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SSP Institute for Workers' Movements

GM대우 구조조정 업데이트 8호
2009년 11월 24일



물량 확보가 아니라 투쟁할 수 있는 지도부 선출이 답이다!
- 금속노조 GM대우 지부 선거에 바란다

한지원(노동자운동연구소(준))
jwhan77@gmail.com



노조 선거에서 ‘고용안정’ 약속은 진패일까 허패일까?

이번 구조조정 속보는 GM대우지부 투표를 앞두고 모든 후보가 이야기하는 GM대우 고용안정방안에 대해 짧은 논평을 담았다.

11월 16일부터 시작된 이번 선거에는 다섯 후보가 경쟁하고 있다. 모기업인 GM이 파산하고, GM대우 역시 매출급감과 금융투기 손실로 앞날이 불투명한 상황에서 치러지는 선거다 보니 조합원들의 관심도 매우 뜨겁다. 다섯 후보는 모두 고용안정을 위한 대책을 정책의 첫 번째로 내세우고 있다. 모두 견위수명(見危授命, 논어에 나오는 말로 위태로움을 보고 목숨을 바친다는 뜻이다)하겠다는 자세이다.

그러나 후보들이 내세우는 고용안정 전략은 실현 가능성에 문제가 있다. 후보들이 첫 번째 과제로 든 생산물량 확보 방안이 세계 경제 위기로 말미암은 자동차 판매 하락, GM 파산 이후 글로벌 구조조정 그리고 한 사업장에서 노동조합 교섭 수준을 고려해 보았을 때 실현 가능성이 없기 때문이다. 부평신문보도에 따르면 기호 1번 추영호 후보는 생산물량 확보 유지 협약(내수 30% 향상), 기호 2번 정인상 후보는 한국 내 총생산 규모 합의, 기호 3번 정종환 후보는 인도 마티즈 자국용 생산 판매, 기호 4번 이성재 후보는 전기자동차 생산, 기호 5번 고남권 후보는 GM대우와 상하이GM의 상생발전방안을 주장하고 있다.


부동산모기지대출에 얹어 판 자동차..... GM대우가 생존할 방법은 ‘시장’에 없다.

생산물량 확보와 관련하여 먼저 세계 자동차 산업 상황을 보자. 전체 생산의 90%가 수출인 GM대우는 국내 어떤 기업보다 세계 자동차 시장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GM대우 상황에서 세계 자동차 시장 상황과 관계없이 생산물량을 확보할 수는 없다.

연초에 20% 이상 추락했던 세계 자동차 판매량은 6월 이후 다소 진정되어 9월에는 작년동월대비 3% 정도 상승하였다. 물론 이 수치는 작년 하반기부터 자동차 판매가 급감한 기저효과 때문이다. 시장조사기관들은 2009년 전체로는 2008년에 비해 약 7.3% 정도 감소할 것으로 예상한다. 2008년 4.6% 하락에 이어 2년 연속 판매량이 감소한 해는 대공황 이후 올해가 처음이다. 특히 문제는 이 수치마저도 세계 각국 정부들이 천문학적 재정을 자동차 소비 보조에 쏟아 부었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사실이다. 미국을 예로 보면 폐차 인센티브가 유지되던 8월에는 작년동월대비 1% 판매 증가를 이뤘지만 인센티브가 종료된 9월에는 판매가 9.4% 감소로 돌아섰다. 시장의 일인자로 등극하며, 세계 자동차 시장의 구세주가 된 중국 역시 마찬가지이다. 중국은 3/4분기 판매가 작년동기대비 73.8% 상승했는데 2008년 하반기부터 시작된 4조 위안(한화 약 2천5백조 원) 규모의 경기부양책에 힘입은 바가 크다. 그런데 정부 소비 보조에는 한계가 있다. 정부 지출의 원천인 노동자와 기업 소득이 감소하는데 무한정 보조를 계속 할 수는 없다. 미래 소득에 대한 과세인 국채로 버티는 것도 경제 전망이 좋지 않은 상황에서 한계가 있다.

이미 여러 차례 구조조정 속보를 통해 분석했듯이 자동차 산업이 쉽게 생산을 회복할 수 없는 이유는 세계 자동차 기업들의 성장 기반이었던 세계 자본주의 금융화(신자유주의)와 관련 있다. 미국 부동산, 주식시장을 필두로 세계 각국에서 벌어진 자본 시장 활성화가 실물 경제와 상관없이 자동차 구매를 확대시켰다. 미국의 소비자들은 부동산 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아 자산이 증가하자, 이를 담보로 부채를 끌어와(예를 들면 신용카드 구매 또는 저신용 할부 구매) 소비를 확대한 것이다. 세계적 차원에서는 중국이 미국에 수출을 통해 번 돈을 미국 자산에 재투자하는 ‘달라 환류’라 불리는 순환이 중국과 미국 양쪽에서 소비를 증가시켰다. 90년대 이후 자동차 시장은 부동산 시장과 같은 궤도로 성장했고, 부동산 폭락과 함께 주저앉았다. GM이 유독 포드나 포크스바겐, 도요타보다도 2008년 더 큰 손실을 본 것은 GM이 금융 분야에 최첨단을 달렸기 때문이기도 하다. GM은 계열사인 할부금융회사 GMAC(지멕)을 이용하여 부동산 투기에 나섰고, 주택모기지상품과 자동차할부금융상품을 투기 상품으로 만들어 2006년까지 막대한 수익을 올렸었다. 그리고 우리가 익히 아는 것처럼 부동산 시장이 폭락하자 모든 투기 상품이 휴짓조각으로 돌변하며 GM 전체를 파산으로 내몰았다.

다시 전 세계 자산 폭등이 이루어지지 않는 이상 예전과 같은 자동차 판매 증가가 이루어질 수는 없다. 더 나아가 최근 판매량이 급증하며 자동차 시장의 붕괴를 막은 중국, 인도, 브라질 등 신흥시장 역시 선진국 자산 시장이 폭락하며 이동한 세계 투기 자금 덕이 크다는 점은 이후 자동차 시장 전망 역시 어둡게 한다. 중국, 인도, 브라질 주식 시장은 2008년 하반기 이후 거의 두 배 가까이 상승하며, 이들 국가의 소비자들이 자동차 소비를 늘린 중요한 기반이었다. 그런데 모든 금융 거품이 그러하듯이 이러한 상승 뒤에는 큰 하락이 뒤따를 수밖에 없다. 한 달 전 브라질 정부가 브라질 자본 유입에 대해 2% 과세를 하겠다고 밝힌 것은 금융 투기 자금 유입의 심각성을 바로 보여준다.

그렇다면 이런 상황 속에서 GM대우가 생산물량 확보를 예전 수준에서 할 수 있을까?
불가능할 것이다. 지금 전 세계 자동차 기업들은 다운사이징 구조조정을 진행 중이며, 정부 지원으로 간신히 생존해 나가는 상황이다. 더군다나 자동차 기업들은 생산량 감소로 90년대 중반부터 확대한 저비용 생산기지를 줄이고, 판매 시장이 유지되는 북미, 유럽, BRICs(브라질 러시아 인도 중국)신흥시장에서 최대한 무역 마찰을 줄이며 생산을 계속한다는 전략을 마련하고 있다. 폴크스바겐, 포드, GM 등 초국적 자동차 기업들은 남미, 동아시아, 동유럽 공장들에 대한 구조조정을 준비하며, 여유 자금은 중국 인도 등에 투자할 계획이다.

가장 금융화 된 방식으로 기업을 운영해온 GM 역시 글로벌 구조조정을 진행 중이다. GM은 소형차 생산을 북미와 중국에 집중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 북미에서 소형차 생산은 올봄 회생계획을 마련할 때 전미자동차노조와 합의한 사항이며, 중국 소형차 시장은 세계 1위 시장에서 점유율을 높이기 위한 전략적 투자이다. 조선일보는 최근 GM이 라세티 프리미어를 북미에서 생산할 것이라는 보도를 내기도 했었다. 이번 오펠 매각을 둘러싼 독일 정부와 마찰에서 볼 수 있듯이 GM은 무리해서라도 판매 시장에서의 생산과 영업망을 유지하려 하고 있다. GM은 독일정부에서 매각을 조건으로 15억 유로(한화 약 2조 4천억 원)를 지원받았는데, 부채 상환 능력이 확실치도 않은 상황에서 매각 철회 결정을 한 것이다.

이러한 GM의 글로벌 구조조정 전략은 GM대우를 더욱 궁지에 몰고 있다. 한국에서 판매량이 전체 생산의 10% 내외에 불과한 GM대우 영업 상황에서 GM의 GM대우에 대한 판단은 이미 끝났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최근 4천 9백억 원가량의 자금 지원(출자)은 현재 GM대우 제품의 플랫폼이 해외로 이전되지 않은 상황에서 급격한 파산을 막는 것에 불과하다. 연말에 돌아오는 산업은행 차입금 6천1백억 원과 매달 3억 달러 규모(3천 3백억 원)의 선물환 상환금을 채권자들과 협의하기 위한 밑밥일 뿐이다.

하지만, 뾰족한 해법은 당장 없어 보인다. GM대우가 GM과 결별한다면 당장 영업망이 없어 해외 판매가 불가능한 것은 물론, 한국 시장 규모도 GM대우를 감당할 수 없다. GM을 그대로 내버려 둔다면 제대로 먹튀 짓을 할 것이 뻔하다. 이명박 정부는 비즈니스 프렌들리만 외치며 자본의 애로 사항 처리에만 혈안이 되어 있다. 77일간의 목숨을 건 노동자 투쟁에 1원 지원도 하지 않겠다던 산업은행이 갑자기 마음을 바꿔 GM대우 노동자 고용을 위한 협상을 GM과 할 리도 만무하다.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라던 김우중의 허언 장담을 기억해야
- 고용안정은 물량 확보가 아니라 투쟁할 수 있는 지도부 선출에 달렸다

생산물량 확보를 주장하는 여러 선본들은 유능한 경영자에 의한 경영 정상화가 고용안정과 임금인상에 긍정적으로 역할 하도록 만들 약간의 투쟁을 생각하는 듯하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21세기는 경영 기법의 변화로, 약간의 생산 정책 변화로 바꿀 수 있는 것이 별로 없다. 국민에게 환상을 유포하는 관변 경제학자들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주류 경제학자들마저도 현재의 경제 시스템이 근본적으로 바뀌지 않는다면 세계 경제가 장기간 저성장을 경험할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후보자들이 주장하는 생산물량 확보는 고용에 대한 조합원들의 불안을 잠시 위로할 수는 있을지 몰라도 실질적인 해결책이 될 수는 없어 보인다. GM이 만에 하나 일부 후보들이 주장하는 생산물량 확보 유지 협약을 해준다 하더라도 이는 공수표가 될 공산이 크다. 상하이자동차의 쌍용차 철수에서 보이듯이 떠나는 자가 지킬 약속은 없기 때문이다. 지금 GM에게 필요한 것은 현 GM대우의 소형차 플랫폼을 이동시킬 시간이지 노동조합과의 장기적 평화가 아니다. 전기자동차 생산은 더 황당한 공약이다. 전기차 생산은 미국 정부 자금을 받아 생산하는 것으로 미국 외부에서 생산이 애초에 불가능하다. 당장 전기차가 대량 판매 가능한가도 문제라 할 것이다. 인도나 중국 생산 물량을 GM대우와 상생 발전할 수 있는 방향으로 조정하겠다는 방안 역시 마찬가지이다. 앞에서 누차 지적했듯이 GM의 글로벌 전략의 핵심은 시장이 있는 곳에서 생산한다는 것이다. 중국과 인도는 현재 기업의 성패를 좌우할 수도 있는 세계 최고의 시장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답이 없을 때는 문제를 바꾸어야 한다. “시장에서 어떻게 물량을 확보해 고용을 보호받을 것인가?”에서 “더는 노동자 생존도 보장하지 못하는 자본주의를 어떻게 바꿀 것인가?”로 말이다. 앞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20세기 후반의 금융 거품 속에서 성장한 자동차 기업 대표주자인 GM의 하청기지가 된 GM대우에 묘수가 존재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처지는 비단 GM대우 노동자만이 아니라 수많은 부품사 노동자들, 가장 먼저 해고된 수천의 자동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공유하는 것이다. 더 나아가 국외 공장 물량 이전으로 하루하루 불안에 떠는 현대기아차 노동자들, 이미 2천6백여 명의 정리해고와 공권력에 의해 인권마저 짓 밝힌 쌍용차 노동자들 모두 공유하는 현실이다. 15만 금속노조 모두가 약간 차이가 있을 뿐 기본적으로 같은 처지이다.

바뀐 문제의 답은 GM대우 노동자들은 실현 불가능한 물량확보 공약이 아니라 금속노조로 단결하여 사내하청 노동자, 부품사 노동자 모두와 투쟁할 수 있는 후보이다. 당장 명쾌한 답은 없을 지라도 노동자 모두의 고용안정과 생존권 확보를 위해 투쟁할 수 있는 노동조합의 지도부만이 최소한 앞으로 벌어질 사태를 준비하고, 자본주의를 바꾸기 위해 힘을 보탤 수 있을 것이다. 글을 마무리하며 1997년 기억을 떠올려본다.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다고 떠들던 김우중 회장은 대우그룹 부도 직전에도 대우 세계화를 외치며 호언장담을 해댔다. 그리고 그 결과 수천의 노동자가 길거리로 내몰려야 했다. 물량확보 정책만을 장밋빛 전망으로 내건 지금의 GM대우 선본들이 김우중과 닮아가는 것은 아닌지 되돌아 볼 일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