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자본주의 위기와 대안세계화운동 2006년 지자체 선거는 다음해 대선의 예비무대이자 집권세력의 레임덕이 더욱 빨라질 것이냐를 결정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그렇지만 집권세력은 선거전략과 대중동원을 위한 '소재'의 빈곤을 벗어날 수 없다. '사회적 타협을 통한 양극화 해소 재원 마련'이나 '외자확대가 한국경제의 프리미엄을 높여 전체 국부를 증진한다'는 주장은 기만성이 점차 분명히 드러날 것이다. 물론 현정부가 민중에게 무언가 양보할 수 있다거나 정부의 정책개혁의 큰 틀이 변화될 수 있다는 기대는 여전히 자라나고 있다. 이는 한국자본주의 발전에 대한 허구적인 이미지를 재생산할 때만 지속될 수 있다. 따라서 세계자본주의의 위기에 대한 객관적인 인식은 사회운동의 필수불가결한 요소다. 미국 제국주의의 새로운 형세 미국은 신자유주의 정책개혁을 통해 해외로부터 엄청난 부를 수탈하는 메커니즘을 향유했다. 미국이 해외에서 흡수하는 자본소득(이자, 배당, 초민족기업 계열사의 유보이윤)은 미국기업이 국내 활동으로 얻는 이윤의 80% 수준에 이른다. 여기에 미국이 원자재, 특히 에너지 가격에 압력을 가하여 얻는 이득과 주변부의 저렴한 노동력을 손쉽게 활용할 수 있는 현실을 고려하면 세계적인 부의 이전은 막대하다. 그렇지만 이와 동시에 미국 경제는 심각한 불균형에 직면했다. 수입증가가 수출증가를 훨씬 앞지르면서 무역적자는 계속 확대되어 2000년 이후 GDP 4% 수준을 계속 상회하고 있다. 또한 무역적자에 조응하여 미국 내 외국인의 자산 규모가 급격히 증가하고(즉 외국은 무역을 통해 번 달러를 미국에 다시 투자하고 있다), 미국이 여기에 지불해야 하는 자본소득도 늘어나고 있다. 미국 내 외국인 자산은 1984년 GDP 대비 19%였으나, 2003년 72%로 증가했고, 미국의 해외자산 규모의 두 배에 해당한다. 그러나 미국이 해외자산을 통해 얻는 자본소득은 외국이 미국 내 자산으로 얻고 있는 규모와 거의 동일하다. 이는 미국의 수익률이 두 배나 높다는 것을 뜻한다. 이처럼 미국 제국주의는 해외에서 강력하게 소득을 흡수하고 해외 자본가, 기업, 국가에게 그것을 다시 지불하고 있다(이를 '달러 환류'라 부른다). 하지만 이러한 경향은 앞으로도 유지될 수 있는가? 지금까지 미국이 해외에서 소득을 빨아들이는 데 매우 '효율적'이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이러한 궤도가 무한정 지속될 수 없다. 미국의 대외불균형이 계속 악화되면 미국에 대한 투자가 중단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는 여러 가지 경로로 진행될 수 있다. 먼저 달러의 가치하락으로 귀결될 수 있다. 달러 가치하락은 미국의 무역적자 교정에 어느 정도 도움을 줄 수 있지만 (그러나 미국과 일본의 환율 변화가 일본의 대미 무역흑자에 큰 변화를 주지 못했던 것처럼 이러한 변화가 자동적인 것은 아니다), 미국의 금융지배력과 국제적 지위를 악화시킬 게 분명하다. 물론 미국이 이자율을 높여서 달러를 방어하려고 시도할 수 있지만, 이 역시도 외국에 지불하는 소득을 증대시킴으로써 불균형을 증폭시킬 수도 있다. 또한 미국이 해외의 자산 규모를 더욱 빠른 속도로 늘리거나, 무역적자를 통제하는 수단을 강구할 수 있다. 그러나 미국이 현재보다 더 빠른 수준으로 자산규모를 늘리는 것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할 공산이 크다. 또한 무역적자 악화의 주요원인인 부유계급의 가계소비를 축소하려는 시도는 신자유주의 정책의 핵심적인 지지층의 반발을 초래할 정치적 위험이 있다. 이처럼 날로 심각해지는 미국 제국주의의 모순은 세계자본주의와 착취자들의 미래에 그림자를 드리운다. 미국이 쌍둥이 적자를 유지하는 메커니즘의 파괴는 곧 미국 헤게모니의 최종적 위기, 나아가 세계자본주의의 동반 붕괴를 의미하기 때문이다.1) 미국의 대외경제정책과 동아시아 미국 경제의 불균형에 대한 우려가 커질수록 이런 우려 자체가 불균형을 심화하는 요인으로 작동한다. 따라서 미국은 어떤 방식으로든 이런 상황에 개입할 수밖에 없다. 부시정부는 2009년까지 현재의 재정적자를 절반 이하로 축소하겠다고 공언했지만, 아프가니스탄-이라크 전쟁을 거치며 대규모 전비가 지출되었고, 감세조치의 영구화와 연금개혁을 준비하고 있으므로 현실화되긴 어렵다. 따라서 부시정부는 환율·통상 등 대외경제정책을 경제적 난관을 부분적으로 타개하려고 한다. 물론 이는 위기의 대가를 타국의 민중에게 전가하는 결과를 낳는다. 부시정부는 자유무역지대 창설을 통상정책의 핵심수단으로 활용하고, '경쟁적 자유주의' 전략을 채택하였다. 이는 미국이 FTA를 체결한 나라에게만 미국시장 접근을 허용함으로써, 차별을 우려하는 다른 나라도 FTA를 체결하도록 압박하는 것이다. 게다가 미국은 FTA를 단순한 교역확대수단(관세인하)으로 여기지 않고, 비관세장벽의 제거와 경제구조조정의 수단으로 활용하고 다자간무역협정의 선례로 삼고자 한다. 즉 단순히 무역적자 교정을 넘어서 미국의 금융적 지배를 위하 초민족기업의 활동을 보장하는 데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2) 최근 부시정부는 무역적자를 통제하기 위해 달러 약세를 용인하는 듯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이는 해외중앙은행이 달러 급락을 막기 위해 달러표시 자산을 계속 매입할 것이라고 예견하기 때문이다. 일부에서는 장기적으로 달러 가치를 주요통화대비 20-40%의 절하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특히 한국, 중국, 일본이 미국의 무역수지 적자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37% 수준에 이르러 동아시아 통화를 중심으로 환율조정이 이루어질 수도 있다(특히 미국 의회는 위안화의 추가절상을 위해 무역제재를 준비중이다). 부시정부 2기와 민주주의·인권외교 이라크 전쟁은 부시 정부의 핵심적인 관심사다. 부시정부는 이라크 전쟁의 승리는 "이라크 보안군이 시민들의 안전을 보장하고, 이라크가 더 이상 테러리스트의 안전한 피난처가 아니게 될 때" 달성된다고 규정했다. 이런 정의를 따르면 미국의 승리는 요원하다. 미 의회는 2006년 이라크, 아프간 전쟁과 범세계적 대테러전쟁 비용으로 3500만 달러를 승인해야만 했다. 이 규모는 한국전쟁 당시 전체 비용과 맞먹는다. 이에 따라 더 이상 의회에 이라크 재건 기금을 요구하지도 않기로 했고, 이라크 재건지원이라는 허울을 던져버렸다. 하지만 부시정부는 이라크 전쟁의 정당성을 사후적으로라도 추인 받고 싶은 듯이 인권, 민주주의의 확산을 위해서는 일방주의적 개입을 여전히 밀어붙일 수 있다는 전략을 포기하지 않고 있다. 물론 부시 정부 2기가 출범한 후 레이건 행정부 1기 당시 활약했던 냉전 매파에서 유래한 '네오콘'의 영향력이 축소되면서 미국의 새로운 전쟁 가능성에 대한 언급은 많이 잦아들었다. 그렇지만 공화당이 다수를 장악한 미국 의회는 민주당 인사들의 도움을 얻어 민주주의증진법(ADVANCE Act)을 준비하고 있다. 이 법안은 '세계 45개 독재자들을 2025년까지 끌어내린다'는 목표를 세웠고, 민주주의와 인권이라는 비폭력적 수단에 호소해 정권교체를 달성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법안은 국무부가 담당을 맡아 처음 두 해 동안 민주화운동에 2.5억 달러를 지출하고, 민주화에 저항하는 국가의 자금흐름을 차단할 권한을 대통령에게 부여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결국 이는 탈냉전 이후 클린턴 정부의 '다자주의'와 세력균형 정책과 다르고, 인권 이슈를 제기해 공산권과 데탕트(무역협정이나 군축협정 체결)에 찬물을 끼얹는 민주당과 공화당에 포진한 냉전 매파의 전통적인 '인권외교'의 확장판이다. 이러한 변화에 조응하여, 최근 미국은 북한인권 문제를 직간접적으로 제기하고 위조화폐-마약 등 불법거래 자금차단에 나서면서 6자회담이 큰 위기에 처했다. 특히 북한인권 의제는 한반도 정세에 장기적인 변수로 작동할 것이다. 북한과 미국-한국 사이에 협의가 긴밀해질수록 북한인권 문제를 제기하는 목소리는 더욱 높아질 것이기 때문이다.3) 초민족자본의 한국경제 지배 외환위기와 IMF 구제금융협약을 거치며 초민족자본이 한국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질적으로나 양적으로 비약적으로 증가했다. 외환위기 직후 구조조정 과정에서 기업매각을 통해 외국인직접투자 크게 증가했고, 주식시장에서 외국인의 주식보유 비중은 2004년 말 42%에 이르렀다. 당연히 개별기업에서도 외국인 지분 비중이 확대되고 있다. 그리고 특히 금융업 부문에서 직접투자가 크게 증가해서 SC제일, 외환, 한국씨티은행이 외국계 은행으로 분류되며, 우리금융지주와 전북은행을 제외하면 모든 은행의 외국인 지분율이 60%를 초과했다.4) 이러한 현실을 반영하여 외국자본의 성격과 한국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둘러싼 논란이 점차 확산되고 있다. 지난 2004년 영국계 홍콩자본인 BIH가 브릿지증권의 유상감자를 실시해(자본금 규모를 줄이고 지분을 가진 주주에게 보상금을 지급) 1000억원 이상의 자본금을 회수한 사건은 논란에 불을 지폈다(JP모건이 만도에서 514억원을 회수하고 인터브루가 OB맥주에서 1699억원을 회수한 사건도 있었다). 외국자본이 높은 배당성향(당기순이익에서 배당액이 차지하는 비중)도 문제가 되었다. 2004년 하나증권은 110%, 메리츠증권은 207%의 배당성향을 보여서, 주주들이 당기순이익보다 더 많은 배당액을 챙겨갔다. 외국자본이 가져가는 배당액 전체 규모도 크게 증가하여 1998년 5억 달러였던 것이 2003년 33억 달러로 급증했다. 또한 외국자본이 거래소 상장을 폐지하여 자본조달보다는 단기이익을 추구한다거나, 외국인직접투자(직접적인 설비투자와 고용창출) 비중이 줄고 포트폴리오 투자의 비중이 높아지며 직접투자로 분류되더라도 공장을 새로 세우는 게 아니라 사실상 지분참여 수준의 인수합병(M&A)형의 비중이 증가한다, 한국기업들이 경영권 방어를 위해 자사주 매입에 나서며 설비투자가 감소하고 있다는 비판도 제기되었다. 이에 따라 외국자본의 활동을 규제하기 위한 장치를 마련하자는 주장이 점차 제기되었다. 예를 들어 유상감자를 인허가 사항으로 바꾸고, 과거 일정 기간 동안 평균 배당성향을 뛰어넘는 고배당을 금지하는 장치를 마련하고 배당가능이익도 제한하자는 것이었다. 반면 소액주주운동을 펼치며 초민족기업이나 기관투자가가 편에 섰던 쪽은 이러한 비판이 '외자 마녀사냥론'이고, 재벌개혁의 문제를 뒤로 미루고 '사이비 민족주의'를 부추긴다고 정면으로 대응했다. 초민족자본의 지배력이 확대될수록 논쟁은 더 첨예해지고 있다. 2005년에 주식배당액으로 외국자본이 가져간 금액이 2004년보다 50% 급증한 73억 달러에 이르고, 2005년 주가 폭등 과정에서 외국인들이 3조 6천억원 어치의 주식을 처분해 엄청난 차익을 실현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소버린의 SK(주) 적대적 M&A 시도나 헤르메스의 삼성물산 경영권 위협 사건도 상당한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대한상공회의소는 "기업이 외국자본의 적대적 M&A 위험에 노출되지 않도록 다양한 방어장치를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특히 삼성경제연구소는 이 문제를 집요하게 제기하고 있다.5) 최근 정부가 주식거래에 대한 과세를 검토중이라는 발언이 나오면서 또 다른 논란도 일고 있다. 물론 반대하는 입장은 국내 상장사 지분의 40%가 외국인이어서 자금이탈 가능성이 높고, 홍콩-싱가포르 등이 자본이득과세를 부과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내세우고 있다. 물론 이런 논쟁의 와중에도 한국 자본 역시 초민족화에 적응하기 위한 해외투자와 '글로벌경영'에 뛰어들고 있다. 한국 금융사 역시 해외투자 펀드를 내놓고 있으며, 퇴직연금과 각종 연기금 역시 해외로 투자대상을 더 확대해 나갈 것이다. 현대자동차는 2003년에 60만대 규모의 중국공장을 세웠고 2005년에는 30만대 규모의 미국 공장을 설립했다. 또한 2006년에는 외환위기 이후 정부, 법원, 채권단의 관리에 처해 있던 대형기업들의 매각이 이루어져, 글로벌펀드와 국내 사모펀드의 각축도 치열해질 전망이다. 이처럼 국제금융기구, 한국정부, 신자유주의 NGO는 초민족자본의 직접적인 지배력을 보장했고, 한국의 기존 재벌은 초민족화를 대세로 받아들이며 명운을 걸고 초민족화의 혈로를 찾고 있다. 물론 한국 경제의 급격한 재편과 초민족자본의 지배력이 확대에 따라 삼성과 같이 경영권 방어를 위해 로비와 여론조성에 몰두해야 하는 사례도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글로벌스탠다드와 재벌개혁(지배구조개혁) 대 한국자본 보호(적대적 M&A 방어)가 가장 심각한 문제는 아니다. 오히려 세계경제의 위기 때문에 초민족자본과 한국 자본 일부의 공생·경쟁관계가 작동하는 토대가 무너지고 있다는 게 문제다. 미국이 동아시아를 포함한 세계 각지에서 자본소득을 퍼올리고, 세계는 미국에 상품을 수출함으로써 달러를 벌어들이며 이를 다시 미국에 투자하는 '달러 환류' 메커니즘이 미국 자본주의의 내적 모순(생산성 하락과 이윤율 저하) 때문에 심각한 위기에 빠지고 있기 때문이다. 몇몇 수출분야의 팽창, 한국증시의 급상승과 같은 현상은 미국의 금융세계화 메커니즘이 제대로 작동하는 극히 짧은 시간 동안만 유지될 수 있을 뿐이다. 이러한 체계가 위기에 빠지면 한국 경제의 종속성과 취약성은 더욱 극적으로 표출될 것이다.6) 한국경제의 장기불황과 노무현 정부의 집권 하반기 프로그램 주식시장은 팽창하고 천문학적 규모의 M&A가 이뤄지면서 금융지배력과 집중력은 날로 강화되지만, 한국 경제는 경기회복은 매우 짧고 경기침체는 매우 오래 이어지는 장기불황에 빠져들었다. 인민주의적인 선거전략과 대중동원에 의존해 집권에 성공한 노무현 정부로서는 큰 낭패가 아닐 수 없다. 열린우리당은 한나라당의 대통령 탄핵 시도로 기사회생하여 2004년 총선에서 큰 승리를 거두고 내친 김에 자신의 권력을 안정적으로 재생산하기 위한 권력구조 개편, 즉 개헌까지 염두에 두었다. 그러나 연정제안 실패와 2005년 10월 재보선 참패 때문에 목표를 근본적으로 수정해야 하는 상태에 이르렀다. 지난해 말 노대통령은 '남은 임기 2년 간의 미래구상'을 1월 또는 2월에 발표하겠다고 공언했고, 여기에는 노대통령의 탈당과 거국내각 구성, 임기단축과 조기개헌론 점화와 같은 충격적인 제안이 포함될 수 있다는 추측이 무성했다. 하지만 한국사회에서 권력구조의 개편은 특정 정치분파가 압도적인 지지와 우위를 바탕으로 이를 공고화할 수 있는 조건에 도달하거나, 사회경제적 위기가 정치적으로 표출됨으로써 지배세력의 '집단적인' 책임이 긴급해진 경우에 현실화될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현재 집권세력은 이도 저도 아닌 애매한 상태에 처해있다. 한국경제의 장기불황이라는 조건에서 이질적인 지지층을 포괄할 수 있는 정책개혁 전망을 제시할 수도 없고, 한국 경제를 지배하고 있는 초민족자본이나 대자본에게 개헌을 매우 긴급한 과제로 제시할 근거도 없기 때문이다.7) 따라서 집권세력에는 소폭 수준이더라도 개헌을 시도해야 한다는 입장, 현재의 위기관리 체계의 근간을 유지해야 한다(인민주의적인 정치스타일, 기술관료-NGO 활용), 이런 체계에 여러 사회운동 세력들을 더욱 적극적으로 포섭해야 한다는 입장이 혼재해 있다. 개헌에 미련을 두는 입장은 애초의 생각했던 내각책임제나 사회적 대타협의 틀로서 상원제 도입이 어려우면 대통령과 국회위원 임기불일치 조정과 대선 결선투표제 도입이라도 해야 한다고 보는 듯하다(노대통령은 지역 맹주간 연대의 형태로 지역주의를 온존시킬 수 있다며 정부통령제 도입에는 부정적이지만, 결선투표제는 중도개혁-진보진영의 연대를 유도할 수 있다는 점 때문에 선호한다고 알려졌다). 한편 열린우리당의 유력한 차기 대선후보의 하나로 꼽히는 정동영은 개헌이나 정계개편을 포함한 중장기적 정치프로그램에 대해 뚜렷한 전망을 제시하지 않은 채 열린우리당 내의 확고한 입지 구축에 몰두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는 열린우리당의 당헌당규 개정을 시도하여 당의장 권한 강화, 전당대회 1인1투표제도 도입, 당의장과 상임중앙위원 선거 분리를 시도했으나 당 내부의 반발로 실패했다). 또 한 명의 당내 주자인 김근태는 '양심세력통합론'을 제시하며 '민주노동당과 고건, 박원순, 이수호 등 외연을 넓힌 통합을 시도해야 하고, 지방선거전 통합도 가능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어떠한 입장도 집권세력 내에서 확고한 정치프로그램으로 부각되지 못하고 있다. 정치 전망의 불투명성은 경제위기의 불가피한 특징이다. 결국 노무현 대통령은 2006년 신년연설에서 정치프로그램에 관한 '미래구상'을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았고, 취임 전부터 검토된 사회경제정책 묶음을 다시 꺼내들었다. 물론 청와대는 '정파적 이해를 떠나 국가 미래과제 해결을 위한 사회적 의사결정 시스템 마련'(저출산고령화, 국민연금 등 중장기적 정책과제 해결)이 노대통령의 주요 관심사라고 포장했다. 하지만 오늘날 인민주의가 구사하는 사회정책은 국가온정주의라는 보수주의에 훨씬 더 가깝고,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을 실행하는 수단으로서 종속적 의미만 지닌다. 완전고용과 같은 케인즈주의 목표는 제거되고, 장기실업층을 산업예비군으로 포섭하려는 사회정책이 ‘국민통합’이라는 명분으로, 국가의 시혜 형태로 제공된다. 또한 간접세에 대한 의존도를 높이거나 노동신축화에 대한 반대급부로 제시되는 증세(법인세 인상도 포함될 수 있다)를 통해 국가가 확보한 약간의 재원으로 특정 층을 겨냥한 복지정책이 활용된다. 그러나 국가의 시혜에 의존하라는 인민주의 정책은 노동자운동, 사회운동의 자율성을 해체하는 수단으로도 기능한다. 노무현 대통령이 1월 18일 신년연설을 통해 제시한 한국경제의 중장기적 과제와 정책방향은 인민주의 전략의 전형적인 사례다. 연설에서는 양극화 해소를 위한 정부재정 확충, 일자리 창출과 비정규직 보호, 부동산과 사교육비 문제가 보수세력의 악의적인 선동만 없다면 머지 않은 시일 내에 해결될 수 있다는 듯이 역설했다. 또한 노대통령은 각각의 문제에 대한 구체적인 해결방안을 언급하지 않음으로써, 노무현정부의 경제·사회정책에 대한 언론과 학계의 '대리전'을 유도하려는 의도를 보였다(이미 지난해 '사회양극화해소를 위한 국민연대'가 결성되어 이러한 의도의 일단이 드러나기도 했다). 물론 증세는 부유계급에 대한 수사적 공격을 통해 노무현 정부의 인민주의적 대중동원에 활용될 여지도 있다. 그렇지만 인민주의 전략이 부유계급에 대해서는 그야말로 '수사적인' 공격(립서비스)에 그칠 때가 많지만, 그 반대급부로 민중에게 요구하는 고통은 지극히 현실적이라는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 노무현 정부가 제시하는 사회통합은 이러한 정책방향을 공유한다. 노무현정부는 성장잠재력의 약화, 사회양극화의 심화, 저출산고령화를 비롯한 새로운 미래 위험요인의 등장이 한국경제의 당면 문제라고 명시하면서 각종 처방전을 쏟아내고 있다.8) 그러나 값싼 노동력 투입의 둔화(저출산·고령화에 따른 산업예비군층의 축소)와 설비투자의 감소, 생산성 향상의 저하에 따른 성장잠재력의 고갈, 산업부문·업종·기업·계층간 양극화 심화는 세계적인 경제위기와 한국 경제가 택한 신자유주의 생존전략의 자연스러운 귀결일 뿐이다. 세계자본주의의 위기와 대안세계화운동 미국 제국주의가 내포한 모순의 폭발은 곧 세계자본주의의 동반 위기를 뜻한다. 미국은 환율·통상정책을 통해 미국 자본주의의 위기 표출을 지연하고 그 비용을 세계 민중에게 전가하려고 하지만 그러한 시도가 얼마나 효력을 발휘할지는 미지수다. 부시정부는 이라크전쟁을 통해 정치군사적 헤게모니의 강고함을 과시함으로써 미국 경제의 상대적 안전성과 금융지배력을 보장받고자 했다. 또한 부시정부는 이라크전쟁의 정당성을 사후적으로나마 승인 받기 위해 인권, 민주주의의 확산을 위해서라면 어떤 지역이나 국가에 대한 정치군사적 개입도 불사한다는 전략을 교리화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신자유주의 세계화로부터 배제된 지역을 더욱 확고히 포위하여 그 지역의 불안정이 중심부로 전이되는 것을 봉쇄한다는 전략에 불과하므로 본질적으로 미국 헤게모니의 재구축과는 거리가 멀다. 한국은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장기불황에 빠져 있다. 국제금융기구의 경제구조조정에 편승해 신자유주의 정책에 적응한 일부 산업·기업은 주가폭등, 수출확대를 통해 팽창에 성공했지만, 이는 결국 초민족자본의 자본소득과 경제지배력 확대에 기여할 뿐이다. 최근 초민족자본의 성격과 이들이 한국경제에 미치는 영향에 따른 논쟁이 확산되고 있다. 하지만 글로벌스탠다드와 재벌개혁을 외치든, 재벌총수의 경영권 방어를 추구하든 이 모두는 민중에게 다른 형태의 재앙일 뿐이다. 노무현정부는 진퇴양난의 궁지에 몰려 있고, 매우 빠른 시일 내에 '레임덕' 현상이 나타날 수도 있다. 그들은 김대중정부의 신자유주의 정책개혁을 계승하면서도 인민주의적 대중동원에 의존해 지지층을 끊임없이 재규합해야 하는 지극히 어려운 과제를 동시에 안고 있기 때문이다. 노무현정부는 기술관료-NGO를 매개로 위기관리체계를 유지하고 사회운동을 공격 또는 포섭하면서, 임시방편적인 수단에 의지해서 정치적 국면들을 돌파해왔다. 그러나 아랫돌을 빼내서 윗돌로 얹는 조삼모사 방식의 양극화 해소 방안은 민중에게 더 큰 고통을 강요하려는 수단일 뿐이다. 물론 노무현정부의 집권 이후 인민주의적인 정치토양은 더욱 굳건해졌다. 세계경제의 위기는 초민족자본과 한국 자본의 '공생관계'를 근저에서 잠식하고 있으며, 한국 지배세력의 정치프로그램을 제약하고 있다.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가 유일한 대안이라거나, '외국자본'에 대항해 한국자본을 보호해야 한다거나, 현 정부와의 대와나 협약을 통해 민중의 고통을 완화할 수 있다는 모든 주장은 세계자본주의의 위기에 대한 비판적 인식을 거부한다. 그렇지만 신자유주의 세계화를 근본적으로 지양하려는 사회운동은 위기에 대한 객관적 인식을 출발점으로 삼을 수밖에 없다. 이를 통해서만 대안세계화운동에 적합한 노동자운동의 개조, 여성운동과 노동자운동의 결합, 대안세계화 운동과 반전운동의 결합이라는 우리 사회운동의 과제를 펼쳐나갈 수 있다. 1) 뒤메닐 & 레비, [21세기로의 전환과 미국 제국주의의 경제학], {사회진보연대}, 2004년 7-8월호와 [미 제국주의의 새로운 형세에 대한 전망], {사회운동}, 2006년 1월호를 참조하라. 본문으로 2) 노무현 대통령은 2006년 신년사에서 한미 FTA 타결 의지를 밝혔고, '유일한'(?) 장애 요소로 꼽히는 스크린쿼터 문제에 대한 압박을 시작했다. 한편 삼성경제연구소는 한국이 무역자유화로 인해 장기적 편익이 증대하나 단기적으로는 생산성이 낮은 기업과 산업(노동집약적 제조업, 농업)에서 고용감소, 임금하락이 발생할 수밖에 없으므로 조정비용이 필요하지만, 그 비용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가 노동시장의 경직성이므로 이를 완화하는 정책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결국 모든 사회경제적 문제를 해결하는 '만병통치약'으로 노동신축화가 다시금 등장한다. 본문으로 3) 현재 북한인권 문제를 적극적으로 제기하는 집단은 냉전 매파에서 유래한 NGO와 기독교 복음주의 NGO이다. 그들은 북한자유연합을 결성했고 북한인권법안을 지원했다. 이들 집단이 북한인권 문제를 북한붕괴 유도책의 일환으로 활용하고 있기 때문에 다른 접근법들을 취해야 한다는 입장도 제기되고 있다. 예를 들어 1) 안보, 경제문화교류, 인권 문제를 서로 연계하지 않고 별도로 논의하는 '꾸러미 접근법', 2) 인권 탄압국이라고 '망신'을 주기보다는 북한 관리와 은밀한 접촉을 취하는 '조용한 외교', 3) 경찰이 용의자를 심문할 때 사용하는 방식처럼 미국은 강경노선을 취하고 남한은 북한을 구슬리는 역할을 하는 '좋은 경찰/나쁜 경찰' 방식, 4) 북한을 비롯한 사회주의 국가들의 사회경제적 평등이 인권의 주요 척도라고 인정하며 인도주의적 지원에 방점을 두는 '인도주의적 접근', 5) 북한의 경제적 개혁을 유도해 개혁주의적 정치세력-기업가-신중간층을 육성하고 장기적으로 시민사회를 활성화하자는 '경제개입' 전략. 그리고 이러한 '대안적' 접근법을 지지하는 입장은 각자 분리된 역할을 수행하더라도 북한인권 개선에 기여할 수 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즉 유럽이 조용한 외교를 취하고, 남한은 경제적으로 개입하고, 인도주의 NGO는 식량지원에 초점을 맞추고, 주류 NGO(엠네스티, 휴먼라이츠워치)와 미국은 "망신주기" 전략을 취할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입장은 마르크스주의의 견지에서 현존 사회주의의 역사를 분석할 수 없으므로, 자유주의 개혁을 인권 문제의 궁극적인 대안으로 제시한다. 본문으로 4) 2005년 말 국내 은행산업에서 외국계은행의 시장점유율은 일반은행 기준으로 33.7%에 달해 1998년에 비해 5배 이상 증가했다. 한편 외국계 생명보험사는 시장점유율(수입보험료 기준)이 16.5%로 상승했다. 그러나 외국계 손해보험사는 0.9%에 머물고 있으며, 외국계 증권회사는 16.5%로 크게 증가하지 않았다. 본문으로 5) 1995년부터 삼성전자의 기업규모가 엄청나게 커지면서 삼성의 경영권 방어가 첨예한 경제적 관심사로 떠올랐다. 예를 들어 LG는 기업규모가 여전히 작은 상태이므로 오너 가족의 지분을 통해 지배가 가능하나, 삼성은 해외투자자의 위협에 직면하게 된 것이다. 삼성은 에버랜드를 사실상의 지주회사로 기능하게 하고, 후계자 이재용의 '불법상속'을 통해 경영권을 방어하고자 시도했다. 이는 지금도 총액출자제도, 금융계열사의 의결권 제한(금융보험사가 고객자산으로 계열사 주식을 매입할 때 의결권을 제한), 지주회사요건 등이 쟁점이 되는 이유다. 지난해 노무현 대통령은 이재용의 상속문제를 얼마간의 '사회환원'으로 해결하자고 제안했다. 본문으로 6) 초민족자본의 지배력 문제가 쟁점으로 부각되자 김대중-노무현정부의 경제정책을 지지하기 위한 반론도 꾸준히 나오고 있다. 그 요지는 첫째, 한국의 배당수익률(1주당 배당금/주가)은 1.9%로 그리 높지 않은 편이다. 과거에 비해 배당성향이 높아진 것은 사실이지만, 외국인 주식보유 비중이 높은 기업만이 아니라 한국기업 전반이 높아졌다. 또한 외국자본이 대규모 유입된 후, 국내기업이 배당을 높였기 때문에 주식가치가 높아지고 주식프리미엄이 생겨난 것이다. 둘째, 기업들의 투자부진의 원인이 순전히 고배당에 의한 자금부족은 아니다. 외환위기 이후 정부의 기업 부채비율 감축정책으로 인해 제조업의 부채비율은 1997년 말 396.3%를 기록한 후 2004년 말 현재 104.2%로 크게 감소하고 있으며, 자기자본 비율도 매년 증가하고 있다. 문제는 투자여건이다. 셋째 적대적 M&A의 가능성을 줄이기 위해서는 지배주주가 지분을 늘리거나 지배하는 계열사를 줄이는 방법을 택해야 하며 장기적으로는 주식시장 규모를 확대해 개별회사의 시가총액 규모가 늘려야 한다. 이를 위해 정부는 자본시장 육성정책을 펼쳐 부동자금을 주식시장으로 끌어들여야 한다 등등. 결국 주식시장 규모를 더욱 키우는 게 M&A도 막아내고 나눌 수 이득도 생겨난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한국 주식시장의 거품과 이에 따른 원화가치의 거품 문제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도 없다. 본문으로 7) 인민주의는 고유한 정치이념이나 전략이 없고 기술관료적 ‘합리성’과 ‘전문성’으로 치장한 신자유주의 정책개혁을 추종한다. 인민주의 정치는 의회나 정당을 우회하여 이로부터 분리된 대통령 비서진이나 자문단에 의존해 정책을 입안하고, 행정부의 강력한 권력에 기대어 신자유주의를 실행한다. 이를 합리화하는 수단은 미디어와 전문가 NGO다. 초민족 자본이나 재벌은 이러한 경로를 통해 좀 더 쉽게 정책입안 과정에 접근한다. 그들은 더 이상 특정 정당을 자신의 이해 대변자로 여겨 로비를 펼치는 게 아니라, 국제금융기구나 각종 경제공동체(유럽연합, 아펙 등등)에 직접 참여하거나 싱크탱크를 운영하여 기술관료를 배출한다. 최근 삼성과 노무현 정부의 '밀월관계'는 이러한 변화된 메커니즘을 통해 작동한다. 본문으로 8) 양극화에 대해 정부가 내놓은 처방을 요약하면 1) 근로연계복지(workfare) 강화: 국가재정을 통한 일자리 창출, 보건·복지·교육 등 사회서비스 분야에 민간이 참여할 수 있는 제도적 기반 마련, 2) 취약계층의 직업능력개발 확대, 근로소득보전세제 2007년 도입, 자활근로사업 확대, 3) 기초생활보장제도 내실화, 차상위계층과 노인·장애인 지원 강화, 4) 미래 경쟁력 제고를 위한 적극적인 정책으로서 저소득층에 대한 교육·훈련 투자확대(저소득층 장학금지원, 성인대상 직업교육), 5) 영세자영업자 보완대책 마력, 비정규직 보호 법령 정비, 비정규직 고용개선 5개년 계획 수립. 6) 행정중심복합도시, 기업도시/혁신도시 건설 등 국가균형발전시책 추진이다. 본문으로
세계자본주의 위기와 대안세계화운동 2006년 지자체 선거는 다음해 대선의 예비무대이자 집권세력의 레임덕이 더욱 빨라질 것이냐를 결정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그렇지만 집권세력은 선거전략과 대중동원을 위한 '소재'의 빈곤을 벗어날 수 없다. '사회적 타협을 통한 양극화 해소 재원 마련'이나 '외자확대가 한국경제의 프리미엄을 높여 전체 국부를 증진한다'는 주장은 기만성이 점차 분명히 드러날 것이다. 물론 현정부가 민중에게 무언가 양보할 수 있다거나 정부의 정책개혁의 큰 틀이 변화될 수 있다는 기대는 여전히 자라나고 있다. 이는 한국자본주의 발전에 대한 허구적인 이미지를 재생산할 때만 지속될 수 있다. 따라서 세계자본주의의 위기에 대한 객관적인 인식은 사회운동의 필수불가결한 요소다. 미국 제국주의의 새로운 형세 미국은 신자유주의 정책개혁을 통해 해외로부터 엄청난 부를 수탈하는 메커니즘을 향유했다. 미국이 해외에서 흡수하는 자본소득(이자, 배당, 초민족기업 계열사의 유보이윤)은 미국기업이 국내 활동으로 얻는 이윤의 80% 수준에 이른다. 여기에 미국이 원자재, 특히 에너지 가격에 압력을 가하여 얻는 이득과 주변부의 저렴한 노동력을 손쉽게 활용할 수 있는 현실을 고려하면 세계적인 부의 이전은 막대하다. 그렇지만 이와 동시에 미국 경제는 심각한 불균형에 직면했다. 수입증가가 수출증가를 훨씬 앞지르면서 무역적자는 계속 확대되어 2000년 이후 GDP 4% 수준을 계속 상회하고 있다. 또한 무역적자에 조응하여 미국 내 외국인의 자산 규모가 급격히 증가하고(즉 외국은 무역을 통해 번 달러를 미국에 다시 투자하고 있다), 미국이 여기에 지불해야 하는 자본소득도 늘어나고 있다. 미국 내 외국인 자산은 1984년 GDP 대비 19%였으나, 2003년 72%로 증가했고, 미국의 해외자산 규모의 두 배에 해당한다. 그러나 미국이 해외자산을 통해 얻는 자본소득은 외국이 미국 내 자산으로 얻고 있는 규모와 거의 동일하다. 이는 미국의 수익률이 두 배나 높다는 것을 뜻한다. 이처럼 미국 제국주의는 해외에서 강력하게 소득을 흡수하고 해외 자본가, 기업, 국가에게 그것을 다시 지불하고 있다(이를 '달러 환류'라 부른다). 하지만 이러한 경향은 앞으로도 유지될 수 있는가? 지금까지 미국이 해외에서 소득을 빨아들이는 데 매우 '효율적'이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이러한 궤도가 무한정 지속될 수 없다. 미국의 대외불균형이 계속 악화되면 미국에 대한 투자가 중단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는 여러 가지 경로로 진행될 수 있다. 먼저 달러의 가치하락으로 귀결될 수 있다. 달러 가치하락은 미국의 무역적자 교정에 어느 정도 도움을 줄 수 있지만 (그러나 미국과 일본의 환율 변화가 일본의 대미 무역흑자에 큰 변화를 주지 못했던 것처럼 이러한 변화가 자동적인 것은 아니다), 미국의 금융지배력과 국제적 지위를 악화시킬 게 분명하다. 물론 미국이 이자율을 높여서 달러를 방어하려고 시도할 수 있지만, 이 역시도 외국에 지불하는 소득을 증대시킴으로써 불균형을 증폭시킬 수도 있다. 또한 미국이 해외의 자산 규모를 더욱 빠른 속도로 늘리거나, 무역적자를 통제하는 수단을 강구할 수 있다. 그러나 미국이 현재보다 더 빠른 수준으로 자산규모를 늘리는 것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할 공산이 크다. 또한 무역적자 악화의 주요원인인 부유계급의 가계소비를 축소하려는 시도는 신자유주의 정책의 핵심적인 지지층의 반발을 초래할 정치적 위험이 있다. 이처럼 날로 심각해지는 미국 제국주의의 모순은 세계자본주의와 착취자들의 미래에 그림자를 드리운다. 미국이 쌍둥이 적자를 유지하는 메커니즘의 파괴는 곧 미국 헤게모니의 최종적 위기, 나아가 세계자본주의의 동반 붕괴를 의미하기 때문이다.1) 미국의 대외경제정책과 동아시아 미국 경제의 불균형에 대한 우려가 커질수록 이런 우려 자체가 불균형을 심화하는 요인으로 작동한다. 따라서 미국은 어떤 방식으로든 이런 상황에 개입할 수밖에 없다. 부시정부는 2009년까지 현재의 재정적자를 절반 이하로 축소하겠다고 공언했지만, 아프가니스탄-이라크 전쟁을 거치며 대규모 전비가 지출되었고, 감세조치의 영구화와 연금개혁을 준비하고 있으므로 현실화되긴 어렵다. 따라서 부시정부는 환율·통상 등 대외경제정책을 경제적 난관을 부분적으로 타개하려고 한다. 물론 이는 위기의 대가를 타국의 민중에게 전가하는 결과를 낳는다. 부시정부는 자유무역지대 창설을 통상정책의 핵심수단으로 활용하고, '경쟁적 자유주의' 전략을 채택하였다. 이는 미국이 FTA를 체결한 나라에게만 미국시장 접근을 허용함으로써, 차별을 우려하는 다른 나라도 FTA를 체결하도록 압박하는 것이다. 게다가 미국은 FTA를 단순한 교역확대수단(관세인하)으로 여기지 않고, 비관세장벽의 제거와 경제구조조정의 수단으로 활용하고 다자간무역협정의 선례로 삼고자 한다. 즉 단순히 무역적자 교정을 넘어서 미국의 금융적 지배를 위하 초민족기업의 활동을 보장하는 데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2) 최근 부시정부는 무역적자를 통제하기 위해 달러 약세를 용인하는 듯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이는 해외중앙은행이 달러 급락을 막기 위해 달러표시 자산을 계속 매입할 것이라고 예견하기 때문이다. 일부에서는 장기적으로 달러 가치를 주요통화대비 20-40%의 절하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특히 한국, 중국, 일본이 미국의 무역수지 적자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37% 수준에 이르러 동아시아 통화를 중심으로 환율조정이 이루어질 수도 있다(특히 미국 의회는 위안화의 추가절상을 위해 무역제재를 준비중이다). 부시정부 2기와 민주주의·인권외교 이라크 전쟁은 부시 정부의 핵심적인 관심사다. 부시정부는 이라크 전쟁의 승리는 "이라크 보안군이 시민들의 안전을 보장하고, 이라크가 더 이상 테러리스트의 안전한 피난처가 아니게 될 때" 달성된다고 규정했다. 이런 정의를 따르면 미국의 승리는 요원하다. 미 의회는 2006년 이라크, 아프간 전쟁과 범세계적 대테러전쟁 비용으로 3500만 달러를 승인해야만 했다. 이 규모는 한국전쟁 당시 전체 비용과 맞먹는다. 이에 따라 더 이상 의회에 이라크 재건 기금을 요구하지도 않기로 했고, 이라크 재건지원이라는 허울을 던져버렸다. 하지만 부시정부는 이라크 전쟁의 정당성을 사후적으로라도 추인 받고 싶은 듯이 인권, 민주주의의 확산을 위해서는 일방주의적 개입을 여전히 밀어붙일 수 있다는 전략을 포기하지 않고 있다. 물론 부시 정부 2기가 출범한 후 레이건 행정부 1기 당시 활약했던 냉전 매파에서 유래한 '네오콘'의 영향력이 축소되면서 미국의 새로운 전쟁 가능성에 대한 언급은 많이 잦아들었다. 그렇지만 공화당이 다수를 장악한 미국 의회는 민주당 인사들의 도움을 얻어 민주주의증진법(ADVANCE Act)을 준비하고 있다. 이 법안은 '세계 45개 독재자들을 2025년까지 끌어내린다'는 목표를 세웠고, 민주주의와 인권이라는 비폭력적 수단에 호소해 정권교체를 달성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법안은 국무부가 담당을 맡아 처음 두 해 동안 민주화운동에 2.5억 달러를 지출하고, 민주화에 저항하는 국가의 자금흐름을 차단할 권한을 대통령에게 부여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결국 이는 탈냉전 이후 클린턴 정부의 '다자주의'와 세력균형 정책과 다르고, 인권 이슈를 제기해 공산권과 데탕트(무역협정이나 군축협정 체결)에 찬물을 끼얹는 민주당과 공화당에 포진한 냉전 매파의 전통적인 '인권외교'의 확장판이다. 이러한 변화에 조응하여, 최근 미국은 북한인권 문제를 직간접적으로 제기하고 위조화폐-마약 등 불법거래 자금차단에 나서면서 6자회담이 큰 위기에 처했다. 특히 북한인권 의제는 한반도 정세에 장기적인 변수로 작동할 것이다. 북한과 미국-한국 사이에 협의가 긴밀해질수록 북한인권 문제를 제기하는 목소리는 더욱 높아질 것이기 때문이다.3) 초민족자본의 한국경제 지배 외환위기와 IMF 구제금융협약을 거치며 초민족자본이 한국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질적으로나 양적으로 비약적으로 증가했다. 외환위기 직후 구조조정 과정에서 기업매각을 통해 외국인직접투자 크게 증가했고, 주식시장에서 외국인의 주식보유 비중은 2004년 말 42%에 이르렀다. 당연히 개별기업에서도 외국인 지분 비중이 확대되고 있다. 그리고 특히 금융업 부문에서 직접투자가 크게 증가해서 SC제일, 외환, 한국씨티은행이 외국계 은행으로 분류되며, 우리금융지주와 전북은행을 제외하면 모든 은행의 외국인 지분율이 60%를 초과했다.4) 이러한 현실을 반영하여 외국자본의 성격과 한국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둘러싼 논란이 점차 확산되고 있다. 지난 2004년 영국계 홍콩자본인 BIH가 브릿지증권의 유상감자를 실시해(자본금 규모를 줄이고 지분을 가진 주주에게 보상금을 지급) 1000억원 이상의 자본금을 회수한 사건은 논란에 불을 지폈다(JP모건이 만도에서 514억원을 회수하고 인터브루가 OB맥주에서 1699억원을 회수한 사건도 있었다). 외국자본이 높은 배당성향(당기순이익에서 배당액이 차지하는 비중)도 문제가 되었다. 2004년 하나증권은 110%, 메리츠증권은 207%의 배당성향을 보여서, 주주들이 당기순이익보다 더 많은 배당액을 챙겨갔다. 외국자본이 가져가는 배당액 전체 규모도 크게 증가하여 1998년 5억 달러였던 것이 2003년 33억 달러로 급증했다. 또한 외국자본이 거래소 상장을 폐지하여 자본조달보다는 단기이익을 추구한다거나, 외국인직접투자(직접적인 설비투자와 고용창출) 비중이 줄고 포트폴리오 투자의 비중이 높아지며 직접투자로 분류되더라도 공장을 새로 세우는 게 아니라 사실상 지분참여 수준의 인수합병(M&A)형의 비중이 증가한다, 한국기업들이 경영권 방어를 위해 자사주 매입에 나서며 설비투자가 감소하고 있다는 비판도 제기되었다. 이에 따라 외국자본의 활동을 규제하기 위한 장치를 마련하자는 주장이 점차 제기되었다. 예를 들어 유상감자를 인허가 사항으로 바꾸고, 과거 일정 기간 동안 평균 배당성향을 뛰어넘는 고배당을 금지하는 장치를 마련하고 배당가능이익도 제한하자는 것이었다. 반면 소액주주운동을 펼치며 초민족기업이나 기관투자가가 편에 섰던 쪽은 이러한 비판이 '외자 마녀사냥론'이고, 재벌개혁의 문제를 뒤로 미루고 '사이비 민족주의'를 부추긴다고 정면으로 대응했다. 초민족자본의 지배력이 확대될수록 논쟁은 더 첨예해지고 있다. 2005년에 주식배당액으로 외국자본이 가져간 금액이 2004년보다 50% 급증한 73억 달러에 이르고, 2005년 주가 폭등 과정에서 외국인들이 3조 6천억원 어치의 주식을 처분해 엄청난 차익을 실현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소버린의 SK(주) 적대적 M&A 시도나 헤르메스의 삼성물산 경영권 위협 사건도 상당한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대한상공회의소는 "기업이 외국자본의 적대적 M&A 위험에 노출되지 않도록 다양한 방어장치를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특히 삼성경제연구소는 이 문제를 집요하게 제기하고 있다.5) 최근 정부가 주식거래에 대한 과세를 검토중이라는 발언이 나오면서 또 다른 논란도 일고 있다. 물론 반대하는 입장은 국내 상장사 지분의 40%가 외국인이어서 자금이탈 가능성이 높고, 홍콩-싱가포르 등이 자본이득과세를 부과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내세우고 있다. 물론 이런 논쟁의 와중에도 한국 자본 역시 초민족화에 적응하기 위한 해외투자와 '글로벌경영'에 뛰어들고 있다. 한국 금융사 역시 해외투자 펀드를 내놓고 있으며, 퇴직연금과 각종 연기금 역시 해외로 투자대상을 더 확대해 나갈 것이다. 현대자동차는 2003년에 60만대 규모의 중국공장을 세웠고 2005년에는 30만대 규모의 미국 공장을 설립했다. 또한 2006년에는 외환위기 이후 정부, 법원, 채권단의 관리에 처해 있던 대형기업들의 매각이 이루어져, 글로벌펀드와 국내 사모펀드의 각축도 치열해질 전망이다. 이처럼 국제금융기구, 한국정부, 신자유주의 NGO는 초민족자본의 직접적인 지배력을 보장했고, 한국의 기존 재벌은 초민족화를 대세로 받아들이며 명운을 걸고 초민족화의 혈로를 찾고 있다. 물론 한국 경제의 급격한 재편과 초민족자본의 지배력이 확대에 따라 삼성과 같이 경영권 방어를 위해 로비와 여론조성에 몰두해야 하는 사례도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글로벌스탠다드와 재벌개혁(지배구조개혁) 대 한국자본 보호(적대적 M&A 방어)가 가장 심각한 문제는 아니다. 오히려 세계경제의 위기 때문에 초민족자본과 한국 자본 일부의 공생·경쟁관계가 작동하는 토대가 무너지고 있다는 게 문제다. 미국이 동아시아를 포함한 세계 각지에서 자본소득을 퍼올리고, 세계는 미국에 상품을 수출함으로써 달러를 벌어들이며 이를 다시 미국에 투자하는 '달러 환류' 메커니즘이 미국 자본주의의 내적 모순(생산성 하락과 이윤율 저하) 때문에 심각한 위기에 빠지고 있기 때문이다. 몇몇 수출분야의 팽창, 한국증시의 급상승과 같은 현상은 미국의 금융세계화 메커니즘이 제대로 작동하는 극히 짧은 시간 동안만 유지될 수 있을 뿐이다. 이러한 체계가 위기에 빠지면 한국 경제의 종속성과 취약성은 더욱 극적으로 표출될 것이다.6) 한국경제의 장기불황과 노무현 정부의 집권 하반기 프로그램 주식시장은 팽창하고 천문학적 규모의 M&A가 이뤄지면서 금융지배력과 집중력은 날로 강화되지만, 한국 경제는 경기회복은 매우 짧고 경기침체는 매우 오래 이어지는 장기불황에 빠져들었다. 인민주의적인 선거전략과 대중동원에 의존해 집권에 성공한 노무현 정부로서는 큰 낭패가 아닐 수 없다. 열린우리당은 한나라당의 대통령 탄핵 시도로 기사회생하여 2004년 총선에서 큰 승리를 거두고 내친 김에 자신의 권력을 안정적으로 재생산하기 위한 권력구조 개편, 즉 개헌까지 염두에 두었다. 그러나 연정제안 실패와 2005년 10월 재보선 참패 때문에 목표를 근본적으로 수정해야 하는 상태에 이르렀다. 지난해 말 노대통령은 '남은 임기 2년 간의 미래구상'을 1월 또는 2월에 발표하겠다고 공언했고, 여기에는 노대통령의 탈당과 거국내각 구성, 임기단축과 조기개헌론 점화와 같은 충격적인 제안이 포함될 수 있다는 추측이 무성했다. 하지만 한국사회에서 권력구조의 개편은 특정 정치분파가 압도적인 지지와 우위를 바탕으로 이를 공고화할 수 있는 조건에 도달하거나, 사회경제적 위기가 정치적으로 표출됨으로써 지배세력의 '집단적인' 책임이 긴급해진 경우에 현실화될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현재 집권세력은 이도 저도 아닌 애매한 상태에 처해있다. 한국경제의 장기불황이라는 조건에서 이질적인 지지층을 포괄할 수 있는 정책개혁 전망을 제시할 수도 없고, 한국 경제를 지배하고 있는 초민족자본이나 대자본에게 개헌을 매우 긴급한 과제로 제시할 근거도 없기 때문이다.7) 따라서 집권세력에는 소폭 수준이더라도 개헌을 시도해야 한다는 입장, 현재의 위기관리 체계의 근간을 유지해야 한다(인민주의적인 정치스타일, 기술관료-NGO 활용), 이런 체계에 여러 사회운동 세력들을 더욱 적극적으로 포섭해야 한다는 입장이 혼재해 있다. 개헌에 미련을 두는 입장은 애초의 생각했던 내각책임제나 사회적 대타협의 틀로서 상원제 도입이 어려우면 대통령과 국회위원 임기불일치 조정과 대선 결선투표제 도입이라도 해야 한다고 보는 듯하다(노대통령은 지역 맹주간 연대의 형태로 지역주의를 온존시킬 수 있다며 정부통령제 도입에는 부정적이지만, 결선투표제는 중도개혁-진보진영의 연대를 유도할 수 있다는 점 때문에 선호한다고 알려졌다). 한편 열린우리당의 유력한 차기 대선후보의 하나로 꼽히는 정동영은 개헌이나 정계개편을 포함한 중장기적 정치프로그램에 대해 뚜렷한 전망을 제시하지 않은 채 열린우리당 내의 확고한 입지 구축에 몰두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는 열린우리당의 당헌당규 개정을 시도하여 당의장 권한 강화, 전당대회 1인1투표제도 도입, 당의장과 상임중앙위원 선거 분리를 시도했으나 당 내부의 반발로 실패했다). 또 한 명의 당내 주자인 김근태는 '양심세력통합론'을 제시하며 '민주노동당과 고건, 박원순, 이수호 등 외연을 넓힌 통합을 시도해야 하고, 지방선거전 통합도 가능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어떠한 입장도 집권세력 내에서 확고한 정치프로그램으로 부각되지 못하고 있다. 정치 전망의 불투명성은 경제위기의 불가피한 특징이다. 결국 노무현 대통령은 2006년 신년연설에서 정치프로그램에 관한 '미래구상'을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았고, 취임 전부터 검토된 사회경제정책 묶음을 다시 꺼내들었다. 물론 청와대는 '정파적 이해를 떠나 국가 미래과제 해결을 위한 사회적 의사결정 시스템 마련'(저출산고령화, 국민연금 등 중장기적 정책과제 해결)이 노대통령의 주요 관심사라고 포장했다. 하지만 오늘날 인민주의가 구사하는 사회정책은 국가온정주의라는 보수주의에 훨씬 더 가깝고,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을 실행하는 수단으로서 종속적 의미만 지닌다. 완전고용과 같은 케인즈주의 목표는 제거되고, 장기실업층을 산업예비군으로 포섭하려는 사회정책이 ‘국민통합’이라는 명분으로, 국가의 시혜 형태로 제공된다. 또한 간접세에 대한 의존도를 높이거나 노동신축화에 대한 반대급부로 제시되는 증세(법인세 인상도 포함될 수 있다)를 통해 국가가 확보한 약간의 재원으로 특정 층을 겨냥한 복지정책이 활용된다. 그러나 국가의 시혜에 의존하라는 인민주의 정책은 노동자운동, 사회운동의 자율성을 해체하는 수단으로도 기능한다. 노무현 대통령이 1월 18일 신년연설을 통해 제시한 한국경제의 중장기적 과제와 정책방향은 인민주의 전략의 전형적인 사례다. 연설에서는 양극화 해소를 위한 정부재정 확충, 일자리 창출과 비정규직 보호, 부동산과 사교육비 문제가 보수세력의 악의적인 선동만 없다면 머지 않은 시일 내에 해결될 수 있다는 듯이 역설했다. 또한 노대통령은 각각의 문제에 대한 구체적인 해결방안을 언급하지 않음으로써, 노무현정부의 경제·사회정책에 대한 언론과 학계의 '대리전'을 유도하려는 의도를 보였다(이미 지난해 '사회양극화해소를 위한 국민연대'가 결성되어 이러한 의도의 일단이 드러나기도 했다). 물론 증세는 부유계급에 대한 수사적 공격을 통해 노무현 정부의 인민주의적 대중동원에 활용될 여지도 있다. 그렇지만 인민주의 전략이 부유계급에 대해서는 그야말로 '수사적인' 공격(립서비스)에 그칠 때가 많지만, 그 반대급부로 민중에게 요구하는 고통은 지극히 현실적이라는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 노무현 정부가 제시하는 사회통합은 이러한 정책방향을 공유한다. 노무현정부는 성장잠재력의 약화, 사회양극화의 심화, 저출산고령화를 비롯한 새로운 미래 위험요인의 등장이 한국경제의 당면 문제라고 명시하면서 각종 처방전을 쏟아내고 있다.8) 그러나 값싼 노동력 투입의 둔화(저출산·고령화에 따른 산업예비군층의 축소)와 설비투자의 감소, 생산성 향상의 저하에 따른 성장잠재력의 고갈, 산업부문·업종·기업·계층간 양극화 심화는 세계적인 경제위기와 한국 경제가 택한 신자유주의 생존전략의 자연스러운 귀결일 뿐이다. 세계자본주의의 위기와 대안세계화운동 미국 제국주의가 내포한 모순의 폭발은 곧 세계자본주의의 동반 위기를 뜻한다. 미국은 환율·통상정책을 통해 미국 자본주의의 위기 표출을 지연하고 그 비용을 세계 민중에게 전가하려고 하지만 그러한 시도가 얼마나 효력을 발휘할지는 미지수다. 부시정부는 이라크전쟁을 통해 정치군사적 헤게모니의 강고함을 과시함으로써 미국 경제의 상대적 안전성과 금융지배력을 보장받고자 했다. 또한 부시정부는 이라크전쟁의 정당성을 사후적으로나마 승인 받기 위해 인권, 민주주의의 확산을 위해서라면 어떤 지역이나 국가에 대한 정치군사적 개입도 불사한다는 전략을 교리화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신자유주의 세계화로부터 배제된 지역을 더욱 확고히 포위하여 그 지역의 불안정이 중심부로 전이되는 것을 봉쇄한다는 전략에 불과하므로 본질적으로 미국 헤게모니의 재구축과는 거리가 멀다. 한국은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장기불황에 빠져 있다. 국제금융기구의 경제구조조정에 편승해 신자유주의 정책에 적응한 일부 산업·기업은 주가폭등, 수출확대를 통해 팽창에 성공했지만, 이는 결국 초민족자본의 자본소득과 경제지배력 확대에 기여할 뿐이다. 최근 초민족자본의 성격과 이들이 한국경제에 미치는 영향에 따른 논쟁이 확산되고 있다. 하지만 글로벌스탠다드와 재벌개혁을 외치든, 재벌총수의 경영권 방어를 추구하든 이 모두는 민중에게 다른 형태의 재앙일 뿐이다. 노무현정부는 진퇴양난의 궁지에 몰려 있고, 매우 빠른 시일 내에 '레임덕' 현상이 나타날 수도 있다. 그들은 김대중정부의 신자유주의 정책개혁을 계승하면서도 인민주의적 대중동원에 의존해 지지층을 끊임없이 재규합해야 하는 지극히 어려운 과제를 동시에 안고 있기 때문이다. 노무현정부는 기술관료-NGO를 매개로 위기관리체계를 유지하고 사회운동을 공격 또는 포섭하면서, 임시방편적인 수단에 의지해서 정치적 국면들을 돌파해왔다. 그러나 아랫돌을 빼내서 윗돌로 얹는 조삼모사 방식의 양극화 해소 방안은 민중에게 더 큰 고통을 강요하려는 수단일 뿐이다. 물론 노무현정부의 집권 이후 인민주의적인 정치토양은 더욱 굳건해졌다. 세계경제의 위기는 초민족자본과 한국 자본의 '공생관계'를 근저에서 잠식하고 있으며, 한국 지배세력의 정치프로그램을 제약하고 있다.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가 유일한 대안이라거나, '외국자본'에 대항해 한국자본을 보호해야 한다거나, 현 정부와의 대와나 협약을 통해 민중의 고통을 완화할 수 있다는 모든 주장은 세계자본주의의 위기에 대한 비판적 인식을 거부한다. 그렇지만 신자유주의 세계화를 근본적으로 지양하려는 사회운동은 위기에 대한 객관적 인식을 출발점으로 삼을 수밖에 없다. 이를 통해서만 대안세계화운동에 적합한 노동자운동의 개조, 여성운동과 노동자운동의 결합, 대안세계화 운동과 반전운동의 결합이라는 우리 사회운동의 과제를 펼쳐나갈 수 있다. 1) 뒤메닐 & 레비, [21세기로의 전환과 미국 제국주의의 경제학], {사회진보연대}, 2004년 7-8월호와 [미 제국주의의 새로운 형세에 대한 전망], {사회운동}, 2006년 1월호를 참조하라. 본문으로 2) 노무현 대통령은 2006년 신년사에서 한미 FTA 타결 의지를 밝혔고, '유일한'(?) 장애 요소로 꼽히는 스크린쿼터 문제에 대한 압박을 시작했다. 한편 삼성경제연구소는 한국이 무역자유화로 인해 장기적 편익이 증대하나 단기적으로는 생산성이 낮은 기업과 산업(노동집약적 제조업, 농업)에서 고용감소, 임금하락이 발생할 수밖에 없으므로 조정비용이 필요하지만, 그 비용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가 노동시장의 경직성이므로 이를 완화하는 정책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결국 모든 사회경제적 문제를 해결하는 '만병통치약'으로 노동신축화가 다시금 등장한다. 본문으로 3) 현재 북한인권 문제를 적극적으로 제기하는 집단은 냉전 매파에서 유래한 NGO와 기독교 복음주의 NGO이다. 그들은 북한자유연합을 결성했고 북한인권법안을 지원했다. 이들 집단이 북한인권 문제를 북한붕괴 유도책의 일환으로 활용하고 있기 때문에 다른 접근법들을 취해야 한다는 입장도 제기되고 있다. 예를 들어 1) 안보, 경제문화교류, 인권 문제를 서로 연계하지 않고 별도로 논의하는 '꾸러미 접근법', 2) 인권 탄압국이라고 '망신'을 주기보다는 북한 관리와 은밀한 접촉을 취하는 '조용한 외교', 3) 경찰이 용의자를 심문할 때 사용하는 방식처럼 미국은 강경노선을 취하고 남한은 북한을 구슬리는 역할을 하는 '좋은 경찰/나쁜 경찰' 방식, 4) 북한을 비롯한 사회주의 국가들의 사회경제적 평등이 인권의 주요 척도라고 인정하며 인도주의적 지원에 방점을 두는 '인도주의적 접근', 5) 북한의 경제적 개혁을 유도해 개혁주의적 정치세력-기업가-신중간층을 육성하고 장기적으로 시민사회를 활성화하자는 '경제개입' 전략. 그리고 이러한 '대안적' 접근법을 지지하는 입장은 각자 분리된 역할을 수행하더라도 북한인권 개선에 기여할 수 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즉 유럽이 조용한 외교를 취하고, 남한은 경제적으로 개입하고, 인도주의 NGO는 식량지원에 초점을 맞추고, 주류 NGO(엠네스티, 휴먼라이츠워치)와 미국은 "망신주기" 전략을 취할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입장은 마르크스주의의 견지에서 현존 사회주의의 역사를 분석할 수 없으므로, 자유주의 개혁을 인권 문제의 궁극적인 대안으로 제시한다. 본문으로 4) 2005년 말 국내 은행산업에서 외국계은행의 시장점유율은 일반은행 기준으로 33.7%에 달해 1998년에 비해 5배 이상 증가했다. 한편 외국계 생명보험사는 시장점유율(수입보험료 기준)이 16.5%로 상승했다. 그러나 외국계 손해보험사는 0.9%에 머물고 있으며, 외국계 증권회사는 16.5%로 크게 증가하지 않았다. 본문으로 5) 1995년부터 삼성전자의 기업규모가 엄청나게 커지면서 삼성의 경영권 방어가 첨예한 경제적 관심사로 떠올랐다. 예를 들어 LG는 기업규모가 여전히 작은 상태이므로 오너 가족의 지분을 통해 지배가 가능하나, 삼성은 해외투자자의 위협에 직면하게 된 것이다. 삼성은 에버랜드를 사실상의 지주회사로 기능하게 하고, 후계자 이재용의 '불법상속'을 통해 경영권을 방어하고자 시도했다. 이는 지금도 총액출자제도, 금융계열사의 의결권 제한(금융보험사가 고객자산으로 계열사 주식을 매입할 때 의결권을 제한), 지주회사요건 등이 쟁점이 되는 이유다. 지난해 노무현 대통령은 이재용의 상속문제를 얼마간의 '사회환원'으로 해결하자고 제안했다. 본문으로 6) 초민족자본의 지배력 문제가 쟁점으로 부각되자 김대중-노무현정부의 경제정책을 지지하기 위한 반론도 꾸준히 나오고 있다. 그 요지는 첫째, 한국의 배당수익률(1주당 배당금/주가)은 1.9%로 그리 높지 않은 편이다. 과거에 비해 배당성향이 높아진 것은 사실이지만, 외국인 주식보유 비중이 높은 기업만이 아니라 한국기업 전반이 높아졌다. 또한 외국자본이 대규모 유입된 후, 국내기업이 배당을 높였기 때문에 주식가치가 높아지고 주식프리미엄이 생겨난 것이다. 둘째, 기업들의 투자부진의 원인이 순전히 고배당에 의한 자금부족은 아니다. 외환위기 이후 정부의 기업 부채비율 감축정책으로 인해 제조업의 부채비율은 1997년 말 396.3%를 기록한 후 2004년 말 현재 104.2%로 크게 감소하고 있으며, 자기자본 비율도 매년 증가하고 있다. 문제는 투자여건이다. 셋째 적대적 M&A의 가능성을 줄이기 위해서는 지배주주가 지분을 늘리거나 지배하는 계열사를 줄이는 방법을 택해야 하며 장기적으로는 주식시장 규모를 확대해 개별회사의 시가총액 규모가 늘려야 한다. 이를 위해 정부는 자본시장 육성정책을 펼쳐 부동자금을 주식시장으로 끌어들여야 한다 등등. 결국 주식시장 규모를 더욱 키우는 게 M&A도 막아내고 나눌 수 이득도 생겨난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한국 주식시장의 거품과 이에 따른 원화가치의 거품 문제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도 없다. 본문으로 7) 인민주의는 고유한 정치이념이나 전략이 없고 기술관료적 ‘합리성’과 ‘전문성’으로 치장한 신자유주의 정책개혁을 추종한다. 인민주의 정치는 의회나 정당을 우회하여 이로부터 분리된 대통령 비서진이나 자문단에 의존해 정책을 입안하고, 행정부의 강력한 권력에 기대어 신자유주의를 실행한다. 이를 합리화하는 수단은 미디어와 전문가 NGO다. 초민족 자본이나 재벌은 이러한 경로를 통해 좀 더 쉽게 정책입안 과정에 접근한다. 그들은 더 이상 특정 정당을 자신의 이해 대변자로 여겨 로비를 펼치는 게 아니라, 국제금융기구나 각종 경제공동체(유럽연합, 아펙 등등)에 직접 참여하거나 싱크탱크를 운영하여 기술관료를 배출한다. 최근 삼성과 노무현 정부의 '밀월관계'는 이러한 변화된 메커니즘을 통해 작동한다. 본문으로 8) 양극화에 대해 정부가 내놓은 처방을 요약하면 1) 근로연계복지(workfare) 강화: 국가재정을 통한 일자리 창출, 보건·복지·교육 등 사회서비스 분야에 민간이 참여할 수 있는 제도적 기반 마련, 2) 취약계층의 직업능력개발 확대, 근로소득보전세제 2007년 도입, 자활근로사업 확대, 3) 기초생활보장제도 내실화, 차상위계층과 노인·장애인 지원 강화, 4) 미래 경쟁력 제고를 위한 적극적인 정책으로서 저소득층에 대한 교육·훈련 투자확대(저소득층 장학금지원, 성인대상 직업교육), 5) 영세자영업자 보완대책 마력, 비정규직 보호 법령 정비, 비정규직 고용개선 5개년 계획 수립. 6) 행정중심복합도시, 기업도시/혁신도시 건설 등 국가균형발전시책 추진이다. 본문으로
WTO 홍콩 각료회의 원정투쟁이 대량 연행 사태로 이어진 후 14인의 구속자가 발생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하자, 홍콩의 대책위와 한국의 상황실에서 수립한 계획 중 민주노동당이 주도해 벌인 활동은 구속자들의 조속한 석방을 호소하는 국제의원(정치인) 서명운동이었다. 과잉 진압과 연행 과정에서의 인권 탄압에 대한 우려를 표명하고 구속자들의 조속한 석방과 안전한 귀국을 촉구하는 이 호소문에는 휴가 기간임에도 불구하고 국제적으로 50명이 넘는 정치인들이 서명을 했다. 지역별로는 유럽, 그 중에서도 유럽연합의회1) 의원들이 유별나게 많이 했다는 것을 볼 수 있다.2)
유럽연합의회에서는 총 17명의 의원들이 서명을 했는데, 8명은 유럽통합좌파-북유럽녹색좌파 그룹(GUE-NGL: 이하 유럽통합좌파 그룹) 소속, 7명은 녹색당 그룹(Greens-EFA) 소속, 2명은 사회당 그룹(PSE) 소속이었다.
유럽통합좌파 그룹과는 달리, 민주노동당과 구체적 연계가 없는 녹색당 그룹에서 열성적으로 서명에 참여한 것은 의외였다. 영국과 이탈리아 녹색당, 국내에도 책이 번역되어 있는 프랑스 녹색당의 알랭 리피에츠, 그리고 벨기에와 스웨덴 녹색당 소속 의원들이 서명을 했다. 이 중에는 유럽연합의회 부의장도 있었다. 유럽의회에서 두 번째로 많은 의원들을 보유하고 있는 사회당 그룹에서는 영국 노동당과 프랑스 사회당의 의원들이 서명에 동참했다. 유럽통합 좌파에서는 프랑스 공산당, 독일 민주사회당, 이탈리아 공산주의재건당과 공산당, 그리고 스웨덴 좌파당 소속 의원들이 서명을 했다. 이탈리아 공산주의재건당 소속 의원은 의회의 개발협력위원회 위원장이고, 이탈리아 공산당 의원은 과거 우주 비행사로서 미국인들과 함께 실제로 우주 비행을 한 사람이라고 한다. 서명 의원들의 분포를 보며, 적어도 현재 민주노동당은 활동이나 성향, 그리고 입장에서 유럽의 사민당보다는 녹색당이나 통합좌파 소속 공산당들과 더 가깝다는 필자의 평소 생각을 확인할 수 있었다. 실제로 이 두 그룹은 의회 내에서도 공조를 취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이 글에서는 바로 이 마지막 그룹, 즉 이 서명을 조직한 결과 가장 많은 의원들이 서명한 유럽통합좌파 그룹에서부터 출발하여 유럽의 좌파 지형을 개괄하고, 몇 가지 함의들에 대해서 언급하고자 한다. 사회당 그룹에 소속되어 있는 그룹들에 대해서는 추후로 기회를 미루고, 녹색당 그룹에 대해서는 개괄조차 할 능력이 아직 안 된다는 점을 솔직히 고백한다.
유럽통합좌파 그룹은 각국에서 각기 다른 선거 제도를 통해 뽑힌 유럽연합 의회 진출 정당들 사이의 블록으로서, 북유럽 지역의 녹색 좌파 정당들(NGL)과 동서 유럽의 공산당 계열의 정당들(GUE, 영어로는 European United Left) 사이의 합의를 통해 형성된 것이다. 유럽연합 소속 14개국, 16개 정당과 준회원 정당 조직 4개가 활동하고 있다. 한마디로 유럽에서 사회당/사민당 왼쪽에 있는 정당들의 가장 광범위한 모임이라고 할 수 있다. 의석은 현재 41개로 진보 정당 중에서는 영국 노동당, 프랑스 사회당, 독일 사민당 등이 참여하고 있는 사민주의 계열의 블록에 이어 녹색당 블록과 함께 비슷한 수3)를 확보하고 있다.
작년에 단병호, 최순영 의원과 같이 이 그룹의 초청 교류 프로그램으로 유럽연합의회가 있는 프랑스 스트라스부르그를 방문4)했을 때 들은 흥미로운 얘기가 있다. 그룹 의장인 프랑시스 베르츠 의원을 만나러 가는 길에 수행을 담당했던 스텔란 그룹 부총장(스웨덴 좌파당 소속)이 귀띔해준 얘기다. “베르츠 의장은 영어를 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는 프랑스인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프랑스 공산당 소속인 그는 영어를 유창하게 잘하지만, 불가피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불어로 말하고 영어로 통역을 하는 방향을 택했다. 유럽연합의회에서는 모든 회의 진행을 소속 국가들의 언어로 들을 권리가 있는데, 이 그룹의 모든 전체 회의도 보통 7-8개의 언어로 통역된다. 유럽통합좌파의 공식 명칭도
WTO 홍콩 각료회의 원정투쟁이 대량 연행 사태로 이어진 후 14인의 구속자가 발생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하자, 홍콩의 대책위와 한국의 상황실에서 수립한 계획 중 민주노동당이 주도해 벌인 활동은 구속자들의 조속한 석방을 호소하는 국제의원(정치인) 서명운동이었다. 과잉 진압과 연행 과정에서의 인권 탄압에 대한 우려를 표명하고 구속자들의 조속한 석방과 안전한 귀국을 촉구하는 이 호소문에는 휴가 기간임에도 불구하고 국제적으로 50명이 넘는 정치인들이 서명을 했다. 지역별로는 유럽, 그 중에서도 유럽연합의회1) 의원들이 유별나게 많이 했다는 것을 볼 수 있다.2)
유럽연합의회에서는 총 17명의 의원들이 서명을 했는데, 8명은 유럽통합좌파-북유럽녹색좌파 그룹(GUE-NGL: 이하 유럽통합좌파 그룹) 소속, 7명은 녹색당 그룹(Greens-EFA) 소속, 2명은 사회당 그룹(PSE) 소속이었다.
유럽통합좌파 그룹과는 달리, 민주노동당과 구체적 연계가 없는 녹색당 그룹에서 열성적으로 서명에 참여한 것은 의외였다. 영국과 이탈리아 녹색당, 국내에도 책이 번역되어 있는 프랑스 녹색당의 알랭 리피에츠, 그리고 벨기에와 스웨덴 녹색당 소속 의원들이 서명을 했다. 이 중에는 유럽연합의회 부의장도 있었다. 유럽의회에서 두 번째로 많은 의원들을 보유하고 있는 사회당 그룹에서는 영국 노동당과 프랑스 사회당의 의원들이 서명에 동참했다. 유럽통합 좌파에서는 프랑스 공산당, 독일 민주사회당, 이탈리아 공산주의재건당과 공산당, 그리고 스웨덴 좌파당 소속 의원들이 서명을 했다. 이탈리아 공산주의재건당 소속 의원은 의회의 개발협력위원회 위원장이고, 이탈리아 공산당 의원은 과거 우주 비행사로서 미국인들과 함께 실제로 우주 비행을 한 사람이라고 한다. 서명 의원들의 분포를 보며, 적어도 현재 민주노동당은 활동이나 성향, 그리고 입장에서 유럽의 사민당보다는 녹색당이나 통합좌파 소속 공산당들과 더 가깝다는 필자의 평소 생각을 확인할 수 있었다. 실제로 이 두 그룹은 의회 내에서도 공조를 취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이 글에서는 바로 이 마지막 그룹, 즉 이 서명을 조직한 결과 가장 많은 의원들이 서명한 유럽통합좌파 그룹에서부터 출발하여 유럽의 좌파 지형을 개괄하고, 몇 가지 함의들에 대해서 언급하고자 한다. 사회당 그룹에 소속되어 있는 그룹들에 대해서는 추후로 기회를 미루고, 녹색당 그룹에 대해서는 개괄조차 할 능력이 아직 안 된다는 점을 솔직히 고백한다.
유럽통합좌파 그룹은 각국에서 각기 다른 선거 제도를 통해 뽑힌 유럽연합 의회 진출 정당들 사이의 블록으로서, 북유럽 지역의 녹색 좌파 정당들(NGL)과 동서 유럽의 공산당 계열의 정당들(GUE, 영어로는 European United Left) 사이의 합의를 통해 형성된 것이다. 유럽연합 소속 14개국, 16개 정당과 준회원 정당 조직 4개가 활동하고 있다. 한마디로 유럽에서 사회당/사민당 왼쪽에 있는 정당들의 가장 광범위한 모임이라고 할 수 있다. 의석은 현재 41개로 진보 정당 중에서는 영국 노동당, 프랑스 사회당, 독일 사민당 등이 참여하고 있는 사민주의 계열의 블록에 이어 녹색당 블록과 함께 비슷한 수3)를 확보하고 있다.
작년에 단병호, 최순영 의원과 같이 이 그룹의 초청 교류 프로그램으로 유럽연합의회가 있는 프랑스 스트라스부르그를 방문4)했을 때 들은 흥미로운 얘기가 있다. 그룹 의장인 프랑시스 베르츠 의원을 만나러 가는 길에 수행을 담당했던 스텔란 그룹 부총장(스웨덴 좌파당 소속)이 귀띔해준 얘기다. “베르츠 의장은 영어를 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는 프랑스인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프랑스 공산당 소속인 그는 영어를 유창하게 잘하지만, 불가피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불어로 말하고 영어로 통역을 하는 방향을 택했다. 유럽연합의회에서는 모든 회의 진행을 소속 국가들의 언어로 들을 권리가 있는데, 이 그룹의 모든 전체 회의도 보통 7-8개의 언어로 통역된다. 유럽통합좌파의 공식 명칭도
‘북한인권’과 미국의 전방위적인 대북압박 지난 해 12월 16일 60차 유엔총회에서 유럽연합이 제출한 북한인권결의안이 미국, 일본의 동의를 포함하여 찬성 88개국, 반대 21개국, 기권 60개국으로 가결되면서 ‘북한인권’에 대한 국제적 압력이 고조되고 있다. 특히 미국은 지난 해 12월 서울에서 열린 북한인권국제대회를 후원하고 주요 인사가 이 행사에 참여하는 등 다방면에서 북한 체제의 문제를 강력하게 비난하고 있는 실정이다. "북한은 범죄정권(criminal regime)"(12월 7일 기자회견에서 북한의 위폐혐의를 제기하며 버시바우 주한 미국 대사) “미국은 자유와 정의를 수호하며 … 자유를 북한에 전파하는 것이고 북한에 곧 밝은 빛이 비칠 것”(12월 8일 서울에서 열린 북한인권국제대회에 참석한 레프코위츠 미국 북한인권특사) 북한 체제에 대한 문제제기 속에서 미국은 북한이 위폐 제조 등의 불법행위에 연루되었다고 주장하며 대북 제재를 실행에 옮기기 시작했다. 미국은 지난 해 12월 북한과 금융거래를 해온 마카오 소재 ‘방코 델타 아시아’에 대해 미국 재무부 소속 금융범죄단속강화반(FinCen)이 돈 세탁과 위폐 유통 혐의로 북한과의 금융거래를 중단하도록 압력을 가했는데, 이에 대해 북한은 강력하게 반발했지만 주한 미국대사는 미국법에 따른 금융제재는 북한과의 협의대상이 아님을 명백하게 밝히고 있다. 또한 라이스 미국 국무장관은 1월 5일 “만약 북한이 고립을 택한다면 이는 미국 정책의 결과가 아니라, 북한이 자초한 선택의 결과라고 생각한다. 이들은 위험한 정권(dangerous regime)이다. 북한의 불법행위는 제재를 초래할 것인데, 왜냐하면 대통령은 상응하는 조치 없이 북한이 미국의 화폐를 위조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라며, 미국의 대북 금융제재를 정당화했다. 미국의 이러한 말과 행동은 미국의 군사적 안전보장 및 금융·경제제재의 해제를 지속적으로 요구하는 북한의 바람과는 상충되는 것임에 분명하며 향후 6자회담의 낙관적 전망을 무색케 하기에 충분하다. 미국의 인권-외교 정책의 역사 -반공주의에서 네오콘에 이르기까지 이른바 ‘북한인권’ 문제는 미국의 군사·안보정책과 분리하여 생각할 수 없다. 미국이 인권 의제를 외교정책에 포함시킨 것은 197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미국은 심각한 정치적 위기를 겪고 있었다. 베트남 전쟁의 패배와 이른바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자유진영을 수호하는 미국의 정치적·도덕적 지도력은 돌이킬 수 없이 훼손되었고, 부패와 부당한 정권에 맞서는 자유와 민주주의의 방어자라는 미국의 역할이 위협받고 있었다. 이러한 도전에 직면하여 미국의 지도력과 정당성을 회복하기 위한 것 바로 ‘인권’과 대외정책의 연계라는 카드다. 당시 미국의 새로운 대외정책의 두 가지 상이한 방향이 제기되었는데, 하나는 소련·중국과의 긴장완화, 즉 데탕트를 추진하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이에 대한 반발로서 오히려 소련 등과의 관계개선에서 인권 문제를 제기하며 미국과의 경제·무역관계를 제한하려는 것이었다. 여기서 후자를 주도한 것은 오늘날 네오콘의 선배격인 민주당의 강경한 반공그룹이었다. 당시 몇몇 민주당 의원들은 (소련을 겨냥하여) 이민의 자유를 인정하지 않는 국가의 최혜국 대우와 미국과의 무역관계를 제한하는 법안(1974년 ‘잭슨-베닉 수정안’)을 발의하였다. 이러한 노력은 오늘날 ‘북한인권’을 6자회담과 연계하고 나아가 북한과의 관계 정상화의 전제조건으로 제기하는 네오콘 인사들의 논리와 궤를 같이 한다. 몇몇 인사들의 열렬한 반공 캠페인이 그대로 미국의 대외정책에 반영되지는 않았지만 점차 인권은 미국의 대외정책에 반영된다. 1976년 출범한 민주당의 카터 행정부는 인권 외교를 표방하며, 대외원조와 수혜국의 인권을 연계했다. 다만 그 대상은 민주당 내 우파그룹과는 달리 미국의 동맹세력이었던 군부독재 정권이었다. 미국은 1973년 의회에서 「해외원조법안」이 채택된 것을 시작으로, 1976년에는 국무부 내에 인권·인도주의국의 조직, 1978년부터는 유엔 회원국을 대상으로 한 국무부의 『연례 각국 인권보고서』발간으로 인권 외교의 행보를 이어가게 된다. 그렇지만 이러한 인권 외교는 반공동맹이라는 냉전기 미국의 군사·안보 전략의 근간을 뒤흔드는 것이 아니었다. 실제로 카터의 인권 외교가 비록 남한이나 아르헨티나 등 몇몇 국가와의 외교적 갈등을 야기했지만, 이러한 갈등이 실질적으로 반공독재 정권에 대한 미국의 경제 제재, 군사적 관계의 단절로 이어지는 않았던 것이다. 이는 취임 이후 남한 신군부 세력의 광주학살을 묵인한 미국의 레이건 행정부도 마찬가지였다. 이처럼 실제 미국의 인권 외교는 애초 반공 이데올로기와 공명했을 뿐 아니라 미국의 군사·안보적 이해관계에 종속적인 모습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성격은 냉전 질서의 소멸 이후에도 기본적으로 변하지 않았으며 9·11 테러 이후 ‘테러와의 전쟁’에서 가장 극명하게 드러나고 있다. 아프가니스탄에서 탈레반 세력을 구축하고, 이라크에서 후세인 정권을 전복하고 친미 정부를 수립하는 과정에서 무수한 민간인 사망자를 ‘부수적 피해’로 명명하면서 자신의 침략행위를 자유와 해방을 위한 것이었다고 윤색하는 데서 인권은 미국은 전략적 목표와 결부되거나 도구화된다. 네오콘은 ‘새로운 미국의 세기를 위한 프로젝트’(1996년)에서 이미 세계의 “민주적 전환”의 출발점으로서 ‘중동 민주화’를 주창한 바 있다. 여기서 후세인 정권의 제거라는 목표가 천명되거니와, 이러한 자신들의 구상을 선(미국)과 악(‘불량국가’)의 대결로 묘사한다. 이러한 대결 구도 속에서 미국의 행위는 기독교적 사명감이나 도덕적 우월성 등으로 윤색된다. 부시 미국 대통령의 발언 중에 “21세기 십자군 전쟁”이나 “무한정의(infinite justice)”, “악의 축(axis of evil)” 등의 종교적이고 도덕적인 색채의 표현이 동원되는 것은 우연이 아닌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미국의 역할을 수행하기 위한 적극적인 개입의지와 이를 뒷받침하는 군사적 팽창은 이미 클린턴 행정부 시절부터 개시된 것이다. 1999년 클린턴 행정부는 이전까지의 국방비 감축 추세를 역전시켜 국방예산을 1,120억 달러 증액하기로 결정했으며, 걸프전쟁(1991년)과 코소보 공습(1995년), 이라크에 대한 미사일 공격(2003년 이전 이미 미국은 이라크를 폭격하고 있었다!) 등 미국의 군사개입은 냉전 질서의 소멸 이후 1990년대에 이전보다 오히려 더욱 늘어난다. 인권과 안보의 결합: 인간안보의 진상 인권을 (외교)안보의 수단으로 활용하는 것은 비단 미국에만 국한되지 않으며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연합 내 국가들이나 일본 등 대부분의 중심부 국가들 역시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다. 이는 이 국가들이 이번 유엔총회에서 북한인권결의안이 통과될 당시 주도적인 역할을 했던 데서도 알 수 있다. 중심부 국가들이 표방하는 인권 외교의 실체란 무엇인가? 단적으로 (금융)세계화로 야기된 세계적 차원의 정치적 위기를 관리하려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세계화로 인한 부와 빈곤의 극단적인 불평등, 민족적·종족적 갈등의 격화 속에서 특히 아시아, 아프리카, 라틴 아메리카의 일부 국가들에서는 내전이 벌어지거나, 국제적인 마약 카르텔이 일부 지역을 통치하거나, 다양한 군벌들이 지역적으로 할거하는 등 정상적인 역할을 수행할 수 없는 이른바 국가의 (무정부적) 해체가 일어난다. 그 과정에서 벌어지는 학살과 범죄, 테러의 가능성은 국제적인 안보를 위협하는 주요 요인으로 지목되고, 이러한 문제에 대한 해결방식으로서 1990년대 국제적인 개입/간섭이 불가피한 것으로 여겨지고, 결국 이러한 국제적인 개입/간섭을 어떻게 정당화할 수 있을 것인가의 질문으로 돌아오게 된다. 바로 이러한 맥락에서 인권과 안보의 결합이 이루어지는데, 이는 종전까지 엄격하게 유지되어 왔던 유엔 헌장의 주권 평등, 무력 사용 금지, 분쟁의 평화적 해결, 내정 불간섭 등의 기본적인 원칙을 상대화하고 평화에 대한 위협 시 무력사용을 허용하는 유엔헌장의 예외조항을 적극적으로 해석·적용할 수 있다는 인식으로 발전한다. 즉 개별인권이 궁극적으로는 주권보다 상위의 가치를 지니고 있으며, 결국 개별인권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주권에 대해 2차 세계대전 이후 유지되어 오던 기존의 절대적인 불가침성을 제고해야 한다는 것이다. 단지 일개 국가로서는 해결하기 어려운 국제현안이 발생하고, 국가 자체가 붕괴함으로써 발생하는 대량 난민과 분쟁의 가능성은 안보적 관심사를 달성하기 위해서 이제 기존의 (국가)안보에 국한될 수 없음을 의미한다. 예를 들면 코피 아난 유엔 사무총장은 1999년 총회에서 유엔헌장이 국제사회가 타국에 간섭할 권리가 있음을 배제하지는 않으며, (인권침해를 방지하고 개선하기 위한) 인도주의적 간섭에는 평화적 수단과 강압적인 수단 모두가 포함될 수 있다고 강조한 바 있다. 역시 같은 맥락에서 유엔개발계획은 인권을 전통적인 안보 개념과 결합하면서, 국제적이고 보편적인 관심사로서 마약과 인권침해 등의 위협을 강조하고 이 문제를 모든 국가들이 참여하여 해결할 것, 또한 무엇보다 사전예방이 필요하다는 것을 언급한다. 그리고 미국의 ‘테러와의 전쟁’이라는 전략 역시 큰 틀에서는 이러한 국제적인 논의와 무관하지 않다. 따라서 핵심적인 질문은, 국제사회가 세계의 주요 군비 지출국인 미국과 그 동맹국들로 이루어진 국가들(NATO, 일본, 남한) 없이는 공허할 수밖에 없는 현실에서 “세계 도처에서 발생하는 폭력과 무질서를 어떻게 감축할 것인가?” 하는 것이다. 수세기에 걸쳐 형성된 국가 간 체계와 민족국가의 확립과 붕괴는 필연적으로 그 체계 속에서 제도화되어있던 기존 권리들의 해체와 재구성을 요구한다. 사회복지를 축소하고, 노동조합의 권리를 축소해나가는 신자유주의 정책기조가 유지되는 한에서 얼마나 현재 해체되고 있는 민족국가의 위기를 극복하는 데 실효성이 있으며, 혹은 국제사회의 개입/간섭이 안정적인 정치 공동체의 창출에 성공할 수 있을 지는 지극히 불투명하다. 점차 종족 간·종교 간 내전의 수렁으로 빠져들고 있는 이라크의 정정(政情)에 비추어본다면 미국의 ‘테러와의 전쟁’은 오히려 상황을 더 악화시킬 따름이다. 현재 ‘북한인권’을 둘러싼 논의지형 역시 인권 외교 혹은 미국의 전략적 구상이 노정하는 한계와 모순에 대한 비판 없이는 운동진영의 실천과 투쟁을 위치짓는 것이 지극히 난망하거나 지배세력의 구상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미국의 ‘북한인권’ 논의의 노림수 ‘북한인권’이라는 표현에는 이미 북한이 자국 인민의 보편적 인권을 침해하거나 제대로 보장하지 않는 전체주의 체제/독재정권이라는 규정이 포함되어 있다. 미국 국무부의 『연례 각국 인권 보고서』에서 북한은 이미 1993년부터 “대량살상무기를 추구하면서 주민을 굶주림에 처하게 하는 전체주의 체제”로 규정되어왔다. 그리고 2004년 미국 의회를 만장일치로 통과한 「북한인권법」에서는 “민주적 체제로서 한반도의 평화통일을 가속화”하는 것을 기본 목적으로 설정하고, 북한과의 협상 시 북한인권 문제를 “주요 관심 사안”으로 제기할 수 있도록 했다.1) 법안은 탈북자를 보호한다고 하지만 실제 미국이 9·11 테러 이후 본토입국에 대한 엄격한 제한조건을 부과하고 있음을 감안할 때 북한 주민의 대량 입국은 불가능하다는 점을 고려하면, 사실상 대부분의 활동은 탈북자를 지원하는 NGO의 활동에 지원되거나 보고서 발간, 북한인권특사의 임명 등을 통해 북한에 대한 압박수단으로서 활용될 공산이 크다. 그런데 북한에 대한 미국의 압박은 한반도에서 군사·안보적 주도권을 유지·강화하려는 중장기적 목표를 전제한다. 1990년대 이후 북미관계는 별다른 진전을 보이지 않고 있는데 이는 미국에게 그 일차적 책임이 있다. 왜냐하면 미국은 핵개발 의혹 뿐 아니라 중장거리 미사일 개발, 그리고 최근에는 인권문제 등을 북한과의 관계 정상화의 조건으로 제기하면서, 지역적 차원에서 남한 및 일본과의 군사동맹질서를 공고하게 다지고자 하기 때문이다. 남한정부의 햇볕정책을 가능케 했던 『페리 보고서』는 1994년 ‘제네바 합의’를 통해 약속한 관계 정상화의 조건으로서 북한의 미사일 개발 포기를 추가적으로 제기하고 있으며 남한과 일본 등의 주변국들은 경제·문화적 교류를 통해 유인책을 제시할 수 있다고 명시했다. 그러나 미국과 남한의 북한에 대한 군사적 위협은 철회되지 않았다. 1998년까지 미국은 북한에 대한 모의 핵공격을 연습하고 있었을 뿐 아니라 심지어는 북한의 미사일 공격 위협을 근거로 수백억 달러가 소요되는 미사일방어망(MD) 계획을 추진하였다. 이처럼 북한에 대해 추가적인 요구조건을 제시하는 미국의 태도는 북한의 체제에 대한 근본적인 불신을 배경으로 하지 않는다면 이해하기 어렵다. 즉 미국은 일관되게 사실상 북한 체제 자체를 불량국가로 규정하고 무장해제와 응징이라는 수단을 일관되게 선호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미국의 대북정책은 ‘테러와의 전쟁’이 진행되면서 대량살상무기의 확산을 저지하고 테러를 근본적으로 근절하기 위해서는 현재 독재체제를 전복시키지 않고는 불가능하다는 발상과 결합한다. 실제 미국은 『핵 태세 보고서』(2001년)에서 북한을 선제핵공격이 가능한 국가로 분류하고, 2002년 대통령 연두교서에서는 “악의 축”으로 규정하는데 이들 국가들에 대한 미국의 목표는 다름 아닌 ‘정권 교체’였다. 그렇지만 미국 내에서 북한인권 문제를 다른 의제와 연계할 지 여부에 대해서는 완전한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즉 부시 행정부 내 국무부의 몇몇 관리들은 인권문제와 북핵문제를 연계하는 것이 협상을 어렵게 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으며, 북한에 대한 인도주의적 지원과 북한의 인권 개선을 연계할 것인지에 대해서도 이를 지지하는 입장(기독교 복음주의 계열의 NGO)과 이에 대해 신중한 입장(주류 인권운동 NGO)으로 나뉘어져 있다. 그리고 이를 둘러싼 갈등은 앞으로 6자회담의 진전에 따라서 점차 본격화될 전망이다.2) 그렇지만 그러한 이견은 1970년대 미국의 인권 외교가 냉전기 미국의 전략의 틀 자체를 넘어서지 못했던 것처럼, 인권 외교에 내포된 미국의 군사·안보적 주도권을 전제하는 상황에서 북한에 대한 정책적 해법에 대한 부수적인 차이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고 하기는 어렵다. 비록 북한의 정권교체를 추구하는 네오콘과는 달리 북한에 대한 실용주의적 접근을 지지하는 입장이 미국 내에 존재한다고 하더라도 2005년 3월 의회에 상정된 「민주주의 증진법(Advance Democracy Act)」에 드러난 미국의 야심찬 구상을 고려한다면 ‘폭정의 종식’, 즉 정권 교체를 통한 북한 내적인 정치구도의 변화가 궁극적인 미국의 목표라고 할 수밖에 없다.3) 각종 재래식 화력이 밀집되어 있는 한반도에서의 무력충돌은 자칫 수백만 명의 사상자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에 미국은 다양한 방식의 제재를 통해 ‘정권 교체’를 추진할 것이다. 중앙정보국(CIA)으로 대표되는 미국의 정보기관들은 이미 석유시설의 국유화를 추진하던 이란 모사데그 정부의 전복(1953년)과, 선거를 통해 사회주의 체제로의 이행을 실험하던 칠레 아옌데 정부에 대항한 쿠데타(1973년)로 악명을 떨친 바 있다. 특히 인권 외교에서 미국 국무부는 NGO를 지원하는 방식으로 자유민주주의 가치관 등을 선전한다. 미국은 ‘민주주의를 위한 기금’(NED)을 통해 NGO 단체들과 국제적 협력 체제를 유지하고 있으며, 2002~03년에 걸쳐 NED는 남한의 북한인권시민연합과 북한민주화운동네트워크에 각각 25만 달러를 지원한 바 있다. 미국 국무부는 지난 해 서울에서 개최된 북한인권국제대회에 대해서도 200만 달러에 달하는 예산을 지원하였다. 게다가 「북한인권법」의 시행에 책정된 2천 4백만 달러의 예산은 탈북자들의 망명을 기획하는 북한인권시민연합, 북한민주화운동네트워크 등의 NGO 단체들에게 유입될 것이다. 이들은 남한정부가 제공하는 탈북자 정착금을 중간에서 착복하는 브로커들의 횡포를 방조·조장할 뿐 아니라, (부풀려지고 왜곡된) 기초적인 대북정보를 제공하여 ‘북한인권’ 관련 정책에 개입하고 미국의 재정적 지원을 얻고자 한다. 북한을 “범죄정권”이나 “전체주의 체제”로 규정하는 한에서 ‘기획 탈북’을 시도하는 인권 NGO에 대한 미국의 지원이나 대북 금융 제재 등이 지속된다면 6자회담 타결의 전망이 불투명해지는 것은 물론이고, 나아가 한반도에서 분단 질서의 변화가 긍정적인 의미를 지닌다고 장담할 수도 없게 된다. ‘북한인권’ 수용의 함정과 반전운동 따라서 ‘북한인권’이라는 문제설정을 현재의 논의지형과 역관계를 사장한 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는 것은 위험천만하다. ‘북한인권’이라는 문제설정에는 이미 전체주의 체제/독재정권에 대한 궁극적 해결책으로서 국제사회의 개입/간섭을 통한 인권과 민주주의 신장, 즉 북한체제의 전복이라는 구상이 전제되어 있기 때문이다. 따지고 보면 네오콘이 제시하는 '인권'과 '민주주의', 그리고 '해방'(?)의 논리는 절대적이고 구제 불가능한 악의 세력에 대해 희생자들을 대신하여 행하는 복수의 논리와 다름없다. 비인도적인 조건에서 희생자들은 인권을 박탈당하고 스스로 자신들의 권리를 규정할 능력이 부재한 이들이다. 이러한 선과 악이라는 구분 속에서 기존의 모든 가치관과 규범들은 상대화된다. 이를테면 수십 년 동안 남한의 군사독재정권이 반공이라는 국시(國是)를 제창하고 고문과 학살, 언론과 출판의 규제를 거의 무제한적으로 수행했던 것처럼, 이제 테러에 대항하여 안보를 수호하기 위해 비밀구금과 체포, 고문을 배제하지 않게 되고, 제네바 협정에 규정된 전쟁포로에 대한 인도적 대우의 의무 등은 상대화된다(당장 관타나모 수용소와 아부그라이브 감옥에서 벌어지는 포로에 대한 일상적인 학대와 폭력을 보라!) 현재 이라크에서 미국의 점령은 “(독재) 정권 교체”와 “민주화”를 내세우는 미국의 구상이 어떠한 결과를 초래하는 지를 명백하게 드러낸다. 이라크인의 자유와 해방을 위해 독재자를 쫓아냈다는 호언장담은 저항세력을 소탕하기 위한 미군의 초토화 작전과 무수한 민간인 사상자들 앞에서 무색해진다. 미국이 수행하는 국가재건과 ‘민주화’란 미국에 대항하는 정치세력의 출현을 봉쇄하는 분할통치, 억압적인 국가장치의 확대(경찰과 군대의 충원)에 토대를 둔 것으로서 오히려 민중의 민주주의와 괴리된 기형적 지배질서를 수립하는 것으로 귀결될 뿐이다. 북한체제가 1990년대 이후 심각한 위기에 봉착해있다는 것은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다. 이는 전력난을 비롯한 에너지의 부족과 기본적인 식량의 부족 등에서 충분히 알 수 있다. 하지만 북한에 대한 인도주의적 지원과 북한 인권개선’을 결합하고 이것을 자국의 군사·안보 정책의 수단으로 활용하려는 미국의 전략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남한정부의 햇볕정책 역시 이른바 인도주의적 지원과 군사적 압박을 병행하는 것이므로 그 중 하나만을 특권화하여 나머지를 용인할 수는 없다. 현재 남한정부의 대북정책은 국내의 보수세력이나 미국의 네오콘들과 다르지 않다. 현 정권의 대북정책은 한·미동맹, 혹은 북한의 위협에 근거하여 지속적으로 군비증강을 추구하는 군사·안보정책의 종속변수라는 점에서 역대 정권과 근본적인 차이를 보이지 않는다(김대중 대통령은 남북정상회담을 마치고 와서 거듭 주한미군의 주둔 명분을 설파하지 않았던가?). 남북관계에서 경색국면과 유화국면 사이의 동요는 핵과 미사일 등을 둘러싸고 북미관계가 악화되거나 호전될 때의 시점과 거의 일치하며, 최근에 와서야 삭제된 북한 주적론을 대신하여 등장한 이른바 자주국방, 균형자론 등은 변함없이 군사력을 증강하겠다는 남한정부의 군사적 야심을 드러내고 있다. 따라서 미국의 군사안보 전략과 남한의 대북정책을 대조적인 것으로 바라보고, 전자를 비판하고 반대하면서 후자를 지지 내지 견인하겠다는 발상에 사로잡히는 것은 운동진영이 경계해야 할 위험천만한 함정이다. 미국과 남한의 대북정책은 상호보완적인데, 왜냐하면 양자는 현재 한반도를 둘러싼 군사적 역관계를 변경할 의사가 없다는 점에서 공통적이기 때문이다. 한반도는 현재 중대한 기로에 서 있다. 남한정부는 이라크 파병을 감행하면서 미국의 “세계적 동반자”로서, 즉 세계적 차원에서의 군사·안보의 동맹자로서 자신의 지위를 확보하려 하고 있으며, 미국은 이른바 북한의 위협을 부풀려 일본과의 군사·안보적 협력관계를 강화함으로써 역내에서 안보질서를 자신이 주도하는 방향으로 재구축하려 한다. 이러한 흐름대로라면 한반도의 통일 역시 민주주의와 변혁의 과정이 아니라 현행의 군사적 질서를 유지한 채 신자유주의적 경제통합으로 대체될 공산이 크다. 따라서 ‘북한인권’에 대한 운동진영의 태도는 한반도 전체의 민주주의와 해방의 현재적 과제를 모색하는 가운데 이루어져야 한다. 그 첫 번째 과제는 무엇보다 반전운동, 즉 한반도에서 미국의 제국주의 질서를 해체, 소멸시키는 투쟁이 되어야 한다. 이 문제가 전제되지 않는 ‘북한인권’ 논의는 미국 인권외교의 틀로부터 벗어날 수 없으며 북한과 나아가 동북아 민중의 민주주의와 괴리된 제국주의 담론으로 남아있게 될 것이다. 따라서 ‘북한인권’에 대한 운동진영의 인식은 미국과 남한의 대북정책 자체에 대한 비판과 그 군사안보전략에 맞선 투쟁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1) 후술하겠지만 이러한 조항이 반드시 북미 협상의 전제가 되거나, 북미 간의 모든 현안을 ‘북한인권’과 연계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본문으로 2) John Feffer, "To Link or Not to Link: The Human Rights Question in North Korea", December 19, 2005 (www.fpif.org). 본문으로 3) 이 법은 미국 대통령이 “비민주적으로 분류된 외국국가”에 대해 미국 관할 하의 재산에 대한 동결, 국제금융기구의 지원 반대, 해당 국가의 상품과 서비스에 대한 미국 정부의 불매 조치, 미국 기업들의 해당 국가에 대한 수출 불허 등 사실상의 무역 및 금융 제재를 행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인권운동사랑방 부설 인권운동연구소 자료실 http://www.sarangbang.or.kr/bbs/list.php?board=inst2&page=7) 본문으로
‘북한인권’과 미국의 전방위적인 대북압박 지난 해 12월 16일 60차 유엔총회에서 유럽연합이 제출한 북한인권결의안이 미국, 일본의 동의를 포함하여 찬성 88개국, 반대 21개국, 기권 60개국으로 가결되면서 ‘북한인권’에 대한 국제적 압력이 고조되고 있다. 특히 미국은 지난 해 12월 서울에서 열린 북한인권국제대회를 후원하고 주요 인사가 이 행사에 참여하는 등 다방면에서 북한 체제의 문제를 강력하게 비난하고 있는 실정이다. "북한은 범죄정권(criminal regime)"(12월 7일 기자회견에서 북한의 위폐혐의를 제기하며 버시바우 주한 미국 대사) “미국은 자유와 정의를 수호하며 … 자유를 북한에 전파하는 것이고 북한에 곧 밝은 빛이 비칠 것”(12월 8일 서울에서 열린 북한인권국제대회에 참석한 레프코위츠 미국 북한인권특사) 북한 체제에 대한 문제제기 속에서 미국은 북한이 위폐 제조 등의 불법행위에 연루되었다고 주장하며 대북 제재를 실행에 옮기기 시작했다. 미국은 지난 해 12월 북한과 금융거래를 해온 마카오 소재 ‘방코 델타 아시아’에 대해 미국 재무부 소속 금융범죄단속강화반(FinCen)이 돈 세탁과 위폐 유통 혐의로 북한과의 금융거래를 중단하도록 압력을 가했는데, 이에 대해 북한은 강력하게 반발했지만 주한 미국대사는 미국법에 따른 금융제재는 북한과의 협의대상이 아님을 명백하게 밝히고 있다. 또한 라이스 미국 국무장관은 1월 5일 “만약 북한이 고립을 택한다면 이는 미국 정책의 결과가 아니라, 북한이 자초한 선택의 결과라고 생각한다. 이들은 위험한 정권(dangerous regime)이다. 북한의 불법행위는 제재를 초래할 것인데, 왜냐하면 대통령은 상응하는 조치 없이 북한이 미국의 화폐를 위조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라며, 미국의 대북 금융제재를 정당화했다. 미국의 이러한 말과 행동은 미국의 군사적 안전보장 및 금융·경제제재의 해제를 지속적으로 요구하는 북한의 바람과는 상충되는 것임에 분명하며 향후 6자회담의 낙관적 전망을 무색케 하기에 충분하다. 미국의 인권-외교 정책의 역사 -반공주의에서 네오콘에 이르기까지 이른바 ‘북한인권’ 문제는 미국의 군사·안보정책과 분리하여 생각할 수 없다. 미국이 인권 의제를 외교정책에 포함시킨 것은 197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미국은 심각한 정치적 위기를 겪고 있었다. 베트남 전쟁의 패배와 이른바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자유진영을 수호하는 미국의 정치적·도덕적 지도력은 돌이킬 수 없이 훼손되었고, 부패와 부당한 정권에 맞서는 자유와 민주주의의 방어자라는 미국의 역할이 위협받고 있었다. 이러한 도전에 직면하여 미국의 지도력과 정당성을 회복하기 위한 것 바로 ‘인권’과 대외정책의 연계라는 카드다. 당시 미국의 새로운 대외정책의 두 가지 상이한 방향이 제기되었는데, 하나는 소련·중국과의 긴장완화, 즉 데탕트를 추진하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이에 대한 반발로서 오히려 소련 등과의 관계개선에서 인권 문제를 제기하며 미국과의 경제·무역관계를 제한하려는 것이었다. 여기서 후자를 주도한 것은 오늘날 네오콘의 선배격인 민주당의 강경한 반공그룹이었다. 당시 몇몇 민주당 의원들은 (소련을 겨냥하여) 이민의 자유를 인정하지 않는 국가의 최혜국 대우와 미국과의 무역관계를 제한하는 법안(1974년 ‘잭슨-베닉 수정안’)을 발의하였다. 이러한 노력은 오늘날 ‘북한인권’을 6자회담과 연계하고 나아가 북한과의 관계 정상화의 전제조건으로 제기하는 네오콘 인사들의 논리와 궤를 같이 한다. 몇몇 인사들의 열렬한 반공 캠페인이 그대로 미국의 대외정책에 반영되지는 않았지만 점차 인권은 미국의 대외정책에 반영된다. 1976년 출범한 민주당의 카터 행정부는 인권 외교를 표방하며, 대외원조와 수혜국의 인권을 연계했다. 다만 그 대상은 민주당 내 우파그룹과는 달리 미국의 동맹세력이었던 군부독재 정권이었다. 미국은 1973년 의회에서 「해외원조법안」이 채택된 것을 시작으로, 1976년에는 국무부 내에 인권·인도주의국의 조직, 1978년부터는 유엔 회원국을 대상으로 한 국무부의 『연례 각국 인권보고서』발간으로 인권 외교의 행보를 이어가게 된다. 그렇지만 이러한 인권 외교는 반공동맹이라는 냉전기 미국의 군사·안보 전략의 근간을 뒤흔드는 것이 아니었다. 실제로 카터의 인권 외교가 비록 남한이나 아르헨티나 등 몇몇 국가와의 외교적 갈등을 야기했지만, 이러한 갈등이 실질적으로 반공독재 정권에 대한 미국의 경제 제재, 군사적 관계의 단절로 이어지는 않았던 것이다. 이는 취임 이후 남한 신군부 세력의 광주학살을 묵인한 미국의 레이건 행정부도 마찬가지였다. 이처럼 실제 미국의 인권 외교는 애초 반공 이데올로기와 공명했을 뿐 아니라 미국의 군사·안보적 이해관계에 종속적인 모습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성격은 냉전 질서의 소멸 이후에도 기본적으로 변하지 않았으며 9·11 테러 이후 ‘테러와의 전쟁’에서 가장 극명하게 드러나고 있다. 아프가니스탄에서 탈레반 세력을 구축하고, 이라크에서 후세인 정권을 전복하고 친미 정부를 수립하는 과정에서 무수한 민간인 사망자를 ‘부수적 피해’로 명명하면서 자신의 침략행위를 자유와 해방을 위한 것이었다고 윤색하는 데서 인권은 미국은 전략적 목표와 결부되거나 도구화된다. 네오콘은 ‘새로운 미국의 세기를 위한 프로젝트’(1996년)에서 이미 세계의 “민주적 전환”의 출발점으로서 ‘중동 민주화’를 주창한 바 있다. 여기서 후세인 정권의 제거라는 목표가 천명되거니와, 이러한 자신들의 구상을 선(미국)과 악(‘불량국가’)의 대결로 묘사한다. 이러한 대결 구도 속에서 미국의 행위는 기독교적 사명감이나 도덕적 우월성 등으로 윤색된다. 부시 미국 대통령의 발언 중에 “21세기 십자군 전쟁”이나 “무한정의(infinite justice)”, “악의 축(axis of evil)” 등의 종교적이고 도덕적인 색채의 표현이 동원되는 것은 우연이 아닌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미국의 역할을 수행하기 위한 적극적인 개입의지와 이를 뒷받침하는 군사적 팽창은 이미 클린턴 행정부 시절부터 개시된 것이다. 1999년 클린턴 행정부는 이전까지의 국방비 감축 추세를 역전시켜 국방예산을 1,120억 달러 증액하기로 결정했으며, 걸프전쟁(1991년)과 코소보 공습(1995년), 이라크에 대한 미사일 공격(2003년 이전 이미 미국은 이라크를 폭격하고 있었다!) 등 미국의 군사개입은 냉전 질서의 소멸 이후 1990년대에 이전보다 오히려 더욱 늘어난다. 인권과 안보의 결합: 인간안보의 진상 인권을 (외교)안보의 수단으로 활용하는 것은 비단 미국에만 국한되지 않으며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연합 내 국가들이나 일본 등 대부분의 중심부 국가들 역시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다. 이는 이 국가들이 이번 유엔총회에서 북한인권결의안이 통과될 당시 주도적인 역할을 했던 데서도 알 수 있다. 중심부 국가들이 표방하는 인권 외교의 실체란 무엇인가? 단적으로 (금융)세계화로 야기된 세계적 차원의 정치적 위기를 관리하려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세계화로 인한 부와 빈곤의 극단적인 불평등, 민족적·종족적 갈등의 격화 속에서 특히 아시아, 아프리카, 라틴 아메리카의 일부 국가들에서는 내전이 벌어지거나, 국제적인 마약 카르텔이 일부 지역을 통치하거나, 다양한 군벌들이 지역적으로 할거하는 등 정상적인 역할을 수행할 수 없는 이른바 국가의 (무정부적) 해체가 일어난다. 그 과정에서 벌어지는 학살과 범죄, 테러의 가능성은 국제적인 안보를 위협하는 주요 요인으로 지목되고, 이러한 문제에 대한 해결방식으로서 1990년대 국제적인 개입/간섭이 불가피한 것으로 여겨지고, 결국 이러한 국제적인 개입/간섭을 어떻게 정당화할 수 있을 것인가의 질문으로 돌아오게 된다. 바로 이러한 맥락에서 인권과 안보의 결합이 이루어지는데, 이는 종전까지 엄격하게 유지되어 왔던 유엔 헌장의 주권 평등, 무력 사용 금지, 분쟁의 평화적 해결, 내정 불간섭 등의 기본적인 원칙을 상대화하고 평화에 대한 위협 시 무력사용을 허용하는 유엔헌장의 예외조항을 적극적으로 해석·적용할 수 있다는 인식으로 발전한다. 즉 개별인권이 궁극적으로는 주권보다 상위의 가치를 지니고 있으며, 결국 개별인권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주권에 대해 2차 세계대전 이후 유지되어 오던 기존의 절대적인 불가침성을 제고해야 한다는 것이다. 단지 일개 국가로서는 해결하기 어려운 국제현안이 발생하고, 국가 자체가 붕괴함으로써 발생하는 대량 난민과 분쟁의 가능성은 안보적 관심사를 달성하기 위해서 이제 기존의 (국가)안보에 국한될 수 없음을 의미한다. 예를 들면 코피 아난 유엔 사무총장은 1999년 총회에서 유엔헌장이 국제사회가 타국에 간섭할 권리가 있음을 배제하지는 않으며, (인권침해를 방지하고 개선하기 위한) 인도주의적 간섭에는 평화적 수단과 강압적인 수단 모두가 포함될 수 있다고 강조한 바 있다. 역시 같은 맥락에서 유엔개발계획은 인권을 전통적인 안보 개념과 결합하면서, 국제적이고 보편적인 관심사로서 마약과 인권침해 등의 위협을 강조하고 이 문제를 모든 국가들이 참여하여 해결할 것, 또한 무엇보다 사전예방이 필요하다는 것을 언급한다. 그리고 미국의 ‘테러와의 전쟁’이라는 전략 역시 큰 틀에서는 이러한 국제적인 논의와 무관하지 않다. 따라서 핵심적인 질문은, 국제사회가 세계의 주요 군비 지출국인 미국과 그 동맹국들로 이루어진 국가들(NATO, 일본, 남한) 없이는 공허할 수밖에 없는 현실에서 “세계 도처에서 발생하는 폭력과 무질서를 어떻게 감축할 것인가?” 하는 것이다. 수세기에 걸쳐 형성된 국가 간 체계와 민족국가의 확립과 붕괴는 필연적으로 그 체계 속에서 제도화되어있던 기존 권리들의 해체와 재구성을 요구한다. 사회복지를 축소하고, 노동조합의 권리를 축소해나가는 신자유주의 정책기조가 유지되는 한에서 얼마나 현재 해체되고 있는 민족국가의 위기를 극복하는 데 실효성이 있으며, 혹은 국제사회의 개입/간섭이 안정적인 정치 공동체의 창출에 성공할 수 있을 지는 지극히 불투명하다. 점차 종족 간·종교 간 내전의 수렁으로 빠져들고 있는 이라크의 정정(政情)에 비추어본다면 미국의 ‘테러와의 전쟁’은 오히려 상황을 더 악화시킬 따름이다. 현재 ‘북한인권’을 둘러싼 논의지형 역시 인권 외교 혹은 미국의 전략적 구상이 노정하는 한계와 모순에 대한 비판 없이는 운동진영의 실천과 투쟁을 위치짓는 것이 지극히 난망하거나 지배세력의 구상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미국의 ‘북한인권’ 논의의 노림수 ‘북한인권’이라는 표현에는 이미 북한이 자국 인민의 보편적 인권을 침해하거나 제대로 보장하지 않는 전체주의 체제/독재정권이라는 규정이 포함되어 있다. 미국 국무부의 『연례 각국 인권 보고서』에서 북한은 이미 1993년부터 “대량살상무기를 추구하면서 주민을 굶주림에 처하게 하는 전체주의 체제”로 규정되어왔다. 그리고 2004년 미국 의회를 만장일치로 통과한 「북한인권법」에서는 “민주적 체제로서 한반도의 평화통일을 가속화”하는 것을 기본 목적으로 설정하고, 북한과의 협상 시 북한인권 문제를 “주요 관심 사안”으로 제기할 수 있도록 했다.1) 법안은 탈북자를 보호한다고 하지만 실제 미국이 9·11 테러 이후 본토입국에 대한 엄격한 제한조건을 부과하고 있음을 감안할 때 북한 주민의 대량 입국은 불가능하다는 점을 고려하면, 사실상 대부분의 활동은 탈북자를 지원하는 NGO의 활동에 지원되거나 보고서 발간, 북한인권특사의 임명 등을 통해 북한에 대한 압박수단으로서 활용될 공산이 크다. 그런데 북한에 대한 미국의 압박은 한반도에서 군사·안보적 주도권을 유지·강화하려는 중장기적 목표를 전제한다. 1990년대 이후 북미관계는 별다른 진전을 보이지 않고 있는데 이는 미국에게 그 일차적 책임이 있다. 왜냐하면 미국은 핵개발 의혹 뿐 아니라 중장거리 미사일 개발, 그리고 최근에는 인권문제 등을 북한과의 관계 정상화의 조건으로 제기하면서, 지역적 차원에서 남한 및 일본과의 군사동맹질서를 공고하게 다지고자 하기 때문이다. 남한정부의 햇볕정책을 가능케 했던 『페리 보고서』는 1994년 ‘제네바 합의’를 통해 약속한 관계 정상화의 조건으로서 북한의 미사일 개발 포기를 추가적으로 제기하고 있으며 남한과 일본 등의 주변국들은 경제·문화적 교류를 통해 유인책을 제시할 수 있다고 명시했다. 그러나 미국과 남한의 북한에 대한 군사적 위협은 철회되지 않았다. 1998년까지 미국은 북한에 대한 모의 핵공격을 연습하고 있었을 뿐 아니라 심지어는 북한의 미사일 공격 위협을 근거로 수백억 달러가 소요되는 미사일방어망(MD) 계획을 추진하였다. 이처럼 북한에 대해 추가적인 요구조건을 제시하는 미국의 태도는 북한의 체제에 대한 근본적인 불신을 배경으로 하지 않는다면 이해하기 어렵다. 즉 미국은 일관되게 사실상 북한 체제 자체를 불량국가로 규정하고 무장해제와 응징이라는 수단을 일관되게 선호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미국의 대북정책은 ‘테러와의 전쟁’이 진행되면서 대량살상무기의 확산을 저지하고 테러를 근본적으로 근절하기 위해서는 현재 독재체제를 전복시키지 않고는 불가능하다는 발상과 결합한다. 실제 미국은 『핵 태세 보고서』(2001년)에서 북한을 선제핵공격이 가능한 국가로 분류하고, 2002년 대통령 연두교서에서는 “악의 축”으로 규정하는데 이들 국가들에 대한 미국의 목표는 다름 아닌 ‘정권 교체’였다. 그렇지만 미국 내에서 북한인권 문제를 다른 의제와 연계할 지 여부에 대해서는 완전한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즉 부시 행정부 내 국무부의 몇몇 관리들은 인권문제와 북핵문제를 연계하는 것이 협상을 어렵게 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으며, 북한에 대한 인도주의적 지원과 북한의 인권 개선을 연계할 것인지에 대해서도 이를 지지하는 입장(기독교 복음주의 계열의 NGO)과 이에 대해 신중한 입장(주류 인권운동 NGO)으로 나뉘어져 있다. 그리고 이를 둘러싼 갈등은 앞으로 6자회담의 진전에 따라서 점차 본격화될 전망이다.2) 그렇지만 그러한 이견은 1970년대 미국의 인권 외교가 냉전기 미국의 전략의 틀 자체를 넘어서지 못했던 것처럼, 인권 외교에 내포된 미국의 군사·안보적 주도권을 전제하는 상황에서 북한에 대한 정책적 해법에 대한 부수적인 차이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고 하기는 어렵다. 비록 북한의 정권교체를 추구하는 네오콘과는 달리 북한에 대한 실용주의적 접근을 지지하는 입장이 미국 내에 존재한다고 하더라도 2005년 3월 의회에 상정된 「민주주의 증진법(Advance Democracy Act)」에 드러난 미국의 야심찬 구상을 고려한다면 ‘폭정의 종식’, 즉 정권 교체를 통한 북한 내적인 정치구도의 변화가 궁극적인 미국의 목표라고 할 수밖에 없다.3) 각종 재래식 화력이 밀집되어 있는 한반도에서의 무력충돌은 자칫 수백만 명의 사상자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에 미국은 다양한 방식의 제재를 통해 ‘정권 교체’를 추진할 것이다. 중앙정보국(CIA)으로 대표되는 미국의 정보기관들은 이미 석유시설의 국유화를 추진하던 이란 모사데그 정부의 전복(1953년)과, 선거를 통해 사회주의 체제로의 이행을 실험하던 칠레 아옌데 정부에 대항한 쿠데타(1973년)로 악명을 떨친 바 있다. 특히 인권 외교에서 미국 국무부는 NGO를 지원하는 방식으로 자유민주주의 가치관 등을 선전한다. 미국은 ‘민주주의를 위한 기금’(NED)을 통해 NGO 단체들과 국제적 협력 체제를 유지하고 있으며, 2002~03년에 걸쳐 NED는 남한의 북한인권시민연합과 북한민주화운동네트워크에 각각 25만 달러를 지원한 바 있다. 미국 국무부는 지난 해 서울에서 개최된 북한인권국제대회에 대해서도 200만 달러에 달하는 예산을 지원하였다. 게다가 「북한인권법」의 시행에 책정된 2천 4백만 달러의 예산은 탈북자들의 망명을 기획하는 북한인권시민연합, 북한민주화운동네트워크 등의 NGO 단체들에게 유입될 것이다. 이들은 남한정부가 제공하는 탈북자 정착금을 중간에서 착복하는 브로커들의 횡포를 방조·조장할 뿐 아니라, (부풀려지고 왜곡된) 기초적인 대북정보를 제공하여 ‘북한인권’ 관련 정책에 개입하고 미국의 재정적 지원을 얻고자 한다. 북한을 “범죄정권”이나 “전체주의 체제”로 규정하는 한에서 ‘기획 탈북’을 시도하는 인권 NGO에 대한 미국의 지원이나 대북 금융 제재 등이 지속된다면 6자회담 타결의 전망이 불투명해지는 것은 물론이고, 나아가 한반도에서 분단 질서의 변화가 긍정적인 의미를 지닌다고 장담할 수도 없게 된다. ‘북한인권’ 수용의 함정과 반전운동 따라서 ‘북한인권’이라는 문제설정을 현재의 논의지형과 역관계를 사장한 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는 것은 위험천만하다. ‘북한인권’이라는 문제설정에는 이미 전체주의 체제/독재정권에 대한 궁극적 해결책으로서 국제사회의 개입/간섭을 통한 인권과 민주주의 신장, 즉 북한체제의 전복이라는 구상이 전제되어 있기 때문이다. 따지고 보면 네오콘이 제시하는 '인권'과 '민주주의', 그리고 '해방'(?)의 논리는 절대적이고 구제 불가능한 악의 세력에 대해 희생자들을 대신하여 행하는 복수의 논리와 다름없다. 비인도적인 조건에서 희생자들은 인권을 박탈당하고 스스로 자신들의 권리를 규정할 능력이 부재한 이들이다. 이러한 선과 악이라는 구분 속에서 기존의 모든 가치관과 규범들은 상대화된다. 이를테면 수십 년 동안 남한의 군사독재정권이 반공이라는 국시(國是)를 제창하고 고문과 학살, 언론과 출판의 규제를 거의 무제한적으로 수행했던 것처럼, 이제 테러에 대항하여 안보를 수호하기 위해 비밀구금과 체포, 고문을 배제하지 않게 되고, 제네바 협정에 규정된 전쟁포로에 대한 인도적 대우의 의무 등은 상대화된다(당장 관타나모 수용소와 아부그라이브 감옥에서 벌어지는 포로에 대한 일상적인 학대와 폭력을 보라!) 현재 이라크에서 미국의 점령은 “(독재) 정권 교체”와 “민주화”를 내세우는 미국의 구상이 어떠한 결과를 초래하는 지를 명백하게 드러낸다. 이라크인의 자유와 해방을 위해 독재자를 쫓아냈다는 호언장담은 저항세력을 소탕하기 위한 미군의 초토화 작전과 무수한 민간인 사상자들 앞에서 무색해진다. 미국이 수행하는 국가재건과 ‘민주화’란 미국에 대항하는 정치세력의 출현을 봉쇄하는 분할통치, 억압적인 국가장치의 확대(경찰과 군대의 충원)에 토대를 둔 것으로서 오히려 민중의 민주주의와 괴리된 기형적 지배질서를 수립하는 것으로 귀결될 뿐이다. 북한체제가 1990년대 이후 심각한 위기에 봉착해있다는 것은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다. 이는 전력난을 비롯한 에너지의 부족과 기본적인 식량의 부족 등에서 충분히 알 수 있다. 하지만 북한에 대한 인도주의적 지원과 북한 인권개선’을 결합하고 이것을 자국의 군사·안보 정책의 수단으로 활용하려는 미국의 전략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남한정부의 햇볕정책 역시 이른바 인도주의적 지원과 군사적 압박을 병행하는 것이므로 그 중 하나만을 특권화하여 나머지를 용인할 수는 없다. 현재 남한정부의 대북정책은 국내의 보수세력이나 미국의 네오콘들과 다르지 않다. 현 정권의 대북정책은 한·미동맹, 혹은 북한의 위협에 근거하여 지속적으로 군비증강을 추구하는 군사·안보정책의 종속변수라는 점에서 역대 정권과 근본적인 차이를 보이지 않는다(김대중 대통령은 남북정상회담을 마치고 와서 거듭 주한미군의 주둔 명분을 설파하지 않았던가?). 남북관계에서 경색국면과 유화국면 사이의 동요는 핵과 미사일 등을 둘러싸고 북미관계가 악화되거나 호전될 때의 시점과 거의 일치하며, 최근에 와서야 삭제된 북한 주적론을 대신하여 등장한 이른바 자주국방, 균형자론 등은 변함없이 군사력을 증강하겠다는 남한정부의 군사적 야심을 드러내고 있다. 따라서 미국의 군사안보 전략과 남한의 대북정책을 대조적인 것으로 바라보고, 전자를 비판하고 반대하면서 후자를 지지 내지 견인하겠다는 발상에 사로잡히는 것은 운동진영이 경계해야 할 위험천만한 함정이다. 미국과 남한의 대북정책은 상호보완적인데, 왜냐하면 양자는 현재 한반도를 둘러싼 군사적 역관계를 변경할 의사가 없다는 점에서 공통적이기 때문이다. 한반도는 현재 중대한 기로에 서 있다. 남한정부는 이라크 파병을 감행하면서 미국의 “세계적 동반자”로서, 즉 세계적 차원에서의 군사·안보의 동맹자로서 자신의 지위를 확보하려 하고 있으며, 미국은 이른바 북한의 위협을 부풀려 일본과의 군사·안보적 협력관계를 강화함으로써 역내에서 안보질서를 자신이 주도하는 방향으로 재구축하려 한다. 이러한 흐름대로라면 한반도의 통일 역시 민주주의와 변혁의 과정이 아니라 현행의 군사적 질서를 유지한 채 신자유주의적 경제통합으로 대체될 공산이 크다. 따라서 ‘북한인권’에 대한 운동진영의 태도는 한반도 전체의 민주주의와 해방의 현재적 과제를 모색하는 가운데 이루어져야 한다. 그 첫 번째 과제는 무엇보다 반전운동, 즉 한반도에서 미국의 제국주의 질서를 해체, 소멸시키는 투쟁이 되어야 한다. 이 문제가 전제되지 않는 ‘북한인권’ 논의는 미국 인권외교의 틀로부터 벗어날 수 없으며 북한과 나아가 동북아 민중의 민주주의와 괴리된 제국주의 담론으로 남아있게 될 것이다. 따라서 ‘북한인권’에 대한 운동진영의 인식은 미국과 남한의 대북정책 자체에 대한 비판과 그 군사안보전략에 맞선 투쟁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1) 후술하겠지만 이러한 조항이 반드시 북미 협상의 전제가 되거나, 북미 간의 모든 현안을 ‘북한인권’과 연계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본문으로 2) John Feffer, "To Link or Not to Link: The Human Rights Question in North Korea", December 19, 2005 (www.fpif.org). 본문으로 3) 이 법은 미국 대통령이 “비민주적으로 분류된 외국국가”에 대해 미국 관할 하의 재산에 대한 동결, 국제금융기구의 지원 반대, 해당 국가의 상품과 서비스에 대한 미국 정부의 불매 조치, 미국 기업들의 해당 국가에 대한 수출 불허 등 사실상의 무역 및 금융 제재를 행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인권운동사랑방 부설 인권운동연구소 자료실 http://www.sarangbang.or.kr/bbs/list.php?board=inst2&page=7) 본문으로
신자유주의 경찰국가와 법질서는 폭력의 악순환을 부른다 소요사태의 책임은 국가와 경찰, 그리고 지배계급에게 있다1) 지난 10월 27일, 이슬람 신도들이 한 달 동안 낮 시간에 금식을 하는 라마단의 마지막 날, 주민 중 실업자가 50%에 달하고 어린이의 반수가 유급을 경험하며 불어를 할 줄 모르는 사람도 많고 경찰의 무차별적이고 모욕적인 불심검문이 아이들에게 생애 최초의 굴욕과 증오를 가르치는 파리 방리유(외곽도시) 클리시 수 부아. 한 공터에서 늦게까지 공놀이를 하던 아프리카 이민자 2세 청소년들은, 지난 10월 19일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내무장관이 교외 폭력 행위에 '가차 없는 전쟁'을 치르겠다고 선포한 이래 경찰 검문이 한층 강화되었다는 사실을 알았기에, 모욕을 피하고 한 달간 주린 배를 한시라도 빨리 채울 생각에 우회로를 택한다. 운 나쁘게 경찰과 마주친 소년들은 달리기 시작하고 그들 중 셋은 근처 송전소 쪽으로 향한다. 이들 중 한 명은 입구 외진 곳에 몸을 숨겼다가 경찰의 발소리를 듣고는 기절하고, 나머지 두 소년 지에드(17)과 바누(15)는 송전소 2.5미터 높이의 담을 넘다가 변압기에 떨어져 감전사한다. 사고가 발생하자 프랑스 언론은 "주변에 일어난 절도사건을 수사하던 경찰이 이들 소년을 용의자로 보고 검문을 하려 했을 뿐 추격전은 없었다"는 경찰의 주장을 일제히 보도한다. 그러나 사건 당일 주변 지역에서 절도사건은 없었던 것으로 드러난다. 분노한 방리유 젊은이들은 차량 23대를 불태우고 상점 등을 공격하면서 경찰과 투석전을 벌인다. 방리유 소요는 이렇게 시작된다. 사고 발생 다음날인 28일 밤, '경찰의 살인적 추격 작전'을 규탄하며 400여 명의 젊은이들이 250~300여 명의 경찰과 대치한 가운데 실탄이 경찰차에 날아들고 여기저기서 방화로 인한 화재가 발생한다. 하지만 다음날인 29일, 클리시 수 부아 시장을 비롯한 지역 정치인들과 희생자 가족 등 500여 명이 비폭력 침묵시위를 벌이고, 차량 방화는 여전했으나 시위대와 경찰의 대치상황은 없는 등 사태가 진정될 기미를 보인다. 그러나 30일 밤, 뉴스에 방영된 사르코지의 발언으로 상황은 돌변한다. 사르코지는 이날, "경찰은 (감전사한) 소년들을 추격한 바 없다"고 단언하고 도시 테러에 '똘레랑스 제로' 선언을 재확인하며, 경찰력 보강을 위해 공화국보안기동대 17개 중대와 7개 헌병 중대 배치를 명령하면서 "더 이상 순찰의 문제가 아니다… 체포다"라는 등 강경 발언을 내놓는다. 이와 함께 지난달 25일 또 다른 방리유인 아르장퇴유에서 주민과 대화를 나누던 중 무슬림들을 쓰레기라고 모욕한 사르코지의 발언이 30일 밤 저녁뉴스 시간에 수 차례에 걸쳐 방송된다. 이에 더해 사르코지는 소요현장을 초강력 분무기로 청소할 것을 주문하면서 방리유 주민들을 다시 한 번 쓰레기 취급한다. 같은 시간, 공화국 기동대의 최루탄이 클리시 수 부아의 한 이슬람 사원에 떨어진다. 격분한 신도들이 강력하게 항의했으나 경찰은 모스크에 최루탄을 발사한 일이 없다고 발뺌한다. 이처럼 명백한 도발에 분노하며 화염병과 돌을 든 방리유 젊은이들이 다시 거리로 나온다. 한편 시간이 흐르면서 소규모 그룹을 이룬, 14-20세의 마그레브나 아프리카 본토 출신 이민자 자녀들로 구성된 젊은이들의 산발적 방화와 약탈이 늘어난다. 파리를 중심으로 동서남북의 22개 교외 소도시들로 소요가 확산되고, 11월 6~7일 밤은 자동차 1,400대가 방화되고 400명이 체포된다. 파리 근교에 한정됐던 혼란은 디종을 시작으로 지방 도시까지 번져 226개 마을에서 1,173대의 차량이 화염에 휩싸이는 것으로 절정에 이르며, 심지어 독일과 벨기에 대도시의 외국인 밀집 거주지역에서 프랑스 소요사태의 모방범죄로 보이는 차량방화 사건이 발생하여 전 유럽이 긴장한다. 전국적인 소요사태가 13일째 계속된 11월 9일 프랑스 정부가 본토에서는 사상 처음으로 비상사태령을 선포한다. 야간통행금지, 집회와 결사 금지, 영장 없는 단속/체포/체포/언론/출판 통제/거주지 제한 등 민주주의와 정면으로 배치되는 항목으로 이루어진 비상사태법은 1955년 프랑스 식민지이던 알제리의 독립전쟁을 진압할 목적으로 제정된 것으로, 정부가 2-3세대 북아프리카계 이민자들을 식민지 신민으로 대하고 있음을 방증한다. 지방도시들에는 산발적인 소요가 이어지고, 경찰은 에펠탑과 샹 젤리제 대로 등 주요 지점을 위주로 삼엄한 경계 활동을 펼친다. 한편 파리 라탱 구역에서는 좌파 및 노동 단체들이 주도하는 시위가 열려 정부의 비상조치 발동을 비판하고 니콜라 사르코지 내무장관의 사퇴를 촉구한다. 8일 르파리지앵이 게재한 설문조사 결과 전체 응답자의 73%는 야간통금에 찬성한다. 또한 최근 여론조사기관 CSA가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의 75%가 정부의 '비상사태 선포'에 찬성의견을 밝히고 각종 강경 발언으로 논란이 된 사르코지 내무장관도 우파성향의 국민들에게 높은 지지를 얻는다. 급기야 사르코지는 9일 하원회의에서 "이번 소요사태에 참가했다 체포돼 유죄 판결을 받은 외국인은 체류의 합법성 여부와 관계없이 즉시 프랑스 영토에서 추방하도록 각 도지사들에게 요청했다"고 발표함으로써, (피고인이 동일범죄에 대해 이중으로 형사처벌 받을 위험을 방지하는) '이중위험'(double jeopardy) 금지의 원칙을 드러내놓고 비웃는다. 이번 소요사태를 계기로 "외국인 전원추방"을 주장하는 극우파들도 목소리를 높인다. 우파 정당 프랑스운동(MPF)의 필립 드 빌리에 당수는 지난 주 이래 "통금령을 실시하고 군대를 투입하라"고 정부를 압박한다. 또 일찍이 80년대 중반 '이민자 2백만, 실업자 2백만'이라는 악명 높은 선거구호로 반(反)이민운동을 선도하고 2002년 대선 결선투표 진출로 기염을 토했던 극우정당 국민전선(FN)의 장 마리 르펜 당수는 9일 AP와의 인터뷰에서 이민자 대량 유입이 프랑스에 재앙을 불러올 것이라는 자신의 경고가 옳았던 것으로 입증됐다면서 "프랑스 신분증이 있다고 다 프랑스인이 아니다. 프랑스를 위협하는 이민자들은 그들의 원래 나라들로 돌려보내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국민전선의 신입당원 담당 부서는 사태 발생 이후 1천여 명이 새로 가입했다고 밝힌다. 며칠 동안 침묵하던 시라크 대통령의 첫 발언은 사망사건에 대한 진상규명과 근본적인 문제해결이 아니라 법질서를 존중할 것을 호소하는 것이었다. 빌팽 총리는 11월 8일 오후 하원에 출석해 "프랑스가 진실의 순간을 맞았"으며 "우리 통합 모델의 효율성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고 말하면서도, "사회적 불평등의 원인은 부분적으로는 제대로 통제되지 못한 이민정책에 있다"면서 불법 이민을 더욱 강력하게 금지하겠다고 밝힌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법질서와 경찰논리는 모든 사회쟁점과 갈등을 압도하는 절대선의 자리에 등극한다. 시라크는 "공공질서의 회복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질서 회복은 시간이 걸릴 것이다. 오랜 노력을 필요로 한다"고 말한다. 부시 역시 테러와의 전쟁이 '끝없는 전쟁'이며 인내를 요구한다고 말했다. '이주 문제' - 사회 위기를 전가하기 위한 희생양 이번 프랑스 소요사태의 중심에는 이른바 '이주 문제'가 있다. 그러나 '이주 문제'라는 말은 그 자체로 심각한 착시현상을 일으킨다. 실업, 빈곤, 주거, 사회갈등, 범죄, 교육, 동일성, 보건, 복지 등 여러 사회 문제들이 '이주자'들의 존재 때문에 생겨나거나 악화되었다고 진단하고, 따라서 이주자들을 추방하거나 경찰적·행정적 수단에 따라 관리하면 이런 문제들이 해결될 수 있다고 처방하기 때문이다. 오늘날 이주자들은 전간기(戰間期) 유럽 특히 독일에서 유태인의 지위와 놀라울 정도로 유사하다. 민족적 나아가 유럽적 동일성을 위기에 빠뜨리고 사회를 갈등으로 몰아넣는 불순물로 전시된다는 점에서 말이다.2) 지난 20년 간 프랑스 정부는 이주자를 국가의 권위에 도전하는 '조직된 비행'으로 간주하면서, 헌법에 명시된 기본권과 정면으로 충돌하는 억압적·굴욕적 수단을 사용하는 경향 쪽으로 점점 더 이끌렸다. 좌우 간의 정권교체에도 불구하고 이 같은 정책 기조는 전혀 변하지 않았으며, 심지어 좌우파 간 격렬한 경쟁의 특권적 대상으로 등극했다. 1990년대 후반 미등록 이주자의 거대한 투쟁 앞에서 법과 행정부의 권위를 강압한 것은 다름 아닌 '좌파 총리' 조스팽이었다. 그 이후 좌우 양편에서 '세계화'의 경제적 힘, '범죄적' 이주 네트워크, 경제적 또는 문화적 특수주의, 마지막으로 '탈민족주의적' 이데올로기에 홀린 관념적 지식인과 단체가 뿌리째 흔들고 있는 민족주권 및 '공화국'을 수호하자는 반동적 이데올로기가 확고해진다. 이 이데올로기의 특권적 공격 대상은 두말할 나위 없이 이주자였다. 이른바 '민족적 공화주의'는 프랑스 사회 전반에 큰 영향을 미친다. 한편으로 사회의 해체와 공공 서비스의 위기 등의 영향에 직접적으로 노출된 교사와 경찰을 포함한 각급 수준의 공무원들이 공화국 수호의 기치 아래 국가를 중심으로 결집한다. 다른 한편 이러한 이데올로기의 영향을 받은 구체적 조치들이 뒤따른다. 법적 영역에서 가장 상징적인 것 중 하나는 '이중위험' 관행의 등장으로, 이주자들에게 법적 형벌과 추방이 함께 집행된다. 이는 시민들의 기본권이 그 국적에 따라 자의적으로 침해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거니와, 다른 기본권 특히 사회권 등으로 확대된다. 또한 국가행정 전반에 '제도적 인종주의'가 (재)도입되는데, 외국인 특히 남반구에서 온 '검둥이들'의 경우, 경찰신원조사에서 인종에 따른 분류, 강제수용소를 닮은 각종 구금, 강제추방 등 야비한 조치들에 노출된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국가주권이다. 즉 국가가 자임하는 '주권'과 경제정책·집단안보·정보기술 등에 관해 국가가 일상적으로 드러내는 무능력이 대비되는 상황에서, 국가는 극히 무력한 이주자를 희생양 삼아 자신의 권위가 건재하다는 허구를 상연함으로써 자신에 대한 불안과 불신을 권위적으로 잠재우려는 것이다. '폭력'과 '치안' 담론의 득세는 정확히 이 맥락 위에 있다. 또 다른 문제는 신자유주의 반혁명이 시민권을 축소시키는 것에 대한 대중들의 불만이다. 이를 시민권의 보편적 확대로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외국인의 권리가 열등하고 취약하며 기존 사회에 통합되었다는 징표를 반복적으로 표현함으로써만 인정받을 수 있다는 것(따라서 르펜과 사르코지가 말한 것처럼 프랑스를 위협하는 이주자들은 신분증이 있더라도 추방될 수 있다는 것)을, 외국인 특히 '남반부' 외국인을 대상으로 한 국가행정 전반의 '제도적 인종주의'를 통해 전시함으로써, 민족 구성원의 시민권이 상대적으로 안정되었다는 안도감을 주려는 것이다. 이른바 '사회통합' 담론의 뿌리로서 식민주의 동화 담론 - 되돌아온 식민주의 유산 위에서 살펴본 현상들은 단적으로 세계화 좀 더 구체적으로는 유럽통합의 '인종화'와 관련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과거 제국주의/식민주의 유산이 새로운 맥락에서 반복된다는 점이다. 우선 현재 알제리와 같은 과거 (반)식민지 영토 출신 노동자들에게, 나아가 이른바 '남반부' 노동자들 전반에게 적용되는 행정적 조치와 관행은, 프랑스 국가장치 형성의 결정적 시기에 식민지 영토에서 '토착' 인구를 대상으로 집행된 정책을 그 기원으로 한다. 방리유에 대한 도시 정책이 그렇고, 무엇보다 이번에 발동된 비상사태법이 그렇다. 다음으로, 현재 진행되는 노동이주의 흐름은 기본적으로 식민지 시대에 확립된 경로, 곧 프랑스 제국주의가 영향력을 미치던 경로를 따른다. 마지막으로 이른바 '사회통합' 담론은 기실 제국주의적인 동화 담론에서 유래한 것이다. 추상적으로 생각하는 것과 달리 통합과 차별(화)라는 통념은 서로를 배제하는 것이 아니라, 보편/특수, 공/사의 위계와 유비할 수 있는 위계를 이룬다. 이 위계의 기준이 되는 것은 물론 '공화주의'라 불리는 프랑스 민족성으로, 여기에 통합되는 정도에 따라 '문화'와 '종족(성)'이 차별적으로 범주화되어, 예컨대 '공화국 시민'과 '이등 시민', 그리고 '불법 이민'이 분할된다. 역사적으로 이 같은 위계의 목적은 식민지 토착민이 새롭게 해방된 시민으로 나아가는 가능성을 제한하고 통제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는 특수하고 사적인 것으로 분류되는 집단들에 대한 물리적·상징적 폭력 및 그로 인한 갈등 가능성을 포함한다. 동시에 이처럼 평가절하됐던 집단들이 스스로를 또 다른 보편적 상징으로 주장할 때, 과거 보편적이고 공적인 것을 점유하고 있던 집단들은 혼란과 불안에 시달리며 이를 해소하기 위한 방어적 폭력 쪽에 이끌리기 쉽다. 이주자들, 특히 무슬림 이주자들과 관련된 갈등이 특히 격렬해지는 것은, 이 같은 사회통합 담론에 내적인 불안정성에 기인하는 바 크다. 식민 유산은 탈식민화를 거치면서 사라진 것처럼 보였고 실제로 많은 변화를 겪었지만, 현 정세에서 과거 식민지 '신민'의 자리는 이주자로 대체되기에 이른다. 하지만 이 같은 위계화는 프랑스가 그렇게 자랑해 마지않는 공화제 입헌 원리와 근본적으로 모순된다. 특히 '사회권'의 경우가 상징적이다. 사회권은 본래 민족적 결속력과 노동자(로서의 권리)라는 두 가지 준거에 기초한 것이었다. 여기서 특정 민족 출신 노동자는 이 두 가지 준거 사이에서 아무런 갈등을 겪지 않는 반면, 이주자는 이 두 준거 간의 괴리를 가장 극적으로 체현한다. 민족적 소속이라는 기준을 조정하거나 상대화할 것인가, 아니면 시민권을 특정 민족적 소속에 따른 권리들의 위계로 변질시킬 것인가 하는, 시민권의 운명을 둘러싼 논쟁이 항상 이주자의 권리와 연관되어 제기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이러한 논쟁은 그러나 경제적 세계화와 새로운 불평등의 효과 때문에 반동적인 방향으로 나아가게 된다. 이 같은 재식민화는 특히 1980년대를 지나면서 본격화되는데, 여기서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이 미디어에 의해 조장되는 세계 및 인류에 대한 고정관념, 특히 남반구 인민들에 대한 체계적 평가절하였다. 세계 속에서 그들이 차지한다고 여겨지는 위치는 특정 국가 안에서 그들이 점해야 한다고 간주되는 위치로 번역되어 할당된다. 이는 각각의 인종이 고유한 문화를 가지는 바, 이를 보호하려면 문화들이 섞이지 않게 하고 '문화적 거리'를 유지해야 한다는 순수주의적 고립주의, 반-인종주의를 후방으로부터 공격하는 이른바 '차별화주의적' 신-인종주의와 결합한다. 남반부 출신 시민들은 주로 도시나 교외의 게토에 머물도록 강제되거니와, 이곳에서는 식민지 점령지에서 실행되는 행정조치가 집행되고, 종종 적나라한 경찰 폭력이 지배한다. 행정권력과 사법권력, 정치적 권위와 경찰적 권위는 체계적으로 뒤섞이고, 이는 동등한 존엄성을 갖춘 외국인의 지위라는 환상을 파괴한다. 이처럼 존엄성을 정치적으로 인정받는 공민적 권리가 부재한 상황에서, 권력은 이 '신민'들에게 예측할 수 없는 자의적 권력을 지속적으로 행사한다. 소요가 일어나기 전 클리시 수 부아에서 벌어진 일이 바로 이것이다. 이는 남한에서도 전혀 예외가 아니어서, 국가는 이주노동자들을 영장 없이 강제단속하고 고무총으로 탄압하며, 수갑과 쇠사슬을 휘감는다. 이렇듯 화려하게 부활한 식민주의의 인종 분할은 보충적인 사회적 효과를 갖는다. 우선 경제적 면에서 상당한 정도의 자국 노동력이 (비록 점점 더 취약해지고 있긴 하지만) 부분적으로 '입헌화'된 사회적 권리와 조절에 의해 보호받는 시기에, 자국 노동자들에게 경향적으로 금지된 과잉착취를 보충하는 한편 이들을 압박하는 전통적인 '산업예비군'을 재생산함으로써 자본축적을 용이하게 하는 효과가 있다. 또한 정치적 면에서 보자면, 외국인 노동자와 국내 노동자 간, 또한 외국인 노동자들 간의 종족적 분할선을 유지함으로써, 이주자들이 전통적인 계급투쟁 형태에 참여하거나, 사회적 관계가 초민족화하는 맥락에 맞게 새로운 형태를 발명해 내는 것을 방해하는 효과가 있다. 분할선을 사이에 두고 분할선 이편에 있는 방어적 대중운동은 현재 위기의 원인뿐만 아니라 그런 위기를 무력하게 겪는 스스로에 대한 절망과 미움을 분할선 저 편의 이주자들에게 투사한다. 이는 현재의 위기를 상상적으로 회피하려는 노력으로, 이 같은 정서가 강력한 한에서 대중들은 국가가 이주자들에게 가하는 물리적·상징적 폭력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이거나, 심지어 능동적으로 동참한다. 분할선 저 편에서 공적 영역에의 접근, 표현의 자유와 투쟁의 가능성을 금지 당하고 게토에 감금되는 이주자들은 개성화와 사회화가 동시에 억압되며, 따라서 식민지 상황에서 그런 것처럼 개인적·집단적 자유의 쟁취가 제약된다. 이주자들의 정치적 진출이 이들의 억압과 배제 곧 '비권리'에 기초한 착취 가능성 및 사회적 다수자의 지위를 위협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불의가 프랑스의 공적 생활을 기초하고 있다. '진실의 순간' 운운에도 불구하고 빌팽 총리의 발언이 비길 데 없이 위선적인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이주자들을 끊임없이 불법 상태로 내모는 것이 기존 프랑스의 '사회통합' 원리임에도 불구하고, 사회통합이 위기에 빠졌을 때는 이주자들의 불법 상태를 위기의 원인으로 지목하고 이들을 다시 한 번 배제함으로써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도착적 현상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비단 프랑스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고, 프랑스와 동일한 불의에 기초한 모든 국가와 사회에 확산될 잠재력을 갖는다. 문제의 전진적 해결은 오직 기존의 '사회통합' 및 '민족적 공화주의'의 도착적 효과를 반성하는 것, 정치의 민주주의적 원리에 그림자처럼 따라붙는 행정·경찰 원리 결국 식민주의를 변혁하는 것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이것이 이주자의 시민권 확대임과 동시에, 이주자들의 배제라는 불의에 기초한 기존 시민권의 개조인 한에서, 이는 분할선 양 편 모두에서 시민권이 유례 없이 확대되는 것을 의미한다. 즉 이주자들의 시민권 문제는 시민권의 위기가 아니라 오히려 시민권의 기회인 것이다. 유럽으로 확대되는 '아파르트헤이트'3) 혹자는 세계화 및 구체적으로 유럽통합이 이 같은 배타적 민족주의를 극복하는 데 긍정적일 수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현실은 정반대다. 현재의 유럽통합은 유럽 수준의 '아파르트헤이트'로 나아가고 있다. 이는 이른바 "유럽 시민권"이 유럽에서 거주의 시민권(citizenship of residence)을 확대하는 방향이 아니라, 유럽연합 소속 민족국가의 시민에게만 추가적 권리를 부여함으로써 비회원국 시민이나 회원국의 '불법' 이주자들을 다시 한 번 배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유럽연합의 시민권 논의에서 중요한 계기가 되는 마스트리히트 조약은 이방인 곧 공동체 외부에 있는 대중들의 권리를 기본적으로 부인한다. 연합 차원의 시민권이 도입되면서 이민자들의 공민권(귀화 외국인으로서의 권리, denizenship)이 발전하는 것은 봉쇄됐다. 유럽 시민권은 유럽연합 내의 한 시민이 타국으로 이주하는 경우 바로 해당 국가의 시민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가능성을 개방한 반면, 비(非)유럽인들에게는 심지어 이들이 유럽에서 태어난 경우에도 이러한 권리가 주어지지 않게 만들었다. 그리고 개별 회원국의 상이한 이민정책은 이들의 유럽시민권 획득을 더욱 어렵게 만든다. 또한 과거의 개별 국 시민과 외국인으로 양분되던 시대에서 개별 국 시민, 타 유럽 시민 그리고 외국인으로 삼분되면서 직간접적으로 외국인의 위상이 악화되었다. 이는 유럽적 아파르트헤이트, 또는 거주자(residents)의 일부를 정치적·사회적으로 배제하는 것을 승인한다. 그리고 배제된 영역에서는 경찰이 정치로부터 권한을 넘겨받는다. 이와 함께 이주자들 또는 넓은 의미에서 비유럽 이방인들에 대한 차별을 상징하는 가장 대표적 제도 중 하나가 바로 쉥겐 협약이다. 이 협약의 핵심은 간단히 말해 EU의 '역내국경'에서 모든 사람들에 대한 검색을 철폐하는 것이다. 이는 역내시장을 구축하기 위한 것임과 동시에, EU 시민으로서의 종별적 권리를 부여함으로써 유럽통합과정에 관한 시민들의 동의를 얻기 위한 것이다. 얼핏 보면 전혀 나무랄 것 없고 혁신적인 듯한 이 조치의 이면은 비유럽인들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는 것이다. 쉥겐 협약은 탈냉전 이후 동유럽을 중심으로 밀려드는 이민, 난민신청자 나아가 이주자들을 이른바 '유럽요새'에 대한 새로운 위협요소로 보고, 이에 대응하기 위해 '역외국경'에서의 검색, 비자정책의 획일화, 난민정책에서의 공조 및 경찰과 사법부문에서 초국가적 협력 등 폭력적인 통제와 진압을 처방한다. 이러한 조치는 일종의 새로운 '전쟁' 모델로서, 지역적인 폭력과 공공연한 전쟁의 세계인 동시에 '노마드적'인 노동력에 대한 착취가 급속도로 팽창하는 세계에서 고유한 정치적 기능을 행사한다. 또한 전쟁 모델 또는 전쟁 형태로의 경찰의 확대는 다름 아닌 '유럽인들' 자신에 대해 제어할 수 없는 사회적·법적 귀결을 생산한다. 즉 사회 전반에서 행정과 경찰, 심지어 전쟁 논리가 정치 논리를 대체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동시에 유럽연합, 특히 중심국들은 이주의 흐름을 지속시키길 원한다. 이들은 낮은 임금과 혹독한 규율, 극도의 불안정성에도 불구하고 주변국 노동자들이 회원국으로의 이주를 '선택'하게 만들기 위해, 이들은 유럽연합 중심국과 주변국, 또는 유럽연합에 속하지 못한 유럽의 주변국 간의 생활수준 격차를 가능한 한 오랫동안 유지하고자 한다. 유럽의 주변국은 더욱 빈곤해지고, 이 빈곤을 피해 중심국으로 들어온 노동자들은 '중심 안의 주변', '제 1세계 안의 제 3세계'를 형성한다. 프랑스 방리유보다 이 말에 잘 들어맞는 공간이 어디 있겠는가? 이렇듯 도처의 '경계지대'에 이주자들이 있다. 개별 국가 안에서 '소수자'인 이주자들이 전 유럽 차원에서 보면 유럽연합의 '16번째 회원국'이라 불릴 정도의 '다수자'로 등장한다. 각 국가들이 이주자에 대해 불안을 느끼는 것, 특히 이번 소요사태를 두고 전 유럽이 확대가능성에 대해 긴장한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많은 이들이 이주자를 1848년 당시 마르크스가 유럽을 배회한다고 말한 '유령', 각 국의 지배계급을 공포에 떨게 만든 '위험계급'과 비교하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이렇듯 오늘날 이주자가 유럽의 새로운 유령으로 돌아온다면, 동시에 이를 쫓기 위한 '신성동맹'과 이 '위험계급'에 대한 살육도 되돌아오는 것이 아닐까? 우리는 미처 알아채지 못하는 사이에, 유럽의 이데올로기 지형을 바꿔 놓는 거대한 '사건'을 막 지난 것인지도 모른다. 갈등의 범죄화는 더 큰 불의와 폭력을 부를 뿐이다 프랑스 소요사태는 비단 프랑스만의 문제가 아니다. 이는 경제위기와 세계화 속에서 계급 간·지역 간 불평등이 극도로 심화되는 한편 기존의 민족국가가 위기에 빠질 때, 그 원인을 적합하게 인식하고 발본적으로 변혁하기보다 방어적이고 행정적으로 대응함으로써 생겨난 극단적 결과다. 신자유주의가 불평등과 배제를 심화시킴과 동시에 이렇게 발생한 문제를 행정적·경찰적으로 다루는 '배제에 기반한 관리주의'라고 한다면, 이는 신자유주의를 채택하는 모든 국가가 공통적으로 직면할 수 있는 위험이다. 우리 사회에서도 어느 날부터인가 '정치논리와 이념'을 배제하고 '시장원리와 전문가'의 지도에 따라 '민생정치'와 '사회적 합의·통합'에 주력하자는 담론이 좌/우, 진보/보수 세력을 막론하고 세를 얻어가고 있다. 하지만 이것이야말로 오늘날 프랑스 소요사태의 구조적 원인이 되는 관리주의의 핵심 논리로, 이는 정치를 말의 강한 의미에서 '통치'와 '치안'으로 타락시킨다. 관리주의는 이른바 '이데올로기의 종언', 즉 계급투쟁과 여타 갈등 형태의 정당성을 발본적으로 부정하는 것에서 출발한다. 정치 적어도 민주주의 정치가 갈등의 생산성을 인정한다면, 행정의 논리는 갈등을 기본적으로 부정적인 것으로 폄하하는 가운데 합의와 통합을 지향한다. 그러나 갈등과 근본적 차이에 대한 몰인정 및 법질서적 접근, 결국 갈등과 차이의 범죄화는 자신들을 그 상태로 밀어 넣은 지배계급과 엘리트에게 오히려 쓰레기 취급을 받는 대중들의 격분을 초래한다. 만일 대중들에게 어떤 정치적·공적 해결책도 주어져 있지 않다면, 대중들이 존엄성의 침해에 대한 격분을 표현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폭력이다.4) 이번 프랑스 소요 사태에서 우리는 이 같은 대중들의 분노를 목격한다. 하지만 이러한 분노는 역설적으로 법질서적이고 경찰적인 논리를 더욱 강화시키는 것으로 흡수된다. 실제로 이번 사르코지의 대응에서 보듯, 경찰논리의 대변자들은 갈등을 범죄화하여 대항폭력을 도발한 후, 그렇게 유발된 대항폭력과 이 폭력에 대해 느끼는 대중들의 불안에 힘입어, 이른바 '예방폭력'으로서 자신의 폭력을 사후적으로 정당화한다. 각종 설문조사 결과 프랑스 시민들의 70% 이상이 정부의 '비상사태 선포'에 찬성하고, 법질서적 접근을 지지하며, 르펜당에 며칠 사이 1000명 이상 가입하는 것을 보라. 이것이 바로 신자유주의 시대, 지배계급들이 취약한 정당성을 보충하는 방식이다. 또한 갈등을 '법질서'를 해치는 '범죄'로 바라봤을 때, 우리 스스로 빠질 수 있는 반동화의 위험이다. 따라서 가장 우선적으로 확인되어야 하는 것은, 이 사건으로 등장한 대중들의 비참한 조건을 법질서와 경찰논리의 이름으로 억압하고 은폐하지 않으면서, 똑바로 대면하는 것이다. 프랑스 정부의 비상사태 선포는 사태를 악화시킬 뿐으로, 즉각 철회되어야 한다. 그리고 이들의 절망적인 외침에 응답하면서, '사회통합'을 되뇌는 것이 아니라 그들을 구조적으로 억압하고 배제한 기존 사회를 변혁하고, 그 사회 안에서 안락하지만 불의한 지위를 부여받았던 스스로의 존재 자체를 변화시키는 것이다. 하지만 동시에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하는 것은 점점 더 야만적이고 경찰적으로 변하는 국가 개입이 일종의 '상수'로서 개입하여, 대중들의 분노 및 폭력의 악순환을 도발한다는 점이다. 따라서 위의 과제와 함께 무엇보다 긴급하게 제기되어야 하는 것은 법질서와 경찰을 앞세워 폭력을 악화시키는 국가와 지배계급의 폭력에 맞서는 것이다. 이는 이미 벌어진 사안에 대한 대처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특정 사안의 전개를 선제적으로 규정하는 폭력의 구조 자체에 맞서는 것이다. 이것이 클리시 수 부아의 비극, 우리 사회에서 더 비참하게 고통받고 모욕당하는 이주노동자들, 그리고 정치적으로 배제되고 사회적으로 억압받는 수많은 '프롤레타리아'에 대해 우리가 져야 하는 책임이다. [각주] 1) 아래 사건 경과는 주로 박영신,「"우린 당신들의 개가 아니다" '불타는 프랑스' 이유 있었다」,『오마이뉴스』11월 8일자를 주로 참고했다. 이 기사는 인터넷에서 구할 수 있는 자료 중 사건 경과를 가장 세심하게 다루고 있고 특히 소요사태에서 프랑스 지배계급의 도발이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거의 유일하게 분석하고 있다. 뒤늦게나마 박영신 기자에게 감사 드린다. 한편 아래 대부분의 분석은 E. Balibar, Droit de cit or Apartheid?, We, the People of Europe?, Princeton University Press를 참고했다. 이와 함께 참고할 만한 분석은 엄한진,「프랑스 이민자 사회의 봉기, 그 원인은?」,『인권하루소식』제 2935호(05.11.12), 손영우,「도시 소요와 기로에 선 프랑스 신자유주의」,『프로메테우스』11월 21일자를 보라.본문으로 2) E. Balibar, Racism and Crisis, Race, Nation, Class, Verso 1991, 219-220pp.본문으로 3) 이에 관한 좀 더 자세한 분석은 강국,「유럽헌법조약부결과 정치이념논쟁」,『사회운동』2005년 7/8월호를 보라. 본문으로 4) 지난 번『사회화와 노동』287호에서 필자는 이번 사태가 "극단적이고 자기파괴적이며 '주소 없는' 폭력"으로서 성격을 가지고 있다고 서술했는데, 이는 근거 없는 부적합한 평가였다. 손영우의 글에서 인용된 소요참가자들의 TV 인터뷰에 따르면, 이들이 방화의 대상으로 삼은 곳은 보험을 통해 일정 정도의 보상금을 받을 수 있는 자동차, 불평등한 공공서비스의 대표 격인 대중교통, 다른 지역에 비해 빈약한 투자로 인해 시설이 낡은 학교, 체육관을 비롯한 관공서, 낙후된 지역에 세워 많은 세금혜택을 챙기면서도 이 동네 사람들을 고용하는데 인색했던 대기업 상점 등으로, 분명한 사회적 성격을 띠고 있었다. 손영우, 앞의 글 을 참조하라.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