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대선을 앞두고 모든 정당이 개혁정책을 제시하고 있다. 한나라당은 새누리당으로 당명을 변경한 후 인적 쇄신에 이어 새 정강정책에 복지와 경제민주화를 명시하면서 기존 이미지를 불식시키는 데 주력하고 있다. 민주통합당은 시민운동·한국노총과 정당 통합 뒤 경제민주화·보편복지·부자증세를 3대 핵심공약으로 선전하며 진보적 색채를 가미하고 있다. 통합진보당은 ‘노동의 가치가 존중받는 복지국가와 경제민주화’를 앞세우며 민주통합당과의 차별화를 시도하고 있다. 정당들의 정책에서 공통적인 핵심 이슈는 비정규직 대책과 재벌개혁으로, 그 밑바탕에는 복지와 경제민주화라는 담론이 자리잡고 있다. 민주통합당이 진보정당과 민중운동의 의제를 일부 흡수하고, 또 새누리당이 이러한 개혁 의제를 일부 수용하면서 전체 지형은 사뭇 좌경화한 것으로 보인다. 이것은 총대선의 전초전 격으로 치러진 작년 하반기 서울시장 보궐선거를 기점으로 일정하게 변화한 이데올로기 지형을 반영한다. 이처럼 선거를 앞두고 각 정당의 개혁정책이 봇물 터지듯 제출되고 있는 가운데 정부는 선심성 공약 또는 ‘포퓰리즘’을 적극 제어하려는 모양새다. 기획재정부는 중기 재정건전화 기조 속에 ‘선심성 복지공약’에 맞서 복지태스크포스(TF)를 구성하였고, 한국은행은 경제정책을 집행하는 주체가 정치인이 아닌 관료이므로 ‘정치적 경기순환은 없다’고 강조하고 있다. 반대로 진보진영은 지배 정당들의 변화에 대해 그 진정성을 의심하면서도, 그것을 일종의 성과이자 기회로 인식하고 지형을 좀 더 왼쪽으로 끌고 가는 데 주력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를테면 2011년이 복지동맹이었다면 2012년은 재벌개혁동맹이라는 식이다. 그런데 비정규직 문제를 포함하는 ‘재벌개혁’ 문제는, 선거에서 일회성으로 제시되는 정책 대안이나 일부 법·제도 개혁 차원으로만 접근할 수 없는 문제다. 다시 말해서 한국 자본주의의 성장 전략, 즉 수출-재벌 중심의 세계화와 노동신축화와 직결되는 문제다. 이 글에서는 각 정당의 총선 정책 중에서 특히 재벌개혁론을 비판적으로 검토하면서 노동자운동의 주체적 입장과 태세에 관해 제언하고자 한다. 각 정당의 총선 공약과 재벌개혁안 총선 공약 현재 각 정당의 총선 공약에서 가장 부각되는 담론은 복지와 경제민주화다. 새누리당은 새로운 정강·정책 1조에 복지국가라는 표현을 넣고 기존의 선별주의 복지 대신 평생맞춤형 복지를 주장하고 있다. 민주통합당과 통합진보당은 모두 보편적 복지를 강조하는데, 민주통합당은 사회보험 보장성 강화를, 통합진보당은 무상의료·교육·보육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에 따라 복지의 세원을 마련하기 위한 조세정책에서도 각 정당은 ‘부자 증세’ 정책들을 제출하고 있다. 새누리당은 작년 9월 감세 정책을 철회한 데 이어 연말 국회에서 과세표준 3억 원 구간에 대해 38% 세율을 매기는 소득세법 개정안도 통과시켰다. 민주통합당은 당 안팎에서 ‘재벌세’ 논란이 불거지자 그 용어를 사용하지 않는 대신 ‘경제력 집중에 대한 과세 강화 방안을 연구 중’이라고 발표한 상태다. 최근에는 부유층과 대기업들을 대상으로 소득세와 법인세를 인상하는 방안을 발표하기도 했다. 통합진보당의 경우 두 정당의 과세표준을 강화하여 세원과 세율을 높이는 방안을 공약으로 제시하고 있다([표 1] 참고). 가장 큰 차별성이 드러나는 분야는 아무래도 노동정책이다. 새누리당은 새 정강·정책에 별도의 노동 관련 조항이 없이 일자리 창출을 우선으로 내세웠다. 민주통합당은 차별시정, 비정규직사내하도급 문제 해결, 유럽식 정리해고제도 도입을 주요 공약으로 제시했다. 통합진보당은 △2017년까지 노동조합 조직율 20%, 단체협상 적용율 50%로 확대 △동일노동 동일임금, 사용사유제한 법제화 및 고용안정세 도입 등 비정규직 25% 감축 △평균임금의 50%로 순차적으로 개선하는 최저임금 현실화 방안 등을 제시하고 있다. [표 1] 새누리당민주통합당통합진보당의 정책 비교 복지 정책과 함께 경제민주화라는 담론이 부활했다는 점도 눈여겨봐야 할 대목이다. 새누리당은 1987년 현행 헌법 개정 당시 ‘경제민주화 조항’으로 일컬어지는 헌법 119조 2항을 삽입하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했던 김종인을 비대위원으로 임명한 뒤 ‘공정한 시장경제질서 확립’과 ‘강한 정부’라는 개념을 강조하며 재벌의 불공정거래를 규제하겠다는 입장이다. 민주당은 지난해 7월부터 ‘헌법 119조 경제민주화특별위원회’를 가동한 뒤 최근 보편복지·부자증세와 함께 재벌개혁을 총선 3대 핵심 공약으로 제시하고 있다. 통합진보당은 ‘노동의 가치가 존중되는 사회가 바로 복지국가이자 경제민주화’라고 규정한다. 각 정당의 재벌개혁 정책 이처럼 총대선 국면에서 여야를 막론하고 복지와 경제민주화 담론을 표방하는 것은 과거 2007년 대선과 2008년 총선에서 한나라당이 성장과 선진화를 앞세워 압승을 거둔 것과 큰 대조를 이룬다. 이것은 경제위기와 이명박 정부의 실정에 따른 광범한 민심 이반에 대한 반응이자 미국 반-월스트리트 시위에서 얻은 일종의 학습 효과로 해석할 수 있다. 특히 집권 여당의 경우 작년 서울시장 선거 패배와 대통령 측근 및 여당 주요 인사들의 권력형 비리로 대대적인 위기에 봉착한 이후 이명박 정부와의 이미지 차별화를 위한 시도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개혁정책 중에서 최대 이슈로 부상한 것은 재벌개혁론이다. ‘부의 양극화가 심화하고 있는 상황에서 공정 분배와 사회 정의 실현, 자영업자 및 중소기업 육성을 위해 재벌을 규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개혁적 지식인과 언론들로부터 쏟아져 나왔고, 지배정당도 이를 수용하는 양상이다. 새누리당 이주영 정책위 의장은 “국민의 불만이 높아질수록 대기업 집단의 탐욕을 규제하기 위한 여러 제도 및 조치, 정책이 나올 수밖에 없다”며 재벌개혁의 불가피성을 토로한다. 민주당 유종일 경제민주화 특위 위원장은 “재벌의 성장 과실이 국민에게 골고루 돌아가지 않고, 재벌의 과도한 지배력이 민주주의 위협 등 여러 부작용을 낳고 있다”고 강조한다. 각기 편차는 있지만 지식인과 언론의 재벌개혁론은 대체로 이명박 정부의 ‘적하효과’론, 즉 대기업의 성장을 촉진하면 중소기업이나 소비자에게까지 혜택이 돌아가 전반적인 경제 활성화에 이바지한다는 정책 기조에 대한 비판을 공유한다. 재벌개혁론은 이명박 정부의 재벌 특혜 정책이 과도한 경제력 집중을 낳았고, 이것이 재벌을 무소불위의 권력집단으로 만들었다고 주장한다. 이들은 정부의 인위적인 고환율 정책은 삼성전자와 현대차 등 수출-대기업에게 유리한 반면 내수-중소기업과 서민물가에 악영향을 미쳤고, 출자총액제한제도 폐지와 금산분리 완화는 대기업의 중소기업 업종 침해와 재벌의 금융기관 사금고화 경향을 낳았으며, 법인세 인하로 대기업들의 세금이 감면되어 복지 재원이 감소했고, 기업인들의 비리 사면으로 사법 형평성을 깨트리고 부의 편법적 세습이 고착화됐다고 지적한다. [표 2] 새누리당민주통합당통합진보당 재벌개혁안 (빈칸은 미정) 이에 따라 각 정당은 △재벌의 일감 몰아주기 행태나 골목상권 진출 등을 직접적으로 규제하는 방안 △재벌의 경제력 집중을 억제·완화하는 방안 △재벌에 과세하는 방안 △재벌의 연결고리를 끊어 총수 일가의 영향력을 무력화시키는 방안 △재벌총수에 대한 사법처리를 엄정화하는 방안을 공통 항목으로 제시하고 있다. 물론 정책기조와 각론에서는 많은 차이가 있다. 새누리당의 재벌개혁론이 ‘재벌의 문제점을 보완한다’는 수준에서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의 공정경쟁과 동반성장’을 강조한다면, 민주통합당은 ‘재벌 규제를 대폭 강화한다’는 수준에서 10대 재벌기업의 출자총액제한제도에 정책적 초점을 맞추고 있다. 통합진보당은 ‘재벌 중심 경제를 해체한다’는 수준에서 ‘맞춤형 재벌개혁’ 방안을 제시하고 있다([표 2] 참고). 각 재벌개혁안에 대한 법제도적 검토 그럼 이제 각 정당의 주요 재벌개혁안을 법제도적 측면에서 구체적으로 검토해보자. 출자총액제한제도 출총제는 1987년 계열사 간 과도한 출자로 대규모 기업집단의 소유·지배구조 편중을 억제하고 계열사 간 동반부실화 위험 등을 완화하기 위해 도입됐다. 그러나 1998년 외환위기 당시 외국인들에 대한 기업경영권 방어 차원에서 폐지됐다가, 2001년 출자총액 상한을 낮춰 재도입됐다. 이후 노무현 정부에서 출총제는 계속 완화되어 사실상 유명무실화되다가 2009년 이명박 정부 들어 완전히 폐지되었다([표 3] 참고). [표 3] 출자총액제한제도 연혁 새누리당은 현 정부에서 출총제가 폐지된 탓에 제도 부활을 직접 거론하지는 않는 대신 제도 폐지에 따라 총수일가의 사익추구 행위가 늘어나는 등의 부작용을 보완하기 위해 공정거래법을 개정하자는 입장이다. 민주통합당은 상위 10대 재벌에 한해 자산규모에 관계없이 출총제를 적용하고 출자총액을 순자산의 40%로 제한하는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통합진보당은 출자총액규제 한도를 40%로 한 민주통합당의 대책도 재벌 규제의 실효성이 낮다며 상위 10대 재벌그룹별 맞춤형 개혁과제를 제시하고 있다. 우선 새누리당의 공약과 관련해서는 공정거래위원회부터가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새누리당의 공약이 출총제를 부활하자는 것도 아니지만, 출총제와 이른바 ‘골목상권’ 문제는 본디 그 정책목표가 다르다는 것이다. 출총제는 재벌들의 무분별한 사업 확장을 총량적으로 막는 데는 일정한 역할을 할 수 있지만, 소상공인의 주력 업종 등 특정 분야 진출을 직접적으로 막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재벌의 자산이 수십조, 수백조에 달하는 현실에서 출총제를 통해 재벌의 ‘골목상권’ 진출을 막는다는 것은 실효성이 없다. 다음으로 민주통합당 방안의 경우, 10대 재벌 중 이미 지주회사 체제를 갖춘 SK, LG, GS, 두산에게는 적용되지 않으므로 나머지 6개 재벌에게만 적용되는 방안이다. 그런데 이중 4개 재벌은 출자비율이 낮아 추가 출자여력이 많으므로, 한 마디로 민주당의 방안은 현대중공업과 한화 단 2개만 적용되는 방안이다. 따라서 민주당 방안대로 출총제가 부활한다 하더라도 현실에서 큰 변화를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현실적인 한계 외에도 출총제의 이론적 한계도 명확하다. 출총제를 통해 경제력 집중을 억제하고 소유지배괴리(기업집단 총수일가의 소유지분율과 의결지분율간 차)를 축소할 수 있는 것은 출자비율과 내부지분율 그리고 소유지분율 사이에 함수적 관계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출자비율을 낮추려면 내부지분율을 낮추거나 소유지분율을 높여야 하며, 이는 곧 지배주주의 경제력 약화와 기업의 소유지배괴리 축소를 의미한다. 기업집단의 내부지분율 하락은 지배주주의 기업집단에 대한 지배력의 약화를 의미하고, 지배주주의 소유지분율 상승은 지배주주가 기업집단을 통해 지배하는 자본의 상대적 감소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출총제의 이러한 원리는 그 한계이기도 하다. 지배주주의 소유지분율과 기업집단의 내부지분율을 함께 낮추거나 높임으로써도 기업집단의 출자비율을 낮출 수 있으므로 기업집단의 출자비율 하락이 반드시 경제력집중의 완화나 소유지배괴리의 축소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또한 소유지분율 상승은 지배주주가 투입한 자본 대비 지배하는 자본의 비율 하락을 의미할 뿐이며, 출자비율 하락이 소유지분율 상승으로 이어지더라도 경제력집중 완화를 동반하지 않을 수 있다. 환상형 순환출자 규제 재벌의 경제력 집중과 관련하여 실제로 문제가 되는 것은 재벌총수들이 소수의 지분으로 순환출자하여 모기업, 자기업, 손자기업을 모두 지배하는 것이다. 그런데 출총제는 ‘총액’을 제한하는 제도이므로 이런 행태를 간접적으로만 규제할 수 있고 근본적으로 방지할 수는 없는 방안이다. 이런 맥락에서 거론되는 방안 중 하나가 환상형 순환출자 규제다. 민주통합당은 현재 대기업이 순환출자를 통해 마련한 기업지배권(의결권)을 10~20년에 걸쳐서 매년 10% 정도씩 줄여가는 것을 골자로 하는 규제 방안을 고민 중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통합진보당의 ‘맞춤형 재벌개혁 로드맵’에 따르면 현대차와 현대중공업이 환상형 순환출자 규제 대상이 된다. 삼성의 경우 최다법인 출자자인 에버랜드가 금융지주회사로 전환됨으로써 삼성그룹은 삼성금융그룹과 삼성전자그룹으로 분할될 것이다. 현재 55개 대기업 집단 중 16개가 모기업→자기업→손자기업→모기업 방식의 순환출자 구조를 갖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환상형 순환출자 구조가 형성되는 과정은 대략 다음과 같다. 핵심계열사 A가 대규모 유상증자를 통해 소액주주로부터 조달한 자금이 계열사 B를 거쳐 계열사 C에 출자된다. 기업인수 등을 통한 사업 확장(또는 구조조정)의 과정인데, 이때 핵심계열사 A의 지배주주는 지배권의 일정 부분을 시장의 투자자들에게 나누어 줄 수밖에 없다. 지배권이 희석되는 과정이다. 그런데 여기에서, 계열사 C가 출자받은 자금으로 소액주주가 보유하고 있는 계열사 A의 주식을 시장에서 취득한다고 하자. 계열사A에 자금을 출자한 소액주주 입장에서 보면 이는 출자자금을 회수하는 과정이다. 기업집단 내부로 출자된 자금이 최종적으로는 기업집단 밖으로 사라지는 것이다. 문제의 본질은 그 결과에서 나타난다. 소액주주가 가지고 있던 핵심 계열사 A에 대한 의결권이 계열사 C로 넘어가게 되고, 결과적으로 처음의 지배권 희석 과정은 없던 일로 되는 것이다. 이는 아무런 비용없이 계열사 간 의결권을 창출하는 것이며, 계열사 소액주주의 의결권을 인위적으로 축소시켜 지분이익을 침해하는 것이다. 요약하자면 이와 같은 환상형 순환출자의 효과는 아무런 비용없이 이뤄지는 총수의 경영권 방어인 것이다. 이로 인해 잠재적 피해를 입는 그룹은 인위적으로 지분비율이 축소된 소액주주들이고, 궁극적으로는 기업경영권 시장의 위축을 불러올 것이다. [표 4] 주요 환상형 순환출자 현황 이러한 재벌그룹의 순환출자는 대부분 1998년 이후에 이루어졌다. 이는 대규모 유상증자와 기업인수로 지배주주의 지분이 줄어들 때 소속회사 사이의 순환출자가 지배주주의 지배력을 유지하는 방법으로 사용되었다. 삼성그룹의 순환출자는 지배주주가 회사의 재산을 빼돌리고 증여세를 피하기 위한 주식거래의 결과인데, 그러한 주식거래의 목적은 지배력의 승계였다. 현대자동차그룹과 두산그룹의 순환출자도 지배주주의 지분감소에 대한 대응인 동시에 지배력 승계를 위한 선택이었다. 사실 환상형 순환출자는 상호출자금지제도를 회피하기 위한 방편이다. 현행법에서는 계열사 간 상호출자(A↔B)는 금지하고 있지만, 순환출자에 대해서는 별도의 규정을 두고 있지 않다. 따라서 현재 대기업들의 순환출자는 상호출자 금지로 생겨난 편법적인 방식이지만, 위법은 아니다. 순환출자 규제는 이러한 상호출자금지제도의 공백을 메우는 방안으로서, 기존에 공정거래법 학계에서도 도입에 큰 이견이 없었다. 다만 이것이 규제될 경우 현대자동차그룹을 비롯한 주요 재벌들의 지배구조가 근본적으로 흔들리기 때문에 이들의 로비로 아직 제도화되지 못했던 것이다. 지주회사 요건 강화 이러한 순환출자 구조에 대한 대안으로 제시된 것이 지주회사 설립·전환이다. 김대중 정부는 외환위기를 거치면서 기업지배구조의 단순․투명화, 기업경영 책임소재의 명확화, 원활한 구조조정을 통한 대기업집단의 경영효율성 제고 등의 필요성에 따라 1999년부터 지주회사의 설립․전환을 허용했다. 복잡한 순환출자 구조는 출자고리 역할을 수행하는 기업이 부실화될 경우 계열사의 부당지원 및 이로 인한 부실기업의 퇴출 경직성 등으로 시장 경쟁을 저해할 우려가 있는 반면, 지주회사 체제는 복잡한 순환출자를 단선화하여 부실기업의 신속한 퇴출이 가능하고 대기업집단의 분사화 촉진 및 기업구조조정이 용이하기 때문이다. 이후 노무현 정부는「시장개혁 3개년 로드맵」(2003.3), 「대규모기업집단시책 개편안」(2006.11) 등을 통해 지주회사 설립·전환을 촉진했다. 이어서 이명박 정부는 지주회사 전환을 원하는 회사가 전환을 용이하게 할 수 있도록 시장규율로 대체가능한 규제는 폐지 또는 완화를 추진했다. 그러나 주요 재벌들의 경우 지주회사 설립·전환에도 불구하고 실질적으로 동일인의 지배가 지속되고 있으며 경우에 따라서는 1인 지배가 더욱 강화되었다. 지배주주가 지주회사의 지분만 충분히 확보하면 기업집단 전체를 지배할 수 있고, 특히 지주회사 전환방식이 인적분할인 경우 분할받은 자회사 주식의 매각 등을 통해 지주회사 주식을 매입함으로써 지배주주의 지분율이 상승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지주회사 전환 후 소유지배괴리도가 오히려 높아지는 경우가 빈번히 발생하였다. 대표적으로 SK그룹은 1999년 SK엔론 설립을 통해 지주회사체제로의 전환하기 시작한 뒤 2007년 SK(주)를 지주회사로 전환하면서 본격적인 지주회사체제로 확대 개편했는데, 지주회사체제가 본격 도입된 이후 나타난 가장 큰 특징은 ‘소유권과 경영권의 동반 강화 및 총수(최태원)에 의한 완전 장악’이었다. 지주회사체제의 도입으로 이전의 중층적인 출자관계가 정리되어 단선적인 구조로 변화하였지만 ‘SK C&C→SK(주)→SK텔레콤→SK C&C’의 순환구조는 여전히 남아있다. 이러한 ‘소유권과 경영권의 동반 강화 및 최대주주에 의한 완전 장악’은 지주회사체제를 도입한 다른 그룹들에서도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다. LG그룹에서는 구본무가, GS그룹에서는 허창수가, CJ에서는 이재현이, 한진중공업에서는 조남호가, STX에서는 강덕수가 확고한 1인 체제를 구축하고 있다. 이들 지배주주들은 공식적으로는 지주회사의 대표이사회장이지만 지주회사체제 이전처럼 여전히 비공식적이고 비합법적인 그룹회장으로 불리고 있다. 재벌총수의 황제경영체제를 대신해서 지배구조의 투명화를 명목으로 도입된 지주회사체제가 집중성을 제어하지 못한 셈이다. 공정위 조사에 따르면, 현재 총수 있는 기업집단(38개) 중 SK 등 지주회사 체제인 13개 집단의 내부지분율은 58.52%로, 여타 25개 일반 기업집단(52.18%)보다 높다. 이들 13개 집단의 총수일가 지분율은 5.53%, 계열회사 지분율은 49.62%로 모두 일반 기업집단(각 3.97%, 46.30%)보다 높다. 그럼 이러한 결과가 발생한 원인은 무엇인가. 사실 지주회사제는 그 규제를 엄격히 적용할 경우 순환형 출자구조를 상당히 제약할 수 있는 제도다. 그러나 현행 지주회사제는 적용예외와 유예기간이 많아 실효성 없는 제도로 전락하고 말았다. 그런 점에서 ‘공정거래법상 지주회사 규정의 취지를 살려 지주회사의 요건을 강화하겠다’는 통합진보당의 방안은 헌법과의 관계나 당초 법 제정 취지에 위배되지 않는다. 하지만 지주회사로 전환한 재벌의 경우 자회사 지분율 요건과 부채비율 제한 등 지주회사 요건이 강화될 경우, 이를 충족하기 위해 자금 부담이 발생하고 결과적으로 주가 하락을 야기할 것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기타: 일감 몰아주기 근절, 중소기업 적합 업종 부활 그밖에도 재벌들은 각종 편법으로 계열사에 일감을 몰아주고 있는데, 그 폐해로는 다음이 지적되고 있다. 첫째, 재벌이 기업소모성자재·기업운영자재(MRO, 유지·보수·운영)를 납품하는 계열사들에게 일감을 몰아줌으로써 계열 외부에 있는 동종 중소기업들이 납품할 판로가 막힌다. 둘째, 일감 몰아주기는 편법 상속의 수단이 되므로 세수 상실과 경제력 분산 기회의 망실로 이어진다. 셋째, 총수일가가 자신이 소유한 시스템통합서비스(SI)나 컨설팅서비스와 같이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하는 비상장회사(conduit, 도관)를 통해 상장회사의 이익을 ‘합법적으로’ 전유함으로써 주주들에게 피해를 입힌다. 현행 공정거래법에서는 ‘상품․용역 거래를 통한 부당한 지원으로써 부당하게 특수관계인 또는 다른 회사에 대하여 상품 또는 용역을 현저히 낮거나 높은 대가로 제공하거나 현저한 규모로 제공하여 과다한 경제상 이익을 제공함으로써 특수관계인 또는 다른 회사를 지원하는 행위’를 ‘부당한 지원행위’로 규정하여 이를 규제하고 있다. 또한 사안에 따라서는 ‘정당한 이유 없이 자기의 계열회사를 유리하게 하기 위하여 가격 또는 거래조건에 관하여 현저하게 유리하거나 불리하게 하는 행위’를 ‘계열회사를 위한 차별행위’로 규정하여 규제하기도 한다. 아울러 현행 법체계에서는 공정거래법 외에도 법인세법상 부당행위계산부인, 형사상 업무상 배임(금액 특정시 액수에 따라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등에관한법률) 등으로 ‘일감 몰아주기’를 규제한다. 그런데 현실에서는 ‘현저히 낮거나 높은 대가’의 기준, 즉 정상가격을 입증해야 하나 이것이 매우 어렵기 때문에 규제가 실효를 갖기 어려웠다. 그래서 최근 공정거래법을 개정하면서 정상가격을 입증 못해도 ‘현저한 규모’로 일감을 몰아주면 규제할 있도록 했는데, 이 경우에도 역시 ‘현저하다’는 내용을 규명하기가 어렵다는 문제가 있다. 이러한 문제를 시정하기 위한 방안으로 새누리당은 공정거래법상 부당 지원 행위 요건 중 ‘현저성’ 조항을 삭제하는 방안을, 민주통합당은 공정거래법을 개정하여 “경쟁제한성에 대한 입증” 없이 중소기업이 손해배상을 요구하는 방안을, 통합진보당은 일감을 몰아준 총수일가에 증여세 또는 상속세를 부과하는 방안을 제안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공정거래 확립을 위한 법 개정안들은 현실에서 다음과 같은 한계를 지닌다. 첫째, 실제로 ‘부당지원’ 사건에서 경쟁제한성 입증이 되지 않아서 처벌되지 않은 적은 한 번도 없고 모두 ‘정상가격’ 입증 실패로 처벌되지 않은 것이므로 핵심을 잘못 짚은 방안이라고 할 수 있다. 또 상속세및증여세법상 포괄주의를 적용한다 한들 결국 정상가격 입증 문제로 귀결될 것이므로 재벌들이 제재를 회피할 가능성이 높다. 그밖에도 새누리당이나 민주통합당에서 검토 중인 중소기업 적합 업종(구 중소기업 고유 업종) 부활의 경우, 한미 FTA와 정면 충돌하므로 실제로 입법화 할 수는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재벌개혁론 비판 이상에서 검토하였듯이, 각각의 재벌개혁안들은 법·제도적 측면에서만 보더라도 고유한 한계를 갖고 있다. 새누리당이나 민주통합당의 기본 이념·노선이나 과거 행적을 감안할 때 정치적 실행가능성에 의구심이 드는 것도 당연하다(특히 한미 FTA에 대한 당론은 재벌개혁안과 직결되는 문제다). 재벌의 저항과 압력, 관료집단의 보수성, 예산 문제 등 현실적 장벽도 많을 것이다. 실현되더라도 대개 과거에 법제화되었다가 폐지·완화되었거나 검토되었지만 법제화되지 못한 방안을 (재)도입·강화하는 수준에 머물러 있기 때문에 실제 효과는 그다지 크지 않을 것이다. 통합진보당의 방안은 상대적으로 과감한 개혁조치를 포함하고 있지만, 이 역시 기존 법·제도의 틀 안에서 정책 대안을 모색한다는 점에서 양당과 근본적인 차별성을 갖는다고 볼 수는 없다. 그러나 문제의 본질은 다른 곳에 있다. 현재의 각 정당의 재벌개혁론은 공히 문제의 초점을 재벌그룹과 총수일가의 경제력 독점이나 탐욕에 맞추고 있고, 따라서 그 대안도 소유·지배구조의 개선이나 공정거래와 같은 ‘공정한 시장 경쟁의 법칙’을 정립하는 것으로 귀결되고 있다. 환언하면, 현재의 재벌개혁론은 이념적으로 경제민주화를 지향하고 이론적으로 주주가치 최대화를 추구한다는 점에서 과거 김대중 정부의 신자유주의적 재벌개혁 의제와 흡사하다. 이런 상황에서 민주노총은 최근 총선 요구안으로 ‘재벌체제의 개혁과 경제민주화 실현’을 제시하고 있다. 아래에서는 경제민주화와 금융화 측면에서 현재의 재벌개혁론을 비판한 뒤, 노동자운동이 재벌 문제와 관련해서 지녀야 할 관점을 차례로 제시한다. 경제민주화 여야를 막론하고 현재 재벌개혁 정책을 입안함에 있어서 근거로 삼는 것은 흔히 경제민주화 조항으로 일컬어지는 헌법 119조 2항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원 포인트’ 개헌을 제기하자 재벌과 보수진영에서 숫제 경제민주화 조항을 폐지하자는 역공세를 펼쳤다는 점을 상기한다면, 불과 수년 만에 상황이 반전된 셈이다. 그러나 1987년 개헌이 민주화운동과 노동자대투쟁에 대한 군사 정권의 유화조치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경제민주화 조항의 의미를 그리 과장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당시 국회개헌특위 경제분과장으로 119조 2항을 주도했던 김종인 현 새누리당 비대위원의 회고를 보더라도 이는 산업화와 민주화 이후 “정치세력이 사회조화를 위해 지나치게 강해진 경제세력을 견제하기 위한 방법”이었다. 상식과 달리 당시 제1야당인 통일민주당이 경제자유화 조항으로 불리는 1항을 입안했다는 점도 역설적이다. 경제민주화 조항과 관련하여 헌법학계 다수설과 헌법재판소 판례는 우리 헌법이 자유와 평등의 조화라는 이념을 실현하기 위해 수정자본주의 원리를 채택하고 있으며 사회적 시장경제질서(Soziale Marktwirtschaft)를 지향한다고 해석한다. ‘사회적 시장경제질서’는 “경제재의 생산과 분배가 원칙적으로 자유경쟁원칙 아래서 행하여지되, 사회적 정의를 실현하고 건강한 사회질서와 사회적 약자의 보호를 위한 한도에서는 경제에 대한 국가의 통제가 정당한 권리일 뿐 아니라 국가의 의무로 되어있는 경제헌법체제” 또는 “사유재산제의 보장과 자유경쟁을 기본원리로 하는 시장경제질서를 근간으로 하되, 사회복지·사회정의·경제민주화 등을 실현하기 위하여 부분적으로 사회주의적 계획경제를 가미한 경제질서”로 풀이된다. 헌법이 준거하는 ‘사회적 시장경제질서’가 전후 서독의 아데나워 정부 하 재건 정책의 기반이 되었던 오이켄과 뮐러-아르막 등의 경제이론을 지칭하는지는 확실치 않다. 다만 분명한 사실은, ‘사회적 시장경제론’이 헌법 해석과는 다른 차원에서 문민화 이후 일부 진보학계와 경실련 등 시민운동에 의해 진보적 대안으로 수용되었다는 점이다. 이후 ‘사회적 시장경제질서’는 김대중 정부의 경제정책 기조인 ‘민주적 시장경제’로 번안되기도 했다. 김대중 정부의 ‘민주적 시장경제론’은 김영삼 정부의 실패의 원인을 민주주의 또는 사회개혁 없는 시장경제에서 찾으면서 노사정협약을 대안으로 호도했다. 그러나 노사정협약은 정치세력화 또는 경영참여의 대가로 정리해고제·파견근로제·변형근로제와 같은 신자유주의적 노동신축화를 관철하는 기제일 뿐이었다. 이러한 노동개혁에 동반하는 재벌개혁도 실상 초민족적 자본에 의한 재벌의 인수합병이나 재벌의 지주회사 설립 허용을 통한 소유·지배구조 개편을 의미했다. 재벌의 금융화와 초민족화 1997년 위기는 1990년대 재벌의 과잉 중복 투자가 야기한 이윤율 급락에 따른 경제위기와 외환위기가 결합된 결과였다. 1998-1999년 재벌은 ‘빅딜’을 통해 과잉자본을 처리하는 동시에 자동차, 전기전자, 정보통신, 금융을 중심으로 재편을 시도한다. 이에 발맞춰 정부는 출자총액제한 완화 또는 ‘순수’지주회사 허용 같은 공정거래법 개정을 통해 재벌의 지주회사 설립·전환을 추진했다. 이러한 재벌 구조조정의 핵심은 과거 재벌을 지원하던 산업정책을 폐기하고 금융개혁을 통해 재벌을 금융화하는 데 있었다. 공기업 민영화도 소유형태의 변화보다는 주식시장을 육성하는 데 주요 목표가 있었다. 참여연대를 필두로 한 시민운동과 재벌개혁론자들은 이러한 정부의 재벌개혁을 지지하면서 ‘소액주주 운동’을 전개했다. 이들은 기업의 소유·지배구조를 선진화(미국화)함으로써 ‘재벌 해체’를 실현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미국식 법인자본의 특징은 소유자와 관리자가 분리되는 데 있는데, 그러나 법인자본이 금융화되면서 관리자는 소유자에게 종속된다. 그런 종속을 상징하는 것이 이른바 ‘주주가치의 최대화’를 주장하는 기관투자가의 주주행동주의다. 본래 ‘소액주주’란 연금기금과 투자신탁기금(mutual fund) 등 기관투자가를 의미하고 ‘소액주주 운동’은 주주가치의 최대화를 주장하는 기관투자가의 주주행동주의를 의미한다. 이렇게 부르는 이유는 기관투자가들의 목적이 기업의 인수합병을 통해서 지주회사가 되는 것이 아니라 주가 변동에 따른 차익 실현이나 배당금 분배에 있기 때문이다. 주가의 상승은 기업 인수합병과 밀접하게 연관된다. 우선 주가가 상승하면, 다른 회사에 의한 인수합병의 위험을 예방할 수 있다. 주주행동주의가 주가에 무관심한 관리자를 회유·협박하는 수단이 바로 인수합병인 것이다. 반면 유보금을 적립한 축적기금을 이용하여 다른 회사를 인수합병할 수도 있다. 주주행동주의로 인해 유보금과 축적기금이 감소하는 것이 금융화의 특징 중 하나인데, 그나마 실물적 축적이 아니라 금융적 축적에 투자하는 것이다. 인수합병에 성공하면 이윤과 이자의 차액인 기업가이득이 증가하는데, 그 결과 주가도 상승한다. 주식시장을 중심으로 금융화가 진척됨에 따라 금융법인의 소득이 빠르게 증가하고 비금융법인 내에서도 금융투자와 금융적 소득이 빠르게 증가하는 등 전체 경제에서 차지하는 금융적 축적의 규모도 크게 증가하고 있다. 금융화의 발전은 기업경영 활동에서 금융적 수익 원리를 강제하여 기업의 시장가치 극대화와 배당수익의 극대화를 강조한다. 이러한 금융화의 발전과 그것이 금융행태와 기업경영에 미치는 영향은 결국 실물부문에서 설비투자를 저하시키는 하나의 요인으로 작용한다. 금융시장 개방에 따라 국부 유출 문제도 심화되는데, 가장 중요한 메커니즘은 외국인이 주식시장을 통해 재벌을 지배하는 것이다. 1997년 이후 주식시장에서 외국인 비중은 급증하였는데, 2003-2004년 40%를 상회하면서 정점에 달한 이후 최근에는 30% 내외에서 유지되고 있다. 재벌에 국한할 경우 그 비중은 더욱 높은데, 도합 시가총액의 20%를 차지하는 삼성전자와 현대차그룹의 경우 외국인이 각각 40-50%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시가총액의 10%를 차지하는 주요 은행들도 사실상 외국인이 소유하고 있다. 외국인 지분이 증가할수록 배당액과 배당성향이 증가한다는 실증 연구 결과도 다수 있다. 더불어, 생산시설 국외이전 또는 해외직접투자가 낳는 문제점도 심각하다. 일단 생산시설의 국외 이전은 그 자체로 국내 투자와 고용에 악영향을 미친다. 기업 규모에 따른 양극화도 두드러지는데, 재벌의 해외직접투자가 국외 수요 창출이 주목적이라면 중소기업의 경우 국내 수요 충족용이 주목적이다. 국외 진출 중소기업들의 절반가량이 비용절감을, 또 20% 가량이 인력난을 그 이유로 꼽은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이들은 국민경제 외부에서 저임금 노동력을 동원하여 경영상의 위기를 회피하기 위한 방편으로 해외직접투자를 추진하고 있다. 이는 국내에서 한계상황에 몰려 경쟁력을 상실한 기업들이 퇴장하는 과정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 한편, 현지화가 진척됨에 따라 현지법인의 제3국으로의 수출이 증가하여 본국으로부터의 제3국 수출규모는 축소되는 반면(수출대체효과), 부품의 조달비용 절감을 위해 현지기업의 부품 활용도가 높아지면서 원부자재의 본국에 대한 의존도도 낮아지는 효과(수출유발효과의 저하)도 파생된다. 국내의 생산시설을 폐쇄하고 생산기지를 이전한 경우에는 국내로의 역수입을 유발하기도 한다. 재벌개혁동맹 이상의 논의를 종합해보자. 1997년 이후 한국 경제가 만성적인 저성장 상태에 머무르는 원인은 생산적 투자의 지표인 자본축적률이 매우 낮은 수준에서 정체된 것에 있다. 이는 이윤율 저하라는 기본적 요인에 더해 △인수합병과 금융자산 위주의 투자행태 △주주가치 극대화를 위한 경영행태 △해외직접투자와 같은 자본 이동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다. 자본축적률의 하락은 구조적 실업을 낳고, 이는 다시 노동의 교섭력을 약화시켜 노동소득분배율을 악화시키고 불안전 노동을 확산한다. 또한 구조조정 및 평가절하를 통해 재벌의 수출경쟁력을 확보하는 성장전략, 그리고 이를 강화하는 자유무역협정(FTA) 전략은 노동력을 신축화함으로써 저임금장시간고강도 노동의 악순환을 강화한다. 이런 사정을 염두에 두면서 민주노총의 재벌개혁 의제를 검토해보자. 민주노총 재벌개혁안은 ‘진정한 의미에서 산업경제의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것’을 기조로 하여, △재벌체제의 개혁과 경제민주화 실현 △노동자 경영 참가 활성화와 노사공동결정법 제정 △공정거래 확립과 원하청기업의 이익 공유 △대형유통점 및 SSM 영업시간 및 진입규제 등을 총대선 요구안으로 제시하고 있다. 이는 다음과 같은 문제점을 지닌다. 첫째, 재벌 체제를 둘러싼 계급적대는 결코 경제민주화라는 이념으로 수렴될 수 없다. 재벌 문제는 단순히 경제력 집중을 제어하기 위한 일부 법제도 개혁으로 환원할 수 없는, 한국 자본주의의 역사적구조적 문제다. 재벌 체제의 변화란 곧 수출-재벌 중심의 세계화 전략과 이를 지지하는 노동신축화의 전반적인 변혁을 의미한다. 이것은 첨예한 계급투쟁을 동반하지 않을 수 없다. 둘째, 총수일가나 재벌의 소유지배구조 개혁에 초점을 맞춰서는 안 된다. 한국의 재벌들은 소유지배구조 개혁의 결과 주주가치를 추구하는 성격을 갖기도 하지만 동시에 ‘경로의존성’으로 말미암아 발전주의적 특성을 유지하고 있기도 하다. 따라서 총수일가와 재벌그룹의 소유지배구조 개혁이 중요하다는 주장이 여전히 재벌개혁론의 주류를 이루고 있는데, 노동자운동이 산업자본의 금융화초민족화와 이로 인한 구조조정국부유출국외이전에 대해 대응하지 않는다면 ‘주주가치 최대화’를 지향하는 소액주주 운동과 실천적 차별성을 갖기 어려울 것이다. 가장 큰 문제는 민주노총(금속노조)의 위상에 걸맞은 운동 전략이 부재하다는 점이다. 현재 민주노총은 ‘재벌에 맞선 소액주주, 노동자, 소비자, 중소상인, 영세자영업자를 포괄하는 국민적 수준의 재벌개혁동맹’을 구축하는 데 주력하는 것 같다. 이것은 위에서 언급한 이념적이론적 한계를 반복하는 것일뿐더러 노동조합 고유의 역할을 방기한다는 점에서 심각한 문제가 있다. 단적으로, 민주노총은 대중소기업 또는 원하청 문제와 관련하여 기업간 공정거래나 상생협력이라는 담론을 수용하며 법·제도 개혁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것은 원하청 노동자 공동투쟁을 실질화하기 위한 전략으로 그 문제틀이 전면 재구성되어야 할 것이다. 물론 현재 노동자계급 내부의 격차가 확대되고 통일성이 저하되어 일종의 우회로로 정책 대안적 접근을 시도했을 수 있다. 하지만 실현 가능한 정책 대안의 함정에 빠지는 순간 운동 주체를 형성하고 조직의 기풍을 쇄신하기 위한 중장기 과제는 언제나 뒷전으로 밀려나기 십상이다. 지금부터라도 접근 방식을 바꿔야 한다. 수직적으로 위계화된 원하청구조와 노동시장의 분단구조를 바꿔내기 위한 핵심고리로서 연대임금 정책이나 교대제 개편과 관련한 실행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이러한 투쟁과 병행하여, 산업적 위계의 정점에서 업종 전체 임금 및 노동조건을 일괄 통제하는 재벌이 산별교섭에 참여하도록 조직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 끝으로, 노동자 경영참가 활성화 방안으로 제시된 독일식 노사공동결정법 제정은 신중을 기해야 할 것 같다. 이는 ‘사회적 시장경제질서’의 지평에서 제기되는 독일식 ‘이해관계자 자본주의’에 주목하는 것으로서, 독일 노동자운동의 역사에 대한 특정한 정치적 해석과 연관된다. 그러나 전후 독일의 ‘경제기적’에서 노동자운동은, 거시정책(산별노조)에서 성장·완전고용·물가안정을 목표로 ‘타협적 생산성 향상주의’(consensual productivism)에 몰두하고 미시정책(직장평의회)에서 경쟁력·생산성·수익성을 위해 ‘노동자의 책임’을 강조한다(‘독일의 재건과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수호자’로서 노동조합). 게다가 1980년대 이후 산별노조의 조직률 하락과 기업별단협의 증가로 노동조합의 분권화가 진행되는 동시에, 세계화지역화의 압력 속에서 산별노조는 ‘경쟁력 향상을 위한 코포러티즘’(competitive corporatism)에 합의하고 직장평의회는 생산설비의 국내 입지와 노동자들의 고용안정성을 보장받는 대가로 내부적 신축성에 동의한다. 역사적 기원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노사공동결정제는 1919년 독일사회민주당이 집권에 성공한 이후 평의회운동을 억압, 파괴한 결과물이라는 점에서 이념적으로도 동의하기 어렵다.
야권단일화를 위한 MB FTA 반대가 아니라 한미 FTA 폐기를 위한 지역 현장운동을 조직해야 당의 반격과 궁색하기 그지없는 민주당 3월 15일로 한미 FTA 발효일자가 발표되고, 그동안 줄곧 수세에 몰리던 새누리당이 반격에 나서면서 한미 FTA가 총선 최대 쟁점으로 새삼 떠올랐다. 지난 6년여 간의 투쟁들을 돌이켜보면, 한미 FTA의 발효는 참으로 만감이 교차하지 않을 수 없는 일이다. 지난 2006년 노무현 정부가 미국 워싱턴에서 제1차 공식협상을 시작한 날부터 따지면 만 6년이고, 2007년 4월 2일 협상 타결된 날로부터는 약 5년이 지났다. 또 지난해 11월 22일 날치기 비준으로부터는 3개월 만에 한미 FTA가 발효되기에 이른 것이다. 하지만 국회비준이 완료된 이후 발효가 개시되는 것은 기계적인 법절차에 불과하다. 문제는 정식 발효 이후, ‘날치기 비준무효 촛불집회’의 투쟁방향이 어떻게 변화해야 할 것인가이다. 코앞에 닥친 총선은 이러한 쟁점을 더욱 첨예하게 만들고 있다. 새누리당이 먼저 포문을 열었다. 민주당이 2월 초에 미국대사관에 한미 FTA 폐기 서한을 전달하자, 박근혜 대표가 “한미 FTA는 노무현 정부의 최대 업적으로, 한 번 체결된 국제협약을 이런 식으로 폐기하자는 무책임한 세력에게 나라를 맡길 수 없다”며 맹공을 퍼부은 것이다. 그러자 한명숙 대표는 “민주당의 입장은 한미 FTA 폐기가 아니라 재협상”이라고 하루 만에 말을 바꾸며 물러섰다. 기세를 잡았다고 판단한 새누리당은 2주일이 넘도록, 과거 한미 FTA 체결에 앞장섰던 한명숙 대표와 민주당 의원들의 행적과 발언을 일일이 거론하며 공세를 이어갔다. 이로써 날치기 이후 줄곧 수세에 몰린 모습이었던 새누리당은 정식 발효일을 앞두고 오랜만에 반격에 나서게 되었고, 한미 FTA는 새누리당의 선공에 의해 총선 최대쟁점으로 떠올랐다. 한미 FTA 반대 진영은 지난해 연말에 타올랐던 날치기 무효 촛불집회로 기선을 잡았지만, 여기에는 한나라당의 무리한 날치기 처리에 대한 반대여론이 포함된 것이었다. 또한 20~30%대에 불과했던 한미 FTA 반대 여론을 50% 가까이 끌어올리기는 했으나, 과반의 반대여론을 끌어 모으기 전에 날치기 무효 촛불의 기세는 꺾이고 말았다. 5:5의 비등비등한 여론전에서 새누리당은 더 이상 움츠리고만 있어선 안 된다고 판단했을 것이고, 애초에 한미 FTA 체결에 앞장섰던 민주당을 향한 정치 공세는 참으로 손쉬운 역전방안이었을 것이다. 게다가 민주당은 한미 FTA 체결에 대한 자기반성과 분명한 노선전환 없이 말을 바꾼 터라, 누가 봐도 민주당의 한미 FTA 반대는 약점투성이 표몰이용 카드에 불과했다. 아니라 다를까 새누리당이 정치공세를 시작하자 막상 민주당은 꿀 먹은 벙어리마냥 침묵과 구차한 변명으로 일관하고 있다. 민주당이 오바마 미국대통령에게 보낸 이른바 ‘한미 FTA 폐기 서한’에서 언급한 폐기는 실제로 폐기가 아니었다. 서한의 내용을 보자면, “투자자국가소송제도(ISD) 재협상을 요구하고, 미국 정부가 협상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19대 의회에서 한미FTA 폐기를 위한 모든 조치를 취하겠다”는 것이다. FTA 폐기가 아니라 실상은 ‘ISD 재협상 조건부 폐기 고려론’인 것이다. 이것은 날치기 직전에 김진표 원내대표가 한나라당 원내대표와 함께 작성했던 ‘ISD 재협상 조건부 비준동의안’과 일맥상통하는 안이다. 재협상하지 않으면 폐기를 위한 조치를 취하겠다는 애매한 의지성 문구(?)를 제외한다면, 지난해 연말에 한나라당과 야합하여 통과시킨 ‘한미 FTA 재협상 촉구 국회결의안’과도 근본적인 차이는 없다. 이 결의안에서 민주당과 새누리당이 말하는 이른바 재협상은 한미 FTA 협정문에 이미 규정되어있는 협의기구에서 보다 공정하고 효과적인 시행을 위한 논의를 진행하겠다는 것에 불과하다. MB FTA인가, 한미 FTA인가? 민주당과 새누리당의 한미 FTA에 대한 입장은 얼마나 다른가? 민주당은 한미 FTA를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이명박 정권의 한미 FTA, 2010년에 재협상한 한미 FTA를 반대한다는 말을 자주한다. 노무현 정부가 어렵게 맞춘 이익균형을 이명박 정부가 깼다는 말이다. 그러면서 민주당은 자동차관세 관련 양보협상 결과를 포함한 10여개 항목의 재재협상을 주장한다. 하지만 새누리당은 자동차부문의 양보는 큰 것이 아니고 나머지 9개 조항들은 노무현 정부가 2007년 4월에 체결한 내용 그대로라는 반론을 편다. 이 대목에 관한한 새누리당의 주장이 옳다. 2010년 자동차 관세 관련 재협상은 한미 FTA 전체를 놓고 볼 때 그리 큰 변화가 아니다. 국책연구소 10곳이 작성한 경제적 효과 분석을 보면, 재협상으로 우리나라의 자동차 분야 무역수지 흑자가 애초 협정보다 연평균 5,300만 달러 줄어들 것으로 나타난다. 특히 미국의 요구로 자동차 세이프가드(일정 물량 이상 수입이 늘어날 때 관세를 복원하는 조처)라는 ‘보호 장벽’이 도입됐다. 하지만 자동차 세이프가드 조항을 제외하고, 민주당이 재재협상을 요구하고 있는 나머지 9개 항목은 2007년 4월 노무현 정부가 체결한 내용 그대로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로 미국 경제의 한계가 드러나 금융 세이프가드 강화가 필요해졌고, 2010년 국회가 중소상공인을 보호하는 법률을 제개정해 한미 FTA와 충돌하는 국내 법률이 생겼지만 협정안 자체의 내용은 달라진 것이 없다. 나머지 조항은 모두 노무현 정부 때부터 줄곧 독소조항으로 지적돼온 것들이다. 민주당이 ‘재재협상 1호’로 꼽은 투자자국가소송제(ISD)는 중앙정부는 물론 지자체의 법령과 정책, 사법부의 판결까지 투자자가 국제중재를 제기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일찌감치 심각한 비판을 받아왔다. 그러나 당시 열린우리당의 한미 FTA 평가위원회는 ISD에 대해 “우리 제도 선진화에 기여할 것”이라고 평가했다. 서비스와 투자 분야에서 개방 폭을 확대하는 방향으로 바꿀 수는 있어도, 뒤로 되돌릴 수는 없는 역진방지 조항(래칫)이나, 주요 농축산 품목의 관세철폐 기간, 의약품 허가-특허 연계제도 역시 노무현 정부가 체결한 협정에 있던 그대로다. 아무것도 바뀐 것은 없다. 야권연대를 정당화시켜주는 화려한 명분으로 이용당하는 한미 FTA 민주당은 이러한 사실들에 대해 2008년 금융위기로 사정이 바뀌었고, 노무현 전 대통령도 퇴임 직후에 세계 금융위기로 인해 사정이 바뀌어 한미 FTA에 대한 재검토와 폐기를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고 강조한다. 하지만 2008년 금융위기로 인해 세계최강 경제대국인 미국의 지배력이 뒤바뀐 것은 아니다. 만약 민주당의 논리대로 따져보더라도, 2008년 금융위기 때문에 사정이 어려워졌기 때문에 한미 FTA를 통한 수출 증대 전략과 경제(제도) 선진화는 더욱 더 절실한 상황이다. 민주당이 자주 언급하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한미 FTA 재검토 발언 또한, 미국 측의 재협상 요구와 관련한 이명박 정권의 태도를 비판하는 수준이고, 그가 말한 재협상은 말 그대로 ‘보다 면밀한 이익타산과 신중한 추진’을 강조하는 것이다. 폐기라는 단어를 노 전 대통령이 사용한 적이 있지만, 그의 말은 “재협상을 요구하여 추진하고, 정 안되면 폐기를 검토할 수도 있겠다”는 내용이었다. 협상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하기 위해 엄포를 놓는 유능한 협상전략 차원의 언급이었을 뿐이다. 그렇다면 본질적인 입장도 크게 다르지도 않은 양당이 한미 FTA를 놓고 으르렁거리는 이유는 무엇인가? 선거 여론조사의 관점에서 보면, 한미 FTA는 한국사회의 대표적인 ‘갈등 이슈’다. 선명하게 찬반이 갈리면서, 보수 대 진보 선거 구도의 중심에서 다른 이슈들을 이끌고 여론을 움직이는 사안인 것이다. 별다른 관점과 이념 노선의 차이가 없는 보수 양당이 앞다퉈 한미 FTA를 선거 쟁점으로 밀어붙이는 것은 이 때문이다. 아군과 적군을 구별짓고, 손쉽게 지지자를 동원할 수 있는 의제이기 때문이다. 민주당의 ‘한미 FTA 폐기 서한’은 한미 FTA를 폐기하겠다는 운동전략을 반영하는 행동이 아니다. 이것은 한미 FTA라는 중심 이슈를 소재로 하는 영향력 있는 ‘정치 퍼포먼스’다. 대중들의 관심을 이끌어내면 그것으로 족한 것이다. 또 하나 중요한 것은 한미 FTA가 민주당 주도의 야권연대를 정당화시켜주는 화려한 명분이라는 사실이다. 하지만 민주당 공천심사위원의 공천기준에는 한미FTA가 존재하지 않는다. 오히려 공천심사위원회 자체가 친FTA인사들로 꾸려졌다는 내부논란이 불거지는 판국이다. 그러니 한미 FTA 찬성-협상파들이 건재함은 물론이다. 하지만 민주당은 한미 FTA 카드를 버리진 않는다. 통합진보당과 진보신당으로부터 최대한의 양보를 받아내어, 자신이 주도하는 반MB-야권연대를 달성하기 위해 한미 FTA보다 강력한 카드는 없기 때문이다. 돌이켜보면 2006년 한미 FTA 협상 당시 홍준표 의원을 비롯한 적지 않은 한나라당 의원들도 졸속협상이라는 이유로 당시 FTA 협상을 반대했었다. 그들 역시 한미 FTA를 반대했던 것이 아니라 노무현 정권을 반대했던 것이다. 원조 친미 보수집단인 새누리당이 한미 FTA를 맹신하는 것이야 인지상정이다. 하지만 박근혜 위원장이 경제민주화를 말하면서 동시에 한미 FTA같은 중대한 국가간 협정을 함부로 다루는 민주당을 성토하고 나서는 모순적인 태도는, 역시 선거 정치 퍼포먼스의 일환으로밖에 설명되지 않는다. 서민경제도 돌보면서 진정으로 나라를 걱정하고, 민주당과 달리 말을 바꾸지 않는 진정성 있는 보수, 경제를 살릴 능력 있는 정치지도자라는 이미지를 얻기 위한 목적이다. 한미 FTA가 이렇게 여야 정당간의 표몰이 쟁점으로 전락하는 사태로 말미암아 정작 한미 FTA를 둘러싼 진정한 계급투쟁의 발전은 왜곡되고 가로막힌다. 새누리당 지지자들은 한미 FTA 추진은 선, 반대는 악이라고 규정하고 있고 민주당은 정반대의 논리로 보수정당들 간의 표 대결에 한미 FTA를 동원하고 있을 뿐이다. 반MB 야권연대의 덫에 걸린 한미 FTA 투쟁과 범국민운동본부 이런 와중에 한미FTA저지범국본이 반MB-야권연대의 덫에 걸려, 한미 FTA 폐기 투쟁의 중심으로서의 위치를 스스로 잃어가고 있다. 범국본은 2012년 1월에 들어서면서 본격적인 총선 대응 사업으로 전환했다. 여전히 주말 촛불집회를 계속 개최하고 있지만, 실제 내용과 실질적인 사업기조는 이미 반MB-야권연대 총선대응에 맞춰져 있다. 올해 초 내내 숱한 내부 논란을 불러일으켰던 이른바 ‘심판운동’이 가장 대표적인 사업이다, 심판운동은 151인의 날치기 의원들을 심판하는 공천 반대운동과 총선 출마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약속운동, 온라인 유권자캠페인으로 구성된다. 최초의 논란은 여야 공천 반대 인사들의 명단 발표 문제를 둘러싸고 불거졌었다. 범국본 산하에 구성된 검증지원단은 애초에 심판자 명단을 <날치기의원 151인 + 박희태 국회의장, 정의화 부의장 2인 + 민주당 의원 7인>으로 제출했다. 이는 심판기준도 잘못됐고, 명단 규모도 지나치게 협소한 안이었다. 이 때문에 연이어 세 차례나 계속된 범국본 대표자회의에서 뜻있는 여러 단체 대표자들은 이러한 명단발표를 반대하고, 다른 기준과 질적으로 다른 총선 대응방식을 찾을 것을 제안했었다. 그것은 첫째, 심판명단 작성의 기준은 한미 FTA 날치기가 아니라 한미 FTA 폐기임을 분명히 해야 하고, 둘째 심판대상은 날치기에 참여한 151인과 7인의 민주당 야합파 의원이 아니라, 새누리당과 민주통합당이 되어야 한다는 취지였다. ‘날치기151인’과 민주당의 핵심 야합파 의원들에 대한 심판은 별도로 강조하면 될 일이지, 그들 때문에 나머지 의원들을 심판에서 제외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더욱이 한미FTA범국본이 새누리당과 민주당의 공천물갈이를 요구할 이유는 없는 일이다. 그러나 범국본 대표자회의의 논의는 별다른 결론을 내리지 못한 채, 검증지원단의 안을 다수결로 밀어붙이려는 측과 이에 반대하는 측의 논쟁으로 평행선을 그렸다. 결국 논의는 범국본 대표자회의의 다수의견 대로 검증지원단의 심판자명단을 발표하되, 심판 명단 발표 취지에 “한미 FTA를 체결한 민주당(옛 열린우리당)과 날치기를 자행한 새누리당은 심판받아야 한다”는 문구를 삽입하는 것으로 마무리 지어졌다. (범국본의 심판자 명단은 2월 16일에 1차 발표되었다.) 한미FTA범국본은 한미 FTA 밀실협상을 개시하고 폭력적으로 체결한 노무현 정권에 맞서 결성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한미FTA범국본은 날치기 이전이나 이후나 일관된 한미 FTA 폐기 입장에 근거해서, 민주당의 참여정부 FTA 원안 찬성론이나, ISD 재협상 조건부 비준찬성론 등을 비판해왔다. 그런 한미FTA범국본이 이제 와서 민주당과의 공조를 감안하여 야합파 7명 수준의 부실하기 짝이 없는 심판명단을 발표하고, 한미 FTA 폐기 입장을 분명히 할 수 없다는 것은 도무지 납득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민중운동의 우경화를 대가로 한 총선승리는 한미 FTA 폐기 투쟁의 질곡이 될 뿐 한미 FTA는 발효와 함께 계급갈등의 광범위한 쟁점들과 분리 불가능한 사안으로 바뀐다. 그런 상황에서 민주당의 진정성 없고 파퓰리즘적인 정치동원 논리와 ‘말 바꾸기 정치’는 실질적인 한미 FTA 폐기 운동을 더 어렵고 복잡하게 만드는 악영향을 끼칠 것이다. 민주당이 주도하는 여소야대 국회의 등장이 한미 FTA 폐기 운동에 다소나마 유리한 환경을 제공해줄 것이라는 기대는 막연한 바람일 뿐이다. 민주당의 전략은 MB-새누리당-박근혜보다 훨씬 더 효과적인 재협상으로 이른바 이익균형을 맞춘, 좀 더 공고하고 강력한 한미 FTA를 만드는 전략이다. 한미 FTA를 전면 폐기하기 위한 운동의 관점에서 보았을 때, 이러한 민주당과의 무분별한 정치적 연합이 우리 운동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 우려하지 않을 수 없는 일이다. 당장 새누리당의 말이 아니더라도 “일단 한 번 체결, 발효된 국가간 협정을 폐기하는 일”은 양국 간의 정치적경제적 외교관계 전반에 걸친 근본적인 전환을 염두에 두지 않으면 안 되는 일이다. 이제 한미 FTA 폐기 운동은 불평등하고 동북아시아의 평화를 위협하는 한미관계에 대한 전반적 비판과 결합해야 한다. 하지만 민주당과의 정치적 연합은 민중운동 내부로부터 이러한 급진적인 비판론을 검열하고 순화시키는 작용을 할 것이다. 또한 거듭해서 강조하거니와 한미 FTA는 단순히 상품무역과 관련한 관세면제 협정도 아니고, 양국간 국익의 균형과 불평등으로 판단할 수 있는 협정도 아니다. 자동차와 소고기 문제도 핵심이 아니다. 한미 FTA의 핵심은 경제, 사회, 문화, 금융, 서비스, 교육, 노동 등에 걸친 포괄적인 투자 및 경제제도의 광범위한 신자유주의적 개혁이다. 한미 FTA는 국익이 아니라 계급이 본질이다. 그렇기 때문에 한미 FTA는 다른 어떤 FTA와도 다른 각별한 특징들을 가지는 것이다. 이런 FTA가 정식 발효된 이후에 그것의 전면적인 폐기를 추진하는 일은 경제제도 전반의 개혁방향을 역전시키는 과제다. 가장 관련이 깊고 직접적인 부분은 공공부문의 민영화와 해외매각, 재벌규제 제도들이다. 하지만 한국전력과 발전노조 투쟁, 철도노조 투쟁으로 이어져온 공공부문 민영화 저지 투쟁들은 지난 2000년대 내내 거듭 패배하고, 집중력 있는 공동 연대운동으로 발전하는 데 실패했다. 비정규직 노동탄압의 선봉인 현대자동차와 노동조합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 삼성, 어용노조를 무기로 키워온 재벌들과의 투쟁은 척박하기 이를 데 없다. 이런 상황에서 공공부문의 민영화를 강요하고 한번 개혁된 부분을 합법적인 방식으로는 되돌리지 못하게 봉쇄하는 한미 FTA가 발효하고, 이 민영화 잔치판에 머리 검은 외국투자자로 이들 재벌이 참여할 것이고, 글로벌 스탠더드를 운운하며 온갖 규제와 노동 보호 관련 제도들을 무력화하는 공세를 펼칠 것이다. 이에 맞서 이제 한미 FTA 폐기 운동은 공공부문 민영화저지 전선의 복구와 재벌의 지배체제에 맞선 총노동 전선을 형성하기 위한 지역·현장의 운동들을 조직하는 중심으로 전환되어야 한다. MB 심판과 야권연대를 통한 총선승리(?)는 굳이 그것이 누구의 승리인지 따지지 않더라도, 전선 복구에 힘을 싣고 강화하는 흐름이 아니다. 야권연대 류의 정치적 흐름이 민중운동의 다수를 우경적인 주류화로 이탈시켜버린다면, 피폐화된 민중운동에 덩그러니 남겨진 국회의석들은 급진적인 운동 발전에 유리한 환경은커녕 민중운동의 질곡이 될 것이다. 이후 투쟁방향에 대하여: 한미 FTA 전면 폐기 기조를 명확히 하고, 실질적인 반신자유주의 전선복구에 매진해야 한다 끝으로 이후 투쟁방향을 구체화하기 위해 짚고 넘어가야 할 몇 가지 지점들을 살펴보자. 우선 2월 28일 금속노조 임시대의원대회에서 ‘한미 FTA 저지 총파업’안이 현장 발의되는 일이 있었다. 비록 과반수 결의에 9표 모자라 안건은 부결되었지만, 금속 대의원들은 47.5%의 예상치 못한 높은 지지로 3월 총파업을 요구했다. 이 일은 한미FTA범국본은 물론 금속중앙도 예상치 못했던 일이었다. 하지만 역으로 이 일은 매우 상식적인 일이었다. 지난 6년간 민주노총을 위시한 모든 민중운동은 “한미 FTA가 체결되면, 총파업에 돌입한다”, “한미 FTA 비준안이 국회에 상정되면, 총파업 총력투쟁으로 저지한다”는 결의들을 지속해왔기 때문이다. 그러니 금속 대의원들은 이번에도 당연히 “발효가 이루어지면, 뭐라도 해야 한다”는 상식적인 판단과 결의를 보여준 것이다. 물론 보름 앞으로 다가온 발효를 무산시키는 것을 목표로 한 투쟁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현장의 투쟁 의지가 부족하다는 것을 핑계로 야권연대 선거만을 유일한 대안으로 강변하는 무책임한 태도는 당장 중단되어야 한다. 3월 발효 저지 파업이 무리라면, 지금부터라도 8-9월 민주노총 파업을 한미 FTA 폐기 민중투쟁으로 확장할 수 있도록 실질적인 지역현장의 투쟁 조직사업을 시작해야 한다. 한편 3월 중에 유성기업, 쌍용차 노동자들과 ‘희망 뚜벅이’(12개 투쟁 사업장들의 공동사업단)가 여러 좌파 운동단체들과 공동으로 주요 지역별 거점 농성투쟁을 진행하기로 했다. 부르주아 선거의 구원만을 기다리기보다는, 정리해고·비정규직 철폐, 한미 FTA 폐기를 핵심기치로 반신자유주의 투쟁전선 복구를 위한 운동태세 전환을 촉구하고 조직해야 할 때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투쟁 흐름이 소기의 성과를 통해 대중적인 노동자 연대투쟁 흐름을 일궈 새로운 한미 FTA 폐기 운동으로 자리매김 되도록 해야 할 것이다. 그러한 운동 흐름 속에서 일회적인 동원사업이 아니라 실질적인 반신자유주의 전선 복구의 전망에 걸맞은 한미 FTA 폐기 운동과 정치 교육 선전 사업들을 확장시켜가야 한다. 끝으로 지난해 날치기 이후 한미 FTA 투쟁의 중심축 역할을 수행해 온 한미 FTA 범국본과 촛불집회의 변화가 필요하다. 문제는 “투쟁 없이 총선승리 없다!”로 요약되는 범국본 촛불집회의 현재 기조다. 이러한 기조는 심판과 투쟁을 주장하지만, 선거승리가 상위의 목표이고, 심판의 방법은 야권연대다. 계급적 정치역량의 강화가 아니라 반MB 야권 국회의석 확대라는 잘못된 정치적 목표를 설정한 것이다. 예컨대 지난 2월 25일 개최된 범국민대회는 통합진보당과 민주당간의 야권연대 협상 결렬을 성토하는 분위기로 가득 찼다. 원칙 없는 민주당과의 야권연대를 비판하기는커녕 민중운동이 야권연대를 애원하는 낯 뜨거운 집회였다. 이런 식이라면 한미 FTA 투쟁은 야권연대를 압박하거나 지지하기 위한 맹목적인 대중동원과 명분 쌓기용 대중동원 행사로 전락할 뿐이다. 한미 FTA 투쟁은 이러한 정치적 굴레로부터 벗어나야 한다. 국익을 위한 재협상이 아니라 전면 폐기를 명확한 기조로 다잡아야 하고, 반MB 정치 NGO들의 유권자운동낙선운동이 아니라 현장 노동자 투쟁과 민영화 저지 운동들과의 결합을 중심으로 새로운 투쟁 공간을 만들어내는 데 집중할 때다.
한미 FTA폐기를 위한 지역-현장운동을 조직해야 할 때 3월15일로 한미 FTA 발효일자가 발표되고, 그동안 줄곧 수세에 몰리던 새누리당이 반격에 나서면서 한미 FTA가 총선 최대 쟁점으로 새삼 떠올랐다. 지난해 11월 22일 날치기 비준 이후 발효가 개시되는 일은 단순 법절차에 불과한 수순이라고 본다면, 문제는 발효 이후 그동안 <날치기 비준무효 촛불집회>중심의 한미 FTA 투쟁이 어떻게 변화해야 할 것인가이다. 코앞에 닥친 총선은 이러한 쟁점을 더욱 첨예하게 만들고 있다. 새누리당의 반격과 궁색하기 그지없는 민주당 새누리당이 먼저 포문을 열었다. 민주당이 2월 초 미국대사관에 한미 FTA 폐기 서한을 전달하자, 박근혜대표가 “한미 FTA는 노무현 정부의 최대 업적으로, 한번 체결된 국제협약을 이런 식으로 폐기하자는 무책임한 세력에게 나라를 맡길 수 없다”며 맹공을 퍼부은 것이다. 그러자 한명숙 대표는 “민주당의 입장은 한미 FTA 폐기가 아니라 재협상”이라고 하루 만에 말을 바꾸며 물러섰다. 기세를 잡았다고 판단한 새누리당은 2주가 넘도록, 한미 FTA 체결에 앞장섰던 한명숙 대표와 민주당 의원들의 과거 행적과 발언들을 일일이 거론하며 공세를 이어갔다. 반면 민주당의 대응은 궁색하기 그지없는 형편이다. 이로써 날치기 이후 줄 곳 수세에 몰린 모습이었던 새누리당은 정식 발효를 앞두고 오랜만에 반격에 나서게 되었고, 한미 FTA는 새누리당의 선공에 의해 총선 최대쟁점으로 떠올랐다. 하지만 정작 민주당은 한미 FTA를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이명박 정부의 한미 FTA, 2010년에 재협상된 MB FTA를 반대할 따름이다. 노무현 정부가 어렵게 맞춘 이익균형을 이명박정부가 깼다는 근거다. 하지만 민주당이 재협상을 요구하는 10여 개 항목들 중 MB가 추가한 자동차부문의 양보는 큰 비중의 사안이 아니다. 또한 나머지 9개 조항들은 노무현 정부가 2007년 4월에 체결한 내용 그대로다. 투자자-국가 소송제(ISD), 역진방지 조항(래칫), 주요 농축산 품목의 관세철폐 기간, 의약품 허가-특허 연계제 등 핵심 독소조항들은 노무현 정부가 체결한 협정에 있던 그대로다. 아무것도 바뀐 것은 없다. 야권단일화 정당화 명분으로 이용당하는 한미 FTA 그럼에도 불구하고 별다른 관점과 이념노선의 차이가 없는 보수양당이 앞 다퉈 한미 FTA를 선거 쟁점으로 제기하는 것은 아군과 적군을 구별 짓고 손쉽게 지지자를 동원할 수 있는 의제이기 때문이다. 한미 FTA는 선거 여론조사 기관에서 흔히 말하는 대표적 ‘갈등이슈’인 셈이다. 그런 점에서 민주당의 한미 FTA 폐기 서한은 실제로 한미 FTA를 폐기시키겠다는 운동 전략이 아니라, 한미 FTA라는 갈등이슈를 소재로 하는 영향력 있는 ‘정치 퍼포먼스’다. 대중들의 관심을 이끌어내면 그것으로 족한 것이다. 새누리당 박근혜 위원장이 경제민주화를 말하면서 동시에 한미 FTA같은 중대한 국가 간 협정을 함부로 다루는 민주당을 성토하고 나서는 모순적인 태도 역시 선거 정치 퍼포먼스의 일환으로 밖에 설명되지 않는다. 서민경제도 돌보면서 진정으로 나라를 걱정하고, 민주당과 달리 말을 바꾸지 않는 진정성 있는 보수, 경제를 살릴 능력 있는 정치지도자라는 이미지를 얻기 위한 목적이다. 또한 중요한 것은 한미 FTA가 민주당 주도의 야권연대를 정당화시켜주는 화려한 명분으로 이용된다는 점이다. 민주당의 공천기준에는 한미 FTA가 존재하지 않으며, 오히려 공천심사위원회 자체가 친 FTA 인사들로 꾸려졌다는 내부논란이 불거지는 상황이다. 하지만 민주당은 한미 FTA 카드를 버리지는 않는다. 통합진보당과 진보신당으로부터 최대한의 양보를 받아내어, 자신이 주도하는 반MB-야권연대를 달성하기 위해 한미 FTA보다 강력한 카드는 없기 때문이다. 반MB-야권연대의 덫에 걸린 한미 FTA투쟁과 범국민운동본부 한미 FTA가 이렇게 여야 정당 간 표몰이 쟁점으로 전락하는 사태로 말미암아 정작 한미 FTA를 둘러싼 진정한 계급투쟁의 발전은 왜곡되고 가로막힌다. 한미 FTA 범국민운동본부(이하 범국본)는 반MB-야권연대의 덫에 걸려 한미 FTA 폐기투쟁의 중심으로서의 위치를 스스로 잊어가고 있다. 범국본은 주말 촛불집회를 계속 개최하고 있지만, 집회내용과 실질적인 사업기조는 이미 반MB-야권연대 총선대응으로 변질되었다. 올 초 범국본 내 심각한 논란을 불러일으키며 진행된 이른바 ‘심판운동’은 야권연대 총선대응 사업기조를 보여주는 가장 대표적인 사업이다. 최초의 논란은 여야정당의 공천반대인사 명단발표 문제로 불거졌다. 범국본 산하에 구성된 검증지원단은 심판자 명단을 ‘날치기의원 151인, 국회의장, 부의장 2인, 민주당의원 7인’으로 제출했다. 그러나 이는 잘못된 기준에 따라 협소하게 심판대상자를 선정한 안이었다. 범국본 내 여러 단체 대표자들은 이러한 명단발표를 반대하고, 다른 기준과 질적으로 다른 총선대응방식을 찾을 것을 제안했다. 첫째, 심판명단 작성의 기준은 한미 FTA 날치기가 아니라 한미 FTA 폐기임을 분명히 해야 하고 둘째, 심판대상은 날치기에 참여한 151인과 7인의 민주당 야합파 의원이 아니라 새누리당과 민주통합당이 되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날치기151인’과 민주당의 핵심 야합파 의원들에 대한 심판은 별도로 강조하면 될 일이지, 그들 때문에 나머지 의원들을 심판에서 제외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범국본 대표자회의의 논의는 별다른 결론을 내리지 못한 채, 검증지원단의 안을 다수결로 밀어붙이려는 측과 이에 반대하는 측의 논쟁으로 평행선을 그렸다. 결국 논의는 범국본 대표자회의의 다수의견 대로 검증지원단의 심판자명단을 발표하되, 심판명단발표 취지에 “한미 FTA를 체결한 민주당(옛 열린우리당)과 날치기를 자행한 새누리당은 심판받아야 한다”는 문구를 삽입하는 것으로 마무리 지어졌다. (범국본의 심판자명단은 2월16일에 1차 발표되었다.) 범국본은 밀실협상을 통해 한미 FTA를 폭력적으로 체결한 노무현 정부에 맞서 결성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범국본은 날치기 이전이나 이후나 일관된 한미 FTA 폐기 입장에 근거해서 민주당의 참여정부 FTA 원안 찬성론이나, ISD 재협상 조건부 비준찬성론 등을 비판해왔다. 그런 범국본이 이제 와서 민주당과의 공조를 감안하여 야합파 7명 수준의 부실하기 짝이 없는 심판명단을 발표하고, 한미 FTA 폐기 입장을 분명히 할 수 없다는 것은 결코 납득할 수 없다. 한미 FTA 전면 폐기 기조를 명확히 하고, 지역-현장운동을 조직해야 할 때 한미 FTA는 계급갈등의 광범위한 쟁점들과 분리 불가능한 사안이다. 한미 FTA는 단순히 상품무역과 관련한 관세면제 협정도 아니고, 양국 간 국익의 균형 문제로 접근할 수 있는 협정도 아니다. 자동차와 소고기 문제도 핵심이 아니다. 한미 FTA의 핵심은 경제, 사회, 문화, 금융, 서비스, 교육, 노동 등에 걸친 포괄적인 경제제도의 광범위한 신자유주의적 개혁이다. “일단 한번 체결-발효된 국가간 협정을 폐기하는 일”은 양국 간의 정치, 경제, 외교관계 전반에 걸친 근본적인 전환을 염두에 두어야 하는 일이다. 가령 한미 FTA 폐기는 동북아시아의 평화를 위협하는 한미동맹의 근본적 전환과 결합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미 FTA가 민주당의 진정성 없는 선거용 퍼포먼스 정치에 활용되고 범국본에 야권연대를 목표로 하는 사업기조가 삽입되면서, 한미 FTA 폐기운동은 더욱 어렵고 복잡한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한미 FTA 폐기가 한국 사회의 근본적 변혁을 의미한다는 점을 명확히 하고 새롭게 아래로부터의 운동을 모색해야할 때이다. 경제제도 전반의 근본적 전환에 있어 가장 직접적인 부분은 공공부문의 민영화와 해외매각, 재벌규제 제도들이다. 하지만 한국전력과 발전노조 투쟁, 철도노조 투쟁으로 이어져온 공공부문 민영화저지 투쟁은 지난 2000년대 내내 거듭해서 패배하고, 집중력 있는 공동연대운동으로 발전하는데 실패했다. 비정규직 노동탄압의 선봉인 현대자동차와 노동조합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 삼성, 어용노조가 지배하는 재벌들과의 투쟁은 더욱더 어려운 처지에 놓여있다. 이런 상황에서 공공부문을 추가적으로 민영화하고 한번 개혁된 부분을 합법적인 방식으로는 되돌리지 못하도록 봉쇄하는 한미 FTA가 발효되면, 이 민영화 잔치판에 머리 검은 외국투자자로 재벌이 참여하여 각종 규제와 노동권 관련 제도들을 무력화하는 공세를 펼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한미 FTA 폐기운동은 공공부문 민영화저지 운동전선의 재건과 재벌의 지배체제에 맞선 총노동 전선을 구축하기 위한 지역-현장의 운동을 중심으로 새롭게 건설되어야 한다. “투쟁 없이 총선승리 없다!”는 현재 범국본 촛불집회의 기조는 야권연대를 압박하거나 지지하기 위한 대중동원과 명분 쌓기로 기능할 뿐이다. 한미 FTA투쟁은 이러한 정치적 굴레로부터 벗어나야 한다. 국익을 위한 재협상이 아니라 전면폐기를 명확한 기조로 다잡아야 하고, 반MB 유권자운동-낙선운동이 아니라 현장 노동자투쟁과 민영화저지 운동들을 중심으로 새로운 투쟁 공간을 만들어내는데 집중할 때다.
[소책자] 2012년 총대선, 민주노총 정치방침 비판 10문 10답
[%=박스1%] 2012년은 세계 자본주의의 구조적 위기가 심화하고 한반도 불확실성이 확대되는 가운데 국내 정치권력이 재편되는 격동의 시기다. 그러나 민중운동은 침체와 무기력 속에 이전 집권세력이 주도하는 ‘반한나라당 정권교체’에 종속되며 이념과 정체성의 위기를 겪고 있다. [%=사진1%] 세계 경제의 구조적 위기 심화 2007-09년 미국발 금융위기의 장기적 원인은 1970년대 이후 자본생산성 및 이윤율의 장기적 하락 추세다. 중기적 원인은 1970년대의 ‘징후적 위기’에 대한 반작용으로 출현한 금융세계화와 이중적자다. 이에 따라 1990년대와 2000년대 자본생산성 및 이윤율이 얼마간 회복되면서 ‘대완화’가 발생하지만, 결국 금융세계화가 야기한 금융혁신과 신용의 증권화가 이번 금융위기의 단기적 원인으로 작용했다. 2007-09년 금융위기는 실물경기의 침체로 파급되면서 성장 및 고용·임금의 후퇴를 낳았다. 금융위기가 은행위기를 거쳐 대불황으로 확산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각국 정부가 취한 통화·재정정책의 결과로 2009-11년에는 세계적인 재정위기가 발생했다. 특히 유럽연합(EU)은 주변부에서 발발한 재정위기가 중심부로 전염되면서 현재 세계 경제위기의 핵으로 부상하는 중이다. 미국도 적자재정정책과 이를 지지하는 수량완화정책을 통해 위기를 일시적으로 진정시켰지만, 그 후과로 2011년 들어 재정위기 위험이 제기되며 2012년 경기침체 가능성이 다시 높아지고 있다. 유럽 재정위기는 임시방편을 통해 일시적으로 진정되다가 다시 악화되는 악순환을 그릴 것으로 예상된다. 이 과정에서 일부 국가가 유로존을 이탈하거나 심지어 유로존이 붕괴할 가능성도 더욱 커질 것이다. 세계 교역의 1/4, 생산의 1/5을 차지하는 유럽의 경기침체가 장기화함에 따라 세계 경제의 위축은 불가피하다. 재정위기와 은행위기의 상호작용 속에서 유럽 은행들이 해외 투자자금을 회수할 경우 세계적인 신용경색이 발생할 가능성도 있다. 한국 경제는 수출의 10%, 외국인투자의 30% 가량을 차지하는 유럽의 위기가 심화·확산될 경우 큰 타격을 입을 것이 분명하다. 미국의 경우 2011년 실물경기 회복세의 둔화, 특히 장기에 걸친 고용 및 주택시장 부진 속에서 재정건전성의 악화와 유럽 재정위기의 영향으로 경기재침체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미국 경제가 침체에 빠질 경우 금융연계와 무역연계를 통해 전 세계에 큰 충격이 미칠 것이다. 유럽과 마찬가지로 미국에 대한 무역의존도와 금융연계가 강한 한국 경제도 그 영향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또 중국도 대내외 위험 요인이 불거지면서 경착륙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중국은 저임금 기반 가공무역을 통해 세계 공급사슬에서 최종공급자로 기능하는 한편, 무역흑자로 벌어들인 외화를 다시 국외에 투자하는 최종대부자로 기능하면서 과거 세계 경제위기 시 안전판 역할을 담당했는데, 오히려 현재는 중국이 세계 경제 불확실성의 또 다른 원천으로 기능할 가능성이 높아진 셈이다. 동북아 국제질서의 변화와 한반도 불안정성의 고조 유럽의 위기와 대조적으로 세계 경제의 중심축으로 부상한 아시아 태평양 지역에서 자신의 헤게모니를 유지·확대하는 것은 경제위기에 처한 미국에게 사활적인 과제다. 미국으로서는 경기침체에 대비하여 금융과 함께 이른바 지식기반경제의 다른 한 축을 구성하는 비즈니스서비스를 중심으로 수출주도 성장을 달성하고, 이를 위해 아시아태평양자유무역지대(FTAAP)를 건설하는 것이 필수적 과제로 대두된다. 중국의 군사력 증강, 북한의 핵무기 보유 등 역내 안보 불안도 미국의 아시아 재관여의 빌미가 되고 있다. 미국은 이라크 전쟁 종전 선언과 아프가니스탄 철군을 통해 대외 전략의 무게중심을 유럽이나 중동에서 아시아 태평양으로 옮길 수 있는 여지를 마련한 상태다. 게다가 올해 대선을 앞두고 있는 상황에서 경제와 안보 문제의 동시적 해결을 위해 공세적인 아시아 전략을 펼쳐야 할 국내 정치적 요인도 결부되어 있다. 현재 수출 달러 환류 메커니즘으로 특징지어지는 미중 관계는 서로의 전략적 이해관계가 맞물려있기 때문에 갈등이 조정되고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쌍방의 이해관계가 상충할 수밖에 없어 잠재적인 갈등이 확대되는 형세에 있다. 한국은 미국의 아시아 태평양 전략에 적극 조응하여 한미동맹을 더욱 공고화하고 있다. 이는 미국의 FTAAP 구상의 시발점으로서 한미 FTA가 비준된 것과 함께 해외주둔미군재배치계획(GPR)에 따라 주한미군사령부가 한국사령부(KORCOM)로 재편되는 것에서 단적으로 확인된다. 정부는 한미 FTA 비준으로 ‘한미동맹은 정치·안보동맹에 경제동맹이 더해져 다원적·포괄적 동맹으로 진화했다’고 평가한다. 군사 안보라는 ‘평화와 안정의 축’과 경제협력이라는 ‘번영과 발전의 축’이라는 두 개의 축을 중심으로 한미관계가 운영되고 발전하는 새로운 틀을 갖추게 되었다는 해석이다. 또 한국은 미국의 후원 아래 2012년 3월 서울에서 2차 핵안보정상회의를 주최할 예정인데, 이것이 미국의 북핵 관리 전략에 조응하는 것임은 물론이다. 이런 상황에서 2011년 말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사망이라는 돌발 변수가 발생하였다. 일단 대다수 전문가들은 북한이 순조롭게 집단지도체제로 이행하고, 상당 기간 동안 내부 정치적 안정화에 주력하고, 경제난 해결을 위해 개혁·개방에 나설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하고 있다. 중국이 김정은 후계 체제를 인정한 것도 안정화를 예상케 하는 대목이다. 하지만 집단지도체제 내부에서 갈등이 발생할 가능성은 항상 열려 있다. 미국이 대북 정책을 재검토하는 데에도 상당한 시일이 소요될 것이므로 북미 관계는 한동안 교착 상태에 머물 것이다. 기본적으로 한미의 북핵 포기 전략이 유지되는 상황에서 강성대국 원년과 체제 교체를 맞는 북한이 공세적 전술을 구사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한국 경제의 구조적 모순과 이명박 정부의 친재벌-반노동 정책 한국 경제는 1997-98년 경제위기·외환위기 이후 저성장 국면으로 진입한 상황에서 금융자유화와 구조조정·평가절하와 같은 수출-재벌 주도 세계화를 강력하게 추진했다. 금융자유화와 수출-재벌 주도 성장전략, 그리고 이를 종합하는 FTA 전략은 투자활성화와 수출경쟁력을 위해 노동력을 신축화함으로써 저임금·장시간·고강도 노동의 악순환을 강화한다. 또 무역의존도와 금융개방도를 심화시켜 국민경제를 세계 경제위기의 충격에 대단히 취약하게 만든다. 단적으로, 2007-09년 금융위기 당시 한국의 환율 및 주가 변동폭과 실질임금 삭감률은 세계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 이명박 정부의 친재벌-반노동 정책은 세계 경제위기의 격랑 속에서 크게 실패했을 뿐만 아니라 이전부터 누적되어온 사회저변의 모순을 심화하였다. 첫째, 이명박 정부의 집권 5년(2012년 전망치 포함) 경제성장 실적을 단순 평균하면 3.1%에 불과하다. 이는 자신의 공약이었던 7%는 물론이거니와 ‘잃어버린 10년’이라고 그토록 비판했던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실적(각각 5.0%, 4.3%)에도 미달하는 것이다. 둘째, 경제위기 아래 고용도 악화되었다. 잠재실업자와 불완전취업자(부분실업)를 포함하는 확장실업률은 공식실업률의 2-3배에 달하는 8-10%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 특히 경제위기 하에서 여성·청년, 중소기업·자영업 등 취약계층이 집중적인 타격을 입었다. 셋째, 명목임금인상률에 물가인상률을 반영한 실질임금인상률도 대폭 악화되었다(2007년 3.0%, 2008년 -8.5%, 2009년 -0.1%, 2010년 3.8%, 2011년 -3.5%). 그 결과 노동소득분배율은 2007년 56.7%에서 2010년 52.5%까지 하락했다. 넷째, 조세 감면, 규제 완화, 개발 확대를 통해 건설 및 부동산 경기를 부양하겠다는 정부 여당의 발상은 용산 참사와 4대강 개발로 상징되는 거대한 재앙을 낳았다. 부채로 주택 구입을 장려하는 정부의 금융·부동산 정책은 가계부채 급증의 주요 원인이 되기도 했다. 이렇듯 한국 경제는 신자유주의 정책개혁의 폐해가 누적된 상황에서 2012년 세계 경제위기의 영향으로 다시 한 번 심각한 위기를 경험할 것으로 예상된다. 무역의존도가 높고 금융개방도가 높은 한국 경제가 세계 경기침체와 국제 금융시장 불안에 따른 영향으로 수출이 둔화하고 자본유출입 변동성이 확대될 가능성이 크다. 그런데 정부의 경제위기 대책은 중기적으로 재정건전화 기조를 유지하면서 FTA 글로벌 네트워크 구상과 노동신축화 법제화를 강화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정부는 ‘위기일수록 대외 개방을 적극 추진하고 무역 장벽을 걷어내야 국가간 장벽이 희미해진 글로벌 시대에 새로운 부를 창출할 수 있다’며 한미FTA 글로벌 네트워크 전략을 보다 공세적으로 추진하려 한다. 정부의 노동신축화 정책은 정리해고제와 같은 고용량의 신축화와 파견제·기간제와 같은 고용형태의 신축화를 거쳐, 이제 ‘일자리 나누기’라는 외피를 쓴 시간제를 통해 임금 및 노동시간 신축화로 진화하고 있다. 정치 위기와 총대선 지형 정부 여당은 경제위기로 인한 민심 이반과 각종 실정·부패로 집권 하반기 레임덕에 빠진 상태다. 그 이유는 반민주적·억압적 통치 스타일과 남북관계의 악화라는 여러 요인들도 있겠지만, 위에서 언급했듯이 이명박-한나라당의 ‘747 공약’과 ‘뉴타운 공약’과 같은 장밋빛 경제성장 전망이 부메랑이 되어 스스로에게 치명타를 가했다는 사실을 핵심 요인으로 꼽을 수 있다. 서울시장 보궐선거 패배 이후 한미 FTA 비준안 날치기 통과의 후과와 선거 개입 의혹 등 각종 권력형 비리가 터지며 대대적인 위기에 봉착한 한나라당은, 박근혜 전 대표가 전권을 행사하는 비상대책위원회를 구성하여 사태 수습에 나섰다. 비대위는 정책적으로는 복지 공약을 보강하면서 중도적 이미지를 강화하고 조직적으로는 외부 인사 영입, 개방형 국민경선제 등의 방안을 도입하여 재창당 수준의 인적 쇄신을 감행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확실한 미래권력’을 중심으로 형성된 한나라당의 구심력이 급격히 약해진 반면 당내 친박계를 제외한 여타 계파의 원심력이 확대되고 있다. 총선을 앞둔 시점에서 계파 간 이해 갈등을 조정하기가 쉽지 않을뿐더러 총선에서 패배할 경우 내부 분열이 확대될 가능성도 있다. 민주통합당으로 대표되는 전 집권세력은 위기의 책임을 현 정부 여당에게 전가하는 인민주의적 정치공세를 강화하고 있다. 민주당은 12월 (‘혁신과 통합’의 후신인) 시민통합당과 한국노총과 통합하여 민주통합당으로 재편하였다. 동시에 진보정당을 포함하는 범야권공조를 통해 한나라당과 1:1 구도를 만들면 총대선 승리가 가능하다는 구상 하에 대여 공세를 강화하고 있다. 시민단체와 한국노총의 합류로 민주통합당은 이전에 비해 진보적 이미지를 강화하고 있지만, 이들이 제시할 개혁 의제의 폭과 수위는 대단히 협소할 것이다. 조직적 특성으로 보더라도 민주통합당은 정당 외부 전문가들의 참여와 국민경선제 등을 통해 선거승리와 유권자 전반의 동원에 주력하는 포괄정당적, 선거전문가정당적 성격을 띤다. 역사적으로 민주통합당이 무수한 이합집산을 반복했다는 점은 이들의 이념적·조직적 토대가 대단히 부실하고 지지층의 휘발성이 강하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하지만 반복, 심화하는 경제위기 속에서 기성 정치세력에 대한 대중의 불신은 현재 반한나라당-비민주당을 상징하는 ‘안철수 돌풍’으로 나타나고 있다. ‘안철수 돌풍’은 정당을 기반으로 삼지 않더라도 대중적 명망과 미디어의 힘을 활용하여 선거 자금과 운동원을 조직할 수 있는 정치적 토양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안철수 돌풍’은 그 실체와 무관하게 한국 정치의 이념적·조직적 취약성을 반영한다. 이런 측면에서 안철수 원장이 ‘정치의 본질은 행정’이라고 언급한 점도 특기할 만하다. 정치 위기의 중요한 증후 중 하나는 사회적 갈등의 대의 과정이자 집단적 운동으로서 정치가 행정이나 치안과 동일시되는 것이다. 일단 안철수 원장이 단호하게 신당 창당설을 부인함에 따라 총선은 현재 구도대로 치러질 가능성이 크지만, 신당론의 불씨는 완전히 사그라지지 않고 있다. 그가 직접 총선과 대선에 출마하지는 않더라도 지난 서울시장 선거에서 그랬듯이 간접적으로 선거에 개입하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한 상황이다. 통합진보당으로 대표되는 민중운동 주류가 총선과 대선에서 원내교섭단체 진출과 연립정부 구성에 몰두할 경우 신자유주의 세력과의 전면적 타협과 양보는 불가피하다. 계급타협 속에서 이러한 정당은 자신의 정치적 기반을 스스로 침식할 수밖에 없고, 이는 다시 이념 및 노선의 우경화와 선거정치의 빌미를 제공한다. 특히 세계 경제위기가 심화되는 현 정세에서 통합진보당이 만에 하나 연립정부에 참여할 경우, 이는 그로 표상되는 민중운동이 집권세력의 정치적 책임을 공동 부담해야 한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특히 민주노총이 통합진보당을 배타적으로 지지한다면 이는 향후 노동자운동의 주류가 미국식 자유주의(민주당)-노동자운동 공조로 재편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경제위기와 정치위기에 대한 민중적 대안의 건설이 점점 더 멀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민중운동이 야권 단일화 프레임과 구별되는 독자적인 정치적·조직적 전망을 제시하지 못한다면 총대선 국면에서 범야권의 일부로 흡수 통합되는 것은 시간문제다. 민중운동의 대응 이상의 분석을 요약하면서 2012년 민중운동의 투쟁 방향을 도출해보자. 첫째, 2012년 세계경제는 미국의 경기침체 가능성 고조와 유럽의 재정위기 확산, 중국의 경착륙 위험 등으로 대단히 심각한 위기를 경험할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 세계적인 차원에서 반복적으로 확대 재생산되는 경제위기는 세계화된 금융연계와 신자유주의 정책의 모순이 폭발한 결과로서, 일시적인 순환적 위기가 아니라 장기적인 구조적 위기의 성격을 갖는다. 무역의존도와 금융개방도가 높은 한국 경제는 세계 경제위기가 심화할 경우 직접적인 타격을 입을 것이다. 정권 말기 레임덕이 가속화하는 가운데 여당이 복지 공약을 강화하고 정부가 감세정책을 일부 철회했지만, 재벌주도 성장 및 노동력 관리 기조는 여전히 유지되고 있다. 그 결과 정부의 경제위기 대응은 중기적으로 재정건전화 기조를 이어가는 가운데 FTA 글로벌 네트워크 전략과 노동신축화 법제를 추진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자본은 긴축경영 기조 속에 임금을 억제하고 고용을 축소하면서 노동자에게 위기 비용을 전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민중운동은 거시적 수준에서 금융자유화와 노동신축화를 주축으로 경제위기를 극복하려는 정부의 신자유주의적 정책기조를 전면 비판해야 한다. △한미 FTA를 필두로 하는 FTA 글로벌 네트워크 전략 비판 △자본시장통합법 개정안을 비롯하여 금융거품과 부실을 양산하는 금융자유화 조치 반대 △국가고용전략 2020 이후 제출되고 있는 각종 노동신축화 법제 반대 △노동기본권을 무력화하는 현행 노조법의 전면 개정 등이 당면 주요 과제다. 둘째, 미국은 경상적자 해소책으로 중국 등 신흥국의 환율유연성 제고와 자국의 서비스산업 수출 주도 정책 전환을 강조하며 한미FTA 이후 아시아태평양자유무역지대(FTAAP) 구상을 구체화하고 있다. 수출 달러 환류 메커니즘으로 특징지어지는 미중 관계는 ‘미중 전략 및 경제 대화’(G2)를 통해 이해관계가 조정되고 있지만, 그와 동시에 잠재적인 정치·경제적 갈등이 심화되는 양상이다. 이는 최근 미국의 ‘태평양 세기’ 구상에서 드러나듯이 미국의 사활적 이익이 걸린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해외주둔미군재배치계획(GPR)의 수정과 전력 증강으로 귀결되고 있다. 천안함-연평도 사태를 거치며 군사적 긴장 상태가 한층 고조된 한반도에서는 북한 체제의 변화로 불확실성이 확대됐다. 당분간 조정 국면을 맞겠지만, 기본적으로 한미의 북핵 포기 전략이 유지되고 2012년 강성대국 원년과 체제 교체를 맞는 북한의 공세가 충돌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민중운동은 미국의 아시아·태평양 전략과 한국의 한미동맹 강화 기조가 동북아와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을 고조한다는 점을 명확히 폭로하면서 반전평화 운동을 적극 전개해야 한다. △핵안보정상회의 비판 △평택 미군기지, 제주 해군기지를 비롯한 주둔미군 재배치 계획에 대한 비판 △한국의 전력 증강 사업 비판 등이 주요 과제다. 셋째, 고용·임금과 민중생존권을 쟁취하기 위해 총노동 전선을 구축해야 한다. 정부가 제기하는 노동시간 단축 방안은 실상 노동시간을 신축화하여 단시간·저임금·비정규 노동을 양산하는 효과를 낳을 것이다. 이러한 노동시간 단축 방안의 본질을 정확히 비판하면서, 이전부터 금속노조가 주장해온 주간연속2교대제와 야간노동철폐 투쟁에서 실질적인 성과를 쟁취하기 위한 구체적 전략을 모색해야 한다. 그동안 실질임금 하락폭이 컸고 올해 선거라는 정치 일정도 있어서 임금인상 요구 관철이 상대적으로 쉬울 수도 있지만, 교섭력이 취약한 부문은 경제위기 여파가 커질 경우 여전히 실질임금 삭감이 우려된다. 또 경영난을 이유로 물량이나 생산기지를 국외로 이전하려는 기업도 늘어날 것이다. 총연맹 수준에서는 노동자계급 전반의 사정 악화와 함께 내부 격차의 확대를 감안하여 연대임금 정책을 적극 모색할 필요가 있다. 산별연맹 수준에서는 산업적 위계의 정점이자 임금협상의 기준이 되는 주요 완성차 대기업 노동조합들이 산별교섭에 동참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또 3·8 여성의날과 연계한 공공운수노조서울경인지부의 대학비정규직 집단교섭, 공단 차원의 전략조직화와 연계한 금속노조서울남부지회의 집단교섭도 계속해서 발전시켜야 한다. 쌍용자동차·한진중공업 투쟁으로 부상한 정리해고 이슈를 진전시키고 사내하청·특수고용 등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을 확대하는 것도 중요한 과제다. 경제위기에 사각지대로 몰리게 될 민중들의 기초생활권을 쟁취하기 위한 투쟁도 중요하다. 복지 정책의 수혜자로서 정책적 요구에 매몰되기보다는 사회적 권리의 주체로서 대중 저항 주체 형성에 주력하는 것이 중요하다. 넷째, 경제위기와 민심이반을 바탕으로 2010년 지방선거와 2011년 상하반기 재보궐 선거에서 승리한 야권은 민중운동의 일부를 포섭하는 정당통합과 선거연합을 통해 다가올 총선·대선에서 반한나라당 공세를 지속할 전망이다. 만성적 경제위기를 배경으로 현직의 실패와 정당의 위기가 반복되고 있는데, 반한나라당-비민주당 무당파를 상징하는 ‘안철수 돌풍’은 한국 정치의 근본적 불안정성을 의미한다. 민중운동의 이념적·조직적 위기를 반영하는 통합진보당의 등장 및 이들의 민주통합당과의 선거 제휴 속에서 민중운동 전반의 주류화가 심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의 정세는 향후 대중운동을 재건하여 반신자유주의 전선을 구축하기 위한 기초를 유실하지 않기 위한 각고의 노력을 요구한다. 민중운동 좌파는 전선의 유실과 진보정당 및 노동조합의 우경화를 저지하고 향후 민중운동의 발전적 재편을 추동하기 위해 상호 긴밀히 공조해야 한다. 나아가 국제 사회운동의 경제위기 대응에 대해 주의 깊은 관찰과 연대가 필요하다. 국제적 수준에서 보면 2010-11년 유럽 긴축반대 운동, 2011년 상반기 중동 및 북아프리카 민주화 혁명, 2011년 하반기 미국 월스트리트 점령 운동 등 경제위기에 맞서 투쟁이 이어지고 있지만, 이것이 한동안 추동력을 상실한 대안세계화 운동의 부활의 계기가 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자본주의의 체계적 위기에 맞서 국제적 수준에서 민중적 대안을 발전시켜 나가는 것이 중요한 과제다.
2012년은 세계 자본주의의 구조적 위기가 심화하고 한반도 불확실성이 확대되는 가운데 국내 정치권력이 재편되는 격동의 시기다. 이 글은 민중운동 계획 수립의 기초로서 정세의 객관적 요소를 분석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 우선 유럽 재정위기의 심화·확산, 미국의 경기침체 우려를 중심으로 세계 경제위기의 전개 양상을 전망한다. 그리고 경제위기를 배경으로 하는 미국 대외·통상 전략의 전환과 한미동맹 강화, 북한 체제의 변화를 주축으로 동북아시아의 정치·군사적 균형을 검토한다. 이어서 한국 경제의 구조적 모순에 주목하면서 정부의 정책기조와 경제위기 대응을 비판한다. 아울러 정부 여당의 레임덕 이후 정치 지형을 분석하면서 총선·대선의 구도와 쟁점을 파악한다. 끝으로 민중운동의 대응 방향을 제시한다. 세계 경제의 위기 가능성 증대 2007-09년 미국발 금융위기의 장기적 원인은 1970년대 이후 자본생산성 및 이윤율의 장기적 하락 추세다. 중기적 원인은 1970년대의 ‘징후적 위기’에 대한 반작용으로 출현한 금융세계화와 이중적자다. 이에 따라 1990년대와 2000년대 자본생산성 및 이윤율이 얼마간 회복되면서 ‘대완화’가 발생하지만, 결국 금융세계화가 야기한 금융혁신과 신용의 증권화가 이번 금융위기의 단기적 원인으로 작용했다. 2007-09년 금융위기는 실물경기의 침체로 파급되면서 성장 및 고용·임금의 후퇴를 낳았다. 금융위기가 은행위기를 거쳐 대불황으로 확산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각국 정부가 취한 통화·재정정책의 결과로 2009-11년에는 세계적인 재정위기가 발생했다. 특히 유럽연합(EU)은 주변부에서 발발한 재정위기가 중심부로 전염되면서 현재 세계 경제위기의 핵으로 부상하는 중이다. 미국도 적자재정정책과 이를 지지하는 수량완화정책을 통해 위기를 일시적으로 진정시켰지만, 그 후과로 2011년 들어 재정위기 위험이 제기되며 2012년 경기침체 가능성이 다시 높아지고 있다. 아래에서는 2012년 세계 경제 전망을 위해, 유럽 재정위기의 심화·확산, 미국의 경기침체 우려, 중국의 경착륙 가능성을 차례로 검토한다. 유럽 재정위기의 심화·확산 2009-11년 유럽 재정위기는 2007-09년 미국발 금융위기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정부부채가 누증한 결과다. 그 구조적 요인은 재정동맹 없는 화폐동맹으로서 유럽연합(EU)의 태생적 결함과 유럽중앙은행(ECB)의 신보수주의적 통화정책에 있다. 유럽 통합 과정에서 자본수입과 무역적자가 구조화된 주변국(PIIGS)에서 먼저 재정위기가 가시화됐다. 2010년 5월 그리스, 11월 아일랜드, 2011년 4월 포르투갈이 차례로 EU와 IMF에 구제금융을 신청하고 긴축재정에 돌입했다. 그러나 EU와 각국 정부의 대응은 역내 불균형과 유로 단일통화 체제에 내재한 모순을 해결하는 원인요법이 아니라 구제금융-긴축재정과 같은 대증요법을 반복하는 것에 불과했다. 2011년 6월에 그리스가 다시 구제금융을 신청하고, 7월에는 스페인과 이탈리아의 재정위기 우려가 고조됐다. 이에 따라 7월 유로존 정상들은 유럽금융안정기금(EFSF) 증액 및 역할 확대와 그리스에 대한 2차 구제금융 방안에 합의했다. ‘사실상의 디폴트’ 상태에 빠진 그리스 위기가 전염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10월에 EU 정상들은 민간채권단이 보유하고 있는 그리스 채무조정, EFSF 레버리지 확대, 은행의 자본 확충 방안 등 ‘질서있는 디폴트’ 방안을 추가로 합의했다. 하지만 유럽 재정위기는 진정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11월 이탈리아의 국채금리가 급등하며 위기가 고조되자 결국 베를루스코니 총리가 경제안정화법안 통과 직후 사임했다. 차기 총리로 선임된 마리오 몬티는 재무장관을 겸임하면서 강력한 긴축정책을 추진하겠다고 밝힌 상태다. 올해 들어 내내 경제성장률이 제로 수준에 머물렀던 스페인도 11월 들어 국채 금리가 급등했다. 한편 기대를 모았던 11월 초 프랑스 깐느 G20 정상회의에서도 유럽 재정위기 해결을 위한 국제 공조방안은 구체화되지 못했다. 남부유럽 국가들에서 시작된 재정위기는 현재 은행체계를 통해 프랑스와 독일 등 중심국으로 확산되고 있다. 재정위기국과 강한 금융 연계를 맺고 있는 유럽 은행들의 위험노출이 커지면서 해당 국가의 신용등급도 덩달아 강등 위기에 처한 것이다. 이에 유럽의 재정위기가 중심부로 전이되고 나아가 유로화와 EU 자체의 위기로 비화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 ECB가 최종대부자 역할을 수행하고 유로본드를 발행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으나 주요국 간 이견으로 실행 가능성이 낮은 상황이다. 독일은 ECB의 독립성, EU 조약 위배 등을 이유로 ECB의 역할 확대를 반대하는 동시에 재정부담을 이유로 유로본드 도입도 반대하는 입장이다. 프랑스는 금융시장 안정을 위해 ECB의 역할 확대를 찬성하는 반면 유로본드 도입은 국가신용등급 하락 우려로 반대하는 입장이다. 12월 초 EU 정상회의에서는 새로운 재정 협약을 도입하고 금융시장 안정화 조치를 강화하는 방안에 합의가 이루어졌다. 그러나 이는 일각에서 해석하듯 재정통합의 진전이 아니라 사후적인 재정규율 강화에 불과하다. ECB도 정책금리 인하와 같은 전통적 조치 외에 장기자금공급조작(LTRO) 등 단기 유동성 공급을 확대하는 비전통적 조치를 병행 실시했지만, 그러나 또다시 이탈리아 국채금리가 재정위기의 심리적 마지노선인 7%에 근접하는 수준으로 상승했다. 향후 유럽 재정위기는 다음과 같은 불안 요인을 안고 있다. 첫째, 역내 3-4위 경제권인 이탈리아와 스페인의 경우 2012년 중 대규모 국채만기가 도래할 예정이다. 현재 EFSF와 IMF의 가용재원을 고려할 때 이들의 구제금융 방안을 마련하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둘째, 그리스·아일랜드·포르투갈 등 이미 구제금융을 지원받은 국가들도 대대적인 긴축에도 불구하고 채무상환 능력 개선이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 (‘사실상의 디폴트’ 상태에 있는 그리스는 2011년에 이어 2012년에도 마이너스 성장이 예상되고 있고, 아일랜드도 경기회복이 지연되고 있어 추가 지원이 필요할 수도 있다.) 셋째, 각국의 정치적 사정으로 새로운 재정협약 체결이 지연되거나 안정화 수단의 실효성이 약화될 가능성도 상당하다(2월 그리스 총선, 3월 슬로바키아 총선, 4-5월 프랑스 대선, 독일 헌법소원 제기 가능성 등). 넷째, 이런 상황에서 국제 신용평가사들은 유로존 국가들의 신용등급 강등을 경고하고 있다(특히 2012-13년 중 프랑스의 신용등급 강등 가능성이 50%를 상회하는데, 이에 따라 프랑스와 독일의 보증에 크게 의존하는 EFSF의 신용등급도 강등될 가능성이 크다). 다섯째, 유로존 은행들이 2012년 6월까지 자기자본비율을 높이기 위해 자본을 본격적으로 회수하면서 신용경색이 심화될 가능성도 있다. 이는 자금조달 비용을 증가시켜 실물경기를 더욱 위축시킬 것이다. 여섯째, 앞으로 발표될 위기 대응책이 미흡할 경우 EU 중심국으로 위기가 전염되면서 매우 심각한 경기침체가 발생할 것이다. 하지만 진정한 의미의 재정통합과 같은 근본적 해법이 제시될 가능성은 대단히 희박하다. 이상을 종합할 때, 유럽 재정위기는 임시방편을 통해 일시적으로 진정되다가 다시 악화되는 악순환을 그릴 것으로 예상된다. 이 과정에서 일부 국가가 유로존을 이탈하거나 심지어 유로존이 붕괴할 가능성도 더욱 커질 것이다. 세계 교역의 1/4, 생산의 1/5을 차지하는 유럽의 경기침체가 장기화함에 따라 세계경제의 위축은 불가피하다. 재정위기와 은행위기의 상호작용 속에서 유럽 은행들이 해외 투자자금을 회수할 경우 세계적인 신용경색이 발생할 가능성도 있다. 한국 경제는 수출의 10%, 외국인투자의 30% 가량을 차지하는 유럽의 위기가 심화·확산될 경우 큰 타격을 입을 것이 분명하다. 미국의 경기침체 우려 2007-09년 금융위기에 미국 정부와 연방준비제도(이하 연준)는 은행이 파산하고 증시가 붕괴함으로써 경기침체가 대불황으로 심화되는 상황을 막기 위해 구제금융 및 적자재정정책, 그리고 이를 지지하는 수량완화정책을 구사했다. 하지만 정책 당국의 대응은 인수합병과 겸업화, 즉 금융해방 기조를 유지하는 것으로 귀결되었다. 게다가 위기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사적 금융뿐만 아니라 공적 금융의 위기가 발생할 가능성도 증가하고 있다. 즉, 적자재정정책과 수량완화정책의 결과로 정부 부채가 급증하고 연준 대차대조표가 비정상화된 것이다. 국가의 지불능력이 국채의 가격과 화폐의 가치를 결정하므로, 만일 공적 금융의 위기, 즉 재정위기가 발생할 경우 국채의 가격과 화폐의 가치가 폭락하게 된다. 미국은 금융위기 이후 국채가 5조 달러 가량 증가하여 2011년 초 국민소득 대비 국채 비중이 100%에 근접했다. 급기야 2011년 5월 말에는 미국 연방정부의 부채가 법정 한도를 초과했다. 이런 상황에서 2차 수량완화 정책이 종료된 2011년 6월 미 정부와 연준은 당초의 예상과 달리 출구전략이 아니라 경기둔화를 공식 발표했다. 2011년 상반기 성장률이 예상치를 크게 하회하는 동시에 고용과 주택지표가 장기간에 걸쳐 저점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었다. 재정위기 우려 속에서 미 의회는 연방정부의 ‘기술적 디폴트’ 시한을 며칠 앞둔 7월 말 국채 상한을 2.4조 달러 증액하고, 대신 향후 10년간 재정적자를 2.4조 달러 감축하는 데 합의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용평가사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는 미국의 신용등급을 강등했다. 단순히 국채 상한이 문제가 아니라 재정정책의 지속 불가능성이 핵심 문제이기 때문이었다. 또 재정적자의 대부분을 감축하는 주체가 현 정부가 아니라 차기 정부인 데다가 재정적자를 감축시키기 위해 조세를 증가시키는 것이 아니라 재정지출을 감소시킨다는 문제도 있었다. 2011-12년 경제성장률이 각각 3%, 2%, 1%, 0%라고 가정하면 국채 비중은 108%, 111%, 113%, 115%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 신용등급 강등으로 8월 세계 금융시장은 폭락을 경험했다. 그러나 연준은 기대와 달리 3차 수량완화정책을 발표하지는 않고 대신 ‘연준이 보유하고 있는 국채와 주택담보부증권(MBS)의 원금을 재투자할 것이고 또 대차대조표의 규모와 구성을 적절하게 조정할 준비가 되어있다’고 발표함으로써 3차 수량완화정책을 어느 정도 암시한 상태다. 이런 상황에서 9월 초 오바마 대통령은 4,470억 달러의 감세와 재정지출로 구성되는 3차 적자재정 정책, 즉 미국일자리법안(AJA)을 제안했다. 하지만 현재 의회의 반대로 통과가 불투명한 상황이다. 2011년 하반기 연준은 2011-13년 성장률 및 실업률 전망치를 상반기 예상에 비해 하향조정한 상태다. 실물경기 회복세가 둔화됨에 따라, 특히 장기에 걸쳐 고용상황의 개선이 미흡하고 주택시장 부진이 지속됨에 따라 2012년 미국경제의 경기침체 우려가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다행히도 2011년 말에 발표된 제조업·고용·소비 등 주요 경제지표들이 일시적으로 호조를 보이고 있지만 경기침체 우려가 완전히 해소된 것은 아니다. 미국 경제의 구조적 위기 요인들이 다수 존재하여 경기회복의 지속여부가 불투명하기 때문이다. 우선 고용율과 실업률이 다소 호전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장기 실업자 비중이 사상 최고치에 이르는 등 구조적 실업이 심화하고 있다. 이는 소득과 소비 감소로 이어지면서 성장 동력을 약화시킬 우려가 크다. 주택경기 역시 다소 호전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회복 속도가 느려 여전히 침체상태에 있다. 주택가격 하락은 역의 자산효과를 가져와 소비를 위축시키고 건설업 고용 회복에도 악영향을 끼친다. 11월 미 의회 슈퍼위원회의 긴축재정안 합의 실패에 이어 향후에도 경기부양책 및 재정건전화 방안을 둘러싼 정치적 불확실성이 상존한다. 또 유럽 재정위기가 심화·확산되는 것도 주요한 경기하방 요인이다. 미국 대형 은행들의 유럽 위기국에 대한 직접 위험노출은 그다지 크지 않지만 간접 위험노출 규모가 상당한 것으로 알려져 위기국의 신용 하락 시 전염이 불가피하다. 2012년 경기침체의 징후가 보다 분명해지면 미국 정부의 3차 적자재정정책과 이를 지지하는 연준의 정책수단으로서 3차 수량완화정책이 구사될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적자재정정책과 수량완화정책은 실물경제에 대한 효과가 미미하다는 문제가 있다. 경기회복 지연과 재정건전성 악화, 그리고 유럽 재정위기와 부정적인 상호작용 속에서 미국 경제가 침체에 빠질 경우 금융연계와 무역연계를 통해 전 세계에 큰 충격이 미칠 것이다. 유럽과 마찬가지로 미국에 대한 무역의존도와 금융연계가 강한 한국 경제도 그 영향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중국의 경착륙 가능성 중국 경제도 2011년 성장세가 다소 둔화된 가운데 내외부 위험 요인들이 불거지면서 경착륙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우선 중국의 최대 수출지역인 유럽과 미국의 재정위기와 경기회복세 약화로 수출 증가율이 큰 폭으로 둔화되고 있다. 최근 부동산 가격 둔화, 기업수익성 악화 등으로 기업들의 이자상환 부담이 증가하면서 상대적으로 고금리인 비은행권 대출의 부실 우려가 커지고 있다. 비은행권의 대출부실이 확산되어 대출축소로 이어질 경우 부동산 시장 추가 하락, 중소기업 자금경색 심화 등 악순환 발생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또한 부동산 가격 하락과 거래부진 등으로 지방정부의 세입이 줄어들면서 상당수의 지방정부가 재정위기에 직면한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 중국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투자 비중이 과도한 수준에 있어 급격한 투자 축소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현재로서는 비은행권 부실이 폭발하거나 주택시장 거품이 붕괴하거나 투자가 급격히 감소하는 등 잠재적 위험 요인들이 단기간 내에 현실화될 가능성이 크지 않으며 일부 요인들이 불거지더라도 중국 정부가 충분히 대응 가능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하지만 밀접하게 연관된 각 요인들이 연쇄적으로 파급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그동안 중국은 저임금 기반 가공무역을 통해 세계 공급사슬에서 최종공급자로 기능하는 한편, 무역흑자로 벌어들인 외화를 다시 국외에 투자하는 최종대부자로 기능하면서 과거 세계 경제위기 시 안전판 역할을 담당했는데, 오히려 현재는 중국이 세계 경제 불확실성의 또 다른 원천으로 기능할 가능성이 높아진 셈이다. 동북아 국제질서의 변화와 한반도 불안정성의 고조 유럽의 위기와 대조적으로 세계 경제의 중심축으로 부상한 아시아 태평양 지역에서 자신의 헤게모니를 유지확대하는 것은 경제위기에 처한 미국에 사활적인 과제다. 미국으로서는 경기침체에 대비하여 금융과 함께 이른바 지식기반경제의 다른 한 축을 구성하는 비즈니스서비스를 중심으로 수출주도 성장을 달성하고, 이를 위해 아시아태평양자유무역지대(FTAAP)를 건설하는 것이 필수적 과제로 대두된다. 중국의 군사력 증강, 북한의 핵무기 보유 등 역내 안보 불안도 미국의 아시아 재관여의 빌미가 되고 있다. 미국은 이라크 전쟁 종전 선언과 아프가니스탄 철군을 통해 대외 전략의 무게중심을 유럽이나 중동에서 아시아 태평양으로 옮길 수 있는 여지를 마련한 상태다. 게다가 올해 대선을 앞두고 있는 상황에서 경제와 안보 문제의 동시적 해결을 위해 공세적인 아시아 전략을 펼쳐야 할 국내 정치적 요인도 결부되어 있다. 현재 수출 달러 환류 메커니즘으로 특징지어지는 미중 관계는 서로의 전략적 이해관계가 맞물려있기 때문에 갈등이 조정되고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쌍방의 이해관계가 상충할 수밖에 없어 잠재적인 갈등이 확대되는 형세에 있다. 미국의 아시아태평양 전략 미국은 경제위기의 원인이자 효과로서 이중적자의 확대, 즉 재정적자와 함께 무역적자가 누증하는 거시경제적 불균형을 시정하기 위해 최대 무역적자 상대국인 중국에 평가절상 압력을 행사하고 있다. 미국의 시각에서 볼 때, 중국 정부의 외환시장 개입으로 현재 위안화는 최소한 20% 평가절하되어 있다. 이로써 중국은 막대한 무역흑자를 기록하고 있는데, 이는 중국이 실업을 해외로 수출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반대로 달러화는 중국을 비롯한 수출지향국의 통화가 평가절하됨에 따라 10-20% 평가절상되어 있다. 미국은 이러한 불균형을 해소할 경우 대외부채가 대폭 개선되고 국내에서 다량의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이에 미국은 2011년 5월 전략 및 경제 대화(G2)를 개최하여 위안화 절상을 요구한 데 이어 10월에는 환율조작국 제재법안을 의회에 상정한 상태다. 미국은 세계무역기구(WTO)와 같은 국제기구나 자신의 구상에 동의하는 동맹국들의 ‘의지연합’을 활용하여 환율 분쟁 상대국에 대해 보다 강경한 정책을 구사할 의사를 내비치고 있다. 미중 관계에서 안보 문제 협력을 이유로 환율 문제와 같은 경제적 이슈에서 국익을 희생해서 안 된다는 주장도 강력히 제기되고 있다. 또한 미국은 2011년 10월 한미 FTA 의회 비준을 발판삼아, 11월 연이어 개최된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와 동아시아정상회의(EAS)에서 아시아 관여 의지를 적극 드러냈다. APEC에서 일본이 환태평양경제파트너십(TPP) 협상에 참여하기로 함으로써 미국의 아시아태평양자유무역지대(FTAAP) 구상이 한층 구체화되고 있다. 미국은 ‘폐쇄적 지역주의’, 즉 아시아 역내 국가 간에 체결되는 FTA가 확산되는 것을 우려하면서 대신 한미 FTA나 TPP처럼 자신이 관여하는 무역투자 협정을 ‘개방적 지역주의’ 전략을 관철하는 교두보로 사고하고 있다. 다시 말해서, 미국이 무역적자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신흥국 금융서비스 시장을 개척해야 하고, 이를 위해 한미 FTA나 TPP와 같은 ‘21세기 무역협정’이 종국적으로 FTAAP로 확장되어야 한다는 주장인 것이다. 동시에 이를 통해 안보 측면에서 미국과 아시아를 잇는 제도적 연결고리를 만들 수 있다고 기대한다. 이러한 미국의 대외통상 전략은 곧 한미일 군사동맹을 강화하는 것으로 귀결되고 있다. 미국은 2009년 ‘신 아시아 정책 구상’에서 ‘아시아와 미국은 태평양에 의해 단절된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하나로 묶여있다’면서, 적극적인 개입 전략을 추진해왔다. 이러한 구상은 최근 미국이 발표한 ‘미국의 태평양 세기’ 구상에서 다시 한 번 분명히 드러난다. 여기서 미국은 ‘대 아시아 수출이 자국 경제의 결정적 활로가 될 수 있으며, 따라서 아시아 태평양 지역에서 평화와 안보를 유지하는 것이 중차대한 과제’라고 천명하고 있다. 이에 따라 미국은 재정감축 방안에 따라 국방예산을 대대적으로 삭감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11월 EAS를 통해 아시아 태평양 지역에서 미군 감축을 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확인했다. 또 미국은 호주에 미군을 장기 배치하기로 함으로써 중국과 남중국해 분쟁을 겪고 있는 필리핀과 베트남에 대한 안보 우산을 강화하기로 하였다. 한미동맹의 강화 미국의 아시아 태평양 전략은 미중 관계(G2)를 강조하면서도 중국과의 잠재적 갈등을 염두에 두고 한미일 동맹(G3)을 강화하는 이중 노선으로 구성된다. 한국은 여기에 적극 조응하여 한미동맹을 더욱 공고화하고 있다. 이는 미국의 FTAAP 구상의 시발점으로서 한미 FTA가 비준된 것과 함께 해외주둔미군재배치계획(GPR)에 따라 주한미군사령부가 한국사령부(KORCOM)로 재편되는 것에서 단적으로 확인된다. 정부는 한미 FTA 비준으로 ‘한미동맹은 정치안보동맹에 경제동맹이 더해져 다원적포괄적 동맹으로 진화했다’고 평가한다. 군사 안보에서 ‘평화와 안정의 축’과 경제협력에서 ‘번영과 발전의 축’이라는 두 개의 축을 중심으로 한미관계가 운영되고 발전하는 새로운 틀을 갖추게 되었다는 해석이다. 아시아 태평양 지역에서 통상 주도권을 둘러싼 각축전과 금융무역 자유화 물결이 몰아치는 가운데 한국은 한미동맹 기조 하에서 ‘글로벌/역내 파트너십 강화’를 추진하고 있다. 현재 한국은 TPP에 참여하고 있는 모든 나라들과 이미 FTA를 체결했거나 아니면 협상 중에 있다. 정부는 ‘한국의 경제 자체가 개방을 지향하여 자유무역체제를 구축하고 있으므로, 그런 의미에서 [한중 또는 한중일] FTA든 TPP든 그 어느 한 쪽에 편견을 가지고 있을 것은 없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하지만 한미 FTA가 발효될 경우 그 다음 수순으로 미국이 한국에 TPP 참가를 요청할 가능성이 있다. 미국이 TPP의 기본형으로 기존 싱가포르·뉴질랜드·칠레·브루나이 4개국이 체결한 TPP4가 아니라 한미 FTA를 강조한다는 점은 TPP와 한미 FTA가 미국에 별개로 사고되는 것이 아니라 상호 밀접한 연관을 갖는다는 점을 방증한다. 반대로 중국의 경우 기본적으로 ASEAN과의 FTA를 강화하면서 지금보다 더욱 강하게 한중 FTA나 한중일 FTA 체결을 추진할 것으로 보인다. TPP에 일본이 참가하는 반면 중국이 불참하는 것을 두고 미국의 중국 견제 전략으로 보는 시각이 우세하지만, 사실 중국이 TPP에 가입하기 위해서는 금융 및 서비스 시장을 대폭 개방해야 하므로, 이는 현재 중국의 경제구조 상 상당한 시일을 요하는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일본도 향후 추이를 지켜보면서 한일 FTA 체결을 강하게 요구할 가능성이 있다. 미국의 해외주둔미군재배치계획(GPR)에 따라 미군 제7사령부로 편제되는 한국사령부는 동아시아에 주둔하는 미국 육해공군 전체의 작전을 통제하게 되고, 한국사령부가 위치할 평택은 동북아 허브기지로 기능하게 된다. 이러한 역내 미군 재편 계획에 따라 향후 미국은 주둔군 비용분담 요구를 강력히 제기할 것으로 예상된다. 지금까지 한국은 주한미군 주둔과 관련된 전체 비용 가운데 약 40%가량을 부담하고 있는데, 미국이 조만간 주한미군 주둔비용의 분담비율을 50% 수준으로 높이고 평택기지 이전에 소요되는 자국 부담을 여기서 충당할 것으로 예상된다. 또 한국은 미국의 후원 아래 2012년 3월 서울에서 2차 핵안보정상회의를 주최할 예정인데, 이것이 미국의 북핵 관리 전략에 조응하는 것임은 물론이다. 미국은 2010년 핵태세검토보고서(NPR)를 발표하여 핵확산금지조약(NPT)을 탈퇴한 북한과 이란에 대한 핵 선제공격 가능성을 개방한 뒤, 북한과 이란을 제외한 47개국 정상과 3개 국제기구 대표가 참여하는 핵안보정상회의를 개최한 바 있다. 북한 체제의 변화 미국 오마바 정부는 북한 핵에 대해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돌이킬 수 없는 폐기’(CVID)를 지속적으로 강조해왔다. 북한은 미국의 대북 적대정책 포기와 핵위협 청산을 핵 포기 조건으로 제시하며 2009년 이후 공세의 수위를 계속해서 높였다(광명성2호 발사, 6자회담 불참 및 기존합의 파기, 영변핵발전소 불능화 취소 및 원상복구 방침 발표, 2차 핵실험 등). 그러나 미국은 적극적 개입 대신 북한이 핵 폐기에 진정성을 보이거나 중국이 북한에 영향력을 행사할 때까지 기다린다는 ‘선의의 무시’, ‘전략적 인내’ 전술을 구사했다. 이는 북한의 도발에 보상하지 않고 장기적으로 북한 정권을 약화시켜 자신의 교섭력을 강화할 수 있다는 가정에 의거한 것이었다. 그러나 지속적인 무시와 인내가 북한과의 협상을 중단시켜 도발 수위가 점점 높아지게 되면 더 이상 용인할 수 없는 단계로 불안정성이 고조될 위험도 있었다. 결국 2010년 천안함, 연평도 사태와 우라늄 농축 프로그램 공개 이후 미국은 대북정책을 다소 수정했다. 2011년 1월 미중 정상회담을 기점으로 미국은 국내 여론과 북한의 추가적 도발을 관리할 목적으로 대화를 재개했다. 이후 6자회담 참가국 간의 대화가 폭넓게 진행됐지만, 북핵의 근본적 해결을 촉구하는 미국의 입장과 미국과의 핵군축 회담을 상정하는 북한의 기본적인 대립구도는 전혀 변화하지 않았다. 남한은 남북비핵화회담을 개최하여 천안함, 연평도 문제(군사문제)와 6자회담(비핵화문제) 간의 분리 대응을 추진하고 인도주의적 지원 및 남북한 사회문화 교류 재개 의사를 내비쳤지만, 기본적으로 미국이 북한에 제시한 사전 조치에 동의하는 입장을 가지고 있다(우라늄 농축 프로그램 중단, 국제원자력기구 사찰단 복귀, 919 공동성명 이행 의지 확인, 핵과 장거리 미사일 프로그램 중단). 중국은 북핵의 안정적 관리를 기조로 삼으면서 북한과의 경제협력을 확대함으로써 미국의 대북 제재와 일정한 선을 그어왔다. 따라서 2012년에도 남북관계가 부분적으로 개선되거나 6자회담이 재개될 수는 있지만, 근본적인 상황 변화는 어렵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그런데 2011년 말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사망이라는 돌발 변수가 발생했다. 일단 대다수 전문가들은 북한이 순조롭게 집단지도체제로 이행하고, 상당 기간 동안 내부 정치적 안정화에 주력하고, 경제난 해결을 위해 개혁개방에 나설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하고 있다. 중국이 김정은 후계 체제를 인정한 것도 안정화를 예상케 하는 대목이다. 하지만 집단지도체제 내부에서 갈등이 발생할 가능성은 항상 열려 있다. 미국이 대북 정책을 재검토하는 데에도 상당한 시일이 소요될 것이므로 북미 관계는 한동안 교착 상태에 머물 것이다. 기본적으로 한미의 북핵 포기 전략이 유지되는 상황에서 강성대국 원년과 체제 교체를 맞는 북한이 공세적 전술을 구사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한국 경제의 구조적 모순과 이명박 정부의 경제·사회 정책 한국 경제의 구조적 모순 한국 경제는 1997-98년 경제위기·외환위기 이후 저성장 국면으로 진입한 상황에서 금융자유화와 구조조정·평가절하와 같은 수출-재벌 주도 세계화를 강력하게 추진했다. 1997년 이후 한국 경제가 만성적인 저성장 상태에 머무르는 주요 원인은 생산적 투자의 지표인 자본축적률이 매우 낮은 수준에서 하락·정체된 것에 있다. 이는 이윤율 하락이라는 기본 요인에 더해 △금융자산 위주의 투자행태 △기업 인수합병(M&A) 중심의 투자행태 △주주가치 극대화를 위한 경영행태 △해외 직접투자와 같은 자본 이동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다. 자본축적률의 하락은 구조적 실업을 낳고, 이는 다시 노동의 교섭력을 약화시켜 노동소득분배율을 악화시키고 불안전 노동을 확산한다. 금융자유화에 따라 신흥시장으로 변모한 한국 경제는 초민족자본에 의한 국민경제의 지배와 국부유출, 국내자본의 해외도피와 같은 문제가 일상화되었다. 외국인의 국내투자는 대부분 단기 차익을 노리는 증권투자로, 성장 유발 효과가 극히 제한적인데 반해 변동성이 커서 경제 전반의 불안정성을 높인다. 외국인 직접투자 기업도 저임금·비정규직 활용에 의존하고 있어 국민경제에 부정적인 효과를 미친다. 한국 경제는 구조조정과 평가절하를 통해 수출경쟁력을 회복하여 막대한 무역흑자를 축적할 수 있었지만 이는 노동력 신축화와 수출-재벌 구조의 강화로 귀결됐다. 수출 주도 성장 전략에 따라 한국 경제의 무역의존도가 급상승하였고 국내 산업구조가 국제적 비교우위를 지닌 산업 위주로 재편되면서 재벌의 지배력도 급상승했다. 그러나 국외 생산의 확대로 기업 내 교역이 증가하고, 또 부품?소재 산업의 기반이 취약하여 기초소재 및 조립가공 제품을 중심으로 수입의존도가 높아짐에 따라 수출이 국내에서 부가가치를 유발하는 효과도 빠르게 감소하고 있다. 고환율 정책은 완제품 수출 대기업의 가격경쟁력을 강화하는 반면 원자재와 부품소재를 수입하는 중소기업의 가격경쟁력을 약화시킨다. 따라서 수출-재벌의 활황에도 불구하고 국민경제의 소득 및 고용이 호전되지 않는다. 그런데 금융자유화에 따라 초민족자본의 증권투자가 확대되면서 평가절상 압력이 커지기 때문에 평가절하를 통해 재벌의 수출경쟁력을 확보하는 데에는 일정한 한계가 있다. 다른 한편에서 무역흑자나 환율하락(평가절상)이 한국 경제의 생산력·기술력 향상을 의미하는 것도 아니다. 한국 제조업은 2000년대 이후 기술경쟁력보다는 주로 가격경쟁력 우위에 기초하여 무역흑자를 시현해 왔으며 금융위기 이후 이러한 경향은 더욱 강화되었다. 일례로, 한국은 대중 무역흑자를 대일 무역적자가 상쇄하는 무역구조를 지니고 있는데, 대일 무역적자는 주로 기술경쟁력의 열위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다. 그러나 첨단 부품·소재 산업에서 일본과의 기술격차가 여전한 반면 중국도 저임금 위주의 가공무역에서 탈피하고 있어, 가격경쟁력 우위에 기초한 한국의 수출경쟁력이 지속되리라는 보장이 없다. 이러한 사정을 반영하여 역대 정부는 FTA 전략을 추진했다. 무역 및 금융의 자유화를 근간으로 하는 FTA가 한국 경제의 모순과 위기를 더욱 심화할 것이라는 점은 명백하다. 한편 수출-재벌 위주의 경제정책이 낳은 폐해를 감안하여 내외수 균형성장과 대중소기업 동반성장이 제기되기도 한다. 역대 정부들은 제조업의 성장 및 고용 창출력 저하와 대외의존도 심화라는 문제에 직면하여 서비스산업 선진화를 내외수 균형성장 방안 중 하나로 제시했다. 여기서 서비스산업 선진화란 비즈니스서비스 부문을 특화하는 반면 유통서비스나 개인서비스 부문을 부차화하는 것이다. 그 결과 고숙련 지식기반 부문에 종사하는 극소수의 골드 칼라가 육성되는 것 외에는 고용 창출 효과도 미미하고, 일자리가 창출된다 하더라도 비즈니스서비스에 종속된 저임금·비정규 노동이 주종을 이룰 뿐이다. 심지어 선진화라는 미명 하에 정부는 수익성 있는 공공부문이나 보건의료와 같은 사회서비스를 ‘신성장동력’으로 간주하여 개방과 민영화를 추진한다. 이때 FTA는 서비스시장 개방을 촉진하는 매개로 활용된다. 또한 최근 이명박 정부 동반성장위원회가 대기업-중소기업 상생전략으로 제기한 이윤공유제는, 물론 노자 간이 아니라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이윤을 공유해야 한다는 논지로, 1948년 제헌헌법에서 규정되고 1962년 폐지된 ‘이익균점권’에 미달한다. 그러나 이마저도 대기업의 반발과 정부 부처 내의 이견으로 제대로 시행되지 못하고 있다. 금융자유화와 수출-재벌 주도 성장전략, 그리고 이를 종합하는 FTA 전략은 투자활성화와 수출경쟁력을 위해 노동력을 신축화함으로써 저임금·장시간·고강도 노동의 악순환을 강화한다. 또 대외 의존을 심화시켜 결과적으로 국민경제를 세계 경제위기의 충격에 대단히 취약하게 만든다. 단적으로, 2007-09년 금융위기 당시 한국의 환율 및 주가 변동폭과 실질임금 삭감율은 세계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 이명박 정부의 친재벌-반노동 정책 이명박 정부는 김대중-노무현 정부 임기 중 만성화된 저성장 문제의 원인을 정치 불안과 반시장·반기업 정서로 꼽으며 △법인세율 인하 △출자총액제한제도 폐지 △기업활동·금융규제 최소화 △노사관계 법 지배 확립 △경영권 보호 장치 강화 등으로 대표되는 친 재벌 정책을 거침없이 추진했다. 또 ‘버블 세븐’ 지역을 비롯한 부동산 소유주의 이해에 적극 부응하는 한편 부동산 가격 폭등에 대해서는 ‘뉴타운 개발’과 같은 공급 확대를 통한 해결이라는 논리로 투기 붐을 다시 자극했다. 그러나 이러한 정책은 세계 경제위기의 격랑 속에서 크게 실패했을 뿐만 아니라 이전부터 누적되어온 사회저변의 모순을 심화하였다. 첫째, 이명박 정부의 집권 5년(2012년 전망치 포함) 경제성장 실적을 단순 평균하면 3.1%에 불과하다. 이는 자신의 공약이었던 7%는 물론이거니와 ‘잃어버린 10년’이라고 그토록 비판했던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실적(각각 5.0%, 4.3%)에도 미달하는 것이다. 둘째, 성장 부진에 따라 고용도 악화되었다. 공식 실업률은 세계적으로 비교할 때 매우 낮은 수준이지만 고용률도 크게 낮아져 실업과 비경제활동인구의 중간 영역에 해당하는 잠재실업자군(실망실업자·경계근로자·취업준비자)이 광범위하게 존재한다. 잠재실업자와 불완전취업자(부분실업)를 포함하는 확장실업률은 공식실업률의 2-3배에 달하는 8-10%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 (통상 경기변동에 따른 실업자 변동폭은 취업자 변동폭에 비해 현저하게 적게 나타나는데, 이는 일자리 감소시 실직자의 일부만이 공식실업으로 포착되고 다른 일부는 불완전취업 및 잠재실업의 형태로 노동시장에 잠복해 있음을 의미한다.) 또한 동일한 노동력 상태를 유지하는 비율이 크게 낮아져 경제위기를 전후로 고용불안이 심화되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경제위기 속에서 취약계층의 고용이 집중적인 타격을 입었는데, 인적으로는 여성과 청년, 일자리별로는 건설업·도소매업·서비스직·단순노무직, 5인 미만 영세소기업, 자영업과 일용직 등에서 취업 감소가 현저했다. 셋째, 명목임금인상률에 물가인상률을 반영한 실질임금인상률도 대폭 악화되었다(2007년 3.0%, 2008년 -8.5%, 2009년 -0.1%, 2010년 3.8%, 2011년 -3.5%). 이명박 정부 임기를 제외하면, 1993년 김영삼 정부 이후 실질임금인상률이 마이너스를 기록한 것이 IMF 직후인 1998년(-9.3%)이 유일하다는 점으로 미루어 볼 때 현 정부 하에서 임금인상이 얼마나 억제되었는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그 결과 노동소득분배율은 2007년 56.7%에서 2010년 52.5%까지 하락했다. 넷째, 조세 감면, 규제 완화, 개발 확대를 통해 건설 및 부동산 경기를 부양하겠다는 정부 여당의 발상은 용산 참사와 4대강 개발로 상징되는 거대한 재앙을 낳았다. 투기 수요를 부추겨 주택 매매시장을 활성화하겠다는 정부 정책은 전세난을 야기했으며, 공공임대주택 공급 목표가 반토막난 반면 도시 재개발 과정에서는 서민용 주거가 대량 멸실되는 사태가 발생하기도 했다. 특히 부채로 주택 구입을 장려하는 정부의 금융·부동산 정책은 가계부채 급증의 주요 원인이 되었다(가계부채 용도는 주택 구입용 50%, 생계 유지용 30%, 사업자금 마련용 20%다). 다섯째, 이명박 정부는 과거 노무현 정부의 사회정책을 대체로 계승하면서도 ‘공정한 시장 경쟁 논리’와 같은 우파적 교리를 가미했다. 이러한 정책 기조는 이후 경제위기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수정됐다. 정부는 경제위기에 대응하여 ‘일자리를 창출하고, 중소기업을 살리며, 서민경제를 살린다’는 ‘친서민 중도 실용 정책’을 2009년 국정운용 기조로 밝혔다. 이어 중간평가의 성격을 갖는 2010년 지방선거에서 여당이 대패하자 집권 후반부를 위한 국정철학으로 ‘공정사회’를 제시하였다. 이어서 2011년에는 ‘공생발전’으로 전환하며 부자감세 정책을 일부 철회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결국 민생 악화라는 조건 속에서 이명박 정부의 사회정책은 야권의 민생-복지 프레임에 치명적 약점으로 노출되었다. 급기야 2011년 하반기 총대선 전초전 격으로 치러진 무상급식 주민투표와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패배하며 레임덕이 가시화되었다. 정부의 경제위기 대책 이렇듯 한국 경제는 신자유주의 정책개혁의 폐해가 누적된 상황에서 2012년 세계 경제위기의 영향으로 다시 한 번 심각한 위기를 경험할 것으로 예상된다. 대외적으로는, 무역의존도가 높고 금융시장 개방도가 높은 한국 경제가 세계 경기침체와 국제 금융시장 불안에 따른 영향으로 수출이 둔화하고 자본유출입 변동성이 확대될 가능성이 크다. 우선 세계 경제위기로 전통적으로 수출을 주도했던 철강·자동차·조선·기계·석유화학·정보통신 등 주력산업 분야에서 수출이 둔화하고 경쟁이 심화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에 따라 중소기업과 내수기업은 물론 상대적으로 좋은 실적을 올렸던 대기업과 수출기업에서도 체감경기가 급랭하고 있다. 조선·철강 업종의 경우 부도·구조조정·감원 가능성이 크고 건설·저축은행 등 취약 업종에서도 추가적인 구조조정이 일어날 가능성이 크다. 다음으로, 자본시장의 개방도가 높고 유럽·미국으로부터 유입된 자금규모가 커서 이들 국가의 불안이 계속된다면 외국인 투자자금이 대거 유출될 가능성이 상존한다. 국제유가는 선진국의 수요가 둔화될 것으로 예상됨에도 불구하고 신흥국의 수요 증가 추세가 이어지고 중동 산유국의 지정학적 위험으로 공급이 축소되면서 2012년 중에도 2011년에 이어 높은 수준을 지속할 것으로 전망된다. 고유가는 물가인상 요인으로 작용하면서 생산과 소비에 부정적 영향을 끼칠 것이다. 국내적으로는, 1997년 구조적 위기 이후 성장률이 하락하고 저출산·고령화로 성장잠재력마저 축소된 상황에서 지난 금융위기의 충격이 가해지며 장기 성장 추세가 재차 하락했다는 문제가 있다. 그 결과 고용 부진, 실질임금 감소, 가계부채 급증, 부동산 가격 상승 등 노동자 대중의 삶과 직결된 경제지표가 금융위기 이후 현저히 악화되거나 개선되지 못하고 있다. 이런 상황을 감안하여 최근 정부는 유럽 재정위기 등으로 경기가 급격히 둔화될 경우 경기부양에 나서겠다는 방침을 공식화하였다. 선거를 의식한 인위적인 경기부양은 없을 것이라는 예전의 입장에서 한 발 물러서, 상반기 중 예산을 대부분 집행하고 위기가 가시화될 경우 추경 예산을 편성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정부의 경제위기 대책은 중기적으로 재정건전화 기조를 유지하면서 FTA 글로벌 네트워크 구상과 노동신축화 법제화를 강화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사회정책 기조도 ‘일하는 복지와 맞춤형 복지 강화’로 유지되고 있다(참고로, 내년도 복지 증가분 5.6조 원 중 의무지출을 제외한 재량지출 증가 몫은 1조 원인데, 여기서 사실상 복지지출로 보기 어려운 주택 부문 증가분 9천억 원을 제외하면 실제 정부의 예산편성권이 작동하는 재량지출 증가분은 1천억 원에 불과하다).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 2008년 제1차 금융위기 속에서도 우리나라가 FTA를 더욱 확대해 세계에서 유일하게 플러스 성장을 기록했다”며 “위기일수록 대외 개방을 적극 추진하고 무역 장벽을 걷어내야 국가간 장벽이 희미해진 글로벌 시대에 새로운 부를 창출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같은 맥락에서 정부는 2011년 무역규모 1조 달러 달성 등 대외 부문에서 큰 성과가 있었음을 언급하며, ‘GDP 대비 교역규모가 100%를 상회하고, 성장의 수출 의존도가 심화되는 상황에서 대외부문이 물가 안정, 성장 견인, 일자리 창출에 기여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이에 따라 정부는 2012년 대외 경제정책에 더욱 역점을 둘 계획이다. 이는 기존의 FTA 글로벌 네트워크 전략을 보다 공세적으로 추진하는 것으로 구체화되고 있다. 정부는 2012년 경제상황 악화 및 고용조정 등에 따른 불안요인에 대처하기 위해 ‘일할 기회의 부족’과 ‘일하는 사람들간 격차’를 해소하기 위해 ‘청년 일할 기회 늘리기’, ‘내일 희망 일터 만들기’, ‘상생의 일자리 가꾸기’를 3대 핵심과제로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정부의 고용대책은 실상 노동신축화를 전제한 ‘일자리 나누기’에 방점이 찍혀 있다. 정부의 노동신축화 정책은 정리해고제와 같은 고용량의 신축화와 파견제·기간제와 같은 고용형태의 신축화를 거쳐, 이제 ‘일자리 나누기’라는 외피를 쓴 시간제를 통해 임금 및 노동시간 신축화로 진화하고 있다. 현재 정부가 청년실업 해결 방안으로 제시하는 ‘미스매칭 해소’란 대학 구조조정과 생색내기 식 고졸자 취업 확대를 통해 노동력을 평가절하하려는 것이다. 또한 정부가 지난 9월 수립한 ‘비정규직 종합대책’은 불합리한 차별해소와 공공부문의 정규직화 추진을 명목으로 업무 재편, 직무·성과 연동 임금체계로의 개편, 정규직 고용의 유연화와 임금 불안정성을 강화하는 방안으로 점철되어 있다. 특히 정부가 여성노동자의 경력단절을 막고 청년실업을 해소하기 위한 방편으로 추진한 시간제 노동의 경우 실상 단시간·저임금·비정규 노동을 양산하는 것으로 귀결될 것이다. ‘일 가정 양립’과 일자리 창출 시간제법안은 애초 노동시간과 임금을 신축화하여 기업이 이를 자유롭게 활용하는 것을 목표로 하기 때문이다. 정치 위기와 총대선 지형 정부 여당은 경제위기로 인한 민심 이반과 각종 실정·부패로 집권 하반기 레임덕에 빠진 상태다. 민주통합당으로 대표되는 전 집권세력은 위기의 책임을 현 정부 여당에게 전가하는 인민주의적 정치공세를 강화하고 있다. 하지만 반복, 심화하는 경제위기 속에서 기성 정치세력에 대한 대중의 불신은 현재 반한나라당-비민주당을 상징하는 ‘안철수 돌풍’으로 나타나고 있다. 정권의 레임덕 대선을 1년 앞둔 2011년 12월 현재 이명박 대통령의 국정수행 지지율은 20% 대 중반으로 하락하고 한나라당 지지율은 30%대 초반에서 정체되어 있다. 2007년 대선에서 2위와 무려 20% 포인트 차이로 압승을 거두고 2008년 총선에서 여유있게 과반 의석을 차지한 정부 여당이 불과 3-4년만에 위기에 처한 원인은 무엇인가? 반민주적·억압적 통치 스타일과 남북관계의 악화라는 여러 요인들도 있겠지만, 앞서 언급했듯이 이명박-한나라당의 ‘747 공약’과 ‘뉴타운 공약’과 같은 장밋빛 경제성장 전망이 부메랑이 되어 스스로에게 치명타를 가했다는 사실을 핵심 요인으로 꼽을 수 있다. 2007년 대선과 2008년 총선에서 이명박-한나라당은 노무현 정권의 실정을 ‘무능하고 불안한’ 진보개혁의 실패로 호도하며 ‘민주화’ 담론을 성장이나 안정으로 상징되는 ‘선진화’ 담론으로 교체하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의 임기는 미국발 금융위기와 그에 후속하는 유럽발 재정위기와 정확히 일치했다. 정부 여당은 경제위기를 빌미로 예의 수출-재벌 주도 성장 전략을 더욱 강화하였지만 이는 이전부터 누적되어온 사회저변의 모순과 위기를 심화할 뿐이었다. 세계적으로 보면, 2007년 이후 경제위기를 경험한 대부분의 나라에서 집권당 또는 다수당의 이념·노선과 무관하게 ‘현직의 실패’가 일반적 현상이 되고 있다. 정치공학적 관점에서 볼 때, 선거 결과에 영향을 미치는 다른 요인들을 사상하고 선거 주기만 고려한다면, 대선 뒤 1년 이내에 실시되는 ‘신혼선거’에서 여당이 승리할 가능성이 높고 차기 대선 전 1년 이내에 실시되는 ‘황혼선거’에서 여당이 패배할 가능성이 높다는 조사 결과도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한나라당은 박근혜 비대위원장 체제로 재편을 단행한 상태다. 서울시장 보궐선거 패배 이후 한미 FTA 비준안 날치기 통과의 후과와 선거 개입 의혹 등 각종 권력형 비리가 터지며 대대적인 위기에 봉착한 한나라당은, 박근혜 전 대표가 전권을 행사하는 비상대책위원회를 구성하여 사태 수습에 나섰다. 비대위는 정책적으로는 복지 공약을 보강하면서 중도적 이미지를 강화하고 조직적으로는 외부 인사 영입, 개방형 국민경선제 등의 방안을 도입하여 재창당 수준의 인적 쇄신을 감행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확실한 미래권력’을 중심으로 형성된 한나라당의 구심력이 급격히 약해지면서 당내 친박계를 제외한 여타 계파의 원심력이 확대되고 있다. 총선을 앞둔 시점에서 계파 간 이해 갈등을 조정하기가 쉽지 않을뿐더러 총선에서 패배할 경우 내부 분열이 확대될 가능성도 있다. 이러한 전반적인 여건을 감안할 때 다가올 총선·대선에서 권력 교체 가능성이 높아진 것은 분명하다. 그런데 2006년 12월 노무현 대통령 국정수행 지지율과 당시 여당이었던 열린우리당 지지도가 10% 대 초반을 기록한 것과 비교한다면 현 정부 여당의 경우 핵심 지지층의 결속력이 최소한 유지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차기 대권 주자로서 부동의 1위를 달리던 박근혜 비대위원장의 지지도가 2011년 하반기 ‘안철수 돌풍’에 밀려 잠시 주춤하긴 하지만 여전히 다자 구도에서 선두를 달리는 것도 특기할만한 사항이다. 이는 민주통합당이 반정권 야권연대에 의존하는 이유가 된다. 민주통합당의 반정권 공세 민주당은 12월 (‘혁신과 통합’의 후신인) 시민통합당과 한국노총과 통합하여 민주통합당으로 재편하였다. 동시에 진보정당을 포함하는 범야권공조를 통해 한나라당과 1:1 구도를 만들면 총대선 승리가 가능하다는 구상 하에 대여 공세를 강화하고 있다. 민주통합당의 주요 정책적 조직적 특징을 검토해보자. 민주통합당은 경제민주화 실현(재벌대기업 개혁 등)과 보편적 복지(무상급식, 무상보육, 무상의료, 반값 등록금, 주거복지, 일자리복지 등), 한반도 평화와 통일을 기본 노선으로 제시했다. 통합 정당 내에 전국노동위원회를 상설기구화하고 ‘당권은 당원에게 있다’는 당원 주권 조항을 삭제한 것도 특기 사항이다. 이러한 노선은 ‘포용적 성장’과 ‘기회의 복지’를 주축으로 하는 ‘뉴민주당 플랜’에 시민통합당과 한국노총의 요구를 절충적으로 반영한 것이다. 한나라당이 복지 공약을 강화하고 민주당이 이전에 비해 진보적 색채를 가미함으로써 이후 복지 논쟁 구도는 누가 더 복지를 잘 공급할 수 있는가라는 전문가주의적 구도로 전개될 가능성이 크다. 그래서 민주당이 의도적으로 노동 의제를 부각시키며 한나라당과 차별화를 시도할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여지에도 불구하고 민주당이 제시하는 개혁 의제의 폭과 수위는 대단히 협소할 것이다. 2011년 상반기 민주노총이 민주당과의 공동 입법발의와 한국노총 공조를 염두에 두고 꾸린 ‘노동대책 및 노동관련법 재개정을 위한 야5당-민주노총 회의’에서 민주당은 2009년 12월 이명박 정부가 손댄 부분(복수노조 교섭창구 단일화와 전임자 임금지급 문제)만 다시 약간 손질한다는 입장으로 일관했다. 민주당에 합류한 한국노총이 최근 ‘파견전임자 임금을 지원받기 위해 현 정부 임기 내에는 노조법 개정을 요구하지 않는다’는 합의를 한 투쟁 전선의 교란 요소가 될 것이다. 비정규직이나 최저임금 사안에서 민주당이 제시하는 방안이란 것도 실상은 노동신축화를 전제한 상황에서 일부 부작용과 문제점을 보완하는 ‘신축적 안전성’이라고 봐야 한다. 그럼 민주통합당의 출범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역사적으로 볼 때, 민주당의 조직적 특성은 정당 밖 운동조직의 지지와 인적 구성에 의존하는 ‘수평적 조직화’로 특징지어진다. (1987년 창당한 평화민주당에 그 기원을 두는 이들은, 이후 신민당, 새정치국민회의, 새천년민주당, 열린우리당으로 변모하며 14대(1992년), 15대(1996년), 16대(2000년) 총선에서 외부 인사를 각각 63%, 47%, 50% 공천하였다. 17대 총선 당시 한나라당의 외부 영입 공천 비율은 35%에 불과한 반면 열린우리당은 68%에 달했는데, 그중 절반 이상이 관계·학계·법조계 등 전문가집단이었다.) 외부 인사 공천은 정당의 정체성보다는 당선 가능성에 초점을 두고 후보들의 개별적 인지도나 지지도에 크게 의존하는 것이다. 정당 외부 전문가들의 참여와 국민경선제 등을 통해 선거승리와 유권자 전반의 동원에 주력하는 민주당은 포괄정당(catch-all party)의 성격을 강하게 띠었다. 또한 인터넷 등의 매체 발달과 더불어 선거과정의 기술적 발전이 촉진되면서 민주당은 선거전문가정당으로 재빨리 변모하였다. 일반적으로 선거전문가정당은 당원 중심의 수직적 연계가 약화되는 대신 광범위한 유권자의 여론에 호소한다. 정당 내부의 지도력보다는 개인적 지도력과 대중적 대표성이 강조된다. 재원조달 방안도 당비보다는 이익집단이나 국가보조금 같은 공공자금에 의한 재정확보가 중요시된다. 이념보다는 개별 이슈나 정치인 개인의 리더십에 강조점이 놓이고, 조직 내에서도 직업적 전문가들과 이익집단 대표들이 중심적 역할을 수행한다. 최근에는 정치 토크 콘서트와 인터넷 라디오방송, SNS 등 다양한 신기술과 매체를 통해 대중들과 직접 소통하는 경향이 강조된다. 그러나 이러한 선거전문가정당으로의 변모는 선거승리에도 유리하지만 선거패배에도 취약하다. 2007년 대선 및 2008년 총선을 각각 1년, 1년 반 앞둔 시점 노무현 대통령과 열린우리당의 지지도는 공히 10%대 초반으로 추락했다. 일반적으로 현역 의원을 소속 정당에 잔류하게 할 유인은 정당이 갖는 자원, 즉 정당의 고정 지지층과 선거 시기 정당의 인적·물적 지원이다. 이에 따라 열린우리당 소속 의원들은 집권당의 이미지를 탈각시키기 위해 대통령의 탈당을 요구하는 한편 집단으로 탈당하여 중앙당의 지원과 국고보조금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새로운 ‘적실정당’(원내교섭단체)을 결성하였다. 그 결과 2007년 열린우리당은 이념·노선의 전환 없이 단순한 조직 전환만 빈번해지는 무수한 이합집산을 반복해야 했다. 이상은 민주통합당의 이념적·조직적 토대가 대단히 부실하고 지지층의 휘발성이 강하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정치 위기와 안철수 돌풍 민주통합당으로 결집한 이전 집권세력들은 ‘이념·노선·정파를 초월하여 한나라당이라는 공통의 적을 상대로 싸워 승리한다면 민생과 민주주의가 발전할 것’이라는 식의 전형적인 인민주의적 정치행태를 보이고 있다. 정부 여당의 거듭되는 실정으로 인한 반사 효과와 통합 효과로 인해 민주통합당은 창당 직후 여론조사에서 기존 민주당에 비해 약 10% 포인트 지지율이 상승하며 한나라당을 근소한 차이로 앞서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또 이들은 2010년 이후 그 위력이 거듭 확인된 야권 단일화 선거기법을 발전시켜 정계개편과 정권교체의 동력으로 삼으려고 한다. 당 지도부를 선출하는 전당대회에서 대의원 투표(30%) 외에 당원과 일반 시민의 모바일/인터넷 투표(70%)를 반영하고, 총선 공천도 완전 개방형 국민경선제로 실시할 예정이다. 한편 전통적인 한나라당 강세지역이지만 최근 지역경기 부진으로 여론이 악화된 부산·경남에서 주요 친노인사들이 대거 출마할 예정이다. 이들은 부상·경남 지역 총선 승리를 통해 전국정당화와 과반의석 확보라는 목표를 달성하면서 차기 대권구도에서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겠다는 구상을 갖고 있다. 이러한 구상이 실패할 경우, ‘안철수 카드’가 급부상할 가능성이 크다. 이처럼 현재 양대 정당의 본격적인 선거 체제로의 개편에도 불구하고 반한나라당 비민주당 무당파를 상징하는 ‘안철수 돌풍’이 여론을 좌우하고 있다. 현재 안철수 원장을 지지하는 집단은 이른바 2040 세대로서, 이들은 냉전의 유산과 지역주의로부터 정치적으로 자유롭지만 취업난·가계부채·교육비 부담 등 경제적으로 자유롭지 못한 세대다. 그런데 ‘안철수 돌풍’은 정당을 기반으로 삼지 않더라도 대중적 명망과 미디어의 힘을 활용하여 선거 자금과 운동원을 조직할 수 있는 정치적 토양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안철수 돌풍’은 그 실체와 무관하게 한국 정치의 이념적·조직적 취약성을 반영한다. 이런 측면에서 안철수 원장이 ‘정치의 본질은 행정’이라고 언급한 점도 특기할 만하다. 정치 위기의 중요한 증후 중 하나는 사회적 갈등의 대의 과정이자 집단적 운동으로서 정치가 행정이나 치안과 동일시되는 것이다. 일단 안철수 원장이 단호하게 신당 창당설을 부인함에 따라 총선은 현재 구도대로 치러질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신당론의 불씨가 완전히 꺼진 것은 아니다. 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안철수 신당이 등장할 경우 민주통합당과 통합진보당 지지세의 절반 이상을 잠식한다는 결과가 있다. 또 안철수 돌풍은 위력적인데 반해 기존 지배 정당의 리더십은 대단히 취약해서 과거 3김 ‘보스정치’ 시대와 달리 안철수 원장을 영입할 장악력이 없다는 문제도 있다. 이에 따라 기존 정치권 엘리트들도 안철수 돌풍에 편승하려는 움직임마저 나타나고 있다. 그가 직접 총선과 대선에 출마하지는 않더라도 지난 서울시장 선거에서 그랬듯이 간접적으로 선거에 개입하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한 상황이다. 민중운동과 총대선 통합진보당은 2012년 총선대선 국면을 겨냥한 단기적 구상과 이해관계에 따른 정치공학의 산물이다. ‘노동자 민중의 정치세력화’를 모토로 창당한 민주노동당과 ‘노무현의 삶과 참여정부 계승’을 목표로 창당한 국민참여당, ‘비국민참여당 진보대통합’을 주장하다 끝내 진보신당을 탈당한 새진보통합연대가 이념과 역사의 차이를 무시하고 통합에 합의하였다. 2011년 진행된 진보정당 통합 논의는 군소정당으로서 진보정당의 생존이라는 목적에서 제기된 측면이 컸기 때문에 대중운동을 혁신·재건하기 위한 이념·노선·전략에 대한 논의가 부차화되었다. 특히 민주노동당 당권파와 민주노총 주류세력의 경우, 반한나라당 선거연합을 통해 총선에서 진보정당의 ‘원내교섭단체 진출’, 대선에서 ‘진보적 정권교체’와 ‘연립정부 참여’를 목표로 설정하면서 이념·노선을 대폭 우경화하였다. 통합진보당은 5대 비전으로 △나라의 주권 확립 △복지국가 건설 △한반도 평화와 통일 지향 △녹색생태 사회 건설 △한국정치 개혁 등 대단히 절충적이고 모호한 내용을 발표할 수밖에 없었다. 민주노동당은 국민참여당과의 통합을 통해 원내교섭단체로 발돋움한 뒤 보수-개혁-진보의 3정립 구도를 만들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그런데 통합진보당 창당 직후 지지도가 두 자릿수로 상승했다가 민주통합당 창당 이후 다시 과거 민주노동당 수준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준으로 하락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통합진보당은 이런 여론조사 결과를 신생정당으로서 당의 홍보 부족과 민주통합당 통합 효과로 인한 일시적 현상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여론조사에서 유리한 입지를 확보하여 총선 선거연합에서 협상력을 제고한다는 애초의 구상에 적신호가 켜진 것도 분명하다. 통합진보당이 이념·노선을 대폭 우경화하고 민주통합당이 진보적 이미지를 강화하면서 양당의 차별성이 크게 부각되지 않는 상황에서, 중도좌파 성향의 지지층이 당선 가능한 정당을 지지할 경우 통합진보당은 상당한 난관에 봉착할 것으로 예상된다. 민주노총도 당의 대중적 토대를 확장하는데 기여함으로써 수권정당으로서 당의 위상을 제고하고 그 힘에 기초하여 노동조합 관련 법제도를 개선하자는 구상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는 우선 민주노총 주류가 구 민주노동당의 당론에 보조를 맞추기 때문이지만, 보다 근본적으로는 민주노조 운동 전반의 무기력을 반영하는 것이다. 최근 확정된 민주노총 총선방침은 노동 의제 전면화를 위해 과반의석 확보를 제시하고 있다. 현실에서 이는 민주당과의 선거연합을 전제할 수밖에 없는데, 선거연합이라는 정치적 수단이 민주노총의 투쟁 목표를 희석 또는 변질시킬 가능성이 매우 높다. 단기 성과와 실리에 매몰된 선거방침이 노동자의 독자적 정치세력화를 위해 민주노동당을 창당하고 이를 배타적으로 지지해온 정치방침을 역으로 규정하여, 일순간 신자유주의 세력에 대한 직간접적 지지를 정당화하는 역설로 귀결되고 있다. 하지만 야권연대를 통해 민주노총이 설정한 핵심 의제에서 의미있는 성과를 거둘 수 있을지는 지극히 불투명하다. 통합진보당으로 대표되는 민중운동 주류가 총선과 대선에서 원내교섭단체 진출과 연립정부 구성에 몰두할 경우 신자유주의 세력과의 전면적 타협과 양보는 불가피하다. 계급타협 속에서 이러한 정당은 자신의 정치적 기반을 스스로 침식할 수밖에 없고, 이는 다시 이념 및 노선의 우경화와 선거정치의 빌미를 제공한다. 특히 세계 경제위기가 심화되는 현 정세에서 통합진보당이 만에 하나 연립정부에 참여할 경우, 이는 그로 표상되는 민중운동이 집권세력의 정치적 책임을 공동 부담해야 한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특히 민주노총이 통합진보당을 배타적으로 지지한다면 이는 향후 노동자운동의 주류가 미국식 자유주의(당)-노동자운동 공조로 재편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경제위기와 정치위기에 대한 민중적 대안의 건설이 점점 더 멀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민중운동이 야권 단일화 프레임과 구별되는 독자적인 정치적·조직적 전망을 제시하지 못한다면 총대선 국면에서 범야권의 일부로 흡수 통합되는 것은 시간문제다. 민중운동의 대응 이상의 분석을 요약하면서 2012년 민중운동의 투쟁 방향을 도출해보자. 첫째, 2012년 세계경제는 미국의 경기침체 가능성 고조와 유럽의 재정위기 확산, 중국의 경착륙 위험 등으로 대단히 심각한 위기를 경험할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 세계적인 차원에서 반복적으로 확대 재생산되는 경제위기는 세계화된 금융연계와 신자유주의 정책의 모순이 폭발한 결과로서, 일시적인 순환적 위기가 아니라 장기적인 구조적 위기의 성격을 갖는다. 무역의존도와 금융개방도가 높은 한국 경제는 세계 경제위기가 심화할 경우 직접적인 타격을 입을 것이다. 정권 말기 레임덕이 가속화하는 가운데 여당이 복지 공약을 강화하고 정부가 감세정책을 일부 철회했지만, 재벌주도 성장 및 노동력 관리 기조는 여전히 유지되고 있다. 그 결과 정부의 경제위기 대응은 중기적으로 재정건전화 기조를 이어가는 가운데 FTA 글로벌 네트워크 전략과 노동신축화 법제를 추진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자본은 긴축경영 기조 속에 임금을 억제하고 고용을 축소하면서 노동자에게 위기 비용을 전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민중운동은 거시적 수준에서 금융자유화와 노동신축화를 주축으로 경제위기를 극복하려는 정부의 신자유주의적 정책기조를 전면 비판해야 한다. △한미 FTA를 필두로 하는 FTA 글로벌 네트워크 전략 비판 △자본시장통합법 개정안을 비롯하여 금융거품과 부실을 양산하는 금융자유화 조치 반대 △국가고용전략 2020 이후 제출되고 있는 각종 노동신축화 법제 반대 △노동기본권을 무력화하는 현행 노조법의 전면 개정 등이 당면 주요 과제다. 둘째, 미국은 경상적자 해소책으로 중국 등 신흥국의 환율유연성 제고와 자국의 서비스산업 수출 주도 정책 전환을 강조하며 한미 FTA 이후 아시아태평양자유무역지대(FTAAP) 구상을 구체화하고 있다. 수출 달러 환류 메커니즘으로 특징지어지는 미중 관계는 ‘미중 전략 및 경제 대화’(G2)를 통해 이해관계가 조정되고 있지만, 그와 동시에 잠재적인 정치·경제적 갈등이 심화되는 양상이다. 이는 최근 미국의 ‘태평양 세기’ 구상에서 드러나듯이 미국의 사활적 이익이 걸린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해외주둔미군재배치계획(GPR)의 수정과 전력 증강으로 귀결되고 있다. 천안함-연평도 사태를 거치며 군사적 긴장 상태가 한층 고조된 한반도에서는 북한 체제의 변화로 불확실성이 확대됐다. 당분간 조정 국면을 맞겠지만, 기본적으로 한미의 북핵 포기 전략이 유지되고 2012년 강성대국 원년과 체제 교체를 맞는 북한의 공세가 충돌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민중운동은 미국의 아시아·태평양 전략과 한국의 한미동맹 강화 기조가 동북아와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을 고조한다는 점을 명확히 폭로하면서 반전평화 운동을 적극 전개해야 한다. △핵안보정상회의 비판 △평택 미군기지, 제주 해군기지를 비롯한 주둔미군 재배치 계획에 대한 비판 △한국의 전력 증강 사업 비판 등이 주요 과제다. 셋째, 고용·임금과 민중생존권을 쟁취하기 위해 총노동 전선을 구축해야 한다. 정부가 제기하는 노동시간 단축 방안은 실상 노동시간을 신축화하여 단시간·저임금·비정규 노동을 양산하는 효과를 낳을 것이다. 이러한 노동시간 단축 방안의 본질을 정확히 비판하면서, 이전부터 금속노조가 주장해온 주간연속2교대제와 야간노동철폐 투쟁에서 실질적인 성과를 쟁취하기 위한 구체적 전략을 모색해야 한다. 그동안 실질임금 하락폭이 컸고 올해 선거라는 정치 일정도 있어서 임금인상 요구 관철이 상대적으로 쉬울 수도 있지만, 교섭력이 취약한 부문은 경제위기 여파가 커질 경우 여전히 실질임금 삭감이 우려된다. 또 경영난을 이유로 물량이나 생산기지를 국외로 이전하려는 기업도 늘어날 것이다. 총연맹 수준에서는 노동자계급 전반의 사정 악화와 함께 내부 격차의 확대를 감안하여 연대임금 정책을 적극 모색할 필요가 있다. 산별연맹 수준에서는 산업적 위계의 정점이자 임금협상의 기준이 되는 주요 완성차 대기업 노동조합들이 산별교섭에 동참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또 38 여성의날과 연계한 공공운수노조서울경인지부의 대학비정규직 집단교섭, 공단 차원의 전략조직화와 연계한 금속노조서울남부지회의 집단교섭도 계속해서 발전시켜야 한다. 쌍용자동차·한진중공업 투쟁으로 부상한 정리해고 이슈를 진전시키고 사내하청·특수고용 등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을 확대하는 것도 중요한 과제다. 경제위기에 사각지대로 몰리게 될 민중들의 기초생활권을 쟁취하기 위한 투쟁도 중요하다. 복지 정책의 수혜자로서 정책적 요구에 매몰되기보다는 사회적 권리의 주체로서 대중 저항 주체 형성에 주력하는 것이 중요하다. 넷째, 경제위기와 민심이반을 바탕으로 2010년 지방선거와 2011년 상하반기 재보궐 선거에서 승리한 야권은 민중운동의 일부를 포섭하는 정당통합과 선거연합을 통해 다가올 총선대선에서 반한나라당 공세를 지속할 전망이다. 만성적 경제위기를 배경으로 현직의 실패와 정당의 위기가 반복되고 있는데, 반한나라당-비민주당 무당파를 상징하는 ‘안철수 돌풍’은 한국 정치의 근본적 불안정성을 의미한다. 민중운동의 이념적·조직적 위기를 반영하는 통합진보당의 등장 및 이들의 민주통합당과의 선거 제휴 속에서 민중운동 전반의 주류화가 심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의 정세는 향후 대중운동을 재건하여 반신자유주의 전선을 구축하기 위한 기초를 유실하지 않기 위한 각고의 노력을 요구한다. 민중운동 좌파는 전선의 유실과 진보정당 및 노동조합의 우경화를 저지하고 향후 민중운동의 발전적 재편을 추동하기 위해 상호 긴밀히 공조해야 한다. 나아가 국제 사회운동의 경제위기 대응에 대해 주의 깊은 관찰과 연대가 필요하다. 국제적 수준에서 보면 2010-11년 유럽 긴축반대 운동, 2011년 상반기 중동 및 북아프리카 민주화 혁명, 2011년 하반기 미국 월스트리트 점령 운동 등 경제위기에 맞서 투쟁이 이어지고 있지만, 이것이 한동안 추동력을 상실한 대안세계화 운동의 부활의 계기가 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자본주의의 체계적 위기에 맞서 국제적 수준에서 민중적 대안을 발전시켜 나가는 것이 중요한 과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