ㆍ시민단체 “수급자 검열하는 선별 복지부터 바꿔야”

‘금붙이를 팔아 어머니 카드빚을 갚고 화장해서 아무 데나 뿌려달라. 이런 일 처리하게 해서 미안하다.’

2012년 11월28일 인천 서부경찰서는 독신인 딸 이모씨(당시 48세)와 고혈압·중풍을 앓는 이씨의 어머니(당시 73세)가 이렇게 유서를 남기고 숨진 채 발견됐다고 밝혔다. 집은 깨끗하게 청소돼 있었고 두 모녀는 각자의 방에 반듯하게 누워 있었으며 불에 탄 번개탄과 버너가 발견됐다. 모녀를 벼랑으로 몰아간 것은 지난달 26일 동반자살을 택한 송파구의 세 모녀처럼 월세와 질병이었다. 이씨의 어머니가 월 9만1200원의 기초노령연금을 받았던 점을 제외하면 주민센터의 문을 두드리지도 않았고 복지제도의 도움을 받지 못했다는 점도 닮았다.

김윤영 빈곤사회연대 사무국장은 “반복되는 풍경”이라고 말했다. 그는 “2012년 겨울 기초생활보장제도 수급자가 되지 못한 할머니와 손주가 촛불로 생활하다가 화재로 사망한 사건, 2010년 자신 때문에 장애를 가진 아들이 기초수급자가 되지 못한다는 얘기에 자살을 선택한 가난한 건설일용직 노동자가 있었다”며 “복지제도에서 소외된 이들의 숱한 죽음이 우리 곁을 스쳐 지나갔다”고 덧붙였다.
 
최근 정부가 그나마 ‘대책’을 언급하기 시작했다. “기초생활보장제도·긴급지원제도 등 복지제도에 대한 홍보를 강화하겠다”면서 3월 한 달간 복지사각지대 일제조사에 나선다고 밝혔다. 

그러나 홍보만 강조하면서 선별적 공공부조의 구조적 문제는 건드리려 하지 않는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빈곤 관련 단체에선 “ ‘검열’에 중심을 둔 제도부터 고치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송파구 세 모녀가 주민센터를 찾아갔다고 해도 아픈 큰딸을 포함해 두 명의 젊은 딸이 있어 근로능력이 있는 부양의무자가 있다는 판단에 따라 기초생활보장 수급자는 되지 못했을 것으로 보인다. 

6개월만 지원되는 긴급복지지원제도마저 “(세 모녀는) 지원법상의 지원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김 사무국장)는 지적이 나온다. 가능한 도움은 ‘민간단체와의 연결’ 정도인데 지역마다 사정이 다르고 그마저 한시적일 가능성이 크다.

신청해도 탈락하는 사례가 반복되면서 “국가 복지는 까다롭기만 하고 별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이란 인식이 자리잡게 됐다”(주은선 경기대 교수)는 점도 복지 신청에 소극적이게 만들고 있다. ‘신청했으면 도움 드렸을 것’이라는 정부는 현실과 거리가 먼 얘기를 하고 있는 셈이다.
 
 
올해 10월 기초생활보장제도가 도입 14년 만에 전면 개편되지만 이런 문제가 해결되는 것도 아니다. 최저생계비 이하로 살아가지만 부양의무자 기준 때문에 탈락한 117만명(정부 추산) 중 수급층으로 들어오는 이들은 12만명에 그칠 것으로 보인다.

사회공공연구소 제갈현숙 실장은 복지공무원들 역시 살인적 업무 문제를 호소하며 죽어간 사건들을 언급하면서 “인구 규모당 복지공무원 수가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의 60분의 1에 불과한 수준인데 어떻게 일일이 점검·발굴하는 게 가능하겠느냐”면서 “인력을 획기적으로 확충해 일선 복지공무원들이 서류에서 벗어나 현장에서 일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