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안세계화운동은 인민주의 정치에 대한 대안이다 오늘날 자본축적의 위기는 정치의 위기를 수반한다. 이는 한편으로는 기술관료의 지배로, 다른 한편으로는 정치적 쟁점을 호도하는 인민주의 세력의 득세로 나타난다. 이는 세계 각지에서 다양한 형태로 모습을 드러낸다. 미국에서는 1980년대에 들어서면서 자유주의가 쇠퇴하고, 가족과 공동체의 가치를 주창하면서 개인의 권리를 공격하는 보수주의가 맹위를 떨치고 있다. 또한 유럽에서는 인종적․지방적 동일성에 기초하여 민족국가의 분리 또는 통합을 주장하는 ꡐ극우정당ꡑ(이탈리아 북부동맹의 북부 분리주의나 오스트리아 자유당의 범게르만주의 통합)이 반이민․반세계화를 쟁점으로 세력을 확장하고 있다. 영국도 예외는 아니다. 노동당은 ꡐ무지개정당ꡑ을 내세우며 정당과 노동자조직의 연계를 해체하고 블레어를 정점으로 한 기술관료 집단의 사당(私黨)으로 변모하고 있는 중이다. 그러나 인민주의 정치스타일이 가장 극명하게 드러나는 지역은 라틴 아메리카다. 1980년대 외채위기를 경과하면서 신자유주의 정책개혁을 수용하게 된 라틴 아메리카 지역에서는 인민주의 정치 지도자들이 등장하여 신자유주의 정책개혁에 수반되는 대중적 불만을 무마하고 사회운동의 진출을 가로막고 있다. 특히 사회운동 정당의 모형이 된 브라질 노동자당은 다른 나라의 인민주의 정치지도자를 대신해 신자유주의 정책개혁을 수행하고 있다. 이처럼 세계적인 경제위기, 그리고 이에 수반하는 정치의 위기가 보편화됨에 따라 인민주의 정치스타일이 만개하고 있다. 『인민주의 비판』의 저자들은 혼란스럽게 사용되는 인민주의라는 용어를 현재 정치현상을 분석할 수 있는 개념으로 바꾸기 위해 인민주의에 대한 이념적, 역사적 분석을 시도한다. 특히 역사적으로 반복되지만 다른 형태로 등장하는 인민주의를 분석하여 그것의 고유한 성격을 규정하고, 1980년대 이후 유럽(특히 이탈리아)과 라틴 아메리카(특히 아르헨티나)에서 새롭게 등장한 인민주의의 성격을 규명한다. 1. 인민주의를 어떻게 개념화할 수 있나? 우선, 인민주의는 자본주의 축적체계의 위기, 세계 헤게모니의 위기에 대한 정치적 대응으로 볼 수 있다. 19세기 후반 미국과 러시아의 농민적 인민주의는 영국헤게모니의 전환점인 1870년대 대불황과 함께 나타난다. 20세기 후반 유럽과 라틴 아메리카의 정치가적 인민주의는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에 대한 대중의 저항을 무마하기 위한 대중조작적 정치의 성격을 띤다. 한편 전간기에 등장한 유럽의 파시즘과 1940-50년대 라틴 아메리카의 코퍼러티즘적 인민주의는 영국의 고도금융을 중심으로 한 ꡐ자유무역 제국주의ꡑ의 최종적 붕괴와 대안적인 세계 헤게모니의 부재, 즉 미국 헤게모니가 아직 확립되지 못한 상황에서 등장했다. 이렇게 위기를 배경으로 등장하는 인민주의에는 보수주의, 자유주의, 사회주의와 같은 현대 정치이념들이 담고 있는 체계적인 이념이나 전략이 부재하다. 특히 인민주의는 헤게모니 이념으로서 자유주의를 거부한다. 인민주의는 모든 권력의 정당성의 근원인 인민에게 호소함으로써 기존 정치에 대한 불만을 효과적으로 동원하지만 인민주의에는 ꡐ권리의 주체로서 개인ꡑ이라는 사고가 포함되어 있지 않다. 인민주의가 전제하는 인민의 공동체는 권리의 주체로서 개인들의 연합이 아니라 지방적․인종적 동일성에 기초하거나 ꡐ좋았던 옛날ꡑ의 신화에 호소하는 유기체적 공동체다. 이는 이질적인 적에 대한 배제를 통해 부정적인 방식으로 공동체의 경계를 규정하도록 하며, 권리의 주체로서 개인을 부정하므로 카리스마적인 지도자에 의한 전제적 지배를 낳기도 한다. 요컨대 인민주의는 자본축적의 위기와 이것이 수반하는 헤게모니의 위기 상황에서 등장하여 ꡐ인민ꡑ을 동원하지만, 개인의 권리를 위한 집단적 운동이자 사회적 갈등의 대의 과정으로서 정치를 부정하는 ꡐ반(反)정치의 정치ꡑ이며, 따라서 인민의 권리와 자율적 대중운동을 파괴한다. 2. 코퍼러티즘적 인민주의와 정치가적 인민주의 보수언론의 지면을 통해 노무현 정부를 ꡐ파퓰리즘ꡑ으로 규정하고 이를 비판하는 기사를 종종 볼 수 있다. 이는 노무현정부의 대중동원 스타일이나 사회정책이 정책적 일관성보다는 인기영합주의에 기울어 있고, 따라서 1940-50년대 라틴 아메리카의 인민주의 정책의 오류를 반복한다고 비판하려는 의도를 담고 있다. 그러나 보수언론의 이러한 규정은 ꡐ인민주의=좌파ꡑ라는 식의 낙인찍기일 뿐, 어떠한 분석적 근거도 결여하고 있다. 1990년대 이후로 과거 라틴 아메리카의 코퍼러티즘적 인민주의는 해체되었다. 오히려 현재 전면에 부상한 것은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의 우위를 기꺼이 승인하는 정치가적 인민주의다. 현재 노무현 정부의 정책․전략은 더 이상 코퍼러티즘이 불가능한 상황에서 등장한 라틴 아메리카의 정치가적 인민주의와 훨씬 유사하다. 코포라티즘적 인민주의와 정치가적 인민주의의 차이점을 확인하기 위해 라틴 아메리카의 사례를 자세히 살펴보자. 1940년대 라틴 아메리카의 인민주의는 지역적 헤게모니의 공백 상태에서 등장했다. 당시 미국은 유럽에 대한 마셜플랜과 동아시아 지역의 발전 지원에 초점을 맞추었고 1950년대까지 미국의 라틴 아메리카 전략은 분명하지 않았다. 또한 라틴 아메리카 대부분에서 의회제도는 토지귀족 세력의 과두제를 실현하는 기제에 지나지 않았고, 이는 인민주의 정치가 성장할 배경이 되었다. 이때 라틴 아메리카의 인민주의 정치지도자들은 전통적인 토지귀족과 타협하고 신흥 산업자본가와 노동자와 제휴하며 국내 산업발전에 기초한 민족적 발전전략을 추구했다. 그들은 제국주의를 적으로 설정했고 열정적인 민족주의에 호소했으며, 월스트리트의 자금을 조달하는 과두제 지배집단의 특권을 공격했다. 하지만 인민주의자들은 근본적인 변혁을 지향하지 않았고 특히 인민주의 정부는 자율적인 노동자운동을 억압하고 노동조합을 국가기구로 통합하는 코퍼러티즘 전략을 실현했다. 라틴 아메리카의 코퍼러티즘은 1930년대 유럽 파시즘의 ꡐ국가ꡑ 코퍼러티즘처럼 의회를 완전히 철폐하지는 않았지만, 서유럽에서 재확립된 ꡐ사회ꡑ 코퍼러티즘과 달리 노동자조직의 자율성이 매우 낮았다. 라틴 아메리카 인민주의는 국가가 승인한 노동조합에게는 임금교섭과 복지혜택이라는 당근을 제공했지만, 그렇지 않은 노동자운동은 철저히 억압하는 이중적 전략을 구사했다. 하지만 1960년대 미국의 법인기업이 해외직접투자의 형태로 라틴아메리카에 진출하고 케네디 정부가 ꡐ진보를 위한 동맹ꡑ을 결성하면서 미국은 라틴 아메리카 각 나라의 군부를 내세워 좌파를 고무할 수도 있는 인민주의 정권을 제거한다. 군사정부의 경제정책은 초민족 법인기업의 자유를 보장하는 데 주력했고, 농업․광업 수출을 제외한 제조산업의 발전은 저지된다. 1980년대 라틴 아메리카 외채위기로 인해 경제위기 관리를 위한 문민화가 진행되었고, 이 때 라틴 아메리카의 인민주의가 새롭게 부활한다. 그들은 군사정부의 정치적 억압과 경제적 실패를 공격했고, 외채위기에 대한 국제통화기금(IMF)의 처방을 비판하면서 코퍼러티즘적 인민주의에 호소하는 선거전략으로 집권에 성공한다. 예컨대 페루의 가르시아는 경제 제국주의에 대항하여 국가와 민족자본, 민중부문의 광범위한 ꡐ연대협약ꡑ을 조직했고, 민족자본에게는 보조금을 지급하고 민중부문에게는 재분배정책을 실시해 수입대체산업화와 국내시장 부양을 꾀한다. 그러나 1980년대에 코포라티즘적 인민주의를 부활시키려는 정책은 재정적자, 외채, 인플레이션, 자본도피와 같은 경제위기 현상을 극복하지 못했고, 1990년대 인민주의 지도자들은 신자유주의 반대에서 적극적인 수용으로 변신했다. 1990년대 대표적인 인민주의 지도자로는 아르헨티나의 메넴, 브라질의 콜러, 페루의 후지모리, 멕시코의 살리나스, 베네주엘라의 페레스를 들 수 있다. 바로 이들은 정치이념을 분명하게 제시하지 않으면서 인민이라는 통념의 모호성을 활용해 대중의 지지를 획득하려는 정치스타일에 의존한다는 점에서 그들을 정치가적 인민주의로 규정할 수 있다. 그들은 선거전략으로 인민주의의 수사와 동원을 활용했다. 특히 그들은 무능하고 부패한 기존 정치인(정치가와 공무원)들과 특권집단(여기에는 특수이익을 추구하는 노동조합도 포함된다)을 제일의 적으로 설정했고, 자신은 부패한 정치계급으로부터 자유로운 제3세력임을 선언했다. 또한 집권하면 외채상환이나 긴축정책과 같은 신자유주의 정책을 중단할 것이라고 공약했다. 그러나 그들은 국가기구, 의회, 정당을 무력화하고, 포고령이나 긴급조치와 같은 수단을 동원해 신자유주의 개혁을 강행했다 (심지어 1992년 후지모리는 의회를 폐쇄했다). 그러면서 노사정합의 또는 연대협정을 통해 노동조합 지도부를 선별적으로 포섭하여 코퍼러티즘의 외양은 유지하지만, 노동조합의 조직 토대와 협상력은 크게 떨어지고 노동조합은 분열된다. 한편 인민주의 정부는 대중적 지지를 유지하기 위해 도시 비공식부문과 농촌 빈민층을 대상으로 하는 ꡐ목표수혜ꡑ 프로그램을 실시했다. 칠레의 사회투자연대기금과 멕시코의 사회연대기금이 대표적인 예인데, 이는 코퍼러티즘 방식과 달리 ꡐ부자와 빈자의 자발적 연대ꡑ라는 형태를 취하고, 대통령이 구호자금을 직접 모금, 전달함으로써 인민의 지도자라는 수사를 강화한다. 3. 노무현 정부의 정치가적 인민주의와 사회운동 노무현 정부의 등장과 집권 후 정책, 전략을 살펴보면 이는 이탈리아 베를루스코니나 라틴 아메리카의 정치가적 인민주의와 놀랍게도 유사하다. 사상 유례가 없는 여론조사를 통한 대선후보 결정, ꡐ반창연대ꡑ라는 네가티브 선거전략, 미디어의 적극적인 활용, ꡐ정의로운 세상ꡑ이나 ꡐ국민통합ꡑ과 같은 모호한 구호에 호소하는 방식은 다른 인민주의 정치가의 선거전략과 몹시 닮은 것이다. 또한 불법 대선자금이 한나라당에 비할 바 없이 적다는 10분 1 발언, 재신임 선언, 탄핵을 불사하거나 심지어 유도하며 선거법 위반 공방을 돌파하려는 정치행동은 대통령 개인에 대한 대중의 지지로 사태를 봉합하고, '나는 차악(lesser evil)이고 상대방이 진정 악의 두목이다ꡐ라는 전형적인 정치가적 인민주의의 도식을 활용한다 (물론 이러한 선거기법이나 정치스타일은 세계적으로 보편화되고 있다). 또한 비정규직 노동자의 불행은 정규직 노동자의 이기심 때문이라며 노동자조직을 공격하며, 동시에 노동자조직을 선별적으로 분할/포섭하려는 노사정테이블을 추진한다. 간접세에 대한 의존도를 높여서 약간의 복지재원으로 특정 층을 겨냥한 복지정책을 입안한다. 결국 정치 스타일뿐만 아니라 통치기법 자체가 정치가적 인민주의의 모형과 동일하다. 1) 이런 분석에서 볼 때 노무현정부와 한국사회의 미래에 대해 어떤 시사점을 얻을 수 있을까? 첫째, 인민주의는 안정적인 '대중적 토대'에 기초한 것이 아니다. 인민주의는 미국 민주당의 장기적인 집권 기반이 된 ‘뉴딜연합’처럼 헤게모니 연합(자유주의 연합)을 형성할 수 없고 따라서 인민주의에 기초한 대중동원은 극히 휘발성이 강하다. 노무현 정부는 집권과 통치를 위해 ꡐ비즈니스 네트워크ꡑ로 전환한 386세대, ꡐ개혁적ꡑ 지식인과 기술관료적 NGO, 화이트칼라 노동자를 포함한 노동자 대중의 일부 상층부의 명예욕과 실리주의를 자극하고, 청년층 도시프롤레타리아의 감정적인 지지를 일시적으로 이끌어 내고, IMF 구제금융협약 이후 위기에 빠진 지역들의 소외감을 자극함으로써 일시적인 지지층을 형성했다. 그러나 이는 특정한 정치이념을 보유한 다계급연합이 아니라 계급형성을 봉쇄하는 ꡐ탈계급연합ꡑ일 뿐이며 사상누각처럼 불안정하다. 노무현 정부는 선거구제 개편을 통해 전국정당화를 이루고 (내각제) 개헌으로써 위한 제도화를 꿈꾸지만 선거구제 개편과 개헌이 곧바로 안정적 지지층의 형성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이를 실현하기 위해서조차 인민주의적 동원을 반복해야만 한다. 따라서 노무현 정부와 후임자들은 인민주의적 정치스타일과 통치기법을 더욱 강화할 것이다. 둘째, 인민주의는 고유한 정치이념이나 전략이 없고 오늘날에는 오히려 기술관료적 ꡐ합리성ꡑ과 ꡐ전문성ꡑ으로 치장한 신자유주의 정책개혁을 추종한다. 인민주의 정치는 의회나 정당을 우회하여 이로부터 분리된 대통령 비서진이나 자문단에 의존해 정책을 입안하고 행정부의 강력한 권력에 기대어 신자유주의를 실행한다. 이를 합리화하는 수단은 미디어와 전문가 NGO다. 초민족 자본이나 재벌은 이러한 경로를 통해 좀 더 쉽게 정책입안 과정에 접근한다. 그들은 더 이상 특정 정당을 자신의 이해 대변자로 여겨 로비를 펼치는 게 아니라, 국제금융기구나 각종 경제공동체(유럽연합, 아펙 등등)에 직접 참여하거나 싱크탱크를 운영하여 기술관료를 배출한다 (최근 삼성과 노무현 정부의 밀월관계는 이러한 변화를 반영한다). 이러한 조건에서 대중들은 선거에서 어떤 정당을 선택할 권리는 있으나, 그들이 무엇을 할지 통제할 수 있는 권리는 박탈된다. 따라서 국가에 의존하는 사회운동의 전략은 위기에 처한다. 셋째, 인민주의가 구사하는 사회정책은 국가온정주의라는 보수주의에 훨씬 더 가깝다. 1930년대 국가 코퍼러티즘뿐만 아니라 전후 서구에 재확립된 사회 코퍼러티즘도 비스마르크의 보수주의나 파시즘적 경제학에 기원을 둔다. 인민주의 사회정책은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을 실행하는 수단으로서 종속적 의미만 지닌다. 따라서 ꡐ완전고용ꡑ과 같은 케인즈주의 목표는 제거되고, 장기 실업층을 산업예비군으로 포섭하려는 사회정책이 ꡐ국민통합ꡑ이라는 국가온정주의적 시혜의 형태로 제공된다. 그러나 국가의 시혜에 의존하라는 인민주의 정책은 노동자운동, 사회운동의 자율성을 해체하는 수단으로도 활용된다. 넷째, 정당과 의회를 우회하는 대중동원과 기술관료적 전문성의 활용을 위한 인민주의의 효과적인 수단 중의 하나가 바로 전문가 NGO다. 그들은 국가기구의 역할을 대행하지만, 지식이라는 고유한 수단을 통해서 대중의 지성을 박탈하고 전문가 독점을 강화한다. 한국에서 NGO 운동은 점차 이런 역할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있으며, ꡐ소수주주운동ꡑ(기관투자가, 금융자본의 이해 보장)부터 사회양극화 해소 국민연대 결성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대안세계화운동은 신자유주의와 인민주의에 대항하는 운동이자 노동자운동, 사회운동의 해체와 NGO 독점을 비판하는 운동으로서 자기 역할을 찾을 수 있다. 1) 노무현 정부의 인민주의에 대해서는 월간 『사회진보연대』에 실린 지난 기사들을 참조할 수 있겠다. 「노무현 정권의 출범과 정책개혁의 전망」(2003년 1월), 「한국사회의 위기와 사회운동의 도전」(2004년 1월), 「대통령 탄핵사태의 본질과 대응방향」(2004년 4월), 「총선결과 분석과 사회운동의 과제」(2004년 5월)를 보라. 본문으로
대안세계화운동은 인민주의 정치에 대한 대안이다 오늘날 자본축적의 위기는 정치의 위기를 수반한다. 이는 한편으로는 기술관료의 지배로, 다른 한편으로는 정치적 쟁점을 호도하는 인민주의 세력의 득세로 나타난다. 이는 세계 각지에서 다양한 형태로 모습을 드러낸다. 미국에서는 1980년대에 들어서면서 자유주의가 쇠퇴하고, 가족과 공동체의 가치를 주창하면서 개인의 권리를 공격하는 보수주의가 맹위를 떨치고 있다. 또한 유럽에서는 인종적․지방적 동일성에 기초하여 민족국가의 분리 또는 통합을 주장하는 ꡐ극우정당ꡑ(이탈리아 북부동맹의 북부 분리주의나 오스트리아 자유당의 범게르만주의 통합)이 반이민․반세계화를 쟁점으로 세력을 확장하고 있다. 영국도 예외는 아니다. 노동당은 ꡐ무지개정당ꡑ을 내세우며 정당과 노동자조직의 연계를 해체하고 블레어를 정점으로 한 기술관료 집단의 사당(私黨)으로 변모하고 있는 중이다. 그러나 인민주의 정치스타일이 가장 극명하게 드러나는 지역은 라틴 아메리카다. 1980년대 외채위기를 경과하면서 신자유주의 정책개혁을 수용하게 된 라틴 아메리카 지역에서는 인민주의 정치 지도자들이 등장하여 신자유주의 정책개혁에 수반되는 대중적 불만을 무마하고 사회운동의 진출을 가로막고 있다. 특히 사회운동 정당의 모형이 된 브라질 노동자당은 다른 나라의 인민주의 정치지도자를 대신해 신자유주의 정책개혁을 수행하고 있다. 이처럼 세계적인 경제위기, 그리고 이에 수반하는 정치의 위기가 보편화됨에 따라 인민주의 정치스타일이 만개하고 있다. 『인민주의 비판』의 저자들은 혼란스럽게 사용되는 인민주의라는 용어를 현재 정치현상을 분석할 수 있는 개념으로 바꾸기 위해 인민주의에 대한 이념적, 역사적 분석을 시도한다. 특히 역사적으로 반복되지만 다른 형태로 등장하는 인민주의를 분석하여 그것의 고유한 성격을 규정하고, 1980년대 이후 유럽(특히 이탈리아)과 라틴 아메리카(특히 아르헨티나)에서 새롭게 등장한 인민주의의 성격을 규명한다. 1. 인민주의를 어떻게 개념화할 수 있나? 우선, 인민주의는 자본주의 축적체계의 위기, 세계 헤게모니의 위기에 대한 정치적 대응으로 볼 수 있다. 19세기 후반 미국과 러시아의 농민적 인민주의는 영국헤게모니의 전환점인 1870년대 대불황과 함께 나타난다. 20세기 후반 유럽과 라틴 아메리카의 정치가적 인민주의는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에 대한 대중의 저항을 무마하기 위한 대중조작적 정치의 성격을 띤다. 한편 전간기에 등장한 유럽의 파시즘과 1940-50년대 라틴 아메리카의 코퍼러티즘적 인민주의는 영국의 고도금융을 중심으로 한 ꡐ자유무역 제국주의ꡑ의 최종적 붕괴와 대안적인 세계 헤게모니의 부재, 즉 미국 헤게모니가 아직 확립되지 못한 상황에서 등장했다. 이렇게 위기를 배경으로 등장하는 인민주의에는 보수주의, 자유주의, 사회주의와 같은 현대 정치이념들이 담고 있는 체계적인 이념이나 전략이 부재하다. 특히 인민주의는 헤게모니 이념으로서 자유주의를 거부한다. 인민주의는 모든 권력의 정당성의 근원인 인민에게 호소함으로써 기존 정치에 대한 불만을 효과적으로 동원하지만 인민주의에는 ꡐ권리의 주체로서 개인ꡑ이라는 사고가 포함되어 있지 않다. 인민주의가 전제하는 인민의 공동체는 권리의 주체로서 개인들의 연합이 아니라 지방적․인종적 동일성에 기초하거나 ꡐ좋았던 옛날ꡑ의 신화에 호소하는 유기체적 공동체다. 이는 이질적인 적에 대한 배제를 통해 부정적인 방식으로 공동체의 경계를 규정하도록 하며, 권리의 주체로서 개인을 부정하므로 카리스마적인 지도자에 의한 전제적 지배를 낳기도 한다. 요컨대 인민주의는 자본축적의 위기와 이것이 수반하는 헤게모니의 위기 상황에서 등장하여 ꡐ인민ꡑ을 동원하지만, 개인의 권리를 위한 집단적 운동이자 사회적 갈등의 대의 과정으로서 정치를 부정하는 ꡐ반(反)정치의 정치ꡑ이며, 따라서 인민의 권리와 자율적 대중운동을 파괴한다. 2. 코퍼러티즘적 인민주의와 정치가적 인민주의 보수언론의 지면을 통해 노무현 정부를 ꡐ파퓰리즘ꡑ으로 규정하고 이를 비판하는 기사를 종종 볼 수 있다. 이는 노무현정부의 대중동원 스타일이나 사회정책이 정책적 일관성보다는 인기영합주의에 기울어 있고, 따라서 1940-50년대 라틴 아메리카의 인민주의 정책의 오류를 반복한다고 비판하려는 의도를 담고 있다. 그러나 보수언론의 이러한 규정은 ꡐ인민주의=좌파ꡑ라는 식의 낙인찍기일 뿐, 어떠한 분석적 근거도 결여하고 있다. 1990년대 이후로 과거 라틴 아메리카의 코퍼러티즘적 인민주의는 해체되었다. 오히려 현재 전면에 부상한 것은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의 우위를 기꺼이 승인하는 정치가적 인민주의다. 현재 노무현 정부의 정책․전략은 더 이상 코퍼러티즘이 불가능한 상황에서 등장한 라틴 아메리카의 정치가적 인민주의와 훨씬 유사하다. 코포라티즘적 인민주의와 정치가적 인민주의의 차이점을 확인하기 위해 라틴 아메리카의 사례를 자세히 살펴보자. 1940년대 라틴 아메리카의 인민주의는 지역적 헤게모니의 공백 상태에서 등장했다. 당시 미국은 유럽에 대한 마셜플랜과 동아시아 지역의 발전 지원에 초점을 맞추었고 1950년대까지 미국의 라틴 아메리카 전략은 분명하지 않았다. 또한 라틴 아메리카 대부분에서 의회제도는 토지귀족 세력의 과두제를 실현하는 기제에 지나지 않았고, 이는 인민주의 정치가 성장할 배경이 되었다. 이때 라틴 아메리카의 인민주의 정치지도자들은 전통적인 토지귀족과 타협하고 신흥 산업자본가와 노동자와 제휴하며 국내 산업발전에 기초한 민족적 발전전략을 추구했다. 그들은 제국주의를 적으로 설정했고 열정적인 민족주의에 호소했으며, 월스트리트의 자금을 조달하는 과두제 지배집단의 특권을 공격했다. 하지만 인민주의자들은 근본적인 변혁을 지향하지 않았고 특히 인민주의 정부는 자율적인 노동자운동을 억압하고 노동조합을 국가기구로 통합하는 코퍼러티즘 전략을 실현했다. 라틴 아메리카의 코퍼러티즘은 1930년대 유럽 파시즘의 ꡐ국가ꡑ 코퍼러티즘처럼 의회를 완전히 철폐하지는 않았지만, 서유럽에서 재확립된 ꡐ사회ꡑ 코퍼러티즘과 달리 노동자조직의 자율성이 매우 낮았다. 라틴 아메리카 인민주의는 국가가 승인한 노동조합에게는 임금교섭과 복지혜택이라는 당근을 제공했지만, 그렇지 않은 노동자운동은 철저히 억압하는 이중적 전략을 구사했다. 하지만 1960년대 미국의 법인기업이 해외직접투자의 형태로 라틴아메리카에 진출하고 케네디 정부가 ꡐ진보를 위한 동맹ꡑ을 결성하면서 미국은 라틴 아메리카 각 나라의 군부를 내세워 좌파를 고무할 수도 있는 인민주의 정권을 제거한다. 군사정부의 경제정책은 초민족 법인기업의 자유를 보장하는 데 주력했고, 농업․광업 수출을 제외한 제조산업의 발전은 저지된다. 1980년대 라틴 아메리카 외채위기로 인해 경제위기 관리를 위한 문민화가 진행되었고, 이 때 라틴 아메리카의 인민주의가 새롭게 부활한다. 그들은 군사정부의 정치적 억압과 경제적 실패를 공격했고, 외채위기에 대한 국제통화기금(IMF)의 처방을 비판하면서 코퍼러티즘적 인민주의에 호소하는 선거전략으로 집권에 성공한다. 예컨대 페루의 가르시아는 경제 제국주의에 대항하여 국가와 민족자본, 민중부문의 광범위한 ꡐ연대협약ꡑ을 조직했고, 민족자본에게는 보조금을 지급하고 민중부문에게는 재분배정책을 실시해 수입대체산업화와 국내시장 부양을 꾀한다. 그러나 1980년대에 코포라티즘적 인민주의를 부활시키려는 정책은 재정적자, 외채, 인플레이션, 자본도피와 같은 경제위기 현상을 극복하지 못했고, 1990년대 인민주의 지도자들은 신자유주의 반대에서 적극적인 수용으로 변신했다. 1990년대 대표적인 인민주의 지도자로는 아르헨티나의 메넴, 브라질의 콜러, 페루의 후지모리, 멕시코의 살리나스, 베네주엘라의 페레스를 들 수 있다. 바로 이들은 정치이념을 분명하게 제시하지 않으면서 인민이라는 통념의 모호성을 활용해 대중의 지지를 획득하려는 정치스타일에 의존한다는 점에서 그들을 정치가적 인민주의로 규정할 수 있다. 그들은 선거전략으로 인민주의의 수사와 동원을 활용했다. 특히 그들은 무능하고 부패한 기존 정치인(정치가와 공무원)들과 특권집단(여기에는 특수이익을 추구하는 노동조합도 포함된다)을 제일의 적으로 설정했고, 자신은 부패한 정치계급으로부터 자유로운 제3세력임을 선언했다. 또한 집권하면 외채상환이나 긴축정책과 같은 신자유주의 정책을 중단할 것이라고 공약했다. 그러나 그들은 국가기구, 의회, 정당을 무력화하고, 포고령이나 긴급조치와 같은 수단을 동원해 신자유주의 개혁을 강행했다 (심지어 1992년 후지모리는 의회를 폐쇄했다). 그러면서 노사정합의 또는 연대협정을 통해 노동조합 지도부를 선별적으로 포섭하여 코퍼러티즘의 외양은 유지하지만, 노동조합의 조직 토대와 협상력은 크게 떨어지고 노동조합은 분열된다. 한편 인민주의 정부는 대중적 지지를 유지하기 위해 도시 비공식부문과 농촌 빈민층을 대상으로 하는 ꡐ목표수혜ꡑ 프로그램을 실시했다. 칠레의 사회투자연대기금과 멕시코의 사회연대기금이 대표적인 예인데, 이는 코퍼러티즘 방식과 달리 ꡐ부자와 빈자의 자발적 연대ꡑ라는 형태를 취하고, 대통령이 구호자금을 직접 모금, 전달함으로써 인민의 지도자라는 수사를 강화한다. 3. 노무현 정부의 정치가적 인민주의와 사회운동 노무현 정부의 등장과 집권 후 정책, 전략을 살펴보면 이는 이탈리아 베를루스코니나 라틴 아메리카의 정치가적 인민주의와 놀랍게도 유사하다. 사상 유례가 없는 여론조사를 통한 대선후보 결정, ꡐ반창연대ꡑ라는 네가티브 선거전략, 미디어의 적극적인 활용, ꡐ정의로운 세상ꡑ이나 ꡐ국민통합ꡑ과 같은 모호한 구호에 호소하는 방식은 다른 인민주의 정치가의 선거전략과 몹시 닮은 것이다. 또한 불법 대선자금이 한나라당에 비할 바 없이 적다는 10분 1 발언, 재신임 선언, 탄핵을 불사하거나 심지어 유도하며 선거법 위반 공방을 돌파하려는 정치행동은 대통령 개인에 대한 대중의 지지로 사태를 봉합하고, '나는 차악(lesser evil)이고 상대방이 진정 악의 두목이다ꡐ라는 전형적인 정치가적 인민주의의 도식을 활용한다 (물론 이러한 선거기법이나 정치스타일은 세계적으로 보편화되고 있다). 또한 비정규직 노동자의 불행은 정규직 노동자의 이기심 때문이라며 노동자조직을 공격하며, 동시에 노동자조직을 선별적으로 분할/포섭하려는 노사정테이블을 추진한다. 간접세에 대한 의존도를 높여서 약간의 복지재원으로 특정 층을 겨냥한 복지정책을 입안한다. 결국 정치 스타일뿐만 아니라 통치기법 자체가 정치가적 인민주의의 모형과 동일하다. 1) 이런 분석에서 볼 때 노무현정부와 한국사회의 미래에 대해 어떤 시사점을 얻을 수 있을까? 첫째, 인민주의는 안정적인 '대중적 토대'에 기초한 것이 아니다. 인민주의는 미국 민주당의 장기적인 집권 기반이 된 ‘뉴딜연합’처럼 헤게모니 연합(자유주의 연합)을 형성할 수 없고 따라서 인민주의에 기초한 대중동원은 극히 휘발성이 강하다. 노무현 정부는 집권과 통치를 위해 ꡐ비즈니스 네트워크ꡑ로 전환한 386세대, ꡐ개혁적ꡑ 지식인과 기술관료적 NGO, 화이트칼라 노동자를 포함한 노동자 대중의 일부 상층부의 명예욕과 실리주의를 자극하고, 청년층 도시프롤레타리아의 감정적인 지지를 일시적으로 이끌어 내고, IMF 구제금융협약 이후 위기에 빠진 지역들의 소외감을 자극함으로써 일시적인 지지층을 형성했다. 그러나 이는 특정한 정치이념을 보유한 다계급연합이 아니라 계급형성을 봉쇄하는 ꡐ탈계급연합ꡑ일 뿐이며 사상누각처럼 불안정하다. 노무현 정부는 선거구제 개편을 통해 전국정당화를 이루고 (내각제) 개헌으로써 위한 제도화를 꿈꾸지만 선거구제 개편과 개헌이 곧바로 안정적 지지층의 형성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이를 실현하기 위해서조차 인민주의적 동원을 반복해야만 한다. 따라서 노무현 정부와 후임자들은 인민주의적 정치스타일과 통치기법을 더욱 강화할 것이다. 둘째, 인민주의는 고유한 정치이념이나 전략이 없고 오늘날에는 오히려 기술관료적 ꡐ합리성ꡑ과 ꡐ전문성ꡑ으로 치장한 신자유주의 정책개혁을 추종한다. 인민주의 정치는 의회나 정당을 우회하여 이로부터 분리된 대통령 비서진이나 자문단에 의존해 정책을 입안하고 행정부의 강력한 권력에 기대어 신자유주의를 실행한다. 이를 합리화하는 수단은 미디어와 전문가 NGO다. 초민족 자본이나 재벌은 이러한 경로를 통해 좀 더 쉽게 정책입안 과정에 접근한다. 그들은 더 이상 특정 정당을 자신의 이해 대변자로 여겨 로비를 펼치는 게 아니라, 국제금융기구나 각종 경제공동체(유럽연합, 아펙 등등)에 직접 참여하거나 싱크탱크를 운영하여 기술관료를 배출한다 (최근 삼성과 노무현 정부의 밀월관계는 이러한 변화를 반영한다). 이러한 조건에서 대중들은 선거에서 어떤 정당을 선택할 권리는 있으나, 그들이 무엇을 할지 통제할 수 있는 권리는 박탈된다. 따라서 국가에 의존하는 사회운동의 전략은 위기에 처한다. 셋째, 인민주의가 구사하는 사회정책은 국가온정주의라는 보수주의에 훨씬 더 가깝다. 1930년대 국가 코퍼러티즘뿐만 아니라 전후 서구에 재확립된 사회 코퍼러티즘도 비스마르크의 보수주의나 파시즘적 경제학에 기원을 둔다. 인민주의 사회정책은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을 실행하는 수단으로서 종속적 의미만 지닌다. 따라서 ꡐ완전고용ꡑ과 같은 케인즈주의 목표는 제거되고, 장기 실업층을 산업예비군으로 포섭하려는 사회정책이 ꡐ국민통합ꡑ이라는 국가온정주의적 시혜의 형태로 제공된다. 그러나 국가의 시혜에 의존하라는 인민주의 정책은 노동자운동, 사회운동의 자율성을 해체하는 수단으로도 활용된다. 넷째, 정당과 의회를 우회하는 대중동원과 기술관료적 전문성의 활용을 위한 인민주의의 효과적인 수단 중의 하나가 바로 전문가 NGO다. 그들은 국가기구의 역할을 대행하지만, 지식이라는 고유한 수단을 통해서 대중의 지성을 박탈하고 전문가 독점을 강화한다. 한국에서 NGO 운동은 점차 이런 역할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있으며, ꡐ소수주주운동ꡑ(기관투자가, 금융자본의 이해 보장)부터 사회양극화 해소 국민연대 결성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대안세계화운동은 신자유주의와 인민주의에 대항하는 운동이자 노동자운동, 사회운동의 해체와 NGO 독점을 비판하는 운동으로서 자기 역할을 찾을 수 있다. 1) 노무현 정부의 인민주의에 대해서는 월간 『사회진보연대』에 실린 지난 기사들을 참조할 수 있겠다. 「노무현 정권의 출범과 정책개혁의 전망」(2003년 1월), 「한국사회의 위기와 사회운동의 도전」(2004년 1월), 「대통령 탄핵사태의 본질과 대응방향」(2004년 4월), 「총선결과 분석과 사회운동의 과제」(2004년 5월)를 보라. 본문으로
X-파일 논란의 본질과 지배세력의 노림수 지난 7월 21일 MBC 이상호 기자의 폭로와 조선일보의 보도를 통해 과거 안기부의 도·감청 테이프(이른바 X-파일)의 존재가 확인된 이후 국가정보원에 대한 검찰의 사상 초유의 압수수색, 그리고 관련된 두 고위관료인 홍석현 주미대사와 김상희 법무차관의 낙마는 X-파일의 잠재적 폭발력을 가늠케 한다. 초기 검찰의 수사는 정보기관의 불법도청 유무와 X-파일의 유출 경위에 초점을 맞추었지만 노회찬 의원이 X-파일 녹취록을 근거로 전·현직 ‘떡값’ 검사의 실명을 공개한 이후 이제는 테이프의 내용에 대한 공개와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여론의 압력이 거세지고 있다. 이처럼 복잡하기 그지없는 지배세력 사이의 진실게임 공방은 검찰의 엄정한 수사와, 도청 테이프의 내용을 공개하기 위한 특별법 제정을 요구하는 시민단체의 요구 등이 서로 맞물려 갈등이 증폭되는 양상이다. 운동진영은 다음과 같은 질문을 제기해야 한다. 과연 이러한 정세는 대중을 빈곤의 나락으로 내모는 남한 사회구조의 모순을 대중들이 인식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인가? 미디어를 중심으로 대중의 원한을 동원하는 문제제기 방식과 억압적 국가기구를 동원하는 사법적 해결방식에 운동진영이 의존하는 것은 현재 지배세력의 정치적인 행동방식과 어떤 차별점을 형성하고 있는가? 그러나 지금까지 X-파일에 대한 운동진영의 대응은 지배세력에 대한 비판과는 거리가 있을 뿐 아니라 최종적인 해결을 사법적 수단에 위임함으로써 오히려 대중을 지배세력에 종속된 수동적 존재가 되게 한다. X-파일 공방: 부패한 구세력과 ‘개혁세력’ 간 대결구도의 재현 X-파일은 1997년 대선을 전후한 시기의 지배블럭을 형성했던 낡은 구정치인들과 이들과 유착관계로 얽혀있는 세력과 이들을 ‘청산’하겠다는 개혁세력 사이의 대결구도의 연속이다. 하지만 이번 국면에서 대립의 정점에 서있는 세력은 막강한 자본을 앞세워 남한의 각 부문에 은밀하게 영향력을 행사하는 삼성재벌이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순익만 100억 달러를 기록하며 초민족적 자본의 대열에 합류했으며, 삼성전자의 상장 주식 총액은 7월말 현재 92조 378억원으로 주식시장에서 무려 17.8%의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이를 바탕으로 정치권과 법조계, 언론계에 대한 삼성의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런데 이러한 삼성이 현재 X-파일의 당사자로서 한겨레신문과 MBC, 열린우리당 일부의 집중포화를 맞고 있는 선뜻 납득하기 어려운 상황이 연출되고 있다(그동안 삼성은 현정권의 지지세력으로 알려져 있지 않았던가?). 현재 삼성과 舊세력의 또 다른 축인 한나라당은 국가기관의 ‘불법성’에 초점을 맞추며 X-파일의 공개 불가 방침을 고수하고 있다. 이제 대결구도는 순식간에 한편으로는 삼성재벌과 한나라당, 다른 한편으로는 ‘개혁세력’이라는 지극히 단순한 이분법적 구조, 민중이 배제된 지배세력 상호간의 분열양상으로 압축되었다. 인민주의 통치 스타일과 신자유주의가 공명(共鳴)하는 방식 부패하고 낡은 세력과 제도에 대한 공격은 남미 인민주의 세력의 집권과정에서 공통적으로 드러나는 정치행태다. 인민주의는 감정과 경험에 기초한 인민의 직접적인 분노의 표출을 조장하고, 사회적 갈등과 위기의 원인을 설명하고 새로운 정치이념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주로 엘리트와 기득권세력으로 이루어지는) 가시적인 ‘공공의 적’을 발명하고 악마화한다(이를 ‘원한의 정치’라고 부를 수 있다).1) 남미 인민주의 정권들은 노무현정권이 보여준 현란한 정치감각의 선례다. 이들은 기존의 정치세력과 제도에 대한 총체적인 개혁과 복지확충을 약속하며 압도적인 지지로 당선되었다. 하지만 지난 4월 축출된 볼리비아의 구티에레즈 정권이나 브라질에서 가난한 노동자 출신으로 대통령에 올랐다가 부패 스캔들로 위기에 몰린 PT당의 룰라 정권에서 볼 수 있듯이 그들은 복지예산을 삭감하고 자유무역협정 을 추진하는 등 철저한 신자유주의 세력으로 변모했고 이제 심각한 위기에 처해있다. 남한에서 이러한 인민주의적 통치 스타일의 연원은 1960-70년대 재야세력과 야당으로부터 찾을 수 있다. 박정희 정권에 저항하던 재야세력은 정권의 반공-발전주의를 비판할 수 있는 독자적인 이념을 갖추지 못했고 사회운동의 토대를 결여한 채 급속한 경제성장에서 소외된 ‘민중’이라는 모호한 수사에 의존했다. 1971년 대선 패배 뒤 재야세력과 연대했던 DJ는 낙후한 호남지역 대중들의 불만과 원한을 자신의 정치적 지지기반으로 활용했다. 재야세력은 남한사회의 정치·경제적 위기에 대한 객관적 인식의 결여, 사회운동의 토대 부재로 인민주의 정치의 주요 특징들을 지니게 되었다. 하지만 한국에서 인민주의 통치스타일은 1997년 외환위기와 IMF-외환위기, DJ의 신자유주의 개혁 과정에서 전면에 등장했다. 1997년 ‘외환위기’는 신자유주의 개혁세력이 민중의 불만과 저항을 인민주의적으로 관리·봉합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된다. 한나라당을 비롯한 구여권과 (글로벌 스탠더드에 미달하는) 재벌의 ‘족벌경영’ 체제는 환란의 주범으로 지목되고 DJ는 ‘준비된 대통령’으로서 사상 첫 정권교체의 당사자로 기록된다. DJ 집권 시 국난극복의 돌파구로 지배세력이 선택한 것은 '정권 인수위원회'를 활용한 비상 대권, 의회의 무력화, 신자유주의 비판세력에 대한 미디어 선동이었다. 또한 조·중·동을 겨냥한 수구언론 세력에 대한 비난과 15대 총선에서 시민단체들이 전개한 ‘낙선·낙천운동’ 역시 구세력과 제도에 대한 공격을 통해 현재의 지배체제에 대한 비판을 봉쇄하는 위기관리전략의 일환으로 이해될 수 있다. 노무현 정권이 들어서자 지배세력의 위기관리전략은 ‘과거사 청산’이라는 쟁점을 통해 조직된다. 이러한 과거사 청산은 친일·독재·부패세력으로서 (한나라당과 조선일보가 대표하는) 구세력을 ‘수구보수’로 정의하고 현재의 집권세력을 항일·민주화운동·개혁세력으로 규정함으로써, 집권세력의 신자유주의 개혁정책을 우회적으로 정당화한다. 개혁세력은 구래의 제도와 정치집단에 대한 청산작업에서 1980년대 민중의 민주주의운동의 쟁점을 전도하며 신자유주의의 논리로 가공한다.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재벌해체와 정경유착을 둘러싼 사이비 논쟁이다. 당초 1980년대 정경유착에 대한 고발과 (독점)재벌해체에 대한 민중의 요구는 폭압적인 파쇼 정권에 대한 비판과 민중을 수탈하는 독점자본의 권력을 해체함으로써 남한 자본주의 구조를 변혁한다는 맥락에서 등장한 것이다. 하지만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이러한 변혁적 맥락은 사장되고 각각의 쟁점은 중심부 금융시장에서 요구되는 글로벌 스탠더드를 추종하며 주식시장에서의 투명성과 신용도를 제고하기 위한 부정부패 근절과 기업 지배구조 개선이라는 신자유주의적 의제로 탈바꿈되었다. 재벌에 대한 공격은 ‘진보’로 포장되어 운동진영에서도 이에 호응하는 움직임이 있었지만 결국 당시의 ‘재벌해체’는 소액주주(기관투자자, 초국적 자본 등)의 권리 확보와 투명한 경영 등을 위한 것으로서 금융자본의 이익에 복무하는 것에 다름 아니었다. 또한 과거의 구습을 청산한다는 명분으로 이루어지는 정치개혁은 대중으로부터 정당을 분리하는 원내정당화와 미디어로 제한된 선거운동으로 나타난다.2) 이러한 ‘개혁’은 정치비용 절감, 정책토론 활성화라는 명분으로 대중적인 지지를 획득하지만 실상은 정치의 미디어화와 전문가주의를 조장하며 정치의 공간에서 대중의 능동적 개입을 체계적으로 배제한다. 따라서 신자유주의 관점으로 이루어지는 삼성에 대한 비판은 초민족적 자본으로 거듭난(?) 삼성재벌의 권력을 해체하는 데 미달한다. 현재 지배세력이 주장하는 ‘과거사 청산’의 방식은 사회·경제 구조의 청산을 동반하지 않는 부분적인 ‘인적 청산’에 머무를 뿐이다. 이러한 방식의 청산은 일제의 식민지배로부터 벗어난 직후 민중들이 제기한 ‘친일파 청산’이라는 요구와는 반대로, 자신들의 정략적 이해관계에 따라 지배세력 내에서 주도권을 획득하는 데는 활용될 뿐이다. 해방공간(1945-48)에서 민중들의 ‘친일파 청산’이라는 요구는 일제와 결탁한 대지주·자본가·지식인에 대한 단죄 뿐 아니라 새로운 해방된 사회를 건설하기 위한 사회·경제적인 발전전망을 둘러싸고 벌어진 지극히 정세적인 투쟁이었다. 그러나 현재 개혁세력은 미국의 군사·안보 전략에 대한 전폭적 지지나 노동자·노조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라는 차원에서 여전히 군사독재 정권의 한반도 정책과 노동정책을 답습하고 있다. 그렇다면 개혁세력의 과거사 청산은 과거 민주화 운동을 현재 자신들의 정치적 정당성을 위한 ‘간판’으로 활용하려는 얄팍한 노림수일 뿐이지 않는가? 어떻게 그들이 과거사 청산을 제기할 수 있는지 의문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 현재 ‘정-경-검-언 유착’이라는 문제제기 속에서 X-파일이 공개되고 관련자가 엄정한 사법처리를 받는다고 하더라도 정치의 주체로서 민중의 입지에는 아무런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이는 대중들의 능동적인 정치적 개입이 아니라 개혁세력이 승리하더라도 단지 특별법/특검에 의해 이루어지는 전문가적이고 사법적인 해결방식을 통해 대중들에게 정서적인 대리만족을 제공하는 것으로 종결될 공산이 크기 때문이다. 게다가 (민간의 참여라는 명분을 내세우지만) 국가기관을 경유하며 X-파일의 진상을 규명하겠다는 혹은 규명할 수 있다는 발상은 매우 순진한 발상이다. 국가기관은 현재의 지배-착취구조를 전제한 상태에서 법 논리 내에서의 ‘일탈’을 규제할 뿐이다. 사법적 문제해결은 X-파일이 단지 그 일부분에 불과한 남한사회의 총체적인 위기와 모순에 대한 민중의 비판을 대체할 수 없다. 신자유주의 개혁이야말로 거대한 부정과 기만이다! ‘과거사 청산’, ‘지역구도를 타파하기 위한 정치개혁’ 등 현재 집권세력이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전략적 구상들은 시민운동 진영을 규합하며 이른바 ‘진보’로 포장되고 있다. 이러한 구상들의 공통점은 과거와 현재의 집권세력을 ‘청산의 대상’과 ‘청산의 주체’로 부당대립시키며 현재 체제에 대한 비판을 봉쇄한다는 점이다. 집권 후반기를 맞아 청와대가 내놓은 <참여정부 전반기 보고서>의 결론으로 제시된 “정치적 분열과 소모적 정쟁 고착화시키는 지역구도 극복”이나, “적대적 역사에서 비롯된 분열 요인, 과거사 정리로써 해소”한다는 발상에서 현재 남한 사회의 구조적 위기의 원인을 현재 신자유주의 정책개혁으로부터 구하는 것이 아니라 과거의 ‘지역주의’와 ‘과거사’에 책임을 돌리고 있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따지고 보면 ‘지역주의’는 단지 군사독재정권에게만 책임을 물을 문제가 아니다. 남한 자본주의 불균등 발전의 결과에 대해 ‘호남소외론’을 제기하면서 지역주의의 틀을 벗어나지 못한 과거 야당세력(현 집권세력)의 책임은 면제될 수 있는가? 결코 간과할 수 없는 사실은 지배세력이 설정하는 ‘공공의 적’에는 조·중·동과 한나라당 등 ‘수구보수’ 세력 뿐 아니라 노동조합과 파업과 같은 노동자들의 투쟁도 포함된다는 것이다. 지난 <8·15 경축사>(“막강한 조직력으로 강력한 고용보호를 받고 있는 대기업 노동조합이 기득권을 포기하는 과감한 결단을 해야 합니다. 노동조합은 해고의 유연성을 열어주는 한편…”)에서 나타났듯이 여전히 노무현 대통령을 비롯한 지배세력은 ‘대기업 노동자의 특권 양보=전체 노동자의 이익’이라는 식으로 기존의 조직 노동자들의 노동과 고용의 불안정성을 증대하면서, 불황과 위기의 책임을 오히려 노동자들에게 전가하면서 빈곤과 실업, 노동의 위기를 확대·재생산하는 신자유주의 개혁을 정당화한다. 문제가 더욱 심각한 이유는 지배세력의 인민주의 통치 스타일에 대한 운동진영의 무능력이다. 이번 〈X-파일 공대위〉 결성에서도 드러나듯이 오히려 민중운동 일부가 시민단체와 협력하여 사법적 수단을 통한 문제해결에 의존하는 운동방식을 답습하고 있다. 구래의 특권세력과 집단에 대해 지배세력이 조직하는 ‘원한과 분노’를 진보적인 것으로 착각하고 이에 대해 지지·협력하는 것은 큰 오판이 아닐 수 없으며 (설혹 의도하지 않았더라도) 교묘한 방식으로 위기의 책임을 전가하는 지배세력의 위기관리전략에 조응하는 것으로 귀결될 공산이 크다. 운동진영은 정권의 전략에 (‘비판적’이라는 수식어를 붙이더라도) 공명하면서 현존하는 지배세력 사이의 허구적인 구분과 대립구도에 무비판적으로 휘말려 들어갈 것이 아니라 진정한 정치적 쟁점을 은폐하는 현재의 지배적인 정치지형을 전변시켜야 한다. ‘개혁’과 ‘진보’라는 모호하기 그지없는 정치적 수사에 사로잡혀 정권을 올바른 방향으로 견인하겠다는(그리고 그것이 가능하다는) 발상과 이로부터 도출되는 실천들과 철저하게 단절해야 한다. 신자유주의 비판을 통한 민중운동의 정치적 복권을 전제하지 않은 채 미디어가 유포하는 ‘공공의 적’을 앞장서서 공격하는 것은 스스로를 ‘재주 부리는 곰’으로 만들뿐이다. 따지고 보면 지배세력의 가장 큰 비리와 부정은 노동자민중의 저항을 탄압하고 체제 위기의 비용을 전가하면서 그/녀들의 희생을 이끌어내는데 일치단결하며 폭력과 기만을 활용한 자본-국가의 ‘합법적’ 결탁이 아닌가? 그들은 최저임금제, 자유무역협정 체결, 구조조정의 강행과 비정규직을 양산하는 법-제도의 개혁을 통해 민중을 수탈해오지 않았던가? 공적자금 조성, 구제금융, 주식시장과 부동산 부양정책 등 사적 자본과 부유한 계층을 살찌우는 ‘합법적’ 정책을 통해 엄청난 부와 자산을 자본이 향유하게 된 게 아닌가? 비리와 부정부패를 규명하는 방식이 현존하는 착취와 수탈의 구조에 대한 비판과 괴리되고 단지 과거 몇몇 개인들의 부정행위를 들추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면 그 성과는 민중과 운동진영의 몫이 아니라 정치적 정당성과 다가오는 대선에서 ‘정권 재창출’을 위한 안정적 지지기반을 확보하는 것이 최대 과제인 남한 신자유주의 개혁세력의 몫으로 남게 될 것이다.3) 1) 인민주의는 프랑스혁명에서 유래하는 보수주의·자유주의·사회주의에 대한 반정립이다. 인민주의는 현대적인 정치이념이 자본주의 체계의 위기를 해결하지 못하거나 오히려 위기를 정당화할 때 출현하면서 기존 정치에 대한 불만을 조직한다. 인민주의는 엘리트에 대한 적대감을 활용하고 대의제를 통해 (점진적인) 개혁을 추구하기보다 권력의 원천인 인민에 대한 직접적인 호소에 의존한다는 점에서 각각 보수주의·자유주의와 구별된다. 하지만 여기서 인민은 개별적인 권리의 주체가 아니라 조화롭고 동질적인 유기체로서 적에 대한 배제와 공격을 통해 부정적으로 구성되는데 ‘인민의 의지’를 체현하는 것은 카리스마를 지닌 초월적 권력자이다. 따라서 직접민주주의의 수사를 구사하는 인민주의는 정치·사회적 갈등과 권리의 주체로서 개인을 거부함으로써(정치의 부정) 오히려 인민주권을 파괴하는 것으로 귀결된다. 이는 (민족)공동체 내에서 계급투쟁과 혁명적 주체의 형성, 현존하는 착취구조의 변혁을 동반함으로서 인민주권을 급진화하는 사회주의와 대립한다. 본문으로 2) 17대 총선에서 적용된 개정된 선거법은 “선거인의 평온한 일상을 침해하는 행위”로서 야간연설·연설장소·호별방문·행렬·확성장치의 사용 등을 엄격하게 제한하고 방송광고·신문광고·방송연설·경력방송·대담·토론회 등의 대중매체를 이용한 선거운동으로 대체한다. 본문으로 3) 민주노동당 기관지 『주간 진보정치』(239호) 권종술 기자의 글은 이러한 한계를 보여준다. 그는 “X-파일의 공개는 기득권 세력에게는 혼란이지만 전체 국민들에게는 과거와의 철저한 단절을 의미한다. 삼성의 정경유착, 테이프 공개, 국정원 해체, 불법 도감청 문제 등 이번 엑스파일을 통해 우리는 부도덕한 과거와 철저히 단절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맞이하고 있다.”, “테이프 내용의 공개는 기존의 정치세력과 거대언론, 그리고 재벌들의 추악한 치부가 국민에게 낱낱이 드러나는 것을 의미한다”고 주장한다. 적극적인 대중투쟁으로 X-파일을 공개하고 기득권세력을 공격한다는 전략은 과거 기득권 세력의 치부가 현재 진보정당의 정치적 성과로 수렴될 수 있다는 낙관적 전망에 불과하다. 본문으로
X-파일 논란의 본질과 지배세력의 노림수 지난 7월 21일 MBC 이상호 기자의 폭로와 조선일보의 보도를 통해 과거 안기부의 도·감청 테이프(이른바 X-파일)의 존재가 확인된 이후 국가정보원에 대한 검찰의 사상 초유의 압수수색, 그리고 관련된 두 고위관료인 홍석현 주미대사와 김상희 법무차관의 낙마는 X-파일의 잠재적 폭발력을 가늠케 한다. 초기 검찰의 수사는 정보기관의 불법도청 유무와 X-파일의 유출 경위에 초점을 맞추었지만 노회찬 의원이 X-파일 녹취록을 근거로 전·현직 ‘떡값’ 검사의 실명을 공개한 이후 이제는 테이프의 내용에 대한 공개와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여론의 압력이 거세지고 있다. 이처럼 복잡하기 그지없는 지배세력 사이의 진실게임 공방은 검찰의 엄정한 수사와, 도청 테이프의 내용을 공개하기 위한 특별법 제정을 요구하는 시민단체의 요구 등이 서로 맞물려 갈등이 증폭되는 양상이다. 운동진영은 다음과 같은 질문을 제기해야 한다. 과연 이러한 정세는 대중을 빈곤의 나락으로 내모는 남한 사회구조의 모순을 대중들이 인식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인가? 미디어를 중심으로 대중의 원한을 동원하는 문제제기 방식과 억압적 국가기구를 동원하는 사법적 해결방식에 운동진영이 의존하는 것은 현재 지배세력의 정치적인 행동방식과 어떤 차별점을 형성하고 있는가? 그러나 지금까지 X-파일에 대한 운동진영의 대응은 지배세력에 대한 비판과는 거리가 있을 뿐 아니라 최종적인 해결을 사법적 수단에 위임함으로써 오히려 대중을 지배세력에 종속된 수동적 존재가 되게 한다. X-파일 공방: 부패한 구세력과 ‘개혁세력’ 간 대결구도의 재현 X-파일은 1997년 대선을 전후한 시기의 지배블럭을 형성했던 낡은 구정치인들과 이들과 유착관계로 얽혀있는 세력과 이들을 ‘청산’하겠다는 개혁세력 사이의 대결구도의 연속이다. 하지만 이번 국면에서 대립의 정점에 서있는 세력은 막강한 자본을 앞세워 남한의 각 부문에 은밀하게 영향력을 행사하는 삼성재벌이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순익만 100억 달러를 기록하며 초민족적 자본의 대열에 합류했으며, 삼성전자의 상장 주식 총액은 7월말 현재 92조 378억원으로 주식시장에서 무려 17.8%의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이를 바탕으로 정치권과 법조계, 언론계에 대한 삼성의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런데 이러한 삼성이 현재 X-파일의 당사자로서 한겨레신문과 MBC, 열린우리당 일부의 집중포화를 맞고 있는 선뜻 납득하기 어려운 상황이 연출되고 있다(그동안 삼성은 현정권의 지지세력으로 알려져 있지 않았던가?). 현재 삼성과 舊세력의 또 다른 축인 한나라당은 국가기관의 ‘불법성’에 초점을 맞추며 X-파일의 공개 불가 방침을 고수하고 있다. 이제 대결구도는 순식간에 한편으로는 삼성재벌과 한나라당, 다른 한편으로는 ‘개혁세력’이라는 지극히 단순한 이분법적 구조, 민중이 배제된 지배세력 상호간의 분열양상으로 압축되었다. 인민주의 통치 스타일과 신자유주의가 공명(共鳴)하는 방식 부패하고 낡은 세력과 제도에 대한 공격은 남미 인민주의 세력의 집권과정에서 공통적으로 드러나는 정치행태다. 인민주의는 감정과 경험에 기초한 인민의 직접적인 분노의 표출을 조장하고, 사회적 갈등과 위기의 원인을 설명하고 새로운 정치이념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주로 엘리트와 기득권세력으로 이루어지는) 가시적인 ‘공공의 적’을 발명하고 악마화한다(이를 ‘원한의 정치’라고 부를 수 있다).1) 남미 인민주의 정권들은 노무현정권이 보여준 현란한 정치감각의 선례다. 이들은 기존의 정치세력과 제도에 대한 총체적인 개혁과 복지확충을 약속하며 압도적인 지지로 당선되었다. 하지만 지난 4월 축출된 볼리비아의 구티에레즈 정권이나 브라질에서 가난한 노동자 출신으로 대통령에 올랐다가 부패 스캔들로 위기에 몰린 PT당의 룰라 정권에서 볼 수 있듯이 그들은 복지예산을 삭감하고 자유무역협정 을 추진하는 등 철저한 신자유주의 세력으로 변모했고 이제 심각한 위기에 처해있다. 남한에서 이러한 인민주의적 통치 스타일의 연원은 1960-70년대 재야세력과 야당으로부터 찾을 수 있다. 박정희 정권에 저항하던 재야세력은 정권의 반공-발전주의를 비판할 수 있는 독자적인 이념을 갖추지 못했고 사회운동의 토대를 결여한 채 급속한 경제성장에서 소외된 ‘민중’이라는 모호한 수사에 의존했다. 1971년 대선 패배 뒤 재야세력과 연대했던 DJ는 낙후한 호남지역 대중들의 불만과 원한을 자신의 정치적 지지기반으로 활용했다. 재야세력은 남한사회의 정치·경제적 위기에 대한 객관적 인식의 결여, 사회운동의 토대 부재로 인민주의 정치의 주요 특징들을 지니게 되었다. 하지만 한국에서 인민주의 통치스타일은 1997년 외환위기와 IMF-외환위기, DJ의 신자유주의 개혁 과정에서 전면에 등장했다. 1997년 ‘외환위기’는 신자유주의 개혁세력이 민중의 불만과 저항을 인민주의적으로 관리·봉합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된다. 한나라당을 비롯한 구여권과 (글로벌 스탠더드에 미달하는) 재벌의 ‘족벌경영’ 체제는 환란의 주범으로 지목되고 DJ는 ‘준비된 대통령’으로서 사상 첫 정권교체의 당사자로 기록된다. DJ 집권 시 국난극복의 돌파구로 지배세력이 선택한 것은 '정권 인수위원회'를 활용한 비상 대권, 의회의 무력화, 신자유주의 비판세력에 대한 미디어 선동이었다. 또한 조·중·동을 겨냥한 수구언론 세력에 대한 비난과 15대 총선에서 시민단체들이 전개한 ‘낙선·낙천운동’ 역시 구세력과 제도에 대한 공격을 통해 현재의 지배체제에 대한 비판을 봉쇄하는 위기관리전략의 일환으로 이해될 수 있다. 노무현 정권이 들어서자 지배세력의 위기관리전략은 ‘과거사 청산’이라는 쟁점을 통해 조직된다. 이러한 과거사 청산은 친일·독재·부패세력으로서 (한나라당과 조선일보가 대표하는) 구세력을 ‘수구보수’로 정의하고 현재의 집권세력을 항일·민주화운동·개혁세력으로 규정함으로써, 집권세력의 신자유주의 개혁정책을 우회적으로 정당화한다. 개혁세력은 구래의 제도와 정치집단에 대한 청산작업에서 1980년대 민중의 민주주의운동의 쟁점을 전도하며 신자유주의의 논리로 가공한다.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재벌해체와 정경유착을 둘러싼 사이비 논쟁이다. 당초 1980년대 정경유착에 대한 고발과 (독점)재벌해체에 대한 민중의 요구는 폭압적인 파쇼 정권에 대한 비판과 민중을 수탈하는 독점자본의 권력을 해체함으로써 남한 자본주의 구조를 변혁한다는 맥락에서 등장한 것이다. 하지만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이러한 변혁적 맥락은 사장되고 각각의 쟁점은 중심부 금융시장에서 요구되는 글로벌 스탠더드를 추종하며 주식시장에서의 투명성과 신용도를 제고하기 위한 부정부패 근절과 기업 지배구조 개선이라는 신자유주의적 의제로 탈바꿈되었다. 재벌에 대한 공격은 ‘진보’로 포장되어 운동진영에서도 이에 호응하는 움직임이 있었지만 결국 당시의 ‘재벌해체’는 소액주주(기관투자자, 초국적 자본 등)의 권리 확보와 투명한 경영 등을 위한 것으로서 금융자본의 이익에 복무하는 것에 다름 아니었다. 또한 과거의 구습을 청산한다는 명분으로 이루어지는 정치개혁은 대중으로부터 정당을 분리하는 원내정당화와 미디어로 제한된 선거운동으로 나타난다.2) 이러한 ‘개혁’은 정치비용 절감, 정책토론 활성화라는 명분으로 대중적인 지지를 획득하지만 실상은 정치의 미디어화와 전문가주의를 조장하며 정치의 공간에서 대중의 능동적 개입을 체계적으로 배제한다. 따라서 신자유주의 관점으로 이루어지는 삼성에 대한 비판은 초민족적 자본으로 거듭난(?) 삼성재벌의 권력을 해체하는 데 미달한다. 현재 지배세력이 주장하는 ‘과거사 청산’의 방식은 사회·경제 구조의 청산을 동반하지 않는 부분적인 ‘인적 청산’에 머무를 뿐이다. 이러한 방식의 청산은 일제의 식민지배로부터 벗어난 직후 민중들이 제기한 ‘친일파 청산’이라는 요구와는 반대로, 자신들의 정략적 이해관계에 따라 지배세력 내에서 주도권을 획득하는 데는 활용될 뿐이다. 해방공간(1945-48)에서 민중들의 ‘친일파 청산’이라는 요구는 일제와 결탁한 대지주·자본가·지식인에 대한 단죄 뿐 아니라 새로운 해방된 사회를 건설하기 위한 사회·경제적인 발전전망을 둘러싸고 벌어진 지극히 정세적인 투쟁이었다. 그러나 현재 개혁세력은 미국의 군사·안보 전략에 대한 전폭적 지지나 노동자·노조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라는 차원에서 여전히 군사독재 정권의 한반도 정책과 노동정책을 답습하고 있다. 그렇다면 개혁세력의 과거사 청산은 과거 민주화 운동을 현재 자신들의 정치적 정당성을 위한 ‘간판’으로 활용하려는 얄팍한 노림수일 뿐이지 않는가? 어떻게 그들이 과거사 청산을 제기할 수 있는지 의문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 현재 ‘정-경-검-언 유착’이라는 문제제기 속에서 X-파일이 공개되고 관련자가 엄정한 사법처리를 받는다고 하더라도 정치의 주체로서 민중의 입지에는 아무런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이는 대중들의 능동적인 정치적 개입이 아니라 개혁세력이 승리하더라도 단지 특별법/특검에 의해 이루어지는 전문가적이고 사법적인 해결방식을 통해 대중들에게 정서적인 대리만족을 제공하는 것으로 종결될 공산이 크기 때문이다. 게다가 (민간의 참여라는 명분을 내세우지만) 국가기관을 경유하며 X-파일의 진상을 규명하겠다는 혹은 규명할 수 있다는 발상은 매우 순진한 발상이다. 국가기관은 현재의 지배-착취구조를 전제한 상태에서 법 논리 내에서의 ‘일탈’을 규제할 뿐이다. 사법적 문제해결은 X-파일이 단지 그 일부분에 불과한 남한사회의 총체적인 위기와 모순에 대한 민중의 비판을 대체할 수 없다. 신자유주의 개혁이야말로 거대한 부정과 기만이다! ‘과거사 청산’, ‘지역구도를 타파하기 위한 정치개혁’ 등 현재 집권세력이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전략적 구상들은 시민운동 진영을 규합하며 이른바 ‘진보’로 포장되고 있다. 이러한 구상들의 공통점은 과거와 현재의 집권세력을 ‘청산의 대상’과 ‘청산의 주체’로 부당대립시키며 현재 체제에 대한 비판을 봉쇄한다는 점이다. 집권 후반기를 맞아 청와대가 내놓은 <참여정부 전반기 보고서>의 결론으로 제시된 “정치적 분열과 소모적 정쟁 고착화시키는 지역구도 극복”이나, “적대적 역사에서 비롯된 분열 요인, 과거사 정리로써 해소”한다는 발상에서 현재 남한 사회의 구조적 위기의 원인을 현재 신자유주의 정책개혁으로부터 구하는 것이 아니라 과거의 ‘지역주의’와 ‘과거사’에 책임을 돌리고 있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따지고 보면 ‘지역주의’는 단지 군사독재정권에게만 책임을 물을 문제가 아니다. 남한 자본주의 불균등 발전의 결과에 대해 ‘호남소외론’을 제기하면서 지역주의의 틀을 벗어나지 못한 과거 야당세력(현 집권세력)의 책임은 면제될 수 있는가? 결코 간과할 수 없는 사실은 지배세력이 설정하는 ‘공공의 적’에는 조·중·동과 한나라당 등 ‘수구보수’ 세력 뿐 아니라 노동조합과 파업과 같은 노동자들의 투쟁도 포함된다는 것이다. 지난 <8·15 경축사>(“막강한 조직력으로 강력한 고용보호를 받고 있는 대기업 노동조합이 기득권을 포기하는 과감한 결단을 해야 합니다. 노동조합은 해고의 유연성을 열어주는 한편…”)에서 나타났듯이 여전히 노무현 대통령을 비롯한 지배세력은 ‘대기업 노동자의 특권 양보=전체 노동자의 이익’이라는 식으로 기존의 조직 노동자들의 노동과 고용의 불안정성을 증대하면서, 불황과 위기의 책임을 오히려 노동자들에게 전가하면서 빈곤과 실업, 노동의 위기를 확대·재생산하는 신자유주의 개혁을 정당화한다. 문제가 더욱 심각한 이유는 지배세력의 인민주의 통치 스타일에 대한 운동진영의 무능력이다. 이번 〈X-파일 공대위〉 결성에서도 드러나듯이 오히려 민중운동 일부가 시민단체와 협력하여 사법적 수단을 통한 문제해결에 의존하는 운동방식을 답습하고 있다. 구래의 특권세력과 집단에 대해 지배세력이 조직하는 ‘원한과 분노’를 진보적인 것으로 착각하고 이에 대해 지지·협력하는 것은 큰 오판이 아닐 수 없으며 (설혹 의도하지 않았더라도) 교묘한 방식으로 위기의 책임을 전가하는 지배세력의 위기관리전략에 조응하는 것으로 귀결될 공산이 크다. 운동진영은 정권의 전략에 (‘비판적’이라는 수식어를 붙이더라도) 공명하면서 현존하는 지배세력 사이의 허구적인 구분과 대립구도에 무비판적으로 휘말려 들어갈 것이 아니라 진정한 정치적 쟁점을 은폐하는 현재의 지배적인 정치지형을 전변시켜야 한다. ‘개혁’과 ‘진보’라는 모호하기 그지없는 정치적 수사에 사로잡혀 정권을 올바른 방향으로 견인하겠다는(그리고 그것이 가능하다는) 발상과 이로부터 도출되는 실천들과 철저하게 단절해야 한다. 신자유주의 비판을 통한 민중운동의 정치적 복권을 전제하지 않은 채 미디어가 유포하는 ‘공공의 적’을 앞장서서 공격하는 것은 스스로를 ‘재주 부리는 곰’으로 만들뿐이다. 따지고 보면 지배세력의 가장 큰 비리와 부정은 노동자민중의 저항을 탄압하고 체제 위기의 비용을 전가하면서 그/녀들의 희생을 이끌어내는데 일치단결하며 폭력과 기만을 활용한 자본-국가의 ‘합법적’ 결탁이 아닌가? 그들은 최저임금제, 자유무역협정 체결, 구조조정의 강행과 비정규직을 양산하는 법-제도의 개혁을 통해 민중을 수탈해오지 않았던가? 공적자금 조성, 구제금융, 주식시장과 부동산 부양정책 등 사적 자본과 부유한 계층을 살찌우는 ‘합법적’ 정책을 통해 엄청난 부와 자산을 자본이 향유하게 된 게 아닌가? 비리와 부정부패를 규명하는 방식이 현존하는 착취와 수탈의 구조에 대한 비판과 괴리되고 단지 과거 몇몇 개인들의 부정행위를 들추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면 그 성과는 민중과 운동진영의 몫이 아니라 정치적 정당성과 다가오는 대선에서 ‘정권 재창출’을 위한 안정적 지지기반을 확보하는 것이 최대 과제인 남한 신자유주의 개혁세력의 몫으로 남게 될 것이다.3) 1) 인민주의는 프랑스혁명에서 유래하는 보수주의·자유주의·사회주의에 대한 반정립이다. 인민주의는 현대적인 정치이념이 자본주의 체계의 위기를 해결하지 못하거나 오히려 위기를 정당화할 때 출현하면서 기존 정치에 대한 불만을 조직한다. 인민주의는 엘리트에 대한 적대감을 활용하고 대의제를 통해 (점진적인) 개혁을 추구하기보다 권력의 원천인 인민에 대한 직접적인 호소에 의존한다는 점에서 각각 보수주의·자유주의와 구별된다. 하지만 여기서 인민은 개별적인 권리의 주체가 아니라 조화롭고 동질적인 유기체로서 적에 대한 배제와 공격을 통해 부정적으로 구성되는데 ‘인민의 의지’를 체현하는 것은 카리스마를 지닌 초월적 권력자이다. 따라서 직접민주주의의 수사를 구사하는 인민주의는 정치·사회적 갈등과 권리의 주체로서 개인을 거부함으로써(정치의 부정) 오히려 인민주권을 파괴하는 것으로 귀결된다. 이는 (민족)공동체 내에서 계급투쟁과 혁명적 주체의 형성, 현존하는 착취구조의 변혁을 동반함으로서 인민주권을 급진화하는 사회주의와 대립한다. 본문으로 2) 17대 총선에서 적용된 개정된 선거법은 “선거인의 평온한 일상을 침해하는 행위”로서 야간연설·연설장소·호별방문·행렬·확성장치의 사용 등을 엄격하게 제한하고 방송광고·신문광고·방송연설·경력방송·대담·토론회 등의 대중매체를 이용한 선거운동으로 대체한다. 본문으로 3) 민주노동당 기관지 『주간 진보정치』(239호) 권종술 기자의 글은 이러한 한계를 보여준다. 그는 “X-파일의 공개는 기득권 세력에게는 혼란이지만 전체 국민들에게는 과거와의 철저한 단절을 의미한다. 삼성의 정경유착, 테이프 공개, 국정원 해체, 불법 도감청 문제 등 이번 엑스파일을 통해 우리는 부도덕한 과거와 철저히 단절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맞이하고 있다.”, “테이프 내용의 공개는 기존의 정치세력과 거대언론, 그리고 재벌들의 추악한 치부가 국민에게 낱낱이 드러나는 것을 의미한다”고 주장한다. 적극적인 대중투쟁으로 X-파일을 공개하고 기득권세력을 공격한다는 전략은 과거 기득권 세력의 치부가 현재 진보정당의 정치적 성과로 수렴될 수 있다는 낙관적 전망에 불과하다.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