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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관리서비스법, 의료민영화로 통하는 길
[기고] 건강관리서비스가 아니라 1차 의료기관 강화해야
천상정(사회진보연대 보건의료팀) 2010.09.27 18:13

건강과 웰빙에 대한 관심이 증대된 것은 이미 하루 이틀 일이 아니다. TV를 비롯한 매스컴을 통해서 건강하게 사는 법에 대한 소개가 연잇고 있으며, 건강을 증진시키는 각종 상품들이 홍수를 이룬다. 건강을 위한 음식, 각종 약품, 건강보조기구 등이 대표적인 건강 상품이다. 이에 더해 건강이나 노후 보험과 같은 상품들과 같이 간접적으로 건강을 보장한다는 광고들도 넘쳐난다.


개인의 건강에 대한 관심이 증대되고 건강관련 상품들이 넘쳐나고 있는 요즘, 보건복지위원장인 변웅전위원장을 비롯하여 한나라당, 자유선진당, 미래희망연대 소속 국회의원 11명이 ‘건강관리서비스 입법안’을 발의했다.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킨 이 법안은 9월 정기국회에서 그리고 이후에도 중요한 쟁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이 법안은 과연 우리의 건강을 향상시키는데 많은 도움을 줄까?


건강관리서비스법이 없어서 건강관리가 안되었나?


보건복지부는 법안의 목적이 만성질환 예방과 국민의료비 절감에 있다고 밝히고 있다. 이를 위해 개인의 생활습관을 개선하고, 올바른 건강관리를 유도하는 개인별 맞춤형 상담·교육·실천 프로그램 등을 지원하기 위하여 "건강관리서비스 제도"를 추진 중에 있다고 한다. 주요 내용은 정기적 건강상태 점검 및 생활습관 개선 등을 위한 상담 교육, 영양 및 운동 프로그램 설계 및 지도, 원격 의료(u-health) 기기·전화·이메일·문자메시지 등을 활용한 건강상태 모니터링이다. 건강관리서비스 기관은 의료 행위를 제외한 건강 증진 지원 활동을 실시할 수 있다.


현대인들은 이전에 비해 물질적 풍요를 누리고 있으며, 높은 평균 수명과 발달한 의료 기술을 접하고 있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건강을 해치는 요소들 역시 증가하고 있다. 과도한 노동과 경쟁적인 사회 시스템 안에서 스트레스를 받고 있으며, 이를 극복하기 위해 우울증 치료제·커피·술·피로회복제와 같은 각종 각성물질을 사용하고 있다. 특히 한국 사회의 장시간 노동 시간과 높은 자살률은, 한국인들이 일상적으로 건강을 위협받고 있다는 것을 반증하고 있다. 따라서 예방이나 상담 프로그램을 통한 일상적 건강관리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보건복지부 역시 건강관리서비스 제도의 목적이 여기에 있다고 밝히고 있다.


그런데 사실 위와 같은 지적은 오래전부터 제기되어 왔던 것이다. 단순히 병에 걸렸을 때 치료하는 것을 넘어서서 건강관리·질병예방·치료·재활에 이르기까지 건강에 대한 통합적인 접근이 필요하며, 건강관리와 질병예방을 지역사회 차원에서 수행할 수 있도록 일차의료의 기반을 강화해야 한다는 점에 대해서는 이미 사회적으로 폭넓은 합의가 형성되어 있다. 그러나 한국의 의료현실은 그리 낙관적이지 않다. 지역의 보건소는 인력 부족과 열악한 시설로 인해 지역주민의 건강관리와 질병예방과 관련한 사업을 효과적으로 수행하지 못하고 있으며 질병치료와 예방접종 등의 기본적 업무를 하기에 급급하다. 지역사회 1차 의료의 대부분은 병원 및 약국에서 이루어지는데, 이런 곳에서 주민들을 대상으로 하는 건강관리 프로그램은 제대로 시행되지 않는다. 주변 의원들과 병원, 심지어는 종합병원들과 무한경쟁해야 하는 상화에서 지역주민들과의 안정적인 관계가 지속되기 어렵고, 수익을 내야 한다는 압박에 시달리는 1차 의료기관이 많은 시간을 투자해야 하는 상담과 교육을 적극적으로 수행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정부는 이제껏 이런 상황을 개선하기는커녕 방치하거나 심화시켜왔다. 1차·2차·3차에 이르는 의료전달체계 구축에는 소홀한 채로 대형병원에 대한 규제를 풀어서 무한경쟁체계에 이르게 했으며, 동네 의원들이 대형병원과 직접 경쟁해야만 하도록 했다. 대형병원들의 외래 진료를 대대적으로 허용함으로써 지역의 의원들이 안정적으로 1차의료에 집중하기 힘든 환경을 만들었으며 또한 1차의료 수준에서 중요한 건강관리와 질병예방을 할 수 있는 제도적·사회적 환경을 조성하지 않아 의원들이 수익이 나는 질병치료에 집중한다. 이러한 상황을 더 부추기는 것은 무조건적인 행위별 수가제의 적용인데, 행위별 수가제 하에서는 지역 주민의 건강을 증진시켜서 질병을 줄이는 것보다는 많은 환자를 치료하는 것이 의원의 수익 창출에 더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상황의 개선을 위한 방안으로 꾸준히 제기되었던 1차 의료 수준에서 주치의제도 확립, 의료전달체계 구축, 영리추구 중심의 보건의료체계 개혁 등이 제기되었지만 정부는 이러한 목소리는 무시하고 무차별적인 영리화만을 추진해온 것이 사실이다. 그런 상황에서 갑자기 건강관리서비스법안이라는 또 다른 제도를 통해서 1차 의료의 공백을 메우겠다는 것은 쉬운 길을 놔두고 돌아가는 방법이다. 게다가 법안의 경제적 효과를 강조하는 모양새는 정부 당국의 진의를 의심케 한다.


건강의 양극화와 환자들이 겪을 피해는 누가 책임지나?


건강관리서비스법안에 따르면 일정한 시설, 장비 및 인력을 갖추고 기초자치단체의 개설허가만 받으면 개인이나 법인, 의료인이나 비의료인, 영리와 비영리를 가리지 않고 누구나 건강관리서비스 제공기관을 개설할 수 있다. 또한 일정한 교육을 통해 형성된 ‘건강관리서비스요원’이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기 때문에 비(非)의료인도 의료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 건강관리서비스에 대한 통제 기전이 거의 없는 상황에서 건강관리서비스는 돈벌이의 수단이 될 가능성이 매우 높으며 서비스의 질을 일정 수준 이상으로 유지하기도 어렵다.


더 큰 문제는 건강보험에서 제공받을 수 있는 치료행위를 제외한 모든 건강관리서비스의 비용을 이용자들이 전적으로 부담해야 한다는 점이다. 서비스의 질은 기관에 따라 천차만별이 되고, 그 이용은 경제력에 따라 나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돈 많은 사람들만 좋은 치료를 받을 수 있고, 그렇지 못한 서민들은 질 낮은 받을 것이 우려된다. 정부는 이에 대해 다양한 가격대의 다양한 서비스가 생겨 중산층과 서민층도 이용할 수 있다고 반박하였다. 하지만 정부의 이런 낙관은 기대에 불과하다. 돈벌이가 목적이 된 상황에서 ‘다양한 가격대의 다양한 서비스’가 의미하는 것은 결국 ‘돈 있으면 고급 서비스, 돈 없으면 저질 서비스’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국민들은 이를 민간의료보험 시장의 확대과정에서 이미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 정부의 계획대로 건강관리서비스 시장이 활성화되면 규모가 큰 건강관리회사들은 고급서비스의 제공과 결합된 고가의 의료보험 상품을 개발할 것이고, 이는 소수의 사람들만 이용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고가의 서비스가 꼭 훌륭한 건강관리를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돈 내는 만큼 건강관리 수준이 달라진다는 것은 거의 확실하고, 이에 따라 건강수준의 양극화가 심화될 가능성이 크다.


건강 양극화가 지역 양극화로 나타날 가능성도 있다. 각자가 느끼고 있는 건강상의 문제들은 사실 비슷한 직업군이나 환경에 처해 있는 사람들과 공통으로 느낄 가능성이 크다. 이런 사람들은 비슷한 지역 공동체 안에 살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영세 농가가 밀접해 있는 지역, 공단이 밀집해 있는 지역에 사는 사람들은 비슷한 소득 수준과 환경에 처해 있고, 건강상의 문제들도 비슷할 것이다. 하지만 영세하고 일상적인 건강관리를 받을 수 있는 여유가 없는 지역에 건강관리회사들이 들어갈 가능성은 거의 없다.


건강관리서비스법은 결국 의료민영화로 통하는 길


정부는 건강관리서비스법이 보건의료분야의 신성장 동력으로서 일자리 창출 및 관련 산업발전 기틀 마련의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홍보하고 있다. 정부는 이를 통해 2조원의 시장 형성과 3만 8천여 명의 일자리 창출을 기대할 수 있다고 이야기 한다. 하지만 법안이 통과되고 시행된다고 하더라도 현재와 크게 바뀌는 모습은 없을 것이며, 오히려 자본에게 또 하나의 돈벌이 영역만을 제공할 가능성이 크다.


건강관리서비스 법안과 함께 적극적으로 추진되는 것이 원격건강관리(u-health)이다. 이미 올 10월부터 SKT 등 IT 대기업과 서울대 병원 등 국내 대형병원들이, 3년 동안 521억 원을 투자하여 대규모 시범사업을 실시한다고 밝혔다. 화상을 통한 질문과 최첨단 의료 기기를 통한 원격진료가 핵심적인 내용인데, 이는 안전성 검증이 되지 않은 방식인데다가, 진료의 정확성이 떨어져 진단과 처방이 잘못될 가능성이 크다. 그럼에도 이를 적극적으로 추진하는 것은 민영영리기업과 민영의료보험을 통해 관리되는 건강관리서비스가 원격 진료를 통해 대형병원과 연계될 가능성을 기대하는 것이다. 계획대로 진행된다면 건강관리서비스는 민간의료보험, 대형병원과 결합하여 의료자본의 체계적인 돈벌이를 더 용이하게 만드는 수단이 될 가능성이 높다.


위와 같은 과정에서 개인질병정보가 민간영리기업과 민영보험회사에 유출될 가능성도 크다는 것도 중요한 문제다. 실손형 보험 시장의 확대를 위해 개인질병정보에 눈독을 들이고 있는 민간의료보험업계는 건강관리서비스 사업을 통해서 방대한 개인정보를 취득할 것이다. 이를 통해 보험회사들은 실손형 민영보험상품에 건강관리서비스를 포함시켜 판매하고 직접 건강관리 회사를 운영하거나 연계 회사를 만드는 방식으로 확장할 것이다. 질병정보는 실손형 의료보험 가입자 선별을 위한 자료로 활용될 것이며, 이는 민간의료보험 상품을 이용하는 국민에게 직접적 피해가 됨과 동시에 실손형 의료보험시장의 확대는 건강보험을 위태롭게 만들 것이다.


2008년 촛불 집회에서 의료민영화가 쟁점이 되면서, 정권은 이를 추진할 수 없었다. 그러나 최근에 의료민영화가 다시 쟁점이 되고 있으며, 대표적으로 추진하는 것이 바로 건강관리서비스이다. 건강관리서비스는 결코 대중들의 건강을 증진시킬 수 있는 방법이 되지 못한다. 오히려 그나마 국가에서 보장하고 있는 의료공급체계를 왜곡시킬뿐더러, 돈 낼 수 있는 정도에 따라 서비스가 달라져 건강 양극화가 심화될 것이다. 또한 건강관리상품으로 제공되는 것들도 실질적인 진단과 상담에 있기보다는, 자본이 이윤을 추구하기가 쉬운 원격 진료나 민영보험상품 개발에 치중될 것이다.


9월 정기국회에 계류된 건강관리서비스법을 막아내고, 정말 대중들의 건강을 증진시키는 방법을 찾는 것이 필요하다. 건강 불평등의 원인과 실체를 찾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진정한 대안을 찾는 것이 진정한 숙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