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EC 노사 교섭이 난항을 겪고 있다. 노조가 임단협 요구안 대부분을 철회했음에도 사측이 파업에 대한 손해배상소송과 노조 간부 징계를 철회하지 않겠다고 버티고 있기 때문이다.
160일이 넘어선 파업, 2주 넘게 진행된 점거파업과 김준일 구미 지부장의 분신항거 이후 만들어 진 교섭 자리지만 사측은 교섭보다는 이 기회에 민주노조를 확실하게 현장에서 뽑아버리겠다는 의지를 공공연히 내보이고 있는 것이다. 한편 김준일 지부장 분신항거 이후 사회적 교섭을 이야기하며 중재에 나섰던 야5당은 사측의 강경한 태도에 별반 힘을 쓰고 있지 못하다.
사실 KEC 사태는 단순한 기업 차원의 교섭으로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세계경제위기 이후 좀 더 빨라진 전자산업 전반의 구조조정과 관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민주노조 운동이 정권의 산업정책, 자본의 구조조정 정책에 계급적 힘을 가지고 맞설 수 있느냐는 문제다.
노조 탄압의 숨겨진 배경, 2010년 구조조정 계획
KEC 구조조정 전략을 좀 더 자세히 보자. KEC는 몇 년 전부터 주력 제품군에 대한 조정을 모색했다. 주력 제품이자 세계 1~3위의 시장 점유율을 가지고 있는 소신호트랜지스터(Small Signal Transistor, SSTR)의 수익성이 지속적으로 하락했기 때문이다.
2001년의 경우 매출액 6천억 원에 영업이익이 470억에 달했지만 2009년의 경우 매출액 3천억 원에 영업이익 17억 원에 그쳤다. 수익성을 나타내는 지표 중 하나인 매출액 영업 이익률은 2001년 7.8%에서 2009년 0.6%로 10분의 1 이상 줄었다. 이러한 상태는 KEC만의 일은 아니었는데, 다른 반도체에 비해 노동집약적 공정이 많고 후발 주자의 진입이 상대적으로 수월한 소신호트랜지스터 제품은 이미 수년 전부터 일본과 미국에서 사업 축소와 구조조정의 대상이 되어 있었다.
이러한 이유로 KEC는 신제품 공장 건설을 위해 2004년 1천8백억 원 투자를 단행했고, 2006년부터 본격적으로 전력트랜지스터(Power Transistor, PWTR) 제품 판매에 나섰다. 전력트랜지스터는 전기차나 고효율 전력기기에 들어가는 반도체로 소신호반도체에 비해 시장 규모도 다섯 배 이상이고 수익성도 상대적으로 높은 제품이다. 하지만 투자에 비해 관련 매출은 2009년까지 신공장 설비의 감가상각도 메우지 못할 정도로 적어서 전력반도체 사업은 올해까지 KEC 영업이익에 마이너스 효과만 미쳤다.
세계경제위기가 소강 국면에 들어선 2010년 상반기는 KEC 자본에게는 전환점이었다. KEC는 전력트랜지스터 판매와 관련해서 4월에 현대모비스와 하이브리드 자동차 용 파워모듈을 공동 개발 계약을 체결했고, LCD모니터 백라이트로 이용되는 LED칩과 LED패키지를 LG이노텍과 각각 작년 12월과 올해 4월 체결했다. 주력 제품을 소신호트랜지스터에서 전력트랜지스터와 LED 제품으로 바꿀 수 있는 전환점을 마련한 것이다. 한 증권사는 KEC가 2012년이 되면 전력트랜지스터와 LED 제품을 전체 매출의 70% 이상으로 확대할 것으로 예상하였다. KEC는 올 해 공동대표이사에서 곽정소 1인 대표이사로 대표 체제를 바꾸며 이러한 공격적 구조조정을 단행할 경영 체제를 정비하기도 했다.
문제는 이러한 제품 조정에는 필연적으로 인적 구조조정이 뒤따른다는 것이다. 더군다나 새로운 제품들은 기존 제품에 비해 노동 절약적이며 설비 소비적이다. 소신호트랜지스터 생산 공정은 기계에 의한 화학처리가 주를 이루는 팹(Fab) 공정보다 노동집약적 생산이 필요한 조립(Assembly)공정이 비중이 컸으나 LED 제품이나 전력트랜지스터 제품은 팹 공정이 상대적으로 더 크다.
노조 파업 직전부터 경영진이 대규모 정리해고 및 인사조정이 있을 것이라고 정보를 흘린 것은 단순히 노조를 협박하기 위해서만은 아니었다. KEC 자본이 LG이노텍과 계약한 LED 제품은 무노조 계열사인 전주 티에스피에스(TSPS)에서 생산할 계획이었고, 기존 제품은 중국과 태국 공장에서의 생산 비중을 늘릴 계획이었다. 구미 공장에서의 정리해고와 구조조정은 곽정소 대표 이사 체제에서 이미 연초부터 준비되고 있었다.
이런 점에서 사측이 노조전임자 문제를 걸고 임단협을 파국으로 몰고 간 것은 노조 탄압을 위한 빌미에 불과했다. 매출액 3천억 원의 기업이 전임자 2~3명에 문제로 직장폐쇄와 생산중단까지 단행한다는 것은 다른 목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올해 상반기는 KEC가 2006년 이후 최대 실적을 내던 시기였다. KEC는 올해 상반기에만 58억 원의 영업이익을 남겼다. 지난 3년간 기록한 영업이익 합보다도 더 큰 액수며, 공장 가동률도 근래 가장 높은 80% 이상이었다. 임금 문제도 교섭 불가능한 상황이 아니었는데, KEC 노동자들은 지난 몇 년간 실질 임금 동결 상태였고, 올 해는 270억 이상의 영업이익이 기대되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생산직 여성 노동자들은 2007년에 비해 2009년 실질임금이 5% 이상 하락한 상태였다. 전임자 문제도 임금 문제도 사측에게는 핵심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사측의 목적은 단 하나, 노조 파괴였다. 그리고 가장 공장을 바쁘게 돌려야 할 중요한 시점에서 막대한 비용을 들이며 민주노조를 파괴해야만 했었던 이유는 사업 조정에 따른 대규모 구조조정을 성공적으로 진행하기 위해서였다.
KEC 만의 일인가? KEC 노조 탄압은 모든 금속 사업장의 미래
그렇다면 이러한 구조조정은 일부 사업장에만 해당하는 일일까? 아니다. 경제 위기로 기업들의 경쟁이 더욱 격화될수록 비용절감을 위한 인력감축과 생산지 이동, 수익성이 낮은 제품에서 수익성이 보장되는 제품으로의 이동, 그리고 이에 따른 구조조정은 더욱 빠르고 강하게 진행된다.
당장 올해 한국에서도 문제를 많이 일으킨 자동차 부품 기업들을 보자. 세계 2~3위의 자동차 부품업체인 프랑스 발레오 그룹은 2009년 경제 위기 이후 대규모 구조조정 계획을 세웠는데, 한국, 미국, 유럽에서 기존 제품군을 생산하는 공장들 중 만족할만한 비용절감이 없는 공장들은 과감하게 폐쇄한다는 것이 골자였다.
이러한 결과 우리가 알고 있는 한국의 발레오공조가 청산 절차에 들어섰고, 발레오만도는 노조와 전쟁을 벌이며 정리해고, 임금 삭감, 노동강도 강화를 이뤄냈다. 반면 신흥시장이자 저임금 국가인 중국에는 대규모 투자 계획을 수립하였고, 동시에 하이브리드 전기차 부품 생산을 위한 공장 증설에도 나섰다. 독일의 보쉬는 2009년 1만명 정리해고 계획을 세웠고, 미국 델파이 역시 대규모 구조조정 계획과 신규투자 계획을 동시에 세웠다.
이러한 구조조정 시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바로 노동자들의 저항이다. 역사적으로 보면 20세기 내내 자본은 수익성 악화와 노동자들의 저항을 분쇄하기 위해 제품 생산 방식과 생산지를 이동해 왔다.
20세기 중후반부터 크게 성장한 전자 산업은 노동자들의 저항에 맞서 모듈화 방식으로 생산의 대부분을 외주화하고, 1980년대까지는 노동집약적 부분을 한국과 같은 반주변부 국가로 이전해왔다. 그리고 이곳에서도 노동자들의 투쟁에 부딪히자 90년대부터는 생산지를 중국과 인도 등으로 이동시켰다. 애플, 휴렛팩커드, IBM과 같은 미국 기업들의 경우 아예 생산 전체를 대만과 중국으로 외주화하며 공장 없는 제조업 기업으로 진화하기도 했다.
자동차 산업 역시 마찬가지다. 1930년대 미국의 지엠, 포드는 강력한 노조 운동에 부딪히자 2차 세계 대전 이후 서유럽으로 생산지를 대거 이동했고, 1960~70년대 서유럽 노동운동의 투쟁이 활발해지자 한국 남아공 브라질과 같은 반주변부 국가로 다시 생산지를 이동했다. 여기서도 역시 노동자운동이 활발해지자 21세기에는 중국과 인도 등으로 다시 이동했다.
새로운 제품이 생산되면 높은 수익성을 바탕으로 노사 타협을 이루지만, 경쟁이 격화되며 수익성이 악화하면 이 협약을 깨고 자본 이동을 통해 저임금 지역에서 수익성을 회복하려고 하는 운동이 매번 펼쳐진다는 것이다. 그런데 자본주의 경제가 탄생한 이후 매번 진행된 이러한 자본의 이윤추구와 노동자의 저항은 세계경제위기가 닥치면 더욱 심화될 수밖에 없다. 경제 위기로 더 격화된 경쟁에서는 비용절감을 위한 구조조정을 누가 더 빠르게 할 수 있느냐에 따라 승패가 좌우되기 때문이다.
모든 경쟁의 비용은 노동자가 떠 맞는다. 더군다나 현재와 같은 구조적 위기 시기에는 더욱 그러하다. 생산 기술의 혁신은 기대할 수 없고, 오직 노동자를 누가 더 효과적으로 착취하느냐가 자본에게는 관건이다.
11월 11일 금속노조 총파업, KEC 투쟁을 반격의 전환점으로 만들어가자
자본의 장기적 전략과 민주노조 탄압에 대한 의지에 비해 현재 한국 민주노조의 대응 태세는 그것에 한 참 못 미치는 것이 사실이다. 2009년부터 현재까지 대부분의 구조조정 사업장에서는 민주노조가 와해되었고, 전체 민주노조 운동 차원의 대응은 효과적으로 진행되지 못했다.
민주노조의 강력한 저항이 없다면 제2의 KEC, 제2의 발레오만도가 계속 나타날 수밖에 없다. 세계경제위기를 경과하며 장기간의 저성장과 위기 반복을 예상하고 있는 자본은 민주노조를 뿌리 뽑기 위해 희생을 치룰 각오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KEC도 발레오만도도 공장 가동률과 영업이익이 가장 좋은 시점에서도 막대한 생산 차질을 감내하고서도 민주노조 탄압에 온 힘을 기울인 것은 이들의 노조 탄압이 몇 가지 실리를 주고받는 것에서 우위에 서기 위함이 아니라는 것을 말해 준다.
11월 11일 금속노조는 총파업을 예고했다. 한 번의 총파업으로 해결되지는 않겠지만 KEC 투쟁을 금속노조 모두가 지원하고 있고, 민주노조 운동이 이 번 투쟁을 승리로 이끌어 내겠다는 단호한 의지를 자본에게 보여주어야 할 것이다. 민주노조 운동 역시 이곳에서 배수진을 쳐야 한다. KEC 투쟁은 경제위기 이후 구조조정의 방향을 둘러싼 총자본과 총노동의 대결이다.
160일이 넘어선 파업, 2주 넘게 진행된 점거파업과 김준일 구미 지부장의 분신항거 이후 만들어 진 교섭 자리지만 사측은 교섭보다는 이 기회에 민주노조를 확실하게 현장에서 뽑아버리겠다는 의지를 공공연히 내보이고 있는 것이다. 한편 김준일 지부장 분신항거 이후 사회적 교섭을 이야기하며 중재에 나섰던 야5당은 사측의 강경한 태도에 별반 힘을 쓰고 있지 못하다.
▲ 9월 27일 국회 앞 단식농성장에서 김준일 지부장[사진 맨 왼쪽]. [출처: 이명익 노동과세계 기자] |
사실 KEC 사태는 단순한 기업 차원의 교섭으로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세계경제위기 이후 좀 더 빨라진 전자산업 전반의 구조조정과 관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민주노조 운동이 정권의 산업정책, 자본의 구조조정 정책에 계급적 힘을 가지고 맞설 수 있느냐는 문제다.
노조 탄압의 숨겨진 배경, 2010년 구조조정 계획
KEC 구조조정 전략을 좀 더 자세히 보자. KEC는 몇 년 전부터 주력 제품군에 대한 조정을 모색했다. 주력 제품이자 세계 1~3위의 시장 점유율을 가지고 있는 소신호트랜지스터(Small Signal Transistor, SSTR)의 수익성이 지속적으로 하락했기 때문이다.
2001년의 경우 매출액 6천억 원에 영업이익이 470억에 달했지만 2009년의 경우 매출액 3천억 원에 영업이익 17억 원에 그쳤다. 수익성을 나타내는 지표 중 하나인 매출액 영업 이익률은 2001년 7.8%에서 2009년 0.6%로 10분의 1 이상 줄었다. 이러한 상태는 KEC만의 일은 아니었는데, 다른 반도체에 비해 노동집약적 공정이 많고 후발 주자의 진입이 상대적으로 수월한 소신호트랜지스터 제품은 이미 수년 전부터 일본과 미국에서 사업 축소와 구조조정의 대상이 되어 있었다.
이러한 이유로 KEC는 신제품 공장 건설을 위해 2004년 1천8백억 원 투자를 단행했고, 2006년부터 본격적으로 전력트랜지스터(Power Transistor, PWTR) 제품 판매에 나섰다. 전력트랜지스터는 전기차나 고효율 전력기기에 들어가는 반도체로 소신호반도체에 비해 시장 규모도 다섯 배 이상이고 수익성도 상대적으로 높은 제품이다. 하지만 투자에 비해 관련 매출은 2009년까지 신공장 설비의 감가상각도 메우지 못할 정도로 적어서 전력반도체 사업은 올해까지 KEC 영업이익에 마이너스 효과만 미쳤다.
세계경제위기가 소강 국면에 들어선 2010년 상반기는 KEC 자본에게는 전환점이었다. KEC는 전력트랜지스터 판매와 관련해서 4월에 현대모비스와 하이브리드 자동차 용 파워모듈을 공동 개발 계약을 체결했고, LCD모니터 백라이트로 이용되는 LED칩과 LED패키지를 LG이노텍과 각각 작년 12월과 올해 4월 체결했다. 주력 제품을 소신호트랜지스터에서 전력트랜지스터와 LED 제품으로 바꿀 수 있는 전환점을 마련한 것이다. 한 증권사는 KEC가 2012년이 되면 전력트랜지스터와 LED 제품을 전체 매출의 70% 이상으로 확대할 것으로 예상하였다. KEC는 올 해 공동대표이사에서 곽정소 1인 대표이사로 대표 체제를 바꾸며 이러한 공격적 구조조정을 단행할 경영 체제를 정비하기도 했다.
문제는 이러한 제품 조정에는 필연적으로 인적 구조조정이 뒤따른다는 것이다. 더군다나 새로운 제품들은 기존 제품에 비해 노동 절약적이며 설비 소비적이다. 소신호트랜지스터 생산 공정은 기계에 의한 화학처리가 주를 이루는 팹(Fab) 공정보다 노동집약적 생산이 필요한 조립(Assembly)공정이 비중이 컸으나 LED 제품이나 전력트랜지스터 제품은 팹 공정이 상대적으로 더 크다.
노조 파업 직전부터 경영진이 대규모 정리해고 및 인사조정이 있을 것이라고 정보를 흘린 것은 단순히 노조를 협박하기 위해서만은 아니었다. KEC 자본이 LG이노텍과 계약한 LED 제품은 무노조 계열사인 전주 티에스피에스(TSPS)에서 생산할 계획이었고, 기존 제품은 중국과 태국 공장에서의 생산 비중을 늘릴 계획이었다. 구미 공장에서의 정리해고와 구조조정은 곽정소 대표 이사 체제에서 이미 연초부터 준비되고 있었다.
이런 점에서 사측이 노조전임자 문제를 걸고 임단협을 파국으로 몰고 간 것은 노조 탄압을 위한 빌미에 불과했다. 매출액 3천억 원의 기업이 전임자 2~3명에 문제로 직장폐쇄와 생산중단까지 단행한다는 것은 다른 목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올해 상반기는 KEC가 2006년 이후 최대 실적을 내던 시기였다. KEC는 올해 상반기에만 58억 원의 영업이익을 남겼다. 지난 3년간 기록한 영업이익 합보다도 더 큰 액수며, 공장 가동률도 근래 가장 높은 80% 이상이었다. 임금 문제도 교섭 불가능한 상황이 아니었는데, KEC 노동자들은 지난 몇 년간 실질 임금 동결 상태였고, 올 해는 270억 이상의 영업이익이 기대되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생산직 여성 노동자들은 2007년에 비해 2009년 실질임금이 5% 이상 하락한 상태였다. 전임자 문제도 임금 문제도 사측에게는 핵심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사측의 목적은 단 하나, 노조 파괴였다. 그리고 가장 공장을 바쁘게 돌려야 할 중요한 시점에서 막대한 비용을 들이며 민주노조를 파괴해야만 했었던 이유는 사업 조정에 따른 대규모 구조조정을 성공적으로 진행하기 위해서였다.
KEC 만의 일인가? KEC 노조 탄압은 모든 금속 사업장의 미래
그렇다면 이러한 구조조정은 일부 사업장에만 해당하는 일일까? 아니다. 경제 위기로 기업들의 경쟁이 더욱 격화될수록 비용절감을 위한 인력감축과 생산지 이동, 수익성이 낮은 제품에서 수익성이 보장되는 제품으로의 이동, 그리고 이에 따른 구조조정은 더욱 빠르고 강하게 진행된다.
당장 올해 한국에서도 문제를 많이 일으킨 자동차 부품 기업들을 보자. 세계 2~3위의 자동차 부품업체인 프랑스 발레오 그룹은 2009년 경제 위기 이후 대규모 구조조정 계획을 세웠는데, 한국, 미국, 유럽에서 기존 제품군을 생산하는 공장들 중 만족할만한 비용절감이 없는 공장들은 과감하게 폐쇄한다는 것이 골자였다.
이러한 결과 우리가 알고 있는 한국의 발레오공조가 청산 절차에 들어섰고, 발레오만도는 노조와 전쟁을 벌이며 정리해고, 임금 삭감, 노동강도 강화를 이뤄냈다. 반면 신흥시장이자 저임금 국가인 중국에는 대규모 투자 계획을 수립하였고, 동시에 하이브리드 전기차 부품 생산을 위한 공장 증설에도 나섰다. 독일의 보쉬는 2009년 1만명 정리해고 계획을 세웠고, 미국 델파이 역시 대규모 구조조정 계획과 신규투자 계획을 동시에 세웠다.
이러한 구조조정 시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바로 노동자들의 저항이다. 역사적으로 보면 20세기 내내 자본은 수익성 악화와 노동자들의 저항을 분쇄하기 위해 제품 생산 방식과 생산지를 이동해 왔다.
20세기 중후반부터 크게 성장한 전자 산업은 노동자들의 저항에 맞서 모듈화 방식으로 생산의 대부분을 외주화하고, 1980년대까지는 노동집약적 부분을 한국과 같은 반주변부 국가로 이전해왔다. 그리고 이곳에서도 노동자들의 투쟁에 부딪히자 90년대부터는 생산지를 중국과 인도 등으로 이동시켰다. 애플, 휴렛팩커드, IBM과 같은 미국 기업들의 경우 아예 생산 전체를 대만과 중국으로 외주화하며 공장 없는 제조업 기업으로 진화하기도 했다.
자동차 산업 역시 마찬가지다. 1930년대 미국의 지엠, 포드는 강력한 노조 운동에 부딪히자 2차 세계 대전 이후 서유럽으로 생산지를 대거 이동했고, 1960~70년대 서유럽 노동운동의 투쟁이 활발해지자 한국 남아공 브라질과 같은 반주변부 국가로 다시 생산지를 이동했다. 여기서도 역시 노동자운동이 활발해지자 21세기에는 중국과 인도 등으로 다시 이동했다.
새로운 제품이 생산되면 높은 수익성을 바탕으로 노사 타협을 이루지만, 경쟁이 격화되며 수익성이 악화하면 이 협약을 깨고 자본 이동을 통해 저임금 지역에서 수익성을 회복하려고 하는 운동이 매번 펼쳐진다는 것이다. 그런데 자본주의 경제가 탄생한 이후 매번 진행된 이러한 자본의 이윤추구와 노동자의 저항은 세계경제위기가 닥치면 더욱 심화될 수밖에 없다. 경제 위기로 더 격화된 경쟁에서는 비용절감을 위한 구조조정을 누가 더 빠르게 할 수 있느냐에 따라 승패가 좌우되기 때문이다.
모든 경쟁의 비용은 노동자가 떠 맞는다. 더군다나 현재와 같은 구조적 위기 시기에는 더욱 그러하다. 생산 기술의 혁신은 기대할 수 없고, 오직 노동자를 누가 더 효과적으로 착취하느냐가 자본에게는 관건이다.
11월 11일 금속노조 총파업, KEC 투쟁을 반격의 전환점으로 만들어가자
[출처: 울산노동뉴스 자료사진] |
자본의 장기적 전략과 민주노조 탄압에 대한 의지에 비해 현재 한국 민주노조의 대응 태세는 그것에 한 참 못 미치는 것이 사실이다. 2009년부터 현재까지 대부분의 구조조정 사업장에서는 민주노조가 와해되었고, 전체 민주노조 운동 차원의 대응은 효과적으로 진행되지 못했다.
민주노조의 강력한 저항이 없다면 제2의 KEC, 제2의 발레오만도가 계속 나타날 수밖에 없다. 세계경제위기를 경과하며 장기간의 저성장과 위기 반복을 예상하고 있는 자본은 민주노조를 뿌리 뽑기 위해 희생을 치룰 각오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KEC도 발레오만도도 공장 가동률과 영업이익이 가장 좋은 시점에서도 막대한 생산 차질을 감내하고서도 민주노조 탄압에 온 힘을 기울인 것은 이들의 노조 탄압이 몇 가지 실리를 주고받는 것에서 우위에 서기 위함이 아니라는 것을 말해 준다.
11월 11일 금속노조는 총파업을 예고했다. 한 번의 총파업으로 해결되지는 않겠지만 KEC 투쟁을 금속노조 모두가 지원하고 있고, 민주노조 운동이 이 번 투쟁을 승리로 이끌어 내겠다는 단호한 의지를 자본에게 보여주어야 할 것이다. 민주노조 운동 역시 이곳에서 배수진을 쳐야 한다. KEC 투쟁은 경제위기 이후 구조조정의 방향을 둘러싼 총자본과 총노동의 대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