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바마 대통령은 한국의 건강보험체계가 부럽다고 했습니다. 파산하는 미국인들의 50% 이상이 의료비로 인해 파산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한국 역시 파산의 원인 중 10~20%가 의료비 부채로 인한 것입니다. 또 우리나라 성인 중 의료서비스가 필요한 데 의료서비스를 받지 못하는 미충족률은 3~10%에 달합니다. 빈곤층의 경우에는 8~15%가 경제적인 이유로 치료를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의료비 부담은 일부 가난한 사람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국민들 대다수의 문제입니다. 암이나 심장 및 뇌혈관 질환 등 중병에 걸리면 치료비가 수천 만 원이 들어 웬만한 중산층도 빈곤층으로 전락합니다.

‘의료비 가계 파탄’이라는 말이 언론 매체에 점점 더 많이 등장하고 피부에 와 닿는 문제가 되다보니, 민주당도 ‘무상의료’가 유권자들의 호응을 얻을 만한 얘기라고 생각한 것 같습니다. 민주당은 올해 1월 “실질적 무상의료 실현을 위한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방안”을 당론으로 확정하고 ‘전 국민을 대상으로 입원진료비 90% 보장(현재 입원진료비 보장률 약 62%), 환자 본인부담 상한 연간 100만원’을 내세웠습니다. 향후 총선과 대선을 겨냥한 공약이기에 한나라당과 주류 보수언론은 즉각적 비판에 나섰고 진보진영은 그간 시민사회에서 요구해왔던 정책방안들을 담고 있는 민주당의 무상의료안을 환영하거나 부족한 부분들을 지적하며 비판적 지지를 보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민주당을 지지하고 정권을 교체하면 문제가 해결될 수 있을까요. 무상의료는 단지 의료비를 경감한다는 문제를 넘어 보건의료제도 전반의 개혁이 필요한 문제입니다. 따라서 가장 중요한 문제는 개혁의 방향입니다. 국민들의 보편적인 건강권 실현을 위해 존재해야 할 보건의료는 점점 더 삼성을 비롯한 재벌들의 시장 확대 영역으로 변질되어, 보건의료에서 자본의 지배는 더 강화되고 있습니다. 노동자 민중이 건강할 권리보다 병원, 제약, 민간보험 등의 의료자본이 ‘이윤을 추구할 권리’에 힘이 훨씬 많이 쏠려 있는 상태입니다. 민주당의 무상의료 정책이 그동안 시민사회 진영에서 요구했던 정책들을 반영하고 있다고 해서 민주당이 이러한 역관계를 바꿔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는 정책의 함정이기도 합니다.

보건의료가 자본에 잠식되는 상황에서 정부는 건강권에 훨씬 더 많은 힘을 실어야 하지만 역대 정부는 자본을 제어할 능력도 의지도 부족했습니다. 오히려 자본의 지배를 방관하고 부추겼습니다. 이럴 때일수록 자본의 의도를 저지할 수 있는 노동자 민중의 대중적 운동이 중요합니다. 그러나 운동의 힘이 약하기 때문에 민주당과 협력해야 조금이라도 상황이 개선될 것이라 믿는 경우도 있습니다. 하지만 조금이라도 상황을 개선시키려면 자본에 맞설 수 있는 노동자민중의 독자적인 힘이 더 커져야 합니다. 민주당에 기대면 기댈수록 노동자 민중의 힘을 강화하려는 노력은 상대적으로 약화됩니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민주당을 압박할 정치적 힘도 줄어들고 말 것입니다.

2012년 총대선을 앞두고 야권연합 프레임에 갇혀 노동자민중운동이 점점 더 우경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노동자민중운동을 재건하기 위한 노력이 절실합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병원비 부담을 덜기 위해 보건의료제도에서 진정 바뀌어야 하는 부분은 무엇일지, 노동자 민중의 건강권을 쟁취하기 위해 무상의료 운동이 요구해야 하는 것은 무엇일지, 이 소책자가 조금이나마 실마리를 제공하길 바랍니다.


2011년 11월 7일
사회진보연대 보건의료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