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31 부동산 대책의 본질과 한계 한국사회의 부동산 투기열풍과 노무현정권의 대응 얼마 전 행자부가 발표한 우리나라의 토지소유 현황 수치를 살펴보면 현재 우리나라의 토지 소유 편중 현상이 얼마나 심각한지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이 자료에 따르면 전체 인구의 상위 1%(48만 7천명)가 전체 사유지의 51.5%를 소유하고 있으며, 상위 10%가 전체 면적의 91.4%를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지난 24일 조세연구원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부동산 가격이 폭등함에 따라 집 값으로 환산한 빈부격차의 정도가 단순히 월평균 소득으로 따졌을 경우 보다 두 배 이상 심각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처럼 신자유주의 정책은 부동산 투기를 조장하는 한 편 사회적 빈곤과 불평등을 확대하고 있다. 이처럼 왜곡된 토지 소유현상에 대한 불만과 부동산투기에 대한 국민적 반감이 거세지자 노무현 대통령은 “참여정부 임기 내에 하늘이 두 쪽 나더라도 부동산투기는 꼭 때려잡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하지만 잇따른 부동산 정책에도 불구하고 집 값은 좀처럼 떨어질 기색이 없어 보이자, 다음에는 토지공개념 제도를 언급하며 강도 높은 부동산 투기억제 정책을 추진할 것을 시사했다. 이러한 정부와 여당의 움직임에 대해 한나라당과 조선일보를 비롯한 보수 진영은 토지공개념 제도는 이미 위헌 판정을 받은 사회주의적 발상이라며 연일 호들갑을 떨었다. 하지만 노무현 정권이 출범 이후 줄곧 ’국토균형발전‘이라는 슬로건 아래 기업도시, 혁신도시 사업 등을 추진하며 전 국토를 투기지역으로 만들어 놓고 토지 공공성을 언급하는 것은 그 자체로 모순이다. 이러한 2개월 간의 지난한 공방은 8월31일 정부의 부동산 대책 발표를 통해 일단락 될 듯하다. 애초 검토되었던 안에서 후퇴에 후퇴를 거듭하여 발표된 이번 안은 결국 또다시 ‘호랑이를 그리려다 고양이를 그린 꼴’이 되어버렸다. 하지만 일부 언론에서는 이러한 후퇴가 강력한 조세저항을 우려한 결과라고 이야기한다. 그러나 사실은 애초부터 노무현 정권이 부동산 투기를 억제할 의도가 전혀 없었기 때문이라고 해석하는 것이 타당하다. 즉 이번 8.31 부동산 대책은 주식, 채권과 더불어 투기시장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부동산 시장이 장기간 저금리로 인해 과도한 거품이 형성되자 이를 가능한 수준에서 제어하고 관리하기 위해 마련한 일시적인 장치인 셈이다. 1980년대 말 위기관리정책으로 출발한 ‘토지공개념’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토지공개념은 1980년대 후반 올림픽 개최를 전후로 전국 곳곳에서 부동산 투기 광풍이 불면서 공론화되기 시작했다. 전국적인 부동산 투기에 따른 지가 상승이 서민들의 생활고에 무게를 더하는 상황에서 ‘공공의 복리를 위해 토지 소유권에 일정한 제약을 가해야 한다’는 토지공개념제의 취지는 국민적 공감대를 얻었다. 이에 정부는 1989년 정기국회에서 '택지소유에 대한 법률', '토지초과이득세법', '개발이익환수에 관한 법률' 등 토지공개념 관련 법률을 제정하였다. 하지만 토지공개념 관련 법률은 실제로 사회 안정과 공공복리를 위해 개인의 재산권을 제한하기 위한 목적으로 만들어진 것은 아니었다. 3저 호황으로 발생한 막대한 유동성 자금이 올림픽 개최를 계기로 일시적으로 부동산 시장으로 몰리게 되었다.1) 그 결과 발생한 부동산 투기 열풍은 노태우 정권에서조차 감당하기 힘든 상황이었고, 이렇게 과도하게 형성된 부동산 시장의 거품은 언제 어떻게 붕괴할지 모르는 위험한 상황에 직면해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제안된 토지공개념 제도는 부동산 투기 문제의 근본적인 원인을 해결하기 위한 방책으로 제시된 것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부동산이 더 이상 투기의 대상이 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을 목적으로 했다기보다는 단지 이미 형성된 부동산 시장을 안정적으로 유지하고 관리하기 위한 것이었다. 하지만 토지공개념 제도의 도입은 결국 중단되고 만다. 이를 확인할 수 있는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토지초과이득세법이다. 토지초과이득세법의 주요 내용은 별장용 토지, 부재지주 농지, 기준초과 공장용지 등의 소유자에게 3년 단위로 토지 초과이득의 30~50%에 해당하는 세금을 부과하는 것인데, 이것은 1994년 7월 재산권에 대한 과도한 침해를 이유로 위헌이 아닌 헌법 불합치 판정을 받았다(그러나 토지초과이득세법의 결함을 수정한 개정 토초세법에 대한 위헌 소송 네 건이 1997년 8월~ 1999년8월에 걸쳐 모두 합헌 판정을 받았다). 주거 생활을 안정시키기 위해 일정 규모 이상의 택지소유를 금지한 택지소유상한법도 마찬가지이다. 이 법은 소유 상한을 200평으로 지나치게 낮게 잡았다는 점, 소유 목적이나 택지 기능을 고려하지 않고 예외 없이 획일적인 상한을 정했다는 점이 문제가 되어 지난 1999년 4월 위헌판결을 받았지만, 위헌 판결이 나기 전인 98년 9월, 정부는 이 법을 폐지했다. 끝으로 택지개발, 공단·관광단지·유통단지·골프장 등의 조성 시 사업시행자에게 개발 이익의 25%(도입 초기에는 50%)를 개발 부담금으로 부과하도록 하는 개발이익환수법도 마찬가지다. 이 법은 합헌 판정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기업 부담 가중 등을 이유로 2004년 이후 사실상 시행이 중지되었다. 그런데 현재 토지공개념 제도 도입을 주장하고 있는 정부와 열린우리당조차 토지초과이익세법이나 택지소유상한법은 이미 위헌 판정을 받은 것이기 때문에 검토 대상에서 제외되었고, 개발부담금제만을 시행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는 1989년 당시 노태우 정권이 제안했던 토지공개념에도 훨씬 미달한다. 정부가 대책은 부동산 투기로 인한 구조적 불평등의 문제를 해결하고 토지와 주택에 대한 왜곡된 소유 편중 현상을 해결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만든 것이 아님을 분명히 확인할 수 있다. 8.31 부동산 대책의 본질과 한계: 노무현정권의 대국민 사기극 그렇다면 노무현 정권이 토지공개념 제도까지 운운해가며 추진하려고 하는 8.31 부동산 대책의 본질과 이것을 통해 노무현 정권이 얻으려고 하는 숨은 의도는 무엇일까? 8.31 부동산 대책의 핵심적인 내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보유세의 실효세율을 현행 0.15%에서 2009년까지 1%로 높이고, 현행 9~36% 차등세율로 부과되고 있는 양도세가 중과돼 1가구 2주택자의 경우 최대 50%까지 단일 세율을 적용한다는 내용이다. 그러나 당초 보유세액 증가 상한선을 폐지하는 방안이 검토되었지만 현행 150%에서 200%로 소폭 조정되었고, 1가구 2주택자 중과세율을 60%~70%로 적용하는 방안이 검토되었지만 50%로 하향 조정되었고2) , 이마저도 각종 예외규정을 두어 결국 중과 대상은 전체가구에 2%에도 못 미치는 20만 가구에 불과할 것으로 보인다. 예상대로 강력한 조세저항을 핑계로 애초 검토되었던 안에서 후퇴에 후퇴를 거듭해 발표된 이번 부동산 대책은 실제 집 값 하락에는 큰 영향이 없고 다만 일시적으로 부동산 매매거래가 위축될 것이라는 전망이 대체적이다. 이에 대해 정부는 친절하게도 부동산 거래 위축을 방지하기 위해 현재 4%인 정도인 거래세율을 0.5%포인트 낮추는 방안을 포함시켰지만 결국 이번 부동산 대책에 대해서 당장 부동산을 처분할 필요성이 없는 강남 ‘큰 손’들의 손익계산은 이미 끝난 상황이라고 할 수 있다. 이처럼 애초부터 실질적인 집 값 안정의 효과를 기대하기 어려운 이번 부동산 대책에서 오히려 주목해야할 것은 바로개발부담금제와기반시설부담금제의 시행이다. 이 제도의 주된 내용은 기업도시와 혁신도시 등 대규모 국책 사업과 재건축, 재개발에 따른 초과이익을 국가가 환수해 도로와 지하철, 공원, 학교 등을 설립하는 공공의 목적에 사용하겠다는 것이다. 기반시설 부담금제의 경우 당초 2007년부터 시행될 예정이었으나 정부와 여당은 이번 부동산 대책을 계기로 2006년부터 조기 도입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언뜻 보면 토지공개념 제도의 삼대 축 중 하나였던 개발부담금제의 시행을 통해 마치 부동산 투기를 억제하고 투기로 발생한 이익을 환수해 공공시설 확충에 사용하겠다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참여 정부 출범 이후 국토 균형발전과 경제 활성화를 위한다는 미명아래 행정중심 복합도시, 기업도시 혁신도시 건설계획을 발표해서 전국적인 땅값 상승을 주도해온 노무현 정권이 다시 여기에서 발생하는 이익을 환수해서 부동산 투기를 억제하겠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3) 결국 개발부담금제와 기반시설부담금제의 근저에는 기업도시와 혁신도시 개발 등 대규모 국책 사업 시행에 따른 재정 부담을 민간부문에게 떠넘기겠다는 의도가 깔려 있다고 볼 수 있다. 정부에서는 대규모 개발 사업 발표를 통해 지속적이고 안정적인 지가 상승을 보장해주고 개발 사업자는 여기에서 발생한 이익 중 일부를 도로와 상하수도, 학교와 공원 같은 기반시설 설치비용에 부담하는 일종의 빅딜이 형성된 것이다. 결국 이러한 빅딜의 피해자는 개발 지역 인근에 거주하는 서민들일 수밖에 없다. 또한 이번 8.31 부동산 대책에 강남 인근의 아파트 공급 확대를 위해 거여동 특전사 부지(58만평)와 남성대 골프장(24만평)에 약 100만평 규모의 강남 대체 미니 신도시를 추진하는 방안이 포함되었다. 이러한 내용이 언론에 보도된 직후 이 지역 일대는 벌써부터 매물이 실종되는 등 가격이 폭등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집 값을 잡겠다던 정권이 여전히 부동산을 하나의 투기의 대상으로 적절하게 관리하고 부동산 투기를 나서서 조장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또 하나의 사례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노무현 정권의 부동산 대책은 결국 투기 시장의 위기관리 방책일 뿐이다! 사회적으로 가장 심각한 문제로 제기되고 있는 부동산 투기 문제는 단순히 한국에서만 벌어지고 있는 현상은 아니다. 미국을 비롯한 세계 전역에서 경제 위기를 지연시켜 온 중요한 원인 중의 하나가 바로 부동산 경기의 호황이었다. 미국 전역의 주택가격은 지난 1년 동안 사상 최고 수준인 평균 13.6% 상승했고, 심지어 텍사스 리오그란데 지방의 쓸모 없는 사막 지대 땅값이 최근 6개월 사이 무려 12배나 뛰어오르는 등 미국 전역이 그야말로 투기장으로 변하고 있다. 그러나 지난 1996년부터 7년 동안 4배 가까이 급등했던 호주의 주택 가격이 최근 연이은 금리 인상으로 인해 하락세를 보이자 이것을 세계 부동산값 거품 붕괴의 조짐으로 해석하는 견해들이 나오고 있다. 이처럼 실물 경제에 기반 하지 않은 부동산 거품은 금리인상과 경기침체 등 다양한 원인들이 의해 언제든지 그 거품이 붕괴되기 마련이다. 정부의 논리에 따르면, 부동산에 대한 기대수익률이 떨어지면 시중 유동성 중 일부가 증시로 흘러 들 가능성이 높아질 것처럼 보인다. 투자처를 찾지 못하고 떠돌고 있는 부동자금 성격의 머니마켓펀드(MMF) 수탁고는 올해만 23조원 가까이 급증하며 지난 8월 24일 기준으로 82조 6461억 원을 기록 중이고 은행·자산운용사 등 금융기관의 단기수신은 7월말 현재 434조6000억 원으로 한 달 사이 13조3000억 원이나 증가했다. 최근 주식시장이 비교적인 안정적인 모습을 보이며 꾸준히 상승추세를 이어가고 있다는 점도 이 같은 가능성을 뒷받침한다. 이러한 내용은 노무현 대통령의 발언에서도 노골적으로 드러난다. 지난 25일 KBS의 '참여정부 2년 반, 대통령에게 듣는다' 프로그램에 출연한 노 대통령은 부동산 대책과 관련해서 "집을 사려다가 최근 주식에 간접투자 했다"며 "내가 국민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나는 주식에 걸었다는 것"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 이번 8.31 부동산 대책 발표를 통해 노무현 정권이 노리는 것은 하반기 주요 과제로 상정한 극심한 사회양극화 해소와 사회 통합에 대한 립서비스를 제공하는 한편, 부동산 시장과 금융시장의 균형을 유지하고 금융시장의 불안정성을 관리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부동산과 주식시장으로 유입되는 자금은 장기적으로 보완재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정부의 정책은 결국 유동성 자산 자체의 불안정성으로 인해 한계적일 수밖에 없다. 빈곤과 불평등에 저항하는 사회적 실천 최근 새로운 부의 상징으로 떠오른 강남의 타워 팰리스의 그림자 밑에는 군부독재 시절 정권에 의해 강제이주 되어 28년이나 거주했음에도 불구하고 주소지를 인정받지 못해 투쟁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이러한 한국사회의 극단적인 양극화의 모습은 비단 포이동 266번지 주민들에게만 해당하는 것은 아니다. 노무현 대통령이 입버릇처럼 이야기하는 사회 양극화 해소를 위해서는 8.31 부동산 대책과 같은 부동산 투기 정책을 내놓을 것이 아니라 “주거는 부의 축적 대상이 아니라 당연한 인간의 권리다!라고 절규하고 있는 수많은 도시 빈민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것부터 시작해야 할 것이다. 또한 이번 부동산 대책과 관련해 일부 시민단체와 같이 투기를 억제하고 투자를 보호하는 ‘시장 친화적 토지공개념’과 같은 정책적 대안을 요구하기도 한다. 하지만 지난 1989년 노태우 정권이 제정했던 토지공개념 제도의 한계에서 살펴보았듯 투기 시장 중에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부동산에 대한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서 법률·정책적인 차원에서의 중재라는 것은 역시 한계적일 수밖에 없다. 부동산 투기로 인해 발생하는 구조적 불평등을 해결하고 스스로의 삶을 영위하기 위한 최소한의 공간마저 보장받지 못하는 수많은 민중들의 주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가 양산하는 다양한 빈곤의 문제에 맞선 투쟁이 필요하다. 1) '3저 호황(저유가, 저금리, 저달러)'은 1986년 무렵부터 시작되어 1988년 서울올림픽 특수로 이어지면서 1988년까지 지속되었다. 하지만 3저 호황 동안 자본의 이윤량은 증가하지만 이윤율은 계속 떨어졌고 이에 따라 실물경제에 투자하기보다 자본이 증권시장, 부동산시장으로 몰리기 시작했고, 종합주가지수와 지가가 급상승했다. 1986년에 227.8이었던 종합주가지수가 1987년에는 417.6, 1988년에는 693.1, 89년에는 918.6으로 초특급 상승을 하였고, 동시에 지가도 엄청나게 올라갔다. 땅값 상승이득도 급증, 1986년에 45조원 대이던 것이 89년에는 314조원에 달하였다. 본문으로 2) 양도세율을 60~70%로 올린다고 해도, 실제 내는 양도세는 장기보유특별공제나 기본공제등을 빼면 양동차익의 절반도 안 된다. 마치 양도차익의 60~70%를 세금으로 내는 것처럼 보이지만 양도세 실효세율(양도차익 대비 양도세 비율)은 50%에도 못 미치는 것이다. 현재 양도세 실효세율은 고작 15%(1가구 1주택 비과세 포함)에 불과한 것으로 추정된다. 본문으로 3) 전국적인 땅값 상승의 양상을 살펴보면, 충청권에서는 호남고속철 분기역으로 결정된 청원 오송 지역과 행정수도 후보지에 오른 천안, 아산, 논산, 공주, 연기 등의 땅값이 치솟고 있다. 강원권의 기업도시 예정지인 원주도 땅값이 오르고, 호남권에서는 기업도시가 들어설 무안과 광주 인근지역에 통합혁신도시가 건설될 장성, 담양, 나주 등지 및 혁신도시 후보지로 예상되는 전주· 김제·완주도 마찬가지다. 영남권에서도 행정도시 예정지인 공주·연기와 인접한 경북 상주의 땅값도 상승하고 있으며, 울산에서는 1~3년 전 경부고속철도 울산역(울주군 삼남면) 역세권을 중심으로 투기광풍이 일었다. 본문으로
영국 스코틀랜드 글렌이글스에서 7월 6일부터 8일까지 열린 G8(미국, 영국, 일본,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캐나다, 러시아) 정상회담이 막을 내렸다. 런던 테러사건이 발생해 언론의 초점에서 다소 멀어지긴 했지만 이번 정상회담의 주 의제는 아프리카의 빈곤과 기후변화였다. 이에 따라 회담에 참석한 8개국 정상들이 서명한 글렌이글스 공동성명도 '기후변화, 에너지 그리고 지속가능한 발전'과 '아프리카'로 나뉘어 정리되어 있다.1) 이번 회담에서는 기후변화와 관련해서는 별 진전이 없었고, 아프리카 등 가난한 나라들의 외채탕감에 대해서는 일정한 성과가 있었다고 한다. 여기서는 성과가 있었다는 외채탕감의 내용이 무엇이고, 그것이 진정한 성과라 할만한 것인지 살펴보기로 하자. 그리고 이후 신자유주의 세계화 반대운동의 일환으로서 외채탕감운동이 어떻게 전개되어야 할지를 알아보기로 하자. 외채탕감운동 외채탕감 요구는 1996년 G7 정상회담 이후 사회운동단체들의 시위의 단골메뉴였다. 이번에도 '빈곤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하자'(Make Poverty History, MPH)) 조직위 주최 에딘버러 시위에 20만 이상이 모여들었는데 일부에서는 2002년 제노아 시위보다 컸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그리고 가난한 나라의 외채를 탕감하고 아프리카에 대한 원조를 늘리라고 정상회담에 압력을 넣기 위해 G8 국가들의 주요 8개 도시와 아프리카의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요하네스버그를 이어가면서 진행한 마라톤 공연 '라이브 에잇'(Live 8)2)에도 많은 사람들이 직접적으로(런던 20만, 미국 필라델피아 100만 등 9개 도시 150만) 혹은 간접적으로(전세계 20-30억명 텔레비전 시청) 참여하였다. 외채탕감운동은 국제 채권자들이 1996년 과중채무빈국(HIPC) 외채탕감 방안을 논의하기로 동의하면서 활성화되는데, 1998년 11월 17일 로마에서 38개국 '쥬빌리 2000' 단체들과 12개 국제조직이 모여 최초의 '쥬빌리 2000' 국제회의를 열었다. 쥬빌리는 성서에서 유래하는데 죄수를 풀어주고 빚을 탕감해주는, 50년마다 돌아오는 '기쁜 해', 즉 희년(禧年)이다. 단어에서 보다시피 이 쥬빌리 2000 운동은 선진국 종교계에서 시작한 시혜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는 운동이었다. 1998년 회의에서는 상환불가능한 외채, 원금을 실질적으로 이미 상환한 외채, 부적절하게 기획된 정책과 프로젝트로 인한 외채, 부정한 외채와 독재정권에 의해 발생한 외채를 2000년까지 탕감하라고 요구하였다. 그리고 쥬빌리 2000 운동은 1999년 쾰른 G7 정상회담을 겨냥하여 수만명을 동원하여 시위를 벌였고, 이에 호응하여(?) G7회의에서는 HIPC의 2000억불에 해당하는 외채 중에서 700억불을 탕감한다고 결정하였다. 그런데 이런 운동 과정에서 외채탕감운동이 쥬빌리 2000(J2)과 쥬빌리 사우쓰(JS)로 나뉘어 지는데 그 차이는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우선 J2는 북반구 국가들에 압력을 가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북반구에서 주도하고 있는 운동인 반면, JS는 남반구 국가의 시민사회에 외채문제를 환기시키고 남쪽 국가들에 대해 압력을 행사하는 운동이다. 둘째, J2는 외채의 규모를 축소시키려는 목적에서 단기간 진행되는 운동인 반면, JS는 외채를 고질적인 문제로 만드는 구조적 문제를 제기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장기에 걸친 운동이다. 그리고 JS는 G7회의에서 결정되고 IMF/세계은행에 의해 승인된 HIPC 외채탕감방안을 거부하고 모든 개도국의 외채 탕감을 옹호한다. 외채탕감의 규모는? 이번 회담에서 탕감하기로 한 외채는 18개국(아프리카 부르키나 파소, 베냉 등 14개국, 중남미 볼리비아, 니카라과 등 4개국)이 국제화폐기금(IMF), 세계은행, 아프리카개발기금에 진 빚 400억불이다. 이들 국가는 1996년에 시작되고 1999년에 수정된 '과중채무빈국 방안'3)에 의해 '종결시점'에 도달한 과중채무빈국이다. 이외에도 '결정시점'에 도달한 카메룬 차드 등 9개국과 라오스 미얀마 수단 등 '결정시점'에 도달하지 않은 11개국도 '종결시점'에 이르면 외채탕감을 받게 되는데 그 규모가 각각 110억 달러와 40억 달러로 합해서 150억 달러가 된다. 이 금액과 400억 달러를 합하면 총 550억 달러에 이른다. 이 정도 규모가 얼마나 미미한 규모인지 각종 통계치와 비교를 해 보기로 하자.4) 첫째, HIPC 38개국 총 외채는 현재 1,670억불이고, 이 중 1,370억불이 공적 기관에 대한 채무다 (550억 달러 이외의 공적 외채는 다른 기관, 예를 들어 아메리카개발은행이나 쌍무적 채권기관에 지고 있다는 이야기가 된다). 이는 이들 나라가 550억 달러를 다 탕감 받는다 해도 여전히 1,000억 달러 이상의 외채를 지고 있게 된다는 것이다. 둘째, 쥬빌리 법5)이 다자기구 외채 100% 탕감이 필요하다고 꼽은 50개국이 지고 있는 외채는 3,830억 달러이다. 이 중 2950억불이 공적 채권기관에 대한 외채이고, IMF와 세계은행에만 진 외채가 820억불이다. 셋째, 영국 원조기관들이 '새천년 발전 목표'(MDGs)를 달성하는 첫 단계로서 외채탕감이 필요하다고 꼽은 62개 저소득 국가들이 지고 있는 외채는 5000억불 이상이고 이들 중 4,460억 달러를 공적 채무기관에 지고 있고, 아이엠에프와 세계은행에게만 지고 있는 빚이 1,400억불이다. 넷째로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국가들의 총외채는 2080억불이다. 다섯째, 모든 개도국의 총외채는 2조 4천억달러이다.6) 여섯째, G8 국가들이 매년 군사예산으로 사용하는 규모에 비춰보자. 예를 들어 2004년 미국의 군사예산은 4,000억 달러이고, 러시아를 제외한 다른 6개국의 군사예산은 1,914억 달러였다. 그런데 외채 탕감은 향후 몇 십 년에 걸쳐 진행되는 것이고 따라서 매년 탕감되는 액수는 불과 10-20억불뿐이다. 그 규모가 얼마나 작은지 확연히 드러난다. 참고로 G8 국가들은 남반구 국가들의 쌍무적 다자적 외채에 대한 이자로만 매년 미화 230억달러를 거둬들인다. 결정적으로는 벨기에의 '제3세계 외채탕감위원회'의 다미엔 밀레와 에릭 뚜상에 의하면 이번에 탕감하기로 한 18개국의 400억달러 외채는 이미 악성외채여서 시장에서는 대폭 할인되어 평가되는데 미국의 방식(92% 할인율 적용)에 의하면 32억 달러에 불과하다고 한다. 다른 문제점들 이번 G8 외채탕감방안은 그 규모가 매우 적다는 것뿐만 아니라 다른 많은 문제점들을 안고 있다. 가장 먼저 지적되어야 할 것은 외채탕감 조건이다. 앞에서 거론한 것처럼 HIPC 방안은 외채탕감을 받기 위해서 '결정시점'과 '종결시점'에 도달해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 각국은 IMF와 세계은행이 승인하는 '빈곤경감 전략문서'(PRSP)를 마련해야하고, IMF의 '빈곤경감 및 성장촉진책(PRGF)과 같은 대출협약을 포함해서 여타 IMF와 세계은행의 대출협약에 있는 조건들에 순응해야 한다. 이런 PRSP와 PRGF에 담겨있는 조건들은 다음과 같은 것들이다. 교육, 보건 같은 사회적 비용을 줄여 재정적자를 감축할 것, 전력, 전기 전화, 물, 의료 등을 민영화할 것, 인플레이션을 낮게 유지할 것, 외국인 투자에 대한 장벽을 제거할 것, 공공부문 규모를 줄이고 노조조직을 어렵게 만들 것, 외화획득을 위해 수출(자연자원 수출을 포함하여)을 늘릴 것, 무역과 투자를 차별 없이 자유화할 것, 생활필수품에 대한 보조금을 제거할 것 등이다. 다음으로는 이번에 탕감조치를 받았고 앞으로 받을 예정이 38개국은 외채로 고통을 당하고 있는 남반부 국가들 160개국 중에서 극히 일부를 차지한다는 점이다. 백 번 양보해서 매우 긴급한 나라들 외채를 탕감한다 하더라도 쓰나미 피해국이나 아이티 같은 심각한 위기를 겪고 있는 나라들의 외채가 탕감이 되지 않았다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또한 다른 중요한 채권기관들이 포함되지 않았다. 예를 들면 아메리카 개발은행과 아시아 개발은행이 그것들이다. 외채를 탕감 받게 되는 4개 중남미 국가들(볼리비아 가이아나 온두라스 니카라과)은 아메리카 개발은행에 이후 5개년에 걸쳐 약 14억불의 외채원리금 상환을 해야 할 것이다. 라오스는 HIPC에 있는 유일한 아시아 국가인데, 부탄, 베트남, 인도네시아, 스리랑카, 필리핀 등 다른 아시아 국가도 심각하게 외채에 시달리고 있다. 그런데 이들은 주로 아시아 개발은행에 외채를 지고 있다. 마지막으로 쥬빌리 사우쓰 등 거의 모든 외채탕감운동단체들이 요구해 온 증오스럽고 불법적인 성격의 외채는 무시되었다. 예를 들면 남미 독재국가, 남아공의 인종차별국가, 필리핀의 마르코스 치하의 외채 등이 그것들이다. 글을 맺으며 앞에서 보았다시피 이번 G8 회담에서의 외채탕감은 그 규모가 미미할 뿐만 아니라 이미 기진맥진하여 외채를 갚을 수 없는 나라들에게 신자유주의 구조조정과 세계화로의 편입을 조건으로 탕감한 것이다. 또한 지난 멕시코 칸쿤에서 세계무역기구(WTO) 협상이 실패할 때 베넹, 부르키나파소 등 서아프리카 4개국이 문제삼은 면화보조금도 한 원인이 되었는데 이번 외채탕감이 12월 홍콩 WTO 협상을 앞두고 아프리카 빈국들을 입막음하자는 차원에서 이루어지지는 않았을까? 아무튼 이번 외채탕감은 중심부 국가의 이익과 초민족적 자본의 이익을 조금도 침해하지 않은 것은 분명하다. 한편 '라이브 8' 공연 주최측과 거대 비정부기구들이 청원식 운동을 펼치면서 전쟁과 신자유주의 세계화를 통한 제국주의적 지배의 당사자인 미국, 영국 등 G8 지배세력에 단호히 맞서지 않은 것은 이들의 한계라 할지라도, 이에 부지불식간에 끌려 들어간 신자유주의 반대운동세력 또한 반성이 있어야 할 것으로 본다. 남아프리카공화국 대안세계화 운동단체 AIDC의 말을 들어보자. "G8 정상회담의 결과는 세계화의 이면인 전쟁과 군사주의에서 우리의 주의를 분산시키면서 세계화에 인간적인 면모로 채색하려고 하는 자들에게, 사회정의에 관심을 갖고 있는 우리들이 우리의 의사와 무관하게 포섭 당하지 않기 위해서는 우리의 전략을 다시 검토하지 않을 수 없도록 하고 있다. 우리는 G8과 함께 신자유주의 정책을 강제하는 우리 정부들에 대항해 싸우는 동시에 G8과 그들이 지도하는 WTO, 아이엠에프, 세계은행 등의 정당성을 허무는 우리의 노력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불행하게도 MPH의 지배적인 추진주체는 반세계화 운동, 세계사회포럼, 세계 곳곳의 대중적인 사회운동들의 어마어마한 성장을 가져다준 이런 전략에 등을 돌렸다. 유명인사들, 업계거물 및 조언자들은 실천, 조직화 및 저항을 대체할 수 없다. 우리는 그들이 이런 교훈을 얻기를 바란다."7) 세계적인 경제위기와 이를 극복하겠다는 신자유주의 세계화는 개도국 발전, 성장, 빈곤퇴치 등 어느 것 하나 해결하지 못하고 이제는 전쟁을 병행하고 있다. 제3세계 외채탕감운동이 애초에 외채를 구조적인 문제로 본 바에야 신자유주의 세계화와 전쟁을 통해 남반구 민중에 대한 지배와 공격을 강화하는 세계의 지배세력들에게 청원하는 방식의 운동에 이끌리지 말고8) 일국적 세계적 차원의 신자유주의 반대투쟁을 통한 변혁운동과 결합해야 할 것이다. 이것이 이번 G8 회담 및 이에 대한 대응의 교훈이 아닐까 한다. 1) 원문은 http://www.fco.gov.uk/files/kfile/postg8_gleneagles_communique.pdf를 참조하라. 본문으로 2) 약 20년 전에도 '라이브 에이드'(Live Aid)를 기획했던 아일랜드 출신 록가수 밥 겔도프가 기획한 이 공연에는 엘튼 존, 폴 매카트니, 마돈나, U2 등 유명한 대중가수들과 넬슨 만델라 등이 출연했다. 영어로 '8'은 '에잇'인데 '원조'를 뜻하는 'aid(에이드)'와 발음이 유사하다. '라이브 8'은 '라이브 에이드'(원조를 위한 라이브 공연)이기도 한 것이다. 본문으로 본문으로 4) http://www.jubilieeusa.org/press_room/firststep.pdf와 http://www.jubileesouth.org/upload1/jsstatementforg8.pdf를 참조하라. 본문으로 5) 2005년 3월 미국 하원에 제출된 법안으로 정식 명칭은 ''2005년 정의, 외채탕감 이해, 그리고 형평에 관한 법률'(Justice and Understanding By International Loan Elimination and Equity Act of 2005')이다. 6월 현재 75명의 양당 의원이 발기인으로 되어 있다. 본문으로 6) 80년대 후반 남미 외채위기 이후 외채조정방안으로 등장한 베이커플랜은 외채를 주식으로 돌리는 방식으로 외채문제 폭발을 지연시켰는데 이로 인해 반주변-주변부의 외채는 주식형태로 많이 바뀐 상태이다(외채-주식 전환). 즉 외채규모는 현재 초민족적 자본의 지배로 인해 반주변-주변부가 처한 문제의 실상을 다 보여주지는 못한다. 특히 이는 브라질, 아르헨티나, 한국 등 반주변부에서 그렇다. 이런 나라에서는 초민족적 자본의 이탈(capital flight)로 주식시장과 외환시장이 붕괴하면서 위기가 도래하기도 한다. 본문으로 본문으로 7) http://www.aidc.org.za를 참조하라. 본문으로 8) 이를 위해서는 청원방식의 외채탕감운동을 재고해 보아야 할 것으로 보인다. HIPC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의 위기와 비극의 주된 요인을 구조적 요인, 즉 식민지이전 및 식민지 유산, 미국 주도 세계자본주의의 수익성 및 정당성 위기와 이에 대한 미국의 대응(실질금리 인상을 통한 개도국과의 국제 화폐자본 유치 경쟁, 제조업 제품 수입증대를 통한 경상수지 적자 누적, 동아시아 원조 및 역개방정책)으로 보는 세계체계론자 아리기는 아프리카 각국 정부가 70년대 중반 이후 위기를 근본적으로 회피할 수는 없었다 하더라도 위기의 영향을 줄일 수 있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 중 하나가 세계은행이 지시한 조건으로 채무재조정을 하기 보다는 디폴트(지불정지)를 하는 것이 나았을 것이라고 하면서 디폴트는 단기적으로는 위기를 낳았을지 모르겠으나 신자유주의 정책으로 인한 파괴적인 영향은 줄일 수 있었을 것이라고 한다. 지오반니 아리기, 〈아프리카의 위기 : 세계체계적인 그리고 지역적인 양상들〉, 《사회진보연대》, 2002년 11월호, 2003년 1-2월호를 참조하라. 본문으로 [%=박스1%]
영국 스코틀랜드 글렌이글스에서 7월 6일부터 8일까지 열린 G8(미국, 영국, 일본,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캐나다, 러시아) 정상회담이 막을 내렸다. 런던 테러사건이 발생해 언론의 초점에서 다소 멀어지긴 했지만 이번 정상회담의 주 의제는 아프리카의 빈곤과 기후변화였다. 이에 따라 회담에 참석한 8개국 정상들이 서명한 글렌이글스 공동성명도 '기후변화, 에너지 그리고 지속가능한 발전'과 '아프리카'로 나뉘어 정리되어 있다.1) 이번 회담에서는 기후변화와 관련해서는 별 진전이 없었고, 아프리카 등 가난한 나라들의 외채탕감에 대해서는 일정한 성과가 있었다고 한다. 여기서는 성과가 있었다는 외채탕감의 내용이 무엇이고, 그것이 진정한 성과라 할만한 것인지 살펴보기로 하자. 그리고 이후 신자유주의 세계화 반대운동의 일환으로서 외채탕감운동이 어떻게 전개되어야 할지를 알아보기로 하자. 외채탕감운동 외채탕감 요구는 1996년 G7 정상회담 이후 사회운동단체들의 시위의 단골메뉴였다. 이번에도 '빈곤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하자'(Make Poverty History, MPH)) 조직위 주최 에딘버러 시위에 20만 이상이 모여들었는데 일부에서는 2002년 제노아 시위보다 컸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그리고 가난한 나라의 외채를 탕감하고 아프리카에 대한 원조를 늘리라고 정상회담에 압력을 넣기 위해 G8 국가들의 주요 8개 도시와 아프리카의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요하네스버그를 이어가면서 진행한 마라톤 공연 '라이브 에잇'(Live 8)2)에도 많은 사람들이 직접적으로(런던 20만, 미국 필라델피아 100만 등 9개 도시 150만) 혹은 간접적으로(전세계 20-30억명 텔레비전 시청) 참여하였다. 외채탕감운동은 국제 채권자들이 1996년 과중채무빈국(HIPC) 외채탕감 방안을 논의하기로 동의하면서 활성화되는데, 1998년 11월 17일 로마에서 38개국 '쥬빌리 2000' 단체들과 12개 국제조직이 모여 최초의 '쥬빌리 2000' 국제회의를 열었다. 쥬빌리는 성서에서 유래하는데 죄수를 풀어주고 빚을 탕감해주는, 50년마다 돌아오는 '기쁜 해', 즉 희년(禧年)이다. 단어에서 보다시피 이 쥬빌리 2000 운동은 선진국 종교계에서 시작한 시혜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는 운동이었다. 1998년 회의에서는 상환불가능한 외채, 원금을 실질적으로 이미 상환한 외채, 부적절하게 기획된 정책과 프로젝트로 인한 외채, 부정한 외채와 독재정권에 의해 발생한 외채를 2000년까지 탕감하라고 요구하였다. 그리고 쥬빌리 2000 운동은 1999년 쾰른 G7 정상회담을 겨냥하여 수만명을 동원하여 시위를 벌였고, 이에 호응하여(?) G7회의에서는 HIPC의 2000억불에 해당하는 외채 중에서 700억불을 탕감한다고 결정하였다. 그런데 이런 운동 과정에서 외채탕감운동이 쥬빌리 2000(J2)과 쥬빌리 사우쓰(JS)로 나뉘어 지는데 그 차이는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우선 J2는 북반구 국가들에 압력을 가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북반구에서 주도하고 있는 운동인 반면, JS는 남반구 국가의 시민사회에 외채문제를 환기시키고 남쪽 국가들에 대해 압력을 행사하는 운동이다. 둘째, J2는 외채의 규모를 축소시키려는 목적에서 단기간 진행되는 운동인 반면, JS는 외채를 고질적인 문제로 만드는 구조적 문제를 제기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장기에 걸친 운동이다. 그리고 JS는 G7회의에서 결정되고 IMF/세계은행에 의해 승인된 HIPC 외채탕감방안을 거부하고 모든 개도국의 외채 탕감을 옹호한다. 외채탕감의 규모는? 이번 회담에서 탕감하기로 한 외채는 18개국(아프리카 부르키나 파소, 베냉 등 14개국, 중남미 볼리비아, 니카라과 등 4개국)이 국제화폐기금(IMF), 세계은행, 아프리카개발기금에 진 빚 400억불이다. 이들 국가는 1996년에 시작되고 1999년에 수정된 '과중채무빈국 방안'3)에 의해 '종결시점'에 도달한 과중채무빈국이다. 이외에도 '결정시점'에 도달한 카메룬 차드 등 9개국과 라오스 미얀마 수단 등 '결정시점'에 도달하지 않은 11개국도 '종결시점'에 이르면 외채탕감을 받게 되는데 그 규모가 각각 110억 달러와 40억 달러로 합해서 150억 달러가 된다. 이 금액과 400억 달러를 합하면 총 550억 달러에 이른다. 이 정도 규모가 얼마나 미미한 규모인지 각종 통계치와 비교를 해 보기로 하자.4) 첫째, HIPC 38개국 총 외채는 현재 1,670억불이고, 이 중 1,370억불이 공적 기관에 대한 채무다 (550억 달러 이외의 공적 외채는 다른 기관, 예를 들어 아메리카개발은행이나 쌍무적 채권기관에 지고 있다는 이야기가 된다). 이는 이들 나라가 550억 달러를 다 탕감 받는다 해도 여전히 1,000억 달러 이상의 외채를 지고 있게 된다는 것이다. 둘째, 쥬빌리 법5)이 다자기구 외채 100% 탕감이 필요하다고 꼽은 50개국이 지고 있는 외채는 3,830억 달러이다. 이 중 2950억불이 공적 채권기관에 대한 외채이고, IMF와 세계은행에만 진 외채가 820억불이다. 셋째, 영국 원조기관들이 '새천년 발전 목표'(MDGs)를 달성하는 첫 단계로서 외채탕감이 필요하다고 꼽은 62개 저소득 국가들이 지고 있는 외채는 5000억불 이상이고 이들 중 4,460억 달러를 공적 채무기관에 지고 있고, 아이엠에프와 세계은행에게만 지고 있는 빚이 1,400억불이다. 넷째로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국가들의 총외채는 2080억불이다. 다섯째, 모든 개도국의 총외채는 2조 4천억달러이다.6) 여섯째, G8 국가들이 매년 군사예산으로 사용하는 규모에 비춰보자. 예를 들어 2004년 미국의 군사예산은 4,000억 달러이고, 러시아를 제외한 다른 6개국의 군사예산은 1,914억 달러였다. 그런데 외채 탕감은 향후 몇 십 년에 걸쳐 진행되는 것이고 따라서 매년 탕감되는 액수는 불과 10-20억불뿐이다. 그 규모가 얼마나 작은지 확연히 드러난다. 참고로 G8 국가들은 남반구 국가들의 쌍무적 다자적 외채에 대한 이자로만 매년 미화 230억달러를 거둬들인다. 결정적으로는 벨기에의 '제3세계 외채탕감위원회'의 다미엔 밀레와 에릭 뚜상에 의하면 이번에 탕감하기로 한 18개국의 400억달러 외채는 이미 악성외채여서 시장에서는 대폭 할인되어 평가되는데 미국의 방식(92% 할인율 적용)에 의하면 32억 달러에 불과하다고 한다. 다른 문제점들 이번 G8 외채탕감방안은 그 규모가 매우 적다는 것뿐만 아니라 다른 많은 문제점들을 안고 있다. 가장 먼저 지적되어야 할 것은 외채탕감 조건이다. 앞에서 거론한 것처럼 HIPC 방안은 외채탕감을 받기 위해서 '결정시점'과 '종결시점'에 도달해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 각국은 IMF와 세계은행이 승인하는 '빈곤경감 전략문서'(PRSP)를 마련해야하고, IMF의 '빈곤경감 및 성장촉진책(PRGF)과 같은 대출협약을 포함해서 여타 IMF와 세계은행의 대출협약에 있는 조건들에 순응해야 한다. 이런 PRSP와 PRGF에 담겨있는 조건들은 다음과 같은 것들이다. 교육, 보건 같은 사회적 비용을 줄여 재정적자를 감축할 것, 전력, 전기 전화, 물, 의료 등을 민영화할 것, 인플레이션을 낮게 유지할 것, 외국인 투자에 대한 장벽을 제거할 것, 공공부문 규모를 줄이고 노조조직을 어렵게 만들 것, 외화획득을 위해 수출(자연자원 수출을 포함하여)을 늘릴 것, 무역과 투자를 차별 없이 자유화할 것, 생활필수품에 대한 보조금을 제거할 것 등이다. 다음으로는 이번에 탕감조치를 받았고 앞으로 받을 예정이 38개국은 외채로 고통을 당하고 있는 남반부 국가들 160개국 중에서 극히 일부를 차지한다는 점이다. 백 번 양보해서 매우 긴급한 나라들 외채를 탕감한다 하더라도 쓰나미 피해국이나 아이티 같은 심각한 위기를 겪고 있는 나라들의 외채가 탕감이 되지 않았다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또한 다른 중요한 채권기관들이 포함되지 않았다. 예를 들면 아메리카 개발은행과 아시아 개발은행이 그것들이다. 외채를 탕감 받게 되는 4개 중남미 국가들(볼리비아 가이아나 온두라스 니카라과)은 아메리카 개발은행에 이후 5개년에 걸쳐 약 14억불의 외채원리금 상환을 해야 할 것이다. 라오스는 HIPC에 있는 유일한 아시아 국가인데, 부탄, 베트남, 인도네시아, 스리랑카, 필리핀 등 다른 아시아 국가도 심각하게 외채에 시달리고 있다. 그런데 이들은 주로 아시아 개발은행에 외채를 지고 있다. 마지막으로 쥬빌리 사우쓰 등 거의 모든 외채탕감운동단체들이 요구해 온 증오스럽고 불법적인 성격의 외채는 무시되었다. 예를 들면 남미 독재국가, 남아공의 인종차별국가, 필리핀의 마르코스 치하의 외채 등이 그것들이다. 글을 맺으며 앞에서 보았다시피 이번 G8 회담에서의 외채탕감은 그 규모가 미미할 뿐만 아니라 이미 기진맥진하여 외채를 갚을 수 없는 나라들에게 신자유주의 구조조정과 세계화로의 편입을 조건으로 탕감한 것이다. 또한 지난 멕시코 칸쿤에서 세계무역기구(WTO) 협상이 실패할 때 베넹, 부르키나파소 등 서아프리카 4개국이 문제삼은 면화보조금도 한 원인이 되었는데 이번 외채탕감이 12월 홍콩 WTO 협상을 앞두고 아프리카 빈국들을 입막음하자는 차원에서 이루어지지는 않았을까? 아무튼 이번 외채탕감은 중심부 국가의 이익과 초민족적 자본의 이익을 조금도 침해하지 않은 것은 분명하다. 한편 '라이브 8' 공연 주최측과 거대 비정부기구들이 청원식 운동을 펼치면서 전쟁과 신자유주의 세계화를 통한 제국주의적 지배의 당사자인 미국, 영국 등 G8 지배세력에 단호히 맞서지 않은 것은 이들의 한계라 할지라도, 이에 부지불식간에 끌려 들어간 신자유주의 반대운동세력 또한 반성이 있어야 할 것으로 본다. 남아프리카공화국 대안세계화 운동단체 AIDC의 말을 들어보자. "G8 정상회담의 결과는 세계화의 이면인 전쟁과 군사주의에서 우리의 주의를 분산시키면서 세계화에 인간적인 면모로 채색하려고 하는 자들에게, 사회정의에 관심을 갖고 있는 우리들이 우리의 의사와 무관하게 포섭 당하지 않기 위해서는 우리의 전략을 다시 검토하지 않을 수 없도록 하고 있다. 우리는 G8과 함께 신자유주의 정책을 강제하는 우리 정부들에 대항해 싸우는 동시에 G8과 그들이 지도하는 WTO, 아이엠에프, 세계은행 등의 정당성을 허무는 우리의 노력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불행하게도 MPH의 지배적인 추진주체는 반세계화 운동, 세계사회포럼, 세계 곳곳의 대중적인 사회운동들의 어마어마한 성장을 가져다준 이런 전략에 등을 돌렸다. 유명인사들, 업계거물 및 조언자들은 실천, 조직화 및 저항을 대체할 수 없다. 우리는 그들이 이런 교훈을 얻기를 바란다."7) 세계적인 경제위기와 이를 극복하겠다는 신자유주의 세계화는 개도국 발전, 성장, 빈곤퇴치 등 어느 것 하나 해결하지 못하고 이제는 전쟁을 병행하고 있다. 제3세계 외채탕감운동이 애초에 외채를 구조적인 문제로 본 바에야 신자유주의 세계화와 전쟁을 통해 남반구 민중에 대한 지배와 공격을 강화하는 세계의 지배세력들에게 청원하는 방식의 운동에 이끌리지 말고8) 일국적 세계적 차원의 신자유주의 반대투쟁을 통한 변혁운동과 결합해야 할 것이다. 이것이 이번 G8 회담 및 이에 대한 대응의 교훈이 아닐까 한다. 1) 원문은 http://www.fco.gov.uk/files/kfile/postg8_gleneagles_communique.pdf를 참조하라. 본문으로 2) 약 20년 전에도 '라이브 에이드'(Live Aid)를 기획했던 아일랜드 출신 록가수 밥 겔도프가 기획한 이 공연에는 엘튼 존, 폴 매카트니, 마돈나, U2 등 유명한 대중가수들과 넬슨 만델라 등이 출연했다. 영어로 '8'은 '에잇'인데 '원조'를 뜻하는 'aid(에이드)'와 발음이 유사하다. '라이브 8'은 '라이브 에이드'(원조를 위한 라이브 공연)이기도 한 것이다. 본문으로 본문으로 4) http://www.jubilieeusa.org/press_room/firststep.pdf와 http://www.jubileesouth.org/upload1/jsstatementforg8.pdf를 참조하라. 본문으로 5) 2005년 3월 미국 하원에 제출된 법안으로 정식 명칭은 ''2005년 정의, 외채탕감 이해, 그리고 형평에 관한 법률'(Justice and Understanding By International Loan Elimination and Equity Act of 2005')이다. 6월 현재 75명의 양당 의원이 발기인으로 되어 있다. 본문으로 6) 80년대 후반 남미 외채위기 이후 외채조정방안으로 등장한 베이커플랜은 외채를 주식으로 돌리는 방식으로 외채문제 폭발을 지연시켰는데 이로 인해 반주변-주변부의 외채는 주식형태로 많이 바뀐 상태이다(외채-주식 전환). 즉 외채규모는 현재 초민족적 자본의 지배로 인해 반주변-주변부가 처한 문제의 실상을 다 보여주지는 못한다. 특히 이는 브라질, 아르헨티나, 한국 등 반주변부에서 그렇다. 이런 나라에서는 초민족적 자본의 이탈(capital flight)로 주식시장과 외환시장이 붕괴하면서 위기가 도래하기도 한다. 본문으로 본문으로 7) http://www.aidc.org.za를 참조하라. 본문으로 8) 이를 위해서는 청원방식의 외채탕감운동을 재고해 보아야 할 것으로 보인다. HIPC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의 위기와 비극의 주된 요인을 구조적 요인, 즉 식민지이전 및 식민지 유산, 미국 주도 세계자본주의의 수익성 및 정당성 위기와 이에 대한 미국의 대응(실질금리 인상을 통한 개도국과의 국제 화폐자본 유치 경쟁, 제조업 제품 수입증대를 통한 경상수지 적자 누적, 동아시아 원조 및 역개방정책)으로 보는 세계체계론자 아리기는 아프리카 각국 정부가 70년대 중반 이후 위기를 근본적으로 회피할 수는 없었다 하더라도 위기의 영향을 줄일 수 있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 중 하나가 세계은행이 지시한 조건으로 채무재조정을 하기 보다는 디폴트(지불정지)를 하는 것이 나았을 것이라고 하면서 디폴트는 단기적으로는 위기를 낳았을지 모르겠으나 신자유주의 정책으로 인한 파괴적인 영향은 줄일 수 있었을 것이라고 한다. 지오반니 아리기, 〈아프리카의 위기 : 세계체계적인 그리고 지역적인 양상들〉, 《사회진보연대》, 2002년 11월호, 2003년 1-2월호를 참조하라. 본문으로 [%=박스1%]
프롤레타리아로서의 농민 자본주의적 농업의 성숙1) 리처드 르원틴2) (번역: 류미경 (정책편집부장)) 우리는 자본주의가 어떻게 산업 생산을 지배하게 되었는지, 또 어떻게 자본주의 생산관계가 개별 장인 생산자를 포섭했는지에 관한 고전적인 이야기를 익히 알고 있다. 우리는 자본주의적 방식이 다른 형태의 생산·교환 조직에 침투하여 결국 이를 변형시켰다는 점을 알고 있다. 종종 이러한 변화의 힘은 매우 강력하여, 적어도 유럽과 북미에서는 이러한 변화가 일찍 시작되어 19세기 말에 끝났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에서 이와 같은 현상의 동학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과거를 복원하는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이러한 현상은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지 않기 때문이다. 두 번째로 의료나 연예 등의 전문 분야와 같이 현재까지도 자신의 직업을 유지하고 있는 개별 장인들을 보면, 이행이 최근까지도 완료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러나 이러한 분야들은 예외적인 것으로, 초기 자본주의적 관계의 화석인 셈이다. 왜냐하면 이 분야는 특별한 재능과 오랜 기간의 훈련을 통해 습득할 수 있는 기술이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성숙한 자본주의로의 이행이 주변적인 분야, 즉 핵심적인 필수품 생산을 제외한 분야에서는 예외가 된다는 관점은 완전히 틀렸다. 왜냐하면 기초적인 생필품을 생산하는 거대한 영역, 즉 농업분야에서 이행이 한창 진행 중이라는 점을 간과하기 때문이다. 농업에 자본이 침투하는 과정은 18-19세기의 직물로 대표되는 고전적인 산업 생산에서보다 훨씬 오랜 기간 동안, 그리고 다른 형태로 진행되어 왔다. 표면상으로는 농업이 자본에 저항해온 것처럼 보인다. 무엇보다도 미국의 개별 농기업의 수는 1930년대 670만 개에서 72%나 감소했음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농업생산자의 수는 180만 명에 이른다. 이는 고작 6%의 농가가 농산물의 전체 가치의 60%를 책임지고 있지만, 모든 산출된 가치의 절반 이상을 생산하는 10만여 개별 기업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제조업 분야에서는, 4대 기업이 생산의 40%를 책임지고 있으며, 섬유와 같은 차별화된 분야에서는 4대 기업이 15% 이상의 가치를 생산한다. 또한 토지를 직접 소유하고 있는 농장주가 임대하는 농지의 비중이 크게 증가하고 있다. 현재 대부분의 소규모 생산자는 소유주이면서 동시에 소작인이기도 한데, 이들이 경작하고 있는 농지는 [전체 농지의] 55% 정도를 차지한다. 결국 기업농이 주류를 차지하고 있다는 것이 전통적인 인식이지만, 20세기 초반부터 부재지주인 경영자에 의해 경작되는 농지의 비중은 1% 정도에 머무르고 있다. 그러므로 농업의 자본주의적 이행에 대한 증거를 고전적인 산업모델에서 발견할 수는 없을 것이다. 꽉 짜여진 계획에 따라 철저한 감시감독을 받으며 업무를 수행하는 임금노동자들을 고용하고 있는 매우 소수의 농장주에 의해 생산력이 점차 집중하는 현상을 발견할 수는 없다. 물론 농사에서 공장과 유사한 노동과정의 예를 발견할 수 있기는 하다. 이러한 현상은 특히 과일과 야채를 수확하는 시기에 나타난다. 그리고 이것이 '공장과 같은 형태의 농사'라는 자본주의적 이행의 증거로 지적되기도 한다. 그러나 대다수 농기업은 많은 노동력을 고용하지 않고, 주로 한두 명의 노동자를 일 년 중 특별한 시기에만 고용한다. 농업의 자본주의적 이행 과정을 분석하면서, 우리는 농작(farming)와 농업-식량 체계(agri-food system)을 구분해야 한다. 농작은 흙, 노동, 기계를 사용하여 종자, 물, 비료, 농약과 같은 투입물(inputs)을 밀, 감자와 같은 1차 생산물로 만들어내고, 농장에서 가축을 사육하는 물리적인 과정이다. 농작에서 고전적인 자본주의적 이행이 일어나지 않은 것은 농업생산의 재정적·물리적 특성에서 발생한다. 첫째, 농지는 가치를 떨어뜨릴 수 없고 농지 부동산 시장이 빈약하고 따라서 농지에 대한 투자가 유동성이 낮기 때문에, 농지 소유는 자본이 보기에 매력적이지 않다. 두 번째로 대형 농장의 노동 과정은 넓은 공간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통제가 어렵다. 셋째, 이미 중간 규모로 이루어지고 있는 것 이상으로 '규모의 경제'가 달성되기 힘들다. 넷째, 날씨, 새로운 질병, 해충 등 외적인 자연적 현상으로부터 오는 위험을 통제하기 힘들다. 마지막으로, 자본 재생산의 순환이 1년을 단위로 하는 식물의 성장주기, 동물의 고정된 재생산주기와 연계되어 있어서 이를 단축시킬 수 없다. 이러한 제약의 중요한 예외를 가축 사육에서 발견할 수 있는데, 재생산주기를 단축시키는데 상당한 성공을 이루어낸 경우가 있다. 그리고 이는 앞으로 보게 될 자본주의적 농작의 발전으로 귀결된다. 이러한 모든 이유로 잘 통제되는 대규모 노동력을 고용하고 있는 대형 기업이 농장을 통째로 소유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반면 농업-식량 시스템은 단순히 농작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여기에는 농장 경영을 비롯하여 투입물의 생산, 운송, 판매와 농산물의 운송, 가공, 판매 모두가 포함된다. 농작이 전체 농업생산 고리에서 물리적으로 중요한 과정이긴 하지만, 오히려 투입물의 공급과 생산물을 소비 상품으로 변형시키는 과정이 농업 경제를 지배하게 되었다. 농작 자체는 현재 농업-식량 시스템 부가가치의 10%를 차지할 뿐이다. 25%는 투입물 거래에서, 나머지 65%는 농산물을 소비 상품으로 바꾸는 운송, 가공, 판매에서 얻어진다. 20세기 초반, 농장에서의 부가가치는 전체의 40% 정도였고, 대부분의 투입물은 종자, 역축(役畜, draught animal), 사료, 거름, 가족의 노동력 등의 형태로 대부분 농장에서 직접 생산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투입물의 대부분은 화학 종자, 트랙터, 정제/합성 화학 비료, 기계, 노동력 대체품 등의 형태로 구입된다. 그러므로 산업자본은 투입물의 생산과 생산물의 가공을 통해서 농업분야에서 이윤을 획득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여타의 산업의 과정과 마찬가지로, 농기계, 농화학 제품, 종자를 생산하고, 밀가루를 슈퍼마켓 계산대에 놓인 아침식사용 시리얼 한 상자로 바꾸어내는 것은 전적으로 자본에 의해, 그리고 자본의 요구에 의해 통제된다. 그러나 자본의 입장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석유를 감자칩으로 바꾸는 과정이 필수적인 것이지만, 농작이 200만 소(小)생산자들에 의해 이루어진다는 점이다. 이들이 소유한 생산수단은 토지와 같이 소유권을 집중하는 것이 불가능하며, 아무리 경제적으로 합리적인 인식을 가지고 있는 생산자라고 하더라도 대부분 잉여농산물은 자본으로 전환하지 않고 소비한다. 농업은 여타의 자본주의 생산과는 달리, 생산의 필수적인 과정이 수많은 독립적인 소생산자들에 의해 이루어진다. 실을 잣고, 천을 짜고, 봉제를 하는 과정은 소수 기업에 의해 이루어지지만, 염색과 가공하지 않은 천을 다듬는 일은 불가피하게 수십 만의 외부 가내생산자들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과 마찬가지 이치이다. 가내생산자들은 재료를 집으로 가져가 가공한 후 다시 공장에 판매한다. 농장 생산자들은 역사적으로 농업의 자본주의적 발전의 과정에서 두 가지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었다. 첫째, 농장주는 농작에 관한 물리적 과정에 대해 선택권을 갖는다. 여기에는 어떤 작물·가축을 재배하고 사육할 것인지, 그 양은 얼마로 할지, 어떤 투입물을 사용할지 등이 포함된다. 이러한 선택은 물론 항상 해당 지역의 기후와 토양의 조건과 농산물 시장의 특성에 의해 좌우된다. 두 번째, 농장주는 전통적으로 투입물 판매자들과 경쟁 관계에 놓였다. 왜냐하면 농장주들이 종자, 농기계, 비료 등을 선택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산업자본은 농장주들이 자신의 상품을 구매하도록 유도해야 하는 문제에 놓이게 된다. 이들은 자신들이 최대의 이익을 낳을 수 있도록 투입물을 일괄 구입하도록 하고, 농산물 가격이 구매자들의 요구에 적합하도록 맞춰야 한다. 구매자들이 가격을 결정하는 중대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생산에 어떤 위험요소가 남아있든지 간에, 선택권은 여전히 농장주들에게 있다. 농장주들이 자신이 관여하고 있는 생산과정의 본질과 속도에 대한 결정권과 농산물 시장 판매력을 잃어감에 따라, 그들은 생산자와 고립되어 규정되는 고리 속에서 작동하는 위치에 놓이게 된다. 즉, 농장주들은 점차 프롤레타리아화 하는 것이다. 농민들이 토지와 건물의 법적 소유권을 보유하고 있다는 사실, 다시 말해 생산수단의 일부를 소유하고 있다는 사실은 별로 중요치 않다. 이러한 생산수단을 경제적으로 다르게 이용할 방도는 없다. 프롤레타리아화의 핵심은 노동과정에 대한 통제력을 상실하고 그 노동에서 소외되는 것이다. 농업에서 이러한 이행은 어떻게 일어났는가? 수확 기계의 발명과 2차 세계대전 종전의 시기인 첫 번째 단계에서는 유용성, 비용, 기계화를 통한 노동력의 통제와 같은 문제들이 농업혁신과 관련된 것처럼 언급되었다. 농장주들은 트랙터의 도입을 막을 수 없었다. 2차 세계대전 이후에는 비료, 살충제, 노동절감형 제초제 등의 정제-합성 화학 약품들이 주되게 사용되기 시작했다. 이런 상품 형태의 투입물도 효용이 크고 노동 절감의 효과가 있었기 때문에 거부되지 못했다. 특히 제초제로 인해 경작용 기계에 대한 요구가 줄어들었다. 살충제는 성공적인 수확에 대한 불확실성을 줄였고, 분사형 호르몬제를 통해 과일이 익는 시기를 통제할 수 있게 되었다. 항생제로 동물들의 질병을 예방할 수 있게 되었다. 이러한 상품과 농장에서 자체 생산된 투입물 간의 경쟁은 전혀 없었다. 자본주의적 투입물의 역할이 점차 늘어간다는 사실은 생산과정의 중심적인 형태를 파악함으로써 분석할 수 있다. 이러한 투입물은 현실에서 생물을 생산하기 위해 사용된다. 기계화 및 화학제품의 사용은 생산되는 생물의 특성과 밀접한 관련 속에서만 이루어질 수 있다. 생산의 다른 영역과는 달리, 농업에서 생물은 모든 투입물 사이의 연계 속에 위치하며 모든 생산물 변형의 기초적인 자원이다. 그러나 생물은 죽기 마련이고, 따라서 그 생산물은 재생산되어야 한다. 즉, 농산물의 모든 사이클은 농작의 과정을 통해 가치가 부가되는 종자 혹은 씨가축에서 출발한다. 그러므로 종자(혹은 씨가축)는 농작에 투입되는 중심적인 투입물이다. 이러한 종자 생물의 생물학적 특성을 통제하는 것은 전체 농산물 생산 과정을 통제하는데 있어서 중요한 요소이다. 이는 다른 투입물에 대한 가격을 안정시키는 데 있어서 종자 생산자가 유일한 위치를 차지하도록 한다. 예를 들어 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질소비료 가격이 급격하게 떨어짐으로써 농민들이 이를 대량으로 사용하는 것이 가능해지고, 질소 비료는 매우 유용하게 되었다. 이것은 교·잡종 옥수수와 같은 식물의 번식에 필수적인 것이었는데, 농산물 생산에 대량의 질소 비료를 사용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토마토 수확의 성공적인 기계화는 식물 육종가(育種家)와 기계 설계자의 긴밀한 협력을 통해 가능했다. 육종가들은 가지가 축 늘어지고 꽃과 열매가 자라는 기간 내내 흠이 나기 쉬운 토마토의 특성을 완전히 바꾸어 짧고, 단단하며 크리스마스 트리처럼 생겨 모든 과실이 거의 동시에 익는 토마토로 만들었다. 생산 과정에서 종자가 중심적인 위치를 차지하므로, 종자회사는 잠재적으로 농업에서의 소득의 큰 부분을 차지할 만큼 매우 강력한 위치를 차지한다. 그러나 이를 실현하는 데에는 제약이 있다. 농장주가 좋은 변종의 씨앗을 심었을 때, 여기서 자라는 식물은 그 변종의 씨앗을 낳게 된다. 종자회사는 농장주에게 공짜의 상품, 씨앗 안에 들어있는 유전 정보를 제공하는 셈이 되고, 농장주는 경작을 통해 변종 종자를 반복해서 재생산할 수 있다. 따라서 농장주가 다음 해 수확을 위한 종자를 재생산하지 못하도록 하는 조치가 필요하게 되는 것이다. 이 문제에 대한 역사적 해답은 동계번식체(同系繁殖體: 근친교배에 의하여 생긴 개체-역자)-교·잡종(交雜種) 교배법이다. 동계번식체-교·잡종으로 번갈아 교배함으로써 교·잡종 식물을 자라게 하되 재생산되지 않는 종자를 판매하는 것이다. 두 번째 세대의 식물은 진정한 교·잡종이 아니어서 수확량이 줄고 변이하기 쉬우므로, 농장주는 매년 새로운 종자를 종자회사로부터 구입할 수밖에 없다. 변종 옥수수 종자를 판매한 종자회사가 막대한 이득을 얻게 됨에 따라, 이러한 방법은 토마토나 닭과 같은 다른 생물로 확산되었다. 게다가 델칼브, 펑크, 노스럽-킹과 같은 주요한 상업성 종자 및 닭 재배사들은 비록 곧바로 매각, 재조정되긴 했지만, 시바-게이지, 몬산토, 다우와 같은 제약회사 또는 화학제품 회사에 통합되었다. 가장 큰 교·잡종 종자 회사인 파이오니어 하이브리드만은 1997년까지 완고하게 독립적으로 남아있었고, 주식의 20%와 이사회의 두 석은 듀퐁사에 양도되었다. 일반적으로, 상업적 종자회사가 동계번식체-교·잡종 교배 방식으로 종자를 통제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었다. 첫째, 이 방식은 콩, 밀 혹은 대형 동물과 같은 많은 주요 작물에는 경제적으로 유용하지 않았다. 둘째, 동계번식체-교·잡종 교배법이 총수확량을 증가시키는데 성공했을지라도, 많은 중요한 일정한 특징, 예를 들어 특정한 질병 혹은 제초제에 대한 저항력, 혹은 평지의 기름 함유율의 증가 등으로 인해 교·잡종이 더 효력을 나타내지 못했다. 따라서 다른 방식의 교배법을 도입해야 했다. 셋째, 어떠한 특징이 작물재배학적으로 중요한 종에 도입하는 것이 바람직하지만, 경작중인 종과 교배할 수 없는 다른 생물 안에 존재하는 경우가 있다. 가장 유명한 예는 옥수수를 콩의 뿌리를 질소-고정 박테리아에 적합하도록 만듦으로써 가능하게 했듯이, 대기로부터 질소를 고정시키는 것이 가능하도록 하는 것이다. 이는 질소 비료 시장을 축소시켰지만, 질소의 공급을 종자 회사의 손에 의해 이루어지도록 했다. 종자회사와, 이들의 파트너 혹은 소유주가 되는 화학제품회사에 이익이 되는 작물재배학상 종에 가져올 수 있는 변화의 한계는 농업에 자본이 침투하는 것이 1970년대에 명백한 한계에 이르렀음을 의미한다. 연료비용의 극적인 변화와 이주 노동력의 공급을 통해 농업에서의 지지부진한 노동 조직 과정이 종식됨으로써, 농업생산에 있어 획기적인 형태의 기계화는 종결되었다. 비료와 농약의 오염효과에 대한 대중적 인식이 확산되고, 농장 노동자들을 유독성 있는 살충제와 제초제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직업안전위생관리국(OSHA)의 규제가 발전함에 따라, 화학제품의 사용에 따른 급격한 변화는 제어되었고, 전통적인 투입물의 사용이 꾸준히 증가했다. 게다가, 이러한 비료와 농약은 매우 높은 비율로 사용되고 있었고, 농민들이 경제적으로 정당화할 수 있는 비율보다 훨씬 높았다. 예를 들면 1975년 이후에는 비료사용량이 전혀 증가하지 않았고, 1980년쯤 도입되기 시작한 합성비료 역시 사용량이 증가하지 않았다. 투입물 판매자와 생산물 구입자가 농업에서의 소득 중 자신들이 차지하는 비중을 1) 작물재배학상 종의 생물학적 특성에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오거나, 2) 생물학적 체계를 자신이 소유하거나 통제할 수 있는 상태로 유지하는 것을 통해 늘릴 수 있다. 또한, 투입물과 경작 이후의 생산 분야(구매, 가공, 유통)의 통합력이 높아져 통제력을 집중할 수 있을 때 이 소득의 비중은 더욱 커진다. [이제] 생명공학(biotechnology)으로 넘어가자. 생명공학과 소유(property)의 통제 생명공학의 상업적 이용의 목표는 농산물에 대한 자본 통제력을 확대하는 것이다. 이러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생명공학 혁신은 세 가지 기준을 만족시켜야 한다. 첫째, 개발 시간과 비용은 연구에 대한 자본투자의 범위 내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그래서 비(非)콩류 식물에도 질소 고정을 도입하는 것은 아그리세투스(Agricetus), 아그리제네티카(Agrigenetica), 바이오테크니카(Biotechnica)를 비롯한 여러 생명공학 관련 기업들이 10여 년 동안 7천5백만 달러를 들여 연구를 진행한 후, 성공할 가능성이 있었고 만약 성공한다면 거대한 이익을 남길 것이 확실했지만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둘째, 정치적으로 영향력 있는 보건 및 환경 관련 단체들이 개발에 도전하도록 해서는 안 된다. 지금까지 모든 생명공학상의 혁신은 환경, 보건에 대한 위험으로 인해 도전을 받아왔다. 그리고 이는 생명공학 프로젝트를 중단하도록 만들었다. 생명공학이 도입되는 원동력은 비료와 농약의 사용에 대한 저항이 투입물 생산자들이 얻는 농업 소득의 비중을 늘리는 것을 방해하고 있다는 점이다. 세 번째, 생명기술에 의한 생산물의 소유권과 통제는 농장주가 아니라 이를 상업적으로 생산하는 기업이 보유해야 한다는 것이다. 생명공학상의 혁신으로 얻어진 새로운 변종에 대해 소유권을 유지하려는 기업의 요구는 모순을 낳는다. 앞서 살펴보았듯이, 농장주는 새로운 변종 종자를 구입할 때 종자에 들어있는 좋은 유전학적 정보를 공짜로 얻게 되고, 육종가는 그 소유권을 잃게 된다. 동계번식체-교·잡종 교배법을 통한 재산권 보호는 몇몇 생물과 몇몇 작물재배학적 특성에 국한된다. 그리고 동계번식체-교·잡종 교배법이 적용되지 못하는 경우 생명공학이 도입되어야 한다. 그렇다면, 육종가들은 중요한 유전정보를 빼앗기고 난 후 어떻게 이익을 얻게 되는가? 법적·생물학적 무기의 결합이 답이 된다. 식물변종보호법을 통해 육종가들은 법적인 권리를 얻게 되었고, 표준 DNA 지문의 사용으로 농산물 자원을 모호하지 않게 정의할 수 있게 되었다. 이제는 농장주가 생명기술자로부터 종자를 구입하기를 원한다면 수확으로 얻어진 종자의 다음세대에 대한 재산권을 모두 종자 생산자에게 양도한다는 계약서에 서명을 해야 한다. 농장주는 수확을 통해 얻어진 종자를 다른 농장주에게 판매하지 않을 뿐 아니라, 자신의 농장에서 이 종자를 심어 다음 해에 수확할 수도 없게 된다. 몬산토의 라운드업 레디 콩 종자 혹은 저지방 감자칩을 만들 수 있도록 개발된 감자 종자를 구입한 농장주들은 이러한 변종을 계속 생산하고 싶다면, 다음 영농철에 몬산토를 찾아가 재계약을 해야 한다. (몬산토는 라운드업이라는, 콩마저도 죽이는 효능 좋은 제초제를 생산한다. '라운드업 레디'라는 콩은 유전자 조작으로 생산되는데, 라운드업을 아무리 많이 뿌려도 죽지 않고, 밭에 영향을 주지도 않고 잘 자란다.) 이와 같은 계약은 몬산토의 곡물을 규정할 수 있는 능력에 달려있다. 식물 한 그루, 혹은 종자 하나에 대해서도 적용될 수 있는데, 조작된 변종의 DNA는 유전자 조작에 의해 특징적인 배열을 갖는데, 이는 다른 변종에 비교할 때 독특하다. 종자생산 기업의 생명공학 실험실에서는 이렇게 분류된 유전자 배열을 분석하는 것을 가리켜 "게놈 통제"라고 한다. 지금까지 이러한 분석 기술을 발전시키기 위한 상당한 양의 실험이 진행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종자를 훔치거나 다시 심는 일이 빈번히 일어나고 있다. 이에 대해, 몬산토는 다음과 같은 협박성·회유성 광고를 농민들을 대상으로 하여 한 잡지에 전면으로 실었다. 농장주가 몬산토의 생명공학 종자를 모아두거나 다시 심게 되면,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이 잘못된 것임을 깨달을 것이다. 그리고 그가 종자를 얻을 때 계약서에 서명을 하지 않더라도(다시 말해, 이웃에서 종자를 훔치거나 다시 심더라도) 그는 곧 해적질을 하게 되는 것이다. 나아가 종자 해적질은 농장주에게 현금 결산 및 법적 비용 등으로 에이커당 수백 달러 정도의 비용을 치르게 한다. 또한 몇 년 동안 경작과 사업 내역에 관한 시찰을 받도록 한다. 그러나 지적재산권에 관한 이야기는 한 장이 더 남아있다. 동계번식체-교·잡종 교배법은 고작 몇몇 생물체에만 적용될 수 있다. 그리고 계약 시스템은 이를 유효하게 하도록 하기 위해서 협박, 감시, 소송 등을 필요로 한다. 생명공학을 도입함으로써 종자에 대한 소유권과 관련한 문제를 완전히 해결할 수 있게 되었다. 1998년 3월 3일, 종자가 땅에 뿌려져 곡물이 한번 자라고 나면 다시는 발아하지 못하도록 하는 유전자 조작에 대해 특허가 부여되었다고 발표되었다. 이로써 20세기 초 동계번식체-교·잡종 교배법이 발명되었을 때 종자생산 자본가들에게 발생한 문제가 모든 곡물에 대해 한방에 해결된 것이다. 발명한 이가 지적하듯, 이 생명공학 기술은 어떤 곡물에 대해서도 적용하는 것이 불가능하지 않으나, 상업적으로 이용되기 전 약간의 보완이 필요하다. 누가 이 특허권의 발명자이자 소유자인가? 바로 면화와 콩 종자의 주도적인 생산자이자, 미국 농업성의 연구기관인 델타 앤 파인 랜드사이다. 아직까지 이러한 기술의 개발이 농민과 소비자에게 이익이 된다고 주장하는 사람은 없다. 국가가 공공의 이익을 해치면서 사적인 재산권을 보호하는 뻔뻔한 사례이다. 종자개발자의 재산권을 강화하는 계약이 사용되는 것을 보고 우리는 유전공학의 한계를 예측할 수 있다. 몬산토 사는 효소에서 유전자변형 박테리아를 사용하여, 젖소가 우유를 생산하는데 필요한 물질대사를 촉진하는 성장호르몬(BST)을 상업적으로 개발했다. 그러나 보통의 소는 스스로 성장호르몬을 생산해낸다. 그리고 소의 몸 속에서 단백질 생산을 조절하는 DNA가 그 양을 증가시키도록 변형되지 못할 이유가 없다. 따라서 상업적인 BGH(상장호르몬)을 구입하고 투여하는 것은 불필요하다. 그러나 우리는 이러한 일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예측할 수 있다. 첫째, 젖소집단(dairy herd)은 항상 중소기업에 의해 자체 재생산되며, 대규모 종자회사에 상응하는 대규모의 상업적 젖소 육종가(dairy herd breeder)는 없다. 둘째, 강제조치가 이루어지기 매우 힘들다. 몬산토의 판매대리인이 어떤 농토 혹은 곡물저장소에서 감자 혹은 종자를 가져오기는 매우 쉽다. "게놈 통제"에 필요한 혈액 혹은 세포 표본을 농민이 소유한 젖소에서 채취하는 것은 상당히 주제 넘은 일이다. 게다가 젖소는 한꺼번에 재생산되는 것이 아니고 세대를 거쳐야 하는 것이기 때문에, 몇 해가 지나지 않고서 어느 소가 원래 구입한 것인지 아니면 그 자손인지 구분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생산계약, 생명공학, 그리고 농업 통제 만약 생명공학과 지적재산권 보호 계약체계의 유일한 효과가 농업에 필요한 공산품 투입물의 영역을 확장하는 것이라면, 혁명적이라 할 만한 것이 없다. 농민들은 오랜 기간동안 공산품 투입물을 구입해왔다. 농업에서 발생한 중요한 구조적 변화는 농산품 구매자들이 전체 생산 과정을 통제하는 방식의 농업생산의 수직적 통합으로부터 일어났다. 이러한 수직적 통합은 1) 투입물과 생산품 간의 기술적 연계, 2) 한 기업이 생산품의 독점적 구매자이자 중요한 투입물의 공급자라는 이중적 역할을 맡는 것, 3) 투입물 및 생산물과 농민을 연결시키는 계약 메커니즘을 통해 형성되었다. 이러한 계약은 생명공학에 선행한다. 농산품 구매자가 시장 유통 역시 담당하게 되면 수직적 통합이 가능해진다. 계약 농업은 통조림용 야채생산 분야에서 일반적이다. 오하이오 주에 있는 토마토 통조림공장은 종자와 비료를 공급하기도 하고, 숙성한 토마토를 채집하기도 한다. 농민들은 토지와 노동력을 제공한다. 그러나 이러한 체계는 통조림 제조에 관한 계약이 처음 이루어진 이후 계속 진화해왔다. 생명공학의 주요 역할은 투입물과 생산품의 물질적 연계 속에 있다. 생산 시스템의 효과적인 통합을 보증하기 위해서, 성장하고 있는 생물은 여타의 투입물과 한묶음을 이루기에, 그리고 농업 과정에 사용되는 기술에 적합하도록, 최종생산물이 시장에서 유통되는데 필요한 품질을 갖추도록 설계된다. 이러한 몇 가지 목표는 전통적인 재배방식으로 달성될 수 있지만, 특정한 질병에 대한 저항 혹은 생물 조합에 필요한 질적인 변화와 같은 몇몇 자질은 생명공학적인 조작을 통해서 가장 잘 만들어질 수 있다. 더불어 다양한 복제와 세포배양 기술은 투입되는 생물이 원하는 유전적 자질을 갖춘 채 배가하는 것을 가능하도록 했다. 계약 농업의 본질의 한 예는 이러한 계약 시스템의 보루인 브로일러(고기용 닭) 생산에서 드러난다. 슈퍼마켓과 패스트푸드점에 닭고기를 주로 공급하는 업체는 사우스캐롤라이나 주의 타이슨 팜(Tyson Farms)이다. 타이슨의 닭고기들은 타이슨 "농장"에서 생산되지 않고, 소농들에 의해 생산된다. 이들은 100에이커의 토지를 소유하고 있으며, 연평균 25만 마리의 닭을 생산하며, 총소득은 6만5천 달러, 실질소득은 1만2천 달러정도이다. 이러한 생산은 타이슨 사(혹은 유사한 다른 지역 기업)와의 4년 계약 하에서 이루어진다. 타이슨사는 병아리, 사료, 혹은 수의학 서비스를 독점적으로 공급한다. 오직 이 회사만이 공급할 병아리의 유형과 숫자, 빈도를 결정할 수 있다. 이후 타이슨 사는 7주 후 직접 결정한 날짜와 시간에 맞추어 성숙한 닭을 고른다. 닭의 무게를 잴 저울과 이들을 운반할 트럭 역시 타이슨사가 공급한다. 투입물 및 사육에 대한 세부적인 통제는 전적으로 타이슨 사에 의해 이루어진다. 그러므로 "생산자(농민)는 타이슨 사가 공급하거나 보증하지 않는 사료, 의약품, 제초제, 살충제, 쥐약, 기타 어떤 품목도 사용하지 않을 것을 약속한다." 게다가, 농민은 타이슨 사의 "브로일러 사육 지침"을 준수하며, 이를 지키지 않으면 타이슨 사가 정하는 "브로일러 관리 및 기술 자문"의 감독에 따라 "집중 관리"를 받게 된다. 닭 사육 농민은 더 이상 원료를 구입해서 이를 자신의 노동을 통해 변형시키고 이를 시장에 판매하는 독립된 장인이 아니다. 계약 농민은 아무것도 구입하지 않으며, 아무것도 판매하지 않는다. 심지어 원료를 상품으로 변형시키는 과정에서 아무런 결정을 내리지도 못한다. 농민은 약간의 생산수단, 즉 토지와 건물을 소유하고 있지만, 노동과정, 혹은 소외된 생산에 대해 아무런 통제력도 발휘하지 못한다. 농민은 17~18세기의 자본주의 생산의 첫 단계에 특징적으로 나타난 전형적인 생산노동자가 된다. 농민이 얻은 것은 조립라인의 기계공만큼의 소득을 안정적으로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독립적인 생산자이자 시장판매자였던 농민이 아무런 선택권 없는 프롤레타리아로 그 지위가 변경된 것은 전국소농위원회(National Commission on Small Farm)가 1998년 발간한 다음의 보고서에 담긴 권고사항에 반영되어 있다. 의회는 농업공정거래법(Agricultural Fair Practice Act)을 개정하여 농업성이 행정적 구속력과 민사제재 권한을 갖추도록 해야 한다. 또한, 사육자들이 차별과 보복에 대한 두려움 없이 조합을 결성하고 단체협상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생명공학상의 조작과 계약 농업의 조합은 제3세계 경제에 재앙적인 결과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 제3세계로부터 수입해오는 생산품은 독특한 특질을 지닌 원료, 예를 들면 커피, 향신료, 식물성 알코올, 식용유 등이다. 게다가 이러한 원료들은 낮은 기술 수준과 많은 노동의 투입을 통해 생산된다. 또한 정치·경제적으로 불안정한 나라들에서 생산된다. 그 결과로, 말하자면, 필리핀에서 수입해오는 야자기름의 가격과 입수가능성은 불안정하다. 이와 같은 특징 때문에, 국내 품종을 유전자 조작함으로써 특수한 작물들을 만들어 수입품을 대체하게 된다. 칼젠사는 비누, 샴푸, 화장품, 식품 등을 만드는데 쓰이는 수입 야자기름을 대체할 고-라우릭 산-캐놀라(high lauric acid canola) 품종을 만들었다. 이러한 특수 캐놀라 품종은 농촌인구들이 경제적으로 많은 부분 의존하고 있는 필리핀의 생산품을 대체하며 [미국] 중서부에서 계약을 맺고 생산된다. 그리고 생합성을 통해 카페인이 성공적으로 콩에 이식되었다. 만약 [식물성] 기름 유전자와 커피향을 이식하는데 성공한다면 중남미와 아프리카는 커피분말용 콩을 판매할 시장을 잃게 될 것이다. 농업이 자본주의 확산의 고전적인 형태를 따를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공업생산과는 달리, 농업이 자본에 포섭되는 첫 단계는 투입물 산업과 생산물 유통의 활성화이다. 이들은 소규모 기업농들에게 그들이 필요로 하는 것을 팔고 그들이 생산한 것을 사들임으로서 농업의 잉여를 전유한다. 이는 전적으로 새로운 기술을 작동시키는 전유의 가능성이 침투하면서 일어난다. 농업생산과 연계된 중심적인 원료, 즉 자본주의화에 가장 저항하는 생명체에 집중하면서 생명공학은 자본 진출의 두 단계를 완수하게 된다. 첫 번째는 야생이었던 많은 생물을 포함하여 투입물 생산의 범위를 넓히는 것이다. 두 번째는 농민의 프롤레타리아화를 동반하여 수직적 통합을 가능하도록 하는 것이다. 미래의 자본주의적 농업은 바로 이 두 번째 단계인데, 왜냐하면 농업생산의 물리적 특성이 불가피하게 토지와 연계되어 생산과정에서 독특한 조직형태를 유지하기 때문이다. 1) "The Maturing of capitalist agriculture: Farmer as proletarian", Monthly Review, Jul./Aug. Academic Research Library pg. 72 본문으로 2) 리처드 르원틴은 하버드 대 비교동물학 박물관 내 알렉산더 아가시좌 (Alexander Agassiz Chair)교수로 재직 중이다. 저서로는 Biology as Ideology, The Genetic Basis of Evolutionary Change, Not in Our Genes(공저), The Dialectical Biologist(공저)가 있다.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