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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성기업 파업 그 후 1년, '밤샘노동 철폐' 먼저 외친 대가는…] 노조는 갈리고, 노동시간 선택권은 회사로 넘어가
2012년 05월 22일 (화) 김미영 ming2@labortoday.co.kr

자료사진 정기훈 기자
"공장이 참 삭막하죠? 불과 1년 전만 해도 직원들끼리 한 가족 같았는데…. 집안에 밥숟가락이 몇 개인지도 다 알 정도로 친했던 사람들인데 이제는 밥도 같이 안 먹어요. 공장에서 삼삼오오 모여 담배라도 같이 피려고 하면 관리자들이 쫓아와서 소리를 지릅니다. 모여 있지 말라고요. 숨이 턱턱 막혀요.”

홍종인(40) 금속노조 유성기업 아산공장지회장이 길게 한숨을 내셨다. 유성기업 파업사태가 벌어진 지 1년째 되던 지난 18일 정오가 조금 지난 무렵. 충남 아산시 둔포면에 위치한 유성기업 아산공장은 적막했다. 육중하고 날카로운 기계음이 사람의 말소리가 사라진 공장 안을 채우고 있을 뿐이다. 오후 3시가 되자 공장 곳곳에서 기계소리마저 멈췄다. 아산공장 노동자들이 이날 오후 4시간 부분파업에 돌입한 것이다. 지난해 5월18일 2시간 부분파업에 따른 직장폐쇄로 노사 간 극한 대립을 겪다가 경찰력에 의해 파업이 강제로 해산됐던 악몽을 겪고도 이들은 일손을 멈췄다. 홍종인 지회장은 “회사가 불법파업 운운하며 또 징계하겠다고 조합원들을 겁박했지만 민주노조를 지켜야 한다는 절박함을 이기지는 못했다”고 말했다. 지난해 "밤에 잠 좀 자면서 사람답게 살아 보자"고 외쳤던 노동자들은 이제 "노조를 지켜야 우리도 살 수 있다"고 말한다. 지난 1년 새 유성기업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던 것일까.

조합원의 잇단 죽음과 주간연속 2교대 합의

유성기업은 자동차 엔진에 들어가는 피스톤링과 실린더라이너를 생산하는 부품회사다. 1960년 설립했다. 노동자의 평균 근속연수는 지난해 기준 16.1년, 평균 나이는 41.7세다. 사람도 기계설비도 오랜 역사를 이어 온 만큼 노후한 상태다. 노동자들은 하루 24시간을 12시간씩 쪼개 주야 맞교대를 한다.

그런 가운데 2007년부터 죽음의 그림자가 공장을 덮쳐 왔다. 그해 11월 영동공장 이아무개씨가 돌연사했다. 이듬해 6월 같은 공장 황아무개씨도 이유 없이 사망했다. 2009년 7월 아산공장 김진호씨는 뇌출혈로 숨졌고, 같은해 11월 같은 공장에서 공황장애를 앓던 김아무개씨가 명을 달리했다. 2010년과 지난해에도 노동자들이 급성폐혈증과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99년에는 영동공장 이아무개씨가 야간근무를 마치고 퇴근하는 통근버스에서 숨진 사고가 있었다.

지회는 계속되는 조합원의 사망원인을 장시간 야간노동이라고 봤다. 지난해 3월 사망한 장아무개씨는 일하다 허리를 다쳐 산재요양 후 공장에 복귀했다. 주간작업만 희망했지만 회사는 받아들이지 않았고 결국 그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지난해 1월1일부터 주간연속 2교대제를 시행한다는 2009년 노사합의는 이런 배경에서 나왔다. 그러나 노사 간의 약속은 1년이 지난 현재까지 지켜지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 노동자들이 주간연속 2교대 합의 이행을 요구하며 파업에 돌입했을 때 이명박 대통령과 최중경 전 지식경제부장관은 “7천만원이 넘는 연봉을 받는 유성기업노조의 파업은 국민들이 이해하기 힘들 것”이라고 손가락질했고, 보수적인 언론들은 “금속노조의 알박기 파업이며, (유성기업 노동자들은) 자동차생산의 발목을 잡고 국민경제를 위협하는 주범”이라고 비난했다.

파업이 끝나고 유성기업 사태가 사람들의 뇌리에서 잊힌 요즘 자동차 제조업종의 장시간 노동 문제는 국가적 차원에서 해결해야 할 사회적 의제로 떠올랐다. 그러나 유성기업에서는 주간연속 2교대 도입을 위한 노사 간 협상은 지난해 중단된 이후 재개될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다. 오히려 지회가 없애자고 했던 잔업과 특근에 조합원들이 더 매달리고 있다.

노조탄압 수단으로 악용되는 잔업과 특근

아산공장 생산5과에서 근무하는 홍길연(56·가명)씨는 이달 14일부터 잔업을 전혀 하지 못했다. 홍씨가 이를 원했던 것은 아니다. 매주 월요일 관리자가 ‘잔업계’를 들고 오는데 그의 명부에는 이미 빨간줄이 쳐져 있었다. 홍씨는 “회사의 부당노동행위를 수사하는 고용노동부의 출석조사에 응했더니 회사가 분풀이를 하고 있다”고 귀띔했다.

홍씨만이 아니다. 유성기업에는 지난해 파업 이후 기업별노조가 등장했다. 복수노조 사업장이 된 것인데, 노조 간 잔업시간이 다르다. 금속노조 소속 조합원은 2시간, 기업노조 조합원은 3시간이다. 특근의 경우 금속노조 조합원들이 우선 배제된다. 시급제이다 보니 일을 적게 한 금속노조 조합원들의 임금은 기업노조 조합원에 3분의 2 수준이다. 잔업과 특근이 노조 간 임금차별을 조장하는 수단으로 쓰이는 셈이다. 홍 지회장은 “회사가 월급을 더 받고 싶으면 금속노조를 탈퇴하고 기업노조로 가라고 공공연하게 말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형제도 갈라 놓은 복수노조

홍씨가 노동부에 조사를 받으러 간 것도 복수노조 가입 권유를 받았다는 증언 때문이었다. 올해로 25년째 일하고 있는 홍씨는 딸과 함께 유성기업에 다닌다. 유성기업에는 홍씨 가족처럼 부녀 직원이나 부자 직원·형제 직원이 많다.

홍씨의 딸은 지난해 지회 대의원을 맡았다. 부녀는 끝까지 파업대열에 동참했고 지난해 9월 징계를 받았다. ‘정직 1개월에 처한다’는 징계결과 통보는 홍씨가 모친상을 겪고 있던 와중에 전해졌다.

“늙어서는 밤에 잠 좀 자고 싶다고 파업을 한 게 뭐 죽을죄라도 된답니까. 초상 중에 징계위원회에 와서 처분을 받으라는데 너무 속상하더라고요.” 이어 회사 관리자는 올해 초 홍씨에게 접근해 노조와 관련한 제안을 했다. 기업노조로 옮기면 성과급도 주고 월급도 더 받을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그는 “딸이 지회 대의원을 맡고 있는데 부녀 간에 등을 돌리라는 것이냐고 성을 내고 말았다”며 분을 참지 못했다.

복수노조 때문에 형제 사이에 정을 끊은 경우도 있다. 고진호(43·가명)씨는 친형과 유성기업에 10년 이상 다녔다. 그런데 먼저 파업에서 복귀한 형이 기업노조에 가입하면서 사이가 틀어졌다. 이들은 사적인 대화를 아예 나누지 않는다고 했다.

홍 지회장은 “파업 이후 가장 고통스러운 것은 그토록 친하고 아꼈던 사람들이 시선도 마주치지 않고 원수처럼 지내게 된 것”이라고 안타까워했다. 한동네에서 친형제처럼 지냈던 사람들이 상을 당해도 찾아가지 않는 것은 예삿일이고, 한 솥에 지은 밥을 같이 먹을 수 없다는 이유로 아예 공장에서는 밥을 먹지 않는 조합원도 있다. 이런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지회는 파업 이후 조합원을 대상으로 심리치료 사업을 시작했다. 치료에 들어가기 전 조합원을 상대로 설문조사를 실시했는데, 10명 중 6명이 당장 의사로부터 상담을 받아야 하는 대상자로 분류됐다.

부품사 노사관계 주무르는 현대차

유성기업은 지난해 11월 노동부 특별감독 결과 70건의 노동관계법 위반사례와 10억원에 이르는 과태료 부과 처분을 받았다. 충남지방노동위원회로부터는 '불이익 처분과 사용자 지배·개입'에 해당하는 부당노동행위 사실이 인정돼 시정명령을 받았다. 170여명의 징계자는 전원 부당징계로 판정됐다.

법원도 노동자들의 손을 들어줬다. 지난해 대전지법 천안지원은 27명의 해고자가 제기한 근로자지위보존 가처분을 받아들여 사실상 부당해고라는 판결을 내렸다.

하지만 해고자들은 아직도 일터로 돌아가지 못한 채 공장 앞 낡아 빠진 텐트에서 지낸다. 지회는 “유성기업 뒤에는 현대자동차가 있다”며 “노동시간 단축이라는 사회적 의제가 확산되는 것을 막기 위해 원청기업이 부품사 노사관계를 짓밟아 망가뜨린 것이 유성기업 사태의 본질”이라고 설명한다. 지난해 파업 이후 현대차가 유성기업의 납품단가를 23% 이상 인상시켜 준 것도 같은 맥락으로 풀이했다.

한지원 노동자운동연구소 연구실장은 “유성기업 노동자들의 투쟁은 원·하청 문제와 교대제 문제가 교차하는 한국 자동차산업의 중심에 있다”며 “금속노조의 올해 핵심사업인 주간연속 2교대제 투쟁은 다시 유성기업을 상대로 한 투쟁에서부터 실마리를 찾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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