간 딱지가 붙는다. 해고와 빈곤으로 집을 잃고 직장을 빼앗긴 이들이 권리를 찾고 나서도 ‘종북’이라는 빨간 딱지가 붙는다. 자신의 생각과 존재를 드러내기 위한 사상과 생각, 양심의 자유는 위협받는다. 저항의 행동은 불순하게 치부된다. 이러한 사회에서는 평화와 통일을 위해 일할 수 없다. 이러한 사회에서는 자기 권리를 찾기 위해 권력과 자본에 저항할 수 없다. “책을 태우는 자는 인간을 태울 수 있다.”는 시인 하이네의 말을 기억해야 한다. 우리는 사람의 생각과 사상과 양심의 자유를 ‘종북’이라는 말로 가두는 사회를 우려한다. (소위 ‘종북’에 대한 혐오에는 두 가지 문제가 있다. 첫째, 북한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음으로써 그 사회에 대한 이해를 원천봉쇄한다는 점이다. 북한 인권을 이야기한다면 북한의 체제에 대해서도 이야기할 수 있다. 차라리 ‘북한’이 어떤 사회인지, ‘종북’이 무엇인지 터놓고 이야기한다면 ‘무작정 혐오’보다는 질적으로 나은 비판이 가능할 것이다. 둘째, 종북에 대한 혐오가 너무나 거대해서 모든 불편한 사상이 종북 담론으로 수렴된다는 점이다. 점점 더 많은 사람이 ‘종북’의 이름으로 차별받고 배제되며 소외될 것이다. 체제를 전복하겠다는 사상이 학문으로 자유롭게 연구되는 사회에서 유독 북한과 주체사상에 대한 금기가 사회를 혼돈에 빠뜨리고 있다. ‘종북’의 실질적 위험성보다 ‘종북’을 이용하여 사상과 저항의 권리를 원천 봉쇄하려는 사회가 더욱 위험하다. 지금 우리 사회가 그렇다. ‘종북’이라는 말이 모든 담론을 막고 마녀사냥의 칼이 되고 있다. 사람의 생각을 가둘 때 사회는 거대한 감옥이 됨을 잊어서는 안 된다. 저항을 꿈꾸고 말할 자유를 보장하는 사회가 민주주의 사회이다. 공포와 혐오행동이 중단되어야 한다. 매카시 시대는 공포스러웠다. 확인되지 않은 공산주의자의 유령이 미국사회를 지배했다. 지금 우리 사회가 그렇다. 의견이 다른 친구를 국정원에 신고하고, 대학 강단에서 강사도 신고당했다. 소위 ‘내란음모’ 사건의 가족들은 간첩가족이라는 혐오행동에 노출되고 있다. 매카시 시대에 동성애자들은 소위 ‘연분홍 공포’라 불리는 혐오에 인권침해를 당하게 된다. “동성애자들은 자신의 정체성이 드러날 것이 두려워 공산주의자들에게 쉽게 포섭된다.”는 논리로 수많은 동성애자들이 직장을 잃고 폭력을 당하는 것이 합리화되었다. 말도 안 되는 일들이 매카시 시대에는 가능했다. 다른 생각, 다른 존재, 이성과 합리의 소통이 불가능한 상황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우리는 지금 우리 사회를 휩쓰는 마녀사냥이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폭력으로 이어질 수 있음을 경고한다. 공포와 혐오행동은 한묶음이다. 그래서 지금 당장 비밀정보기관의 음모를 저지하지 않으면, 우리 사회에 민주주의와 인권은 사라질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다시금 요구한다. 지금 당장 비밀정보기관이 주도하는 공포와 혐오의 정치를 중단하라. 양심과 사상의 자유는 더 확대되어야 한다. 2013년 9월 30일 경계를 넘어,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다산인권센터, 동성애자인권연대, 문화연대, 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 민족민주열사희생자추모(기념)단체연대회의,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민주주의법학연구회, 불교인권위원회, 빈곤과차별에저항하는인권운동연대, 사회진보연대, 새사회연대, 서울인권영화제, 울산인권운동연대, 원불교인권위원회, 인권교육센터'들', 인권교육온다(준), 인권중심사람, 인권과평화를위한국제민주연대, 인권연구소창, 인권운동사랑방, 인천인권영화제, 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 장애물없는생활환경시민연대,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전북평화와인권연대, 제주평화인권센터, 지구지역행동네트워크, 진보네트워크센터, 천주교인권위원회,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 인권단체연석회의
추석 연휴 전후로, 현재 국정원 '내란음모' 사태에 관해 주변 지인들과 토론할 수 있는 이야깃거리를 담은 소책자를 pdf 편집본으로 발간하였습니다. <제목> 국정원 ‘내란음모’ 사태 토론을 위한 10문 10답 <발간일> 2013.9.16(월) <분량> A5 36쪽 <목차> 1. 국정원은 왜? 2. 내란음모가 무엇이기에? 3. 너도 종북이냐? 4. 분단 국가에서 국가보안법은 필요한 것 아냐? 5. 간첩 잡는 국가정보원은 필요한 것 아닌가? 6. '사상의 자유'는 인정한다 해도 폭력은 문제 아닌가? 7. 전쟁 위기는 솔직히 과장된 것 아닌가? 8. 진지하게 대응할 필요도 없는 것 아냐? 9. 공당이라면 헌법과 법률을 잘 지켜야 하는 것 아닌가? 10. 진보진영은 무엇을 해야 하나?
주어진 시간 안에 노동자운동의 주객관적 상태를 상세히 진단하기는 힘들 것이기 때문에, 현 정세에서 우리 운동의 이념노선과제를 둘러싸고 쟁점을 형성하는 세 가지 주제에 관해 초점을 맞춰보겠다. 첫째, 경제위기에 따른 동아시아한반도 정세의 변화 속에서 노동자운동의 민족주의적 대응을 비판하고 평화주의로서 국제주의를 이념적 대안으로 제시한다. 둘째, 경제위기와 정부의 노동유연화 정책 속에서 ‘노동시간 단축을 통한 일자리 나누기’나 ‘장시간 노동체제 근절’을 기조로 하는 노동자운동의 대응을 비판하고 노동자계급 내부의 격차를 축소할 수 있는 ‘연대임금’을 노선적 대안으로 제시한다. 셋째, 신임 민주노총 집행부가 제시한 당면 정치적조직적 과제로서 정치세력화와 전략조직화에 대해 제언한다. 그동안 사회진보연대가 여러 경로를 통해 제출해왔던 입장을 정세적으로 재구성해보겠다. 평화주의로서 국제주의 우리가 살고 있는 2010년대는 훗날 1930년대 대불황에 비견되는 대침체의 시기로 기록될 것이다. 2007-2009년 금융위기에 대응하는 미국의 ‘플랜 A’는 연방준비제도의 통화정책(제로금리정책수량완화정책오퍼레이션트위스트)과 재무부의 재정정책(부실자산구제계획적자재정정책)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정책 대응에도 불구하고 주택시장과 노동시장이 회복되지 않자 ‘플랜 B’가 적극 동원되고 있다. 그 핵심은 2011년 선언한 ‘태평양으로의 선회’에 따른 범태평양파트너십(TPP)과 아시아태평양자유무역협정(FTAAP) 구상이다. 오바마 정부는 TPP 협상을 2013년까지 완료하고 FTAAP 협상은 2010년대에 완료한다는 목표를 수립하고 있다. 이에 발맞추어 미국은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중국의 경제적 부상으로 인한 세력균형의 교란을 재조정하기 위해 동아시아에 대한 재관여재균형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중국북한이란 등이 ‘세계적 공유지’인 황해남중국해인도양페르시아만에서 미군의 작전을 방해한다는 인식에 따라, 미국 국방부는 육군공군 중심의 ‘지상공중전’에서 해군공군 중심의 ‘합동작전접근개념’, 즉 ‘해상공중전’ 개념을 제시했다. 여기서 북한의 핵무장은 미국에게 좋은 빌미가 되고 있는데, 미국은 역내 안정과 동맹국에 대한 안전 보장을 이유로 미일동맹과 한미동맹의 재편을 적극 추진하면서 한국과 일본을 미사일방어체계(MD)에 편입시키고 있다. 이는 중국과의 잠재적 갈등을 심화하고 북한의 핵무장을 또다시 심화하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지난 상반기 첨예하게 고조된 한반도 위기 국면에서 남한 노동자운동의 주류적 이념은 민족주의였다. 반제국주의민족자결민족공조에 입각한 북한의 선군정치핵자위론 옹호가 주류적 대응이었던 것이다. 이들은 북한의 핵미사일 능력 제고가 장기간에 걸친 북미 간 대결 구도에서 협상의 지렛대로 작용하여 결과적으로 평화협정 체결로 이어질 가능성을 기대하고 있다. 이것이 남한의 정치 상황에 대해 갖는 함의는 통합진보당의 자주적 민주정부론, 즉 야권연대를 통한 연립정부 구상이라고 할 수 있겠다. 2011-2012년 일련의 통합진보당 사태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사회진보연대는 당시 한미동맹의 대북 위협과 함께 북한의 핵무장과 이를 옹호하는 입장에 관해 다음과 같이 비판했다. 첫째, 미국의 대북전략이 교류를 통해 북한의 변화를 유도한다는 입장에서 제재를 통해 봉쇄를 유지한다는 입장으로 수렴한 상황에서, 현재와 같은 북한의 맞대응 전략은 미국의 추가적인 강압적군사적 대응 가능성을 높이는 반면 협상을 통한 조정의 가능성을 높이지는 않을 것이다. 둘째, 북한의 ‘벼랑끝 전술’은 역으로 미국의 핵위협의 정당성을 사후적으로 강화하는 데 기여할 뿐만 아니라 일본과 남한에게 핵군비 증강의 빌미를 제공하여 향후 계속해서 북한 스스로를 감당할 수 없는 군비경쟁의 딜레마로 몰아넣을 것이다. 셋째, 북한의 핵개발을 사실상 지지하거나 또는 북한의 핵개발이 주요한 비판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모순적이고 모호한 입장은 반핵·평화운동에 대한 대중의 불신을 조장한다. 넷째, 남한에서 북핵 억지력의 현실적 대안으로 한미동맹의 강화나 심지어 남한의 독자 핵무장 논리가 득세하고 있는 상황에서 남한의 사회운동이 ‘핵무기 반대’라는 평화주의의 이념적 기초를 확고히 하지 않을 경우 평화운동의 대중적 토대를 유실할 위험이 크다. 결론적으로, 우리는 북한의 핵무장에 대한 방어적수세적 관점을 전도하여 ‘한반도와 동아시아의 비핵화’를 일관되게 주장함으로써 미국의 핵 위협과 한미동맹의 확장억지 강화, 남한의 독자적 핵무장화 시도를 무력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일방적 군비축소’의 관점에서 장기적으로 핵우산 및 주둔 미군의 철수와 같은 군사동맹 폐기 또한 지향해야 한다. 그럼 이상의 정세적 비판을 이론적으로 보충해 보겠다. 레닌으로 대표되는 마르크스주의 전쟁론의 전통에서 전쟁은 혁명의 조건으로 사고되었다. ‘제국주의적 전쟁을 혁명적 내전으로 전화시키자’는 레닌의 구호는 제국주의적 전쟁을 계기로 출현하는 국가자본주의라는 경제적 토대와 대중민주주의라는 이데올로기적 반역의 해후를 통해 제국주의적 전쟁을 혁명적 내전으로 발전시킬 수 있다는 것이었다. 다시 말하면, 제국주의적 전쟁을 계기로 출현하는 국가자본주의적 경향이 프롤레타리아 독재의 경제적 토대가 되고, 제국주의적 전쟁에 연루되는 대중이 민족자결주의로서 국제주의를 포함하는 다양한 민주주의적 요구를 통해 이데올로기적 반역을 시도한다는 것이다. 이는 계급혁명과 민족해방의 결합을 의미한다. 그러나 이러한 레닌의 전쟁론은 냉전 속에서 그 한계를 드러낼 수밖에 없었다. 2차 대전의 종전이자 냉전의 시작을 알린 것은 미국의 대일 핵공격이었고, 뒤이은 냉전 하에서 핵무기를 비롯한 대량살상무기를 둘러싼 미소간의 군비 경쟁은 인류의 절멸을 예고하는 것이었다. 따라서 제국주의적 전쟁이라는 ‘불의의 전쟁’과 혁명적 내전이라는 ‘정의의 전쟁’을 구별하는 대신 평화라는 이상이념에 따라 ‘일방적 군비 축소’와 ‘군사동맹 폐기’라는 구호를 채택해야 한다. 이러한 적극적능동적 평화주의는 전쟁이라는 극단적 폭력에 대한 비판을 경제적 착취와 이데올로기적 억압이라는 구조적 폭력에 대한 비판과 결합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런 의미에서 새로운 국제주의는 민족자결이 아니라 평화주의이며 나아가 평화주의는 대안세계를 향한 가장 중요한 이념적 요소가 되는 것이다. 이제 ‘혁명의 조건으로서 전쟁’이라는 관점을 ‘평화의 조건으로서 혁명’이라는 관점으로 전도해야 한다. 이상 정치군사정세와 관련하여 평화주의의 관점에서 제기된 민족주의 비판을 확대해보겠다. 일반적으로 말해서 현 정세에서 민족주의 비판이 필요한 이유는 세계화와 그것의 위기에 대한 반동으로서 종족적 민족주의 또는 인종주의가 발호하기 때문이다. 가령 유럽에서는 현실사회주의의 붕괴와 함께 신자유주의적 반격 속에서 복지국가도 쇠퇴했다. 이로 인한 ‘사회적 권리’의 해체가 불평등과 배제의 심화로 이어지면서 대중적 불만이 고조되고 그것이 좌우를 막론한 기존 정치계급에 대한 불신으로 표현되고 있다. 특히 경제위기 하에서 배타적인 동일성의 감정이나 원한을 동원하는 극우 세력의 정치적 약진은 파시즘의 부활에 대한 우려까지 낳고 있는 실정이다. 그것의 가장 극단적인 사례로는 현재 그리스의 신나치주의 황금새벽당을 들 수 있다. 그럼 종족적 민족주의와 관련된 한국 사회의 두 가지 현실적 쟁점을 살펴보자. 첫 번째는 재외동포를 민족으로 간주하는 데서 드러나는 종족적 민족주의다. ‘동포’라는 표현에서도 드러나듯이 일상에서 통용되는 민족주의 관념은 실은 다분히 종족적인 관념을 내포한다. 본래 ‘동포’(同胞)란 ‘한 어머니의 소생’을 뜻하는 말로, 혈연의식과 민족공동체 의식을 강조한다. 통상적으로, 외국국적자(시민권자)에 다르지 않은 이들을 민족으로 부르는 반면 이주노동자를 민족으로 부르지는 않는다. 두 가지 사례를 들어보자. 2012년 총대선부터 재외국민(영주권자)에게 투표권이 부여된 반면 이주노동자들에게 영주권이나 투표권을 부여한다는 이야기를 우리는 들어본 적이 없다. 또 2011년 시행된 정부의 ‘재외동포 고충해소 프로그램’을 사례로 들어보면, 현재 국내에 거주하면서 F-4비자(재외동포비자) 자격이 없는 미등록 재외동포(대부분 중국동포)가 신청자격을 획득하게 되고 신청시 D-4비자(일반연수비자)를 받게 된다. 9개월 간 재외동포기술교육지원단에 의한 직업교육을 받고 나면 이들은 H-2비자(방문취업비자)로 비자를 바꿀 수 있게 되고 현재 방문취업제 하에서 재외동포들에게 개방되어 있는 36개 업종에서 4년 10개월 동안 합법적으로 일할 수 있게 된다. 이는 한편으로 ‘동포’에 대한 ‘편애’를 의미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중국동포’ 이주노동자를 비동포 이주노동자와 정주 시민(및 선진국 재외동포) 사이의 어딘가에 존재하는 이등 시민으로 고착화하는 결과를 낳을 것이다. 이러한 인종주의적 위계구조의 제도화는 노동자계급 사이의 분열을 심화한다. 결론적으로 우리가 민족이라는 개념을 사고한다면 과거지향적 측면보다도 미래지향적 측면을 강조해야 한다. 즉 민족이라 부를 수 있는 사람들은 바로 운명을 공유하는 사람들 또는 현재로서의 역사를 공유하고 있는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쉽게 말해서 이주노동자가 우리와 운명을 공유하고 현재로서 역사를 공유하는 시민이라면, ‘민족’인 것이다. 두 번째로 저출산고령화 대책으로서 출산장려 정책의 문제점을 지적해보겠다. 사실 종족적 민족주의의 핵심에는 확대된 가족으로서 종족이라는 관념이 있다. 따라서 페미니즘 관점에서의 가족 비판이 종족적 민족주의 비판에도 적합하다. 출산제한 또는 출산장려 같은 가족정책인구정책은 성욕과 재생산에 대한 여성의 권리를 가부장제적으로 통제한다. 저출산고령화로 인한 노동력 부족에 대해 정부는 각종 출산장려 정책을 수행하고 있다. 다시 말하면 정부가 은연중에 이주노동자나 혼혈에 대한 공포를 조장하는 셈이다. 민족주의인종주의의 부활에 대한 대안은 ‘또 다른 세계화’ 즉 대안세계화 또는 대안지역화일 수밖에 없다. 가령 유럽연합은 경제위기와 정치위기의 단계를 지나 제도위기로 진입하고 있다. 그리스를 비롯한 유럽연합의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신자유주의적 유럽의 제도적 기초를 변형하기 위한 경제정책과 세력관계의 역전이 필요하다. 비슷한 맥락에서, 남한의 수출-재벌 중심 세계화나 각종 자유무역협정에 대한 국제주의적 대안으로서 국가간 노동표준을 통일시키거나 상승시키기 위한 노동자 국제연대를 적극 고려해야 한다. 노동자계급 내부의 단결: 임금 격차 축소 박근혜 정부는 고용률 제고를 핵심 국정과제로 설정하고 있다. 생산가능인구 증가율 둔화가 가속화되고 고용률 상승이 제한적일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에서 장기적인 경제성장률 제고를 위해서는 노동생산성 향상이 매우 긴요한 정책과제이며, 따라서 장기적인 관점에서 노동시간 단축을 통해 일자리를 창출하고 생산성을 높여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장시간 노동체제 개선’을 위한 임금체계 및 교대제 개편과 여성의 일가정 양립을 위한 시간제 일자리 대책이 적극 제시되고 있다. 1998년 이후 정부의 노동유연화 정책이 고용량·고용형태의 유연화를 거쳐 임금 및 노동시간 유연화를 확대하는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조만간 노동시간 및 임금 유연화에 대한 비판적 분석을 실은 소책자를 발간할 예정인데, 그 내용을 바탕으로 설명해보겠다. 신보수주의가 직접적인 방식, 즉 대량실업을 통해 임금 및 고용의 유연성을 확보하자고 주장하는 데 반해 신자유주의는 간접적인 방식, 즉 ‘실업의 조직화’를 통해 임금 및 고용의 유연성을 확보하자고 주장한다. 임금 및 고용의 유연화를 위한 정책개혁의 실행가능성을 제고하기 위해 노동시간 단축을 통한 일자리 나누기, 효율성 임금, 노동연계복지(workfare)가 추진된다. 따라서 노동시간 단축을 통한 일자리 나누기는 ‘외부적수량적 노동유연화로서 정리해고’에 대한 대안으로서 ‘내부적기능적 유연화로서 비정규직화’를 포함한다. 어쨌든 ‘일자리 나누기’라는 개념 자체가 고용형태의 유연화와 함께 노동시간 및 임금의 유연화를 포함한다고 할 수 있다. 한국에서 신자유주의적 노동유연화는 경제위기외환위기의 충격을 배경으로 1998-2003년 정리해고제파견근로제변형근로제, 이름하여 ‘3제’의 도입으로 일단락되었다. 그 과정을 잠시 환기해보자. 1987년 노동자 대투쟁에 후속하는 1989년 노동법 개정 투쟁의 성과로 쟁취된 44시간 노동주에 반하여 자본가계급은 1990년대 정리해고제파견근로제변형근로제의 도입을 줄곧 요구했다. 민주노총은 1996-1997년 노동법 개악 총파업으로 3제의 도입을 얼마간 저지하지만, 1998년 노사정위원회에 참여하여 민주노총전교조공무원노조의 합법화 및 노조의 정치활동 보장과 3제를 교환했다. 그리고 2003년 노무현 정부에서 주5일 근무제에 따른 40시간 노동주가 도입되는 대신 변형근로제가 확대되었다. 최근 세계 금융위기경제위기 속에서 대량실업에 직면한 각국 정부는 고용 유지창출을 위한 각종 경기부양책과 노동유연화를 통한 ‘일자리 나누기’를 시도했다. 특히 유럽에서는 노사정협정 또는 노사협약을 통해 정부의 재정지원을 토대로 사측이 ‘고용안정’을 보장하는 대신 노조가 임금 동결삭감 같은 양보교섭을 수용하는 코포러티즘이 특징적이다. 경제위기에서 민주노총은 총고용 보장을 핵심목표로 설정하면서 노동시간 단축과 공공부문 고용창출에 덧붙여 고용안정특별법과 고용안정협약을 핵심 요구로 제기했다. 이 중에서 노동시간 단축은 경제위기에서 ‘일자리 나누기’라는 정세적 대안이자 ‘장시간 노동체제의 해체를 통한 국민병 치유’, ‘무제한적 노동을 넘어선 노동해방’, ‘질 좋은 노동시간을 통한 삶의 질 향상’을 위한 전략적 과제로 승격되는 듯 보인다. 먼저 ‘노동시간 단축을 통한 일자리 나누기’를 비판해보자. 1998-2003년 당시 민주노총의 요구가 법정노동시간 단축이었던 데 반해 현재의 요구가 실노동시간 단축이라는 차이가 있긴 하지만, 어쨌든 과거와 마찬가지로 노동시간 단축이 ‘일자리 창출’로 연결될 것이라는 부당전제를 깔고 있다. 그러나 노동시간 단축은 대개 노동강도 상승으로 대체되는데, 이때 그에 비례해서 임금이 증가하지 않으면 사실상 임금을 하락시키는 효과를 지닌다. 게다가 노동강도 상승에 비례해서 임금이 상승하더라도 노동시간 단축이 양적질적으로 고용 창출에 긍정적으로 기여한다는 보장도 없다. 좀 더 자세히 살펴보자. 첫째, 역사적으로도 1990년대 유럽(독일·프랑스)의 노동시간 단축 경험은 변형근로제를 동반한 노동주노동년 단축이 오히려 노동시간의 유연성을 확대했음을 보여준다. 둘째, 통계상으로도 노동시간 단축과 고용 창출의 인과관계를 입증하기는 어렵다. 만일 노동시간 단축과 고용 창출의 상관관계가 있다 하더라도 양적인 측면뿐만 아니라 질적인 측면이 주요하게 고려되어야 한다. 노동유연화의 결과 우리 사회에는 노동시장노동과정노동력재생산에서 공히 불안전이 확대되어 전반적인 고용의 질이 악화되었기 때문이다. 산업구조로 보면 ‘서비스화’가 진척되지만 1990년대 이후 고용 창출을 주도한 서비스업종은 음식료도소매숙박업과 같은 기술수준이 낮고 노동집약적인 산업으로서, 전체 서비스산업의 노동생산성은 여타 OECD 국가들과 비교할 때 최하위 수준이다. 정부 당국의 입장에서 보더라도, ‘양질의 일자리’ 창출 부진이 지속되면 취업자수 증가가 임금에 미치는 영향이 더욱 줄어들고 고용창출이 임금상승으로 이어지지 않기 때문에 문제다. 고용창출로 인한 실질구매력 증대효과가 크지 않아 고용창출이 내수진작을 통해 경제성장으로 이어지는 선순환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기 때문이다. 셋째, 현실적으로도 ‘법정근로시간단축으로 실노동시간이 감소하고 시간당 임금이 증가하였다’는 긍정적인 통계 지표의 이면에서 세계 최고 수준의 저임금 노동자 비율과 장시간 노동 관행이라는 부정적인 현상이 공존한다. 법정근로시간단축은 초과노동 사용을 억제할 유인을 제공하는 방식으로 실노동시간 단축이라는 목표를 달성하고자 했다. 그런데 노동력 가치로 지불되는 임금은 주어진 임금제도 내에서 노사간 교섭(력)에 의해 결정되고 임금체계에 따라 변동한다. 현실에서 사용자는 초과노동을 이용하더라도 총액급여 수준을 유지하기 위해 시간당 정액급여를 낮게 조정하여 지불하고, 또한 준고용비용이 높은 노동자의 초과노동을 이용함으로써 추가고용으로 발생할 수 있는 노동비용 증대를 방지하려고 한다. 다시 말해 고용된 노동자들의 초과노동에 대한 수요를 증가시켜 신규고용과의 대체를 억제하는 것이다. 특히 제조업의 경우 임금총액 대비 현저하게 낮은 기본급 수준이 초과노동의 결정적 유인이 되고 있다. 다음으로 ‘장시간 노동체제 근절’이라는 기조를 비판해보자. 민주노총은 장시간 노동의 원인을 분석함에 있어 ‘노동거부’나 ‘일중독 비판’과 같은 아나키즘 또는 문화주의를 하나의 이론적 원천으로 삼고 있다. 이상은 그 실행 방안이 묘연하다는 점을 차치하고서라도, 장시간 노동체제의 책임을 정규직 노동자의 고용안정이나 임금보전 욕구로 인식한다는 점에서 노동자계급의 분할을 조장하거나 노동자운동을 공격하는 수단이 될 수 있다. 금속노조에서는 노동시간계좌제와 같은 수단을 고용조정의 유력한 대안으로 소개한 적도 있는데, 독일의 사례에서 노동시간계좌제는 ‘외부적’ 유연화의 비용을 절감하기 위해 국가와 자본이 선택하는 ‘내부적’ 유연화 기제로서 물량 변동에 따른 노동시간의 유연성을 극대화하여 집단 노동자의 개별화를 야기한다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그러나 ‘장시간 노동체제’의 진정한 원인을 규명하기 위해서는 ▲저임금→장시간고강도 노동의 악순환을 특징으로 하는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의 보편성, 즉 절대적 잉여가치의 생산과 상대적 잉여가치의 생산을 결합하는 임금률의 작용에 대한 분석과 함께 ▲세계시장에서의 경쟁 압력 속에서 수출-재벌 중심의 세계화를 특징으로 하는 남한 자본주의의 특수성, 즉 노동력의 평가절하를 통한 수출경쟁력 확보 전략과 재벌을 정점으로 하는 수직적 하청계열화에 대한 분석이 결합되어야 한다. 아래에서는 마르크스의 임금론노조론과 남한의 수출-재벌 중심의 세계화에 대해 이론적으로 설명해 보겠다. 먼저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의 보편성으로서 저임금장시간고강도 노동의 메커니즘에 대해 설명해보자. 임금노동자에 의해 창출된 잉여가치를 자본가가 영유하는 착취의 메커니즘에 기초한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에서 생산의 동기는 자본가의 무한한 이윤 증식 욕구에 있다. 따라서 자본가는 이윤의 원천인 잉여가치, 즉 부불노동시간의 생산을 위해 ▲자본주의적 생산관계를 토대로 노동년·노동일을 연장하거나 노동자수를 증가시킴으로써 부가가치를 증가시켜 잉여가치를 증가시키는 ‘절대적 잉여가치 생산 방법’과 ▲자본주의적 생산력을 토대로 노동력가치를 감소시킴으로써 잉여가치를 증가시키는 ‘상대적 잉여가치 생산 방법’을 결합한다. 전자가 노동시간의 ‘외연적 연장’이라면 후자는 노동시간의 ‘내포적 연장’이라고 할 수 있다. 실제로 노동시간 단축에 관한 논의는 노동생산성과 노동강도에 대한 논의와 결합되지 않으면 공허할 뿐이다. 생산과정의 기계화와 자동화, 그리고 노동력 활용방법의 끊임없는 ‘합리화’는 노동강도 강화, 마르크스식으로 말해서 노동시간의 ‘내포적 연장’에 크게 기여했다. 테일러주의에서 최근의 도요타주의에 이르기까지 노동자의 자연시간에 대한 기계들의 전체주의적 지배는 산 노동의 ‘죽은’ 시간을 지속적으로 제거해온 과정이기도 했다. 특히 2차 대전 이후 고정자본의 엄청난 증가는 노동강도를 비례적으로 상승시켰다. 또한 1980년대 이후 기업들이 생산 증대보다 생산성 및 노동강도 증가를 목표로 두게 되면서 ‘노동절약’ 기술들에 대한 투자가 광범위하게 확산되었다. 방금 이야기를 좀 더 일반적으로 말해보겠다. 자본주의적 생산력의 발전은 노동을 절약하고 자본을 소비하는 편향적 기술진보에 의해 이루어진다. 그런데 노동을 절약하는 대신 고정자본을 소비하는 편향적 기술진보에 따라 자본생산성이 하락하는 것은 자본주의적 축적의 보편적 법칙이므로, 이에 대한 반작용을 조직하는 것이 바로 고정자본의 소비를 효율화하는 현대적인 ‘관리자 혁명’이다. 이는 곧 노동강도를 강화함으로써 고정자본의 소비를 효율화하는 방법으로서, 노동강도의 강화를 통해서 상대적 잉여가치의 생산과 절대적 잉여가치의 생산이 결합된다. 상대적 잉여가치의 생산을 절대적 잉여가치의 생산과 통일시키는 경제적 방법이 바로 기계제대공업이 발명하는 새로운 임금지불 방법으로서 시간급과 (시간급을 변형한) 성과급이다. 시간급 체계에서 자본가는 직접적으로는 표준시간급 하방 압력을 통해서, 간접적으로는 노동자간 경쟁, 즉 취업자와 실업자간 경쟁을 활용해서 생계유지를 위해 일정한 임금을 수취해야 하는 노동자로 하여금 장시간 노동을 강제한다. 시간급은 잔업과 특근 같은 초과노동이나 교대제를 통한 노동자 수의 증가를 통해서 노동시간을 외연적으로 연장한다. 성과급 체계에서 자본가는 직접적으로는 표준성과급 하방 압력을 통해서, 간접적으로는 노동자간 경쟁, 즉 취업자간 경쟁을 활용해서 생계유지를 위해 일정한 임금을 수취해야 하는 노동자로 하여금 고강도 노동을 강제한다. 성과급은 노동강도의 상승을 통해서 노동시간을 내포적으로 연장하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은 저임금장시간고강도 노동의 악순환을 본질로 한다. 이상 마르크스의 임금론은 곧 노조론으로 연결되는데 이에 대해서는 뒤에서 다시 설명하겠다. 다음으로 남한 자본주의의 특수성으로서 저임금장시간고강도 노동의 메커니즘에 대해 설명해보자. 1997-1998년 위기는 1990년대 재벌의 과잉 중복 투자가 야기한 이윤율 급락에 따른 경제위기와 외환위기가 결합된 결과였다. 위기 이후 한국경제의 자본축적률은 과거 수준을 회복하지 못하고 매우 낮은 수준에서 지속되고 있다. 이윤율 하락이라는 요인 외에도 ▲해외 직접투자와 같은 자본 이동 ▲실물자산이 아닌 금융자산 위주의 투자행태 ▲기업결합(M&A) 중심의 투자행태 ▲1997년 이후 급격히 증가한 배당금의 증가와 같은 주주가치 극대화를 위한 경영행태 ▲경제의 불안정성 증가에 따른 실물투자의 기피 현상 등이 실물투자를 구조적으로 위축시키는 주요한 원인으로 지목된다. 자본축적률의 하락은 구조적 실업을 낳고, 이는 다시 노동의 교섭력을 약화시켜 노동소득분배율을 악화시키고 불안전 노동을 확산한다. 한국 경제는 금융자유화를 통해 국외로부터 막대한 자본을 수입하게 되었지만, 이는 한편으로 초민족자본에 의한 국민경제의 지배 및 국부유출이라는 문제와 다른 한편으로 국내자본의 해외도피라는 문제를 낳았다. 또 구조조정과 평가절하를 통해 한국경제는 수출경쟁력을 회복하여 막대한 무역흑자를 축적할 수 있었지만 이는 수출-재벌 중심의 경제 구조를 강화했다. 평가절하를 통해 재벌의 수출경쟁력을 확보하는 데에는 일정한 한계가 있으므로 정부는 자유무역협정(FTA)을 추진했다. 같은 맥락에서 한국경제가 성장과 고용창출력이 저하된 가운데 높은 대외의존도로 외부충격에 취약한 구조적 문제점을 지니고 있다는 이유로 서비스산업 개방 및 선진화를 추진했다. 결국 지배계급의 입장은 ‘소규모 개방경제’로서 한국경제의 유일한 활로가 수출-재벌 중심의 세계화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한국의 수출경쟁력은 여전히 기술경쟁력보다 저임금 기반 가격경쟁력에 의존하고 있는 형편이다. 수출경쟁요인 분석 결과, 한국은 아직 세계 시장에서 확실하게 품질경쟁을 하는 품목의 비중이 높지 않은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즉, 세계시장에서 아직까지 확실하게 품질의 우위를 점하지 못하고 치열하게 경쟁국 상품과 경쟁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다시 말해 한국의 제조업은 여전히 범용기술에 바탕을 두고 있기 때문에 중국 등 후발개도국의 추격에 취약한 동시에 선진국과의 기술격차도 여전히 존재하여 신흥개도국과 선진국 사이에서 점차 수출경쟁력을 잃을 수 있다는 ‘샌드위치론’ 또는 ‘넛 크래커(nut-cracker)론’이 틈만 나면 제기되고 있는 형편이다. 대내적 측면에서는, 1997-1998년 위기를 계기로 구조조정을 단행한 수출-재벌이 가격경쟁력 확보를 위해 위계적 하청계열화 체제를 구축했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대표적으로 한국의 자동차 가치사슬에서는 내부생산을 축소외부화하고 연구개발기획과 판매마케팅 부문을 강화하는 완성차기업을 정점으로, 중간관리 모듈기업(생산관리기업, 하위모듈기업)과 하위부품기업(전문부품기업, 하위납품기업)이 중층적이면서도 종속적인 위계관계로 연결되는 가치사슬구조가 구축되었다. 이러한 ‘종속적 모듈 가치사슬’에서 완성차기업은 생산을 축소외부화함에도 불구하고 하위부품기업들에 대한 지배와 통제를 유지한다. 기업 위계의 상위로 잉여가치 이전이 강조되는 이러한 구조 하에서는 기업 간 긴밀한 신뢰구축을 통한 동반발전효과는 줄어들고 일방적인 수익이전과 비용전가 구조만이 강화된다. 산업의 성과가 산업 전반으로 확산되고 공유되는 것이 아니라, 가치사슬의 상위위계로만 집중되고 위계의 하위로 갈수록 그 조건이 열악해지는 구조가 형성된 것이다. 이러한 구조에서 원청 대자본의 부담 전가, 특히 경제위기 시기의 부담 전가 경로는 크게 두 가지가 있다. 첫 번째는 기업 내 부담 전가 경로로서 1차 사내하청 노동(고용)에서부터 시작해서 원청 대자본의 정규직 노동(임금)으로 이어진다. 이 경우에는 1차적으로 대공장내 사내하청 노동에 대해서는 고용을, 정규직 노동에게는 임금을 매개로 부담 전가가 이루어진다. 두 번째 경로는 기업 외부, 즉 외주 하청구조를 통해 부담을 전가하는 구조로서, 이를 구현하는 수단은 물량과 단가다. 물량과 단가 삭감을 통해 외주 하청에게 부담이 전가되고, 이는 또다시 외주하청 업체 내 파견사업체 및 간접고용 비정규 노동에게 전가되는 것이다. 특히 최근 경제위기는 시장의 불확실성을 임시직의 고용과 노동시간의 변동을 통해 흡수하는 양상을 보였는데, 특히 초과노동시간의 증감에 따른 소득 증감이 노동소득분배율의 악화에 기여한 것으로 나타난다. 이상의 이야기를 정리해보자. 이윤율 하락에 따른 위기는 자본의 과잉과 노동의 과잉, 즉 자본의 금융화와 노동의 불안전화로 전개된다. 1997-1998년 위기 이후 한국경제는 이윤율 하락→자본축적률 저하→구조적 실업률의 상승→(교섭력의 약화)→노동소득분배율의 악화가 관찰된다. 1998-2003년 ‘3제’의 도입을 통한 노동유연화는 노동시간 및 임금의 개별화로 귀결되었다. 이러한 노동의 위기 속에서 무엇보다도 노동자계급 내부 격차가 확대되면서 노동조합의 대표성이 취약해지고 있다. 따라서 원하청노동자간 경쟁, 나아가 정규직과 비정규직간 경쟁을 특징짓는 임금 격차를 축소하는 연대임금이 대안적 사고의 출발점이 될 수 있다. 작년에 ‘경제민주화’에 대한 노동자적 대안을 ‘재벌체제에 대한 노동자 단결’이라는 프레임으로 전환할 것을 주장하였듯이, ‘장시간 노동체제’에 대한 노동자적 대안을 ‘정액임금 인상을 통한 노동자 단결’ 프레임으로 전환하자는 것이다. 이 대목에서, 앞서 잠시 뒤로 미뤄뒀던 노동조합의 의의를 확인할 필요가 있다. 노동자들은 저임금장시간고강도 노동이라는 자본의 전제적 침략을 막고 자신의 노동력 가치를 유지하기 위해 노동조합을 결성하여 임금 인상, 노동일 단축, 노동조건 개선 투쟁과 같은 경제투쟁(방어적 계급투쟁)을 펼치게 된다. 노동자-자본가 간의 임금투쟁이라는 일종의 ‘관습’ 또는 노동조합이라고 하는 계급투쟁의 역사적 제도가 임금을 결정한다. 역사적으로 볼 때, 노동생산성의 상승을 보상할 것을 요구하는 노조의 경제투쟁에 따라 임금률이 비례적으로 상승한다. 이런 의미에서 노동조합은 자본주의적 착취에 저항하는 노동자계급의 가장 기본적인 조직형태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동시에 이를 역으로 생각해보면 경제투쟁의 최선의 결과는 현상 유지일 따름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마르크스가 강조하듯이 경제투쟁은 임금제도라는 원인이 아니라 그 결과에 대한 투쟁이기 때문에 노조가 자신의 조직된 힘을 노동자계급의 최종적 해방, 즉 임금제도의 궁극적 폐지를 위한 지렛대로 이용하지 않는다면 총체적으로 실패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같은 맥락에서 ‘노동자들의 투쟁의 진정한 결과는 [임금률의 인상이라는] 직접적 성과가 아니라 점차 확대되는 그들의 단결이다’라는 『공산주의자 선언』의 문구를 상기할 수 있다. 즉 노동조합은 노동자계급의 완전한 해방을 위해 자신의 조직된 힘을 바탕으로 노동자계급의 통일을 추구함으로써 임금노동 제도를 철폐하기 위한 사회·정치 운동으로 발전해야 한다. 멀게는 1960년대 말-1970년대 초 이탈리아 평의회노조 운동의 전통에서 나타나고, 가깝게는 1980년대 말-1990년대 초 한국 전노협 운동의 전통에서 나타났던 연대임금 또는 정액임금 인상 운동은 노동자계급 내부의 격차 축소와 단결을 위한 첫 걸음이라 할 수 있다. 어쨌든 현재 논의 지형이 ‘장시간 노동’을 중심으로 형성되어 있다는 점을 감안할 때 당면 과제는 다음과 같다. 원론적으로는 노동시간 및 임금 유연화를 동반하지 않는 법정 노동일 단축이 대안이겠지만, 현재의 계급역관계를 고려할 때 이는 불가능하다. 일단 논리적으로는 ‘노동시간 단축 시 임금 삭감, 노동강도 강화, 노동시간 유연화를 동반하지 않아야 한다’는 기조로 대응해야 한다. 과거의 사례나 지금의 역관계를 감안할 때, 민주노총이 노동시간 단축 그 자체를 궁극적 목표로 상정할 경우 정부와 자본이 의도하는 노동유연화 기제와 맞바꾸는 식으로 귀결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을 고려한 논리다. 현실적으로는 정부의 유연근무제 확대 방안, 즉 ‘탄력적 근로시간제’와 ‘시간제 일자리’ 확대를 비판하는 투쟁을 펼쳐야 한다. 이 과정에서 근로시간특례제도 폐지, 포괄임금제 금지 등 법제도적 개선을 요구하고, 미시적으로는 교대제 개편 방안에 관해 구체적인 대안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끝으로, 임금 유연화 대응 기조를 확인할 필요가 있다. 앞서 마르크스의 임금론-노조론에 대한 이해를 전제한다면, 임금을 결정하는 것은 결국 노사간의 역관계 또는 노동조합이라는 제도라고 할 수 있다. 케인즈의 경우 이렇게 임금이 제도적으로 결정되는 것을 ‘경직성’이라고 부르는데, 임금의 경직성을 상징하는 것이 바로 연공서열급이다. 연공서열을 포함해서 임금이 경직적일 수밖에 없는 이유는, 노동생산성이 개별노동자가 아니라 집단노동자의 노동생산성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노동조합의 경제투쟁의 성과로 노동생산성의 상승에 비례해서 임금이 상승하는 ‘생산성임금’이 실현되고 임금분배율이 일정하게 유지된다. 이러한 생산성임금을 역전시키는 것이 바로 효율성임금으로서, 이는 임금의 개별화를 통해서 노동자간 경쟁을 격화시키고 개별화된 노동생산성을 상승시키려는 의도를 지닌다. 아직 생산직에서는 연봉제가 도입되지 않았지만 언제라도 그럴 가능성이 있다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그럴 경우 일단 연공서열을 비롯한 경직성을 유지할 필요가 있는데, 비정규직이나 실업자의 문제를 고려하여 정규직과 비정규직 또는 취업자와 실업자의 격차를 축소할 수 있는 연대임금을 고려해야 한다. 민주노총 정치적조직적 과제 우여곡절 끝에 지난 7월 취임한 민주노총 신임 집행부가 노동자운동이 처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두 가지 방안으로 연합정당론과 전략조직화를 제시하고 있다. 둘 다 민주노총이 풀어야 할 중차대한 과제이므로 아래에서는 몇 가지 쟁점을 제기하고 대안을 제시하고자 한다. 정치세력화 민주노총 신임 집행부는 ‘진보정당의 분열로 인한 갈등이 첨예화돼 어느 당을 지지하느냐에 따라 공조직 전체가 흔들리고 있다’는 인식 하에 ‘분열된 진보정당을 민주노총을 중심으로 한 연합정당으로 재편한다’는 방안을 제시하고 있다. 이러한 연합정당론은 노동정치연석회의의 진보정당연합 주장과 일맥상통하는 것으로 보인다. 연석회의는 ‘자신의 조직적 정치적 독자성을 존중하면서 재편과 재정립의 방향을 모색한다’는 맥락에서 정당연합 또는 정치연합 방안을 제기하고 있다(“기존의 진보정의당, 진보신당[노동당], 녹색당, 노동 추진기구 등의 독자성을 인정하고 그 조직들의 협의로 연합정당을 운영하자”). 이들은 현재 서구에서 나타나는 좌파정당 통합 흐름, 특히 그리스의 급진좌파연합이나 프랑스의 좌파전선의 사례를 모델로 삼는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그리스와 프랑스 좌파의 사례에서 정당연합과 선거연합의 성공은 경제위기 하 대중운동의 분출과 기존 정당의 위기라는 정세의 산물로 보아야 한다. 정당연합과 선거연합 문제는 하나의 필요조건일 수는 있어도 충분조건일 수는 없다. 게다가 국외 사례를 국내에서 참고하기 위해서는 제도의 차이와 복잡성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는데, 진보연합정당 구상에서 한국의 선거법과 정당법 상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현행 선거법과 정당법이 이중당적을 금지한다는 점이다. 그러면 연합정당이 선택할 수 있는 경우의 수는 정당법상 효력을 가지는 연합정당의 경우(정당연합)와 정당법상의 효력이 없는 경우(정치연합)일 것이다. 이러한 법제도적 고려 외에도 그것을 현실화하는 과정에서 제휴 대상의 범위, 선거구/후보 조정 등을 둘러싼 진통이 예상된다. 어쨌든 정당의 분열이 민주노총의 분열로 연결되어서는 안 되며 현존하는 진보정당이나 당면한 선거에 대한 민주노총의 정치방침도 필요하다는 점에서 연합정당론의 의의를 확인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07-2012년 민주노동당의 분열과 해체가 정치세력화 운동의 한 순환이 극적으로 종료되는 과정이었다는 점에서 보다 긴 호흡과 큰 틀에서 평가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분단과 냉전으로 인한 반공발전주의 속에서 지속적으로 억압된 남한 노동자운동은 1970년 전태일 열사의 항거 이후 민주노조운동의 맹아기와 1980년 광주민중항쟁 이후 정파운동의 각성기를 거쳐 1985년 구로동맹파업과 1987-1989년 노동자대투쟁으로 발전, 1990년 전노협의 결성으로 결실을 맺는다. 그러나 동시에 1989-1991년 현실사회주의의 붕괴로 인한 이념의 혼란 속에서, 1991-1992년 합법정당 결성을 주장하는 신노선이 제기된다. 이와 동시에 ‘노동운동 위기론’을 기화로 진보적 조합주의가 제기되었고, 1993년 전노대가 결성되면서 전노협이 상대화된다. 결국 ‘국민과 함께 하는 노동운동’을 모토로 1995년 민주노총이 출범한다. 민주노총은 1996-1997년 총파업을 통해 노동법 개악을 얼마간 저지하는 데 성공하지만, 외환위기경제위기 속에서 1998년 사회적 합의를 통해 3제를 수용한다. 1990년대 노동자운동의 수세적 대응 속에서 출범한 민주노총이 출범하자마자 위기에 빠졌다고 말할 수 있다. 한편, 1990년대 초반 진보정당 건설 운동을 주도하던 정파들의 영향력은 1996년 총선 이후 크게 약화된 상태였다. 그런데 1996-1997년 총파업의 한계를 ‘국회의원의 부재’에서 찾은 민주노총이 1997년 대선 대응 이후 조직적 결의로 정치세력화를 추진하였고, 그 결과 2000년 민주노총이라는 대중적 토대 위에 정파들이 연합하는 형태로 민주노동당이 결성되었다. 따라서 민주노동당의 이념적 지향과 운동적 활력은 상당 부분 민주노총의 그것과 직결되는 문제였다고 할 수 있다. 이미 만성적인 무기력 상태에 빠져있던 민주노총과 대조적으로 민주노동당은 2004년 의회에서 약진하였고. 급작스러운 성공의 이면에서 선거정치와 집권을 강조하는 수권정당론과 함께 민주노총으로부터 자립화하려는 ‘탈 민주노총’ 경향이 대두하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당직공직 선출을 둘러싼 정파간 갈등이 격화되었고, 결국 2007년 대선 패배를 계기로 분열했다. 대선 직후 ‘평등파’는 ‘자주파’의 ‘종북주의’와 ‘패권주의’를 비판했다. 그러나 종북주의가 대선 패배 요인이라는 평등파의 주장은 오류로 볼 수밖에 없는데, 반공반북주의에 편승한 것일 뿐만 아니라 자주파의 민족주의가 노동자 국제주의나 평화주의에 장애가 된다는 것을 적합하게 비판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또한 패권주의라는 비판 역시 일면적인데, 다수파의 당직공직 독점의 근본적 원인은 수권정당이라는 민주노동당의 정체성에 있기 때문이다. 평등파 일부의 ‘탈 민주노총’ 주장도 수권정당 지향의 반영이라고 볼 수 있다. 분당 과정에서 ‘탈 민주노총’이 아니라 민주노총의 사회운동적 노조로의 혁신이라는 쟁점, 수권정당이 아니라 민주노동당의 사회운동적 정당으로의 혁신이라는 쟁점은 토론되지 못했다. 민주노동당을 장악한 민족해방 계열은 ‘자주적 민주정부론’에 입각하여 2011년 당 강령을 ‘사회주의적 이상과 원칙’에서 ‘진보적 민주주의’로 교체한 뒤 국민참여당진보신당탈당파와 통합진보당을 결성하고 2012년 총선에서 민주당과 전면 제휴했다. 그러나 총선에서 공직 선출을 둘러싼 부정부패와 정파간 갈등으로 심각한 내홍을 경험한 뒤 다시 통합진보당과 진보정의당으로 분열했다. 통합진보당 당권파는 노동자운동의 이념을 대폭 우경화하고 도덕적 정당성에 치명타를 가했다는 점에서 엄중한 비판을 받아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통합진보당은 2012년의 위기를 정파 생존의 위기로 인식하며 권토중래를 노리고 있다. 이들은 ‘진보적 민주주의’ 노선을 재확인하고 2017년 집권을 목표로 설정하고 민주당과의 정치적 제휴와 대중조직의 장악을 추진하고 있다. 통합진보당에서 탈당한 국민참여당·진보신당탈당파·민족해방 계열 일부는 (진보)정의당을 결성하여 중도로 변모하는 중이다. 2007-2012년 민주노동당 분열 이후 통합진보당 사태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이 과정에서 민주노총의 지도력이 붕괴하는 상황으로 치닫기까지, 사회진보연대를 포함하여 정당과 노조 내외부의 민중운동 좌파 세력은 정세에 개입할 몇 번의 계기가 있었지만, 원칙적 태도로 정세적 입장을 환원하여 소극적으로 대응하거나 또는 정세적 개입을 시도하더라도 그 실력 부족으로 인해 상황을 반전시키는 데 실패했다. 2012년 대선은 민주노총을 포함한 민중운동 진영이 독자적이면서 통합적인 기획을 통해 대선 이후 질서재편을 위한 합의를 확보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였지만 민주노총의 부동주의와 좌파 세력의 의지주의로 인해 끝내 공동 대응이 무산되었다. 요컨대, 2007-2012년 민주노동당의 분열과 해체로 1990년대 이후 정치적 노동자운동의 진보정당 결성 시도와 사회경제적 노동자운동의 정치세력화 시도 모두가 하나의 순환을 마감했다고 볼 수 있다. 정치세력화의 실패로 인해 2000년대 들어 만성화된 민주노총의 위기가 한층 심화하고 있다. 정당/정파간 갈등이 대중조직의 통합력을 저해하고 진보정당에 대한 현장의 냉소와 불신이 증폭된 상황에서 단기적 실리주의에 따라 야권연대가 자연스러운 관행으로 정착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정당/정파의 통합을 통해 민주노총의 갈등을 감축하자는 주장이 제기될 수 있는데, 이는 결과에 대한 처방일 수는 있어도 원인에 대한 처방은 아니다. 노동자운동의 새로운 순환을 준비한다는 각오로 노동조합 활동가든 정당 활동가든 ‘의식적으로’ 노동조합의 이념의 복구와 조직의 재건을 위해 노력할 필요가 있다. 민주노총은 정치세력화 실패의 요인에 대해 보다 근본적이고 내부적인 성찰을 해야 한다. 우리는 현실에서 진보정당/노동자정당의 필요성을 부인하지 않으며 또 그것을 추진하는 세력에 대해서도 개방적이고 연대하는 자세를 취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주노총이 현재 주력해야 할 것은 단기적인 선거 대응을 위한 정당/정파들 간의 조정이 아니라 민주노조 운동 자체의 재활성화라는 점을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조금 다른 맥락이지만, 1980년대 사회운동노조주의의 사례로서 전노협과 함께 주목의 대상이 되었던 브라질과 남아공 노총의 정치세력화가 집권 이후 코포러티즘으로 변질된 것도 반면교사로 삼을 필요가 있다. 전략조직화 계급대표성의 위기는 지난 수년간 반복적으로 제기되는 문제다. 계급대표성의 위기에 대한 진단은 민주노조 운동의 조직적 기초가 상대적 고임금을 받는 재벌 및 공공부문 대규모 사업장, 정규직, 남성 노동자로 이루어져 있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한다. 따라서 중소영세사업장이나 서비스부문의 저임금, 비정규직, 여성 노동자를 조직하는 것이 주요 과제로 제기되어 왔다. 현재 신임 집행부는 3기 전략조직화의 방향과 관련하여 주로 기금 마련 방안을 고민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나 전략조직화라는 표현에서 드러나는 것처럼, 민주노총은 계급대표성의 위기를 조직화 사업으로 돌파하고자 시도했고 이는 민주노총의 강화발전에 직결되는 문제이므로 좀 더 폭넓은 시각에서 이후 방향을 고민할 필요가 있다. 한국의 노조 조직률은 한국노총을 포함하더라도 10%에 미달한다. 낮은 노조 조직률에는 여러 제도적 요인이 있겠지만, 노동력의 평가절하에 기초한 수출경쟁력 확보를 성장 전략으로 추구하는 남한 자본주의의 특수성이야말로 노조 조직화와 투쟁을 억압하는 핵심 요인이다. (그동안 독일과 같은 중상주의적 ‘제국주의’에서 제도화된 코포러티즘을 도입하려는 시도가 많았는데, 그것이 왜 남한에서 불가능했는지를 이런 맥락에서 반추할 필요가 있다.) 단적으로 한국의 주력 수출산업인 자동차전자철강조선 등 업종에서 자동차를 제외하면 사실상 재벌대기업을 정점으로 하는 업종 전체의 무노조 정책이 관철되고 있다. 그러다보니 최근 수년간 전략조직화의 성과는 주로 (공공)서비스 부문에 집중되었다. 이런 사정을 염두에 두면서 국내에서 전략조직화의 사례로 많은 참고점이 된 미국노총의 시도를 살펴보며 몇 가지 시사점을 도출해 보겠다. 1970년대 구조적 위기 이후 금융세계화노동유연화에 따라 생산성임금이 보장되지 않으면서 미국노총은 생산적 산업노동자의 조직화에서 비생산적 서비스노동자의 조직화로의 전환을 시도했다. 그 결과 전통적인 자동차노조철강노조광산노조통신노조 대신 서비스노조교사노조공무원노조가 새로운 핵심 노조로 부상했다. 산업노동자와 서비스노동자의 차이는 생산적 노동자인가 아닌가라는 측면 외에도 금융세계화의 영향을 받는가 아닌가라는 측면에 있다. 제조업은 무노조저임금의 외국으로 이동한 반면 서비스부문은 ‘육봉’(陸封, landlocked)되어 있다. 서비스부문 노조가 단체협상에서 일정한 전투성을 발휘할 수 있었던 것은 이런 특징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1995년 서비스노조(SEIU) 위원장 출신인 스위니가 위원장으로 선출되면서 ‘사회운동노조’로의 전환을 시도한다. 이는 직능이나 산업을 불문하고 미조직노동자를 조직하는 동시에 다양한 노조를 흡수통합하여 거대노조를 형성하는 것을 주로 의미했다. 그러나 서비스노동자의 일반노조 조직화가 미국노총의 오랜 ‘전통’인 비즈니스노조의 청산을 의미한 것은 아니었다. 2005년 미국노총이 서비스노조가 중심이 된 승리를위한변화(CtW)라는 제2노총(위원장 스턴)과 분열했다. 당시 스위니에 대한 스턴의 비판의 핵심은 민주당에 대한 지원을 줄이고 대신 일반노조에 대한 지원을 늘리자는 것이었다. 노총이 분할된 결과 제1노총(AFL-CIO)과 제2노총(CtW) 사이에 일정한 산업부문적인 분할이 존재하게 되었다. 생산 및 분배수단에 기초하지 않는 노동자운동이 힘을 가질 수는 없다. 제2노총 소속 SEIU는 ‘관료적 비즈니스노조주의’와 ‘민주적 사회운동노조주의’와 구별되는 ‘관료적 법인기업노조주의’(corporate union)의 특성이 두드러진다. 결론적으로 미국노총의 사회운동노조 개혁 시도는 실패로 귀결되었다. 비즈니스노조의 청산과 사회운동노조로의 쇄신은 사실 조직이 아니라 이념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민주노총이 차기 전략조직화 사업을 구상함에 있어서 두 가지 요소가 고려되어야 한다. 우선 조직화 대상의 변경이 필요하고 다음으로 조직화의 목표에 대한 점검이 필요하다. 전자와 관련하여 특히 금융세계화와 수출-재벌 체제의 핵심고리를 타격할 수 있는 업종 및 공단 조직화가 적극 고려되어야 한다. 후자와 관련하여 맹목적이고 성과중심적인 조직화를 지양하고 노동자를 운동의 주체로 형성하기 위한 다양한 실천이 병행되어야 한다. 최근 신규 노조 조직화 과정에서, 정파 구도에 따른 조직화 경쟁과 관할권 분쟁 사례가 빈번하고, 또 정부·지자체의 보조금을 활용하여 비정규직을 조직하고 보는 것이 능사라는 실용주의와 우경화가 만연한 상황을 경계해야 한다. 맺음말 우리는 개막식의 시작과 끝을 각각 ‘임을 위한 행진곡’과 ‘인터내셔널가’로 장식했다. 이 두 곡으로 행사의 시작과 끝을 장식하는 경우는 일 년에 한 번, 즉 노동절이다. 잘 알다시피 두 곡의 배경은 1980년 광주항쟁과 1871년 파리 코뮌이다. 광주와 파리의 항쟁은 착취와 억압에 대한 봉기였지만, 그러나 ‘패배할 줄 알면서도 끝까지 투쟁해야 했다’는 점에서 일종의 ‘비극’이라고 할 수 있다. 항쟁에 참가하지 못했던 ‘관객/구경꾼’들도 당시의 비극을 반추하면서 역사의 무대에서 ‘배우/행위자’들로 변화할 수 있었다. 최근 박근혜 정부의 518 추모행사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 여부가 논란이 되고 전두환·노태우의 추징금 문제가 이슈화 되었지만, 이미 1997년 대선 직후 IMF 위기 속에서 김대중 당선자가 국민대통합이라는 미명 하에 전·노를 사면한 것에서 오늘의 희비극이 예고되었던 셈이다. 광주가 화석화되고 박제화된 것이 노동자운동의 침체에 기인한 것이라면 노동자운동의 부활이 광주를 새롭게 재현하는 길일 것이다. 노동자운동의 이념을 재건하고 조직을 강화해야 할 과제가 바로 우리에게 주어져 있다.
경상남도가 진주의료원 폐업 방침을 발표한지 6개월이 지났다. 6월 11일 진주의료원 폐업을 위한 경상남도 조례 개정안이 도의회를 통과한 데 이어 7월 1일 공포되었고, 홍준표 도지사는 빠른 시일 내에 청산절차를 마무리짓고 진주의료원 건물을 매각하겠다는 방침을 밝히고 있다. 7월 13일 ‘공공의료 정상화를 위한 국정조사 특별위원회’는 1개월 이내에 진주의료원의 조속한 재개원 방안을 마련할 것을 요구하는 결과보고서를 채택하였지만 한 달이 넘도록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지 못하고 있다. 몇 차례에 걸쳐 이루어진 여론조사에서 경상남도 도민과 국민의 다수가 진주의료원 폐업 철회를 원한다는 사실이 밝혀졌고, 보건복지부와 기획재정부 등 정부 부처 역시 진주의료원 폐업이 부당하다는 입장을 밝혔으며, 사회운동의 제 단위들과 보건의료지역단체들까지도 진주의료원 폐업이 철회되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지난 몇 달간 한국에는 홍준표 도지사를 제외한 모든 사람이 진주의료원 폐업에 반대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신속하고 단호하게 추진된 진주의료원 폐업을 막을 수 없었던 것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진주의료원 폐업 사태를 거치면서 공공의료를 둘러싼 수많은 쟁점들이 표면화되었다. 지방의료원 운영의 ‘비효율’은 실재하는 것인지, 지방의료원 운영의 비민주성이 어떠한 문제를 발생시켰는지, 지역거점공공병원인 지방의료원의 폐업을 지방자치단체가 단독으로 결정할 수 있는 것인지, 지방의료원 적자는 왜 발생하며 어떻게 평가해야 하는지 등 진주의료원을 둘러싼 공방에서 드러난 쟁점들은 결국 한국에서 공공의료의 위상과 역할은 무엇이었으며 이후 어떻게 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물음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한 달여에 걸친 국정조사 결과보고서는 이에 대해 분명한 답을 내놓지 못했고, 이는 이 문제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없음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그러나 이 물음에 대해 우리 사회가 대답하지 못한다면 (진주의료원을 제외하고) 남은 33개 지방의료원을 포함한 공공병원들은 계속 존립의 위협을 느끼면서 위태로운 줄타기를 할 수밖에 없다. 진주의료원 폐업을 둘러싼 쟁점들 진주의료원의 재정적자, 어떻게 볼 것인가 2월 26일 경상남도는 진주의료원 폐업 방침을 발표하면서 ‘진주의료원은 매년 40~60억 원의 손실로 현재 300억 원의 부채를 안고 있으며, 이대로 가면 3~5년 안에 파산하는 것을 지켜볼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고, 이는 곧바로 ‘경영 위기’의 실체를 둘러싼 논쟁을 촉발시켰다. 결론적으로 경상남도가 주장했던 진주의료원 경영 위기는 상당히 과장된 것이었음이 드러났다. 2011년 말 진주의료원의 부채비율은 63.9%로 300억 원의 부채는 진주의료원의 자산 규모를 감안했을 때 과도한 규모가 아니었다. 매년 발생하는 40~60억 원의 적자 역시 감가상각비와 퇴직급여충당금증가분 등 장부상 기록되는 손실액수를 제외하고 보면 실제 발생하는 현금 손실은 연 10억 원 규모에 불과하다는 것이 밝혀졌다. 경상남도는 이어서 ‘진주의료원에 더 이상 도민의 혈세를 밑빠진 독에 물붓기 식으로 지원할 수 없다’고 주장했는데, 이 역시 설득력이 없음이 드러났다. 진주의료원에 대한 경상남도의 지원금은 연 10억 원 수준으로 이를 병상당 지원금으로 환산해보면 전국 34개 지방의료원 중 23번째에 불과하다는 것이 밝혀졌기 때문이다. 게다가 경상남도가 수익형민자사업(BTO) 방식으로 마창대교, 거가대교 등을 건설하면서 민간사업자에게 최소운영수익(MRG)으로 보장해주는 금액이 매년 수백억 원에 달한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경상남도의 주장은 더욱 설득력을 잃어버렸다. 진주의료원 경영 악화는 왜 발생했는가 폐업이 발표된 시점에 진주의료원은 폐업이 불가피할 정도의 경영 위기에 빠졌던 것은 아니지만, 경영이 악화되고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진주의료원의 당기순익 현황을 보면 연 10억 원 정도의 손실을 기록하다 2009년부터 42억 원, 28억 원, 63억 원의 손실을 기록했으며, 부채비율 역시 2008년 이후 매년 높아지고 있었다. 홍준표 도지사는 진주의료원 노동자, 특히 노동조합을 경영 악화의 주범으로 지목했다. 의료수익 대비 인건비 비율이 82.8%로 타 병원에 비해 과도하게 높은 것이 경영 악화의 가장 핵심적 원인이라고 주장했다. 동시에 의료원 경영 악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연차수당 반납, 무급 토요일 근무, 경영진단 등을 제안하였으나 노동조합이 모두 거부했으며 경상남도에서 실시한 종합감사 처분을 일부 이행하지 않았다고 주장하며 노동조합을 공격했다. 그러나 경상남도의 주장은 대부분 사실과 다른 것으로 드러났다. 진주의료원 노동조합은 6년째 임금을 동결해 왔으며 7개월 동안 임금을 받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심지어 노동조합은 무급 토요일 근무라는 근로기준법에도 미달하는 조항에 합의하여 2013년 5월 시행을 앞두고 있는 상황이었다. 의료수익 대비 인건비 비율이 82.8%인 것은 사실이었으나 이는 경영 악화의 결과로 드러난 현상일 뿐 그것이 곧바로 인건비가 과도하다는 결론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진주의료원 경영 악화의 가장 핵심적 원인은 2008년 이루어진 확장이전이다. 원래 진주의료원은 진주시 중안동에 위치한 200병상 규모의 병원이었으나 2008년 2월 400병상 규모(실제 운영은 300병상 규모)로 확장이전했다. 병원 규모가 커짐에 따라 인건비, 감가상각비, 외주용역비 등 고정비용이 대폭 상승했지만 시내 중심가에서 외곽지역으로 이전하면서 접근성이 떨어져서 의료수익은 감소할 수밖에 없었다. 실제 이전 이후 고정비용은 2배 가량 상승했지만 의료수익은 1.5배 정도밖에 증가하지 않았다. [그림1] 진주의료원의 의료수입과 고정비용 변화 결론적으로 진주의료원의 이전은 진주시와 경상남도, 그 중에서도 최종 결정권자인 경상남도의 책임이 가장 크다. 실제 진주시의회 회의록을 통해 진주의료원 이전을 검토하는 과정에서 면밀한 입지 선정 과정이 부재했다는 것이 밝혀졌으며, 보건복지부가 사업타당성 조사를 요구했음에도 경상남도가 이를 무시했다는 사실이 드러나기도 했다. 진주의료원 폐업은 지방자치단체의 고유 권한인가 홍준표 도지사는 지방의료원 폐업을 강행하면서 지방의료원의 존폐 문제는 지방자치단체의 고유 권한이라고 주장했다. 진주의료원 정관에 따르면 도 조례 개정으로 해산이 가능하도록 되어 있으며, 지방의료원의 폐업과 관련한 별도의 법적 제한 조치가 없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지방의료원의 설립과 운영은 <지방의료원의 설립 및 운영에 관한 법률>에 따르도록 되어 있는데, 실제 해당 법률에는 지방자치단체가 지방의료원의 설립 권한을 가지도록 되어 있고 해산과 관련한 사항은 해당 지방의료원의 정관에 따르도록 되어 있어 중앙정부의 권한이 없는 것이 사실이다. 보건복지부 역시 ‘시설을 지원하고 관리감독하는 기능이 있기는 하지만, 의료원 운영 및 폐업에 관한 권한은 전적으로 지자체에 있어서 부처에서 적극 관여하기 어렵다’고 하면서 진주의료원 문제에 개입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표명하기도 했다. 지방의료원에 대규모 국고 지원이 이루어지고 있으며, 정부가 관리감독 권한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지방의료원 운영에 있어 가장 중요한 사항인 폐업해산에 대한 일체의 권한을 지방자치단체가 가지고 있는 것은 명백히 법제도의 미비다. 진주의료원의 경우에도 2000년대 들어 국고 300억 원이 지원되었으며 이는 같은 기간 경상남도가 진주의료원에 지원한 금액을 상회한다. 사상 초유의 지방의료원 폐업 시도가 발생함에 따라 <지방의료원의 설립 및 운영에 관한 법률>은 지방의료원을 폐업하려는 경우 보건복지부와 협의하도록 하고, 해산하는 경우 남은 재산 중 국고보조금에 해당하는 부분을 국고로 귀속할 수 있도록 개정되었지만 새누리당의 반대로 법안 통과가 늦어짐에 따라 진주의료원 폐업과 관련해서는 적용되지 못하였다. 그런데 ‘진주의료원 폐업을 철회하려고 노력했음에도 개입할 수 있는 권한이 없었다’는 보건복지부의 주장을 액면 그대로 믿기는 힘들다. 의료기관의 개설과 운영, 휴업폐업에 대한 일반적인 사항이 규정된 <의료법>에 의료기관의 폐업과 관련한 보건복지부의 권한이 명시되어 있기 때문이다. 의료법 제59조는 보건복지부장관에게 의료기관 개설자의 휴업폐업을 막고 업무개시 명령을 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보건복지부의 의지만 있으면 얼마든지 진주의료원 폐업 사태에 법적인 권한을 가지고 개입할 수 있었다. 제59조(지도와 명령) ① 보건복지부장관 또는 시도지사는 보건의료정책을 위하여 필요하거나 국민보건에 중대한 위해(危害)가 발생하거나 발생할 우려가 있으면 의료기관이나 의료인에게 필요한 지도와 명령을 할 수 있다. <개정 2008.2.29, 2010.1.18> ② 보건복지부장관, 시도지사 또는 시장군수구청장은 의료인이 정당한 사유 없이 진료를 중단하거나 의료기관 개설자가 집단으로 휴업하거나 폐업하여 환자 진료에 막대한 지장을 초래하거나 초래할 우려가 있다고 인정할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으면 그 의료인이나 의료기관 개설자에게 업무개시 명령을 할 수 있다. ③ 의료인과 의료기관 개설자는 정당한 사유 없이 제2항의 명령을 거부할 수 없다. 진주의료원 폐업이 발표된 후 실질적인 조치가 취해지지 않았던 3월에 이러한 점이 지적되었지만 진영 보건복지부 장관은 별다른 이유 없이 업무개시 명령을 발동하지 않았다. 보건복지부, 나아가서 박근혜 정부가 정말 진주의료원 폐업을 막을 의지가 있었는지 의심하게 하는 대목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이러한 논쟁이 진행되는 동안 어떠한 입장도 표명하지 않았고, 사태가 발생한지 50일이 지나서야 ‘경남도민의 뜻에 따르겠다’는 아무 의미 없는 발언만을 했을 뿐이다. 진주의료원 사태가 ‘공공보건의료’에 남긴 쟁점 진주의료원 폐업의 정치적 지형 홍준표 도지사의 ‘막대한 혈세’ 주장이 거짓으로 드러난 이후 진주의료원 사태에서는 공적 자금 지원 문제가 상대적으로 부각되지 않았다. 이제까지 공공기관 민영화, 구조조정 시도에서 공적 자금 지원을 매개로 한 공격이 정부와 자본, 보수언론의 주요 전략이었던 것과는 다른 양상이다. 몇 가지 원인이 있는데 첫 번째는 이번 사태가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장의 대립구도라는 특이한 형태로 전개되었다는 점이다. 진주의료원에 대한 경상남도의 지원이 연 10억 원 정도에 불과하며, 시설 확충 과정에서 차입한 지역개발기금에 대해 경상남도가 책임지지 않았다는 내용이 부각되었다. 하지만 사실 진주의료원에 대한 공적 지원 규모는 이보다 훨씬 크다. 2008년 확장이전 과정에서 중앙정부의 지원이 300억 원, 경상남도의 지원이 22억 원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홍준표 도지사의 독단적 폐업 추진에 대해 부정적 여론이 광범위하게 형성됨에 따라 중앙정부는 소극적이나마 진주의료원 폐업에 반대하는 입장을 취하게 되었고, 그에 따라 공적 지원이 필요없다거나 과다했다는 언급을 거의 하지 않았다. 두 번째 원인은 진주의료원이 담당하는 저소득층 환자 진료 기능이 부각되면서 ‘착한 적자’ 담론이 널리 제기되었던 것이다. 진주의료원 적자에는 입원수익의 부진이 큰 영향을 미쳤는데 입원 환자의 상당수가 저소득층, 장기입원 환자였던 것이다. 게다가 경상남도가 무리하게 환자들을 쫓아내는 과정에서 환자들이 사망하거나 다른 의료기관에서 받아주지 않아 치료받지 못하는 사례 등이 알려지면서 ‘착한 적자’ 담론은 더욱 힘을 얻게 되었다. 그 결과 국정조사 결과보고서에는 ‘건강한 적자’와 ‘불건강한 적자’를 구분하여 착한 적자에 대해서는 정부가 지원해야 한다는 내용이 포함되기에 이른다. 이러한 두 가지 측면은 사실 진주의료원 폐업 문제가 전국적 이슈가 되면서 정치적 부담이 커짐에 따라 발생한 특수한 상황에 가깝다. 이제까지 정부가 국립대병원과 지방의료원 등 공공병원에 대해 취해왔던 태도는 사실 홍준표 도지사의 입장과 유사한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 국립대병원에 대해서도 수익성을 강화하거나 공적 지원을 조정해야 한다는 주장이 매년 나오고 있으며, 지방의료원에 대해서도 수익성을 높여야 한다는 압박이 점점 거세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에 지방의료원도 일반병실을 줄이며 상급병실을 늘리고 의사성과급제를 도입하는 등 수익성을 강화하기 위해 상업화에 뛰어들고 있는데, 이는 지방의료원의 존재 목적에 반하는 경향이다. 공공성과 수익성의 기묘한 결합: ‘건강한 적자’와 ‘불건강한 적자’ 공공병원의 수익성을 높일 것을 요구해왔던 지금까지의 정책 방향과 진주의료원 사태를 계기로 촉발된 공공의료의 사회적 기능에 대한 논의 사이에서 도출된 나름의 절충이 ‘건강한 적자’ 개념인 것으로 보인다. 국정조사 결과보고서는 지방의료원 육성 등 공공의료 정상화 방안으로 ‘지방의료원의 적자에 대해서는 공익적 역할 수행에 따른 불가피한 적자인 ‘건강한 적자’와 ‘불건강한 적자’를 구분하여, ‘건강한 적자’는 공익성을 고려하여 인정하고 ‘불건강한 적자’는 경영개선 및 의료경쟁력 강화를 통하여 감소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제시한다. 그러나 이러한 구분은 공공병원이 수행하는 역할을 특정한 기능으로 제한한다는 점에서, 그리고 공공병원에 대한 수익성 압박이 여전히 강제된다는 점에서 문제가 있다. 공공병원의 경영 수지를 놓고 ‘건강한 적자’와 ‘불건강한 적자’를 구분하기는 매우 어렵다. 한 기관 안에 있는 요소와 기능은 서로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공공적 기능과 그 외의 기능을 분리하는 것도 쉽지 않다. 예를 들어 일반 환자를 보는 의사와 의료급여 환자를 보는 의사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므로 이를 구분하기가 쉽지 않고, 환자수가 적더라도 각 지역의 조건에 따라 필수적인 기능(예를 들어 분만실)을 유지하는 데 드는 비용을 ‘건강한 적자’와 ‘불건강한 적자’로 나누어 계측하기도 힘들다. 진주의료원의 경우 장애인 전용 치과를 운영하고 있었는데, 2012년 진료 환자수는 460명이었다. 치과의사 포함 3명의 의료진이 하루 1~2명의 환자를 치료한 셈인데, 경제적인 관점에서 보면 매우 비효율적이다. 그렇다면 진주의료원이 장애인 전용 치과를 운영하면서 발생한 적자 중 어디까지가 ‘건강한 적자’이고 어디까지가 ‘불건강한 적자’인가. 또 다른 예를 보자. ‘지방의료원의 소재지역 특성에 따른 소득계층별 입원환자 구성비’를 보면, 의료기관이 충분한 지역의 지방의료원에는 의료급여환자를 포함한 저소득층이 많이 입원했고 의료기관이 부족한 지역에서는 전 계층이 골고루 입원했음을 알 수 있다. 전자의 경우 사회적 약자에 대한 의료안전망 역할을 했고, 후자의 경우 의료자원이 부족한 지역의 중심적 의료기관으로서의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다. 이런 경우 각각의 공익적 역할 수행 정도를 어떻게 평가할 수 있을 것인가. 단순히 의료급여 환자를 많이 진료했다고 해서 공익적 기능을 더 많이 했다고 평가할 수 없음은 분명하다. [그림2] 지방의료원의 소재지역 특성에 따른 소득계층별 입원환자 구성비 국정조사 결과보고서는 보건복지부에게 ‘건강한 적자’와 ‘불건강한 적자’를 구분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할 것을 요구했다. ‘건강한 적자’로 구분지어질 것으로 예상되는 부분은 의료급여 환자를 진료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손실, 사스나 신종플루 등 재난적 전염병 관리와 같이 민간의료기관이 책임지지 않는 영역, 선택진료비 등 비급여 진료를 적게 함에 따라 발생하는 손실 등이다. 결과적으로 파편적으로 규정되는 공익적 의료 부분을 제외한 나머지 부분은 ‘불건강한 적자’로 규정될 가능성이 높다. 결국 공공병원의 ‘착한 적자’ 담론이 역설적으로 공공병원의 수익성 강화 압박을 더욱 공식화노골화 시킬 것이 우려된다. 결론적으로 공공병원에 대한 현재의 평가 기준 자체가 바뀌지 않는다면 건강한 적자와 불건강한 적자의 구분은 공공병원의 수익성 평가 방식의 세련된 판본과 다르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공공병원에 대한 평가 기준은 공공의료의 개념과 역할에 대한 논의와 직결되는 문제인데, 이와 관련해서는 후술한다. 진주의료원 투쟁이 남긴 후과: ‘불건강한 적자’의 함의 경영 위기 주장이 거짓으로 드러난 이후 경상남도가 진주의료원 폐업을 관철시키기 위해 가장 적극적으로 활용한 것은 높은 인건비 비율에 대한 강조와 노동자에 대한 공격이었다. 의료수익 대비 인건비 비율이 높다는 사실을 강조하면서 그 원인이 노동조합의 이기주의와 ‘밥그릇 챙기기’에 있다고 주장했다. 심지어 홍준표 도지사는 ‘하루 외래 환자 200명인 병원에 직원이 240명이나 되어 환자보다 직원이 많다’는 억지 주장을 펼치기도 했다. 앞서 설명했다시피 진주의료원의 의료수익 대비 인건비 비율이 높아진 것은, 2008년 의료원 이전 과정에서 병원 규모에 비례해 인력이 늘어난 반면 의료수익은 예상했던 것만큼 늘지 않았기 때문이다. 실제 진주의료원의 의료수익 대비 인건비 비율은 2006년에는 63.2%로 지방의료원 평균보다 낮았다. 결국 문제의 책임은 노동자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수요 예측에 실패한데다 접근성이 떨어지는 시 외곽지역으로 입지를 선정한 경상남도에 있다. 사실 공공병원의 인력에 대한 평가 기준으로 의료수익 대비 인건비 비율보다 더 중요한 것은 병원 규모(병상수)에 걸맞은 의료인력을 갖추고 있는지 여부이다. 진주의료원의 간호인력은 법정 정원 대비 75%에 불과하며 간호등급으로는 5등급이었다. 수익과 비교하지 않고 실제 필요한 인력과 비교했을 때 진주의료원의 의료인력은 오히려 부족한 상황이었던 것이다. 진주의료원 투쟁 과정에서 보건의료노동조합은 두 차례에 걸친 구조조정안을 내놓았다. 첫 번째는 4월 16일 진주의료원 노동자 65명의 자발적 퇴직을 발표한 것이다. 보건의료노동조합은 보도자료에서 ‘명예퇴직조기퇴직을 신청한 65명의 인건비 총액은 20억 2845만 원에 이른다. 이들의 희생과 양보로 진주의료원은 인건비 부담을 대폭 줄일 수 있게 됐고 정상화의 발판을 마련할 수 있게 됐다. … 2012년말 210명이던 직원수는 128명으로 줄어들게 되었고, 진주의료원 총 인건비(급여 및 퇴직금까지 포함)는 75억 2300만 원에서 41억 6000만 원으로 줄어들어 무려 44.7%(33억 6300만 원)의 인건비가 절감된다’고 주장하면서 진주의료원 정상화의 발판을 마련할 수 있게 되었다고 밝혔다. 그런데 이는 진주의료원이 규모에 맞는 적정 인력을 운용하고 있다는 입장을 스스로 뒤집는 것일 뿐 아니라 공공의료기관으로서 진주의료원을 정상화하는 데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 입장이었다. 두 번째는 5월 14일 발표한 ‘진주의료원 정상화 방안’(시뮬레이션)이었다. 정상화 방안은 종사 노동자 규모를 90명(37%) 줄이고, 입원 기능을 대폭 축소하는 동시에 외래 기능을 강화하고 공공의료사업을 축소하는 것을 주요 내용으로 했다. 보건의료노조는 이를 통해 진주의료원이 연간 2억 원 가량의 흑자를 낼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는 4월 16일의 구조조정 안에서 한 발 더 나아간 것으로 홍준표 도지사가 주장했던 지방의료원에 대한 수익성 논리에 조응하는 것이었다. 경상남도에 진주의료원 폐업 철회 및 정상화를 압박하려는 의도에서 나온 방안이라는 점에서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러한 방안은 수익성이 잣대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공공의료기관의 운영에 대한 원칙과 공공의료 강화 입장을 무너뜨릴 수 있다는 점에서, 그리고 다른 지방의료원에서의 구조조정 내지 노동권의 후퇴를 정당화해줄 위험이 있다는 점에서 적지 않은 후과를 남긴 전략이었다. 앞으로 지방의료원의 운영에 있어서 인건비 혹은 인력 문제는 지속적으로 쟁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진주의료원 폐업 사태를 경과하면서 (핵심적인 쟁점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인건비 문제와 노동조합의 단체협약 등은 ‘불건강한 적자’의 대표적 사례로 여러 차례 거론되었으며, 이번 국정조사 과정에서 보건복지부는 지방의료원에 성과보상체계, 총액인건비제, 임금피크제 등을 도입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반면 지방의료원 노동자들이 감내하고 있는 고질적인 임금체불 문제, 공공기관임에도 불구하고 위법적으로 강제되는 토요 무급근무 등은 거의 이슈가 되지 못했다. 공공의료는 무엇이었고, 무엇이어야 하는가 홍준표 도지사는 진주의료원 폐업의 정당성을 주장하기 위해 2012년 개정된 <공공보건의료에 관한 법률>을 인용했다. ‘민간의료기관에서도 공공보건의료 역할을 할 수 있는 등 공공의료의 개념이 변화’하고 있기 때문에 진주의료원이 폐업하더라도 공공의료서비스 제공에는 차질이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너무나 부족한 공공의료기관만으로는 필요한 공공보건의료사업을 수행할 수 없다는 문제의식이 <공공보건의료에 관한 법률> 개정안이 나오게 된 배경이라는 점을 고려할 때 홍준표 도지사의 주장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게다가 <공공보건의료에 관한 법률> 개정안은 2013년 2월 2일 시행되었는데 진주의료원 폐업 방침은 2월 26일에 발표되었으므로 실제 진주의료원과 같은 공공의료기관의 폐지에 따른 공백을 민간의료기관이 어떻게 채우게 할 것이냐에 대한 대안은 하나도 없었다는 점에서 홍준표 도지사의 주장은 완전한 억지다. 한편, 국정조사 결과보고서에는 공공의료의 역할에 대해 상반된 두 가지 견해가 공존하고 있다. 첫 번째는 공공의료의 핵심 임무와 목표를 양질의 적정 진료 수행으로 규정하고 이를 통해 민간의료기관의 불합리한 진료 또는 과잉진료와 같은 관행들을 견제하고 전체 보건의료서비스 공급체계를 선도해야 한다는 견해다. 구체적인 방안으로는 공공의료기관의 ‘표준진료지침’을 마련하여 지방의료원에 전면적으로 시행하도록 하는 한편, 적정진료로 인해 발생하는 적자를 보전해주는 방안을 마련할 것을 제시한다. 두 번째는 공공의료의 역할을 민간의료기관이 하지 않는 잔여적 역할로 규정하는 내용으로 응급, 감염병, 호스피스, 재활 등 수익이 나지 않아 민간의료기관이 기피하는 분야와 취약계층 진료로 공공병원의 역할을 한정하는 입장이 그것이다. 이에 따라 지방의료원이 포괄적인 의료서비스를 제공하기보다는 한정된 분야에 국한하는 방향으로 역할과 기능을 재정립하며 동시에 현재의 200~300병상 수준보다 규모를 더 축소할 것을 방향으로 제시한다. 두 가지 역할 모두 공공의료기관이 수행해야 하는 공익적 기능이므로 대립되는 것이 아니라고 볼 수도 있지만, 공공의료의 핵심적 역할을 무엇으로 규정하는지는 한국 보건의료체계를 바라보는 관점과 밀접하게 연결된 중요한 문제다. 공공의료를 민간의료기관의 잔여적 역할로 규정하게 될 경우 압도적 다수를 차지하는 민간의료기관의 왜곡된 의료서비스 공급 행태를 바로잡을 중요한 정책적 수단을 잃어버리게 되기 때문이다. 행위별수가제와 광범위한 비급여 진료가 존재하는 현재의 건강보험제도가 의료기관의 서비스 제공 행태를 규제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공공의료기관이 표준적 진료를 제공하면서 전체 보건의료서비스의 양상을 긍정적으로 바꿀 필요가 있다. 이는 불필요하게 지출되는 의료비를 줄이고 의료기관의 과잉 경쟁을 제어한다는 측면에서 사회적 비용을 줄이는 효과도 가진다. 이제 다시 <공공보건의료에 관한 법률>로 돌아가보자. 제2조는 공공보건의료를 ‘국가, 지방자치단체 및 보건의료기관이 지역계층분야에 관계없이 국민의 보편적인 의료 이용을 보장하고 건강을 보호증진하는 모든 활동’으로 정의하고 있다. 개정 전 법률이 공공보건의료를 ‘공공보건의료기관이 국민의 건강을 보호증진하기 위하여 행하는 모든 활동’으로 정의하였던 것에서, 모든 의료기관이 공공보건의료를 수행할 수 있도록 바뀐 것이다. 개정된 법률에 대해서는 여러 측면의 평가를 할 수 있겠으나 중요한 것은 개정 전후를 막론하고 법률에 공공보건의료의 구체적 개념이 명시되어 있지 않다는 점이다. 제2조의 규정은 해석하기에 따라서 모든 의료행위를 공공보건의료로 해석할 수도 있는 포괄적인 정의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정의는 앞에서 설명한 공공의료의 첫 번째 역할을 제대로 포괄하지 못한다. 제2조는 이어서 공공보건의료사업을 ⑴보건의료 공급이 원활하지 못한 지역 및 분야에 대한 의료 공급에 관한 사업, ⑵보건의료 보장이 취약한 계층에 대한 의료 공급에 관한 사업, ⑶발생 규모, 전파 속도, 심각성 등을 고려할 때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의 대응이 필요한 질병의 예방과 건강 증진에 관한 사업 등으로 규정하고 있다. 이는 민간의료기관이 담당하지 않는 대표적 분야를 명기한 것에 지나지 않으며, 공공의료의 잔여적 역할을 의미할 뿐이다. 진주의료원 폐업 사태를 경과하면서 벌어진 논쟁에서 국정조사 결과보고서까지 일련의 흐름에서 확인된 것은 우리 사회에 공공보건의료의 위상과 역할에 대한 합의가 부재하다는 것이다. 이제 공공보건의료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만들어 나가야 한다. 공공보건의료의 핵심적 역할은 ‘양질의 적정의료를 제공하면서 민간의료기관을 선도’하는 것으로 설정되어야 한다. 공공의료 발전을 위한 보건의료운동의 과제 현재까지의 결과를 놓고 본다면 공공의료 강화를 기치로 내걸었던 보건의료운동진영은 공공의료에 대한 적대적 공격을 시도하는 세력에 맞서 진주의료원을 지켜내지 못했다. 보건의료운동진영은 진주의료원을 재개원하는 한편 공공의료를 지키고 강화하기 위한 투쟁을 준비 중이다. 그러나 10여년 동안 보건의료운동진영이 주장해왔던 ‘공공의료 강화’라는 과제는 그 무게감에 비해 구체적현실적이지 못했고, 폭넓은 지지와 광범위한 실천을 만들어내지도 못했다. 공공병원에 대한 노골적인 공격이 시작됨과 동시에 역설적으로 공공의료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그 어느 때보다 뜨겁게 펼쳐진 지금, 우리는 무엇을 준비하고 실천해야 하는지 차분하면서도 치열하게 고민해야 한다. 풍부한 논의와 실천을 만들어가는 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기를 바라며 아래에 그 내용을 다시 한 번 정리한다. 지방의료원을 포함하여 공공의료기관에 대한 평가 기준이 전면적으로 바뀌어야 한다. 이번 진주의료원 사태를 통해 많은 사람들이 공공병원은 공익적 기능을 하는 과정에서 적자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으며, 지방의료원의 적자가 잘못된 운영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것이 공공연하게 논의되었다. 그 결과로 지방의료원의 ‘건강한 적자’와 ‘불건강한 적자’를 구분하여 ‘건강한 적자’은 공적 지원을 통해 해결하는 방안이 제시되었다. 이는 기존의 평가 방식에 비해 진일보한 것임에는 틀림없지만 여전히 수익성 기준을 중심에 두고 있다는 점에서 우려스럽다. 공공의료기관의 운영은 수익성에 따라 평가되는 것이 아니라 환자에게 적절한 진료를 하고 있는지, 지역에서 꼭 필요한 의료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지에 따라 평가되어야 한다. 더불어 각 지역의 의료자원 분포나 인구학적 조건 등에 따라 공공의료기관의 역할과 목표가 달라져야 한다는 점도 지적한다. 앞서 살펴봤다시피 지방의료원들도 각각의 조건에 따라 역할이 다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공공보건의료에 관한 법률>이 개정됨에 따라 지방자치단체장은 매년 해당 지역의 상황에 맞게 ‘공공보건의료 시행계획’을 수립해야 하는데, 수립 과정에서 해당 지방의료원 운영의 목표와 방향이 풍부히 논의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공공보건의료의 개념과 목표가 명확히 규정될 필요가 있다는 점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이는 지방의료원 등 공공의료기관의 목표와 발전방향을 수립하기 위한 선결조건이며, 공공의료 확충을 주장하기 전에 먼저 해결되어야 하는 중요한 문제다. 격화되는 의료시장의 경쟁구조 속에서 공공의료기관 역시 갈수록 민간의료기관의 운영 논리에 매몰되어가고 있으며 이는 공공의료기관의 존재 의의를 희석시킨다. 이런 상황에서 공공의료에 대한 사회적 합의 없이 ‘공공의료 확충’만을 주장하는 것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이제 진주의료원 폐업 사태가 열어젖힌 논의의 장을 잘 활용하여 공공보건의료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야 할 때다. 전술하였다시피, 민간의료기관 중심의 의료공급체계를 보완하는 것이 아니라 의료시장의 상업화를 제어하고 보건의료공급체계의 개혁을 이끌어내는 방향이 되어야 할 것이다.
소위 ‘내란음모’ 사태를 바라보는 시각 정권과 우파의 ‘종북’ 딱지 붙이기 마녀사냥이 연일 무차별적으로 확산되고 있다. 진보=통합진보당=종북이라는 부당전제를 깔고 있는 이데올로기 공세의 노림수는 분명해 보인다. 종북과 폭력의 이미지로 얼룩진 통합진보당이라는 ‘약한 고리’를 타격하여 진보의 정당성과 도덕성을 허물어뜨리려는 것이다. 일종의 광기라 칭할 수밖에 없는 오늘의 상황에서 그나마 ‘애정 어린’ 비판을 찾는다면 진보가 ‘낡은 소영웅주의적 정신병’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전향한 청산주의자들의 고해성사 정도일 것이다. [%=사진1%] 진보의 위기 대응 태도 공안당국의 물리적 탄압에 뒤이은 이러한 여론의 십자포화 속에서 진보는 궁지에 처한 듯하다. 한편에 ‘자신은 위기와 무관하다’는 정의당의 기회주의적 태도가 있다면 다른 한편에는 ‘위기의 원인은 외부의 탄압에 있다’는 통합진보당의 자기변호론적 태도가 있을 텐데, 둘 다 지금의 위기를 타개해나가기 위한 적절한 방법은 아니다. 전자가 자신의 알리바이를 입증하기 위해 ‘목욕물을 버리려다 아기까지 버리는’ 우를 범하고 있다면, 후자는 통합진보당의 위기가 진보라는 표상 자체의 위기로 드러나고 있다는 사실에 맹목적이기 때문이다. 새누리당·민주당과 하등 다를 바 없는 논리를 동원하여 ‘진보정당’임을 스스로 부정하고 있는 정의당은 논외로 하자. 통합진보당의 태도는 내란음모 ‘조작’을 둘러싼 장기간의 공방을 통해 일부 법률적 승리와 내부 결속의 강화라는 성과로 귀결될지는 몰라도, 진보의 정치적 승리로 귀결되지는 않을 것이다. 민중운동이 정권의 공안탄압과 우파의 여론공세에 맞서 함께 싸우는 것은 당연하지만, 이 과정에서 뼈를 깎는 자성을 통해 추락한 진보의 표상을 새롭게 재구성하지 못한다면 대중의 신뢰는 회복되지 못할 것이다. 이때 ‘나는 통합진보당이 아니다’라고 선언하는 것은 손쉬운 방법이지만, 올바른 해결책이 될 수는 없다. 통합진보당이 기층 대중운동과 연계되어 있기 때문인데, 따라서 관건은 이들과의 분리가 아니라 민중운동의 많은 부분을 점한 민족해방 이념과 노선에 대해 합리적으로 비판하고 토론하는 것이다. 평화주의적 행동수단이었나 이를 위해 오늘의 사태를 야기한 복합적 요인들을 역사적으로 인식하는 것이 필요하다. 상반기부터 연달아 발생하는 통합진보당을 포함한 통일운동 진영에 대한 정권의 공안탄압을 동아시아·한반도의 정치·군사적 정세 속에서 보수세력의 대응이라는 큰 틀에서 파악할 수 있어야, 여기서 나타나는 이석기 의원 등의 정세인식이나 전략전술의 문제점을 북한 사회주의 건설의 곤란과 대남전략의 변화 추이에 조응하는 민족해방 이념·노선의 모순이라는 관점에서 비판할 수 있을 것이다. 공안당국이 공개한 5월 회합 녹취록에 따르면, 이석기 의원 등은 북미간의 첨예한 군사적 대치 구도를 ‘불의의 전쟁’과 ‘정의의 전쟁’이라는 구도로 파악하면서 북한의 핵무장을 정당화하고 있다. 그러나 현재와 같은 북미 대결 구도에서 북한의 핵무장이 평화협정 체결의 지렛대라는 이들의 정세인식은 역관계에 대한 오판일 뿐더러 핵전쟁의 특성에 대해 맹목적이라는 점에서 지극히 위험하다. 또 이들은 주요 시설에 대한 타격을 은밀히 수행하는 것을 ‘유사시’ 행동지침으로 고려한 것으로 보이는데, 이는 사회운동이 채택하는 반전평화의 보편적 행동수단이 될 수 없다. 이는 세간에서 흔히 조롱하듯이 ‘시대착오적’이라거나 또는 단지 ‘폭력적’이어서가 아니다. 평화운동의 역사 또는 사회주의의 전통에서 전쟁을 방지하거나 중단시키기 위한 최선의 행동으로 채택되었던 대중적 반전시위나 총파업이 아니라 일종의 군사주의를 모방했기 때문이다. 이는 곧 이들이 ‘유사시’에 남한의 대중운동에 기초한 전술이 아니라 북한의 군사적 역량을 지지·보족한다는 관념에 기초한 전술을 고려하고 있음을 방증한다. 이처럼 현재 한반도 정세를 미 제국주의의 ‘불의의 전쟁’과 북한 사회주의의 ‘정의의 전쟁’이라는 구도로 분석하고 군사주의에 입각한 전술방침을 수립하는 것은 비단 몇몇 특정인의 문제라기보다는 통합진보당을 비롯한 민족해방 계열 전반이 암묵적으로 공유하는 전략적 관념이다. 따라서 민족해방 노선의 역사적 모순을 좀 더 자세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왜 민족해방 노선은 진지한 검토 대상이 되어야 하나 1972년 7·4 남북공동성명을 계기로 북한이 평화공존론을 채택한 이래 남한의 민족민주 운동은 ‘사회주의 조국’으로서 북한을 보위하는 역할로 그 지위를 설정한다. 이러한 시도는 통일혁명당, 인혁당재건위, 남조선민족해방전선의 시도로 이어지고, 이는 1985년 한국민족민주전선으로 계승된다. 1980년대 북한은 1970년대 이후 평화정착 및 남북합작방식의 통일론을 재확인하면서 그 전제조건으로서 민주자주정부 수립을 주장한다. 이에 조응하여 1980년대 중후반 한국사회성격논쟁을 거치며 ‘식민지반봉건/반자본주의사회론-민주자주정부론-완전연방제론’으로서 민족해방 노선이 정립된다. 그러나 탈냉전 이후 1990년대에 국제적 고립이 심화되는 와중에 경제위기와 함께 에너지·식량위기가 발생하면서 북한경제는 붕괴한다. 경제위기에 대한 반작용으로 선군정치가 출현하고, 극단화된 스탈린주의로서 수령론을 핵심으로 하는 김일성주의는 부자세습이라는 형태로 재생산된다. 2000년대 들어 북한의 대외전략은 ▲북미수교를 통한 안전보장의 획득 ▲북일수교를 통한 경제적 지원의 획득 ▲남북관계의 안정화(2국가 2체제 또는 ‘낮은 단계의 연방제’)에 초점을 맞추는데, 그러나 한미일 삼각동맹의 압박 속에 본격적인 핵무장을 추진한다. 1990년대 이후 현실 사회주의의 붕괴와 북한 사회주의의 고립, 그리고 통일운동의 분열 등 주객관적 정세의 변화 속에서 민족해방 진영은 전략의 동요를 겪으며 조직적으로도 이완된다. 그러던 중 김대중 정부에서 2000년 6·15 남북공동선언이 체결되자 민족해방 진영은 이를 ‘조국통일의 대사변기’로 규정하고 민족민주전선 재편을 주장한다. 남한에서는 신자유주의적 정책개혁의 이면에 다르지 않은 ‘햇볕정책’이 추진되고 북한에서는 미국과의 관계개선을 위한 협상의 지렛대로 ‘핵무장’이 추진되는 정세 속에서, 민족해방 진영은 북한의 안전을 보장하고 남한의 점진적 개혁을 통해 이를 보완한다는 취지에서 기존의 민족민주전선론을 다시 정식화한 것이다. 과거 민족해방 진영의 전략이 민족민주전선체에 기초한 민자정-연방제라는 단계론적 변혁·통일론이었다면, 2000년대 이후 민족민주정당에 기초해서 민자정-(낮은 단계의)연방제로 이행한다는 이들의 조직노선 변화는 충분히 예상 가능한 진로였다. 이후 민족해방 진영은 민주노동당 조직적 입당, 자주민주통일 전국현장조직 건설, 전국민중연대-통일연대 건설로 민족민주전선 재편을 현실화한다. 한반도의 위기, 민중운동의 위기 그러나 2000년대 들어 위기와 대화가 반복되는 교착 국면에서 북한은 협상의 지렛대로서 핵·미사일 역량을 점차 제고한다. 북한의 ‘벼랑끝 전술’에 대응하여 미국은 군사적 압박, 경제적 제재, 외교적 고립을 통해 대북 봉쇄를 강화하였고, 이는 현재 오바마 정부의 ‘은근한 무시’와 ‘전략적 인내’ 정책기조에 반영되고 있다. 금융위기·경제위기를 배경으로 하는 미국의 ‘태평양으로의 선회’에 따라 한미동맹 및 미일동맹도 점점 호전적으로 재편되고 있다. 이명박 정부에 이어 박근혜 정부는 미국과 ‘글로벌 파트너십’을 체결하며 하위 파트너로서 더욱 적극적인 역할을 자처하고 있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지난 상반기 한반도에서는 한미동맹 대 북한의 군사적 대결이 그 어느 때보다도 첨예하게 펼쳐졌다. 전략폭격기 B-52, 스텔스폭격기 B-2, 핵잠수함 샤이엔을 동원한 한미동맹의 대북 핵위협 속에서 북한도 ‘정전협정 백지화,’ ‘핵 선제 타격권 행사,’ ‘남북불가침합의 무효,’ ‘남북 관계 전시상황 돌입’ 등으로 맞섰다. 이런 ‘비상한’ 정세에서, 남한의 민족해방 진영은 북한의 핵무장을 대미 협상수단 또는 자위수단으로서 인정하거나 평화협정 체결의 결정적인 지렛대라며 옹호했다. 그러나 인류의 절멸을 예고하는 핵전쟁에서 ‘불의의 전쟁’과 ‘정의의 전쟁’의 구별은 애당초 무의미하다. 대신 평화라는 이상에 따라 사회운동은 ‘일방적 군비 축소’와 ‘군사동맹 폐기’와 같은 ‘적극적 평화주의’를 자신의 이념으로 채택해야 마땅하다. 북한의 핵무장이 북한 사회주의 건설의 곤란을 반증한다면, 그에 조응하는 남한 민족해방 진영의 핵무장 옹호는 역설적이게도 남한 사회변혁 전망의 빈곤을 반증한다. 민주노동당의 당권을 장악한 민족해방 진영은 강령에서 ‘사회주의’를 삭제하고 ‘진보적 민주주의’를 채택한 뒤 국민참여당과 합당하여 통합진보당을 결성했다. 야권연대나 연립정부 참여를 통해 민주자주정부를 수립한다는 민족민주전선론에 따른 결과였다. 정당운동뿐만 아니라 대중조직과 연대체 수준에서 공히 민족민주전선을 강화한다는 이러한 민족해방 진영의 ‘10년의 전망’은 민주노동당의 분열 외에도 민주노총의 정파적 갈등, 전국민중연대의 해소에 큰 영향을 끼쳤다. 이 과정에서 민족해방 진영의 주류로 부상한 ‘경기동부연합’ 또는 통합진보당 당권파의 모습은 민족해방 노선의 모순이 극적으로 표출된 한 사례일 뿐이다. 사태에 대한 반성 다시 말하지만, 현재의 위기는 비단 통합진보당에 대한 공안탄압으로부터 발생하는 위기가 아니라 진보의 표상, 그러니까 민중운동의 이념과 노선에 대한 대중적 불신으로부터 발생하는 위기다. 따라서 공안탄압에 맞선 공동 행동뿐만 아니라 이념과 노선을 성찰하고 혁신하기 위한 공동 토론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민족주의가 아니라 평화주의로서 국제주의를 이념으로 채택하는 것, 모종의 전략적 관념을 전제한 민족민주전선론을 정정하고 남한 사회변혁의 새로운 전망을 사고하는 것, 민중운동의 분열과 갈등을 유발한 조직노선을 반성하고 단결과 혁신의 주체로 거듭나는 것이 혁신의 출발점이 되어야 한다. 위기를 부정하는 것은 위기를 지연하는 것일 뿐, 사태를 해결하는 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뼈아픈 일이지만 오류를 인정하고 모순을 작동시킬 때 비로소 위기는 해결될 것이다.
[금융과 노동] 이석기 사태, 평화와 민주주의 시각에서 바라봐야
[성명] 촛불집회 보복 수사, 통합진보당 탄압을 중단하라! 대한민국에 낡은 매카시즘의 광풍이 몰아치고 있다. 8월 28일 국가정보원은 통합진보당 이석기 의원과 시도당 당직자 등 10명에 대해서 소위 내란음모 혐의를 이유로 대대적인 압수수색을 실시하고 이중 3명을 체포했다. 정권 초기부터 국정원 대선개입 논란과 범국민적 촛불집회로 정치적·도덕적 정당성에 타격을 입은 박근혜 정부, 그리고 소위 ‘셀프개혁’을 주문받은 국정원이 국면전환을 위해 대대적 공안탄압에 나선 것이다. 국정원 선거 개입이라는 초유의 사태를 맞아 민중들은 촛불집회로 맞서왔다. NLL 물타기 시도, 범민련에 대한 공안탄압, 국정조사 무력화 등 정부와 새누리당의 치졸한 모습에 민중들의 분노는 더욱 더 커질 수밖에 없었고, 촛불집회도 점점 더 성장해왔다. 이번 공안탄압은 은근슬쩍 책임회피를 통해 국면을 넘기려던 자신들의 시도가 실패하자 빼든 칼이다. 국정원 개혁론을 무마하고, 촛불집회 참가자들의 정당성을 훼손시키며, 공포정치를 통해 촛불집회 참가자들을 위축시키고자 하는 것이다. 이것이 민주주의를 염원한 민중들에 대한 정권의 응답이다. 박근혜 정권은 민중운동에 대한 탄압의 강도를 높여가고 있다. 지난 6월 검찰은 범민련 남측본부 활동가 9명의 자택과 사무실을 압수수색했고 그 중 5명을 구속시켰는데, 이는 ‘평화협정 체결’, ‘대북적대정책 폐기’ 등의 주장에까지도 찬양고무, 이적동조 혐의를 적용한 결과였다. 이번 내란음모 수사도 무리한 법적용의 연장이다. 역사적으로 내란음모죄는 민중운동을 탄압하기 위한 구실일 뿐이었다. 대한민국 헌정 역사에서 거의 적용된 적이 없으며 그마저도 대부분 조작된 것으로 판명되었다. 박근혜 대통령의 아버지 박정희가 유신독재에 반대투쟁을 탄압하기 위해 조작한 인혁당 재건위 사건, 전두환이 군사쿠데타에 반대하는 광주민중의 저항을 총칼로 진압하면서 조작한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이 그 대표적인 사례다. 사상과 조직의 차이를 넘어 모든 진보진영이 박근혜 정권의 공안탄압과 공포정치에 단호히 맞서야 한다. 사회진보연대도 반동적인 공안탄압에 대항해 박근혜 정부에 맞선 투쟁을 더욱 힘있게 전개할 것이다. 촛불집회 보복 수사, 통합진보당 탄압을 중단하라! 대선개입-민중운동탄압, 국가정보원을 해체하라! 2013. 8. 29 사회진보연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