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대학의 양극화 심화시킬 '대학구조개혁방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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뻔뻔한 교육부의 책임전가

교육부의 뻔뻔함은 어디까지인가. 엉터리 설문조사와 부정확한 통계수치를 근거로 EBS 수능방송이 사교육비를 감소시켰다는 억지를 부리더니, 대학교육 부실의 원인을 제공해놓고 이제 와서 대학들이 스스로 구조조정을 하지 않으면 재정지원을 않겠다며 협박을 일삼고 있다. 교육부 자신도 서슴없이 '대학 구조조정'을 내뱉을 정도로 남한의 기형적인 대학체제는 근본적인 대수술이 불가피한 상태다. 과거 파쇼정권 하에서 정치적인 목적(국가 정통성 확보)과 경제적인 목적(산업자본 수요 충족)으로 양적인 팽창만을 거듭해왔던 대학은 자본의 축적위기로 인해 과거와 같은 대규모의 산업노동력 양성이라는 역할을 포기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 이제 대학교육은 과잉교육 상태를 넘어 부실교육 상태로 치닫고 있다.

이에 따라 자본은 자신의 축적위기가 대학에서 비롯된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위기를 빌미로 대학을 신자유주의 논리로 재편하려 한다. '다양화·특성화'란 명분으로 소위 '경쟁력' 없는 대학과 학과를 대폭 없애고, 기업과의 긴밀한 연계(산학협력)를 통해 경제성장의 원동력을 창출하는 기관으로 탈바꿈시키려 하고 있다. 이에 따라 정권은 양적인 구조조정과 편중된 재정지원을 통해 잘 나가는 소수만 살아남으라 하고, 분권화와 지역균형발전을 강조하며 'NURI 사업'을 통해 지방대학의 경제종속을 강요하고 있다. 또한 교육개방을 통해 국내 교육시장화를 촉진하는 기제로 활용하고 있다.

한편 폭등하는 교육비, 비리와 부패로 얼룩진 사학운영, 실업난으로 인해 대학은 이미 전통적인 역할을 상실했으며, 대학인의 교육권은 심각하게 침해당하고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더 이상 대학인의 인내만을 강요하는 정책은 집단적 반발을 살 수밖에 없다.

따라서 지금으로선 정부와 자본측이든 대학주체들이든 대학의 근본적인 변화의 필요성에는 공감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하지만 대학구조개혁의 필요성을 제기하기에 앞서 현 대학체제를 이 지경까지 몰고 온 정부와 자본에 먼저 책임을 물어야 한다. 그러나 정부는 안하무인격으로 자신의 책임을 회피한 채 오히려 재정지원을 협박 삼아 대학을 더욱 위기로 몰아가고 있다. 이번 대학구조개혁방안은 교육재정을 전폭 투자하여 위기에 처한 대학을 살리자는 방안이 아니라 소수 경쟁력 있는 대학만 집중지원을 통해 살아남도록 하여 서열화·양극화는 더욱 심해지며, 이에 따라 대학교육은 물론 중등교육마저 악영향을 끼칠 정책이다. 또한 기업의 논리에 따라 대학의 시장화를 더욱 촉진하여 대학을 경제성장의 발판으로 삼고자 하는 의도를 노골적으로 내비친 것이며, 이는 개방·분권 정책과 결합되어 나타나고 있으며 소수 특권계층만을 위한 안정적인 재생산 기반을 구축하려는 음모다.

추진과제별 문제점

① 명분 없는 대학(원)의 정보공개, 평가, 자체발전계획수립

교육부는 대학(원)에 대한 평가를 말하기에 앞서 얼마나 책임 있게 대학정책을 펴왔는지 스스로에게 물어야 한다. 그렇다면 답은 뻔하다. 교육부를 먼저 평가하고 그 책임을 물어야 한다. 교육부의 인색한 교육투자, 무분별한 대학설립·정원증원 인가, 사학비리 방관 등으로 인해 발생한 폭등하는 등록금, 늘어가는 시간강사, 열악한 교육환경 등의 문제는 대학주체들의 교육권을 송두리째 앗아가고 있다. 실로 평가는 대학 스스로가 자율적인 환경에서 교육과 연구활동에 힘쓸 때라야 비로소 가능할 터인데, 교육과 연구는커녕 돈벌이와 비리에 매진하는 대학이 수두룩한 상황에서 무슨 평가가 가능할 것인가.

사실 대학에 대해 평가를 하고 그 결과를 공개한다는 것은 마치 주식회사가 자신의 경영상태를 공개하여 주주의 재산권을 보호하고 시장에서 공정한 경쟁을 유도하겠다는 것과 유사한 논리다. 교육 소비자인 학생과 학부모로 하여금 대학에 대한 올바른 정보를 제공하여 선택권을 보장하자는 취지라고 하나, 현재 학생과 학부모가 대학을 선택하는 기준은 대학의 교육여건이 아니라 대학서열임은 엄연한 사실이다. 따라서 소비자의 선택권 보장을 빌미로 대학 평가를 통해 공식적인 순위(서열) 매기기가 될 것이 뻔해 대학서열체제는 이제 대학을 선택하는 공식적인 기준이 되어버린다.

결국 평가란 수치화·계량화 될 수 있는 것들만을 대상으로 할 수밖에 없어 교육목표와 질 등에 대한 평가보다는 '투입 대비 산출'과 같은 경영성과, 교육여건의 단순지표 등 '교육'에 대한 평가가 아니라 '경영'에 대한 평가가 이루어지게 되어 향후 지속적인 구조조정을 위한 판단기준이 될 수밖에 없다.

이와 더불어 대학이 발전지표를 세우게 하고, 그 성과에 따라 재정지원을 한다는 계획은 국가가 학문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정부는 대학의 자체 목표를 근거로 할당량에 대한 상황을 항상 감시하게 되며, 상시적인 평가를 통해 예산을 차등 지원하여 실적이 '나쁜' 대학은 과감히 잘라버리겠다는 의도이다. 이런 식의 정부에 의한 상시적인 평가는 결국 기초학문을 고사시키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각 대학들은 한정된 예산을 따내기 위한 경쟁적인 조건속에서 단기간에 성과를 낼 수 있는, 이윤창출과 밀접한 연구에만 집중투자를 하게 될 것은 뻔하다. 또한 경영합리화란 명분으로 불필요한 인원과 시설, 예산은 지속적으로 삭감될 것이다.

② 손 안대고 코푸는 격인 대학정원 감축과 통폐합

정부의 정치적 목적과 사학의 경제적 목적이 결합되어 빚어진 대학과 대학정원의 무분별한 확대는 대학의 교육여건을 현격히 떨어뜨렸다. 현재 법정 전임교원을 확보하고 있는 대학이 극히 드물어 교육부의 협박대로 교원 1인당 학생수 비율을 맞추기 위해선 전임교원을 늘이거나 학생수를 줄여야 하는데, 어차피 학생수가 감소하고 있으니까 정원을 감축하자는 것이 교육부의 대책이다. 이게 무슨 대책인가. 전임교원을 충원하는 것도 아니고, 정원을 줄이는 거라면 굳이 교육부가 호들갑 떨며 나서지 않아도 된다. 수요가 줄면 공급도 줄이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시장원리이다. 대학/정원을 마구 늘일 때는 언제고, 이제와 문제가 생기니 감축하면 된다는 유치한 생각을 갖고 있는 게 교육관료들의 정신상태다.

사실 대학이 정원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은 이유가 있다. 신자유주의가 초래한 극단적인 양극화 현상이 대학에도 나타나면서 지방·사립·전문대는 지원자가 감소하고 있는 반면, 서울의 4년제 대학은 해마다 높은 경쟁률을 보이고 있다. 또한 학과/전공별로도 안정적인 고소득이 보장되는 법·경영·사범·의대 등은 서울과 지방을 가리지 않고 몰리는 반면, 인문사회계열이나 이공계열은 서울지역에서도 천대를 받고 있다. 이 같은 편중된 쏠림 현상이 일부 학과와 학교의 미충원을 발생시키는 요인이며, 오히려 해마다 대학생의 수는 계속 증가하고 있다. 이런 편중지원 현상으로 인해 비인기 학과의 구조조정은 이미 현실이 되었으며, 이는 향후 대학간 통폐합에서 최우선 고려대상이 될 것이다.

정원감축 논리와 마찬가지로 대학간 통폐합을 강요하는 이유도 대학의 '경영개선'이다. 수요와 공급의 불일치로 정원을 채우지 못하는 대학이 늘어나면서 대학들이 '장사'하기가 어려워지자 통폐합이나 퇴출을 통해 수를 줄여보겠다는 심산이다. 교육부의 대학설립인가와 통폐합 정책에서 나타나는 공통점은 어떠한 교육철학과 원칙도 없다는 점과 철저하게 시장에 맡겨버린다는 점이다. 과거 무분별하게 대학설립을 인가해줬던 것처럼 이제는 장사가 안되면 시장에서 쫓아내겠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피해를 보는 것은 대학주체들이다.

하지만 이런 방식의 구조조정은 오히려 대학의 획일화, 독과점화를 심화시켜 대학의 양극화는 더욱 빠르게 확산될 것이다. 대다수 대학들이 무조건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인기 있는 학과만 남기거나 기업과 손잡고 산학협력을 강화하는 전략을 쓸 것이 뻔하며, 지방의 거점 대학을 중심으로 한 흡수통합은 독과점을 심화시켜 경쟁은 더욱 심해진다.

따라서 논의의 핵심은 일부 대학이 정원미달이니 무조건 없애자는 것이 아니라 돈만 좇는 천박한 학문풍토를 개선하고 대학이 지역사회와 연계하여 고등교육 본연의 역할과 기능을 수행할 수 있도록 지원을 하는 것이어야 한다. 이렇게 대학의 역할을 살리는 가운데 천편일률적인 종합대학식 대학체제의 극복과 정원의 조정에 대한 논의가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 순서다.

③ 국립대 민영화

국립대학회계제도의 도입은 대학본부가 재정편성·운영권을 갖되 정부가 재정지원의 책임을 덜고 각종 평가를 통해 대학에 대한 통제기제를 놓지 않으려는 것이다. 이제 대학은 다양한 방법으로(자체적인 구조조정이나 산학협력을 통해) 재정조달을 '알아서' 해야하며, 정부는 이를 이사회의 개방적 운영이나 총장선출방식의 다양화라는 화려한 수사로 덧씌우며 문제의 본질을 감추려는 것이다. 사립대학의 이사회나 국공립대학의 의사결정기구에 지역 인사나 외부 인사가 참여하지 않아서 각종 비리가 발생한 것은 결코 아니다. 오히려 외부 인사라는 이름으로 총장이나 이사장이 '자기 사람'을 심어놓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으며, 무조건 제3자가 참여한다고 해서 민주성과 투명성이 보장되지도 않는다. 국립대학회계제도는 오로지 경제적 논리에 의해 국립대의 경영을 개선한다는 명분으로 정부의 책임을 회피하는 것일 뿐이다.

④ 사립대 영리법인화로 가는 길

재산 일부를 설립자에게 쥐어주면서 부실사학을 퇴출시킨다고 하지만 실제로 얼마나 많은 사학들이 '자발적으로' 해산할 것인지 의문이다. 장사를 하는 입장에선 전도유망한 시장을 눈앞에 두고 쉽게 물러설 수는 없는 노릇이기 때문이다. 소수 극단적인 학교법인을 대상으로 생색내기에 그칠 가능성이 높으며, 기타 사학들은 부실사학으로 낙인찍히지 않기 위해 온갖 편법과 탈법을 동원하는 부작용을 낳을 수가 있다. 오히려 '구조개혁특별법' 이라는 퇴출양성화 제도를 계기로 영리법인의 학교설립 허용이 제기될 가능성이 높다. 특히 교육개방효과로 인해 국내법인이 아닌 경우 영리법인도 국내에 대학설립이 가능해진다면 형평성을 문제삼아 국내 학교법인도 동등한 대우를 요구할 것이 분명하다. 비리사학부터 시장에서 퇴출시키되 재산일부를 설립자에게 귀속시켜주면서 영리법인으로 전환하여 다시 '시장'으로 진입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이다. 이는 비리사학의 근절이 아니라 비리사학의 양성화라고 할 수 있다.

향후 전망과 과제

정부의 대학교육에 대한 정책기조는 시종일관 시장원리가 중심이었다. 역사적으로 대학교육의 확대과정에서 정부는 대학교육의 공급을 철저히 시장에 맡겨버린 결과, 학생들의 등록금으로 자신의 주머니만 채우려는 부실한 비리사학들만 어지러이 생겨났고, 대학교육의 양적 기회는 과거에 비해 넓어졌을지언정 개인의 교육비 부담은 대폭 늘어났고, 그에 반비례하여 교육의 질은 하락한 것이 작금의 현실이다. 교육부는 부실한 사학들이 난립하도록 정책적으로 유도해놓고, 이제 와서 강제로 대학간 통폐합, 퇴출, 정원감축을 통해 공급을 줄이면 자연스레 수요와 일치되리라고 보는 것이다. 따라서 현재 대학교육의 위기를 단순히 수요-공급의 불일치로만 파악한다면 정부의 무능과 실책, 비리사학재단의 범죄행위는 은폐되며, 모든 책임과 피해를 대학구성원들에게 고스란히 떠넘기게 되는 것이다. 또한 이 위기를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으로 극복하려 한다면 문제는 더욱 심각해진다.

정부의 대학구조개혁방안이 이대로 추진된다면 수도권 대학의 경우 일부 비인기 학과를 중심으로 정원감축이 이루어질 것이며, 지방대학은 대폭 몸집을 줄여 소위 '특성화 분야'(산학협력)만을 남겨 살아남거나 지역의 거점 대학에 흡수될 것이다. 또한 사학 퇴출을 양성화한다고 하지만 영리법인의 학교설립을 허용해주지 않는 한 실제 자발적으로 푼 돈 받고 문을 닫을 사학은 없을 것이다. 따라서 사학들은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별 짓을 다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고, 양적 팽창을 일부 막을 수는 있겠지만 개방효과로 인한 독과점화, 그로 인한 양극화는 더욱 심해진다.

현재 대학의 양적 규모에서 발생되는 문제로 구조조정의 출발을 삼는 것은 전형적인 신자유주의 논리이며 근본적인 접근이 아니다. 대학의 질적인 측면(대학의 역할과 기능)에 대한 문제를 먼저 고민하는 가운데 양적 규모에 대한 문제가 고려되어야 한다.

우리의 문제제기는 현재와 같은 미봉책으로는 문제점을 개선시키기는커녕 오히려 악화시킬 것임을 폭로하는 것에 초점을 맞춰야 하며, 이를 계기로 대학에 대한 근원적 고민을 촉발시키는 시발점을 마련해야 한다.

<진보교육뉴스45호>
2004년09월06일 16:4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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