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정당의 선거정치와 지역대중운동의 현실 4.9 총선으로 노무현과 386 판본의 ‘진보’가 보여준 무능력과 기만은 최종적인 심판을 받았다. 2004년 17대 총선에서 열린우리당 152석 대 한나라당의 121석의 비율은 이번 총선에서 한나라당 153석 대 통합민주당 81석으로 반전되었다. 그러나 의석수로 승리자와 패배자를 나누는 것만으로 이번 선거의 의미를 파악할 수 있겠는가? 이번 총선에서 투표를 하지 않은 유권자가 50%선을 돌파했다. 이는 어떻게 보아야 하나? 대개 정치의 ‘휘발성’은 선거과정을 거치며 지지자들이 반대자로 돌아서고, 반대자들이 지지자로 돌아서는 경우를 말한다. 이는 곧 정당 또는 후보자에 대한 지지가 쉽게 변한다는 뜻이다. 정당의 특정한 이념노선에 대한 유권자의 안정적인 지지 성향이 해체되거나, 정당들 간의 이념노선의 차이가 소멸한다면 이러한 휘발성이 당연히 강화될 수밖에 없다. 이번 선거에서 나타난 낮은 투표율, 매 선거 때마다 나타나는 시소놀이와 같은 정당지지율의 급등과 급락과 같은 현상은 장기적 관점에서 볼 때 한국정치의 휘발성, 곧 불안정성이 지극히 높아지고 있음을 뜻한다. 하지만 이와 같은 현상은 일시적인 예외가 아니다. 이는 한국 사회의 신자유주의적 재편(지역적 불균형, 기존 계급구성의 해체와 변화)을 반영하기 때문에 앞으로도 반복될 개연성이 높다. 반면 민중운동이 인민주의 정치에 대항하기 위해서는 한국사회 재편에 능동적으로 대응해야 하지만, 대중운동의 토대가 극히 취약하다. 게다가 현재와 같은 양상의 민중운동의 정치적 분할은 새로운 운동경로를 창출하기보다는 기존에 존재하는 운동 ‘자원’을 나누기 위한 경쟁으로 변질될 수도 있다. 사회경제적 위기와 인민주의 정치토양, 민중운동의 경쟁과 축소재생산의 위기는 우리에게 정말로 심각한 도전이 아닐 수 없다. 현대 선거기법의 두 가지 전술 세계자본주의를 이끌고 있는 미국은 새로운 ‘선거기법’의 창출에서도 단연 첨단의 면모를 보여준다. 그들의 선거책략, 여론조작수법은 선거캠프에 모이는 한국의 엘리트들 즉 정치학자, 여론조사전문가, 다종다양한 기술관료 들을 통해 한국 정치에 직수입된다. 따라서 1990년대 이후 미국 정치에서 대별되는 두 가지 선거기법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1992년 공화당 장기집권에 종지부를 찍은 클린턴의 선거기법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삼각형 만들기’다. 즉 삼각형 위의 정점에서 아래 밑변의 양 꼭지점(좌우)의 장점만 뽑아서 활용하면 된다는 것이다. 1980년대 미국 경제의 장기불황으로 인해 전통적인 정당(특히 민주당) 지지층이 해체되었고, 이는 레이건-부시의 격앙된 신보수주의의 장기집권에 길을 열어 주었다. 그러나 클린턴은 이에 신물이 난 유권자들을 향해, 극우-극좌를 배제하는 새로운 중도주의를 통해 안정된 정치 환경과 경제성장을 약속함으로써 불가능해 보였던 선거승리를 거두었다. 그러나 ‘제3의 길’이라는 담론을 누구보다도 먼저 제시했던 클린턴이 실제로 새로운 정책을 창조한 것은 아니었다. 그가 창조한 것이 있다면 새로운 말이고, 이러한 말을 만들어내는 방법이었다. 클린턴은 모든 일에 여론조사에 의존하는 정치기법을 개발했다. 이는 그가 여론을 정확히 파악해서 그에 따르기 위해서가 아니라, 이미 선택한 정책 프로그램을 여론조사결과에 부합하도록 포장하기 위해서였다. 물론 이제 이러한 여론조작술은 미국정치에서 일반화되었다. 하나의 정책적 개념이 여론주도집단에게 잘 ‘판매’되지 않는다면 정책변화 없이도 다른 용어를 채택하기만 하면 된다. 예를 들어 ‘사회보장 사유화’나 ‘핵무기 사용권’이 인기가 없으면 ‘개인계정’이나 ‘헌법적 선택권’이란 말을 쓰면 만사형통이다. 최근 부시는 부유층의 ‘상속세’나 ‘세금삭감’ 대신에 ‘사망세’나 ‘세금구제’라는 말로 정책 지지도를 끌어올렸다. (이것이 요즘 언론에서 부쩍 자주 언급하는 이른바 ‘정치의 프레임’이다.) 보통 정치학자들은 여론이 투입물이고 정책이 산출물이라고 가정하지만, 실제 정치과정에서는 그 정반대가 진실이다. 그러나 이처럼 허구적인 중도주의가 전부는 아니었다. 2004년 총선에서 부시의 공화당이 보여준 격렬한 선거기법은 ‘탈동원화와 네거티브 전략’이었다. 전통적인 선거 전략은 더 많은 유권자의 지지를 이끌어내는 유일한 방법이 후보자가 자신의 메시지를 온건하게 제시해서 부동층의 환심을 사는 것이라고 가정했다. 그러나 공화당은 이러한 외부적 확대보다는 내부적 자기강화를 선택했다. 대다수의 대중이 특정 정당에 대한 안정적 지지층이 아닌 것이 현실인 마당에야 공화당을 지지할 가망성이 높은 특정집단의 지지를 모으기 위해서는 더욱 명료한, 즉 극단적인 정치메시지를 전달하고(낙태 반대, 동성애 반대 등등), 나머지 집단에서 대해서는 탈동원화 전략을 적극 활용한다는 것이다. 즉 비방광고(네거티브 캠페인)나 추문을 통해 대중의 정치적 혐오를 확산시켜서 유권자의 선거 참여를 일반적으로 억제하거나, 상대방 후보를 선호할 것 같은 집단의 투표 참여를 억제한다는 것이다. 물론 이런 기법들은 현실 선거에서 종종 혼합되어 나타나며, 민주당과 공화당이 모두 이를 상황과 필요에 따라 활용하므로 지속적인 진동이 나타난다. (현재 미국대선에 공화당과 민주당 양자는 모두 허구적 중도주의로 다시 회귀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양자 모두에는 중요한 공통점이 있다. 클린턴 식의 정치기법뿐만 아니라, 공화당 식의 탈동원화/네거티브 전략 역시 강력한 여론조작기법을 동원해야 한다. 따라서 정당은 기층에서 충원되는 선거운동원이 아니라, 정치조작전문가들이나 기술관료 지배가 강화된다. 하지만 허구적 중도주의든 극단적 대결주의든 대중이 처해있는 사회경제적으로 불안정한 조건을 해결하지 못한다. 즉 대통령이나 의회 여당이 바뀐다고 사회경제적 위기가 극적으로 사라지지 않는다. 정치가가 경제위기를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은 그야말로 정치에 대한 환상에 불과하다. 따라서 사회경제적 위기와 여론조작 정치의 심화 속에서 정당의 대중적 토대는 지속적으로 약화되는 경향을 보이며, 그럴수록 더욱 더 강력한 여론조작에 의존해야 하는 악순환이 성립된다. 이것이 바로 오늘날 부르주아 정당들이 보이는 강점과 그 이면의 결정적 약점이다. 부르주아 정당들은 점점 더 사상누각을 쌓고 있다. 한국 인민주의 정치의 승리자와 패배자 한국의 한나라당, 통합민주당은 미국의 공화당, 민주당과 정치경제적 조건이나 역사적 배경이 분명히 다르지만 여러 측면에서 유비가 가능할 것이다. (그리고 오늘날 한국사회의 ‘미국화’로 인하여 유비는 그 이상으로 변모하고 있다.) 그러나 앞에서 제시한 특징적인 선거기법이라는 측면에서 볼 때, 특이점이 존재한다. 바로 통합민주당의 전신인 노무현/열린우리당이 ‘좌파적’ 탈동원화/네거티브 전략을 적극 활용했다면, 현재 이명박/한나라당이 ‘우파적’ 중도주의를 표방하고 있다는 점이다. 즉 과거 노무현/열린우리당이 ‘민주화운동’의 정통성을 내세우며 과거사 문제나 주택교육 정책 등을 계기로 일종의 ‘문화전쟁’(이념논쟁)을 시도함으로써 386 지지층을 결집시키고, 한나라당 지지층을 ‘기득권=보수=강남’이라는 도식으로 도덕적으로 비난해서 그들의 정치적 목소리를 억제하고자 했다. 반면 한국사회에서 대량빈곤이 오히려 확대되면서 노정권의 인기가 하락하자 주류언론은 노정권이 ‘소모적인 이념논쟁으로 국력을 낭비 한다’는 함포사격을 가했고, 노정권은 거대한 역풍에 직면했다. 성공한 경영인이 이미지로 무장하고 ‘경제를 살리자’는 실용주의를 표방한 한나라당이 ‘우파적’ 중도주의로 기사회생한 것이다. 대선에서 이명박의 승리와 이번 총선에서 한나라당의 승리를 계기로 모든 언론은 앞 다투어 소모적인 이념갈등은 종말을 고했고, 이제야말로 선진국 진입을 위한 중도 실용주의가 전면에 나서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명박은 1960년대 한일회담 반대투쟁 경력을 전면에 내세우지는 않으나 역으로 부정하지도 않는다. 이는 그의 중도 실용주의를 더욱 돋보이게 하는 하나의 꼭지점으로 적절한 수준에서 활용된다.) 이제 한국사회 부르주아 정단간의 경쟁에서는 정책이 중요한 변수가 아니고 정당간의 이념적 거리가 사실상 무의미하며, 이미지와 여론 조작과 같은 인민주의 정치행태가 지배적이다. 한나라당이든 민주당이든 휘발성이 강한 대중조작적 선거기법에 더욱 의존하고 있고, 그들 역시 사상누각을 쌓고 있다. 누가 승리자인지, 패배자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그들이 어떤 식으로 행동하는지가 중요하다. 정치위기와 뉴타운의 폭발력 현재 각종 선거결과나 일상적인 여론조사 결과는 한국정치의 불안정성이 어느 지경에 이르렀는지를 분명히 보여준다. 이번 선거결과 50% 이하로 떨어진 투표율은 너무나 명백한 증거다. 그것은 대중의 수동적 태도가 지속적으로 강화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물론 소극적인 저항의 한 형태로 이해될 수도 있다.) 한국사회의 지배정당인 한나라당과 민주당은 지지율의 급등과 급락을 반복하고 있으며, 이는 극히 낮은 투표율의 이면이다. 이와 더불어 이번 선거는 한국사회의 현실적 변화를 보여주는 몇 가지 특징적 양상이 나타났다. 영호남은 여전히 강력한 지역주의의 보루로 남아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렇지만 그 성격은 크게 바뀌고 있다. 한때는 영남과 호남의 지역주의를 각각 보수적 지역주의와 저항적 지역주의로 분류하려는 시도도 있었으나 현재는 공통점이 더 많다. 즉 수도권의 거대도시화와 부의 집중에 대비된 상대적인 지역적 소외감의 표출이라는 점에서 그렇다. 물론 영남지역에서 박근혜의 무시무시한 괴력이 다시금 발휘되었다는 사실을 무시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지역의 대중들에게 뚜렷한 탈출구가 없어 보이는 상황에서 나타난 박근혜 지지는 박근혜가 새로운 발전주의의 전망의 제시하지 못하고 과거의 전통 반공주의를 벗어나지 못하는 한 퇴행적일 수밖에 없으며 그 생명력을 장담할 수 없다. 또한 영호남에서 뚜렷이 나타난 투표율 하락의 의미도 고려되어야 한다. 또한 이러한 한국사회의 정치적 불안정성의 점증은 이러한 지역적 불균형의 심화와 더불어 도시 내부의 변화와 조응한다. 단적인 예를 들자면, 이번 총선을 두고 이른바 ‘아파트계층’이 서울지역의 투표결과를 결정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즉 선거구별로 아파트 밀집도가 높고, 특히 최근 아파트 가격이 많이 오른 지역일수록 한나라당 지지도가 비례적으로 상승했다는 것이다. 이미 강남, 송파, 서초지역이 한나라당의 초강세 우세지역으로 자리 잡고 있는데다가 강북지역과 신도시가 이러한 흐름에 동참함으로써 서울과 수도권 남부가 한나라당의 철옹성으로 재편되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아파트계층’은 몇 개의 피라미드층으로 나눠볼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전문직 고소득자(전통적인 전문직과 신흥 골드칼라), 거액의 은행융자를 끼고 주택을 구입한 중하층 화이트칼라층, 연립주택이나 빌라 소유자 등. 피라미드의 상층부는 좀 더 높은 부동산 투자 수익을 기대하면서 부동산 관련 규제완화나 세금인하를 적극 지지하면서 상대적인 여유를 누릴 것이다. 거액의 융자를 갚아야 하는 아파트소유자들은 주택가격이나 시장금리가 가계의 생사가 걸린 필사적인 문제일 것이다. 연립이나 다가구 주택 소유자들은 뉴타운이 추진되면 ‘지분 쪼개기’를 통해 큰 소득을 얻으리라 기대할 것이다. 그들 사이에 처지의 차이는 있지만 궁극적으로는 대박을 꿈꾸며 위를 보고 산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으며, 부동산 투기의 이해관계를 공유한다. (현재 서울의 자가 주택 소유자는 55% 수준이다.) 게다가 뉴타운정책으로 실제로는 아무런 이득을 볼 것이 없는 일부 무주택자들마저도 막연한 지역개발 욕구에 따라 뉴타운 공약에 편승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수도권의 대중심리가 금융화와 이에 조응하는 부동산투기에 포섭되면서 집단적 투기 심성을 형성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물론 이들은 한나라당에 대한 안정적 지지층이라기보다는 부동산 개발투기를 보장하는 정치세력에 대한 지지층일 것이며, 종국적으로는 정치적 불안정성의 토양으로 기능할 것이다. 또한 한국사회의 자영업 비율이 상대적으로 높다는 분석도 있다. (현재 자영업주가 600만 명에 이르며, 무급가족종사자가 150만 명에 이른다. 이는 전체 노동자의 35%이며, 이러한 수치는 미국의 7.6%, 대만의 28.4%보다 훨씬 높다.) 특히 이중에서 외환위기 이후 정리해고와 실업반실업의 확산 와중에서 자가고용이나 가족무급노동에 의존하는 영세자영업의 비율이 높아지고 있으며 (예컨대 현재 대형 프렌차이즈의 소규모 지점 사장은 일종의 자가고용 노동자가 되고 있다.), 이들이 체감경기에 극히 민감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들이 안정적인 정당지지 성향을 지니기보다는 선거 시기 부동층으로 존재한다는 것이다. 반면 도시의 노동자와 빈민은 아파트와 뉴타운개발 과정에서 점차 주변부로 밀려났다. 그들이 실제로 도시에서 사라지지는 않았지만, 대형아파트 주변의 잘 보이지 않는 구석구석에 파편화된 형태로 존재하게 되었다. 그들은 생존과 생활의 불안정성 때문에 오히려 드러나지 않고 조직되거나 집단적 목소리를 낼 수 없도록 체계적으로 배제된다. 따라서 도시개발의 가장 큰 수혜층만이 집단적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유리한 위치를 선점하고, 나머지는 정치적으로 배제된다. 진보신당의 어느 후보의 증언에 따르면, 지난 3월 <강남구 공동주택 입주자 협의회>란 단체가 강남구민회관에서 열린 토론회에 각 당 지역구 후보자들을 불러놓고 “종합부동산세 폐지를 공약하라”고 윽박질렀다고 한다. 이들의 응집력이 노동자와 도시빈민(실업자)의 목소리를 압도하고 있는 것이다. 노정권의 기만과 실패는 진보에 대한 기대와 자신감을 상실케 함으로써 노동자와 도시빈민을 더욱 위축시켰을지도 모른다. 이러한 지역적 불균형의 심화, 도시의 재편과 같은 변화는 한국의 정치적 불안정성의 원천이 되고 있다. 그렇지만 민중운동은 이러한 변화에 조응하여 노동의 불안정, 대량빈곤과 실업에 대응하기 위한 지역적, 대중적 활동이 극히 미비하다. 지역운동단체라고는 민주노총 지역조직이나 농민회, 진보정당, NGO 성향의 시민단체가 전부인 경우가 적지 않다. 진보정당들의 경우도 민주노총 기반으로부터 선거자금 모금이나 운동원 조직에도 허덕이며, 일상적인 지역 대중운동을 전개하기 위한 운동적 역량이 지극히 취약하다. 이러한 조건은 오히려 정당들이 대중운동에 대한 소극적인 태도를 취하거나 기존 노동조합 활동에 대한 부정적인 의미에서의 의존에 머물게 한다. 진보정당의 선거정치와 지역대중운동 진보정당에서 선거를 전후한 시점에서 벌어지는 대립의 쟁점은 대개 선거기법, 전략에 집중된다. 앞의 구분 틀을 따르자면 ‘중도파로의 이동을 통한 외적 확대’냐, 아니면 ‘핵심지지층의 동원을 위한 자기강화’냐. 그리고 현실의 선거정치에 종속된 진보정당들은 전자의 선택으로 기울기 마련이다. 정당의 규모가 성장하면서 여론접촉면이 확대되고, 여론조작 정치에 대한 적응도를 높이면서 이러한 방식으로 의회 장악도를 높일 수 있다는 희망을 품기 때문이다. 핵심지지층의 동원은 기정사실로 간주되거나, 역시 선거기법 상의 문제로 접근된다. 정당의 관점에서 볼 때 ‘새로운 지지층’의 형성을 위한 대중적 조직망의 구축은 오히려 더 많은 돈과 사람이 필요한 비효율적 활동으로 간주되기가 쉽다. 또는 정당역량의 취약성 때문에 합리화된다. 따라서 선거를 중심에 두느냐 대중운동(사회운동)을 중심에 두느냐는 정당의 성격을 규정하는 현실적 기준이 될 수밖에 없다. 민주노동당은 5개 의석을 바탕으로, 의원단 역량, 정책역량, 대중조직역량 들에서 기존에 비해 크게 위축되기는 하겠으나 지난 시기 의회활동과 유사한 활동 패턴을 드러낼 가능성이 높다. 현재 민주노동당은 이른바 진보대연합을 다시 추진하면서 시민운동 조직, 인사들의 영입을 통해 중도로 이동을 모색 중이다. (이미 지난 시기 권영길 선본은 이러한 방식을 선택했다.) 하지만 사회운동과 괴리된 원내활동이나 언론대응이 동일한 방식의 활동을 채택하는 지배정당들에 대해 우위를 점하는 전략이 될 수 있을 가망성은 별로 높아 보이지 않는다. 한편 진보신당은 기존 진보신당에 참여하지 않았던 세력들을 포괄하는 정당의 재창당과 지역정당조직 구축이라는 과제를 안고 있다. 그런데 진보신당에 동참했던 일부의 경향은 민주노동당에 ‘남겨두고 온 것’에 대한 아쉬움 때문에 이를 다시 챙기려는 데 활동의 초점을 맞출 수 있다. 이는 새로운 운동을 창출하기보다는 기존에 존재하는 것을 ‘나누기’ 위한 대립이라는 부정적 효과를 낳을 우려가 있다. 게다가 현재 민주노총 지역본부 등의 사례를 보면 정파적 대립과 분할구도가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으며, 한국진보연대 구축과정은 이러한 경향을 완화하기보다는 오히려 존재 그 자체가 분열의 요인으로 작동하고 있다. 따라서 노동조합운동, 정당운동의 분할구도가 가속화되면서 지역운동 수준의 분할도 점점 더 심각해지고 있다. 예견되는 ‘복수노조’ 시대라는 객관적 요인이 이러한 분할에서 어떤 기폭제 역할을 할 것이라는 예상이 곳곳에서 제기되고 있다. 물론 어떠한 구체적인 행동들이 이러한 분할을 더욱 악화시킬 것인지에 대한 정확한 문제제기가 필요하다. (예를 들어 현재 민주노총 이석행 위원장이 진보신당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태도는 문제를 더욱 악화시킬 것이다.) 하지만 더욱 큰 문제는 이러한 대립과정에서 기층에서의 실질적인 운동이 무기력에 빠질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의 당면한 과제는 금융화와 지역개발주의에 대항하는 우리의 이념과 방향을 제시할 수 있는 실천공간으로서 노동조합운동과 대중운동을 지역적, 전국적으로 구축하는 것이다. 우리의 과제는 심각한 도전에 직면해있다.
자본주의 농업과 곡물가격 폭등 | 구준모 국제식량가격 위기에 대한 입장 | 비아 캄페시나 미국 서브프라임 금융위기의 원인과 전망 | 임필수
오는 7월 초 일본 홋카이도 토야코에서 열릴 2008년 G8 정상회담을 앞두고 전 세계 사회운동이 다시 한 번 결집하기 위한 준비가 한창이다. 일본의 여러 사회운동 단체는 <G8 행동 네트워크>를 구성하고 “자유무역, 전쟁과 군사주의, 필수서비스 및 천연자원 사유화, 부당한 외채와 금융 자본의 지배에 저항하고 지구 온난화에 대한 민중의 진정한 해법을 만들어내기 위해 투쟁하는 전 세계 사회운동, 농민운동, 여성운동, 이주자, 도시와 농촌의 빈민, 어민, 시민사회가 일본에 모여 G8에 반대하는 행동주간에 동참할 것을 호소”하고 있다. 일본에서 G8 정상회담에 대응하기 위한 체계는 지향과 노선에 따라 여러 흐름으로 분화되어 결성되었다. 이 중 아탁 재팬, 일본소비자연맹, 평화포럼 등 32개 도쿄 소재 노동조합, 시민사회단체 등으로 구성된 <G8 행동 네트워크는> “G8 반대”를 기본 입장으로 삼고 있으며 ‘반군사주의’, ‘반빈곤’, ‘기업세계화-자유무역, 기후변화’, ‘젠더’, ‘농업-식량주권’을 주요 의제로 7월 4일~7일(가안) ‘G8 반대 행동 주간’ 및 ‘아시아 사회운동 결의대회’ 등을 준비하고 있다. 홋카이도 소재 NGO, 시민운동, 개인들을 중심으로 2007년 9월에 결성된 <홋카이도시민포럼>은 “G8 정상회담을 열린 공간으로 만드는 한 편 아이누(홋카이도 원주민)에 관해 전 세계적 관점에서 토론하고, 민중들의 목소리를 G8 정상회담에 반영하는 것”을 목표로 내세우고 있다. 일본 정부가 G8 관련 공식 NGO 대표체로 간주하는 <G8 정상회담 NGO 포럼>은 G8의 외채탕감, 빈곤감축계획등에 대한 성실한 실행을 촉구하는 단체들로 2006년에 결성되어 정부와 정례 면담을 진행하고 있다. <반-G8 정상회의 홋카이도(아이누모시리) 연락회준비위>는 일본 내 아나키스트 단체들을 중심으로 지난 3월 15일 결성되었으며 신자유주의반대! 빈곤과 차별을 확대하는 G8 반대, G8의 금융투기 반대, 전쟁반대, 선주민 자결권 보장, 자유무역협정 반대를 주요 슬로건으로 삼고 있다. 한편 지난 3월 초 <G8 행동 네트워크>가 주관하고, 한국의 <민주노총>, <사회진보연대>, <한국진보연대>, <한미 FTA 반대 범국민운동본부> 및 <비아캄페시나>, <남반구포커스>, <홍콩 세계화 감시> 등이 참석한 ‘G8 정상회의 반대행동 국제 조정회의’에서는 일본에서 열리는 이번 G8 정상회의를 계기로 아시아 사회운동이 공동 행동과 연대를 강화하여 세계적인 차원에서 전개되는 반전대안세계화 운동에 다시 한 번 적극적으로 참여하자는 논의를 진행했다. 일본 정부는 G8, WTO와 같은 국제기구들의 여느 회합과 마찬가지로 넓은 호수를 앞에 둔 높은 언덕 맨 꼭대기에 있는 토야코 윈저호텔을 회담장소로 택해놓고 시위대의 접근을 철저하게 차단할 준비를 하고 있다. 특히 일본 언론은 99년 시애틀 WTO 3차 각료회의 반대투쟁, 2005년 부산 아펙 및 홍콩 WTO 반대 시위를 사례로 들어 ‘반세계화 운동세력의 과격성’을 부각하며 보안에 만전을 기할 것을 주문하고 있으며, 30년 전 나리타공항 건설 반대투쟁 이후 대규모 시위를 경험한 적이 없는 일본 경찰은 당시 경찰 보안 담당자들을 자문위원으로 위촉하여 시위 진압 방법을 전수받고 있다고 한다. 요미우리신문에 따르면 일본 당국이 2006년 한일월드컵 당시 제정된 훌리건 법을 적용하여 과격 시위로 인한 처벌 경력이 있는 이들의 입국을 거부할 것도 검토하고 있으며, 특히 한미 FTA 반대투쟁을 활발하게 벌였던 민주노총과 전농이 주요 타깃이 될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한국 언론은 이번 G8 정상회담을 놓고 이명박 대통령이 일본 후쿠다 총리로부터 초청을 받아 한국 대통령 중 최초로 G8 정상회담에 참가하게 되었다는 점을 강조하며 이것이 한국 경제를 세계적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기대를 늘어놓고 있다. G8 정상회담의 역사: 신자유주의의 조종사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8개국의 모임(Group 8)을 뜻하는 G8은 IMF나 WTO 등의 여타 국제기구처럼 공식적인 의사결정 체계나 상설적인 집행기구를 갖춘 ‘기구’가 아니라 자본주의 선진국 정상들의 ‘연례 회담’일 뿐이다. 그러나 그 영향력은 막대하다. G8을 구성하는 나라들 중 러시아를 제외한 미국, 독일, 영국, 프랑스, 일본, 캐나다, 이탈리아 7개국의 생산량은 전 세계의 70%이상을 차지하며, 이들 나라의 군사비 지출은 전 세계의 90% 가량을 차지한다. 이들은 이러한 구속력 없는 연례 회담을 통해 각 국의 정책 방향을 조정하고 이를 각종 국제기구들을 통해 확산하며 전 세계에 영향력을 행사한다. 이 서방 선진국 정상들의 모임은 탄생 후부터 현재까지 미국 헤게모니를 바탕으로 중심부 국가들 간의 질서를 구축하는 한편 전 세계적인 신자유주의적 재편을 앞장서서 이끌어내는 역할을 했다. 현재와 같은 미국, 독일, 영국, 프랑스, 일본, 이탈리아, 캐나다, 러시아 8개국 정상들의 연례회의의 모습을 갖추게 된 것은 1997년이지만, 그 기원은 197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차 세계대전 이후 냉전 하 자본주의 선진국들 간의 질서는 미국의 압도적인 우위를 바탕으로 구축되었다. 전후 서유럽의 재건은 미국의 우산 아래서 이루어졌고 일본의 전후 재건 역시 미국의 강력한 개입을 바탕으로 이루어졌다. 한편 2차 세계대전 이후 세계경제 질서를 규정한 브레튼우즈 체계는 금-달러 태환, 고정환율제를 바탕으로 국제적인 자본의 흐름을 조절했다. 그러나 1970년대부터 이러한 전후 세계질서는 변화하기 시작했다. 1970년대 초 금으로 태환 가능한 달러는 미국 외부에 계속 축적되는 한편 미국의 무역적자가 지속되자 미국은 독일 등 주요무역상대국에 달러화 평가절하를 요청했다. 그러나 물가인상의 우려로 이것이 거절되자 미국은 일방적으로 금-달러 태환을 중단했다. 그러자 달러화 가치는 급락했고 브레튼우즈 체계는 실질적으로 붕괴했다. 이로써 큰 폭으로 변동하는 환율을 통제하는 것이 자본주의 선진국들의 주된 관심사가 되었고, 이를 조율해야 할 IMF 등 국제기구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각국 정부들 간의 직접적인 조율이 절실해졌다. 이렇게 해서 현재 G8 정상회담의 모태가 된 미국, 독일, 영국, 프랑스 4개국 재무장관의 회의가 1973년 미국 백악관 도서관에서 열리게 된 것이다. 이와 동시에 발생한 1973년~1974년 유가 파동은 석유수출국기구(OPEC)에 대항하기 위한 이들 간의 긴밀한 협력의 필요성을 증폭시켰고, 여기에 더하여 1974년부터 개시된 경기침체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 뒤 4개국 재무장관 회의는 일본을 포함하는 5개국 재무장관 회의로 확대되었고, 1975년에는 이탈리아를 포함하며 정상회의로 그 수준을 높였다. 1976년에는 캐나다까지 포함한 G7 정상회담이 정례화되었고, 러시아가 가입하기 전인 1996년까지 지속되었다. G8 정상회의로 변화한 후에도 재무장관 회의, 중앙은행 회의 등은 러시아를 제외한 G7의 형태로 진행되고 있다. 국제적인 통화시스템의 위기, 석유위기, 경기침체로 탄생한 G7은 초반에는 각국 간의 대립을 피하고 협력을 강화하는 한편 변동환율제와 같은 새로운 메커니즘을 제대로 다루는 데 초점을 두었다. 그러나 이러한 위기는 자본주의의 구조적 위기로 확대되어 성장과 투자가 줄어드는 한편 실업률이 급증하고 이윤율이 하락하는 등 케인즈주의가 위기에 빠졌다. 1980년대에 들어서서 G8은 신자유주의를 확산하는 역할을 하게 된다. 1979년 미국 연방준비위가 인플레이션을 억제하기 위해 이자율을 인상하기로 결정한 후 미국은 신자유주의 시대를 본격화했다. 1982년부터 몇 년 동안 경기침체와 금융위기로부터 빠져나오고 성장이 반등하자 미국은 낙관적 전망과 신자유주의의 우월성을 G7 사이에 전파했다. 이후 유럽의 신자유주의적 전환, 그 뒤의 일본의 전환은 G7의 조정력과 각국 간의 관계가 실질적이었음을 보여준다. G7이 낙관적 전망에 도취해 있는 동안 신자유주의는 전 세계적인 질서로 확대되어갔다. 1990년대에 들어서 라틴아메리카, 아시아, 러시아, 터키 등지에서 발생한 외환?금융위기, 세계적인 불평등과 빈곤의 확산에 직면하여 G7(또는 G8)은 국제금융기구의 개혁과 중채무빈국의 외채탕감, 개발원조, 지구의 환경과 문화적 다양성의 보전과 같은 의제를 논의테이블에 올리게 된다. 1994년 멕시코 페소화 사태 이후 본격적으로 제기된 IMF, 세계은행, 지역개발은행을 개혁할 필요성에 대한 언급, 1999년 쾰른 정상회의에서 제시된 중채무빈국 외채탕감 계획, 그리고 아프리카 개발원조 등이 이에 해당한다. 그러나 이들이 말하는 개혁은 무역자유화와 금융개방 등 신자유주의의 원칙을 거스르려는 것이 아니라 이러한 원칙을 재확인하고 이것이 원활하게 작동하는지를 감시하자는 것이었으며, 개혁의 목표는 IMF가 행사하는 통제력을 강화하는 것이었다. 또한 외채탕감 및 발전원조는 대상이 되는 주변부 국가들에서 신자유주의 구조조정과 무역투자의 자유화를 철저하게 단행할 것을 조건으로 강요했다. G8에 대항하는 세계 사회운동: 대안세계화 Vs. 인간의 얼굴을 한 세계화 G8에 대항하는 사회운동은 1998년 개시된 3세계 외채탕감 운동인 주빌리(Jubilee) 운동으로 본격화되었다. 성서에서 유래한 죄수를 풀어주고 빚을 탕감해주는 50년마다 돌아오는 주빌리(기쁜 해)에 기원을 둔 이 운동은 중심부 국가 내의 종교단체 및 NGO들이 1998년 국제회의를 통해서, 돌아오는 주빌리인 2000년까지 중심부 국가 정부에 부당한 외채를 탕감할 것을 요구하는 캠페인을 제안하면서 시작했다. 이어 1999년 쾰른에서 개최된 G8 정상회담을 겨냥하여 대규모 시위를 조직했고, 이에 영향을 받아 쾰른 정상회의에서는 중채무빈국의 2000억불 외채 중 700억불을 탕감한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이를 계기로 G8 정상회담은 외채탕감운동의 주된 타깃이 되었다. 그러나 1999년 시애틀 WTO 3차 각료회의 반대투쟁을 계기로 활성화된 주요 국제기구의 회의를 겨냥하여 신자유주의 세계화 반대를 내건 국제적인 직접행동, 그리고 신자유주의를 넘어 민중적 대안을 모색하자는 취지에서 2001년에 개시된 세계사회포럼은 G8에 대항하는 사회운동을 더욱 풍부하게 만들었다. 2001년 이탈리아 제노바에서 개최된 G8 정상회담 당시, 시애틀과 세계사회포럼을 경험한 세계 사회운동은 신자유주의 조종사로서 G8의 본질을 인식하기 시작했고, 이때부터 G8 반대투쟁은 신자유주의 세계화 반대투쟁이 되었다. 제노바에는 시혜적 성격의 주빌리2000 운동에서 분화하여 중심부국가가 주도하는 외채탕감이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의 지렛대임을 지적하며 모든 외채의 무조건적 탕감을 주장하는 주빌리사우스 운동뿐만 아니라, 초국적금융자본의 민중적 통제를 주장하는 아탁, WTO 반대투쟁에 적극적으로 참가했던 농민운동 등이 “신자유주의 세계화 반대”를 전면에 내세우고 10만 명 규모의 대대적인 시위를 벌였다. 세계사회포럼으로 대표되는 대안세계화운동에 적극 참여해서 변화된 현실에 걸맞은 변혁적 전망을 다시금 세워내고자 했던 이탈리아 공산주의재건당 역시 제노바 시위를 기층에서부터 조직하는 데 적극적인 역할을 했다. G8 정상들은 ‘거리를 가득 메운 폭도’들이 아니라 바로 자신들이 빈곤과 불평등이라는 세계화의 모순을 해결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당시 무장한 이탈리아 경찰이 시위를 폭력적으로 진압하며 시위에 참가한 한 청년을 총으로 쏴 사망하게 한 사건은 그들이 전 세계 민중이 제기하는 여러 요구를 폭력으로 묵살하는 것 말고는 아무런 해법도 제시할 수 없다는 사실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그러나 2005년 글랜이글스/에딘버러 정상회담은 G8 반대투쟁의 또 다른 전환점이었다. 2001년 제노바 투쟁 이후 칸쿤 5차 WTO 각료회의와 미주자유무역지대(FTAA)를 무산시키고 이에 대한 민중적 전망을 제시해온 대안세계화운동은 미국의 이라크침공을 계기로 확산된 국제 반전운동과 결합하여 성장을 거듭해왔다. 2005년 정상회의 개최국인 영국의 토니 블레어 총리는 아프리카 원조, 기후변화, 에이즈 퇴치와 같은 의제를 전면에 내세워 ‘인간의 얼굴을 한 세계화’를 표방하며 대안세계화운동을 무력화하고자 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외채탕감을 요구하는 ‘빈곤을 역사 속으로(Make Poverty History)’와 같은 비정부기구와 아일랜드 출신 가수 밥 겔도프가 주최하고 엘튼 존, 폴 매카트니, 마돈나, U2 등 유명한 대중가수들이 출연한 대규모 순회공연 ‘라이브 에이드(Live Aid)’가 신자유주의 세계화 반대투쟁의 자리를 대신했다. 이런 상황에서 “G8 반대 운동이 신자유주의 세계화를 인간적인 면모로 채색하려는 자들에게 부지불식간에 포섭 당했으며, 이것이 지속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G8, 신자유주의 정책을 강제하는 각국 정부들에 대항해서 싸우려는 노력, G8이 지도하는 WTO, IMF, 세계은행 등의 정당성을 허무는 노력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는 평가가 쏟아졌다. 이러한 두 차례의 경험을 바탕으로 2007년 독일 로스톡 정상회담 당시에는 여러 사회운동들이 “제노바 정신으로 돌아가자”를 기치로 삼아 빈곤과 불평등의 ‘해결자’가 아닌 ‘주범’으로서의 G8의 본질을 비판하며 강력한 투쟁을 전개했다. 2008년 홋카이도 G8 정상회의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확산된 국제적인 금융 불안, 국제 곡물가 폭등 등으로 대표되는 세계 경제의 위기와 지구온난화로 대표되는 생태위기는 이번 G8 정상회담을 가로지르는 대표적인 화두다. 올 1월 다보스포럼에 참석한 후쿠다 일본 총리는 “세계경제, 기후변화, 아프리카 발전”이 이번 G8 정상회의에서 다룰 핵심 이슈라고 언급했다. “후퇴를 겪고 있는 세계경제의 위기는 증폭되고 있다. G8 지도자들이 세계경제와 금융시장의 21세기형 위기에 대해 신속하게 대응하여 신용위기 가능성을 조기에 없애야 한다.”는 후쿠다 총리의 발언은 미국 발 세계경제의 위기기 폭발하는 것을 막기 위한 중심부 국가들 간의 정책 공조가 절박하다는 점을 호소하는 것이다. 한편 2007년 12월 발리에서 개최된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로 개시된 포스트 교토 체제에서 일본이 주도적인 역할을 점하는 것 역시 이번 G8 정상회담을 준비하는 일본 정부의 주요 관심사다. 다보스 포럼에서 후쿠다 총리는 “개도국들이 성장을 저해하지 않으면서 기후변화에 대처할 수 있도록 지원하기 위해 100억 달러를 내놓겠다.”며 “일본 정부가 2050년까지 온실가스 50%를 감축하는 데 앞장설 것이며, 이 기금을 개도국들의 기후변화 완화 노력 지원과 청정에너지 체계로 전환하려는 나라에 대한 기술지원, 대부, 원조에 사용하겠다.”고 밝혔다. 더불어 일본정부는 G8 정상회담과 함께 기후변화에 관한 정상회담을 병행할 계획으로 한국정부를 비롯한 G8 회원국 외 여러 정상들을 초청했다. 최근 더욱 심화하는 세계경제 위기로 그동안 G8이 중심이 되어 추진해 온 신자유주의 세계화는 전 세계 민중의 희생을 담보로 자본의 구조적 위기를 지연하는 과정이었을 뿐이라는 사실이 더욱 분명해지고 있다. 초민족자본의 이윤 확대를 위한 전 세계적인 구조조정과 무역?투자의 자유화가 확산되면서, 인간이 생존하는 데 가장 기본이 되는 식량에 대한 권리마저도 위태로운 지경에 이르렀다. 여기에 더하여 자본은 지구온난화로 대표되는 생태위기 마저도 투자와 이윤확대의 계기로 활용하려고 시도하며 위기를 증폭시키고 있다. G8 반대투쟁을 거치며 성장해 온 사회운동들의 경험은 ‘발전과 평등’이라는 수사로 자본주의의 구조적인 모순을 은폐하며 위기를 지연하려는 G8 정상으로 대표되는 신자유주의의 조종사들이 아닌, 이러한 신자유주의 세계화를 중단하고 새로운 전망을 개척하려는 민중들의 운동이 현재의 위기를 진정으로 극복할 수 있는 대안임을 보여준다. 이명박 정부는 취임 직후부터 ‘친-재벌정부’임을 노골적으로 내세우며 쇠고기협상 타결과 한미 FTA의 조속한 비준, 한일 FTA 재개, 여타 FTA 확대를 통해 위기로 치닫고 있는 세계 경제에 더욱 깊숙이 편입하는 것 말고는 별다른 대안도 없음을 자인하고 있다. 초민족자본과 재벌만을 위한 신자유주의 정책을 ‘경제성장’이라는 구호로 은폐하고 있는 이명박 정부에 맞서는 투쟁을 다시금 조직하면서 대안적 전망을 구체화하기 위한 노력을 전개하는 것은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 ‘국익론’과 ‘경제성장론’에 가로막히고 분야별 이해득실 논리에 갇혀 답보 상태에 놓여 있는 한미 FTA 반대투쟁을 반성적으로 평가하면서 세계경제의 구조적 모순에 대한 인식을 확대하고 이를 근본적으로 지양하는 운동을 펼쳐나가야 한다. 7월 홋카이도 G8 정상회담은 이러한 노력을 펼치는 전 세계 사회운동과 만나는 계기가 될 것이다.
‘비정규직 870만’, ‘저임금과 고용불안정 확대’라는 노동자들의 현실에서, 비정규악법처럼 국가권력과 지배세력이 제정하는 ‘법’의 본질이 ‘공공의 이익’이나 ‘국민일반의 이해’를 대변하지 않는다는 것은 명백하다. 가진 자들의 ‘소유권’과 ‘이윤추구’는 절대적으로 보장되지만 노동자들의 권리는 ‘국익’, ‘경제성장’ 등 각종 이데올로기 공세 속에 무참히 짓밟히고 있다. 하물며 지배세력 스스로 만든 법의 적용에서조차도 ‘자본가들은 유전무죄요, 노동자들은 무전유죄’인 현실에서 ‘법 앞에 만인이 평등하다’는 민주공화국(?)의 헌법정신은 무색하다. 아무리 돈이 많은 자본가도 자신의 ‘자본’을 쌓아 놓는 것만으로 이윤을 생산할 수 없다. 자본가는 ‘산 노동’, 즉 노동자의 노동력을 착취해서만 이윤을 창출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노동자가 노동자로서 일하지 않으면 자본주의 사회는 굴러갈 수 없다. 또한 노동자들이 이러한 불합리한 구조에 맞서 단결, 투쟁해도 자본주의 사회는 유지될 수 없다. 노동자들이 노동자로서 성실히 일하게 강제하고, 노동자들이 자본주의 사회구조를 위협할 만큼 단결하고 투쟁하지 못하도록 관리하는 누군가의 역할이 필요하다. 그게 바로 ‘국가’다. 국가는 법과 검찰, 경찰, 군대 등 억압적인 국가기구와 정당, 의회, 학교 등 이데올로기적 국가장치를 통해서 자본주의적 사회관계를 유지하고 노동력을 재생산한다. 국가의 노동력 관리정책(노동여성교육보건복지정책 등)은 정규직과 비정규직, 대공장과 중소사업장 등 노동시장 내의 분할 뿐 아니라 국익과 국가경쟁력의 이름으로 맹위를 떨치고 있는 국가주의/민족주의, 성, 인종, 종교, 지역, 가족주의 등 각종 분할선을 따라 끊임없이 노동자대중을 분할하고, 그 중 일부를 포섭 혹은 배제하여 노동력을 효과적으로 통제한다. 자본주의의 호황기, 사회주의진영의 실존과 노동운동의 성장기에 자본과 지배세력은 ‘생산성 임금의 보장’ 혹은 ‘사회적 복지체계’ 등 노동에 대한 양보와 타협체계를 형성했으나, 자본주의의 구조적 위기 이후 신자유주의 시대에는 이러한 양보를 철회하고 노동에 대한 대대적인 공세를 시작했다. 한국사회에서도 86-88년 경제호황을 거치면서 성장한 노동운동에 대해 지배세력은 급진적/전투적 부위에 대한 이데올로기적, 물리적 탄압과 동시에 노사정 협의틀과 같은 ‘제도적인 타협과 통제’를 끊임없이 시도해왔다. 그러나 세계자본주의의 반주변부로서 한국사회의 취약한 구조와 신자유주의라는 시대적 조건으로 코포라티즘적 통제를 제도화할 수는 없었다. 이런 구조적 제약 속에서 자유주의 세력의 변신은 ‘민주화’와 ‘개혁’이라는 이름으로 실제로는 사회구조를 끊임없이 신자유주의적 방식으로 전환시켜 왔다. 특히 노무현의 집권과 몰락 과정은 신자유주의의 확산과 더불어 안정적 통치체제의 설립에 실패하고 사회불안정성이 고조됨으로써 자유주의 정치세력의 위기가 심화되어온 시기였다. 이명박은 노무현의 돌출적 정책과 ‘민주화’ 담론을 공격하면서, 보수적 지지기반 위에 일부 자유주의 세력을 포섭하여 실용주의라는 이름으로 등장했다. 이명박은 ‘민주화’ 담론을 활용하는 인민주의를 포기하고 노골적인 신자유주의 정책을 추진할 것이다. 특히 자유주의 세력의 위기 속에 등장한 새로운 자유주의-보수주의 연합으로 기존 정치의 위기를 돌파하기 위해 매우 공세적인 태도를 취할 것으로 예측된다. 노무현과 달리 이명박은 교육, 공무원, 공공 분야에 대한 총공세를 통해서 모든 영역에서 신자유주의적 전환을 가속화할 것으로 보인다. 또 미디어와 NGO 동원보다는 관리행정체제를 중심으로 하는 억압이 가속화될 가능성이 높다. 한편 대중운동의 힘이 전례 없이 취약하기 때문에 운동에 대한 격렬한 공격이 예상된다. 초민족자본의 이해를 전면적으로 대변하기 위한 과감한 공세 이명박은 후보시절 여론의 지지를 받고 있는 이랜드 투쟁에 대해 “노조가 잘못됐다”는 발언을 주저하지 않았다. 그가 대통령으로 당선되자마자 이랜드 자본은 뉴코아-이랜드 노조 지도부 33명을 해고하고 교섭중단을 선언했다. 또 이명박 취임 후 얼마 지나지 않은 3월 11일 새벽 경찰 6개 중대와 영등포구청이 고용한 용역깡패 2백여 명이 코스콤 비정규지부 농성장을 침탈하여 노동자들을 폭행하는 사건이 발생하였다. 입법부, 사법부도 코스콤의 사용자성을 인정했고, 국회 환경노동위원회가 코스콤 이종규 사장을 국정감사 위증죄로 고발한 상황이었다. 법을 어긴 자본가는 그대로 둔 채 노동자의 투쟁은 ‘법과 질서’를 내세우며 폭력적으로 탄압한 것이다. 이명박의 취임을 전후한 일련의 사태는 ‘기업투자 활성화를 통한 일자리 창출, 양극화 해소’라는 이명박의 청사진의 실체가 무엇인지 단적으로 보여줬다. 이명박 정부는 ‘비즈니스 프렌들리’를 표방하면서 재벌과 초민족자본의 이해를 보장하는 규제완화와 제도개혁을 강력히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우선 감세로 기업이윤을 증대시키고 각종 규제완화로 재벌과 초민족자본의 금융화를 지원할 것이다. 초민족 자본의 요구에 맞게 교육시장화 정책을 추진하고, 건강보험 당연지정제를 폐지하여, 민간의료보험을 도입할 예정이다. 초민족자본의 수익성있는 투자처를 위해 공기업 사유화 정책을 강력히 추진할 것이다. 또한 한-미 FTA를 필두로 한 각종 자유무역협정은 농민의 생존권을 억압하고 농업과 농촌을 붕괴시킬 것이다. 금융 투기는 확대되고, 빈부격차가 벌어지면서 빈민층이 늘어날 것이다. 그러나 이명박이 제시한 정책 중 일자리 창출과 (비정규직 문제를 포함하는) 양극화 해소, 복지정책 등은 뚜렷한 대안과 재정 계획이 없다. 경제성장을 전제로 추진하겠다는 것인데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가능할지 의문이다. ‘친기업, 친시장’을 강조하는 이명박의 신자유주의 정책이 세계경제의 불안정성 속에서 약속했던 성장을 달성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더욱이 막대한 보유자금에도 불구하고 설비투자를 꺼리고 있는 기업이 몇 가지 조치가 있다고 해서 대규모 투자에 나설지 의문이다. 기업에 대한 규제완화와 감세정책은 자산계층의 치부에 도움이 되겠지만, 노동의 불안정화와 빈곤이 심화되어 민중에게는 부정적인 효과만 양산할 것이다. ‘법과 질서’의 확립 : ‘반노조’ 이데올로기의 강화와 파업권의 무력화 “정치노조, 강성노조, 불법 파업을 없애겠다”(2007. 07 내부경선 합동연설회), “우리나라처럼 비효율적이고 불법적이고 극렬한 노동운동을 하는 곳은 없다”(2007 09. 중소기업 타운 미팅), “비정규직에 대한 해고 자유 확대”(이용득 한국노총 위원장과의 간담회) 등 이명박의 노조에 대한 적대감은 수차례 확인되었다. 또한 이명박은 당선 이후 이석행 민주노총 위원장이 경찰출두를 하지 않은 것을 문제삼아 법과 원칙을 지키지 않는 사람이나 단체와는 만나지 않겠다며 민주노총과의 간담회를 취소했다. 특히나 공공부문에 대한 대대적인 공세가 예상된다. 경제 살리기와 국익론을 앞세우고, 비정규직과 빈곤층의 상대적 박탈감을 자극해서 공기업, 전교조, 대공장 노동자들에 대한 이데올로기 공세를 펼칠 것이다. 또 노동자의 집단행동을 ‘불법’으로 매도하고, 대중들의 ‘반노조’ 정서를 부추길 것이다. 또한 이명박 정부는 미등록 이주노동자를 범죄화하고 ‘이주노동자’에 대한 탄압을 강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최근 노동부와 법무부의 업무 보고 자리에서 이명박 대통령은 ‘불법체류자’를 정확히 파악해 엄격한 기준을 세우라고 주문했다. 또 이주노조 설립 문제가 대법원에 계류돼 있는 것을 거론하며 “전 세계에서 유례없는 일”이라며 “절대로 이런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고 했다. 법무부는 ‘2008년 업무계획’에서 “불법체류 외국인에 대한 지속적인 단속, 기획조사 활성화 및 입국심사강화 등으로 안정적인 외국인 체류질서 유지”를 내세우며 4월부터 6월까지 관계기관 합동단속을 실시하겠다고 밝혔다. 지난 3월 13일 노동부는 대통령 업무보고에서 경제 살리기와 일자리 창출을 위한 ‘노사관계선진화’ 방안을 발표했다. 노조의 임금인상 자제와 무파업을 핵심으로 하는 ‘노사협력선언 확산’이 주요 내용이다. 구체적으로는 다음의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 ①산업현장의 노사관계 갈등요인에 대해 체계적으로 대응하고, ②취약사업장 367개를 선정하여 분규를 예방하며, ③외국인투자기업 노사관계에 대해서는 원스톱 분쟁해결을 지원하고, ④’분규유형별 대응방안’을 마련하여 법과 원칙을 적용하고 사업장 노사갈등이 사회문제로 비화되지 않도록 관리한다. 또 ⑤공공부문개혁, 비정규직문제, 산별교섭문제, 필수공익사업, FTA 반대 정치파업 등 노사관계 핵심 갈등요인에 대한 체계적 대응을 통해 노동자들의 불법행위는 엄단한다. 임금인상 자제와 무파업 강요는 계속되는 물가상승으로 노동자의 실질임금이 저하되고 있는 현실과 저임금으로 최소생계만 유지하고 있는 비정규노동자들의 현실을 외면하고, 노동자의 기본권을 침해하는 것이다. 노동자들의 단체행동은 법과 원칙이라는 명분으로 강도 높게 탄압할 것이다. 더구나 지난해 비정규법 시행으로 이랜드 비정규노동자가 대량 해고된 데서 알 수 있듯이 사용자의 노동법 악용과 부당노동행위가 노골화되고 있음에도 정부는 이에 대한 구체적인 처벌, 통제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다. 노동부가 업무보고에서 불법행위에 대해서는 노사 모두에게 엄정 조치한다고 했으나 이미 노사관계법에서 사용자의 부당해고에 대한 형사처벌조항이 삭제된 상태이다. 따라서 사용자가 노조를 파괴하기 위해 노동자를 부당해고 하더라도 형사처벌할 수 없다. 그러나 노동자의 단체행동은 업무방해라는 이름으로 형사처벌하고 있다. 이러한 노동부의 ‘법과 원칙’이 노동자들의 단체행동권을 무력화하고 노동자에 대한 일방적인 탄압으로 귀결될 것은 명약관화하다. 최근 법무부는 상해, 절도강도, 사기공갈, 횡령배임, 손괴죄로 한정되어 있는 배상명령에 업무방해를 추가하여 불법파업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가 가능하도록 개정하겠다고 발표했다. 파업권을 무력화하기 위한 입체적 공세가 이미 시작된 것이다. 지역 노사민정협의회 구성 : 노사협조주의의 확대와 민주노조운동의 고립화 노동부는 노사정위 운영과 기능을 2008년 7월까지 개편(노사민정 체계)하여 경제 살리기와 노사관계 선진화를 위한 대화를 활성화할 계획이다. 또 한국노총과의 정책연대를 위한 노사파트너십 기구인 「노사발전재단」 운영에 51억원을 지원할 계획이다. 한편 뉴라이트 노조운동에 대한 지원과 강화도 예상할 수 있는데, 이는 노사협조주의와 우파적 노동운동을 강화하여 민주노조운동을 고립시킬 것이다. 또한 2008년 6월까지 노사정위원회법 시행령을 개정하여 지역 노사정협의회를 시민단체, 지역주민 등이 참여하는 지역 노사민정 협의체로 개편하고, ‘지역 경제 살리기와 일자리 창출협약’ 체결을 촉진하고, 성과에 따라 인센티브를 제공하겠다고 밝혔다. 이는 임금인상자제와 무파업을 핵심으로 하는 ‘노사협력선언’ 확산의 한 방편이다. 자본과 지자체의 입맛에 맞는 민간단체 혹은 지역유지를 참여시킴으로써 효과적으로 노동운동을 고립시키겠다는 의도이다. 또한 노사정위 불참 방침을 유지하고 있는 민주노총은 계속 배제하되, 기존의 ‘민주노총 중앙 지도부 설득’ 전술을 ‘각 지역 및 산업별 공략 전술’로 변경한 것이다. 지금까지 ‘노사정위원회’는 사회적 합의주의와 노동자 분할/배제의 신자유주의 노동통제 전략의 이데올로기적 기구였다. 노사정위원회는 정리해고와 파견근로제 도입 등 노동 유연화 합의는 신속하게 입법하는 반면, 공무원노조?교원노조 합법화, 해고자 조합원 자격 인정, 복수노조 시행 등 자본과 정부에 불리한 내용에 대해서는 표현을 모호하게 하고, 합의를 미루거나 폐기해왔다. 또한 불균등한 합의에도 불구하고 “노사정 합의내용이다”는 정부와 자본의 선동이 여론형성을 주도하며 오히려 노동계의 투쟁을 봉쇄하는 효과를 낸 것이 역사적인 현실이다. 이명박 정부 역시 ‘노사민정위’로 노동계 통제를 꾀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지난 3월 전국공무원노동조합의 (노사정위원회 산하) ‘공무원노동관계협의’ 참가결정은 매우 우려스럽다. 정부를 사용자로 하고 있는 공무원노조의 특성과 전국민주공무원노동조합(민공노)와 공무원노동조합총연맹(공노총) 등 여러 노조로 분할되어 경쟁하는 구조에서 다른 공무원노조의 노사정위 참여 결정 등 내적인 어려움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상급단체인 민주노총이 노사정위원회에 참가하지 않는 것을 조직적 방침으로 하고 있는 상황에서, 전국공무원노동조합의 노사정위 참여가 향후 노동운동에 미칠 영향을 충분히 고려해야 한다. 정부와 자본이 노동유연화 정책에 공조하고 있으며 한국노총이 정부와 정책연대 입장을 취하고 있는 상황에서 친자본 정책이 여과없이 관철될 것이다. 특히 공무원노사관계에서는 민공노, 공노총, 한공노(한국노총 산하) 등 다수노조가 난립해 있는 상황이어서 더욱 어려운 조건에 처할 수밖에 없다. 특히 전국공무원노동조합은 민주노총 산하 7개 산별연맹이 꾸린 공공부문 공동투쟁본부에 참가해 상반기 공동행보를 벌인다는 계획인데, 만일 노사정위가 본격 가동될 경우 이 같은 공동투쟁이 교란될 가능성 또한 부정할 수 없다. 노사정위원회가 보도 자료를 통해 “99년 2월 이후 노사정위원회에 참여하지 않았던 민주노총 산하 조직의 최초 참여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평가한 것 역시 그러한 의도를 나타낸 것이다. 노사관계 법제도 개선과 노동시장 유연화, 임금유연화 노동부는 2010년 시행 예정인 있는 복수노조와 노조 전임자 임금지급을 2008년 6월까지 노사정위원회에서 논의하고, 정기국회에 정부입법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정권과 자본은 복수노조에 대한 창구단일화와 전임자 임금지급에 대한 기업규모별 제한조치 입법을 정당화하기 위해 다양한 시도를 할 것으로 예상된다. 비정규직법(기간제법, 파견법 등) 보완 추진에 대해서는 2008년 12월까지 주요 쟁점 사항에 대한 노사정 논의 공론화를 거쳐 2009년 입법을 추진할 계획이다. 기간제 근로자 사용기간 3년 연장, 파견 허용업무 확대 등 자본 측의 요구를 적극 수용하여 비정규직을 확대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쟁점은 노정 사이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한국노총과 민주노총 사이에 큰 차이가 있다. 또 민주노조운동 내에서도 ‘비정규직법 취지 수용-전면 재개정’이라는 입장과 ‘비정규직악법 폐기-비정규직 권리보장 입법’이라는 입장이 쟁점을 형성하고 있다. 이런 문제가 투쟁전선 교란 요인이 될 수 있다. 또한 노동부는 활력 있는 노동시장을 위해 탄력적 근로시간제를 확대하고, 임금체계를 연공중심에서 직무성과중심으로 개선하며, 임금피크제를 실시하겠다고 밝혔다. 탄력적 근로시간제는 노동자에게 장시간노동을 강제하고 임금을 실질적으로 삭감한다. 직무성과중심의 임금체계 개편 또한 노동시장 유연성 제고 차원에서 추진되는 것으로 임금차등화를 통한 노동자 사이의 분할과 경쟁을 심화하고, 총액 임금 삭감으로 귀결될 것이다. 현재의 노사관행으로 볼 때, 고령자의 임금안정을 목표로 실시한다는 임금피크제도도 ‘고용안정’은 보장하지 않은 채 고령자의 임금삭감으로 귀결될 가능성이 크다. 또한 부당해고 시 금전보상제도에 대해서도 일정한 조건에 따라 사용자가 활용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사용자가 부당해고를 합법적으로 할 수 있어 노동자 탄압수단으로 악용될 것이다. 차별을 고착화하는 비정규직 문제의 확대, 심화 이명박 정부는 비정규직 문제에 ‘비정규직 규모 축소가 아닌 차별해소’라는 관점을 강조하고 있다. 7% 경제성장과 300만개 일자리 창출을 위해서는 ‘노동시장 유연화’가 필수적이라는 것이다. 성장을 통한 고용확대 외에 사실상 비정규직 문제에 대한 적극적인 해결책이 없는 것이다. 하지만 세계 경제위기로 경제성장 목표치를 달성하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고용확대도 불투명하다. 2007년 비정규법 시행 이후 정규직 전환 유형은 ▲정규직으로 직접 편입 혹은 하위직급의 신설 ▲분리직군 ▲무기계약직과 같은 양상으로 나타났다. 이 가운데 대다수가 무기계약직 형태다. 특히 공공기관 등에서는 차별을 고착화시키고 차별시정 자체의 소지를 없애는 무기계약직 방식을 통해 정규직(공무원), 상용직, 무기계약직, 기간제, 간접고용 등 고용의 중층화가 심각해졌다. 상시ㆍ지속적인 업무에 2년 이상 근무한 경우에도 기간제법 4조 등의 예외사유가 있는 경우 무기계약 전환을 제외하여 기간제 노동자 사용을 정당화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은 2008년에도 지속될 전망이다. 2008년 6월 발표될 공공부문 비정규직 2차 대책에서도 최소한 2년 이상 근무자를 선정하여 무기계약화를 시행하고 대다수는 민간위탁, 외주화 방식의 구조조정이 예상되고 있다. 따라서 간접고용 문제가 더욱 심각해질 전망이다. 2008년 7월부터 비정규직에 대한 차별시정의 범위가 100인 이상~299인 사업장으로 확대 적용된다. 300인 이상 기업은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거나 복지혜택을 비정규직 노동자로 확대할 수 있는 상대적인 여력이 있지만, 중견업체는 이를 감당하기 힘들기 때문에 문제가 더 심각하다. 특히 2007년 현재 비정규직의 85.9%가 100인 미만 사업장에서 일하고 있고, 기간제 노동자 2년 이상 사용 시 정규직화 한다는 조항은 2009년 7월에 적용된다. 노동부에서는 2007년 말 고용 중인 비정규직을 2009년 말까지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경우 전환 근로자 1인당 30만원씩 세액공제하고, 중소기업이 노사합의에 의해 비정규직 고용개선을 추진할 경우 필요한 컨설팅 비용의 일부를 지원(2009년 300억원, 6000개소, 사업장당 500만원)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하지만 그 효과는 미미할 것으로 보이며 대다수가 계약 해지되거나 외주화될 것이다. 이런 조건에서 5개 사용자 단체가 비정규직에 대한 규제완화, 비정규직법의 시행요건 완화를 요구하고 있어 비정규직 문제에 대한 논란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또 공기업, 의료, 복지, 교육, 방송 등의 시장화/사유화 과정에서 구조조정, 민간위탁, 외주화로 비정규직이 확대될 가능성이 높다. 구조조정 투쟁이 사회공공성 문제와 정규직의 고용안정 문제로 초점이 맞춰질 가능성이 크며, 정규직 고용불안으로 비정규직 문제에 대한 양보교섭 등 여러 가지 현실적 교란요인이 존재할 수 있다. 일가정 양립형 여성 일자리 확대, 여성을 위한 사회서비스 확충전략 : 저임금, 비정규직 여성노동자의 양산 노동부는 육아 등으로 취업에 어려움을 겪는 여성들의 재취업 지원과 취업 여성의 일가정 양립을 위해 단시간 근로제, 유연시간 근로제 등 다양한 방식으로 파트타임 일자리를 확대하겠다고 발표했다. 최근 노동부는 “주부 재취업 도전직업 55”라는 책을 발간했다. “출산 및 육아로 인해 경력이 단절된 여성의 재취업 지원을 강화하기 위해 나이, 경력, 학력에 구애를 덜 받고, 직업훈련을 통해 재진입이 가능한” 직업들은 대부분 비정규직이다. (방과 후 교사, 학습지 교사, 플로리스트, 조리사, 병원코디네이터, 웨딩플래너 등) 최근 정부와 자본은 한편으로 여성의 노동력을 활용하고, 다른 한편으로 신자유주의에서 가속되고 있는 가족 해체와 재생산 위기(저출산 고령화)를 관리하기 위해 저소득층을 대상으로 보육, 간병, 노인 돌봄 등 재생산 노동에 대한 지원을 확대하고 있다. 그러나 보편적인 서비스로 제공되어야 할 사회서비스를 시장화하여 이윤 창출의 영역으로 만들고 있다. 보육, 간병, 노인 돌봄 등에 종사하는 노동자가 대부분 여성이기 때문에 이러한 정책은 여성을 위한 일자리 창출 방안으로 선전되고 있다. 또 일과 가정을 양립하게 해주는 여성 친화적인 일자리고 포장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일자리는 대부분 저임금 비정규직이다. 또 가족에서 무급으로 수행되던 노동이고,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라는 인식 때문에 열악한 노동조건은 당연시되고 있다. 더구나 이용자의 요구나 상황에 따라 노동조건이 제각각이고, 봉사와 헌신을 강요당한다. ‘사랑의 마음으로 수행하는 보살핌’이라는 인식 때문에 노동자성을 인정받는 것도 쉽지 않다. IMF 외환위기 당시 여성 노동자를 우선 해고해서 위기를 관리한 신자유주의는 값싸고 유연한 노동력으로 다시 그녀들을 활용하고 있다. 그것이 비정규직의 50% 이상이 여성이라는 현실을 만들었다. 여성인력 활용이 강조되면서 기존에 가족 내에서 무급으로 수행되거나 비공식 부문에서 수행되던 여성의 일이 공식 부문의 일자리로 제도화되고 있다. 이러한 추세는 노동시장에서 여성의 지위를 더욱 불안정하게 만들 뿐만 아니라 ‘여성=가족’이라는 인식을 강화하고 있다. 특히 이명박 정권은 사회서비스 영역의 민영화, 사유화를 추진하면서 재생산 노동에 종사하는 여성 노동자들의 노동권을 더욱 열악한 환경으로 내몬다. 여기에 보수적인 가족의 가치를 옹호하고, 그 안에서의 여성의 역할을 폭력적으로 강요하는 이데올로기가 동반될 가능성이 높다. 이렇게 여성을 저임금, 불안정 노동으로 내모는 것은 자본에게 매우 중요한 전략이다. 경제침체가 장기화되는 상황에서 여성은 저임금 노동시장의 가장 밑바닥에서 착취당하고, 전체 노동자들의 지위와 조건을 후퇴시키는 데 활용되는 노동자인 것이다. 돌봄 노동을 여성의 의무로 고착화하는 성별분업 이데올로기가 바뀌지 않으면 여성의 저임금, 불안정 노동은 확대될 것이다. 여성의 저임금 비정규직을 철폐하는 투쟁은 여성노동자의 임금고용 차별을 정당화하는 성별분업성차별 구조와 이데올로기를 제거하는 출발점이다. 이것은 또한 남성을 포함하는 전체 비정규직 노동자의 안정적인 일자리 확보, 노동권 쟁취의 출발점이기도 하다. 이명박 정권의 공세에 맞선 지역연대운동의 구축이 시급하다 이명박 정부는 총선에서 당선된 과반 의석으로 공공부문 사유화와 구조조정을 과감하게 추진할 것이다. 동시에 ‘반노조’ 이데올로기 공세와 파업권의 무력화, 지역별 노사민정 협의회로 노사협조주의를 강화하고 민주노조운동을 고립시킬 것이다. 또 노동시장과 임금 유연화를 위해 법과 제도를 개악할 것도 예상된다. 예견되는 정세가 분명하지만 문제는 김대중, 노무현 정권을 거치면서 노동운동과 민중운동의 대응력이 지극히 취약해져 있다는 점이다. 한국진보연대의 무리한 출범과 왜소화,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의 분열, 민주노총 지도부의 정파적 패권과 무능력이 겹쳐져 투쟁전선을 형성하고 있지 못하다. 이러한 가운데 2008년 핵심적인 투쟁 쟁점인 공공부문에 대한 정부의 공세에 맞서기 위해 지난 3월 ‘공공부문 시장화자유화 저지와 사회공공성 강화를 위한 공동투쟁본부’(공동투쟁본부)가 구성되었다. 현재 공동투쟁본부는 ▲의료, 교육, 사회서비스 시장화 저지, ▲공공부문 사유화와 구조조정 중단, ▲공공부문의 민주적 운영과 일자리 창출, ▲기초연금 15% 쟁취와 공무원사학 연금의 올바른 개혁, ▲언론, 금융 공공성 확보, ▲한반도 대운하 사업 중단의 6개의 공동요구안을 목표로 6말-7초 총력투쟁을 계획하고 있다. 하지만 한국진보연대와 민주노총의 최근 행보는 지극히 무기력하고 위험하다. 민주노총의 경우 시장화, 사유화 저지 투쟁전선을 만들기 위한 민주노총 차원의 투쟁계획을 분명히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대신 해당 연맹의 투쟁을 취합하는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한국진보연대와 민주노총이 추진하는 ‘범국민기구’ 또한 운동진영의 정파적 분열의 후과와 여론형성에 유리하다는 이유로 주로 시민운동을 파트너로 삼고 있다. 전국적인 투쟁의 중심을 만들고 지역본부를 중심으로 지역 내 반신자유주의 연대투쟁을 강화한다는 목표를 분명히 하지 못한다면, 연대체가 오히려 투쟁전선을 교란할 공산이 크다. 그런 측면에서 당면한 공공부문 사유화, 시장화 저지투쟁은 한국진보연대의 출범으로 파괴된 지역연대운동을 다시 형성하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 지역의 역량을 결집하여 공공부문 사업장의 구조조정이라는 시각을 넘어 노동자 민중의 삶을 위협하는 이명박 정부의 공세를 폭로하는 투쟁을 지역에서부터 조직해야 한다. 지역여론을 장악하기 위한 조직적 태세를 갖추어야 한다. 서울의 경우 ‘차별철폐 대행진’과 4.30 투쟁으로 결합한 주체들을 확대, 강화하여 ‘시장화/사유화 저지투쟁’을 중심으로 비정규직, 저임금, 빈곤에 맞서 투쟁하기 위한 연대단위를 구성하도록 논의를 모아야 한다. 특히 이명박 정권은 지역 노사민정 체계를 구축하고, 무분규 평화선언을 유도해서 민주노총을 배제한 채 지역별로 민주노조운동을 압박하겠다는 계획이다. 여기에 맞서기 위해 지역의 반신자유주의 연대운동을 강화하고, 지자체에 대한 대응력을 키워야 한다. 지역을 보수 헤게모니에 맡겨둔 채 중앙에 집중된 운동은 ‘사회운동으로서 노동운동’으로 발전이 불가능하다. 산별과 업종, 정규직/비정규직을 넘어 노동자 민중의 보편적 권리로서 공공성을 쟁취하고, 빈곤과 저임금, 비정규직화에 맞선 투쟁을 위한 공동의 교육과 실천을 조직해야 한다. 공공부문을 중심으로 한 노동자들의 투쟁이 해당 사업장의 구조조정 이슈를 넘어서 공공성 쟁취를 목표로 진행되어야 한다는 점이 중요하다. 물론 이전의 투쟁에서도 그런 내용이 제기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많은 경우 일종의 ‘명분’에 그친 것도 사실이다. 특히 이명박 정권은 공공부문 구조조정에 반대하는 투쟁에 물리적 탄압과 이데올로기 공세를 집중할 것이다. 공공부문 노동자들의 투쟁이 공공성 쟁취를 자신의 투쟁과제로 충분히 내면화하고 제기할 수 있어야 이런 공세를 넘어서 대중적인 지지를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미국 경제의 경착륙을 막기 위한 글로벌 정책공조의 불가능성 2008년 3월 13일 칼라일 캐피털이 사실상 청산을 선언했다. 세계 최대의 사모펀드를 운용하던 칼라일 캐피털은 자산규모의 30배가 넘는 돈을 빌려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저당대출)에 투자했다가 결국 부도를 맞았다. 그리고 다음날 14일 미국 뉴욕 월가의 5위 투자 은행이었던 베어스턴스가 미국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에 구제금융을 요청했다. 베어스턴스의 사례는 미국 금융기업 부실화의 파장이 모기지회사와 사모펀드를 넘어서 은행부문으로 확산되기 시작했다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큰 충격을 주었다. 이 때문에 누가 제2, 제3의 베어스턴스가 될 것인지에 관심이 쏠렸다. 투자은행의 ‘빅 파이브’라고 불리는 골드만삭스, 메릴린치, 모건스탠리, 리먼브라더스, 베어스턴스 중에서 베어스턴스와 함께 서브프라임 모기지에 가장 공격적으로 투자했던 리먼브라더스가 그 다음 차례가 될 것이라는 예상도 나왔다. 글로벌 은행들의 손실처리는 지금도 지속되고 있다. 올해 들어 가장 큰 손실액을 기록한 곳은 스위스 UBS로 금액이 190억 달러에 이르며, 그 다음을 차지한 미국 씨티그룹은 160억 달러를 상각처리했다. 씨티는 누계 손실액이 460억 달러에 이르러 최대 손실을 기록한 금융기관이 됐다. 메릴린치는 분기 66억 달러 손실을 처리해 총 320억 달러 누적 대손상각을 기록했다. 서브프라임과 관련하여 전 세계 투자은행과 헤지펀드들이 고백한 손실규모는 약 2500억 달러로 추산된다. 하지만 국제통화기금(IMF)에서는 금융회사들의 서브프라임 관련 손실규모가 5650억 달러, 전체 예상 손실 규모가 9450억 달러에 달할 것으로 전망했다. 조지 소로스는 1조 달러가 넘는다고 말했다. 1980년대 미국 모기지 혁신과 부동산 대부의 증권화 현재 미국 금융위기의 직접적인 원인은 2006년 10년에 걸친 주택호황의 붕괴에 있다. 미국 정부는 오랫동안 다양한 세제상 특전과 보조금으로 주택소유를 지원했다. 안정적인 주택자금 공급을 위해 설립된 정부지원은행인 패니매이와 프레디맥은 미국 각각 2위와 3위 규모의 대부기관으로 성장했고, 미국 모기지(주택저당금융)의 거의 절반을 통제한다. 그런데 1980년대 초반 미국 금융기관들은 자금조달 능력을 확대하기 위해 실로 독창적인 방법을 발견했다. 그들은 모기지를 집합(pool)으로 묶어서 채권을 발행했고, 이는 현재 주택연계증권(MBS)의 시초가 되었다. 이들이 엄청난 성공을 거두기 시작하자, 머지않아 다른 은행들도 부동산 대부의 증권화에 뛰어들기로 결정했다. 은행은 MBS를 통해 수수료가 높은 새로운 중개서비스를 제공하고, 채무불이행(디폴트) 위험을 외부로 이전하며 대부된 자금을 신속히 회수함으로써 새로운 대부를 제공할 수 있었다. 수익에 굶주린 투자기관들로부터 MBS 시장에 대한 자금공급이 쇄도했고, 은행은 흥청망청 모기지 대부를 확대했다. 1990년대 후반에 이르자 은행은 재융자(리파이낸싱)와 주택담보가계지원대출(홈에퀴티론)을 제공함으로써 신용수요를 부양했다. 재융자는 모기지 대출자가 주택가격 상승을 반영하여 은행으로부터 더 큰 액수를, 더 낮은 이자로 대출 받게 했다. 이로써 모기지 대출자는 기존 융자를 갚고도 남는 돈으로 추가로 주택을 구입하거나 다른 용도로 투자나 소비에 지출할 수 있게 되었다. 홈에퀴티론은 주택 구입가격에서 은행으로부터 집을 담보로 대출받은 돈을 제외한 집의 가치를 담보로 또 다시 대출받는 ‘2차대출’이다. 또한 2000년대 초반 미국 신경제의 거품이 꺼지기 시작하자 FRB는 금리인하를 단행했다. 기준금리(연방기금금리)는 2000년 6%에서 2001년 이후 2003년 중반까지 1%로 인하되었다. 초저금리 상태에서 기업과 가계의 부채가 확대되었다. 특히 가계부채는 대부분 모기지 부채로 누적되었다. 한편 기업의 부채는 주가부양을 위한 자사주 매입과 인수합병에 활용되었다. 결국 저금리 기조가 주식시장 부양과 부동산 투자 확대라는 쌍생아를 낳았다. 하지만 이때까지도 모든 것이 좋아보였고, 미래는 낙관적이었다. 주택 호황이 거품으로 전환되는 시점인, 2004년 후반부터 2006년 초까지 은행은 오히려 공격적이며 모험적인 혁신을 가속화했다. 모기지 추가대출(피기백)은 주택구입자가 계약초기에 납부하는 금액에 대해서도 대출을 해주는 것으로써, 이제 가계는 현금이 전혀 없어도 완전히 빚을 통해 주택을 구입할 수 있게 되었다. 또한 대출자의 소득, 재산, 신용거래기록 등을 묻지 않는 조건으로 높은 이자율로 모기지를 제공하는 알트-A(중간) 등급 모기지와 서브프라임(비우량등급) 모기지가 확산되었다. 특히 서브프라임 모기지 규모는 750만 명의 대출자에 6천억 달러로 미국 모기지의 약 20%를 차지했다. 조정금리부 서브프라임 모기지는 보통 3년 이상 운영되며 가입 3년 후 변동금리로 전환된다. 그러나 서브프라임 대부기관은 초기의 1% 수준의 ‘미끼금리’가 나중에 재설정될 수 있다는 사실을 분명히 제시하지 않았다. (2007년 4/4분기에는 서브프라임 금리가 20.2%까지 급등했다.) 다수의 대출자는 모기지 조건에 대한 적절한 정보를 제공받지 못했거나, 금리 재설정이 이뤄지기 전에 주택가격 상승으로 재융자를 받을 수 있으리라 믿었다. 그러나 FRB가 2004년부터 2006년 중반까지 여러 번에 걸쳐 기준금리를 1%에서 5.25%로 인상시키자 주택거품이 폭발했다. 주택판매, 주택건설, 모기지 대출, 주택가격이 모두 급락하기 시작했다. 2007년 23월 모기지 대출회사의 부실화와 파산 위기라는 서브프라임 발 금융위기의 태풍이 형성되기 시작했고, 서브프라임 모기지에 대한 이자율 상향조정의 첫 번째 물결이 강타했다(1차 위기). 금융위기의 신호탄이 쏘아진 것이다. 부동산대부 증권화 사슬의 연쇄 위기 2007년 8월 9일 프랑스계 투자은행 베엔뻬 빠리바가 서브프라임 관련 두 종류의 펀드에 대한 환매를 중단하자 세계적 연쇄반응이 일어났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대출채권을 유동화한 파생금융상품의 가격폭락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2차 위기). 먼저 MBS 시장이 사실상 소실되었고, 이는 모든 층위의 부채담보부증권(CDO) 시장을 동결시켰다. CDO는 MBS, 회사채, 신용카드매출채권담보증권 등 다양한 종류의 채권을 묶어놓은 금융상품이다. 예를 들어 주택을 구입하기 위해 10만 달러를 차입한 사람을 가정하면, 유동화전문회사(SPC)는 그 사람의 모기지를 다른 모기지와 섞은 뒤 MBS를 만든다. 그 다음 투자은행들은 CDO를 만들어 MBS와 회사채등을 섞는다. 이렇게 만들어진 풀을 투자자들의 금리선호에 따라 자른다. 이는 구조화금융(structured finance)이라고 불리는 증권화 방식의 하나다. CDO가 처음 등장한 지 20년이 지났지만, 최근에 그 발행이 본격화되었다. 모건스탠리에 따르면 2006년 투자은행들은 5천억 달러어치의 CDO를 발행했고, 이는 2002년의 840억 달러의 네 배를 넘는다. CDO 시장이 급격히 위기에 전염되자, 거래규모가 급격히 축소되었고 추정 가치의 약 80%가 하락했다. CDO에 투자한 헤지펀드, 보험회사, 연금, 은행 등이 줄줄이 손실을 입게 되었다. 메릴린치와 시티뱅크는 대규모 자산상각이 불가피해졌고, 2007년 10월 말 각각 80억 달러와 110억 달러의 손실을 발표했다. 또한 메자닌 트랑시(고수익고위험 등급) 이하 신용등급에 대한 투자 비중이 높았던 헤지펀드들은 대규모 손실을 입었다. 하지만 위기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2007년 11월, 투자은행들이 고수익 자산에 투자할 목적으로 세운 구조화투자회사(SIV)를 중심으로 하는 3차 위기가 발생했다. SIV는 은행들이 출자한 자산을 근거로 단기성 기업어음인 자산담보부기업어음(ABCP)을 발행해 단기자금을 조달하여 MBS, CDO와 같은 고수익 장기증권에 투자했다. 2007년 8월 말, 9월 초 ABCP 시장의 혼란은 은행, 헤지펀드, 사모펀드의 단기투자수단을 차단했다. 이는 기업어음시장이 압력을 받게 했다. 이제 은행은 갑작스럽게 고객의 즉각적인 유동성 투입 요구에 직면했다. 이러한 자금 소요는 은행간시장(inter-bank market)에서 폭발했다. 2007년 8월 세계적으로 조직된 은행간시장이 급속도로 무질서해지자, 전 세계의 중앙은행들(특히 유럽중앙은행과 미국 연방준비이사회)은 몇 주 동안 대규모 긴급자금을 투입해야 했다. 최고 중앙은행, 즉 ‘최종대부자’의 개입은 선례가 없었던 것이다. 이는 9월 18일 미국 연방준비이사회의 갑작스러운 대규모 이자율 인하(0.5%)에 뒤따른 것이었다. 그러나 서브프라임 발 금융위기는 계속해서 제4, 제5의 위기로 이어졌다. 2008년 1월 채권보증회사들(모노라인)의 위기가 현실화되었다(4차위기). 모노라인은 신용파산스왑(CDS) 계약을 통해서 헤지펀드나 투자은행 등으로부터 특정기간 동안 주기적으로 일정 수준의 신용보증수수료를 받는 대신, 채권에 대한 원금과 이자지급을 보증했다. 그러나 서브프라임 사태가 눈덩이 불어나듯 커지자 모노라인들의 부실이 커졌고, 앞으로 대형 모노라인의 신용등급이 하향조정된다면 서브프라임 사태는 일반 채권시장으로 확대될 가능성마저 있다. 한편 지난 2월 금융감독원의 발표에 따르면 한국의 은행들도 서브프라임 모기지 투자로 투자금액 중 5억 6300만 달러(5200억 원)의 손실을 입었다. 서브프라임 모기지채권이 편입된 CDO에 투자한 국내 은행은 우리, 농협, 외환, 신한, 산업, 부산, 대구은행 7곳이며, 특히 우리은행이 투자금액의 90.6%인 4억 4500만 달러, 농협은 78.7%인 1억 700만 달러의 손실을 입었다. 겸업은행 모델의 확산과 금융혁신 부동산 대부의 증권화, 파생금융상품의 사슬의 중심에는 겸업은행 모델의 확산과 금융혁신이 존재한다. 1989년 유럽연합 집행위원회 2차 은행업지침, 1999년 미국의 금융서비스현대화법률로 은행에 대한 장기간에 걸친 제약이 제거되자 은행들은 겸업은행모델을 추구했다. 겸업은행은 상업은행(예금유치와 대출), 투자은행(증권), 펀드관리, 보험 등을 결합함으로써 손쉽게 새로운 금융상품들을 도입했고, 이러한 상품들을 위한 시장을 조직하고 대량의 유동성을 끌어들였다. 그러나 한 지붕 아래에서 모든 금융업무를 실행하는 겸업은행은 거대한 자산거품의 와중에서 시장조작의 유혹을 느낄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투자은행들은 시장을 움직이는 뮤추얼펀드의 주문을 받아 체결해주는 위치에 있기 때문에 정보접근 측면에서 유리한 위치를 점하고 있다. 따라서 이들은 고객들의 매수주문을 미리 알아서 자기거래를 통해 해당 물량을 매입, 이득을 볼 수 있다 (이른바 프론트 러닝. 물론 투자은행들은 이에 대해 부인하고 있다.) 이처럼 투자은행은 정보의 강점을 이용해 고위험 부문에 대한 투자를 늘렸고, 이를 위해 단기자금 차입(레버리지) 확대도 불사했다. (SIV의 사례는 이미 앞에서 언급했다.) 나아가 거품이 커질수록 규제당국, 은행내부 평가인, 신용등급평가기관, 기업내부 회계감사관, 기관투자가 주주는 이를 억제하기는커녕 오히려 그 과실을 나누는 데 급급했다. 투자은행의 트레이더들은 “1~2년간 고위험에 베팅해 큰 수익을 얻으면 평생 먹고 살 만큼의 보너스를 얻을 수 있다”고 믿었다. 2006년 리먼브라더스의 실적 상위 6위권의 매니저들은 1억 5천만 달러의 인센티브를 챙겼고 베어스턴스의 제임스 케인 CEO는 4천만 달러의 인센티브를 받았다. 한편 겸업은행의 발전과 함께 은행간 경쟁의 가속화는 ‘금융혁신’을 자극했다. 금융상품은 쉽게 서로 모방하며, 발전 사이클이 매우 짧다. 따라서 은행은 새로운 아이디어를 제공하라는 압력에 항상 노출된다. 증권화, 파생상품, 구조화금융과 같은 금융중개업의 새로운 경로가 세계적 규모에서 경쟁적으로 거대한 투자자 집단을 동원했다. 그러나 금융위기가 발생하자 미래에 대한 낙관주의는 공황과 공포로 급격히 전환되었고, 신용체계의 단계적 붕괴가 개시되었다. 모기지 대출자-모기지대출회사-유동화전문회사-투자은행-투자자(헤지펀드, 보험회사, 은행)-구조화투자회사 등 다층적인 피라미드로 구성된 증권화 사슬에서 투자자들은 최종대출자(모기지대출자)와 여러 층 떨어져 있기 때문에 신용정도를 평가하고 손실을 예상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했다. 누구도 증권화 풀에서 언제, 어떻게 손실이 발생할지 정확히 알 수 없다. 연기금과 헤지펀드와 같은 기관투자가들은 CDO나 ABCP의 불투명한 특성에 대응하기 위해 그 가격을 책정하는 매우 정교한 컴퓨터 계산 모델을 활용한다. 그러나 그들의 모델은 판매하려는 금융상품을 어떤 가격에서 구매하려는 자가 항상 존재한다고 가정한다. 따라서 이러한 모델은 주어진 가격이 적절하다면 위험성을 이전할 수 있는 가능성이 항상 존재한다고 가정한다. 그러나 금융위기가 가시화되면서 그들의 상품을 위한 시장 자체가 사라지는 상황이 도래할 때, 그들의 모델은 무용지물일 뿐이다. 최근 국제결제은행(BIS)은 신바젤협약(바젤2)을 통해 은행의 리스크 관리의 정교화를 추구하고 있다. 신바젤협약은 은행리스크에 신용리스크(기업부도로 인한 채권회수 불능 위험)와 시장리스크(투자목적의 주식, 채권, 외환, 파생상품의 손실위험) 외에 운영리스크(내부 통제제도 미흡, 담당자의 실수, 시스템의 오류로 인한 위험)를 추가했다. 그리고 신용리스크 산정 방식에서 기존 표준방법(신용평가기관의 신용등급에 따라 위험가중치 차등적용) 외에 감독기관의 승인 하에 은행 자체적으로 신용리스크를 측정, 관리하는 내부등급법을 인정했다. 결국 은행은 더욱 정교한 리스크 관리 체계 도입에 대한 보답으로 스스로 최소 자기자본비율을 결정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물론 신바젤협약은 은행이 위험자산을 보유할 경우 적립해야 할 자기자본 비율을 높임으로써 위험자산에 대한 투자를 억제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위험평가 모델 역시 스스로 가정하고 있는 시나리오를 벗어나는 신용경색의 힘 앞에서는 무능력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미국 경제의 경착륙을 막기 위한 글로벌 정책공조 그러나 미국 금융위기의 규모가 거대하고 전 금융분야에 단계적으로 파급효과를 내고 있는데도, 각 경제기관들은 1-2년 내로 미국의 금융부실이 점진적으로 해소될 것이라는 상대적으로 낙관적인 전망을 제기하고 있다. 낙관적 전망의 근거는 무엇일까? 앞서 언급한 것처럼 금융기업들이 단기간 내에 수천억 달러에 이르는 자산상각을 신속히 발표했다. 주요 금융기업들이 호황기에 축적한 유보자금 규보가 워낙 크기 때문에 일부를 제외하고는 대응능력을 보유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이 전부가 아니다. 글로벌 투자은행의 부실화 위험에 조응하여 아시아와 중국의 이른바 ‘국부펀드’가 자원공급원 역할을 했다. (국부펀드는 대략 2005년부터 사용된 용어로서 정부자산을 운영하는 정부소유기관을 뜻한다. 대개 국부펀드는 외환보유고에서 유래했고, 국가의 전략적 목적을 위해 활용된다. 2005년 설립된 한국의 ‘한국투자공사’(KIC)가 여기에 해당된다. KIC는 2008년 1월 메릴린치에 20억 달러를 투자, 지원했다.) 미국 경제에 대한 신뢰성을 반영하는 외국 중앙은행의 준비통화에서 차지하는 달러 비중도 대체로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달러 비중은 1995년 59.0%에서 2001년 70.7%로 상승한 후 점진적으로 하락했지만, 2007년 3/4분기 말에도 63.8%를 유지한다. 이처럼 미국경제를 지탱하는 세계 각국의 움직임은 최강 제국주의로서 미국경제의 특이성을 반영한다. 미국은 세계 각국, 특히 동아시아 국가(일본, 중국, 한국)에 대한 무역적자를 감당하는 세계경제의 ‘최종소비자’이며, 동시에 각국이 가정하는 최종적인 투자안전국(자본도피처)으로서 ‘자본수입국’의 역할을 수행한다. 미국이 해외로부터 흡수하는 이자, 배당, 초민족기업 계열사의 유보이윤과 같은 자본소득을 통해 이처럼 불균형한 메커니즘을 유지할 수 있었다. 물론 이러한 메커니즘은 미국이 범세계적인 신자유주의 정책개혁을 통해 엄청난 부를 직간접적으로 향유할 수 있었던 것을 의미하지만, 동시에 이러한 메커니즘의 붕괴는 세계 각국의 경제 메커니즘의 동반 붕괴를 가리킨다. 따라서 세계 각국 정부(특히 G7이나 G8)는 정책조정을 통해 미국경제의 요구를 반영하는 경제정책을 실행한다. 즉 미국 경제의 객관적 상태를 반영하여 달러에 대비한 자국통화(엔화, 유로)의 환율을 미국 경제를 지탱하는 방향으로 조정했다(1985년의 플라자합의와 1995년의 역플라자합의). 특히 서브프라임 사태 이후에는 전례 없이 세계 중앙은행들이 미국 FRB의 요구에 따라 금리조정을 단행했다. 서브프라임 사태 이전까지 정책금리를 잇달아 올려왔던 유럽중앙은행(ECB)이 인플레이션 우려에도 불구하고 금리 인상을 보류하는 조치를 취했다. 따라서 이번에도 미국 경제가 경착륙을 하지 않는다면, 경착륙이 의미하는 바대로 폭탄을 실은 비행기, 곧 세계경제의 폭발을 막기 위한 세계 각국의 정책공조가 작동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미국경제가 이윤율 하락 추세를 반등시킬만한 생산혁신을 조직하지 못하는 무능력에 처해있고, 최강 제국주의 국가로서 누리는 달러 발권이익이 이중적자의 누적 때문에 장기적으로 지속 불가능하다는 것은 회피할 수 없는 현실이다. 그러나 미국경제의 경착륙이 중심부 국가들의 정책공조를 통해 지연되는 과정에서 세계 각국에서 먼저 폭탄이 터질 가능성은 높아지고 있다. 미국 경제의 침체에 따라 수출국가들의 타격도 불가피하다. 세계 증시를 주도하는 동아시아 신흥시장에서 증시가 폭락했으며, 글로벌 과잉유동성 축소에 따라 엔-캐리 트레이드 자금, 즉 저금리국가 일본에서 대출된 투자자금을 흡수했던 고금리국가(호주, 뉴질랜드)의 금융위기 우려나, 해외자금유입이 높은 유럽 신흥국(불가리아, 보스니아, 루마니아)의 위기 가능성도 언급되고 있다. 이러한 현실은 당분간은 세계경제의 몸통 격인 미국이 위기의 폭발을 그럭저럭 관리해나가더라도, 미국 제국주의의 부의 원천인 세계경제의 주변부에서부터 그 토대가 무너지고 있음을 의미한다.
전 세계 소비자들은 지난 몇 달 동안 주요 식량 가격이 극적으로 인상되어 특히 가장 빈곤한 지역에 극도의 곤경을 만들어내고 있음을 목도해왔다. 한 해 동안 밀 가격은 두 배로 폭등했고, 옥수수는 1년 전과 비교할 때 50%나 인상되었다. 그러나 생산의 위기는 없다. 통계 수치들은 2007년 곡물생산이 그 어느 때보다 높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식량가격이 인상되는 이유는 식량 생산이 현재 식물성 연료 생산으로 전환되었고, WTO에 의한 시장의 탈규제화로 국제 식량 비축량이 지난 25년 중 최저점을 기록하고 있으며, 극단적인 날씨가 오스트레일리아와 같은 농업 수출국의 곡물에 영향을 미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가격 인상의 또 다른 이유는 금융 회사들이 농산물가격이 향후 몇 년간 지속적으로 인상될 것이라 내다보면서 민중의 식량을 놓고 투기행위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식량의 생산, 가공, 유통은 지속적으로 시장을 독점하는 초민족기업의 손아귀로 넘어가고 있다. 산업적 식물성 연료의 비극: 사람이 아닌 차를 먹여 살리다 식물성 연료(식물, 농산물, 임산물로 만든 연료)가 석유 생산이 정점에 이른 상황과 지구 온난화에 대한 대책으로 제시되고 있다. 그러나 많은 과학자들과 연구소들은 현재 식물성 연료의 에너지 편익은 매우 한계적이며 이 연료의 환경사회적 영향은 극도로 부정적이라는 사실을 인식하고 있다. 그러나 기업 전반은 민중의 식량에 대한 수요와 직접 경쟁하고 있는 새로운 시장을 향해 돌진하고 있다. 인도 정부는 1천 4백만 헥타르의 토지를 들여 자트로파(*붉은 산호꽃)를 재배할 것을 논의하고 있으며, 미주개발은행은 브라질이 식물성 연료 생산용 작물을 경작할 수 있는 농지 1억 2천만 헥타르를 보유하고 있다고 한다. 한 식물성 연료 로비스트는 3억 7천 9백만 헥타르를 아프리카 15개국에서 얻을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에탄올을 생산하기 위한 옥수수 수요는 이미 전 세계 소비의 10%를 기록하며 국제 곡물 가격을 올리고 있다. 산업적 식물성 연료는 경제적사회적환경적으로 넌센스다. 이러한 연료의 개발은 중단되어야 하며 농업 생산은 식량 생산을 우선으로 해야 한다. 가격 인상이 모든 농민에게 이익을 가져다주지는 않는다 기록적인 세계 식량 가격은 소비자들에게 타격을 입히며, 기대와는 달리 모든 생산자들에게 이익을 가져다주지는 않는다. 축산 농가는 사료 가격의 인상으로 위기에 처하며, 곡물 생산자들은 비료 가격 급등에 직면해 있으며, 무토지 농민 및 농업 노동자들은 식량을 구입할 수 없다. 농민들은 소비자들이 지불하는 가격에 비해 턱없이 낮은 가격에 농산물을 내다 팔고 있다. 스페인 농축산업 연맹(COAG)의 추산에 따르면 스페인의 소비자들은 식량 생산자들이 받는 가격의 600%를 지불한다. 농산물 가격 인상으로 가장 먼저 이익을 보는 집단은 농기업 및 대형 소매업자들이다. 왜냐하면 이들이 과도하게 식량 가격을 높이고 있기 때문이다. 농산물 가격이 하락한다고 식품 가격이 다시 감소할 것인가? 대기업들은 식품을 다량으로 보관했다가 시장 가격이 높아지면 다시 방출할 수 있다. 소규모 농민 및 소비자들은 현재의 변동 폭이 높지 않은 공정하고 안정적인 가격을 필요로 한다. 소규모 농민은 최근 수십 년간 그랬듯이 가격이 너무 낮으면 생산을 할 수 없다. 그러므로 이들은 WTO 정책과는 정반대로 시장에 대한 규제를 필요로 한다. 농업 무역 자유화가 위기의 주범이다 현재의 위기는 농업 무역 자유화가 기아와 빈곤의 주범임을 드러낸다. 각 나라의 세계 시장에 대한 의존도는 극도로 높아졌다. 1992년, 인도네시아 농민들은 콩을 국내시장에 공급하기에 충분할 만큼 생산했다. 콩으로 만든 두부와 템페는 인도네시아 전역에서 일상적인 식생활에 중요한 부분이다. 신자유주의적 교리에 따라 인도네시아는 수입 식품에 국경을 개방했고, 값싼 미국산 콩이 시장에 넘쳐 들어오는 것을 허용했다. 이는 국내 생산을 파괴했다. 오늘날 인도네시아에서 소비되는 콩의 60%가 수입산이다. 지난 1월 미국산 콩의 기록적인 가격으로 템페와 두부(빈민들에게는 이것이 고기다) 가격이 몇 주 만에 두 배로 폭등하자 위기가 전국적으로 발생했다. 비슷한 현상이 여러 나라에서 나타나고 있다. 예를 들어 멕시코에서는 옥수수가 비슷한 상황을 연출하고 있다. 세이프가드 메커니즘의 탈규제화와 민영화 또한 현재의 위기에 기여하고 있다. 국가 소유의 식량 창고는 민영화되어 현재는 초민족기업이 경영한다. 이들은 농민과 소비자를 보호하는 대신 투기꾼의 역할을 하고 있다. 마찬가지로 신자유주의 정책의 일부로 가격 보장 메커니즘이 전 세계에 걸쳐 파괴면서 농민과 소비자들은 극단적인 가격 변동에 노출되어 있다. 이제는 식량 주권이다! 2050년까지 세계 인구가 증가할 것으로 예상됨에 따라, 그리고 기후 변화에 직면하여 세계는 향후 몇 년간 식량 생산을 늘려야 한다. 농민들은 과거에 그래왔던 것처럼 이러한 난제를 감당할 수 있다. 실제로 세계 인구는 과거 50년 간 두 배로 늘었지만 농민들은 이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곡물 생산을 증대시켜왔다. 비아 캄페시나는 생존권과 일자리, 민중의 건강과 환경을 보호하기 위해 식량이 소규모의 지속가능한 농민들의 손으로 생산되어야 하며 대규모 농기업 또는 수퍼마켓 체인이 통제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유전자 조작 식품과 기업농은 건강에 좋은 식량을 제공하지 않을 것이며 환경을 더욱 악화시킬 것이다. 예를 들어 아프리카의 AGRA(새로운 종자 및 비료, 대형 관개시설)에 의해 추진되는 새로운 녹색 혁명은 식량 위기를 해결하지 못할 것이다. 오히려 이를 더욱 심화할 것이다. 반대로 최근의 연구에 따르면 소규모 유기농은 최소한 집단농업 만큼 생산적이며, 몇몇 연구는 세계 식량 생산이 유기농에 의해 50%나 증가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대대적인 식량 위기를 막기 위해 각국 정부 및 공공기관은 세계의 가장 중요한 에너지인 식량 생산을 보호하기 위한 구체적인 정책을 채택해야 한다. 각국 정부는 국제 식량 가격에 덜 의존하도록 현지 생산을 발전시키고, 촉진하고, 보호해야 한다. 이는 모든 나라가 식량 수입을 통제할 권리와 모든 형태의 식량 덤핑을 멈출 의무를 의미한다. 각국 정부는 또한 안전 재고(buffer stocks) 및 최저 가격 보장과 같은 공급 통제 메커니즘을 두어 생산자들을 위한 안정적인 환경을 창출해야 한다. 비아 캄페시나 의장이자 인도네시아 소농연합 대표인 헨리 사라기에 따르면, “농민들은 자신의 공동체를 위해 식량을 생산할 토지를 필요로 한다. 모든 가족농이 전 세계를 먹여 살릴 수 있도록 진정한 토지개혁을 이행할 때가 왔다.” 말리의 전국농민단체연합 이브라힘 콜리발리는 “식량 가격 폭등에 직면하여 우리 정부는 수입을 늘리는 대신 국내 농업 시장을 발전시키고 보호하라는 농민단체의 요구에 동의했다. 식량 수입 증가는 우리를 세계 시장의 잔인한 파동에 더욱 의존하도록 만들 뿐이다”고 했다. 비아 캄페시나는 현재 식량 가격 위기의 해법은 식량 주권에 있다고 생각한다. 식량 주권은 생태적으로 건전하고 지속가능한 방법을 통해 생산된 건강에 좋고 문화적으로 적합한 식량을 누릴 민중의 권리다. 동시에 각국 정부가 다른 나라의 농업에 손상을 입히지 않으면서 자국의 식량농업 정책을 결정할 권리다. 이는 시장과 기업의 요구가 아닌 식량을 생산분배소비하는 이들의 열망과 필요를 식량 체계와 정책의 중심에 놓는다. 식량주권은 각 지방, 각 나라의 경제와 시장을 우선시하고 소농과 가족농 주도의 농업식량 생산에 힘을 불어 넣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