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초부터 노동자 두 분의 자살로 삼성전자 노동자들의 노동권 문제가 다시 사회적 쟁점이 되었다. 삼성 LCD 탕정 공장에서 1월 3일에는 23세의 여성 노동자가, 11일에는 김주현씨가 다시 같은 기숙사에서 투신자살했다. 일기와 메모를 통해 알려진 삼성전자의 노동 현실은 참담했는데, 김주현 씨의 경우 하루 14시간의 장시간 고강도 노동에 시달린 것은 물론 열악한 작업 환경으로 인해 피부병까지 앓았다. 고인은 투신자살하기 전 두 달 전에는 스트레스로 인한 우울증 진단까지 받아 병가를 냈었다.

연매출 150조에 영업이익만 17조원에 달하는 세계1위의 전자업체 삼성전자가 있고, 그 뒤를 따르는 엘지전자, 반도체 세계 3~4위를 다투는 하이닉스 등이 즐비한 한국 전자 산업에서는 도대체 무슨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전자산업은 최첨단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사람들에게 알려져 있지만 실상은 의류봉제업만큼이나 노동집약적 산업이며, 저임금 노동을 이용한 생산이 일반화되어 있는 산업이다. 개발에 있어서는 다른 어떤 산업보다도 빠른 투자와 혁신이 이루어지지만 실제 제품이 생산되는 현장에서는 가장 유혈적 노동 착취가 이루어진다.

작년 열 명이 넘는 노동자가 연쇄 자살하며 세계적 이슈가 된 폭스콘의 사례는 대표적이다. 아이폰을 비롯한 애플의 대부분 제품들을 위탁생산하고 있는 대만 기업 폭스콘은 노동자 전원을 강제로 기숙사 생활하게 하고, 노동 규율을 확립한다는 명분으로 여성 노동자들에게까지 군사 훈련을 시켰다. 12시간이 넘는 연속 작업에 작업 중에는 화장실 이용도 불가능했다. 물론 이들의 임금은 중국 최저임금 수준이었다. 21세기 최첨단 애플의 제품들은 인간 이하의 삶으로 고통 받던 19세기 산업혁명기 노동자들보다도 못한 노동 조건 속에서 만들어 지고 있다. 이러한 현실은 애플 제품에만 해당하는 것은 아니다. 델 컴퓨터, 아이비엠(IBM), 시스코 등 미국 대부분의 첨단 전자 업체들은 생산 일체를 동아시아 저임금 지역의 위탁생산업체들을 통해서 하고 있다.

삼성과 같은 한국의 전자 대기업들은 미국과 같이 생산 일체를 위탁하지는 않지만 보다 복잡한 형태로 유혈적 노동 착취를 진행하고 있다. 첫 번째는 한국의 중소 전자 업체들에 대한 불공정거래를 통한 착취다. 한국 전자 산업의 대기업-중소기업 격차는 제조업 내에서도 가장 극심한데, 전자산업 중소기업의 1인당 부가가치는 대기업의 20% 대에 불과하다. 이는 자동차산업 중소기업에 비해서도 절반이 되지 않는 수준이다.

이러한 격차는 단지 기술력 차이로 인한 것만은 아니다. 대기업 친화적인 이명박 대통령이 직접 나설 정도로 문제가 심각한 원하청 간의 불공정거래가 큰 역할을 하고 있다. 이러한 수탈은 결국 노동자에게 전가되는데, 2차 하청 이하의 전자 산업 중소기업들은 대부분이 최저임금 수준의 임금만을 지급하고 있다. 중소 전자 기업들이 밀집해 있는 구미, 반월, 서울디지텉단지 등에서는 저임금 고강도 노동을 참지 못하고 노동자들이 반 년 단위로 회사를 이곳저곳 옮겨 다니고 있으며, 이 일자리에 또 다른 노동자를 빠르게 공급하기 위해 수많은 불법파견업체들이 존재하고 있다.

이러한 저임금 고강도 노동 착취는 대기업에서도 비슷하게 벌어진다. 특히 삼성전자, 엘지전자와 같은 대기업의 생산직 노동자들이 그러한데 임금은 중소기업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은 편이지만 노무관리가 엄격하기로 유명한 이들 기업의 노동강도는 중소기업보다 훨씬 강하다. 자동차 산업의 노동자들이 20여년의 걸친 투쟁으로 노조를 건설하고 작업장에서 노동강도를 조절할 수 있었던데 반해 대부분의 전자 산업 대기업 노동자들은 노조의 보호도 받지 못한다. 구미 한 전자 대기업 공장의 경우를 보면, 생산직 일자리는 모두 고등학교를 졸업한 여성들로 채워지는데, 이들 젊은 여성노동자들은 고강도 노동을 이기지 못하고 4년 내 대부분이 직장을 그만둔다. 삼성 반도체의 백혈병 노동자들의 이야기야 더 말할 나위도 없을 것이다.

한국의 전자산업은 스마트폰, 고집적 반도체, 3D텔레비젼과 같은 21세기를 대표하는 첨단 제품들을 만들어 내고 있다. 하지만 그곳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19세기 노동 기준에도 미치지 못하는 장시간 고강도 저임금의 처참한 노동 현실 속에 있다. 첨단 기술 개발과 노동밀집형 생산이 공존하는 전자 산업의 양면이다.

최근 민주노총은 중소 전자업체들이 밀집해 있는 구로지역(서울디지탈산업단지)에서 전략조직화 사업을 시작했다. 구로는 엘지전자와 삼성전자에 납품을 하는 다양한 하청업체가 존재하고, 기륭전자 비정규직 투쟁을 통해 볼 수 있었던 것처럼 불법파견이 일반화되어 있는 지역이다. 생활 물가는 전국에서 가장 높은 지역이지만 임금 수준은 전국에서 가장 낮은 곳이다. 한국의 대표 산업인 전자 산업의 노동권 향상을 위해 노동운동과 진보진영이 힘을 모아야 한다.


「매일노동뉴스_한지원의 금융과 노동」 칼럼 기고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