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보험 하나로?...‘100만원 상한제’가 더 낫다”
[기고] 의료민영화 저지와 의료 보장성 강화로 통합해야
최윤정(사회진보연대 보건의료팀) 2010.08.13 20:10

‘건강보험 하나로’ 운동의 문제점


국민들이 1만 1천원을 더 내서 걱정 없이 병원을 이용할 수 있도록 보장성을 획기적으로 강화하자는 ‘건강보험 하나로’ 운동이 7월 중순에 깃발을 올렸다. 그러나 보건의료운동을 포함한 운동 진영 내에서도 이에 대한 많은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지난 10년간 건강보험의 보장성은 강화되었지만 건강보험료는 더 많이 뛰었다. 반면 건강보험재정에 대한 국고지원의 비중은 줄었다. 기업의 부담률은 다른 OECD 국가들에 비해 낮다. 이런 상황에서 보험료 인상이 곧 보장성 강화로 이어질 것이라고 순진하게 믿을 수 있을까. 만약에 정부가 강력한 의지를 가지고 국민들을 설득하고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의 청사진을 보여주고, 이를 위한 하나의 수단으로 보험료 인상을 제기한다면 고개를 끄덕일 사람이 많을 것이다. 그러나 현재의 상황은 이러한 조건과는 거리가 멀다. 정부는 보장성 강화가 아니라 늘어나는 지출을 벌충하기 위해서 보험료 인상을 노리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보건의료운동과 노동운동이 선제적으로 건강보험료 인상을 의제화하는 것이 타당한지 의문이다.


건강보험료 인상이 보장성 강화로 이어지지 않는 이유는 의료비 지출이 계속 증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낭비적인 의료공급 구조 때문에 돈이 새어나가는 것이다. 따라서 재정의 확충과 보장성 강화가 괴리되는 현상을 핵심 문제로 다루어야 한다. 선제적 보험료 인상이라는 프레임으로는 의료민영화, 낭비적 공급구조, 국가의 책임성을 중심적인 문제로 제기하기 어렵다. 따라서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의료민영화에 대한 강력한 대안 담론을 형성하는 동시에, 공급체계의 개혁을 포함하는 실질적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운동이다.


대안으로 제기된 ‘100만원 상한제’ 운동


건강보험 하나로가 문제가 되면서 대안적인 운동 흐름이 생겨나고 있다. <의료민영화 저지와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를 위한 범국민운동본부>는 개인이 보험료를 제외한 의료비로 연 100만원 이상을 부담하지 않는 ‘100만원 상한제’ 운동을 제안했다. 보장성을 획기적으로 강화하자는 목표는 비슷하나 운동의 초점은 다르다. 우선 재원을 국고지원 증대, 사회보장세 신설로 조달하자고 제안하며 국가의 책임을 분명히 했다. 이러한 전략 하에서는 의료비 지출구조를 제어하지 않는다면 100만원 상한제를 실시하기 위한 국가의 부담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기 때문에 지출 억제 구조를 마련하는 것이 핵심적인 문제로 대두된다. 국민들은 ‘예측 불가능한 고액의 진료비’ 때문에 불안해서 민간의료보험에 가입한다. 100만원 상한제가 실시된다면 민간의료보험의 수요를 크게 줄여 의료민영화 추세를 막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현행 건강보험도 보험료 부과 수준에 따라 200~400만원의 본인부담 상한제를 실시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급여항목에만 해당되는 것이다. 선택진료비, 상급병실료, 초음파, MRI 등 비급여 부문은 해당사항이 아니다. 대부분의 고액진료비는 이러한 항목 때문에 부과된다. 의료비 상한제가 전체의료비에 적용이 되지 않는 이상 그 의미가 제한적이기 때문에 ‘100만원 상한제’ 운동은 비급여를 포함한 실질적인 상한제를 요구하고 있다.


비급여 통제, 공급체계 개혁이 중요한 고리


전체 의료비 통제를 위해서는 현재의 행위별 수가제를 총액예산제, 포괄수가제로 바꿔야 한다. (행위별 수가제는 개별 의료행위에 따라 진료비를 지불하기 때문에 고가진료, 과잉진료를 유발한다. 포괄수가제는 개별 의료행위 내용에 관계없이 어떤 질병을 치료하는데 정해진 일정액의 진료비를 지불하는 것이다. 총액예산제는 1년 총예산을 책정하고 의료비 지출을 그 한도 내에 제한하는 것이다.) 그러나 수가체계 개편이 만능의 해결책은 아니다. 수가체계를 개혁하더라도 비급여 부문에 대한 통제 방안이 확실하지 않으면 병원은 이를 활용해서 이윤을 얻으려고 할 것이다. 의료비 부담도 계속된다. 따라서 비급여 문제를 핵심적으로 제기할 필요가 있다. 의료비가 최소한의 규제의 영역에 들어오기 위해서 비급여가 급여로 전환되어야 한다.


법정비급여 중 선택진료비와 상급병실료 문제는 아무리 ‘식상’한 내용일지라도 피해갈 수 없는 문제다. 이는 단지 선택진료비, 상급병실료의 문제가 아니라 병원의 영리행위 자체를 문제 삼는 것이며, 앞으로 새로 창출될 비급여를 어떻게 제한할 것인가의 맥락에 존재하는 것이다. 임의비급여에서는 중증질환 환자들이 어쩔 수 없이 선택하는 고액의 비급여 약제 및 의료기술이 문제가 된다. 포괄수가제 도입을 통해서 새로운 약제 및 의료기술을 포괄할 수 있다. 하지만 총 의료비 증가를 억제하기 위해서라도 초국적 제약기업의 신약, 고가의료장비의 과다 사용 문제를 적절하게 다루는 문제가 남는다.


한편 비급여를 완전히 없애려면 병원에 대한 국가지원이 필요하다. 대부분의 병원이 비급여에 의존하여 수익을 얻고 있기 때문에, 이를 당장 없애면 경영이 어려워진다. 그러나 병원 경영의 문제를 기존과 같이 수가인상, 편법 수익창출 행위 보장과 같은 방법으로 해결하면 안 된다. 오히려 각 병원에 대한 정부보조금를 늘리고 이에 따른 감독과 책임을 강화하는 방식이 올바르다. 수가제도 개혁-비급여 통제-병원에 대한 정부의 보조/감독이 하나의 묶음으로 다루어진다면 의료비 문제와 공급체계 문제를 동시에 다루는 강력한 틀이 될 수 있다. 결국 실질적 100만원 상한제는 공공의료 강화와 분리될 수가 없다.


의료민영화 저지, 보장성 강화를 내건 통합적 운동을 건설하자


‘건강보험 하나로’가 이슈가 되면서 이명박 정부의 의료민영화 추진에 대한 경각심이 오히려 늦추어진 것은 아닌가하는 우려가 있다. 물론 보장성 강화와 의료민영화 저지는 논리적으로 연관성이 있다. 의료민영화가 의료서비스에 대한 보편적인 접근을 가로막기 때문이다. 그러나 논리적 연관성이 실천에서 그대로 실현되는 것은 아니다.


이명박 정부는 개각으로 보건의료부 장관을 교체하면서 다시 영리병원을 비롯한 의료민영화 추진 태세를 가다듬고 있다. 8월 말에 당장 민간의료보험 활성화를 위한 법률이 추진되고 있고, 하반기에는 건강관리사업을 시장화하려는 건강관리서비스법이 큰 쟁점이 될 것이다. 우리는 의료민영화 악법을 막아내는 운동을 시급히 기획해야 한다. 그 속에서 건강보험을 강화하고 의료서비스에 대한 권리를 지켜낼 수 있는 대안적 담론과 운동을 만들어야 한다.


‘100만원 상한제’ 안이 ‘건강보험 하나로’ 안보다 낫다고 생각한다. 설정되는 프레임이 명확하고, 비급여 통제, 공급체계 개선과의 연관 관계가 보다 명백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의료민영화 저지와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라는 측면에서 두 운동이 목표로 하는 것은 같다. 대의에 따라 통합적이고 강력한 운동이 건설될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해야 할 것이다. 그렇지 못한다면 어떠한 운동도 대중적 동력을 얻지 못하고 상층의 언론 플레이와 정당 대상의 로비활동에 머물 것이다.


좋은 안을 만든다고 운동이 되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지난 보건의료운동의 성과들을 모아내고 이를 통합적 흐름으로 조직하자. 이를 위한 구체적 방안을 마련하기 위해서 건강보험 하나로 추진세력을 비롯해 모두가 함께 토론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