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2002년, 2003년 세 차례 사회포럼과 2005년 사회포럼이 브라질에서 열렸다는 사실을 보면 세계사회포럼에서 라틴아메리카 사회운동들이 차지하는 역할이 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최근 라틴 아메리카에서는 미국과 인접한 가운데 지속되는 군사적 위협, 반복되는 국가 경제의 파산 상태를 경험하며 폭발적인 민중들의 투쟁이 분출하고 있다. 이러한 가운데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의 결과로 극한의 생존의 위협이라는 상황을 맞이한 실업노동자, 도시빈민, 원주민, 무토지 농민, 여성들은 스스로를 조직화하고 교육훈련을 하며 삶의 터전을 공동으로 형성해가는 방식의 운동을 활발하게 전개하고 있다. 이들은 선거를 매개로 한 좌파정당들의 제도화, 타협을 통한 기득권 방어로 일관하고 있는 노동조합의 현실을 목도하며 스스로를 ‘정당이나 노조에 독립적인 사회운동들’로 표상한다. 또한 ‘사회운동들이 어떻게 다양성을 유지하며 연대를 형성할 것인가?’라는 논점을 제출하며 세계사회포럼의 규모와 내용을 풍부하게 만드는데 많은 자양분을 공급하고 있다. 또한 세계사회포럼 내에서 사회운동의 긴요한 의제를 모아내고 공동행동을 조직하는 데 기여한 ‘세계사회운동총회’를 조직하는데 중심적인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라틴아메리카 사회운동들은 세계사회포럼 프로세스 확장의 일환으로 7월 25일~30일 에콰도르 키토에서 첫 번째 아메리카 사회포럼을 개최했다. 이를 통해 라틴아메리카의 사회운동을 이끌고 있는 다양한 주체들이 제기하는 쟁점과 의제, 그리고 이들이 제출하고 있는 신자유주의에 맞서는 대안을 살펴볼 수 있다. 1회 아메리카 사회포럼의 개요 아메리카 사회포럼은 세계사회포럼과 비슷한 방법으로 진행되었는데, 5개 주제영역을 두고 각 영역에 해당하는 구체적인 의제에 관한 다양한 형태의 행사를 참가 단위들이 자율적으로 조직했다. 모든 부문을 통틀어 가장 비중 있게 다루어진 주제영역은 빈곤과 외채, 정부와 자본의 부패를 포함하는 ‘경제질서’ 였다. 특히 라틴아메리카 각 국에서 신자유주의 정책을 추동하고 미국의 영향력을 증대시키는 매개가 되는 전미자유무역협정(FTAA) 체결 시도, 중미자유무역협정 (CAFTA), 각종 소지역별 자유무역협정 및 양자간 협정 등이 민중의 기본 권리를 파괴하고 있다는 점이 강조되었다. 이러한 자유무역협정 체결에 대한 반대의 움직임이 대중적으로 형성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미국과 경제엘리트들이 이를 강행하고 있는 현실에서, 이를 저지하기 위한 전 대륙 차원의 연대를 강화할 필요성이 제기되었다. 두 번째 주제인 ‘신자유주의 정책의 폭력적 측면’은 제국주의적 헤게모니, 군사주의, 성적 폭력 등을 포함하는 영역인데, 특히 이라크 전쟁, ‘마약과의 전쟁 ’을 빌미로 한 ‘좌익 소탕작전’인 플랜 콜롬비아 등의 미국의 군사적 개입, 테러 조직의 온상으로 미국이 지목한 아르헨티나, 브라질, 파라과이 3국 국경지대에 대한 군사화 등이 주요하게 다루어졌다. 또한 푸에르토리코 비에케스 미 해군기지 철수를 모범사례로 삼아 라틴아메리카 각 국에서 확장되고 있는 미군기지 폐쇄투쟁을 확산하기 위한 방안이 논의되었다. 세 번째 주제인 ‘권력과 민주주의’와 관련해 참가자들은 청년, 소농, 여성, 원주민, LGBT(레즈비언, 게이, 바이섹슈얼, 트랜스젠더) 그리고 여타 사회운동에 다양성이 보장되는 공간을 형성하는 문제를 주되게 제기했다. 이를 위한 공동의 의제를 설정하고 실천 방안을 마련하기 위한 토론이 진행되었다. 특히 이주자들의 권리에 관한 논의가 치열하게 벌어졌다. 문화와 정보통신이라는 주제영역에 대해서 “또 다른 소통은 가능하다‘는 주제 아래에서 미디어 활동가들은 정보통신 수단 접근권이 기본적인 인권으로 인식되고 보장되어야 한다는 점을 확인했다. 대안적이고 민주적인 사회모델을 세워내는 데 있어서 정보의 중요성을 확인했다. 마지막 주제인 원주민과 흑인의 권리에 대해서 참가자들은 인종주의, 빈곤, 배제에 초점을 두었다. 특히 현재 추진되고 있는 신자유주의 정책이 이러한 문제를 더욱 심화한다는 점을 확인하고 전미자유무역협정 (FTAA)를 비롯한 각종 FTA를 전면 반대하자는 토론을 진행했다. 더불어 다민족, 다종족 사회를 대안으로 제시하기도 했다. 이러한 5가지 주제영역 아래에서 각종 토론회와 세미나, 워크샵이 진행되었으며 ‘식량주권과 세계은행· 미주개발은행에 대한 모의재판’, ‘이주자 지역회의’, ‘대안적 국가-위험등급 발표’1) 등 다양한 형태의 행사가 진행되었다. 포럼이 열리기 전인 7월 20일~ 25일에는 북·남미 각국의 64개 부족 대표가 참여한 ‘원주민 정상회의’가 열렸고, 마지막 날에 열린 포럼을 통해 논의된 다양한 의제를 서로 공유하고 공동 행동 계획을 수립하는 ‘사회운동총회’로 포럼은 마무리되었다. 포럼 기간동안 진행된 논의의 결과는 각 주제에 대한 구체적인 분석과 행동의제를 담은 선언문의 형태로 발표되었다.2) 여러 종류의 선언문을 통해 원주민, 소농· 무토지농민, 도시빈민, 이주자, 여성, 성적소수자 등 라틴아메리카 사회운동의 토대를 구성하는 각 부문이 제기하는 요구를 확인할 수 있다. 또한 선언문에는 라틴아메리카에 대한 미국의 경제적· 군사적 지배력 확대에 맞서 라틴아메리카 사회운동 및 정치세력의 동맹이 강화되어야 한다는 문제의식 아래에서 다양한 공동행동에 대한 제안이 담겨있다. 특히 베네수엘라 우고 차베스 대통령이 미국의 군사적 개입으로 재신임 투표를 앞둔 상황에서 미 제국주의에 맞서는 베네수엘라 민중들의 투쟁에 대한 지지를 표명했다. 원주민운동, 연대의 정신을 바탕으로 한 민주주의 확장을 대안으로 제시 포럼 개막 직전, 남 · 북 아메리카 각 국에 거주하는 64개 부족 700여명의 원주민들은 2차 아브야 야라 (파나마 쿠나 인디언의 언어로 아메리카를 뜻함) 원주민 대륙회의를 개최하고 영토, 자치, 자결권, 다양성과 복수의 민족성, 세계사회포럼으로 표상되는 사회운동에서 원주민의 역할, 군사화, 여성의 역할 등에 대해 논의했다. 참가자들은 ‘스페인, 포르투갈, 네덜란드에 의해 식민화한지 500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원주민을 죽음으로 내모는 극단적인 주변화, 사회적 배제가 지속되고 있으며, 이러한 현상의 직접적인 원인은 바로 신자유주의 세계화’라는 점을 확인했다. 현재 라틴아메리카 5억 인구 중 원주민은 5천만 여 명 정도인데, 이들의 80%가 빈곤 상태에 처해있다는 수치는 원주민들이 놓인 상황을 잘 드러낸다. 회의에 참석한 에콰도르 전국원주민연맹(CONAIE)의 지도자인 루이스 마카스는 “신자유주의가 수 세기에 걸쳐 원주민들이 발전시켜온 집단적인 생활양식에 시장의 가치를 강요함으로써 원주민 공동체를 직접적으로 공격하고 있으며, 이에 맞서 싸우기 위한 원주민들의 힘을 결집하는 것이 이 회의의 목표”라고 언급했다. 원주민 운동은 공존과 공동체 복원에 기반을 둔 새로운 형태의 민주주의를 형성하기 위한 활동을 벌이고 있다. 루이스 마카스는 “우리는 공동체 내에서 연대의 정신으로 서로 도우며 집을 짓고, 곡물을 재배하고, 길을 닦는다. 공동체 내에서 모든 결정은 합의에 기반을 두고 집단적으로 이루어진다. 이를 바탕으로 모든 구성원들은 자신의 의견과 제안을 가지고 참여한다.”며, 선거 시기 투표에 참여하는 것 이외에는 아무것도 보장되지 않는 ‘민주주의’보다 훨씬 급진적인 민주주의의 가능성을 원주민들이 형성하고 있음을 강조했다. 또한 볼리비아 원주민 연맹은 자치권을 획득한 지역 내에서 원주민의 전통에 걸맞도록 공동체를 재조직하고 있다고 보고했다. 이곳에 거주하는 주민들은 토지를 이용할 권리를 집단적으로 소유하며 어느 누구도 토지를 분할하여 사적으로 소유하거나 판매할 수 없다고 했다. 참가자들은 신자유주의가 추동하는 공공서비스 사유화로 인해 민중들이 누려야 할 기본적인 권리가 박탈되고 있는 현실에 대해 ‘전략적 자원을 인류 공동의 재산’으로 인식하는 것을 그 대안으로 제시했다. 또한 이러한 원주민들의 전통을 바탕으로 민주주의를 확장하고 정치 구조를 변화시키는 것이 가능하다고 했다. 따라서 원주민들의 고유한 통치방식이 실현될 수 있도록 하는 자치권과 자결권이 보장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에콰도르 원주민들은, 자신들의 지지를 업고 당선된 구티에레스 대통령이 당선되자마자 원주민 자치권을 보장하겠다던 공약을 한순간에 져버리고 신자유주의 개혁을 추진했다는 점을 비판하며 “다른 사회운동과 연합하여 새로운 세계를 건설할 것”이라고 했다.3) 이 회의를 통해 원주민들은 ‘또 다른 세계’를 건설하기 위한 운동에 보다 능동적으로 참여할 것을 결의했으며, 원주민 공동체를 파괴하는 전미자유무역협정을 비롯한 모든 FTA와 군사주의의 확산을 저지하는 것을 시급한 과제로 제시했다. 이주자의 권리 확대 : 미등록 이주자인가? 세계 시민인가? 포럼 기간 중에 미국에 거주하는 이주자 공동체의 주최로 이주자들의 권리에 관한 토론회가 열렸다. 미국 내 엘살바도르 이주자 공동체 지도자인 오스카 차콘은 “신자유주의 세계화가 전 대륙적 차원의 이주 물결을 부추기고 있으며 이에 관한 대륙차원의 논의가 필요하다”고 이 토론회의 취지를 설명했다. 라틴 아메리카 · 카리브해 경제 위원회(ECLAC)에 따르면 약 2천만 명에 달하는 라틴 아메리카 인들이 출생국을 떠나 이주했다. 1982년~83년 라틴 아메리카 전역을 휩쓴 외채위기 이후 지속되는 경제위기가 많은 이들을, 특히 농촌 인구를 이주의 물결로 내몰고 있는 것이다. 위원회는 전체 이주자 중2/3 가량이 미국에 거주하고 있고, 그 다음으로 많은 수가 스페인으로 이주했다고 보고했다. 또한 미국과 유럽으로 이주하기 위해서는 많은 비용이 필요하기 때문에 볼리비아에서 아르헨티나로, 니카라과에서 코스타리카로, 페루에서 칠레로, 라틴아메리카 내에서의 이주도 빈번하게 일어난다고 했다. 극도의 빈곤과 일자리 부족이라는 상황에 직면하여 이주가 유일한 대안이 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나 각 국 정부가 법을 통해 이주를 규제하고 있어서 수많은 이주자들이 미등록 이주자의 신분으로 남아 아무런 권리도 보장받지 못하는 상황이다. 토론회 참석자들은 이러한 이주의 물결이 낳고 있는 여러 가지 문제점을 지적하며 해결 방안을 모색했다. 한 참석자는 “에콰도르 남부의 마찰라는 자원이 풍부한 곳이지만 민중들은 극도의 빈곤 속에서 살고 있다. 일할 수 있는 젊은층은 일자리를 찾아 떠나고 마을에는 아이들과 노년층만 남아있는 상황이다. 이주자들이 송금해오는 돈으로 집을 지을 수 있을지는 몰라도 가족과 공동체는 파괴된다”고 했다. 참가자들은 이주를 통해 빈곤을 제거할 수 없으며, 신자유주의에 맞선 투쟁을 강화하고 지역공동체에 기반을 둔 대안적인 발전의 형태를 통해 ‘스스로’ 해법을 만들어 가자는데 의견을 모았다. 또 한편으로는 국경을 경계로 시민의 권리가 제한되어서는 안 되며 국경을 초월한 ‘공동체’의 구축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도미니카의 한 참석자는 “미국 노동운동이 더 이상 이주자를 적으로 인식해서는 안 된다”며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체결에 대해 ‘멕시코의 값싼 노동력이 미국 노동자들의 일자리를 빼앗아간다“는 식으로 반응한 미국 노동자들을 비판했다. 참석자들은 성명을 통해 ’이주의 상품화와 이주자의 범죄자화‘를 비판하며 ’라틴아메리카 시민‘이라는 개념이 구축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이주를 법적으로 규제하면서 음성적인 이주를 부추기는 것에 반대하며 더 나은 조건을 찾아 이주할 권리 또한 인정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마지막으로 2005년 세계사회포럼에서 ’미주지역 이주자 총회‘를 개최할 것을 결의했다. 도시빈민운동: 민중의 권리는 민중의 손으로 도시 빈민들의 운동 역시 아메리카 사회포럼의 중요한 부분을 형성했다. 지속되는 경제위기의 상황에서 농촌에서는 무토지 농민들이 토지개혁을 촉진하기 위해 버려진 땅을 점거해서 경작권을 따내고 공동체를 건설하는 방식의 운동이 활발하게 전개되었다. 이와 유사하게 도시에서는 버려진 건물 혹은 빈 집을 점거하여 주거권을 쟁취하는 방식의 운동이 진행되었다. 또한 빈민 거주지역에서 주민 총회(People's Assembly)를 결성하여 요구를 집단적으로 모아내고, 이를 실현하기 위한 행동 계획을 결정하고 실행하는 방식의 운동이 형성되었다. 이렇게 해서 활성화된 도시 빈민 운동은 아메리카 사회포럼을 계기로 한 자리에 모여 각 국에서 벌어진 운동의 경험을 공유하고 이러한 운동의 의의를 확인했다. 우루과이에서는 심각한 경제 위기 상황에서 도시에 다양한 자조(自助) 그룹이 형성되었다. 포럼에 참석한 한 그룹의 활동가는 수도인 몬테비데오에 빈민들이 모여드는 공간을 중심으로 집단적인 거주지가 자연스럽게 형성되었고, 이런 방식으로 무허가 정착촌이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고 보고했다. 몬테비데오의 전체 인구가 1500만에 이르는데 이 중 1/5에 달하는 빈민들이 이러한 무허가 정착촌에 거주하고 있다고 했다. 이렇게 형성된 정착촌에서는 거주자들이 생활에 필요한 물품들을 서로 나누며 공동 생활을 꾸려간다고 했다. 아르헨티나의 피케테로스는 점거를 통해 일정한 거주지를 확보한 후 스스로 관할하는 지역에 학교와 병원이 세워지도록 했다고 보고했다. 볼리비아의 수도 라파스의 엘 알토라는 지역에는 주민들이 직접 주민위원회를 결성하고 물 공급을 조직하고 건설과 도로 정비를 직접 관할한다고 했다. 주민위원회는 지난 몇 년간에 걸쳐 형성된 것으로 식량, 건강, 교육, 물 공급을 해결하고 실질적인 ‘공존’을 이루어 내는 사회 망의 역할을 하고 있다고 했다. 포럼에 모인 도시빈민 참석자들은 이러한 경험을 통해 ‘운동들이 정부에 어떤 요구를 하기보다는 스스로 자신의 권리를 지키고 긴급하게 필요한 것들을 직접 만들어내고 있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고 했다. 식량주권에 관한 민중법정 라틴아메리카의 농민조직 연대체인 라틴아메리카 농촌 조직 회의(CLOC)와 여러 환경운동 조직은 포럼 기간 동안 ‘식량주권에 관한 민중법정’을 세우고 세계은행과 미주개발은행(IDB)를 토지소유의 집중과 유전자조작 곡물 재배를 부추긴 죄로 기소했다. 두 대부(貸付) 기구는 라틴아메리카 각 국과 민중들에 생태부채를 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피고들은 법정에 출석하지 않았다. 대신 사회운동과 언제든 대화할 용의가 있으며 자신들은 지속가능한 발전을 바탕에 두고 정책을 구사해왔다는 골자의 편지를 보내왔다. 배심원으로는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작가이자 인권운동가인 아돌포 페레스 에스끼벨, 아르헨티나 오월광장어머니회 회장 노라 코르티나, 농민 조직 및 환경조직 활동가들이 출석했다. 세계은행과 미주개발은행이 아르헨티나, 브라질, 콜롬비아, 아이티 등 라틴아메리카 각 국에 미친 악영향에 관한 증언이 쏟아졌다. 주빌리사우스 아르헨티나의 아돌포 레이는 세계은행 정책은 유전자조작 콩을 생태와 농촌에 미칠 영향에 대한 고려 없이 무조건 이윤을 많이 남길 수 있다는 이유로 아르헨티나에서 재배하도록 강요했다고 말했다. 유전자 조작 콩이 아르헨티나에 퍼지면서 중소규모 농민들은 몰락하고, 콩 재배는 중단되어 수입에 의존해야 했으며, 고용도 감소했다고 했다. 또한 대규모 콩 농장이 들어서고 여기서 화학비료를 사용함에 따라 환경파괴와 삼림파괴가 일어났다고 했다. “ 꿀 생산자들은 더 이상 생업을 유지할 수 없을 정도로 생산이 감소했습니다. 왜냐하면 벌들이 유전자 조작 곡물과 독성 농화학 제품으로 인해 살아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는 중도좌파인 네스토어 키르치네르 정부에 이 상황에 대한 책임을 물었다. 브라질 무토지농민운동(MST)에서 활동가는 마르셀루 레젱지는 룰라 정권이 들어선 이후에도 초국적 금융기구가 주도하는 정책이 브라질 농촌을 휩쓸었다고 증언했다. 그는 세계은행이 토지개혁이라는 요구를 회피하며 오히려 소농들에게 땅을 살 수 있는 돈을 대출하도록 강요했다고 했다. 그는 세계은행이 아마존 지역에서 시행한 신용 프로그램이 삼림파괴를 부추겼고 단일 종을 경작할 농지를 개척하기 위해 정글을 파괴했다고 중언했다. 그리고 룰라 정부의 정책에 대해 “실질적인 토지개혁과 생산적인 농업 정책을 기대했으나 이러한 정책은 전혀 시행되지 않았다”며 “불행하가도 카르도수 정부와 다를 바 없다”고 평가했다. 참석자들은 환경을 파괴하고 민중의 식량주권을 위협하는 국제금융기구에 반대하는 투쟁을 벌이겠다는 결의문을 채택하는 것으로 법정을 마무리했다. 사회운동총회 포럼의 마지막 날 진행된 ‘사회운동 총회’에서 참석자들은 사회운동들이 집중해야 할 긴급한 투쟁과제와 행동계획을 공유했다. 세계여성행진, 라틴아메리카 농촌조직 회의 등 사회운동총회에 참석한 많은 조직들은 전미자유무역협정(FTAA), 중미자유무역협정 (CAFTA), 안데스지역 자유무역협정 등에 반대하는 투쟁을 전 대륙 차원으로 전개할 것을 다짐했다. 각 국에서 각 협정들의 체결 혹은 국회 비준에 반대하는 캠페인을 전개하고, 라틴아메리카에서 식민지배가 시작된 날로 기록되는 10월 12일, 세계빈곤철폐의 날인 10월 17일을 계기로 전 대륙 행동의 날을 조직하기로 했다. 세계여성행진은 세계빈곤철폐의 날에 맞추어 각국에서 빈곤과 폭력에 반대하는 여성들의 행동을 준비하고 있다고 발표했고, 라틴아메리카 농촌 조직 회의는 베네수엘라 우고 차베스 대통령 재신임 투표일(8월 15일)을 앞둔 주를 ‘쿠바와 베네수엘라 연대행동주간’으로 선포할 것을 제안했다. 또한 이 기간동안 이라크· 팔레스타인 민중들과의 연대의 의미를 더해 각 국 미 대사관 앞에서 시위를 벌이자고 제안했다. 청년캠프 참가자들은 11월 17일 세계 학생의 날을 기해 교육의 상품화와 자유무역협정에 반대하는 투쟁을 진행 하겠다고 발표했다. 또한 토지와 종자에 관한 권리를 쟁취하기 위한 투쟁을 지속하겠다고 했다. 미군기지 폐쇄, 지적재산권에 맞선 의약품 접근권 쟁취, 성적 다양성의 보장 등이 중요한 투쟁과제로 제기되었으며, 가스 재국유화를 위한 볼리비아 민중들의 투쟁을 지지하고 초국적 석유회사 반대 캠페인을 각 국에서 전개하자는 제안도 나왔다. 또한 2005년 포르투 알레그레 세계사회포럼에서 원주민총회, 이주자총회, 세계보건포럼, 학생총회, 에너지포럼 등을 진행하기로 했다. 폐막 행진으로 이어진 사회운동총회의 경험은 2005년 세계사회포럼 진행 방식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민중들은 서로 존중한다” 참석자들은 현재 라틴아메리카는 재식민화의 길로 접어드느냐, 아니면 신자유주의와 제국주의에 대항하는 투쟁이 부활하느냐의 기로에 놓여있다고 했다. 포럼으로 결집한 라틴아메리카의 다양한 운동들, 그리고 이들이 제출한 대안적인 전망들은 대륙적 차원의 사회운동이 부활할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포럼을 통해 자유무역협정과 외채의 악순환에 반대하고, 식량주권, 다양성과 인권을 옹호하는 투쟁을 대륙 차원에서 지속하고 강화하자는 광범위한 합의가 형성되었다. 원주민 운동이 쌓아온 민주주의 확장의 노력, 도시와 농촌의 지역 공동체를 기반으로 한 자율성과 연대 정신 등 라틴아메리카 사회운동이 형성해온 고유한 전통은 대안세계화 운동의 중요한 힘이 될 것이다. 포럼 기간 동안 곳곳에서 울려 퍼진 “민중들은 서로 존중한다”는 구호는 이러한 정신을 드러내 준다. 1회 아메리카 사회포럼의 성과는 2006년 1월 베네수엘라 카라카스에서 열릴 세계 다중심 포럼으로 이어질 것이다. 포럼이 끝난 후 지적된 문제들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하는 점 역시 라틴아메리카 사회운동이 안고 있는 또 다른 과제이다.4) 1) 포럼 참석자들은 국제 신용평가 기관이 제시하는 ‘국가 신용 등급’을 패러디해 투자자들이 아닌 민중의 삶의 위험을 기준으로 한 ‘대안적 국가-위험등급’을 작성해서 발표했다. 여기에는 경제적인 기준 뿐만 아니라 정치·사회·문화적인 요소가 모두 반영되었는데, 이에 따르면 라틴아메리카 대부분의 국가가 위험수준이었고, 특히 브라질, 아르헨티나는 최악의 상황인 것으로 드러났다. 본문으로 2) 아메리카사회포럼 홈페이지(www.forosocialamericas.org )에 모든 선언문이 수록되어 있다. 본문으로 3) 구티에레스 대통령은 당선과 함께 미국의 콜럼비아 게릴라 소탕 작전인 플랜콜롬비아에 협조하고 미국과 자유무역협정을 체결했다. 또한 IMF와의 협상에서 2007년까지 임금동결, 공공부문 12만명 정리해고, 공공부문 파업금지, 가스가격 375% 인상, 전기, 석유, 통신, 물 등의 사유화에 합의함으로써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을 본격화하기 시작했다. 이에 대한 민중들의 분노는 쌓여갔고, 2005년 4월 대대적인 봉기가 확산되어 구티에레스 대통령은 결국 의회의 결의로 해임되었다. 2002년 대선에서 구티에레스를 지지했던 전국원주민연맹(CONAIE)은 지지를 철회하고 민중봉기에 가담했다. 자세한 내용은 배준범, 「에콰도르 민중봉기」, 『월간사회운동 2005년 6월호』 및 변정필, 「다시 폭발한 에콰도르 민중봉기 구티에레스 정권을 뒤엎다!’」, 『노동자의힘』 77호를 참조하면 된다. 본문으로 4) 대중의 접근이 힘든 대학이라는 장소에서 열려서 에콰도르 민중들의 참여가 부족했고, 유럽과 아시아 출신의 지식인, NGO활동가들이 중요한 패널토론의 발표자로 나서 아메리카사회포럼이 아닌 세계사회포럼의 또 다른 판본이라는 인상을 주었다는 평가가 제기되었다. 또한 이러한 대규모 행사를 진행하는데 드는 비용이 어떻게 조달되었는지 투명하게 공개되지 않았다는 점도 지적되었다. 본문으로 [%=박스1%]
-4차 6자회담 공동성명의 의미와 한계 ‘공동성명’은 과연 진전된 것이라고 볼 수 있는가? “6자회담 성공은 평화통일로 가는 길”.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용산구협의회가 육교 위에 커다랗게 걸어놓은 현수막의 제목이다. 9월 19일 북경발 뉴스를 통해 13개월만에 재개된 4차 6자회담의 극적인 합의가 알려졌다. 그 이후 동북아 평화체제로의 진입, 평화통일의 이정표, 남북 정상회담의 정례화 등등 각종 장밋빛 전망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바로 그 다음날부터 시작된 경수로 제공 여부를 둘러싼 북한과 미국의 성명전을 살펴본다면 오는 이후 6자회담이 과연 순조롭게 진행될 것인가에 대해 반드시 낙관할 수는 없다. 우선 6개항으로 되어있는 공동성명을 살펴보면 핵심적으로 1조는 한반도 비핵화 원칙과 그 달성방안, 미국의 대북침공 의사 없음과 북한의 평화적 핵이용권 존중과 적당한 시기에 경수로 제공논의를 다루고 있다. 그리고 2조는 북한의 주권 존중, 북미평화공존, 북미 및 북일 관계 정상화를 다루고 있다. 이번 공동성명의 수준은 강제적인 이행의무를 부과하는 조약이 아니라 5조에서 규정한 것처럼 추후 ‘공약 대 공약’, ‘행동 대 행동’의 원칙에 입각하여 상호조율된 조치를 취하기 위한 ‘말 대 말’ 수준에서의 합의에 불과하며 북한과 미국, 남한 및 참가국들의 행동이 접속사 없이 무미건조하게 병렬적으로 나열되고 있다. 게다가 내용을 살펴보면 핵 프로그램을 포기하는 북한의 의무는 명확하게 표현된 것에 비해 미국이 이에 대한 반대급부(관계정상화와 경수로 제공)를 어떤 시점에 어떻게 제공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모호하게 서술되었을 뿐만 아니라 과연 그 반대급부가 제공될 지 여부도 이번 회담에서 확인되지는 않았다. 이번 회담은 그동안 교착상태에 빠져있던 6자회담의 ‘불씨’를 꺼뜨리지 않는 데는 성공했지만 6조에서 앞으로의 회담일정(11월 5차 6자회담)을 구체적으로 명시되어 있는 것을 제외하면 여전히 애매모호한 채 남아있는데 이는 그만큼 북한과 미국 간의 이견이 해소되지 않고 있다는 현실을 반증하는 것이다. 이번 공동성명의 수준은 1994년 상호 반대급부(북한의 핵동결과 미국의 경수로 제공)와 관계정상화를 명시한 ‘제네바기본합의서’에 미치지 못하며 그야말로 잠정적인 각국 행동의 일반적인 원칙을 나열한 정도에 불과하다. 이러한 한계를 무시하고 ‘선군외교의 승리’라든가,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과 동북아 안정을 위한 출발점’으로 이번 공동성명의 의의를 과장하는 것은 오히려 6자회담 내부의 한계는 물론이고, 과연 이를 통해 한반도와 동북아의 평화가 정착될 수 있는지를 냉철하게 바라볼 수 있는 시야를 봉쇄할 뿐이다. 돌이켜보면 현실사회주의 진영의 붕괴 이후 지난 15년 동안 정부와 언론의 호들갑은 별반 새롭지 않다. 1991년 12월 ‘남북사이의 화해와 불가침 및 교류․협력에 관한 합의서’가 체결되었을 때를 기억해보라. 혹은 1994년 10월 제네바에서 북한과 미국이 합의에 이르렀을 때 언론의 반응은 어떠했는가? 현재와 마찬가지로 온갖 장밋빛 전망들이 쏟아졌지만 이후의 사태는 한반도 및 동아시아에서의 군사적 이니셔티브를 유지하기 위해 새로운 요구들을 관계정상화의 전제조건으로 제시하는 미국의 태도에 따라 남북관계마저 경색․악화되어오지 않았던가? 어떻게 보면 이번 6자회담의 ‘합의’를 추켜세우기 전에 질문해야할 중요한 문제는 어째서 1994년 제네바 합의가 성공하지 못했는가, 혹은 어째서 남한과 미국은 ‘북핵문제’를 해결하는데 실패해 왔는가이다. 관계정상화를 꿈꾸는 북한 vs 대량살상무기를 제거하려는 미국: 타협의 불투명성과 한계 미국은 6자회담 내내 북한의 핵 프로그램에 대한 CVID(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돌이킬 수 없는 핵폐기) 원칙이 우선되어야 함을 강조해왔다. 지난 3차 6자회담에서 미국은 ‘다단계 포괄적 비핵화방안’을 제시했는데 핵동결에 상응하는 중유지원, 3개월 후 핵폐기 절차가 시작되면 4단계에 걸쳐 잠정적 안전보장, 비핵 에너지 지원, 테러지원국 명단 제외 및 경제제재 해제 논의, 관계 정상화 등을 추진한다는 입장을 제시하였다. 그러나 북한은 핵동결에 상응하여 200만kw의 에너지 지원(이는 지난 7월 12일 남한의 ‘중대제안’으로 수용된다), 테러지원국 명단 제외, 경제제재 및 봉쇄 해제를 요구하였다. 비단 보상의 문제 뿐 아니라 동결과 폐기의 범위에 2차 북핵위기의 발원지였던 고농축 우라늄(HEU)이 포함되는지, 그리고 사찰의 주체가 국제원자력기구(IAEA)인지, 아니면 6자회담의 틀 속에서 새롭게 마련될 것인지도 추가적인 쟁점들이다. 하지만 양자의 입장이 대등하게 조율되는 것은 아니며 장기적으로는 북한이 대부분 미국의 제안을 수용하고 있는데 반해 미국이 이에 대한 반대급부를 구체적이고 명확하게 제시하지 않는 것이 회담을 더욱 애매모호한 합의로 몰고 가는 주된 원인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강력한 反확산(counter-proliferation) 전략에 입각하여 정책의 우선순위를 북한의 대량살상무기(WMD)의 제거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미국과, 냉전시대의 종언 이후 외부로부터의 식량지원에 의존할 정도로 취약해진 경제적 기반을 복구하고 미국․일본과의 관계 정상화를 모색하려는 북한의 정치적 목표가 얼마나 조화를 이룰 수 있는가는 쉽게 장담할 수 없는 문제이다. 舊소련과 현실사회주의 진영이 몰락한 이후 한반도의 군사적 대결구도는 국제적으로 고립된 북한에게 커다란 정치․경제적 부담이 아닐 수 없다. 지난 10여 년 동안 줄곧 관계정상화의 전제조건으로서 미국은 북한에게 추가적인 양보를 강요하고 있고 대체적으로 북한은 미국의 요구를 수용해왔다(1994년 「제네바 기본 합의서」를 통한 핵 프로그램의 동결과 폐기, 1998년 「페리 보고서」에서의 중장거리 미사일 프로그램의 중단). 그러나 미국은 북한의 군사적 위협을 명시하며 전역미사일방어망구상(TMD)․미사일 방어망(MD) 계획을 1990년대 내내 추진해왔을 뿐 아니라, 2001년 「핵태세 보고서」에서 미국은 북한에 대한 핵무기 공격을 포기하는 「제네바 기본 합의서」를 명시적으로 위반하면서 북한을 핵선제공격이 가능한 7개국의 명단에 포함하는 등 동아시아에서의 군사적 이니셔티브의 유지․확장 속에서 대북 관계 정상화를 부차적이거나 종속된 문제로 취급해왔을 뿐이었다. 따라서 6자회담의 틀 안에서의 합의는 현재로서는 결코 낙관할 수 없으며 오히려 앞으로 북미 간의 이견과 갈등은 지금까지의 6자회담보다 훨씬 격렬하게 드러날 것이다. 게다가 더 큰 문제는 설혹 6자회담의 틀 내에서 (‘제네바 합의’와 같은 수준의) 북한과 미국 사이에 구체적인 합의점을 찾는다고 하더라도 전지구적인 미국의 군사적 패권주의의 틀을 벗어나기 어렵다. 왜냐하면 미국으로서는 현재의 한미군사동맹의 근간을 유지하는 한편, 한반도비핵화의 범위를 자국의 핵탑재 잠수함과 항공모함, 비행기의 출입을 제한하지 않는 방향으로 해석하려고 하며 이 경우 6자회담은 한반도․동아시아의 평화를 불러오기보다는 현존하는 군사적 갈등과 경쟁을 새로운 방식으로 재생산하게 될 공산이 크기 때문이다. 미국의 핵확산 억제 시도의 자가당착: 미국의 핵독점을 전제한 군사적 이니셔티브의 추구 미국의 군사안보 정책의 최우선 순위는 무엇보다 ‘테러와의 전쟁’, 대량살상무기의 확산을 적극적으로 저지하기 위해 예방전쟁․선제공격마저 마다하지 않는 강력한 반확산 정책이다. 따지고 보면 지난 2003년 결국 ‘제네바 합의’가 미국의 대북 중유 제공 중단과 북한의 핵비확산조약(NPT) 탈퇴로 인해 파탄에 처한 근본적인 이유는 ‘불량국가’에 대한 미국의 불신과 2003년 이라크 침략전쟁으로 가시화된 호전적인 군사․안보정책에 기인한다. 뿐만 아니라 미국의 핵무기 독점을 위한 시도는 지난 1970년 출범한 NPT를 최악의 위기상황으로 내몰고 있다는 점에서 스스로를 자가당착에 빠뜨리고 있다. 현재 미국의 반확산 정책은 자신의 군사적 이니셔티브를 전제한다. 이는 핵무기 개발에 대한 미국의 이중적 기준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지난 1995년 NPT를 무기한 연장하기로 회원국들이 합의한 전제는 핵보유국들의 핵군축 및 핵폐기에 대한 약속이었다. 그런데 미의회는 13개 핵폐기 의무사항으로 설정된 주요 조처 중 포괄적핵실험금지조약(CTBT)을 1999년 부결시켰고, 핵군비경쟁을 가속화할 수 있는 미사일 방어망 구축을 금지하는 탄도미사일방어망조약(ABM)을 2002년 파기하였다. 1)부시행정부는 NPT 내 비핵국가들이 지속적으로 요구하던 소극적 안전보장(핵보유국의 비핵국가에 대한 선제 핵공격 금지)을 명시적으로 철회하였고, (북한을 겨냥한 것으로 추측되는) 지하 벙커를 파괴하기 위해 지표를 관통하는 소형 핵무기를 개발하는 데 예산을 지출하고 있다. 올해 5월 열린 NPT 7차 평가회의에서 논란이 되었던 것은 이러한 미국의 이중적 태도였으며, 비핵국가들과 미국 사이의 뿌리깊은 불신은 결국 회의가 결렬된 주된 원인이었다. 비핵국가들은 기존 NPT 체제의 이중적 잣대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면서 비핵국가에 대한 핵선제공격 금지를 명문화하고 우라늄 농축이나 플루토늄 재처리 기술을 포함하는 ‘평화적 핵이용권’을 주장하였으며, 미국은 서방국가들 중심으로 구성된 핵공급그룹(NSG)을 통해 모든 핵기술의 수출을 규제하고 NPT에서의 일방적인 탈퇴에 대한 제재를 강화하려고 하였다. 또한 미국은 핵무기로 전용할 가능성이 있는 관련 기술의 확산을 엄격히 통제하기 위해 경제제재와 저지, 나포, 선제공격을 포함한 확산방지구상(PSI)을 2004년 발표하면서 핵무기의 ‘수평적 확산’(horizontal proliferation; 핵보유국이 늘어나는 것을 가리킴)을 저지하기 위한 적극적인 노력을 천명하였다. 그런데 미국은 IAEA가 제안한 5년 간 핵분열 물질의 생산 중단에 대해서는 자국의 핵이용이 제한될 수 있다며 반대하는 이중적 태도를 보이고 있다. 미국은 자신이 적극적으로 새로운 핵무기를 개발하면서 ‘수직적 확산’(vertical proliferation; 기존 핵보유국들의 핵전력이 강화되는 것을 가리킴)을 주도하고 있으며 이스라엘, 인도, 파키스탄 등 NPT 비회원국들의 핵개발에 대해서는 침묵하고 있다. 자신의 언명과는 다르게 미국은 핵무기의 수직적 확산이나 수평적 확산 모두에서 스스로 NPT 체제를 위기로 몰아넣고 있다. 미국 말대로 언제든지 핵무기로 전용 가능하고 사실상 평화적 목적의 핵이용의 실체가 불분명한 것이라면 가장 강력하고 효과적인 반확산 정책의 전제는 바로 미국의 핵폐기이다. 그렇지만 미국은 ‘절멸의 무기’로서 순식간에 한 도시, 한 국가를 순식간에 날려버릴 수 있는 파괴력을 포기하지 않음으로서 오히려 다른 국가들의 핵(무기)개발에 대한 동인을 제공하고 있으며 오히려 핵무기에 대한 국제적이고 민주적인 통제 자체를 봉쇄한다. 이러한 미국의 군사적 이니셔티브를 해체하거나 감축하는 문제를 제기하지 않으면서 국가들간의 국제회담으로 평화를 운위한다는 것은 태양을 손바닥으로 가리는 것이다. 노무현정권의 ‘중재자적 역할’의 한계와 한반도․동아시아 평화를 향한 아래로부터의 운동 세계평화의 대전제는 미국의 군사적 이니셔티브의 감축과 해체, 그리고 미국의 핵폐기이다. 이는 한반도․동아시에서도 마찬가지이다. 그런데 이번 6자회담을 해석하면서 마치 이 근본적인 문제를 건드리지 않으면서 한반도의 평화체제를 당장이라도 구축할 수 있는 것처럼 설명하는 것은 커다란 착각과 오산이 아닐 수 없다. 당장 노무현 정권은 이번 공동성명의 의의를 설명하면서 남한정부의 중재 아래 미국의 유연성(경수로 추후 논의 인정)과 북한의 결단(핵포기)을 이끌어내었다며 스스로의 외교적 노력을 자찬하기에 바쁘고 한반도․동북아 평화번영의 전기로 삼아야 한다며 목청을 높이고 있다. 뿐만 아니라 정부는 6자회담이 타결되면 플랜A에 따라 남북정상회담을 정례화하고, 북한경제발전종합계획으로서 ‘북한식 마셜플랜’을 가동할 것으로 알려졌다(《국민일보》9월 24일). 하지만 이 모든 계획은 “굳건한 한미동맹”의 종속변수일 뿐임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정부는 플랜 B를 동시에 상정하고 있는데 이는 대북 경제제재와 PSI 참여, 봉쇄, 군사적 조치를 포함하고 있다. 이는 언제든지 과거 역대정권이 그러했던 것처럼 미국의 전략에 따라 대북관계가 부침을 거듭할 수 있음을 드러내는 동시에 노무현정권의 ‘중재자적 역할’이 무력해질 수 있음을 반증하고 있다. 미국의 전략적 이해관계 속에 포섭되는 한반도와 동아시아의 모습을 ‘평화체제’라 부른다는 것은 이라크 침략전쟁이 이라크 민중의 자유와 해방을 위한 것이었다는 미국의 변명만큼이나 궁색하기 짝이 없다. 현재 전세계를 통틀어 군사적으로 미국에게 대적할 수 있는 국가는 존재하지 않으며 앞으로도 상당 기간 그러할 것이다.2) 향후 미국의 군사적 패권을 위협할 수 있는 경쟁국가의 부재는 바꿔 말하자면 오늘날의 세계평화를 국가간 체계의 유지나 존속을 통해서 기대하는 것이 그 어느 때보다도 훨씬 비현실적이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6자회담을 통해 북․미 관계정상화와 북한의 핵포기가 조율되는 것조차 지난한 과정일 뿐만 아니라, 설혹 어떤 합의가 도출된다고 하더라도 그로 환원되지 않는 그 이상의 것(한반도․동이사이의 평화)을 기대할 수는 없다. 따라서 한반도․동아시아의 평화를 향한 과정은 6자회담의 성공과는 완전히 다른 수준에서, 다른 정치적 목표를 제기하는 문제이며, 미국의 군사패권을 해체하고 감축하는 아래로부터의 반미반전운동, 현실의 대중운동 속에서 그 해결의 단초를 찾을 수밖에 없다. 1) NPT 4조에서는 “평화적 핵이용”에 대한 비핵국가의 권리를, 그리고 6조에서는 기존의 핵무기 보유국의 “전면적인 핵무기 폐기를 위한 협상 및 조약체결”의 책임을 명시하고 있다. 그렇지만 실제로 6조는 미국 주도의 핵군비 경쟁으로 사문화되어가고 있으며 4조 역시 기존 핵무기 독점을 강화하기 위한 핵관련 기술 이전에 대한 규제로 인해 까다롭게 될 전망이다. 본문으로 2) 2003년도 미국 국방예산은 3,961억 달러로 러시아의 6배, ‘불량국가’로 지목된 북한, 이란, 이라크, 시리아, 리비아, 수단, 쿠바 국방비 총합의 26배이다. 심지어 미국의 국방비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회원국과 러시아, 중국, 일본, 인도, 남한, 호주의 국방비 총합보다 740억 달러가 많다. 2005년도 미국 국방예산 4,206억 달러는 부르키나파소, 부룬디, 콩고, 케냐, 레소토, 모리셔스, 모로코, 나이지리아, 르완다, 남아프리카공화국, 탄자니아, 튀니지 등 아프리카 12개국 3억9천4백만 명의 국민총소득 총합 3,857억 달러보다 많다. 본문으로
-4차 6자회담 공동성명의 의미와 한계 ‘공동성명’은 과연 진전된 것이라고 볼 수 있는가? “6자회담 성공은 평화통일로 가는 길”.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용산구협의회가 육교 위에 커다랗게 걸어놓은 현수막의 제목이다. 9월 19일 북경발 뉴스를 통해 13개월만에 재개된 4차 6자회담의 극적인 합의가 알려졌다. 그 이후 동북아 평화체제로의 진입, 평화통일의 이정표, 남북 정상회담의 정례화 등등 각종 장밋빛 전망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바로 그 다음날부터 시작된 경수로 제공 여부를 둘러싼 북한과 미국의 성명전을 살펴본다면 오는 이후 6자회담이 과연 순조롭게 진행될 것인가에 대해 반드시 낙관할 수는 없다. 우선 6개항으로 되어있는 공동성명을 살펴보면 핵심적으로 1조는 한반도 비핵화 원칙과 그 달성방안, 미국의 대북침공 의사 없음과 북한의 평화적 핵이용권 존중과 적당한 시기에 경수로 제공논의를 다루고 있다. 그리고 2조는 북한의 주권 존중, 북미평화공존, 북미 및 북일 관계 정상화를 다루고 있다. 이번 공동성명의 수준은 강제적인 이행의무를 부과하는 조약이 아니라 5조에서 규정한 것처럼 추후 ‘공약 대 공약’, ‘행동 대 행동’의 원칙에 입각하여 상호조율된 조치를 취하기 위한 ‘말 대 말’ 수준에서의 합의에 불과하며 북한과 미국, 남한 및 참가국들의 행동이 접속사 없이 무미건조하게 병렬적으로 나열되고 있다. 게다가 내용을 살펴보면 핵 프로그램을 포기하는 북한의 의무는 명확하게 표현된 것에 비해 미국이 이에 대한 반대급부(관계정상화와 경수로 제공)를 어떤 시점에 어떻게 제공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모호하게 서술되었을 뿐만 아니라 과연 그 반대급부가 제공될 지 여부도 이번 회담에서 확인되지는 않았다. 이번 회담은 그동안 교착상태에 빠져있던 6자회담의 ‘불씨’를 꺼뜨리지 않는 데는 성공했지만 6조에서 앞으로의 회담일정(11월 5차 6자회담)을 구체적으로 명시되어 있는 것을 제외하면 여전히 애매모호한 채 남아있는데 이는 그만큼 북한과 미국 간의 이견이 해소되지 않고 있다는 현실을 반증하는 것이다. 이번 공동성명의 수준은 1994년 상호 반대급부(북한의 핵동결과 미국의 경수로 제공)와 관계정상화를 명시한 ‘제네바기본합의서’에 미치지 못하며 그야말로 잠정적인 각국 행동의 일반적인 원칙을 나열한 정도에 불과하다. 이러한 한계를 무시하고 ‘선군외교의 승리’라든가,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과 동북아 안정을 위한 출발점’으로 이번 공동성명의 의의를 과장하는 것은 오히려 6자회담 내부의 한계는 물론이고, 과연 이를 통해 한반도와 동북아의 평화가 정착될 수 있는지를 냉철하게 바라볼 수 있는 시야를 봉쇄할 뿐이다. 돌이켜보면 현실사회주의 진영의 붕괴 이후 지난 15년 동안 정부와 언론의 호들갑은 별반 새롭지 않다. 1991년 12월 ‘남북사이의 화해와 불가침 및 교류․협력에 관한 합의서’가 체결되었을 때를 기억해보라. 혹은 1994년 10월 제네바에서 북한과 미국이 합의에 이르렀을 때 언론의 반응은 어떠했는가? 현재와 마찬가지로 온갖 장밋빛 전망들이 쏟아졌지만 이후의 사태는 한반도 및 동아시아에서의 군사적 이니셔티브를 유지하기 위해 새로운 요구들을 관계정상화의 전제조건으로 제시하는 미국의 태도에 따라 남북관계마저 경색․악화되어오지 않았던가? 어떻게 보면 이번 6자회담의 ‘합의’를 추켜세우기 전에 질문해야할 중요한 문제는 어째서 1994년 제네바 합의가 성공하지 못했는가, 혹은 어째서 남한과 미국은 ‘북핵문제’를 해결하는데 실패해 왔는가이다. 관계정상화를 꿈꾸는 북한 vs 대량살상무기를 제거하려는 미국: 타협의 불투명성과 한계 미국은 6자회담 내내 북한의 핵 프로그램에 대한 CVID(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돌이킬 수 없는 핵폐기) 원칙이 우선되어야 함을 강조해왔다. 지난 3차 6자회담에서 미국은 ‘다단계 포괄적 비핵화방안’을 제시했는데 핵동결에 상응하는 중유지원, 3개월 후 핵폐기 절차가 시작되면 4단계에 걸쳐 잠정적 안전보장, 비핵 에너지 지원, 테러지원국 명단 제외 및 경제제재 해제 논의, 관계 정상화 등을 추진한다는 입장을 제시하였다. 그러나 북한은 핵동결에 상응하여 200만kw의 에너지 지원(이는 지난 7월 12일 남한의 ‘중대제안’으로 수용된다), 테러지원국 명단 제외, 경제제재 및 봉쇄 해제를 요구하였다. 비단 보상의 문제 뿐 아니라 동결과 폐기의 범위에 2차 북핵위기의 발원지였던 고농축 우라늄(HEU)이 포함되는지, 그리고 사찰의 주체가 국제원자력기구(IAEA)인지, 아니면 6자회담의 틀 속에서 새롭게 마련될 것인지도 추가적인 쟁점들이다. 하지만 양자의 입장이 대등하게 조율되는 것은 아니며 장기적으로는 북한이 대부분 미국의 제안을 수용하고 있는데 반해 미국이 이에 대한 반대급부를 구체적이고 명확하게 제시하지 않는 것이 회담을 더욱 애매모호한 합의로 몰고 가는 주된 원인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강력한 反확산(counter-proliferation) 전략에 입각하여 정책의 우선순위를 북한의 대량살상무기(WMD)의 제거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미국과, 냉전시대의 종언 이후 외부로부터의 식량지원에 의존할 정도로 취약해진 경제적 기반을 복구하고 미국․일본과의 관계 정상화를 모색하려는 북한의 정치적 목표가 얼마나 조화를 이룰 수 있는가는 쉽게 장담할 수 없는 문제이다. 舊소련과 현실사회주의 진영이 몰락한 이후 한반도의 군사적 대결구도는 국제적으로 고립된 북한에게 커다란 정치․경제적 부담이 아닐 수 없다. 지난 10여 년 동안 줄곧 관계정상화의 전제조건으로서 미국은 북한에게 추가적인 양보를 강요하고 있고 대체적으로 북한은 미국의 요구를 수용해왔다(1994년 「제네바 기본 합의서」를 통한 핵 프로그램의 동결과 폐기, 1998년 「페리 보고서」에서의 중장거리 미사일 프로그램의 중단). 그러나 미국은 북한의 군사적 위협을 명시하며 전역미사일방어망구상(TMD)․미사일 방어망(MD) 계획을 1990년대 내내 추진해왔을 뿐 아니라, 2001년 「핵태세 보고서」에서 미국은 북한에 대한 핵무기 공격을 포기하는 「제네바 기본 합의서」를 명시적으로 위반하면서 북한을 핵선제공격이 가능한 7개국의 명단에 포함하는 등 동아시아에서의 군사적 이니셔티브의 유지․확장 속에서 대북 관계 정상화를 부차적이거나 종속된 문제로 취급해왔을 뿐이었다. 따라서 6자회담의 틀 안에서의 합의는 현재로서는 결코 낙관할 수 없으며 오히려 앞으로 북미 간의 이견과 갈등은 지금까지의 6자회담보다 훨씬 격렬하게 드러날 것이다. 게다가 더 큰 문제는 설혹 6자회담의 틀 내에서 (‘제네바 합의’와 같은 수준의) 북한과 미국 사이에 구체적인 합의점을 찾는다고 하더라도 전지구적인 미국의 군사적 패권주의의 틀을 벗어나기 어렵다. 왜냐하면 미국으로서는 현재의 한미군사동맹의 근간을 유지하는 한편, 한반도비핵화의 범위를 자국의 핵탑재 잠수함과 항공모함, 비행기의 출입을 제한하지 않는 방향으로 해석하려고 하며 이 경우 6자회담은 한반도․동아시아의 평화를 불러오기보다는 현존하는 군사적 갈등과 경쟁을 새로운 방식으로 재생산하게 될 공산이 크기 때문이다. 미국의 핵확산 억제 시도의 자가당착: 미국의 핵독점을 전제한 군사적 이니셔티브의 추구 미국의 군사안보 정책의 최우선 순위는 무엇보다 ‘테러와의 전쟁’, 대량살상무기의 확산을 적극적으로 저지하기 위해 예방전쟁․선제공격마저 마다하지 않는 강력한 반확산 정책이다. 따지고 보면 지난 2003년 결국 ‘제네바 합의’가 미국의 대북 중유 제공 중단과 북한의 핵비확산조약(NPT) 탈퇴로 인해 파탄에 처한 근본적인 이유는 ‘불량국가’에 대한 미국의 불신과 2003년 이라크 침략전쟁으로 가시화된 호전적인 군사․안보정책에 기인한다. 뿐만 아니라 미국의 핵무기 독점을 위한 시도는 지난 1970년 출범한 NPT를 최악의 위기상황으로 내몰고 있다는 점에서 스스로를 자가당착에 빠뜨리고 있다. 현재 미국의 반확산 정책은 자신의 군사적 이니셔티브를 전제한다. 이는 핵무기 개발에 대한 미국의 이중적 기준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지난 1995년 NPT를 무기한 연장하기로 회원국들이 합의한 전제는 핵보유국들의 핵군축 및 핵폐기에 대한 약속이었다. 그런데 미의회는 13개 핵폐기 의무사항으로 설정된 주요 조처 중 포괄적핵실험금지조약(CTBT)을 1999년 부결시켰고, 핵군비경쟁을 가속화할 수 있는 미사일 방어망 구축을 금지하는 탄도미사일방어망조약(ABM)을 2002년 파기하였다. 1)부시행정부는 NPT 내 비핵국가들이 지속적으로 요구하던 소극적 안전보장(핵보유국의 비핵국가에 대한 선제 핵공격 금지)을 명시적으로 철회하였고, (북한을 겨냥한 것으로 추측되는) 지하 벙커를 파괴하기 위해 지표를 관통하는 소형 핵무기를 개발하는 데 예산을 지출하고 있다. 올해 5월 열린 NPT 7차 평가회의에서 논란이 되었던 것은 이러한 미국의 이중적 태도였으며, 비핵국가들과 미국 사이의 뿌리깊은 불신은 결국 회의가 결렬된 주된 원인이었다. 비핵국가들은 기존 NPT 체제의 이중적 잣대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면서 비핵국가에 대한 핵선제공격 금지를 명문화하고 우라늄 농축이나 플루토늄 재처리 기술을 포함하는 ‘평화적 핵이용권’을 주장하였으며, 미국은 서방국가들 중심으로 구성된 핵공급그룹(NSG)을 통해 모든 핵기술의 수출을 규제하고 NPT에서의 일방적인 탈퇴에 대한 제재를 강화하려고 하였다. 또한 미국은 핵무기로 전용할 가능성이 있는 관련 기술의 확산을 엄격히 통제하기 위해 경제제재와 저지, 나포, 선제공격을 포함한 확산방지구상(PSI)을 2004년 발표하면서 핵무기의 ‘수평적 확산’(horizontal proliferation; 핵보유국이 늘어나는 것을 가리킴)을 저지하기 위한 적극적인 노력을 천명하였다. 그런데 미국은 IAEA가 제안한 5년 간 핵분열 물질의 생산 중단에 대해서는 자국의 핵이용이 제한될 수 있다며 반대하는 이중적 태도를 보이고 있다. 미국은 자신이 적극적으로 새로운 핵무기를 개발하면서 ‘수직적 확산’(vertical proliferation; 기존 핵보유국들의 핵전력이 강화되는 것을 가리킴)을 주도하고 있으며 이스라엘, 인도, 파키스탄 등 NPT 비회원국들의 핵개발에 대해서는 침묵하고 있다. 자신의 언명과는 다르게 미국은 핵무기의 수직적 확산이나 수평적 확산 모두에서 스스로 NPT 체제를 위기로 몰아넣고 있다. 미국 말대로 언제든지 핵무기로 전용 가능하고 사실상 평화적 목적의 핵이용의 실체가 불분명한 것이라면 가장 강력하고 효과적인 반확산 정책의 전제는 바로 미국의 핵폐기이다. 그렇지만 미국은 ‘절멸의 무기’로서 순식간에 한 도시, 한 국가를 순식간에 날려버릴 수 있는 파괴력을 포기하지 않음으로서 오히려 다른 국가들의 핵(무기)개발에 대한 동인을 제공하고 있으며 오히려 핵무기에 대한 국제적이고 민주적인 통제 자체를 봉쇄한다. 이러한 미국의 군사적 이니셔티브를 해체하거나 감축하는 문제를 제기하지 않으면서 국가들간의 국제회담으로 평화를 운위한다는 것은 태양을 손바닥으로 가리는 것이다. 노무현정권의 ‘중재자적 역할’의 한계와 한반도․동아시아 평화를 향한 아래로부터의 운동 세계평화의 대전제는 미국의 군사적 이니셔티브의 감축과 해체, 그리고 미국의 핵폐기이다. 이는 한반도․동아시에서도 마찬가지이다. 그런데 이번 6자회담을 해석하면서 마치 이 근본적인 문제를 건드리지 않으면서 한반도의 평화체제를 당장이라도 구축할 수 있는 것처럼 설명하는 것은 커다란 착각과 오산이 아닐 수 없다. 당장 노무현 정권은 이번 공동성명의 의의를 설명하면서 남한정부의 중재 아래 미국의 유연성(경수로 추후 논의 인정)과 북한의 결단(핵포기)을 이끌어내었다며 스스로의 외교적 노력을 자찬하기에 바쁘고 한반도․동북아 평화번영의 전기로 삼아야 한다며 목청을 높이고 있다. 뿐만 아니라 정부는 6자회담이 타결되면 플랜A에 따라 남북정상회담을 정례화하고, 북한경제발전종합계획으로서 ‘북한식 마셜플랜’을 가동할 것으로 알려졌다(《국민일보》9월 24일). 하지만 이 모든 계획은 “굳건한 한미동맹”의 종속변수일 뿐임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정부는 플랜 B를 동시에 상정하고 있는데 이는 대북 경제제재와 PSI 참여, 봉쇄, 군사적 조치를 포함하고 있다. 이는 언제든지 과거 역대정권이 그러했던 것처럼 미국의 전략에 따라 대북관계가 부침을 거듭할 수 있음을 드러내는 동시에 노무현정권의 ‘중재자적 역할’이 무력해질 수 있음을 반증하고 있다. 미국의 전략적 이해관계 속에 포섭되는 한반도와 동아시아의 모습을 ‘평화체제’라 부른다는 것은 이라크 침략전쟁이 이라크 민중의 자유와 해방을 위한 것이었다는 미국의 변명만큼이나 궁색하기 짝이 없다. 현재 전세계를 통틀어 군사적으로 미국에게 대적할 수 있는 국가는 존재하지 않으며 앞으로도 상당 기간 그러할 것이다.2) 향후 미국의 군사적 패권을 위협할 수 있는 경쟁국가의 부재는 바꿔 말하자면 오늘날의 세계평화를 국가간 체계의 유지나 존속을 통해서 기대하는 것이 그 어느 때보다도 훨씬 비현실적이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6자회담을 통해 북․미 관계정상화와 북한의 핵포기가 조율되는 것조차 지난한 과정일 뿐만 아니라, 설혹 어떤 합의가 도출된다고 하더라도 그로 환원되지 않는 그 이상의 것(한반도․동이사이의 평화)을 기대할 수는 없다. 따라서 한반도․동아시아의 평화를 향한 과정은 6자회담의 성공과는 완전히 다른 수준에서, 다른 정치적 목표를 제기하는 문제이며, 미국의 군사패권을 해체하고 감축하는 아래로부터의 반미반전운동, 현실의 대중운동 속에서 그 해결의 단초를 찾을 수밖에 없다. 1) NPT 4조에서는 “평화적 핵이용”에 대한 비핵국가의 권리를, 그리고 6조에서는 기존의 핵무기 보유국의 “전면적인 핵무기 폐기를 위한 협상 및 조약체결”의 책임을 명시하고 있다. 그렇지만 실제로 6조는 미국 주도의 핵군비 경쟁으로 사문화되어가고 있으며 4조 역시 기존 핵무기 독점을 강화하기 위한 핵관련 기술 이전에 대한 규제로 인해 까다롭게 될 전망이다. 본문으로 2) 2003년도 미국 국방예산은 3,961억 달러로 러시아의 6배, ‘불량국가’로 지목된 북한, 이란, 이라크, 시리아, 리비아, 수단, 쿠바 국방비 총합의 26배이다. 심지어 미국의 국방비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회원국과 러시아, 중국, 일본, 인도, 남한, 호주의 국방비 총합보다 740억 달러가 많다. 2005년도 미국 국방예산 4,206억 달러는 부르키나파소, 부룬디, 콩고, 케냐, 레소토, 모리셔스, 모로코, 나이지리아, 르완다, 남아프리카공화국, 탄자니아, 튀니지 등 아프리카 12개국 3억9천4백만 명의 국민총소득 총합 3,857억 달러보다 많다.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