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자해설] 『마르크스의 임금이론』

(* 각주는 첨부파일을 참고하세요)

노동자운동연구소가 『마르크스의 임금이론』을 번역, 출판했다. 이 책은 케네스 라피데스의 『역사적 관점에서 바라본 마르크스의 임금이론: 그 기원, 발전, 해석』(Kenneth Lapides, Marx’s Wage Theory in Historical Perspective: It’s Origin, Development and Interpretation, Wheatmark, 2008) 중 마르크스의 저술과 직접 관련된 부분을 우리말로 옮긴 것이다. 저자는 이 책에서 ‘마르크스의 임금이론 전체 구조를 펼치고 초기의 사상을 성숙기 사상으로 대체하면서 수많은 정식화들을 논리 정연하게 종합’하고 있다. 이런 의미에서 이 책을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노동조합에 관한 저술을 포괄적으로 분석하고 비평한 최초의 작업’으로 평가할 수 있다.

라피데스는 『자본』에서 정점을 이루는 마르크스의 경제학 비판을 임금이론을 중심으로 설명하면서 이로부터 노조이론을 도출한다. 그리고 『자본』의 집필 시기에 작성된 마르크스의 국제노동자연합 총평의회 강연록 『가치, 가격, 이윤』을 바탕으로 그가 당대 노동자운동에 끼친 영향을 상세히 소개하고 있다. 이와 함께 저자는 마르크스 사후에 마르크스주의 내외부에서 전개된 두 개의 이론적·실천적 논쟁을 검토하면서 합리적 핵심을 추출하고 있다. 전자가 『자본』의 ‘작업의 계획 또는 저작의 구성’을 의미하는 ‘플란’ 논쟁이라면, 후자는 독일사민당과 제2인터내셔널 내에서 전개된 자본주의의 위기이론과 연관된 ‘궁핍화’ 논쟁이다. 어느 정도 사전 지식을 필요로 하는 내용이지만, 마르크스주의의 역사에서 상당히 중요한 지위를 차지하는 논쟁인 만큼 이번 기회에 일독을 권한다.

저자는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전 저작을 일일이 검토하면서 논의를 전개하고 있는데, 그 의의는 ‘마르크스 문헌학(Marxology)’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마르크스의 과학적 문제설정에 대한 이해에 있을 것이다. 이는 저자 자신의 당부이기도 하다. 1980년대에 소개된 ‘마르크스-레닌주의’ 노동조합 이론서가 대체로 노동조합에 대한 정당의 우위를 강조하는 편향이 있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이 책은 그러한 시각을 정정하는 데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아래에서는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일부 논지를 보충하면서 『마르크스의 임금이론』을 해설하겠다.


경제학의 임금이론

임금이란 무엇인가? 라피데스는 ‘자본주의 경제 관계의 가장 익숙한 양상 중 하나인 임금은 그 중 가장 불가사의한 것’이라는 명제로 본문을 시작한다. 그렇다면 과연 경제학은 임금 문제를 어떻게 규명하였나?

임금이론은 서유럽에서 자본주의적 생산관계가 발전하면서 임금관계로부터 발생하는 사회적 갈등을 관리할 목적으로 정립되기 시작했다. 고전파 경제학 이전의 임금론은 주로 규범적이거나 국가의 정책과 관련된 논의에서 나타났다. 가령 가격이 소도시와 동업조합 관계자들에 의해 강제로 결정되었던 중세에서 임금은 장인들에게 관례에 따른 생활수준을 보장해주기 위해 강제로 결정되는 ‘공정가격’이라는 규범적인 형태를 띠었다. 또 초기 중상주의는 임금 문제를 이론적으로 규명하기보다는 임금이 국민경제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탐구했다. 이들은 저임금이 상품 가격을 낮춰 수출을 늘리고 따라서 산업 성장과 국부의 증가를 촉진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저임금이 생산성을 높이고 노동규율을 갖추는 데에도 유리하다고 간주했다.

중세 봉건적 질서의 쇠퇴와 더불어 자유주의에 기반을 둔 소유권이 확립되면서 규제가 아닌 시장을 통한 자연 가격 형성 이론이 등장하기 시작한다. 임금관계가 상품교환과 관련된 것임을 규명함으로써 초기 중상주의와 단절한 윌리엄 페티, 임금이론에 최초로 계급투쟁이라는 요소를 도입한 존 로크, 노동자의 욕구의 사회적·역사적 성격에 착안한 제임스 스튜어트, 노동력 가치의 결정이라는 문제를 사고함으로써 초보적인 잉여가치 개념에 도달한 캉티용 등이 후기 중상주의 임금이론을 대표한다. 이어서 중농주의를 대표하는 케네는 잉여가치의 원천이 생산에 있음을 인식하지만 농업노동만이 생산적이라고 주장한다.

이전 시기의 경제학적 분석을 종합하고 체계화함으로써 고전파 경제학을 창시한 아담 스미스는 국부(민족·시민의 부)의 본성은 노동생산물이고, 그 원인은 분업에 의한 노동생산성의 상승에 있다고 보았다. 그는 타인과의 자유경쟁을 통해 자신의 이익을 독립적으로 추구하는 인간형을 자연적·불변적·보편적 인간형으로 승화시킨다. 각 개인들은 분업에 기초한 사회에서 생산물을 생산하고 교환관계에 들어감으로써 자신의 생계에 필요한 생산물을 얻는다. 이때 시장에서 교환되는 노동생산물, 즉 상품의 가치는 노동에 의해 결정된다. 그러나 스미스는 소상품생산 사회를 전제한 나머지, 교환을 통해 영유할 수 있는 타인의 노동생산물에 들어간 노동량(‘지배노동’)과 그 상품을 생산하는 데 소비된 노동(‘투하노동’)이 동일하다고 보았다. 따라서 그는 이윤과 지대가 노동자에게 지불된 임금을 초과하여 잉여노동으로 존재하는 현상을 발견했음에도 불구하고 자본주의적 생산관계 아래에서 잉여가치가 발생하는 원인을 제대로 규명하지 못했다.

이와 같은 스미스의 오류를 정정하기 위해서는 자본이 노동력과 교환되는 법칙을 설명할 필요가 있었다. 그러나 스미스를 비판한 리카도 역시 노동자를 자본가에게 종속시키는 사회적 생산관계에 대한 분석을 수행하지 못한 결과 잉여가치의 신비를 풀지 못했다. 리카도는 임금 수준을 노동에 대한 수요·공급의 관계로 피상적으로 설명하는 것을 거부한 대신, 노동의 시장가격(‘수요-공급 비율의 자연적 작용 때문에 실제로 노동에 지불되는 가격’)의 중심으로 작동하는 노동의 자연가격을 설정했다. 리카도는 이러한 노동의 자연가격, 즉 자연임금률을 결정하는 것이 노동자와 그 가족이 필요로 하는 생계수단의 가격(즉 사용가치로 측정되는 생계수단의 양이라는 의미에서 ‘실질임금’)에 달려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리카도 역시 노동에 의해 생산된 가치와 노동의 가치(즉 노동과 교환된 임금) 사이의 불일치라는 문제에 계속 시달려야 했고 결국 임금 문제를 해명하는 데 실패했다. 즉, 노동력과 노동을 구별하지 않았기 때문에 노동(따라서 노동력)이 어떻게 해서 그것이 창조한 것보다 더 적은 가치를 가지는가를 설명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1820년대 이후 노동자계급과 자본가계급 사이의 투쟁이 전면으로 확대되면서 부르주아 경제학은 변호론적이고 속류적으로 변질되기 시작했다. 이 시기의 경제학은 이윤이 노동자의 노동이 창출하는 가치의 일부분이 아님을 입증하기 위해 이윤의 원천에 대해 새로운 이론을 꾸며내기 시작했다. 가령 세는 이윤이 자본가가 지니고 있는 생산수단의 생산성 때문에 창출된다고 보았고(‘자본생산성론’), 시니어는 자본가가 자신의 개인적 욕구를 직접 충족시키지 않고 자본을 축적하는 ‘절욕’의 대가가 이윤이라고 생각했다(‘절욕설’). 이중에서도 당시 속류화된 경제학을 대표하는 학설은 바로 임금기금설이었다.

1820-70년대를 풍미한 임금기금설은 ‘특정 시점에서 임금에 지불될 자본의 총량은 고정되어 있기 때문에 그 크기를 변경하려는 노동조합 등의 인위적 노력은 무용하다’는 것을 요지로 한다. 특히 임금기금설은 노동조합으로 조직된 노동자들이 임금을 강제적으로 인상하려고 시도하면 다른 노동자들에게 지불될 임금기금의 일정 부분을 강탈하여 그들을 실업·저임금 상태로 내몬다고 주장하면서 노동조합에 대한 반대를 정당화했다. 이런 맥락에서 『인구론』의 저자 맬서스는 노동자의 생활조건이 개선되려면 그들 스스로 ‘도덕’을 증가시켜서 출산을 제한함으로써 자신들에게 배정되기로 ‘예정된’ 기금이 설정하는 수준으로 노동력 공급을 제한하는 방법밖에 없다고 주장하였다.


마르크스의 임금이론

그렇다면 마르크스는 경제학의 임금이론을 어떻게 비판했나? 마르크스 최초의 ‘경제학에 대한 진지하고 비판적인 연구’인 『1844년 경제학·철학 원고』는 고전파 경제학 임금이론을 따라 수요-공급 법칙과 노동자의 생계적 필요를 임금수준을 결정하는 일차적 요인으로 이해하고 있다. 하지만 『1844년 경제학·철학 원고』는 마르크스의 성숙기 분석의 근본적 특징인 생계적 필요가 역사적으로 변화한다는 사실에 주목하지 않고 있으며, 노동조합의 임금 인상 시도에 대해서는 오히려 ‘혁명주의’적 입장에서 부정적인 견해를 제시하고 있다. 마르크스의 임금이론이 발전하게 된 직접적인 계기는 엥겔스와의 조우였다. 엥겔스는 『영국 노동자계급의 상태』(1845년)에서 이전의 경제적 분석을 종합하며 노동조합의 역할에 대해서 강조한다. 이 책에서 엥겔스의 가장 큰 성취는 맬서스의 절대적 과잉인구를 비판하는 상대적 과잉인구 개념(‘실업 노동자 예비군’)에 있다.

엥겔스로부터 자극을 받은 마르크스는 1847-49년 임금과 관련한 일련의 강연과 저술을 병행하는데, 이는 후에 『임금노동과 자본』으로 출간된다. 여기서 마르크스는 최초로 ‘노동력’이라는 표현을 도입함으로써 잉여가치이론의 기초를 수립한다. 또한 마르크스는 생계수단으로 측정되는 실질임금과 ‘자본과 노동 간의 사회적 부의 분배’를 의미하는 상대적 임금을 구별하기에 이른다. 그러나 마르크스는 여전히 노동조합의 경제적 약점을 지적하고 있다. 1848년 발표된 『공산주의자 선언』은 청년기 마르크스가 ‘이전의 철학적 의식을 청산’하고 성숙기로 이행하는 저작이지만, 여기서 제시되는 임금론(‘임금노동의 평균 가격은 최저임금으로서, 최저생계를 연장하고 재생산할 수 있을 정도이다’)은 이후 마르크스의 임금이론을 둘러싼 논쟁에서 지속적인 곤란을 야기한다.

1848년 유럽 혁명의 패배로 런던으로 망명한 이후 경제학 연구에 몰두하던 마르크스는 『자본』 서술에 선행하는 연구 과정으로서 1857-58년 원고와 1861-63년 원고를 작성한다. 1857-58년 원고에서 마르크스는 『임금노동과 자본』에서 도입된 노동력 개념을 발전시켜, 가치를 창조하는 현실적 노동으로서 사용가치와, 노동 또는 노동에 참여할 수 있는 노동자의 능력이 지닌 가치로서 교환가치 양자를 명확히 구별한다. 또 리카도가 강조하는 실질임금의 ‘역사적·도덕적 요소’를 노동력 가치의 ‘역사적·도덕적 요소’ 개념으로 발전시킨다. 그러나 마르크스는 1861-63년 원고에 이르러서야 임금이론을 노동조합과 분명히 연관 짓는다. 이러한 예비적 과정을 거쳐 마르크스는 『자본』에서 임금이론을 완성한다.

『자본』에서 종합되는 임금이론에서 임금 결정 법칙을 분석하려면 우선 자본과 임금노동 사이의 모순, 즉 적대적 사회관계를 전제해야 한다. 마르크스가 지적하듯이 임금은 노동자와 자본가라는 적대적 관계의 배후에 ‘은폐된 비합리적 현상’이기 때문이다. 자본주의적 생산의 원동력이자 그 본질적 계기인 잉여가치의 생산은 임금이라는 통상의 현상에 의해 망각되고 은폐된다.

그렇다면 마르크스는 임금을 어떻게 정의하는가? 임금은 노동력 상품의 가격, 즉 노동력 가치의 화폐 형태다. 마르크스는 노동력이라는 상품의 가치 역시 다른 모든 상품들과 마찬가지로 그것의 생산, 따라서 재생산에 필요한 노동시간에 따라 결정된다고 본다. 이는 노동하는 개인으로서 노동자가 정상적인 상태에서 자신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생계수단의 일정량의 가치에 상응한다. 그러나 다른 상품들과 달리 자본주의적 방식으로 생산·재생산되지 않는 특수한 상품으로서 노동력의 가치는 ‘역사적·도덕적 요소’를 포함한다. 다시 말해 임금은 노동자와 자본가의 계급투쟁을 둘러싼 ‘관습’ 또는 역사적 제도에 따라 결정된다.

마르크스는 이와 같이 임금을 규정하는 기본 요인을 분석한 뒤, 그 수준을 변화시키는 요인을 분석한다. 자본주의적 생산을 특징짓는 기계제 대공업은 절대적 잉여가치 생산방법과 상대적 잉여가치 생산방법을 결합한다. 절대적 잉여가치의 생산방법은 자본주의적 생산관계를 토대로 노동시간을 연장하거나 노동자수를 증가시키는 방법이고, 상대적 잉여가치의 생산방법은 자본주의적 생산력을 토대로 노동력 가치를 감소시키는 방법이다. 마르크스는 절대적·상대적 잉여가치 생산방법에 대한 분석을 진행하면서 노동일의 길이, 노동강도, 노동생산성이라는 세 가지 주요 변수들이 노동력 가치에 미치는 효과를 검토한다.

먼저 노동생산성 향상으로 인해 노동자의 생계수단으로 소비되는 상품 가치가 전반적으로 하락하면 노동력 가치가 감소한다. 그러나 마르크스는 노동력 가치의 감소가 노동자의 생활수준의 하락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고 지적한다. 노동력 가치를 결정하는 것은 생활필수품의 양이 아니라 생활필수품의 일정량에 상응하는 가치이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노동강도가 강화되어 일정량의 노동일에 투여되는 노동력 가치가 증가하면서 노동력 가격이 가치 이하로 하락하거나 또는 노동력 가치 자체가 하락한다. 끝으로 노동일의 길이가 연장됨에 따라 노동력 마모가 급증하면서 노동력의 정상적인 재생산과 작동에 필요한 일체의 조건들이 억제된다.

이상의 분석은 기계제대공업에 고유한 임금 지불 방식, 즉 시간급과 성과급에 대한 분석과 통합된다. 표준 시간급이 저하하면 노동자들은 생계유지에 필요한 일정 액수의 화폐임금을 충당하기 위해 잔업·특근과 같은 방식으로 노동시간을 연장할 수밖에 없다. 다음으로, ‘시간급의 전환된 형태’로서 성과급이 저하할 경우 노동자들은 노동강도를 높여 화폐임금을 충당해야 한다. 즉, 자본주의적 생산은 시간급과 성과급을 통해 노동자에게 저임금·장시간·고강도 노동의 악순환을 강제하고 이는 노동력 가치 아래로 임금률(단위 시간 당 임금)을 저하하는 압력으로 작용한다.


마르크스의 노조이론

이로부터 노동조합의 의의가 도출된다. 노동자들은 저임금·장시간·고강도 노동이라는 자본의 전제적 침략을 막고 자신의 노동력 가치를 유지하기 위해 노동조합을 결성하여 임금 인상, 노동일 단축, 노동조건 개선 투쟁과 같은 경제투쟁(방어적 계급투쟁)을 펼치게 된다. 경제투쟁이 없다면 ‘임금노예’에 불과한 임금노동자는 노예의 안전조차 보장받지 못한 채 궁핍만 가득한 처지로 전락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마르크스의 노조이론이 집약되는 것은 영국의 오언주의자 웨스턴이 주장하는 임금투쟁 무효론을 반박하는 동시에 임금투쟁의 의의와 한계를 논하는 국제노동자연합 총평의회 강연록 『가치, 가격, 이윤』이다. 이 팸플릿은 마르크스가 『자본』 3권 마지막 52장 ‘계급’에서 분석하려고 예정했던 계급투쟁의 개요를 제시한 것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실제로 노동조합이라고 하는 일종의 ‘관습’ 또는 계급투쟁의 역사적 제도는 임금 결정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가. 임금률의 장기 추세를 관찰한 결과에 따르면, 노조의 경제투쟁으로 인해 임금률은 노동력 가치와 상응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다시 말해서 노동생산성의 상승을 보상할 것을 요구하는 노조의 경제투쟁에 따라 임금률이 비례적으로 상승하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노동조합은 자본주의적 착취에 저항하는 노동자계급의 가장 기본적인 조직형태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동시에, 이를 역으로 생각해보면 경제투쟁의 최선의 결과는 현상 유지일 뿐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마르크스가 강조하듯이 경제투쟁은 임금제도라는 원인이 아니라 그 결과에 대한 투쟁이기 때문에 노조가 자신의 조직된 힘을 노동자계급의 최종적 해방, 즉 임금제도의 궁극적 폐지를 위한 지렛대로 이용하지 않는다면 총체적으로 실패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같은 맥락에서 ‘노동자들의 투쟁의 진정한 결과는 [임금률의 인상이라는] 직접적 성과가 아니라 점차 확대되는 그들의 단결이다’라는 『공산주의자 선언』의 문구를 상기할 수 있다. 이러한 마르크스의 노조이론은 국제노동자연합 활동 속에서 더욱 발전한다.

1848년 유럽 혁명이 패배로 막을 내린 뒤에도 1850년대 이후 세계 각지에서는 노동자 투쟁과 민족해방의 물결이 새롭게 일어나면서 다양한 형태의 노동자 조직이 결성되었다. 그 성과를 바탕으로 1863년 각국 노동자운동 지도부가 임시회의를 개최하여 ‘국제노동자연합’을 명칭으로 채택하고 각국별 대표위원으로 총평의회를 구성했다. 이때 마르크스는 독일 통신서기로 선출되어 국제노동자연합 발기문과 임시규약을 작성하는 책임을 맡게 된다. 국제노동자연합은 1864년 런던에서 창립 대회를 개최한 뒤 1866년 마르크스가 기초한 「창립선언문」(발기문)과 임시규약을 공식적으로 채택했다. 또한 마르크스는 「총평의회 회원들을 위한 개별 문제들에 대한 지침」을 작성하여 국제 노동자운동이 연합을 매개로 노동일의 제한과 여성·아동 노동의 보호를 위해 투쟁할 것을 제안한다. 특히 그는 이 「지침」에서 ‘노동조합은 그 원래의 목적과는 별도로 노동자계급의 완전한 해방이라는 위대한 이익을 위해서 노동자계급의 조직화의 중심으로서 의식적으로 행동해야 한다’고 강조하며, 이러한 투쟁을 사회·정치 운동이라고 지칭하고 있다.

국제노동자연합의 창립은 마르크스가 『공산주의자 선언』에서 상정한 노동자 조직의 모델이 최소한 ‘형식적’으로 실현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우선 원리의 측면에서 국제노동자연합은 노동자계급 자율성의 원칙, 정치권력의 쟁취라는 프롤레타리아 정치의 기본원리, 국제주의의 원리를 표방했다. 구성의 측면에서 보면, 연합은 유럽 프롤레타리아의 모든 조직 형태들과 경향들의 통일을 추구했다. 특히 영국 노조주의를 포함하고 있었다는 점에서 노동자의 대중적 토대라는 조건을 충족했다. 그 결과 연합 내에는 △직능노조를 기반으로 자유주의를 수용한 영국의 노조주의 △협동조합을 기반으로 상호부조 사상을 펼친 프루동주의 △비밀결사를 바탕으로 국가폐지론을 주장한 바쿠닌주의 △정당을 기반으로 국가주의를 표방한 라살주의와 같은 다양한 경향이 공존하고 있었다.

그런데 1871년 파리코뮌 이후 국제노동자연합에 대한 탄압이 심화되는 동시에 내부적 대립이 격화되었다. 프랑스 노동자운동은 직접적인 타격을 입었으며 독일에서는 비스마르크의 사회주의 탄압이 강화됐다. 독일 사회주의 내부의 반목, 바쿠닌 세력의 부상, 미국 전국노동동맹의 약화, 영국 노조주의의 국제노동자연합 탈퇴 등으로 국제노동자연합은 위기에 봉착했다. 이런 상황에서 1871년에 개최된 국제노동자연합 런던 임시대회에서는 파리코뮌 패배의 교훈으로 노동자 정당을 통한 정치활동의 중요성이 강조된다. 그리고 1872년 헤이그 대회에서 연합은 ‘노동자계급은 유산계급과 독자적인 정당으로 자신을 조직할 경우에만 하나의 계급으로 행동할 수 있다’는 안을 결의한다. 동시에 바쿠닌주의자를 제명하고 본부 소재지를 미국으로 이전하는데, 이는 곧 국제노동자연합의 해산을 의미했다.

그런데 여기서 고려해야 할 점이 있다. 마르크스는 파리코뮌의 약점을 ‘노동자계급의 전투적 조직의 중심의 부재’라고 설명했지만 결코 정당을 노동자 조직의 일반적 형태로 간주한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마르크스의 관념에서 정당이란 ‘계급투쟁의 최고로 발전된 형태이자 중심’이라기보다는 노동자대중에 앞서 노동자운동의 조건·경과·결과에 대한 인식을 갖는 ‘계급투쟁의 분석자’이자 ‘사회운동의 실험자’에 가까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르크스가 노조와 당을 제도적으로 구별할 필요성을 느끼게 된 것은, 바쿠닌주의자와의 갈등이라는 표면적 요인도 있었지만 영국 노조주의의 개량화에 기인한 측면도 크다고 할 수 있다.


궁핍화 논쟁과 독일사민당, 제2인터내셔널

영국 노조주의의 이탈 이후 국제 노동자운동의 중심 세력으로 독일 사회주의가 부상한다. 그렇다면 마르크스가 마지막 기대를 걸었던 독일 사회주의는 과연 그의 사상을 어떻게 수용했는가?

1869년 베벨과 리프크네히트(‘마르크스파’ 또는 일명 ‘아이제나흐파’)가 주도하여 창당한 독일사회민주노동당과 1863년 라살이 주도하여 창립한 전독일노동자협의회는 1875년 고타대회를 개최하여 독일사회주의노동당을 결성한다(1890년부터 독일사회민주당으로 개명). 그러나 ‘마르크스파’는 마르크스와 라살의 이론을 근본적으로 구분하지 못한 채 오히려 라살의 임금철칙설을 수용하고 만다. 이미 마르크스는 『자본』 1권의 독일어 초판 서문(1867년)에서 라살이 자신의 ‘지적 정수’를 참칭하면서 저지른 ‘중대한 오류’를 명시적으로 지적했지만 독일 사회주의자에게 큰 영향을 미치지 못했던 것이다. 이에 마르크스는 1875년 『고타강령 비판』을 집필하여 라살의 임금철칙설을 비판하지만, 리프크네히트의 만류로 이를 발표할 기회조차 얻지 못한다. 엥겔스는 이를 두고 “우리 국민은 스스로 라살의 ‘임금철칙’이라는 짐을 졌다. 이것은 우리 당의 거대한 정신적 패배다”라고 개탄한다.

그렇다면 임금철칙설의 오류는 무엇인가? 라피데스가 지적하듯이, 마르크스 자신은 성숙기로 이행한 이후 실질임금이 노동자계급의 ‘최저생계’ 수준으로 하락한다거나 빈민으로 전락한다는 의미에서 ‘궁핍화’를 언급한 적이 없다는 사실이 우선 지적될 필요가 있다. 오히려 마르크스는 웨스턴과의 논쟁(『가치, 가격, 이윤』)에서 사회주의 사상에까지 침투한 정통적 임금론, 다시 말해 라살의 임금철칙설을 정면으로 반박한다. 경제학의 임금기금설을 기반으로 하는 라살의 임금철칙설은 노동조합의 임금투쟁이나 전투적 행동에 대한 반론을 정당화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임금철칙설로 위조된 사이비 ‘마르크스주의’는 노조주의에 대한 라살의 오도된 적대와 함께 ‘마르크스파’의 정통 노선으로 승인되기에 이른다.

그리하여 마르크스 사후 독일사민당과 제2인터내셔널의 ‘궁핍화’ 논쟁은 마르크스의 임금이론과 아무런 관련이 없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마르크스파’는 궁핍화론을 마르크스주의의 근본적 교의로 수용한 반면, 반 마르크스주의자들은 그것이 마르크스 임금이론의 비현실성을 드러내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실제로 1890년대 이후 독일에서 생활조건이 점진적으로 개선되고 의회에서 사민당이 약진하자, 당 내에서는 베른슈타인을 필두로 수정주의가 전면에 등장했다. 베른슈타인은 사민당의 혁명적 수사로 장식되던 묵시론적 성격의 붕괴이론을 공격하면서, 그것을 『공산주의자 선언』에서 정식화된 마르크스의 궁핍화론의 탓으로 돌렸다. 그 실천적 함의는 독일사민당이 비현실적인 유토피아를 포기하고 보다 적극적인 의회주의와 계급연합 전략을 채택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또한 노동조합은 사민당과 자립적으로 노사관계를 제도화하고 단체협상의 파트너로서 적극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카우츠키로 대표되는 정통파는 수정주의를 비판하면서 혁명적 수사를 제시했음에도 불구하고, ‘혁명적 시간’이 도래하기 이전에 정치적 행동에 돌입하는 것을 우려했다. 정치적 수동주의와 대기주의가 정당화된 것이다. 이는 총파업과 같은 노동쟁의를 정당이 주도할 경우 의회 안에서의 행동에 제약을 가할 수 있다는 당 지도부의 의중을 반영한 것인 동시에, 불충분하게 준비된 파업이나 성공의 희망이 없는 파업은 노조를 심각하게 약화시킬 수도 있다는 노조 지도부의 공포를 반영한 것이기도 했다. 결국 독일사민당의 의회주의와 노조의 조직보존 논리가 결합해서 집단적 ‘대기주의’가 탄생하게 된다. 이러한 독일 노동자운동의 우경화는 사민당의 1차 대전 참전 결의와 노조의 ‘산업 휴전’ 동의로 귀결됐고, 이는 곧 제2인터내셔널로 상징되는 국제 노동자운동의 거대한 분열을 의미했다.

그렇다면 갖은 오해를 야기한 ‘궁핍화론’에 대한 마르크스적 해법은 무엇인가? 우리는 엥겔스가 1891년 독일사민당 강령(에어푸르트 강령)의 ‘궁핍화’에 반대하면서 “실제로 증가하는 것은 존재의 불안전이다”라고 주장한 것에서 그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마르크스는 『자본』의 결론부에서 ‘상대적 과잉인구의 창출’, 즉 ‘착취·억압의 증대’와 ‘빈곤·무지·야만·타락’의 축적을 ‘궁핍화’로 정의했다. 다시 말해, 노동자들이 대면하는 가장 큰 재앙이란 임금하락이 아니라 임금을 전혀 받지 못하게 될 위협이다. 임금노동 제도의 가장 큰 해악은 비판자들의 억측대로 ‘궁핍화’가 아니라 임금노동 제도의 근간을 이루는 ‘노예관계’ 그 자체인 것이다.


시사점

마르크스는 임금이론을 통해 노동조합이 자본주의적 착취에 대항하는 노동자들의 기본적인 조직형태라는 점을 밝혀냈다. 동시에 노동조합은 노동자의 완전한 해방을 위해 자신의 조직된 힘을 바탕으로 노동자계급의 통일을 추구함으로써 임금노동 제도를 철폐하기 위한 사회·정치 운동으로 발전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라피데스는 마르크스가 임금이론을 완성함으로써 노조 투쟁에 대한 적대와 종파적 불모성으로부터 사회주의를 해방시키는 동시에 생디칼리즘의 파업 일변도로부터 노조 운동을 해방시켰다는 결론을 도출한다. 우리는 이상의 논의로부터 어떤 시사점을 발견할 수 있는가?

누구나 알다시피 노동조합은 원칙적으로 방어적 계급투쟁을 수행하는 조직이다. 이때 중요한 것은 방어투쟁 그 자체라기보다는 그 방식이다. 즉 노동조합이 조직된 노동자들의 협소한 이해를 방어하는데 주력할 것인가, 아니면 실업자와 반(半)실업자를 포괄하는 전체 노동자계급의 단결을 추구할 것인가가 관건이 된다. 후자의 입장에 선다면, 노동조합은 ‘노동자계급 내부의 격차를 축소해 나감으로써 노동자의 통일적 이익을 창출한다’는 노선을 취하게 될 것이다. 이는 단체교섭의 행위자로서 노조가 사회·정치 운동의 주체로서 발돋움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자본주의의 위기가 심화되는 동시에 노동자운동이 오랜 침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지금, 노동조합의 변화·발전은 가장 긴급하고 중요한 과제 중 하나다. 이 책이 마르크스주의 노동조합 이론에 관한 하나의 지침서로 활용되어, 우리 민주노조 운동이 처한 안팎의 곤란을 헤쳐 나가는 데 작은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사회진보연대 부설 노동자운동연구소의 출범에 발맞춰 본서가 출간된 것은 연구소의 활동 방향을 어느 정도 예시하는 것이기도 하다. 앞으로 노동자운동을 변화·발전시키기 위한 구체적 정책과 노동자운동의 이념을 쇄신하기 위한 다양한 토론·교육을 통해 활동가들과 만날 것을 약속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